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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치(박세가, 다음 웹툰 / 송송책방)

‘노가다’ 현장을 그린 어름치를 좋아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힘빠진 그림체도 정감이 가고 느릿한 전개 리듬도 좋고, 각양각색의 인물들도 다들 매력적이다.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라 그런지 공사장 디테일도 신선하고, 은근히 빼곡하게 들어찬 썰렁한 유머도 좋다. 결말 뒤에 찾아오는 여운도 생각보다 크다. 소재 특성상 언뜻 특별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맡은 임무를 완수하느라 땀 흘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시원섭섭한 개운함도 잘 녹아 있다. 이런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어름치는 최근 본 만화 중 가장 좋은 인상을 남겼다.

또 하나 특히 좋았던 건 ‘건강한 어른’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최근 창작물에서 근사한 기성 세대를 만나는 게 드문 일이 되어버렸는데, 어름치에는 실장 캐릭터가 좋은 어른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것보다 실장님이 일하고 쉬는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어서 만화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었다. (김보년)

Poster : 벽에 붙이고 싶은 포스터 고르기 8.

서울아트시네마 ‘2020 포르투갈 영화제’

2020년 베를린영화제 인카운터스 부문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 수상작, 카타리나 바스콘셀로스 <변신>(2020) 스틸로 제작한  ‘2020 포르투갈 영화제’ 메인 포스터는 톤이며 질감이며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나의 방 벽에도 붙여 놓았던, 특히 아끼는 포스터였는데 판매가 한 장도 되지 않아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포스터이다. 

<변신>의 줄거리는 이렇다.

“엔리크란 이름의 노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에겐 여섯 명의 자식들과 손주들이 있으며 오랜 기억이 깃든 집도 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아내 베아트리스가 있다. 기억의 흐름과 함께 시간은 과거 속으로 부드럽게 이동하며, 엔리크와 베아트리스, 그리고 자식들을 둘러싼 일상의 단면과 감정의 상태를 단정하고 정갈한 이미지로 포착한다. “

얼마 전 나는 집의 구조를 바꿔보겠다고 가구와 물건들을 다 이동시켰고, 거의 일주일 째 처음 이사온 날처럼 살고 있는 중이다. 다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아 이틀 전에 바닥에 떨어진 포르투갈 영화제 포스터만 벽에 다시 붙여 놓고는 이 단정하고 정갈한 이미지를 멍하니 쳐다보던 밤만 지나 보냈다.(예그림)  

Lunch : 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 종로3가에서 밥 먹기 8.

이삭토스트(피카디리 앞)

서울아트시네마 근처에는 이삭토스트가 두 개 있다. 하나는 국일관 앞에 있고, 또 하나는 피카디리 앞에 있다. 둘 중 내가 주로 가는 곳은 피카디리 앞 이삭토스트다. 극장과 더 가깝고, 손님이 상대적으로 더 적어서 주문을 바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삭토스트에 관한 긴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지만, 그동안 이삭토스트에 시들했던 분들이 있다면 꼭 최신 메뉴를 확인해보길 권하고 싶다. 이삭토스트는 의외로 신메뉴 개발에 적극적이라서 거의 한 달에 하나씩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다. 최근에는 소세지를 넣은 토스트도 나왔고, ‘리챔’을 넣은 메뉴도 나왔다. 나는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의 신메뉴를 맛 보는 걸 좋아해서 일부러 이삭토스트를 정기적으로 찾는다. 극장에서 먹다보면 항상 내용물이 밖으로 튀어나와 남들보기 부끄럽고 치우기도 곤란하지만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피카디리 앞 이삭토스트에서 토스트를 사면 바로 옆의 톰앤톰스 커피숍 안에서 먹을 수 있다. 토스트를 사면 커피를 할인해주는 이벤트도 하고 있으니 영화 보기 전 가볍게 요기를 할 분은 참고하시길. 그리고 토스트를 기다리는 동안 피카디리 앞의 묘하게 카오스적인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도 이곳을 찾는 또 하나의 재미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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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서점들에 붙이는 각주』 (현대문학)

지난 연말에 밥 엡스타인(Bob Eckstein)의 ‘세계에서 가장 멋진 서점 일러스트 엽서 세트’를 선물로 받았다가 그림에 이끌려 ‘World’s Greatest Bookstores’라는 책을 원서로 샀는데, 나중에 보니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서점에 붙이는 각주’라는 제목으로 ‘현대문학’에서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알게 됐다. 영화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늘 공간과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되는데, 솔직히 도서관이나 서점이 늘 부럽다. 몇 년 전 다케오 시립도서관을 들렀을 때 이를 실감했다. 다케오온센역에서 내려 산기슭까지 이십 여분 여유있게 걷다보면 나오는 작은 온천도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도서관이 있다. 20여만 권의 장서에 1층 왼편에는 수만 편의 CD와 DVD가 책장에 빼곡히 꽃혀있는 대여점도 있었다. 누구도 이런 시골 마을에 이런 큰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구 5만 명의 도시에는 작은 마을 도서관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도서관은 거대한 책의 규모로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알랭 레네의 영화에서처럼, 세상의 모든 기억 앞에서의 망연자실이라 해야 할까. 단순한 필요 이상의, 접근 가능한 것 이상의 책들 앞에서 우리는 책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차이라면 영화관은 비어 있고 서점은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서점은 게다가 극장이나 도서관을 가는 것과는 달리 언제든 부담 없이 들릴 수 있어 좋다. 말하자면, 여행자에게도 열린 장소다. 그림을 뒤적거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엘 아테네오(El Ateneo Grand Splendid) 서점의 엽서 한 장을 꺼내 본다. 그곳에서는 카페 콘 레체를 마시면서 아름다운 책의 전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김성욱)

 

Poster : 벽에 붙이고 싶은 포스터 고르기 7.

폴란드 그래픽 디자이너 Asia Pietrzyk (https://www.instagram.com/asiapietrzyk/)

안제이 바이다 <순진한 마법사> 삽화 시리즈

지난 해 12월, “2020 폴란드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안제이 바이다 <순진한 마법사>는 의사가 본업이지만 재즈 밴드에서 드러머로도 활동 중인 바실리가 어느 클럽에서 만난 펠라지아와 함께 도시를 걸어다니고, 신비한 기억을 쌓는 하루의 밤을 담아낸다. 

크리스토퍼 코메다의 황홀한 재즈와 펠라지아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티나 스티풀코브스카의 얼굴, 재즈가 멈춘 엔딩크레딧, 이어 황덕호 재즈 평론가가 들려준 코메다의 비극적 죽음에 관한 이야기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던 날. 며칠 전에는 당시 시네토크에서 추천 받았던 코메다의, 한국어로 번역하면 ‘난시’라는 앨범을 다시 듣기도 했다.(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는 당시 안제이 바이다의 친구들이었던 로만 폴란스키 그리고 크리스토퍼 코메다 등이 잠깐 출연하기도 한다. (예그림)

 

Lunch : 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 종로3가에서 밥 먹기 7.

밀: 끼니

요즘은 워낙 맛있고 개성 넘치는 빵집이 동네마다 많아 웬만해서는 ‘빵 맛집’ 소리를 듣기 어렵다. 국일관 맞은 편에 있는 『밀: 끼니』도 이런 맥락에서는 특별한 주목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 가게 자체가 많이 낡아 눈을 끌기 어려우며 한눈에 예뻐 보이는 알록달록한 디저트를 팔지 않아 유행에 뒤쳐졌다는 느낌이 든다. 작업 공간과 판매 공간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살짝 어수선하기도 하다.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싶으면 바로 옆의 『카페 뎀셀브즈』, 더 선명한 개성의 빵이 먹고 싶으면 조금 걸어서 안국쪽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밥보다 빵을 많이 먹는, 그리고 종로가 직장인 나 같은 사람에게 『밀: 끼니』는 정말 고마운 곳이다. 이곳의 빵은 다들 큼직큼직하고 속이 꽉 차 있어서 하나만 먹어도 배가 든든하다(간판에 적혀 있는 문구, “끼니는 챙기셨나요?”). 너무 달거나 짜지도 않아서 부담 없이 밥처럼 먹을 수 있고, 단팥빵에서 소세지낙엽빵, 스콘에서 앙버터, 샌드위치까지 종류도 은근히 다양하다. 게다가 요즘 다시 유행 중인 다쿠아즈 같은 디저트도 팔고 있다. 진열대에 가득한 빵을 보고 있으면 사장님이 하루 종일 열심히 빵을 굽는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충동 구매를 해도 별 부담이 없다. 편의점에서 파는 공장빵이나 『파리 바게뜨』의 익숙한 빵이 먹기 싫을 때 이곳을 찾으면 항상 신나는 기분으로 즐겁게 빵을 고를 수 있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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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라 하지 말지어다 1~4권 / 다무라 유미 / 연재 중

소위 ‘순정 만화’의 예쁜 그림체를 갖고 있지만 꽤 끔찍한 사건들이 쉬지 않고 등장하는 추리 만화다. 왠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약간 눈치도 없어 보이는 천재형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사건 현장에서 멀뚱한 표정으로 사정 없이 진실을 파헤친다. 경찰을 비롯한 조연들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주인공을 견제하지만 나중에는 그의 도움을 받고 결국 친밀감까지 느낀다. 그리고 주인공은 변함 없이 태연한 표정으로 유유히 일상으로 돌아간다(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즉시 또 다른 사건과 마주친다). 

사실 이런 설정과 전개는 많은 소설과 만화,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 만화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요소는 적절한 거리감이다. 백수인 주인공이 사건과 만나는 방식은 언제나 우연이다. 주인공은 버스에 타거나 산책을 하는 동안 사건과 마주치고, 그때마다 사건 당사자들의 가슴 아픈 비밀과 속사정을 알게 된다. 갑자기 타인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 것인데, 이 만화는 이때 발생하는 주인공의 책임감을 아주 능숙하게 잘 다룬다. 너무 흥미 본위로 접근해 경박하게 그리지도 않고, 너무 진지하게 파고들어 타인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는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 말로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애매한 영역인데도 작가는 매 에피소드마다 이 영역을 잘 포착한다.

발간 속도가 느린 게 좀 불만이지만 디테일이 워낙 많은 작품이라 생각날 때마다 다시 꺼내서 읽어도 매번 새로운 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다시 잠깐 봤는데 역시 재미있었다. (김보년)

Poster : 벽에 붙이고 싶은 포스터 고르기 6.

데이빗 린치 <트윈 픽스>

Fire walk with me

어렸을 때부터 타투에 대한 로망이 가득했던 나는 레터링을 한다면 첫 번째로 이 문장을 새겨넣기로 마음 먹었다. 이 문장과 함께라면 어디에서든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몸에는 별 모양 하나도 새기지 못했다. 엄마가 타투를 하면 호적에서 파버린다고 협박을 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 협박에 순종하며 살았지만 지난 해 추석, 엄마에게 고백을 했다. 지금까지 기다린 것도 충분히 엄마를 위한 예우를 다 한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상상하는 무서운 용 같은 건 그리지 않을 것이다. 제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엄마는 억울해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 날 밤은 조용했다.

나는 <트윈 픽스> 오타쿠라고 할 수도 없는데 그냥 이 작품을 마구 짝사랑한다. 언젠가 극장에서 <트윈 픽스>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시리즈 전편을 다 보고 나와 종로 뒷골목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식당에서 <트윈 픽스>, 그리고 데이빗 린치 이야기를 종일 할 수 있는 날을 상상해본다. 으악 좋다. (예그림)  

Lunch : 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 종로3가에서 밥 먹기 6. 

대륙

간단한 식사를 이야기 할 때 중국집을 빼놓을 수 없다. 종로 주변에는 중국집이 꽤 많이 있지만 내가 자주 가는 곳은 “대륙”이다. 지금은 없어진 유니클로 건물 지하에 있는 곳이니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이라면 아마 어딘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최근 몇 달 간 장사를 쉬기도 했고, 내부 공사를 하면서 지금은 간판도 없어졌지만 여전히 성업 중이다.

이 가게는 주위에서 보기 드물게 깔끔한 중국집이다. 종로의 식당을 찾을 때마다 청결에 만족한 적이 거의 없는데 이 가게는 그래도 기본은 지키는 편이다(어디까지나 주위의 다른 식당에 비해 청결하다는 말이다). 접객도 친절한 편이고 음식도 골고루 맛있다. 볶음밥을 시키면 짬뽕 국물이 아닌 계란국을 준다거나, 배달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신뢰를 준다. 중국 냉면(여름 한정 메뉴)이나 유린기 같은 메뉴는 왠만한 중식집보다 맛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장점은 별도의 방이 있다는 점이다. 일을 하다보면 식사와 회의를 같이 하거나 손님과 간단히 술을 먹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항상 곤란하다. 종로 주위의 식당은 맛을 떠나 대부분 너무 시끄럽거나 테이블 간격이 좁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륙에는 작은 방이 여러 개 있어 손님들과 찾기 적합하다. 아마 우리 극장이 서울극장으로 옮긴 뒤 가장 많이 찾은 곳이 대륙일 것이다. 

조금 특별한 추억도 있다. 2018년 “하라 가즈오 특별전” 당시 하라 가즈오 감독님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시네토크가 끝나자 시간은 늦어졌고, 감독님은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고 하셨다. 택시를 타고 조금 멀리 나갈까도 싶었지만 감독님이 피곤해 보여서 결국 바로 앞에 있는 대륙을 찾았다. 감독님은 일본에도 이런 현지화된 중식당이 있다고 하시며 요리와 맥주를 맛있게 드셨고, 얼마 안 가 앉은 자리에서 바로 주무시기 시작했다. 너무 편하게 잠이 든 모습에 바로 깨우지도 못하고 우리끼리 조금 더 얘기를 하면서 밥을 먹었던 이상하고 즐거웠던 풍경이 기억난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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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적연화·택동25』 花樣的年華·澤東廿五

In the Mood for Films - 25th Anniversary of Jet Tone Films 2016.香港國際電影節協會

비록 수집가는 아니지만 책이 불러오는 기억들에 의존하는 편이다. 종종 외국 여행 중에 당장의 쓸모와 상관없이 책을 구입하는 이유다. 얼마전 파리 생 미셀의 백 년이 넘는 서점 ‘지베르 죈느(Gibert Jeune)’가 코로나 여파로 내년 3월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 미셀의 악시옹 크리스틴이나 에스파스 생 미셀 영화관을 갔다가 자주 들렸던 이 서점에서 샀던 책들이 책장 구석에 있는데, 꺼내보기 위해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기억이 밀려 든다. 그 책들은 이제는 사라질 어떤 장소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게 될 것이다.

연말에 왕가위 영화를 상영하면서 2016년 가을에 홍콩에서 구입한 책을 오래간만에 꺼내본다. 왕가위의 택동영화사 25주년을 기념해 홍콩국제영화제에서 기획 출간한 책이다. 홍콩의 브로드웨이 시네마테크를 방문했던 때에 맛난 스파게티를 먹고 큐브릭 서점에서 구입했다. 왕가위와 작업한 스태프들, 배우 들의 다양한 인터뷰가 실려있고 보기드문 포스터와 다양한 사진들이 페이지를 장식한다. 4년이 흘렀지만 중국어를 모르니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다. 그때 홍콩의 기억만을 간직한 영원히 침묵에 있는 책으로 남았다. (김성욱)

 

Poster

벽에 붙이고 싶은 포스터 고르기 5.

스와 노부히로 <듀오> & <퍼펙트 커플>

 

“<듀오>에서 함께 일했던 다무라 마사키 촬영감독은 프레임을 꽉 짜기 보다는 중심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틈새를 만드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퍼펙트 커플>의 카롤린 샹페티에 촬영감독은 여러 면에서 그와 대조된다. 그는 논리적이고, 납득을 하지 않으면 촬영을 하지 않는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 나의 연출 컨셉도 명확해진다. <퍼펙트 커플>에서는 미술을 비롯해 영화의 여러 부분을 함께 이야기했고 공동연출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 두 대를 사용하게 된 것도 그의 의견이었다.”(스와 노부히로)

오며 가며 종종 인사를 하던 사람이 있었다. 우연히 보내온 사진 속, 그녀의 집 벽에 붙어 있던 스와 노부히로 <듀오> 포스터가 눈에 띄었고 어쩌면 그 포스터 때문에 그 친구와 가까워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한강이 보이는 그녀의 집에서 <듀오>의 실물 포스터를 보는 사이가 되었다. 그 친구와 게으르게 이불을 덮고 따뜻한 음식을 함께 먹으며 노트북으로 <듀오>를 틀어 보고 싶은, 2020년의 겨울이다. (예그림)

 

Lunch

극장 직원의 극장 일기 - 종로3가에서 밥 먹기 5.

할매국수

 

가끔씩 잔치국수, 또는 멸치국수를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나는 주로 정신적으로 지치고 육체적으로 허기질 때, 거기에 입맛도 별로 없을 때 잔치국수가 먹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때마다 별 고민 없이 “할매국수” 로 간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할매국수는 좁은 골목에 있는 작고 허름한 가게다. 그러다보니 ‘외부 사람’이 일부러 여기를 찾을 것 같지는 않다. 큰 길만 걸어다니면 여기에 식당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테고, 그래서 그런지 주위 가게의 직원으로 보이는 분들과 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환경미화원 아저씨들과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있었다). 영업 시간도 깔끔하게 오후 6시까지라 ‘점심 장사’ 전문임을 알 수 있다. 

이 가게의 특징은 양이 엄청 많다는 것이다. 커다란 스텐인레스 그릇에 갓 끓인 소면을 가득 넣어주시는데 왠만큼 배가 고프지 않으면 국물까지 다 먹기가 어렵다. 고명은 김가루와 약간의 유부 뿐이지만 딱히 고명이 안 아쉬울 정도로 국수를 많이 주신다. 게다가 밥솥에 있는 보리밥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국수만으로도 배가 불러서 밥까지는 엄두도 못 내지만. 

메뉴는 잔치국수, 비빔국수, 해물국수, 회국수, 떡국 등으로 은근히 다양한데 나는 잔치국수만 먹어서 다른 메뉴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엄청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잔치국수에 뭔가 놀랄 만한 개성이 있어도 이상할 것 같다. 그냥 반찬으로 나오는 시원한 신김치와 따뜻한 국수를 계속 먹고 있으면 이만한 음식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추운 겨울이 찾아왔으니 한동안 더 자주 찾을 것 같다.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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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인문사회연구실(seogyo.net)

 

1.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교인문사회연구실(seogyo.net)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지훈이라고 합니다. 줄여서 서교연이라고 부르는데요, 서교동에 위치한 작은 연구실입니다. 인문사회학 내의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대학 바깥에서 강의, 포럼, 논문 발표 등의 연구 활동을 하는 공간입니다.

 

2.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 기억나는 영화적 체험은?

처음으로 임팩트가 강하게 남았던 영화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입니다. 메시지나 주제가 아니라 처음으로 영화의 장면과 구성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해준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았는데, 영화를 볼 때 마다 장면들을 혼자서 이리저리 끼워 맞추는 상상을 해본, 말 그대로 영화적 체험을 곱씹게 해준 영화입니다.

 

3. 좋아하는 영화 다섯 편을 꼽자면?

주로 오래된 영화들이 생각나네요.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1939),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 팀 버튼의 <에드우드>(1994),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1994) 그나마 최근 영화로는 장 뤽 고다르의 <아워 뮤직>(2004)이 생각납니다.

 

4. 당신의 공간과 어울리는 영화를 한 편 추천한다면?

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2016)을 추천합니다. 예전에 연구실 멤버들과 단체 관람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용산 참사라는 굵직한 사건을 선악의 구도가 아니라 운동 내의 다양한 입장과 생각을 통해 보여준 영화입니다. 어떤 영화적 기법을 논하지 않고도 다큐멘터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고, 무엇보다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하나의 사건과 문제에 관한 다양한 토론이 오가는 연구실에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5. 시네마테크에서 지금 함께하고 싶은 영화 한 편이 있다면?

한 편의 영화보다 다큐멘터리의 기원 중 한 명인 지가 베르토프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베르토프의 글들을 모아놓은 책 『키노 아이』를 매우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마침 그 시기의 중요한 예술 사조였던 구축주의에도 관심이 있는지라 직접 작품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작품이라 시네마테크에서 상영을 한다면 꼭 관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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