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가 들려주는 우디 앨런의 세계

2010 시네바캉스가 한창이던 지난 8월 13일은 우디 앨런의 영화 세 편이 연속 상영한 ‘우디 앨런 데이’였다. 마지막회 상영작인 <마이티 아프로디테> 상영 후에는 전 스크린 편집장인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우디 앨런 영화에 대한 유쾌한 토론을 벌였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형석(영화칼럼니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우디 앨런은 미국의 전형적인 토크 코미디, 뉴욕 지식인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주로 70년대 영화들을 많이 얘기하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는 주로 80년대와 90년대의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우디 앨런을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가장 위대한 점은 오랫동안 꾸준히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스콜세지 같은 감독처럼 말이다. 우디 앨런은 60년대 말부터 영화를 만든 사람이다. 그 당시라면 히치콕이 아직 영화를 만들고 있을 때고, 앤디 워홀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다.

우디 앨런을 규정하는 키워드가 몇 가지 있다. 제일 먼저 ‘뉴욕커’라는 키워드이다. 오늘 본 <마이티 아프로디테>같은 영화도 전형적인 뉴욕커의 면모를 볼 수가 있다. 우디 앨런은 뉴욕에 대해 애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면이 가장 잘 나타나있는 것이 아마 <맨하튼>일 것이다. 그에게 있어 뉴욕은 어떤 절대적인 모태와도 같은 도시이다. 그가 영화에서 뉴욕을 벗어난 것은 2000년 이후에 들어서이다. 미국과 뉴욕을 벗어나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그 전까지는 줄곧 뉴욕에 천착한 영화 작업을 해왔다. 우디 앨런은 뉴욕을 굉장히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애니홀>에서는 L.A와 비교해서 굉장히 문화적인 도시로, 또 <한나와 자매들>에서는 도시 자체가 예술품인 도시로 보여준다. <브로드웨이를 쏴라>같은 영화에서 뉴욕은 갱스터의 도시이기도 하다. 두 번째 키워드는 유태인이라는 정체성이다. <애니씽 엘스>에서도 우디 앨런이 제이슨에게 하는 얘기들처럼, 우디 앨런은 자신이 유태인이라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유태인이라고 하면 우리 생각에는 대개 부유하다고들 생각하는데, 모두가 그렇진 않았고 이를테면 뉴욕 브룩클린 출신의 유대인들은 빈민이었다. <라디오 데이즈> 배경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그러한 브룩클린 출신의 유대인 공동체이다. 그가 코미디언이라는 점에 있어서도 유태인이라는 정체성이 매우 중요하다. 우디 앨런의 코미디는 무작정 웃고 즐기는 코미디라기보다 약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강박증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있다는 점에 있어 그렇다. 우디 앨런의 특별한 면이라면 60년대 말에 데뷔한 감독들, 스콜세지나 코폴라 같은 감독들의 경우 모두 영화과 출신이었는데, 우디 앨런은 독특하게도 코미디언 출신이었다. 스탠드업 코미디, 즉 클럽의 무대에서 농담을 하는 만담가출신인 것이다. 굉장히 두서없이 던지는 스타일의 만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애니홀>은 우디 앨런의 스탠드업 코미디 스타일을 잘 볼 수 있는 영화다.

우디 앨런은 영화감독 보다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다.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영화보다는 음악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펍에서 자신이 속해있는 밴드가 공연을 해오기도 했다. <와일드 맨 블루스>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보면 그러한 공연 모습들이 나오는데, 우디 앨런의 연주가 아마추어 이상의 실력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굉장한 음반 콜렉터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에서 듣게 되는 재즈나 클래식 음악들은 대부분 그가 직접 선곡한 것들이다. 또한 우디 앨런은 작가이기도 한데, 최근에 한국에서도 그의 책들이 출간되기도 했다. 저술가로도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도 희곡을 쓰고 있고, 90년대 까지만 해도 브로드웨이에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대신 10대 때부터 갖고 있던 타자기로 글을 쓴다고 한다. 이처럼 우디 앨런이라는 감독이 단순히 영화감독이라고 하기에는 그가 미국에서 갖고 있는 문화적 위치를 모두 함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애니홀>이나 <맨하튼> 이전 영화는 한국에서는 많이 볼 기회가 없는데, 그 영화들을 보면 재미는 있지만 우디 앨런을 작가로서 규정하긴 어려운 면이 있었다. 우디 앨런은 <애니홀>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함으로서 A급 영화 감독으로 자리매김 했다고도 할 수 있다.· <맨하튼>은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흑백영화이다. 미국을 비롯해서 프랑스 같은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면,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일 텐데, 이를테면 그 시기의 영화 중 <또다른 여인> 같은 영화를 보면 코미디와는 상관이 없는 영화지만 특별한 감흥을 남긴다. 우디 앨런이 80년대에 처음 만든 영화가 <스타더스트 메모리>인데, 그 영화에서 감독으로 출연한 우디 앨런은 ‘난 더 이상 코미디를 만들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 이후의 영화들은 좀 더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으로 넘어가게 된다. 80년대는 할리우드에서는 액션 등의 오락영화가 우세하던 시기였다. 같은 시기 미국 영화 안에서 보자면 우디 앨런과 같이 영화를 만들던 사람은 드물었으며 독보적이었다. 이 시기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가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가 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존경하는 감독들에 대한 오마주가 등장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스타더스트 메모리>는 펠리니, <또다른 여인>은 베르히만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9월>이라는 영화도 코미디와는 무관하며, 베르히만의 실내극에서 나타나는 차분하고 철학적인 영화의 톤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 같은 영화 역시 ‘영화에 관한 영화’이다. 공황기의 한 여자가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극장을 찾는데, 영화 속 남자가 현실로 나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는 현실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영화다. <한나와 그 자매들> 역시 <카이로의 붉은 장미>와 비슷한 면들이 있다. 우디 앨런은 영화에서 끊임없이 죽음 충동에 시달리는데, 총기가 오발되면서 삶의 의지가 불타오르게 되고 그렇게 무작정 거리에 나와 극장에 들어간다. 그 때 극장에서 보게 된 영화는 막스 브라더스의 코미디 영화다. 영화와 삶의 의지를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두 영화가 닮은 꼴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의 미국 영화산업에서 우디 앨런처럼 영화를 많이 만든 사람이 없었다. 그는 80년대에만 장편 10편, 단편 1편을 만들었다. 그리고 80년대에는 ‘현대인의 신경증’, ‘뉴요커’와 같은 우디 앨런적인 담론이라는 것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 시기 그는 대부분의 영화에 직접 출연하는데, 그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비교적 고정되어 있다. 그가 출연하지 않는 영화들은 톤이 조금 더 무거운 영화들이라면, 그가 직접 출연하는 경우는 영화의 톤을 좀 더 가볍게 하기 위해서 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사건은 미아 패로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미아 패로는 82년에 <한 여름밤의 섹스코미디>를 시작으로 총 13편의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영화에서 우디 앨런의 이미지는 고정되어 있던 반면에 미아 패로는 영화에서 유연하게 스펙트럼이 넓었다. 그녀가 당시 했던 역할들은 아주 희극적이고 가벼운 캐릭터에서부터 음울한 캐릭터까지 다양했다. 80년대의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로맨스의 상황들은 70년대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예상 가능한 짝짓기’ 같은 것들이 여지없이 배반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한나와 그 자매들>같은 영화를 들 수 있다. <범죄와 비행>같은 경우는 굉장히 로맨틱한 상황이 범죄로 이어진다. 혹자는 이 영화를 우디 앨런식의 <위험한 정사>라고 말하기도 하다. 70년대의 낭만화되고 달콤쌉싸름했던 관계가 80년대에 오면 일종의 로맨스의 위기를 맞는다. 이 때 우디 앨런이 로맨스의 위기에 대한 탈출구로 삼는 것이 ‘창조적인 영역’이다. 작가로서 글을 쓴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의 인물들은 또 다른 출구를 찾는다. <또다른 여인>이나 <9월>에서도 그러한 면을 볼 수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우디 앨런의 창조적인 것에 대한 강박이 캐릭터에 투영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있다. 한편으로는 우디 앨런 특유의 세상에 대한 냉소가 존재한다. <매치 포인트>에서 처럼, 죄와 처벌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존재한다.

90년대는 우디 앨런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흥행이나 비평적 평가는 저조한 편이다. 그에게 있어 이 시기는 불안한 리비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사건으로 순이와의 결혼이 있다. 미국 사회에서 크게 윤리적으로 지탄을 받았었고, 우디 앨런의 영화 안에서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전까지 그는 현실에 대해 언급한다기 보다는 영화의 판타지라는 자기가 만든 세계 안에서 질문을 던지고 바라보는 사람이었는데, 스캔들을 계기로 영화라는 세계에 갇혀있던 그가 현실과 만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그 일 뿐 아니더라도 함께 했던 제작사나 스탭들과 떠나 영화 제작이 고통스런 상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11편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 시기 영화들은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남자들의 성적인 추구이다. <우디 앨런의 부부일기>, <해리 파괴하기>, <셀러브리티>같은 영화들이 이에 속한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라는 것인데, <해리 파괴하기>가 특히 흥미롭다. 그의 영화 중 가장 복잡한 형식의 영화로도 알려져 있다. 두 번째는 범죄의 세계 를 다룬 것이다. <브로드웨이를 향해 쏴라>, <스몰 타임 크룩스>, <맨하튼 미스테리>같은 영화들이 있다. 세 번째는 영화 안에서 내레이터의 실험을 하는 영화이다.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코러스, <에브리원 세스 아이 러브 유>의 음악, <스윗 앤 로다운>의 인터뷰같은 형식들이 그 예이다.



영화감독들 중에는 끊임없이 비전을 변화시키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우디 앨런의 경우는, 자신의 영화들의 테마들을 조금 씩 변화시켜가면서 간다. <스몰 타임 크룩스>는 <돈을 갖고 튀어라>를 <헐리우드 엔딩>은 <브로드웨이를 향해 쏴라>를, <애니씽 엘스>는 <맨하튼>과 <애니홀>을, <매치포인트>는 <범죄와 비행>에서 사용되었던 모티브가 반복되어 사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2000년 이후의 영화들의 특징은 뉴욕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공간의 지배에 많은 영향을 받는 편이다. 우디 앨런은 영국에서 찍은 세 편의 영화는 단순히 배경뿐 아니라 영화 안에 영국적 느낌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제 생각에는 2000년 이후의 영화들은 아주 새로운 영화를 보이기보다는 이전의 영화들을 새로운 공간 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수십년 간 해왔던 글쓰기의 내공이, 관객들이 영화를 즐기는 데에 있어 아무리 익숙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게 만들지 않나 싶다. (정리: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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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이재용 감독과 배우 윤여정, 김옥빈의 <여배우들>에 관한 수다

지난 14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여인’을 컨셉으로 한 ‘2010 시네바캉스 서울’ 상영작 중 유일한 한국영화인 이재용의 <여배우들>을 상영하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이재용 감독과 이 영화의 주역배우들인 윤여정, 김옥빈 씨 두분이 함께하는 시네토크가 열렸다. 영화 촬영 당시의 다양한 에피소드부터 여배우들이 겪게 되고, 느끼는 감성까지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아 여배우들의 진솔한 면모를 볼 수 있었고,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가까운 자리에서 감독님과 두 분의 배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어 기쁘다. 바쁜 분들이라서 어떤 분들이 참여하실 수 있을지 기대도 하고 걱정도 했다. 이 자리는 여배우분들이 주역이 되는 자리다. <여배우들>이라는 영화는 굉장히 특별한 영화고, 배우의 연기가 실제인지 허구인지 혼동이 될 정도로 녹아들어가 있는 점이 놀라웠다. 어떤 계기로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
이재용(영화감독): 윤여정 선생님이랑 개인적으로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차도 마시고 그랬다. 친구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여배우들이 있다는 것이 기뻤고, 이런 여배우들의 실제 모습을 같이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영화 연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다. 진짜 좋은 연기가 어떤 건지 다시 고민하던 시기였던 거다. 다큐멘터리에 대해 관심이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 영화가 나온 게 됐다.

김성욱: 이 영화를 보다보니 윤여정 선생님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여정(영화배우): 주연처럼 보인다는 말을 듣고 걱정했다. 그런데 어떡하겠나, 그렇게 됐다. (웃음) 출연제의를 받았을 때는 제 나이가 굉장히 많아서 별로 많이 잃을게 없다는 생각이 있었고, 컨셉을 들었을 때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돼서 참여하게 됐다.

김성욱: 윤여정 선생님이 영화 전체를 컨트롤하고, 김옥빈 씨는 그것을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김옥빈(영화배우): 처음 제의 받았을 때는 시나리오 내용을 전혀 몰랐다. 전체적 이야기 자체가 너무 신선했고, 선배님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 역할이 선배님들에게 사랑받고 싶지만, 잘 안 되는 일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역할이잖나.
윤여정: 옥빈이가 거기서 많이 치였다. 제일 연장자다 보니까 제가 말을 가장 많이 했고.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라도 말을 많이 하길.
김옥빈: 선배님들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밌어서 현장에서 넋을 놨던 것 같다.

김성욱:
이 영화는 거의 여자 분들만 나오는 영화인데.
이재용: 패션화보를 찍기 위해서 하루 동안 벌어질 수 있는 가상의 이야기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역할들을 한 것도 사실이고. 기승전결과 기본 뼈대들을 있었지만, 분장실에서 이야기 한다거나 파티를 하는 것 등은 제가 쓰는 언어로는 다 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애드립에 많이 의존했다. 방목 같은 거다. 재즈 연주할 때 기본선율만 있으면 나머지는 즉흥적으로 이뤄지듯이, 배우들이 고수들이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던 영화였다. 영화를 만들고 나서 관객들을 만나는 것보다 배우들을 만나는 것이 더 두려웠다. 나를 믿고 출연해 줬는데, 잘못 그려졌다는 인상을 줘서 사람도 잃고 할까봐 두려웠던 거다. 결과적으로 첫 시사회 분위기에서 만큼은 다 만족해하는걸 보고 안심했다.

김성욱: 윤여정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연기를 잘한다는 게 어떤 건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판단을 어디에 둬야 할지를, 특히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상적 연기를 할 때는 판단이 쉽지 않을 텐데.
윤여정: 그게 제일 고민이다. 해답이 딱 있으면 좋겠지만, 연기는 그런 게 없잖나. 사람들이 나이를 들면 연기를 잘할 거라고들 생각하곤 한다. 나이들 수록 잘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허나 아니다. 저에겐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몸에 밴 게 있을 거다. 그런 게 나올 때 그게 참 싫다. 어떤 때는 애였으면 좋겠을 때가 있다. 특히 아역배우들은 정말 신선하게 감동을 주기도 하잖나. 이 영화의 경우는 우리가 편안하게 연주자로서 참석해서 호흡이 잘 맞는 잼 세션으로 들어가서 애드립을 자유롭게 하는 그런 좋은 케이스가 됐다. 이재용 감독님이 그걸 가능하게 해줬다.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모든 배우들이 똑같이 참여하고 다 중요하다는 걸 진심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김성욱:
김옥빈 씨도 여러 분들 사이에서 힘드셨을 텐데. 배우들 간의 호흡을 어떻게 맞춰나갔는지 궁금하다.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대처했는지?
김옥빈: 합을 맞춰서 오고가고 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를 잘 듣고 나서, 그 느낌 그대로 반응했던 게 가장 좋은 방법이 된 거 같다.
윤여정: 옥빈이가 배우다. 특별한 신비감 같은 것,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듯하다.

김성욱: 두 분이 같이 담배 피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두 배우분이 가장 나이차가 많은데, 서정적인 느낌이었고 어떤 때는 감동적이기도 했다.
윤여정: 그건 개인적 경험이다. 제가 옥빈이 나이일 때, 청경자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담배를 너무 멋있게 피시 길래, 저도 하나 주시면 안 되냐고 여쭸더니, 혼자 외롭게 피는데 동참에 주니까 고맙다고 같이 피자고 하셨다. 너무 멋있었다.
이재용: 최고참 배우와 막내 배우가 같이 있는 그림들이 좋겠다 싶어서, 그 부분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실제로 두 분이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하려 했다. 대사가 잘 안 써져서 그냥 가자고 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좋았던 거 같다. 민희 씨하고 옥빈 씨하고 둘이 계단에서 하는 대화도 그렇고. 많은 것들이 그 자리에서 이뤄진 거다. 쪽 대본조차 없이, 다음 씬 어떻게 찍을까를 그때그때 만들었다.

김성욱: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지?
윤여정: 자기 얘기를 많이 해야 되는 거라서, 오픈할 것과 가려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게 어렵긴 했다. 성향마다 다른 것 같다.
이재용: 이 배우들의 두 배수가 넘는 배우들을 만났는데, 이런 분들의 성향이 아니었으면 안됐을 영화다. 실제로 이런 영화를 할 수 없는 배우들도 있다. 대본이 주어져서 그 역할에 몰입해야지만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믿는 배우들도 있으니까. 여자들이 모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배우들도 있고.

관객1: 감독님은 내놓은 작품마다 색깔이 다르고 장르도 다른데. 앞으로 또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색깔이 있으신지?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가 파티 장면에서 "항상 모든 일엔 반대급부가 있다"라는 대사였다. 윤여정 선생님은 그런 깨달음을 언제 얻으셨는지? 김옥빈 씨는 <박쥐>로 굉장한 환호를 받으신 이후로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윤여정: 물론 어렸을 때는 못했다. 언제 깨달았나는 물론 잘 알 수 없고, 지금 60살이지만 여전히 아직도 내가 또 이러고 있네, 좀 근사하고 멋있게 대처할 수 없을까 생각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이재용: 개인적인 호기심과 관심사들이 많다 보니까 특별히 한 장르의 영화를 하는 감독은 아닌 거 같다. 잘 하는 것을 하긴 하겠지만, 재밌어 하는 걸 주로 하는 거 같다. 영화적이지 않은 영화에 관심이 많다. 이것이 영화다 보다는 이것도 영화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거.
김옥빈: 시나리오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다.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찢고 채이고, 혹은 애 엄마, 혹은 스릴러 등의 시나리오들만 많았었다. 전 실제로 그런 여자가 아닌데. (웃음)

김성욱: 후반부에서 와인마시면서, 라이벌 얘기할 때 인상 깊었다. 배우로서 질투심을 느낄 만큼의 인상을, 혹은 매혹을 느낀 사람이 있는지?
윤여정: 부러운 사람이 많다. 그런데 특정 한정된 사람이라기 보단, 어떤 역할을 어떻게 연기한 것을 보았을 때나, 혹은 같이 하면서도 느낄 때가 있다. 전에 김혜자 선배의 연기를 볼 때도 그랬고, 김영애 씨가 처음 나올 때도 어떤 애가 너무 당돌하게 잘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건 어떤 순간 같은 거다. 어떤 사람은 늘 잘하고 그렇게 여겨지진 않은 듯하다.
김옥빈: 나카타니 미키를 좋아한다. 클래식하게 생겼는데 코믹하면서도 섹시해서. 몸 개그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그 망가지는 게 너무 좋아서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원탑으로 힘 있게 밀고 가는 배우.


김성욱: 와인마시는 장면 후반에 한국에서 여배우로 사는 것에 대해 언급이 나오는데, 이야기가 좀 더 있을 법도 한데, 한국에서는 연기자로서 역할을 계속해서 얻어가는 게 상당히 제한적이기도 하다.
윤여정: 미국에서 잠깐 살 때, 사람들이 날 아무도 안쳐다보고, 나보다 잘난 사람도 너무 많고 해서 어색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날 알아보고 하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즐기곤 한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한에서, 현재 처한 상황을 감사할 수 있는 그 느낌을 알게 됐다. 사람들이 쳐다본다고 해서 가리고 하는 것도 우습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해서 쳐다보는 건데 즐기면 될 것을.
김옥빈: 평소 길 다닐 때도 얼굴 잘 안 가리고 돌아다니는 편이다. 모자나 선글라스로 무장을 할 때는 좀 지저분할 때. 덜 꾸며진 모습을 보면 대중들이 보고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딱 맞는 거 같다.
이재용: 우리나라가 좀 심한 면은 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도 있고, 배우들을 흉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향들이 있다. 모든 배우가 안성기 씨처럼 산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다들 너무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 사실 배우들이 공인은 아니고 유명인일 뿐인데 말이다. 즐기다가도 자기 맘에 안 들면 왜 우리를 물들이냐고 갑자기 막 돌아서고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철통 방어를 하고 피해의식을 갖게 만든다. 피해의식에 서로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김옥빈: 자신이 좋아하는 여배우가 환상의 모습대로 지속되길 바라는 듯하다. 하지만 그 환상이 깨지는 순간 냉정하게 돌아서버린다.

김성욱: 연극이랑 다르게 영화는 차단된 벽이 있는데, 너무 몰입되는 경향들이 있는 거 같다. 이재용 감독님이나 두 분은 여배우들에 대한 다른 영화에 대한 생각이 있는지? 마지막 말씀도 들려주신다면.
이재용: 십년 후에 다시 이들이 모이는 것을, 동창회 모임 하듯이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조만간 일본에서 개봉하면, '여배우들 일본에 가다' 같은 것도 생각했고.
윤여정: 내가 살아있을까.(웃음)
김성욱: 진짜로 십년 뒤에 연기를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김옥빈: 보러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 시간이었다.
윤여정: 감사하다. (정리: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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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바캉스가 한창이던 지난 8월 8일은 특별히 정한 <대부>의 날이었다. 비록 안타까운 사정으로 <대부2>의 상영이 취소되긴 했지만,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강연으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만난 <대부>의 위력에 모두 큰 감흥에 젖은 가운데, 김영진 평론가는 촌철살인의 짧고도 굵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언제 봐도 재미있는 영화다. 83년에 처음 봤다. 서울극장 리바이벌 상영이었는데, 학교 졸업하고 당당하게 본 첫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다. 너무 쇼킹했고 특히 마지막 교차편집이 너무 쇼킹해서, 그 다음날 한 번 더 봤다. 한 동안 코폴라의 광팬이 됐었다. 국내 출시된 DVD의 서플이나 피터 비스킨드 프리미어 수석기자가 쓴 책(『할리우드의 르네상스』라는 제목으로 국내 번역)에 영화에 대한 많은 비화가 있다. 처음부터 코폴라가 연출하고 싶어서 한 영화는 아니었다. 60년대 코폴라는 미국에서 펠리니나 고다르 같은 영화를 만들려 했었다 한다. 대학의 유명한 수제였다는데, 대학 3학년 무렵 로저 코먼이라는 B급 영화 제작자에게 스카우트되어서 시나리오도 쓰고 온갖 일들을 다 했다고 한다. 구소련 SF 영화를 사와서 원본 시나리오 없이 대충 화면 보면서 더빙용 시나리오를 쓰는 등 많은 작품을 했다. 특히 <패튼>의 시나리오가 유명하다. 아카데미상도 받았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써 가면서 연출도 했는데 찍는 족족 망했다. 연출한 영화 중 <빗속의 연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의 주부가 가출하는데, 가출 동기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녀가 자아를 찾는 여행을 해 나가는 로드무비다. 하지만 이 영화도 큰 빚을 졌다. 프레드 아스테어를 데려다가 고전 뮤지컬에 대한 오마주 영화를 찍었는데 그것도 망했다.

거의 할리우드의 기피 인물이 된 상황에서 갑자기 <대부>의 연출을 맡게 된 거다. 대부라는 소설이 그렇게 베스트셀러가 될 줄 몰랐다가 폭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니까 급히 6개월 내에 영화를 찍으려고 한 거다. 그런데 아무도 안 하려 해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사람이 코폴라였던 것. 코폴라가 이탈리아 계통이라서, 같은 이탈리아 계통끼리 마피아를 욕되게 하는 영화를 찍겠냐 해서 택했다고 한다. 최악의 선택이라고 지인들의 전화를 받고, 코폴라 나름대로도 굉장히 창피해하면서 내키지 않아했다고 하며, 촬영 중에도 일주일마다 해고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해고 즉시 투입할 감독도 늘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해고 위협을 받은 결정적 이유는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를 캐스팅한 것, 시실리 로케이션 고집한 것 등이었다. 당시에 알파치노는 인물도 안 되고 키도 작고 연기도 못하는 배우였다. 브로드웨이 초짜 배우도 저것보단 잘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여러 가지 악조건들을 무릎 쓰고 나온 영화가 <대부>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하자 마자 박스 오피스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그 당시에 드물게 와일드 릴리즈 상영되었다. 그래서 코폴라는 그 날로 바로 로버트 에반스에게 백지수표를 받았으며, 그걸로 페라리를 샀다가 그날 저녁에 술 먹고 사고내서 파손됐다고 한다. 코폴라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거다. 말론 브란도는 당시에 퇴물배우이자 말썽꾸러기였다. 코폴라가 브란도의 집에 오디션하러 찾아갔다고 하는데, 브란도는 코폴라를 맞이할 때 입안에 뭘 물고 영화 속의 그 모습처럼 준비해서 맞이했다고 한다.

코폴라는 '사이트 앤 사운드'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세 가지 착안점을 밝혔는데, 마피아는 아메리카에 대한 메타포라는 거다. 세 가지 지점에서 같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 이익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는, 무자비하게 적을 살상할 수도 있는 집단. 그리고 둘 다 자기 내가 매우 자비로운 집단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코폴라는 더 나아가서 차라리 마피아가 미국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적어도 마피아는 자기 구성원들은 배신을 하지 않는 이상은 확실하게 보호해주니까 말이다. <대부> 1편은 굉장히 마피아가 미화되어 있다. 그래서 코폴라는 2편에서는 그것을 반성하고 굉장히 차갑게 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편이 더 좋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는 판타지를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사회시스템(자본주의)을 충실히 할수록 가족주의가 깨진다. 비토 콜레오네 시절에는 그것이 가능했다. 첫 살인을 저지르고 가족 내에 들어와서 어린 마이클과 노는 장면 등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이클 콜레오네는 아버지 못지않게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소외된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계속 배신하고, 그래서 죽이게 된다. 이런 주제를 마르크시즘 적인 텍스트보다 더 깊은 레벨에서, 이와 같이 다뤄낸 영화가 또 없는 것 같다. 처음 40분의 결혼식 시퀀스에서 이 모든 게 다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는 청탁이 이뤄지고 있다. 바깥에선 밝은 햇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있다. 계속해서 안과 바깥이 대비되며, 모든 등장인물이 소개된다. 유일하게 거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마이클이다. 케이가 계속 물어보는데, 마이클만이 거기에서 분리되어 양지의 세계에 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패밀리 속으로 들어오고 변해버린다. 영화의 마지막, "이번만은 대답해 줄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소름끼치는 모습. 그러면서 마이클은 계속 고립된다.

형식적으로 이 영화는 아메리칸 뉴시네마 중에서 가장 고전적 방식으로 찍혀있다. 주제 상으로는 급진적이지만. 일종의 권력이동 드라마다. 시점이동에 관해 굉장히 신중하고 영민한 방법을 쓰고 있다. 영화의 첫 숏에서 카메라가 줌 아웃되면 그것이 비토의 시선임이 밝혀진다. 한편, 비토가 암살시도를 당할 때, 카메라가 부감으로 올라가는데, 거기서부터 시점이동이 시작된다. 병원에서 마이클이 아버지를 구해낼 때 감동적인 숏-리버스숏이 나온다. 정말 믿을 만한 게 마이클 밖에 없는 상태인 거다. 유일하게 아버지를 닮은 아들. 비토가 울자 서서히 마이클에게 시점이 이동한다. 영화의 첫 숏과 대구를 이루는 숏이 솔로노와 협상 건을 놓고 의논할 때 마이클이 하지 말자고 말할 때, 카메라가 틸 다운하고 천천히 이동하면서 마이클에게 이동하여 클로즈업으로 끝나는 숏이다. 첫 장면의 비토 콜레오네와 대구를 이루는 숏으로, 아주 훌륭한 테크닉이다. 부자간의 마무리를 짓는 건, 정원에서 부자간의 대화 장면이다. 둘이 얘기를 할 때, 아주 사적인 친밀한 얘기와 비즈니스 얘기를 번갈아가며 한다. 아들 얘기, 전화국 얘기. 블로킹이 바뀌면서 카메라 포지션도 바뀌고 두 사람의 더블 클로즈업을 잡고 있다. 비토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나는 네가 거물이 되면 했다. 상원의원...." 그러자 마이클이 이것도 좋다고 한다. 아주 뛰어나게 연출하고 있는 장면이다. 거의 무장해제 된다. 손자와 노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마이클이 어떻게 새로운 보스가 되는 지를 보여줄 때에도, 톰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다 처리해 버린다. 새로운 보스가 되는, 즉 또 다른 인간이 되어버리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생생함이다. 마리오 푸조의 원작도 굉장히 뛰어난 소설이다. 직접 취재하거나 그러지 않으면 쓸 수가 없는 소설이다. 꼴레오네가 말하는 "바르지니와 협상을 주선하는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이 배신자다"라는 대사는 결코 책상에 앉아서 쓸 수 없다. 정말 그 세계의 사람들을 많이 취재한 사람마이 쓸 수 있는 대사다. 풍부한 디테일들을 가지고 할리우드의 엄청난 물적 지원을 받으면서 많은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만들어낸 기적 같은 작품이다. 코폴라는 계속해서 이 영화를 능가하는 작품을 찍고 싶어 했으나, 내 견해로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요즘 <테트로> 같은 영화를 보면, 오히려 자기가 젊었을 때 찍고자 했던 영화를 이제서야 찍는 거 같다. 코폴라 필생의 테마인, 선과 악, 밝음과 어둠을 가지고 말이다. <지옥의 묵시록>도 마찬가지다. 이 양면성의 측면에서.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코폴라 할아버지가 코폴라 아버지를 교육을 시키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창고에서 플룻을 부는데 마피아가 나타났다고 한다. 코폴라 할아버지는 마피아들에게 총들을 전해주었고, 마피아들이 얘는 누구냐고 하자, "걱정 안 해도 된다, 내 아들이다."라고 했다는데, 코폴라 아버지는 이 때 마피아 앞에서 플룻을 불었다고 한다. 그들이 잘한다고 돈을 더 주고 갔다고 한다. 코폴라는 아버지의 이 일화를 굉장하다고 여겼다. 가장 잔인한 것과 따스한 것이 공존하는 순간이라 여긴 거다.


관객1: 대부를 한 다섯 번째 보는데 이해가 안 되는 장면 중 하나가 다섯 개 패밀리를 다 소집해서 돌아오는 길에, '내 아들을 죽인 것이 바르지니인 것을 알았다'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복선이 나왔는지?
김영진: 그것은 결국 감일 게다. 회합의 주도권을 쥐고 분위기를 리드하는 것이 바르자니인데, 아마도 거기서 눈치를 챈 것이 아닐까 싶다. 나도 이 영화를 열 번 이상 본 것 같다. 학생들과 수업 중에도 곧잘 본다. 의외로 학생들은 이 영화를 많이 안 봤더라. 내 기억으론 <7인의 사무라이>를 보여주면 자는데, <대부>는 안잔다. 더 젊을 때는 <대부2>를 더 좋아했는데, 지금은 <대부1>이 더 좋다. <대부2>는 너무 날이 서 있어서 좀 괴롭다. <대부1>은 날도 서 있지만, 정서적으로도 우리를 위로해주는 측면이 있다. 대중영화로서 완벽하고, 할리우드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개인의 기량과 시스템의 힘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정리 :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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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홍성남 영화평론가와 들려주는 트뤼포의 세계

매혹의 아프로디테란 부제로 열리는 ‘2010 시네바캉스 서울’ 상영작 중에는 특별히 여인을 사랑한 감독 프랑수와 트뤼포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나오는 작품이 3편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지난 8월 3일은 이 세 작품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이름하여 트뤼포데이 였다. 마지막 상영작인 <부드러운 살결> 상영 후에는 홍성남 영화평론가가 트뤼포의 영화세계, 그 중에서도 트뤼포와 여성과의 관계에 대한 재밌는 시네토크를 펼쳤다. 그 일부를 이곳에 옮겨본다.


홍성남(영화평론가): 이번 영화제에 상영하는 영화들 중에서 트뤼포 영화가 세편이 포함되어 있는데, 트뤼포가 좋아했었던 혹은 트뤼포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매혹되었던 여배우들에 주목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트뤼포의 영화세계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트뤼포와 여성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릴 수는 없겠지만, 트뤼포의 개인적 이야기 보다는 좀 더 넓은 측면에서 그의 전반적인 영화세계와 관련시켜 이야기하고자 한다. 트뤼포의 영화는 ‘대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라고 질문해 볼 수 있다. 좀 더 간단하게 질문을 바꿔본다면 ‘과연 그의 영화라고 하는 것은 어떤 범주로 나눠지는가’이다. 트뤼포는 언제가 감독의 첫 작품에는 감독의 영화세계의 모든 것이 담겨있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작품들은 그보다 더 나을 수도, 못할 수도 있지만 모두 첫 작품의 변주라고도 말했다. 모든 감독들에게 이 말이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 보면 트뤼포의 전반적인 영화세계는 그 자신의 말을 확인시켜주는 과정이지 않나 싶다. 데뷔작인 단편 <개구쟁이들>(1957) 뿐 아니라 그 이후 장편 세 작품인 <400번의 구타>, <피아니스트를 쏴라>, <쥴 앤 짐>은 이후 트뤼포가 만들 영화들의 범주를 미리 알려주는 영화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400번의 구타>에서 처음 등장한 앙트완 드와넬의 성장과 사랑, 삶의 이야기는 이후의 영화들에서도 이어지면서 트뤼포 영화에 있어 하나의 범주를 이루게 된다. <피아니스트를 쏴라>와 같은 장르 영화도 있다. 이 작품은 그 안에 미묘하게 여러 장르들이 섞여있지만 특히 필름 느와르 또는 범죄 영화의 영향을 볼 수 있다. 트뤼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감독으로는 히치콕과 장 르느와르를 들 수 있는데, 트뤼포는 범죄드라마를 장 르느와르 식으로, 애정관계의 이야기를 히치콕 같은 방식으로 만들고 싶다며, 그것이 자신의 영화적 이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 번째 작품은 <쥴 앤 짐>인데, 과거를 배경으로 하면서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닌 문학작품을 각색한 영화들의 범주에 속한다. 물론 이러한 범주들은 편의를 위한 구분으로, 트뤼포의 전체 필모그래피에서 보면 그 구분이 모호하거나 다층적이다.

일단 이렇게 세 개의 범주로 나눠진 것이 트뤼포의 영화 세계라고 가정한다면, 그 다음엔 그것들을 관통하는 전체적인 주제나 요소 혹은 모티브에 대해 질문해 볼 수 있다.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에서 장 피에르 레오는 극 중 반복해서 ‘과연 여자는 마술적인 존재인가’ 라고 묻는데, 어떻게 보면 그 질문이야말로 트뤼포의 전체 영화세계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트뤼포는 기본적으로 <여자를 사랑한 남자>라는 자신의 영화제목처럼 여성을 사랑하고 여성을 탐구하고자 했던 감독이기도 하다. 트뤼포의 영화를 보면 여성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답을 내놓기보다는 질문을 위한 탐색을 위해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것,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행위하고 사고하는 것이 트뤼포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인 것 같다. 트뤼포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런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영화와 맞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치이론이나 사회이론에 더 맞는 사람들일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예술을 배반하는 사람들일 거라 말했다. 트뤼포는 정치적인 연설이 이뤄지는 광장이나 사무실 혹은 공장, 회의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보다, 침대에서 이뤄지는 일이야말로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러한 것들이야말로 영화가 담아야 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젠가 데이비드 린의 영화에 대해 말하면서, <콰이강의 다리>의 시나리오를 열 명의 감독들에게 보낸다면 모두 똑같은 영화가 나올 테지만, 반면에 <밀회>의 시나리오를 열 명의 감독들에게 보낸다면 열 편 모두 다 다른 영화가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그만큼 남녀의 문제란 사람들에게 있어 각각의 관점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트뤼포의 영화들 속에서 절대적인 것과 잠정적인 것 사이의 구분과 대립이라는 문제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절대적인 것 혹은 절대적인 것을 믿는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해서 고정되고 영원하고 명확하다고 여긴다. 그에 비해 모든 것들은 가치가 되었던 범주 개념이 되었든 고정되고 영원한 것은 없다고 여기는 것은 잠정적인 것 혹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과 관계된다. 잠정적인 것은 사랑의 감정과 관계라고 하는 것이 변화하는 것이며,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과 묶일 수 있다. 트뤼포는 자신의 영화에 나온 많은 배우들과 관계를 맺곤 했다. 그는 자신의 영화 제목처럼 여자를 사랑한 남자였고 그의 영화적 분신인 앙트완 드와넬도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도덕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런 관계에 대해 책임감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트뤼포의 영화에는 절대적으로 혐오하거나 미워할 만한 인물이 없다. 트뤼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한 장 르느와르는 모든 인간은 각자의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소중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바로 트뤼포다. 트뤼포는 잠정적인 인물들에 대해 나쁘게 그리지도 않지만 언제나 선하게 그리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충분히 동정하고 공감을 살 수 있는 인물로 그리면서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약점을 잘 그려내기도 한다.

반면 그러한 잠정적 인물에 반해 절대적인 것 혹은 그러한 가치에 속할 수 있는 인물은 어떤 사람들일까? 사랑의 가치를 영원한 것으로 믿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부드러운 살결>의 프랑카 같은 인물이다. 그러한 인물들은 대체로 영화 안에서 적대 혹은 심한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트뤼포의 <상복을 입은 여인>이란 영화에서 잔 모로는 결혼을 앞두고 남자의 죽음을 맞게 되자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한 사람씩 살해하는 여성을 연기한다. 혹은 <아델 H의 이야기>의 이자벨 아자니는 결국 스스로 광기에 빠질 정도로 한 남자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러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절대적인 가치 혹은 사랑에 빠져 있으며 결국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인물을 그릴 때조차도 트뤼포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 인물에 대해서 적의나 혐오를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공감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동정심을 가지고 묘사한다.

이러한 문제는 트뤼포의 전반적인 영화세계와 연관 지었을 때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 지하철>은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었을 때, 프랑스인들에게 위안을 주었던 한 극단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 대해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라는 역사적 배경을 통해 중요한 역사적·정치적 문제를 질문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해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홀로코스트의 문제나 반유대주의 문제를 소소한 가정 비극과 같은 것으로 떨어뜨렸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도덕적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단순한 것이 아니냐하는 것이었다. 선과 악의 축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명확하게 그려져 있다는 거다. 그러나 그 영화는 절대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의 대립이 중요한 모티브인 영화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영화에서 악이라고 할 수 있는 나치 협력자는 절대적인 것에 대한 맹신이 전체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선이라고 할 수 있는 극단 사람들이 있다. 연기를 한다는 것은 정체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역할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이므로 이들은 잠정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극단의 배우이기 때문에 역할을 맡을 때와 실생활에서의 정체성이 다르기도 하지만, 나치 정권 하이기 때문에 실생활에서도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연기를 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유동성이라는 이 영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시간이 흐른 후 두 남녀 주인공은 재회하게 되는데 연극 속의 장면이 연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픽션과 리얼리티 사이의 유동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메리카의 밤>에서도 트뤼포가 보여주는 것은 영화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 사이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거다. 절대적인 것은 그 어떤 영화의 주어진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는데, 시나리오를 가지고 곧이곧대로 영화로 만든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다. 트뤼포가 추구했던 영화 만들기는 그와는 달랐다. 물론 기본적으로 시나리오가 주어지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적응하면서 변화해간다는 것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는 더 이상은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 논리로 생각하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상상력의 힘이 영화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완성된 한 편의 영화 안에서도 절대적인 것과 잠정적인 것이 변증법적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뤼포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태어난 사람이란 것에 대해 심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에게 있어 아버지를 찾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했다. 그에게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결국 생겨나는데 그가 바로 앙드레 바쟁이었다. 또한 트뤼포는 장 피에로 레오와도 일종의 부자관계 형성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 찾기와 아버지 되기였는데, 단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아버지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 안에서도 아버지가 없다는 것, 아버지가 된다고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은 굉장히 중요하다. 트뤼포에게 어울리는 명칭은 혁명가보다는 개혁가가 아닐까 싶다. 편의상 구분을 해보자면, 트뤼포와 자주 비교되곤 하는 고다르가 ‘혁명가’라면, 트뤼포는 오히려 시스템 안에서 더 나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개혁가’라고 할 수 있다. 라울 쿠타르는 ‘나는 필름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시네마를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했던 고다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렇게 보자면 트뤼포는 분명 필름을 만든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 편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갔던 사람이 트뤼포라고 한다면, 영화는 도대체 무엇인가, 영화란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사람이 고다르였다는 의미인 듯하다.

트뤼포는 대중적이며 장르적인 영화를 만들면서도 작가적 시각과 예술영화의 품격, 프랑스적인 멜랑콜리가 같이 한 데 섞인 영화를 만들었다. 제임스 모나코는, 트뤼포라는 사람은 사람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일까에 대해서 가장 내밀하면서도 보편적인 논리를 갖고 경박하지 않은 유머와 관능성과 영화적 재미를 함께 갖춘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트뤼포가 영화역사상 가장 뛰어난 감독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가장 많은 애정을 받고 있는 감독이지 않을까 싶다. (정리: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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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의 영화 중 제대로 본 것은 지난 해 시네마테크의 <와이드스크린영화특별전>에서 본 <맨하탄>이 유일하다. TV에서 간혹 방영해 준 우디 앨런의 영화는 집중해서 본 적이 없는 것 같고, 그의 영화에 대해서는 오며가며 들은 얘기들을 통해 알고 있는 게 전부였다. 우디 앨런 영화는 내게 약간은 유머러스하고 지성에 대해 조롱하는 태도를 보여주며 영화 속에 나오는 우디 앨런이 수다스럽다는 정도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올해 시네바캉스 개막작이었던 <또다른 여인>을 상영하기에 앞서 프로그래머는 “영화가 다소 ‘시리어스’할 테니 준비된 맥주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드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 점점 몰입해가면서 내가 생각했던 우디 앨런 영화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진지하고 사려 깊은 영화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극장로비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영화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감흥에 젖은 채로 그들과 영화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혼자서만 더 흥분한 채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수다를 떨었던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아려왔다. 생각 외로 진지하면서도 감동적인 영화는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게 해서 마음을 흔들어놓기도 했다.


베르히만의 <산딸기>에 오마주를 바쳤다고 하며, 혹은 <페르소나>의 우디 앨런식 버전이라는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서 베르히만의 영화와 이 영화의 다른 느낌들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았다. 성공한 인물의 이면과 과거의 아픔을 돌아본다는 점에서 <산딸기>와 <또 다른 여인>의 이야기 구도는 비슷하다. 또한 인물의 다른 이면을 ‘또 다른 자아’를 등장시켜 보여준다는 점에서 <페르소나>와의 유사성이 보인다. 하지만 <산딸기>나 <페르소나>는 약간은 무거운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인간관계나 자아의 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인물들의 대사나 표정은 차갑고 때론 공포스러운 측면이 있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는 영화 속 이미지들은 상징적이고 모호하다. 이에 비해 <또다른 여인>은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가 느껴지는 영화다. 인물에 얽힌 과거와 숨겨진 이면은 모호하거나 상징적이지 않고 대사나 내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강약과 밀도를 적당히 잘 조정해서 과거와 숨겨진 이면에 차근차근 조심스레 접근해가고 있다. 그 과정은 그녀의 분신과 같은 ‘또 다른 여인(미아 패로 분)’이 정신분석 상담의에게 털어놓는 삶의 고통에 그녀가 깊이 귀 기울이는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지나 롤랜즈의 빛나는 표정연기는 그녀가 관계의 진실과 자신의 상처에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충격과 고통을 절절하고 실감나게 보여준다. 매끄럽고 담담하면서도 밀도와 강도를 더해가는 영화의 전개방식은 그녀의 감정의 변화와 조응해가면서 지켜보는 관객도 그녀의 삶을 돌아보는 데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듯하다.

<또다른 여인>의 첫 장면은 <산딸기>의 첫 장면에 대한 오마주로 시작된다. 마리온 포스트의 내레이션을 통해 보이는 사진 속에 있는 인물인 현재의 남편, 남동생, 아버지, 그리고 현재의 남편의 딸과의 관계에서 숨겨진 진실들이 드러난다. 그녀의 분신과도 같은 ‘또 다른 여인’의 등장은 그녀가 관계의 진실과 마주할 수 있게 하고, 자신의 숨겨진 내면을 살피면서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게 한다. 과거의 단짝이었던 친구 클레어와의 만남과 오랜 전 이혼한 첫 번째 남편과의 기억은 그녀의 잊힌 과거와 상처를 돌아보게 한다. 마리온을 둘러싼 이러한 인물들과의 관계가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그녀의 사회적 자아의 가면(페르소나)도 한 꺼풀씩 벗겨진다. 속마음을 숨기고 감정이 메마른 채로 오래도록 살아온 마리온의 삶은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의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회복하게 된다. 마리온 포스트(지나 롤랜즈 분)는 50세의 성공한 여대 철학과 학과장으로 재혼한 남편의 딸과도 잘 지내는 등 별 다른 문제없이 평온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것은 책을 집필하기 위해 얻었던 집의 벽 너머로 들려오는 한 여인의 고통스럽고 애절한 목소리였다. 벽에서 맨 처음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때의 지나 롤랜즈의 표정은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여성의 두렵고도 고통스런 모습을 절절히 보여준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가운데 촉촉이 젖어 들어간 두 눈, 입술에 일어나는 경련, 목 근육의 움직임, 떨구어진 고개 등 그녀의 표정과 제스처는 보는 이의 가슴을 흔들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카메라는 그녀의 모습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결혼생활에 대해 회의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바로 마리온 자신의 심경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마리온이 문틈으로 엿본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30대쯤 되어 보이는 임산부였다. 이때부터 마리온은 ‘또 다른 여인’의 삶 속으로, 동시에 자신의 숨겨진 또 다른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날 저녁 파티에서 이제 막 50줄에 접어든 마리온과 그녀의 친구들이 주고받는 말들은 마리온을 비롯한 그들의 현재 삶의 허망함을 엿보게 한다. 특히나 섹스에 관한 농담들은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점잖고 지성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벽 너머에서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를 들은 그 날 이후 그녀가 잘 몰랐던 관계의 진실들이 하나 둘 드러난다. 남동생인 폴과 이혼하려는 올케는 남동생이 마리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그녀에게 전한다. 우디 앨런은 그녀를 둘러싼 관계의 진실과 그녀의 감춰진 내면을 보여주는 방식을 다양하게 시도하는데, 마리온의 회상을 통해, 앨범 속 과거로 들어가서, 옛 친구를 등장시켜서, 그리고 꿈속에서의 연극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우선 그녀의 회상장면. 옆방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에 더 한층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는 결혼 전에 남편 집에서 했던 파티를 떠올린다. 그날 남편 친구인 래리 루이스는 그녀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해 왔지만 거절했다. 래리는 그녀가 머리로만 사랑하려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남편의 전 부인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 켄이 보여준 위선적인 태도를 비난하기도 했었다. 현재 남편의 딸과 함께 아버지의 집을 방문한 마리온은 앨범을 들여다보다가 또 다른 자신의 과거와 대면한다. 앨범 사진을 통해 과거로 들어간 카메라는 동생인 폴과 아버지가 다투는 장면을 보여주며, 마리온은 그 과거로 들어가 폴에게 말을 걸고 있다. 거기서 드러나는 진실은 그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아버지가 폴에게 취직을 강요했다는 점이다. 이 장면은 그녀가 회상한 장면은 아닌 듯한데, 그녀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장면인 듯 보인다. 폴과 아버지가 다투는 장면을 그녀가 실제로 본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도 무의식중에 그것을 은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돌아온 마리온은 ‘또 다른 여인’을 발견하고 무작정 그녀를 쫓아간다. 그녀가 사라지고 없는 자리에 그날 앨범을 보며 떠올렸던 친구인 클레어가 우연히 나타난다. 클레어는 자신의 남편이 마리온과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를 비난한다. 그녀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유혹하려 했기에 그녀와 절교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단짝친구라 여겼던 클레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심란해진 마리온은 어머니가 읽던 릴케 시집을 읽는다. 그녀는 16세 때 릴케의 <표범>이란 시를 읽고 죽음의 이미지에 관해 글을 썼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눈물자국이 남겨진 페이지에서 인상깊은 한 구절을 읽는다. “어디에도 갈 곳이 없을 때 삶은 변화해야만 한다.”

다음 날도 그녀는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만 그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마음이 심란해진 그녀에게 세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녀의 관계의 진실과 내면에 숨겨진 비밀의 열쇠가 되는 이미지들이다. 하나는 우리에 갇힌 검은 표범의 이미지, 또 하나는 라 지오콘다의 가면, 또 다른 하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희망1>이라는 그림이다. 이어 그녀는 그동안의 그녀의 삶, 혹은 사회적 자아의 가면을 쓴 그녀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는 현재 남편의 딸이 그녀에 대해 했던 말을 떠올린다. 로라는 남자친구와 집에서 정사를 벌이다가 들켰고, 마리온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면서 남자친구에게 말한다. “그녀가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만 매사에 사람을 판단하며 사람을 내려다본다. 남동생에 대해 하는 말도 그렇다. 내 자신이 마치 싸구려로 취급받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매사에 도덕적이고 지성적이며 점잖은 마리온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말이다. 그 길로 마리온이 남동생을 찾아가 알게 되는 진실은 자신이 남동생이 쓴 글에 대해 너무나 정직하게 비판함으로써 그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이다. 한편, 마리온은 레스토랑에서 만난 과거의 제자였던 한 여성에게는 그녀의 삶을 변화시켜 주었던, ‘윤리와 도덕적 책임의식’에 대해 너무나도 멋진 강의를 했던 철학과 교수로 기억되고 있다.

하나둘씩 관계와 자신의 이면을 확인하게 된 그녀는 꿈속에서 관계와 과거에 대해 보다 직접적이고 선명한 진실과 마주친다. 꿈에서 그녀는 옆방 정신과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정신분석 상담의는 ‘또 다른 여인’에게 그녀가 인류애, 도덕 등 추상적인 가치에만 관심이 있고, 정작 자신의 삶을 돌볼 줄 모른다고 말해준다. 상담을 받으러 등장한 아버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살았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게다가 남동생 폴에게 잘해주지 못하고 마리온에게는 너무 몰아 부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꿈 장면에서 마리온은 친구인 클레어, 지금의 남편 켄, 래리 루이스, 그리고 오래 전에 이혼했던 첫 남편 샘이 등장하는 연극을 지켜보고 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그 모든 장면을 ‘또 다른 여인’이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래리와의 대화를 통해서는 놓쳐버린 사랑에 대한 화해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녀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가장 끔찍한 진실이 드러난다. 전남편은 마리온 때문에 숨이 막혀서 ‘질식사’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학창시절에 교수였던 샘의 학식을 존경하고 흠모하여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그가 떠올린 기억 속에서 마리온은 샘에게 라 지오콘다 가면을 선물했고, 마리온은 그 가면을 쓴 채로 남편과 키스를 했다. 마리온은 이 과거를 떠올리며 사회적 자아로서 성공하기 위한 자신의 욕망이 반영된 그 가면의 상징적 의미를 찾아냈을 것 같다. 그때부터 그녀는 이미 가면을 쓰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다음날 남편의 결혼선물을 고르려다 들어간 골동품가게에서 ‘또 다른 여인’이 구스타프 클림트의 <희망1>을 바라보면서 울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울고 있는 그녀를 달래며 그 그림이 낙관적인 내용이라고 말하다가 그녀와 식사자리를 갖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부터 그녀에게 이끌렸던 마리온은 자신의 마음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전 남편 샘과의 결혼생활에서 아이를 유산한 일을 이야기한다. 샘은 그녀에게 감정이 메말랐다며 비난하고 고통스러워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학문연구를 위해 아이를 유산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그녀는 집필실에 갔다가 옆방에서 들려오는 그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는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사는 여인. 그 여자 나이가 돼서 텅빈 내 인생을 보고 싶지 않다”고 그녀는 말한다. 게다가 그녀는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그녀의 지금 남편이 바람피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녀의 나레이션이 들리는 가운데 그 장면이 스크린 속에 보인다. 마리온은 가슴이 찢어질 듯한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무너져 내린다. 그녀의 과거와 관계의 진실이 한꺼풀씩 벗겨지다가 마지막에 들은 충격적인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지금의 남편과의 관계도 정리하며 남동생 폴을 찾아가 화해하고 남편의 딸에게도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고 말한다. 정신과 상담소를 찾아가 그 여인을 찾지만 그녀는 주소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집필실에서 마음을 진정하고 글을 써내려가던 마리온은 자신을 사랑해 준 래리가 쓴 소설에서 헬렌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담긴 부분을 읽어내려간다. 거기에는 그녀와 래리의 한 때의 열정적이고 아름다웠던 사랑의 순간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녀는 소설을 읽고 나서 추억을 정리하며 처음으로 평온한 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우리 속에 갇힌 검은 표범’과도 같았던 그녀가 사회적 자아의 가면을 벗고 비로소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았다. 영화 내내 심각한 표정으로 상처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아프게 파헤쳐가던 지나 롤랜즈의 표정이 처음으로 평안해진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러닝타임이 비교적 길지 않았다는 데 적잖이 놀랐다. 짧은 시간에 지나 롤랜즈를 지켜보면서 그녀와 함께 아파하면서 내면의 여행을 함께 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지나 롤랜즈가 짧은 시간에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놀라웠다. 아마도 그녀가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열려 있었기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자신의 내면을 대변하는 듯한 그 여인의 목소리가 그녀의 가슴을 꿰뚫지 않았다면, 그녀가 그 상처에 반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혼에 비수를 꽂는 강렬한 상처로 마음이 할퀴어진 듯한 여인의 표정을 지나 롤랜즈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여배우가 있을까 싶었다. 그녀의 제스처와 표정은 그 너머의 영혼을 통해 가면 뒤에 감춰진 삶이 드러나는 순간의 깊은 상처와 고뇌를 엿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교적 길지 않은 상영시간 동안 한 여성의 삶의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은 영화만이 가진 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달리 <또 다른 여인>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 꿈의 세계, 얽힌 관계들, 그리고 인물의 이면들을 동시에 펼쳐 보여주는 영화만이 지닌 힘이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지나 롤랜즈가 한 때의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을 추억하며 평온한 마음을 되찾게 해 준 감독의 배려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비록 그녀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고 난 뒤에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의 부박한 삶에서 영화가 그 현실을 대신해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관계와 사랑의 문제에 마음이 허덕일 때 이 한 편의 영화는 가끔씩 읽게 되는 심리치유 에세이보다 더 마음을 위로해줄 것 같다. 우디 앨런이 사려 깊은 연출로 내면 여행을 안내하고 있고, 지나 롤랜즈의 표정연기가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김수현)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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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호 2010.08.05 2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