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다]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

지난 5월 21일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으로 <무산일기>이 상영된 후, 영화를 만든 박정범 감독과 강은진, 진용욱 배우, 그리고 신동일 감독이 함께 하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새롭게 개편된 '작가를 만나다' 행사의 일환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만큼이나 묵직하면서도 뜨겁게 진행된 이야기들을 여기에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오늘 '작가를 만나다'는 최대 규모의 패널이 참여하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그만큼 <무산일기>가 올해 큰 화제가 됐던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가 인간 간의 관계들을 굉장히 날카롭게 다루고 있어서 먹먹한 느낌이 들고 보기에 힘겨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박정범 감독으로부터 영화를 만든 계기를 듣고 싶다.
박정범(영화감독): 전승철이라는 친구는 대학교 후배다. 2006년에서 2008년까지 위암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떴다. 이창동 감독의 <시> 조감독을 하다가 그 친구의 유언과 같은 글을 보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감독님이 시나리오 쓰실 때 4개월 정도 휴가를 주셔서 그 때 이 영화를 촬영하게 됐고, <시> 개봉 후에 이 영화의 후반 작업을 했다.

김성욱:
강은진 씨의 경우 여러 목소리의 다채로운 면모를 들려줬다. 일상적인 소재는 아닌 거 같은데 영화에 참여하면서 어떠셨는지?
강은진(영화배우): 처음에 프로필을 보내서 시놉시스를 받아봤는데 굉장히 매력적이어서 꼭 하고 싶었다. 1, 2차에 걸쳐 오디션을 봤다. 나중에 후일담으로 감독님께 들은 이야기로는, 왠지 교회에 다닐 것 같고 평범하면서 이웃집 교회 누나 같은 면을 보셨다고 한다. (웃음) 개봉도 하고 관객 분들도 만나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 모호한 인물이고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감독님이 던져주신 것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며 찍었다.

김성욱: 진용욱 씨가 연기한 경철은 승철과의 관계 안에서 모든 갈등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으면서, 어떤 행동들을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진용욱(영화배우): 처음 오디션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아 경철이가 왔구나' 하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영화라기보다는 연극을 하나 출연한 듯한 느낌이었다. 사투리 연습, 경철이 연습을 많이 했다. 좀 더 자본주의를 좋아하고 만끽하는 인물이다.

신동일(영화감독):
영화의 첫 장면부터 너무 마음에 와 닿았고, 마지막 끝날 때까지 동지를 만난 느낌에 반가웠다. 한국사회를 내밀하고 사실적으로 다루는 영화를 근래에 본 적이 없어서 너무 반가웠다. 보면 볼수록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여러 층위를 가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장면의 미장센을 정교하게 담으려는 노력이 있다. 나랑 비슷하면서 다르다고 느낀 점은, 내가 인간의 낙천적인 에너지, 유대의 힘에 주목한다면 박 감독님은 악한 면이나 집요한 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김성욱:
탈북자 이야기라는 설정 자체가 예외적이지만, 영화에서 어떤 정도의 보편성을 보여준 것 같다. 하층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의 보편성을 보여줬고, 어느 정도는 극적인 작법과 서사적인 특징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박정범: 어떤 목적의식보다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무조건 찍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승철이가 봤을 때 부끄럽지 않게 찍자는 게 목표였다. 관객과의 대화를 하며 좀 더 객관적으로 보면서, 내가 이 영화를 찍을 때 상당히 분노에 차 있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스스로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느꼈던 부분들, 승철이를 돌봐주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는 거다. 액션 장면도 정말로 맞았다. 좀 더 균형감 있는 상태였다면 조금은 다른 캐릭터들도 있었을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탈북자 캐릭터도 들어오고. 지금처럼 여러 인물들을 너무 한 쪽으로 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 부분은 반성하고 있다. (웃음)

신동일:
애정을 가지는 후배라서 작품에 대해 쓴 소리를 좀 하고 싶었는데 쓴 소리 할 부분을 찾기 힘든 영화다. 인상적인 것은 승철에게 핀잔을 주던 형사를 목사님이 이끌고 가는 장면이다. 감독이 한국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는 시선이 매우 미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컷에서 수경이가 "우리 교회친구 하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감동도 받고 인물을 잘 다뤘다는 생각을 했다. 수경이가 이중적이라기보다는 진심을 갖고 다가왔다는 느낌이 있었다. 또한 영화에 의외로 코미디 적 감각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씁쓸한 웃음을 동반한, 드라마적 흐름상 낙관적 기운이 흐르다가 다시 부정적으로 흐르는, 그런 흐름을 타는 유머들이 있더라. 노래방 도우미들과 신나게 성가를 합창하는 장면이라든지, 수경을 집에 바래다주려고 하는데 퇴짜를 받는 부분에서. 오늘 보면서 느낀 건, 성가대에서 승철을 환영하고 승철이 노래를 부르고 카메라가 다가서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린 상상을 부여하는 힘 있는 숏의 종결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박정범: 도빌 영화제 심사위원 중 한 분이 개를 왜 죽였냐고 묻더라. 그래서 역시 프랑스는 애견국가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사실은 영화적 내러티브를 볼 때 성가대에서 끝나는 것이 가장 절묘한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했다는 말이었다. 마지막 장면은 감독의 의도적 연출이자 관객에 대한 폭력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성가대에서 끝내려고 하기도 했다. 영화적이지 않은, 의도를 가지고 찍은 장면이 바로 엔딩이다. 그 개를 바라보는 롱테이크를 찍음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반성문의 종결을 찍은 것이다.

김성욱: 어떤 점에서 저런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거처가 교회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박정범: 중학교 때까지 교회를 다녔다. 학교 다닐 때 도둑질도 하고 싸움도 하는 나쁜 학생이었는데, 주말에 기도를 하면 사람들이 잘했다고 칭찬하더라. '나는 이렇게 가면을 쓰는데 왜 사람들은 모르지?'라며 이상해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수경 같은 인물들이 이중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종교가 가지는 변하지 않는 가치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난 속에서 자신을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캐릭터의 통일성에 대한 첫 번째 원칙은 전적으로 악하거나 선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매 순간 선함과 악함이 충돌하는 것. 승철도 그렇게 생각된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와서 남한에서 인생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고 순수하게 소년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자꾸 구석으로 몰림으로써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성욱:
수경이라는 캐릭터가 종교성을 가장 많이 내포하는데, 이 인물이 갖고 있는 이중적인 면모들이 있다. 특히 노래방에서 승철에게 잠깐 나오라고 해서 이야기를 할 때가 그러하다.
강은진: 감독님이 수경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시진 않았지만, 이중적이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될까?' 라는 지점도 많았다. 사람이 이중적이라도 해도, 내가 이중적이라고 의식하고 살진 않지 않나. 교회에서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세상을 밝게 살아가고 싶은 믿음을 가진 여자다. 현실에서는 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이유로 도우미가 있는 노래방에서 일을 하는데, 수경이라는 여자가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뇌를 했을까 싶었다. 탈북자라는 상황을 모르는 수경의 입장에서는 승철이 너무 이상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교회에서 승철을 봤을 때는,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 스물 스물 다가와서 놀란 거다. 수경이 신성시하는 성가를 도우미들하고 노래를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 거다. 그 순간에 수경은 자기 현실에 대한 연민이 커졌을 것이다. 나중에는 이 사람을 교회친구로 받아들임으로써 내 죄의식을 덜고 조금 가볍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거다. 현실을 사는 수경의 입장에서는 그게 진심이었고 솔직한 모습이었다.

김성욱: 연기를 하실 때 굉장히 몰입도가 높았을 것 같다. 영화를 연출하는 사람이 주연을 할 때,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 기타노 다케시 같은 경우는 자기의 인형을 세워놓고 카메라 내부와 외부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영화에는 승철이 대부분 등장하지만, 등장하지 않는 몇 장면이 있다. 허슬러 잡지를 보며 티비를 보는 탈북자들의 장면 같은 경우. 전체적인 밸런스가 안 맞는, 빗겨나가서 찍은 듯한 느낌이 든다.
박정범: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개인적인 시점을 따라가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몇 번 깨지는 순간들이 있다. 극에서 정보 전달이 필요하거나, 그들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남의 이야기를 빌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장면들이다. 연기를 직접 한 것 때문에 스텝이나 배우 분들에게 매우 죄송하다. 찍고 나서 다시 모니터링을 해야 해서 시간이 두 배로 소요됐다. 직접 연기하면서 장점이 있었다면, 내 외모가 상대 배우를 편하게 해주는 것 같더라. 저 사람도 배우를 하느냐며. 실제 탈북자인지 알았다는 사람도 있고 촬영 중에 졸거나 코를 고는 분도 있었다. 사천교 다리에서 싸우는 장면 찍을 때도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더라. 길거리 장면을 찍을 때 언제나 존재감이 없었다.


김성욱: 올해 굉장히 화제가 많이 됐던 중요한 작품이다. 마지막 말씀들을 듣고 싶다.
진용욱: 많이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린다. 좋은 작품 만든 것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다른 작품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강은진: 연기자로서 아직 가야될 길이 많은 것 같다. 또 다른 자리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뵙게 된다면 참 감사할 것 같다. 많은 대중들이 사랑할 만한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관객 분들이 다른 무언가를 느끼거나 같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신동일: 소중한 신인 작가가 출현했다고 생각한다. 정당한 평가도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무산일기>이지만, 나는 이 감독의 차기작이 진심으로 궁금하다. 앞으로 날카로운 시선과 묵직함은 유지하되, 좀 더 유머러스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지닌 작품을 만드시면 좋겠고 기대하고 응원하겠다.
박정범: 이렇게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외국도 나가고 할 줄 몰랐다. 이런 과정이 있는 것은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해서 같이하는 분들이게 보답이 되면 좋겠다.

정리: 박영석(관객 에디터) | 사진: 임유정(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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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이해영 감독의 <페스티발>

지난 4월 23일 저녁 6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간판 정기 프로그램인 작가를 만나다 상영회가 있었다. 특히 이번 달부터는 단순히 연출자를 모시고 질의응답 형태의 관객과의 대화 형식을 넘어 보다 심도 깊게 영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대담과 장면에 대한 해설까지 더한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대담자로는 김태용 감독이 함께했으며 이해영 감독과 김태용 감독이 직접 선택한 장면을 함께 보며, 해당 장면을 선택한 이유와 더불어 영화작업에 대한 소회를 들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페스티발>에는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골방에 갇혀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일종의 ‘커밍아웃 프롬 더 클로젯’을 하게 되고, 후반부에 엄정화씨의 노래가 나오면서 굉장히 흥겨운 순간을 자아낸다. 개봉 때에는 영화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굉장히 용기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이해영(영화감독) 사실 용기를 갖고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당연히 이 영화가 나에게 엄청난 명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웃음) <천하장사 마돈나>를 끝내고 <29년>이라는 작품을 2년 정도 준비했었다. 어떤 이유로 그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되자 개인적으로 내 야망의 무게에 스스로 짓눌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29년>과는 완벽히 다른, 굉장히 사적인 영역에서 유희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페스티발>은 개인적으로 너무 사랑스러운 영화이고 나의 명찰 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 이해영 감독이 꼽은 장면들 -
#1 (백진희가 섹스용품을 파는 봉고차에 찾아간다.)

이해영:
크랭크 인하고 첫 날 찍은 씬이다. 봉고차 내부에 생각보다 미술이 많이 들어갔다. 반짝이 천이나 원색의 느낌들이 본의 아니게 영화 전체의 색감을 규정하는 색깔이 되었다. 이 씬은 <페스티발>의 전체적인 이미지와 많은 농담의 질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씬이라고 생각된다. 현장에서 중심을 잃지 않도록 가질 수 있는 나만의 무기 중의 하나가 정확한 콘티여서, 첫 작품을 찍을 때부터 콘티를 정확히 준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봉고차가 굉장히 좁아서 동선이 전혀 나오지 않다보니 콘티를 짤 수가 없었다. 크랭크 인 첫날 현장에서 콘티 없이 찍었던 씬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모험과 같았다.

#2 (오달수가 여자 속옷을 입는다.)
이해영: 코미디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코미디 화법의 본질에 가까운 장면 같다. 이를테면,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고등학교 남학생이 여자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이 ‘쎈’ 이미지일 수 있는데, 이것을 호들갑 떨거나 하지 않고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코미디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그 친구가 갖고 있는 진심을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도 마찬가지로 물론 코미디를 위해 찍은 씬이기는 하지만 이성의 속옷을 입게 되는 행위를 굉장히 호들갑 떨거나 선정적으로 몰고 가지 않고 약간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인물을 덜 희화화하는 거란 생각을 했다.

김성욱: 오달수 씨의 캐릭터가 독특한데 이러한 캐릭터를 어떻게 떠올렸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몇 년 전 일본에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신주쿠 거리를 걷는 중 정말 평범한 동네아저씨 같은 분이 무지개 색 비키니를 입고 지나갔다. 그 분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는데 그 분한테는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서 자신의 세계를 너무나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페스티발>을 처음 구사할 때 단초가 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 분을 목격하고 나서는 복장도착과 같은 정신 병리학적 용어로 말고, 일상에서 그런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많은 캐릭터들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어떤 캐릭터에도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분들에 대해서 어떤 깊이를 가지고 다뤘다기보다는 묘사했다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 그런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을 했다.
김태용(영화감독): 이 영화에 나온 커플 중에 가장 인상적인 커플은 오달수 씨 부부이다. 이 영화는 어쨌든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뭉쳐서 잘 살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한다. 류승범 씨는 자신의 취향을 버리고 상대를 만나는 느낌이라면, 심혜진 씨·성동일 씨 커플은 서로 잘 맞는 취향의 사람들이 만남을 시작하는 느낌이다. 신하균 씨·엄지원 씨는 서로가 이미 충분히 사랑했다고 믿었던 사이에서 생긴 오해가 풀리는 느낌이었고. 그런데 오달수 씨 커플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해결이 된다. 어떤 실망이든 슬픔이든 가지고는 있지만 그걸로 됐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심혜진 씨가 밖으로 나가자고 선동을 하고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전달하는데, 그것보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오달수 씨 부부의 에피소드가 훨씬 더 파워풀하게 영화의 무언가를 담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3
(심혜진, 성동일의 목을 짝! 때린다. 그러자 둘 모두 웃음이 터진다.)
이해영: 이 장면을 꼽은 이유는 굉장히 솔직한 이야기를 드리기 위해서다. 이 씬을 보면 아직까지도 반성하게 되고, 헷갈리는 지점들이 남아있다. 연기하신 심혜진 씨나 성동일 씨 모두 선배이시고 아직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서 두 분께 ‘이런 식으로 웃으세요’라고 미리 주문을 할 수 없었다. 두 분이 웃는다면 어떤 느낌일 것이다, 상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상태에서 현장에 나갔다. 첫 테이크에 가서야 배우의 연기를 실제로 확인하게 되었는데 이 장면을 찍을 때 촬영 시간이나 조건들이 여유롭지 못했다. 항상 드는 고민은 현장에서 사전에 확인할 수 없는 연기를 어떻게 요구하고 짐작하고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원래 계획되지 않은 컷을 현장에서 어떻게 배우에게 주문해야 할지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김태용 감독님께 꼭 물어보고 싶었다. (웃음)
김태용: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굉장히 재밌었다. 이해영 감독 특유의 유머를 좋아한다. 이 씬 역시 이해영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코미디인 것 같다. 배우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부분은 잘 모르겠다. 나 역시도 배우와 그리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이해영: 작품들에 대해서 많이 들었던 얘기 중의 하나가 ‘일본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장면에서의 이런 식의 호흡 같은 것들이 아마도 그런 요소들 중 하나일 것 같다.
김성욱: 아마 ‘일본적’이라고 했을 때의 느낌은 액션을 무화시켜가는 방식들 같은 거다. 그 때 인물들의 표정이 굉장히 중성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성동일 씨나 심혜진 씨, 오달수 씨 같은 분들이 그런 방식의 장면들을 구성하기에 좋은 것이다. 무표정한 느낌이기 때문에 장면이 넘어가면서 시간차가 있고, 행동이 이뤄질 때 이게 무슨 행동인 건지 간파가 잘 안 된다. 그 때 순간적으로 웃음이 발생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웃음’은 사회적이다. 이 장면에서의 웃음은 둘 사이의 교감과 연관된다. 두 사람 간의 어떤 코드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동참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어떤 점에서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물에 접근해 들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저들은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만이 공유하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장면이다 .

#4 (소파에 쓰러져 자고 있는 신하균을 보던 엄지원, 다시 침대에 가서 잠든다.)
이해영: 누군가 <페스티발>을 보고 나서, ‘페티쉬 발’이라고 하는 얘길 들었다. (웃음) 의식하진 않았는데, 실제로 발 인서트가 꽤 많이 나오는 편이다. 발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에 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것도 좌식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잘 모르는 사이끼리도 식당 같은 곳에서 흔하게 신발을 벗고 함께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완벽하게 갖춰 입은 사람이라고 해도 쉽게 허물어뜨리고 같이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발로 이어지는 이 장면들에 묘한 정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5 (심혜진의 해금 연주를 시작으로 SM 던전이 만들어진다.)
이해영: 사람들이 가장 낯설어하고, 가장 이해 못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사랑스러워하는 장면이다. SM을 다룰 때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부분은 큰 숙제였다. SM을 단순히 가학과 피학이라는 폭력의 권력구도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영호의 톤에 맞지 않는, 상당히 보기 불편할 수 있는 성향으로 보일 수 있었다. SM을 보다 부드럽고 귀엽게 풀기 위해서 서로 나눠서 하는 역할놀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철물점 뒤에 있던 차고의 공간이 SM 던전으로 꾸며진다는 것을 두 사람만의 놀이터를 건설한다는 식으로 풀어갔다. 다른 분들이 보기에는 당황스럽고 기묘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김태용: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서 이 장면은 잘 이해가 안 갔다. 보통의 생각으로는 SM이라고 하면 폭력적인 쾌감인데, 이 영화에서는 너무 즐거워 보인다.
이해영: 보통 SM 커플들 중에 실제 행위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역할을 맡느냐, 어떤 관계로 어떤 긴장감을 갖느냐가 행위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 김태용 감독이 꼽은 장면들 -

#6 (차안에서 자위를 하던 류승범, 절정의 순간 신하균에게 걸린다.)
김태용: 여태껏 본 영화중에 가장 지저분한 씬이었던 것 같다. (웃음) 영화를 보다보면, 특히 이 영화처럼 많은 인물들이 나오게 되면 그들이 서로 만나는 장면을 기대하게 된다. <페스티발>을 보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신하균 씨와 류승범 씨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해영: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 이 씬은 없었다. 두 사람이 캐스팅되고 나서 그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나중에 쓴 장면이다. 신하균 씨는 재밌는 배우다. 리허설 때는 자신의 연기를 잘 안보여주다가 자신이 준비한 것을 현장에서, 첫 번째 테이크에 터트린다. 이 장면의 시나리오를 쓸 때도 신하균 씨의 연기를 상상하며 쓴 부분이 있는데, 첫 테이크에 정확히 그 부분들을 보여줬다.

#7 (신하균의 상상 속에서 엄지원이 거대한 바이브레이터를 타고 있다.)
이해영: 엄지원 씨가 타고 있는 바이브레이터 안에는 승마기구가 있다. 그런데 기구의 리듬이 너무 희한하다보니 편집할 때 어떻게 컷을 잘라도 잘 붙질 않았다. 다만 이 씬의 목표는 엄지원 씨라는 배우가 가진 섹시함을 잘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김태용: 이 장면은 사실 신하균 씨의 판타지인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 애매하게 엄지원 씨의 판타지 혹은 욕망인 것처럼 편집되어 있다.
이해영: 이 장면에서는 단순히 대상화되어있는 여성이 아니라 그 중간에 있는 씬처럼 만들어야했다. 그래서 약간 중의적인 씬이 되었다.

#8
(심혜진과 성동일과 오달수 공원에서 맞닥뜨린 후 신하균에 맞서 싸운다.)
김태용: 이 영화의 인물들이 만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이 장면이 본질적인 키워드 역할을 한다고 생각된다. 만남의 어색함을 풀어가는 데에 있어서 상상하기 어려운 유머가 발생하고, 다시 공손하게 헤어지게 된다. 무언가가 충돌되어 영화 안에서 힘이 발생됐을 때 이해영 감독은 잠깐 그것을 지연시키고 무화시키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영화적인 감정과 사건의 충돌에 맞닥뜨렸을 때, 이해영 감독은 약간 옆길로 새는 느낌이 있다. 어떤 사건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보호하려는 연출자의 마인드를 느끼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최근에 본 어떤 한국영화보다도 이만큼 인물들을 사랑하는 연출자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를 사랑하고 그 캐릭터를 맡은 배우를 돌보고, 이 영화에서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영화 밖의 실제 사람들을 돌보는 방식은, 영화가 가져야하는 윤리를 넘어서 어떤 세계의 동질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용기를 낼 때 보통은 적이 있어서 싸움을 거는 방식으로 용기를 내는데, 이해영 감독은 싸움을 걸지 않고 ‘우리끼리 알아서 잘살래, 우리 지옥가지 뭐’ 하는 대사와 함께 갑자기 뭉쳐지는 이상한 커뮤니티가 있다. 그 커뮤니티가 닫혀져 있기 때문에 힘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떤 점에서는 그 커뮤니티가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싸움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이해영: 인물들이 만났으면 바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과 감정이 정점을 찍을 때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줘야 한다. 그런데, 개인적인 성향이 비틀거나 돌아가거나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만났을 때 빵 터지는 걸 잘 못한다. 터지려고 하면 내가 약간 부끄러워지고 멋쩍다.


김태용: 영화가 계속 옆으로 가고, 충돌의 지점에서 정확하게 대면하는 걸 겁내하는 게 뭘까 고민하다보면 이 영화의 관객이 바로 이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다른 성적 취향을 소개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 깊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이 그들을 알량한 여유나 교양으로 이해하는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두렵다는 태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해영: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성적 취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만들 때 언제나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해피엔딩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척박한 우리들의 삶에 이런 기적 같은 해피엔딩이 한번정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임유정(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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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이재용 감독의 <순애보>

지난 12월 18일 열린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이재용 감독을 만나보고 개봉 10주년을 맞는 <순애보>(2000)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2010년의 마지막에 만난 작가 이재용 감독은 데뷔작 <정사>(1998)를 통해 성공적으로 충무로에 안착했고, 두 번째 연출작 <순애보> 역시 이재용 감독 특유의 절제된 연출과 깔끔한 묘사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순애보 개봉 1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12월의 작가를 만나다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올해로 <순애보>가 개봉한지 10주년이 된다. 극장에서 영화를 다시 보니, 부분 부분 기억나는 장면들도 있고, 이런 장면이 있었나 싶은 장면들, 새롭게 느껴지는 장면이 많았다. 데뷔작인 <정사>를 만든 후에 이 영화를 만드시게 된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영화의 원안자는 구본환 씨로 되어 있고, 시나리오는 감독님이 쓰셨는데, 영화의 원안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이재용(영화감독): 첫 번째 영화를 만들고 나서, 다음 영화를 구상하던 중에 사실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은 <스캔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예산이나 준비 면에 있어서 <스캔들>을 두 번째 작품으로 하기에는 버거운 면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구본환 프로듀서가 제안을 했었다. 그 때는 아주 간단한 몇 줄짜리의 시놉시스였다. 동사무소 직원인 한 남자와 재수생인 한 여학생이 인터넷을 통해서 서로의 존재를 알다가 어느 곳에서 우연히 스쳐간다는 정도였다. 그렇게 간단한 줄거리 정도를 그 분이 제안을 했었고, 그 때부터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김성욱: 주인공의 이름이 각각 ‘우인’과 ‘아야’이다. 개봉 당시 영화를 보았을 때 ‘우인’이라는 이름에서 어리석은 인간 혹은 우연한 인연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아야’라는 이름은 지하철 장면에서 ‘아야’하는 고통소리와 함께 환기되기도 한다. 인물들의 이름을 그런 점에서 특별하게 설정하신건지 궁금하다.
이재용: 사실 <정사>의 남자주인공의 이름이 ‘우인’이었다. 이정재시가 다시 ‘우인’을 맡게 된 셈이다. 그 이름이 주는 어감이나 말씀하신 우연과 인연에 대해 연상 작용을 하는 단어여서 좋아했다. ‘아야’라는 이름은 귀여우면서 일본적인 이름을 제안했던 원안자의 의견이 반영된 것 같다. 말씀하신 장면은 이름을 가지고 말장난처럼 만든 건데, 인물의 이름이 달랐다면 그런 장면은 들어가지 않았을 거다.

김성욱: 설명이 많이 절제되어 있는 영화란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손가락의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설정은 그 이유가 정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는다. 숨을 참고 자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집안의 문제나 하는 것들을 연상할 수는 있지만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데, 그러한 설정들은 어디에서 떠올렸는지.
이재용: 모든 행동들의 이유에 대해서는 영화적으로 얘기하자면 어떤 상징적인 혹은 시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숨을 참고 죽는 다는 것이 정말 엉뚱한 행동이지만 그녀의 의지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한 설정이 재미있다고 생각되었다. 현실적인 논리로 생각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처한 상황,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그 나이의 어떤 심리에서 숨을 참고 죽으려는 시도가 하나의 의식이나 제의처럼 여기는 행위라고 설정했다. 남자의 손가락이 마비됐다는 것에서 일상의 무뎌진 부분, 성적인 억압같은 것들을 상징적인 연상 작용으로 떠올렸다.

김성욱: 영화의 음악 선곡이 재밌게 느껴졌다. 그리고 영화 안에 굉장히 다국적인 성격이 많다. 차이나타운 추진위원회라는 설정이나, 이란인 친구, 텔레비전에서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를 보는 장면, 마지막에 두 남녀가 도착하는 알래스카 등 다국적이고, 다문화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이재용: 20대에 배낭여행을 길게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아직 여행자율화가 되기 전이었고, 처음 느낀 세계적인 것들에 대한 충격이 있었다. 동시에 아시아적인 아이덴티티, 혹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각이 생겼던 것 같다. 특히 아시아적인 것에 대한 경도가 있었다. 그래서 <순애보>라는 영화에 아시아적인 것들, 나의 관심사들을 많이 넣고 싶었다. 처음의 세 줄짜리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하기로 마음 먹었던 데에는 짜여진 이야기나 장르적인 것보다 개인적인 생각이나 느낌들을 많이 넣을 수 있는 열린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성욱:
영화의 구성 자체도 미래로 열려있고, 음악들은 과거의 어떤 시점을 떠올리게 하는 식의 시간상의 독특한 느낌이 있다.
이재용: 대개 시나리오를 쓸 때 음악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정사>를 쓸 때는 브라질 풍의 음악을 쓰고 싶었고, <순애보>를 하면서는 원래 중동풍의 음악을 쓰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던 부분이 있었다. <정사>나 <순애보>의 선곡들은 개인적인 취향대로 관심있고 한 번 쯤 쓰고 싶었던 음악들을 많이 쓴 편이었다.

김성욱:
영화에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굉장히 많이 배치되어 있다. 오줌을 누거나 토하거나, 화장실에 숨기도 하고, 그곳에서 무언가 엿보기도 한다. <다세포 소녀>를 보고 나서 다시 이 영화를 보다보니 그런 느낌들이 좀 더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이재용: 운안의 첫 번째 제목이 ‘유린네이션’이었다. 원안자가 본 인터넷사이트 이름이기도 했고 오줌을 말하기도 한다. 처음 그 제목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에 화장실이나 포르노사이트 같은 것들이 많이 들어갔고, 무의식 중에 관련된 설정들이 많이 들어갔다.

김성욱: 화장실, 변기, 물, 땀, 오줌, 어항, 알래스카의 얼음과 같이 물의 이미지들이 영화 곳곳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최종 제목은 <순애보>가 되었는데, 영화 중간에 순애라는 사람을 찾는 남자도 잠깐 나오고, 순애라고 적힌 낙서도 얼핏 등장한다.
이재용: 그런 일종의 말장난들은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재미처럼 만들었다. 영화를 여러 번 보는 사람들이 발견해내게 되는 수수께끼랄까 숨은그림찾기 같은.

관객1: 영화에서 감독님이 특별히 맘에 드시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지 궁금하다.
이재용: <다세포 소녀>에서 뮤지컬을 시도해봤는데, 개인적으로 뮤지컬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측면이 있다. 뮤지컬이 주는 판타지를 좋아하는 한편 관습적인 면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다세포 소녀>의 효시 중의 하나가 이 영화에도 있는 것 같다. 클럽에서 여자들이 춤을 추고 공연이 끝나고 나서 물을 마시는 장면들인데, 그 장면에 쓰인 ‘sky high'라는 노래를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기도 했고, 찍으면서도 신이 나고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세 줄짜리의 이야기에서 많은 부분을 스스로 채워 넣어야 했기 때문에 장면 하나하나들이 좀 더 나다운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관객2:
<순애보>는 오늘 처음 봤다. 일본에서 12년 정도 살다가 얼마전 한국에 들어왔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일본 영화들에서 봐왔거나 살면서 느낀 일본의 일상적인 모습들과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아 마음에 와 닿았다. 아름답기도 하면서, 현실적이기도 하고, 스타일리시한 부분들이 인상 깊었는데, 당시 감독님이 그리고 싶었던 일본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재용: 일본 문화에 많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기도 했고,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기도 한데, 이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는 일본에 대해서 그다지 알지 못했고 문화도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 한 달 정도 일본에 살아봤고, 두 달 정도 일본어를 배운 게 전부였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스스로 어떤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촉수가 있다고 느꼈다. 특별히 어떤 리서치를 하지도 않았고, 일본에 오래 살아보거나, 많이 아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곳의 공기를 맛보고, 거리를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 느낀 것들에서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의 일본 가족은 결국 한국인인 제가 본 일본 사람일 텐데, 특별히 일본 가정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부여했다기보다, 한국의 중산층 가정 중에 외향적이지 않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가족의 모습이 일본 가정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막연하게 느끼는 어떤 것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는데 운 좋게도 그것이 잘 맞아 들어갔던 데에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 영화를 찍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낯선 땅에서 스태프들도 모두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걱정을 했지만 오히려 그런 점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일본어를 모름에도 불구하고 연기자의 대사를 듣고서 판단을 할 때 말 이전에 통하는 어떤 것들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을 느꼈다. 어떤 면에서는 신비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영화 작업 자체도 굉장히 즐기면서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난다.



관객3: 영화가 설명이 적어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두 인물들과 친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 포르노사이트가 소재가 되었지만 성적인 부분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같다. 조카가 나오는 장면들에 대한 설정도 궁금하다. 옛날 노래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음악들에서 느끼는 옛스런 부분, 북촌의 풍경과 인터넷과 같은 것들이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 좋았다.
이재용: 영화에 전반적으로 인터넷이나 포르노사이트, 한국과 일본, 알래스카를 오가는 설정에서 현대적이고 모던한 것들이 등장하지만 저변에 흐르는 일상적이고 복고적인 것들이 주는 대비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를 모두 즐기고 싶고, 다루고 싶었던 것 같다. 골목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나오는 노래는 50년대 노래이고, 비 오는 장면에서 나왔던 노래는 70년대 노래이다. 그런 정서들이 충돌하면서 느껴지는 것이 뭘까 궁금해했다. 장면의 설정에 대해서 하나하나 의미에 대해선 물론 모두 나름의 의도는 있지만, 그것을 설명을 하기 위해선 내 무의식을 끄집어내어야 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개인적인 느낌에서 많은 것들을 배치했던 것 같다. 그런 장면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과는 다른 방식이어야 할 것 같다.

관객4: 10년 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다세포 소녀>를 본 이후에 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되니 다른 느낌이었다. <다세포 소녀>는 키치적인 이미지들이 많은데 이 영화에서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그런 이미지들을 원래 선호하시는 편이신지.
이재용: 영화를 만들 때 두 가지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고전적이고 클래식한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취향과 키치적이고 악취미적인 것을 즐기는 취향 이 두 가지가 항상 함께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생각과 반하는, 이런 것도 영화다라고 하고 싶은 것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다세포 소녀>와 <순애보>가 일견 만나는 부분이 있다. 나는 홍상수나 허진호 감독처럼 한 길을 가는 느낌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닐 것 같다는 얘길 하곤 한다. 다양한 관심사나 성향을 함께 가지고 있어서 어떤 기회와 당시의 몰두해 있던 것들이 만났을 때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결국은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담긴 영화들을 해왔고, 그렇지 않은 영화는 아직 안한 것 같다. 그동안 만든 다섯 편의 영화 모두에 나의 성향이 녹아있다. 그래서 내 영화를 보는 게 스스로 부끄럽다. 나의 유치하거나 속물스러운 부분같은 것들까지도 영화를 통해서 다 보이기 때문이다.


관객5: 다른 공간에 살면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차이를 좁혀가는 점이 인상깊었다. 아야가 수양장에 떠있는 장면과 우인 조카가 욕조에 띄운 인형, 우인이 보는 발리우드 영화와 아야가 만나는 이란사람, 그리고 지하철에서의 비슷한 경험처럼 두 사람은 어떤 공통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좀 다른 면도 존재하는데, 예컨대 아야는 자살을 시도하긴 하지만 자유로움에 대한 열망이 있다. 우인은 감각이 무뎌져 있는 듯 하고, 관음증적이고 자극적인 감각을 추구하면서도 인터넷과 같은 틈을 통해 자꾸 밖으로 나가려는 면이 있다. 무의식의 방에서 아야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가 하면 우인은 방의 쇼파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에 그친다.
김성욱: 두 인물이 만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교감이 존재하는데, 이 때 장면의 리듬과 연결이 굉장히 힘든 일일 것 같다. 예전에 찍은 사진이라든지 지하철장면처럼 좀 더 인위적이고 설명적인 장면이 있긴 하지만 그런 장면이 아니라하더라도 전체적으로 감정전이가 굉장히 잘 되어있고 굉장히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쉽지 않은 부분이었을 텐데.
이재용: 이 영화는 탄탄한 시나리오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저의 경험과 생각들을 취향들을 가득 채워나간 영화였다. 당시 이 영화를 만들면서 전체를 관통하는 얘기로 담고 싶었던 것은 영화 안에서는 모든 것에 기승전결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감정을 쌓아가게 되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런 식의 기승전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분절된 삶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엔딩에서야 비로소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라면서 마치 그 때 영화가 시작되는 것처럼 끝난다. 누구나 이렇게 분절적으로 살아가는데 우리는 어디선가 서로 스쳐갔을 거라는 어떤 걸들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두 인물이 그랬듯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도 언제 어디선과 저와 스쳐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당시 가장 큰 관심사였다. 인터넷이 생겨나면서 어디서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어딘가 연결되어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영화였다. 우연과 인연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 연결고리들은 일부러 대구를 이루려고 설정한 부분들도 몇몇 있지만 내 안에서 떠올랐던 것들이 나열되어 자연스럽게 어떤 법칙을 가지고 정리가 되었던 영화이다.

김성욱: 감독님의 영화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감독님의 여러 가지 취향이 잘 조절된 영화가 <순애보>인 것 같다고 느꼈다. 지난 10년 간 감독님의 영화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이 어떠신지, 그리고 최근에 준비하고 계신 작업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이재용: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는 러브스토리이다. 사실 <정사>를 만들 당시에는 멜로드라마가 나의 취향일 거란 생각을 못했었다. 뮤지컬을 좋아하면서 싫어하기도 한 것 처럼 멜로드라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나 신파적인 멜로드라마는 취향에 맞지 않지만 첨예하고 극단적인 상황 혹은 치명적인 사랑과 같은 이야기를 관심 있어서 치정이 있는 멜로드라마를 한편 준비하고 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복되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하는 우려도 있다. (정리: 장지혜)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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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김동주 <빗자루, 금붕어 되다>

11월의 ’작가를 만나다’는 <빗자루, 금붕어 되다>의 김동주 감독이었다. 달동네 고시원에 기거하는 50대 장필의 사연을 통해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이 놀라운 데뷔작을 함께 보며 감독과의 대화를 가졌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문제작 <빗자루, 금붕어 되다>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어떤 계기로 <빗자루, 금붕어 되다>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동주(영화감독): 고시원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전에 친구가 운영하고 있던 고시원에 놀러갔다가 그 공간에서 받은 영감,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들에서 출발했다. 전국에 6,000여개 정도의 고시원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고시원에 들어가서 시나리오를 쓰려고 마음먹고서, 영화에도 나오는 ‘다부터 고시원’에 실제로 들어가 7개월 정도 살았다. 그렇게 2007년 10월에 촬영을 해서 2008년에 처음 영화가 공개되었고, 올해 정식으로 개봉하게 되었다.

김성욱: 고시원의 복도랄지 내부적 공간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215호실의 남자는 영화에서 거의 설명되지 않던데.
김동주: 고시원에 살다보면 소리에 상당히 민감해진다. 감옥 같은 작은 공간에 살다보니, 정신도 예민해지고, 특히 소리에 예민해지다보니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어느 방에서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고시원 안에서 간혹 분실이나 도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해서, 화장실 갈 때도 문을 잠그기도 한다. 215호실의 남자를 설정하면서, 약간의 자폐증적인 성격의 캐릭터이면서 고시원 안에서 담배처럼 간단한 물건을 훔칠 수도 있는 모호한 인물을 염두에 두었다.

김성욱:
영화 전체에 걸쳐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는 탓에 통상적으로 본다면 CCTV의 느낌을 받게 된다. 카메라의 위치나 장면은 어떻게 구상했나?
김동주: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틀이 갖춰지자 카메라워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설정 정도로 주어진 상태에서 카메라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해나갔다. 고시원과 주변 공간을 담아내기 위해선 한 앵글 한 쇼트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의 일상에서 하는 일, 가는 곳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일단 한 쇼트로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앵글이나 구도에서 받게 되는 감흥, 다큐멘터리적인 사실성의 느낌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영화 전반에 부감 쇼트를 많이 사용했다.

김성욱: 배우들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김동주: 주인공 장필 역을 맡은 유순웅 씨는 오랫동안 연극배우로 활동하신 분이고, 김재록 씨는 <방문자>(2005)라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다. 나머지 배우들은 대부분 실제로 그 주변에서 영화 속에서와 같은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다. 실제 자신의 직업에 있는 사람들이 영화에 등장할 때 리얼리티가 극대화되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해도 그 정도의 리얼리티, 자연스러움을 담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 고시원 동네를 살면서 주변을 다니며 그 곳에서 만났던 분들을 섭외해 출연시키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한편으로 그 분들의 힘이기도 하다.

김성욱:
살인 이후에 시체를 묻는 장면이나 고시원에 여자가 누워있는 장면은 사실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렇다고 몽상적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 같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도 좀 다른 느낌이 든다.
김동주: 일단 카메라를 고정쇼트로 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뒤, 그 원칙을 끝가지 밀고 나갔다. 사실적인 구도와 앵글 내에서 다른 감흥과 연출적인 측면을 고려해, 쇼트는 사실적이지만 그 쇼트 안의 내용은 사실적이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카메라 트릭이나 장치, 편집을 쓰지 않고도, 쇼트 안에서의 애매한 차이를 보여주거나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롱테이크 롱쇼트를 밀고나간 상태에서 제가 의도한 바를 표현했기 때문에 보신 분들에게는 각자 다르게 받아들여지실 것 같다.

관객1: 주인공의 연기에서 연극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의도한 부분인지 궁금하다. 모니터를 파는 여자와 조각상을 사는 여자를 같은 배우가 연기했는데,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가?
김동주: 오랫동안 연극만 하시고 영화는 처음이신 분이어서 연극적 연기가 배우에게 굳어진 면이 있었다. 연극에서의 억양과 액션을 지우기 어려웠던 것 같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도 처음인데다, 내러티브 순서대로 촬영하지 않는 점에도 익숙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여자 배우의 경우는 영화상에서 사실 서로 다른 배우여도 상관이 없고 롱쇼트이기 때문에 확실히 분간되지 않을 수 있는데, 영화의 다양하고 모호한 측면에서 어떤 감흥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기 때문에 1인 2역을 설정하게 되었다. 사실 나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객 분들이 구체적으로 다 모르셔도 될 것 같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 문학이나 문자가 표현할 수 없는 영화적 장치들을 많이 만들어 놓으려고 했다.


관객2: 독특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과 구도를 먼저 정해놓고, 그 안에 인물을 배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김동주: 처음부터 이러한 틀을 고수했던 것은 아니다. 촬영여건이나 배우의 연기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원씬 원커트의 촬영은 힘이 든다. 처음에는 주된 공간이 되는 고시원 방이나 골목만 그렇게 찍고 나머지 부분에선 커트를 나눌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1,2회차 촬영을 하게 되면서, 원씬 원커트의 원칙에 대한 확신이 서게 되고 그러한 틀로 영화 전체를 만들어갔다. ‘장필’이라는 제목을 공유하다가 영화의 편집을 끝내고 제목을 다시 생각하면서 좀 더 모호한 느낌을 주었으면 했다. 빗자루나 금붕어 모두 영화에 등장하는데, 이 둘의 조합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으로 삼게 되었다.

관객3: 골목에서 들리는 고물상 노인의 녹음 목소리는 영화를 위해 따로 녹음해 두신건지? 공간의 구도에서 깊이감과 기울어진 느낌이 좋았다.
김동주: 녹음 된 소리는 실제로 그 분이 장사하는 마이크와 그 소리 그대로이고, 실제로 그러한 복장으로 골목을 다니는 분이다. 촬영에 대해선, 앵글과 촬영이 이례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에 있다 보니, 처음엔 촬영감독과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골목을 찍으면서 촬영감독이 이렇게 찍어도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밀고 나가게 되었다. 광각을 쓰고 초점에 맞게 하는 것이 배우의 동선에 적절하고, 전형적인 앵글보다 부감으로 보여줄 때는 좀 더 가까운 선을 틀었을 때의 느낌이 좋았다. 간혹 주차장이나 경비실에서 CCTV 찍는 것을 보면서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 경험들을 살려 이 영화에 써보고 싶은 면이 있었다. 골목도 부감이지만 각이 살짝 꺾여있다. 그러한 골목을 찾아내기 위해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영화가 고정된 쇼트로 안정되어 있으면서도 왠지 불안해 보이기도 하는 것이 그런 부분에서 오는 것 같다.

관객4:
살인을 기점으로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느낌이 좀 다른 것 같다. 전반부는 사실적인 리얼리티를 따라 가다가, 후반부는 어떤 환상이나 꿈같은 느낌이 있어서 후반부에 들어서는 헷갈리거나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김동주: 비교적 전반부는 이해하기가 쉬운 편이다. 후반부는 주인공 장필의 내면적인 면을 묘사하려고 했다. 어떠한 계기들로 인해 성찰의 과정을 겪는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다. 후반부에는 개인적이고 내적인 측면을 많이 묘사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는 다소 불친절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기회에 다시 보시게 된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성욱: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의 특징은 인물이 덫에 걸려있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한편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돈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엄마나 모니터를 파는 여자, 목각인형을 사는 여자, 나중에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공범이 되는 여자가 있다. 그들은 돈을 지불하고 돈을 훔쳐간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사건이 연계되어가면서 인물에게 일종의 덫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성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김동주: 영화를 만들어 놓고 개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돈이 움직이는 사회, 상품으로서의 영화와 같은 면들을 느끼면서 더욱 이 영화가 개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회를 이끄는 건 돈이고 사람의 인간성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게 돈이 된 것 같다. 이러한 생각들로 영화 안에 돈에 관한 많은 설정을 만들었다. 처음에 목각인형을 사는 여성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여성들은 일상적인 이미지에서 많이 왜곡된 모습이다. 영화를 주인공의 입장에서 묘사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작품이 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고 주변 환경에 눈을 돌리는 과정에서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지점들이 나를 통해서 나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를 통해 나온 작품이므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작가의 의도보다는 사회적인 측면이 좀 더 고려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성욱: 영화아카데미 7기를 졸업하고 상당히 늦게 데뷔작을 만들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난 이후에도 개봉이 늦어졌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작업도 어렵지만, 극장에서 개봉되어 공개되고, 이후의 작업을 이어나가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감독님의 소회를 듣고 싶다.
김동주: 내 생각에 각자의 관점에 따라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 선택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나의 경우에도 하고 싶은 것을 하느냐 혹은 타협하느냐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하게 된다. 모두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선택할 것이고, 제작사 등에 좌지우지 되고 싶진 않다. 작은 작품이지만 이렇게 영화를 보러 와주시고 대화에도 참여해주신 분들을 만나게 되어 앞으로 내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정리: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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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작가를 만나다 - 전계수 감독의 <뭘 또 그렇게까지>

10월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다섯 감독들이 만든 프로젝트 영화, 한국의 만나다의 춘천편인 전계수 감독의 <뭘 또 그렇게까지>를 함께 보고,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스타일을 구축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전계수 감독과 함께한 시간을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먼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와, 춘천을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전계수(영화감독): 원래는 아리랑 TV에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TV 영화를 만드는 기획이었다. 저를 포함해서 다섯 분의 감독님들이 도시를 하나씩 선택해서 그 도시가 영화의 배경이자 주제가 되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다른 감독님들이 외국인들도 알 수 있을만한 대도시들을 선택하시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소도시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춘천을 선택하게 되었다. 춘천에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한두 번 바람 쐬러 갔던 적 밖에 없지만 그 기억을 살려서 만들어 보았다.

김성욱: 처음에 남자주인공이 등장할 때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다가 기차에 두고 내리는 장면 이후로 니체가 종종 영화에 언급되는데 처음부터 구상했던 것인지.
전계수: 사실 남자주인공 조찬우처럼 저도 니체를 하나도 모른다. 그런데 촬영을 시작할 무렵 정신없는 와중에 우연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게 되었다. 내용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표제가 마음에 들었다. 처음엔 그 제목을 이 영화의 제목으로 할까도 생각했고, 처음에 찬우가 기차에 두고 내렸던 책을 나중에 찾게 되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지만 여건상 그렇게 찍을 수가 없었다.

김성욱:
세계 최초로 특정 카메라를 사용한 영화로 알고 있는데 장비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다면.
전계수: DSLR 중에 캐논 5D Mark 2라는 카메라의 동영상 기능으로 촬영했다. 제작비 문제도 있었지만 실제로 테스트 촬영을 했을 때 일반 필름 카메라나 HD급 카메라만큼은 아니겠지만 대단히 영화적인 느낌이 있어서 이 카메라로 촬영하게 되었다. 그런데 워낙 작은 카메라로 찍다 보니까 영화 현장 같은 느낌도 별로 나지 않고 사고도 많았다. 촬영 시기가 여름이라 카메라가 굉장히 빨리 뜨거워져서 촬영 중간 중간에 부채질을 해줘야했다. 사실 큰 화면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걱정을 했는데 화면이 잘 나온 것 같다. 역시 카메라가 워낙 작다 보니 모니터 할 때도 불편함이 좀 있긴 했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점들을 제외하고는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를 하시는 분들이 쓰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성욱: 극중에서 찬우와 민호가 서로 뱉은 술을 마시는 장면은 컷이 나누어져 있어서 영화상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데, 배우들이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
전계수: 실제로 하긴 했다. 나는 만류했는데 배우들이 그렇게 했다. 그래서 편집 과정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배우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끊지 않고 갔어야 했는데 한 테이크로 가자니 좋은 호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잘라 붙였다. 사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노고가 매우 컸다. 주인공 찬우 역의 이동규 씨는 원래 몸이 탄탄하고 매끈한 사람인데 배 나온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화장실을 일주일 동안 안 갔다고 한다. (웃음)

김성욱: 찬우가 맨 처음에 김유정역에서 내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고, 여자주인공의 이름도 김유정인데.
전계수: 원래는 춘천역에서 찍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헌팅을 갔다가 역 이름이 너무 신기하고 주변 풍경이 워낙 예뻐서 김유정역을 쓰기로 했다. 여자주인공을 김유정이라고 한 것도, 개인적으로 배역 이름에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헌팅 가서 ‘김유정역에서 김유정을 만나다’라는 컨셉으로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관객1:
유정을 따라다니는 대학생 이민호라는 캐릭터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전계수: 민호는 20대고 찬우는 30대인데, 민호는 저의 20대 때 모습이고 찬우는 저의 30대 때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20대 때의 철없고 한심하고 무책임한 모습과, 모든 게 무의미하고 가치 없게 느껴지고 따분한 지금의 모습을 충돌시켜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둘이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에서도 20대의 민호는 자기가 10년 후에 저런 모습이 될 것 같아서 화가 나고, 30대의 찬우도 자신이 20대였을 때의 무책임하고 어리석고 집착하는 모습이 보여서 화가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객2: 유정 역의 여배우와 작업 중에 어떻게 서로 소통했는지 궁금하다.
전계수: 사실 여배우를 촬영 이틀 전에 캐스팅 했다. 워낙 정신없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프로덕션이었고, 그 배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일 모레 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두 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는데 도저히 배우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채로 남겨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여배우가 많이 낯설고 어색해했다. 촬영 중에도 밤마다 세 배우가 방에 모여서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이를테면 커피 같은 것을 소재로 각자의 캐릭터에 맞춰 역할극을 하기도 했다. 캐릭터에 대해 배우들에게 설명하거나 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역할극을 통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해보자고 이야기 했었다.

관객3:
영화에 고통과 예술의 관계가 계속 언급된다.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시는 게 결국은 고통 없이는 예술이 없다는 것인지.
전계수: 제 생각은 ‘뭘 또 그렇게까지’라는 거다. (웃음) 물론 고통 없이는 예술도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답은 없다. 시나리오 쓸 때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씩 글이 써지긴 하니까 때로는 고통이 하나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은 그게 상황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생기는 자기연민이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영화와는 무관하게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행복하게 살고, 기회가 있을 때 행복하게 작업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김성욱: 극중의 예술제에서 상영되었던 영상은 직접 촬영한 것인지.
전계수: 직접 촬영한 것이다. 촬영 전에 헌팅을 갔을 때 마침 춘천마임축제를 하고 있어서 스케치 차원에서 캠코더로 촬영한 것이다. 포커스도 시험 삼아 날려봤고, 거기에 걸맞는 내레이션도 써본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아리랑 TV에서 방영될 땐 50분 분량으로 나가야 하는데, 50분으로 편집을 하던 도중에 장편으로 늘리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헌팅 때 찍어두었던 장면들을 많이 활용했다.

관객4: ‘뭘 또 그렇게까지’라는 말 자체가 주는 일반적인 어감이 있다. 그게 사람간의 관계에서 쓰일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성격 또한 드러내주는 것 같다. 그런 제목이 와닿으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
전계수: 원래 극장개봉 목적은 아닌 영화였지만 올 봄에 개봉을 했었는데, 그 때 네이버 평점을 봤는데 ‘뭐 제목이 이따위야’라는 인상적인 코멘트도 있었다. (웃음) 그냥 놔버리고 싶었다. 원래는 <나쁜 충동> 아니면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같은, 주제와 연관되고 다소 철학적인 척하는 제목으로 지었다. 그런데 후반작업 하면서 ‘내가 얘기 하려고 하는 게 이렇게 거창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꾸게 되었다. 뒤늦은 판단이었지만 제목을 바꾸기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5: 영화 안에서 충동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충동이란 무엇인지.
전계수: 사실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충동이다. 찬우가 김유정역에 내리는 것부터모든 일이 충동을 따라 흘러가다가, 나중에 유정이 화가의 길을 가지 않고 스튜어디스가 되겠다고 하는 것도 어떤 충동의 발로다. 개인적으로는 충동적인 것들이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움직이게 하니까. 오늘 오랜만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깨달은 점도 있는데, 이제는 말이 오가는 영화보다는 충동적일지라도 몸으로 부딪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성욱: 대사에서 ‘춘천은 충동적으로 오는 곳’이라는 표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춘천이 충동과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면.
전계수: 작년 친구들 영화제에 하정우 씨와 함께 왔을 때 하겠다고 말씀드렸던 영화다. 하정우 씨가 주변에 민폐나 끼치는 소설가로 나오는데, 그 부분은 판타지긴 하지만 소설이 너무 안 풀려서 자기가 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까지 욕을 먹는 인물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겨드랑이 털을 기르는 여자를 만나서 일이 술술 풀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여배우들이 잘 안하려고 한다. 누군가 캐스팅 된다면 그 여배우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셨으면 한다. (웃음) 작년 친구들 영화제 때 <히스 걸 프라이데이>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그때 저를 매료 시켰던 스크루볼의 느낌으로 영화를 찍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김성욱: 최근에 별로 좋지 않은 일도 꽤 많은데 관객분들 모두 영화를 보시면서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전계수 감독님도 빨리 영화 작업에 들어가셔서 내년에 관객들과 만나기를 빈다. (정리: 박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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