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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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을 상실한 자들을 위한 10편의 탐구-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데칼로그>
폴란드의 영화감독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Krzysztof Kieslowski,1941~1996)의 ‘데칼로그’가 공개된 지 30년이 되었다. 키에슬로프스키가 영화를 만든 1980년대는 변화와 격동의 시대였다.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 운동에서 시작해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변혁의 진통을 겪고 있었다. 그는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 폴란드에서 도덕적 의미를 담은 의 제작으로 절망의 시대를 극복할 새로운 희망과 비전의 길을 찾고자 했다. 키에슬로프스키에 따르면 는 크지쉬토프 피에세비츠(Krzysztof Piesiewicz)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에세비츠는 전작 (1985)의 공동 각본을 썼고, 가톨릭 교회를 믿는 신앙인이자, 폴란드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정치적 재판에서 활동했던 변호사이다. ..
2020.03.19 -
필름 누아르의 불온성을 지우다 - <길다>(찰스 비더)
[필름 누아르 특별전]필름 누아르의 불온성을 지우다- (찰스 비더) 는 두 개의 인상적인 만남으로 시작한다. 먼저 도박사 조니와 카지노 주인 밸린, 이 두 남자 사이의 만남이다. 조니는 뉴욕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굴러들어간 과거가 모호한 도박사다. 길거리에서 주사위 사기로 막 한몫을 잡았는데, 현지의 불량배에게 모두 뺏길 판이다. 그때 밸린이 나타나서 조니를 구한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강인한 인상의 밸린은 끝에 칼이 숨겨진 지팡이로 악당을 물리쳤다. 밤 항구에서 만난 두 미국인 남자는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고, 함께 담배를 나눠 피운다. 이들의 만남은 강한 스포트라이트 조명과 투 숏 덕분에 마치 연인들의 설레는 만남처럼 묘사돼 있다.두 번째 만남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길다의 등장 장면이다. 길다..
2017.08.18 -
밤과 도시의 이중적 성격 - <고독한 영혼>(니콜라스 레이)
[필름 누아르 특별전] 밤과 도시의 이중적 성격- (니콜라스 레이) 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살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던 딕슨이 형사 부부를 배우로 삼아 자신이 재구성한 살인현장을 연출하는 장면이다. 딕슨은 살인마 역할을 맡은 형사에게 아내의 목을 더 강하게 조일 것을 요구하면서 광기 어린 눈빛을 드러낸다. 카메라가 포착한 그의 얼굴에는 연원을 알 수 없는 빛이 드리워져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그러나 지금 딕슨의 얼굴을 강렬하게 뒤덮는 이 빛은 외부의 광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그의 내부로부터 분출된 가학적 쾌감의 시각화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딕슨의 광기를 추동하는 빛은 자연광이 아니라 도시의 인공조명이다. ‘황혼의 시인’이라 불린 니콜라스 레이가 선택한 주인공답게 딕슨은 백주의 시..
2017.08.16 -
“신부님은 ‘일’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내 친구 정일우>의 김동원 감독과의 대화
[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신부님은 ‘일’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의 김동원 감독과의 대화 김성욱(프로그램디렉터) 를 어떻게 처음 기획했는지 궁금하다. 김동원(감독) 개봉할 생각 없이 만든 작품이다. 요즘 개봉 이야기가 나와서 좀 혼란스럽긴 하다(웃음). 처음에는 예수회나 제정구기념사업회도 이 영화를 만들 계획이 없었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나중에 예수회와 일반 후원회원들에게 지원을 받아서 만들었다. 김성욱 감독님의 작품 중 (2001)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작품과 가 연속 선상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 대해 감독님이 “한 개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상 속에 존재하는 한 사람에 대한 작품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친분이 있는 사람에 대한 영화를 찍는다는 건..
2017.08.11 -
배우의 표정에 대한 짧은 생각 - <꿈의 제인>에서 이민지 배우의 연기를 보고
[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배우의 표정에 대한 짧은 생각- 에서 이민지 배우의 연기를 보고 1.영화에서 캐릭터의 감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배우의 얼굴이다. 물론 손의 작은 움직임이나 어깨의 떨림으로도 감정을 보여줄 수 있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건 결국 얼굴이다. 사람의 얼굴은 이마의 주름, 눈썹의 각도, 눈가의 주름, 코의 찡긋거림, 굳게 다문 입술 등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다. 배우들은 자신의 얼굴에 적절한 표정을 만들어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고, 관객은 배우가 만들어낸 이목구비의 기표들을 해석하여 캐릭터의 감정을 짐작한다. 이를테면 어떤 배우가 눈을 크게 뜨고 미간을 찌푸린 채 양 눈썹을 위로 올리고 입을 크게 벌리면 우리는 그 캐릭터가 화가 났다고 판단할 수 있다. 즉 배우의 얼굴은 캐릭터..
2017.08.08 -
출구는 도처에 있고, 어디에도 없다 -<폭력의 씨앗>(임태규)
[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출구는 도처에 있고, 어디에도 없다- (임태규) 군대는 더는 비밀의 장소가 아니다. 숨겨진 것을 들추려는 욕망을 공공연히 드러냈던 TV 예능 프로그램은 금지된 공간으로서의 군대를 소재로 삼으며 운신의 폭을 넓혔다. 생활관과 훈련 장면을 공개하면서 군대의 본질을 알려주는 듯 굴었던 TV쇼와는 달리 영화 은 단 한 번도 생활관 내부로 침투하지 않는 이상한 군대 영화다. 카메라는 생활관은커녕 부대 정문조차 통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첫 번째 숏에서 단체 외출 이후 복귀하는 부대원들의 발걸음은 정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정문 주변을 배회하다 끝난다. 다음 숏은 다른 날처럼 보이는데 이들은 여전히 외출 중이다. 롱테이크 숏은 영화에 필연적인 현장감을 부여하는데, 이때 관객은 상황 외부의 ..
2017.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