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QR 코드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극장 직원들이 해야할 일도 늘어나고 있다. 요즘 우리들은 ‘QR코드 체크인’을 실시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개인 정보가 포함된 QR코드를 생성한 다음 극장에 들어가기 전 내가 이곳에 왔다고 ‘신고’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확진자가 극장에 왔을 경우 다른 시민들에게 빨리 연락을 취해 전염병 전파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관객으로서는 믿을 만한 안전 장치가 하나 더 생긴 셈이며, 직원 입장에서도 이름과 연락처, 주소를 일일이 종이에 쓰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간편한 방법이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는 관객이 많았지만 이제는 다들 알아서 척척 등록하고 들어가신다. 하지만 극장문 앞에 앉아 관객을 안내하다가 QR코드 등록이 극장을 찾는 행위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그렇듯 나도 익명의 상태로 도시를 돌아다닌다. 어쩌다 아는 사람과 우연히 만나더라도 그건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혼자 있는 나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고, 이 익명이란 조건은 적지 않은 편안함을 준다. 내가 극장 주변의 종로3가에 있을 때보다 홍대나 강남 같은 다른 낯선 동네를 돌아다닐 때 더 느슨해지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즉 누구도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조건.

극장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아닌)극장에 혼자 가서 표를 끊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서 불이 꺼지길 기다렸다가 영화를 보고, 영화가 끝나면 다시 극장문을 나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아는 사람을 누구도 만나지 않고 ‘nobody’로 남아 있는 건 꽤 기분 좋은 경험이다. 심지어 남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영화를 봤다는 즐거운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물론 내가 어디서 뭘 했는지는 교통카드 정보와 카드 결제 내역에 고스란히 남아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그냥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극장은 익명의 즐거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 중 하나다.

그런데 이제 한동안은 그런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내 이름과 생년월일, 거주지, 연락처, 이동 동선 등이 포함된 QR코드를 등록하고 영화를 보러 들어간다. 물론 극장 직원과 다른 관객들은 여전히 나의 존재에 무심하겠지만, QR코드를 스캐너에 찍는 순간 내 안에서 은밀하게 시작되던 극장 방문의 즐거움은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특정한 시간에 이 장소에 있었다는 흔적을 남겨야 하며, 언젠가 누가 그 흔적을 좇아 나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리 혼자 얌전히 극장을 찾아도 나는 더이상 익명의 관객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어쩌면 곧, 여기에도 익숙해질 것이다. 오히려 아무 정보도 남기지 않고 극장에 들어가는 걸 불안하고 낯설게 느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만 여전히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 가운데 그 변화의 과정을 직접 겪고 있는 극장 직원으로서 이런 기록 하나는 짧게 남겨둬야 할 것 같았다. 

김보년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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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나부아의 유령>

 

지난 2월 26일, 서울아트시네마는 2주간 휴관에 들어갔다. 3일 전인 2월 23일, 정부가 코로나 19 바이러스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서 감염병 확산 차단을 위해 다중 밀집 시설 이용 제한과 집단 행사 자제를 권고했기 때문이다. 극장 휴관이 의무 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1월 25일에 코로나 19 확진자가 방문한 멀티플렉스 극장이 임시 휴관에 들어가면서, 영화관은 사람들에게 위험한 장소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극장 관객수가 급감했다. 2월 한 달간 관객 수가 총 734만702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 감소했다. 예술영화관 관객 수도 지난해 대비 60~80% 감소했는데, 확진자가 발생한 사례는 없다. 극장 휴관은 극장 스태프와 관객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한 선택이다.

3월 초 개최 예정이던 ‘브루노 간즈 회고전Bruno Ganz Retrospective’은 일치감치 6월로 연기 됐는데, 조금 전 나는 이 기획전을 연말로 연기하자는 메일을 읽고 있었다. 최근 해외 관계자와 주고받는 메일 끄트머리에는 ‘Stay safe and healthy’라는 문구를 늘 적고 있다. 오늘의 상영작 대신 극장 입구 전광판에 ‘Stay Home Safe’ 라는 문구를 내걸고 문 닫은 해외 극장도 있다. 지난 세 달 동안 ‘극장에 영화 보러 오세요’라는 말은 금지어가 됐다. 아직 확실한 답변이 없지만, 기다리는 7월의 행사도 같은 이유로 취소되거나 연기될 것이다. 한국의 방역이 성공적이라 해도 팬데믹의 폭풍을 홀로 뚫고 나아갈 수는 없다.  

예정한 두 주의 휴관을 끝내고, 3월 중순에 동료들과 재개 여부를 논의했고, 극장 문을 다시 열었다. 당장은 코로나 19 감염확산으로 극장에서 상영 기회를 놓친 한국 영화와 수입 작품을 상영했다. 다행히, 4월 중순부터는 계획한 ‘존 카사베츠 & 셜리 클라크 회고전 John Cassavetes & Shirley Clarke Retrospective’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셜리 클라크의 네 작품은 디지털 상영본을 모두 이메일로 전송받았다. 주기적인 방역, 입장시 발열 체크, 극장 안에서의 마스크 착용 권고, 좌석 간 거리 두기로 앞뒤 좌우 한 칸씩 자리를 비운 매표를 시행하고 있다. 2미터 거리 두기를 유지하기 위해 200석 극장에서 실제로는 70석 좌석만 판매한다. 반응은 제각각이다. 얼마 전, 존 카사베츠의 <영향 아래의 여자こわれゆく女>(1974)를 보러온 커플은 서로 떨어져 앉아야 한다는 말에 난색을 보였다. 자주 오는 한 학생은 좌석 간 거리 두기로 전보다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 했다. 그런데 이렇게 빈좌석이 많아도 괜찮냐 말하고는, 내 안색을 살핀다. 사람이 적어서 나도 편하고 좋아, 라고 말했다. 

빈 말은 아니다. 나 또한 사람이 적은 큰 극장을 좋아 했다. 서울 근교의 허름한 극장에서 <동사서독楽園の瑕>(1994)을 서 너 명의 관객과 봤던 기억이 있다. 커튼이 올라가고 종을 울려서 영화 시작을 알렸던 500석이 넘던 지금은 사라진 극장이다. 두기봉ジョニー・トー의 <익사일エグザイル/絆>(2006)을 노부부와 이십 대 젊은 친구 한 명을 포함해 네 명이 봤던 날도 있다. 추운 겨울, 난방이 잘 안되는 450석의 극장에 열 명 남짓의 관객들이 거리를 두고 비스콘티ルキノ・ヴィスコンティ의 <백야白夜>(1957)를 보던 날의 차가운 기운이 아직도 피부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재작년 여름, 일주일 간의 프라하 여행길에서 들린 ‘키노 루체르나 Kino Lucerna’에서 나는 스무 명 정도의 관광객들과 <맘마미아 2>를 함께 봤다. 1907년에 개관한 이 아름다운 극장에서 당시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다. 앞 자리의 관광객 몇 명이 아바의 유명곡이 흘러 나올 때마다 객석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지켜 봐야 했는데, 꽤 유쾌한 기억으로 남았다. 

빈 자리가 많았던 극장의 기억은 이렇듯 내게 오래 남았다. 영화 체험이 꼭 그 자리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것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좋은 기억은 부재한 사람의 영혼까지 포함한다. 뒤셀도르프에서 보내온 후배의 풍경 사진 아래 ‘당신이 여기 없어서 너무 아쉬워’라는 문구처럼 말이다. 진정한 영화적 체험은 동반, 혹은 동반의 결여라는 사건이다. 빈 좌석, 결여의 관객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극장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극장의 빈자리는 정말 비워진 것이 아니라, 이미 떠난 사람들, 혹은 아직 거기에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アピチャートポン・ウィーラセータクン의 ‘유령 관객'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날, 유랑극단의 영사 기사가 수수께끼 같은 남자에게 고용되어 외딴 암자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현지에 도착한 영사기사가 스크린을 설치했을 때,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조금씩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한다. 상영 내내 그들은 나란히 가만히 앉아 있고, 서로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영화가 끝나자 일어서 훌쩍 떠나버린다. 다음 날, 영사기사는 자신이 묘지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가 고용된 것은 영혼들에게 영화를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빈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유령들로 가득하다. 아니, 유령들도 영화를 보고 싶어한다. 요즘의 빈자리를 보고 있으면 그런 유령 관객들이 생각난다. 

코로나 19 감염확산으로 극장들이 휴관하면서 위기에 처한 극장을 후원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극장이 휴관중이라도 미리 표를 구매하기도 한다. 영화가 보고 싶지만 불안한 마음에 극장에는 가지 못하고, 대신 후원하는 마음으로 표를 예매하는 이들도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한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 라는 커피 기부행위가 생각난다. 이는 주문해 놓고 마시지 않는 커피, 혹은 맡겨 둔 커피를 말한다. 이런 기부의 저변에는 커피를 마시는 일이 인류애, 우정 등과 같은 사람 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인식이 있다. 친구와,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연대가 없다면 커피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 또한 그와 마찬가지다. 지금 극장에 관객이 오지 않아도, 옆 자리에 지금 사람이 없어도, 빈 자리를 생각하며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시네마 소스페소 cinema sospeso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영화표를 구매했지만, 정작 극장을 찾지 않는 행위를 ‘영혼 보내기’라고 부른다.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 독립 영화의 흥행을 위해, 여성 영화의 선전을 기대하며 관객들이 이런 응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말 그대로 좌석은 비어 있는데,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영혼이 영화를 보는 셈이다. 이를 새로운 관객 운동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고, 진정한 의미의 관람이 아닌 소비자 운동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휴관한 극장을 후원하기 위해, 빈 좌석을 채우기 위해 표를 구매하는 행위가 일종의 ‘영혼 보내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관의 빈자리는 그래서 곤경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다. 대면의 타인을 넘어서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미지의 타인과 교류하기 위해 빈자리를 생각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빈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를 영혼으로 채워야 한다. 좋은 영화관은 빈자리의 영혼의 무게로 살아남는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

* 이 글은 일본의 Web Magazine「Filmground」 5,6월호 '영화관'에 관한 특집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www.filmground.net/posts/2020/5/6/cinema-sospe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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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영화광이나 감독 지망생들과는 다르게 늦게 영화에 빠졌다. 열아홉 살 때 수능 끝나고 논술 준비하러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돈 주고 영화를 봤다. 그때 <판의 미로>를 보고 영화의 마술 같은 힘에 빠졌고 영화감독이란 직업에 대해서 호기심과 동경이 생겼다. 


그 땐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나이도 먹고 영화를 보기 시작해선지 영화를 볼 때도 남들이 안 보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진 못해도 보는 취향에서만큼은 개성 있고 싶어서였나보다. 여러 예술 영화관을 전전하던 끝에 시네마테크를 방문하게 됐고 이곳을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관객회원으로 등록해 연회비를 내기에 이르렀다. 


시네마테크를 자주 찾은 건 아니어서 발권 받을 때마다 할인 받은 액수가 연회비에 못 미치는 사태를 초래했다. 하지만 시네마테크를 유명한 감독님과 배우 분들이 찾는다는 사실에 별 이유 없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멀티플렉스와 다르게 매일 상영하는 영화도 다르고 그 영화들도 하나 같이 특이해서 멀티플렉스에선 조조로 영화를 보고 점심 조금 지나서는 일반 예술 영화관엘 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턴 시네마테크에서 두 편 연속해서 영화를 보게 되는 신기한 날도 있었다. 


그렇다고 시네마테크에 매일 같이 드나든 건 아니다. 내가 인생 경험이 별로 없어서거나 아니면 영화를 보는 데도 순서가 있어서인지 지금 당장엔 내 체질에 맞지 않는 영화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어떨 때는 몇 달 만에 한번 시네마테크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영화를 열심히 보던 중에 시네마테크에서 에디터로 일하게 됐다. 그래서 반강제로 영화를 보고 리뷰도 쓰고 있다. 친구들 영화제 같은 경우에는 감독님들의 주옥같은 말들을 유심히 듣고 성경이나 불경 말씀인양 정성스레 글로 옮기고 있다.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 기간에 진행된 이벤트 중에 현장 감독님들의 수업을 듣는 시네클럽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 <기담>을 만든 정가형제 감독님은 “시네마테크에 다니지 마라. 나처럼 된다.”고 한 박찬욱 감독님의 농담을 들려줬다. 이 말은 감독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크게 와 닿았다. 시네마테크에 다니면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남들과 다른 시선과 감성을 지니게 된다. 이건 이 세상의 적지 않은 곰들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쑥과 마늘을 부지런히 먹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용혁: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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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취향으로 사람을 가늠하는 건 오만하고 어리석은 시도지만 어떤 영화들은 분명 그의 성격을 짐작할만한 특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테면 저는 일전에 좋아하는 감독으로 웨스 앤더슨과 알렉산더 페인을 꼽았다가 웃음기 어린 걱정과 우려의 질문을 받았었거든요. “아니, 남자친구도 희원씨가 그런 거 좋아하는 거 알아요?” 과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 같아도 그런 여자랑 연애는 하기 싫겠다. 왠지 영 서투를 것 같잖아요.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이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영화를 보고나면 "넌 델핀이 맘에 들어?"(녹색광선)라던가, "레네트랑 미라벨 중에 누가 마음에 들어요?"(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같은 단순한 질문을 심리테스트 하듯 가벼이 건네게 되거든요. 만약 상대가 이 질문에 델핀을 상냥히 연민하고, 레네트의 완고함을 귀엽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저로써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고 한결 솔직해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녹색광선>을 마침내 극장에서 보고나서는 예기치 못하게 부끄러움에 빠져들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들떴었어요. 로메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순수하고 다부지고, 예민하면서도 건강한 폴린느 소녀(해변의 폴린느)이지만, 가장 애틋하고 아끼는 인물은 아무래도 <녹색광선>의 델핀이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보면 어깨로 걸어 다니는듯한 마르고 창백한 파리지엔느. 그녀가 예민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거나, 반쪽짜리 미소를 띤 채 어정어정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저 또한 입은 웃고 눈썹은 우는 이상한 표정으로 ‘델핀, 난 네 맘 다 알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리거든요. 그런 그녀가 마침내 행복을 엿보는 순간을 극장에서 둥글게 웅크리고 보려니 기뻤습니다.

헌데 기쁨 대신 부끄러움이 찾아 온 까닭은, 관객들이 너무 웃었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누가 뭐래도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방구석에서 혼자 모니터를 통해 델핀을 볼 때와는 달랐어요. 울먹이는 델핀의 모습 뒤에 웃음이 터져 나올 때 저는 정체불명의 당혹감을 느끼며 따라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왠지 일부러 소리 내어 웃었어요. 그녀를 보며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다는 걸 들키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돌아오는 길에 그 까닭을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제가 들통나버렸다고 느꼈던 것이었어요. 당연히 전 델핀이 아니지만, 그 웃음들이 어쩐지 제 은밀한 눈물들을 겨냥한 것처럼 느껴졌던 거예요. ‘혼자 보러 가길 잘했어.’ 극장에서 사람들과 로메르 영화를 보는 일에는 마음의 음지를 들킬 위험성이 있단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재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스펙터클도 못 건드리는 마음의 가장 구석진 곳을 찌르는 로메르 할아버지의 네모반듯한 스크린이 주는 스릴! 그래서 말인데,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날에 가장 만만찮은 아가씨가 아직 한 명 남아있거든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결혼>의 고집불통 사빈느. 이 아가씨가 부리는 억지를 보면서 각자 자기 도량의 깊이를 재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담하건데 착각하는 그녀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민망함에 두 눈 질끈 감는 관객도 분명 있을 거예요. 괜찮아요. 부끄러워할 것 없습니다. 앞 줄 모퉁이에서 입술을 깨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관객도 분명 있을테니까요. 저 말입니다. 쯧쯧. 상냥한 관객 여러분은 못 본 척 해주시리라 믿으며 이 글을 마칩니다. (백희원 서울 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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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객 2011.03.01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녹색광선 보면서 저도 비슷한 기분이었어요..

    • 희원 2011.03.17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뒷북 리플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의 말이 없으면 좀 민망할 것 같았는데요 히히 :)

  2. 관객2 2017.09.18 1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렉산더 페인을 아주 좋아하는 팬입니다. 영화일을 하고 있구요. 알렉산더 페인에 대해 구글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이 글을 봤습니다. 아니! 알렉산더 페인을 좋아한다고 했다고 웃음기 어린 걱정을 받았다고?! 미리보기 글에서 분개해하며 들어왔네요. ㅎㅎ 2011년이면 디센던트 개봉할 땐데... 이때도 엄연히 거장 축에 드는 감독 아닌가? 영화적 톤이 어떤 서투름을 연상시킨다는 건가요...? ㅎㅎ 물론 진지하게 파고들 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ㅎㅎ 동의할 수 없슴다


‘영화는 만병통치약이다.’ 내게 누군가 영화의 정의를 내리라면 이렇게 얘기할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상당히 영화를 즐겨봤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가서도 여가시간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매일 두 세편의 영화를 빌려서 봤었다. 하지만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로 인해 어느 순간 영화의 매력에 푹 빠졌고 거의 매일 영화관을 들락거리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내겐 영화 보는 일이 제일 우선이 된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크게 와 닿았고, 지금은 볼 수 없는 영화들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렇게 서울아트시네마에 조금씩 가까워졌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8살 때의 일이다. 고전영화와 예술영화를 주구장창 틀어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빨리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낙원상가에 그런 극장이 있다니!’ ‘책에서 보던 고전을 프린트로 볼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 행복했다. 얼마 후, 영화관에 처음으로 가던 날. 극장을 가기 위해 여러 국밥 집을 지나쳤다. 그리고 옥상에 도착하자, 허리우드 극장과 그 옆의 서울아트시네마가 나를 반겼다. 있는 위치마저 ‘참 영화적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자주 가던 멀티플렉스와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 온 것 같았다. 요즘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좌석은 많으나 소수의 관객들이 있을 뿐. 그때는 몰래 자신의 소중한 영화 서재에 와서 조용히 영화를 음미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곳,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관객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 결과가 이렇게 이어져서 기쁘게 지내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곳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과 영화를 보고 느끼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모르겠다.


영화는 대중과 가장 가까이 접해있고,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과 같은 감독이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평단과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키고 사회를 은유 하는데 이르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를 프린트로 볼 수 있는 시네마테크는 그 어떤 학교보다 좋은 가르침을 주는 곳이다. 내가 가고 싶은 때에 찾아가도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그런 곳이다. 영화라는 약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면 시네마테크는 좋은 약만 지어 관객들에게 고루고루 나누어 주고 있다. 이 곳이 더 좋은 집에서 오래도록 관객들과 함께했으면 좋겠다. (정태형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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