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들의 저녁식사>로 데뷔한 임상수 감독 편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 그들의 데뷔작을 만나다’라는 제명으로 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 4인의 데뷔작을 상영하고 매 저녁마다 관객과 아카데미 출신 선후배 감독들이 함께 만나는 특별 대담 행사를 가졌다. 마지막 날이었던 19일 저녁에는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상영한 후, 임상수 감독과 그의 후배인 <효자동 이발사>의 임찬상 감독, <회오리 바람>의 장건재 감독이 참여하여 대담을 벌였다. 며칠 전 여섯 번째 연출작인 <하녀> 촬영을 끝냈다던 임상수 감독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입담이 눈길을 모았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 데뷔작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을 간단하게 들려 달라.

임상수(영화감독): 사실은 <눈물> 시나리오를 먼저 썼는데 투자자, 제작자들로부터 거절당해서 잠시 좌절의 시기를 보냈다. 그때 극장에서 혼자 <초록물고기>를 보면서 성묘사가 강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처녀들의 저녁식사>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독서와 취재를 했다. 자기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여자들이 이 영화를 많이 비난했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여자들이 쓴 책, 여자들이 고백한 것들에 대해서 취재를 상당히 많이 했었다.

임찬상(영화감독): 영화를 다시 봤는데 지금 봐도 그렇게 촌스럽거나 담론이 뒤떨어진 영화가 아니었다. 감독님의 다른 영화와 비교해 봐도 이 영화가 고유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계사회를 추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당시는 불편한 면도 없지 않았는데 오늘 다시 보니 너무 좋다.

장건재(영화감독): 뒤에 만드신 <바람난 가족>이 많이 생각났다. <바람난 가족>이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눈물>을 거치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임상수: 나는 뜻대로는 안 되지만 포부, 야심이 큰 사람이다. 내 영화가 한국 사회 젊은 남녀들의 성생활 패턴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우기고 싶다. 나는 상업적으로 아슬아슬한 감독이고 거대한 혁명적인 영화를 찍는 감독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영화를 찍어보려고 했는데, 결과는 잘 모르겠지만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 생각한다. 가령 어린 여자들이 내 섹스는 무엇이고 내가 상대할 남자의 섹스는 뭐냐를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면 더 이상의 영광은 없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꿨던 거다.

 

장건재: 당시 배우들도 이런 연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도 인물에 밀착되어 있고. 또한 당시 진희경 씨나 강수연 씨 같은 경우 자기 위치를 갖고 있었던 여배우 같은데, 프로덕션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듣고 싶다.

임상수: 진짜 어려웠다. 여배우들이 옷을 벗어야 했는데, 제대로 된 작품에서 벗으면 괜찮지만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그게 제대로 된 작품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불안해했다.

 

관객1: 정작 담론은 여성의 입장에서 얘기하고 있지만 여자들이 대상화된다는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신선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재미있게 봤다.

임상수: 여성을 대상화했다는 비판은 영화를 찍었을 때부터 들었는데,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육체를 찍기 위해서도 대단히 노력했다. 그런 비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김성욱: 노출은 약한데 카메라 움직임이 의식적으로 가릴 수밖에 없는 위치로 이동하고, 그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검열이나 영화를 찍는 환경이 그 정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점들이 더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임상수: 영화를 완성했을 때 공연윤리위원회에서 심의필이 안 나와 문제가 되었다. 위원회를 찾아갔는데 이른 아침이고 아무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기 때문에 (웃음) 제작자였던 차승재 대표와 함께 벤치에서 술이 덜 깨 자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학생들이 고다르에 대해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더라. 상당히 미묘한 경험이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비디오 출시되었을 때 멋대로 편집된 경험도 있고. 사실 오늘 내가 완결한 것과 얼마나 다른 판본이 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게 한국 사회에서 사는 슬픔 중의 하나다.

 

관객2: 연구를 많이 하셨다고 했는데, 기존 영화들도 많이 연구하시는지. 그리고 야망이 크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야망을 다하신 영화를 만드셨는지 궁금하다.

임상수: 예술가들은 다른 예술가들을 베끼는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들키지 않고 베끼는가가 관건이다. 나는 영화를 베끼지 않는다. 야망이나 야심에 대한 얘기는 간단한 거다. 나는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어떤 사회적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제 작품이 예술 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겠지만 위대한 예술 작품이란 당대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위대한 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한 발 끼고 싶은 욕망이 있다.

 

장건재: 혹시 필생의 프로젝트가 있으신지.

임상수: 나는 사회적인 베이스를 갖고 계속 작품을 찍어왔는데 이제는 한국 사회에 대해 그만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너무 뻔하기 때문에. 한국이란 굉장히 작은 나라인데, 거기서 태어난 예술가가 세상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는 게 정답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얘기를 해보려고 꿈틀거리고 있지 않나 싶다.
(정리: 홍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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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 총동문회가 주최하는 포럼이 열렸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토픽으로 열린 이날 포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편장완 교수가 사회를 맡고, 명지대학교 영화과 황규덕 교수, 건국대학교 영화과 송낙원 교수, 계원조형예술대학교 이용배 교수 등이 발제자로 나섰으며, 영화계 원로 하명중 감독과 영화평론가 정성일,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원래 일정은 2시간여 동안 1부 발제, 2부 토론 시간으로 나눠 진행키로 했으나 발제에 앞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이 현 영화아카데미 문제에 대한 영진위의 입장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먼저 발언을 시작했다. 조희문 위원장은 “공공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영화인력 양성을 담당하고 있는 아카데미의 역할과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면서, “현 문제에 대해서 영진위는 아직 아카데미를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거나 사업을 발표한 적이 없고 공석으로 되어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이 곧 선임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정치적인 시각에서 과거의 사례를 갖고 예단하지 말 것을 주문했는데, 조희문 위원장의 발언이 마무리될 무렵, 이용배 교수는 지난해 11월 11일 주무장관 업무보고서를 인용해서 조희문 위원장이 기능 축소와 재교육 중심으로 가겠다고 보고했던 것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날 포럼은 발제에 앞선 토론장 분위기로 흘러갔다. 조희문 위원장은 2012년 영진위의 부산 이전을 앞두고 기획재정부 차원에서 영화아카데미의 잔류 조건으로 영화인 재교육 중심으로의 기능 개편을 요구했다며 업무보고를 그렇게 했더라도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조 위원장의 발언으로 불거진 토론 과정에서는 내년도 신입생 모집 요강도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영화아카데미가 교육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었고 조희문 위원장은 현재 상황에서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며 (영화아카데미에 대하여) 학교라는 표현은 안 썼으면 좋겠다고 말해 토론자들과 청중들의 반발을 샀다. 객석에 있던 권칠인 감독도 조희문 위원장에게 영화아카데미의 현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으며, 조희문 위원장은 사회, 발제, 참석자 등이 영화아카데미 중심이라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냐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희문 위원장이 자리를 뜬 후 먼저 황규덕 교수가 ‘공공 영화창작 교육의 한 모델로서,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역사와 성과’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로 송낙원 교수가 ‘영화창작교육 발전을 위한 공공부문의 고유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송낙원 교수는 홍콩과 일본 등의 영화 산업이 쇠퇴하고 있는 요인으로 국가 차원의 인재 양성 등한시를 들면서 영화아카데미를 지원하는 것이 중복 투자라는 논리를 비판했다. 송낙원 교수는 또한 영화아카데미의 개편과 축소 주장은 현 정권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음을 밝혔다. 이어서 발제한 이용배 교수도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영진위로부터의 독립과 국립영화학교로의 발전을 주장했다.

 

10분간의 휴식 시간에 이어서 진행된 2부의 토론에서 최문순 의원은 먼저 정권이 한국영화아카데미 운영에 간섭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아카데미가 스스로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기 위해서 국가 기관 내에서 오픈 유니버시티 혹은 실험 대학처럼 공공부문으로 옮겨가야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정성일 평론가는 또한 한국영화아카데미와 영상원의 공존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명중 감독은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 문제를 갖고 왜 영화아카데미를 없애면 안 되는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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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용 식탁>으로 데뷔한 이수연 감독 편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 그들의 데뷔작을 만나다’라는 특별전이 열리는 가운데 매 저녁마다 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과 관객이 함께 만나는 특별 대담행사가 진행중이다. 사흘째를 맞은 18일 대담에는 <4인용 식탁>이 상영된 후, 이 영화로 데뷔한 이수연 감독과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의 모지은 감독, <장례식의 멤버>의 백승빈 감독이 함께했다. 앞서 진행된 한국영화아카데미 포럼으로 인해 상영과 대담이 다소 늦어졌지만 세 감독의 열띤 이야기가 오고 갔던 흥미로운 시간이었던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공포영화를 잘 안보는 편인데 영화 보고 나서 특이한 느낌을 받았던 영화 중 하나였다. 2003년에 개봉했으니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의 영화인데 간단하게 당시 상황을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다. 각본도 직접 쓰셨던 것 같은데.

이수연(영화감독):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충무로에 대한 욕심이 있지 않나. 대중예술과의 접점을 가지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고 시나리오는 오래 전에 썼는데 영화화 당시에도 상업적인 영화에 대해 갈등했었고 데뷔작은 이 영화였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직접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영화중에 나오는 아이들이 지하철에 잠들어있는 장면부터다. 96년도에 실제 자기 아이와 이웃의 아이를 전부 창에서 떨어뜨려 죽인 사건이 있었고 그걸 기억하다가 두 이미지가 만나면서 이야기진행이 된 거다.

 

모지은(영화감독): 처음에는 여성 감독의 공포영화고 아기라는 소재가 등장하는 지점에서 전형적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관객들에게 시비를 거는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진실을 갖고 여러 사람이 대면하는 진실을 파악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충격적인 던지기를 하고 있더라.

백승빈(영화감독):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참 보기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들이 너무 멋지더라. 원치 않는 소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소통하지 못하고 벌어지는 진지한 이야기처럼 보이더라. 감독님이 학교를 졸업하시고 상업영화 첫 데뷔작을 찍을 때 어떤 고민을 하고 찍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상업영화로서는 좀 불친절한 영화라는 생각도 드는데.

이수연: 그런 고민은 오히려 지금 더 하고 있다. 깨지고 나서 불친절하다, 제정신이냐는 이야기들, 심지어는 영화인모임에서 면전에 대고 모욕을 주는 일도 당하면서 이게 큰 돈 쓰시는 분들에게 위험한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투자사와 제작사 등에서 추를 맞추는 게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관객1: 이 이야기가 오이디푸스이야기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숨기고 있다가 사실을 깨닫고 파멸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그걸 아파트와 유리창의 프레임으로 풀어내는 게 재밌다. 지하철의 빵가루는 헨젤과 그레텔도 떠오르게 하고. 영화를 보면서 놀랐던 건 편집을 통해 전혀 다른 부분이 보여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회면 등의 신문에서도 개봉 당시에 여러 가지 반응들이 있었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이수연: 트럭에 아이가 깔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 구성을 지금 보는 형태가 아니라 들어오는 트럭의 뒷바퀴, 아이의 뇌, 뇌수로 클로즈업해서 들어갔다면 그건 명백하게 선정적이다. 정확하게 영화적 표현에서의 선정성과 선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 기준이 있었기에 이걸 만들었고 그래서 신경 쓰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썼을 때가 1999년 말이었는데, 바로 전에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 붕괴 등으로 사람이 죽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70년대 고도성장을 하겠다고 상처를 대충 넣고 발라버리는데 그게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걸 표현하고 싶었다.

 

관객2: 영화에 무속적인 부분이 있다. 무당이 어머니이고 양아버지가 목사다. 그 와중에 정 연이 나타나고 귀신들을 보고 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삶의 균열이 생기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불신지옥>과 엮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도 생각해본다.

이수연: 한국사회에서 기독교가 그런 가정, 민간에서 믿어지던 것들을 배척하는 형태의 종교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근대 내지 현대적인 것의 대립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그걸 선택했다.

 

김성욱: 결혼을 앞둔 남자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 새 여자의 등장 등 다채로운 선 들이 많은 영화고 카메라의 움직임에서도 그런 점들이 보였다. 대중영화라는 건 대중성의 80퍼센트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있는데 이 영화에는 10퍼센트가 8개로 배치되면서 독특한 작용을 하는 것 같았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신 감독님들과 관객 분들께 감사드린다.

(정리: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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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풍금>로 데뷔한 이영재 감독 편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 그들의 데뷔작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4인 감독의 데뷔작이 상영되고 있다. 또 매 저녁마다 ‘우리는 어떻게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첫 영화를 만들 수 있었나?’라는 주제로 영화를 만든 감독과 아카데미 선후배 감독들이 함께 참여하는 특별대담 행사가 진행 중이다. 그 둘째 날, 이영재 감독의 데뷔작 <내 마음의 풍금>이 상영된 후,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이영재 감독과 그의 후배인 <사과>의 강이관 감독이 조촐하고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영재 감독은 현재의 관객들이 10년 전 영화의 리듬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며 관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싶어 했고, 관객들은 열띤 질문으로 그에 답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영재 감독님은 영화아카데미 3기로 알고 있다. 나이가 그렇게 안 들어보이시는데, 6.25 끝나고 나서 태어나셨다. 영화의 배경을 잘 기억하시는 게 이해가 된다. 꽤 오랜 시간 이 작품을 준비하셨는데, 그 과정을 듣고 싶다.

이영재(영화감독): 당시는 10년 정도 도제 시스템에서 일하곤 했다. 지금은 독립영화를 만들려고 하면 지원해 주는 곳도 많지만, 그 당시에는 몇 사람의 유력한 사람들의 지원 없이는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관객들의 정서에 비해 느린 영화다. 지금의 관객들은 그 때보다 더 감각적이고 감내할 수 있는 편집의 리듬이 현재와는 많이 다를 텐데, 그게 궁금하기도 하다.

 

관객1: 리듬이 저랑 너무 잘 맞았고, 재미있었고, 감정이입이 잘 됐다. 영화를 보면서 특히 좋았던 게, 아역들이 연기를 너무 잘한다. 군중 숏이나 운동장 장면들이 너무 화사하고 예쁘게, 티끌 하나 없는 것처럼 맑게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저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재: 애초에 시류를 타지 않는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어울려 살며 다큐멘터리처럼 찍지 못해 아쉽지만, 아이들이 참 사랑스러웠다.

 

관객2: 강원도 사투리가 안 나와서 의아했다.

이영재: 전라도에서 대부분 촬영했기 때문에 전라도 아이들에게 강원도 영동 방언을 구사하게 하는 것은 무리라 그 부분은 포기했었다. 사실 아쉽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편을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서는 영동 방언을 잘 써보려고 생각중이다.

 

관객3: 이렇게 예쁜 영화를 데뷔작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있는지.

이영재: 홍연이라는 캐릭터의 순수한 열정, 순진무구함이 나에게도 많은 위안을 줬다. 이 캐릭터를 이 시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아날로그식 순애보이다.

 

강이관: 영화 보는 내내 울었다.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너무 친숙한 스타들이 나오는데, 배경은 60년대고, 저 정서를 내가 나이를 좀 먹어서 아는 건지.

이영재: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정서라고 할까. 인간의 정서라는 게, 태평양 심해가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미동도 없듯이, 언제나 비슷한 부분이 있는 거 같다. 그런 면에서 잔재주 없이 진솔하게 다가간 것이 관객들에게 다가간 것 같다.

 

강이관: 플롯 보다 에피소드, 캐릭터 중심으로 갔다고 했는데,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각색할 때와 편집할 때 고생했겠다. 에피소드를 취하고 버리는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이영재: 감독들이 원래 하고 싶은 게 많다. 보여줘야 할 것이 많은데 기회가 안 와서 참았다가 하니까, 통제하지 못하면 과잉이 되기 쉽다. 돈을 구하는 과정이 일종의 단련과 여과의 시간이었고, 각본에 내공이 쌓였다. 에피소드는 홍연의 감정 선이 중심이 된다. 그 외에는 그 당시 관객들에게 향수를 줄 수 있는 것을 주로 담았다.

 

관객4: 이병헌이 처음 학교에 왔을 때 선비 같이 말을 하는데, 의도적으로 말투를 그렇게 썼는지, 또 엔딩은 미리 구상해놓으신 건지 촬영 중에 구상하신건지 궁금하다.

이영재: 아이들에게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문어체적인 말투, 사극 조의 대사를 쓰는 거다. 그게 재밌기도 했다. 엔딩 씬은 촬영 하루 전에 바꾼 거다. 액자형 구조기 때문에, LP판 올려놓고 내려놓는 것으로 회상이 시작되고 끝나는데, 배우들이 나이를 먹은 모습을 분장으로 하면 흉할 것 같아서 사진으로 대체했다. 그게 더 좋았던 것 같다.

 

김성욱: 마지막 인사말 부탁드린다.

강이관: 아카데미가 위기이고, 포럼도 진행할 텐데, 이 기회에 선배님들도 더 알게 되고, 아카데미가 참 오래된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영재: 감사드리고, 다음 작품을 통해 자주 만날 수 있도록 각성하여 작업하겠다.

(정리 :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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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봉준호 감독 편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 그들의 데뷔작과 만나다’라는 제명 하에 아카데미 출신 감독 4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또 매 저녁마다 아카데미 출신의 선후배 감독들이 만나 ‘우리는 어떻게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첫 영화를 만들 수 있었나’를 토픽으로 한 특별 대담이 마련되어 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지난 16일에는 봉준호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상영 후 봉준호 감독과 <나는 곤경의 처했다>의 소상민 감독, 그리고 <너와 나의 21세기>를 연출한 류형기 감독이 함께 자리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 그들의 데뷔작과 만나다’의 특별대담 행사의 첫 번째 주인공은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봉준호 감독이었다. 이 자리에서 봉준호 감독은 데뷔하기전과 이후에 겪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를 허심탄회하게 들려주었다. 이 행사는 영화아카데미의 성장과 변화과정을 들여다보고 영화아카데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1995년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봉준호 감독은 5년 동안 충무로의 현장경험을 익힌 후 비로소 데뷔할 수 있었다 한다. 시나리오는 옴니버스 영화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의 박종원 감독 파트에서 연출부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작업했고, 그 후 박기용 감독의 <모텔 선인장> 연출부로 활동한 바 있었고, 이 때 봉 감독의 단편을 눈여겨봤던 이 영화의 제작자인 우노필름(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가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해오면서 입봉의 기회를 얻었다 한다. 회사에 소속된 처음에는 <유령>의 시나리오를 썼고, 그 이후에 본격적인 자신의 작품인 <플란다스의 개>의 각본과 연출을 맡게 되었는데, 배우 캐스팅이 번복되고 투자문제가 겹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2000년 개봉 당시에는 관객과 평단의 많은 지지와 호응을 얻지는 못했었지만, 지금은 재기 넘치고 발랄한 컬트영화로 인정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장편으로 데뷔하기까지 5년이 걸린 데 비해, 함께 대담에 참석한 류형기 감독과 소상민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제작연구과정’을 통해 참신하고 놀라운 작품으로 바로 감독으로 데뷔한 것이 부럽다고 말했다.

 

봉 감독에 따르면 <플란다스의 개>는 이전에 만든 세 편의 단편영화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으로 찍은 영화다. 단편영화를 만들 때 가졌던 의식을 그대로 유지하려 했다는 것. 4년 만에 <플란다스의 개>를 다시 봤다는 봉준호 감독은 “지금 보니 영화가 많이 어설프고 샷들도 정돈되지 않은 것 같아서 부끄럽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동창회 모임처럼 진행된 대담에서 류형기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가 샷의 사이즈가 매우 정확한 영화”라고 말했고, 소상민 감독은 “화제가 됐던 단편영화 <지리멸렬>에 있었던 놀라움이 여전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두 감독이 만든 영화야말로 카메라와 인물 사이의 거리에 대한 견고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며 두 감독의 영화에 찬사를 보냈다.

 

봉준호 감독은 이날 자신이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과 그 이후의 영화작업과정에서 제작자와 겪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들려주며, 돌이켜 보니 그때가 요즘에 비해 더 호시절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제작자가 감독을 많이 보호해 준데 비해 요즘은 감독의 작업이 투자사에 바로 노출되는 환경이 되어 안타깝다는 얘기다. 아울러 봉 감독은 “영화산업이 참신하고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잘 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불거진 영화아카데미의 문제에 대해 소상민 감독은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지만 영화를 보러 온 많은 관객을 보니 문제가 잘 해결될 것 같다”고 말했고, 류형기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을 볼 수 있도록 관객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아카데미는 작은 조직이지만 오랜 시간 알차게 잘 운영되어 왔다”며 “미디액트와 시네마테크 등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묵묵히 열심히 꾸려온 공간들을 둘러싼 요즘의 문제들이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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