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클럽] 윤성호 감독의 말, 말, 말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일환으로 마련된 시네클럽 행사가 끝을 맞이했다. 그 마지막 주자는 개성 있는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윤성호 감독.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농들을 통해서 직접 현장에서 겪었던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팁들을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그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윤성호(영화감독):
늦게 입문한 탓인지 막연하게 예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컸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리감, 고산식물처럼 보는 것? 어쨌든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콩트 같은 것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10만원 비디오 페스티벌이라는 행사를 통해 아트선재센터에서 틀게 되었다. 그때 고맙게도 10만원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문화예술계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살짝 처음 인사를 나누었는데 영화를 틀면서 두근거렸을 때 이상으로, 와 출세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지나칠 정도의 경외감에서, 오히려 내가 지금 여기서 독특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가끔 신기하다. 나는 문맹에서 국어도 배우고, 문학도 배우고, 사회문화도 배우면서 시를 쓰게 되었다기보다는 문맹에서 갑자기, 문법도 모르고 시를 쓰게 된 경우인 것 같다. 그래서 의도치 않았던 소소한 문법적 일탈들이 개성으로 인정받는 사이드 이펙트가 있었던 것 같고, 이제 조금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다. 어쨌든 지금 생각난 거지만 팁 일번.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두 가지를 말하는 것.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라고 말을 시작하면 좋다. 왜냐하면 일단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대개 모든 문제는 진짜 두 가지다. (웃음) 이번. 이건 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배우들에게 은유를 쓰지 말 것, 현장에서 동사를 사용할 것. 나는 영화에 입문한 것도 늦었지만 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과 작업하는 건 더 늦었다. 전편을 연기자들과 작업한 것은 2007년에 <은하해방전선> 작업할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다른 장치들을 제거하고 배우의 연기만으로 가는 방식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많이 써먹었던 게 비유였다. 배우가 약간 헤매고 있으면 ‘자, 형, 생각해봅시다. 초등학교 때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안 계셔서 당황하는 느낌 어떨까요?’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최악의 연출법이었다. 각본상에서 애초에 상황을 제시하고, 연출할 때 그 상황에 맞는 행위를 주는 게 가장 좋다. 누군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집에서 나가야하는 상황에서 허둥대는 연기를 끌어내려면 비유로 군살을 늘리는 게 아니라 열쇠를 감추는 게 맞다.

관객1: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책상에 앉아 한 번에 작업을 시작하시는 편인지, 아니면 다른 메모라든가 하는 것들을 통해서 시나리오를 쓰시는 건지 궁금하다.
윤성호: 사실 나는 참 애매한 경우인데, 처음 만든 단편 외에는 자발적으로 구상해서 만든 작품이 거의 없다. 그래도 대답을 드리자면, 평소에 메모는 굉장히 많이 해두는 편이다. 그냥 생활 속에서 기승전결이 아주 짧게 해결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게 영화적으로 현신될 수 있을 것 같을 때는 얼른 메모를 해두는 거다. 그런데 그게 지금 내가 주로 하고 있는 단편, 콩트 작업에는 유리하지만 장편의 미션이나 내 안의 욕구가 있었을 때 거기에 맞추기란 굉장히 힘들다. 장편이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것이고 단편이 가회동에서 안국역까지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라고 치면, 단편은 큰 지도가 없이도 완만한 산보를 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때는 어떤 플랜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메모들로 접근하기는 힘든 면이 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본인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윤성호: 사실 예산 내역서에 들어간 돈이 없는 거고 밥이나 술은 많이 산 것 같다. (웃음)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어디서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데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딱 하나 제가 처음 기획한 게 작년에 만들었던 인디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였다. 그때도 돈 없이 찍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그런 걸 못 견딘다. 일단 잘 먹어야 된다. 나는 김밥 먹으면서 못 찍는다. (웃음) 다른 감독님들보다 내가 윤리적이거나 해서가 아니라, 안온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웃음) 어쨌든 그게 내가 처음으로 먼저 돈을 달라고 한 경우였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렇게 작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식의 순환이 아직까지는 흥미로운데, 배우나 스태프들한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남는 건 연출자인데, 사실 내가 도움을 엄청 많이 받은 같이 작업한 스태프들이 성장하거나 다른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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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8일 저녁, 인사동의 한 카페에 서울아트시네마 에디터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벌써 막바지에 접어든 친구들 영화제 기간 동안 숨 돌릴 틈 없이 쏟아지던 업무들을 잠시 잊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그간의 고충과 사소한 이야기들을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영석: 다들 에디터 활동을 처음 시작했으니 프리뷰, 리뷰 작성, 인터뷰나 녹취 다 처음 해 본 셈이다.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나는 늘 하던 일이라 별다른 감흥이 없는데. (웃음)

박예하: 나도 녹취는 에디터 활동 전부터 도와드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글 쓰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이 굉장히 크다. 그래서 글을 한 편씩 쓸 때마다 사실은 굉장히 고생을 한다. 처음 에디터 시작할 때 우리가 지금 쓰는 글이 갖추어야 할 구조를 배웠는데, 계속 거기에 맞춰서 써나가는 연습을 하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런 형식에 맞추려다보니 지금 쓰는 글들이 내 글이라는 느낌은 아직 잘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차차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최용혁: 녹취야 여러 번 하다 보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은데, 글 쓸 때는 나아지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요즘은 어떻게 영화를 한 번 보고 리뷰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불가피하게 그래야만 할 때가 있으니까 걱정도 되고. 또, 예를 들어 비스콘티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써야 할 때는 비스콘티 전작을 다 봐야 하는 건가, 하는 강박도 있는 것 같다.

박영석: 맞다. 그런 작가들이 있다.

최용혁: 근데 보기 싫고. (웃음)

박예하: 게다가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최용혁: 맞다. 한 편도 여러 번씩 봐야 하는데. 그리고 또 있다. 물론 남들이 우리의 글을 무척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웹블로그에라도 공개가 된다는 건 어느 정도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물론 경쟁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 글을 써오시던 분들의 글과는 너무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준을 맞추려다보니 인용이나 레퍼런스를 무리하게 끌어오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지만 어쨌든 잘되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고, 지금 아니면 영화에 대해 뭔가 내놓을만한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영화를 많이 본 편이 아니고, 그래서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하고 있다.

 

정태형: 사실 에디터 활동 자체를 급작스럽게 시작했다. 에디터를 선발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아는 분의 소개로 지원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글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웹 공간에도 글을 절대 올리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내가 글을 잘 쓰고 있는 건가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 서울아트시네마의 특수성 때문에 에디터 활동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과에 재학 중이라 학교에서 리뷰를 항상 쓰긴 하지만, 거기에서 쓰는 건 일종의 분석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 장면은 이렇게 보였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라는 식의 나열적인 글을 써왔다면, 지금 쓰는 리뷰는 총체적으로 좀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래서 앞서 써왔던 식의 글들을 다시 정리해야하니까 힘든 점이 많았다. 그리고 녹취나 기타 업무들 역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도 했다. 그래도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활동이다.

 





백희원: 다들 힘드셨다는데 나도 힘들었다. (웃음) 나 역시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마음으로 글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다. 개인적으로 원래 좋아하는 글쓰기 방식은 내가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감각들을 나열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쓰는 글들은 예하 씨 말씀대로 형식이 있고, 자기만족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을 위해 쓴다고 생각하니까 어쭙잖게 정보를 많이 끌어와서 덧붙이면서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봐온 사람인 것처럼 쓰게 되었다. (웃음) 그런데 그게 싫은 건 아니고, 결과적으로는 글의 완결성을 갖추고 틀 안에서 써내려가는 작업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었다. 일종의 미션을 클리어하는 느낌? (웃음) 그리고 다들 옛날 영화들이고, 훌륭한 영화들이고 이야기가 많이 되었던 작품들이니 오히려 부담을 버린 면도 있었다. 어차피 훌륭한 이야기는 나올 만큼 다 나왔으니 내가 본 걸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뭘 봤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물론 괴롭기도 하다. 나는 영화의 난해함과는 별개로 <미치광이 피에로>가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프리뷰를 써놓고 보니까 글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웃음) 이 영화는 진짜 재미있는 영화인데 왜 그런 부분을 전할 수가 없을까. 그때 영화에서 메시지나 관념적 틀을 보는 것 보다 거기서 얻은 감흥을 글로 쓰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느꼈다. 앞으로 글을 계속 쓰면서 그런 감각을 전할 수 있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예하: 글을 쭉 써놨는데, 내가 진짜로 이 영화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글에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 정말 당황스럽다. (일동 공감)

백희원: 진짜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장면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분석만 하게 되는 것 같으니 이게 아니었는데 싶은 생각이 든다.

박영석: 프리뷰나 리뷰가 아니라 비평에 가까운 글을 쓰면 그런 부분을 좀 더 많이 이야기 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지금 써야하는 글의 특성인 것 같다. 힘든 것도 재미라고 생각해야지. (웃음)

 



배준영: 나는 사실 글 쓰는 거나 녹취 푸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나름대로 나의 방식으로 형식에 맞춰 의견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피드백이 없으니 내 글이 어떤지 알 수가 없다.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친구들 영화제는 너무 바쁜 기간이니, 다음부터 에디터들끼리라도 서로 피드백을 줬으면 좋겠다. 다른 부분은 딱히 어렵지 않다.

박영석: 사실 우리가 이렇게 글을 써서 1년에 댓글 한두 개라도 받으면 다행인 편이다. 그나마 서울아트시네마 네이버 카페 같은 경우는 댓글이 좀 달리는 편인데 웹블로그는 거의 없다.

최용혁: 공부하는 차원에서 쓴다고 생각하면 괜찮긴 하지만, 아무도 이 글을 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박영석: 옛날 영화를 쓸 때 힘든 면이기도 하고 좋은 면이기도 한데, 사실 사람들이 정말 별로 안 읽는다. 그런데 그러니까 오히려 더 편하게 쓸 수도 있다. 방금 개봉한 영화에 대한 첫 번째 글을 쓴다고 생각해봐라. 엄청난 부담이다. 그럴 때보다 오히려 편하게 쓸 수 있는데, 또 그만큼 실제로 읽는 사람이 적다는 건 어느 정도 인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최용혁: 가끔 그런 자부심은 생긴다. 이를테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고전 영화들에 대한 리뷰가 많이 나왔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쓰는 글이 이 영화에 대한 첫 번째 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박영석: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글 쓸 때 그런 부분 역시 고려하면 좋다. 외국에서는 엄청난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영된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말로 쓰인 글이 없을 경우에는 정보도 많이 넣고, 소개한다는 느낌으로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 아무튼 우리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읽는 사람들은 열심히 읽어준다.

 

박영석: 말이 나온 김에 앞으로 영화 글을 계속 쓰고 싶은지, 아니면 영화 관련 활동을 하고 싶은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용혁: 기본적으로는 연출을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다보면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것이 영화적인지 하는 부분들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 같다. 일단 에디터 활동하는 동안 여기서 열심히 글을 쓰고, 내년부터는 혼자 시나리오를 쓸 것 같다.

배준영: 나는 연출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고, 찍고 싶은 게 없었다. 그런데 요즘 찍고 싶은 게 막 생긴다. 그래서 굉장히 여러 가지를 생각 중이고 예전에 써두었던 시나리오들을 다시 꺼내서 고치고 있다. 지금은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고, 앞으로는 해외 영화제들에서도 일해보고 싶다. 그래도 언젠간 한국에 돌아올 거고, 한국 영화계가 부흥이 되고 외국에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어쨌든 요즘은 연출을 젊을 때 해보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예하: 나는 사실 뭘 할지 모르겠다.

박영석: 아직 애라서 그렇다. (웃음)

박예하: 맞다. 난 아직 애니까. (웃음) 사실 진짜 꿈은 관객이다. 그게 제일 좋은 것 같고, 누구나 그럴 것 같다. 그런데 그건 직업이 될 수 없지 않나. 그렇다면 최대한 관객과 가까운 위치에서 영화의 주변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라고 계속 고민하고 있다. 일단은 영화에 대해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고, 그래서 불어 전공도 택했다. 나도 영화제에서도 일했었고, 현장도 나가고,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지금은 그냥 서성거리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박영석: 내가 처음에 영화 공부를 시작한 이유도 단순히 영화가 좋아서였다. 별다른 야망은 없었다. 처음부터 연출 욕심은 없었고, 스스로 뭔가 창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냥 영화 보는 게 너무 좋았고 관객만으로 남고 싶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가 있지 않나. 남들보다 조금 더 이해하고 싶고, 허세 부려보고 싶을 때도 있고. (웃음)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했고 이제는 결과물을 낼 때다. 어쨌든 앞으로도 계속 영화 글을 써가면서, 저널 일도 하고 싶다. 직업적인 꿈이라면 예전부터 지금까지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하고 싶다. 내가 정한 영화를 사람들이 볼 때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영화 추천해주는 걸 좋아한다. 글은 계속 쓸 거고, 공부도 계속 할 거다. 끝이 없는 것 같다. (웃음)

 

백희원: 나는 25살에 대학교 4학년 1학기다. 그러다보니 가는 데마다 취직은 어디로 할 거냐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사실 나도 그냥 관객이고 싶다. 다만 관객이기 위해서 일정정도의 물적 조건이 필요하니까, 지금 목표는 관객으로 살 수 있도록 어떤 일이든 직장을 갖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저널 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굉장히 애매하다. 내가 기업 타입이 아니다보니 주변에서 당연히 너는 저널 일을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틈새가 보이면 다른 곳을 찾을 것 같다.

 

정태형: 아버지께서 극장을 워낙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많이 다니긴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영화를 하고 싶어 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가 16살 때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다.

박영석/박예하: 친구를 잘못 만났나. (일동 폭소)

정태형: 그런 셈이다. (웃음) 그 전에는 영화 보는 게 단순한 취미였는데 그 친구를 만나고 나니 영화에 대한 일, 그러니까 감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 독서실 간다고 하고 언제나 극장에 갔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3년 내내 영화만 봤다. 대학도 운 좋게 갔는데, 그래도 영화과를 갔을 땐 자신한테 굉장히 대견스러웠다. 요즘 갈수록 드는 생각은 영화 찍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거다. 사실 습작 단편들을 논외로 치면 바로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다. 일단 돈을 충분히 많이 모아놓을 생각이다. 어떤 일을 해서든지 재정을 확보해두고 나중에 안정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어떻게든 영화 일을 하고 싶지만 힘들고 어렵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내가 스스로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건, 어떤 것도 이렇게 오랫동안 해오지 못했으니까.

박영석: 나도 스물다섯부터 영화만 봤다. (웃음)

백희원: 나는 그런 게 정말 신기하다. 나는 몰입을 못한다.

박예하: 사실 나도 그런 편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만이 그 몰입을 지탱해주었던 것 같다.

정태형: 맞다. 바로 그거다. 그냥 영화만 보면 다른 건 상관없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박영석: 어쨌든 우리 많이 이야기 한 것 같다. (일동 폭소와 박수) 앞으로 잘해봤으면 좋겠다. 오늘 들어보니 다들 피드백을 많이 원하는 것 같다. 서로 원하는 게 뭔지 알았으니 앞으로는 좀 더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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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객 2011.02.27 2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흔적은 안 남겼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

  2. 관객2 2011.03.01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요^^매번 읽으면서 봤던 영화들은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안 봤던 영화들은 아~내용을 알고 봐야 더 재밌구나 느껴요~

  3. 관객3 2011.03.01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나름 이곳 글을 열심히 읽고 있어요.
    영화를 보기 전이든 본 후든 나름 저 개인의 감상을 정리하거나 좀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니까요.
    '이거 아무도 안 읽는데 우리만 애쓰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은 안해도 될 듯해요.

  4. 배준영 2011.03.01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 뭐죠 이 훈훈한 댓글들은... ㅎㅎ 감사합니당

  5. 정태형 2011.03.02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훈훈하네요.. 아름다운 아트시네마^^

[시네토크] 김영진 평론가가 추천한 로버트 와이즈의 '산 파블로'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시네토크는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함께했다. 그는 자신의 유년기 추억이 새겨진 영화 <산 파블로>를 이번 영화제에 추천했다. 필름 수급이 확실치 않아 불안했다는 말을 하며 시작한 시네토크는 영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로 차려진 소담스러운 식탁과도 같았다. 그 현장을 전한다.


김영진(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에서 내가 누리는 호사는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재미있는 영화를 스크린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제 선택으로 <산 파블로>를 골랐는데 재미있게 봤다. 필름수급이 될지 확실치 않아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시네토크도 마지막으로 잡은 거다. 그런데 예상보다 어려움 없이 필름수급이 되어서 상영을 하게 되었다. 오늘 보신 것은 개봉 당시의 버전이다.

로버트 와이즈감독은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이걸 대표작으로 생각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서운했다고 한다. 얼마나 이 영화를 좋아했는지 감독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크리스마스마다 <산 파블로> 출연진과 스탭들을 모두 초대해서 파티를 했다고 한다. 스티브 맥퀸도 이 작품에 애정이 많았는데 알아주지 않아서 낙심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스티브 맥퀸이 출연한 영화 중에 유일하게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다. 그래서 내심 기대를 했었지만 노미네이트 된 것에 만족을 해야 했다. 그런 것들에 상심해서 1년간 영화를 찍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영화는 1년 반 정도 촬영된 영화다. 그리고 미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대만과 홍콩 로케이션을 했다. 이 영화에는 군중 씬이 많다. 사람 통제도 안되고 기후나 여러 가지 때문에 어려웠다고 한다. 원작소설은 베트남 전에 대한 메타포를 집어넣은 이야기고 로버트 와이즈도 확실하게 이러한 자의식을 가지고 만들었다. 소설이 나왔을 땐 그런 말이 없었는데 영화가 나오니 확실하게 베트남 전에 대한 은유가 강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대사가 너무 유명했다. 집에 다 왔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 대사가 히트를 쳤다. 아무튼 미국의 제3세계에 대한 개입으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에 대해 로버트 와이즈가 힘을 주어 말했는데 평가를 잘 받진 못했다.

어렸을 때 스티브 맥퀸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셜리역의 캔디스 버겐을 좋아했다. 그야 말로 환상의 캐스팅이다. 스티브 맥퀸을 보면 연기가 미니멀 하다. 간결하고 액션이 없고 굉장히 특이한 독자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 캐스팅 할 때 5명의 후보가 있었는데, 후보 중 제일 아래가 맥퀸이었다. 그러나 로버트 와이즈는 맥퀸을 뽑고 싶었다고 한다. 1순위가 폴 뉴먼이었다. 근데 하나씩 빠져나가면서 결국엔 맥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폭스에서 반대를 했다고 한다. 대작인데 스티브 맥퀸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맥퀸이 출연한 <대 탈주>와 <황야의 7인>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맥퀸은 이 영화에 애착을 가진 이유가 영화의 주인공 제이크 홀맨이 자신과 너무 닮아서, 라고 한다.

오늘 보신 영화는 길다. 요즘 이렇게 시나리오 쓰면 아무도 투자 안 할 거다. 정석대로라면 역사적 사건 안에서 휘말리는 제이크와 셜리의 사랑으로 압축돼야 한다. 그런데 가지가 많다. 프렌치와 메일리의 이야기, 제이크와 포한의 이야기, 산 파블로 내에서 장교와 병사들의 이야기도 있고, 또 미국인과 쿨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자르라고 했는데 그대로 갔다. 가만히 보시면 홀맨이 가장 사랑하는 게 셜리가 아니고 기계, 엔진이다. 그리고 영화가 공들여서 묘사하는 게 엔진이 나오는 장면이다.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보듯이 엔진을 본다. 그 점에서 로버트 와이즈와 맥퀸의 해석이 일치한 거다. 보통 극영화에선 그런 걸 길게 찍지 않았을 거다. 홀맨은 맥퀸과 유사하다. 굉장히 단독자 적인 성격이 있고 어느 조직에 가도 그 조직에 속하지 않는 유형이다. 캔디스 버겐의 말에 따르면 우리에 갇힌 맹수와 같은 사람이 스티브 맥퀸이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 하는 거에 대해서 역겹다는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인데 그런 게 너무 잘 맞았다. 그래서 감독이 맥퀸을 좋아했다. 영화에서의 연기가 심플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준비를 했다고 한다.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하는 말이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에 맥퀸이 정오쯤에 와서 자기 의상에 마름질이 안 돼서 계속 입었던 느낌이 안 난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건 의상담당에게 말하라고 했는데 2시에 다시 와서 말하자, 감독이 화를 냈다고 한다. 화를 내자 맥퀸이 삐져서 감독하고 말을 안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싶다가 제작자의 중재로 미군기지 극장에서 일주일 동안 찍은 러시필름을 보러 같이 갔고, 그래서 감정을 풀었다고 한다.

로버트 와이즈에 대해 말씀 드리면 대개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많이 기억된다. 이분은 굉장한 작가적 야심이 있었다. 그래서 세속적 명예와는 별개로 자신의 커리어에 불만이 많았다. 원래 공부하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서 할리우드에 가서 편집실 심부름을 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퍼스트가 아파서 와이즈를 시켰는데 잘해서 조수에서 금방 편집기사가 된다. 그래서 편집한 게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이란 작품이다. 그 이후에 <위대한 앰버슨 가> 등을 편집하는데 잘 아시는 대로 스튜디오와의 갈등 때문에 고충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감독이 된 계기가, 영화의 편집을 맡았는데 그 영화의 감독이 해고당해서 와이즈가 하게 되었다. 자기 의지대로 감독이 된 사람이 아니라 일 잘해서 감독이 된 케이스다. 데이비드 린과 비슷하게 편집기사에서 감독으로 성공한 사람인데 이 감독의 취향은 어떤 건지 모르겠다. 자기 작가적인 세계가 있었던 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주문한 영화만 찍은 감독이라서 그렇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엄청난 주류 감독이 되었고 <사운드 오브 뮤직>은 윌리엄 와일러가 찍다가 해고당한 상태에서, 뮤지컬장면만 남겨놓고 중간에 추가로 찍어서 대박이 났다. 그 이후 자신이 욕심을 내어 찍고 싶은 영화를 찍었는데 그게 <산 파블로>다. 그에게는 이 영화가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같은 영화다. 엄청나게 진지하고 감동이 있는 영화. 자기가 정말 찍고 싶은 영화를 찍은 거다. 그러나 아쉽게도 반응이 열광적이지 않아서 크게 실망했다. 감독은 자기 스스로 이 영화를 대표작으로 쳤다. 역사적으로 이 영화를 크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60년대 이후, 뉴 아메리칸 시네마 시대에 웨스턴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영화들이 베트남 전에 대한 메타포를 가진 영화가 많았는데, 그 중에 가장 선구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면에서 과소평가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닥터 지바고>처럼 방향을 잡아서 거대한 격변에 휘말린 남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파워 넘치는 클래식이 되었을 텐데, 너무 많은 걸 보여줘서 대중성이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가치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식으로 많은 레이어가 있는 영화를 찍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관객들도 잘 따라오는 시대가 있었다.


관객1: '산 파블로'가 '샌드 페블스' 인데 혹시 특별한 뜻이 있는지 궁금하다. 영화가 당시 베트남 전에 대한 은유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보는 내내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이 불편했다. 감독이 베트남전과 미국에 대해서 느끼는 시각이나 입장이 뭐였을지 애매해 보인다.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영진: '산 파블로'는 스페인전쟁부터 있던 배라서 그런 것 같다. 두 번째 말씀하신 것은 제3세계의 우리가 당면하는 문제다. 최근에 나온 <007 어너더 데이>를 보면 느낄 수 있다. 북한 애들이 저렇지 않은데 왜 저렇게 그려지고 있나? 그런 것처럼 이 영화에도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많이 왜곡 되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물론 기분은 나쁘다. 시각이 정형화 되어있다. 초첸 같은 캐릭터들을 보면 인간처럼 묘사 되지 않는다. 그게 미국이 보는 한계다. 어쩔 수 없는 부분 인 것 같다.

관객2: 어려서 맥퀸을 좋아해서 맥퀸 영화를 많이 봤다. 이 영화 이후에 73년 <빠삐용>을 찍고 80년대 <헌터>에 출연하고 죽었다. <빠삐용>과 <헌터> 사이에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그 기간에 영화 출연 했는지 궁금하다.
김영진: 이분은 영화를 찍는 걸 그렇게 즐거워하진 않았던 것 같다. 카 레이싱을 더 좋아하여 이에 열중했다. 몸매도 <타워링> 이후로 통통하게 바뀌어서 대중에게 노출이 되지 않았다. 영화복귀에 대해서 많은 제의가 있었는데 검토만 하면서 미루다가, 병에 걸린 상태에서 <헌터>를 찍은 거다. 맥퀸은 나 아닌 자기로 산다는 것에 혐오감이 있었다고 한다. 배우라는 직업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던 거다. <산 파블로>에서 홀맨이 자신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에 발가벗겨진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힘들었다고 한다.

(정리 : 정태형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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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이해영 감독에게 듣는 '타인의 취향과 대중영화의 상상력'

다섯 번째 시네클럽의 주인공은 최근 영화 <페스티발>으로 관객과 만났던 이해영 감독이다. 영화적 취향이라는 것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이해영 감독은 취향이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말한다. 참석한 관객들은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냈고, 감독은 즐겁게 답했던 즐거운 시간을 전한다.


이해영(영화감독): 내가 생각하는 영화라는 것에 대해 말씀 드리겠다. 나는 기껏해야 성장기에 할리우드 영화를 비디오로 보거나 극장에서 가끔 봤던 것 외에는 영화를 심도 있게 본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몰라서 터무니없이 시작한 것 같다. 영화전공자도 아니었다. 영화란 게 있는데 내가 하면 잘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90년대, 한국영화의 상업성이 새로이 규정되기 시작한 시기에 기획영화를 접하면서 영화가 상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가 ‘작가적인 어떤 매체다’ 라고 생각 했다면 접근을 못 했을 텐데, 당시엔 어려서 쉽게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기획영화들이 한국영화 21세기를 여는 초석이지만, 당시에 내가 볼 땐 수입해온 부실한 레시피 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저런 레시피를 흉내 내거나 관습을 따르면서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것을 키워드로 치면 취향 같다.

나의 취향은 주류나 컨벤션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얻게 된 것이다. 처음에 영화 하겠다고 생각한 게 군대에 있을 때인데 막연하게 시나리오를 썼다. 개인적 취향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습작으로 몇 개 썼는데 그 글들은 시나리오 작법을 전혀 모르고 쓴 거라 돌이켜보면 시나리오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그러다가 영화사 봄의 오정완 이사님이 습작시나리오를 보게 되셨는데 굉장히 놀라셨던 것 같다. 어디선가 본 것 같으면서도 본 적 없는 대사나 캐릭터들에서 이사님이 뭔가 가능성을 읽으셨던 거 같다. 그때 쓴 시나리오들은 완성도 있게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이사님이 선택하셨던 것은 작가의 취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같이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들었던 이해준 감독과 공동작업을 했다. 새롭고 희한한 작가들이 나타났다라고 회자가 되면서 본질보다 과장되게 팔려나갔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보다 빠른 속도로 갈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 생각에 취향 밖에 없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취향이라는 게 막연하고 지엽적으로 보이는데 내가 생각할 때 취향 이라는 게 이런 것 같다. 이는 좋은 생각이라는 개념인 것 같은데, 좋은 생각이라면 남들이 해왔거나 큰 생각 없이 답습했던 관습을 답습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 모든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관객1:
한계에 대해 묻고 싶다. 취향이라든지 소수자의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 할 수 있나?

이해영: 그 한계점을 <천하장사 마돈나> 때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사람들이 오해하면 어떡하지? <페스티발>도 비슷하다. 내가 용감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약간 착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천하장사 마돈나>와 <페스티발>의 차이점은, <천하장사 마돈나>가 ‘이런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라는 느낌이라면 <페스티발>은 그것보다 친절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냥 제시하는 차원이랄까.

관객2: 컨벤션을 비틀고 구성하려면 어떻게 훈련하는지?
이해영: 드라마에서 참고 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가 막힐 때 옛날 할리우드 장르영화를 많이 본다. 그게 도움이 된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장르의 초석이라 불리는 영화들을 보게 되면 복잡한 것 없이 소박하게 이야기를 가져가는데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것이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결국에는 자기 언어라는 게 필요한데, 그건 어디서 누가 주는 게 아니니까 감으로 갈 수밖에 없고 영화를 많이 보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참고로 나는 호러 영화에 대한 컨벤션은 잘 모르겠다. 미지의 장르다.


(정리 : 정태형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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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배우 전무송·안성기·송길한 작가와 함께한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지난 20일 일요일 늦은 오후 마지막회로 상영된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상영 후 열린 시네토크의 현장에는 특별한 친구들이 가득했다. 당초 계획과 달리 몸이 편찮으신 관계로 참석이 어려우셨던 감독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영화의 두 주연배우 전무송, 안성기 씨와 시나리오작가 송길한 씨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그리고 객석에는 영화 <만다라>의 감수를 맡아주셨던 평상스님까지. 평소 임권택 감독과 친분이 두터운 패밀리들이 모였다. 그들은 30년 전 영화임에도 새록새록 그 때 그 시절을 회고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진행으로 넘치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던 그 현장을 전한다.


정성일(영화평론가/영화감독):
영화를 30여년 만에 극장 객석에서 본 소감이 어떠한가?
전무송(영화배우): 영화가 개봉했을 때 단성사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이 났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안성기, 송길한 작가, 평상스님과 함께 이 영화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촬영당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송길한(시나리오 작가):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감흥이 남다르다. 다시 한 번 영화에 조목조목 감수를 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평상스님께 감사드린다. 유난히도 가족같이 끈끈했던 스텝과 배우들의 마음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 들어있는 정신들을 오늘 함께하신 관객들이 알아주셨길 바란다.
안성기(영화배우): 성인이 되고 배우 활동 초창기 시절 출연한 영화다. 당시엔 나이 좀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애’다. 당시 정일성 촬영감독님과 임권택 감독께서 ‘정노인’, ‘임노인’ 하시며 장난치셔서 정말 나이가 많으신 노인인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지금 현재 내 나이보다 어리셨다. 참 세월이 느껴진다. 또 촬영하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생각난다.

정성일: 마이크를 객석에 넘겨 영화의 고문을 봐주신 평상스님의 소감도 듣고 싶다.
평상스님: 오랜 세월이 지나 30여년 만에 보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싶다.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었지 하는 생각들이 난다. 옛 생각을 하게 되서 좋고 여러분과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감회가 남다르다.
안성기: 염불 한번 해주셔야지 좋지 않겠나? (웃음) 영화 속 나와 지산스님의 염불은 모두 평상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로 대체 되었었다.
전무송: 우리도 잘 배웠는데 리듬이 안 좋았다.
송길한: 둘의 염불 연습의 증인은 나다. 순천에서 촬영할 때 같이 술을 많이 마시고 나는 잠시 나왔는데, 민박집 불이 그 늦은 밤에 환히 켜진 채로 있더라. 다가가 보니 고 곽지균 조감독과 두 배우가 밤을 새워 다음 촬영씬 리허설을 하더라. 술이 확 깨던 순간이었다.

정성일:
'필름 2.0'에서 비평가들에게 ‘내인생 최고의 한국영화’를 꼽으라고 했을 때, 1위에 <오발탄>, 2위에 <하녀>, 그리고 3위에 <만다라>가 올랐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후 모두들 지겨운 시대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신과 1980년 5월 광주사건은 한국 사회가 다른 차원으로 돌입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 때 그 시대의 공기를 전해주는 두 영화가 <바람불어 좋은 날>과 <만다라>였다.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만다라>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다.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 이 영화의 힘은 절실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촬영당시 병 때문에 죽을 각오로 찍은 정일성 촬영감독의 절실함과 삭발투혼을 발휘한 두 배우 분, 혼이 빠질 때까지 시나리오 집필을 하신 송길한 선생의 절실함이 마법의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또한 이 작품은 안성기라는 배우의 위치를 굳게 해준 영화라고 생각된다. 삭발을 하며 집중해 임했던 이 영화가 갖는 개인적인 의미에 대해 듣고 싶다.
안성기: <만다라>라는 작품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유신 정권 속에서 꿈틀하는 힘을 발휘한 두 작품 모두에 출연한 것 또한 운이 좋았다. 그 이전에 성인 배우로서 찍은 4편의 영화에서 나는 회의를 느꼈다. 일생을 걸고 영화에 뛰어들었는데 약간 암울한 감정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바람불어 좋은날>을 만나 새로운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줬고 나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바로 <만다라>를 만나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에 함께 수 있었다. 배우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고 그 이후 내가 원하는 작품에 내가 배우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다.

정성일: 많은 감독들과 작업해보면서 느낀, 임권택 감독님의 연기지도 스타일이 갖는 차별성은 무엇인가?
안성기: 구체적으로 말씀을 안 하신다. “해~봐, 해봐” 하실 뿐이다. 임권택 감독님은 특이한 습관이 있으신데, 감정 연기에 따라 고개를 올리신다. 고개가 끝까지 뒤로 안 올라가시면 NG고 고개가 다 올라가시면 좋은 것이다.

정성일:
전무송 씨는 원래 연극배우로 활동하시다가 처음 하게 된 영화라고 알고 있다. 처음 만나 같이 작업한 영화감독인 임권택 감독님은 어떠셨나?
전무송: 일반 관객 앞이 아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 영화계 선배인 안성기 씨가 카메라 앞에 서는 법에 관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처음 감독님을 만났을 때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인자하시고 부드러우셨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그저 “이렇게 해봐요. 저렇게 해봐요.” 하셨다. 그러곤 “어때요? 괜찮아요?”하시는데 내가 이상하다 하면 다시 찍곤 했다. 배우에게 표현과 움직임에 대해 말하지 않으시지만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 때까지 촬영을 다시 하게끔 지도 하신다.

정성일: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참으로 이례적인 것 같고 그 형식이 파격적이라고 느껴진다. 쓰인 배경이라든지 쓸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송길한: 당시에 일반 회사에 들어가 월급쟁이가 되려 했다. 그러던 중 임감독님이 이미 촬영이 들어간 영화가 큰일이 났다며 살려달라고 찾아왔다. 영화사 기획실장이였는데 집에 일이 생겼다고 하고 충무로 여관방에 들어가 4박 5일 동안 잠도 안자고 시나리오를 섰다. 여관방을 나왔을 때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실감했다. 극도로 몰려서 초능력적인 힘이 발휘된 것인지, 내가 썼나 싶을 정도로 좋은 대사들이 나왔다.

정성일: 영화와 원작 소설의 엔딩이 다르다.
송길한: 절집의 비리는 이 영화가 해야 되는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두 젊은이가 삶을 완성해가는 길에 관한 얘기니까, 두 젊은이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야 했다.


관객1: 안성기 씨 출연작을 많이 보았고 연기에 감동을 많이 받는다. <만다라>에서는 어떻게 캐릭터를 해석했기에 이런 연기가 나온 것 인가?
안성기: 착한 사람이다. 허나 화도 있다. 선배스님인 지산스님이 쿡쿡 찔러올 때 분노의 감정도 있고 그것을 표현해야했다. 지금 보니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인다. 특히 엔딩씬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너무 밝게 속이 들여다보이게 웃고 있다. 조금 무표정으로 해도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나의 연기는 미숙한 점이 많았다.

관객2: 법운스님의 마지막 장면이야기가 나오니 지산스님의 마지막에 관해 묻고 싶다.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그 죽은 척하는 연기를 했나? 그리고 그 당시 눈이 정말 많이 온 것 같은데 기다린 것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전무송: 설악산에서 촬영했는데, 오색 약수터에서 눈이 오길 보름을 기다렸다. 4월 중순까지 눈이 오는 경우도 있다는 동네 주민의 말에 기다리고 기다리다 내년에 찍던지 하자하며 철수를 하려고 한 날에 눈이 그렇게나 많이 내렸다. 마지막에 딱히 어떤 표정으로 누워있자 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계속 남는 것은 “견성하거든 나 좀 제도해줘”와 “내 눈의 점안은 누가 해주나”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이고 남이 해줘야한다. 제대로 알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고민거리다. 나는 지산이 그것을 알고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생 구하고 있는 인생의 답을 나타내는 탑 밑에서 죽었다. 계속 남는 두 대사와 나의 탑을 생각하고 그것을 찾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관객3: 지산스님이 애인을 찾아갔을 때 애인이 고무신과 양말을 빨아주는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이해가 선뜻 안됐다. 무슨 의미가 깃든 것인가?
송길한: 굉장히 아름다운 씬이다. 아무리 창녀지만 기둥서방이 있다. 겪어보니 좋고 무슨 고민이든 털어놓을 수 있어 지산을 애인 삼은 것이다. 딸랑 고무신 하나 신고 만행을 하는 그의 신을 씻어 준 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에게 부은 것과 닮았다고 본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씬이 빛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평상스님: 몇 가지 더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영화 제목 ‘만다라’의 뜻은 '세계',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곳, 우주, 인생, 자연을 담는 총체적인 말이다. 엔딩이 원작과 달라진 이유는 내 고집도 있었다. 법운스님이 수행자로서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출발은 하게 한 것은, 지산의 삶에 매료되는 원작의 끝과 다르다. 대사가 달라진 곳이 있는데, 죽은 지산의 불상을 그의 애인에게 전해줄때 애인이 “그분은 성불하셨겠죠?”라 묻고 법운은 “그분은 그분이 원하는 곳을 가셨을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관객4: <만다라>라는 영화가 개인적으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송길한: 많은 내적 변화가 있었고 모르는 것들을 많이 배웠다. 승려의 삶도 이렇게 치열한가 싶었다.
전무송: “내 눈에 점안은 누가 해주나”를 생각하다가 ‘내 눈은 내가 떠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막연한 불교 신자였는데, 영화 촬영 후 더 깊게 불교에 빠지게 되었다. 이 후에 <원효대사> <아제아제 바라아제> 같은 다수의 불교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안성기: 빡빡 깎은 머리와 승복을 내 몸에 맞추려고 영화 촬영 전에 준비도 많이 하고 승려처럼 돌아다니며 많은 체험을 했다. 그 때 많이 배우고 느꼈다.


정성일: 관객 분들이 임권택 감독의 다른 불교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보셨으면 한다. 또 감독님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가 3월 17일에 개봉한다니 꼭 보시라.
송길한: 종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얘기다. 자기 이름과 돈을 바라고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영화를 위해 만들고 이야기를 해기위해 만드셨다. 그의 정성과 감동이 잔잔하게 가슴에 배어드는 영화다.

(정리: 배준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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