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존 포드는 양친에게 물려받은 아일랜드인의 뜨거운 피가 자신의 몸에 흐르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비록 미국에서 출생하긴 했지만 존 포드는 대다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그러했듯 고향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지니고 있었다. 스물여섯이 되던 해인 1921년에 존 포드는 오매불망하던 고국 아일랜드를 처음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과의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던 탓에 아일랜드는 정치적 긴장상태로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예술가에서 그런 사회적 격변은 종종 긍정적인 창작의 열정을 부추기곤 한다. 존 포드는 이 여행에서 민감하게 느꼈던 것들을 나중에 작품을 통해 표현할 기회를 얻게 된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41)와 <조용한 사나이>(52), 그리고 <긴 잿빛 선>(55)과 같은 작품은 고국 아일랜드에 바치는 찬가로 그가 이 시기에 겪었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존 포드의 영화를 두고 전통과 현대의 충돌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지나가버린 과거에의 노스탤지어를 종종 말하곤 하는데 이런 특징의 상당부분은 아일랜드계 이민자로서가 그가 느낀 소수자, 국외자의 정서에서 기인한 것이다. 종종 그의 영화에서 통렬한 순간은 인물들이 고향을 떠나기 위해 가족과 작별을 고할 때에 발생한다. 19세기 아일랜드의 웰스 지방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광부의 가족사를 필연적인 해체의 과정으로 그려낸 걸작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 탄광에서 해직된 두 아들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장면은 지극히 담담하게 묘사된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석별의 정을 토로하는 대신 성경의 구절을 읽어주고 어머니는 흔들의자에 앉아 미동도 없이 떠나는 두 아들을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마을을 등지면서 석양에 구부정한 그림자를 남기면서 저 멀리 두 아들이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수색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서부 저편으로 사라지는 존 웨인의 모습보다 더 통렬한 순간이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성장한 주인공 휴 모건(Huw Morgan)이 어릴 적 시장에 갈 때 어머니가 두르던 숄에 소지품을 챙겨 고향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정든 집을 떠나면서 그는 이제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결심 하는데 카메라는 이 때 집의 내부에서 빠져나와 창문을 거쳐 탄광촌 마을의 한적한 거리를 비춘다. 이미 폐광이 되어버린 탓인지 휑뎅그렁한 거리에는 오직 늙은 여인만이 누군가를 쓸쓸하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화면위로 ‘현재의 기억은 사라지지만 오래 전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하다’라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깔리면서 이내 화면은 과거 풍요롭고 초록이 무성했던 대지로 전환한다. 흑백영화이기에 휴가 기억하는 초록으로 가득한 계곡은 지각 가능한 것이 아니다. 대신 그것은 흐릿한 기억처럼 추억과 상상의 영역에 속한다. 그것은 또한 아일랜드의 대지를 감싸는 환경, 분위기, 숨결과도 같은 것이다. 존 포드가 그려내는 아일랜드인의 기질은 그런 초록의 대지와 호흡하며 탄생한다. 남성다움의 본성, 즉 의리와 자부심 말이다. 이는 남성들의 다툼과 싸움에서 드라마틱하게 표현된다. 이를테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휴는 저급한 탄광촌에서 왔다는 이유로 급우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데, 그는 동네 아저씨에게 익힌 권투기술로 괴롭히는 친구들과 싸움을 벌인다. 이 때 싸움은 서로 주먹을 공평하게 교환하는 게임과도 같은 것으로 아일랜드계의 남자다움과 우정을 획득하는 통과의례와 같은 순간을 표지한다.

탄광촌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긴 행렬을 이루어 함께 노래를 부르며 퇴근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몇 차례 반복적으로 보이는데, 꽤나 인상적인 순간이다. 이들은 모두 집 문 앞에서 기다리는 대지의 신과도 같은 어머니의 에이프런 속에 하루 벌어온 돈을 꼬박 집어넣는다. 근면하고 억척스런 어머니는 아버지만큼이나 자부심과 의지가 강한 존재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인 마을 청년들이 완고한 아버지가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며 비난을 퍼붓자 이에 참을 수 없었던 휴의 어머니는 파업참가자들의 회합에 참석해 수많은 사내들을 향해 ‘누구든 남편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소’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어머니의 분노와 의지의 표명이 휘몰아치는 겨울의 매서운 눈발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그러나 가족애와 우애, 그들의 근면한 삶도 한번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세상사의 법칙을 넘어설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는 경제적 곤란 때문에 집을 떠나고 누구는 결혼 때문에,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갱도에서 삶을 마감한다. 사건의 관찰자이기도 한 어린 휴의 순수성은 가족의 해체와 공동체 성원들의 멸시와 조롱, 형제와 아버지의 죽음과 마주하며 변모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휴의 어깨에 기대어 아버지가 삶을 마감하는 장면이 이것의 정점에 해당한다. 이 순간 휴는 망연자실한 듯이 빈 시선을 허공에 던지는데, 이 때 모진 현실은 저편의 기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마치 꿈같은 세계가 펼쳐진다. 아버지와 푸르른 계곡을 함께 거닐던 행복했던 순간, 이혼 때문에 완고한 마을주민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한 누나의 귀환,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향을 떠났던 형들이 저 멀리서 돌아온다. 행복한 기억이지만 동시에 비애로 가득한 숭고한 장면이 아일랜드의 거대한 하늘 아래에서 벌어진다.

존 포드는 거대한 하늘을 밑그림처럼 활용해 거기에 대지와 공동체, 인간사의 이야기를 숨결처럼 화면에 불어넣었던 영화작가로 서부극은 그런 에센스를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르였다. 2차대전이 끝난 뒤에 만든 서부극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46)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이 영화는 서부극에서 자주 회자되는 전설적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그린다. 닷지 시티에서 유명했던 보안관직 생활을 청산하고 형제들과 소를 몰고 떠돌아다니는 와이어트 어프(헨리 폰다)는 막내 동생이 톰스톤에서 클랜튼 일가의 습격으로 살해당하면서 복수를 결심한다. 서부에서 가장 거대한 무덤이 있는, 어둠과 타락의 마을인 톰스턴에서 와이어트 어프는 다시 보안관 배지를 달고 도박장을 운영하는 닥 할러데이(빅터 마튜)와 연대해 클랜튼 일가와 전투를 벌인다. 이런 복수를 둘러싼 이야기에 동부에서 톰스톤을 찾아온 아름다운 클레멘타인과의 미묘한 사랑이야기가 함께 한다. 

평자들은 존 포드의 서부극을 호메로스가 그리스의 신을 노래하는 것처럼 미국 개척기의 영웅들을 찬미하는 일종의 역사극으로 평가한다. 그의 영화에서 진정한 주인공들은 서부를 개척하고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이민자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 노력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대중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공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미국 남서부의 모뉴먼트 밸리가 그가 만든 서부극의 주된 장소다. 거대한 메사와 이를 감싸는 무한과 숭고의 감정을 불러오는 하늘이 있다. 그 아래에서 인간들은 공동체를 건설해 거주하고 경작하고 또 신을 향해 예배와 찬양을 벌인다. <황야의 결투>에서 와이어트 어프와 클레멘타인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그러하다. 이들은 모뉴먼트 밸리를 배경으로 이제 막 건설 중이라 기둥만 세워져있는 교회에서 마을 주민들이 환호 가운데 조금은 어색하지만 흥겹게 춤을 춘다.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집합적인 상상력이 가장 적절하게 표현된 장면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영웅적이고 국민적인 통합의 신화는 공동체 내부에 내재한 갈등의 해소룰 통해 표현된다. 톰스톤에 처음 도착한 와이어트 어프는 총질이 난무하고 인디언이 바에서 소란을 피우는 장면을 묵도하며 연신 ‘도대체 뭐 이런 마을이 다 있냐’며 사람들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동생의 죽음 때문에 다시 보안관직을 맡아 마을에 머무는 것은 클랜튼 일가와의 최종적인 결투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존 포드는 공동체 내부에 스며든 어둡고 곤혹스런 문제들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해결해가는 과정을 외부의 적과의 단선적인 대결보다 더 중요하게 다룬다. 여기서 영웅은 한 명이 아니라 이중화되어 있다. 그 하나가 전통적인 관습을 중시하는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라면 다른 한 명은 리버럴한 독 할러데이다. 이 둘은 마을의 질서와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다툼을 벌인다. 이는 법보다 도덕이 앞서는 다툼으로 증오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우정과 연대를 위한 통과의례이다. 동부에서 온 아름다운 여인 클레멘타인과의 사랑 또한 이중화되어 있는데, 시간의 서로 다른 두 방향과 연결된다. 그것은 과거(예전 독 할러데이는 동부에서 그녀를 사랑했지만 이미 그녀를 두고 떠났다)와 미래(톰스턴의 교사로 정착한 그녀는 어프의 미래의 여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로 열려있는 시간의 이미지이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와이어트 어프는 막내 동생의 무덤가에서 묘비에 적힌 연도표기를 보며  짤막하게 한탄한다. ‘그래 18년을 살았구나.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떠났구나. 너 같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그런 마을이 될 때까지 여기에 있을 거란다.’ 어프의 다짐은 순수성을 지켜내겠다는 결의의 표현이다. 다시 무기를 손에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종종 이 장면의 비극적인 정서를 두고 2차 대전으로 인한 전쟁의 상처가 영화에 기입된 것이라 말해진다. 클랜튼 일가와의 전쟁이 끝난 뒤, 질서가 회복됐을 때 와이어트 어프는 학교의 새 선생이 된 클레멘타인에게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약속하고 다시 서부로 말을 타고 떠난다. 순수성과 미래의 희망을 간직한 클레멘타인은 떠나는 그를 저 멀리까지 쳐다본다. 역시 행복과 비애가 가득한 숭고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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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시네필의 선택: 정성일 평론가의 추천의 변   

첫 번째 (상황).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내건 슬로건은 ‘영년(zero year)’이었다. 그건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제로라는 무효의 선언.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 로셀리니가 영화 제목에 쓴 말. 그런 다음 고다르가 받아서 21세기에 반복했던 제목. 하지만 내게 그 의미는 다른 것이었다. 말 그대로 진공상태. 단지 길을 잃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는 텅 빈 상태였었고,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영화를 보았다. 너무 많이 보아서 어제 본 영화와 오늘 본 영화가 잘 구별되지 않았다. 종종 중간부터 보기도 하였고, 때로는 보다가 지쳐서 자기도 하였다. 나는 2008년 친구영화제에 슬픈 마음을 안고 마츠모토 토시오의 <수라(修羅)>를 백지수표에 썼다. 그때 내 상황은 비유 없이 아수라장이었다. 그 해 내내 준비했던 영화는 잘되지 않았다. 나는 할복자살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그 자리에 온 영화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아니, 그건 그냥 할복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마츠모토 토시오라는 칼. 단숨에 창자까지 꺼내 들 수 있게 잘 만들어진 섬뜩한 날. 먹물처럼 배어 나올 피. 유혈 낭자한 소개. 나는 친구들이 모인 파티를 피바다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는 않았다. 모두는 아니지만, 그 중 몇몇은 재미있게 보았다. 심지어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맙소사!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청하는 감사의 악수보다 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을까.


두 번째 (행동). 그 이듬해 다행히도 나는 친구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다. 영화를 찍었다. 그건 내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단지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나를 오해한 것이다. 나를 붙잡은 질문. 대답을 구하려는 간절한 노력. 내게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질문에 대답하는 활동이다. 말하자면 사랑의 다른 길. 훨씬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길. 생각이 미리 자리 잡기 전에 작업하면서 고정적이고 기계적인 개념을 부수는 방법. 내가 책에서 읽은 의심스러운 구절들. 우리는 책에서 읽은 상투적인 구절들과 싸워야 한다. 아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개념이 담긴 영화 책이라는 유리병을 세상 속으로 집어던져서 깨버려야 한다. 어떻게? 나는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가 배움을 향해서 간절하게 집어던지는 액션이다. 로셀리니는 세상 속에서만 영화는 배움을 청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싶었다. 차라리 내 존경을 실천하고 싶었다. <카페 느와르>는 나의 영화 액션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시간이 올 것이다. 미래의 관객이라는 기대의 지평.


세 번째 (선택). 나는 올해 열 편의 영화 제목을 썼다. 그중에서 세 편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 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혹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삼각형이 될 것이다. 대신 열 편을 고르면서 세운 원칙과 세 편에 대한 짧은 추억을 말하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하겠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소개하다니! 그런 건 그냥 교과서에 맡겨놓으면 된다. 여기는 교실이 아니다. 우리가 구출해야 할 영화. 영화를 착취하는 기계들. 교실. 멀티플렉스. 아마도 그런 곳에서는 소개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별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건 바보짓이다. 나의 호소. 우리는 영화를 소개하면 안 된다. 그저 그걸 보아야 한다. 보고 또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각자의 영화사를 창조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앙리 랑글루아의 목록에서 배웠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시간표를 매일매일 짜면서 그걸 작가별, 혹은 주제별, 또는 장르별, 배우별, 시대별로 구분되지 않게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는 슈퍼마켓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발명품 영화. 20세기의 타임머신.
 

변주곡, 혹은 엘레지. 김성욱 씨로부터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2010년 친구의 영화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이유는 여러분이 잘 아는 그대로이다.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정을 나눌 장소는 위기에 빠졌고, 아직 대안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예술과 정치의 수상쩍은 구별을 항상 의심한다. 물론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희생적인 노력 덕분에 우리는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영화를 보았다. 여기서 방점은 불행히도 ‘그 동안’이다. 하지만 이제 그 희생의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게 되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의 투쟁전선은 고작 해야 방안의 홈 씨어터인가?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한 당신의 저항은 불법다운로드인가? 우리가 믿는 정의를 옹호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행동을 결정해야 할 시간. 우리는 예술과 짝을 이루는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폭격. 점령구역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움직이기 시작하는 수수방관. 당신은 영화를 본다는 것 말고는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장소를 방어하기 위해서 (어떤 형식이건)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것은 다시 입장의 문제이다. 그리고 입장의 효과(와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유명한 1902년의 정식. “막대가 나쁜 방향으로 구부러졌을 때,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즉 곧게 펴기 위해서는, 우선 막대를 반대방향으로 구부려야만 하며 따라서 그것을 쥐고 튼튼하게 반대방향으로 잡아당겨야 한다.” 누가 결정을 내리는가? 결정의 내용을 아무리 따져보아야 거기에는 대답이 없다. 핵심은 결정을 바꾸는 것이다. 혹은 결정을 내리는 자리를 바꾸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곧게 펴기. 하지만 어떻게? 우리는 이제 흐릿해진 생각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세 편의 영화. 먼저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물론 이 영화는 ‘흡혈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연쇄극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어떤 버전이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될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아무 정보도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이번 영화제에서 진심으로 ‘공유’하고 싶다. 다소 무모한 말이긴 하지만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생애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물론 이 영화 제목은 내일 바꿀 수도 있다. 원래 ‘한 편의 영화’라는 건 그런 것이다. 나는 1993년 1월 마지막 토요일 클레르몽페랑의 파스칼대학 강당에서 밤 10시에 시작해서 밤새도록 상영된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처음 보았다. 그 전에 나는 이 영화를 책의 제목에서만 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홀렸다. 아니, 그냥 넋을 잃었다는 말이 맞다. 최면상태. 아름답다거나 훌륭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이건 위대하다거나 혹은 걸작이라는 말과는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결정이다. 그냥 영화 자체를 본 것 같았다. ‘아! 이것이 영화구나.’ 라는 탄식. 물론 그런 다음에도 쉬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놓친 영화들을 찾아보았고, 새로운 영화들을 보았다. 많은 복원판을 보았다. 추천작들도 보았다. 하지만 어떤 영화도 자기의 자리를 차지할 뿐 내게 지금 이것은 영화, 라고 선언하지 못했다. 나에게 영화는 결국 <뱀파이어>이다. 나는 내 믿음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거의 십 년이 지났을 때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뉴욕에서 보았다. 그때 결론을 내렸다. 나는 결국 이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치 내 평생의 연인이 릴리안 기쉬인 것처럼. 그때 이 결정에서 릴리안 기쉬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는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당신이 동의하건 말건 그건 내 관심이 아니다. 아마도 당신에게 영화라고 선언하는 또 다른 영화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놓고 경쟁할 생각이 없다. 다만 이 자리에서 내 사랑을 고백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고백을 통해서 당신에게 내가 친구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긴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서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사샤 기트리. 아직 단 한 번도 여기서 사샤 기트리의 회고전이 없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거의 이야기도 되지 않는다. 언제나 르누아르. 언제나 브레송. 언제나 고다르. 나는 사샤 기트리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친구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선택은 친구를 찾는 나의 애절한 호소이다. 우리가 우정을 나누는 방식. 나는 사샤 기트리가 장 르누아르나 브레송만큼은 아니지만 마르셀 카르네나 줄리앙 뒤비비에보다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장 콕토보다 본질적으로 시적이다. 사샤 기트리가 없었다면 장 으스타슈가 가능했을까. 앙리 랑글루아는 훨씬 더 확신을 갖고 프로그램을 썼다. “사샤 기트리는 미조구치 겐지, 빈센트 미넬리, 더글라스 서크, 로베르토 로셀리니처럼 중요하다. 이 말은 이상하다. 그렇다. 사샤 기트리는 영화사에서 그렇게 이상한 자리에 있다.” 내가 사샤 기트리를 처음 본 곳은 프랑스 문화원이었다. 그때 나는 사샤 기트리의 중요함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보던 친구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세대를 건너뛰어 이제 다시 당신에게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사샤 기트리의 영화를 한 편 보고 그를 잘 알게 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내 꿈 중의 하나는 살아생전 사샤 기트리의 전작 회고전을 보는 것이다.


세 번째. 카르멜로 베네를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였다. 파솔리니는 경외감을 안고 베네를 ‘나의 위대한 동지’라고 불렀다. 그 다음은 고다르이다. 고다르는 베네의 영화를 본 다음 달려가서 로마에서 그의 연극 무대를 보았다. 질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에 관해서 한 권의 책을 헌사 했다. 하지만 시네필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를 말하면서 연극에 한정 지어 설명한 것은 좀 의외이다.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에게 바친 한 권의 책 『중첩』은 들뢰즈의 유일한 연극에 대한 책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다음 영화에 관한 두 번째 책 『영화 2; 이미지-시간’의 제 8장 ‘영화, 신체, 그리고 뇌, 사유』에서 짧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가 이미지-수정체를 건설한 가장 위대한 시네아스트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 다음 들뢰즈는 여기서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알랭 레네, 장-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 그리고 미래의 민중영화를 이야기한다. 카르멜로 베네의 위치. 나는 좀 더 많은 카르멜로 베네의 영화를 보고 싶다.


인사. 그렇다. 우리는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더 많은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우리들의 두 번째 십 년. 우리들의 21세기의 두 번째 시작. (정성일_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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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문화학교서울이 주최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에릭 로메르 회고전'

시네필의 전당, 영화박물관, 영화도서관이라 불리는 시네마테크.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와 말을 나누고 픈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즐기며, 배움을 얻고 있다. 손쉽게 다운받아 홀로도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지만 극장에서 영화의 원판인 필름을 많은 이들과 함께 체험한다는 것은 비단 영화문화를 향유하고픈 욕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많은 시네필을 설레게 하고 경이로운 순간을 맛보게 했으며,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시네마테크. 어떻게 만들어져 지금에 이르렀을까? 길게는 20년, 짧게는 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연대기별로 살펴본다. <편집자>


민간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되어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전신은 지금으로부터 근 20년 전인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비디오테크부터 출발해 영화사 100주년을 기념하며 전국시네마테크연합이 창립되었고, 2002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사단법인 인가를 받고 발족한 이후 서울아트시네마는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공간을 대관해서 수많은 회고전과 특별전을 진행해왔다. 그렇게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나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안정적인 공간 확보의 어려움을 매번 겪고 있다. 2004년 재임대 계약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서울아트시네마는 존폐위기를 맞았고 2005년도에 결국 안국동 시기를 마감했다.

 

그리고 현재 위치하고 있는 낙원 허리우드극장으로 옮겨오면서 서울아트시네마는 다시 전용관을 마련했다. 하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기획된 여러 회고전을 진행하지 못했던 적도 적지 않다. 하여 2006년 1월엔 시네마테크 지원을 결의해주었던 다수의 영화감독들이 주축이 되어 처음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라는 것을 기획하게 되었고 그게 어느덧 2010년 5주년를 맞았다. 하지만 영화인, 관객 할 것 없이 시네필들의 물질적, 정신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 시네마테크는 여전히 공간을 찾아 헤매야 하는 실정이다. 시네마테크 부산의 경우 창립 때인 1999년부터 전용관으로서 역할을 다해왔지만, 서울은 아직도 안정적인 전용관 마련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2010년 국내 내로라하는 감독, 배우 등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현재는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까지 발족했다.

 

영화의 도서관, 시네필의 성지라 불리며 쓰러지지 않고 버텨온 현재의 시네마테크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역사가 녹아들어 있는 곳이다. 숱한 위기의 순간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애를 썼고 그 중심에는 영화문화를 마음껏 향유하고 싶은, 이곳에서 위안과 배움을 얻는 관객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아니 가족처럼 다가오는 시네마테크가 영원히 꺼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굳건히 서길 바라며, 그간 시네마테크가 걸어온 길, 그 역사적 순간들을 연대기별로 되돌아본다. 시네마테크의 진화는 계속되어야하기에.  


ㆍ1991. 5 


문화학교 서울, 서울 사당동에서 '새로운 영화읽기의 제안'이라는 모토 하에 비디오테크로 출범

√ 다양한 국가와 장르의 영화들을 소개하고 시네마테크 구축과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 생산

√2000년까지 180여 회의 영화제와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의 토론 프로그램 진행 및 30여 권의 자료집 발간

 

ㆍㆍ1995

√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영화 백년사를 정리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발간

‘전국시네마테크연합’ 결성


ㆍㆍㆍ1999

3월 ‘아시아 감독 3인전- 차이밍량, 이시이 소고, 홍상수’ 개최 (문화학교 서울, 아트선재 공동주최)

 
ㆍㆍㆍㆍ2000

11월 ‘오슨 웰즈 회고전’ (서울 시네마테크 주최)

12월 ‘루이스 부뉴엘 회고전’ (문화학교 서울 주최)

 



ㆍㆍㆍㆍㆍ2001

1월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서울 시네마테크 주최)

7월 ‘에릭 로메르 회고전’ (문화학교 서울 주최)

8월 ‘영화사 강의’ 진행 (서울 시네마테크 주최)

 
ㆍㆍㆍㆍㆍㆍ2002

1월 25일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발족

4월 11일 사단법인 인가(문화관광부)

5월

√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개관(소격동 아트선재센터) & 개관기념 영화제 개최 (오손 웰즈 <시민 케인>, 베르히만 <외침과 속삼임>, 트뤼포 <400번의 구타> 등 상영)

6월

√ 제2회 포르투갈 영화제 (올리베이라 <언어와 유토피아>, 마누엘라 비에가스 <찬미> 등 상영)

√ 라틴 아메리카 영화제 (오스카 블랑카르떼 <미네르바의 여행>, 살바도르 아귀레 <방황> 등 상영)

 

ㆍㆍㆍㆍㆍㆍㆍ2003

2월 문화학교 서울 ‘영화사 강좌’ 개설

6월 10일 심포지엄 ‘시네마테크는 지금’ 개최

(예술영화의 수입 및 배급과 관련한 문제, 영상자료원의 필름 보관, 시네마테크 활동의 현황 및 대안, 지역 네트워크 활성화 등의 문제 논의. <시티즌 랑글루아 Citizen Langlois>(에드가르도 코자린스키) 상영)

 

ㆍㆍㆍㆍㆍㆍㆍㆍ2004

2월 최양일 회고전 (최양일 감독 방한, 감독과의 특별대담 진행)

2004년 처음 개최된 '구로사와 기요시 회고전'에 맞춰 방한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3월

√ 구로사와 기요시 회고전 (구로사와 기요시 방한, 감독과의 특별 대담 및 강연회 진행)

√ 프랑스 아방가르드: 장 앱스탱, 장 비고, 장 콕토 회고전 개최, 무성영화 라이브 연주 상영

5월 ‘기억의 영화들’ 서울아트시네마 개관2주년 기념 영화제: ‘시네필의 향연’ 개최

(장 르누아르의 <시골에서의 하루>, 하워드 혹스와 빈센트 미넬리, 고다르와 클레르 드니의 90년대 작품 상영)

6월 “시네마테크는 지금” 심포지엄 개최

(아트선재센터로부터 2005년 2월 건물임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게 됨)

8월 26일

√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영화인회의를 포함한 12개 단체에서 서울아트시네마 폐관 위기와 관련하여 ‘서울아트시네마는 중단 없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성명서 발표

9월 새로운 영화의 첫 번째 만남, ‘CINE-Rendezvous’

(할 하틀리 <인생전서>,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안녕 나의 집>, 브루노 뒤몽 <휴머니티>, 고레에다 히로카즈 <환상의 빛> 상영)

낙원상가 건물로 이주하 처음 열린 재개관 영화제'시네필의 향연'

12월 ‘시네마테크를 말한다-일본 커뮤니티 시네마의 사례’ 토로회 개최

(극장 이전을 포함한 한국 시네마테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논의. 일본 문화청 문화부장 데라와키 켄의 강연)

 




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5

1월 시네클럽 ‘카페 뤼미에르’ 출발

(5회에 걸쳐 ‘일본 영화의 역사와 미학’에 대한 강연 진행 및 영화 나카히라 코우 <미친 과실>, 이마무라 쇼헤이 <일본 곤충기>, 신도 가네토 <벌거벗은 섬> 등 상영)

소격동 시절을 마감하는 마지막 회고전 '라이너 베르어 파스빈더 회고전'

3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회고전’

(3년 간 800여 편을 상영했던 서울아트시네마의 안국동 시기 막 내림)

4월 4일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낙원상가((구)허리우드 극장)로 이전

√ 재개관 특별영화제 ‘시네필의 향연’ 개최

(G.W. 파브스트 <판도라의 상자>, 로베르 브레송 <불로뉴 숲의 여인들>, 하워드 혹스 <리오 브라보>, 알프레드 히치콕 <싸이코> 등 상영)

5월 한국영화 정기 프로그램 ‘한국영화, 과거 속의 미래’ 시작 (연간 6회)

7월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해방 60주년, 광주혁명 25주년 기념 ‘영화와 혁명 특별전’

(60-70년대 일본 언더그라운드 영화들과 68혁명기의 프랑스 영화, 광주혁명을 다룬 영화 상영 & ‘영화와 혁명’이라는 주제로 일본과 한국의 영화평론가와 액티비스트들(히라사와 고, 조영각, 김성욱, 김곡)이 참가하여 심포지엄 개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에 참석한 허우 샤오시엔과 차이밍 량 감독

9월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허오 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차이밍 량’

(방한한 허오 샤오시엔, 차이밍 량의 마스터 클래스 및 대만 뉴웨이브 심포지엄 개최)

12월 쇼치쿠 110주년 기념, ‘일본영화: 계승과 혁신’ 영화제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과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공동 주최, 오즈 야스지로의 초기 무성영화부터 시미즈 히로시, 기노시타 케이스케, ‘쇼치쿠 누벨바그 3인(오시마 나기사, 요시다 기주, 시노다 마사히로)’ 등 상영 및 강연)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6

1월 ‘제1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최

(감독, 평론가, 배우 등 영화인들이 소개하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자는 의미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오승욱 감독 등이 시네마테크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시네마테크의 중요성을 피력함)




2월 ‘스크린쿼터 축소’와 관련한 성명서 발표

3월 ‘독립영화: 김종관의 영화작동법’ 시작

6월 흥미로운 테마의 독립영화 최신작을 선정, 상영하는 ‘금요단편극장’ 시작

7월 개관 기념 영화제 ‘시네필의 향연’을 대중적으로 확대하여 ‘제1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감독들의 연출 특강,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키드’, 음악과 함께하는 ‘필름콘서트’ 등도 진행)

9월

√ 영화상영회에 관심있는 지역일꾼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상영교육 실시

√ 청소년 대상의 교육프로그램 ‘영화관 속 작은 학교’ 실시

√ 예정했던 ‘미조구치 겐지 회고전’이 재정적인 문제로 취소

10월

√ 시네마테크의 문화적인 소명 및 재정적인 어려움 등을 논의하기 위한 ‘시네마테크 관객 토론회 ‘시네마테크를 영화의 집으로!’ 진행

√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계획 추진과 관련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함께하는 영화문화 활성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 진행

11월 시네마테크 부산과 함께 추진했던 ‘마르셀 카르네 회고전’ 재정적인 문제로 취소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7

2007년 서울아트시네마를 다시 방문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봉준호 감독

1월

√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제2회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 개최

(김기영 및 빌리와일더 특별전을 포함 23편의 영화 상영. 구로사와 기요시 방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학교’ 진행)

√ ‘서울아트시네마의 5년의 기억’-사진전 개최

√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기금마련을 위한 미술전 개최(갤러리 아트싸이드)

4월 씨네21, 아름다운 재단,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공동주최로 ‘아름다운 영화 상영회’ 시작

6월 ‘오슨 웰즈 특별전’

(오슨 웰즈 아카이브 디렉터 질리언 그레이버 방한, 특별 강연 및 관객과의 대화 진행)

7월 ‘제2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미이케 다카시 특별전, 한국 영화 속 서울 풍경과 역사를 회고하는 기획전 진행 및 자크 리베트의 <아웃 원> 상영)




10월 ‘애니충격감독열전 인 서울아트시네마’ 개최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8

(위)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자회견 (아래) '창호 감독 특별전' 개막행사

1월 ‘제3회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시네마테크의 새로운 영년’ 개최

(이두용 특별전 및 아벨 페라라 특별전 등 총 29편의 영화 상영)

2월 영진위에서 2008년 신규사업의 일환으로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 발표

(80억; 2~3년에 걸친 총 사업비 250억)


7월

√ ‘제3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 ‘필름 라이브러리’ 사업의 첫 시작으로 ‘세르지오 레오네 컬렉션’ 소개

√ ‘일본영화걸작 정기 무료 상영회’ 시작 (일본국제교류기금,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공동주최)

10월

√ 수포로 돌아간 복합상영관 건립

(연합뉴스에 「영진위 ‘다양성영화 전용관’ 내년 예산확보 실패」 라는 기사 보도. 영화진흥위원회 측은 ‘복합상영관 건립’ 사업의 본질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고, 단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편의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예산을 늘려 부가 기능들을 확충하고자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해명함)

2008년에 열린 '촬영감독 유영길 특별전'의 개막 행사

 

12월

√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사업 추진 불가 판정

(영진위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사업’은 2008년 예산불용사유 등의 이유로 추진 불가하다고 발표하고 2008년에 불용된 120억 원의 예산은 다시 영화발전기금으로 환원됨)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09




1월

√ ‘제4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최

(시네마테크 라이브러리 및 아카이브 구축사업 전개, 시네마테크 네트워크 사업 강화, 시네마테크의 공간성 확보 방안 마련, 활동의 공공성 강화라는 2009년 서울아트시네마 사업 계획 발표)

√ ‘영화의 고전과 미래의 시네마테크’,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긴급 토론회-시네마테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의 포럼 진행

2월

2월 2일 영진위 2009년 3월부터 시네마테크 지원 사업을 공모로 전환한다고 한시협에 1차 통보

2월 11일 영진위로부터 2009년 2월로 시네마테크 사업이 종료되고 3월부터 공개 공모 절차를 통해 업무위탁사업자 선정을 추진할 예정임을 일방적으로 재통보

2월 27일 시네마테크 지원사업의 공모 전환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 진행

3월

√ 시네마테크 지원사업 공모 전환 통보에 따른 ‘지원사업 공모 전환 반대 성명서’ 발표

√ 서울아트시네마 CMS 후원회원 1천 명 모집 캠페인

(‘시네마테크 필름 라이브러리 무료 상영회’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아카이브’ 영화 9편 상영)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한 영화인들의 사진전

8월 제4회 시네바캉스 서울’ 개최

(‘B급 장르영화의 거장: 돈 시겔 특별전’을 비롯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특별전’ 등 진행. 4회의 ‘영화사 강좌’와 시네토크, 하퍼스 바자의 사진전)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2010

1월 제5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진행 중

1월 15일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





(정리: 우혜경_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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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씨네필 2010.01.26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저기 1999년 '아시아 감독 3인전'때부터 함께 하고 있었네요. 98년에 문화학교 서울에 다니기 시작했구요. '아시아 감독..'때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때 영화제에 온건지 아트선재센터에 온건지 고현정이 왔었어요. 저는 당시 고현정의 팬이었기 때문에 고현정을 따라가서 사인을 받았거든요. 근데 그때 고현정이 정용진과 결혼해서 얼마 안되었을 때라 임신하고 있었는데 제가 "결혼 생활은 어떠세요?" 뭐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고현정이 "배도 보여드릴까요?"하고 재치있게 응수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그 사인을 잃어버렸어요 ㅠ 연대기를 쭉 보고 있으니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나고 뭔가 애틋하네요..
    99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모든 회고전에 참여를 했지만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회고전 단 하나만 뽑자면 전 '칼 드레이어' 회고전을 뽑겠습니다. 그때 영화사를 수놓은 칼 드레이어의 주옥같은 걸작들을 보면서 더 이상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었죠. 드레이어의 영화로 시네마의 어떤 경지를 보았다는 생각에 포만감을 느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이후로 칼 드레이어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 10인 안에 속하게 되었고 드레이어의 <오데트>는 개인적으로 영화사상 베스트 10 목록에도 올리게 되었어요. 드레이어의 유작인 <게르트루드>가 사실 더 대단한 작품이긴 하지만 신앙적인 이유로 <오데트>를 더 좋아합니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오데트>가 상영되는 것은 저에게 무척 반갑고 뜻깊은 일인 것 같아요. 그 영화를 제가 제일 좋아하는 홍상수 감독님이 추천하신 것도 기쁘구요. 개인적으로 이번 상영때 <오데트>가 꼭 매진이 되어서 이 영화의 진가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전에 상영할 때는 매진은 되지 않았거든요. 특히 믿음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크리스챤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결론: 시네마테크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합니다!

  2. 노는 건달 2010.01.28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윗 분도 쓰시기는 했는데 '아시아 감독 3인전'은 제 기억이 맞다면 1999년이 아니라 2000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책상에 그 때 관련 자료가 있는데 딴 방에 있어서... :)

    제가 선재에 영화보러 첨 간 것이 99년 가을 이었고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그 후에 00년에 아시아 감독 3인전 보러 갔었어요

    그 때 이시이 소고도 왔었던 것 같고 챠이밍량도 왔었었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올해로 벌써 5주년을 맞았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재정적 후원과 전용관을 확보하기 위해 2006년 처음 1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린 이래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배우, 평론가들이 참여해 매년 1월 한 해를 시작하는 최고의 영화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5년간의 기록을 5개의 키워드로 살펴본다.(편집자)





Amies 친구들

2006년 '제1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9명의 친구들이 함께 했다. 5명의 감독과 (박찬욱, 김홍준, 김지운, 류승완, 오승욱) 2명의 평론가(김영진, 정성일) 그리고 2명의 배우가(문소리, 황정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모임이 결성되었고, 박찬욱 감독이 대표를 맡아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직접 선정한 영화를 관객과 함께 관람하고 영화상영이 끝난 후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초기의 활동에 더하여 최근에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많은 영화인들이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2008년 복합상영관 사업이 좌초된 후 외부의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실시하려는 시네마테크 사업자 공모제에 만약 서울아트시네마가 탈락한다면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자격을 잃고 극장 임대료 등을 지원받지 못하게 된다. 만성적자와 낡은 설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성지로 8년을 외롭게 싸워 온 서울아트시네마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   

짐작컨대 서울아트시네마를 둘러싼 상황이 좋았다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은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는 영화인들의 모임을 넘어서 영화를 사랑하고 서울아트시네마의 활동을 옹호하는 모든 이들의 이름이 되어 가고 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역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데 모이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을 부당하게 위협하는 상황이 ‘애호’를 ‘옹호’로 그리하여 실천적인 ‘운동’의 형태로 변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영화제가 계속 되면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모임에 참여하고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원하는 영화인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아트시네마를 돕는 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




'2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48명의 미술인들이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기금 마련을 위해 인사동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미술전을 개최했고, 3회 영화제에서는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는 캠페인에 참여한 100인의 릴레이 글을 전시하는 ‘서울아트시네마 후원릴레이 100인’전이 열렸다. 4회 영화제에서는 이나영씨를 포함한 배우들의 후원 모임인 ‘시네마엔젤’이 후원 기금으로 구매한 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 프린트를 시네마테크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다. 문화예술계 인사들만이 아니라 일반 관객이 후원 회원에 가입해서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원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영화의 친구들이 계속 늘어나서 우리의 시네마테크를 지켜 주리라 믿는다.  

Break 공간의 좌절




영화를 보는 것이 개인적인 행위로 생각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PC와 PMP, 휴대폰 등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라는 명제는 철 지난 유행어가 되었다. 때문에 신작영화도 아닌 고전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의 존재가 꽤나 신기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의 매력은 무엇일까?

거의 개봉작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일반 극장과 달리,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은 고전영화나 예술영화가 주를 이룬다. 시네마테크를 방문하는 관객들 사이에 조성된 어떤 유대감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멀티플렉스에서는 접하기 힘든 영화들을 보기 위해 부러 낙원동을 찾은 관객들은 다른 익명의 관객들에게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는 것 같다. 애써 고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혼자만이 아니라는 그런 감정 말이다. 실제로 이름을 모르는 낯익은 얼굴과 자주 마주치기도 한다. 서울아트시네마의 매력 중 하나는 일회적인 만남에 그치는 일반 상영관과는 다른 만남의 장소이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서울아트시네마는 다양한 문화 사업을 실천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교육 프로그램과 관객들과 함께 하는 영화강연, 소외계층과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인 영화․ 희망․ 나눔 영화인 캠페인 상영회 등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영화만 상영하는 극장이 아니라 영화를 배우는 교육의 장으로, 강연을 통해 영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배움의 장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영화를 매개로 소통하는 역동적인 가능성의 공간이 시네마테크인 것이다.

모순되게 들리지만, 시네마테크의 운영에 어려움을 주는 문제 역시 공간이다. 시네마테크가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낙원동 허리우드 극장으로 이전하면서 관객의 수가 아트시네마의 운영에 타격이 될 정도로 큰 폭으로 줄었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종종 듣는다.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는 정독도서관을 방문한 학생이나 데이트를 목적으로 나온 사람들도 접근하기 쉬운 지리적인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허리우드 극장은 위치상 영화 관람이 목적이 아닌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고립된 공간이기 때문에 이전과 동시에 관객의 수가 급감하는 결과가 발생했다.





아트선재센터의 재계약 불가 통지를 받고 불가피하게 허리우드 극장으로 이전한 후 겨우 자리를 잡기 시작한 낙원동의 공간마저 영진위의 공모제 사업 추진으로 인해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시네마테크의 안정적인 공간 확보는 이제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다행히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2010년 1월 발족했고, 5회를 맞는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역시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활동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아낌없는 지지와 동참일 것이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활동과 더불어 서울아트시네마는 현재의 공간에서도 공간과 관련된 활동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라는 슬로건 아래 치러진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사진전이 열렸다. 이 사진전에서는 허리우드 극장에서 촬영한 영화인들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로비에 전시된 사진들은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하는 관객들은 물론 허리우드 극장을 찾은 이들의 시선을 끌면서 영화의 집인 서울아트시네마라는 공간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촉매가 되고 있다. 
 
Choice 선택




서울아트시네마는 참신한 기획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2008년에는 고(故) 유영길 촬영감독의 영화세계를 조명하고 그를 회고하는 촬영감독 유영길 특별전을 개최했고,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간에는 박찬욱 감독과 오승욱 감독이 직접 프로그래머로 참여해서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악당이 등장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최선의 악인들’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 중에서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인들의 감수성과 영화적 안목을 증명하는 신선한 작품들을 주로 선택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 중 가장 열띤 반응을 이끌어낸 영화는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이 아닐까 싶다. 2007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을 때, 객석을 장악한 것은 일종의 열기였다.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 사이에서는 어떤 흥분이 느껴졌던 것 같다. 온라인에서도 한동안 <그림자 군단>을 둘러싼 논의들이 뜨겁게 진행되었다. 개봉 당시, 프랑스 평단으로부터 좋지 않은 평을 받았고,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는 어림잡아 1/3이 잘려나간 이 비운의 영화는 2007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를 통해 비로소 145분 완전판으로 관객들과 조우하는 데 성공했다.

<그림자 군단>처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선택되는 영화들은 일정 부분 아웃사이더와 같은 면모를 가진다. 뛰어난 감독의 작품이지만 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대표하는 영화가 아닌 작품들, 혹은 후대의 영화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다른 감독들에 비해 그 영향력이 가려진 감독들의 영화들. 물론 누구라도 의심하지 않는 걸작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고전영화도 함께 상영한다. 그러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유명한 걸작과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상영한다면 왠지 낯선 영화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분이 든다. 숨겨둔 비장의 무기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정성일 평론가는 200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수라>의 상영에 앞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모두에게 걸작으로 손꼽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애정이 가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는 그것을 취향의 영화라고 부르며, 친구들 영화제에서 영화를 고를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지는 한 앞으로도 계속 취향의 영화를 선택할 것이라고.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취향의 영화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친구를 넘어서 동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가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의 선택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야말로 취향의 영화들을 선택하는 영화제가 아닐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선택된 영화들이 다른 영화제에서 선택된 영화와 어떻게 다른지 한 번 즘은 따져 물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훌륭한 작품들을 선택했고 앞으로도 그 선택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Discovery 발견




서울아트시네마에 가면 아주 특별한 영화들을 볼 수 있다. 러닝타임이 12시간이 넘는 자크 리베트의 역작 <아웃 원>을 이틀에 걸쳐 상영하는가 하면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비운의 걸작 <탐욕>을 배경음악 하나 없는 완전한 무성으로 상영한다. 욕망이 추동하는 심리적인 웨스턴의 세계를 보여주는 안소니 만의 서부극과 곡예에 가까운 버스터 키튼식 액션 개그, 멜랑콜리한 멜빌의 프렌치 느와르에 이르기까지 서울아트시네마는 우리에게 낯선 작가들을 발견하고 재조명하는 역할을 해왔다.

서울아트시네마의 다음 프로그램이 항상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은 영화사에서 버려진 작가들을 발굴하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예리한 감식안 때문일 것이다. 특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인과 서울아트시네마의 협업(?)을 통해 선별된 작품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리라는 관객의 기대감이 더욱 커진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놓친 영화들 때문에 쓰린 속을 달래거나, 스크린으로 볼 수 없으리라 단언했던 영화가 상영된다는 놀라움에 탄성을 지른 관객들의 숫자를 과연 제대로 헤아릴 수나 있을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리고 발견의 기쁨을 선사하는 영화제이다.




물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기다리는 이유로 영화의 친구들과의 만남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의 친구들에게서 영화에 대한 배움을 얻는 과정은 그들과의 만남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작품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 된다. 이러한 발견이 가능한 곳이 시네마테크이며 이 점에서 시네마테크는 일반적인 극장과는 다른 위상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발견’이라는 키워드는 특정한 영화의 개인적인 발견만이 아니라 시네마테크의 역사적인 사명감도 설명한다.





오승욱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입을 모아 걸작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두용 감독의 <해결사>는 앞서 언급한 이두용 감독 특별전에서도 상영될 수 없었다. 프린트는 물론 네거필름도 없는 상태이고 시나리오와 심의대본만이 영상자료원에 한 권씩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해결사>는 볼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영국에서 출시된 DVD가 있지만 양쪽 화면이 잘리고 영어로 더빙된 DVD로 <해결사>의 명성을 확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두용 감독 특별전이 <해결사>의 프린트 복원에 대한 동의를 끌어낸 것처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소실된 영화들의 발견이라는 과제를 항상 우리에게 던진다. 사라진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발견하는 영화박물관으로 시네마테크의 존재는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야만 할 것이다.  

Encounter 만남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와 관객, 혹은 영화인과 관객이 교류하는 만남의 장이다. 일반 상영관에서 만나기 어려운 영화들이 관객과 만나는 자리이자, 영화를 사랑하고 근심하는 영화인이 관객과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공간이 바로 서울아트시네마이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차이밍량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마련된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와 같은 굵직한 행사를 포함해서 다양한 영화 축제가 연중 열리는 곳 역시 서울아트시네마이다.

특히 서울아트시네마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인과 관객에게 한층 더 넓은 만남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감독과 평론가를 비롯한 영화인들이 선정한 애정 어린 작품들을 관람하고 그들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관객들은 현장의 영화인에게 다가가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관객과 영화인이 서로에게 말을 거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매우 특별하고 차별화된 영화제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방식의 영화제는 지금까지도 쉽게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출발은 2005년에 열린 ‘시네필의 향연 : 서울'아트시네마 재개관 특별영화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원상가로 보금자리를 이전하면서 관객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영화사의 걸작을 상영한 재개관 특별영화제는 다음 해인 2006년부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와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로 나뉘어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여름과 겨울을 매년 충실히 채워주고 있다.

2006년 처음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기획되었을 때 참여한 영화인은 9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그 규모가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200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전년도에 비해 기간도 길어지고 작품의 수도 대폭 늘어났다. 참여하는 영화인의 숫자 역시 크게 늘어났는데, 이때부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소수의 젊은 영화인들이 참여하는 영화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원로 영화인들까지 함께 하는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하녀>, <이어도> 등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을 소개하고 <이어도>의 배우 이화시씨와 관객의 만남을 주선한 김기영 감독 특별전은 과거의 영화를 발굴하고 원로 영화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의지를 보여준다. 또한 시네마테크의 해외 친구로 초청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관객과 나누는 의미 있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2008년을 맞아 시네마테크의 ‘새로운 영년’을 선포하며 시작된 제3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이두용 감독의 특별전이 열렸다. 시네토크와 마스터클래스 등의 행사에 참여한 이두용 감독은 그의 영화를 처음 보는 젊은 관객들의 질문에 열정적으로 답하며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개봉 당시 50여분이 삭제되었던 <최후의 증인>이 특별전을 통해 154분 버전의 원래 모습으로 상영된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비록 감독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아벨 페라라 감독과 같은 세계적인 영화인들까지 참여하는 국제적인 행사로의 발전 가능성도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제 상당수의 관객들이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영화의 친구들이 선정한 영화들을 손꼽아 기다린다. 부산과 전주로 걸음을 옮기던 사람들이 코트의 깃을 세우고 비좁은 낙원동의 골목을 종종 걸음으로 서둘러 온다. 영화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영화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계속 되는 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방문은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다. (홍성원: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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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olly 2010.01.22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영화제들이 넘쳐나지만 '친구들 영화제' 만큼 각별한 느낌으로 보내는 영화제도 없는 거 같아요.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 빨리 시네마테크가 안정된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두번째 키워드 만큼은 새로 쓰게 되길 빌어요 !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①     
 
새해가 밝아오고 찬바람이 극성을 부릴 때 즈음 항상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는 등불을 밝히고 관객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영화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선택한 영화들을 보러 오기 위해 관객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들의 목록을 기다린다. 올해로 5주년을 맞은 ‘2010년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에 상영될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선택작은 총 13편이다. 영화감독과 배우, 그리고 평론가로 이루어진 올해의 친구들이 선택한 13편의 영화 중 5편의 영화와, 관객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관객들의 선택작 2편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불온하고 기괴한 기운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 <쳐다보지 마라>와 <서바이벌 게임>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설명하는 심령 호러물이다. 영국의 추리작가 다프네 드 모리에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영적 체험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시종일관 시간을 거스르는 영화의 이미지들은 원작을 뛰어넘을 정도의 음습한 공포를 유발한다. 특히 극 중 부부로 설정된 도널드 서덜랜드와 줄리 크리스티의 안정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광기 넘치는 연기는 영화의 모토가 되는 초자연의 세계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더욱 확고하게 굳혀준다.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은 2대의 카누만을 이용해 댐공사로 인해 침몰되기 직전의 지역을 탐험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그의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을 거두기도 했던 작품이다. 제임스 디키의 소설을 영화화한 <서바이벌 게임>은 인간의 생존 투쟁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광활한 자연을 적절히 활용한 작품이다. 액션과 어드벤쳐 무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건국과 개발이라는 이면에 놓인 인간의 횡포를 효과적으로 파헤쳐낸 정치적인 영화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쳐다보지 마라>와 <서바이벌 게임>은 서로 다른 주제와 공간 속에서 풀어지는 이야기들이지만, 이 영화들이 주는 잔혹함은 웬만한 공포영화를 뛰어넘는 영화다. 주목할 것은 두 영화 모두 특정 사건이나 인물로 인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섭게 전환되는 것을 잡아낸다는 것이다. 정적인 장면들로만 구성되어진 <쳐다보지 마라>와 평화롭고 잔잔한 자연을 비춰주며 시작되는 <서바이벌 게임>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앞뒤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긴장을 선사한다.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추론해볼 수 있는 재미가 넘치는 기괴한 영화들이다.

충만한 B급 영화의 기운, <디바인 대소동>


음탕함의 제왕’, ‘쓰레기의 제왕’이라 불리는 존 워터스는 각종 사회적 문제들을 일으키며 문제시되어왔던 B급 컬트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감독이다. 가는 곳마다 물의를 일으켰던 감독이었던 존 워터스의 <디바인 대소동>은 전작 <핑크 플라밍고>와 함께 그의 최고작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아름다움과 명성에 집착하는 던 데븐포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적나라하게 비튼다. 주인공 던 데븐포트는 B급영화애호가들이 열렬하게 환호하는 존 워터스의 페르소나 디바인이 열연했으며, 그녀의 주변에는 섹스, 강도, 살인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끊임없이 돌아간다. 극 중 디바인이라는 캐릭터와 그녀의 외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화는 탐욕과 음란함의 정점을 시각화한다.

영화에서 소개되는 온갖 도착적이고 광기 넘치는 범죄들이 더 이상 전진할 곳이 없다 생각되는 바로 그때, 존 워터스는 관객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지속적인 비윤리의 충격으로 인해 한껏 마음이 무뎌진 관객들은 단순 난잡한 B무비가 아닌 신선한 블랙코미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철저한 미국식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는 존 워터스의 말처럼, <디바인 대소동>은 일그러진 미국사회에 관한 비판도 빼놓지 않고 있다. 저급 키치아트의 애호가 혹은 존 워터스의 전작 <핑크 플라맹고>의 후일담이 궁금하다면 반드시 관람해야 할 영화다. 

1970년대의 가장 실험적인 걸작을 만나다, <엄마와 창녀>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내놓으며 데뷔했던 장 으스타슈는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감독이었으며 실제로 가난한 삶을 살았다. 장 으스타슈에게 영화를 찍는 것은 항상 자본과 투쟁하는 것의 연속이었으며 그는 가공된 이야기들보다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을 원했다. 1973년에 제작한 영화 <엄마와 창녀>는 장 으스타슈의 대표작인 동시에 스크린을 통한 그의 실험정신이 얼마나 철학적이고 심도 깊은 것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엄마와 창녀>는 프랑스 68혁명 이후의 공황을 알렉상드르라는 젊은이에게 투영시켜 보여준다. 영화는 하루를 때워나가기에 바쁜 한량인 알렉상드르와 그의 주변에 위치한 두 여인에 관한 농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롱테이크도 서슴지 않는 영화는 놀랍도록 현실적이고 차갑다.

<엄마와 창녀>에서 주목할 것은 약 4시간에 달하는 긴 시간동안 쉴 새 없이 흐르고 넘치는 대사(텍스트)들로, 주인공 남녀의 입에서 쏟아지는 진한 농담들은 시대를 비판하며 사회를 정면으로 조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라 생각될 정도로 사실적인 장 피에르 레오와 베르나데트 라퐁 등의 연기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온전히 언어의 유희와 텍스트만으로 스크린을 지배한 <엄마와 창녀>는 1970년대의 최고걸작이라는 수식어에 저절로 동의하게끔 만드는 마력을 가진 영화다.

시네마테크에서 만나는 오즈 야스지로의 따듯함 <동경이야기>


<동경이야기>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대표작이다. <동경이야기>는 ‘평범’이라는 단어로 인해 제한되거나 보편화되어버리는 개개인 삶의 이야기를 서정적이고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로 일상적인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오즈 야스지로는 영화의 다다미숏을 통해 낮고 단조로운 시선에서 일관적으로 흘러가는 모든 것들을 관찰한다. 때문에 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은 극 중 인물들에 동화된다는 느낌보다 영화에 초대되어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손님 같은 느낌을 받는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진 위치에서 영화의 인물들을 보게 되는 관객들은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사색적인 분위기에 매료된다.

독특한 기교 없이 화면을 잡아내지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철저하게 구성되어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옷가지나 가방, 책장은 별다른 사건 없이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뿐이지만 이러한 소품들은 그의 영화에 회화적인 연출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반복되는 인물들의 대사나 흘러가는 구름을 지긋이 잡아내는 오즈 야스지로의 카메라는 쉽게 지나쳐가는 수많은 대상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다. 익숙함 뒤에 찾아오는 사라짐의 시간들이 더욱 가혹하고 애처롭게 느껴진다는 것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서술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는, 꾸밈없는 시선으로 인생의 교훈을 건네는 아름다운 영화인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네필들에게 결코 잊지 못할 마음 속 고전으로 자리 잡는 작품이다.

관객들의 선택: 다시 보고 싶은 무성영화 <어셔가의 몰락>과 <항해자>


올해 투표를 통해 선정된 관객들의 선택작인 장 엡스탱의 <어셔가의 몰락>과 버스터 키튼의 <항해자>는 모두 1920년대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로 고전을 회고하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들이다. 에드가 엘런 포의 소설을 완벽하게 각색했다는 찬사를 받는 <어셔가의 몰락>은 아방가르드 예술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었고. <항해자>뿐 아니라 <제너럴>, <셜록 주니어>등을 통해 뛰어난 연출과 연기를 보여주었던 버스터 키튼은 무성영화 시기의 가장 뛰어난 작가였다. 초기영화의 위대한 시네아스트들, 그들이 개척해놓은 영화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극장에 앉아 스크린으로 투영되는 환상에 젖어들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역사의 시작이자 영화의 언어와 문법을 창조했던 무성영화, 그 중 이번 영화제를 통해 상영되는 <어셔가의 몰락>과 <항해자>는 관객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과거로의 여행을 선사해줄 것이다.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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