<말하는 건축가>의 정재은 감독

 

갑작스런 비바람이 몰아쳤던 지난 4월 21일 토요일,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건축 다큐멘터리인 <말하는 건축가>의 상영이 있었다. 상영이 끝난 후에는 영화를 연출한 정재은 감독과 한선희 PD가 참여해 시네토크 시간을 이어갔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관객들이 참여해 다양한 질문을 던졌고 결국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이 날 상영은 끝날 수 있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한 인물의 마지막 삶의 기록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정기용 건축가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건축에 대한 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정재은(영화감독): 평소 공간이나 도시를 영화에 잘 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영화를 찍을 때 중요한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다 점점 관심이 도시 환경과 건축 문화로까지 커져갔다. 건축영화제가 열렸을 때 외국다큐멘터리들을 보니 대부분 빌딩 하나를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며 건축가, 건축주, 시공사 등을 보여주더라. 이와는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고, 그러다가 정기용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하기로 결심했다.

 

김성욱: 이 영화는 건축가의 사회적 위치를 굉장히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시회를 함께 준비하는 큐레이터를 보면서 건축가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질문해보았다. 동시에 엔딩장면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앉아 있는 그 자리가 정기용 건축가의 적절한 위치일까라는 생각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건축가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재은: 건축과 영화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내게 건축이 뭐냐고 질문할 때마다 건축은 영화라고 답한다. 건축가의 삶과 건축 다큐를 찍으면서 되돌아오는 것은 영화에 대한 질문이었다. 예전에는 원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 외에는 크게 다른 고민들을 해 보지 않았고 늘 남들이 하는 방식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기용 건축가를 만나면서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 영화 한 편에 과연 큰돈을 들여야 하는가라는 질문들을 스스로 해보았다. 건축가들의 양극화된 모습이 영화와 비슷하다. 거대한 설계사무소에서 찍어내는 건축이 있고 아뜰리에 스튜디오 방식으로 일하는 건축가들이 있다. 영화의 시스템이나 문화와 다르지 않았다. 사회 전반에 걸친 공통의 문제임을 느낄 수 있었다.

 

김성욱: 건축가와 영화감독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대문 운동장을 보여줄 때 현실화된 건축이 있고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제안과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중 다른 제안이 이루어졌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프로젝트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현실에는 일부만이 구현된다는 점, 그래서 건축이 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에도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셨을 텐데.

정재은: 처음 다큐멘터리를 만들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편집 작업이 시나리오 작업과 동일한 정신적 집중력을 요구하더라. 400 시간의 분량에서 하나의 신, 하나의 시퀀스, 하나의 상황을 고르는 것이 시나리오 작업과 똑같았다. 3개월 동안은 꼬박 줄여나갔고 그 다음 3개월은 여러 버전을 만들었다. 다른 버전들이 아쉽긴 했지만 결국 전시회가 중심에 있는 버전으로 완성했다.

 

 

김성욱: 한선희 프로듀서는 영화 속 큐레이터와 같은 역할이었을 것 같다. 이 작업에 어떻게 참여했는지, 프로듀서로서의 작업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한선희(프로듀서): 건축 영화제의 1,2회 프로그래머를 하면서 감독님과 많이 가까워졌다. 개인적으로 나도 공간을 잘 표현한 작품을 좋아한다. 우리 삶의 한 부분인 건축이 한국에서는 문화나 예술의 분야로 잘 인식되지 않고 인문학에서도 열외라는 점이 이상했다. 그러던 중 감독님이 일 년 정도 혼자 작업하면서 촬영을 80% 정도 끝냈을 때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 후로는 감독님의 말동무 역할을 하면서 보충 촬영을 함께 진행했다.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건축 다큐멘터리이니만큼 한국 사회에서 건축을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차원에서 이슈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김성욱: 영화 안에서 정기용 선생님이 직접 촬영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분이 만든 영상이 주로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정재은: 정기용 선생님은 1972년 파리에 국비유학생으로 가서 15년 동안 공부를 했다. 그때 영화를 정말 많이 보신 것 같다. 실제로 촬영도 하면서 아마 영화감독도 꿈꾸지 않았을까. 특히 기록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어서 스틸 카메라, 슬라이드 카메라 등으로 자기가 본 것을 모두 기록했다. 이미 편집을 한 것도 있고 안 한 것도 있었는데 그중 ‘영화적’인 것들을 따로 선별했다. 이 푸티지 덕분에 다큐멘터리 이상의 영화적 느낌을 낼 수 있었다.

 

관객1: 영화를 완성하기 전에 정기용 선생님이 돌아가실 걸 알았는지 궁금하다. 만약 정기용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다른 결말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속 인물들이 선역과 악역으로 나뉜 것 같았는데, 이런 갈등을 어떻게 묘사하려 했는지 궁금하다.

정재은: 원래는 선생님이 강의를 하는 모습으로 끝내려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 영화가 많이 흔들렸다. 영화의 중반부터 선생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지만 돌아가실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다음 다시 촬영한 부분도 있다. 갈등의 부분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니 오히려 극영화적인 부분을 살리고 싶더라. 다큐멘터리에 생각만 많으면 재미가 없어진다. 좀 더 스토리적 요소를 넣고 싶어 하던 참에 강성원 큐레이터가 등장해서 굉장히 기뻤다. 드디어 악역이 등장하고 갈등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분이 없었으면 영화가 재미없었을 것이다. 그 분도 영화를 보고 이해해주셨다. 상황과 영화의 시나리오 상 관객분들이 악역처럼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관객2: 개인적으로 정기용 선생님을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분에게 쇼맨십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지만 정기용 선생님이 연기한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감독으로서 그 부분을 어떻게 제어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정기용 건축가가 영화를 통해 하나의 캐릭터가 되었는데 감독으로서 생각하는 정기용이 어떤지 궁금하다.

정재은: 정기용 선생님은 카메라에 대한 이해가 높은 분이다. 상황에 대한 이해력도 빨라서 어떤 상황이든 그것에 대해 이성적이고 멀리서 보는 시선을 가졌다. 이 분을 주인공으로 정말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 건 그가 타고난 아티스트라서이다. 삶 자체를 연기자처럼 사신 분이다. 보통 배우들은 주어진 대본을 갖고 연기를 하지만 선생님은 스스로 대본과 상황을 만들어 관객에게 보여주려 한다. 대표적 장면이 엔딩 장면이다. 그날 현장에서 선생님이 너무 의도적으로 그 자리에 가서 앉는 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어떻게 찍힐지 아는거다. 그때는 찍으면서도 그 장면을 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모든 시간들이 지나고 이 장면을 엔딩으로 결정했을 때 선생님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관장한 진정한 배우였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남을지를 선택한 사람. 정기용 선생님에 대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보여주는 최고의 배우라고 말하는게 최고의 극찬일 것 같다. 정기용 선생님이 쓴 책만 보면 글도 딱딱하고 어떤 사람인지 느낌이 안 온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떤 사람인지 느껴진다. 영화라는 것이 이만큼 한 인물의 표정과 목소리와 느낌들을 잘 담아낼 수 있는 매체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처음에는 건축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생각해서 한 인물의 삶을 포착하는 카메라와 영화의 힘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기용 선생님을 만나면서 다큐멘터리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김성욱: 지금까지 2만 7천명의 관객들이 보았고 앞으로 더 많은 관객들이 볼 것이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아직 다 말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을 것 같다. 후속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사실 한국에서 이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어렵고 작가로서, 피디로서 쉽지 않은 조건인데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한선희: 모든 면에서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건축과 삶에 대해 모두가 좀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음 작품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정재은: 개봉을 앞두고 90여분 짜리 한 편의 영화에 못 담은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건축 관련 삼부작을 만들고 싶다. 삼부작을 통해 영화의 방향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고 관객들에게 건축에 대한 새로운 관심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현재 서울 시청에 관한 두 번째 다큐멘터리가 촬영에 들어갔다. 극영화로든 다큐멘터리로든 곧 찾아뵙기를 바란다.

 

정리: 손소담 관객 에디터 ㅣ 사진: 최미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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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코트>의 신아가 감독과 오승욱 감독과의 대담

 

3월의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최근에 개봉해 파격적인 캐릭터와 힘있는 연출로 호평 받은 바 있는 신아가, 이상철 감독 공동연출의 <밍크코트>를 상영했다. 상영 후에는 공동연출자 중 한명인 신아가 감독과 오승욱 감독이 함께하여 주요 장면을 다시 보며 영화에 대한 더욱 풍성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어떤 계기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하나의 소재, 혹은 한 명의 인물에서 시작한 것인가.

신아가(영화감독): 제 이름에서 이미 짐작하셨을지 모르겠지만,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적인 것과 관련해서 고민들이 있었다. 7, 8년 전에 실제로 외할머니께서 영화 속 상황과 비슷하게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그 일을 모티브로 해서 써둔 중편 분량의 초고를 보고 영화아카데미 선배인 이상철 감독이 가족 간의 대립과 갈등을 중심으로 장편으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김성욱: 감독이 직접 영화의 몇 장면을 선택해서 연출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미리 제안했었다. 선택한 장면을 먼저 보고 이야기 나눴으면 한다.

신아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들을 골라봤다. 현순(황정민)과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인 상황인데, 흔히 명절 때 마다 겪는 가족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뿔뿔이 흩어져 살던 친척들이 모였을 때 마음 속에 무언가가 깔려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웃으면서 하는 경우가 있다. 드러내놓고 감정들이 오고가는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말들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오승욱(영화감독): 나도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는 가족이 지옥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현순이 사과를 ‘아삭아삭’ 씹을 때 포커스 아웃 상태에서도 감정이 확 드러나는 연출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신아가 감독은 영화아카데미에서 학생과 선생으로 처음 만났는데 그 때 신아가 감독의 시나리오를 보면 어질어질했다. 여자주인공은 하나님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어머니는 약간 광신도 였고… 신과 인간의 관계라는 문제는 정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인데 그때부터 신아가 감독은 그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한 것이다. 근래에 이러한 문제를 이렇게 정면으로 돌파하는 영화가 많지 않은데, 이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김성욱: 배우들과의 리허설이나 준비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신아가: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전체 리딩도 하고, 배우들을 따로 만나면서 캐릭터와 대사의 톤을 맞춰갔다. 황정민씨와는 처음 리딩을 하고 서로 생각했던 톤이 너무 달라서 많이 놀란 다음 계속 차이를 줄여가는 작업을 했다.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보고 처음에는 어떻게 연기해야할지 알 것 같다고 말했지만 막상 맞춰보면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때부터 배우들이 많이 헷갈려했다. 감독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항상 두 가지 감정을 가지고 연기해야 했다. 화내는 장면을 연기해도 한편으로는 속으로 고소해하는 식으로. 거의 모든 씬의 모든 연기들이 이중적이어야 했다. 내가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진심이 아닐 때가 많고, 나는 진심이라고 생각해도 나의 무의식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다들 연극배우였다. 첫 번째 식사장면은 출연 배우들이 거의 모두 모여서 촬영하는 초반이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됐다. 첫 번째 식사장면을 찍을 때는 잘 된 것 같았는데, 두 번째 씬을 찍을 때는 고민을 했었다. 특히 며느리가 형님(현순)은 왜 그렇게 머리가 많이 빠졌냐며 공격할 때 현순이 뒷머리를 만지는 리액션 같은 건 고민을 많이 했었다.

오승욱: 감독으로서는 제일 힘든 부분 중 하나는 배우들이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해온다는 것이다. 황정민씨 같은 경우도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해오는 스타일이다. 감독은 현장에서 그것을 통제하고 깎아내야 한다. 그래도 이것만은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는, 감독이 정해놓은 것이 있었을 것 같다.

신아가: 그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서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신경을 썼다. 황정민 씨가 이 영화 전에 <꽃님이>라는 단편영화에서 현순과 비슷한 인물을 연기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영화에서 했던 어떤 행동이나 시선 처리들을 못하게 하려 했다.

 

 

오승욱: 카메라와 인물 사이의 거리에 있어서는 어떤 원칙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신아가: 컷이 짧은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호흡이 긴 영화들을 잘 못 본다. 이 영화는 재미없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호흡이 좀 빠른 영화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족 사이의 갈등이 중심인 영화여서 호흡이 빠르고, 멀리서 카메라가 인물을 바라보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쓰지 말자는 원칙이 있었다. 풀 샷은 굉장히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물을 그렇게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때는 정말 그 인물이 외롭고, 고립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순간을 이 영화에서 자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현순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참 많은데, 그 인물이 가장 외롭고 고독한 순간에 카메라가 멀리 빠져 바라보자고 생각했다.

 

오승욱: 그 장면이 마지막 옥상 장면인가.

신아가: 맞다. 편집을 하면서도 카메라가 빠지면 자꾸 흐름이 깨진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오승욱: 현순을 보여줄 때 항상 이마에서 자르더라. 보기에 편한 쇼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이 갖는 불화들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신아가: 촬영 컨셉에 있어서 이 영화가 첫 번째 영화인만큼,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고 싶었다. 인물을 보여줄 때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오승욱: 가장 궁금한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그 이후, 그 다음 날이 되었을 때 가족들은 어떤 모습일까.

신아가: 시나리오에는 에필로그로 일 년 후의 모습이 있었다. 수진의 아기가 돌이 되어서 공원 같은 곳에 모여 한가로운 오후를 보낸다는 설정이 있었다. 현순은 더 이상 모자를 쓰지 않고, 현순이 전화를 받으면서 준호가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있었다. 영화의 전반적인 톤과 너무 상반되는 밝은 톤인 것 같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라스트 씬은 이런저런 버전이 많았다.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일 년 후에 수진의 아기의 돌이자, 할머니의 기일에 가족들이 다시 모이고, 거기에 누군가 찾아오는데 그가 현순의 남편이라는 상황이었다. 영화의 제목과 마무리에 대해서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거짓말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더 괜찮아 보일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솔직해지자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딱 저 정도에서 끝내는 것이 나의 솔직함이었다.

 

관객1: 전도사라는 인물이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녀는 가족이 아닌 외부의 인물이며 영화의 후반부에 클라이막스를 가져오는 말을 전달한다. 어떤 의도로 설정된 인물인가.

신아가: 인간과 신의 중간자라는 설정이었다. 인간이지만 신의 음성을 듣고 얘기해주는 사람, 그래서 듣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역할로 설정했다. 실제로 그런 분을 만나 뵌 적도 있다. 그런 분이 하는 이야기를 내가 어디까지 믿어야하며, 그가 이야기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에 대해 궁금해 했었다.

 

관객2: 요즘 보기 드문 이야기와 보기 드문 톤의 영화를 만드셨다. 앞으로도 계속 이 영화에서와 같은 그런 고민들을 하실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족들의 갈등이 봉합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 궁금하다.

신아가: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는 대사가 있다면, 마지막에 큰언니의 “이러려고 그랬어?”라는 대사다. 어떤 분들은 이 영화의 후반부에 너무 많은 우연이 있어 작위적인 게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지금 현재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흘러 이 시점을 되돌아 볼 때에는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이 영화에서도 왜 하필 그 때,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했을 때, 신앙인의 입장이라면 그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비신앙인이라면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신앙과 같은 소재적인 면이 아니라, 테마적인 면에서 앞으로도 이런 생각들을 반영하는 작업들을 할 것 같다. 가족들의 갈등이 영화에서 봉합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족 안에서 임산부가 죽어가는 상황이라면 그런 행동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들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집안으로 평소에 말씀을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죄에 대한 강박과 같은 생각들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인물들이 영화의 후반부와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자신의 죄책감에 많이 눌릴 거라고 생각했다.

 

관객3: 영화의 후반부에 가족을 미워한다면 불신자 보다 더 큰 죄인이 된다는 성경구절이 나온다. 영화에서 가족을 어떤 의도로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궁금하다.

신아가: 사랑이라는 말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란 정말 무엇일까. 왜 이 사람들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채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중요한 것은 가족 간의 갈등과 미움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과 풀지 못한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어떤 분이 가족들이 이 영화를 보았냐고 물었다.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솔직히 두려웠었는데, 지금은 가족들도 다 보셨고,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것에 비해서 상당히 사랑으로 받아주셨다. 그래서 이런 게 가족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야기하고 갈등을 풀어가려고 노력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사진: 최미연(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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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어머니>의 태준식 감독

 
지난 17일 이른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2009년 겨울 첫 촬영이 시작된 이후 장장 3년에 걸쳐 완성된 영화 <어머니>작가를 만나다에서 미리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태일의 어머니이기에 앞서 평범한 어머니로서의 일상을 담은 <어머니>는 그렇게 故 이소선 어머니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록으로서 남게 됐다. 그 여운을 지우기에는 너무도 짧았던 시간, 영화 상영 후 태준식 감독이 전해준 속 깊은 이야기들을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한 해를 끝내는 12작가를 만나다에서 올해 돌아가신 이소선 어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 <어머니>를 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나.

태준식(영화감독): 애초에 생각했던 기획은 전에 활동했던 노동자 뉴스제작단이라는 단체에서 진보적인 운동을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90년대까지는 노동운동이 최종적인 계급적 단결로 가는 확산의 시기였는데 IMF 발발 이후에는 패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지속됐고 그런 것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노동운동을 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소선 어머니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시간이 지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전작인 <샘터분식>을 끝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를 다시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차근차근 주변에서부터 접근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김성욱: 출발점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서는 마지막 기록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촬영을 하면서도 예상치 않았던 일이었을 것 같은데 그 때문에 어떤 변화도 있었나.

태준식: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을 거라고 100% 확신을 하고 촬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간에 어머니한테 이 작품을 꼭 보여드린다라는 명확한 목표는 있었다. 어머니가 퇴원하시고 몸이 좀 좋아지셔서 많이 또 돌아다니시려 했기에 전혀 예상을 못한 상황이었는데 올해 쓰러지시게 된 거다. <어머니>를 상영한 지 몇 번 안 됐는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고 감정 조절도 잘 안 된다. 또 올해 어머니와 관계가 깊어지면서 정말 격려를 많이 해주셨고 은근히 기대도 많이 하셨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말년에 집안에만 계시는 스스로의 모습을 다른 분들에게 보여준다는 그 자체를 저어하셨었는데 관계를 맺다 보니 이런 것도 네가 잘 할거라 믿는다는 말씀도 하시고 저도 꼭 보여드린다고 했었다. 장례를 치를 때보다 처음에 쓰러지셨을 때가 많이 힘들어서 1~2달 정도 작업을 못했었다. 원래는 연극 <엄마, 안녕>을 어머니가 보러 가시는 게 끝이었는데, 구성이나 이야기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려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김성욱: 다큐멘터리 거의 초반부에 어두운 골목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와 걸어가는 뒷모습이 나오는데, 그 처음의 느낌부터 굉장히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사람들이 어머님을 모시고 가는 거지만 또 반대로 보면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을 언제나 데리고 다니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러한 영화의 첫 부분을 만드신 데에는 어떤 느낌 같은 게 있으셨을 것 같다.

태준식: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창신동이라는 공간은 서울 중심부에 있지만 재개발이 덜 된 곳이다. 평화시장에서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이 거의 창신동으로 이동을 했는데, 스팀이 나오는 골목골목마다 미싱을 하고 옷을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작은 공장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공간이다. 골목이 복잡하고 아주 옛날부터 생성되어있던 곳인데 거기서 어머니가 오래 사셨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 어머니 인생은 골목길 인생이라고. 멀리 동떨어져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과 가깝게, 항상 옆에 서있던 인생을 사셨던 분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약간 아이디어를 준 것도 있고, 또 우연치 않게 어머니 스케치를 하다가 걸어오시는 모습을 잡은 것도 있었다. 저도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옆에서 부축을 하며 쭉 걸어갔었는데, 개인적으로 어머니 말년을 같이 걸었다는 의미도 있겠다 싶었다.

김성욱:함께 걸었던이라는 그 표현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처음에 병원 근처에 있는 풀이 보여지고 연극을 하시는 두 배우 부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그렇고 장례식에 있는 조화들까지, 일관적이고 반복적으로 풀이나 꽃 등이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

태준식: 어머니라는 인물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라는 것도 있고, 보통의 사람들에게 각인되어온 노동운동의 이미지가 비호감이지 않나. 작업을 할 때 언제든지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것의 발현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소선이라는 인물을 소개한다고 했을 때 일상적으로 많이 보여질 수 있고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어머니가 꽃과 같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연극 배우 분들 같은 경우도 처음 촬영 시작하는 날 마침 화단 작업을 하셔서 잘 됐다고 생각했다. 준비를 하고 조금씩 자라고 끝이 나는, 그런 것들로 표현을 하려 했던 것 같다.

김성욱: 초반부에 어머니께서 사람들이 전태일을 두고 열사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있었는데 페이드아웃처럼 소리가 낮아졌다. 거의 끝부분에 가니 그 장면에 이어진 얘기였을 것 같더라. “낮은 데 있고 싶다는 말은 종교나 삶에서 나오는 부분이었을 것 같은데 참 인상적이었다. 아마 감독님께서 인터뷰를 하시면서도 인상적이라서 장면 분리를 한 게 아닌가 싶었다.

태준식: 국가에서 주어지는 열사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 권위적인 느낌이 있어서 노동자들에게 열사라고 불려지는 것도 비슷하게 생각을 하셨던 거다. 원래 인터뷰에선 그 사람의 뜻은 여전히 살아남아있고 같이 싸우는 많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차라리 동지라고 부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뒤의 말은 굳이 넣을 필요가 없겠다 싶어서 처리를 한 거다. 물론 이소선이라는 사람을 둘러 싸고 있었던 전태일의 어머니라는 원형 같은 게 있기는 하지만 어머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매력은 촬영을 하면 할수록 많이 느꼈다. 항상 농담도 잘하시고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낮은 자세, 겸양의 자세를 가지고 계셨다. 존경스러운 것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요 몇 년간 딸 아이 빼놓고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김성욱: 최근에 <오월愛>에서도 시와 씨의 음악이 들어갔었는데, 제가 근래 본 다큐멘터리 중에 가장 노래가 많이 들어갔던 것 같다. 노래가 들어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 작품을 만들어 갈 때부터 생각을 하신 건지, 아니면 나중에 편집을 하면서 가사가 있는 노래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건지 궁금하다.

태준식: 음악을 많이 좋아한다. 음악에서 생각도 많이 떠오르고 작업에서 톤을 잡거나 할 때도 음악에 의지하는 측면들이 많다. 이번에도 당연히 음악은 들어간다라는 생각을 했고, BGM이 아닌 가사가 있는 음악을 생각했던 것은 일정 부분 이아립 씨의 음악을 듣고 생각을 했던 거다. 허스키하고 전반적으로 낮은 어머니 목소리 톤과 다른 목소리가 좋았고, 이아립 씨가 만든 음악들의 가사도 이러저러하게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게끔 굉장히 부드러운 톤을 가지고 있어서 BGM의 역할로 끝나는 게 아니라 브릿지씬의 의미로 쓰자는 생각이 좀 있었다. 전반적으로 영화에 설명이 별로 없지 않나. 인물도 한 명, 공간도 한정적이라 톤을 잡을 때 가사가 있는 노래를 써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김성욱: 완벽한 건 아니지만 시간이 거꾸로 흘러 2009년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형태다. 물론 중간에 2011년 일들도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 다 찍고 구성을 할 때 영화 <박하사탕>처럼 과거로 단락씩 넘어갔던 것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

태준식: 이런 구성은 어머니가 쓰러지시기 전에 이미 결정이 된 부분이다. 연극 라인은 정석대로 시간 순으로 가고, 어머니의 시간은 거꾸로 돌려서 나중에 만나고 푸는 식으로 하자고 결정을 했던 것 같다. 뭔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인물을 소개하는 데에 있어서 그 인물을 전제하고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인물 자체를 바라보고 난 다음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다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또 제가 이소선이라는 인물을 처음 봤었을 때는 항상 노동운동 집회에 같이 다니고 싸움이 붙으면 앞에 나가시면서 똑바로 안 한다고 소리지르거나 혼내는 모습들이어서, 그런 이미지들을 찍고 싶었던 것도 있었는데 처음 촬영을 갔었을 때는 현실적으로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작품 안에서 그런 모습을 좀 되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에는 돌아가셨고, 지금 현재 상태로 얘기하자면 다시 살리고 싶다는 생각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한다. 보시는 분들이 전태일과 이소선을 잘 아는 분들이라면 , 이소선이라는 분이 옛날에 정말 저랬었지하는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잘 모르는 분들이 보시기에도 보통의 어머니나 할머니한테도 다 이야기가 있구나,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약간 특별한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라는 것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김성욱: 연극 <엄마, 안녕> 같은 경우는 대만인이 연출을 했고, 중간에는 와다 하루키라는 일본인 교수가 와서 인터뷰를 한다. 연극 연출을 대만인이 맡은 게 좀 특별했다. 물론 그 시기 안에 그런 연극이 있었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싶은데, 연극은 어떻게 기획이 되고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궁금하다.

태준식: 배우 부부인 백대현, 홍승이 씨는 부산의 일터라는 극단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다가 따로 나왔고 결혼을 해서 주로 2인극을 많이 했던 분들이다. <엄마, 안녕> 전에 했던 편법 대출에 관한 연극 <빛이 아늑한 방>의 연출가는 이스라엘 분이었는데 그 연출가가 잘 알려진 분이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다가 대만에서 공연을 했고, 그때 처음 만난 왕모림 선생님이 굉장히 감동을 해서 두 배우에 대한 믿음으로 서로의 관계가 만들어진 거다. 그러다 작년 전태일 열사 추모 40주년에 맞춰 두 분이 전태일과 이소선에 관련된 연극을 한 번 해보자라고 했을 때 연출자를 고민하다가 대본 쓴 것을 왕모림 선생님께 보내어 제안을 했고 그분이 어머니를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해서 연극이 시작된 거다.


김성욱: 촬영 과정에서는 일정 시간마다 방문을 한 건가.

태준식: 초반에는 카메라를 들고 바로 간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소개를 하고 심부름도 하고 고스톱도 치면서 가끔씩 갔었다. 당연하겠지만 방안에서만 있는 게 뭐가 좋으냐고 처음엔 많이 저어하셨었는데 그렇다고 쫓아내진 않으셨다. 올해 여름부터는 필요한 화면들이 어떤 것들인지 구성도 정리가 되고 연극도 일정 부분 끝이 나서 생각을 해서 촬영을 했기 때문에 자주 갔지만 카메라를 들고 간 일은 별로 없었다. 그냥 가서 밥 같이 먹고 이야기 나누고 태삼이 형님이 심부름 시키면 갔다 오고 하는 식의 관계를 맺었다. 원래는 어머니 쓰러지시기 전에 촬영 하나가 남아있어서 다음주에 가겠습니다라고 말을 했었는데 그 다음주 첫째 날 월요일에 쓰러지신 거다. 그래서 처음에 쓰러지셨을 때 자책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툭하면 가서 인터뷰 해달라고 하고 옛날 생각나게 하고, 그런 자책이 있었다. 이 작품을 위한 촬영이 없었으면 그래도 좀 더 사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김성욱: 어쨌든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그 뒷면에서 무조건 지켜보는 것이지 않나. 여기서는 전개되는 것 안에 감독님 본인이 들어가는 장면들이 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부딪히는 문제일 것 같은데, 특히나 이소선 어머니를 촬영할 때는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태준식: 어머니와 카메라와의 관계를 어머니가 만나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라는 것을 좀 표현하고 싶었다. 저도 똑같이 이소선이라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라는 생각으로 그런 관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자는 생각이 애초부터 있었다. 제가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어떤 권위 같은 것을 처음부터 포기한 측면도 있지만 또 어머니 성향자체가 그런 걸 인정하시는 분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노동운동과 관련된 다큐를 주로 했었는데, 그 동안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줘야 돼 라는 생각이 많았다면 이 작품은 애초부터 그런 생각이 좀 없어서 저한테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어쨌든 긴 시간 속에서 관계를 맞고 화면 속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작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김성욱: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내용이 전태일의 어머니라는 특정하고 고유한 인물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할머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좋았는데, 사실 고유인명으로서 이소선이라고 했을 때는 그 분의 삶의 매력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좀 하셨을 것 같다.

태준식: 원래는 부차적으로 어머니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예 과감히 포기를 했다. 굉장히 큰 인물인데 너무 설명이 없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지적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은 건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건 아니라는 거다. 한 때의 그 인물이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라고 갔으면 하는 거였다. 한 두 줄이긴 하지만 어쨌든 전태일이라는 인물은 교과서에도 있기 때문에 전태일의 엄마라는 기본적인 정보만 있다면 충분히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본 정보가 없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충분히 따라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또 작년이 전태일 열사 추모 40주년이기도 했고 이명박 정권 이후 노동의 문제가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시대상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늘어났다. 그런 부분에 있어 이전 작업들처럼 성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편으로는 했었던 것 같다. 그냥 어머니의 힘을 믿고 가자, 어머니가 보여주는 모습이 분명 힘이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어서 포기한 이유도 많았다.

관객1: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 있었을 텐데 세월이 지난 뒤의 모습에서 유머라든지 위트 같은 게 많이 보여져서 좋았다. 저도 젊어서 전태일의 죽음은 텍스트나 기록으로만 접했기 때문에 솔직히 공감한다기보다는 교육을 받은 세대다. 교육받기 이전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고 또 그것을 해학으로 풀어낸 점이 참 좋았다.

태준식: 항상 단순한 사실을 꿰뚫는 것에서 시작하면 듣는 사람이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복잡하게 얘기하지 않고 단순하게 말씀하시는 스타일이 워낙 재미있기도 했고, 굳이 어머니가 웃기는 장면을 넣으려 했던 게 아니라 워낙 많은 장면에서 선택을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반영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관객2: 작업을 하다 보면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윤리라고 해야 하나, 개입이냐 아니냐 연출이냐 아니냐의 정의에 대한 작가님의 기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태준식: 작가의 개입과 관련된 것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오래고도 별 영양가 없는 논쟁일 텐데, 저는 당연히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의 연출, 개입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한다. 다만 그것이 작품의 전반적인 스타일이나 기획 의도, 의미,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감정들에 따라 정도의 수준은 있을 것이다. 내레이션이나 인터뷰 등 형식적인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용인이 되어야 된다고 본다. 그러나 말의 순서를 바꿔서 원래 의도했던 의미가 아닌 다른 것으로 만들어낸다든지 하는 것은 다큐멘터리 윤리로써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다. 넓게 보여질 필요가 있는 동시에 다큐멘터리스트가 관계의 진정성에 기반하여 그것을 흐리지 않는 범위에서 표현을 하고자 한다면 많이 용인되어야 한다고 보고 그것을 넘어가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이다.

 


김성욱: 예전에 다르덴 형제가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작업을 전환할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현실에 더 개입하기 위해 픽션을 시작했다.”는 것인데,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현실을 계속 담아내면서 답답함이나 막막함 같은 정신적인 후유증이 있지 않나.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그래서 어떨 때는 픽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태준식: 다큐멘터리스트는 특히 독립 다큐의 역사 속에서 봤을 때 스토리텔링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사람 만나는 걸 더 좋아하는 게 많은 것 같다. 이야기 창작에 대한 욕구도 분명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람들이나 사건과 관련된 나의 발언,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던 메시지들을 사람들과 빨리 소통시키는 것, 기저에 있는 소통의 중요한 도구로서 기능했었던 것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많이 좋아했던 사람들이 동료들의 성향이 아닌가 싶다. 사실 다큐멘터리는 삶을 찍는 거라 오히려 작업이 끝나고가 더 힘들다. 그래도 삶은 지속되지 않나. 사람 관계가 단박에 끝나지는 것도 아니고 관계를 계속 형성해야 하고, 그러면서 작품이 끝나고 나서 사람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런 부분에서 힘든 측면들이 있는데 촬영을 하고 만드는 게 행복하고 좋아서 버티고 작업을 하는 것 같다.

김성욱: 중간에 딱 한 컷으로 그날 하루나 일주일에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적어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 삶의 단편 안에 잠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년에 이 다큐멘터리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졌으면 하는데, 마지막으로 상영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태준식: 일단 내년 봄에 개봉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라. 사실 어머니의 거대한 의미를 소통한다기보단 한 사람의 죽음까지 보면서 기성세대나 주변에 대해 고민을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요즘 젊은 분들 사이에서 멘토가 유행인데,어머니는 온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셨던 분인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며 주변 분들과 얘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다. 물론 개봉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면 다른 형식으로 상영 활동도 열심히 할 생각이니 많이 신청해주시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어머니라는 인물이 이 작품을 통해 많이 기억되었으면 한다. 어떤 분이 어머니는 이미 클래식이라는 말씀을 하시더라.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 이소선이라는 사람을 가지고 다른 영화를 만들거나 글을 쓰는 등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작업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정리
장미경(관객 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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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환호성>의 정재훈 감독

지난 11월 26일 진행된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장편 데뷔작 <호수길>로 주목받은 정재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환호성>을 함께 보고 상영 후에 정재훈 감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 영화가 첫 선을 보였던 올해 CINDI영화제에서의 반응이 호평과 혹평의 극단을 오갔기에 더욱 흥미롭고 농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그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정재훈(영화감독): 어렸을 때부터 안 친구고, 지금은 연극학과를 다니고 있다. 배우로 쓰고 싶어서 오랜 시간 설득해서 출연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겨울에만 여름에만 찍으려고 했었고, 마침 그 친구도 방학 동안만 찍을 수 있어서 잘 맞았다.

김성욱: 친구를 먼저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영화에 대한 구상안에 친구를 위치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정재훈: 이 영화를 처음 생각할 때는 사람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사람이 일하는 장면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점, 그 사람이 젊고 잘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김성욱: 영화의 타이틀을 ‘노동하는 인간’이라고 잡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이나 당구장에서 일하는 장면들이 찍혀지는 방식은 알겠는데, 집 안 내부를 찍는 장면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리를 두고 바깥에서 무언가를 본다는 시선이 느껴지는데, 집안 내부에서는 다른 방식의 카메라가 그 사람과 같이 있다는 느낌이 있다. 촬영을 할 때 다른 컨셉으로 생각했던 것인가.
정재훈: 아예 나눠서 생각했던 건 아니었고, 서로 이상하게 섞여 있는 방식들을 생각했다. 산에서의 시점도 사실 인물의 시점과 완전히 나눠지지 않는다. 집 안으로 들어갈 때도 약간 떨어져있는 물체지만 들어왔다 나갔다 할 수 있는 정도로 생각하고 쇼트들을 구성했다. 노동할 때도 떨어져서 보기도 하고, 쌓아올리기도 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김성욱:
어떤 장면을 볼 때 이건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보고 있는가, 즉 누가 보는가라는 문제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위치에 대한 질문들이 존재할 수 있다. 공장에서의 장면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어떤 사람의 시점으로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집 안에서 잠을 잘 때의 시선은 그 누군가의 시선이라고 하기 어렵고, 그 사람 주변에 카메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납득하기가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그래서 사람을 보여주는 장면 중 집 안 내부와 바깥에서의 장면이 굉장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장에서의 상당수는 사람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반면 집 내부에서는 사물들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해 있다.
정재훈: 정수기는 소리가 사람들이 내는 소리와 비슷해서 위치시켰고, 국그릇은 따뜻하고 맛있어 보여서 찍었다. 이 영화의 힘이나 기운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스산하거나 뜨거운 느낌, 번쩍거리는 것 같은 것들을 진폭을 주면서 만들고 싶었다.

김성욱: 노동하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소셜한 관계 안에 위치된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는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을 둘러싼 소셜한 관계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도리어 통상적인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다룬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재훈: 아직 소셜한 건 찍고 싶지 않았고, 한 명만 줄곧 나오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덩어리자체가 압도적이고, 그 힘이 계속 느껴질 정도로. 살덩어리처럼 사람을 다루고 싶었던 것도 있다.

김성욱:
자연을 보여주는 것과 남자를 보여주는 것 간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풍경과 인물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서 차이를 느끼는 편인가.
정재훈: 이 영화를 찍을 때는 크게 차이는 못 느꼈다. 분명히 극인데 완전히 날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게 재밌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산 장면은 거의 인물의 시점과 그리 다르지 않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깊숙하게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시간을 쌓아가는 게 목표였다. 그것이 뭘 찍는 것이건 간에.

김성욱: 촬영분량도 궁금하다. 전체 촬영 분량에서 누락된 게 많은 편인가.
정재훈: 테이프를 50개정도 찍었다. 그 중 무엇을 쓰고 무엇을 뺄 건인가는 그냥 감인 것 같다. 연출된 상황이나 선택된 상황은 다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편집에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일하는 장면을 많이 찍어서, 그 부분에서 많이 빠진 것 같다.

김성욱: 영화에는 자연과 인간이 있고, 논휴먼한 것도 있다. 굉장히 기계적인 사운드나 실험적인 영상처럼 표현되어 있는, 자연도 인간도 아닌 제3의 영역이 존재한다. 영화를 구성할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두었나.
정재훈: 대부분 소리를 많이 따른 것 같다. 보이는 그대로의 기운이나 거기서 들려오는 소리를 선택을 한 것이다. 영화를 찍기 시작하기 전부터 대사는 배재했고, 이 영화 속의 소리들이 대사인 것 같다. 전체적인 구상을 할 때, 잘 때 나는 꼬르륵 소리, 신나서 자기도 모르게 내는 소리, 사람의 몸뚱어리, 공간적으로는 산의 어떤 곳, 밝은 단어를 고르고 싶어서 생각한 ‘환호성’이라는 제목, 거기에 번쩍거리는 것이 계속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무는 과정을 거쳤다.

관객1: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궁금하다. 장면 중에서는 밥솥이나 현금인출기 소리처럼 사람의 목소리가 녹음된 기계음에서 유일하게 자막이 나왔던 것과 낮과 밤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필립 그랑드리외의 <솜브르>라는 영화가 많이 생각이 났다.
정재훈: 그냥 같이 느끼면 되는 영화인 것 같다. 영화 속의 시간을 같이 체감하는 건데, 이 영화 속의 시간이 기운을 내려고 애쓰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800미터를 뛰면 많이 힘이 드는데, 왠지 기를 쓰고 더 뛰게 되는 무엇이 있다. <환호성>은 너무 힘이 드는데 악을 쓰면서 더 기운을 내려고 하는 그런 영화다. 진폭이 커서 시종일관 번쩍거리는 영화인데, 그게 이 영화의 전부이자 중심인 것 같다. <솜브르>라는 못 봤지만, 그 분의 영화는 영화를 만들고나서 <새로운 삶>을 재밌게 봤다. 영화는 가리지 않고 다 보는 편이지만, 만들 때는 일종의 기본 같은 것을 스스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

관객2: 영화 보면서 ‘환호성’이라는 제목이 역설적이라고 느꼈다. 영화는 기쁨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멀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명력과 같은 것을 ‘환호성’이라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최선의 상태에서의 조합이었는지, 만드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타협한 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정재훈: 그런 것은 없고, 모두 애초의 선택된 결과물들의 조합이었다.

김성욱:
어떻게 해서 영화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정재훈: 2004년부터 작업을 했는데, <호수길>이 개인적으로는 ‘0’같은 영화이고, <환호성>은 ‘1’정도 될 것 같은데 이런 과정을 계속해 나가면서 저의 기준, 기본형을 찾고 싶은 면이 있다. 촬영을 직접 하지 않는 방식의 작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

김성욱: 영화 후반부에 빈집 같은 공간이 보인다. 주변의 자연풍경도 같이 보이면서 내부에 들어가기도 한다. 집을 제외하고 다른 공간 안의 내부를 보여주는 것은 그 장면이 유일할 것 같은데, 그 공간은 풍경을 찍다가 발견한 건가.
정재훈: 양평까지 가서 찾은 공간이다. 버려진 공간이었고, 약간 생뚱 맞는 공간인 점이 좋았다. 영화에서 계속 들어가다가 그런 공간을 발견하고 안착하는 느낌,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선물 혹은 보물 같은 것이 있다는 느낌을 생각했다.

김성욱: 본인이 직접 촬영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극영화에 비해 사전 작업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단계의 작업들은 어떻게 준비하나.
정재훈: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몸에 새기는 작업 같은 것이다. 메모를 많이 하고 배우와 공유하지는 않았다.

김성욱: 현실적으로 한국영화 혹은 독립영화의 영역 안에서 보더라도 이런 종류의 영화는 굉장히 마이너한 위치를 갖게 되는 면이 있다. 영화제가 있긴 하지만 소개되는 기회 안에서도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된다. 관객과 만나는 과정 안에서 영화 작업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정재훈: 특별히 ‘독립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냥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보는 사람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모르는 거라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되지 않나 싶다.

김성욱: 최근에 페드로 코스타의 영화를 다시 보면서 들었던 부분적인 느낌들이 이 영화와도 닮아 있는 것 같다. 주어진 설계가 없고, 그래서 훨씬 더 급진적이거나 유기적인 면들도 포함되어져 있다. 누군가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제로의 영화’라고 표현하면서, 영도점으로 이미지를 끌어가는 영화로 얘기한다. <환호성>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따뜻함, 용기를 다시 내는 것, 끝 지점까지 가서 다시 올라오는 것에 대한 느낌들을 받았다. 앞으로의 작업이나 이후의 계획이 궁금하다.
정재훈: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예쁜 연인이 등장하는 영화다. 등장 인물은 많은데 연인이 중심이고 다정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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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만추'의 김태용 감독

10월의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가족의 탄생>의 피 한 방울 나누지 않는 가족처럼 ‘따로 또 같이'의 가치, 전혀 타인끼리 마음을 여는 감정에 주목하는 김태용 감독의 최근작 <만추>(2010)를 함께 보고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특히 이번 관객과의 대화에는 <페스티발>의 이해영 감독과 <발레교습소>의 변영주 감독,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이 패널로 참여, 김태용 감독의 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이 영화를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다루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먼저 영화에 대한 느낌들을 간단히 듣고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한다.
김태용(영화감독):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아하는 동료 감독들과 함께 하게 되어 기쁘다. <만추>를 상영한다고 했을 때, 이 영화를 가을에 보면 참 좋겠다, 혼자만의 어떤 생각들을 가지기에 좋은 시간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이 참석한 분들을 보고 나니 그렇게 되기는 힘들겠고, 오늘은 술을 먹어야할 것 같다. (웃음)
이해영(영화감독): 이 영화를 오늘 세 번째로 봤다. 두 번째 볼 때까지는 좋은 영화인 줄은 알았지만 실제로 뭔가 가슴이 저릿한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보면서 가슴이 저릿하고 멜로적으로 감동을 받았다. <가족의 탄생>을 굉장히 좋아해서, 감독으로 살면서 저런 영화를 한편 정도 만들면 여한이 없겠다 생각할 정도인데, 오늘 <만추>를 다시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감독으로서 축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영주(영화감독):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탕웨이보다 현빈씨가 눈에 띄었었다. 통속적일 수 있는 연기를 통속적이지 않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전반부를 정말 좋아한다. 이 영화가 앞으로 어떤 감성을 전달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특히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는 처음에 탕웨이가 버스를 타고 올 때 길이 보이는 듯하다가 카메라가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팬하면 탕웨이의 얼굴이 보이고, 그렇게 이어지는 감정들이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만추>의 김우형 촬영감독이 최근에 <고지전>를 촬영했는데, 화면의 압도적인 느낌을 받았다. 전투 장면을 넓게 잡아서 옆으로 쭉 따라가는 그 사이즈는 그야말로 결정적인 사이즈 같은 느낌이 있다. <만추>에서도 마찬가지로 보통 촬영을 할 때 배우의 섬세한 움직임을 따라가거나 명백한 화면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어느 순간 기다리면서 바라볼 줄 아는 카메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경미(영화감독):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탕웨이와 현빈이 마지막에 버스를 타고 달리는데, 안개가 가득한 풍경을 원경으로 찍고 둘이 주고받는 대화가 목소리로만 들리는 그 장면에서 눈물이 터졌다. 내가 왜 여기서 눈물이 나는지, 도대체 언제부터 나의 감정이 쌓였던 것인지 질문하게 되면서 영화를 더듬어가며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힘이 있다. 대개의 영화에선 감동을 주기 위해 힘을 주는 포인트가 있기 마련인데, 김태용 감독님의 영화는 그런 것이 명확하지 않은데도 어느 순간 툭 터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변영주:
편집을 할 때 감독으로서 가장 고민하게 되는 것은 ‘이 쇼트를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이다. 어디까지 보여줘야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감정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데, 한편으로는 <만추>에서 감독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너무 견고하게 쌓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용: 말씀하신 것처럼 감독은 사실 단순하게 쇼트 하나를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다. 어디서 무엇을 찍을 것인가도 있지만,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어디까지가 이 쇼트의 운명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만추>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쇼트가 더 이상 이야기를 가지고 가야하는 의무감이 없어진 상태로 남겨진 그 순간에 대한 매혹이었다. 죽은 시간을 다루는 쇼트들에 대한 고집이나 집착이 생겼던 것 같다. <만추>가 말과 말의 행간처럼, 쇼트가 필요 이상으로 긴 지점들이 있는데, 어떤 의무감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 쇼트 때문에 생기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것 때문에 어떤 분들은 이 영화가 약간 지루하거나 과잉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것 때문에 내가 감정을 가져야하는 지점을 지나서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 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성욱: 김태용 감독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사랑하는 확실한 두 남녀의 헤어짐의 슬픔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아직 제대로 된 감정을 모로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을 갖게 되는 영화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영화가 피부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피부, 피부적인 접촉, 만남, 그 안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조금씩 피어오른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 감정이 피어오르는 상태에 도달하고 영화는 끝나는데, 바로 그 지점까지를 영화가 충실히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탕웨이가 모텔에서 금이 가 있는 문에 부딪혀보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마치 자기 몸에 뭔가 부딪혔을 때의 통증이라는 감각을 떠올리게 되는 듯하다. 어떤 사람과 새롭게 만났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문에 금이 가고 깨져있는 그 상태와 굉장히 잘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사물들을 통해서 접촉, 만남, 감정을 이끌어간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굉장히 피부적인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할 수도 있고, 애매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경미: 감독과 영화가 닮아 있는 분이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분이 있다. 김태용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왜 항상 마음이 흔들릴까를 생각해보면, 감독님이 영화 안에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실제로 감독님과 얘기 나눌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근조근 얘기하시는데 어느 순간 슥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한 가지 질문은, 두 남녀가 모텔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감정적으로 훅 들어오는 느낌이어서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감독님이 어디까지 디렉션을 주셨던 건지 궁금하다.
김태용: 그 장면은 리허설을 많이 했다. 워낙 공간이 좁고, 그런 씬은 액션 씬과 비슷해서 합을 맞추고 거기에 맞춰 카메라가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감정대로 움직일 수 있는 씬이 되기는 어려웠다. 결과물은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해야 하는 씬이었다. 이 영화는 하나의 질문을 숙제처럼 가지고 찍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떤 식의 호감을 갖게 되는 때, 그것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이 유혹이든, 연민이나 열망, 욕정, 혹은 사랑이든 뭐든 간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어떤 순간은 과연 어떤 것일까. 흔히 사랑 이야기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확실한데, 그 사랑을 막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믿기지가 않았다. 사랑한다는 감정 자체를 믿는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전제를 두고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에 약간의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만추>는 사랑이 없는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방 안에서 물리적으로 부딪히고 하는 것도, 서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나의 마음보다 몸이 먼저 가 있거나,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조금은 닫은 사람이 움직이는 데에 힘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보니 모텔 안에서도 둘은 그 안에서 어떠한 분명한 감정도 없다. 분명한 감정 없이 몸을 움직여서 하게 되는 상황으로 연출을 하게 된 것 같다.

이해영:
보통 남성감독이 만든 멜로영화를 보면, 그 감독이 영화 속의 여성 캐릭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절절히 느껴진다. 그런데 <만추>에서는 특이하게도 김태용 감독이 탕웨이의 입장에서 현빈을 그리워하고 동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웃음) 영화의 모든 사연과 아픔은 모두 탕웨이에게 있는 반면, 현빈에게는 긴장감은 전혀 주어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탕웨이는 자신이 어떤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해야하는지를 매 순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현빈은 자기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시크릿 가든>에서는 자신의 재능과 매력을 너무나 잘 알아서 완벽하게 컨트롤하며 연기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하는 <만추>에서의 현빈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김태용: 정확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실제로 탕웨이와는 너무 편하고 친구 같았다. 탕웨이와는 애나라는 캐릭터의 디테일한 모든 움직임을 시연 하면서 같이 캐릭터를 만들어갔는데, 현빈의 캐릭터에 대해선 디테일한 디렉션을 거의 주지 못했다.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영화를 찍을 때 내가 현빈이 되어서 탕웨이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마음을 열 생각도 없고, 욕망도 없데 갑자기 누군가 내 인생에 푹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었다.

관객1:
데뷔작으로 공포영화인 <여고괴담2>을 만드셨는데, 어떻게 <만추> 같은 영화를 만드시게 됐는지, 그리고 특별히 시애틀을 영화의 배경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김태용: <여고괴담2>도 사실 사랑 영화다. 영화를 만들 때, 장르적인 것보다 한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이 둘은 어떻게 될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이 공포든 다른 무엇이든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시애틀은 일 년에 55일 정도만 해가 뜰 정도로 워낙 흐린 날씨다. 가을, 겨울에는 자살률도 높고, 약간 신비로울 정도로 안개와 비로 항상 축축해 있다. <만추>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 때, 가을이란 것을 기후의 느낌과 공간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에서 담아내고 싶었고, 그런 이유로 시애틀을 선택하게 되었다.

관객2: 영화의 일관된 톤을 잡아내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다. 컨셉 조율하는 과정이나 헌팅하실 때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나.
김태용: <만추>는 영화적인 무드가 중요한 영화이다. 무드를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 촬영과 미술이 있는데, 영화의 룩과 관련된 부분은 사실 김우형 촬영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 이 두 분이 다 하셨다. 워낙 잘 하셔서 연출자로서는 배우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쓸 수 있었고, 많은 힘이 됐다. 두 분이 기본적이 준비를 처음부터 같이 해줬고, 두 배우는 현장에 미리 와서 두 달 동안 같이 리허설을 했다. 사전에 준비하고, 얘기했던 촬영감독과 미술감독, 배우들이 있어서 짦은 촬영 기간을 소화해 낼 수 있었다.

관객3: 포크 장면에 대해 궁금하다. 아마도 애나가 훈이 자기를 위해서 싸웠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가 첫사랑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게 하는 데에 그 장면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는 사실 애나의 삶에 많은 책임이 있을 수 있는 인물인데도, 미안하다고 말한 뒤 무언가 더 덧붙이지 않고 장면이 끝난다.
김태용: 그 장면의 리허설을 하면서 감을 도저히 못 잡았었다. 너무 웃겨서도 안 되고, 너무 슬퍼서도 안 되는 어떤 지점, 웃다가 갑자기 ‘어, 이게 뭐야’ 이런 느낌이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감정이 과해서 애나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슬픔이 너무 확 오고, 어떤 때는 너무 가볍게 가다보니 애니가 울 때까지도 우리의 웃음기가 아직 남아있게 되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원하는 만큼,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으로 나온 것 같다.


관객4: 영화가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몽환적인 느낌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안개의 역할이 궁금하다.
김태용: 안개는 이 영화의 제일 중요한 요소다. 가만히 보면 <만추>는 정말 단순하고, 어떤 것도 숨기는 것 없이 툭툭 가는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안개가 걷히고 나면 다른 게 보일 수도 있는데, <만추>는 안개를 깔고 봐야만 하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안개를 걷고 보려고 하면, 오히려 이 영화를 제대로 못 본다고 생각한다. <만추>의 안개는 단지 미장센의 역할 이상으로 이 영화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제일 큰 요소인 것이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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