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트루드> 상영 후 한창호 영화평론가 강연

 

지난 4월 21일, 칼 드레이어의 유작 <게르트루드> 상영 후 한창호 영화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있었다. “거울과 그림”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영화 속 미장센의 특징부터 드레이어의 생애까지 폭넓게 조망해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한창호(영화평론가): 오늘 보신 <게르트루드>는 기승전결의 일반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는 영화가 아니다. 때문에 처음 보신 분들은 보고 나서도 스토리를 요약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쉽게 스토리가 요약이 안 되는 영화를 보는 경험은 거울이나 그림 앞에 서 있을 때의 경험과 유사하다. 그래서 “거울과 그림”이라는 테마를 잡아 보았다. 드레이어는 <잔 다르크의 수난>(1928)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 때는 몽타주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게르트루드>에서는 몽타주가 배제되어 있다. <게르트루드>는 드레이어의 초창기와는 아주 다른 작품이다. 미장센이 어떤 식으로 화면에 드러나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게르트루드>의 특징을 즐기는 데 좋을 것이다.

드레이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책이 두 권 있다. 1982년에 프랑스의 모리스 드루지에 의해 드레이어 전기가 출간된다. 드레이어 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책이다. 그리고 1년 뒤에 데이비드 보드웰이 드레이어의 작품론을 쓴 책을 발간한다. 이 두 권의 고전이 연달아 나오면서 드레이어에 대한 새로운 평가들이 많이 나오게 됐다. 드루지가 쓴 전기는 영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가 직접 읽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후 드레이어 연구자들이 모두 그 책을 참고했기 때문에 인용이 많이 된 편이라서 그 부분을 먼저 설명 드릴까 한다. 모리스 드루지가 책을 쓰던 당시는 정신분석 비평이 굉장히 큰 영향력을 가졌던 시기다. 드루지 역시 프로이트주의자고, 그러한 방법론으로 드레이어의 전기를 썼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기가 유아기이기 때문에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조사가 철저한 편이다. 드레이어가 인터뷰를 통해 어린 시절의 불행에 대해 조금씩 밝힌 적은 있지만, 드루지의 책이 나오면서 드레이어의 어린 시절이 정말 남달랐다고 우리가 뒤늦게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레이어의 어머니는 조세핀 닐슨이라는 사람인데, 스웨덴 출신으로 덴마크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하녀였다. 조세핀 닐슨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상태에서 원치 않은 임신으로 코펜하겐으로 출산을 하러 떠난다. 그 아이가 바로 칼 드레이어 감독이다. 드레이어의 친모는 자신이 아이를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입양 보내려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드레이어는 몇 달간 고아원에 맡겨지게 된다. 대략 1년 정도 지나 가까스로 입양부모를 구했는데, 그 사람들이 코펜하겐에서 인쇄업을 하고 있던 드레이어 부부다. 드레이어는 그때서야 성을 갖게 됐다. 친모는 그 당시에도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드레이어를 입양 보낸 상태에서 뱃속의 아이를 낙태 시키려고 황을 마셨지만 유황 중독으로 죽었다. 그때부터 드레이어는 양부모 입장에서 볼 때 양육비도 받을 수 없는 버려진 아이가 된 거다. 친모가 죽어버린 이후 드레이어는 양부모로부터 자신의 친모를 모욕하는 말을 들으며 자라야만 했다. 양부모 집안에서 드레이어는 굉장히 힘들게 자랐지만, 학교에 가서 공부에 재능을 보이고, 10대 중반에 전신회사에 취직을 해서 독립생활을 한다. 드레이어가 19살 때 자신의 친모가 누군지 궁금해서 스웨덴으로 여행을 간다. 그 이후로 드레이어는 코펜하겐에 돌아와서 저널리스트가 됐다. 영화사에 글도 써주고, 자막도 쓰고,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영화계에 들어오고, 편집도 하다가 영화감독이 됐다.

 

 

드레이어의 영화에는 일관되게 수난 받는 여성에 대한 묘사가 있다. <잔 다르크의 수난>과 <게르트루드>도 그 쪽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편, 드레이어의 영화 속에서 한 여성은 박해받는 피해자로 그려져 있고, 또 다른 여성은 악녀로 그려져 있다. <분노의 날>(1943)에 나온 시어머니는 악녀-양모와 비슷할 것 같다. 드레이어는 양모를 박해자이면서 악녀로 정형화시켜놓았고, 친모를 피해자이고 희생양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래서 남성이 육체적인 사랑으로 여성에게 어떻게 피해를 주는지에 대한 문제에 집착하게 됐다는 해석이 감독 드레이어를 이해하기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드레이어가 <게르트루드> 전에 만든 영화들에서는 친모와 양모가 분리되어 제시됐다. 하지만 <게르트루드>에서는 한 여성에게 두 모습이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게르트루드는 피해자이지만, 마지막에 남편에게 하는 말을 보면 잔인한 면도 있다는 데에 여러분도 동의할 것이다.

한편, 보드웰은 형식주의자답게 중요한 자료들을 다 찾아서 드레이어가 어떻게 자신의 미학을 발전시키게 됐는가를 써 나갔다. <게르트루드>에도 잘 나와 있듯이 독일 표현주의 영향을 받은 조명, 흑백의 콘트라스트, 밤 장면을 탁월하게 찍는 능력, 실내 장식 등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림 등 예술 작품을 이용하는 솜씨가 있다. 제 나름대로 말하자면, 드레이어는 회화주의 미학을 갖고 있다. 오늘은 그 쪽으로 이야기를 맞춰 보려고 한다.

<게르트루드>는 원작이 있는 영화다. 영어로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스웨덴에서는 스트린드베리와 함께 유명한 쇠드베리(Hjalmar Söderberg)의 희곡을 각색한 것이다. <게르트루드>에서 가브리엘과 게르트루드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쇠드베리의 희곡이 도움이 될 것 같다. 1906년에 희곡 <게르트루드>가 발표되는데, 쇠드베리의 실제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다. 스웨덴의 마리아 폰 플라텐(Maria von Platen)이라는 여가수는 게르트루드처럼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남자와 결혼한 상태였다. 그녀는 다른 예술가들과 어울리면서 희곡작가 쇠드베리에게 당신의 작품을 읽고 반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이후 두 사람은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쇠드베리는 유부남이었고, 마리아 폰 플라텐도 한번 결혼했던 때였다. 쇠드베리가 새로운 결혼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조건에서 두 사람은 5년간 열애를 한다. 시간이 지나고 쇠드베리가 결혼생활을 정리할 수 있게 됐는데, 하필 그때 플라텐은 젊은 남자 작가와 사랑에 빠졌다. 쇠드베리에게 플라텐의 애인은 문학계의 후배인 셈이다. 게다가 그 작가가 영화 속 에를란드처럼 플라텐을 자기가 ‘정복’했다고 자랑스레 떠드는 걸 듣자 쇠드베리는 너무나 화가 나서 코펜하겐으로 가서 <게르트루드>를 쓰게 됐다.

드레이어는 <게르트루드>가 쇠드베리의 자전적 희곡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운명 같은 것이, 플라텐이 결혼생활 초기에, 그리고 에필로그의 게르트루드처럼 죽기 전에 살던 곳이 드레이어 생모가 살던 곳과 정말 가까운 곳이었다. 드레이어 입장에서는 <게르트루드>가 가족 로맨스였던 거다. 드레이어는 플라텐에게 생모의 이미지를 찾으려고 했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자기 어머니를 현실과 다르게 이상화 시키는 거다. 드레이어는 마리아 폰 플라텐의 집까지 방문하게 된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플라텐이 직접 살던 곳을 촬영지로 쓸 수 없게 되자 스튜디오 안에 비슷하게 만든 것이다.

 

<게르트루드>에서는 총 다섯 개의 시퀀스와 에필로그가 나온다. 5분이 넘는 롱테이크는 예사다. 스토리 전개가 논리적인 인과율에 따라 전개되는 게 아니다. 시간도 친절하게 과거-현재-미래 순이 아니다. 비(非)서사를 미장센 중심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행위가 진행되고 행위 속에서 인과율이 있어서 어떤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그 부분을 일부러 놓치게 만든다. 대신 미술관에서 그림을 볼 때 상상력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있다. 논리적으로 정리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림 앞에서 상상했던 것들이 나의 재산이 되는, 그런 식의 매력이 이 영화에서는 더 크다.

<게르트루드>는 시간상으로 사흘간의 이야기다. 응접실-공원 데이트-에를란드와의 밤-시인의 환영식-공원 데이트-응접실로 이루어진 대칭 구조다. 그리고 마지막에 에필로그가 붙어 있다. 에필로그 장면은 원작에 없는 것으로, 감독이 만들어낸 것이다. 첫째 날은 응접실에서 시작한다. 게르트루드가 무대를 통해 들어오는 것처럼 등장한다. 여기서 미술 작품을 인용하는 것이나 그것들로 이야기를 보조적으로 끌고 가는 능력 등 드레이어가 갖고 있는 미장센의 특징이 쏟아져 나온다. 응접실 안에 있는 그림들은 계몽주의 시절의 로코코 그림들이다. 게르트루드와 남편이 어떤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인지 배경이 제시를 하고 있다. 응접실에서 게르트루드는 가브리엘로부터 받은 거울에서 자기 모습을 바라본다. 게르트루드의 나르시시즘이 강조되어 있다. 이후 게르트루드는 공원으로 나가 에를란드를 만난다. 공원에서 호수의 수면이 거울처럼 너무나 평화롭다.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 두 사람이 평화로운 관계라는 느낌을 전달한다. 반대로 두 번째 공원 씬에서는 수면에 잔물결이 인다. 드레이어는 그런 식으로 대단히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썼다. 대사나 과도한 연기를 이용하지 않았다. 마치 브레송의 배우들처럼 연기하는 식이다.

게르트루드와 에를란드가 같이 밤을 보내는 방에 걸려 있는 미래지향적인 초상화는 에를란드라는 음악가의 성격을 잘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카메오(양각으로 조각한 장식)가 두 사람이 관계 맺으리란 것을 암시하고 있다. 중요한 장면에서는 거의 다가 화면 내의 다른 소재를 통해 설명되고 있다. 이렇듯 큰 픽션 안에서 다른 픽션이 들어와서 설명하는 건 바로크 시절 화가들이 많이 취하던 방법이다. 드레이어는 보드웰이 말한 것처럼 미술에 굉장히 풍부한 교양을 갖고 있었다. 그림 속에 그림이 있듯, 화면 속에서 현재의 장면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일을 암시하는 건 드레이어가 잘 하는 방법이다.

둘째 날, 악셀이 왔을 때 게르트루드가 그림을 바라본다. 게르트루드는 자기가 꿈을 꿨다고 얘기한다. 꿈속에서 자기는 발가벗고 있고 개들이 자기를 따라왔다는 꿈이다. 그 꿈의 내용이 그림에 나와 있다. 옷을 벗고 있다는 건 죄가 없고 결백하다는 의미인데, 역시 나르시시즘의 생각이 많이 들어 있다. 그 상태에서 육욕, 색욕 등이 개들의 공격으로 표현된 듯하다. 게르트루드는 남자들이 자신의 육체만 좋아하며, 남자들의 희생자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르트루드 그런 염려가 꿈속에 나와 있고, 그것이 그림으로 형상화 되고 있다.

 

 

마지막 날 응접실 시퀀스로 넘어오면, 게르트루드는 처음으로 검정색의 드레스를 입는다. 예사롭지 않다. 가브리엘이 거울 옆 촛불을 켠다. 불은 열정의 상징으로, 아직까지 게르트루드에게 미련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자는 거울을 통해 게르트루드를 보고, 게르트루드는 반대로 가브리엘을 보고 있다. 이것은 처음의 거울 이미지와 다르다. 나르시스트로서의 게르트루드가 아니라 성찰적인 게르트루드를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브리엘은 게르트루드에게 같이 떠나자고 종용한다. 두 사람 모두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아서 대단히 외로운 상태다. 등을 돌리고 나란히 서 있는 이미지는 뭉크의 그림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런 이미지 앞에서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다. 이제 게르트루드는 가브리엘이 켜놓은 촛불을 끈다. 두 사람 사랑은 끝이 난 것이고, 게르트루드의 불도 꺼진다. 게르트루드의 사랑 이야기도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응접실에서 게르트루드는 퇴장한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게르트루드는 무대 뒤로 사라져버린다.

에필로그에서 악셀이 찾아온 게르트루드의 집은 구스타프의 집과는 굉장히 다르다. 구스타프의 집은 로코코풍의 장식품이 너무나 많고, 세월의 규율, 법, 남성적인 코드들이 가득 차 있었다. 반면 이 집은 굉장히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억압을 덜어낸 것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져있다. 덴마크의 함메르쇠이(Hammershoi)라는 화가는 드레이어가 대단히 좋아하던 화가였다. 함메르쇠이의 그림은 메마르고, 심플하다. 아무것도 없이 살짝 죽어 있는 공간이다. 영화의 에필로그도 그렇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의자와 함께 닫힌 문을 보여주는데 전형적인 정물화다. 고요하기도 하고, 게르트루드의 죽음을 암시하며 영화가 끝난 것이다. 이것을 쓸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게르트루드의 대사처럼 ‘모든 것이 사랑이다.’ 다시 말해서 상처받은 것도 자신의 사랑이자 삶이었으니까 결코 연민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정리: 송은경 관객 에디터 | 사진: 최미연 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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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자노프 <석류의 빛깔> 상영 후 홍상우 교수 시네토크

 

벚꽃이 한창이던 지난 4월 15일 일요일, 서울아트시네마는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날이었다. 연달아 그의 영화 3편을 상영하였는데, 그 중 <석류의 빛깔> 후엔 홍상우 교수가 함께 하여 시네토크를 펼쳤다. 다소 낯선 러시아라는 환경과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그의 영화적 세계에 관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 시간의 일부를 옮긴다.

 

 

홍상우(경상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 : <석류의 빛깔>은 내용만으로 챕터를 나누면 12장 정도가 된다. 어린 시절, 성장기, 사랑, 수도원에서의 생활, 꿈꾸는 것 같은 장면, 죽음의 천사와의 만남, 죽음 등등. 전체적으로 크게 보면 시인의 생애다. 유년시절, 젊은 시절, 수도원을 나와서 죽을 때까지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파라자노프는 시인을 소재로 한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산문적인 분위기보단 시적인 분위기가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전통적인 서사에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도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수람요새의 전설>은 그루지아 민요와 고대 전설을,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는 우크라이나를, <석류의 빛깔>은 아르메니아를 소재로 만들었다. 주로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과거를 다룬다는 거지 영화가 구태의연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소련은 15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져있고 사실 각기 다른 문화권이다. 크게 나누자면 슬라브 문화권, 카프카스, 중앙아시아가 있다. 그러니까 한나라의 영화사가 다문화·다민족을 갖고 있는 경우는 많이 있는데 소련만큼 지역적으로 큰 공간에서, 그것을 다 포괄하는 영화사는 거의 유일하다. 일단 지역적인 특징을 말하자면 대개 소비에트 시절에 슬라브 쪽은 주류였다. 주변 공화국은 독자적인 문화나 민족적 특징을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영화를 만들다보니 오히려 더 실험적이고 <석류의 빛깔>과 같은 영화가 나오게 된 효과가 있었다. 보통 서사가 잘 짜여있는 영화들이 슬라브 지역에서 주로 많이 나왔다면 그 반대,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실험적인 것에 치중한 영화들이 오히려 카프카스 출신이나 중앙아시아 출신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파라자노프가 영화 만들면서 고난을 겪은 것과 관련해서 타르코프스키와 연관 지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타르코프스키도 나중에 망명을 가서 소비에트 시절에 당국과 맞지 않아 고난을 겪은 것은 사실 관계상 맞는 말인데, 파라자노프가 겪은 것에 비하면 상당히 성공적으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객관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순수하게 슬라브, 러시아 문화에 깊이 몰두한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영화사에서 확실한 위치를 갖고 있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그런데 파라조노프는 일단 슬라브 문화권이 아닌 다른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러시아 국내에서 관심의 대상이 덜 된 측면이 있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평가가 인색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된 일인지 해외에 비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파라자노프는 카프카스 문화권, 그루지아와 아르메니아 쪽 지역 지역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이 다른 연방공화국보단 영화문화가 발달한 지역이고 또 문화·예술적으로도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그것이 작품세계에도 반영이 되어 있는 것이다. 또 카프카스라는 지역 자체가 경계적인데, 감독 개인적으로도 아르메니아나 그루지아에 딱 속해있는 게 아니었다. 부모는 아르메니아 출신이고 자기가 태어난 곳은 그루지아였다. 양쪽의 문화를 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힌 거다. 그래서 각기 다른 나라의 문화나 전통, 종교를 소재로 해서 영화를 만든 독특한 케이스에 속한다. 그의 작품이 많진 않지만, 영화를 잠깐이라도 보고 한눈에 ‘아 파라자노프!’라고 알아볼 수 있게 만든 희귀한 감독이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독특한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우선적으로 이야기 하는 건 아르메니아의 문화예술이다. 아르메니아의 전통문화가 단순 소재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최우선적으로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인 시인 사이아트 누바를 둘러싸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르메니아의 고전 예술이다. 사원. 그림들, 미니어처, 중세건축물, 공예 장식품, 염색, 수공업제품. 이런 것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 어떤 사람은 파라자노프의 영화가 그냥 다른 의미 다 빼놓고 한 민족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기준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부분은 상당히 정확한데 어떤 부분은, 감독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재현이 허술하다는 의견이었다. 카프카스 지역이 여러 문화의 경계라고 말했는데 비잔틴과 근동의 기독교적 세계, 그리고 이슬람 세계가 만나는 경계적인 지역이기 때문에 특수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것들이 그루지아나 아르메니아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나 공예에 반영이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파라자노프 영화를 일종의 다민족 국가의 영화사에서 전형적인 소비에트 감독이 아니면서도 그런 문화적 특수성을 자기 영화에 잘 반영했기 때문에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눈에 띄는 건 종교적인 요소이다. 아르메니아는 AD301년에 이미 기독교를 국교로 책정한 나라다. 기독교적 전통이 강한 나라인데 첫 번째 장면 보면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읽혀진다. 빵, 물고기, 가시덤불 이건 직접적으로 기독교적 표상이고, 석류, 단검, 포도송이에서 피처럼 흐르는 건 고난과 희생을 의미할 것이다. 그는 시인이자 일종의 순교자인데 그가 맞이해야할 시련과 고통을 영화 초반부터 보여준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각적인 묘사만큼 소리에도 집중해야한다. 아르메니아의 전통 악기 두둑 소리가 자주 들리고, 자막은 러시아이다. 뒤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은 전부 아르메니아어이다. 그것을 오히려 음향적 효과로 쓴 것이다. 사이아트 노바 자신이 또 아르메니아 민속 음악 발전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란다. 전기적인 요소도 고려를 했다고 한다.

 

카메라를 직접 바라보는 정면성도 파라자노프의 영화를 규정하는 하나의 특징이다. 사람들은 비잔틴 회화의 프레스코화, 또는 이콘의 영향으로 평가한다. 마치 이콘을 바라볼 때 성상을 바라보는 관찰자, 내가 서로 소통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배우와 관객의 관계도 성상화를 보는 것처럼 그런 효과를 불러일으키려 했던 것이다. 또 회화 중 티플리스 학파의 티플리스는 트빌리시, 그루지아의 수도의 옛말이다. 이 학파의 대표적인 기법을 인공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정면성과 깊게 관련이 된다고 한다. 19세기에 상인들도 많이 교류를 했던 지역에서 특히 그루지아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왔는데, 그때 회화의 주된 장르가 초상화였다. 초상화를 보면 경직되고 움직이지 않는 구도와 신체를 아주 평면적으로 묘사했는데 이를 파라자노프가 선호했다고 한다. 그런 회화기법을 사이아트 노바의 이미지를 묘사할 때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이아트 노바가 자기 시에서 인간의 세상을 묘사할 때 항상 색깔과 향기를 강조했기 때문에 <석류의 빛깔>에서도 색깔이 두드러진다. 양탄자를 여인들이 은발찌로 장식한 발로 밟으며 세탁하는 모습이 있다. 여러 명의 여인이 돌아가면서 물을 뿌리면서 밟는데, 마치 집단적으로 춤을 추는 느낌을 준다.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노동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락처럼 여기는 그루지아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실을 염색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파라자노프도 아르메니아가 염료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거기에 익숙했었다. 전기적으로 봤을 때는 영화 속 주인공인 사이아트 노바의 전기와 감독의 전기가 일치하는 셈이다. 지역적 특성이 가장 잘 반영된 장면이 바로 이 염색장면이라고 한다. 또 검은색, 붉은색, 하얀색 이런 것들이 안정적으로 결합 되서 보여 지는데, 이 장면을 소위 색채의 유희라고 한다. 아르메니아 전통 색과 향을 중요시했던 사이아트 노바의 시세계와 마찬가지로 그 장면에서는 순간적으로 색채의 우주가 창조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얀 수탉을 붉게 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흰색과 붉은색이 대비가 된다. 앞에 나온 붉게 물든 천과 연관될 수 있는데, 시인의 희생을 연상시키는 피를 연상시킨다. 일종의 일상적 행위라기 보단 제의적인 분위기나 성격을 갖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실험적 성격을 지닌 영화이고 흰색, 검은색, 붉은색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사물의 상징성이 강하고, 정면을 바라보는 인물, 음악, 고정된 화면 등 그런 것들이 다 합쳐져서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제의적인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연속적인 내러티브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비관습적인 내러티브라는 것이다. 조금 더 강하게 말하면 이야기의 부재이고, 그래서 시공간도 사실 해체됐다고 볼 수 있다. ‘삽화로 이루어진 책의 새로운 형태’와도 같은 영화라고도 표현하기도 한다. 장면은 페이지를 넘기듯 연결되고 중간 중간 자막으로 소제목을 달았는데, 이어서 나오는 사이아트 노바의 행동을 강조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배우도 연기한다고 보기 힘들다. 게다가 편집이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점프 컷이지 않나. 논리적으로 연결되든 상반되는 게 충돌해서 다른 의미를 발생시키든 간에 그런 의미를 발생시키는, 논리에 기반 한 몽타주도 거부한 거라 할 수 있다. 영화적으로 봤을 때는 시각적인 경이로움을 주는 태초의 영화 언어로 돌아가려는 시도라고 많이 평가한다. 특히 <석류의 빛깔> 말고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같은 경우에는 거의 문화인류학적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고 할 정도로 상당히 전통문화 재현에 관심을 뒀다. 서사적 요소보다는 비서사적 요소를 강조한 거다. 그래서 <석류의 빛깔>을 규정하는 또 다른 말로는 사이아트 노바의 ‘그림으로 된 시집’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존의 관습으로 봤을 때는 상당히 낯설고 충격적인데, 파라자노프가 의도했던 안했던 지금 봐도 상당히 낯선 영화다. 상반된 요소가 같이 있는 것이다. 전통문화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 자체는 혁신이다. 소위 말하는 낯설게 하기인데, 이는 20년대 형식주의에서 나온 대표적 개념이다.

 

프랑스 세르주 다네가 파라자노프 영화가 의미나 내러티브를 압도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이것이 시각적으로 놀라움,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다 해서 물질적 상상계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더불어 원소, 질료, 질감, 색채와 가장 근접한 것으로써의 예술인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이 파라자노프의 특징이다. 이보다 더 다양한 영화는 없다. 이렇게까지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들뢰즈도 파라자노프를 사물의 물질적 언어로 된 걸작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사실 파라자노프에 대해 프랑스나 독일에서 더 먼저 발굴하고 알리고 했던 것이다. 러시아에선 알긴 안다. 하지만 해외에 소개한다든지 적극적인 시도는 거의 없다고 보여 진다. 나중에 파라자노프가 투옥되고 고난을 겪고 하니까 오히려 해외영화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석박을 촉구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더 알려지게 된 것이다. 옛날에 반체제 문학가들이 해외에서 알려지게 되는 것처럼 파라자노프도 그런 경우로 볼 수 있다.

 

파라자노프의 영화의 이미지는 박물관적 느낌도 있고, 그림의 이미지도 있고, 문학의 이미지도 있고, 이런 세 가지가 모두 다 얽혀있는 이미지로 규정할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그의 영화를 규정하는 말 중 상당히 적절한 용어라고 생각이 된다.

 

정리: 김휴리(관객에디터) |사진: 최용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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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리베트 <미치광이 같은 사랑> 상영 후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 시네토크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번에 ‘친밀한 삶’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하면서 소개하는 몇 편의 영화들이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 보신 리베트의 영화는 몬테 헬만의 <자유의 이차선>이나 필립 가렐의 영화, 찰스 버넷의 영화와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모두 삶의 내밀함을 영화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라신의 연극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들을 제외하면, 사실 관객에게 명료하지 않은 것들은 대부분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자크 리베트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일주일 후에나 열흘 후에 혹은 몇 주, 몇 년 후에 현실적인 삶과 연결되었을 때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말했는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지금 이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감상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미치광이 같은 사랑>은 68년 가을에 제작을 시작해서 69년에 소개된 된 작품이다. 68년은 리베트를 비롯한 많은 감독들은 랑글루아 사태 때문에 뛰어다니던 시기이자 칸 영화제에서 저지 투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이 영화는 사십대 누벨바그라고 부를 법한 영화다. 1928년생인 리베트가 마흔을 넘기고 만든 영화로, 가렐의 <더 이상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없어>도 그런 사십대를 넘긴 남자의 사랑이야기였다. ‘누벨바그’라고 했을 때 젊은이들의 패기 넘치는 사랑이야기나 끓어오름의 느낌들이 있을 텐데, 이 영화들은 그런 것보다는 숙성된 사랑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숙성되다 못해 파산에 이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치광이 같은 사랑>에는 세바스티앙이 연출하는 연극이 진행되는 것과 동시에 세바스티앙과 클레르라는 남녀의 현실에서의 삶의 문제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이 둘의 관계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연결되는 지점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완성된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출발점과 끝 지점을 장식하는 것은 라신의 연극인데 마찬가지로 우리는 라신의 연극이 완성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백색의 공간만을 볼 수 있다. 이 백색공간은 사각의 링 같기도 하고 흰 도화지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것을 영화라고 생각했을 때는 백색 스크린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백색 스크린의 평면 안에 무언가를 넣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목적만으로 보자면 흰 스크린에 무엇인가를 넣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고, 최종적인 결과물은 결국 보여주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작품이다. 


두 종류의 사람들이 영화에서의 결과를 중요하게 본다. 한 부류는 제작자나 투자자이고 마찬가지로 관객으로서 우리도 영화의 결과를 보는 사람들이다. 관객은 결과로서의 영화를 보는 것이지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 않는 이상, 과정으로서의 영화를 보러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과정의 시간과 리듬을 담아냈다는 점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완성에 대한 강박이 없는 영화로 보인다. 이것은 몬테 헬만이나 필립 가렐, 찰스 버넷의 <양 도살자>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몬테 헬만은 자크 리베트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한 바 있고 <자유의 이차선>을 만들 때에는 리베트처럼 영화를 구성해나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영화들은 모두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면서 실패를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영화를 만드는 행위로 인해서 몬테 헬만은 스튜디오에서 추방당했지만, 리베트는 반대로 자신의 영화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의 리베트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제대로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트뤼포의 전기를 보면 당대의 최고 시네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뤼포나 고다르 같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알려지는 것에 비하자면 리베트는 자신을 알리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크 리베트가 <미치광이 같은 사랑> 같은 영화에 도달해가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1965년 무렵에 리베트는 ‘우리시대의 영화감독’이라는 TV다큐멘터리로 장 르누아르에 관한 다큐를 찍게 된다. 그 과정에서의 르누아르와 나눈 영화작업과 이야기들이 리베트의 영화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리베트는 배우와의 관계나 집단적으로 작업하는 과정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됐고, 감화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가장 르누아르적인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만든 게 이 영화다. 


다른 한 가지는 리베트가 <수녀들>이라는 영화작업을 하면서 연출방식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수녀들>은 처음에는 연극으로 공연된 뒤에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작업에서 그는 굉장한 지루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출방식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출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은 감독이 무언인가를 컨트롤하거나 크게 디렉션하지 않고 직접적인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다. 


<미치광이 같은 사랑>을 보면 세바스티앙이 연극을 연출할 때 그런 방식으로 한다. 책 자체를 통독하면서 배우들이 직접 연극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을 취하는데, 리베트가 이 영화를 찍을 때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공동적인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라신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리허설 과정을 찍는 것과, 클레르가 연기를 중단하고 크리스티앙과의 관계가 파국적으로 끝나가는 기본적인 구성만을 해놓고, 영화의 매 순간마다 쪽대본을 만들어 즉흥적으로 구성했다. 시대적으로 1968년경에는 프랑스 영화에서 누벨바그 작가들이 개인성을 내세우는 것에서 후퇴하는 시대적 흐름이 있었다.  고다르는 작가의 개인성을  내세우는 것이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보고,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지가 베르토프 집단이라는 공동작업 형태로 전환시했다. 리베트의 새로운 연출방식은 시대적으로도 조응하는 것이었다. 작가의 개인성의 후퇴라는 것을 통해서 영화에 들어갈 때 새롭게 발견하는 것은  ‘배우’의 존재성이다. 이 영화가 4시간 가량을 지속하면서 보여주는 것은 영화를 지탱하고 있는 두 명의 배우들이 보이는 특별한 퍼포먼스들이다. 특히 뷜 오지에라는 여배우가 보여주는 히스테릭하거나 다변적인 심리적 상태를 보여주는 연기는 정말 놀랍다.  

 

이 영화에는 두 층위의 연기가 있다. 하나는 라신의 연극을 위해 맡은 배역을 소화해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크리스티앙과 클레르 역할을 두 배우의 퍼포먼스만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전자에는 캐릭터가 정해져 있다. 여기서는 라신의 희곡에 있는 배역들을 배우들이 자신의 몸과 발성을 통해서 재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배우의 물리적인 현존 안에서 그들의 소소한 퍼포먼스가 스스로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개는 완전히 다른 시공간 안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전자의 경우보다 훨씬 시공간적 감각이 흐트러져 있다.


 이 영화에는 몇 개의 시간성이 있다. 운명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있고(그것은 연극과 삶에서의 예정된 파국이다), 두 번째로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표현되는 달력화된 시간성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이런 시간을 무화시키는 형태, 시공간을 무화하는 형태가 있다. 전체적인 시간과 공간이 흐트러진 형태의 느낌이 있는데,  이는 즉흥적인 배우의 퍼포먼스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시간성이라 할 수 있다. 완성에 대한 강박성이 없다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가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자 자유가 증가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영화는 파국을 향해 가지만 사실은 이 속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있다. 영화는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긴 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담아낸다. 다양한 시도와 가능성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흥미로움이 있다. 이렇게 실패와 불완전한 시도를 담아내려는 시도가 리베트의 영화를 길게 만들었다. 허용될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가 담기기 위해서는 252분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 영화 이후에 리베트는 <셀린느와 줄리 보트를 타러가다>를 만들었고, 12시간이 넘는 <아웃 원>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아웃 원>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몇년 전에 상영했는데, 꼬박 이틀 동안 상영했다. 전 세계에서 이 영화를 상영한 나라는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미치광이 같은 사랑>을 스크린에서 본 관객들도 많지 않다. 

 


리베트는 연극적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연극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영화와 대비시키면서 영화에서의 연극성을 끌어온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연극과 TV다큐멘터리, 영화가 함께 등장한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보면 연극 리허설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리허설을 찍고있는 텔레비전 카메라와 그것 마저도 포함해서 촬영한 16mm 카메라가 있다.  그리고 둘의 삶을 담아낸 것은 35mm 카메라이다.  서로 다른 카메라가 연극과 삶의 픽션을 찍는 방식은 TV와 연극 그리고 영화가 크로스 되는 리베트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연극을 재현해가는 것이 아니라 라신의 희곡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 안에서 탐구를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카메라로 크로스 되는 방식은 현실의 사랑 속에서 라신의 비극을 되돌아보거나, 라신 연극이 현실의 사랑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이 되는  거울관계를 형성한다. 연극과 영화가 마주하면서 서로를 지켜보거나 비집고 들어가거나 날카롭게 잘라간다. 이런 거울의 상태는 서로 붕괴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연극과 연인의 사랑은 결국 깨져나가게 된다. 파국에서 제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고다르도 거의 동일한 시기에 <즐거운 지식>에서는 ‘영화의 제로로의 회귀'를 <중국여인>에서는 '영화의 연극영년'을 이야기했는데, 리베트 역시 이 영화로 자신의 영화적 영도성으로 돌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연극은 완성되지 못했고,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지만, 그래서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만, 리베트의 세계에서는 이 영화가 새로운 지점으로 출발점이다.

 

정리: 김고운(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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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로지의 <하인> 상영 후 김영진 평론가와의 시네토크

 

지난 4월 13일 저녁 국내에서 처음 상영되는 조셉 로지 감독의 <하인> 상영 후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함께하는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조셉 로지 감독의 필모그래피부터 영화에 대한 해설까지 흥미롭게 들려준 그의 영화에 대한 해설을 여기에 옮긴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영화 재밌지 않나?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는 정반대 결과를 갖고 있는 영화다. 아마도 1960년대와 2010년 이라는 시대적 차이 때문 일거다. 김기영 감독이 <하녀>와도 유사성이 있다. 동시대인으로서 어떻게 이런 유사한 주제의식을 갖게 됐는지 신기하게 생각될 정도다.

조셉로지의 필모그래피는 유럽에서 꾸준히 영화를 찍은 덕에 상당히 다양한 편이고 수준도 들쑥날쑥한 편이다. 퇴작도 좀 있고 그렇지만 지금 본 <하인 The servant>이나<사랑의 상처 Accident>는 두말 할 나위 없는 그의 최고작 중 하나다.

 

조셉로지 감독은 미국 감독인데 좌익 쪽에 관심이 많아서 러시아에서 영화를 했고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에게서 사사를 받기도 했다더라. 상당히 레드컬러에 있던 사람이라는 얘긴데, 50년대 초에 B무비 몇 편을 찍은 다음 매카시 광풍이 불 때 증언하기를 거부하고 유럽으로 망명했다. 돌이켜보면 미국에 있는 것보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유럽에 갔을 때 네오리얼리즘이 한바탕 지나가고 영화 사업이 부흥할 무렵이어서 소위 모던시네마가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안소니 퀸의 자서전을 보면 매우 재미있는데, <길>이후 치네치타 스튜디오가 있는 거리의 수많은 카페에는 전 세계 영화인들이 다 모여 있었다더라. 여기서 펠리니 감독이 ‘내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200미터 가는 동안에 몇 명의 프로듀서들이 나한테 딜을 제안을 하는 지 나랑 내기 할래? 몇 명 이하면 누가 술값을 내고’라고 내기를 했는데 펠리니가 이겼단다. 그럴 정도로 유럽 영화산업이 좋을 때였는데 누벨바그가 나오고 무엇보다 그런 영화에 열광하는 관객들이 있었을 때 조셉 로지가 건너간 거다. 사실, 굉장히 영화가 지적이고 지식인 관객들이 매우 좋아할만한데다 그런 시대적 흐름을 만나면서 일년에 한 번 꼴로 영화를 찍을 수 있었고 지금의 대표작들도 많이 나오게 된 거다.

 

이 영화는 보여 지는 것, 들려지는 것 등 모든 레이어에서 우리들에게 말을 건다. 영화 처음 시작부분, 토니에 집에 갔을 때부터 모든 앵글이 극적이다. 전경과 후경에 인물을 놓고 거리를 강조하는 앵글을 매우 많이 사용 한다. 전경에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 우리를 보고 있으며 깊이감이 강하게 잡혀있는 구조로 구도가 잡혀있다.

초반에는 토니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며 공간의 지배권을 계속 갖고 있다. 수돗물 똑똑 떨어지는 그날 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런 와이드로 거리를 두고 공간감과 부피감이 유지가 되는데 토니하고 수잔이 항상 점유권을 갖고 있는데 계속 휴고 바렛이 끼어든다. 상황적으로도 끼어들지만, 아까처럼 노크 안하고 들어오듯. 그럴 때도 구도 상으로 문이 열려있고 거울로 토니하고 수잔이 있을 때 아직 안 들어온 상태가 보이는 등으로 그들의 구도에 바렛의 계속되는 침입의 모티브를 시각적으로 강조 한다. 수돗물 떨어지는 그 날 밤 이후에 조금씩 역전되는데 이후 수시로 바뀐다. 이미 그때는 이미 영화 중반까지 확립된 지배권의 우열관계는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조명을 굉장히 특이하게 해서 토니가 앞에 있어도 우월한 느낌이 아니라 불쌍해 보인다. 극적인 앵글 하에서 거리를 강조하는 공간의 깊이감을 통해서 지배관계 전복이라는 이 영화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

또 이 영화에 거울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거울이 있으면 거울에 비친 인물을 우리가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화면 속 인물과 같은 위치를 차지함으로서 동일화되기 쉬운 앵글이다. 토니같은 경우 굉장히 강해 보이는데 귀족이고 유산을 받았고 출신도 좋고 상류층인데 굉장히 단단해 보이는 그의 정체성이 사실 굉장히 연약하다는 것을 계속 구도 상으로 암시하고 있다. 또 그 빛과 조명이 서양식은 우리와 달라 굉장히 그림자를 많이 쓴 걸 알 수 있는데 가령 심야에 들어왔을 때 그림자가 말을 한다. 당당하게 그림자가 말을 하고 심지어 토니를 압도하고 있다. 또 사운드나 연상효과도 잘 쓰고 있는데 후반부에 숨바꼭질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장면은 저항할 수 없었던 그날 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그 다음 신이 비가 오면서 그 물줄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또 악마 같은 여자가 찾아와서 다시 연극을 하고, 그 때 조명이 어떻게 그렇게 비가 오는 와중에 인물의 그림자를 불규칙하게 흐르는 하는 지. 이런 식으로 이전에 반복되어 왔던 것들이 연상 작용을 일으키며 시너지 작용을 일으키며 시청각적 효과들이 상승하는 굉장히 공 감각적이다.

또 부자 집에만 있는 많은 그림들과 사진들을 이용한 구도들도 있다. 초반에는 전형적인 귀족적 초상화들, 정돈돼있고 권위적이고 단아한 것들 위주로 프레이밍을 많이 하다 나중부터는 훨씬 음침하고 현대적인 그림들이 프레이밍이 많이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집약되어 소용돌이치는 것이 마지막 파티장면 씬이다. 일단 파티 장면 자체가 그림의 한 장면처럼 구도가 잡혀있고 여자들이 옷도 그렇게 입고 있다. 마치 귀부인들처럼. 하지만 근데 전부 광기에 제정신으로 안 보인다. 그게 어디 파티에 가는 사람들처럼 보이나. 카페에서 봤던 그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좀비처럼 앉아있고. 초반에 보여줬던 귀족사회의 단아함 권위 우아함 이런 것들을 보여줬던 구도로 앉아있는데 그 내면은 정 반대인 그런 프레임으로 앉아있고 정중앙에 문제의 그녀 베라가 거울 앞에 있다. 사건의 지휘자는 바렛이지만 실행자인 그녀. 여기서 수잔의 캐릭터도 매우 재밌는데 처음 수잔은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나올 정도로 싸늘하게 생겼고 직감도 좋다. 하지만 수잔도 무너지고 만다. 그런 식으로 기존에 갖고 있었던 아이덴터티가 다 허물어져버리는 이런 것들을 이 서사적 흐름 말고 시청각적인 것을 다 동원해서 관객들을 설득을 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쉽게 무너지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저것이 당시 시대적 분위기였던 것 같다. 영국이란 사회는 사실 완강한 계급사회이고 지금도 그 틀이 유지되고 있는. 우리는 아직 집안 따지고 그런 건 남아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왕족이 다 망했고 수직 이동이 굉장히 심했던 사회를 살지 않았나? 20세기엔, 요즘엔 우리도 계급사회가 됐는데. 저 사회는 수직이동이 불가능한 고착된 사회인 거다. 레이몬드 윌리엄스라는 유명한 문화 평론가이자 문화이론가가 있는데 그분이 노동자의 아들인데 옥스퍼드에 들어갔다. 그런데 레이몬드 아버지 친구들이 레이몬드 아버지와 레이몬드를 비난했다더라. 너는 노동자의 자식이 왜 대학에 갈 수 있었고 또 옥스퍼드에? 우리 같으면 동네잔치 하고 했을 텐데 거긴 오히려 거꾸로 자기 계급에 프라이드를 갖고 살아가는 사회였던 거다.

 

60년대는 모든 것이 해체되는 사회였고, 60년대 후반에 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그 유사혁명의 기운을 생각해보더라도 그 전까지 여러 가지 전조들이 있었겠다. 영국사회도 분명히 그런 게 있었고, 비틀즈가 나오고 흔들리는 런던 이런 얘기가 있었듯이, 그런 식의 시대적 맥락과 조우하면서 또 이 조셉 로지는 막시스트였기 때문에 그런 얘길 한 거 같다. 가만이 보면 그들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요인이 있었다. 우리의 추론으로도 엄청 경계가 심하지 않은가. 저 계급은 조금만 프레임에서도 벗어나면 안 되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굉장히 단단함으로 뭉쳐진 폐쇄성이 아니고 사실은 굉장히 연약함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일단 저 휴고 바렛도 굉장히 겉으로는 빈틈없는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허물어지지 않나? 자신의 정욕에 무너진 거다. 애인한테 준비가 안 됐는데도 떠나자고 한 건 자기 자신을 추수를 수 없는 것에 대해 안간힘을 쓰는 거다.

 

그리고 집을 나와서 보면 여동생도 아니었고, 우리가 갖고 있는 모럴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그날 밤엔 그리고 약혼녀와의 관계도 깨지고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기존의 자기 생활과 다르게 완전히 폐인처럼 살게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인물은 자발적인 생명력이 없다. 그걸 암시하는 모습이 난간에 프레이밍 되는 모습이 감옥에 갇힌 것 같이 보이고 그 안에 내적인 생명력이 전혀 없는 인간으로 주인공을 그려내고 있다. 그에 비하면 되게 야비하고 비열하지만 무서운 남녀 주인공인 토니와 베라. 이들처럼 감당 안 되는 캐릭터들은 사실 지금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웃음) 굉장히 욕망에 충실하고 카멜레온 같이 변하는데 모럴이 없다. 대신 굉장한 생명력이 있는 건데 토니는 이런 생명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점점 퇴행한다. 그래서 마치 엄마 젖을 먹듯 술을 먹으면서 유치한 어린애들의 놀이를 하게 된다.

조셉 로지라는 감독은 당시의 영국의 유한계급의 내부를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것으로 봤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영화의 외부, 텍스트를 감싸고 있던 당시 사회의 콘텍스트가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그런 기운이 있지 않았나 싶다. 예민한 숙주처럼 조셉 로지라는 감독이 그걸 영화화 한 거고, 그게 그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킨 거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고전이 된 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다.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 같은 경우는 조금 다르다. 거기에서도 여전히 침입의 모티브가 중요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관계도 중요하며 그건 거의 모티브가 똑같다. 근데 사회적 맥락에서 다른데, 당시 우리나라는 사회적 중산층이라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이층집을 짓게 되고 그리고 거기로 이사를 가는 집안이, 와이프가 열심히 삯바느질 하고 있고 남편은 피아노 알바하고 있는데 고객이 여공들인 웃긴 상황이 연출된다. 이런 중산층이면 얼마나 허약하겠는가. 그 허약한 내부 안에 팜므파탈이 들어가 무너뜨린 거다. 근데 얘기가 되는 게, 그 당시에 사회문제가 굉장히 많았다더라. 식모 때문에 패가망신한 가장들이 많았다던데, 당시 신문 사회면에서. 영화 볼 때 낮에 가면 아줌마들이 많았는데 이쪽은 주인아줌마 이쪽은 시장 보러 나온 핑계인 가정부들로 웃지 못 할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했다더라.

 

비슷한 주제의식과 모티브를 갖고 있지만 그 토대는 다르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이 영화에서처럼 극적인 앵글보다는 시각적 모티브를 굉장히 많이 사용했다. 미닫이문이 열리면 안방이 펼쳐지는 장면은 엄청난 미장센 효과를 발휘하고 있고, 담배 연기를 남자 얼굴에 뿜을 때 마치 영토 확장을 위한 침입처럼 담배 연기도 매우 잘 쓰고 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원작에 대한 리스팩트가 없다. 현재는 그게 안 통한다고 생각한 거다. 첫날 밤 이후 이정제가 출근하기 전에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동침을 했으면 대부분은 여자가 심리적 지배권을 갖고 있다. 이런 얘기하면 또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냥 생각을 추론 해보자는 거다. (웃음) 자신만만하게 음식을 해서 가는데 그런데 이정재가 쳐다보지도 않을뿐더러 거기서 오히려 피아노에 압도를 당한다. 너는 내 계급이 아니라는 것을 시위하고 있는 거다. 그 재벌2세가 그리고 돈을 주면서 게임은 끝난다. 그 김기영의 하녀와는 전혀 다른 영화가 돼 버린 거다. 그 계단 모티브도 김기영 영화에서처럼 안 쓰이고 이동이 안 되는 의미로 그리고 그 것을 계속 또 강조하고 있다. 시대가 다르다는 거다. 그 쪽 계급 자체가 난공불락인 거다. 결국은 자살 퍼포먼스 한 거 밖에 없게 된다. 이게 임상수가 보는 200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라는 거다. 김기영의 하녀와 전혀 다른, 대신에 임상수 감독은 특유의 시니컬한 장면을 마지막에 남겨 놓는데 ‘결국 이런 니들 별거 없다. 그렇게 살아봐야 맑고 천진했던 애를 괴물로 키우는 거 밖에 더 해?’라는 잔인한 저주의 논평을 엔딩에 해 놓고, 그 전에는 영화 맨 처음에 나왔던 자살하는 여자처럼 전도연도 자살을 시키고 끝을 맺는다. 그게 2000년대 후반의 한국사회라는 건데 일리 있는 해석이라고 본다.

 

그렇게 각자의 시대적 콘텍스트를 갖고 나온 영화들인데 조셉로지의 <하인>이라는 영화는 그 당시의 60년대의 시대적 문맥에서 굉장히 시사적인 파워를 갖고 있고 이 분이 이런 유형의 소재를 매우 능숙하게 다룬다. 제가 이분 영화 중에 또 좋아하는 게 <미스터 클레인Mr. Klein>이라는 영화인데 알랭들롱이 나오는 영화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영화다. 알랭들롱이 조셉 로지 감독을 모셔다가 영화를 제작을 하고 자기가 주연을 했다. 영화에서 알랭들롱은 아주 악질적인 미술골동품 수집가이고, 유대인 잡아들일 때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고가품들을 헐값에 사들이면서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런데 자신과 똑같은 이름인 유대인인 클라인이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주소를 그쪽으로 이전을 해 놓음으로써 알랭들롱은 자신이 유대인이 아님을 확인하러 다니는 과정에서 오히려 유대인 클라인의 아이덴티티를 점점 알아가게 된다. 유대인 클라인은 자기와 정 반대로 살았다. 친구도 너무 많고, 굉장히 지적이고, 자기의 거울 같은 걸 보는 건데 결국 나중에 두 사람의 아이덴티티가 섞인다. 그래서 주위의 도움으로 나올 수도 있는데 유대인 클라인의 안위가 궁금해서 또 수용소로 간다. 친구가 말리는데도 자꾸 유대인 클라인의 뒤통수를 쫓아 들어가지만 결국 그곳에는 온통 유대인 뿐, 그것을 보고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라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도 <하인>처럼 거울 미장센이 엄청 나온다. 어디 갈 때마다 있다. 거울을 보면서 알랭들롱이 나중에 거울에 있는 게 자기인지 의심하는. 사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굉장히 강력한 거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지만 그게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것인지에 대해서 그 복합적인 추론에 관해서 감독은 굉장히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조셉로지 감독은 막시스트였으니까 당연히 사회변혁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현대사가 어떻게 보면 좌파들에게는 좌절의 역사이지 않은가. 소비에트 공산화가 됐는데 스탈린 이후에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을 때도 프랑코가 이겼고 이럴 때 60년대 말에 로지가 이런 인터뷰를 했다. 스페인 내전이 지난 한참 후에 50년대 초반인가 스페인 내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는데 어떤 정갈한 사람이 세상은 선과 악 좋은 놈 나쁜 놈 이런 식으로 구성돼 있지 않고 굉장히 복잡하다. 지당한 명제이기는 한데 그 당시 감독에게는 굉장한 충격을 줬단다. 앞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이 세상의 중층적인 그런 면을 탐구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기 작품세계에 기초를 세우는 데 중요한 원칙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런 식으로 아이덴티티의 교환 경쟁 전복 등이 개인적인 것이 아닌 소사이어티 내에서 가정 내에서 관계 내에서 굉장히 다양한 레이어로 펼쳐지는 것들을 즐겨 다루고, 그럴 때 이 조셉 로지 감독의 뛰어난 비쥬얼 스토리텔링이 빛을 발했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관객1: 다른 영국배우들 연기는 자주 봤지만 더크 보가드라는 배우는 거의 못 봤는데 오늘 보니까 연기 매우 잘 하더라. <나이트포터>에 출연한 걸로 아는데 그 외에 다른 출연작과 경력에 대해서 알고 싶다.

김영진: 제일 유명한 출연작은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거기서 시한부로 죽어가는 말로를 연기한다. 사실 저런 식의 마스크와 감성을 갖고 있는 배우는 흔치 않았던 것 같다. 남자지만 굉장히 섬세한 모습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굉장히 악하게 보일 때와 굉장히 연약하게 보일 때가 둘 다 어울리는 그런 유형의 마스크와 연기력을 보여 준다. 조셉 로지 감독의 영화에 많이 출연 했다. 더크 보가트는 로지의 사회주의 사상에는 절대 공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너무 헌신적으로 잘 해 주니까 조셉로지가 너무 고마워했다는 후문이다. <베니스에서 죽다>는 말러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비스콘티 이야기이기도 하고, 자기가 많이 투사된 거다. 두 개의 자아가 있는데 그 영화에는. 토마스 만의 소설 그대로 말러가 주인공이지만 비스콘티도 영화 찍을 때, 쇠약해서 휠체어에 타고 연출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 보면 줌이 굉장히 많은데 예전 같으면 트랙으로 다 했을 것을 앉아서 했기 때문에 줌으로만 당겨 찍었다더라. 더크 보가트가 연기 하는 인물은 늙은 말런데 페스트가 창궐하고 있는데 베니스와 와서 휴양을 한다. 그러다 너무 아름다운 미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그저 먼데서 보기만 한다. 말 한마디도 못하고. 그게 영화의 내용이다. 그 생명력에 반하는 거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이 바닷가에서 역광을 받으면서 서있는데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를 보면서 눈을 감는데 해변 가에서 너무너무 잘 어울린다.

 

관객2: 거울이나 그림자 조명, 이런 기법을 얘기해 주셨다. 영화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게 사람의 신체 중에서 발이 에로틱한 분위기로 부각이 되더라. 신체 일부 중에서 왜 발이 이렇게 부각되는지 궁금하다.

김영진: 페티쉬라 한다. 신체 일부에 대한 패티쉬. 우리가 욕망을 느낀다고 할 때, 몸 전체로의 사랑이 아니라 어떤 인화점이 있지 않은가. 구두나 긴 손가락, 손톱만 보면 미치는... 로지 감독은 발에 대한 페티쉬가 있는 것 같다. 공중전화에서 베라에게 전화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들인데 발을 보지 않는가? 영화 처음 볼 때 관객들이 깜짝 놀라는데, 욕설을 퍼부으니까, 근데 이런 반응은 욕망을 느끼는 거에 대한 역반응일 수 있다. 바렛의 시점으로 본 그 샷이 있었기 때문에 비치라고 하는 것으로 그의 마음에 성냥불을 그은 것이다. 베라도 마찬가진데 그런 구도를 봤을 때 화면상의 논리나 전조로는 베라의 발 때문에 틀림없이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감독들은 패티쉬가 있다. 음악도 블루스와 재즈를 쓰고 가사도 퇴폐적이면서도 매혹적이다. 뭔가 영화 전체가 느낌이 관능적이다.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다루고 있는 주요 사건도 그것 때문에 다 사단이 일어나니까.

 

정리: 김준완(관객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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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남자> 상영 후 정의진 교수와의 시네토크

 

지난 4 8일 낮, 알랭 로브그리예의 <거짓말하는 남자>의 상영 후 상명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 정의진 교수와 함께 하는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소설가로 더 잘 알려진 알랭 로브그리예가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그의 문학 세계에 이어 필연적인 수순이었다고 정의진 교수는 말한다. 로브그리예의 문학 세계와 영화 세계를 넘나들며 누보로망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가 이루어진 시네토크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정의진(상명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로브그리예는 50년대부터 <지우개>, <훔쳐보는 사람>, <질투> 등을 통해 누보로망으로 통칭되는 흐름을 형성했다. 누보로망 작가군 중 누보로망이라는 타이틀을 자기 타이틀로 인정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그래서 별명으로 누보로망의 교황이라 불리기도 했다. 누보로망이 정말로 새롭게 제기되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로브그리예가 매우 급진적으로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대립구도를 그리는 것은 리얼리즘, 사실주의의 전통이다. 대략 2차 대전 이전까지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소설의 사실주의적 전통, 인물을 구성하고 사건을 만들고 서사를 만들 때 그것이 일정하게 현실의 어떤 측면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진리가 반영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에 대해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로브그리예는 실제로 과연 소설적 진실들이, 소설이 현실을 반영한다는 리얼리즘의 입장이 자명한가 묻는다.

 

소설 『질투』의 배경이 되는 해외 영토령 마르티니끄 섬, 그곳의 한 프랑스 중간 공무원이 보는 자기 방의 모습, 하얀 벽면을 그 방 안에 있는 모든 오브제들을 로브그리예는 지겨울 정도로 반복적으로, 세세히 묘사한다. 이는 철저한 사실주의적 태도다. 벽의 미세한 얼룩, 책상 위 물체의 각도 변화 등 아주 미세한 변화까지 일일이 포착해서 묘사한다. 그러나 읽어가다 보면 균열이 발생하게 되는데, 기억의 문제 때문이다. 벽의 자국이 있던 자리가 바뀌고 모양이 바뀌고 책상 위 물체가 놓인 위치가 다르게 묘사된다. 소설적 사실주의를 비판적으로 점검한다고 했지만 이분법적 안티테제는 아니다. 그의 태도는 어떤 사실주의자들보다도 사실주의적으로써 묘사의 과정에서 천천히 현실이 파괴된다. 아무리 현실에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주관성을 거세하고, 있는 현실을 사실대로 보려고 해도 무너지게 되는데 그 계기는 시간성이다. 시간이 진전되면서 포괄적으로 역사가 형성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명했던 것들이 무너진다. 그 과정에서 로브그리예의 소설적 묘사와 사실성, 소설의 시간성에 대한 의심이 나타난다.

 

누보로망의 태도는 어떤 것이 진실이냐고 할 때, 즉 소설이 언어를 현실로 반영하는, 특히 사실주의적 태도로 진실, 진리를 목표로 할 때 그것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에 대한 성찰이다. 로브그리예는 이를 실험적으로 흔든다. 그가 소설가일 때 표명한 입장은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감각적이고 구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의 소설의 근거로 삼는다. 자신이 묘사하는 대상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듯한 전략을 취한다. 그렇게 세세히 묘사를 하지만 결과적으로 역설에 도달한다. 분명한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대상이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문제는 자기 소설에서 분명한 진실들을 묘사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진실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출발점을 자신이 허문다. 여기서 문학적이고 이론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그의 소설은 비평가적 성찰을 배경으로 한다. 결과적으로 크게 제시될 수 있는 범주는 진실과 거짓, 실재와 허구다.

 

 

제목처럼 영화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선언하고 시작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감추고 게임을 하는 게 아니다. 장 루이 트렌티낭이 나치 군대에게 쫓기다가 총을 맞아 죽는다. 그런데 후에 툭툭 털고 일어난다. 철저하게 거짓말이라는 전제를 하고 시작하는 장치들이 여러 군데 있다. 제목이 거짓말하는 남자지만 엄밀히 따지면 영화라는 거짓말, 거짓말하는 영화가 근본적인 제목이 될 것이다. 이야기차원에서 아마도 2차 대전 시기 레지스탕스 활동을 이야기 소재로 삼는데, 진짜 레지스탕스 활동이 있었는지, 레지스탕스 영웅을 고발했는지, 암살했는지 등의 이야기가 자기가 유혹하려는 여자들, 대상에 따라서 순간 순간 다르게 만들어진다. 이야기가 덧씌워져 나중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인물 차원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가 거짓말인 것은 예를 들면 서사와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는 여러 장면들에서 알 수 있다. 장 루이 트렌티낭이 평소처럼 그 여관은 비어 있었다라고 이야기할 때 여관 1층선술집은 꽉 차 있고 장 로뱅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의 이야기 태도 역시 정확한 기억이 아니다.  서사 태도는 정확히 진실이라고 포착하기 어렵다.

 

물을 마시고 컵을 깨는 시늉을 할 때 실제로 컵은 존재하지 않지만 소리는 등장한다. 이미지와 음향이 일치하지 않고 대사와 이미지, 서사와 이미지가 엇갈리는 여러 장면들이 반복된다. 이는 뒤로 갈수록 심화된다. 일차적으로 인물의 거짓말은 매개이며 영화 자체가 거짓임을 보여주고, 근본적으로 이것이 허구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환기시킨다.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음향 효과로, 음향을 크게 하거나 명료하게 음향을 첨가하여 브레송의 영화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브레송에서는 화면과 소리들이 일치한다. 로브그리예는 영화가 음향에 의해 조직된다는 영화의 구성을 인정하는 한편 활용하는 방식이 엇박자로 이루어진다. 마리아라는 하녀가 빨래 집게를 집을 때 종소리가 들리는 것이 바로 그 예다.

 

장 루이 트렌티낭은 유희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거짓말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진실을 말하겠다고 하지만 그가 유혹하지 못한 여인을 유혹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진지하게 연기한다. 한 여자한테는 장 로뱅을 죽였다고 하고, 다른 여자한테는 그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혹에 실패하자 새로운 연기 연습을 시작한다. 혼신을 다한 거짓말은 마치 연기자가 혼신을 다해 자기 역할을 연기하듯, 거짓말이라는 삶을 연기하는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후반부에서 사실은 내 직업이 배우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삶에 대한 알레고리가 된다. 삶은 일정 부분 연기이기 때문이다.

 

윤리성에 대한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 뜬금없이 원점에서 다시 거짓말을 시작하고 끊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잇고 있다. 이야기의 즉흥적인 변형이 이루어진다. 그의 목표는 여자를 유혹하는 것이지 이야기의 일관성을 얻는 게 아니다. 결국 그것이 이 영화 전체의 서사 구조와 연관이 되고 일반적 서사 구조인 기승전결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시작하는 소위 현대적 구조를 보여준다.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결과적으로 현실이 다시 재구성된다. 만약 현실이 상당 부분 언어를 통해서 전달되고 구성된다면 과거의 어떤 역사적 사건, 레지스탕스 저항, 거기에서 영웅시 된 레지스탕스 영웅들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여기서는 아주 부도덕한 태도로 구성된다. 현실 역사를 언어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자명하지 않다면, 자기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매우 분명한 도덕적 정당성과 희생자는 분명한 진실인데 복수적인 관점이 있는 것이다. 하나의 단일한 이야기, 단일한 사실들을 부정해야 한다고 할 때, 역사를 다른 각도로 구성한다고 할 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신화다. 공식 역사에서는 마치 런던에 있는 드골의 일사 분란한 지휘 아래 전국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처럼 묘사되었다.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장 많이 참여하고 희생한 프랑스 공산당이 투쟁의 효율성을 위해 대표를 드골에게 파견하고 작전을 조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레지스탕스 운동은 사실상 자발적이고 지역적, 분산적이며 정당 초월적이었고 실제로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다. 또한 레지스탕스로 독일을 물리칠 수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 인들의 자존심, 연합국과 패전국에 자기 몫을 요구하기 위하여, 독일에 대항해 싸운 주체적이고 실질적인 군사력을 가진 국가라는 정당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레지스탕스 드라마를 만들고 나치 부역자가 레지스탕스로 위장되기도 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예민하게 제기되고, 역사적으로 레지스탕스를 건드릴 때 제기되는 이념적 문제다.

 

영화 속 시공간은 2차 대전 때 체코의 작은 마을로 쉽게 연상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매우 애매하다. 동네 모습이나 사람들은 동유럽이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약국의 간판에는 체코어와 프랑스어가 동시에 써 있다. 시공간을 흩트려놓고, 정확하게 어디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디도 아니지만 대단히 보편적인 장소가 됨으로써 어디에 국한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로브그리예의 50년대 소설에 그가 정치적으로 냉소적이라는 공통된 평가가 있다. 어떤 외적인 대상으로 문학 언어를 환원시키지 않으려는, 철저하게 문학의 자율성과 문학적인 이야기 구성 자체의 독자성을 급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매우 새로운 소설이라는 평가다. 블랑쇼는 결론적으로 윤리에 대한 급진적 거부로 보았다. 가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로브그리예의 여러 영화에서 여성의 육체, , 특히 사도마조히즘적인 성이 등장한다. 사도마조히즘을 해석하는 방식은 역설적이다. 육체적이고 감각적 진실, 성이 자명하다면, 기존의 일반적 가치관이나 진리와 대립하는 지점이 그것이라면, 역설적으로 진리를 벗어나는 지점, 가학적 지점, 존재 자체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감각적 실체, 특히 로브그리예 영화에서는 여성의 몸인데 이것은 진리 자체를 무화 하는 블랙홀 같은 것이다. 사도마조히즘을 이해하는 방식은 존재론적으로 진리의 무화지점으로서의 육체와 성이다. 도덕조차도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버린다. 결과적으로 대척지점을 놓으면서도 그의 영화가 이분법적으로 비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윤리의 부재로까지 해석하는 것은 무리인데 왜냐하면 영화 상당 부분 거짓말하는 남자가 장 로뱅의 환영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는 이념적 가치, 사회적 가치, 억압자에 저항하는 가치, 나치에 저항하는 정차사회적 가치를 상징한다. 그를 가치 있고 공적으로 중요하며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 로브그리예가 냉소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세기, 20세기 전반까지 소설은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에 걸치면서 일관되게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작품의 주제로 다뤘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사회비판적 작품이고 그 전통은 정통 문학에서 매우 길고 길다. 장 로뱅은 소설적 리얼리즘의 가치관과 태도, 사실과 실재성을 대표한다. 영화에서 강박적으로 거짓말하고 변주되고 죄의식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정도의 실재가 가정되어야 한다. 끝까지 영화 자체는 부정되지 않는 것은 장 로뱅이 있다는 것 그 자체다. 아무리 탈피하려고 거짓말을 하고 자기 자신까지 속인다 해도 그 존재는 계속 돌아오고 실제로 마지막에서 일어난다. 어느 순간 허구로 만든 인물이 나타나 무너지기도 하고, 결국에는 다른 인물을 뒤섞고 경계를 허문다. 그 자체가 없다거나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누보로망을 위하여』에서도 보면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냐 허구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은 사실주의가 아니라 사실성, 어떤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어떤 현실성이다. 궁극적 목표는 단순한 허구나 진실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묻고 그 자명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로브그리예의 영화가 있다.  

 

로브그리예는 자기 영화의 시나리오를 몇 편 출판했다. 사물의 존재, 즉각적으로 존재함이 사유의 출발점을 보다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미지지 언어는 아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볼 때 그가 영화를 시도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그는 자기 시나리오는 작품이 아니라 단지 책이고 작품은 영화라고 했다. 그는 영화를 제작한 이후에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보완했다.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영화를 만들기 위한 사전적 작업이다. 그런데 일부러 책을 내기 위해, 영화라는 결과물과 대조하여 만들어진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때 그 텍스트의 위상은 어떤 것인가. 그럴 때 영화와 문학, 언어와 이미지라는 근본적 표현수단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영화는 즉각적이고 시각적인 감각이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것은 언어적이고 논리적인 구성 작업이다. 반대로 문학은 결과적으로 다른 순서, 상대적으로 일정한 논리성과 가시적 의미를 가지지만 그것을 통해 지각이 형성된다. 여기서 교차점이 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내레이션, 서술, 묘사라는 문제를 문학적 중심 주제로 삼은 로브그리예에게 영화는 그가 시도할 가장 적절한 매체였다.

 

정리: 손소담(관객에디터) | 사진: 최미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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