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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영화의 원형들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작가를 만나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

‘2011 시네바캉스 서울’ 개막 첫 주인 지난 7월 30일 이른 저녁 바캉스 시즌에 맞춰 특별히 준비한 ‘작가를 만나다’가 열렸다. 이번 달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협영화로 평가받는 10년 전의 영화 <무사>를 상영하고, 상영 후에는 이 영화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과 함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작업당시 제작과정에서의 에피소드부터 영화에 대한 애정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간 소중한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담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무사>가 개봉했을 당시의 평가가 약간은 야박했다고 생각된다. 다시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 영화가 갖는 힘과 이 정도 규모에 이 정도 에너지를 갖고 있는 대중영화가 있나 의심스럽다. 많은 분들이 궁금하실 것 같은데, 애초의 4시간 30분 분량에서 주로 어떤 부분들이 빠진 건가?
김성수(영화감독): 굉장히 긴 영화를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감개무량하다. 이 영화를 만들 때 호기를 부려서 아주 긴 영화를 만들어보자 했다. ‘내 영화는 이렇게 담겨져야 해’하고 편집을 했더니 처음에는 4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나왔다. 욕심을 내서 9명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 가져가고 싶었고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었다. 몇몇 에피소드들과 전투장면들의 시퀀스 자체가 빠지고 150분가량으로 완성됐다.

김성욱: <7인의 사무라이>같기도 하고, 마지막 부분은 <와일드 번치>의 느낌도 있다. <비트>나 <태양은 없다>와 같은 전작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협업으로 진행되었던 전작들과 달리 <무사>의 구체적인 원안과 시나리오도 직접 쓰셨다.
김성수: <비트>나 <태양은 없다>는 당시 유행하던 영화들, 특히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해체되고 인물중심으로 따라가고, 젊은 인물들이 나오는 영화 스타일에 편승해서 찍은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사랑했는데, 누구나 자기 마음속의 영화는 어린 시절에 있는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의 영화들은 서부극들이다. 재밌는 건, 외국의 친구들이 <무사>를 보더니 아시아 무협영화의 외피를 두른 웨스턴영화라고 말하더라. 만들고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페킨파의 영화나 <7인의 사무라이>같은 영화들이 섞여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기억 속에 있는 영화의 원형 같은 것들을 섞어서 만들다보니 다른 작가들과 작업하는 것이 불편해서 혼자서 썼다.

김성욱: 숲에서 주진모 씨가 부상을 입고 4~5명이 매복을 하면서 공격을 하는 순간의 장면은 거의 대부분 클로즈업으로 이루어졌다. 굉장히 긴박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거기에 음악의 리듬까지 더 해진다. 숲에서의 전투의 혼란스러움, 게릴라전의 느낌이 있다. 액션씬에서의 리듬과 인물의 얼굴들, 느낌이 인상적이다.
김성수: <무사>를 찍을 때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고전적으로 찍겠다고 생각했다. 말씀하신 숲에서의 장면은 계획한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찍은 장면이다. 원래는 정글 같은 숲에서 액션을 찍고 싶었는데, 장소 헌팅이 안돼서 과수원에서 찍어야 했다. 과수원의 나무들이 일렬로 쭉 서있어서 애초에 생각했던 숲의 전투 느낌이 전혀 나질 않았다. 고민 끝에 과수원의 나무들 사이에 산에서 가져온 풀과 잡목들을 스태프들이 들게 했다. 그렇게 공간 전체를 찍는 대신 가까이서 찍으니까 숲의 느낌이 났다. 개인적으로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좋아하고, 이전 작품들에도 클로즈업이 많다. <무사>엔 그런 장면들이 별로 없는데, 그 장면에서는 클로즈업을 많이 쓰게 되었다. 그렇게 편법으로 찍었는데 그 장면에 대한 반응들이 좋더라. (웃음)

김성욱:
상당 부분 사막에서 촬영되었는데, 사막에서의 촬영은 어땠나?
김성수: <무사>를 찍은 곳은 회족자치구에 있는 사막이다. 보통 다른 영화들에서 보는 사막 장면은 좀 더 북쪽의 신장자치구의 사막인데, 실제로 가보면 굉장히 딱딱한 바닥이다. <무사>를 촬영한 곳은 관광지로 꽤 알려져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영화촬영은 하지 않는 지역이다. 모래가 굉장히 고아서 촬영하기가 어렵고 여름엔 더욱 힘들다. 하지만 사막에서 촬영하고 싶었고, 여름에 시작해서 겨울로, 계절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고집했다.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한낮에는 기온이 45도 정도이고 모래의 열반사 때문에 서있기 조차 힘들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까 사막에서의 촬영이 추억으로 남는다.

김성욱: 영화를 처음 설계할 때부터 토성에서의 액션씬을 제일 마지막에 염두에 두었나?
김성수: 그렇다. 토성씬은 <무사>에서 가장 찍고 싶었던 장면이었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바닷가에 있는 토성을 상상하며 그려둔 게 있었다. 영화의 토성은 직접 만든 것이다. 잘 만들어진 토성이 허물어져서 십여 년 정도 방치된 것을 원했는데, 해안의 암반위에 직접 토성을 만들어서 다시 부수고 거기에 불을 지르고 소금물을 입히는 작업을 반복해서 완성된 모습이 전혀 세트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잘 만들어져서 깜짝 놀랐다.

관객1: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원나라의 장수가 불리함을 무릎 쓰고 정우성씨를 보내주는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김성수: 원의 장수가 그를 보내주는 것은 일종의 남자들의 가오다. 그 전에 전쟁도중 전령이 자신들의 장수가 죽었다고 전하는 장면이 있는데, 역사상으로는 몽고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승패를 떠나 자기를 소진시켜버리겠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더 이상 승리에 연연하지 않는 느낌이 있다. 단, 공주는 명나라 사람이고 자신들의 시대에 종언을 고한 것이 명나라였기 때문에 공주만은 죽이려 했던 것이다.

관객2: 액션영화를 더 찍으실 생각은 없으신지?
김성수: 액션영화를 좋아한다. 정말 찍고 싶은 영화는 순도 100%의 액션영화이다!



김성욱: 영화가 개봉했을 때 여러 가지 악재도 있었고, 개봉 이후의 반응들에 아쉬운 부분이 있으셨을 것 같다.
김성수: 영화의 편집을 직접 하는 편이다. 편집을 하면서 굉장히 집중해서 300번 정도는 보게 되니, 사실 촬영할 때보다도 편집할 때 더 탈진상태가 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영화의 운명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그 영화를 떠나보내는 느낌이 있다. <무사>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고생을 많이 했던 영화라 이 영화를 같이 했던 사람들과 함께 다시 보고 싶다. 그 친구들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영화이다. 그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한 번 파티하듯이 보고 싶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