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25일, 서울아트시네마 '후나하시 아츠시 특별초대전' 개최  
 
“탑을 볼 때 우리는 내려다보지 않는다. 항상 올려다본다. 늘 찬탄하면서 매혹되는 것이다.”
<야나카의 황혼빛>(2009)에 대한 감독의 변에 언급된 이 ‘올려다보는 시선’은 후나하시 아츠시라는 작가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 같다. 후나하시는 이러한 응시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탑을 올려다보듯, 시네필은 영화 스크린을 올려다보고 찬탄하며 매혹된다. 영화에 대한 찬탄과 매혹은 그 자신이 ‘순수한 시네필’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후나하시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고교 시절 새뮤얼 풀러의 <마견>
(1982)을 보고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는 후나하시가 좋아하는 감독의 목록에는 혹스와 풀러에서부터 레이, 키아로스타미, 오퓔스, 자무시, 벤더스, 오즈와 미조구치뿐만 아니라 저예산 서부극의 거장 버드 보티처와 볼리우드의 전설 구루 두트까지 망라되어 있다.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 프랑스 누벨바그,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를 가리지 않고 섭렵하는 한편, 히치콕 영화를 한 편 볼 때마다 집으로 달려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번역한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를 집어삼킬 듯 읽곤 했노라는 영화광 소년은 이후 영화이론을 공부하면서 영화감독들에 대한 글을 썼고 결국 스스로 영화를 만들게 된다.

1997
년 장학금을 받고 뉴욕으로 건너가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영화 제작을 공부한 후나하시는 몇 편의 단편에 이어 2001년 첫 장편 <메아리>를 발표한다. 후나하시는 <메아리>에 대한 감독의 변에서 다음과 같이 영화적 포부를 밝히고 있다.
나는 영화적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한 시간 반 동안 어둠 속에 앉아 하얀 스크린에 오감을 집중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움직임과 소리 하나하나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한 사람의 시네필로서 나는 이러한 체험에 사로잡혀, 영화사의 고전들을 파헤쳐 왔다. 내가 사랑하는 이 영화적 체험을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미국인 스태프 및 배우들과 함께 25천 달러라는 초저예산으로 찍은 <메아리>는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뉴욕에서 버지니아로 떠난 젊은 여성의 여정을 유려한 16mm 흑백 화면에 담은 로드무비다. 길 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메아리>의 주제와 형식은 다음 작품 <빅 리버>(2005)와 <야나카의 황혼빛>에서 좀 더 넓고 깊게 확장되고 변형된다.


오다기리 조를 주연으로 오피스기타노가 제작한 <빅 리버>는 미국 서부 사막에서 우연히 만난 국적이 다른 세 남녀의 동행을 그린 로드무비라는 점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그 유사성이 드러난다. 뉴욕을 거쳐 아이슬란드까지 가고 싶다며 미대륙을 횡단하고 있는 일본인 여행자 뎃페이, 아내를 찾기 위해 낯선 땅에 도착한 중년의 파키스탄인 알리, 할아버지와 함께 트레일러촌에 살면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꿈꾸는 미국인 새라. 낡은 차에 함께 몸을 실은 세 사람은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지만, 이들의 관계는 그들이 가로지르는 황량한 사막만큼이나 건조하고 메마르다. 아내를 되찾고자 하는 알리의 노력과 뎃페이와 새라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축으로 서서히 전개돼 가던 내러티브의 갈등은 알리를 테러리스트로 의심한 경찰의 과도한 검문 이후 폭발한다. 뿔뿔이 흩어져 어둡고 잔인한 밤을 고독 속에 보낸 뒤에야 세 사람은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빅 리버’라는 제목은 미국에 대한 은유다. 작은 시냇물들이 함께 모여 ‘큰 강’이 만들어지듯, 온 세계에서 흘러든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리오 그란데’를 연상시키는 이 제목은 “서부극의 고전들처럼 심원하고도 단순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후나하시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내러티브나 인물보다 중요한 것은 ‘서부’라는 공간 그 자체다. (후나하시가 35mm 시네마스코프를 택한 것도 이 서부의 공간을 더욱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영화의 중반 세피아 톤 화면으로 끼어드는 카우타운의 모습과 영화 후반부를 채운 모뉴먼트밸리의 광활한 풍광은 서부극에 대한 감독의 경의를 담고 있다. 서부극의 마을 세트 속에서 카우보이와 총잡이들이 스턴트 쇼를 벌이고 한편에서는 낡은 서부영화 필름이 깜빡거리며 영사되는 카우타운은, 지금은 실재하지 않는 이미 사라져 버린 서부의 세계다. 마치 유령과도 같은 이 공간 속에서 총잡이들의 결투와 오래된 영화를 조용히 응시하는 세 주인공은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부유하며 기묘한 안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끝없는 하늘과 고요한 암반들로 둘러싸인 모뉴먼트밸리는 그 자체로 서부극의 상징이자, 주인공들이 순수한 태도로 서로를 마주하게 만들어 주는 화해의 공간이기도 하다.


후나하시가 일본에 돌아와 만든 <야나카의 황혼빛>은 도쿄의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교차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전작들과 매우 달라 보인다. 그러나 여행의 공간이 작아졌을 뿐,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서고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의미를 발견해 간다는 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간이 좁아진 대신, 시간의 폭은 쇼와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까지 넓어졌다.
영화의 배경이 된 야나카는 도쿄의 오래된 시타마치(서민 동네)로, 혼고와 우에노 분지 사이에 끼어 있어 ‘谷中’(골짜기 가운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가파른 언덕과 오래된 사찰들, 고양이가 많은 동네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쿄의 명소 중 한 곳이기도 하다. 2007년 10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야나카에 자리 잡은 후나하시는, 곳곳에 묘지가 많은 이곳이 “마치 공중에 떠다니는 유령들로 가득한 신성한 장소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도쿄의 영화/연극 전문학교인 ENBU세미나에서 강의하던 후나하시는 수강생들의 졸업 작품 제작을 위한 공간으로 야나카를 택했다. 차안과 피안,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듯한 야나카 거리에서 학생들이 전통 공예 장인들과 만나는 과정을 시나리오 없이 촬영함으로써, 일종의 다큐-드라마를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후나하시가 주목하게 된 것이 야나카 오층탑이다.

에도 시대 초기인 1644년 건립되어 18세기 후반 화재로 한 번 소실되었다가 재건된 이 오층탑은 오랫동안 야나카의 상징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1957년 7월 6일 새벽의 화재로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이 화재의 모습을 기록한 8mm 필름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 후나하시는 다큐멘터리의 취재를 계속하면서 필름의 소재를 찾았다. 그러던 중 야나카의 한 사찰에서 필름이 발견되면서, 영화의 방향이 급격히 달라졌다. 오층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필름을 찾으려 했던 후나하시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한 픽션을 야나카 주민들과의 인터뷰와 결합하는 한편, 에도 중기의 탑 재건 과정을 담은 고다 로한(1867~1947)1892년작 소설 <오층탑>의 내용을 시대극으로 극화한 것이다.
고다 로한은 <금색 야차>(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는 <장한몽>의 원작)로 유명한 오자키 고요(1867~1903)와 함께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예술의 영원한 이상과 인간의 강한 의지를 작품에 즐겨 담았다. 고다 로한이 야나카에 살던 시절 발표한 <오층탑>은 고용주와 아내,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혼자서 탑을 만들고자 하는 젊은 목수의 집념을 낭만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후나하시는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현재와 과거의 부분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연결시킨다. 이는 에도 시대의 젊은 목수 주베이의 무모한 고집이 무언가 확고한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며 방황하는 현대의 청년 히사키의 열정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이들은 명예나 돈이 아닌, 그저 올려다보며 감탄할 것을 갖고 싶은 열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인물들의 유사성은, 배우들이 현대와 과거의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는 것으로도 강조된다.)

그러나, 우리가 올려다보며 매혹될 탑은 지금은 불에 타 사라지고 없다. 영화 속에서 한 스님이 안타까워했듯, 현대인들이 올려다볼 것이라곤 고층 아파트뿐이다. 어쩌면 현대인은 올려다보는 시선마저도 잃었는지 모른다. 후나하시는 <야나카의 황혼빛>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이것의 본질에 대해 살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영화의 절반이 오층탑의 초석이 남아 있는 야나카 묘원을 비롯한 야나카 거리 곳곳의 모습과 그곳에서 고집스럽게 자기 할 일을 계속 이어가는 야나카 토박이들의 모습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특히 80세의 노령에다 시력을 잃었음에도 매일 500개가 넘는 묘석들을 쓸고 닦으며 하루를 보내는 조자이지(常在寺) 관리인 오가와 미요코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매일 야나카 묘원을 오가며 오층탑 재건 운동을 벌이고 있는 향토 사학자 가토 가쓰히로는 젊은 두 주인공을 훨씬 뛰어넘는 영화의 중심인물이라 하겠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오층탑 화재를 둘러싼 진상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다. 여주인공 가오리는 야나카 지역의 8mm 홈무비 필름들을 찾아다니던 중 오층탑이 노숙자의 방화에 의해 불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오층탑의 소실 원인이 노숙자의 방화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화재 모습을 담은 필름이 발견될 때까지 계속되는데, 가토 가쓰히로가 히사키에게 필름을 건네주는 순간에야 실제로 불을 붙인 사람은 동반자살을 기도한 남녀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실제 야나카 오층탑 방화 동반자살 사건은 쇼와사에서 꽤 유명한 사건으로, 도쿄의 양복점에서 일하던 재봉사와 조수인 여성이 불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분신자살을 기도한 것이라 한다. 야나카 주민들은 이들이 화장용 장작으로 너무도 비싼 값을 치렀다고 입을 모아 통탄했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잃고 있는 것들 역시 너무도 비싼 값을 치러야만 되찾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by 김은아(자유기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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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를 향한 첫번째 여행


왜 영화의 정전(canon)이 필요한가? 왜 최고의 영화들을 시네마테크는 선정하는가? 왜 걸작선의 분류가 필요하고, 작품들을 상영하려 하는가? 시네마테크의 취향을 보여주려 함은 아니다. 영화의 과장된 지식과 정보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함도 물론 아니다. 평론가인 조나단 로젠봄이 ‘영화 정전의 필요성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가 영화의 정전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다면 대학의 칠판이나 학생들이 읽는 영화 교과서, 혹은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에 기재된 목록들로, 혹은 박스오피스 성적의 결과로 영화들이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네마테크가 정전의 목록을 만드는 것은 앤드루 새리스가 1960년대에 영화의 판테온을 세우려 했던 것과는 다른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영화의 위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영화의 정전이란 높은 가치를 지닌 예술 작품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정전에 포함될 것인가는 논쟁적이다. 선정자들의 영화에 대한 판단과 취향, 선별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제임스 아제, 마니 파베르, 앙드레 바쟁, 폴린 카엘, 피터 보그다노비치, 앤드루 새리스, 로저 에버트, 조나단 로젠봄, 하스미 시게이코 등이 선정한 다양한 목록들이 있다. 이미 폴 슈레이더는 영화 정전을 위한 흥미로운 7가지 표준을 제시한 바 있다. 아름다움, 기묘함, 형식과 주제의 단일성, 전통, 반복 가능성, 관객들의 참여, 모럴리티 등이 어떤 작품이 정전인가를 결정하는 표준들이다. 평론가인 애드리안 마틴 또한 세 가지 정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째, 스타워즈 정전.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들의 목록이다. 둘째, 시민 케인 정전. 1950년대와 60년대의 아트하우스와 누벨바그 시절에 비평가들이 구축한 오래된 정전이다. 셋째, 키아로스타미 정전.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정전에서 결핍되고 누락된 영화들을 보완한 새로운 정전을 말한다.

살아남은 영화들은 오직 그 작품에 속하는 이중적인 시간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르게 된다. 이중적인 시간이란 곧 작가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을 의미한다. 영화의 정전을 만드는 것은 그런 시간들에 간섭해서 과거의 작품에 현재의 생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개관 10주년을 맞아 시네마테크가 선보이는 ‘100편의 시네마 오디세이’도 그런 이유 때문에 시작되었다. 이 목록들이 그럼에도 결핍과 불완전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하고 싶다.


‘유토피아로의 여행’이라는 부제가 딸린 첫 번째 여행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20세기 초두에서 21세기의 시작에 나온 8편의 영화들이다. 유토피아는 단지 알려진 공간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시간 바깥에 존재하는 곳이다. 유토피아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만족스럽지 못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끈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비록 공포와 비극을 수반할지언정 언제나 유토피아로의 여행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에이젠슈테인과 동시대의 작가이지만 세계 영화사의 정전에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보리스 바르넷의 아름다운 작품 <저 푸른 바다로>(1933)가 보여주는 세계가 그러하다. 세계영화사의 정전에 주로 몽타주 학파들의 감독들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자면 보리스 바르넷은 여전히 미지의 작가이다. 두 선원과 해변의 여인의 사랑의 트라이앵글을 그린 <저 푸른 바다로>는 유토피아적인 세계로의 여행을 다룬 내용만큼이나 토키의 여명에 새로운 미학적 여정을 시도한 작품이다. 동시대 장 비고의 <라탈랑트>(1934), 루이스 부뉴엘, 살바도르 달리의 <황금시대>(1930)와 견주어 볼 만한하다. 무성영화 시대의 도상을 유지하면서 순수하고 단순한 사랑과 발견의 이야기가 감미롭다.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의 작가들, 르네 클레르, 자크 타티, 장 르누아르, 혹은 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세계를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지도가 유토피아라는 땅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지도를 들여다 볼 가치란 전혀 없다’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지난 세기는 한 때 유토피아의 꿈을 간직했지만 실패로 끝난 역사이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은 언제나 침대 머리맡에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두었다고 한다. 이 단순한 습관은 채플린이 빈곤과 궁핍 속에서 자라난 자신의 유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환경을 평생 잊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황금사냥에 나선 사람들의 정신 이상적 행동을 코미디로 극화한 <황금광 시대>(1925)에서 폭소를 유발하는 것이 그런 배고픔이다. 채플린은 <자서전>에서 “비극이 도리어 웃음의 정신을 자극해 준다. 생각건대 웃음이란 곧 반항의 태도인 까닭이다. 우리들은 자연의 위력이라는 것 앞에 서서 자신의 무력함을 웃을 수밖에 없다. 웃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채플린은 통렬한 비극의 기록에서 희극적인 장면을 떠올렸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찰리는 낡아빠진 헌 구두 한 짝으로 저녁 식사를 때운다. 그는 정성들여 요리한 구두를 식탁에 내놓고는 맛스런 스파게티라도 먹는 듯 구두끈을 음미하고 고급 생선 요리처럼 구두 밑창을 접시에 올려놓고 생선 가시를 발라가듯 천연덕스럽게 못을 먹어치운다. 터무니없는 상상 불가능한 연출이지만 이보다 더 강렬하게 빈곤을 표현한 장면을 찾기 힘들 정도로 지극히 사실적인 장면이다. 롤랑 바르트의 지적대로 그는 ‘허기의 작가’로 언제나 배고픔을 과장되게 표현했다. 그는 배고픔과 허기를 영화에 담아낸 거의 유일한 예술가였다.


감동적일수록 더 웃겨야만 한다. 채플린의 이러한 원칙이 후기의 걸작 <독재자>(1940)에서도 활용된다. 작은 유태인 이발사 찰리가 자신과 닮은 독재자 힝켈(히틀러를 희화한 인물이다)을 대신한다는 간단한 이야기로 나치의 살인광증을 조롱하는 코미디다. 채플린이 1인 2역을 소화한 ‘찰리-힝켈’은 실제로 작은 차이를 지닌 인물로 사람들에게 오인된다. 채플린과 독재자 히틀러, 둘은 콧수염만큼이나 서로 닮았지만 그로부터 엄청난 거리를 지닌 다른 상황, 즉 웃음과 공포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채플린은 독재자를 조롱의 대상이나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막스 피카르트가 ‘우리 안의 히틀러’라 말했던 것처럼 채플린은 사회와 시대, 심지어 평범한 사람들 안에 독재자와 살인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그가 영화로 탈구축을 시도하려 했던 것인 그러한 ‘우리 안의 히틀러’이다. 7시간 반에 달하는 대작 <히틀러>(1977)에서 지버베르그는 히틀러의 성공이 대중의 시대, 민주주의의 시대에 호소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는 히틀러가 독일 대중의 비합리성에 철저하게 호소했기에 히틀러를 이해하고, ‘우리 안의 히틀러’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비판의 도구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를 빌려오는 것이 필요하며, 적들의 도구로 공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화와 비합리성의 권능을 환기시키는 것으로만 히틀러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 아우슈비츠의 통계학, 나치 경제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는 히틀러와 싸울 수 없다. 차라리 리하르트 바그너와 모차르트를 끌어들여 싸워야만 한다. 지버베르그가 상정한 것은 그래서 채플린과 마찬가지로 개인으로서의 히틀러는 아니었다. 그가 고민한 ‘우리 안의 히틀러’는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단지 히틀러가 우리를 만들었듯 우리가 히틀러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우리 모두 또한 잠재적인 파시스트적 요소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는 우리 자신 안에 그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정보를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그런 의미이다.


더글라스 서크는 전쟁의 비극에서 가장 멜로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8)는 미국영화로서는 드물게 패전국인 독일의 입장에서 전쟁의 비참을 그린 작품이다. 1944년 이른 봄의 러시아 전선. 독일군 병사 에른스트는 삼주의 휴가를 얻어 2년 만에 고향 베를린에 돌아온다. 그러나 도시는 이미 폐허가 되어버렸고 부모님의 행방도 묘연해 망연자실한다. 가까스로 어린 시절의 여자 친구 엘리자베스와 재회하고, 이내 서로 마음이 끌린 둘은 결혼을 올리고 자그마한 행복에 잠긴다. 하지만 에른스트는 곧 전선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러시아 전선으로 보내진 에른스트는 전장으로 떠나기 전 아름다운 여인과 잠깐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죽음과 사랑의 끔찍한 부조화가 여기에 있다. 서크는 이 영화에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풍경과 두 연인에 주목한다. 기이한 사랑이 그렇게 시작한다. 전쟁의 와중에 연인들에게는 사랑이 허용되지 않는다. 에른스트와 엘리자베스가 레스토랑에서 잠깐의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그들의 유예된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비행기의 공습이다. 그들에게는 사랑을 나눌 장소가 허용되어 있지 않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두 연인은 공습을 받은 폐허에 절반은 화상을 입고, 남은 가지에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의 이미지와 닮았다. 폭격의 열이 이른 봄에 주위를 따듯하게 해서 꽃이 빨리 피었던 것이다.

또 다른 연애의 지도. 왕가위의 <아비정전>(1990)은 <열혈남아>(1987)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자 <화양연화>(2000), <2046>(2004)로 이어지는 ‘1960년대 홍콩 삼부작’의 첫 번째 여행을 다룬 영화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라는 장국영의 대사는 이 영화의 시간성을 환기시키는데, 그렇다고 1960년대라는 시대의 고유명이 사실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왕가위는 전체적인 스타일과 분위기로 시대를 담아낸다. 당시의 체육관 매표소, 작은 매점, 오래된 코카콜라, 담배, 야간 순회의 경관의 출근부, 구식의 전화박스, 여기에 옛 음악과 댄스가 시대의 분위기를 더한다. ‘아비’라는 말 자체가 시대의 상징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의 사회적 문제, 청소년의 교육 문제가 당시에 주목받게 되면서 ‘아비’라는 말은 젊은이에 대한 회의적, 경멸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또한 니콜라스 레이의 <이유 없는 반항>(1955)의 홍콩 공개시의 제목이기도 했다. 1966년의 문화대혁명, 1967년의 홍콩의 대규모 폭동 등으로 홍콩의 1960년대는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였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연애 감정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에는 그런 시대의 애매한 분위기가 담겨 있다. 시간의 어긋남, 과거에의 후회, 연애의 파탄과 반복이라는 왕가위적 연애가 그렇게 작동한다.


여행은 그렇게 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영토로의 일탈을 내포한다. 소요하기, 경로를 벗어난 항해, 방랑하기, 배회하기, 그리고 심지어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영화-여행의 본질이다. 짐 자무쉬의 <데드맨>(1996)은 서부극의 스타일을 빌려 생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 내면세계로의 여정을 다룬 영화다. 자무쉬의 표현을 빌자면, 이 영화의 테마는 ‘인생은 마지막이 없는 사이클’이라는 것. 전작들에서 도시의 다양한 표정을 그려왔던 자무쉬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신비적인 대자연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데드맨>의 여행이란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역사적, 문화적 여정과는 거리가 있다. 공간을 통과하는 여정은 횡단하는 대지의 리듬에 따라 영화가 전개되고 지리적 공간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시간이 형성되는 독특한 영화 형식을 창조한다. 영화의 모두에 인용되는 ‘사망자와는 여행하지 않는 편이 좋다’라는 앙리 미쇼의 시는 이러한 여정의 독특성을 예고한다.

그리하여, 뇌와 정신의 여정이 있다. 아이덴티티, 기억, 트라우마, 혼란스런 시각으로 구성된 가장 현대적인 경향의 영화들이 그것이다.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는 그런 점에서 진정으로 21세기의 새로운 영화다.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뒤얽힌 이 영화는 고전 영화의 선형적 논리에 의문을 가한다. 깨어나지 않는 악몽과도 같은 종결 없는 순환이 작동하고, 관객으로서 우리는 플레이, 리플레이 되는 게임에 참여하듯 영화를 보게 된다. 여기에 질문이 있다. 영화는 우리의 정신 바깥에서 발행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보는 이 이미지들은 순수이 시각적인 것인가, 아니면 몸과 의식을 필요로 하는 육화된 것인가?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영화를 정신적 여정으로 이해하게 한다. 영상의 움직임이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모방해 만들어졌기에 영화는 인간의 정신에 호소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말하자면, 영화는 필름이나 화면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그 사실성을 부여하는 관객의 정신 속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움직임의 재생산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부터 감정과 허구의 가장 정교한 단계에 이르는 정신의 기능을 재현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그런 영화의 주관적 이미지를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진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것은 일종의 마인드 게임이다. 유령적인 캐릭터들, 혹은 이미 죽었거나 거의 죽음 상태의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영화는 우리들에게 무의식을 포함한 밤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제 마지막 여행이 남았다. 오디세이의 귀착지에는 존 카사베츠의 <사랑의 행로>(1984)가 있다.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오손 웰즈 이래 가장 눈부신 미국의 이단적인 영화감독’이라 불렀던 카사베츠의 영화는 생전에 너무 독특해서 무시당했고, 종종 어설프고 조잡한 영화로 비판 받았다. 이미지의 연결은 불합리하고, 줄거리와 플롯은 느슨하고 인과관계는 불명확하며 인물들의 연기는 어색하고 과장스럽다. 하지만 카사베츠의 영화에 담긴 즉흥성과 서투름은 존재의 공복에 시달리며 강렬한 삶을 욕망하는 인간의 내밀한 삶의 비밀에 접근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카사베츠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미완성의 예술이다. 그는 완성의 작가가 아니라 ‘과정’, 혹은 ‘됨 becoming’의 작가이다. 그의 카메라는 마치 폭풍 속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프리재즈처럼 즉흥적으로 인물을 담아낸다. 그렇다고 영화 속 사건들이 실제로 즉흥적인 것은 아니다. 카사베츠는 ‘생생한 경험은 드라마틱한 경험만큼이나 관습의 산물일 수 있다’고 여겼다. 가령, 그의 영화에서 즉흥적인 것은 대사가 아니라 무대화된 연출이다. 그는 대사를 배우에게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그 역할이 무엇인지는 결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그것을 담는 카메라가 뒤따른다.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카메라가 실제 발생하는 사건을 포착하는 것처럼 배우들의 퍼포먼스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다. <사랑의 행로>의 한 장면에서 지나 롤랜즈는 택시 운전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발 참을성을 갖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해요. 왜냐하면 내가 정확하게 지금 어디로 갈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카사베츠는 방향 잃은 사람들의 여정을 흐름으로 포착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랑의 흐름이다. 사랑은 존재의 모든 부분을 생기 넘치게 해주는 강렬한 에너지이다. 카사베츠는 자신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자기만의 철학을 갖길 원했고, 그 철학이란 어떻게 사랑할지를 아는 것이고, 어디에서 사랑을 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분노와 적대감, 그리고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그의 영화에서 흐릿한 빛과 어둠, 화면을 파괴하는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들은 에너지와도 같은 사랑의 흔적이자 자취다. 그는 공간을 점유하는 대상과 인물보다는 그들을 감싸는 힘과 흐름, 그것의 분위기, 존재의 내적 움직임, 순간의 열정을 포착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인물들은 알코올로, 광기로, 사랑의 실패로 쓰러진다. 그들은 모두 영향력 아래에 있다. 카사베츠는 해체의 순간을 추적한다. 그는 몸을 붕괴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체는 회복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들뢰즈가 지적하듯이 앙토냉 아르토가 “나는 삶을 잃고, 모든 수단을 통해 나의 자리를 되찾으려 하는 사람”이라 말했던 것을 카사베츠에게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다. 붕괴의 지점에서 존재가 갱신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지나 롤랜즈가 놀라운 방식으로 연기하는 인물들의 상황이다. 카사베츠의 독창성은 불안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내적 여정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영화화했다는 점에 있다.

글|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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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 오전 11시. 영화의  낙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소개하는 기자 회견이 열렸다. "내년이 시네마테크 개관한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영화인들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모두 발언으로 기자 회견이 시작되었다. 영화제의 상영작 하이라이트 동영상과 2012년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로 참여한 감독, 배우들의 영화와 시네마테크에 대한 근심과 지지, 후원의 메시지가 담긴 인터뷰 영상이 이어 상영되었다. 

"축하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시네마테크의 앞으로의 십년을 사실 걱정하고 있습니다."라는 류승완 감독의 근심어린 발언에서부터 "시네마테크는 맑은 수원과도 같은 곳"이라는 이창동 감독의 후원의 메시지까지 영화인들의 수 만큼이나 발언은 실로 다양했다. 인터뷰 영상의 상영이 끝난 후에 김성욱 프로그래머  또한 "개관 10년을 축하하는
자화자찬의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네마테크의 현실에 대한 우려와 성찰을 담은 이야기도 있어 오늘 오신 기자 분들도 다양한 면모로 시네마테크의 십년의 소회를 들으실 수 있었을 것"이라 말했다. 이어 본격적으로 '2012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메인섹션과 특별섹션,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10주년 사업과 관련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고, 영화제에 참여하는 감독들을 대표해 기자회견에 나선 변영주, 이해영, 김종관 감독의 유쾌한 말들이 이어졌다. 







김성욱: 7회를 맞는 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개관 10년을 맞는 행사로 열립니다. 메인 섹션의 컨셉은 ‘이것이 영화다’인데, 이중적 의미입니다. '이런게 영화가 아닌가’라는 영화인들 각자의 생각이 담긴 작품들이 선택되었습니다. 현재 작업 중이고 고민 중인 영화들이 선택되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영화의 세계로 인도한 영화들도 있습니다. 역대 최대인 총 23명의 영화인들이 참여했고, 선택한 작품 19편이 상영됩니다.

관객들도 투표를 거쳐서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화해불가>가 선택되었습니다(투표 동수를 얻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 받지 못한자>도 상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프린트 수급이 불가능해 불가피하게 한 작품만 최종적으로 상영하게 되었다). 시네마테크가 선택한 영화는 <리스본의 미스터리>입니다. 올해 세상을 떠난 칠레 출신의 영화감독 라울 루이즈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유작을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섹션은 개관 10년을 맞아 연속기획으로 진행될 100편의 영화사 걸작 상영의  첫 번째 기획전입니다. “100편의 시네마 오디세이”라는 제목으로, 그 첫 여행으로 8편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에이젠슈테인과 동시대 감독이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보리스 바르넷의 영화를 필두로, 개막작으로 선정한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 그리고 채플린과 동시대를 살았던, 하지만 가장 끔찍한 역사를 남긴 히틀러를 다룬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그의 7시간 반에 이르는 <히틀러>, 21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카이에 뒤 시네마’에 선정된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포함해 총 8편입니다. 현재 일본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을 초대해, 한국의 영화인들과 대담을 나누는 행사도 마련됩니다. 영화제의 개막작은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입니다.


2012년에는 다양한 10주년 사업이 시작됩니다. 아시다시피 얼마전에 서울시 의회에서 전용관 지원조례가 통과되었습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쾌거입니다. 올 4월부터 많은 영화인들이 서울시에 시네마테크에 대한 안정적인 공간마련과 재정적 지원을 할 것을 역설했고, 그 결실로 전용관 지원조례가 만들어졌습니다. 서울시가 이러한 결의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10주년 기념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서 진행됩니다. 첫째, 100편의 영화 걸작선을 연속기획으로 상영합니다. ‘친구들 영화제’가 끝난 이후에 100편의 시네마 오디세이의 본격적인 여정이 12월까지 진행됩니다. 둘째, 개관 10주년을 맞는 5월에 특별한 개관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해외 초청전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셋째, 그동안 시네마테크가 관객들의 후원과 응원을 받아왔기에, 이제는 우리도 영화의 관객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 일종의 ‘미션 시네마’와 같은 특별 정책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개관 10년을 맞아 현역 영화인들을 후원하고 젊은 예술가를 육성하기 위해 시네마테크가 공공적인 역할을 새롭게 수행하려 합니다. 먼저, 교육의 활성화로 개별적으로 진행한 시네클럽과 강의를 일종의 개방적인 영화학교로 만들 생각입니다. 둘째, 젊은 영화 예술가들과 영화 스태프들을 위한 반값 관람료 정책을 고민 중에 있습니다. 영화를 꿈꾸는 청소년이나 영화학교 학생들, 영화 스태프들이 시네마테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관람료를 할인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재원이 있어야만 이 정책은 현실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기자회견에 참석하신 영화의 친구들로부터 영화제에 참여한 생각과 선택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변영주(영화감독): 저는 사실 시네마테크를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시네마테크가 존재하는 이유가 산업의 논리로 보여질 수 없는 영화들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시네마테크를 찾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시네마테크의 존립과는 사실은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네마테크가 더 많이 대중들에게 인식되어 관객들과 더 쉽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시가 시네마테크를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살롱과 라이브러리가 있어서 영화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이 한 공간에서 가능할 때 그게 사실 진정한 시네마테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 여기엔 그게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런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문화산업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발 좀 이제는, 정권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극장을 운영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선택한 영화는 <차이나타운>입니다. 다른 감독님들의 선택작을 보면서 다들 자신들의 최근 작품이나 현재 진행 중인 작품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 재미 있었습니다. 저도 <화차>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자주인공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까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영화에서 제가 구현하고 싶었던 것을 끝내 물질적으로 구현해 낸 김민희라는 배우와 영화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즐거운 일입니다. <차이나타운> 상영 날짜와 <화차> 개봉시기가 그리 멀지 않아서 그것도 너무 좋은 거 같습니다(웃음). 많이들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과 학생들이 극장을 자주 찾았으면 합니다. 현장에 나오는 영화과 출신의 스태프들을 보면 항상 안타까운게, 그들이 영화를 하게 만들고 계속 꿈꾸게 하는 영화가 우리의 그것에 비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과 교수들이 학생들을 영화제에 많이들 보내주었으면 합니다. 이건 극장이 잘되자는 것도 아니고, 영화제가 잘되자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영화가 잘되기 위해서 그들이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영(영화감독): 관객들이 이곳을 많이 찾을 수 없었던 데에는 시네마테크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요즘의 현상들에 그 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요즘의 관객들이 더 게을러지고 더 수동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예전처럼 신문에서 영화의 광고를 찾아서 어떤 극장에서 무슨 영화를 하는지 찾기 보다는 자신이 멤버십으로 가입되어 있는 멀티플렉스에서 걸린 영화들 중에서 예매율이 높은 영화들을 고르는 수동적인 관람 방식에 관객들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영화를 인터넷에서 다운 받기도 쉽고 지하철에서 보기에도 수월해진 시대입니다. 영화를 한 편 감상한다는 개념과는 다르게 장면들을 소비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시네마테크가 문화적인 휴식공간으로 많은 것을 갖춰야만 하는데, 아직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다양한 관객층을 넓히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관객층이신 분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극장이 더 좋은 곳으로 옮겨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지금 이 공간에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관객들이 볼 때 왠지 멀리 있고 어려워 보이는 영화인들이 있는 것 보다,  저처럼 약간 만만하고 애매해 보이는 사람이 자주 출몰하면 좀 더 친숙하게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여, 내년에는 저도 여기서 자주 영화 보면서 들르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저는 이번에 <부기 나이트>를 선정했습니다. ‘이것이 영화다’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곧바로 폴 토마스 앤더슨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이 영화다’라는 말에서 과거에 나에게 영화를 환기시켰던 영화나 동기가 되었던 영화를 떠올리기 보다는 나를 끊임없이 지향하게 만드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현재 영화를 제일 잘 만드는 감독이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 생각합니다.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쭉 떠올랐는데, 개인적으로는 <매그놀리아>도 좋아하지만 <부기나이트>에 담겨 있는 캐릭터를 바라 보는 시선이나 시나리오를 쓰는 스킬, 연기의 디렉팅, 배우와 캐릭터를 잡아가는 방식, 음악, 촬영 등 뭐 하나 나무랄 것 없이 훌륭하단 생각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제게 리프레쉬되는 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하균씨와 같이 보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와 비슷한 캐릭터를 보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 영화제에 참여하는 게 묘하게 뿌듯하고 묘하게 보람된 느낌입니다. 각자 집에 곶감처럼 귀중하게 갖고 있던 것들을 약간 쑥스러워하면서 벼룩 시장에 펼쳐놓는 느낌입니다. 상영작들을 보니까 저도 너무 기대되고, 관객으로서도 기쁘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종관(영화감독): 영화가 만들어지면 만들어질 당시의 유행이라는 것이 중요하고 당시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영화가 꽤 수명이 길다고 생각합니다. 그 긴 수명을 지켜주는 곳이 시네마테크입니다. 선배 감독님들 보다 저는 영화를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기에 이 공간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제가 영화를 시작하면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많이 봤었습니다. 이곳에서 영화를 많이 배웠고, 지난 영화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처럼 시네마테크에 와서 영화를 배우고, 무작정 찾아왔을 때에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히로시마 내사랑>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최근에 심신이 가장 불안정할 때 일본으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그 때 기차여행을 하면서 이 영화를 다시 봤는데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여행을 다닐 때 느끼는 게, 여행을 하면서 낯선 공간을 찾지만 거기서 결국은 익숙한 것들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때의 저의 상황이 영화에 더 깊이 다가가게 했습니다. 그게 제가 시네마테크에 와서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입니다. 많이 오셔서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욱:
 저희들의 입장에서는 공간이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유보다 최근에 극장 환경이 너무 시끄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상영 조건이 너무 열악해서 소음이 덜하고, 영사조건이 좋은 공간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서울시의회에서 전용관 지원조례안이 통과되었기에 서울시에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참석하신 감독 분들은 시네마테크의 10주년을 맞아 극장에서 이런 것은 정말 해보고 싶다는 게 있으신지요?


이해영:
올해 상반기에 <페스티발>을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했었을 때,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제안해 영화를 본 다음에 몇 개의 장면을 발췌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기억에는 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때 시네토크가 저에겐 굉장히 좋은 기억이었습니다. 사실 영화를 이야기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단히 크지 않더라도 아기자기하고 깨알 같은 방식들 말입니다(웃음).


김성욱: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기에 기자회견 때 말하진 않았지만, 지금 오신 감독들에게 제안했었던 게 있습니다. 결코 패러디는 아닙니다. 영화를 이야기하는 토크 콘서트를 조직해서 내년에 지역의 시네마테크까지 순회하는 행사를 벌이면 어떨까, 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변영주:
시네마테크가 다양한 일들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극장이지만 살롱과 라이브러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도 그런 건데, 영화를 위한 토론의 공간이 요즈음엔 많이 없어졌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현장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들도 시네마테크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이곳이 영화 하는 사람들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토크 콘서트 같은 다양한 이벤트들도 마련되면 또한 즐거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성욱:
이후에 구체적인 진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2년에 열살이 되는 시네마테크입니다. 더 젊은 새로운 행사들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10년을 걸어온 시네마테크의 앞으로의 행보도 꾸준히 지켜 봐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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