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시네바캉스 서울: 작가를 만나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믿고 싶어서 계속 매달리는 인물들의 이야기” 

<독전: 익스텐디드 컷> 상영 후 이해영 감독과의 대화

 

이해영(감독) 아까 상영관 앞에서 만난 관객분이 <독전: 익스텐디드 컷>보다 개봉판이 더 완성도가 높다고 하시더라(웃음).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컷이 더 많이 붙어 있으니 <독전: 익스텐디드 컷>이 감독의 의도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원래 오리지널 버전이 내 의도가 가장 많이 반영된 버전이다.
사실 처음에는 <독전: 익스텐디드 컷> 제작을 거절했었다. 영화가 두 개의 버전으로 남기를 바라지 않았고, 특히 엔딩에 다른 컷을 넣는 건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개봉 후 정말 많은 분들이 제안을 해주었고, 그래서 일종의 팬서비스 개념으로 만들기로 했다. 많은 분들이 ‘감독판’ 잘 봤다고 하시던데(웃음), 감독판은 아니다. 만약 오늘 “독전”이란 영화를 <독전: 익스텐디드 컷>으로 처음 본 분이 계시다면 굳이 개봉판을 다시 보지는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주변에 아직 <독전>을 안 본 분이 계시면 개봉판을 보라고 권해주면 좋겠다.

모은영(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원작에 대한 얘기를 먼저 물어보고 싶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의 원작은 두기봉 감독의 <마약전쟁(독전)>(2014)이다. 이해영 감독의 전작을 본 분이라면 <마약전쟁>과 어떻게 연이 닿았는지 궁금해할 것 같다.

이해영 <독전>의 제작사인 용필름 임승용 대표에게 제안을 받았다. 당시 두 가지 제안을 받았다. 하나는 <마약전쟁>의 리메이크였고, 하나는 여성들이 주인공인 스릴러였다. 그런데 내 전작이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경성학교>가 흥행에도 실패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변화에 목 말라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민망하지만 한국에서 데뷔작을 만드는 건 열 명 중 한 명이고, 데뷔작이 흥행에 실패했을 때 두 번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열 명 중 한 명이다. 그런데 나는 세 번째 영화까지 흥행이 안 됐다. 연속으로 흥행이 안 되면서도 네 번째 영화를 만든 사람은 내가 알기로 나밖에 없다. ‘아 드디어 삼진 아웃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독전> 제안을 받았고, 이제 관성의 고리를 끊고 ‘갱생의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험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사실 두기봉이란 이름은 영화감독들에게는 너무 대단한 이름이다. 이 사람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건 약간 미친 짓이고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고 그냥 과감하게 달려들었다. 많은 분들이 알겠지만 두기봉은 아주 비정하고 하드보일드한 장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고, <마약전쟁>도 뜨겁고 날카로운 ‘남자 영화’다. 하지만 그런 점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심 나도 즐겁고 관객도 즐거운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기도 했었다. 결국 <독전>을 만난 건 내겐 정말 행운이었다.

모은영 <독전>에는 원작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차승원 배우가 연기한 브라이언이다. 기독교적 요소 같은 이 인물의 몇 가지 설정은 한국적 상황을 드러내기에 적절했던 것 같다.

이해영 먼저 ‘이선생’의 정체를 원작과 다르게 설정했다. 그 과정에서 전반부는 진하림(김주혁)이 이야기를 맡아주었고, 후반부에도 강력한 인물이 하나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브라이언이었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믿음이라든지 종교에 관련된 뉘앙스가 전혀 없었다. 그냥 재벌 2세, 그냥 봐도 돈 많아 보이는 사람, 그런 심심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본 차승원 배우가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캐릭터가 너무 재미없다고 하더라(웃음). 그렇게 한 30분 정도 캐릭터가 재미없다는 얘기를 계속 듣다 보니 내가 왜 혼나고 있지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모든 말발을 동원해 굉장히 열심히 이 캐릭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때 <더 마스터>(폴 토마스 앤더슨, 2013)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이야기도 했었다. 그렇게 한창 설명을 하니 차승원 배우가 방금 그렇게 말한 그대로 써달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내가 무슨 말을 했지 하면서 앓아누웠었다(웃음).

그렇게 차승원 배우에게 맞춰서 시나리오를 고치고, 성경도 참고해 가면서 브라이언을 좀 더 한국적이고 괴상하고 기이한 캐릭터로 만들 수 있었다. 만약 차승원 배우가 내가 처음에 썼던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정말 재미없었을 거다. 그만큼 차승원 배우는 어떻게 해야 이 캐릭터가 잘 살아날 수 있고 관객이 더 이입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모은영 이 영화의 제목은 “독전”인데 영어 제목은 “Believer”다. 그만큼 믿음이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 극 중 모든 사람이 믿음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거나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하거나 누구를 믿을지 계속 찾고 있다.

이해영 각 인물들을 대표할 수 있는 말이 결국 어떤 것을 믿는다, 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가 믿는다고 믿는 것에 매달리는 자들이다. 원호와 락은 물론 진하림과 브라이언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믿고 싶어한다. 사실 믿음을 커다란 주제로 잡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촬영이 다 끝난 후 후반작업을 할 때 임승용 피디가 “Believer”라는 영어 제목을 제안했다. 처음에 그 제목을 듣고 ‘에? 신자?’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좋은 제목 같았고, 지금은 이 영화를 대표할 수 있는 표현이자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대만에서 <독전>이 개봉했을 때 제목이 “신도(信徒)”였다.

모은영 이 영화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보여주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첫 장면을 보면 노르웨이의 설원을 향해 쭉 들어가는데, 마치 정말 이상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고 보면 <경성학교>의 첫 장면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해영 일단 조진웅 배우가 노르웨이의 설원에서 운전을 하는 얼굴이 너무 좋아서 내가 옆에서 계속 찍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카메라를 들고 메모리를 끊임없이 썼고, 조진웅 배우는 직접 운전을 하면서 노르웨이의 설원을 굉장히 오랫동안 달렸다. 그렇게 했던 게 조진웅 배우에게도, 나에게도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막상 갖고 와서 보니 다 쓸 만하지는 않았지만(웃음), 그래도 이 순간들로 영화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오연옥(김성령)과 이학승 회장, 그리고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브라이언의 장면으로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원호의 얼굴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이 얼굴로 영화를 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원호의 입장에서 보는 플래시백 구조가 만들어졌다. 즉 원호가 이 지난한 여정들을 반추한 다음 락을 대면하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엔딩의 뉘앙스가 더 풍성해지기를 바랐다. 역시 엔딩은 익스텐디드 컷보다 오리지널 버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높은 곳에서 찍은 촬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일단 자동차를 드론으로 찍으면 너무 멋있게 느낀다. 약간 설레기까지 한다. 어렸을 때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을 봤을 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산길을 달리는 자동차를 카메라가 따라가는 것만으로 이렇게 영화적인 황홀감과 긴장감이 발생하다니. 그래서 <경성학교> 때 이런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그런 느낌의 길을 찾는 게 정말 어려웠다. 한국은 전봇대가 안 걸리는 데가 없다. 그래도 정말 어렵게 그 장소를 섭외해서 찍었는데 나중에 다른 영화에서 그 컷 조금만 잘라달라는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다(웃음).
노르웨이에서는 드론 촬영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바람이 굉장히 세게 불어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심하게 흔들렸다. ‘스테디’하게 팔로우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찍었다. 여담을 하나만 얘기하자면, 노르웨이 스탭들이 정말 열심히 일을 하더라. 원호의 차를 현지에서 렌트했는데 헌팅을 다니다 보니 차가 자연스럽게 더러워졌다. 흙탕물이 묻어 있는 그 느낌이 참 좋았는데, 다음 날 현지 스탭들이 너무 깨끗하게 타이어까지 세차를 해놓았더라(웃음). 지금 영화를 보면 희한할 정도로 차가 깨끗하다. 원래 NG인데 어쩔 수 없었다.

모은영 용산역은 매우 일상적인 공간인데 이 영화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사실 기차역이라고 하면 서울역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 영화에서는 용산역이 나온다.

이해영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곳에 마약 본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브라이언이라면 마약 공장을 어디에 차리고 싶을까? 나는 돈과 권력이 있고, 마약 제조 기술자야 얼마든지 불러올 수 있고, 모든 걸 선택만 하면 되니까 제일 중요한 건 유통이 아닐까? 이런 고민의 결과 교통의 핵심 지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서울역이 아니라 용산역인 이유는... 용산역은 원래 뿌리가 없던 곳에 거대한 건물을 도시에 콱 때려박은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나는 한국 특유의 멋없는 느낌을 정말 좋아한다. 용산역도 그렇고 왕십리역도 그렇고, 그런 거대하고 못생긴 건물에 대한 ‘향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 시청 같은 건물도 그렇다. 처음에는 원래 있던 예쁜 건물을 뒤에서 덮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라 뜨악했는데, 보면 볼수록 저게 바로 서울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 그런 맥락에서 용산역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관객 1 용산역 장면에서 처음 여름 장면에서는 기둥이 연두색이었는데, 나중에는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다.

이해영 용산역은 공사를 정말 많이 한다. 헌팅을 갈 때마다 주차장 모양이 바뀌어 있고, 한 번 찍으러 갈 때마다 외관이 변한다. 영화의 처음 부분을 찍을 때는 주차장이 연두색이었는데, 나중에 엔딩을 찍으러 갈 때는 다시 페인트칠을 해서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중에 CG를 써서 연두색으로 다시 바꾸었는데 방금 지적하신 부분은 내가 놓친 장면이다.
찾아보면 그런 장면들이 꽤 많다. 어딘지는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의 몸에 화약이 연결된 선이 보이는 장면도 있다. 그게 마치 줄넘기처럼 움직이는데(웃음)... 그런 장면들이 여전히 있다.

관객 2 영화를 보며 속도감 있는 편집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늘 네 번째 봤는데 감독님이 소리로 어떤 리듬을 살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를테면 오연옥이 라이터를 켜는 소리, 진하림이 볼펜을 놓는 소리, 보령(진서연)이 소독약을 흔들면서 뚜껑을 여는 소리 같은 것들. 이런 부분이 영화의 리듬감에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이해영 그런 부분을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편집할 때 그런 리듬이 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한다. 컷이라는 게 그냥 막 넘길 수 없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인물의 감정이기 때문에 일단 감정에 맞춰 리듬을 만든다. 그런데 가끔은 어떤 소리가 포인트가 되면 좋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 바람을 갖고 편집을 한 다음 음악감독이 음악을 붙이면 정말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방금 말한 라이터 소리 같은 건 실제 동시녹음이 아니다.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많은 소리를 섞고, 거기서도 하이(High)를 높이고 로우(Low)를 깎아서 만들어낸 소리다. 다 어떤 의도가 반영이 된 결과물이다. 마지막에 원호와 형사들이 탄 차가 내려가다가 “지원 요청해!”라는 대사가 나오고 그때 딱 맞춰서 자동차가 끼익 소리를 내면서 설 때,  이런 소리와 컷에도 어떤 박자를 맞춘다. 이런 건 나뿐 아니라 많은 감독들이 신경 쓰는 부분일 것이다.

관객 3 <독전>의 시나리오는 정서경 작가와 함께 작업한 걸로 알고 있다. 이 영화는 주로 박찬욱 감독과 작업을 했던 정서경 작가에게도 의미가 큰 작품이 아닐까 한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독전>의 제작사인 용필름에서 정서경 작가와 함께 <아가씨>를 제작했었다. 임승용 대표와 정서경 작가가 먼저 <독전>의 시나리오 초고를 만들었다. 그후 내가 <독전>을 연출하기로 결정한 후 정서경 작가의 2고를 받았다. 그전까지는 내가 먼저 시나리오를 다 쓴 다음 다른 작가와 함께 고쳐가는 작업을 했었는데, 이렇게 작가와 처음부터 각본 작업을 함께 한 건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서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정서경 작가와 대화를 많이 했다. 함께, 그리고 서로 번갈아가며 4고까지 썼고, 다음에는 내가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거의 1년 동안 13, 14고까지 썼다.
정서경 작가에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영화 전체를 바라보는 정서를 구현하는 방법이었다. 장르물 안에서 정서를 어떻게 놓치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들. 그리고 락의 캐릭터도 정서경 작가가 만들었다. 그런 부분이 <독전>만의 유니크한 정서라고 생각한다. 캐릭터 구축과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에 도움을 많이 받았고,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모은영 거의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이해영 <독전>은 장르물을 처음 만든 신인 감독의 영화라서 흠결도 많고 채워지지 않은 부분도 많다. 그런 부분들을 여러분의 생각으로 많이 채워주어서 완성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과 소통을 할 때 영화가 진짜 영화가 된다는 걸 글로만 알다가 이번에 처음 몸소 느꼈다. 다시 한 번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곳 극장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어떤 분에게는 고루하고 어려운 영화, 옛날 영화만 트는 곳으로 느껴져 오기 꺼려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목도, 감독도 모르고 그냥 시간만 맞춰 와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분명 좋은 영화를 상영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오면 좋겠다.

 

일시 8월 25일(토) <독전: 익스텐디드 컷> 상영 후

정리 권세미 관객에디터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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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시네바캉스 서울: 작가를 만나다] 

“관객에게 위로를 주는, ‘선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리틀 포레스트> 상영 후 임순례 감독과의 대화

 

정지연(영화평론가) <리틀 포레스트>의 전작이 <제보자>였다. <제보자>가 2014년에 개봉을 한 뒤 거의 4년 만에 다시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리틀 포레스트>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데 연출을 임순례 감독이 맡는다고 해서 크게 기대했었다. 어떻게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처음 계기를 듣고 싶다.

임순례(감독) 사실 <제보자>가 끝나고 중국에서 영화 연출 제의를 받았다가 결과적으로 잘 안 되면서 텀이 좀 생겼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중에 <제보자>를 만들었던 제작사의 대표가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리메이크를 제안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가 40대 중반 남성이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 않나? 그분이 평소 만들던 영화와 색깔도 많이 다르다(웃음). 그런데 대표님이 개인적으로 그 영화를 보고 매우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하더라. “감독님, 저도 한국 관객에게 위로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제안했다. 내가 교외에서 십 년 넘게 생활하고 있고, 소위 ‘자연친화적’ 성향인 걸 알고 <리틀 포레스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그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봐도 너무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화들이 많기 때문이다. 볼 때는 재미있게 보지만 보고 나면 뭔가 나도 폭력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렇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 관객들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또 한국 영화 제작비가 너무 올라가고 있다. 100억, 200억을 우습게 여기는 풍토에 약간이라도 저항을 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컴팩트하게, 소소한 이야기를 갖고 위로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정지연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먼저 본 동료가 “내러티브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된다. 별 사건도 없는데 재밌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감독님은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한국화’를 해야 했을 텐데, 각색이나 연출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하다.

임순례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는 고민을 좀 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원작이 너무 ‘일본스러’웠다. 이걸 한국의 상황에 맞춰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같은 농경문화고 같은 농촌이지만 영화 속 음식도 너무 다르고, 결론의 결도 굉장히 다르다. 일단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의 결론에서는 그 마을이 오랫동안 유지한 전통 문화를 주인공이 수용하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마을만의 어떤 독특한 전통은 파괴된 게 사실이다.

또 한국 관객은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볼 때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어떤 호의를 품고 봤을 것이다. 이 영화의 느리고 독특한 리듬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그 관객수가 만 명에서 이만 명 사이였다. 일본에서도 매니아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큰 흥행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독립영화가 아닌 이상 그보다는 많은 관객이 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원작의 리듬과 호흡을 어떻게 대중적으로 가져올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젊은 여성이 고향 마을에 가서 집 주변에 있는 식재료를 갖고 스스로 요리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당연히 가져가야 하는 설정이다. 그런데 원작에서는 엄마가 훨씬 일찍 집을 떠난다. 만약 한국에서 엄마가 어린 딸을 혼자 시골에 두고 가면 어떨까? 이건 그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선택이다. 그리고 단순히 우체부 아저씨가 뭘 가지고 와도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치안과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었다.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 농촌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는 걸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만드는 장치도 함께 고민했다. 관객들이 주인공을 계속 불안하게 지켜보도록 만들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혜원(김태리)의 주변의 친구들이 집을 자주 찾아오고, 고모도 가까운 곳에 살고, 진돗개도 키우는 설정들이 들어갔다. 엄마도 혜원이 좀 더 자란 뒤에 떠나는 걸로 했다. 

참고로 제작자가 우리가 만드는 <리틀 포레스트>도 1부, 2부로 나눌지 물어봤다. 내가 그건 안 된다고 했다. <신과 함께>는 관객들이 2부를 기다릴 수 있겠지만 <리틀 포레스트> 1편을 보고 2편을 기다리는 관객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웃음). 그렇게 한 편 안에 사계절을 전부 넣기로 했다. 이런 고민들이 전부 합쳐져 오늘 본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가 만들어졌다. 

정지연 추가로 질문하자면, 일본의 원작은 이야기가 뚜렷한 편이 아니다. 캐릭터들도 다들 활기찬 느낌은 아니고, 차분한 인물들이 느긋하게 지내는 느낌이다. 그런데 한국의 <리틀 포레스트>는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더 뚜렷한 편이고 한국 이십 대 청년 특유의 생기 같은 것도 잘 느껴진다. ‘대중적’인 화법을 고려했을 때 어떤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임순례 일단 영화에 커다란 서사가 없고, 주변 인물도 친구 두 명과 고모, 엄마, 우체부 정도라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중 친구들이 양날의 검이었다. 이들 때문에 영화가 지루해지지 않지만, 동시에 이들은 혜원의 혼자 있는 시간을 적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혜원은 고민을 안고 있는 친구라서 혼자 조용히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친구들이 너무 자주 찾아온다(웃음). 이 부분을 많이 고민했지만 일단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좀 밝게 가져가고 싶었다.

사실 혜원이 처한 상황이 굉장히 어둡다. 시험도 다 떨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도 없고 돈도 없다. 이런 우울한 현실을 우울하게 보여주면 관객도 같이 우울해질 것 같았다. 이런 색깔을 잡을 때 김태리 씨도 고민을 많이 했다. 이런 많은 고민을 가진 배역이 이렇게 밝아도 되나? 같은 고민이었는데, 이 부분은 내가 밝게 가자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밝음을 보여준다고 해서 혜원이 갖고 있는 고민이 없어지는 건 아니고, 이 영화의 밝음이 관객을 영화 끝까지 이끌고 독려하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영화 안에 사계절이 다 들어가다 보니 호흡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기도 했다. 선택을 해야 할 문제였고, 연출자로서 밝음을 선택했다.

정지연 두 가지가 궁금하다. 하나는 혜원이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정리가 깔끔하게 안 된 상태에서 고향으로 와 헤어지기 전까지 관계를 조금 더 유지한다. 또 엄마와의 관계도 인상적이다. 영화의 엔딩이 약간 열려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엄마가 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혜원이 활짝 웃으며 엄마를 이해했을 수도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준다. 이렇게 엄마와의 관계가 일본 원작보다 좀 더 커진 면이 있다.

임순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일 크게 잡았다. 나는 혜원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 것, 임용고시 도전 같은 여러 가지 결정들이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봤다. 엄마와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혜원으로 하여금 원하지 않은 선택들을 하게 만든 것이다. 엄마로 인한 트라우마가 극복이 안 된 상태에서 연애든, 취업이든, 진로든 계속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걸로 봤다.

하지만 엄마 없는 집에서 1년 동안 요리를 하며 엄마와의 삶을 복기했고, 이를 통해 엄마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확인했고 자연스럽게 본인의 앞으로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이런 흐름을 영화의 중심으로 잡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자친구와의 결별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은 아니었다. 혜원이 그 일로 심한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지연 감독님은 그동안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계속 작품에 녹여냈다. <리틀 포레스트> 역시 취업에 실패한 이십 대 청년이 자신의 문제를 정리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캐릭터들을 통해 청년 세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제시하고 싶은 희망의 모습이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이건 약간 사소한 건데,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의 엔딩을 보면 주인공이 마을 축제에 가서 전통춤을 춘다. 전통적인 공동체에 녹아드는 결론이다. 그런데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에는 의외로 농촌 공동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다루지 않았다.

임순례 이 영화에서는 철저하게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을 다뤄보고 싶었다. 요즘 귀농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 친구들이 전부 그곳 사람들과 잘 섞이는 것 같지는 않더라. 농촌에서 살지만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조금은 옛날 세대라서 엔딩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다. 여러 버전의 엔딩을 구상했는데 그중 하나는 혜원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동네 어르신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그런 모습을 담은 엔딩도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젊은 귀농 가족과 인사를 하거나, 동네 마을회관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르신들에게 육개장 같은 요리를 대접하는 것도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를 본 우리 스탭들이 경악을 하더라. 무슨 <6시 내 고향>도 아니고 너무 촌스럽다는 거다(웃음). 그래서 마을 공동체에 섞이기보다는 자기 생활을 유지하며 뭔가 협조할 게 있으면 협조한다는 식으로 정리를 했다. 일본은, 특히 시골에는 공동체 문화가 좀 남아 있다고 보는데 한국은 사실 그런 문화가 거의 없다고 본다. 이런 점을 반영했다.

정지연 다른 인터뷰를 보니 감독님이 이번 영화는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제일 예쁜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비주얼 컨셉을 많이 신경 썼다고 했는데,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촬영의 기본 원칙 등을 큰 틀에서 들어보고 싶다.

임순례 일단 인물이 많이 없는 영화고, 동시에 김태리 배우가 거의 모든 장면에 다 나온다. 그래서 일단 김태리 씨가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 자연, 소품 등 모든 피사체들이 굉장히 예쁘게 나오길 바랐다. 그래서 조리 도구나 음식 플레이팅이나 자연의 색깔 같은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감독인 이승훈 감독이 <최악의 하루>(김종관), <더 테이블>(김종관)을 찍었었다. 그분의 촬영을 보니 여성 배우들을 정말 예쁘게 찍더라. 그래서 추천을 받고 이 영화들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김태리 배우도 잘 찍을 것 같아서 함께하기로 했다.

정지연 사계절을 다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각 계절마다 3주씩 촬영했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실제로 스탭들이 농사도 지었다고 하는데, 이런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감독님도 1년 동안 기다리며 영화를 찍는 건 처음이었을 것이다.

임순례 어쨌든 사계절 동안 사계절을 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계절은 다 실내에서 찍고 인서트만 따로 찍는다든가, 이런 방식은 쓰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사계절을 실제로 찍으면서 각 계절마다 어떤 작물이 나고, 하늘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관광지로서의 아름다움 같은 게 아니라 평범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싶었다. 워낙 시골을 좋아하고, 영화를 빨리빨리 찍는 사람이 아니라서 개인적으로는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니까... 김태리 배우는 <1987>(장준환)을 찍고 있었고 류준열 씨는 <독전>(이해영)을 찍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배우들이 영화를 찍는 동안 마음속으로 간직해야 하는 정서들이 있다. 그런데 특히 <독전> 같은 건...(웃음). 배우들이 그 감정을 오가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하더라.

관객 1 영화의 영상도 정말 예뻤지만, 소리에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 눈 밟는 소리라든지, 벌레 우는 소리, 튀김하는 소리 등등. 혹시 특별히 더 신경 쓴 소리가 있는지 궁금하다.

임순례 이 영화에 자극적인 요소가 없다 보니 시각적 요소는 물론 자연의 소리도 잘 전달하고 싶었다. 특히 대사가 많지 않다 보니 빗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 소리, 음식 먹는 소리 같은 걸 잘 담으려고 했다. 후반 작업할 때도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썼다.

관객 2 중간에 혜원이 다시 서울로 간다. 거기서 취직을 해서 서울에서 사는 것 같았는데, 곧 다시 시골로 돌아온다. 이때 시골로 온 게 완전히 정착을 하려고 온 건지 다른 목적을 갖고 온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자기는 도시가 더 맞다고 생각한 걸 수도 있을 것 같다.

임순례 서울에 간 건 보증금 빼러 간 거다(웃음). 혜원은 시골에서 정말 귀농을 할 수도 있고 다시 다른 어떤 삶을 살 수도 있다. 정해진 삶은 없을 것 같다. 여기 시골도 완전히 정착을 한다기보다는 ‘아, 봄이다!’ 하며 그냥 몇 달 동안만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시 임용을 준비할 수도 있고, 재하와 사과를 팔 수도 있다. 여러 선택이 있겠지만 그 무엇을 하든 간에 어쨌든 혜원은 이전의 삶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시 8월 11일(토) <리틀 포레스트> 상영 후

정리 권세미 관객에디터

사진 목충헌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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