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6.04 2층집 금발 소녀의 은밀한 매력
  2. 2010.05.26 경계와 침입으로의 여행
  3. 2010.05.19 영화의 21세기, 미래의 시네마테크

[영화읽기]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금발 소녀의 기벽>


많은 평자들이 이 영화가 명백히 루이스 부뉴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하였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나는 문득 오즈 야스지로가 떠올랐다. 아니 더 정확하게 오즈 야스지로의 2층 방에 살고 있는 과년한 딸들이 생각났다. 2층에 살고 있는 오즈의 딸들과 올리베이라의 금발 소녀.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즈의 그녀들이 2층의 공간으로부터 사라지는 결정적 순간의 도래를 기다리는 통과자이며, 영화의 내러티브는 결국 그녀들이 오즈적인 ‘無'로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영화의 금발 소녀 역시 오즈의 딸들처럼 결혼할 시간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창문을 열고 자기를 그 2층 방에서 데리고 나갈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부름을 건너 편 2층에서 마카리오가 듣는다. 금발 소녀가 2층 창문가에 나타날 때마다 울리던 종소리는 이제 종소리를 들은 마카리오를 그녀에게로 이끄는 자동 장치가 되어 마카리오가 그녀를 향한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부추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마카리오가 금발 소녀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2층 방에서 내려오는 순간, 두 번 다시 2층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금발 소녀가 아니라 마카리오라는 점이다.

첫 눈에 반한 금발 소녀를 만나기 위해 마카리오는 그녀가 찾아온 삼촌의 스카프 가게로 내려간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삼촌이 1층에 채 내려오지도 못한 마카리오를 다시 2층으로 쫓아 올려 보낸다. 그런 다음, 마카리오가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 찾아간 곳은 시를 읽고 음악을 감상하는 모임이다. 그런데 이 모임은 계단을 올라가야만 하는 2층의 살롱에서 진행된다. (올리베이라는 모임의 구성원들이 살롱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꼼꼼히 보여주고 있다.) 모임이 끝난 다음 날, 마카리오는 금발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 역시 2층에 있다. 마치 이들에게는 2층의 세계만 있는 듯 보인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2층의 공간은 우아하기 그지없다. 그곳은 수많은 그림과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하프 연주를 듣고 시를 낭송하며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중국풍의 부채를 살랑거리며 베일 속에서 드러났다 숨었다를 반복하던 금발 소녀의 황홀한 모습이 표상하는 2층의 세계는 완벽한 부르주아의 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와 땅에 발을 붙인 1층의 세계는 어떠한가? 2층에서 그렇게 황홀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금발 소녀는 1층에 내려오면 손수건을 훔치고 반지를 훔치며 자신의 기벽을 드러낸다. 삼촌 프란시스코는 1층은 마카리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을 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가게에 들이지 말라고 경고하듯 말한다. 그러나 삼촌 덕분에 2층의 세계에 진입했던 마카리오는 삼촌의 뜻을 거스르며 금발 소녀와의 결혼을 고집하다가 2층에서 쫓겨나 철물상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그가 지내는 방 어디에도 그림이나 조각을 찾아볼 수 없다. 2층에서 그를 내려다보게 된 금발 소녀는 2층으로 그를 초대하는 대신 자신이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 올라오지 말라고 말한다. 마카리오를 내려다보는 금발 소녀의 시점 숏은 불과 2층에서 내려다본 것인데도 마치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멀고 낮게 느껴진다. 1층의 세계에게서 금발 소녀는 도벽을 드러내고, 마카리오는 사기를 당하며 도둑으로 몰린다. 2층을 장식하던 그림과 조각들은 1층에서 돈으로 거래되는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된다.



이처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층은 마치 자본주의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는 계급처럼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엄격하게 구분되어 좀처럼 섞이지 않는다. 2층에 속한 삼촌은 계속해서 1층에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1층의 사업가는 마카리오가 더 이상 삼촌인 프란시스코와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2층의 삼촌에게 쫓겨나 우여곡절을 겪은 마카리오는 이제 1층의 세계에서 돈을 벌어 2층에 있는 금발 소녀와 결혼을 하겠다는 자신의 꿈이 삼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금발 소녀는 2층에 속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소녀’의 신분으로 자신의 방에 계속 머무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하다. 오즈의 딸들처럼 금발 소녀도 자신의 방을 비워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리베이라의 금발 소녀는 2층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듯하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2층의 공간에 살게 해줄 남자를 찾았지만 자신의 ‘기벽’ 때문에 그 기회를 잃는다. 그리고 그 기회는 마카리오가 타고 떠난 마지막 장면의 기차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금발 소녀는 다시 원점인 자신의 2층 방으로 돌아온다. 지쳤다는 듯 털썩 소파에 주저앉은 금발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창밖을 내다보며 낚시를 드리우는 일 뿐이다. (우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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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클레르 드니의 <침입자>


인간의 기억은 어디에 있을까? 뇌, 아니면 심장? 심장이식은 단순한 장기이식과는 달리 어떤 경우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심장과 함께 육신이 쇠락하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늙은 남자의 몸에 새로운 심장이 이식된다. 이 착상은 클레르 드니가 장 뤽 낭시의 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드니의 <침입자>(2004)에서 남자(루이)에게 이식된 심장은 몸에 침입한 이물질과도 같다. 프랑스의 한적한 교외지역의 대자연에 위치한 그의 사유지에 이상한 사람들이 몰래 침입하는 것처럼, 이식수술을 의뢰했던 여자가 수술 이후의 남자의 삶에 계속해서 유령처럼 출몰한다. 그에게 이식된 심장은 그의 몸에 침투했고, 그의 정신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에서 매우 불온한 감각으로 표현된다. 루이가 수술을 의뢰한 순간부터 계속되는 악몽과도 같은 이미지(이를테면 하얀 설원에서 그의 육체가 겪는 고통을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불길한 느낌을 주며, 심지어 그가 수술을 받는 것으로 생각되는 순간은 한 남자의 심장이 눈 밖으로 꺼내져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악몽과 같은 초현실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된다.

루이에게 있어서 새로운 심장을 얻으러 떠난 여행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여행이기도 했다.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부산에서 아들을 위한 배 구입에 성공할 때 조선업계 사장이 말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그의 여정은 삶을 정리하기 위한 여정이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과거로 여행한다. 과거의 기억과 화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버려두고 온 아들을 다시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계속해서 국경을 넘어 프랑스에서 제네바로, 부산으로, 남태평양의 섬으로 여행한다. 그의 국경 넘기는 또 하나의 침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과거의 기억으로 향한 침투인 까닭이다.

그의 여정의 사실상 종착지는 아들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섬이다. 그곳에는 아들의 엄마가 있고,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가 있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친구와 조우하자 영화는 과거의 이미지의 단편들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장소는 F.W. 무르나우가 <타부>를 촬영한 프랑스령의 폴리네시아 ‘타히티’ 섬이다. 따라서 <타부>에서 보았던 풍경과의 유사성을 볼 수 있으며, 감독은 의식적으로 ‘TABU’라고 적힌 무르나우의 영화에서와 같은 푯말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무르나우에 대한 오마주로 읽힘(<타부>는 인간의 육체와 자연환경에 대한 순수한 묘사라는 점에서 <침입자>와 연결된다)과 동시에, 프랑스령인 그 섬의 원주민과 부유한 백인 남성의 관계에 대해 제국주의적 침략의 은유로 읽을 수도 있다. 이 영화의 테마인 침입과 관련해서 확실히 두 번째 해석은 더 유용한데, 그래서인지 버려진 채 섬에서 자란 아들은 아버지가 남겨준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루이는 아들이 섬에 돌아오는 순간을 기다리려 하지만, 영화 내내 느껴지던 불온한 감각은 계속해서 강화되고, 루이의 심장은 어떠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극적인 결말은 이것이다. 루이는 불법적인 것으로 보이는 심장이식 수술을 의뢰할 때, 젊은 남성의 신선한 심장을 원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마침내 타히티 섬에서 루이가 아들을 찾았을 때, 아들의 몸은 루이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가슴이 두 조각으로 갈라진 채 죽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다. 루이가 아들의 시체를 확인할 때, 영화 내내 계속해서 출몰하던 수술을 의뢰받은 여자가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아들을 죽이고 꺼낸 심장이 아버지에게 이식된 것이 아닐까 싶다. 불법적인 심장이식 수술을 통해 누군가 젊은이의 생명을 빼앗아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려고 했던 결과가 낳은 참혹한 결말이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되는 남자의 운명적 사슬이 가져온 비극이기도 하다.

<침입자>는 클레르 드니의 영화중에서도 매우 난해한 영화에 속한다. 영화의 복잡한 내러티브는 쉽사리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의 이미지, 즉 루이의 신체적 여정과 정신적 여정(꿈 혹은 환상)을 따라가는 대자연의 풍경, 그리고 그의 쇠락한 육신을 담은 이미지들이다. 드니는 남자의 육신과 그 몸에 새겨진 수술의 흔적 등을 익스트림 클로즈업 숏으로 촬영하면서, 인간의 몸의 표면을 하나의 풍경처럼 표현한다. 또한 드니는 무척이나 특별하게 자연적 풍경을 담아내는 감독임에 틀림없는데, 새하얀 설원과 넘실대는 바다의 물로 화면이 가득 차는 시각 이미지들과 생생한 사운드가 혼재되어 주는 감각적 힘은 실로 압도적이다. 그리고 심장의 격동처럼 울려대는 메인테마 음악의 드럼비트는 이와 조응한다. 질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순수 시청각적 이미지’들이라고 할 만한, 이 영화의 시청각적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물질적, 즉물적인 것으로 관객에게 하나의 촉각적 체험으로써 신체적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강렬한 영화적 에너지를 체험할 수 있는 영화다. 우리 몸속의 심장 박동을 느끼는 것과 같은 체험. 무엇보다 이 신체적 체험은 극장에서 볼 때에야 비로소,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만한 것이다.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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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www.cinematheque.seoul.com)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8주년을 맞아 영화의 21세기, 미래의 시네마테크를 테마로 오는 25일까지 일주일간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를 개최한다.

지난 2002년에 개관한 비영리 극장인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8년간 상업과 유행에 따라 소멸하고 사라지는 영화들, 문화적 가치와 예술성을 지닌 고전들을 꾸준히 소개해 왔다. 손쉽게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영화의 고전과 상당수의 예술 작품들을 극장에서 온전하게 감상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영화들 또한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해 있다.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 상당수가 아직 우리들에게 제대로 도착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번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관 8주년을 맞아 여는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21세기에 새롭게 나온 영화들 중 상업성이 적다는 이유로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이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금발 소녀의 기벽>(2009), 잉마리 베르히만의 <사라방드>(2003) 등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부터 마르코 벨로키오의 <승리>(2009) 등 최근 각종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은 작품 총 8편이 상영된다. 종종 좋은 영화들을 관객들이 외면한다고 말하지만, 이런 영화들을 외면하는 것이 관객들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이번 특별전은 21세기에 문을 연 서울아트시네마와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영화들을 소개하는 행사이자, 왜 동시대의 영화들이 극장을 통해 안정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가를 생각해보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 기간에는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기 위한 영화인들의 후원활동을 기념하는 특별한 행사도 마련된다. 서울이 세계 4대 도시 중의 하나가 될 거라고 하지만, 정작 서울의 영화적 환경은 파리, 런던, 뉴욕 등의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영화인들은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는 활동을 꾸준히 벌여왔고, 올해 1월에는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위원장 이명세 감독)’를 발족시켰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후원 활동의 일환으로 지난 3월에는 박찬욱, 봉준호, 김혜수, 원빈 등 총 12인의 영화인들의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기 위한 하이트맥주의 맥스 광고 촬영이, 4월에는 하퍼스바자에서 영화의 집으로 오세요를 컨셉으로 이장호, 이명세, 안성기, 이병헌 등 총 26명의 영화인들과 함께 진행한 후원사진 촬영이 있었고, 이 사진들은 2010 5월호 하퍼스바자 특집 코너에 게재되었다. 또 국내 대표적인 영화잡지 씨네21에서도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기 사진전을 개최하고, 관련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이번 개관 8주년 기념 영화제 기간 동안 이들의 후원활동을 기념하는 ‘후원 사진전’을 서울아트시네마 로비에서 연다.

또한 20일 저녁 7시에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의 염원이 담겨진 영화인들의 후원활동을 기념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며, 함께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8주년을 축하하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그간 아낌없는 후원을 해주신 후원사와 다양한 분야에서 시네마테크를 지지하는 친구들이 참여할 예정이며, 향후 건립될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상을 그려보는 프리젠테이션도 진행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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