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렘 클리모프의 <안녕>

영화가 시작되면, 시커먼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들이 하나 둘 드러나다가 이어 카메라가 수직으로 빠르게 상승하면서 반짝임이 점점 더 강렬해진다. 어둠 속에 잠긴 강물에서 모래알처럼 반짝이는 빛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안개 속에서 다섯 명의 이방인들이 마쪼라섬으로 들어오면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이 빛은 마치 마쪼라섬의 영혼인 듯 느껴진다. 영화는 사라져버린 마쪼라섬의 영혼이 스러져가고 저항해 온 과정을 느리고 긴 장송곡처럼 그린다. 영화 <안녕>은 그렇게 사실적이고, 신비로우며, 아름다운 이미지들 하나하나가 풍부한 감성과 삶의 진실을 함축하고 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 이미지들이 우리를 압도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러시아 마쪼라섬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자연풍광은 인간의 말이나 행동보다도 더 강렬하게 삶과 죽음에 대해 보여준다. 극한적이고 힘든 상황에서도 인간성의 고양을 끈질기게 추구하려는 인물들의 태도는 얼굴과 눈동자의 클로즈업을 통해 끊임없이 부각된다. 역동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은 섬이 사라지기 전까지의 아름다운 초록 풍경들과 그 풍경 속에 어우러진 마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마치 축제와도 같이 그린다.

진실은 기억 속에 있다



브레즈네프 시대 때 대표적인 농촌문학가인 발렌찐 라스푸찐의 <마쪼라의 이별>(1976)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라리사 셰피트코 감독이 각본을 쓰고 기획했던 영화다. 그녀가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자 남편인 엘렘 클리모프 감독이 이어받아 완성했다. 영화는 두 감독의 미학적 스타일이 녹아들어가 인간에 대한 물음을 보다 끈질기고 강력하게 제기한다. 1부에서 마을 사람들 일상의 모습과 생동적인 순간들을, 2부에서는 생동하는 삶이 결국 서서히 스러져가는 모습, 그리고 끝까지 섬에 남아 죽음을 맞이하려는 듯한 태도로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가장 강력한 저항을 보여주는 다르야의 섬과 삶에 대한 태도를 주목할 만하다. 마을의 흔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묘지를 청소하려고 파헤쳤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그녀는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 말한다. 영화에서 다르야가 섬의 수몰을 걱정할 때는 항상 묘지를 걱정하고 돌본다. 그녀는 삶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통해 섬의 역사를 기억하려 한다. 다르야는 묘지가 파헤쳐진 후에 숲을 돌아본다. 여인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다르야는 ‘대자연의 어머니’를 계속 중얼거리며 숲속을 걸어 다닌다. 그리고 숲과 땅, 샘과 풀을 만지면서 기도한다. 태양을 향해서는 낯선 자들을 쫓아달라고 기도한다. 그녀는 이 마을에서 대지와 가장 가까이 호흡하는 인물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다르야가 묘지를 옮겨가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TV화면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들인 파벨에게 이야기할 때 나오는 TV장면은 우주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며, 그 우주선에서 비춘 지구의 모습이다. 또한 손자에게 말할 때는 춤을 추며 노래하는 여자가수가 오랫동안 비춰진다. 원시성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마을 모습의 생경함만큼이나 지구 밖의 우주와 지구상의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한 마쪼라섬의 대지에 묻힌 영혼과의 거리가 느껴진다. 또한, 기술의 발전과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다르야 노인의 삶이 대비된다. 이러한 거리감과 간극은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다르야는 섬이 수몰되기 전까지 결국 끝까지 섬을 떠나지 않고 남아서 묘지를 찾아간다. 거기서 그녀는 부모님이나 신의 목소리가 빙의된 듯,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린다. “진실은 기억 속에 있다. 기억 없는 사람에겐 인생이 없다.” 그리고 지켜보는 일꾼들을 향해 “너희들은 너무 많은 걸 원한다. 너의 길을 끝까지 가거라. 살게 될 것이다”라고.

섬이 사라짐에 대한 저항

영화에서 섬의 수몰을 둘러싸고 보여지는 것은 인물들 간의 갈등이 아니라 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크고 작은 저항들이다. 섬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끝까지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 마을에서 가장 커다란 나무(대왕나무)의 끈질긴 저항이 우리를 압도한다. 섬을 상징하는 이 나무는 영화에서 끝까지 섬의 파괴에 대해 저항하며, 남아 있던 마을 사람들과 섬이 안개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며 영화가 끝나갈 때 파란 가지를 드러낸다. 한편, 작은 저항의 모습은 떠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또 다른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공간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제스처에서도 드러난다. 가령 맨 처음에 마을을 떠나는 여인은 집에서 나오는 걸 주저하면서 기르던 고양이를 계속해서 찾는다. 그리고 돌보던 소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린다. 이들이 떠나자 갑자기 집밖에 쌓아둔 장작이 떨어지며 사람들이 이를 쳐다본다. 또한 마을의 집이 불태워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마을을 떠나는 또 다른 마을 주민은 집을 불태우지 못해 애를 먹는다. 그는 결국 엉뚱하게 장화에 불이 붙어서 집을 불태우고는 절뚝거리며 한 개의 장화를 신은 채로 걸어 나간다. 페트르카는 마을의 주정뱅이로 사람들이 있는 곳엔 언제나 나타나서 아코디언을 켠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는 기이한 행동들을 하고, 그가 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짐작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마쪼라의 사라짐에 대해 울부짖으며 고통스러워한다. 섬의 수몰을 둘러싼 두 인물의 대비되는 태도는 인생에 대한 서로 다른 두 태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마을의 수몰문제를 총 관리하고 있는 보론조프는 다르야와 가장 대비되는 인물로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저항할 때마다 인간답게 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중간에 마을을 불태우는 일을 그만두려는 다르야의 아들 파벨에게도 인간의 특권을 믿으라고,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는 마쪼라섬이 수몰되어 수력발전소가 세워지고 있는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적인 삶이라 믿는다. 섬이 사라진다는 것은 섬에서의 삶(과 그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영화는 섬에서의 삶의 기억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마쪼라섬이 안개 속에서 드러난 이후에 가장 먼저 보여지는 이미지는 아름답고 화려한 러시아의 전통 차 주전자인 사모바 주전자다. 사모바 주전자는 마쪼라 섬 주민들에게는 특별한 물건이다. 그들은 고단한 삶에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삶의 애환과 기쁨을 함께 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사모바 주전자는 여러 차례 클로즈업된다. 집을 떠날 때 한 여인은 이 주전자를 소중히 챙겨서 가며, 집이 불태워졌을 때 또 다른 여인은 폐허더미 속에서 이 찌그러진 이 주전자만큼은 고이 챙겨 나온다. 영화초반의 이 장면에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말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차 주전자와 찻잔, 식탁위의 물건들이 번갈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물들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동등하게 마쪼라섬의 삶의 기억에 함께 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소극적인 저항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삶을 구성했던 집안의 일부인 이런 가재도구들마저도 섬의 사라짐에 저항하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상,
섬의 파괴와 대비

이러한 저항의 모습 외에 영화 속에서 가장 평화롭고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두 장면도 인상 깊다. 하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건초를 베는 농촌의 공동체 문화를 보여줄 때고, 다른 하나는 라디오 소리에 맞춰 온 마을 사람들이 흥겹고 신나게 노래하고 춤을 출 때다. 이 장면을 보면 과연 이 섬이 정말로 사라지게 될 것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고 흥겨운 일상을 보여주는데 이는 곧 이어지게 될 섬의 파괴와 대비되면서 슬프고 아픈 느낌을 더 강조하게 되는 듯하다. 수몰이 예정되어 있고, 이제 곧 떠나야 하지만, 건초작업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들어온다. 이 섬의 가장 아름다운 초록빛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 가운데 아리따운 여인의 구성지고 신비로운 노랫소리가 한 동안 울려 퍼진다. 특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장면은 영화에서 카메라의 역동성이 가장 선명하게 부각되는 장면이다. 여기서 카메라는 춤추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밀착하여 보여준다. 춤의 속도와 리듬이 점점 더 빨라짐에 따라 카메라도 동시에 더 빠르게 움직인다. 카메라는 이들과 함께 즐기고 호흡하면서 집단적 문화와 그 문화의 흥겨움을 더 잘 보여주는 듯하다. 거의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들은 바닷가로 뛰쳐 가서 수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페트르카의 집이 불타고 마을은 아비규환의 상태에 빠지면서 불꽃같던 축제도 이제 끝나게 된다. 그것을 바라보는 마을의 백발영감의 슬픈 눈길이 클로즈업된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축제를 즐길 수 없고, 집은 불태워질 것이며 마을을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보론조프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수몰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통보한다. 소년을 제외한 아이들은 “마쪼라 잘있어”를 외치면서 떠난다. 작별 인사가 화면 가득 반복해서 울려 퍼지고, 배는 서서히 사라져간다.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는 신음 소리 같고 장송곡 같은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섬과 섬에 남은 사람들의 끈질기고 조용한 저항이 보여진다. 사람들은 거의 다 마을을 떠나고 대부분의 집들은 불태워진다. 지게차와 사투를 벌이던 대왕나무는 급기야 밧줄을 끊어버리며, 지게차가 돌진해 와도 끄떡하지 않는다. 결국 다른 집들처럼 불에 태워지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살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파벨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 보론조프와 페트르카와 함께 배에 오른다. 마을에서는 마지막 남은 사람들이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면서 삶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다르야는 “누가 말거는 느낌을 느낀 적이 있느냐”며 “바로 여기서 누가 물어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다른 노인은 자신이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말에 다르야는 “지금 사는 사람은 자네가 아닐지도 몰라. 나도 내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마지막 순간에 이들이 하는 말은 과연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삶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이제, 결국 마을을 떠나야 하는(혹은 남아서 죽게 되는) 다르야는 마지막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어 왔던 자신이 살던 집을 깨끗이 청소한다. 카메라는 다르야가 의식을 치루듯 집안의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커튼을 달고 마지막에 꽃으로 장식하는 장면까지를 길고도 상세하게 보여준다. 청소하는 다르야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리고 물을 퍼다주고 나중에 꽃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 모두 죽음 직전의 이 성스럽고 신비로운 의식에 함께 참여한다. 창문 틈으로 비치는 햇살과 창문이 닫히면서 서서히 어두워지는 실내공간은 이 의식의 그러한 느낌을 더 강조하는 듯하다. 특히, 마지막에 비쳐지는 식탁에 놓인 꽃병은 영화초반의 사모바 주전자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다르야는 불태워지는 집을 슬프게 응시하고 혼자서 풀숲을 걸어간다. 마지막 남은 이 집이 불태워지는 것은 마을의 소멸이자 섬의 소멸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르야가 풀숲을 걸어갈 때 순간적으로 반짝이며 흔들리는 나뭇잎은 영화의 시작에서 어둠속에서 반짝이던 빛을 연상시킨다. 여기서부터 이미 마쪼라는 죽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후에 전개되는 영화 속 장면들은 그야말로 죽음 이후의 마쪼라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수륙양용차의 기이한 등장은 마쪼라 섬이 유령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파벨과 일행이 타고 온 배가 안개로 인해 강에서 길을 잃는 것은 마쪼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비교적 조용하고 느리게 전개되던 영화는 마치 장송곡의 클라이막스인듯 수륙양용차의 경보음과 바지선의 경보음, 그리고 마쪼라를 찾으며 울부짖는 페트르카의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바지선에 걸린 기이한 잠수복은 유령처럼 느껴진다. 카메라는 마지막으로 마쪼라섬을 수평으로 길게 보여준 후 안개 속에 떠 있는 듯한 대왕나무의 가지 끝을 비춘다. 자신이 살던 터가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유일하게 저항할 수 있는 방식은 결국 떠나지 않고 남아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밖에 없는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은 죽음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삶의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끈질기고 강력하게 질문하는 듯하다.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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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엘렘 클리모프 감독의 <고뇌> 상영 후, '해빙기 러시아의 전쟁영화'란 테마로 경상대 러시아학과 홍상우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스탈린 사후의 '해빙기'에 러시아에서는 새로운 미학을 선보인 전쟁영화가 풍성하게 만들어졌는데, <고뇌>도 그 중 하나다. 이번 강연은 러시아의 역사, 정치와도 무관하지 않은 해빙기 러시아의 전쟁영화를 살펴보며 전쟁을 다시금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홍상우(경상대 러시아학과 교수): <고뇌>는 볼세비키 혁명 50주년 기념으로 만든 작품으로 60년대 완료가 되어야 했으나, 여러 차례 검열에 걸리게 됨으로써 뒤늦게 완성된 작품이다. 80년대에 완료되었는데, 자료마다 완성된 시기가 좀 다르게 표기되기도 한다.

러시아의 전쟁영화는 소재가 다양하고, 완성도나 사유의 깊이는 계속 진전되어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직 다루지 않는 소재들이 있다. 자신들이 가해자였던 체코침공이나 폴란드침공에 대해서는 다룬 적이 없는 것 같다. 러시아 전쟁영화에서는 가상의 적들이 등장한다. 제정러시아 시대에는 일본인이, 2차 대전 시기에는 유대인과 독일인이 적으로 등장한다.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서면 자본가나, 귀족계급, 로마노프 왕조를 안 좋게 묘사한다. 전후에는 전쟁에서 돌아온 죄수들을 스파이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러시아는 2차 대전을 ‘대조국전쟁’이라 부르면서 자신들이 영웅적으로 싸워서 승리했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2차 대전으로 부른 것은 최근의 일이다. 공식적으로는 전쟁이 끝났으나 아직도 이러저러한 내전은 진행 중이라 할 수 있다. 빨치산을 다룬 영화를 포함한 러시아의 다양한 전쟁영화는 역사에 대한 해석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역사가들이 공식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기존의 숨겨진 역사들을 전쟁영화를 통해 많이 다룬다. 역사적 해석에 있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준 셈이다. 최근에 잘 만들어진 전쟁영화들은 기록에 남아 있던 사실들을 모티브로 삼아서 만드는 경우들이 있다. <어떤 전쟁>과 <즈베즈다>는 러시아 감찰부대에 관한 영화들이다.

러시아의 전쟁영화는 소비에트 영화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소재나 주제가 다양한 만큼 서구에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다. 러시아 전쟁영화의 특별한 위치는 소련의 탄생 배경과 해체 배경과도 관련이 깊다. 또한 실제이야기든 가공한 이야기든지 중앙집권화된 군국주의적 성격이 있는 국가한테는 체제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토대가 되기도 한다. 전쟁영화는 오락이나 예술의 형태로 공식적인 역사를 전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제작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소재가 되는 것이다.

러시아 전쟁영화는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우선, 1932년까지 러시아는 러일전쟁, 1차 대전, 내전, 그리고 혁명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겪었다. 이 시기는 소련영화의 황금시기였는데 전쟁영화가 가장 중요한 장르는 아니었고 주변부 역할에 머물렀다. 스탈린주의 시기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도입되었는데, 대량숙청이 이루어지는 등 국가에 의한 테러가 빈번하던 시기다. 스탈린은 문화예술 작품에 관심이 높아서 자신이 직접 작품들을 살피기도 하고, 또 심한 검열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를 소비에트 영화 전체의 암흑기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다. 통치체제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기는 했지만, 전쟁시기라는 점이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전쟁 중에 만들어진 이러한 영화들의 중요한 진보는 영화가 여성화되고 탈계급적 성격이 보인다는 점이다.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여성이나 대중인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많다.

그 다음 시기는 여성화 및 인간화가 더욱 두드러진 2차 대전 시기다. 이른바 대조국전쟁 동안 제작된 영화들은 적에 대항해서 싸우는 여성들, 인민들, 정규군 외에 빨치산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졌다. 종전이 다가올 무렵에는 여성이나 비정규부대가 전면에서 물러나고 장군이나 높은 계급의 인물을 다룬 판에 박힌 스토리의 지루한 영화들이 상당기간 등장했다. 전후의 피폐된 현실에서 전쟁에서 싸운 전체 인물들을 다루기보다는 스탈린 본인을 영웅시하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바로 그 다음 시기가 가장 많이 얘기되는 해빙기다. 64년 이전까지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대조국전쟁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이반의 어린시절>, <학이 난다>, <병사의 발라드> 등은 탈스탈린화의 덕택으로 만들어진 영화들로, 그 중 <병사의 발라드>, <학이 난다> 그리고, <인간의 운명>(세르게이 본다르추크) 등은 대중성도 상당히 고려해서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로 인해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이 60년대 후반의 브레즈네프시대 때인데, 2차 대전을 기념비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고, <해방>이 시기의 유일한 전쟁영화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이 1970년대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전쟁영화의 질이 높았다곤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오르기 추흐라이, 알렉세이 게르만, 라리사 셰피트코 같은 재능 있는 감독들이 도전적인 영화를 만든 시기이다. 80년대 중반에 고르바초프의 개혁시도 이후, 85년에서 86년에는 영화산업이 거의 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승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컴 앤 씨>가 이 시기의 유일한 걸작이다. 90년대 들어서면서는 전쟁영화의 제작은 거의 빈사상태에 빠졌다. 그러다가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들어서서 러시아의 경제가 회복되었고 영화산업도 활발해졌다. 여기에는 푸친이 러시아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의도도 작용했다. 2001년에서 2005년 동안에는 러시아 문화에 관한 계획이 세워지면서 영화산업에도 많은 돈이 투자되었다.

러시아 영화 전체를 볼 때, 전쟁에서의 승리를 다루는 영화들은 스토리상에서 몇몇 공통점을 가진다. 나치는 야만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그로 인해 소비에트 인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았으나 스탈린의 영도 아래 마침내 승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계급적 영웅주의와 보편적인 고통, 이 두 가지가 대개는 전쟁영화의 내러티브를 구성한다고 이야기된다. 아무리 혁신적인 영화들이라도 이런 자취는 남아 있다. 검열이 언제나 있어왔고, 그런 검열이 오랜 세월 지속됨으로써 자기검열도 또한 있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한 스토리가 약간 복잡해진 것은 전후에 적군에의 협력 여부를 다루는 내부감찰기관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즈베즈다>가 이러한 영화의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서구영화에서의 전쟁영화의 공식은 행복하고 긍정적인 결말로 이루어지는 반면 러시아 영화는 죽음을 강조한다. 이는 전쟁에서 순교임무를 완수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해빙기 영화의 대표적인 세 작품에서도 주인공들은 전부 다 죽게 된다. 러시아 전쟁영화는 이야기가 굉장히 명쾌하고 메시지도 간파하기가 쉽다. 이는 소비에트 체제가 유지되는 한에서 영화가 수행해야 할 임무중의 하나가 선전선동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리: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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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게오르기 추흐라이 감독의 <병사의 발라드> 상영 후, '러시아 영화의 서정성'이란 주제로 경상대 러시아학과 홍상우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기존 전쟁영화와의 차별성을 보여준 <병사의 발라드>를 중심으로 러시아 영화인들에게 새로운 표현 기회를 준 러시아 전쟁영화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었던 그 소중한 시간의 일부를 옮겨 본다.


홍상우(경상대 러시아학과 교수): 러시아는 20세기 들어서 1, 2차 대전 외에 연방체제의 구성 및 해체과정에서 여러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전쟁영화가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특히, 러시아는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로 구성된 연방체제로 인해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려 왔다. 그래서 지금 현재까지 만들어지는 러시아 전쟁영화는 주제나 소재 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이 많다. 또한 아직까지도 러시아 전쟁영화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작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해빙기 전쟁영화에서 이뤄낸 혁신적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전쟁영화 중 뛰어난 평가를 받는 영화들의 공통점은 적에 대한 분노나 적에 대항해 싸우는 자국 군인이나 군대의 영웅적 행동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전쟁 자체의 비극성을 다루면서 전쟁당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사연이나 인간 자체에 관심을 두는 영화들이 높게 평가받았다. 소련에서는 30년대 ‘소비에트 문화예술의 3대 원칙(당성, 인민성, 교육성)’이 발표되는데, 이것이 사회주의국가 전체의 문화예술의 원칙으로 채택되었다. 이 중 인민성은 특정 개인을 영웅시하지 않고 대중이 중심이 되는 문학작품을 만들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스탈린집권시기에 스탈린을 영웅시하고 우상화하게 되면서 왜곡되어 인민성의 원칙이 유지되기 힘들었다. 이런 시기에 대한 반동으로 해빙기 때 상대적인 자유화로 새로운 경향의 영화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해빙기 전쟁영화를 서정성의 측면에서 볼 때는 대표적으로 <이반의 어린시절>, <학이 난다>, <병사의 발라드> 등을 꼽을 수 있다. 세 작품 전부 다 기존의 전쟁영화에 반기를 들고 혁신을 이룬 영화들이다. 전체영화사로 볼 때 <이반의 어린시절>이 내용의 혁신 외에도 미학적 형식에서 혁신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방금 보신 <병사의 발라드>는 전쟁이 끝나고 15년 남짓한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2차 대전 패전의 상처가 가시지 않았고, 여전히 파시스트에 대한 분노가 강했던 상황에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멜로드라마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놀랍고 혁신적인 영화로 불리운다. <학이 난다>의 경우는 전장에 있는 애인을 배신하는 내용을 다루었기 때문에, 영화가 처음 발표될 당시 언론에서는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세 작품 모두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등 외평단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이 영화들은 서구사회가 지녔던 스탈린시기 고정관념을 깼다는 점에서 해외의 주목을 받은 것이라 생각된다.

<병사의 발라드>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영화 전체가 알료사라는 한 병사의 이야기를 서정적인 발라드의 느낌을 주면서 진행된다. 전쟁영화에서 듣기 쉽지 않은 경쾌한 분위기의 음악이 영화전체에 흐르는 가운데 영화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기차의 바퀴소리가 일종의 후렴구 역할을 한다. 서정적인 멜로디의 음악과 기차바퀴소리가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 전체의 시적인 느낌을 강조한다. 또한 알료사가 영화에서 겪게 되는 페쇄적이고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은 이러한 역동적이고 리듬감 있는 음악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된다. <병사의 발라드>가 기존전쟁영화와 다른 새로운 면모는 영화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드러난다. 이미 전장에서 죽은 알료사에 대한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되며, 전투장면은 딱 두 번 나온다. 전쟁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알료사가 겪은 사건이나 상황들, 인물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쟁이 아니었으면 순조롭게 흘러갔을 인간 삶의 모습이 전쟁으로 인해 방해받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초반에 알료사의 어머니가 길을 바라볼 때 알료사의 어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젊은 부부가 나오고,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에서는 알료사가 전쟁에서 죽지 않았더라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를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두고 일부 평론가들은 전장에서의 죽음으로 인해 이루지 못한 한 병사의 사랑과 이후의 삶에 대한 연민을 발라드처럼 표현했다고도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영화 전체를 서정적인 분위기로 만들면서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도 억제되지 않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과 감정이다. 또한 전장이 아닌 후방의 에피소드들을 보여준 것은 전쟁의 고통이 결국 일상에서 살아가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인 것으로도 생각된다.

영화 전체의 서정성은 무엇보다도 알료사의 이미지와 알료사와 슈라의 사랑으로 인해 더욱 더 강조된다. 알료사는 기존 전쟁영화의 영웅적이거나 신화화된 주인공과 달리 전쟁에서 의도치 않게 공적을 세운 평범한 병사이다.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것 같은 인물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암호명과 알료사의 성은 작은 새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는 훈장 대신 휴가를 선택하고, 시간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도 남을 도우는 일에 앞장선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그가 벌이는 일들이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으로 펼쳐진다. 특히 알료사와 슈라의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상당히 고심했다고 하는데, 두 주인공이 모두 당시 연기학교에 재학중인 신인배우였다고 한다. 러시아의 평론가들 중에는 이 영화의 성공요인으로 이 두 주연배우를 꼽는 이들도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기차 안에서의 대화와 에피소드들을 통해 발전되며, 기차 밖의 풍경과 두 사람의 풋풋하고 순수한 표정의 클로즈업, 기차바퀴소리, 그리고 서정적인 음악 등이 두 사람의 사랑의 느낌을 더욱 더 서정적으로 전달한다. 특히나 안타깝게 헤어진 후 육교에서 재회한 두 사람이 애칭을 부르기 시작하고, 수돗가에서 음식을 나눠먹고 씻는 장면은 전쟁이란 상황에서도 그들만의 소우주가 만들어지는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다. 감독은 주연배우 기용과 관련해서 “관객한테 기억이 분명하게 남아야 한다. 전쟁에 의해 훼손되는 게 아니라 더 깊어지고 심화되는 주인공들의 고양된 사랑을 온몸으로 감정을 실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알료사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나약한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주류영화의 영웅적인 면모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촉박한 휴가시간에 남을 도와주면서도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사실상 비범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은 짧은 만남이기는 하지만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알료사의 이런 면모를 두고 유연한 태도로 처한 상황에 대처하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인물이란 평가도 있다. 영화의 내용이 비극적임에도 영화 전체가 서정적이고 밝은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은 살아있고 진실한 인물로 평가받는 알료사의 형상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정리: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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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 특별 섹션

예술을 통해 교감했던 아름다운 부부, 라리사 셰피트코와 엘렘 클리모프


라리사 셰피트코와 엘렘 클리모프는 60년대 소비에트 영화계의 해빙기(1957~67년 사이를 말하며 소비에트 예술계에 자유가 꽃핀 시기)에 뉴웨이브를 주도하던 매우 주목받는 부부 영화인이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거장 감독인 알렉산더 도브첸코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라리사 셰피트코는 장편 데뷔작 <날개>(1966)로 단숨에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녀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떠올리게 하는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구축했고, 풍경과 인간의 얼굴을 담아내는데 있어 그 누구보다 특별했다. 그러나 4편의 장편영화만을 남긴 채, 그녀는 1979년에 비극적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남편 클리모프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전해지며, 러시아 영화계에 있어서도 더 없이 큰 손실이었다. 이후 엘렘 클리모프는 아내를 추모하는 단편 <라리사>(1980)를 만들고, 아내가 마지막으로 기획했던 영화를 이어받아 <안녕>(1983)을 완성한다. 그의 대표작 <컴 앤 씨>(1985)는 분명 아내의 영화 <고양>(1977)의 세계와 공유하는 지점, 그녀의 영화를 떠올리면서 만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이와 같이 사별 후에도 그들의 교감은 예술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클리모프의 영화는 형이상학적 세계와 리얼리티에 대한 관심이 혼재되어 있고, 이 점 때문에 그는 시적리얼리즘의 거장이라 불렸다. 1980년대 중반 클리모프는 67년 이후로 강한 검열로 억압받던 영화계의 개방을 주도했고, 그동안의 금지작들이 공개되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황제에 대한 동정적 묘사 때문에 금지되었던 클리모프의 <아고니>(1981)도 그의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뒤늦게 대중에게 공개된 사례다. 이 영화는 198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슬픔의 기억을 승화시키고 다시 날아오르는 그녀의 비행, <날개>


라리사 셰피트코의 <날개>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중년 여성(학교 교장)인 나쟈가 느끼는 삶의 무상감과 고독을 그린다. 영화의 첫 장면은 매우 이채롭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포커스 아웃된 형태로 보여주는 듯하지만, 곧 카메라가 뒤로 물러서면 그것이 실내에서 창을 통해 바라본 창밖의 풍경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불필요해 보일 수도 있는 숏은 사실은 여주인공 나쟈가 처한 심리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외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부에 갇혀있듯이, 그녀의 삶도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무언가에 의해 갇혀있는 것이다.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친구인 박물관 원장도, 딸과의 소통 불능도, 학교의 문제아 소년과의 충돌도 그녀의 삶에 커다란 파동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그녀는 일상의 공허함을 느끼고,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그녀가 거리를 걸을 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거리가 갑자기 확 비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녀의 시점으로 구성된 숏은 보도바닥을 비추다가 서서히 상승해 하늘로 향하고, 전쟁 당시 영웅적인 파일럿이었던 나쟈와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 미챠와의 추억의 단편들을 담은 장면으로 연결된다. 이제야 알게 된다. 그녀의 모든 슬픔은 그 남자의 부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모든 그리움은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 그녀는 프로펠러를 작동시키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그녀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사랑했던 사람에의 기억과 그 사람을 상실했던 슬픔과 온전히 조우하고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시 한 번 하늘로 날아올라야만 했던 것이다.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 슬픔을 승화시키는 비행. 분출하는 삶의 열망. 영화는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그 열망을 보여준다.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성에 대한 성찰, <고양>과 <컴 앤 씨>

라리사 셰피트코의 <고양>과 엘렘 클리모프의 <컴 앤 씨>는 독일에게 점령당한 러시아의 작은 마을의 저항군과 민중들이 겪는 비인간적인 극한의 상황을 그린다. 영화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는가, 어디까지 버티는 것이 윤리적인가에 대해 사고한다.

<고양>의 세계는 하얀 눈으로 가득 차 있다. 산 속의 저항군들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은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다는 것이다. 신체로 다가오는 즉각적인 고통, 먹을 것이 없는 사태.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계는 또한 경계가 무화된 세계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특정 지역 벨로루시라는 장소는 하얀 눈과 함께 비워지고, ‘어떤 공간’으로 남는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인간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보다 보편적인 차원의 성찰로 확장된다. 또한 눈 덮인 대지는 무언가 영적인 것이 깃든, 앙드레 바쟁이 칼 드레이어의 영화를 일컬었던 말을 빌리자면, ‘백색의 형이상학’의 세계이기도 하다. 이곳에 내던져진 인물들은 미묘한 삼각형을 이룬다. 극한의 상황에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자,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 밀고자가 되는 자, 그리고 이 두 사람을 복잡 미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대독협력자인 러시아 고문기술자. 영화는 그들의 얼굴을, 눈동자를 보여준다. 모든 감정은 눈동자에 응축되어 있다. 이들이 처한 극한적 상황은 순교가 더 인간적인지 밀고가 더 인간적인지에 대한 판단 자체를 시도할 수 없게 만든다. 하얀 대지는 신음한다. 이 고통은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컴 앤 씨>는 <고양>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이어받아, 거기에 역사적 리얼리티를 가미한다. 이 영화는 ‘비엘로 러시아’ 마을의 민간인 628명이 독일군에 의해 불에 타 죽은 실제 역사를 재현한다. 저항군에 가입하려다가 쫓겨난 어린 소년은 마을 주변을 떠돌며 이 모든 사건들을 본다. 카메라는 소년을 따라다니며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들을 탐사하고 바라보는 증인의 눈처럼 움직여간다. 영화의 배경은 리얼리티에 입각해 있지만, 동시에 초현실적인 기묘한 느낌이 배어있다. 영화의 후반부는 마을 사람 전체를 밀폐된 창고에 몰아넣고 불태워 죽이는 독일군들의 모습을 오랜 시간동안 보여준다. 카메라는 창고 내부에서 타죽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는 대신, 창고를 둘러싸고 하나의 축제처럼 즐기고 있는 독일군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그들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끔찍하다. 어쩌면 희생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끔찍할지도 모른다. 소년은 이 모든 것을 바라본다. 동시에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소년의 얼굴과 눈동자를 본다. 소년이 겪는 극도의 공포감과 충격은 얼굴의 손상을 통해 드러난다. 그 학살의 축제가 끝날 때쯤이면 소년의 얼굴은 마치 노인처럼 보인다. 그 어떤 것으로도 씻어낼 수 없을 법한 극한의 고통의 흔적이 소년의 얼굴에 새겨져 있다. 인간의 얼굴을 통해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는 감정을 놀랍게 묘사하는 면에서 셰피트코의 <고양>의 경지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소년은 물가에 잠긴 히틀러의 포스터에 총을 쏘기 시작한다. 총이 발사될 때마다 거꾸로 돌아가는 뉴스릴의 영상이 몽타주 된다. 마치 역사를 되돌리고 싶다는 듯이. 역행하던 독일의 역사는 종국에는 히틀러라고 생각되는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있는 사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자 소년은 아이의 얼굴을 향해서는 더 이상 총을 발사하지 못하고 대신 눈물을 흘린다. 앞서 독일의 파시스트는 “아이들이 있으면 다시 되살아난다. 너희들은 존재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고, 소년은 이 말을 들었다. 아이를 향해서는 차마 총을 쏘지 못하는 것, 이것이 그 소년의 내면이 선택한 최후의 인간성일까. 이는 소년이 한 명의 개인으로서 역사를 홀로 마주했던 순간이다. 소년은 군대의 행렬에 합류하면서 다시 집단의 일원으로 사라진다. 카메라는 그 행렬에서 벗어나 숲을 가로질렀다가 다시 행렬을 비추고 멈춰 선다. 그렇게 그 고통의 기억을, 오욕의 역사를 떠나보낸다.

러시아 역사의 중대한 순간을 재현하는 <아고니>

엘렘 클리모프의 <아고니>는 러시아 황실이 무너지면서 제정정치가 끝나는, 20세기 러시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순간을 보여준다. 영화는 일촉즉발 위기의 임계점에 처한 러시아의 상황을 보여주는 뉴스릴 필름을 활용하며, 등장인물이 나올 때마다 자막을 통해 이름과 직책을 소개하는 등 역사적 사실을 매우 정밀하게 표현한다. 황실의 무너짐의 중심에는 로마노프 왕족의 최후의 짜르인 니콜라이 2세의 유약함과 황실 깊숙이 침투해 사실상 국정운영의 중심적 역할을 했던 남자 라스퓨틴의 광기가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각료들로부터 혁명의 경과에 대해 보고받던 황제가 현실에서 도피하듯 회의실을 벗어나 비밀 통로로 보이는 복도를 지나 황후의 내실로 들어가는 부분이다. 그곳에서 라스퓨틴은 종교적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고 황후는 그를 숭배하듯 떠받든다. 황제는 거기서도 도피하여 사진현상실로 들어가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라스퓨틴은 성자이자 예언자로서의 모습, 광인으로서의 모습, 현명한 책략가로서의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영화의 중심성은 점점 그가 성인인가 광인인가에서, 그를 둘러싼 인간들과 사회가 벌이는 행동과 인간성의 문제로 옮겨간다.

황실과 민중간의 간극은 도저히 매워질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클리모프는 이 거대한 틈새를 흑백의 기록용 뉴스릴 영상과 컬러로 재현된 영상(픽션)의 몽타주를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러시아의 비극적 역사(전쟁, 폭동, 기아로 비롯된 고통)가 기록된 영상과 황실 내부의 동화적 공간에서 라스퓨틴이 이상한 향락의 쇼들을 벌이는 장면이 충돌하면서, 러시아 황실이 왜 무너졌으며, 왜 무너져야만 했는지를 비판적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역사적 리얼리티와 라스퓨틴이라는 인물 자체가 내포한 영적인 면모에 대한 흥미 모두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황실과 라스퓨틴이 무너져 내릴수록, 흑백으로 표현되는 초현실적인 재현된 이미지가 다수 등장하면서, 컬러와 흑백의 이분법적인 경계가 무너지고 뒤섞이기 시작한다. 기록된 영상과 재현된 영상이 혼재되면서, 황실과 민중간의 간극의 틈새도 좁혀진다. 즉 황실이 무너지고, 나라는 민중들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 역사의 변혁을 표상하는 영화적인 방식의 하나의 훌륭한 사례로 남아있다.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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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오는 27일부터 5월 9일까지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러시아 모스필름 회고전'을 연다.

세계 2차 대전 종전 65주년을 맞아 여는 이번 행사에는 미하일 칼라토초프 감독의 <학이 난다>(1957), 게오르기 추흐라이 감독의 <병사의 발라드>(1960) 등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러시아 영화계에 찾아온 일명 '해빙기'를 대표하는 전쟁 영화 10편을 상영한다. 해빙기 이후에 러시아에서 제작된 영화들은 당시 스탈린 시대의 가혹한 사회, 정치적인 상황을 벗어나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의 문화 예술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특히 이번 상영작에는 특별 섹션으로 1960년대 후반에 뛰어난 미학과 독특한 시각으로 러시아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유명한 부부영화인 라리사 셰피트코와 엘렘 클리모프의 대표작 6편도 포함되어 눈길을 모은다. 그리고 회고전 기간에는 '해빙기 러시아의 전쟁영화', '러시아 전쟁영화의 서정성'을 주제로 한 경상대 러시아학과 홍상우 교수의 특별강연도 마련되어 있다. 자세한 상영 스케줄과 강연 일정은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를 참고하면 된다.

한편 1923년에 설립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필름은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거대하고 생산적인 스튜디오로 약 3천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오늘날까지 중요한 영화기관으로 남아 있다. (신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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