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마누엘 올리베이라 회고전]



  친구의 손을 잡고 올리베이라를 보러 오자

이용철, 유운성, 김성욱 비평좌담 - <앙젤리카의 이상한사례>




지난 11 2일에 열린 11월의비평좌담주인공은 바로 마누엘 올리베이라 감독이었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보고 바로 이어진 평론가의 대화에서 올리베이라 감독의 형식적, 내용적 특징에 대한 논의는 물론 올리베이라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까지 들을 있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마누엘 올리베이라 회고전을 맞아 비평좌담을 마련했다. 많은 작품 가운데 비교적 최근 작품인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선택한 것은 작품이 올리베이라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거론하기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먼저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를 어떻게 접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다.

 

이용철(영화평론가)│’동시대 작가라고 하면 보통 영화제라든지 개봉관을 통해 만나는데 올리베이라 감독은 워낙 옛날부터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동시대라고 해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특히 처음에는 소위고전 영화 접하듯이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들을 보았다. 외국의 비디오가게에서 <아브라함 계곡> VHS 구해서 보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뒤에야 감독의 나이를 알게 됐다. 이후 90년대부터 한국에서도 올리베이라 감독을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항상 나이를 먼저 이야기했다. 나이도 많고, 만든 영화도 이미 많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보기도 전에 주눅이 들었던 같다.

후로는 주로 영화 마켓을 통해 신작들을 챙겨 보았다. 그런데 마켓이란 곳이 상당히 냉정한 곳이라서 그곳에서 올리베이라는무명 가까운 감독이었다. 물론 영화제에서는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켓 시사실을 가면 관객이 이상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올리베이라의 영화를 떠올리면 우울한 기억이 먼저 찾아온다. 그리고는목적 없이단지 올리베이라의 영화를 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열심히 챙겨 봤다. 그러다 보니 오늘 무슨 이야기를 있을지 사실 모르겠다(웃음).

 

김성욱포르투갈에서 DVD 박스세트를 내기 전까지는 올리베이라 감독의 작품을 실제 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워낙 시간 동안 영화를 만들었다 보니 작품의 전체적인 일관성을 짚어보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통상적으로 가지 시기로 나누기는 하지만, 감독이 어떤 유형의 작가인지 정의하기 매우 어렵다. 빅토르 에리세는 그를불확실성의 작가 말했다.

 

유운성(영화평론가)나도 예전에는 올리베이라 감독의 작품을 많이 보지 못했다. 확실히 기이한 경력의 감독인 맞다. 일단 나이가 예순이 때까지 장편을 찍었다. 그런데 일흔 이후부터 매년 편씩 찍었다. 82세인 90년대부터 2007년까지 매년 편씩 영화를 만든 것이다. 이런 감독은 올리베이라가 유일하다. 건강법이 궁금할 정도이다(웃음).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80살을 넘긴 가진 인터뷰에서 올리베이라 감독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올리베이라 감독을 이해할 하나 어려운 점은 활동의 황금기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통 어떤 감독이 30 넘게 활동했으면 중요한 대표작 같은 꼽을 있다. 그런데 올리베이라는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어떤 특정 시기를황금기 구분하기 어렵다.

먼저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같다. 하나는 올리베이라 감독이 과연 포르투갈적인 감독인지 묻는 것이고 하나는 올리베이라의 영화가 얼마나시네마틱 것인지 묻는 것이다. 생각에 올리베이라의 영화를 때는 영화만이 있는 어떤시네마틱 순간을 찾기보다는 영화의 원래 기능 자체, 무언가를 기록하는 영화 고유의 기능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영화 이전의 예술 장르들, 연극이나 문학, 음악이나 회화들을 종합적으로기록한다는 의미에서의 영화 말이다.

먼저 번째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페르난도 페소아의 중에포르투갈적 것에 대한 재밌는 정의가 나온다. 이를 올리베이라의 영화에도 똑같이 적용해 있을 같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포르투갈적이란 정의할 없다. 포르투갈적이란 빨리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적이란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빨리 수용한다. 이것이 포르투갈적인 것의 장점이다. 포르투갈인은 매일 혁명을 일으킨다.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기 때문에 때마다 혁명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포르투갈적인 것의 어떤 특징을 정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이질적인 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여 다른 것으로 변경시키는 능력 자체에 주목한다. 올리베이라의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다음 포르투갈의 현실적인 모습을 찾으려 노력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대신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영화 안에서 만나는지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올리베이라의 영화를포르투갈적이라고 하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번째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올리베이라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시네마틱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모두 끌어들여 통합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올리베이라의 장편 데뷔작 <아니키 보보> 나오는 리얼리즘적 스타일에, <봄의 제전>적인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혼합, 그리고 70년대 영화들의 연극적, 문학적 방식. 그리고 여기에 90년대 이후의 영화까지 하나의 경향으로 일관되게 설명하기가 힘들다. 포르투갈 고유의 문화를 찾기보다는 넓은 관점에서 유럽의 교양을 살펴보는 필요할 것이고, ‘영화적인 집중하기보다는 비영화적(연극, 음악, 문학, 회화 ) 것들이 영화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 살펴보는 중요하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에서 유대교적인 것과 카톨릭적인 것이 섞여 있음을 확인할 있듯이, 이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화해하는지 질문하는 것이 올리베이라 감독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주제이다.


 

김성욱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올리베이라 감독을 만났을 이오셀리아니를 보고여전히 걸작을 만들기에 충분한 나이 했다고 한다(웃음).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이미 1954년에 감독이 만드려고 시도했었던 작품이다. 젊은 여인의 죽음을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겪은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너무 어둡다는 등의 이유로 제작 지원을 받지 못했다가 2010년에야 만들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이상하게 공존한다.

동시에 영화는 시간뿐만 아니라 서로 상이한 가지 것들 사이에 위치한다. 이를테면 유대인 이삭의 종교적인 맹신과 과학적인 학문 사이. 그리고 주인공은 영혼의 사진을 찍는 동시에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적으로 찍는다. 그가 방에서 여인의 사진에 매혹되는 것과 열린 창문의 바깥 저편의 소작인들의 노동을 보는 것이 동시에 벌어지고, 영화는 아이디어 사이를 회전한다. 이삭이 촬영한 사진을 걸어놓고 바라볼 때의 트래킹 쇼트가 특별한데, 이는 영화의 유비로 영화에서는 죽은 앙젤리카의 사진(환영)이나 소작인의 노동(현실) 차이 없이 서로 불순하게 섞인다. 그러나 이삭이 여인과 소작인들을 촬영한 것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게 영화란 사라질, 또는 사라진 대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용철개인적으로는이질적이라기보다 스펙트럼이 넓다는 의미에서다양하다고 표현하는 맞다고 본다. 올리베이라의 영화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난해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올리베이라가 영화 안에 너무 많은 끌고 들어오다 보니 관객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인상을 주는 같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 계곡>이나 <불확실성의 원리> 같은 영화가 올리베이라의 특성을 보편적으로 보여주는 같다. 포르투갈의 몇몇 감독과 올리베이라의 작품에 죽음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흥미롭다. 특히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감독이 죽음의 문제를 정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에서 죽음을 맞는 인물들은 억울함을 갖고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 어떤 갖고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에서는 오히려 죽은 사람들이 어떤 영원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편지> <프란시스카> 다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죽은 자만이 진실과 함께 영원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운성 영화는 올리베이라의 실제 경험에서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인터뷰를 보면 실제로 죽은 사람이 웃는 아니라고 한다. 포커스를 맞출 이미지가 겹쳐졌다 어긋나는 것이 마치 사람의 영혼이 속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질문을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과연 무엇에 매혹당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에서 사람들은 무언가에 매혹당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대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 영화의 주인공은 무엇에 끌린 것일까. 죽은 앙젤리카에 매혹당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앙젤리카의 이미지에 매혹당한 것도 아니다(후자는 트뤼포적 주인공에 해당할 것이다). 둘을 함께 접할 매혹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당혹스러워 한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 이삭은 매우 올리베이라적인 인물이다. 이런 특징은 삼각관계를 그린 멜로드라마에서도 나타난다. 일단 주인공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 보면 특정 인물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사랑하는 것이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지만사람을 사랑하는 아니라 욕망을 사랑한다. 이를테면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하고, 항상 실패한다. <과거와 현재> 같은 영화가 그런 점을 특히 보여준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돌아오면, 그런 측면에서 올리베이라가 영화를 이미 1950년대에 찍으려 이유를 짐작할 있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해피엔딩인지는 없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는 인물은 매혹의 대상을 갖고 있지 않거나 매혹의 정체를 일찌감치 파악한 사람이다. <불확정성의 원리> 여주인공이 드물지만 그런 인물이다.

 

김성욱회고전이 시작하는 주다. 올리베이라 영화를 보게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용철 안에 24편을 어떻게 보냐고 걱정하는 누군가의 글을 인터넷에서 봤다. 그렇게 고민하는 것이 몰락의 지름길이다(웃음). 물론 조바심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조금 여유를 갖고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리베이라 감독의 영화적 정점은 90년대였다고 생각한다. <지배의 공허한 영광>에서 <불안>까지 이르는 작품들이 정수라고 생각한다. 작품 작품에 집중해서 파고드는 것을 권한다.

 

유운성올리베이라는 지금 동시대 영화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를 건드리는 감독이자 살아 있는 감독 가장 위대한 감독 명이다. 지난 15 동안 한국에서 영화제를 통해 가장 중요한 감독은 포르투갈 감독들이었다. 이번 상영작이 너무 많아서 고르겠다 싶으면 짧은 영화보다 영화를 보는 나을 있다. <불운의 사랑>, <프란시스카>, <아브라함 계곡> 같은 영화 말이다. 또는 올리베이라 감독이  문학과 맺는 관계가 특히 크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을 모아서 보는 것도 다른 방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감독이 아닌 올리베이라 영화를 보자고 권하는 여러분이 세상에 있는 가장 선행이라는 것이다. 친구의 손을 잡고 오길 바란다(웃음).

 

김성욱7시간짜리 <새틴 슬리퍼 The Satin Slipper>(1985) 이번에는 상영하지 못했는데, 영화는 이번 영화제의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다음에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도록 하겠다(웃음).

 

정리김지훈 인턴

사진곽혜원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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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토킹 픽쳐


포르투갈의 영화감독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는 1908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 최고령 감독으로서, 포르투갈은 물론 세계 영화사에서 굵직한 위치를 차지한다. 알고도 믿기 힘든 그의 나이 때문일까, 변치 않는 왕성한 창작력 때문일까, 혹은 단순히 영화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일까? 어쩐지 올리베이라의 세계는 너무나 심오하고 신비한 까닭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이번 올리베이라 회고전은 그간 전혀 볼 수 없거나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올리베이라의 작품들을 한 번에 모아서 봄으로써 그 신비의 베일을 벗겨 심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올리베이라 영화의 외면적 특징 중 하나는 인물들의 대사의 양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이 말들은 단순히 내러티브를 이루는 도구로 소용되지 않으며 그 고유의 ‘역량(puissance)’을 갖는다. 이는 다양한 장르, 주제, 소재를 아우르는 올리베이라 영화들의 형식적·방법론적 뿌리를 이룬다. 인물의 대사 형태로 발화된 말과 인물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며 형성되는 담론, 혹은 연극의 내적 독백에 가까운 내면의 발화나 문학적 텍스트 그 자체의 낭독에 이르기까지. 올리베이라 영화에는 다량의 말들이 내러티브 속에 산재하게 되는데, 이때 이러한 말들의 자율적인 역량이 돌출되는 순간은 내러티브의 진행이 어떤 이유로든 지연될 때 나타난다. 이 순간, 말과 사운드 효과를 비롯한 음향 이미지와 풍경이나 어떤 장소성과 관련된 시각 이미지 고유의 역량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쇄, 충돌, 해체, 재-연쇄를 이루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이때 각각의 이미지 간에는 힘의 위계가 없고, 설사 위계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올리베이라 영화의 근간을 이와 같은 이미지 구성 방식을 두고 그의 영화의 제목을 빌려와 ‘토킹 픽쳐(A Talking Picture)’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름에는 말과 시각 이미지 간의 동등한 지위와 자율적 관계가 내포되어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광범위하기 그지없는 올리베이라의 영화 세계는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맥락화가 가능하다. 첫째는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이다. 올리베이라는 문학, 연극, 회화, 음악, 조각, 건축을 아우르는 예술 전반을 영화에 전면적으로 기입하고 그것을 영화의 내러티브에 완전히 종속시키지 않음으로써 영화의 상호매체성을 강조한다. 둘째, 올리베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표상하거나 그에 대한 기억의 심층을 탐구함으로써 현재적 관점에서 과거를 재구성하고자 시도한다. 셋째, 올리베이라 영화의 다수를 이루는 멜로드라마 장르에서는 문학이 영화 속에 전면적으로 기입된다. 일반적인 각색과는 달리, 문학의 주제의식이나 정신성 그 자체가 영화 구성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러한 다채로운 요소들을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동력은 ‘토킹 픽쳐’라 명명한 이미지 구성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때 말들의 역량이 모여 어떠한 담론의 장이 생성됨으로써 다양한 주제의식과 정신적 특질이 구현될 수 있게 된다.


<나의 경우>


말의 역량과 담론의 구성

올리베이라 영화에서 말의 역량이 어떻게 발현되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텍스트와 말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리베이라의 다수의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문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며, 따라서 문학적 텍스트는 그의 영화의 기본을 이룬다. 문학적 텍스트는 대사화된 후 발화되거나 혹은 그 자체로 덩어리째 낭독된다. 영화 내부의 논리에서 볼 때, 발화된 말은 텍스트 그 자체와는 달리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잠재적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 질 들뢰즈는 시각 이미지에 종속되지 않는 음향 이미지 고유의 역량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순수한 발화 행위, 영화적으로 고유한 언표 혹은 음향 이미지를 추출해내야 하며, 이 행위는 자신의 가독적 기초, 즉 텍스트, 책, 편지 혹은 자료에서 뿌리 뽑혀야” 한다. 텍스트에서 뿌리 뽑혀 발화된 말 자체가 자유롭고 도취적으로 자신의 음을 내는 것과 같은 어떤 고유한 역량을 가진다고 한다면, 이는 말 중심적인 영화들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즉 문자(텍스트)와 음성(발화, 낭독)의 관계를 통해 문학과 연극, 그리고 영화의 관계를 논해볼 수 있다. 이때 말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인 ‘토킹 픽쳐’만의 가치를 찾는다면, 그것은 오직 영화만이 세계를 기록하는 시각적 이미지의 현전과 일상적·연극적 언어의 현전 ― 배우가 문자를 소리 내어 낭독하는 것과 대사화된 발성 언어의 역량, 이때 운율과 격정이 표출되는 것 ― 을 동시에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발화된 말이 가로지르는 것은 시각 이미지의 지층, 즉 어떠한 역사나 개인적 기억을 가진 장소 혹은 자연의 심원한 풍경들이다. 올리베이라의 영화적 장소에는 그곳만의 지질학적 역량이 스며 있다. 따라서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에 대한 들뢰즈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올리베이라에게도 더없이 유용하다. “말은 이미지로부터 퇴각하여 토대를 정초하는 행위가 되고, 반면 이미지는 그 자신, 공간의 정초화, ‘지층들(assises)’, 즉 말 이전 혹은 이후, 인간 이전 혹은 이후의 무언의 역량들을 융기시킨다. 시각 이미지는 이제 고고학적, 지층적, 구조 지질학적인 것이 된다.” 그 고고학적 이미지에는 대지에 스며든 흔적으로서의 역사가 잠재해 있다. 이때 말의 역량과 풍경 혹은 장소의 역량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순수한 음향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가 온전히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충돌하고 해체되고 조화를 이루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올리베이라의 영화는 어디까지나 내러티브 영화이고 영화 내에서 어떠한 의미를 생산해내기 때문에 충돌이나 해체 자체보다는 재-연쇄의 순간에 조금 더 방점이 놓인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토킹 픽쳐>


올리베이라가 말과 풍경 혹은 장소의 관계성을 통해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은 영화 내부에 담론의 장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역사적 기억이 배어 있거나 동시대적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실제 장소를 촬영하거나, 혹은 연극적 세트를 통해 그와 유사한 지위를 지닌 공간을 구축한다. 디에게시스 세계에 속한 인물들은 이러한 공간에 위치하여 마치 연극배우처럼 연기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어떠한 담론을 형성한다. 이러한 담론의 성질을 파악하는 데 미셸 푸코의 논의를 참조할 수 있다. 푸코에 따르면, “어떤 사회에서든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존재하는데, 이때 새로운 담론들을 (무한히)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석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일차적인 텍스트와 이차적인 텍스트 사이의 어긋남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올리베이라는 영화 내부에 매우 상이한 성향을 지닌 인물들을 풀어놓고 그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게끔 함으로써 이러한 어긋남을 만들어낸다. 올리베이라의 인물들이 내뱉는 말들의 역량과 그 충돌이 만들어내는 어긋남은 곧 새로운 담론의 형성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담론의 특징은 다소간 모호한데, 기본적으로 어떤 인물에게도 특권적 지위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분히 비위계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디에게시스 내외부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인물의 입장과 작가의 입장의 중간에 속해 있는 듯한 논평자(주로 이 역할은 루이스 미구엘 친트라가 맡는다)가 영화 속에 기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소간 위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격을 가진 담론의 장을 창출하는 효과는 예술, 문화, 역사, 정치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영화 내부에 위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올리베이라 영화는 영화 자체의 매체성은 물론이고 다른 상호매체적 요소들에 대한 논평이 담긴 메타적 성격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토킹 픽쳐>(2003)에서 유적지에서 벌어지는 역사교육적 담론과 선내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예술, 문명, 언어, 정치 등에 대한 논평들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은 올리베이라 영화에서 연극을 비롯한 타 예술의 요소들이 영화 속에 전면적으로 기입됨으로써 발생하는 영화의 매체성 자체에 대한 성찰과 함께 작동하기도 한다. 가령 세 파트로 이뤄진 <불안>(1998)의 구조를 떠올려보자. 연극이 덩어리째 기입되고, 그것을 관람했던 인물들이 펼치는 영화 속 현실 차원의 내러티브가 펼쳐지며, 그리고 인물이 집필하는 소설의 내용이 그의 발화와 함께 이미지로 재현된다. 또한 <나의 경우>(1986)는 연극의 퍼포먼스적인 성질과 그것을 영화로 촬영하는 행위를 통해 연극과 영화의 매체적 관계를 드러낸다. 여기에서 카메라로 촬영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미지의 반복과 변용들 ― 무성영화로의 이행과 덧붙여지는 내레이션, 필름 릴을 빨리 감는 것 같은 이미지 등 ― 이 발생하며, 이를 통해 허구와 현실의 대립, 매체 내부와 외부의 경계 이행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이뤄진다.


<토킹 픽쳐>


역사 혹은 기억으로서의 과거와 현재

올리베이라는 과거를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 과거가 포르투갈의 역사이든 개인의 기억과 관련된 것이든 간에, 여기에는 노스텔지어와 비판 의식이 모순적으로 공존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영화가 역사나 기억을 시각적 이미지로 재현할 때에는 분명히 여러 한계가 존재하는데, 올리베이라는 이 한계를 다른 방식으로 빗겨가기 위해 ‘토킹 픽쳐’라 명명한 이미지 구성방식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차원에서 그의 주된 관심사는 제국주의 포르투갈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 ‘제5제국’의 역사를 표상하는 것이다. 특히 <말과 유토피아>(2000)와 <제5제국>(2004)에서 올리베이라는 그 시대를 직접 시각적으로 재현하는데, 여기에는 결코 일반적인 역사영화처럼 장엄한 풍경과 서사나 위대한 인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기 힘든 족쇄 같은 실내공간과 모호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의 끝없는 대화의 향연만이 있을 뿐이다. 역사란 역사적 인물들로 가정된 인물들의 대화를 통한 담론적 구성물에 다름 아니며, 이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적인 이미지 교육법으로서의 역사와 유사한 것이기도 하다. 이 두 영화 외에도 다수의 영화에 제5제국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그림자처럼 스며들어 있는데, 이때 흥미로운 점은 제국주의 역사와 그것들의 상실(탈식민)에 대한 올리베이라의 관점에 모호함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 올리베이라가 패배한 전쟁에 주목한다는 점, 역사 속 인물을 광인에 가깝게 그리고 영화 속에 시인이나 광대 같은 논평자를 기입시켜 사태를 풍자한다는 점, 장엄한 규모를 자랑하며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실제 성과 궁전, 성당의 내부 공간조차도 굉장히 음침하게 촬영한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애도하는 듯한 멜랑콜리의 정서 또한 없지 않다. 역사를 다룬 영화들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포르투갈 민속음악 ‘파두’의 선율과 이와 함께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들이 그런 정서를 드러낸다. 더불어 <지배의 공허한 영광>(1990)에서는 아프리카 식민지를 잃지 않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군인들이 그 전쟁의 당위성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에서 그런 모순적 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모순적 요소들은 영광스러운 과거에 대해 예외적 사례들을 제공한다. 따라서 제국주의 포르투갈은 과연 영광의 시대였는가에 대한 질문은 계속해서 다시 던져지게 된다. 이러한 질문은 <토킹 픽쳐>의 선상 레스토랑 장면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올리베이라의 관심은 구체적 역사뿐만 아니라 보다 근원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의 심층으로 향한다. 이를 찾아가는 것은 특정한 장소로의 지리적 여정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때 영화는 외면적으로 로드무비의 형태가 된다. 인물들은 길 위에서, 혹은 어떤 유적지에 가서 대화를 나눈다. 이러한 장소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시퀀스들은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와도 관련되지만, 그 자체로 독자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이는 내러티브 진행을 느리게 만들며 또한 이 순간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인물들의 움직임도 매우 느리게 이루어진다. 이로써 장소로서의 풍경의 역량과 말의 역량이 더욱 강조될 수 있게 된다. 장소성과 말, 혹은 말과 말의 화학작용은 어떤 근원적 기억을 환기하거나 동시대와 관련된 담론을 형성한다.


이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영화인 <세계의 시초로의 여행>(1997)은 외견상 ‘아폰수’라는 프랑스 배우가 포르투갈에 와서 아버지의 생가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도중에 ‘마누엘’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기억과 관련된 장소들을 경유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여정은 지연된다. 이때 각 장소에 배어 있던 기억이 말을 통해 환기된다. 가령 ‘페조 호텔’ 시퀀스에서 올리베이라는 평소에 자주 쓰지 않던 이색적인 트래블링 쇼트로 호텔 건물의 낡고 쇠락한 벽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마누엘은 그의 유년의 기억에 대해 말하면서 ‘병든 시간’이었다는 표현을 쓴다. 이 말은 또한 동시대의 신체, 사회, 시대의 부패를 반영하며, 이런 맥락에서 상대적으로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기억 ― 포르투갈의 영광 혹은 사적인 영광 ― 을 환기하는 것이다. 이는 인물들의 대화로 만들어지는 담론을 통해 동시대의 정치적 맥락을 역사화하는 차원으로까지 확장된다. ‘세계는 병들었는가? 세계의 붕괴 혹은 폐허는 무엇을 제시하는가?’와 같은 질문들. 여기에는 과거의 영광을 갈구하는 노스텔지어(혹은 포르투갈 고유의 그리움의 정서인 '사우다드')와 동시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근심이 모순처럼 공존한다.


<불안>


이 여정의 끝에는 근원적 장소가 있다. 그곳은 어디이며 무엇에 대한 근원인가? <세계의 시초로의 여행>의 경우, 그곳은 포르투갈 북쪽 끝에 위치하며 지리적으로 고립된, 그리하여 오랜 원칙이 보존되고 마치 시간이 멈춰진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의 기원이자 태곳적 공간과 같은 곳이다. 아폰수에게 아버지가 유년시절을 보낸 집은 자신의 뿌리가 되는 장소이자 말로만 듣던 과거의 흔적과 물질적으로 접촉하는 곳이다. 마누엘에게 그곳은 자신의 상징적 죽음을 확인하는 곳이다. 이 장소는 어떠한 근원적인 장소이며, 들뢰즈적 의미에서 배아를 품고 있는 결정체로 존재한다. 이 장소가 품고 있는 지질학적, 지층적 기억은 구체적이거나 실증적인 역사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것, 즉 잠재적인 것으로서의 기억이다. 따라서 이 여정은 기억의 심층으로 수렴하는 정신적인 여정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수수께끼>(2007)는 ‘마누엘 루시아노’라는 남자가 평생에 걸쳐 콜럼버스의 생가를 찾아다니는 기나긴 여정의 기록이다. 젊은 시절의 신혼여행에서부터 올리베이라 본인이 직접 연기한 노년의 여행에 이르기까지, 마누엘은 아내와 함께 포르투갈 알렌테주 지역은 물론이고 뉴욕의 빌딩숲에 위치한 콜럼버스의 기념비와 박물관까지 찾아다닌다. 마누엘은 아내에게 끊임없이 역사적 지식들을 쏟아낸다. 그는 콜럼버스의 생가를 찾아감으로써 콜럼버스의 기원이 포르투갈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하며,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의 근원(나아가 올리베이라 감독 본인의 근원까지)을 찾고 싶어 한다. 평생에 걸친 탐구 과정에서 어느덧 마누엘 본인의 기억은 콜럼버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된 것이다. 그의 여정을 쫓는 과정에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들이 카메라에 담긴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심원하고 숭고한 풍경의 역량은 그 풍경 자체가 콜럼버스라는 인물의 역사적 차원을 넘어서는, 보다 더 근원적인 것임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인류의 기억 혹은 대지의 기억과 관계된 것이다.

문학의 영화로서의 멜로드라마

올리베이라의 영화 세계는 방대하고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다수를 이루는 것은 멜로드라마 계열의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은 외견상 일반적인 내러티브 영화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 실상 올리베이라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신비하고 내밀한 영역을 구축한다. 이러한 영화들은 문학의 전면적 기입을 통해 더 풍부해지는데, 이는 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각색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것은 문학을 하나의 모티프로 삼아서 다른 요소(다른 문학작품을 포함)들과 자유롭게 뒤섞는다거나 혹은 문학작품의 정신성이나 주제의식을 완전히 다른 이야기나 인물에 영화적으로 변용하여 녹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문학적 정신성을 영화에 기입하는 과정은 역시 말의 역량을 강조하는 것 ― 문학적 언어가 발화되면서 발생하는 감정, 정서, 정동 ― 으로 시작된다. 올리베이라의 멜로드라마의 내러티브적인 특징은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핵심적인 순간들이 덩어리째 병렬적으로 배치되고 이 순간 말의 역량이 강조되는 한편, 그 사건의 전후를 구성하는 인과 관계들이 삭제되거나 함축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여기에 연극, 회화, 음악을 비롯한 다른 예술적 요소들은 영화에 풍부함을 더한다. 요컨대 올리베이라에게 문학은 삶과 예술의 총체로서 어떤 초월적인 정신성을 구현하는 것이며, 나아가 신학적 정신을 포괄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신곡>(1991)에서는 단테의 『신곡』을 기본 틀로 삼아 정신병자들의 카오스의 세계가 펼쳐지는데, 그 속에서 도스또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빠진 남녀가 하나의 연극처럼 소설의 남녀 주인공 역할을 연기하면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가 하면, 다른 모든 인물들도 각자의 역할놀이를 즐긴다. 또한 영화 중간에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대심문관 이야기’ 부분이 덩어리째 직접 삽입됨으로써 신학적 세계관을 더하기도 한다. 이곳은 지옥인지 연옥인지 천국인지 알 수 없는 세계이다. 한편 <수도원>(1995)에서는 괴테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를 체현하는 듯한 악마적인 인물을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수도원>의 악마성은 이중의 구조를 띤다. 수도원에 연구 목적으로 찾아온 박사 부부를 악마적 세계로 유혹하려는 ‘발타(루이스 미구엘 친트라)’라는 인물은 본인이 악마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조차도 악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또한 영화에는 그 외에도 더 넓은 차원에서 모든 인물들을 유혹에 빠뜨리며 비웃음을 던지는 또 다른 메피스토펠레스인 ‘발타자르(주앙 베나르 다 코스타)’가 있다.

한편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을 각색한 <아브라함 계곡>(1993)이나 라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을 각색한 <편지>(1999)처럼 보다 일반적인 각색에 가까운 영화들도 있는데, 여기에도 올리베이라만의 특징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편지>는 17세기 궁정소설을 완전히 현대적인 배경으로 끌어와 창조적으로 변형한 작품이다. 원작의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물들의 관계망들이 극도로 미니멀하게 축소되었으며, 중심적인 사건들의 덩어리를 병렬적으로 펼쳐놓을 뿐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소설의 내용들이 완전히 삭제된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정신성은 전혀 훼손되지 않은 채 영화에 녹아들어 있다. 무감각한 결혼 생활, 치명적으로 타오르는 사랑의 발견, 그리고 충절과 욕망 사이의 고통스러운 선택의 문제는 온전히 올리베이라의 비극적 멜로드라마들의 일부를 이룬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수수께끼>


이렇듯 올리베이라의 멜로드라마들은 비극에 매혹되어 있다. 그것은 밤의 영화이자, 어둠의 멜랑콜리가 깃든 영화이다. ‘좌절된 사랑 4부작’으로 불리는 <과거와 현재>(1971), <베닐드 혹은 성모>(1975), <불운의 사랑>(1978), <프란시스카>(1981)가 대표적이다. 올리베이라의 인물들은 대부분 신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신에게서 떨어져 나와 어떤 악마성에 이끌린다. 거기에는 타락 혹은 파멸에의 유혹, 혹은 죽음의 신비에 대한 매혹이 자연스레 포함되어 있다. <카니발>(1988)에서, 고급 예술이 우아하게 수놓아져 있는 귀족들의 사교계에서 꽃핀 불꽃같던 사랑은 그로테스크한 기계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죽음 충동과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의 악마적 축제로 전락한다. 이 모든 것을 비웃으며 지켜보는 바이올리니스트와 논평자의 존재는 이 영화를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한편 <불확실성의 원칙>(2002)에도 여러 인물들의 어긋난 사랑과 욕망의 그물망이 펼쳐진다. 도박, 그리고 돈을 바라고 한 결혼이라는 악덕은 영화를 거치며 점차 승계되고 확장되어 인물의 심적 붕괴를 일으키며, 결국에는 잔다르크의 화형과도 같은 방화와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2010)에도 죽음에 이끌리는 남자가 있다. 여기에서 앙젤리카의 유령은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되며 이는 이색적인 효과를 낳는다. 죽음은 치명적 비극이라기보다는 신비로운 동화의 세계로의 여정과도 같은 매혹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문학적 정신성과 비극에 대한 매혹은 다수의 멜로드라마들의 특징을 이루며 올리베이라 영화 세계 전반을 포괄한다. 그러나 각각의 영화에 존재하는 미세한 결들의 차이를 읽어내는 것, 그 과정에서 ‘토킹 픽쳐’로서의 올리베이라의 형식적 방법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박영석중앙대 영화학과 박사과정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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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회고전 특집 1]


시네마 - 에이돌론

: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입문, 혹은 논쟁을 위한 서설


한국의 올리베이라 수용 약사(略史)

오랜 준비 끝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련한 이번 회고전은 올리베이라의 작품 대부분이 한꺼번에 상영된다는 점에서 아주 귀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보고 그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할 기회가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때 지난 15년 동안 한국에서 올리베이라의 영화가 어떻게 소개되었는지 그 역사를 간략히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본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영화는 1993년 작품인 <아브라함 계곡>이다. 용케도 NHK 위성방송 BS2 채널까지 서비스하는 지역유선방송에 가입해 두었던 덕분인데, 2000년 초에 방영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작품 외에도 <상자>(1994)와 <수도원>(1995)이 함께 방영되었는데,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나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의 스토리에 의존해서 일본어 자막 중 한자(漢字) 부분만을 띄엄띄엄 읽어 가며 그나마 따라갈 수 있었던 <아브라함 계곡>만을 끝까지 보았다.


사실 올리베이라의 나이가 90세가 되었던 1998년까지만 해도 이때까지 그는 자신의 사후에 공개하도록 한 <방문 혹은 기억과 고백>(1982)을 포함해 총 19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그의 이름은 시네필들의 영화적 지도 어디에도 기입되어 있지 않았다. 국제적으로 그의 영화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 그보다 한참 전인 1970년대였고, 1990년대는 한국에서 이른바 시네필 문화가 싹튼 시기 실은 영화 자체에 대한 열광보다는 어렵사리 구해 본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나 쉽게 볼 수 없는 영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가득한 시기였다 로 간주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 기이한 일이다. 해외 영화제를 방문할 수 있었던 극소수의 프로그래머나 기자 혹은 평론가들이 그의 영화를 알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어떤 영문인지 그들은 올리베이라를 국내의 관객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일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언급이 일부 있었다 해도, 그것은 영화와 직접 대면하는 것을 유예시키면서 ‘저 바깥에는 이러이러한 근사한 것들이 있다’고 자랑하는 ‘교도관의 비평’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의 영화가 극장에서 처음 상영된 것은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1999년)에서였는데, 초청된 작품은 라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1678)의 무대를 현재로 옮겨 각색한 <편지>였다. 아마 이 영화가 같은 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올리베이라의 영화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폐간된) 영화잡지 『필름 컬처』의 주간이자 (지금은 사라진) 서울시네마테크 대표였고 (이제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광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였던 임재철 평론가 덕택이었다. (광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시절(2001~2004), 그는 페드로 코스타, 루크레시아 마르텔, 알랭 기로디 등 이제는 국제적인 감독이 된 이들의 초기작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고,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 그리고 존 포드의 회고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2005년에 <불안>(1998)을 자신이 설립한 영화사인 이모션픽처스를 통해 수입, 개봉한 바 있다. 이 영화는 현재까지 한국에서 정식으로 극장 개봉된 유일한 올리베이라 영화다.) 2001년 7월 5일부터 10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는 (그전에 오즈 야스지로, 오슨 웰스, 알랭 레네 회고전을 선보였던) 서울시네마테크 주최로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걸작선 및 포르투갈 영화특집」이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여기에서 올리베이라의 영화 다섯 편 <프란시스카>(1981), <지배의 공허한 영광>(1990), <아브라함 계곡>, <세계의 시초로의 여행>(1997), <불안> 이 한꺼번에 상영되었다. 같은 해 광주국제영화제에서는 <나는 집으로 간다>(2001)가, 이듬해에는 <포르토에서의 어린 시절>(2001)이 상영되었다. 또한 2002년 포르투갈대사관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주최로 열린 제2회 포르투갈 현대영화제 2001년의 제1회 영화제는 당시 서초동에 자리하고 있던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렸는데 한심한 영화들뿐이었다 에서는 <언어와 유토피아>(2000)가 상영되었다.


스크린에서 비로소 올리베이라의 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뜻밖에도 두 편의 올리베이라 영화가 국내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방영되었는데, 하나는 2001년 10월 KBS 위성 2TV를 통해 방영된 <수도원>이고, 다른 하나는 2002년부터 방송을 시작한 스카이라이프 MGM 채널을 통해 방영된 <새틴 슬리퍼>(1985)이다. 당시로선 해외의 올리베이라 마니아들 가운데서도 실제로 본 사람이 거의 없었던 <새틴 슬리퍼>가 ‘나의 사랑, 나의 기사’라는 제목으로 방송될 예정이라는 걸 MGM 편성표에서 확인하고 영화가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텔레비전 앞에 붙어 앉아 있던 기억이 나는데, 실망스럽게도 방송판은 400분에 달하는 오리지널이 아니라 해외용으로 제작된 130분짜리 축약판이었으며 게다가 조악하게 영어로 더빙된 것이었다. (나는 2012년에야 <새틴 슬리퍼> 오리지널 버전을 볼 수 있었다. 이전에 찾은 기록에 따르면, 이 영화는 역시 ‘나의 사랑, 나의 기사’라는 제목으로 1990년에 KBS를 통해 방영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미심쩍은 것이라 확인이 필요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좀 어렵다.)


이후 사정은 바뀌어 지난 10여 년 동안 올리베이라의 신작은 국내 영화제를 통해 꾸준히 소개되어 왔다. 2011년에는 그의 ‘좌절된 사랑의 4부작’ <과거와 현재>(1971), <베닐드 혹은 성모>(1975), <불운의 사랑>(1978), <프란시스카> 이 부산과 전주영화제에서 (구성을 달리하며) 각각 마련한 포르투갈 영화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 상영되었는가 하면, 같은 해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열린 포르투갈영화주간에서는 올리베이라의 장편 데뷔작인 <아니키 보보>(1942)와 그가 배우로 출연한 작품이자 포르투갈 최초의 유성영화인 <리스본의 노래>(코티넬리 텔무 감독, 1933)가 상영되었다. 올리베이라 탄생 100주년을 맞아 <나의 경우>(1986)부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수수께끼>(2007)까지 21편의 장편을 모은 DVD 박스세트가 포르투갈에서 출시된 이후로는 온갖 ‘어둠의 경로’로 그의 영화가 ‘유통’되고 있으며, 심지어 <포르토에서의 어린 시절>은 ‘나의 어린 시절 뽀르또’라는 제목으로, <나의 경우>는 감독의 이름이 ‘올리비에라’로 바뀐 채 의심스러운 리핑판 DVD로 국내에 출시되어 있기까지 하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바뀐 것일까? 냉정히 말하자면 올리베이라의 영화는 가까스로, 즉 특별전이나 영화제 같은 임시변통의 창구를 통해, 혹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케이블 혹은 위성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혹은 각종 어둠의 경로를 통해 산발적으로 접할 수 있었을 뿐이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 않은가? 2014년 현재까지 올리베이라는 총 32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고 그 가운데 25편이 지난 15년 동안 국내에서 상영, 방영 혹은 DVD로 출시되었지만, 흡사 고다르처럼,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보이기는 하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다. 빠른 기간 내에 시네필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었지만 논쟁의 대상은 아니다. 최악의 경우, 어떤 이들은 그가 100세가 넘어서도 왕성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숭배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겐 올리베이라에 대한 담론이라는 것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개의 물음

“영화는 비(非)물질적이야. 그것은 유령이지.”

- 파울루 로샤의 <건축가 올리베이라>(1993) 중에서 올리베이라의 말

논쟁을 자극하기 위해, 다소 도발적인 두 개의 ‘불경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올리베이라는 포르투갈적인 감독인가? 그의 영화는 진정 ‘시네마틱’(cinematic)한가? 물론 이 물음에 모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견해가 궁금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모두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미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1998년에 발표한 짧은 글에서 <신곡>(1991)과 <수도원>에 대해 논하면서 “위대한 올리베이라 안에는 독일적인 구석이 있다.”고 쓴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올리베이라는 독일이 지난 2백여 년 동안 하나의 국가로서 그 자신에게 품은 불확실성을 (오히려) 매혹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활용한 신화와 우화들을 통해 포르투갈적 카톨리시즘을 구조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바디우는, 테오도르 폰타네처럼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이후 모든 독일 예술은 어느 정도 이념(Idea)의 교훈주의 및 교육적 목적 이는 서사적 혹은 심리적 요소들과 이러한 요소들의 상징적 역할에 대한 강조 사이의 간극에 자리하고 있다 에 의해 오염되어 왔는데, 올리베이라 영화의 알레고리적 구조에서는 그러한 독일적 특성이 느껴진다고 본다. 올리베이라에 대한 장문의 통찰력 있는 비평을 남긴 포르투갈 평론가 고(故) 주앙 베나르드 다 코스타는 의미심장하게도 그의 영화에서의 ‘영원한 여성성’(eternal feminine)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물론 이는 괴테의 『파우스트』의 유명한 마지막 문장(“영원한 여성성이 우리를 고양시킨다.”)과의 관련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올리베이라 영화에서 이 모티프는 때로 아주 직접적으로 시각화된다. 예컨대, <아니키 보보>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소년과 소녀가 작은 인형의 양쪽 팔을 하나씩 잡은 채 그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 이후 올리베이라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될 (로베르 브레송적인) ‘접촉에 대한 망설임 혹은 두려움’이라는 주제를 감지하게 된다 건물 사이로 난 오르막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사진 1). 잠시 후, 이들의 모습 위로 상승(고양)의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구름의 이미지가 오버랩된다(사진 2). 올리베이라가 자신의 실제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1952년에 구상했지만 반세기가 넘어서야 실제로 스크린에 옮긴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2010)에서 샤갈의 회화를 연상케 하는 ‘승천’(사진 3) 장면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디우의 지적은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올리베이라 안에는 분명 독일적인 구석이 있지만, 그만큼이나 프랑스적인 구석 및 이탈리아적인 구석도 있으며, 유대적인 구석 포르투갈에서 올리베이라(올리브나무)나 페레이라(배나무)처럼 나무와 연관된 성은 유대계로 추정되곤 한다 도 있고, 심지어 북구적인 구석도 있다. 분명 올리베이라는 주제 레지우,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 아구스티나 베사-루이스 등의 포르투갈 문학에서도 그의 영화를 떠받치는 언어적 자양을 취해 왔다. 한편으로 포르투갈 바깥의 관객들이 그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포르투갈 작가들의 작품이 거의 번역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영화가 비단 독일만이 아니라 다양한 범유럽적 작품들(문학, 미술, 연극, 음악 그리고 영화)의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올리베이라의 ‘멀티미디어’ 걸작 <나의 경우>인데, 여기서는 피란델로의 『작가를 찾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연상시키는 주제 레지우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공연과 사무엘 베케트의 텍스트가 겹쳐지고, 돌연 무대 위에 뉴스릴 영화가 영사되고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내걸리는가 하면(사진 4와 5),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이상적인 도시>를 모델로 한 세트에 욥기의 인물들이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함께 등장하고(사진 6), 또한 이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한 촬영팀의 모습이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올리베이라는 <신곡>과 관련해 어떻게 다양한 문화에서 나온 텍스트들을 한데 묶는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냐는 질문에 대해, 그것들은 다양한 문화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모두 “우리의 서구적 시각 혹은 교육에 따른 원죄의 문제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원천을 가진다고 답하기도 한다.




올리베이라의 영화는 “포르투갈 영화에 있어 지배적인 장르는 바로 포르투갈 영화 자체”(주앙 베나르드 다 코스타)라고까지 말해지는 포르투갈 영화의 기벽(奇癖)의 전형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포르투갈을 잠깐이라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그곳의 공간과 사람들에게서 느낀 인상에 가장 가까운 올리베이라 영화는 <아니키 보보>나 <상자>처럼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만 국한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영화는 ‘포르투갈 영화적’이되 ‘포르투갈적’이지는 않다. 올리베이라의 ‘포르투갈 영화’는 종종 포르투갈이라는 한 국가의 영역을 넘어 유럽, 보다 크게는 레이몽 벨루가 지적한 바대로 문명(civilization) 혹은 세계의 운명에 대한 몰두로 나아가곤 한다. 포르투갈이 위기에 닥친 시기에 부활해 제국을 지배하리라 믿어졌던 16세기의 전설적인 왕에 관한 주제 레지우의 희곡 『세바스티앙 왕』을 영화화한 <제5제국>(2004)처럼 일견 지극히 지역적인 소재를 다룬 것처럼 보이는 작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앙골라에서 식민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병사의 구술을 통해 포르투갈 국가의 흥망성쇠를 삽화적 형식의 영화적 프레스코화로 담아낸 가공할 걸작 <지배의 공허한 영광>은 또 어떤가. (벨루는 올리베이라야말로 한 편의 영화 안에 조국의 역사를 담아내면서 그 설립에서부터 제국의 몰락에 이르는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아는 유일한 영화감독이라고 썼다.) 올리베이라의 고향 포르토를 가로지르는 도우루 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곳에 있는 작은 등대마저도, 이 작은 도시의 하루를 열고 닫는 제의적 사물(<도우루 강의 노동>(1931))로 출발해 문명의 메타포(<포르토에서의 어린 시절>)로까지 전화된다.


‘포르투갈 영화적’이되 ‘포르투갈적’이지는 않은 영화, 어쩌면 이는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 주앙 보텔료, 페드로 코스타, 주앙 페드로 로드리게스, 미겔 고메스 등 여타 포르투갈 감독들의 영화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일 수 있다. 올리베이라가 특별한 것은, 영화를 사유함에 있어서 ‘시네마틱’이라고 하는 정의가 불가능한 모호한 개념에 집착하기보다는, 영화를 하나의 예술이나 미디어가 아닌 일종의 기능(function)으로서, 다른 예술 혹은 미디어들이 서로 만나고 교차하며 작동하기 위한 장(場)을 조절하는 기능으로서 받아들이길 주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건 아주 새롭다기보다는 초기영화 혹은 원시영화 시기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한데, 올리베이라가 그 시기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그의 영화관(觀)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나의 가정으로 남겨두기로 하자.) 여기서 그의 ‘유령’(fantasma)으로서의 영화론(“영화란 항상 현실의 유령이다.”)이 나온다. 영화는 실체 없는 비물질적인 것이지만, 다른 실체적인 것들 사이의 간극에 유령처럼 거하며 기능한다. 스페인 영화감독 빅토르 에리세는 올리베이라의 이러한 영화관에서 ‘영화의 불확정적 본성’을 본다. 이는 공인된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들로 인해 순수영화의 힘이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영화에게 남겨진 일은 자신의 강둑에 물을 대는 것, 그토록 빠른 시간에 그것이 협곡들을 내며 가로질렀던 예술들 사이로 파고드는 것, 교묘하게 예술들을 포위하는 것, 보이지 않는 지하수로를 내기 위해 심층의 토양으로 스며드는 것”이라 지적하며 영토(실체) 없는 영화, 곧 ‘불순한 영화’(cinéma impur)를 옹호했던 앙드레 바쟁의 견해와도 일맥상통한다. 또한 올리베이라는 (복수로서의) 세계는 물론이고 문학, 미술, 연극, 음악 그리고 영화 모두를 동등한 층위의 현실로 간주한다는 점 영화 자체 또한 영화가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현실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은 포르투갈 북부 트라스-우스-몽트스 지방의 전통적 그리스도 수난극 재현 행사를 담은 올리베이라의 두 번째 장편 <봄의 제전>(1963)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다 에서도 지독히 바쟁적이다. 영화 장치는 그 모두를 무차별적으로 시청각적 기록 혹은 보존의 대상으로 삼으며, 그럼으로써 그것들이 같은 층위에서 조우하게끔, 즉 비교되고, 교차하고, 충돌하게끔 만든다. 영화를 매체적으로, 혹은 그것에 고유한 특성(‘시네마틱’)이 있다는 가정 하에 사유하기보다는 일종의 기능으로 사유하는 올리베이라의 이러한 영화관을, 여러 비디오 작업들과 <필름 소셜리즘>(2010)이나 <언어와의 작별>(2014) 같은 디지털 작업에서 전면화된 고다르의 영화관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한때 올리베이라는 “영화는 연극을 넘어설 수 없고 다만 그로부터 떠날 수 있을 뿐”이라거나 “영화는 연극을 시청각적인 방식으로 고정시키는 과정”이라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영화란 ‘촬영된 연극’과는 다른 무엇이어야 한다고 믿는 순수주의자들에게 이런 주장은 경악스러운 것으로 비칠 것이다. 또한 그는 “나는 음성적 이미지, 문학적 이미지를 영화적으로 번역하려는 시도는 전적으로 쓸모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것은 시도할 필요조차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문학적인 구절을 스크린에 등재(register)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유성영화의 커다란 장점이다.”라고도 단언한다. 올리베이라를 따라, 이미지라는 단어를 비단 가시적인 것에만 결부시키지 않고 시각적 이미지, 문자적 이미지, 음성적 이미지, 음향적 이미지 모두를 포괄하는 것으로 고려한다면, 유성영화의 영화-기능은 이러한 이미지의 힘을 빌려 앞서 언급한 상이한 현실들을 일시적으로 공통의 공간에 자리하게 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올리베이라와 고다르는 다르지 않다.) 이때 이미지들 간에 차이는 있지만 위계는 없다. 그리고 위계가 없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그것들은 다시 공통의 공간에서 상호 비교, 교차, 충돌될 수 있다. 비교, 교차, 충돌의 과정에서 우리는 이미지의 간극들뿐 아니라 그 간극에서 방사되는 여러 유령들과 마주치게 된다. 올리베이라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각인시킨 ‘좌절된 사랑의 4부작’은 비센트 산체스와 주제 레지우의 희곡, 혹은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와 아구스티나 베사-루이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연극적 공간과 제스처, 그리고 문학적 언어의 힘을 영화로 다시 끌어안으면서 이 간극들과 유령들을 한껏 풀어놓고 있다. (평자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겠지만 4부작 가운데 가장 강렬한 체험을 선사하는 걸작이자 올리베이라 최고의 작품이라 할 <불운의 사랑>은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1968)에서 부분적으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작품이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스트라우브-위예의 영화 가운데 원작이 없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유일한 작품이다.)


‘시네마틱’이란 결코 하나의 기원을 갖지 않는 데다 언제나 일시적일 뿐인 간극들과 유령들이 흡사 모종의 실체에 수렴될 수 있는 것인 양 우리를 미혹시키는 허위 개념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각각이 조작(operation)하는 영화-기능과 그 조작의 수준이 다른 무수한 영화감독들이 존재하고 분명 우리는 그들을 어떤 위계에 따라 배치할 수 있지만, 자신이 시네마틱하다고 ‘믿는’ 사례들을 쌓아올리거나 ‘~은 시네마틱하지 않다’는 식의 부정신학적 논법에 의존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가 다른 누구보다 더 ‘시네마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영화란 실체가 아닌 기능이기 때문에 그와 결부된 형용사를 가질 수 없다. 반면, 문학적인 것, 음악적인 것, 회화적인 것, 연극적인 것은 존재한다. 영화의 이와 같은 특성에 대한 가장 빼어난 메타포는 히치콕의 <현기증>(1958)의 마들렌이다. 그녀는 그런데 과연 ‘그녀’라고 지시해도 되는 것일까? 주인공 친구의 아내와 그녀인 양 행세하는 여자, 그리고 그림 속의 여자 가운데 어디에도 정확하게 귀속되지 않지만 이 세 개의 실체 혹은 이미지를 관장하는 기능이고 또한 그것들 사이에서만 활동하는 유령적 형상이다. 올리베이라 인물들의 ‘좌절된 사랑’은 종종 그들이 이러한 유령적 형상(만)을 실체라 믿고 정작 실체를 거부하는 데서 기인한다. 스카티가 끝내 주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올리베이라는 그의 세 번째 장편 <과거와 현재>에서 이러한 <현기증>적인 주제를 완벽하게 자기 식으로 번안해냈다. 네크로필리아에 사로잡힌 주인공, 죽은 자의 ‘부활’, 끝내 주인공의 열정의 대상이 되지 못한 자의 자살 등이 묘사된 것은 히치콕의 영화와 유사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현기증>의 남성적 환상을 여성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완다라는 여성의 열정은 죽은 첫째 남편(의 초상), 그의 쌍둥이 동생,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남편 어디에도 정확하게 귀속되지 않는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모든 것들은 실체적인 것, 그만의 형용사를 지닐 수 있는 것들의 에이돌론(eidolon)이다. 그리스어로 에이돌론은 분신, 유령 그리고 이미지의 뜻을 모두 지닌다. 놀랍게도 영화는 이러한 분신들의, 유령들의, 이미지들의 간극에서 더할 나위 없이 실재적인 감각을 산출해낸다. 하지만 이 감각을 설명하기 위해 ‘시네마틱’의 신학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무염시태(無染始胎)했다고 믿는 <베닐드 혹은 성모>의 베닐드나 죽은 여인이 사진 속에서 미소 짓는 모습을 보았다고 믿는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의 이삭처럼, 시네필리아는 감각의 절대성을 믿는 것(영화는 곧 세계다)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올리베이라의 에피쿠로스적인 이미지들에서 기인하는 감각의 진실성을 믿었던 그는 역사상 최초의 시네필, 하지만 아직 영화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의 시네필이었다 면모가 있다고 본다.


유운성│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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