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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서점들에 붙이는 각주』 (현대문학)

지난 연말에 밥 엡스타인(Bob Eckstein)의 ‘세계에서 가장 멋진 서점 일러스트 엽서 세트’를 선물로 받았다가 그림에 이끌려 ‘World’s Greatest Bookstores’라는 책을 원서로 샀는데, 나중에 보니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서점에 붙이는 각주’라는 제목으로 ‘현대문학’에서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알게 됐다. 영화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늘 공간과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되는데, 솔직히 도서관이나 서점이 늘 부럽다. 몇 년 전 다케오 시립도서관을 들렀을 때 이를 실감했다. 다케오온센역에서 내려 산기슭까지 이십 여분 여유있게 걷다보면 나오는 작은 온천도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도서관이 있다. 20여만 권의 장서에 1층 왼편에는 수만 편의 CD와 DVD가 책장에 빼곡히 꽃혀있는 대여점도 있었다. 누구도 이런 시골 마을에 이런 큰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구 5만 명의 도시에는 작은 마을 도서관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도서관은 거대한 책의 규모로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알랭 레네의 영화에서처럼, 세상의 모든 기억 앞에서의 망연자실이라 해야 할까. 단순한 필요 이상의, 접근 가능한 것 이상의 책들 앞에서 우리는 책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차이라면 영화관은 비어 있고 서점은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서점은 게다가 극장이나 도서관을 가는 것과는 달리 언제든 부담 없이 들릴 수 있어 좋다. 말하자면, 여행자에게도 열린 장소다. 그림을 뒤적거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엘 아테네오(El Ateneo Grand Splendid) 서점의 엽서 한 장을 꺼내 본다. 그곳에서는 카페 콘 레체를 마시면서 아름다운 책의 전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김성욱)

 

Poster : 벽에 붙이고 싶은 포스터 고르기 7.

폴란드 그래픽 디자이너 Asia Pietrzyk (https://www.instagram.com/asiapietrzyk/)

안제이 바이다 <순진한 마법사> 삽화 시리즈

지난 해 12월, “2020 폴란드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안제이 바이다 <순진한 마법사>는 의사가 본업이지만 재즈 밴드에서 드러머로도 활동 중인 바실리가 어느 클럽에서 만난 펠라지아와 함께 도시를 걸어다니고, 신비한 기억을 쌓는 하루의 밤을 담아낸다. 

크리스토퍼 코메다의 황홀한 재즈와 펠라지아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티나 스티풀코브스카의 얼굴, 재즈가 멈춘 엔딩크레딧, 이어 황덕호 재즈 평론가가 들려준 코메다의 비극적 죽음에 관한 이야기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던 날. 며칠 전에는 당시 시네토크에서 추천 받았던 코메다의, 한국어로 번역하면 ‘난시’라는 앨범을 다시 듣기도 했다.(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는 당시 안제이 바이다의 친구들이었던 로만 폴란스키 그리고 크리스토퍼 코메다 등이 잠깐 출연하기도 한다. (예그림)

 

Lunch : 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 종로3가에서 밥 먹기 7.

밀: 끼니

요즘은 워낙 맛있고 개성 넘치는 빵집이 동네마다 많아 웬만해서는 ‘빵 맛집’ 소리를 듣기 어렵다. 국일관 맞은 편에 있는 『밀: 끼니』도 이런 맥락에서는 특별한 주목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 가게 자체가 많이 낡아 눈을 끌기 어려우며 한눈에 예뻐 보이는 알록달록한 디저트를 팔지 않아 유행에 뒤쳐졌다는 느낌이 든다. 작업 공간과 판매 공간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살짝 어수선하기도 하다.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싶으면 바로 옆의 『카페 뎀셀브즈』, 더 선명한 개성의 빵이 먹고 싶으면 조금 걸어서 안국쪽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밥보다 빵을 많이 먹는, 그리고 종로가 직장인 나 같은 사람에게 『밀: 끼니』는 정말 고마운 곳이다. 이곳의 빵은 다들 큼직큼직하고 속이 꽉 차 있어서 하나만 먹어도 배가 든든하다(간판에 적혀 있는 문구, “끼니는 챙기셨나요?”). 너무 달거나 짜지도 않아서 부담 없이 밥처럼 먹을 수 있고, 단팥빵에서 소세지낙엽빵, 스콘에서 앙버터, 샌드위치까지 종류도 은근히 다양하다. 게다가 요즘 다시 유행 중인 다쿠아즈 같은 디저트도 팔고 있다. 진열대에 가득한 빵을 보고 있으면 사장님이 하루 종일 열심히 빵을 굽는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충동 구매를 해도 별 부담이 없다. 편의점에서 파는 공장빵이나 『파리 바게뜨』의 익숙한 빵이 먹기 싫을 때 이곳을 찾으면 항상 신나는 기분으로 즐겁게 빵을 고를 수 있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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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1~4권 / 다무라 유미 / 연재 중

소위 ‘순정 만화’의 예쁜 그림체를 갖고 있지만 꽤 끔찍한 사건들이 쉬지 않고 등장하는 추리 만화다. 왠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약간 눈치도 없어 보이는 천재형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사건 현장에서 멀뚱한 표정으로 사정 없이 진실을 파헤친다. 경찰을 비롯한 조연들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주인공을 견제하지만 나중에는 그의 도움을 받고 결국 친밀감까지 느낀다. 그리고 주인공은 변함 없이 태연한 표정으로 유유히 일상으로 돌아간다(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즉시 또 다른 사건과 마주친다). 

사실 이런 설정과 전개는 많은 소설과 만화,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 만화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요소는 적절한 거리감이다. 백수인 주인공이 사건과 만나는 방식은 언제나 우연이다. 주인공은 버스에 타거나 산책을 하는 동안 사건과 마주치고, 그때마다 사건 당사자들의 가슴 아픈 비밀과 속사정을 알게 된다. 갑자기 타인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 것인데, 이 만화는 이때 발생하는 주인공의 책임감을 아주 능숙하게 잘 다룬다. 너무 흥미 본위로 접근해 경박하게 그리지도 않고, 너무 진지하게 파고들어 타인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는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 말로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애매한 영역인데도 작가는 매 에피소드마다 이 영역을 잘 포착한다.

발간 속도가 느린 게 좀 불만이지만 디테일이 워낙 많은 작품이라 생각날 때마다 다시 꺼내서 읽어도 매번 새로운 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다시 잠깐 봤는데 역시 재미있었다. (김보년)

Poster : 벽에 붙이고 싶은 포스터 고르기 6.

데이빗 린치 <트윈 픽스>

Fire walk with me

어렸을 때부터 타투에 대한 로망이 가득했던 나는 레터링을 한다면 첫 번째로 이 문장을 새겨넣기로 마음 먹었다. 이 문장과 함께라면 어디에서든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몸에는 별 모양 하나도 새기지 못했다. 엄마가 타투를 하면 호적에서 파버린다고 협박을 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 협박에 순종하며 살았지만 지난 해 추석, 엄마에게 고백을 했다. 지금까지 기다린 것도 충분히 엄마를 위한 예우를 다 한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상상하는 무서운 용 같은 건 그리지 않을 것이다. 제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엄마는 억울해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 날 밤은 조용했다.

나는 <트윈 픽스> 오타쿠라고 할 수도 없는데 그냥 이 작품을 마구 짝사랑한다. 언젠가 극장에서 <트윈 픽스>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시리즈 전편을 다 보고 나와 종로 뒷골목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식당에서 <트윈 픽스>, 그리고 데이빗 린치 이야기를 종일 할 수 있는 날을 상상해본다. 으악 좋다. (예그림)  

Lunch : 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 종로3가에서 밥 먹기 6. 

대륙

간단한 식사를 이야기 할 때 중국집을 빼놓을 수 없다. 종로 주변에는 중국집이 꽤 많이 있지만 내가 자주 가는 곳은 “대륙”이다. 지금은 없어진 유니클로 건물 지하에 있는 곳이니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이라면 아마 어딘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최근 몇 달 간 장사를 쉬기도 했고, 내부 공사를 하면서 지금은 간판도 없어졌지만 여전히 성업 중이다.

이 가게는 주위에서 보기 드물게 깔끔한 중국집이다. 종로의 식당을 찾을 때마다 청결에 만족한 적이 거의 없는데 이 가게는 그래도 기본은 지키는 편이다(어디까지나 주위의 다른 식당에 비해 청결하다는 말이다). 접객도 친절한 편이고 음식도 골고루 맛있다. 볶음밥을 시키면 짬뽕 국물이 아닌 계란국을 준다거나, 배달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신뢰를 준다. 중국 냉면(여름 한정 메뉴)이나 유린기 같은 메뉴는 왠만한 중식집보다 맛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장점은 별도의 방이 있다는 점이다. 일을 하다보면 식사와 회의를 같이 하거나 손님과 간단히 술을 먹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항상 곤란하다. 종로 주위의 식당은 맛을 떠나 대부분 너무 시끄럽거나 테이블 간격이 좁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륙에는 작은 방이 여러 개 있어 손님들과 찾기 적합하다. 아마 우리 극장이 서울극장으로 옮긴 뒤 가장 많이 찾은 곳이 대륙일 것이다. 

조금 특별한 추억도 있다. 2018년 “하라 가즈오 특별전” 당시 하라 가즈오 감독님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시네토크가 끝나자 시간은 늦어졌고, 감독님은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고 하셨다. 택시를 타고 조금 멀리 나갈까도 싶었지만 감독님이 피곤해 보여서 결국 바로 앞에 있는 대륙을 찾았다. 감독님은 일본에도 이런 현지화된 중식당이 있다고 하시며 요리와 맥주를 맛있게 드셨고, 얼마 안 가 앉은 자리에서 바로 주무시기 시작했다. 너무 편하게 잠이 든 모습에 바로 깨우지도 못하고 우리끼리 조금 더 얘기를 하면서 밥을 먹었던 이상하고 즐거웠던 풍경이 기억난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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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적연화·택동25』 花樣的年華·澤東廿五

In the Mood for Films - 25th Anniversary of Jet Tone Films 2016.香港國際電影節協會

비록 수집가는 아니지만 책이 불러오는 기억들에 의존하는 편이다. 종종 외국 여행 중에 당장의 쓸모와 상관없이 책을 구입하는 이유다. 얼마전 파리 생 미셀의 백 년이 넘는 서점 ‘지베르 죈느(Gibert Jeune)’가 코로나 여파로 내년 3월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 미셀의 악시옹 크리스틴이나 에스파스 생 미셀 영화관을 갔다가 자주 들렸던 이 서점에서 샀던 책들이 책장 구석에 있는데, 꺼내보기 위해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기억이 밀려 든다. 그 책들은 이제는 사라질 어떤 장소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게 될 것이다.

연말에 왕가위 영화를 상영하면서 2016년 가을에 홍콩에서 구입한 책을 오래간만에 꺼내본다. 왕가위의 택동영화사 25주년을 기념해 홍콩국제영화제에서 기획 출간한 책이다. 홍콩의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를 방문했던 때에 맛난 스파게티를 먹고 큐브릭 서점에서 구입했다. 왕가위와 작업한 스태프들, 배우 들의 다양한 인터뷰가 실려있고 보기드문 포스터와 다양한 사진들이 페이지를 장식한다. 4년이 흘렀지만 중국어를 모르니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다. 그때 홍콩의 기억만을 간직한 영원히 침묵에 있는 책으로 남았다. (김성욱)

 

Poster

벽에 붙이고 싶은 포스터 고르기 5.

스와 노부히로 <듀오> & <퍼펙트 커플>

 

“<듀오>에서 함께 일했던 다무라 마사키 촬영감독은 프레임을 꽉 짜기 보다는 중심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틈새를 만드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퍼펙트 커플>의 카롤린 샹페티에 촬영감독은 여러 면에서 그와 대조된다. 그는 논리적이고, 납득을 하지 않으면 촬영을 하지 않는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 나의 연출 컨셉도 명확해진다. <퍼펙트 커플>에서는 미술을 비롯해 영화의 여러 부분을 함께 이야기했고 공동연출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 두 대를 사용하게 된 것도 그의 의견이었다.”(스와 노부히로)

오며 가며 종종 인사를 하던 사람이 있었다. 우연히 보내온 사진 속, 그녀의 집 벽에 붙어 있던 스와 노부히로 <듀오> 포스터가 눈에 띄었고 어쩌면 그 포스터 때문에 그 친구와 가까워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한강이 보이는 그녀의 집에서 <듀오>의 실물 포스터를 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 친구와 게으르게 이불을 덮고 따뜻한 음식을 함께 먹으며 노트북으로 <듀오>를 틀어 보고 싶은, 2020년의 겨울이다. (예그림)

 

Lunch

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 종로3가에서 밥 먹기 5.

할매국수

 

가끔씩 잔치국수, 또는 멸치국수를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나는 주로 정신적으로 지치고 육체적으로 허기질 때, 거기에 입맛도 별로 없을 때 잔치국수가 먹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때마다 별 고민 없이 “할매국수” 로 간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할매국수는 좁은 골목에 있는 작고 허름한 가게다. 그러다보니 ‘외부 사람’이 일부러 여기를 찾을 것 같지는 않다. 큰 길만 걸어다니면 여기에 식당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테고, 그래서 그런지 주위 가게의 직원으로 보이는 분들과 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환경미화원 아저씨들과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있었다). 영업 시간도 깔끔하게 오후 6시까지라 ‘점심 장사’ 전문임을 알 수 있다. 

이 가게의 특징은 양이 엄청 많다는 것이다. 커다란 스텐인레스 그릇에 갓 끓인 소면을 가득 넣어주시는데 왠만큼 배가 고프지 않으면 국물까지 다 먹기가 어렵다. 고명은 김가루와 약간의 유부 뿐이지만 딱히 고명이 안 아쉬울 정도로 국수를 많이 주신다. 게다가 밥솥에 있는 보리밥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국수만으로도 배가 불러서 밥까지는 엄두도 못 내지만. 

메뉴는 잔치국수, 비빔국수, 해물국수, 회국수, 떡국 등으로 은근히 다양한데 나는 잔치국수만 먹어서 다른 메뉴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엄청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잔치국수에 뭔가 놀랄 만한 개성이 있어도 이상할 것 같다. 그냥 반찬으로 나오는 시원한 신김치와 따뜻한 국수를 계속 먹고 있으면 이만한 음식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추운 겨울이 찾아왔으니 한동안 더 자주 찾을 것 같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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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ook : 아카세가와 겐피이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안그라픽스)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 아카세가와 겐피이, 안그라픽스, 2020

 

후방을 돌아보아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때 전방을 주목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예술에도 전위라는 것이 있다.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그 역할이다. 주변은 모두 낡은 것이니 그것을 파괴하면 즉시 새로운 것이 나타날 것이다. 전위예술가 아카세가와 겐페이는 『침묵의 다도, 무언의 힘』에서 이런 설명을 다른 식으로 고쳐쓴다. 원래 예술이라 불리는 것들이 일상 생활에 존재했는데, 근대에 들어서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예술을 추출했고, 예술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머리 위에 등장한다. 그때에 예술이라는 개념을 다시 일상으로 되돌리려 전위예술이 등장한 것이다. 예술을 직접적으로 일상 감각에 연결하려는 행위가 전위인 것이다. 책을 읽지는 않고 제목만 보고 서평을 쓰기도 했던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글은 『나의 클래식카메라 탐닉 - 금속인류학 입문』에서 말했던 것처럼 혈중금속농도가 올라간 사람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이미 30년전에 출간된 책이지만(국역본은 올해 1월에 출간됐다), “세상은 어떤 곳에서는 무언이 융성하고 어떤 곳에서는 달변이 지배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은 어떤 세상일까. 귀를 맑게 정화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의 울림은 여전하다.(김성욱)

Poster : 벽에 붙이고 싶은 포스터 고르기 4.

by Riadykuat Riadykuat

미야자키 하야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쿠, 생각났어.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한테 들은 얘기야. 내가 어렸을 때 강에 빠졌었는데 그 터에 아파트가 들어섰대. 문득 생각이 났어. 그 강의 이름이 코하쿠 강이었어. 네 진짜 이름은 코하쿠야.”

“치히로, 고마워. 내 진짜 이름은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야. 나도 생각났어. 네가 내 안에 빠진 적이 있어. 신발을 주우려고 했었지?”

“맞아, 네가 날 얕은 곳에 옮겨 줬어. 정말 기뻐.”

(예그림)

Lunch : 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 종로3가에서 밥 먹기 4. 

열심히 일하다보면 때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자주 찾는 식당 중 하나가 피카디리 앞에 있는 명동칼국수다. 상호에는 ‘칼국수’라고 적혀 있지만 내가 주로 먹는 메뉴는 11,000원짜리 특보쌈정식이다. 한끼 식사로는 살짝 부담스러운 가격이라도 고기와 야채가 꽤 넉넉하게 나온다. 균형 있는 식사를 했다는 뿌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어 좋다.

이 가게의 특징은 옆 테이블 손님에 따라 가게 분위기가 크게 좌우된다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면, 높은 확률로 밥과 술을 먹으며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는 어르신들을 만나게 된다. 이건 사실 명동칼국수만의 특징은 아니고 종로3가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종로의 어르신들은 시간에 관계 없이 반주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혼잡한 시간을 피해 늦은 점심, 또는 이른 저녁을 먹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높은 비율로 술에 취한 어르신들을 만난다. 이분들은 기분 좋게 취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큰 목소리로 나누시고, 나는 본의 아니게 저분들의 속깊은 생각을 엿들으며 밥을 먹는다. 사업에 성공한 아들 자랑,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 김정은과 문재인과 트럼프와 허경영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밥을 먹다보면 복잡한 일 생각은 잠시 잊을 수 있다. 다른 곳이라면 이런 분위기가 불편할 법도 한데 의외로 이곳에서는 그런 나쁜 기억은 없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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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ook : 조르주 페렉 『공간의 종류들』(문학동네)

조르주 페렉 저/김호영 역 | 문학동네 (2019)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집에 있거나 주변을 산책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무료한 시간들은 늘고 평소라면 눈에 잘 들어지 않는 사물들에 눈길이 머물곤 한다. 무질서하게 놓인 책상위의 물건들, 책장 사이에 끼워둔 작은 엽서들, 혹은 집 앞의 이를모를 꽃들과 언덕으로 오르는 골목길들, 집 뒤의 서달산으로 향하는 산책로와 그곳 주변을 별일 없이 돌아다니는 일들. 이런 시간의 활용은 반복적이며 평범해서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개인의 삶에서 멈출 수 없을 정도의 본질적인 것이기도 하다. 덧없음과 근원성. 사람은 필수적인 것들만을 하지는 않고, 그런 식으로 삶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종종 말하지만, 영화(관람) 또한 우리 삶의 평범한 현실처럼 그런 양면성을 갖고 있다.  

조르주 페렉은 우리가 삶에서, 현실에서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특별히 우리 주변의 흔하고 평범한 것들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하고, 말을 주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는 이를테면, 신문이 모든 것을 화제로 다루지만 매일 일어나는 일만은 다루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말 일어나고 있는 일,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일, 매일 일어났다가 반복하는 일, 평범한 일, 일상적인 것, 흔한 것, 보통 이하의 것, 주위의 웅성거림, 익숙한 것들,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설명하고 기술할 수 있을까? 혹은 우리에게 가능한 한 더 친밀한 공간들, 이를테면, 침대, 방, 거리, 집, 도시, 시골 등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1974년에 출간된 『공간의 종류들』 에서 페렉은 이 어려운 작업을 시도한다. 국내 번역출간된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페이지, 침대, 방, 아파트, 건물, 거리, 구역, 도시, 시골, 나라, 세계…등등, 나의 지리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친밀한 공간을 명상하게 한다고 한다. 책에 이끌린 독자라면 꼭 명상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 같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우리 삶의 평범한 무언가를 이런 시대에도 살아남게 하기 위해 어떤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다.  (김성욱)

Poster : 벽에 붙이고 싶은 포스터 고르기 3.

프랑수아 트뤼포, 400번의 구타

“지겨워. 난 내 인생을 살고 싶어.”(앙트완)

문제아로 찍힌 열 네 살 소년 앙트완의 유일한 위안은 학교를 빼먹고 친구 르네와 영화관을 가는 것이다. 트뤼포의 암울했던 청소년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장편 데뷔작 <400번의 구타>(1959)의 제목을 지을 때 ‘아이는 400번을 때려 키워야 바르게 자란다’는 프랑스 속담을 인용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자전적 영화에서 트뤼포는 주인공의 아픔을 어느 성장 영화처럼 누구나 겪는 한 때의 방황으로 낭만화하지 않는다. 앙트완은 열 네 살이지만 쓸쓸하고 또 상처받는 한 명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신의 앙트완, 장 피에르 레오의 서늘한 얼굴은 트뤼포가 담아내고 싶었던 본인의 어린 시절의 얼굴이었을 것이다. 

Lunch : 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 종로3가에서 밥 먹기 3. 

GS25 서울극장점

우리 극장이 낙원상가에서 서울극장으로 이사온 게 2015년이다. 그때부터 극장 앞에 있는 GS25를 찾았으니 햇수로 6년째 꾸준히 방문 중인 편의점이다. 어쩌다보니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찾은 편의점이 되어버렸고, 아마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이라면 최소 한 번은 이곳을 방문한 적 있을 것이다.

이 편의점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락 종류가 많다는 것이다. 근처에 작은 상가들이 밀집해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마땅한 식당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점심 시간이 되면 진열대가 도시락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2시가 지나기 전에 이 도시락이 모두 팔린다. 만약 점심 시간에 이 편의점을 찾는다면 지금 GS25가 만드는 도시락 메뉴의 대부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러 굳이 여기를 찾을 사람은 없겠지만 “굿애프터눈 시네마테크”를 보기 전 도시락으로 간단히 한끼를 해결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도시락이 많은 것과 비슷한 이유인 것 같은데 과일 상품도 꽤 많이 들어온다. 바나나는 물론, 사과와 복숭아, 포도 등이 계절에 맞게 꾸준하게 진열대를 채운다. 고구마와 옥수수, 삶은 계란 같은 상품도 다양한 걸 보면 아마 다이어트를 하는 주변 직장인들을 위한 구성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나도 딱히 밥은 먹기 싫고 배는 고플 때 GS25를 즐겨 찾는다.

마지막으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파는 아메리카노가 의외로 나쁘지 않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레귤러 사이즈가 한잔에 1,200원으로 소위 커피 전문점의 3,000원이 넘는 아메리카노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날카로운 산미나 풍성한 향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잠을 쫓으며 2시간 동안 영화를 보기엔 이 한잔으로도 충분하다. 흡연자 관객들은 담배까지 팔면 완벽한 편의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비흡연자인 나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아니, 만족 정도가 아니라 이 편의점의 존재에 항상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김보년)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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