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하시 아츠시 감독 vs. 박동현 감독

지난 24, 25일 양일간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후나하시 아츠시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특히 25일 저녁, <야나카의 황혼빛> 상영 후에는 바로 전날 진행되었던 마스터클래스에 이어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과의 대담이 이어졌다. 대담자로는 서울국제실험영화제(EXiS) 집행위원장인 영화감독인 박동현 감독이 함께 했다. <야나카의 황혼빛>을 중심으로 영화에 임하는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의 사명과 철학도 듣고, 공간의 중요성을 탐구해온 두 감독이 지닌 흥미로운 견해를 엿볼 수 있었던 대담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어제 있었던 마스터클래스에 이어 오늘은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과의 대담을 진행하고자 한다. 오늘 대담에는 영화감독이자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박동현 감독님께서 함께해주셨다.
후나하시 아츠시(영화감독): 오늘은 긴 시간은 못 되겠지만 영화의 가능성, 특히나 잃어버린 풍경에 대해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다.
박동현(영화감독,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집행위원장): 만나 뵙게 되어 반갑고, 좋은 영화를 보여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제가 만들었던 영화와 비슷한 부분들이 있어 이 대담에 불러주신 것 같은데, 저 역시 사라져가는 것들과 도시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김성욱:<야나카의 황혼빛>에서 사라진 것이 5중탑이라면, 박동현 감독의 영화에서는 숭례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교묘하게 맞닿은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야나카의 황혼빛>은 소실된 5중탑에 대한 일종의 불가시 대상을 과거와 현재, 다큐와 픽션을 넘어서서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보여진다. 어제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이 ‘영도의 화면’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시대나 장소가 굉장히 불확실한, 이질적인 화면들이 영화 속에 많이 등장한다. 허우 샤오시엔의 <쓰리타임즈> 같은 영화처럼 여러 시대가 공존하며 다큐와 픽션, 무성과 홈무비, 에도시대와 현재, 불타버렸던 1950년대의 시대, 노인과 젊은이 등 여러 가지가 결합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이 만나는 지점이 영화의 근원적인 것이고 영화가 주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박동현 감독과의 대담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후나하시 아츠시: <야나카의 황혼빛>은 현대의 ‘야나카’라는 도쿄의 한 동네와 애도시대의 옛날 모습, 특히나 5층탑을 만들려는 목수의 이야기이다. 그 안에 픽션과 다큐멘터리 등 여러 가지가 교차되어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에는 없어져버린 것들, 잃어버린 것들에 카메라를 대는 것에 상당히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 머릿속에서 죽은 것들,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을 계속 꺼내서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 제 영화의 사명이 아닌가 한다.
영화를 보는 시선이라는 것은 어딘가 과거를 향한 시선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없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영화를 보는 시선이 닮아있다고 보고, 그것이 마치 이 영화에서는 탑을 올려다보는 시선과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것은 시간, 국적, 공간, 언어 등을 초월해서 과거에 존재하는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그 점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가장 놀라운 능력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종교나 나라, 시대에 갇혀 있다고 해도 공통적인 것들을 찾아내서 공감대를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영화의 힘이라고 본다. 시대가 흐르고 변해도 변함없이 남아있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분들이 바라볼 수 있게끔 유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영화다.
오즈 야스지로가 만든 <동경의 황혼>(1957)이라는 영화가 있다. 1957년은 바로 탑이 불탄 해인데, 자료조사를 하면서 오즈의 영화가 만들어진 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동경의 황혼>은 오즈의 영화 치고는 드물게 어두운 영화다. 완전히 암흑 속에 빠진 것 같은 슬픔을 느끼게 하는 영화인데, 일본의 가족들이 붕괴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야말로 내가 영화에서 테마로 삼았던 현대 일본 가족의 붕괴와도 통하는 면이 있어서, 거장 작품의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오즈의 영화에서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황혼은 해가 져서 점점 안보이게 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사라져가는 것을 상징한다. 재밌는 것은 다른 시대를 서로 비교할 때 역사적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는 거다. 젊은이가 영화에서 만들어낸 탑이 현대에 와서는 어르신들이 못 잊어하고 그리워하는, 전통을 대표하는 탑이 되어 버렸는데 각기 다른 시대를 붙여놨을 때 과연 전통이란 무엇인가, 젊음은 또 무엇이고 나이 듦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 그런 의문을 갖은 채 서로 다른 두 가지 시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며 영화를 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박동현: 이 영화를 보면서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일단 이 영화가 하나의 탑이 사라지고 그 탑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서 다큐멘터리와 내러티브를 결합해서 만들었는데, 이 영화를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후나하시 아츠시: 2007년에 미국에서 10년 동안 공부하고 오랜만에 일본에 돌아왔을 때 도쿄의 어디에서 살까를 고민했었다. 그때 친구가 사는 곳에 놀러갔었는데 영화에도 나왔던 벚꽃나무가 있는 역 앞에 묘지가 많더라. 사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많은 동네라고 들었다. 어쨌든 그곳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살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 영화에도 등장하는 카토라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5층탑 터에서 그 분을 처음 만나서 그 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분뿐 아니라 다른 분들을 만나도 5층탑 얘기를 많이 하셔서 도대체 5층탑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흥미가 많았다. ‘야나카’라는 것은 한자로 쓰면 계곡곡(谷)자와 가운데중(中자)를 쓰는, 그야말로 계곡의 밑바닥이라는 뜻이다. 계곡의 양쪽에는 애도시대 당시 돈 많은 사람들이 사는 저택들이 있었고, 계곡의 바닥은 하층민이나 서민들이 사는 곳이어서 여러 문화가 복합적으로 남아 있는 부분들이 있다. 또 묘지와 절이 상당히 많고, 위치상으로는 일본의 왕궁터로부터 동북지방이다. 풍수적으로 안 좋은 방향이어서 애도시대부터 절을 많이 지어 악령들을 막으려고 했고 묘지도 많이 생기게 됐다. 이 ‘야나카’에서의 삶을 보는 것이 곧 과거 도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영화의 배우들은 당시 제가 연기를 지도하던 지망생 학생들이었다.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에 픽션을 첨가하고 그 픽션의 부분을 학생들과 함께 해보자고 해서 만들어지게 됐다.

박동현: 감독님의 전작은 물론 내러티브가 강한 영화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완전한 극영화였다. 극영화에서 다큐멘터리로 전환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후나하시 아츠시: 자연스럽게 다큐를 시작하게 되었다. 911 사건이 있을 때 마침 뉴욕에 있었는데, 눈앞에서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면 카메라를 갖다 댈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충동을 느낀다. 당시 매일같이 뉴욕 곳곳을 다니면서 촬영을 했고 그것들을 토대로 방송다큐멘터리를 찍었었다. 처음에 만든 영화는 <에코스>라는 극영화인데 그 다음에 911관련 다큐를 만들게 됐다. 그 때의 감상이나 생각들을 토대로 쓰여진 시나리오가 <빅 리버>였다. 저에게 다큐멘터리와 픽션은 표리일체, 즉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거라고 볼 수 있다. 또 다큐멘터리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느꼈던 것들을 토대로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상호 소통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다큐에서 극영화로 옮길 수 있었다.

박동현: 저도 탑이 불타는 장면을 보면서 911 사건을 떠올렸는데, 마침 그런 접점이 있었던 거였다. <야나카의 황혼빛>은 거의 흑백으로 만들어졌는데 내러티브상으로 탑이 완성된 이후로 컬러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탑을 올려다보는 장면의 나뭇잎이나 목수와 아내가 손을 비석에 대는 장면이라든지 세 개 정도가 컬러가 있었고 탑이 완성된 이후에야 완전히 컬러로 변하게 된다. 흑백과 컬러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특별한 룰을 만들어놓고 작업을 하신 건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영화 같은 경우, 중요한 것은 과거를 과거로 보지 않고 현재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현재를 볼 때는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를 볼 때는 현재를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보는 분들이 과거를 현재처럼 선명한 색으로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대부분 좋은 영화들은 과거를 과거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과거와 현재와의 교류를 그린 것이 많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같은 경우에는 없어진 풍경을 찾는 자식의 이야기인데,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다니지만 결국엔 현재의 모습을 찾게 되지 않나. 이런 것처럼 과거와 현재의 교류를 다루는 것이 영화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박동현: 컬러와 흑백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 둘을 나눈 경계점 등에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
후나하시 아츠시: 과거가 정말로 선명하게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과거가 되살아나는 것을 본다는 의미로 5층탑이 불타는 것을 컬러로 써야겠다하는 생각은 확실히 있었다. 효과를 크게 낸다기보다는 현재와 과거가 같은 레벨에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 없이 흑백으로 처리하고 싶었고 대신 과거와 현재가 만나서 변화하는 순간만큼은 어떤 변화를 나타내고 싶었다. 영화에서 젊은이와 할아버지가 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어떤 여자가 술병을 들고 등장하면서 한 테이크로 간 씬이 있는데 사실은 2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다. 그러면서 색깔도 선명해지고 명확해진다는 것들을 그리고 싶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에서도 한 컷으로 30년의 시간이 변하는 것을 그린 적이 있었다. 저는 한 테이크로 200년 정도 뛰어 넘어 보자 하는 생각이 있었고 그것을 해보고 싶었다.

박동현: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시는 분이구나 싶다. 영화감독의 경우 시네필부터 시작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를테면 <빅 리버>는 서부극의 공간들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주면서 들어오는 느낌이 있고, <야나카의 황혼빛>에서는 슈퍼8mm 필름을 갖고 찾는 과정들이 드라마로 나오게 되는데, 언제부터 어떻게 영화를 할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 학생이었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시네마테크 영향이 컸다. 영화를 보러 가자고 늘 권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당시 500엔 정도로 두 세 편의 영화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할리우드나 일본의 고전 영화, 퓰러나 고다르의 영화들을 봤다. 당시에 전혀 이해는 못하면서도 대단하다는 느낌을 가졌고 그 영향이 컸다. 이후 동경대에 들어갔을 때 하스미 시게히코라는 괴물 같은 영화평론가가 있었는데 1년에 못 해도 영화를 100편 이상 봐야 된다고 하더라. 그때 매해 200편 씩 보면서 4년 동안 800편 정도의 영화를 봤다. 그렇게 영화를 보면서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동현: 저랑 굉장히 비슷한 경험을 하셨다. (웃음) 저도 고등학교 때 친구 꼬임에 넘어가서 영화를 보다가 여기까지 왔다. <야나카의 황혼빛> 제일 마지막 장면에 동경대가 나오는 비석이 하나 있던데, 그 비석과 동경대 출신이라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
후나하시 아츠시: 참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웃음) 영화에 나왔던 묘지에 가면 상당히 유명한 분들의 묘지가 많다. 이를테면 애도시대의 마지막 쇼군의 무덤, 하세가와 카즈오라는 유명한 배우의 무덤도 있고 시인이나 동경대학교 교수 분들의 무덤도 꽤 있다.


김성욱: 두 분의 영화가 공통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어떤 장소의 중요성이다. 제가 느끼는 역설적인 측면들은, 장소는 굉장히 리얼한데 장소에 있었던 과거의 사건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리얼하면서도 불가시한 대상이 되는 어떤 장소를 영화가 담아낸다는 점에서 영화가 갖는 특별한 힘들이 다큐나 픽션을 작동하게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야나카의 황혼빛>이 상영될 때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은 박동현 감독의 영화 <기무>를 봤다. <기무>는 서울에서 사라져가는 장소와 공간들을 담은 영화인데 어떤 느낌으로 보았는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정말 멋진 영화였다. 옛날 기무사가 있었던 장소에 현대미술관이 옮겨간다는 뉴스를 보고 그것에 대해 다루는데, 그 공간을 그려냄으로써 역사와 공간에 살아있는 망령들까지도 담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복도에 대한 시각이었다. 저 자신도 잃어버린 공간을 다룰 때 카메라를 어디에 놓아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선 복도를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다. 방은 사람들이 만나고 관계를 맺게 되는 공간이고 복도는 무시하기 쉬운 공간이지 않나. 그러나 실제로는 공간의 역사가 가장 생생히 남아 있는 곳이다. 영화에서는 복도를 그려냄으로써 많은 이야기를 다룬 감독들이 많다. 오즈 야스지로나 같은 감독도 복도나 길을 통해 아름다운 씬들을 많이 보여줬다. 얼마 전에 존 카펜터의 <더 월>이라는 호러영화를 봤는데, 병실들 사이의 복도를 그려냄으로써 보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영화였다. 이처럼 복도를 어떻게 그리는가가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고 영화사적으로도 많이 시도되었던 부분인데, 혹시 감독님께서도 이 부분을 의식하며 강조했던 건지 알고 싶다.
박동현: 복도를 강조했던 것은 사람들의 여정이라는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영화에서 강조했던 것이 기무사 안에서의 복도와 골목길들이라 그것들을 많이 보여줬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거의 안 나오는 영화인데 사람들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식의 복도와 길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방에서는 앉아서 정적인 활동을 하는 데 반해 복도나 골목길은 더 동적인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서 바라보게 됐다. 그 안에서 훨씬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겠다 생각해서 복도를 찍게 됐다. 어니 기어의 <Serene Velocity>라는 작품에 나오는 복도 장면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작품의 영향도 있었다.

후나하시 아츠시:
박동현 감독님 영화를 보면서 기무사 복도도 인상 깊었지만 생선가게가 있는 뒷길도 참 인상적이었다. 에드워드 양의 <고량가 소년 살인사거>에서도 보면 마을 중에서도 특히나 가로수가 있는 길을 오프닝샷으로 다루면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담아낸다. 이처럼 마을의 등뼈 같은 길을 찾아내서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그런 것을 잘 담아내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영화적 재능이 있다고 본다. 그런 부분에서 박동현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든지 좋은 영화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박동현: 감사드린다. (웃음)

김성욱: 일본 영화 감독들을 볼 때마다, 현재에서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과거에 영화를 만들었던 그 기원점 안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구로사와 기요시나 아오야마 신지의 영화를 볼 때도 그렇고 바로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의 영화도 그렇다. 오늘 본 <야나카의 황혼빛>의 경우 두 개의 8mm영상이 있다. 하나는 자전거 타는 아이의 모습을 찍은 영상인데, 마치 뤼미에르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하나는 5중탑이 불타는 장면인데 에드 윈 포터의 <어느 소방수의 하루>와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또 롱 테이크를 쓴 장면에서 보자면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 느낌이 있었고, 영화에서 몇 번에 걸쳐 나오는 의식들은 오즈 야스지로의 <꽁치의 맛>에서 장례식에서 결혼식으로 끝나던 그 순간이 연상된다. 말하자면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적인 근원이나 기원점으로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걸 계속 의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특별하게 여기게 된다.
후나하시 아츠시: 첫 탄생부터 이미 과거를 담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영화의 본질이라고 본다. 그래서 사라져가는 빛들을 담는 것이 바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쓰인 8mm 영상들은 실제 영상들이다. 그것들 자체가 영화의 본질에 가깝지만 그렇게만 말하면 사실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게 된다. 영화는 그 이상을 해야 해야만 한다. 잃어버린 빛과 현재가 만나는 한 지점을 담아낼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잃어버린 풍경뿐 아니라 잃어버린 관계까지도 담아야 된다는 것,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빛과 현재의 빛이 만나는 그 접합점을 찾아내서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그것에 가장 많은 흥미를 갖고 있다. 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동현: 굉장히 역사학자 같은 시각을 갖고 계시다. 감독님 영화에는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 존재하고, 그 공간들은 실제로 과거에도 사용되었던 공간이고 현재에도 남아있는 공간들이다. 그 공간들을 과거처럼 기록하고 현재도 보여주고 하는 과거와의 소통 같은 것이 감독님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가장 중요한건 현재의 부분을 반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에서 서울 외곽의 재개발 지역을 그린 영화인 <호수길>을 봤는데, 건물들이 계속해서 없어지고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있었던 단편들만 나오고 그 잃어버린 광경을 담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본다. 또 그러한 의문뿐만이 아니라 현재 내가 있는 장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정말 소중하다고 여겨야 되는 시간과 장소는 어디인가에 대한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바로 이런 것이 영화의 마력이랄까,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끔 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다. 영화의 불변성은 바로 장소라든가 시간 등 영화에서 그려진 이외의 것을 통해 보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끔 하는 힘에 있다. 잃어버린 광경을 찍는 것 자체가 보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동현: 과거의 공간들에 가면 많은 감수성을 자극받게 된다. 오랜만에 종로에 나왔는데 빌딩사이에 피맛골을 재현해 놓은 듯한 구성을 해놓았더라.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만든 것들이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서울에는 사실 그런 부분들이 거의 안 남아 있는데 동경에서 야나카 같은 곳은 재개발이 이루어지는지, 만약 재개발을 하게 된다면 일본에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후나하시 아츠시: 개인적으로 도시계획을 좋아해서 많이 책도 보는데 일본도 서울만큼이나 엉망이다. 동경은 전후 국가 재건 당시 무계획적으로 개발해서 옛것과 현대적인 것들이 섞여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절 같은 경우는 많이 지킬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저 감정적인 생각에서다. 막상 돈이 없어서 절이 땅을 팔면 그 공간에 아파트를 짓거나 한다. 제가 살고 있는 야나카도 많이 남아있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옛 건물들을 없애버리는 일이 빈번하다. 프랑스 파리처럼 보존이나 규격에 대한 기준이 없고 일본 역시 재개발이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 국가문화재로 지정되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이렇게 지정되지 않은 건물들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쉽게 없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도 영화나 기록 영화가 문화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김성욱: 영화의 주된 내용 중 하나는 5중탑이 불타버린 순간의 영상을 찾는 이야기인데,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맥거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픽션을 움직여가는 동력이긴 한데 사실 그 중요성은 없는 것 같다. 5중탑의 화재 영상이 스크리닝되는 그 자체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은, 대신 현재의 인물이 강렬한 불빛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그런 모호한 대비가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후나하시 아츠시: 남자 주인공이 불빛을 받으면서 탑을 바라보는 장면은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저 자신부터가 영화를 만들 때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잃어버린 광경을 보여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처음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시작했을 때는 불타는 영상이 없어서 흑백사진만 넣었었고 영상이 없어도 별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촬영 영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처음에는 그 영상을 찾을 힌트가 없어서 방황했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만들어진 영화가 보는 이들에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굳이 영상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를 다니던 중 만났던 한 스님이 그 장면을 찍은 필름이 있다고 하시더라. 그 필름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선명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처음에는 그 영상이 없이도 영화가 성립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김성욱: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이 나왔던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빅 리버>와 <야나카의 황혼빛>을 동시에 보게 되면 ‘돌’에 관한 영화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빅 리버>는 거대한 바위(멘사)가 있었다면 <야나카의 황혼빛>은 무덤, 석상 등이 나오지 않나. 무덤에 관한 영화면서도 무덤에 관한 굉장히 시적인 표현들을 얻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서 ‘무덤은 단순하게 돌이 아니라 하나의 시다’라는 문구가 문득 생각이 났다. 이제 끝으로 두 분의 소감을 들으면서 마무리 해야겠다.
박동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후나하시 감독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다큐멘터리인 <뉴클리어 네이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저도 새 작품으로 찾아뵙고자 한다.
후나하시 아츠시: 제 영화의 돌이 공통점이라는 점이 재밌었다. 새로 만든 영화 <뉴클리어 네이션>은 안 보이는 방사능을 다룬 영화지만 꽤 많은 묘석이 나온다. 이 영화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고 멋진 영화 만드신 박동현 감독님과 함께 시간 보낼 수 있어서 기뻤다.

정리: 장미경(관객 에디터) | 사진: 최미연(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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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의 두 편의 영화, <야나카의 황혼빛>와 <빅 리버>의 상영 뒤 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되었다. 이날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은 페드로 코스타와 왕빙의 영화,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자신의 최근작 <뉴클리어 네이션>의 영상들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무시간성, 0도의 화면과 같이 흥미로운 개념들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던 이 날의 마스터클래스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먼저 간략하게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을 소개해 드리려고 한다. 1974년생으로 오사카출신이며, 도쿄대에서 공부한 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연출수업을 받고 2006년에 16mm로 첫 장편영화 <에코스>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여러 국제영화제에 소개가 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두 번째 작품인 <빅 리버>는 35mm 시네마스코프로 만들어졌으며, 국내에서도 개봉 되어 국내 관객들과 처음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09년에는 <야나카의 황혼빛>이 국내에선 CINDI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그 해 베스트 텐 중 하나로 손꼽았을 만큼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최근에는 <뉴클리어 네이션>을 만들어서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에 상영 되었다. 최근까지의 작품들 안에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고 오늘 마스터클래스 시간에도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는 작업과 관련해서 감독으로서의 독특한 영화론을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후나하시 아츠시(일본 영화감독):
서울아트시네마에 초대받게 되어 감사드린다. 서울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전에도 몇 번 왔었다. 시네마테크와 같은 곳에서 영화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과 영화 얘기를 나누는 일은 정말 기쁜 일이다. 방금 소개해 주신 것처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양쪽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조감독 경험 없이 바로 영화감독이 된 최초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같은 감독들도 제게는 10년, 20년 선배인데 그 분들은 조감독의 수련 경험을 쌓고서 감독이 되었다. 일본 스튜디오 시스템은 전후에 거의 없어져가긴 했지만, 대형 스튜디오에서는 여전히 그런 맥락이 남아있어서 인디펜던트 영역에서도 조감독의 경험을 쌓는 것을 했었다. 하지만 영화학교 출신의 감독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바로 감독으로 데뷔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도쿄대학에서 영화 비평을 공부하면서 대만영화를 테마로 공부했었다. 미국 뉴욕에서 영화학교 수업을 받으면서 <에코스>라는 영화를 연출해 데뷔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부족한 현장경험을 절감하게 되었고, 일단 많이 찍어보자는 생각으로 다큐멘터리도 찍어보고 극영화도 찍어보았다. 가능한 한 많이 찍으면서 경험을 많이 쌓은 것이 저의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어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했을 때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어떻게 공정함을 가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두 번째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 없이 말할 수 있는 부분인데, 대부분의 영화는 엔딩이 예측 가능하지만 어떤 영화들의 경우에는 엔딩을 예측할 수 없는, 저는 ‘0도의 화면’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시마 나기사가 말하는 다큐멘터리의 두 가지 원칙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60, 70년대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많이 찍었는데 당시에 오시마 나기사가 쓴 글에 다큐멘터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진정으로 진실을 쫓는, 힘이 강한 다큐멘터리는 두 가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기록 대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장기간에 걸친 기록이 그것이다. 그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중 <잊혀진 황군>이라는 작품이 있다. 2차 대전에 강제로 징용당해 전투를 치르거나 노역을 해서 상이군인이 된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일본정부에 보상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고, 당시 남한과 북한에서도 외면당했다. 오시마 나기사는 그들에게 밀착해서 촬영을 했다. 시위를 하고 전단지를 뿌려보지만 일본인들은 무관심하게 지나가버린다. 마지막에 한 인물에게 감독이 묻는다. 그는 눈을 다쳐서 실명한 상태였다. 감독은 그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묻고, 그는 자신의 눈을 보라고 말한다. 뭉개진 눈에서 눈물이 흐르면서 그 장면이 영화의 엔딩이 되는데, 아주 강력한 엔딩이다. 이 영화 같은 경우 오시마 나기사가 말한 다큐멘터리의 두 가지 원칙이 모두 충족되었다고 본다. 촬영 기간 자체는 비교적 짧지만 철저하게 대상에 밀착해 촬영했다는 점에서 장기간의 기록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오시마 나기사는 일본의 전후 다큐멘터리와 당시의 학생운동, 미일안보조약반대운동 등에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민중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되며, 피해자의 의식, 피해자의 괴로움에 대해 호소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방식의 접근은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값 싼 방식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구로사와 아키라의 <내 청춘은 후회 없다> 같은 영화나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스물 네 개의 눈동자>와 같은 영화들은 관객들이 바로 감정이입해서 그 괴로움에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오시마 나기사는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다큐멘터리는 달라야 하고 거리를 둬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잊혀진 황군>에서도 오시마 나기사는 재일조선인 상이군인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거리를 둬서 자꾸 질문을 하게 되고, 감정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과 상황에 대해 이해하게끔 하는 방법을 취한다.

공정함을 갖고 다가가기

오시마 나기사가 말한 두 가지 원칙, 기록 대상에 대한 애정과 장기간의 기록에 대단히 찬성하고 있고,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공정함에 대한 부분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장을 찍고 그것을 흡수하려고 할 때, 그리고 그것을 다시 보여주려고 할 때 가능한 한 공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 베를린 영화제에서 공개했던 <뉴클리어 네이션>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1년 동안 그 곳의 사람들의 모습을 찍으면서 만든 영화이다. 그 영화를 찍으면서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과연 만드는 이의 판단이 어디까지 작용해야하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10년이나 20년 뒤에 봐도 관객들에게 열려있고, 전혀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있은 후, 원전이 있던 후타다 마을의 주민들은 3월 하순부터 도쿄 근처의 폐교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그 때부터 약 10개월 동안 그곳에서 같이 지내면서 그 분들의 모습을 찍어서 만든 영화가 <뉴클리어 네이션>이다. 비극이라는 것을 다룰 때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촬영현장이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다. 첫째는 재해 비극을 그릴 때 대부분의 미디어들은 파괴된 형상들이 이미지적으로 강렬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많이 담는데, 그에 비해서 피난소에서 사람들이 줄서서 급식을 받는 일들은 이미지 자체도 강렬하지 않고,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분들이 매일 그렇게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 기다림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분들이 이렇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들을 매일 반복해서 겪는 그러한 상황만을 그린다는 것이 맞는 일인가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그 분들은 원전 설립을 통해 어느 정도 보상을 받았던 사람들 때문에 그동안 어느 정도 원전을 지지하고 지탱해온 면이 있다. 과연 백퍼센트 그들의 편을 드는 것이 맞는 일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역사적으로 원자력발전소에 관한 영화들은 많았다. 일본에서는 하지만 그것들은 원전을 홍보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자신들의 주장만을 담은 영화였다. 그래서 그런 영화들은 지금 보면 대단히 낡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든 영화는 그런 영화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사람의 생각, 사상이라는 것은 아주 쉽게 낡은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환경을 그대로 담아서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제가 생각했던 것이 공정함이다. 피사체와 일정 거리를 두어야했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내가 느낀 것을 그 자체로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10개월의 촬영 기간은 나의 선입견이나 생각자체를 매일매일 스스로 갱신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피난소에서 얼마나 힘들게 지낼까를 담으려고 했는데, 정작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도 다툼이 있고 이기주의가 있었다. 과연 나는 누구의 편을 들것인가. 그러다보니 나는 누구의 편도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 공정함을 갖고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시간성과 0도의 화면

오시마 나기사가 말한 두 가지 원칙과 제가 말씀드린 공정함, 이 세 가지는 저의 영화 <야나카의 황혼빛>에도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영화들을 만들게 되면서, 그런 식의 다른 감독 영화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한 가지 독특한 느낌을 얻게 된다. 내가 그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저는 이런 느낌을 동굴 속에 가라앉는 느낌이라고 부른다. 인물들을 동일체로서 느끼면서, 시간의 경과 자체를 못 느끼게 되는, ‘무시간성’으로 가득 찬 영화들이 있다. 픽션이든 다큐멘터리이든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그러한 무시간성의 영화가 아닌가 생각했다. 페드로 코스타나 왕빙과 같은 감독들의 영화 역시 무시간성으로 관철된 영화들이다. 페드로 코스타는 영화에서 포르투갈의 슬럼가를 계속해서 담았다. 아주 비참한 삶이지만 그 지역의 사람들을 의외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담아낸다. <반다의 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름다움과 비극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보고 대단히 많은 감동을 받았었다. 영화제에서 함께 대담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얘기했던 것 중 하나가 ‘당신은 반다와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군요’라고 말했다. 그 때 페드로 코스타 감독이 말하길, <반다의 방> 전에 <뼈>라는 극영화를 만들었는데, 극영화 촬영장에 가면 남성적인 역학관계가 생기는데 그것 자체에 대단히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야말로 혼자서 <뼈>를 찍었던 장소에 다시 가서 찍은 다큐멘터리가 바로 <반다의 방>이라고 했다. 그런 감각은 제가 느낀 것과 같은 것이었다. <빅 리버>를 40~50명의 스태프들과 함께 촬영했는데,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위아래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저는 배우들을 맘대로 컨트롤해서 찍는 것보다는, 배우들이 갖고 있는 인간성을 담고 싶었고, 그들만이 갖고 있는 시간성에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와 내 앞의 사람이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가 되어서 그야말로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담고자 했던 것이 <야나카의 황혼빛>와 <뉴클리어 네이션>이었다.



<반다의 방>도 그렇지만, 아무도 없는데 카메라가 있는 것 같아서 마치 투명카메라 같이 느껴지는, 그래서 그 사람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화면에서는 언제 컷이 끝날지 알 수 없다. 여기에는 어떤 뚜렷한 사건이 없다. <반다의 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사람들마다의 시간에 따라 진행되다보니 언제 영화가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시간에 의존해서 진행되는 경우 놀라운 기술이 필요한데, 무엇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시간을 어떻게 아름답게 잡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저는 이것을 ‘0도의 화면’이라고 부른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화면을 말한다. 이러한 화면은 무엇인가 설명하지 않으며,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 그 자체를 담는다. 이런 ‘0도의 화면’을 담는 것은 페드로 코스타 뿐 아니라 왕빙의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왕빙의 <중국여인의 연대기>는 인터뷰만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신문기자였다가 정치공작으로 인해 문화혁명 당시 강제노역을 해야 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극영화를 만든 것이 바로 <바람과 모래>이다. 사막의 강제수용소에서 땅을 파서 만든 굴에 들어가 생활해야했던 비참한 상황을 계속해서 밀착해서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노동자들의 얼굴은 시커멓다. 누가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다. 개인이 아닌 집단을 그림으로써 그 시대만의 괴로움을 그릴 수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막의 추위와 괴로움을 느끼게 되고, 상황 자체의 시간을 카메라가 쭉 따라가다 보니 그 무거운 시간의 흐름, 일종의 무시간성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다. 제 영화인 <야나카의 황혼빛>에는 앞을 못 보는 무덤지기 할머니가 나온다. 500개나 되는 무덤을 혼자서 관리하는 그 분의 시간을 지긋하게 담음으로써 일본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지역 공동체, 그 공동체의 끈끈함 결속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빅 리버>에서도 파키스탄인 알리는 아내와의 시간을 되찾으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깨닫게 되는 시간의 그 무시간성을 그려보고 싶었다. 무시간성이 끝까지 관철되는 화면 속에서 사람들은 괴로움이나 슬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것들로 가득 찬 영화를 만들고 싶다.


관객1: 소개해 주신 영화들이나 감독님의 영화들이 ‘무시간성’, ‘0도의 화면’과 같은 방법론에 있어서는 같다고 볼 수 있겠지만 소재들은 모두 다르고 굉장히 다양하다는 느낌이었다. 감독님은 작업의 동기나 출발점을 어떻게 찾으시는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좋은 질문이다. 사실 어떻게 테마를 발견하고, 발전시켜 가는가는 누가 가르쳐 준다면 배우고 싶을 정도다. (웃음) 저 같은 경우엔 매번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싸워서 얻는다. 대부분 신문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나오는 문제의식 같은 것들이 제 출발점이 되어 왔다. 예를 들어 <빅 리버>를 만든 것은 9·11 테러사건이 시발점이 되었다. 사건 바로 직후에 미국 아리조나에서 파키스탄인이 터번을 두르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백인이 총으로 쏴 죽였던 일이 있었다. 정말 충격을 받았었고, 미국의 서부시대의 무법천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 들었다. 그렇다면 서부에서 9·11의 테마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를 가지고 출발했던 것이 <빅 리버>다. 이런 식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저의 반응 그것 안에서 테마를 결정하는 기회를찾는다.

관객2: 감독님의 이론을 흥미롭게 들었다. 종종 다큐멘터리가 더 픽션 같고, 픽션이 더 다큐멘터리 같은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야나카의 황혼빛>에서도 픽션과 다큐멘터리가 공존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라는 것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데, 감독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저는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긋고 있지 않다. 그래서 무언가를 더 선호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빅 리버>를 만들 당시에도 그랬고,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에도 그랬고, 극영화를 찍겠다든지,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정한 상태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싶다고 만드는 충동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진다. 편의상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라는 구분이 있긴 하지만, 모든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픽션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 둘에 대한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멋진 장면, 멋진 영화를 찍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3: <빅 리버>에서 미국의 자연 풍광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빅 리버>에서 사막을 집중적으로 다뤘던 부분은 인물들이 어떤 환경에 살고 있는가, 그 환경을 어떻게 다룰까 하는 문제들이 중요했다. 실제로 많은 거장들의 영화들을 보면, 환경을 어떻게 담는가가 중요하고 또 굉장히 아름답게 담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존 포드나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허우 샤우시엔 영화들에서 환경을 담는 롱샷을 많이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풍토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앞으로의 작업에서도 그런 부분을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성욱: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감독님의 마지막 소감을 들으면서 오늘 자리는 마감해야겠다.
후나하시 아츠시: 오늘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얘기 나눌 수 있어 기뻤다. 앞으로도 픽션이나 다큐멘터리라는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영화란 시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 일본영화에서는 그런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시대와 관계성을 갖는 영화들은 꼭 만들어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저 자신도 그러한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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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olly 2012.02.28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틀 동안 들을 수 있었던 후나하시 감독님 얘기들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조만간 <뉴클리어 네이션>도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영화제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여서 그런지 몰라도... <야나카의 황혼빛>과 함께 영화제의 여운이 길게 남아있네요 ^-^

2월 24-25일, 서울아트시네마 '후나하시 아츠시 특별초대전' 개최  
 
“탑을 볼 때 우리는 내려다보지 않는다. 항상 올려다본다. 늘 찬탄하면서 매혹되는 것이다.”
<야나카의 황혼빛>(2009)에 대한 감독의 변에 언급된 이 ‘올려다보는 시선’은 후나하시 아츠시라는 작가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 같다. 후나하시는 이러한 응시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탑을 올려다보듯, 시네필은 영화 스크린을 올려다보고 찬탄하며 매혹된다. 영화에 대한 찬탄과 매혹은 그 자신이 ‘순수한 시네필’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후나하시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고교 시절 새뮤얼 풀러의 <마견>
(1982)을 보고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는 후나하시가 좋아하는 감독의 목록에는 혹스와 풀러에서부터 레이, 키아로스타미, 오퓔스, 자무시, 벤더스, 오즈와 미조구치뿐만 아니라 저예산 서부극의 거장 버드 보티처와 볼리우드의 전설 구루 두트까지 망라되어 있다.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 프랑스 누벨바그,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를 가리지 않고 섭렵하는 한편, 히치콕 영화를 한 편 볼 때마다 집으로 달려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번역한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를 집어삼킬 듯 읽곤 했노라는 영화광 소년은 이후 영화이론을 공부하면서 영화감독들에 대한 글을 썼고 결국 스스로 영화를 만들게 된다.

1997
년 장학금을 받고 뉴욕으로 건너가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영화 제작을 공부한 후나하시는 몇 편의 단편에 이어 2001년 첫 장편 <메아리>를 발표한다. 후나하시는 <메아리>에 대한 감독의 변에서 다음과 같이 영화적 포부를 밝히고 있다.
나는 영화적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한 시간 반 동안 어둠 속에 앉아 하얀 스크린에 오감을 집중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움직임과 소리 하나하나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한 사람의 시네필로서 나는 이러한 체험에 사로잡혀, 영화사의 고전들을 파헤쳐 왔다. 내가 사랑하는 이 영화적 체험을 관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미국인 스태프 및 배우들과 함께 25천 달러라는 초저예산으로 찍은 <메아리>는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뉴욕에서 버지니아로 떠난 젊은 여성의 여정을 유려한 16mm 흑백 화면에 담은 로드무비다. 길 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메아리>의 주제와 형식은 다음 작품 <빅 리버>(2005)와 <야나카의 황혼빛>에서 좀 더 넓고 깊게 확장되고 변형된다.


오다기리 조를 주연으로 오피스기타노가 제작한 <빅 리버>는 미국 서부 사막에서 우연히 만난 국적이 다른 세 남녀의 동행을 그린 로드무비라는 점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그 유사성이 드러난다. 뉴욕을 거쳐 아이슬란드까지 가고 싶다며 미대륙을 횡단하고 있는 일본인 여행자 뎃페이, 아내를 찾기 위해 낯선 땅에 도착한 중년의 파키스탄인 알리, 할아버지와 함께 트레일러촌에 살면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꿈꾸는 미국인 새라. 낡은 차에 함께 몸을 실은 세 사람은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지만, 이들의 관계는 그들이 가로지르는 황량한 사막만큼이나 건조하고 메마르다. 아내를 되찾고자 하는 알리의 노력과 뎃페이와 새라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축으로 서서히 전개돼 가던 내러티브의 갈등은 알리를 테러리스트로 의심한 경찰의 과도한 검문 이후 폭발한다. 뿔뿔이 흩어져 어둡고 잔인한 밤을 고독 속에 보낸 뒤에야 세 사람은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빅 리버’라는 제목은 미국에 대한 은유다. 작은 시냇물들이 함께 모여 ‘큰 강’이 만들어지듯, 온 세계에서 흘러든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리오 그란데’를 연상시키는 이 제목은 “서부극의 고전들처럼 심원하고도 단순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후나하시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내러티브나 인물보다 중요한 것은 ‘서부’라는 공간 그 자체다. (후나하시가 35mm 시네마스코프를 택한 것도 이 서부의 공간을 더욱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영화의 중반 세피아 톤 화면으로 끼어드는 카우타운의 모습과 영화 후반부를 채운 모뉴먼트밸리의 광활한 풍광은 서부극에 대한 감독의 경의를 담고 있다. 서부극의 마을 세트 속에서 카우보이와 총잡이들이 스턴트 쇼를 벌이고 한편에서는 낡은 서부영화 필름이 깜빡거리며 영사되는 카우타운은, 지금은 실재하지 않는 이미 사라져 버린 서부의 세계다. 마치 유령과도 같은 이 공간 속에서 총잡이들의 결투와 오래된 영화를 조용히 응시하는 세 주인공은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부유하며 기묘한 안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끝없는 하늘과 고요한 암반들로 둘러싸인 모뉴먼트밸리는 그 자체로 서부극의 상징이자, 주인공들이 순수한 태도로 서로를 마주하게 만들어 주는 화해의 공간이기도 하다.


후나하시가 일본에 돌아와 만든 <야나카의 황혼빛>은 도쿄의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교차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전작들과 매우 달라 보인다. 그러나 여행의 공간이 작아졌을 뿐, 무언가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서고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의미를 발견해 간다는 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간이 좁아진 대신, 시간의 폭은 쇼와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까지 넓어졌다.
영화의 배경이 된 야나카는 도쿄의 오래된 시타마치(서민 동네)로, 혼고와 우에노 분지 사이에 끼어 있어 ‘谷中’(골짜기 가운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가파른 언덕과 오래된 사찰들, 고양이가 많은 동네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쿄의 명소 중 한 곳이기도 하다. 2007년 10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야나카에 자리 잡은 후나하시는, 곳곳에 묘지가 많은 이곳이 “마치 공중에 떠다니는 유령들로 가득한 신성한 장소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도쿄의 영화/연극 전문학교인 ENBU세미나에서 강의하던 후나하시는 수강생들의 졸업 작품 제작을 위한 공간으로 야나카를 택했다. 차안과 피안,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듯한 야나카 거리에서 학생들이 전통 공예 장인들과 만나는 과정을 시나리오 없이 촬영함으로써, 일종의 다큐-드라마를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후나하시가 주목하게 된 것이 야나카 오층탑이다.

에도 시대 초기인 1644년 건립되어 18세기 후반 화재로 한 번 소실되었다가 재건된 이 오층탑은 오랫동안 야나카의 상징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1957년 7월 6일 새벽의 화재로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이 화재의 모습을 기록한 8mm 필름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 후나하시는 다큐멘터리의 취재를 계속하면서 필름의 소재를 찾았다. 그러던 중 야나카의 한 사찰에서 필름이 발견되면서, 영화의 방향이 급격히 달라졌다. 오층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필름을 찾으려 했던 후나하시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한 픽션을 야나카 주민들과의 인터뷰와 결합하는 한편, 에도 중기의 탑 재건 과정을 담은 고다 로한(1867~1947)1892년작 소설 <오층탑>의 내용을 시대극으로 극화한 것이다.
고다 로한은 <금색 야차>(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는 <장한몽>의 원작)로 유명한 오자키 고요(1867~1903)와 함께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예술의 영원한 이상과 인간의 강한 의지를 작품에 즐겨 담았다. 고다 로한이 야나카에 살던 시절 발표한 <오층탑>은 고용주와 아내,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혼자서 탑을 만들고자 하는 젊은 목수의 집념을 낭만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후나하시는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현재와 과거의 부분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연결시킨다. 이는 에도 시대의 젊은 목수 주베이의 무모한 고집이 무언가 확고한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며 방황하는 현대의 청년 히사키의 열정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이들은 명예나 돈이 아닌, 그저 올려다보며 감탄할 것을 갖고 싶은 열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인물들의 유사성은, 배우들이 현대와 과거의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는 것으로도 강조된다.)

그러나, 우리가 올려다보며 매혹될 탑은 지금은 불에 타 사라지고 없다. 영화 속에서 한 스님이 안타까워했듯, 현대인들이 올려다볼 것이라곤 고층 아파트뿐이다. 어쩌면 현대인은 올려다보는 시선마저도 잃었는지 모른다. 후나하시는 <야나카의 황혼빛>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이것의 본질에 대해 살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영화의 절반이 오층탑의 초석이 남아 있는 야나카 묘원을 비롯한 야나카 거리 곳곳의 모습과 그곳에서 고집스럽게 자기 할 일을 계속 이어가는 야나카 토박이들의 모습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특히 80세의 노령에다 시력을 잃었음에도 매일 500개가 넘는 묘석들을 쓸고 닦으며 하루를 보내는 조자이지(常在寺) 관리인 오가와 미요코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매일 야나카 묘원을 오가며 오층탑 재건 운동을 벌이고 있는 향토 사학자 가토 가쓰히로는 젊은 두 주인공을 훨씬 뛰어넘는 영화의 중심인물이라 하겠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오층탑 화재를 둘러싼 진상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다. 여주인공 가오리는 야나카 지역의 8mm 홈무비 필름들을 찾아다니던 중 오층탑이 노숙자의 방화에 의해 불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오층탑의 소실 원인이 노숙자의 방화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화재 모습을 담은 필름이 발견될 때까지 계속되는데, 가토 가쓰히로가 히사키에게 필름을 건네주는 순간에야 실제로 불을 붙인 사람은 동반자살을 기도한 남녀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실제 야나카 오층탑 방화 동반자살 사건은 쇼와사에서 꽤 유명한 사건으로, 도쿄의 양복점에서 일하던 재봉사와 조수인 여성이 불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분신자살을 기도한 것이라 한다. 야나카 주민들은 이들이 화장용 장작으로 너무도 비싼 값을 치렀다고 입을 모아 통탄했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잃고 있는 것들 역시 너무도 비싼 값을 치러야만 되찾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by 김은아(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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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저녁,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시네토크를 장식한 전계수 감독과 배우 공효진이 함께 추천한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클린> 상영이 있었고, 상영 이후에는 씨네21 전문위원인 김혜리 영화평론가의 진행 하에 전계수 감독과 공효진 배우와 영화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러브픽션>의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열린 이날 시네토크는 자연스럽게 <클린>과 <러브픽션>을 오갔다. 또한 <클린>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배우 장만옥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여배우로서 공효진이 느끼는 고민도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혜리(영화평론가, 씨네21 전문위원): <클린>을 선택하셨는데 이번 영화는 두 분 중에 어느 분이 주도적으로 선택하셨고, 다른 분은 어떤 점에서 공감하셨나?
공효진(배우): <러브픽션> 작업 초반에 감독님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함께 참여하자는 제안을 받은 후 어떤 영화를 고를까 생각하다가 2006년에 <가족의 탄생>을 촬영하면서, 김태용 감독님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추천하긴 했는데 사실 이 자리는 시사회 때보다 더 떨렸다. 내가 추천한 작품인데 관객 반응이 안 좋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혹시 지루하지는 않을까 싶어 걱정을 많이 했다.
전계수(영화감독): 추천작 중에는 우디 알렌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도 있었다. 사실 나는 <클린>을 못 본 상태였는데, 공효진 씨가 추천을 했고, 평소에도 장만옥을 좋아해서 좋다고 했다. 봤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안 봤던 것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

김혜리: <가족의 탄생>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왜 그 영화가 생각이 났을까 생각을 해봤다. 보통 주류영화에서는 감정을 대화를 통해서 많이 드러낸다. 그런데 <클린>은 그게 아니라 고독한 여자가 혼자 있는 장면이나 유동하는 장면, 남들이 도와주지 않을 때 외로운 인간은 어떻게 하고 있나 이런 것들을 보여준다. <가족의 탄생>을 봤을 때에도 공효진 씨가 연기한 ‘선경’이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 혼자 설거지 하는 장면을 보고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두 분은 <클린>에서 어떤 장면이 기억나시는지 궁금하다.
전계수: 오프닝이 가장 좋았다. 해밀튼이라는 도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장만옥이 약을 하고 잠들 때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카메라의 바운스, 움직임은 <가족의 탄생>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영어, 불어, 중국어까지 여러 언어가 나오고 그걸 잘 소화하는 배우도 매력적이었다.
공효진: 친구 집 침대에서 리를 그리워하며 우는 게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그녀가 괴로워할 장치들이 많다 보니까 그게 특별히 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대사로 직접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우는 모습을 보니까 힘들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씬이 마음에 닿았다.


김혜리: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시원하게 울지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는 슬픔에 집중할 겨를이 없을 때가 많다. 일단 오늘 하루 살아야 하니까. 아사야스 감독은 에밀리의 슬픔을 표현할 때도 아마 어떤 상황이 닥친 사람의 방식을 보여주는 식으로 리듬을 잡지 않았나 생각한다. 외국어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올리비에 아샤야스 감독의 특징 중 하나가 다국어가 구사된다는 거다. 아사야스 감독은 한 인터뷰 중에서, 우리는 외국어를 이야기 할 때 훨씬 모호하고 거칠게 이야기하는 반면 모국어로는 결코 쉽게 이야기 하지 않을 감정 같은 것들을 불쑥불쑥 이야기 한다고 했었다. 한편 이 영화는 장만옥이라는 배우를 빼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이 영화로 칸에서 상을 받기도 했었는데, 두 분에게 장만옥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 배우인가?
전계수: 가장 먼저 어떤 영화를 봤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화양연화>다. <클린>과 같으면서도 다른 게 많다. <클린>은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소리 지르고, 우는 감정표현이 주였다. 반면에 <화양연화>는 감추고, 절제하고, 외면하고, 뒤돌아서는 느낌이 훨씬 많았다. 굉장히 양식적으로 보이고 장만옥이 입었던 치파오도 양식적인 느낌이 강했다. 내게는 <화양연화>에서의 고독이 훨씬 더 가슴 미어지게 다가왔다. 하지만 절제하지 않고 드러내고, 알아달라고 요구하는 이런 느낌도 장만옥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만옥은 여러 가지 얼굴을 영화에 맞춰서 그때그때 변신할 수 있는 배우같다.
공효진: 나는 <화양연화>도 좋았지만 <소살리토>도 너무 좋았다. 여자들이라면 다 좋아했던 <첨밀밀>도 좋았다. 어렸을 때 많이 동경했던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이 멋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배두나 씨가 떠올랐다. 배두나 씨가 연륜이 쌓이면 저런 모습이 될 것이란 생각을 했다. 카리스마가 있다는 것은 꾸며서 될 일이 아닌데, 두 배우는 무심한 듯 연기를 하면서도 그런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김혜리:
의상은 <화양연화>의 치파오가 장만옥의 옷으로 가장 많이 기억에 남긴 하지만 이 영화의 의상도 만만치 않다. 공효진 씨는 알아주는 패셔니스타이시니 연기의 일부로서 그런 것들도 눈에 들어왔을 것 같은데.
공효진: 영화 중반쯤부터 목걸이가 눈에 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목걸이를 보면서 저 여자가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한 때 뚜렷한 락스타의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영화들 보면 이미 한물 간 락스타 할아버지가 아직도 웨스턴 부츠를 신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걸 보면 이미 저 사람은 스타가 아닌데 아직도 의상을 고수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시절에 아직도 젖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런 것과 비슷하게 에밀리의 목걸이나 옷차림이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작업한 <러브픽션>에서도 감독님과 의상이나 스타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헤어스타일도 <최고의 사랑> 구혜정의 이미지가 아직 강해서 짧은 머리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또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붉은색 립스틱이다. 영화에서 이희진이라는 캐릭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붉은 립스틱을 바르는데,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고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계수: 이번에 작업한 영화를 통해서 의상과 분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이전까지는 관객들은 눈빛만 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오해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었다. 공효진 씨의 의상에 대해 어떻게 할지 개념이 없었다. 내가 감히 어떻게 공효진 씨와 의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나. (웃음) 너무나 다행스러운 것은 공효진 씨가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에 옷을 입고 있는 자세 하나만으로도 캐릭터의 겹을 느끼게 했고, 그게 의상으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김혜리:
분명히 아사야스와 장만옥도 어떻게 입을 것인가를 고민 많이 했을 것이다. 에밀리의 옷은 과거 잘나가던 시절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로 하여금 추정하게 하는, 흔적을 보여주는 의상이다. 캐릭터의 고집과 껍데기가 남아있는 옷이라서 배우로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만옥을 보면 본인이 살았던 환경이 여러 문화를 거쳤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다른 아시아 영화의 스타들 보다 답답해 보인다. 영화 속에서 분명히 동양인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사야스의 <이마베프>나 <클린>에서 장만옥이 가지고 있는 아시아 여성의 모습이라는 것은 오리엔탈한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전계수 감독님이 음악에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삼거리 극장>이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지만 <러브픽션>에서도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클린>에서 음악을 쓰는 방식은 어떻게 보셨나?
전계수: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이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갑갑한 곳에 갇혀 있다가 결정점을 지나면서 밖으로 나오는 넓은 공간의 느낌이 사운드로 잘 전달됐다. 음악도 지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태도의 문제는 윤리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화면으로 담아내지 못했던 것을 음악으로 메우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음악이 나오는 지점과 나오지 않는 지점의 호흡 같은 것이 리드미컬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들의 자기표현에 대해 고민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캐릭터인데, 그런 느낌들이 카메라 호흡과 음악의 이상적인 쓰임을 통해서 잘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김혜리:
장만옥은 여성관객에게 사랑받는 여성배우다. <이마베프>에서도 장만옥의 캐릭터가 레즈비언의 구애를 받는 장면이 있다. 공효진 씨도 여성 팬이 많은 배우인데 여성관객들이 장만옥이나 공효진의 어떤 점에 끌린다고 생각하나?
공효진: 일단은 절대 미녀가 아니면 된다. 장만옥도 사실은 개성과의 미녀다. (웃음) 장만옥은 여리여리한 이미지 보다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자 못지않은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다. 여자들은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전계수: 내가 느끼기엔 공효진 씨처럼 여성스러운 여자를 못 봤다. 효진 씨의 장점은 그 여성성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쿨하게 느껴지는 거고 멋지다.


관객1: <러브픽션> 개봉을 앞두고 계신데 배우들의 연기를 연출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
전계수: 윤종빈 감독과도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감독은 캐스팅만 잘하면 된다. 그리고 환경을 만들어주고 배우가 자신의 매력과 요구받은 것들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된다. 이후에는 처음의 안목을 믿고 가면 된다. 그래서 하정우 씨와 공효진 씨를 캐스팅 했을 때, 내 영화에 대한 태도는 이미 결정이 됐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현장에서도 동선 이야기 정도는 나누지만, 주로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근본적인 것을 많이 이야기 한다.

관객2: 공효진 씨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오셨는데, 이번 캐릭터는 어떤 생각과 고민으로 하셨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연기하는지 궁금하다.
공효진: 내 연기방법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얼렁뚱땅 연기하기도 하고, 어떤 상황이 닥쳐서 연기할 때의 긴장감과 현장감으로 연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 긴장감으로 연기할 때 가장 힘이 있고 잘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카메라가 내게 가까이 들어올수록 집중도가 높고, 그런 긴장감과 불안함이 뭔가를 일으킨다. 그리고 <러브픽션>은 감독님께서 혼자 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좋은 소문이 자자한 시나리오를 만나고 읽으면서 완벽하단 생각이 들었다. 개봉할 때가 되니까 활자로 되어 있었던 대본보다 우리가 더 재미있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고, 아쉬운 점도 있기도 하다.

정리: 김고운(관객 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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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가 진행되는 극장을 둘러보면, 구석에서 노트북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누군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바로 2012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웹데일리 팀으로 활동한 서울아트시네마 소속 에디터들이다. 영화제를 딱 일주일 남기고 에디터들은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날의 대화는 그간의 아쉬움을 털어놓으면서도 결의를 다지는 훈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이제 친구들 영화제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인터뷰, 녹취, 리뷰 등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부터 말해보자.

장지혜:
인터뷰 핑계로 자원 활동가 분들과 얘기 나눈 게 좋았다. 얘기해보면 다들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과 애틋한 마음이 크더라. 녹취는 에디터 활동 전부터 조금씩 했던 것이라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던 반면에 리뷰를 제대로 쓴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부담이 많이 됐다. 또 리뷰를 쓸 땐 집에서 혼자 영화를 봤는데 영화제가 시작하고 난 뒤에 극장에서 보니까 느낌이 달랐다. 그때서야 ‘왜 글을 이렇게 썼을까’하면서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극장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보는 게 다른 걸 확실히 알 것 같다.
송은경: 나도 <스카페이스>를 쓰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 브라이언 드 팔마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스카페이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리뷰 쓸 때도 괴로웠다. (웃음) 그런데 극장에서 보고난 뒤에는 글을 이런 방향으로 썼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컸다.
이정아: <멀홀랜드 드라이브>랑 <로스트 하이웨이>는 필름으로 보니까 색감이 달라서 놀랐다.
손소담: <정복자 펠레>의 상영시간은 150분인데 내가 리뷰를 쓰기 위해 본 건 120분짜리였다. 결말이 다른 건 아니었지만 결말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의 행동 이유가 완전히 달랐다. 영화관에서 150분 버전을 보고나서 ‘내가 이걸 어떻게 다시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줄까’하는 생각을 했다.
김준완: <로제타>와 <샤이닝>도 극장에서 보는 것이 집에서 볼 때와는 느낌이 월등히 다른 영화들이었다. 사실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한, 혹은 이 영화에 대해 특정 목적이 있지 않는 한 그렇게 여러 번씩은 안 보게 되지 않나. 그래도 이 두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극장에서 여러 번 볼만한 가치가 있고, 그때서야 반응이 확실히 오는 거 같아서 극장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단 걸 느꼈다.
이정아: 그래도 이야기의 힘이 강한 영화의 경우에는 변함없는 부분이 있다. <부기나이트>도 물론 영화적인 충격이 크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힘이 워낙 강해서 모니터로 봐도 그게 여실히 다가오는 편이다. 그리고 확실히 혼자서 끄적거리는 글이랑 웹진에 올리는 목적으로 쓰는 글은 다르더라. 녹취는 이전에 녹취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봐서 좀 빠른 편이다. 그런데 녹취를 정리하면 게스트와 진행자가 한마디씩 하는 걸로 올라가지만 실제 대화에서는 서로 끼어들기 때문에 그걸 정리하는 게 쉽지 않더라.

시네마테크 에디터 활동을 통하여 좋았던 점이나 아쉬움, 혹은 변화될 지점 등에 대한 생각은?

송은경: 나는 관객인터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원래는 모르는 분이었지만 인터뷰 이후 마주치면 눈인사도 하게 되고, 이번 에디터 업무를 하면서 극장 사람들과 좀 더 친해진 것 같아 좋았다. 리뷰 쓰는 건 굉장히 힘들었다. 원래 글 쓰는 걸 굉장히 힘들어하고 나의 글을 보여주는 건 너무 부끄러워해서 피하고 싶었다.
손소담: 그래도 나는 내 글이 실리니까 기분이 좋았다. (웃음) 트위터로 내 글이 링크됐을 때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시네마테크에 자주 오시는 분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눴는데 그 분은 서울아트시네마 웹진 블로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시더라.
장지혜: 아트시네마를 오래 다닌 관객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정아: 나도 블로그가 있다는 걸 늦게 알았다.
송은경: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웹진에 올라가는 글을 많이 읽는 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약간 안심하고 있다. (웃음) 그래도 잘 써야한다는 바람이 있고, 그러면 또 부담감을 갖게 되고, 계속 악순환이 되더라. 에디터들끼리라도 글에 대한 피드백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김준완: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현실적으로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지만 필요한 것 같다.
이정아: 이를테면 내가 <스카페이스>를 안 봤더라도 독자로서 물어볼 수 있는 질문들이 있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편하게 공유하고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송은경: 그런 것들이 영화제 데일리의 한계인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영화제들에서도 보면 매일매일 리뷰가 계속 쏟아지는데 독자와 글 쓰는 사람 간의 의사소통이 안 되고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친구들 영화제도 ‘영화제’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여긴 시네마테크의 영화제니까 뭔가가 좀 달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정아: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외에 다른 독자들의 생각을 알 수 없는데 영화를 안 봤더라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아무리 주관적인 선택이라 하더라도 좋은 영화라는 공공연한 합의에 따라 튼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이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인정을 받았고, 이미 얘기는 다 나와 있는 상태에서 무슨 얘기가 더 나올 수 있을지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 영화의 이것이 좋아서 쓰는데 나만 새로운 듯이 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게 어렵고 망설이게 되는 지점이다. 그래도 중요한 얘기는 꼭 써야 하는데. (웃음)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어땠나?

이정아:
큐브릭의 두 영화가 상영되고 린치의 두 영화가 상영됐는데, 이렇게 감독이 겹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는 <샤이닝>, <롤리타>, <시계태엽 오렌지> 등을 봤는데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큐브릭의 이미지와 달라서 조금 놀랐다.
송은경: 영화제가 아직 안 끝났지만 지금까지 본 영화중에서 얘기하자면 나는 <붉은 수염>이 가장 큰 수확이었던 것 같았다. 시네마스코프에 완전히 압도된 느낌이었다. 보리스 바르넷의 영화도 굉장히 큰 기대를 하고 봤는데 기대만큼이나 좋았다.
손소담: 옛날 80년대 영화들은 동시대에 극장에서 못 봐서 항상 아쉬웠다. 그런데 이번 영화제에서 <아비정전>을 보니까 너무 좋더라. <멀홀랜드 드라이브>도 개봉 당시엔 미성년자여서 못 봤는데, 옛날에 못 봤던 영화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는 느낌으로 재밌게 봤다.
이정아: 이해영 감독은 자신이 영화학교 출신이 아니어서 영화학도라면 으레 보는 고전들을 교과서 대하듯 접했던 게 아쉬웠다고 얘기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공부하는 마음으로 고전을 접하다보니 제대로 와 닿지 못하는 편이었다. 감독님 그런 얘기에 공감이 갔다.
김준완: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제 특성상 정말 아무도 모르고 지극히 숨겨진, 더 안 알려지고 비대중적이면서 이런 것도 있다는 식으로 선택이 이루어지면 관객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좋은 영화고 유명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영화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영화보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의미가 있는 영화를 보고 나서 진짜 ‘친구’가 되는 거다.
이정아: 나는 옛날 영화, 클래식을 늦게 보기 시작했다는 자격지심도 약간 있다. 하지만 당장 <부기 나이트>만 해도 많이들 사랑하는 대중영화였다. 지금 상영하는 영화도 나중에 클래식으로 거론될 수 있는 영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의견인데 다른 분들도 시네마테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오셨으면 좋겠다.
김준완: 우리 에디터만 해도, 영화를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고, 영화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경향이 시네마테크의 취지에 부합하는 건지 궁금하다. 이렇게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이유는 제대로 느껴 보겠다는 유희의 목적도 있지 않나. 그런 게 시네마테크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글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 당시 개봉했던 시기의 평범한 관객의 입장에서 옛날 영화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힘을 빼고 편하게. (웃음) 시네마테크에 가는 걸 의식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편하게 보는 게 이상적일 것 같다.

영화의 매혹, 혹은 시네필?!

손소담: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시네필리아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도 영화는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심야영화, 토요명화로만 보고 그랬다. 소도시에서 자라서 기회가 없는 편이기도 했고, 영화랑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스무 살 이후부터 영화를 혼자 많이 봤던 편이다. 그런데 그런 나더러 누가 시네필이라고 하는 거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나는 아름다운 이미지에 매혹을 느낀 적이 많았다. 그 이미지를 소유하려는 욕구가 크다.
송은경: 나는 아직 시네필리아가 아닌 것 같다. (웃음) 사실 영화를 볼 때 서사 따라가기에 급급한 편이다. 영화를 무관심하게 보다가 감각적인 이미지를 뽑아내는 훈련이 덜 됐다. 그래서 반복관람이 필수다. 두 번째 보면 좀 풀어져서 보게 되니까.
이정아: <로스트 하이웨이>나 <멀홀랜드 드라이브> 같은 경우는 스토리를 따라가려고 하면 견디기 힘든 영화들이다. 나 역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아닌 영화들은 여러 번 보게 되는 것 같다.
장지혜: 영화를 보다보면 누구에게나 특정 순간에 도드라지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걸 계속 붙잡고 얘기를 풀어가기에는 자신이 없다. 이 영화에서 그 장면이 중요한 건지, 너무 쓸데없는 데 매달리는 건지 나도 헷갈릴 때가 많다. 자신감 부족인 것 같은데 그걸 계속 붙들고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은 거 같다.
김준완: 그것에 대해서는 사람 수만큼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적인 기준은 있을 수가 없다. 개인적인 자신의 느낌이 확장되고 그걸 표현 하는 게 낫지 않나. 절대다수의 공감을 얻으려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손소담: 그래도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가르는 기준은 있지 않나.
이정아: 감상이 개인적이기는 해도, 글은 객관적으로 써야 하는 것 같다. 아무리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더라도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은 있는 거 아닌가.

이제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씩 얘기하고 자리를 정리해보자.

장지혜:
마지막 날 상영하는 <사랑의 행로>를 다들 꼭 봤으면 좋겠다. 영화제를 마무리하기에 정말 좋은 영화다. 다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
김준완: 꼭 보도록 하겠다. (웃음)
손소담: 다들 수고했다.
송은경: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자.
이정아: 극장에서 자주 보면 좋겠고, 아까 얘기했듯이 서로 의견을 많이 공유했으면 좋겠다.

참석 에디터: 김준완, 손소담, 송은경, 이정아, 장지혜
진행/정리: 송은경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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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oimyeon 2012.02.26 0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글 고대해왔어요.. 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