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얼 감독과의 시네토크 지상중계

 

지난 22일 열린 9작가를 만나다”에서는 음악을 하나의 캐릭터처럼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유대얼 감독의 영화 세 편을 <유대얼 단편선>이란 이름으로 묶어 상영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가졌다.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감동과 웃음이 오간 이날의 대회를 일부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최근에 <사중주>라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브라스 퀸텟>, <듀오>, <에튀드 솔로>가 있고, 삼중주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묶으면 하나의 완결된 형태가 될 것 같다. 혹시 전체가 하나의 일관된 계획에서 시작된 건지 우연인 건지 궁금하다.

유대얼(영화감독):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광고일을 하다가 영화를 너무 만들고 싶어서 제작년에 <브라스 퀸텟>을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영화는 우연히 교회에서 연락이 와서 아이들이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를 만들자마자 곧바로 아시아나 영화제에서 연락이 와서 세 번째 작품을 만들게 됐다. <사중주>는 내가 재즈를 엄청 좋아하는 데다 한국에서 재즈를 소재로 한 극영화가 없다고 알고 있어서 첫 시도를 하고 싶어 작업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영화를 찍으면서 전작에 나왔던 배우들이 까메오로 나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찍었는데 이제 트리오까지만 찍으면 다섯 편의 영화가 자연스레 하나로 묶일 것 같다.

 

김성욱: 영화에서 음악의 전곡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는데, 이 영화들에서는 언제나 전곡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음악이 모티브가 되고 많은 음악들이 나오는 만큼 영화를 착상해나갈 때 음악과 영화의 구성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궁금하다.

유대얼: 뭔가를 할 때 열정이 필요하다. 나에게 열정을 주거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음악이다. 굉장히 좋은 곡이 있을 때 그 곡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영화는 군악대 생활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당시 <abide with me>란 곡에 많은 애착이 있었고 장송곡으로 알려졌지만 장송곡으로만 쓰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곡으로 뭐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내 군대 경험과 결부시키면 재밌을 것 같아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 두 번째 영화는 선교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 어떤 찬송가가 좋을까 생각하다 어렸을 때 들었던 찬송가를 골랐다. 세 번째도 군대에서 착상한 이야기다. 사실 세 번째 영화는 처음 기획이 트레블링 숏이라고 해서 한국의 공간과 문화를 알리는 목적이 있었지만 내가 곡에 욕심이 있어서 음악영화로 만들었다. 어렸을 때 음악을 했었는데 지금은 못하고 있어서 음악에 대한 미련이 많다. 그걸 영화로 풀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김성욱: 코미디에 욕심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음악과 영상의 결합이 그렇다기보다 구조적으로 숏의 연결이나 장면의 구성에서 코미디적 설정이 많다. 이런 코믹한 설정들을 생각해 낼 때 광고 일을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는가.

유대얼: 즐거운 걸 좋아하는 성향이다. 심각하거나 진지한 주제의 이야기도 즐겁게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 같다. <에튀드 솔로>에서 첫사랑을 마주하는 장면도 밋밋하게 만나는 것보다 재밌게 만나게 하고 싶어서 그런 장면을 넣었다.

 

김성욱: 실제 연주자들을 캐스팅 하다 보니까 대사가 거의 없다. <듀오>에서 마스크를 하고 나오는 것도 내용상의 설정이긴 하지만 대사를 없애기 위한 장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오히려 대사 없는 것이 영화를 무성영화처럼 생략적이게 만들어간다. 영화를 만들 때 캐스팅은 어떻게 하고, 전체적인 스텝 및 촬영의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유대얼: <브라스 퀸텟>은 실제로 군악대를 같이 보냈던 친구들 몇 명과 군악대를 나온 친구들 몇 명과 함께 했던 작업이다. <듀오>의 허민이라는 친구는 우연히 스타킹에서 연주하는 걸 보고 캐스팅했다. <에튀드 솔로>도 실제 피아니스트인 친구다. 이 친구는 독일 배낭여행 중에 만났는데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나중에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음악영화에서 어려운 점은 연주도 해야하고 연기도 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연기 보다 연주가 우선이다. 연주가 가장 중요한 영화에서 흉내내거나 어설프게 되면 감동이 떨어진다. 그래서 실제 연주자를 캐스팅한다. 스텝은 다 합쳐서 한 삼 십 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브라스 퀸텟> <듀오>는 광고하면서 만났던 학교 선후배들과 같이 했고, <에튀드 솔로>는 영화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같이 작업했다.

 

김성욱: <브라스 퀸텟>에서 중간에 눈물 흘리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 여자의 등장 설정이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유대얼: 사실 해결이 안 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반대되는 상황에서 받아들이는 음악의 형태들에 대해 고민했다. 세 가지를 생각했는데, 첫 번째는 카페에서 즐거운 춤곡을 들으며 슬퍼하는 여자의 상황, 두 번째는 장송곡을 결혼식장에서 연주하는 상황, 세 번째는 이별 노래를 고백의 노래로 부르는 상황이다. 이런 식의 세 가지 코드를 생각했었는데 전달이 잘 됐는지 모르겠다.

 

김성욱: 세 편의 영화들을 보면 음악이 연주되는 장소가 결혼식장, 교회, 야외 공간이다. 이렇게 대개 일상적인 영역에서 음악이 연주되는데, 특히 <에튀드 솔로> 에서 야외 공간과 빛의 배치 및 구도가 신기하다. 연주를 하는 순간 빛에 의해 공간이 배치되고, 연주가 끝나고 순간적인 정적이 흐르는 느낌이 좋다.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묘한 순간을 포착했는가.

유대얼: 사실은 운이 좋았었다. 그 장면은 창덕궁에서 찍을 수가 없어서 민속촌에서 찍었는데, 때마침 빛과 공간의 느낌이 좋았었다. 연주자의 위치는 양달이고 애들이 앉았던 곳은 그늘이었다. 촬영하면서도 운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전체적으로 세 편의 영화가 끝나는 지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늘 에필로그가 있다. <브라스 퀸텟>이나 <듀오>에서는 전형적인 에필로그가 있고, <에튀드 솔로>에서는 숨겨진 과거를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에필로그가 있다. 사실 코미디에서 에필로그는 약간의 반전을 주는 장치이다. 에필로그적 구성이 음악의 영향이 있는 건지 어떤 건지 궁금하다.

유대얼: 좋아하는 구성이다.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다 보면 뒤에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연주가 끝나고 정말 끝나버리면 허전하지 않은가. 영화가 그렇게 끝나면 아쉬울 것 같다. 그래서 덧붙여 줄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 더 붙으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관객1: <브라스 퀸텟>에서의 애니매이션이나 <듀오>에서 글씨 같은 경우 목소리가 아니고 다른 이미지들을 사용했는데 스스로의 생각인 건지 궁금하다.

유대얼: 영상디자인과를 나온 영향이 큰 것 같다. 미술 기반의 일을 하다보니 그런쪽으로 관심이 많이 가는 게 사실이다. <브라스 퀸텟>에서의 애니매이션의 활용은 내용상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듀오>의 애니매이션은 아이들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길 바라며 활용했다. 물론 미술감독들과 충분히 상의하면서 만들었다.

 

관객2: <에튀드 솔로>에서 설마 저 소년이 저렇게 어른이 됐나 싶었다. 마지막에 붕대 감은 손을 보면서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는데, 혹시 반전으로 일부러 비주얼을 다르게 한 건가.

유대얼: 비주얼적으로 같은 배우가 나오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한번에 알게 된다. 나는 극중 인물과 관객이 동시에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게 하고 싶었다. 음악을 통해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경험을 극중 인물과 관객이 함께 하면 어떨까 싶었다.

 

 

 

 

 

 

 

 

 

 

 

 

 

 

 

 

 

 

 

 

 

 

관객3: 앞으로 같이 작업을 하고 싶은 음악감독이 있는지, 그리고 음악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를 찍을 계획도 있는지 궁금하다.

유대얼: 내 시나리오를 100% 공감하고 훨씬 더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음악감독이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개인적으로 휴머니즘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자극적인 느낌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들이 의욕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음악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를 만든다면 그런 영화를 만들 것 같다. 물론 음악이 좋은 영화를 하고 싶다.

 

정리: 최혁규(관객 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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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바람과 불>의 김경만 감독과의 시네토크 현장

 

지난 8월 18일 열린 “작가를 만나다”는 최근 개봉해 화제를 몰고 있는 <미국의 바람과 불>의 김경만 감독과 함께 했다. 푸티지 영상작업이 제기하는 역사와 인식, 영상의 문제에 대해 나눈 이날의 이야기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대한뉴스 60년 치를 극장에서 보는 느낌이 있다. 몇 가지 영상들은 특정 세대나 연령층마다 기억을 환기시키는 방식이 다를 거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런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첫 번째 장편으로 <미국의 바람과 불>이라는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듣고 싶다.

김경만(영화감독): 사실 시작은 오래됐다. 옛날 기록필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략 10년 전 쯤으로, 영화작업을 처음 시작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국가가 직접 제작한 기록필름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바나 국가가 사람들을 향해 주입했던 것들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것 말고도 아름답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풍경들도 많이 있었다. 워낙에 한국이라는 곳이 항상 해묵은 문제들을 반복해온 곳이니까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무의미하지 않은 것 같았고,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 했다. 당시 여러 계획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 중 하나로, 한국인들의 미국 사랑, 한국이라는 곳이 더 이상 우리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다는 느낌에서 기획하게 됐다.

 

김성욱: 여러 영상들을 보면서 이러한 주제로 압축이 되었을 때는 작업을 끌어가도록 만드는 특정한 영상들이 있었을 것 같다.

김경만: 하나의 영상은 아니었다. 옛날 필름의 어떤 장면 뿐 아니라,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당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어떤 변화가 가속화됐다고 느껴졌다. 기존의 공간을 부수고 다시 세운다든지, 예전에는 없던 행사들을 많이 기획한다든지, 영어공용화 정책을 내세운다든지 하는 변화들을 보면서 이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김성욱: 놀라웠던 건 이 영상들의 대부분을 한 사람이 찍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형식적인 면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감독이 직접 찍은 영상들이 국가의 홍보영상들과 조응해 들어가고, 둘 사이에 큰 충돌을 못 느꼈다. 보통 이런 작업을 하게 되면 두 가지 접근이 있을 텐데, 그 중 하나는 실제로 있었던 뉴스영상에 대한 내재적인 비평 같은 것으로, 특정 장면이나 이미지들을 크리티컬한 방식으로 끄집어내어 내레이션을 가한다든가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미지나 영상들이 무차별적으로 굉장히 비슷하게 묶여, 어떻게 보면 전체가 국가적 풍경을 담고 있는 공식적인 영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김경만: 제 생각은 좀 다르다. 국가가 기록한 필름들은 관습적인 방법으로 찍어내듯이 촬영을 했는데, 제가 촬영한 부분은 혼자 촬영했었고, 가급적이면 멀리 떨어져서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어떤 행사의 풍경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뉴스릴은 한정된 시간 안에 여러 꼭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컷이 짧은 데에 비해, 제가 촬영한 소스들은 컷이 길다. 사실 애초에는 둘이 많이 섞이기를 기대하고 계획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록필름과 촬영분이 그렇게 많이 섞이진 않은 것 같다.

 

김성욱: 특히 후반부에서 얘기하신 톤의 차이가 있긴 하다. 영어마을이나 기독교집회 같은 장면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간 공간을 지켜보는 듯한 긴 쇼트들이 이전에 국가가 제작한 기록영상들과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어떤 특정한 내용들을 전달하는 영상들이 있고 동시에 그런 푸티지들을 통해서 도달하려고 하는 작가의 측면이 있을 것 같다. 이런 작업 안에서 어떤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이 영상들이 누구에 의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제작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영상을 통해 확인하거나 지시할 수 있는가에 대해 굉장히 몰두하기도 한다. 보는 사람 각자가 느낄 수는 있겠지만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런 부분에 관심 갖게 되는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영화의 후반부에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빈 공간을 보여주고 이어지는 폭격영상은 폭격의 이미지가 전쟁이나 위협 같은 것을 지시하긴 하지만, 영상 자체의 파괴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듯한 느낌도 갖게 된다.

김경만: 마지막 영상에서는 지금의 해묵은 문제의 반복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어떤 일탈 같은 것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솟구쳐 올라가는 장면을 넣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누가 기록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감독들 개개인의 개인성이 드러났다기보다 이런 영상들을 국가가 기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사운드나 말, 이미지 자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중요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것들이 다른 것들과 얼마나 충돌하는지, 실제 혹은 진짜라는 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도 있었다.

 

 

김성욱: 영상을 찍고 보여주는 방식 안에서의 파시즘의 기제가 있다. 이 영화에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서울 올림픽 게임에서의 투포환 선수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30년대 독일의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장면들을 찍어나가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양식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식으로 70~80년대에 국가가 만들었던 영상을 지배하는 틀이 있었을 텐데, 그 틀이 세련되지는 않았다. 어설프기 그지없지만 지배적일 수 있었던, 그 집단적 양식의 방식이란 무엇이었을까. 스펙터클한 국가적 미장센을 만들어냈던 부분들에 대한 촬영이 대부분이지만, 그것을 조직화 해나갔던 양식이나 스타일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김경만: 국가가 미장센이나 스타일을 고민했을 것 같진 않다. 굉장히 많이 만들긴 했는데 그런 것에 대해 고민보단, 영상에 담길 어떤 의도나 내용에 치중했던 것 같다. 굉장히 많이 만들길 했는데, 그런 것에 대한 고민보다 의도나 내용에 치중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리펜슈탈이 만든 것처럼 아름답게 만들지 못했고, 엉성하고 빈틈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식의 영화작업을 알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 같다. 말씀하신 올림픽 장면은 사실 86 아시안 게임의 장면들인데, 그 영상들에서 파시즘보다는 경제적인 경쟁관계와 같은 어떤 국제질서를 제시할 수 있었으면 했다. 바로 그 뒤에 IMF 직후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이 이어지는데, 항상 한국에 대해 얘기할 때 급속한 경제성장 같은 것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김성욱: 국가의 홍보영상들을 영화연출의 측면에서 보면 국가가 만든 홍보영상들은 내러티브가 빈약하고 배우의 연기가 서툴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전두환이 레이건 옆에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뭔가 쑥스럽고 부담스러운, 어딘가 위축된 듯한 모습이나, 박정희가 미군장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너무나 왜소한 나머지 그들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을 볼 때의 뭔가 어색한 느낌 같은 것이 있다. 이런 영상들을 보면, 영상이 기능하는 바와 달리 영상 속 인물들이 보이는 어색함이 더 특징적으로 들어오게 된다. 푸티지 영상을 접하게 될 때 작가로서 기록물들의 어떤 가치나 활용성, 매력을 느끼게 되는지 궁금하다.

김경만: 풍경들 속에서 발견되는 것들이 있다. 박정희가 케네디를 만났을 때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에서 일반적인 쇼트는 사실 이 영화에서 보듯이 다소곳하게 손을 무릎에 얹고 있는 모습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모습이 저로선 좀 더 보여주고 싶었던 쇼트였다. 숨겨져 있거나 덜 알려져 있는 다른 풍경이 좀 더 보여져야할 풍경이라고 생각 했다. 항상 사실이나 현재의 풍경들은 굉장히 매끈하고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완성된 공산품처럼 제시 되는데, 실제의 모습이나 풍경은 절대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순간들이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한국에서 살면서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보여주고 싶었다.

 

김성욱: 개인적으로 영화의 첫 장면의 마치 기차의 도착 같은 장면에서, 카메라가 기차레일을 쭉 따라가면서 사람들을 찍는데, 사람들은 기차나 카메라를 바라보는 느낌이 있다. 카메라로 누군가를 찍는다는 것이 반대로 카메라에 자기가 찍힌 걸 보고 있다는 건데, 다른 식으로 얘기하자면 이 영화의 푸티지 전체가 카메라 안에 자기를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를 조직화하는 것이고, 이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찍혀진 영상 안에 찍혀지는 사람이 그것을 의식화해서 무언가를 수행해나간다는 것 안의 기제가 있다. 일종의 접대의 미장센인데, 영화에서도 보면 모두가 접대장면이다. 미국과 관련해서 끊임없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줘야하는지에 대한 총력전의 느낌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후반부에 영어 공용화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이 있었을 것 같다.

김경만: 영어마을이란 곳이 영어를 떠나서 그 공간 자체가 보여주는 게 굉장히 많다. 겉으로 볼 때는 굉장히 매끈한 공간이지만 굉장히 어색하고 비현실적인 공간인데, 그런 것들이 한국이 표상하는 미국이라는 유토피아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공간은 존재하지 않고, 이상한 유령 도시나 롯데월드 같은 곳인데 자꾸 한국정부가 그런 공간을 자신들의 이상향이라고 바라보는 것이 너무 기이하게 느껴져서 이 영화에서는 아주 기묘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었다.

 

김성욱: 과거의 푸티지 영상, 특히 뉴스보도영상을 통해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작가의 경우 영상의 메시지나 내용 뿐 아니라, 당시에 그런 순간이 기록되어질 때 갖고 있었던 매개성, 영상이 담겨지는 형식과 유통되는 방식, 이런 여러 가지 정황적인 것들을 보게 된다고 생각된다. 푸티지 영상들을 접할 때, 영상과 관련해서 어떤 느낌들을 갖게 되는지 궁금하다.

김경만: 복잡한 느낌이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보도영상 뿐 아니라, 픽션도 있고, 재연영상도 많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본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다만 인식의 역사 정도는 흔적으로 남아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떤 개인의 인식은 분명히 아니고, 한 사회나 국가의 일반적인 인식에 닿아있는 부분인 것 같다. 물론 그 필름에 남아있는 풍경들에서 아름답고 눈길을 끄는 것들도 많지만,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주로 그런 생각들이다.

 

김성욱: 영어마을이나 기도회에서 사람들이 서서히 퇴장해나가는 모습이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무인의 영상을 보면서 과연 대중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생긴다.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큰 관계 안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대중의 집단성을 담아내는 것에 있어서 국가적 홍보영상의 방식을 탈피해나가는 또 다른 방식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대중을 다큐멘터리 안에서 담아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경만: 사실 이 영화가 담으려고 했던 건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월드컵경기장에서 있었던 대형 기독교집회 같은 경우 개개인의 얼굴을 너무 가까이에서 잡지 않으려 했다. 개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지 그곳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만이 가능했다.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어떤 식의 인식이 작동하고 있는가에 더 관심이 간다. 물론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는 많이 있는데, 보도영상과는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단지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그런 문제의 차원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영화에서 한정 짓는 것 말고, 그것 바깥의 개인의 모습이 훨씬 많이 있다고 생각된다.

 

 

관객1: 후반부에 대형 기도회도 나오지만,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있어서 기독교의 역할이 궁금하다.

김경만: 사람들은 자기 믿음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거기에 항상 무엇이 사실이고, 사실이 아닌지에 대해선 정치라는 게 개입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에서 미국이 어떤 존재인가의 문제는 일종의 어떤 믿음이라고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이 기독교와 많이 겹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된 한국사를 주류 기독교 쪽에서는 일종의 구원서사처럼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관객2: 작업을 위해 굉장히 많은 자료를 봤을 텐데, 자료를 고를 때의 기준이 궁금하다. 그리고 음악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차이코프스키나 바흐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김경만: 한국인의 미국사랑, 한국사회가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해서 장면들을 굉장히 많이 모았다.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 제가 가지고 있는 인식과 맞는 장면을 찾아다녔다. 특히 국가가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실제완 다르다는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장면들을 많이 찾았다. 그런 과정에서 구성을 많이 바꿨었고, 그에 따라 다시 추린 장면들을 재조정 했고, 그런 식의 반복들을 많이 했다. 하나의 명확한 기준을 갖고 선택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영화의 음악은 장면들보다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전쟁의 장면과 음악을 결부시켜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미국의 대규모 폭격은 남한에서는 거의 예기되지 않는 사실인데, 폭격 아래에 있었던 한국인들이 갖게 되는 여러 감정과 생각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3: 저는 대한뉴스 세대가 아니어서, 왜 한국이 미국을 그렇게 사랑하고 편승해가고 싶어했는가에 대해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에서 젊은 세대에 대해서는 등장하지 않아서, 과거에 대해선 집요하게 추적하는 데 비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현재의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다. 앞으로 다른 방향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알고 싶다.

김경만: 한국이 사실 많이 낡았다. 낡은 문제를 반복하는 것 중 하나가 반공문제 같은 것도 있다. 그것이 물론 이데올로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세계를 이해해나가려면 계속 어떤 것들을 고쳐나갈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는데, 계속 같은 굴레 속에 갇혀 있어서 한국이 여러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1차적으로는 한국사회 안에서 뭔가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막아놨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반복적인 낡은 생각들에 관심이 많이 가고, 다른 작업들 역시 그런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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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목격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7월 28일 늦은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7월 ‘작가를 만나다’로 최근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상영되었다. 독립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으로 6만 명이 넘게 관람하는 등 일련의 반향을 일으키는 작품답게 상영 전 극장 로비는 관객들로 붐볐다. 그리고 상영 후 이 작품의 공동연출자 중 한명인 김일란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관객과의 대화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용산참사 자체에 대한 문제, 우리의 삶에 대한 문제들로 확대되기도 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지난 25일 용산 CGV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 한 편의 기록보관소 같다. 영화를 보러가는 게 아니라 용산이라는 장소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중요한 사례가 이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은데, 관객이 이 다큐멘터리를 접하고 찾아올 때 예기치 않은 느낌을 받으실 것 같다. 먼저 최근 관객들의 반응이나 만났던 기억과 관련해서, 관객들의 이런 참여에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신지 듣고 싶다.

김일란(영화감독): 개봉하고 지금까지 찾아와주신 관객 분들이,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드리고 싶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독립다큐멘터리를 6만 명이 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시대에 동참하고 싶은 관객들이 많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이 시대에 무언가를 하고 싶은 분들이 이 다큐를 보았고, 또 널리 알려주셔서 6만의 관객을 모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숫자에서 희망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김성욱: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갈 때, 어디에서 출발점이 됐는지 궁금하다. 재판 자체가 미완으로 끝나버리게 됐던 것이 이런 다큐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진 않았을까. 다큐멘터리에서 제일 궁금했던 것도 녹취를 해서 다큐에 활용했던 부분인데, 그것이 갖고 있는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용산에 관한 일들은 법정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체험하고 느낀 것들이 훨씬 크지 않았나. 작업의 시발점은 어떤 부분이었는지 궁금하다.

김일란: 다큐를 정확히 언제 시작했냐는 질문이 난감할 때가 있다. 특정한 어느 순간부터 시작하지는 않는다. 계기들이 쌓이고 쌓여서 정말 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희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을 하다가 재판에 참여했다. 재판의 속기록을 변호인단 분들이 받지 못하셔서 미디어 활동가들이 몰래 법정에 들어가서 모니터링을 하면서 방청을 하고, 법정에서 이뤄진 이야기들을 녹음을 했었다. 이 녹음들은 다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변호인단 분들이 재판을 더 잘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 위해 했던 것들이다. 재판에 직접 들어가기 전에는 편견 같은 것이 있었다. 경찰특공대가 진술을 하기 위해 증인으로 출두했을 때, 그쪽에서는 철거민 분들한테 불리한 증언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재판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재판에서 증언하는 내용을 막상 듣다보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철거민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망루 구조가 어떤지 전혀 알지도 못했었고 철거민들이 왜 거기 올라가야만 했었는지도 몰랐던 상태였다. 더군다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화재의 원인이 경찰은 화염병이이라고 했지만, 망루에선 화염병을 본 적이 없다는 증언이 나온 게 신기했다. 결정적으로 진짜 놀라웠던 건, 두 개의 문이었다. 남일당 건물은 복잡한 구조로 옥상이 둘로 나눠져 있다. 옥상으로 올라가려면 문을 지나야 하는데,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몰라서 우왕좌왕했다고 진술을 하러 나왔던 경찰 특공대원들이 한두 명도 아닌데 전부 다 똑같은 얘기를 했다. 그날의 진압작전이 얼마나 성급했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망루 안의 상황을 몰라서 두려움을 표출하는 경찰 특공대원들이 많았다. 용산참사는 결국 철거민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진압해갔던 경찰들의 문제이기도 한다는 생각에 닿게 됐다. 집이 없는 시민과 제복을 입은 시민, 힘없는 시민들을 붙여놓고 적개심을 키우는 거였다. 그 상황에서 누구의 안전도 고려되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그때만 해도 다큐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1심 판결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났다. 법정에서의 증거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기소내용 그대로 판결을 내릴 거면 왜 재판을 하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의 판결이었다. 그 법정 안에서 다양한 증거들을 대중들이 본다면 과연 이와 똑같은 판결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다큐를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사건의 재구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다큐멘터리의 증거들, 증언들, 동영상, 법정 진술 기록 이런 부분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재연의 부분도 많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특공대원들이 용산으로 가는 과정들을 찍은 재연이 있고, 특공대원들의 목소리를 육성으로 재연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얘기하면 픽션에서 작용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일반적인 다큐들이 재연과 관련해서 거리감을 둘 때가 있고, 반대로 활용하는 것도 있지만, 여기에선 굉장히 두드러지게 보인다. 재연이나 픽션을 작동시키는 것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지, 법정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방식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궁금하다.

김일란: 먼저 저는 한 사람의 꿈이나 가정이 다큐멘터리의 영역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연장면을 찍은 이유는, 우선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경험을 하면 좋겠는지를 고민하면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어떤 방향으로 이 사건을 관객들과 나눌 것인가 고민을 할 때 관객들이 목격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 전체를 다시 한 번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관객들이 만약 용산참사 현장을 보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바로 이 위치가 아닐까.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갈등에 빠진다. 증언하고 함께 풀어갈 것인가, 아니면 침묵할 것인가. 용산참사 현장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그들이 목격자의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에서 한 것이다. 그곳에서 뭘 하게 될지도 모르고 출발하는 특공대의 감정도 목격하고, 그들이 오는지도 모른 채 망루에서 무사히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라는 철거민들의 입장도 목격하는 것이다.

 

김성욱: 음악이 많이 활용되고 있고, 현장음과 새로 만들어낸 듯한 소리들이 일반 다큐멘터리보다 굉장히 많이 느껴진다.

김일란: 마찬가지로 생생함의 문제다. 칼라TV나 사자후TV 소스들은 굉장히 멀리서 찍은 것이기 때문에 사운드가 그렇게 잡히진 않았다. 하지만 없는 소리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고, 현장에서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본다 했을 때의 소리와 감정을 살려내는 방식으로 음향 작업을 했다.

 

김성욱: 여러 가지 형태로 용산에 대한 기록이 삭제되어 있다. 시체 유기, 증언들의 누락, 채증영상 삭제, 제한적으로 진행된 재판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사건을 덮으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재판은 사실 규명을 해야 하고 충분한 객관적 증거가 제출되어야 하는데 그 자료들은 제거되거나 삭제되었다. 반면 영상에는 픽션으로 구성하거나 재연을 통해 누락된 구성들을 접근해 들어갈 수 있는 힘, 재구성의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이 다큐가 갖는 본질적인 힘이 아닐까.

김일란: 이 영화에 새로운 증거는 하나도 없다. 전부 다 언론을 통해 보도됐거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정도의 정보들이다. 저희가 주목한 건, 이것들을 모두 종합했을 때 비어있는 것들을 남겨둠으로써 이걸 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은폐했는지 그 자체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 구멍들을 일부러 메우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면 재판을 다시 시작했을 거다. 다만 이 다큐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건 특공대들의 ‘감정’을 증거로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감정은 법정에서 증거가 될 수 없지만 감정을 볼 수 있는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재판이었다면 특공대가 증언하는 감정에 주목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만이 새로운 증거였던 것 같다.

 

 

관객1: 영화에 나온 사실들에는 비어 있는 부분들이 많다. 권력에게 불리한 사항이니까 의도적으로 누락시켰을 가능성이 큰데, 감독님께서 그려보신 공백이나 들은 내용이 있지는 않나 궁금하다.

김일란: 다큐 마지막에 쌍용자동차 진압장면을 넣었다. 망루에서도 이러지 않았을까. 쌍용자동차 진압 장면과 같은 상황이 혹시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부검을 빨리 서두른 건 구타의 흔적이 시신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시는데, 그날 시너가 망루 안에 굉장히 많았는데 그건 발전기를 돌리기 위한 거였다. 물도 안 들어오고, 전기도 안 들어와서 망루 안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여서 자가 발전기를 돌려야 했기 때문에 양이 많은 거였다. 화재가 났을 때 통을 밖으로 던지는 장면이 보이는데, 화재가 우발적으로 발생해서 더 큰 화재가 날까봐 던지는 거다. 국과수에서도 누전에 의한 화재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아직도 밝혀야 할 의문점이 남아있다.

 

관객2: 영화를 보면서 너무 갑갑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우리가 권력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화 속 인터뷰, ‘이런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이 나라 국민은 용인을 하는 구나’ 이 부분을 보면서 분노가 조금 일었다. 감독님들께서 영화는 흥행할지 모르겠지만 용산참사가 잊혀질까봐 두렵다는 기사를 봤다. 우리가 이 영화를, 다른 영화를 보듯이 보러 오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 영화가 이 사회의 갑갑함을,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인가, 보면서 그런 물음들이 들었다.

김일란: 아마도 이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실 거라고 생각한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옆에, 앞에, 뒤에 앉아계신 관객들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다큐를 보면서 절망하시거나 힘겨워하실 때, 저는 엔딩크레딧을 다시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 다큐가 만들어졌고, 844명의 배급위원에 의해 개봉도 했고, 그런 영화를 6만 명이 봤다. 작은 숫자여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아직 우리가 좌절하기엔 이른 것 같다. 그래서 매일매일 이 영화를 찾아주시는 많은 관객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한 분 한 분 손을 잡으면서 진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에너지를 집중할 때, 우리 안에 내적인 힘을 발휘할 사람이 내 곁에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고 6만의 관객은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영화는 영화고 삶은 삶이니만큼, 지속적인 관심을 쏟는 건 분명 힘든 일이다. 그런데 삶이 피폐해지면 다른 사안에 관심을 갖기가 힘들어진다. 자신의 행복을 잘 지켰을 때 그것이 가능하다. 영화를 보고 지나치게 죄책감을 갖거나 너무 절망하지 마시고, 자신의 생활을 잘 유지하시면서 사안에 결합해주셨으면 좋겠다.

 

정리: 송은경(관객 에디터)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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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mhere 2012.12.12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트시네마에서는 항상 많은 손님들을 초대하고 흥미로운 행사를 많이 합니다.

    10분이 지나면 입장을 시켜주지 않는데 인천에서 두시간 걸려서 가고 못들어간 적도 있지요.
    (1) 어느 정도 관람시간 규정이 있다는 것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것은 사실이네요. 그작가를 만나다 행사의 관객이 많아서 그렇다 쳐도
    일부 행사 때는 객석점유 비율이 반 이하 일 때 있는 데 이런 경우 등일 때는 유동적으로
    한다던지의 고민도 필요합니다.

    (2) 굳이 인천 운운하기도 했지만 또 규정에 대해 앞으로는 고민해주시기를 바라지만
    우선은 존중합니다. 뭐 일이 힘들 수 있고 그런 면들이 있다고는 쳐도 이런 안내를 받는
    동안 직원분이 조금 날카롭게 말씀하신다는 인상도 있었습니다.
    시네마테크도 경쟁력을 가지려면 또는 사람대사람으로써도 조금더 기분좋은 안내나
    관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온라인상에 다른 커뮤니티나 글을 살펴보아도 이런 인상을 받으신 분들이 꽤 있더라구요.
    운영이나 시네마테크 지키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실 줄 아는데 이런 부분 역시 고민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죽음의 여행, 다른 하나는 삶의 여행이다”

 

지난 6월 30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6월의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으로 올해 1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평론가상을 수상한 <아버지 없는 삶>이 상영되었다. 상영 후에는 김응수 감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아버지 없는 삶>은 두 일본 여성의 여정을 복잡한 내레이션을 통해 그려내는 영화로 김응수 감독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에세이 필름이다. 영화 속 내레이션만큼이나 많은 말들이 오갔던 그날의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개인적으로는 오늘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봤다. 이 영화를 처음 보신 분들한테는 영화가 낯설거나 당혹스럽게 느껴졌을 거다. 보시면서 느낀 것들을 같이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다. 먼저 어떻게 시작이 됐을까 궁금한 점이 생긴다. 영화에서는 소설 <요코 이야기>와 마사코라는 여인이 연결되어 있다. 각각 어떻게 접하셨는지 궁금하다.

김응수(영화감독):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강한 자가 만드는 시선의 논리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문화적으로 얘기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다. 이건 지구에 사는 이상 숙명인 것 같다. 그래서 바깥에서 우리를 규정하는 문제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 반일감정이나 민족주의도 아니면서 우리 자신의 문제를 정리해나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한일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중심과 주변에 대한 문제, 우리가 왜 이런 구조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들을 물어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역사를 짊어지고 가겠다는 사명감은 없었다. <요코 이야기>라는 소재를 보편화시켜서 여행을 하고 싶었다. 내 영화에는 주변과 중심의 문제, 시선 정립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요코 이야기>에 나오는 얘기들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한 공간에 시간차를 두고 살고 있는 일본인을 찾아가 하나는 죽음의 여행으로, 하나는 삶의 여행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김성욱: 영화는 <요코 이야기>의 요코라는 여자와 현재의 마사코 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내레이션에 나오는 얘기는 마사코 씨가 직접 얘기했던 개인사에 근거한 것인지 궁금하다.

김응수: 서너 번 마사코 씨를 만나서 얘기를 부탁했다. 굉장히 편하게 했다. 그 분이 얘기하시는 것들 중에서 중요한 부분만 쓴 거고 전부 다 사실이다. 다만 접근할 때는 조심스러웠다. 마사코 씨의 나가사키 여행 경로를 따라갈 때도 그랬다. 역사적인 장소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이 나가사키에 가는 일본인을 찍을 때 ‘저 사람이 나를 찍어서 뭘 하려고 하는 거지?’ 하면서 궁금해 하는 게 당연하다. 내가 선뜻 나서서 나가사키 평화 공원에 가자고 얘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사코 씨가 배려를 해 주시는 건지, 원래 시선에 별 신경을 안 쓰고 사시는 건지, 그냥 가시더라. 그래서 따라 찍었다.

 

김성욱: 영화 전체를 보면 요코와 마사코가 등장하고, 내레이션으로 언급되는 인물로는 <만춘>(1949)의 노리코와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의 프랑스 여인(엠마누엘 리바)이 있다. 일본에 가서 찍은 장면에선 여고생들이 나온다. 시간적으로 다른 연령대에 있는, 다른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거창하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국가와 여성이라는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다. 일본에 가서 촬영을 할 때 처음부터 눈에 들어온 것인가.

김응수: 그건 염두에 뒀다. 아오모리로 향하는 여행 속에선 요코라는 인물에 맞는 이미지를 가지고 그 이미지에 맞는 비슷한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찾았다. 요코라는 사람이 고토에 살았다면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을 것 같다. 일본은 근 200년 동안의 전통이 이어져 있다. 낡은 것을 버리지 않고 고쳐 쓰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이 축적된 느낌이 강하다. 히로시마에서 사진 찍는 여학생들, 자기네 역사임에도 처음 보는 것처럼 또렷하게 응시하는 마스크 쓴 20대 아가씨 등 모든 것들이 굉장히 비슷하게 보였다. 그 영화들을 생각한 것도 무엇과 무엇을 대비하려는 게 아니라, 내레이션을 쓰면서 갑자기 생각난 인물들이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오는 내레이션이고, 역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보이는 비슷비슷한 이미지를 여행 경로 속에서 취사선택했다.

 

김성욱: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 같은데, b와 q라는 이니셜을 가진 두 인물의 영상 편지 같은 것이 나온다. 주체가 확실히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분산된 느낌이 강하다.

김응수: 내레이션은 모두 제 목소리다. 두 사람의 내레이션을 하나의 목소리로 녹음한 건, ‘b는 이런 성향이고 q는 이런 성향을 갖는다.’ 이렇게 설명하기보다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가 좌충우돌하는 문제를 마주하고 싶었다. 각자가 아버지에 대해 가지는, 한편으론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것과, 다른 한 쪽으로는 거기서 떨어져 나오고 싶은 것. 그런 것 속에서 스스로가 가지는 내 안의 복잡함과 다면성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그런 것을 여러분도 분명히 가질 것이라는 확신에 선택을 했다. 복잡한 것 같지만 내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나는 아오모리에 가고, 또 하나의 나는 마사코 씨를 따라가고, 다른 또 하나의 나는 설명하고, 여러 가지가 있다. 처음엔 많이 혼재되지만 나중엔 완전히 갈라진다. 명확히 구분되면서 좋은 낙천성 속에서 영화가 끝난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영화를 보면 자기분열적인 작가의 내레이션을 듣는 듯하다. 전체적인 흐름과 초정을 향해 어떻게 나갈지 언제 결정되었나.

김응수: 이게 촬영 전에 시나리오를 써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촬영 감독 입장에선 일본에 가기 전에 뭔가를 써 주는 게 편했을 거다. 즉흥성을 발휘하는 게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잖나. 그래서 촬영 쪽에서는 그런 것을 요구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당시에 내가 가진 정도의 깊이를 갖고 뭔가를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가는 여정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어림잡아 찍어 나갔다. 한쪽은 마사코 씨가 있으니까 그 사람을 그냥 찍었다. 다만 어떻게 찍느냐는 문제가 있는데, 그걸 고민하면서 찍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편집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에세이 필름을 하고 싶은 욕심이 많았다. 에세이 필름이 볼 때는 쉬워보여도 막상 하면 되게 어렵다. 이미지, 내레이션, 음악, 소리 등 여러 박자가 있는데 그것들이 다채롭게 향연을 이뤄야 한다. 웬만한 음악적 감각이 아니면 굉장히 힘들다. 그때 이미지를 평탄하게 설명하지 않고 한번 툭 잘라본 것이 굉장히 과감했다. 툭툭 자르는 절단을 내레이션 등의 다른 층으로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1: 영화를 보기 전에 소개 글만 봤을 땐 ‘아버지 없는 삶’이라는 제목이 일본의 군국주의 문제랑 관련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일본 사람이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게 비극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런 부분에 대한 감독님의 견해가 그게 궁금하다. 또 영화가 마사코의 행적을 따라가는데, 그 분이 영화에서 보여질 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약한 느낌이 든다. 감독님의 내레이션이 그걸 대신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가가기 조심스러운 태도와 관련이 있는 건지 궁금하다.

김응수: 각자의 관점에서 영화가 다가오는 측면은 분명 있다. 그래도 조금 부연을 드리자면, 마사코 씨의 얼굴은 굉장히 강렬한 얼굴이다. 보통 ‘다가온다’는 건, 감정이 확실하게 전해지고, ‘운다’, ‘슬프다’ 그런 것들일 거다. 그런 강한 감정들이 다 있는데 단지 많이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저한테 마사코 씨의 표정의 변화는 순간순간 다 보인다. 떠날 때의 불안함과 도착했을 때의 스산함, 자기 나라인데도 낯선 곳에 왔을 때 보이는 눈빛과 행동 등은 매우 적나라했다. 내레이션을 쓰면서 이렇게까지 드러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문제는, 국가가 어떤 거다, 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무정부주의자도 아니고, 어딘가 소속되어 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국가를 다 믿을 건 아니다. 쉽게 얘기해서, FTA가 되면 자동차를 팔고 농산물을 사는 게 유리하다고 하는데, 그럼 자동차를 판 돈이 나한테 오나? 자기의 이익을 왜 국가로 가져가나. 그건 국가와 ‘나’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를 파는 사람은 자기 이익이 생기는데, 농사짓는 사람은 왜 생존이 걸린 문제를 포기해야 하나. 즉 동등하지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이 국가에 빠져 사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어떤 소속을 갖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친구를 만들고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그럼 총을 들고 나가야할 거다. 그런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미약한 개인이 어떤 사고를 갖고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김성욱: 영화가 갖는 혼란함의 지점 중 하나가, 그전 작업에 다뤘던 범위에 비교해서 지리적으로 훨씬 더 넓어져서 그런 것 같다. 시간적인 문제로는 이전의 작업보다 더 과거로 들어간 부분도 있다. 또 한편으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차가 있다. 영화가 다루는 건 여잔데 말하는 건 남성의 목소리다. 영화 대부분의 작업도 남성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차이도 있다. 영화 뒤에 나오는 내레이션의 상당부분이 차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이동성이 있고, 영화 속에서 남성은 별로 표현되지 않는데 유일하게 표현되는 건 카메라를 들고 여행하는 감독의 내레이션이다. 그 둘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긴장성이 발생하는 것 같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샹탈 애커만의 <뉴욕에서 온 편지>가 생각났다. 뉴욕의 풍경과 편지의 내용은 일치가 안 된다. 이 영화에서도, 여자가 비행기 타는 장면에서 내레이션은 ‘단호함’이라고 말한다. 시각적 정보로는 단호함의 제스쳐를 읽을 수는 없다. 그 때 두 가지의 충돌이 있게 된다. 나쁜 경우라면 내레이션이 시각적 정보 완전히 엎어버리는 상태인데, 여기선 과다한 내레이션에 긴장성의 느낌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이야기를 감독이 촬영하면서 발생하는 긴장성이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그런 점들이 흥미로웠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최미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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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조'의 이광국 감독

 

지난 5 19일 토요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5월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으로 이광국 감독의 장편 데뷔작 <로맨스 조>를 상영하고 상영 후 장병원 영화평론가의 진행으로 이광국 감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독특한 이야기 전개와 영화 속 디테일에 대한 관객들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현장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첫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는 이광국 감독과 극장을 찾아준 관객들의 대화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장병원(영화평론가): 포괄적인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다. 영화의 내러티브나 서사 구조의 몇 가지 이야기를 설계하실 때 처음에 가졌던 컨셉이나 목적부분부터 설명해주시길 부탁 드린다.

이광국(영화감독): 시나리오를 쓸 때, 몇 년 전인데 조감독 생활을 오래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다보니까 점점 더 뭘 써야 될 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기간이 좀 길어서 절망적인 상황까지 갔다. 어느 순간에 그러면 다른 데서 이야기를 찾을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출발하면 어떨까,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에 소문에 관심이 있어서 그 남자와 소문을 어떻게 연결 지을까 생각하다가 에셔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그림을 보면서 그림이 주는 뉘앙스를 이야기로 만들면 어떨까, 그런 과정을 통해 시나리오와 영화가 나왔다.

 

장병원: 이 영화를 보면 그룹핑, 예컨대 인물들을 쌍을 짓는다. 다방 레지 같은 경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인물을 어떤 식으로 설정하신 건지 궁금하다. 순환하는 캐릭터가 있고 엮어주는 캐릭터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광국: 처음에는 어쨌건 천재적인 이야기꾼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영화를 만들고 소설을 쓰는 관련 업계가 아닌 엉뚱한 사람이 오히려 전문가들보다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레지를 중심에 두고 그룹핑을 하게 되었다. 아까 말씀 드린 에셔의 그림을 보다가 머리가 어지럽기도 하고, 서로를 계속 그리는데 그림이 주는 뉘앙스가 소문이랑 붙였을 때, 소문이랑 유령 같다고 생각하니까 다방 레지가 그 유령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역할이라 생각했다.

 

관객1: 영화 보는 내내 보르헤스, 플로베르도 생각나는 아름답고 유쾌하고 슬픈, 재미있는 영화였다. 결국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다방 레지가 읽고 있던 책이 정확하게 어떤 것이었는지, 그 책이 모텔 냉장고에서 꺼낸 책이 맞는지 궁금하다. 또 그 책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이광국: 책은 소설 마담 보바리. 계속 등장하는 책은 똑같은 책이 맞다. 처음에 시나리오에는 책을 읽고 있다 정도의 설정만 있었다. 디테일을 만들면서, 맥 빠지는 대답이긴 하지만 좋아하는 소설을 골랐다. 고르고 나서 보니 마담 보바리도 약간 구조적으로 실험이 많이 있어서 이런 게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이 레지와 초희를 엮어줄 수 있는 고리 같은 걸로 작용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2: 영화를 보면서 국내 소설 중 최제훈 작가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그 소설의 작가에게도, 감독님에게도 궁금한 점이다. 이야기의 틀이 여러 세계가 병행한다고 보여지는데 시나리오를 쓰실 때 틀을 먼저잡고 쓰셨는지, 아니면 하다 보니 틀이 잡힌 건지 궁금하다.

이광국: 틀을 먼저 어느 정도 잡아놓고 디테일을 만지면서 조금씩 변형했다. 만들기 전에는 약간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냥 만들어보고 싶었고, 구조적 낯섦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차용해서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장병원: 문학적인 것이 상당히 많다. 이야기 구조나 이야기 본질에 대해서 계속 질문하고, 영화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계속 이야기를 지어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직업적이든 아니든 스토리텔러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여관에서 어머니도 드라마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흥미로운 진행방식이다.

 

관객3: 소년 배우가 왼손잡이인데 로맨스 조는 오른손을 쓰는 것을 발견했다. 감독의 지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소년이 로맨스 조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므로 감독이 그것을 조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광국: 그룹별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제 바람 중 하나는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초희가 레지의 과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소년이 로맨스 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모호한 지점이다. 이다윗군이 왼손잡이인 것은 늦게 발견했다. 장면을 찍기 전에 늦게 발견했고 연결지점을 맞춰야 하나 고민했다가 다르게 가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의도는 아니었지만 촬영 중에 그렇게 갔던 경우다.

 

관객4: 로맨스 조와 다방 레지가 포장마차에서 술 먹을 때 로맨스 조가 왜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만 하나라고 하는데 감독님은 답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다

이광국: 어려운 부분이다. 명확한 결론은 못 내리지만, 자기 인생은 스스로 정리되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결국은 자기 주위에 같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동질감, 이질감 여러 것들을 보게 되고, 그게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사람들한테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것으로 사는 것은 비슷하다는 마음의 안식이나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막연히 생각한다.

 

장병원: 영화 속 한 인물의 동일성, 이 사람이 저 사람인가 하는 것이 뭉개져 있고 허물어져 있다는 특성과 개념을 구원하기 위해 몇 가지장치가 보인다. 그중 두드러지는 것이 이야기가 계속 인물에서 인물 사이로 전파되는 것이다. 예컨대 300만 관객의 이 감독과 입지를 다지지 못한 감독지망생 로맨스 조가 사실 동일인물일 수 있다는 점, 노트북을 주는 행위, 처음에 소문으로 인해 자살한 등장하지 않는 여배우가 죽은 이유가 소문에 의해서라는 점과 어린 시절 초희 역시 추문에 의해 손목을 긋게 되는 형태로 인물들의 동일성이 보인다. 또한 사물의 장치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 장치들 외에 전체적 인물의 동일성, 시간적 위계를 위한 고안물이 있으면 설명을 부탁 드린다.

이광국: 의도 자체가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하려 한 건 아니다. 디테일은 촬영 들어가기 전후에 발견했다. 냉장고 안에서 책을 꺼내는 것은 시나리오에 현장에서 촬영하다가 문득 레지와 초희를 어떻게 묶을까가 떠올랐다. 연출부와 촬영 감독이 부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오기가 발동해서 했던 케이스다. 친구가 나중에 경찰로 다시 나오는 상황도 시나리오에는 다른 인물이었다. 나중에 친구가 경찰로 나오면 시나리오적으로 그런 느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막연하게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

 

관객5: 남자의 첫사랑이 계속 이야기의 원동력이 된다. 감독님에게 로맨스나 사랑은 단지 장치로만 쓰려고 차용하신 건지, 이 영화에서 사랑은 어떤 건지, 감독님의 의도가 궁금하다. 경험담이라면 그것도 말해주시면 좋겠다.

이광국: 구상 초기에는 제목 없이 소문에 관한 이야기,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한 남자의 이야기였다.그래서 초기에는 제목이 없었다.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는데 인디 밴드를 하고 있다면서 같이 밴드를 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다들 로맨스 조니 다크 박, 드라이 김이니 애칭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친구는 로맨스 조였다. 그때 로맨스 조라는 이름에 꽂혀서 그 이름을 제목으로 쓰겠다고 했다. 구조적으로 원형적인 작은 이야기가 하나 있고 그것을 주위에서 뜯어먹는 식의 설정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 제목과 맞는 작은 멜로를 넣었다.

 

관객6: 영화를 시작할 때 보면 그림에서 출발한다. 아까 말씀하신 그 에셔의 그림이 처음 그림과 같은 것인지, 처음 그림은동물 말 그림인데 소문과 관련해서 그 그림을 넣으신 건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광국:그 그림은 에셔의 그림은 아니고 시나리오에도 없다.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영화의 첫 커트인데 고민하다가 이야기가 중요한 소재, 말이 소재라서 말 그림으로 시작을 해볼까, 장난기 같은 것이 있어 말 사진을 포토샵으로 작업했다. 말 사진으로 시작해서 토끼로 영화를 끝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장병원:관객분들을 위해 에셔의 그림을 조금만 설명해주신다면 좋겠다.

이광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손 두 개가 서로를 그리고 있는그림이다. 보고 있으면 이상한 느낌이 많이 든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다.

 

관객7: 다방 레지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캐릭터의 쓰임새를 떠나서 감독님께서 좋아하는 여자 캐릭터를 쓰신 건지 궁금하다. 또한마지막 부분에서 경찰관이 하는 말이 생뚱 맞게 느껴져서 설명을 조금 부탁 드린다.

이광국:저는 시나리오를 쓸 때 캐릭터를 인물 별로 미리 정해 놓고 쓰지 않는다. 이야기의 틀 안에서 씬마다 목표점이 있으니 그 씬에 인물들이 들어갔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중요해서 그렇게 썼다. 처음부터 레지는 이런 캐릭터여야 한다고 정해놓지 않았고 좋아하는 캐릭터도 아니었다.씬의 상황이 먼저 있었고 그에 맞게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또한 어떤 배우가 이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배우가 결정된 후 배우와 캐릭터 잡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처음부터 캐릭터를 정확하게 만들어놓지는 않았다. 경찰 장면은 저도 말씀 드리기 어려운 지점이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처음 구상할 때 남자가 마지막에 경찰한테 검문을 당하면 어떨까 생각했기 때문에 의심 없이 작업을 했다. 만들면서 목표 지점은 딱 두 개 있었는데 보는 사람들이 보는 내내 호기심을 갖고 다음 장면을 예측하지 못하는 데서 저를 따라올 수 있는지, 두 번째는 보고 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열린 여지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왜 경찰한테 검문을 받느냐고 물으시면 저도 딱히 말씀 드릴 수가 없다.

 

관객8: 죽는 방법이 어려 가지인데 왜 하필 손목을 긋는 방법인지 궁금하다. 왜 죽는 데 실패하는지 궁금하다.

이광국: 손목은 시각적으로 사람들이 제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제 절박한 마음에서 이야기가 출발했기 때문에, 내 이야기가 없으면 죽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제가 죽고 싶어도 결국 못 죽을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캐릭터에 제 성격이 부여되었다. 영화 속에서 너무 무겁거나 잔인한 소재를 다루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어서 명랑한 소재를 다루고 싶었다.

장병원: 서사적으로 보면 손목을 긋는 사람들이 동일한 아이덴티티로 보일 수도 있는 기호다. 자살했던 여배우도 필시 손목을 그었을 가능성이 높다. 

 

관객9: 인물들이 만나는 장소가 주로 여관, 모텔방이다.반면 초희와 소년이 만나는 장소는 숲 속, 배 위, 동굴 앞 등인데 그런 장소에 의도가 있는지, 그들의 만남이 일시적이고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하는 것을 암시하는지 궁금하다.

이광국: 사실은 처음 시나리오와 촬영된 버전이 많이 다르다. 분량이나, 인물이나, 이야기의 골격에서도 다르다. 영화 제작비가 5000만원이었는데 처음 받은 제작비로 찍을 수 없어 대폭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여관 장면을 선택했다. 지방 모텔이라는 곳이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가는 곳이고 많은 방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 모텔방을 선택했다. 어린 로맨스 조는 그와 반대로 열린 공간을 중시하면서 그런 공간을 찾게 되었다. 

 

장병원: 정리하는 의미로 한 말씀 드리자면, 이 영화는 이야기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의 습성을 가지고 게임을 벌인다. 이야기 안에 어떤 특정한 정보가 있을 때 즉각적으로 우리가 그 이미지들을 보게 되면 앞에 나온 것들과 연결하게 된다. 이것이 앞서 어떤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둘을 연결하려 하는 강박증이 있다. 영화는 그것을 부정하면서 다음으로 나아간다. 이야기에 대한 인식의 습성을 가지고 게임을 벌인다. 굉장히 이런 유형의 영화가 한국 영화에서 희귀하고 신선하고 의미가 크다. 유의미한 시도를 데뷔작에서 하셨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

이광국: 이번 여름에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여전히 계속 써야 하고 영화 지원 프로그램에 접수를 해서 계속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일단은 여름에 단편 영화를 찍는 것이 확정되었다. 아트 시네마가 대단히 중요한 극장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저의 첫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 분들을 만나 뵈어서 기쁘다. 앞으로도 이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리: 손소담(관객 에디터) 사진: 최미연(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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