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질문

1. 15회를 맞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축하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2. 이번에 추천하신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안정적인 시네마테크 전용관 마련을 위해 2006년에 처음 시작한 영화제입니다. 15회를 맞은 감회가 어떠신가요?

4. 새로 마련될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김홍준 감독 - <7일간의 외출>, <A.K: 구로사와 아키라의 초상>

1. 2020년을 맞아 친구들 영화제가 또 계속된 걸 축하한다. 올해는 더 새로운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 이번에 추천한 작품은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의 1980년작 <7일간의 외출>이다. 작품 자체 보다는 이 작품을 보았던 시간을 새로운 관객들과 되새겨보고 싶다. 아시다시피 1980년은 굉장히 어두웠던 시간이었고, 나는 그해 ‘얄라셩 영화연구회’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8mm 영화를 찍고 있었다. 당시 본 <7일간의 외출>이 나와 친구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들 - 교육, 가족, 체제, 이념 - 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기 때문에 40년 전의 프랑스 영화지만 동시대적인 물음을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영화를 얄라셩 동료들과 볼 때 깊은 인상을 받았던 건 다름 아닌 수평 트래킹이었다. 우리는 당시 열악한 조건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기 때문에 트랙을 구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뒤 수평 트래킹 장면을 너무 찍고 싶어서 결국 트랙 없이 찍어버렸다. 어떻게 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들려주겠다(웃음).

3. 조금 호들갑스럽게 말하자면 지난 15년간 한국 영화와 세계 영화계에서 일어난 일이 그전 100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합친 것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꿋꿋하게 극장을 이어나가는 게 뿌듯하다. 또 여기에 조금이나마 참여하며 힘을 보탠 건 개인적 영광이다. 앞으로 서울아트시네마가 어떤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든 잘 적응하고, 때로는 흐름을 거스르며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4. 이해 관계와 생각의 방향,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시네마테크를 바라보는 시각과 기대하는 점들이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간 지점에서 시네마테크가 출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차이를 내려놓고 공통점을 찾는 것. 그렇게 시네마테크의 출발을 다함께 기원하면 외부의 어려움이나 주위의 장애물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친 낙관주의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승욱 감독 - <시실리안>, <집으로 가는 먼 길>

1. 지금까지 몇 번의 위기도 있었지만 친구들 영화제가 15회까지 왔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15회를 축하한다.

2. 이번 테마가 ‘규칙과 예외’라는 좀 어려운 문제다. 특히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더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갱단의 규칙’과 그 안에서 예외적인 일을 저지르는 자의 몰락을 그린 작품을 골랐다(웃음).

<시실리안>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지금은 없어진 남영동의 금성 극장에서 봤다. 삼촌 손에 이끌려서 봤는데 사실 어린애가 볼 영화는 아니다. 프랑스 갱 영화이고 알랭 들롱, 리노 벤츄라, 장 가뱅이 나온다. 그 후 10년 정도 지난 다음 ‘주말의 명화’에서 또 봤다. 알랭 들롱의 영화답게 알랭 들롱이 분노의 응징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돈다발이 공중에 휘날리는 장면이 특히 기억난다. 또 알랭 들롱이 죄수 호송차에서 탈출할 때 아주 작은 휴대용 그라인더를 꺼내 긴 시간 동안 철판을 자르는데, 그 순간도 인상적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알랭 들롱이 해선 안 될 짓을 꽤 많이 한다. 자기 편의 아내를 유혹하는 장면도 기억나고, 못된 짓을 할 때 보여주는 비열한 악당의 눈빛도 인상적이다. 이번에 알랭 들롱의 그 눈빛을 극장에서 감상하고 싶다. 

3. 우리는 다들 영화로 맺어진 친구다. 15년 동안 서로의 취향이 어떻게 다른지, 또는 어떻게 비슷한지 느끼며 영화의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동료 영화감독, 관객들과 만나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을 15년 동안 매해 보냈다. 저 감독은 어떤 걸 추천할까? 나는 뭘 추천할까? 그리고 관객들은 이 영화를 좋아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정말 즐거웠다. 특히 GV를 할 때는 이런 기회 자체가 그 자체로 특혜란 생각도 했다.

이런 공간이 15년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될 것이란 사실이 즐겁다. 앞으로는 그동안의 숙원이었던 시네마테크 전용관, 즉 ‘자기 집’에서 친구들 영화제가 열릴 그날을 기대하겠다. 

4.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대한민국에서 만드는 건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이 지금 반 정도 진행이 된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독립성 문제가 있고, 또 10년, 20년 이어질 수 있는 안정성 문제도 남아 있다. 이때 제일 중요한 건 관객이라고 본다. 시네마테크가 2020년에도 과연 필요한가? 관객들이 시네마테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이 질문을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겨우 시네마테크가 만들어졌는데 거기 관객이 없다면 악몽일 것이다. 15년 전의 관객과 15년 후의 관객은 다른 사람들일 수 있다. 새로운 관객과 어떻게 만날지, 이게 전용관 건립만큼이나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지운 감독 - <겨울의 심장>

1. 제15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2. 내가 추천한 영화는 다니엘 오테유, 엠마누엘 베아르가 출연하고 클로드 소테가 연출한 <겨울의 심장>이다. 삼각관계가 소재다 보니 ‘금지된 사랑’이란 제목으로 소개됐지만 원제의 분위기와 뉘앙스가 더 좋다. 

<겨울의 심장>은 세 사람이 벌이는 연정과 정념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기류를 섬세하게 포착한 영화다. 프랑스 영화 중에는 대사보다 상대방을 응시하는 배우들의 표정 그 자체를 통해 더 풍요로운 감정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영화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아주 프랑스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장 피에르 멜빌이나 클로드 소테는 인물들의 표정을 통해 멜랑콜리나 서늘한 감정을 정말 잘 담아내는 감독이다. <겨울의 심장> 역시 사람들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마음, 사랑으로 뜨겁게 타올랐다 차갑게 식어가는 순간들을 섬세하게 다룬다. 세 사람이 벌이는 사랑의 여러 모습을 아주 먹먹하게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엔딩에서 두 인물이 서로 바라보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사랑에 관한 문제,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프랑스 멜로 영화의 보석 같은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3. 친구들 영화제는 15년 전에 동료 영화인들과 한마음으로 모여 지속적이고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해 시작한 영화제다. 그런데 그 염원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영화를 공부하는 분이나 사랑하는 분들에게는 시네마테크가 꼭 필요한데, 다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디서 영화를 봐야할지 막막할 때가 있었다. 외국에서 근사한 시네마테크를 볼 때마다 한국에도 저런 극장이 있기를 항상 바랐다. 

개인적으로 나는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유학을 간 것도 아니고 현장에서 경험도 쌓지 않고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배웠다. 나는 1990년대 초반에 프랑스에 무전여행을 가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백 편이 넘는 영화를 봤다. 보잘것없는 영혼이 시네마테크에서 보여주는 훌륭한 영화 덕에 더 나빠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시네마테크는 은총의 공간이자 교육의 공간이고, 어떤 면에서는 수도원 같은 곳이다. 시네마테크에서 좋은 영화를 보면서 저런 영화를 만들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나뿐 아니라 영화를 시작하고 공부하고, 사랑하는 다른 관객들에게도 시네마테크는 도서관이자 수도원으로 남을 것이다. 

4.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운영이나 프로그래밍을 영화인과 관객에게 맡기는 게 가장 좋은 운영이라고 본다. 거의 모든 영화제는 정부와 관의 지원을 받는데 이때 모토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이다. 한국에는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제들이 있다. 그런데 그 모토가 거꾸로 뒤집어지면서, 지원보다 간섭을 더 하면서, 영화인과 관객이 쌓아올린 영화제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퇴행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새로운 시네마테크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부탁한다. 그리고 운영과 프로그래밍은 영화인과 관객에게 맡기는 게 가장 좋은 정책이라 본다.

 

◆이경미 감독 - <캔디맨>, <먼 목소리 조용한 삶>

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올해 15회를 맞이했다. 올해도 반갑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2. ‘규칙과 예외’에 맞는 영화를 골라달라고 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늘 규칙과 예외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골랐다. 내가 너무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들을 추천했다.

내가 호러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캔디맨>은 긴장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무섭게 봤던 작품이다. 2년 전부터 추천했는데 올해는 기쁘게도 상영이 결정됐다. 이 영화는 ‘캔디맨’이라는 도시 괴담을 쫓는 여자의 이야기다. 흥미로운 점이 정말 많은 작품이지만 내가 다 설명하면 여러분의 흥미가 떨어질 것 같다. 필립 글래스의 음악도 정말 좋고, 초현실적 상황도 인상적이고 엔딩도 통쾌하다. 아마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먼 목소리 조용한 삶>은 작년에 우연히 봤던 작품이다. 이야기 자체는 아주 새롭지 않다. 2차대전 전후 리버풀의 어느 노동자 가정의 일대기를 그렸고,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익숙한 방식이 아니라 파편적 기억을 연결해 붙인다. 그래서 시간도 왔다갔다 하고, 강렬한 이미지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롱테이크도 인상적으로 사용됐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 뒤 오프닝부터 영화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영화도 정말 할 얘기가 많으니 영화를 보고난 뒤 극장에서 같이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3. 내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있다.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중요하다.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들의 경험에 따라 다른 내용과 감성의 이야기를 한다. 다양한 경로, 방법을 통해, 때로는 과거까지 소환해 사고할 수 있는 것의 시작은 다양한 시선이다. 요즘처럼 다양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더 힘들어진 시기에 시네마테크가 매년 이런 영화제를 열고 더 좋은 극장을 마련한다는 소식은 굉장히 기쁘다. 내가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까지나 최선을 다해 돕고 싶다.

4. 제일 중요한 건 재정적 지원이다. 무엇이든 돈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행정가들이 시네마테크를 단순히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놀이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보다 성숙한 시민 의식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해주면 좋겠다. 보다 많은 지원을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이해영 감독 - <살인 무도회>, <마돈나: 진실 혹은 대담>

1. 올해도 친구들 영화제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다. 15회를 맞은 202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2. <살인 무도회>의 원제는 “클루”다. 이 작품은 한정된 공간에서 범인을 찾는 추리게임 같은 영화다. <나이브스 아웃>의 계보에 속하는 선배 작품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브스 아웃>이 추리소설의 정통성을 의식한 작품이라면, 이 영화는 “클루”라는 원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유명한 보드게임이 원작이다. 좀 더 ‘B’스럽고 장난기가 많다. 보드게임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추리 영화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범인이 어떻게 밝혀질지 궁금할 텐데, 보드게임이 원작인 만큼 파격적인 엔딩을 준비해 놓았다. 

<마돈나: 진실 혹은 대담>은 알렉 케시시안의 다큐멘터리다. 팝 아티스트의 월드 투어 중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블론드 앰비션 투어”를 기록하였다. 무엇보다 마돈나가 스스로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한 뒤 이루어진 콘서트라 메시지가 확실하다. 또 마돈나의 최전성기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개봉할 때는 삭제를 한 뒤 개봉했는데 이번에 원본으로 보는 즐거움이 클 것 같다. 또한 콘서트의 퍼포먼스를 다시 보는 것도 즐겁겠지만 마돈나가 무대 뒤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중요한 관람 포인트다. 백스테이지에 정말 많은 스타가 등장하는데 마돈나는 그중 몇몇에게 대놓고 냉소를 보낸다. 마돈나가 그 셀럽들 위에 어떻게 군림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냈는지 다시 볼 수 있다. 

3.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하며 놀라는 건 관객들이 계속 성원과 관심과 애정을 보내준다는 것이다. 이건 감독에게도 큰 힘이 된다. 15년까지 왔다는 것 자체도 뿌듯하지만 앞으로도 15년, 몇십 년을 더 내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풍토가 더 탄탄하게 이어질 수 있겠다고 긍정할 수 있는 게 기쁘다. 올해도 또 한 번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4. 제도적 매뉴얼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네마테크라는 영화적, 문화적 특수성을 융통성 있게 잘 이해해주면 좋겠다. 무엇보다 관객분들이 지금처럼 뜨겁게 관심을 갖고 찾아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성일 감독 - <불꽃>, <스콜피오 라이징>

1. 벌써 열다섯 번째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한편으로는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고, 한편으로는 ‘아직 15회? 30회쯤 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함께 든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공간이 됐다는 건 그만큼 서울아트시네마가 우리 곁에 항상 있었던 곳이란 생각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우리 삶의 일부, 시네필의 생활의 일부, 늘 곁에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우리의 친구들 영화제를 축하한다.

2. 매년 고맙게도 백지수표를 주는데, 한편으로는 숙제 같기도 하다. 거기에 늘 어떤 단서가 쫓아오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두근거리며 기다리지만 한편으로는 긴장도 된다. 솔직히 말해 ‘규칙과 예외’란 주제를 받아들고 당황한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어떤 영화를 원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말을 붙여 개념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제어를 받아들자마자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른 영화를 그냥 써넣었다. 그게 케네스 앵거였다. 올해 내가 만나고 싶은 영화는 <불꽃>과 <스콜피오 라이징>이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이 만들어지고 있던 시기, 완전히 그 바깥에서 자기의 영화를 찍고 있었던 케네스 앵거를 2020년의 한국에서 보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시스템이 되어가고 있는 한국영화. 하지만 그때 시네마테크는 시스템 바깥에서 작업하고 창조하고 상상하는 시네아스트들의 방어선이 되어주면 좋겠다. 두 영화에 관한 자세한 소개는 영화가 끝난 뒤 여러분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겠다.

두 영화는 다 합쳐도 40분 정도다. 인상적인 장면을 묻는다면 전부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이건 드라마를 쫓아가며 클라이막스가 나오는 게 아니라 영화 전체가 클라이막스인 영화다. 내가 이 영화를 파리에서 처음 봤을 때 ‘아, 영화는 이래도 괜찮은 거구나’란 용기를 받았다.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영화의 친구들과 ‘괜찮아, 무얼 해도 괜찮아’란 말을 함께 나누고 싶다.

4. 이제는 지금의 이 장소에서 친구들 영화제를 치를 일이 두 번 정도 남은 걸로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들었던 곳이고, 한편으로는 새로 출발하는 곳으로 빨리 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이 시간들이 도약을 준비하기 위해 힘껏 발을 뒤로 내미는, 더 큰 도약을 위한 시간이 되면 좋겠다. 올해 친구들 영화제를 찾는 모든 친구들이 그런 마음으로 환호하고 응원하고, 서로 마음으로 포옹하는 자리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변영주 감독 - <네트워크>

1. 3년 만에 친구들 영화제에 다시 와서 정말 즐겁다. 영화인들이 1년에 한 번 모여 실은 우리가 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축제의 장이라 나도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다. 올해 모토가 규칙과 예외다. 시의적절하다. 예외는 단순히 규칙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규칙을 넘어선 새로운 도전을 함으로써 기존의 규칙이 그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과거의 영화를 보고 그 속에서 미래의 영화를 꿈꿀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거라 믿는다. 친구들 영화제에서 여러분들과 꼭 만나고 싶다. 

2. 내가 추천한 영화는 시드니 루멧의 <네트워크>다. 시드니 루멧은 20세기를 대표하는 할리우드 감독이다. <허공에의 질주>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네트워크>는 19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방송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시청률과 보도 원칙 사이에서 고민하는 풍자적인 영화다. 21세기의 우리에게, 미디어와 뉴스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잘 어울리는 영화라 생각한다. 오래 전 영화를 함께 본 뒤 오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친구들 영화제에 영화를 추천할 때 두 가지를 고려한다. 하나는, 이기적인 고민이지만, 한글 자막 없이 옛날에 봤던 영화를 한글 자막으로 제대로 보고 싶을 때 추천한다. 또 하나는 TV에서만 본 영화를 큰 스크린에서 보고 싶을 때 추천한다. <네트워크>는 후자다. 이 영화에서는 윌리엄 홀든과 페이 더너웨이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배우가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윌리엄 홀든은 품격과 파격을 오가며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의 초반 15분은 지금 한국의 상황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이제 황혼을 향해 가는 두 방송인이 옛날 얘기를 하며 씁쓸해 하는데, 그 초반의 감성이 정말 좋다. 아마 이 감성을 즐겁게 받아들인다면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3. 사실 친구들 영화제가 기분 좋게 시작한 영화제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위기에 몰리고, 영화관이란 공간 자체의 미래가 불투명해졌을 때 시네마테크가 필요하다는 결의로 시작한 결의 대회 같은 영화제가 친구들 영화제였다. 중간중간 많은 부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영화업은 서커스 같은 흥행업인데, 이렇게 꿋꿋하게 깃발을 안 내리고 버티는 게 정말 놀랍다. 거기에 내가 먼지만큼이라도 도움을 줬다면 스스로 뿌듯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잘 버티길 바란다.

4. 관성으로 운영을 할 거라면, ‘누구에게도 욕을 먹지 말아야지’의 마음으로 할 거라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 건물을 왜 건립하려 했던 거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이걸 주장한 거지?’,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람들이 끊임없이 주장한 이곳은 어떤 곳이지?’에 대한 정확한 비전이 있으면 좋겠다. ‘이번에 통과됐으니 해야 돼’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시네마테크 전용관은 박제된 공공재처럼 보일 확률이 높다. 행정가들이 해외의 좋은 사례들(영국처럼 도시마다 하나씩 시네마테크가 있는 경우도 있다)도 직접 보면서 구체적으로 고민해주면 좋겠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좋은 뜻으로 첫 삽을 뜨는데, 시에서 일하는 분들과 행정가들이 비전을 명확히 갖지 않으면 영화인도 찾지 않고 관객도 찾지 않는 박제된 곳이 된다. 나는 시네마테크가 살아 숨쉬는 곳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한국 영화인들의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는 좋은 장소가 되길 바란다.

+ (질문: 추가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2월 4일부터 3월 1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제를 한다. 검색창에 ‘서울아트시네마’를 치면 놀랍게도 찾아가는 방법이 자세히 나온다. 마음에 드는 영화 한두 편만 골라서 보시면… 아마 지루할 거다(웃음). 대부분의 영화는 지루하거나, 아주 옛날 영화라서 무슨 얘기인지 모르거나, 어쩌면 유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걸어온 길에 우리가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숨어 있다. 익숙하지 않겠지만 꼭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전고운 감독 - <톰보이>

1. 벌써 15회를 맞이하는 친구들 영화제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 이번에 개봉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연출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전작 <톰보이>를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었다. <톰보이>는 고요하지만 강하다. ‘자극적’이라고 하면 모든 컷들이 자극적이기도 한데, 사실 나는 포스터만 보고도 영화에 끌렸다. 짧은 머리를 한 금발 아이가 서 있는데, 나는 당연히 남자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여자아이였다. 그런 편견을 깨주는 포스터만으로도 강렬하다.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아이의 이야기, 이런 소재만으로도 진짜 귀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3. 내가 영화과 1학년일 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됐었다. 같이 15년 동안 나란히 사이좋게 늙어가는 기분이 들어서 우울하기도 하고(웃음), 뿌듯하기도 하다. 축하해.

4.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게 참 어렵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자본이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조건이 없는 건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시에서 조건 없이, 최대한 후원만 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주면 좋겠다. 



인터뷰 진행 예그림 홍보팀장

촬영 목충헌 관객에디터

정리 김보년 프로그래머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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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송옥 2020.06.17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정말 잘 보고 갑니다^^
    저희 블로그도
    들러주세요 ^^
    오늘하루도
    활기찬 하루
    되세요^^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거대한 홈 무비 -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헌터>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마지막 황금시대 -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논쟁들, 상반된 비전들이 마지막으로 허용되던 시절 - 는 1970년대 말에 화려한 막을 내린다. 피터 바스킨트에 따르면 80년대 변화의 양상은 영화의 주역들이 바뀌는 것에서 시작한다. 창조적 감독들이 주도하던 할리우드 문화는 이제 사무실에 앉아 투자 수익을 고민하는 회사의 중역들, 투자자들, 변호사들, 이른바 비즈니스맨들의 전일적 지배로 변경된다. 또 다른 변화는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장악하고 대중의 행동을 강력하게 규정하는 광고와 마케팅의 새로운 의지이다. 이제 영화는 홍보 여부에 따라 평가받고,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하이 컨셉’의 아이디어가 성공작을 만든다. 영화학자 존 벨튼은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에 성공을 거둔 영화들이 대중을 불편하게 하기보다는 안심하게 해주는 영화들이며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1970년대 행동주의 미국의 사회 정치적 쟁점들이 이상화된 과거의 긍정적 이미지의 표면 밑으로 사라져버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황혼의 시기에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가 위치한다. 

전쟁의 극화가 할리우드의 신속한 역사 전략이긴 했지만 베트남 전쟁이라면 상황은 그와 같지 않았다. 1, 2차 세계대전, 한국전을 다룬 수다한 영화들과 달리, 존 웨인의 형편 없는 작품 <그린 베레>(1968)를 제외하자면 할리우드는 실패한 베트남 전쟁의 극화를 극도로 꺼려했다. 물론 전쟁의 영향 아래 놓인 작품들은 있었다. 가령,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1976)처럼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자, 사회 부적응자, 정신 장애, 폭력 범죄자, 살인자, 방랑자들의 캐릭터 조형에 전쟁에서 귀환한 병사들이 활용되는 식이다. 참전 병사들이 겪는 물리적, 정신적 외상들은 이때 일종의 ‘스티그마’라 할 수 있다(전쟁으로 인한 스티그마와 관련한 다른 사례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에게 베트남 전쟁은 없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의 극화가 시도된 시기는 대체로 1978년의 일로, 이때에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와 할 애쉬비의 <귀향>이 공개됐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상투적 전쟁영화가 아니라 참전 병사들의 귀환 후의 생활, 사회 복귀의 어려움을 다룬다는 것이다(이후, 우리에게도 친숙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로버트 알트만, 올리버 스톤, 스탠리 큐브릭, 브라이언 드 팔마 등이 만든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나온다).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는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대중적 이야기 형식인 서부극의 신화적 틀을 활용해 공동체의 붕괴와 재생, 상喪과 (남성적)우울의 드라마를 도입한다. 영화의 배경인 펜실베니아의 작은 도시 클레이튼은 철강업을 기반으로 하는 러시아계 이민자 마을로, 영화의 주된 내용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세 젊은이들의 귀환을 그린다. 할 애쉬비의 <귀향>과 마찬가지로, 참전 병사들은 모두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겪는 인물들로 이들은 폭력의 주체라기보다는 - 물론, 이 영화의 두 번째 부분에 해당되는 전쟁 장면의 묘사에 대해서는 비판이 제기되곤 했다. 가령, 로빈 우드는 정치학과 미학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며 이 영화의 정치적 기반의 불분명함을 지적한다. 남베트남인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장면이나 로버트 드 니로가 화염 방사기를 쏘는 장면, 혹은 도덕적으로 격분한 선량한 미국인이 동양의 타자에 대항해 싸우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장면들에 대한 언급들. 게다가 러시안 룰렛 게임이 과연 있었는가에 대한 사실성 여부의 논란들도 있다 - 전쟁의 희생자로 묘사된다.

21세기에 들어 이라크 전쟁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들의 인물 표상이 이러한 방식을 계승한다고도 볼 수 있다. 가령 <허트 로커>와 같은 작품을 두고 남성성의 상실과 트라우마, 폭력의 희생자로 이라크 참전 군인을 묘사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디어 헌터>는 반전 영화의 계보라기보다는 그리피스, 비도, 존 포드 등의 미국 영화의 거대한 에픽의 흔적을 계승한다. 환멸과 소진 이후의 미국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에 대한 질문. 

그런 의미에서 치미노는 이 영화를 ‘홈 무비’라 불렀다. 이중적 의미다. 그 하나는 정말로 이 영화가 ‘집’을 그린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 테마와 더불어 더 대담하게 중요한 것은 그가 홈 무비의 형식과 고유의 리듬을 따르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착오적인 것이다. 엄청난 돈을 들인 작품을 ‘홈 무비’라 부르는 것의 대범함. 천만다행인 것은 파탄이 그 다음으로 유보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홈 무비’란 표현은 이 영화의 본질에 가깝다. 가령 베트남에서의 긴 에피소드를 제외하자면, 이 영화의 매혹적 경험은 결국 초반부 70분에 달하는 긴 장면들의 대담하면서도 풍요로운 순간들에 있다. 철강소에서 일하는 남성 신체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해 술집, 긴 결혼식, 당구장 장면, 사슴 사냥으로 이어지는 짧은 장편 하나에 해당되는 긴 순간들. 이 장면들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제외하면, 관객인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되는가? 혹은 이 시퀀스가 진행되는 동안,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가?

사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으면서,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특별함이다. 우리가 표면적으로 보는 것은 이 지역, 러시아 이주민들 공동체의 어떤 의식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의식을 이루는 미시적 사건들의 디테일이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사람들, 즉 러시안계 아메리카인들은 이런 식으로 일하고, 이런 식으로 놀고, 이런 식으로 의식을 치르고 춤을 춘다. 그들은 이 지역 공동체에서 평생 그렇게 살아갔다. 이러한 묘사를 두고 사실에의 강박이라 부르는 것은 반쯤의 진실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픽션의 장에 현실에서 가져온 질료를 넣어 통합하려는 열망이다. 이 긴 장면들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가? 이 장면의 요체는 이 마을 공동체의 호모소셜한 관계를 묘사하는 것에 있다.

영화의 첫 머리에서 그려지는 것은 남자들간의 농밀한 관계들이다. 시간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 장면은 베트남전에 참전하기 이틀 전의 이야기로, 곧 붕괴될 공동체의 마지막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역사를 다룬 지금의 대중 영화들이 명백하게 잘못 생각하고 간과하는 시간의 힘이다. 말하자면, 홈 무비의 가장 친밀한 형태가 그 자체로 힘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전쟁의 피해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작은 공동체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홈 무비의 형식은 전쟁의 결과를 가장 끔찍하게 보여 준다. 지금 우리가 보는 70분의 순간들은 <레오파드>(루키노 비스콘티)의 긴 댄스 장면처럼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당구장 장면과 더불어 결혼식 장면에서의 다이렉트 사운드의 활용과 모든 인물들의 시점을 동시에 고려하는 프레임의 절대적 평등주의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이러한 기법은 <천국의 문>에서 절정에 달한다).

홈 무비 구성 형식의 반복과 리듬은 이 영화에 세 가지 주요 구성 부분 - 즉, 고향 클레이튼, 베트남, 그리고 고향 클레이튼으로의 귀향 - 의 배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치미노는 베트남과 클레이튼을 이질적인 세계로 구별한다. 이 구분은 고향에서 베트남으로, 혹은 베트남에서 고향으로의 이동 과정이 전혀 묘사되지 않는 것에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 두 이질적 세계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흔들린다. 세 번째 긴 에피소드에 이르면 클레이튼과 베트남은 전혀 다르지 않다. 서로 대립하지만 닮아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이질적 세계. 즉, 클레이튼의 베트남, 혹은 베트남의 클레이튼. 로빈 우드는 이러한 구조적 형식과 관련해 중요한 지적을 한 바 있다. 세 가지 구조적 원칙. 첫 번째는 클레이튼과 베트남의 대칭적 형식이다. 두 번째는 감축의 형식. 즉, 결혼식으로 시작해서 장례식으로 끝나버리는 영화. 세 번째는 모티브의 교차이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침공이 미국에 대한 베트남의 침공(하나의 경험, 상징, 정신 상태의 측면에서)으로 응수되는 방식이다. 가령 클레이튼 철공소의 화염이 화염 방사기의 불촉으로, 그리고 지옥의 이미지로 교차되는 것. 사슴 사냥의 ‘원 샷’이 러시안 룰렛 게임의 ‘원 샷’으로. 이러한 형식의 혁신성은 할리우드 영화의 전통에서 기원의 풍부함을 찾을 수 있다. 존 포드의 영화, 혹은 하워드 혹스의 영화들. 

마이클 치미노에게는 스콜세지에게 없는 이상주의적 태도가 있다. 그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으로 영화를 만든다. 이는 할리우드에서 매우 드문 자질이자 흥미로운 자질이었다. 왜냐하면 결국 영화란 자신이 믿는 것을 만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상주의는 공동체의 파괴 - 현대 문명이 폐기처분한 것들 - 와 재생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고전적 전통이 이상적인 미국의 개념이 세워지는 순간에 놓인 이상적 미국의 신화를 구현했다면 70년대 마이클 치미노는 그것의 개념이 해체되는 순간에 놓인 미국의 신화에 관심을 보인다. 조화와 통일 대신, 카오스와 불확실한 질서, 붕괴의 징후를 발견하는 것. 가령, 결혼식 신부의 드레스에 떨어지는 붉은 와인 한 방울, 결혼식에서의 그린 베레의 등장 등.  신화적인 미국과, 긴장과 모순으로 찢겨져버린 미국, 그리고, 지배적인 미국이 파괴해버린 동유럽 이주민들의 공동체. 거대한 공동체의 풍경은 더 이상 희망의 구원을 제시하지 못한다. 홈 무비에 담긴 거대한 역사. 클레이튼 안의 베트남. 마이클 치미노는 이번에 상영하는 <퍼펙트 월드>에서 알 수 있듯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더불어 미국 영화의 마지막 위대한 이상주의자이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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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두 여덟 명의 친구들이 참여해 주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들려준 영화와 극장 이야기들을 일부 옮겨보았다.

 

◆2월 24일(일), <베라 드레이크> 상영 후 전고운 감독 시네토크

김숙현(프로그래머) 사실 <베라 드레이크>는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한 적 없는 작품이다.

전고운(감독) 나도 극장에서는 이번에 처음 봤다. 느낌이 크게 다르다. 좋은 감독이 되고 싶어서 공부할 때부터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들을 봤는데 너무 훌륭했다. ‘연출’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그중 배우에게 좋은 연기를 끌어내는 것도 연출의 일인데, 물론 좋은 배우가 연기를 잘해야 하지만 감독의 연기 지도도 중요하다. 그런데 좋은 연기가 좋은 연기로 보일 수 있게끔 이야기나 감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몇 숏 안에 만들어지게 하는 것도 감독의 큰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놀라울 정도의 세공법이라고 생각했다. 

찾아보니 마이크 리 감독의 연출 방법이 특이하더라. 완성된 대본을 배우에게 주지 않고 기본적인 설정만 알려준다고 한다. 그래서 주연을 제외하고는 다른 배우들이 <베라 드레이크>가 낙태에 관한 영화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현장에 도착한 뒤 리허설을 매우 오랫동안 한다고 한다. 그 결과 이렇게 자연스럽고, 마치 스크린이 살짝 벗겨진 것 같은 생생한 기운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런 방법을 안 건 얼마 안 됐지만 정말 부러웠다. 나도 리허설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우와 소통을 통해 많은 것을 함께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베라 드레이크>의 준비 과정이 여섯 달 정도였다고 하는데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 길어질수록 그만큼 돈이 더 들어간다.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보통 3개월 안에 찍어야 한다고 했을 때 배우와 오랜 기간 뭔가를 함께 준비하는 게 아직은 좀 힘들다. 그리고 경제적인 조건을 떠나서 감독이 배우와 빛나는 무언가를 끌어낸다는 건 어떤 감독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이크 리 감독의 연출과 그 결과물에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여성 캐릭터를 여성인 나보다 더 통찰력 있고 깊게 다룬다는 점에서 감사하는 마음도 갖고 있다.

김숙현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친구들영화제에서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를 추천해준 친구들도 모두 여성이었다(박찬옥 감독-<네이키드>(1993), 윤여정 배우-<커다란 희망>(1988)). 오늘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전고운 사실 아직도 얼떨떨하고 먹먹해서 무슨 장면부터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이 영화를 ‘낙태’ 또는 ‘여성’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요약하기 쉽지 않다. 사회 구조적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 너무 많은 레이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그전에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찍을 수 있는 환경이 언제 갖춰질지 모르겠다는 슬픈 생각도 들었다. 일단 지금 생각나는 장면은 너무 많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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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두 여덟 명의 친구들이 참여해 주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들려준 영화와 극장 이야기들을 일부 옮겨보았다.


◆2월 23일(토), <블루> 상영 후 조민석 건축가 시네토크

김보년(프로그래머) 상영본을 결정하는 데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다. DCP와 35mm 필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그 질감의 차이가 너무 클 것 같았다. 그러다 이 영화를 디지털로 극장에서 틀었을 때를 상상해 봤는데 90분 동안 디지털로 재현한 균일한 클라인 블루를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논의 끝에 35mm 필름으로 상영하기로 했다. 이 영화는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봤을 때는 파란색이 ‘고여 있는’ 느낌이었고, 오늘 본 버전에서는 스크래치 때문인지 파란색이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필름에 시간의 두께가 쌓인 건데, 어쩌면 데릭 저먼이 원래 의도한 버전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웃음).

조민석(건축가) <블루>는 내가 뉴욕에서 살고 있던 93년에 ‘개봉 영화’ 중 한 편으로 봤다. 그 후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은 영화여서 이번에 추천했다. 그동안 시각 경험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변했다. 오늘 보면서 크게 느낀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막이다. 뉴욕에서는 자막 없이 봤는데 영국식 영어라서 다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이번에 자막과 함께 보니 자기 얘기를 심할 정도로 많이 했다는 걸 알았다(웃음). 데릭 저먼의 필모그래피에는 역사적인 인물을 다룬 작품이 많은데, 주로 이 인물들을 거쳐서 에둘러 자기 이야기를 했다면, <블루>는 이브 클라인에게 헌정은 하지만 결국 자기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아무래도 죽음을 앞둔 상황이다 보니 할 얘기가 더 많았을 거고, 더 직접적으로 말한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상영본이다. 내가 예전에 본 영화와 굉장히 다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당연히 지금처럼 필름이 낡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완벽하게 파란 추상적인 ‘이브 클라인 블루’로 기억하고 있다. 이브 클라인은 34살에 요절해 커리어가 10년 정도밖에 안 되는 작가이다. 이 사람은 공간 전체, 심지어 지구의 하늘까지 자기의 매체라고 생각했고, 시간과 장소를 비롯해 물질성을 초월한 작업을 목표로 했던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앞둔 데릭 저먼이 자기 몸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블루>는 굉장히 순수한, 아주 개념적인 이브 클라인 블루로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동안 25년의 세월이 덧입혀지며 낡은 필름이 된 <블루>는 원래의 작품 위에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이 생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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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두 여덟 명의 친구들이 참여해 주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들려준 영화와 극장 이야기들을 일부 옮겨보았다.

 

◆2월 17일(일), <더 체인질링> 상영 후 이경미 감독, 이해영 감독 시네토크

이경미(감독) 공교롭게도 이해영 감독은 이번에 <더 헌팅>(1963)을 추천했다. <더 체인질링>(1980)도 그렇고 소위 ‘귀신 들린 집’ 영화다. <더 헌팅>이 60년대 유령 영화의 대표적 작품이고 그 뒤 다시 이 장르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대표적 작품이 <더 체인질링>이다. 이 작품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 다른 영화들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컨저링>(2013) 같은 영화도 이 계보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해영(감독) <더 헌팅>과 <더 체인질링> 그리고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힐 하우스의 유령>(2018)까지 쭉 연달아 보면 ‘귀신 들린 집’ 장르가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경미 감독이 장담한 것만큼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지만(웃음),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흥행에 성공했던 사실은 몰랐다.

이경미 독립영화 규모로 제작을 했는데 흥행에 성공을 했다. 그런데 비평적으로는 비판도 좀 받았다. 실망한 사람들은 특히 영화 후반에 이르면 장르가 바뀐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보았고, 그래서 장르에 대한 배신감을 특별히 느끼지 않았다. 

요즘 귀신이 등장하는 각본을 쓰는 중이라 더 와닿았던 부분도 있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등장인물의 기분을 계속 상상하며 써야 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죽은 사람의 기분과 생각은 상상 밖의 일이지 않나. 오늘 <더 체인질링>에서 죽은 아이가 성질을 그렇게 많이 내는 걸 보면서(웃음), 그 지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죽고 난 이후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존재는 어떤 논리적인 합의가 안 되는 존재, 감정만 강하게 남아있는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해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링>(나카다 히데오, 1998) 생각도 많이 났고, 한편으로는 오컬트 공포물이라기보다는 추리물이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게 들기도 했다. <더 헌팅>이나 <힐 하우스의 유령>은 오컬트적 정서를 살리기 위해 장르적 세공을 정말 열심히 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는 조금 투박한 편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추리물적인 재미를 살리는 게 대중적인 장르적 접근 같기도 하다. 

이경미 70년대부터 여러 장르의 호러영화가 굉장히 붐을 이뤘다. <엑소시스트>(1973), <오멘>(1976)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초자연적 소재의 오컬트가 많이 나오다 보니 오히려 <더 체인질링>이 차별점을 보여주었다는 생각도 든다. 호러영화 팬으로서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관객들이 조금 부럽다. 당시에는 오컬트에 슬래셔 장르, 좀비까지 정말 여러 장르가 계속 등장했다. <나이트메어>, <13일의 금요일>, <할로윈>, <살아있는 시체들> 시리즈 등등. 

이해영 <더 체인질링> 이후에 <폴터가이스트>(1982)가 나왔다. 역사적으로 따진다면 이전의 호러영화들이 정서나 분위기가 주도하는 공포를 만들었는데  <폴터가이스트> 같은 작품들은 귀신 들린 집을 소재로 취하면서도 훨씬 투박한 장르적 요소들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배치한다. 그 후 80년대로 넘어가면 ‘팝콘 무비’ 계열의 호러영화들이 등장한다. 사실 으스스한 분위기의 호러영화는 팝콘 무비로 즐기기는 힘들다. <13일의 금요일>(1980) 같은 영화는 맥주 마시면서 왁자지껄 떠들며 보기 좋은 대표적인 영화다. <더 체인질링>은 이런 호러영화의 변화 가운데 놓인, 가교 역할을 한 작품이 아닐까 한다. 장르의 역사를 읽을 때도 중요한 징검다리로 한번 짚어야 할 작품 같다.

이경미 귀신 들린 집 소재가 왜 이렇게 늘 흥미롭고 무서울까 생각을 해봤다. 공포는 내가 가장 안전해야 하는 곳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것 같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 사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상황이 공포스럽듯이 말이다. 집은 내가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인데, 그곳이 무너질 때의 공포는 정말 클 것 같다. 그래서 집에 귀신이 들린다거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죽어서 나를 괴롭히는 상황, 즉 내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어떤 최후의 대상이 사라지고 무너질 때 공포를 느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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