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9일 브라이언 드팔마의 <분노의 악령> 상영후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강연이 이어졌다. 시스템 내부의 균열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비전에 대한 감각을 담고 있는 영화만큼이나 흥미로웠던 이날의 강연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번 시네바캉스의 ‘이미지의 파열’ 섹션은 70년대 말부터 80년대의 미국 영화들 안에서 시스템적 균열의 양상들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을 꼽았다. 그 중 <분노의 악령>(1978)은 일순위 중 하나였고, 나머지 영화들이 그에 따라 배치됐다고 할 수 있다. ‘시네필의 바캉스’ 섹션의 영화들은 좀 더 일탈적인 영화들로, 그 자체로 작가들이 마치 바캉스를 떠나듯이 휴양하며 찍은 듯한 영화들인데 비해, ‘이미지의 파열’의 영화들은 바캉스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즉물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시스템 내에서 균열을 만들어내는 영화들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이나 시스템의 만족을 어느 정도는 충족시켜주면서도 스스로 고유한 파열을 만들어가는 과정 안에서 고군분투했던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오늘 상영한 드팔마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영화 안에는 젊은 시절의 긴장성이나 트라우마, 분노 같은 것들이 있는데, 허무맹랑하지만 한편으로는 놀랍고 가혹한 진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트라우마를 품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고, 이들은 자신의 힘을 어찌할 바 모른다. 그 힘이 어디서 기원하는가는 모호하지만, 죽음과 관련된 트라우마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컨트롤하려는 집단이 있다. 그것은 국가적인 기관으로 등장하고,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 창조력의 엄청난 힘을 컨트롤하려는 집단에 의해 희생당하는 한 명의 젊은이 로빈과 그 과정에서 오히려 아버지를 파괴해나가는 길리언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분노의 악령>에는 비전의 매혹 같은 것이 존재한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투시자들의 삶에 대해 말하는데, 지나간 삶과 다가올 삶, 아주 무한한 우주의 기억을 간직한 세계와 접속해 보게 되는 투시자들의 비전을 길리언과 로빈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드팔마는 그러한 비전을 놀라운 방식으로 이 영화에서 표현하고 있다.

 

 

영화에는 두 개의 스토리 라인이 있고, 이 둘이 얽혀가면서 최종적인 국면에 이른다. 하나는 아버지가 아들 로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관계가 파열된 이후에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가는 이야기 안에는 일종의 이상한 미스터리 플롯, 패러노이드 이야기의 형식이 있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미국영화의 상당수가 이런 식의 편집증적인 영화, 음모적 영화라고 불리는 장르 안에 있으며, 그런 맥락 안에 이 영화가 존재한다. 다른 하나는 길리언이 염력을 통해 로빈과 교통해가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는 트라우마 혹은 초자연적인 것 못지않게, 일종의 증인, 증언과 같은 연결점이 있으며 이는 앞서 말씀드린 비전을 독특하게 표현해낸다.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지켜보는 자로서의 길리언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녀는 이중적 공포를 갖고 있다. 하나는 무언가를 자꾸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텅 빈 극장에 앉아 비어있는 스크린을 지켜보는데, 그 스크린이 뭔가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 혹은 뇌 속의 무언가가 비집고 나와 스크린에 그대로 투영되어, 마치 영화를 보듯이 사건을 목도하게 되는 그런 공포다. 길리언의 또 다른 공포는 접촉에 대한 것이다. 누군가와 손을 잡거나 만지면 피가 나오게 되기 때문에 그녀는 어머니와의 접촉도 꺼리게 된다. 이러한 모티브들은 <캐리>(1976)와 이면화를 이루며, 더 넓게 보면 <캐리>와 <분노의 악령>, <홈 무비>(1980), <드레스 투 킬>(1980), <블로우 아웃>(1981)이 굉장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분노의 악령>은 원작 소설에서 출발한 것이긴 하지만, <캐리>와의 연속선 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분노의 악령>에서 아이들이 갖고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국가가 컨트롤하려한다면, <캐리>에서는 어머니가 종교적인 차원에서 고양시키려 한다. 그 억압되어있던 에너지가 영화 후반부에 학교에서 벌어지는 파티에서 폭발하는데, 캐리는 양동이 가득 담긴 붉은 피를 뒤집어쓰고서 자신의 능력을 표현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것은 분할화면의 사용이다. 캐리의 에너지가 자신의 몸의 한계를 넘어서게 될 때 몸 바깥으로 나아가게 되면서 순수한 힘으로 전이된다는 점이 특별하다. 그녀가 쳐다본다든가 손짓을 하면 그 에너지가 곧바로 분할화면의 다른 프레임 안에 파괴적인 힘으로 형상화된다. 하나의 프레임이 갖는 용적의 한계를 넘어서는 에너지가 또 다른 프레임들을 복수적으로 양상하는 특징이 있다. <분노의 악령>에서는 프레임의 경계지대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공존하는, 말하자면 후면영사처럼 표현되어 있는 또 다른 방식의 장면적 전환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캐리>의 분할화면과 <분노의 악령>의 독특한 프레임 배치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사실 <캐리>와 <분노의 악령>이 연결되는 가장 큰 맥락은 <캐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길리언을 연기하는 에이미 어빙은 <캐리>에서는 캐리의 친구로 등장한다. 그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캐리의 무덤을 찾아가는 꿈을 꾸는데, 무덤에서 나온 캐리의 손은 그녀의 손을 붙잡는다. <분노의 악령>에서 길리언이 어떻게 초자연적 능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영화에서는 설명되지 않는데, <캐리>와 연관지어 보면, 캐리의 능력을 길리언이 전수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접촉을 통해 트라우마의 기억을 간직하게 된다는 것, 누군가가 죽어가며 분출하는 슬픔과 분노를 그것을 보는 자가 이어받게 된다는 것은 드팔마의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며, 이후에 <드레스 투 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유명한 엘리베이터에서의 살인 장면에서 죽어가는 자와 시선을 교환하고 그녀가 내미는 손을 잡으려는 여자에게 희생자의 마지막 제스쳐, 공포스런 몸짓이 이전되는 과정은 거울을 통해 왜곡된 프레임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드팔마의 영화에 존재하는 접촉과 전수, 이전의 과정들은 달리 말하면 일종의 증인적 행위로서의 보기이며, 이는 드팔마 영화에서의 비전을 특징짓는다. 캐리의 무덤가에서 캐리와 접촉하면서 전수받은 초자연적 에너지가 <분노의 악령>에서는 점차적으로 꿈틀거리며 뛰쳐나오게 되는데, 그런 에너지들을 어떻게 조절해나가면서 장면화 하는지가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든다.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텔레파시 능력을 표현하는 장면인데,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단편적인 이미지들로 등장한다. 그 이미지들은 죽음과 연관되어져 있으며, 하나는 과거를 다른 하나는 미래를 지칭하는 사건이다. 길리언이 계단에서 360도 패닝하면서 보는 것과 후면영사되는 과거의 장면은 시선에 의해 매칭되지 않지만, 그녀의 시선에 의해 점차적으로 과거의 장면을 보는 것 같이 표현된다. 과거는 마치 투사되는 영화의 이미지를 보는 것처럼 설정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그녀는 과거의 한 순간에 입회되어 있는 듯하다. 그녀는 현재에 있지만 과거를 보고 있고, 과거는 그녀 바깥에 있지만 동시에 과거 안에 그녀가 내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녀가 보게 되는 파편적인 이미지들은 사실상 세계를 이루는 단편들이며, 이 단편들은 전체적인 종합성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각각의 조합들을 통해 비가시적인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지나가버린 과거를 증언하는 것과 비슷한 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증언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는 비전을 경유해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분노의 악령>의 한 장면에선 영화를 본다는 설정이 초래하는 공포의 순간이 있다. 로빈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순간을 촬영한 영상을 끊임없이 로빈에게 보여줌으로써 무언가를 본다는 것으로 인해 생기는 트라우마가 로빈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계속 증가시켜나간다. 이 영화에서 본다는 것은 인물들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증가시키는데, 트라우마적 보기의 방식이 초래하는 서로 다른 두 길이 존재한다. 드팔마가 캐리에 이어 로빈에게서 자기파괴적인 상태로 귀결되는 젊은이의 결말을 보여주었다면, 그들과 유사한 설정을 두면서 동시에 거기에서 이탈해나가는 길리언이라는 새로운 젊은이를 둠으로써 또 다른 길을 열었다고 생각된다. <분노의 악령>은 억압된 성인의 질서로 보수화되기 전단계에, 완벽하게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염력, 텔레파시로 표현되는 이들의 능력은 달리 말하면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가시화시키는 능력,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창조성의 능력과도 닮았다. 이 영화에서 국가는 국제적인 기관과 음모에 의해 이러한 젊은이들의 에너지들을 끌어들이고 통제하려고 한다. 이 영화의 쾌감은 젊은이들의 능력을 컨트롤해나가는 세계 안에서 그들의 창조적 에너지를 어떤 방식으로 전환해서 어떻게 그 세계와 싸움을 벌여나갈 것인가를 제시하는 점에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드팔마의 고군분투의 느낌이 있다. 70년대에 뉴아메리칸시네마의 많은 감독들이 시스템에 투항해 주류적인 영화 안으로 편입되어 갈 때, 드팔마는 굉장히 이상하고 저급한 익스플로테이션한 장르들을 끌어들여 영화를 만든 뉴아메리칸시네마의 별종이었다. 그러 그가 <캐리>나 <분노의 악령>을 통해 주류적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러한 작가들이 갖는 공포와 불안의 느낌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보면 보기의 능력과도 연결된다. 길리언은 내가 보게 될 것이 두렵기 때문에 눈을 감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본다는 것은 눈을 감음으로써 발생하는 어떤 비전의 과정이다. 눈을 감을 때 어떤 종류의 비전이 열리게 되는가, 이런 새로운 비전이 갖는 힘이 무엇인가를 이 영화는 알레고리처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젊은이들이 에너지를 분출했던 60년대라는 시기를 거친 이후에 영화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대의 자각 능력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적 보기의 방식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두 눈을 감음으로써 바라보는 눈 먼 보기의 방식들, 증인적 보기의 방식들과 대단히 유사하다. 경우는 좀 다른지만 클로드 란츠만은 <쇼아>를 만들면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할 때 맹인의 눈처럼 그것을 지켜본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눈을 찌르거나 눈을 감는 것, 길리언이 로빈의 텅 빈 방을 보는 것과 같은 장면들, 그런 식의 맹인의 우화나 맹인적 보기의 방식은 역사적 트라우마와 마주하는 새로운 보기의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굉장히 이상한 방식의 공포영화로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맹아적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이후 <드레스 투 킬>, <블로우 아웃>에서 보다 선명하게 표현된다.

 

 

이런 비슷한 시도를 근래 나왔던 영화들 중 토니 스콧의 <데자뷰>(2006)에서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는 감시적 기제를 통해 과거의 한 순간을 들여다보게되는 설정이 있다. 보기의 힘을 강조하고 그 능력을 이용해 테러라는 하나의 트라우마적 사건을 구제해 들어가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서도 그런 부분을 보여주는데, 두 영화에서 공통적인 것은 인물이 거대한 하나의 거대한 스크린을 마주한다는 사태이다. <데자뷰>의 덴젤 워싱턴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과거의 트라우마를 보게 된다. 그는 언제나 늦게, 죽음 이후에야 도착해서 희생자를 구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과거의 시간 안으로 뛰어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야기의 설정은 좀 다르지만 이 영화에서, 방대한 양의 기억의 아카이브에 접촉해서 과거의 순간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 스크린을 통해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게 생생하게 접촉해 들어가는 설정들은 길리언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해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 안에 접촉해 하나의 비전을 열어가는 행위와 굉장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60년대의 넘쳐났던 에너지들이 서서히 소멸해가던 70년대 중후반에 그 에너지들이 창조적인 에너지로 전환되기 보다는 오히려 트라우마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영화에서 카사베츠가 연기한 칠드레스는 마지막 순간에 길리언에게 눈물을 흘릴 것을 권하고(이는 감정의 착취적 소비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서 자신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지만 길리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잠재되어 있던 폭발적인 에너지의 창조적 전환의 실패와 추락, 그로 인한 고통과 비애에 내장되어 있는 에너지를 다시 파괴적인 힘으로 발휘해 들어가는 것이다. 길리언은 국가기관의 수장으로 존재하는 이 아버지의 몸을 완전히 박살내버리는데, 이것을 하나의 알레고리로 본다면 그런 식의 에너지를 영화적인 힘으로써 바꿔나가는 것은 비전의 힘이며 그러한 비전의 힘을 배양시켜나가는 것, 바로 여기에 드팔마라는 감독의 이후로의 방향과 그가 고심했던 바, 그리고 이 영화의 매력이 있다. 사유의 착취, 감정의 착취를 만들어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주류적인 것일 수 있고, 사회 안에서 보자면 시스템적으로 작동하는데, 새로운 보기의 방식들을 만들어가며 그러한 시스템들을 파열해가는 은유로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이 영화가 나로서는 흥미롭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황초희(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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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상영 후 김곡 감독 시네토크 지상중계

 

지난 8월 10일 존 카펜터의 <괴물> 상영이 있던 날, 국내 최고의 카펜터 팬이라 직접 시네토크를 자청했다던 김곡 감독이 극장을 찾았다. 이날의 시네토크는 그가 존 카펜터에게 바치는 애정만큼, 카펜터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던 자리였다. 그 이야기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곡(영화감독): 제가 마치 이 영화를 만든 감독처럼 나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다. 제가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에게 연락하여 ‘우리나라 최고의 카펜터 팬은 나인 것 같다’라고 하면서, 예정되지 않았더라도 꼭 좀 초대해달라고 떼를 써서 나오게 됐다. (웃음) 근데 저는 이 영화를 만든 사람도 아닐뿐더러 이 자리는 GV도 아니고, 솔직히 제가 뭔가 대답해드릴 건 없다. 여러분처럼 한명의 팬으로 와 있을 뿐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제가 존 카펜터를 처음 만난 건 국민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취미가 엄마가 외출했을 때 김선 감독이랑 같이 라면 끓여먹으면서 몰래 빌린 비디오를 보는 거였다. 그때도 좋아하던 작가가 몇 명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존 카펜터였다. 기억하기론 <괴물>을 보고 먹고 있던 라면을 반 넘게 남겼던 것 같다. 살이 갈라지고 하는 게 너무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제 인생을 이렇게 사로잡을 줄은 몰랐다. 그 이후 저도 모르게 친구들한테 <괴물>이란 영화 봤냐고 묻고 다녔고, 애들이 그게 뭐냐고 하면 꼭 보라고 계속 말하고 다녔다. 그때 같은 시기에 본 영화가 <비디오드롬>(1983)이었다. 그것도 아마 같은 날에, 아니면 이틀간 연달아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크로넨버그와 카펜터의 팬이 됐다. 국민학교 5학년 때 크로넨버그와 카펜터가 만든 영화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 유년시절은 몇 명의 작가에게 사로잡히게 되는데, 그게 존 카펜터, 데이빗 크로넨버그, 브라이언 드 팔마였다. 그중에서도 카펜터의 <괴물>이란 영화는, 그 영화가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마음속 깊이 나를 사로잡는, 매순간 나를 따라다니는 영화다. 그런 영화는 당연히 몇 편 안 된다. <괴물>은 그런 영화들 중 한 편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도둑이 될 수 있다면 세상에서 훔치고 싶은 단 하나의 네거티브 필름은 <괴물>이다. 저한테는 우상 같은 영화고, 거의 종교나 다름없다. (웃음)

 

 

존 카펜터 감독은 UCLA 영화학교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각본가로도 활동했고, <다크 스타>(1974)라는 황당무계한 영화를 첫 번째 장편으로 만들었다. 이후 1978년 <할로윈>이라는 영화로 전 세계를 강타한다. <할로윈>은 촬영을 2주 만에 끝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찍은 영화다. <할로윈> 다음에는 <안개>(1980), <이스케이프 프롬 뉴욕>(1981) 등의 작품이 있다. 존 카펜터는 공포영화 전문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렇진 않다. 카펜터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하워드 혹스다. 그리고 하워드 혹스가 제작하고 공동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1951년도의 <괴물>이 있다.

혹스와 카펜터의 <괴물>은 존 캠벨의 <Who Goes There>이라는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50년대 매카시즘 열풍 때문에 이런 소설들이 무더기로 나오기 시작한다. 혹스는 이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를 만든 것이다. 카펜터는 혹스의 <괴물> 팬이었는데, 시나리오를 받고 고민을 했다. 혹스의 영화처럼 그대로 만들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혹스의 <괴물>은 카펜터의 <괴물>과는 달리 믿음의 분기에 대한 성찰이 이분법적이었다. 외계인이 한명 떨어지는데, 그 외계인은 우리의 과학적인 발견이니까 보호해야 한다는 과학자 측, 그래도 죽여야 한다는 군인 측, 양자의 구도로 나뉜다. 전형적인 좀비적 구도다. 재밌는 건 혹스의 <괴물>은 괴물에 대한 연출이 굉장히 클래시컬하다는 점이다. 키 큰 거인처럼 묘사되는 게 전부다. 하워드 혹스와 크리스찬 니비는 공포물을 만들기보단 폐쇄 공간 드라마를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다. 카펜터의 <괴물>과 혹스의 <괴물>은 크리쳐에 대해서도 많이 다르다. 혹스의 영화는 아마 돈 시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혹스의 영화에선 크리쳐가 수동적인 식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복제라는 개념이 없었다. 피를 빨리면 그냥 죽어버린다. 근데 존 카펜터는 많은 해석을 가해서 공기감염을 접촉감염으로 바꾸고, 식물에는 없는 흡수의 내장을 만들었다. 정리하자면, 혹스의 <괴물>을 원작으로 봤을 때 카펜터의 <괴물>에서는 인물들의 내분이 여러 갈래로 붕괴되고, 흡수, 동화, 피와 내장의 개념이 들어온다. 즉 카펜터는 인간의 분열에 더 집중하고, 인간의 분열을 가속시키는 복제 개념을 들여와 진정한 전염병을 만든 것이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느낌은 눈에서 온다. 하얀색의 가장 차가운 눈, 우리의 시야를 불투명하게 가리고 모든 걸 희미하게 만드는 설원, 그곳에서 고립된 사람들. 이걸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가장 차가운 것 속에 가장 뜨거운 것이 있다. 대표적인 장면이 노르웨이 캠프에서 피가 얼어붙은 장면이다. 가장 뜨거운 것이 동결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녹는 순간,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차가움이 인간의 불신을 이끌고 뜨거움이 괴물의 모방을 이끈다. <다크 스타>부터 최근작까지 카펜터의 영화는 항상 내부와 외부의 구도로 진행된다. 혹스의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은 구도다. 내부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있고 외부에서 무언가가 침입하는데, 둘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이 없어도 내부에서 뭔가 교란이 일어난다. 마치 뚜껑을 열지 않아도 냄비 안의 물은 흔들리는 것과 같다. 이것은 내부와 외부의 상호작용은 아니다. 밖에서 안으로 세균이 침투해오고 잔상이 남지만, 그것을 어떻게 추적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체들이 서로를 파괴한다. 자가전염, 자가면역증세 같은 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건 매카시즘 열풍에 저항했던 많은 공포영화 작가들이 선호했던 구도이기도 하다. 여기선 심지어 밖에 뭐가 있는지조차도 몰라야 자가면역이 세진다. 항원 식별이 안 되니까 항체끼리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다. 맥크래디, 클라크, 차일즈의 삼파전에서 괴물은 그저 보조를 맞출 뿐,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인간의 불신이다. 존 카펜터는 까이에 뒤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에이즈나 바이러스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바이러스를 목전에 둔 인간성에 대한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자기가 진짜로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문제는 어디 있는가’, 즉 문제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문제가 어디 있는지를 못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클라크 같은 경우인데, 클라크는 사람보다 개를 좋아하는,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론 적대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클라크는 사람이었고, 맥크래디는 살인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자가면역에 빠진 면역계이기 때문에 법은 무너지고, 살인도 무색한 상황이다. 또한 차일즈라는 캐릭터도 재밌다. 맥크래디와 대립을 이루면서 끝내 살아남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너무 좋다. 혹스의 원작 영화는 신나게 끝나는 반면, 존 카펜터는 우수에 찬 엔딩으로 끝난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조금만 기다려보자. 뭔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카펜터는 몽타주를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빠르게 가면서 뿜어내는 소비에트 몽타주고, 또 하나는 어둠속으로 묻히게 하고 서스펜스를 주는 독일 표현주의 몽타주다. 그리고 자기가 <할로윈>에서 썼던 것은 독일 표현주의 몽타주라고 한다. <할로윈>은 존 카펜터를 전 세계에 알린 영환데, 살인이 일어나는 장면은 여타 지알로 필름과 비슷하다. 슬래셔 필름과 그다지 다를 바도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정말로 무서웠던 건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카메라였다. <할로윈> 같은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카펜터는 진짜 공포의 성질은 단지 피가 많거나 잔인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작가는 정말 별로다. 우리가 공포영화 거장이라고 생각하는 감독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다들 심오한 피의 철학, 본다는 것과 안 본다는 것, 외부와 내부에 대한 철저한 존재론을 갖고 작업한다. 마리오 바바, 다리오 아르젠토, 존 카펜터 등의 작가들에게서 강력하게 나타나는 시간관이 있는데, 카펜터의 경우는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할로윈>의 마이어스가 딱 좋은 옌데, 안 보인다는 게 단지 어두워서 안 보인다는 게 아니다. 안 보이는 건 보이는 모든 것이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할로윈> 바로 다음 작품 <안개>에서는 불투명한 안개가 나오는데, 거기에다가 존 카펜터가 추가했던 건 안개가 빛이 난다는 거였다. 안개는 너무 잘 보여서, 눈이 부셔서 안 보인다. 가장 불투명한 것이 뭔가를 숨기고 있지만 사실은 숨기고 있지 않은 거다. 왜냐면 그 자체로 발광하기 때문이다. 안개는 그 자체로 너무나 빛이 나고, 우리는 그 빛을 따라가야 악의 실체를 알게 된다. 이 관념이 카펜터의 후기작을 점령하는데,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인 ‘빛’에 악마가 숨어 다니게 된다. 존 카펜터의 인터뷰에 의하면, 인간에게 가장 크게 운명 지워진 건 우리는 우리의 신체 안에 갇혔다는 것이며, 그리고 진짜 악마는 어둠이 아니라 빛에 갇혔다고 하는 것이다. 괴물의 주제도 우리 시선 속에 있는 악마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괴물은 우리 바깥에 있지 않다. 내가 저 괴물을 쳐다보는 순간 내 시선은 감염된 것이다. 어둡다고 생각한 것은 우리 시선 안쪽에 있다. 만약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저는 이 개념을 ‘투명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투명하다는 건 안 보이지만 너무나 잘 보이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82년도는 카펜터에게 악몽 같은 해로, 관객도 비평가도 모두 <괴물>에 등을 돌린다. 이후 카펜터는 몇 년을 방황하고, 그 사이에 빛 속에 있는 악마를 표현하는 좋은 영화들이 나오게 된다.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1987), <매드니스>(1994) 등이 그렇다.

 

존 카펜터는 다른 공포영화 작가들과 달리 피에 별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사물을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우리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지각의 차원을 깊이 고민했던 작가가 존 카펜터다. <다크 스타> 때부터 그런 것 같다. 오히려 마리오 바바 같은 작가들이 피에 정말로 관심이 많았다. 두 감독의 피의 사용 방식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카펜터는 <괴물>에서 피를 단지 테스트의 용도로만 들여온다. 제작자 래리 프랑코와 존 카펜터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가장 공들였던 것이 피 혈청 테스트 장면이다. 반드시 잘 찍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하고 들어갔던 장면이고, 혹스의 원작엔 없는 장면이다. 공포 영화에선 정말 드문 장면이기도 하고, 카펜터가 피를 쓰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생각이란 주제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카펜터를 사랑하는 비평가들도 버린 <저주받은 도시>(1995)라는 영화가 있다. 어느 날 시간이 정지하고 마을의 여성들이 동시에 임신하는데 태어난 애들이 다 외계인이다. 이 외계인들은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한다. <화성인 지구 정복>(1988)에서도 외계인이 우리 생각을 조종한다. <투명인간의 사랑>(1992) 같은 경우도, 나의 존재를 정의하는 나의 생각이 투명해질 때 느껴지는 공포가 있다. 카펜터는 한 축으론 전염에 대해 다루지만 다룬 한 축으론 생각에 대해 다룬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뇌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카펜터의 필모그래피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정리: 송은경(관객 에디터) | 사진: 김윤슬(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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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들이 영화로 서신을 주고받듯, 비평가들이 영화비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비평교감’의 마지막 시간에는 변성찬 평론가와 남다은 평론가가 찾아왔다. 자신들은 씨네필도, 학구파도 아니라며 쑥스러운 미소로 시작했지만 금세 영화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말해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변성찬 : 아트시네마가 처음 제안을 할 때 자유롭게 하라고 했다. 때론 자유가 더 큰 구속을 주지 않나 싶다(웃음). 영화도 특정 영화를 골라 쓰라고 하면 편하게 쓰겠는데 아무거나 골라서 쓰라고 하면 괴롭다. 관객이 다섯 명 보다 적으면 바로 뒷풀이로 가려고 했다(웃음). 아무튼 우리는 솔직담백하게 얘기하도록 하겠다. 영화는 어땠나?

 

남다은 : 유운성-김영진 평론가는 씨네필, 장병원-정지연 평론가는 학구파다. 앞서 본 <서신교환>은 굉장히 우아한데 우리가 말로 비평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그만큼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 그래서 최대한 주관적이고 솔직하게 말하려 한다.

     영화는 사실 별로 기대를 안 했었다. 두 감독의 전작을 보긴 했는데 의심스러운 구석들이 많았다. 처음 엔리케의 편지는 감흥이 크게 오지 않았다. 전체적으로는 김소영 감독이 좀 밀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서신교환>은 형식상 한 감독이 영화를 찍으면 다른 감독이 응하는 방식이라 흥미로웠는데, 김소영 감독의 영화를 보면 엔리케 감독의 영향을 받으면서 욕심을 내긴했는데, 살짝 미진하지 않았나 싶다.

 

변성찬 : 첫 번째 편지가 좋다는 것에 공감한다. 특히 나뭇잎 연기가 좋았다. 그 나뭇잎이 외화면으로 사라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굉장히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외화면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면 불안하다(웃음). 반면에 네 번째 편지에서 외화면으로 비행기 소리가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는 나른해진다. 이런 면에서 이 에피소드가 내게 강렬한 인상을 줬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기에 이 작품은 연애편지 같은 느낌이 있다. 엔리케 감독이 먼저 편지를 보냈고, 거기에 대한 김소영 감독의 반응은 조금 시크하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아까 말했듯이 이전의 비평교감에 참여한 비평가들은 캐릭터가 뚜렷하다. 그러면 나와 남다은 평론가가 왜 엮이게 되었을까? 나와 남다은 평론가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씨네필이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씨네21>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디포럼 상임 작가라는 점이다. 2007년부터 한 해씩 번갈아가면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어서 동료 평론가들 중에서 일 때문에 자주 만나는 편이다. 하지만 다들 알 듯이 가까운 사이일수록 진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 못할 때가 많다. 영화 글쓰기를 한다는 건 매번 비평이란 뭘까 고민하는 시간인데, 이런 식의 무거운 주제를 진지하게 서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공식적인 자리가 마련되어 서로의 비평행위나 영화적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됐다. 먼저 남다은씨가 영화 평론가라는 직업을 갖게 된 계기는 뭔가?

 

남다은 : 먼저 씨네필이 아닌데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지와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스스로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말하겠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아카데미로 들어가는 글을 쓰기는 싫고 내 안에 에너지는 너무 많았다. 평소에 글 쓰는 걸 좋아했고 남들보다 영화를 많이 보긴 했지만 씨네필은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씨네21>로 등단했다. 한마디로 영화에 대한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 영화 평론가가 된 거다. 그래서 그 당시에 쓴 글들을 보면 읽어줄 수가 없다.

     2004년에 데뷔 했을 때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지금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당시 영화는 그냥 글을 쓰는 텍스트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영화든 소설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모르는 애가 더 무섭다고 영화적인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영화를 난도질했었다. 대학원에서 이런저런 이론들을 배웠고 그 기반에 페미니즘이 있었다. 영화는 페미니즘의 틀로 보면 너무 쉽게 분석되게 때문에 영화를 해체하면서 내가 굉장히 비판적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4년 정도 글을 쓰다가 동료 평론가들의 글을 보니 내게 너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영화를 봐도 그들은 내가 못 본 것들을 보고 있었다. 도저히 차이가 뭔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많이 고민하고 생각을 해 보니 그건 가치관의 틀이었다. 그래서 같은 영화를 몇 번이고 봤다. 그러다 스크린이 딱 내게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경험을 겪고 나니 이론이고 뭐고 다 쓸모가 없어지더라. 내가 몸과 마음으로 막연하게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데 이것을 언어로 표현하려고 하니 그 근원을 찾기 위해 영화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러다보니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변했다. 영화와 나와 세계가 같이 호흡하고 상호작용하는 순간을 경험한 다음에는 계속 그걸 찾으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그게 안 될 때가 많다. 영화가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내가 투명하고 맑지 않은 상태가 원인이었다. 아무튼 영화를 경험하고 난 후엔 이론의 틀이나 이데올로기에 맞춰서 영화를 보는 행위엔 흥미를 잃어버렸다. 물론 그렇게 분석해야 하는 영화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말이다.

 

 

 

변성찬 : 남다은 평론가가 씨네필로 출발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내가 봤을 때 어느 순간부터 씨네필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다은 : 씨네필적인가? 나는 너무 적이 많다(웃음). 너무 주관적이다, 비약이 심하다, 족보가 없다, 레퍼런스도 없다는 등의 비난을 받는다.

 

변성찬 : 나는 레퍼런스가 많은 게 씨네필적인 글쓰기의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진전시기 위해 두 가지 질문을 하겠다. 남다은 평론가의 글을 보면 ‘영화적 활력’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의 함의가 뭔지 궁금하다. 그리고 초기의 남다은 평론가는 페미니즘적 영화 비평을 했었지만 현재는 ‘영화적 페미니즘’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예로 여성 영화제에 관련된 ‘여성 영화란 존재하는가’라는 글이 신선했다.

 

남다은 : 영화적 활력이라는 말은 멋있어 보이기 위해 쓴 것이다. 참신하거나 영화적 활력이라는 것은 영화를 봤을 때 느끼는 거지, 관념을 갖고 개념적으로 성립된 건 아니다. 하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이미 거기에 있지만 우리가 지나쳤던 것, 혹은 병적이고 비정상적이고 사사롭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 영화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다. 우연의 개입일 수도 있고 배우의 신체의 활동일 수도 있다. 현실의 시간을 배제하지 않고 그것을 영화적인 시간-장소-언어로 전환하는 작업들이 그렇다. 독립영화 심사를 하면서 여러 편의 영화를 보는데 자신의 문제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상업영화의 문법을 따라 폭력적으로 만든 영화들은 지루하다. 문제의식은 같은데 뭔가 다른 일들이 벌어지는 영화,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른 영화, 기존의 의미망을 해체시키는 영화,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지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들을 보면 영화적 활력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게 꼭 형식의 문제는 아니다. 형식이 현란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면 <서신교환>의 엔리케의 영화에 대한 감동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것 같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실은 그게 내 고민은 아니다. 이건 변성찬 평론가의 고민이다(웃음). <씨네21>에서 내게 여성영화 관련 글 청탁을 했을 때, 나는 여성 영화란 범주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 여성영화라는 범주가 주는 위안과 저항감을 넘어서 그것의 답답함과 구속감이 있다. 영화와 친밀해지면서 이런 걸 떨쳐버렸을 때 해방감이 더 크다. 끌레르 드니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해 쓰면서 ‘영화가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일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나에게도 유효한 질문이다. 예전에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난도질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후에 <창피해>에 대해 평을 쓸 일이 있어서 <귀여워>를 다시 보게 됐다. 그 당시에는 진심으로 썼겠지만 내가 예전에 영화를 정말 잘못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글을 썼다. 나는 그런 순간이 좋다. 내가 그 사이에 바뀌었다는 점이 좋다. 예전에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볼 때 남자들의 판타지, 남자들의 욕망에 대해 많이 썼다. 무조건 그것만 썼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판타지가 있고 관음증이 있고 내면에 폭력적 욕망이 있는데 그것이 그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가 그걸 어떤 식으로 전시하고 풀어 가는지, 어떻게 그 안의 균열을 보여주는지를 눈여겨본다.

 

변성찬 : <창피해>를 보고 창피함을 느꼈다는 건가(웃음). 내가 물어봤던 건 개인적인 윤리에 기반한 비평과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비평에 대한 고민과 접합되는 지점이다. 특히 이것이 독립영화와 중첩되는 지점이 있어서 이런 질문을 했다. 남다은 평론가의 글이 내게 많은 도움이 돼서 인용까지 한 부분이 있다. “가부장적 체제의 도덕 관습 규율을 먼지처럼 가볍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양식, 욕망하기를 욕망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 나는 이 부분에서 “먼지처럼 가볍게 만드는” 이란 부분이 좋다. 여성영화가 가부장제의 의식, 감성과 맞서 싸우면서 같이 무거워지면 굉장히 힘들고 스스로의 벽에 갇히는 꼴이 된다. 소위 싸워가면서 닮아가는 메카니즘이 있는데 그런 유형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정체성을 공고화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바꾸고 갱신해 나가는 힘을 잃지 않을 때 정치적이건 미학적으로 대안으로서의 여성영화가 갖는 범주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독립영화도 이와 같다고 본다. 오글거리지만 도움이 많이 됐다. 고맙다(웃음).

 

남다은 : 이제 내가 질문을 하겠다. 데뷔가 늦고 그 경로가 특이하다. 그리고 대단히 학구파다. 짐작으로는 영화에서 어떤 위안을 얻어서 시작했을 텐데 어떻게 영화 비평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또한 <씨네21>에 독립영화에 관한 글을 격주로 연재하고 있는데 거기 자기소개 란에 “진정한 독립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다”라고 표현했다. 때론 독립이라는 말이 구태의연하고 상업영화를 배제하고 고립시키는 단어로 사용되곤 한다. 그래서 ‘독립’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썼는지 궁금하다.

 

변성찬 : 굉장히 늦은 나이라고 했는데 2002년 마흔 살에 시작했다. 시작할 때는 일종의 노후대책과 같은 마음으로 시작했다. 물론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긴 했다. 나이를 먹어서도 일종의 취미처럼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며 가벼운 연서를 쓰는 마음으로 지원했다가 수상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영화사 세미나를 했다. 그때는 영화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생활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오래 버티면서 지금까지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상황을 말하자면 나는 상업 영화에 대해 쓰지 않거나 쓰지 못하고 있다.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독립영화 전문 비평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독립영화의 진정한 독립에 기여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진정한 독립’을 선험적으로 제시하고 싶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여성 영화’라는 경계가 지나치게 견고하고 단단해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을까라는 남다은 평론가의 고민과 같은 맥락이다. 보통 독립영화라고 하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영화라고 받아들인다. 내 생각에 이것은 필요조건일 수 있지만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독립영화에는 지배적이고 주류적인 감정으로부터의 독립. 즉 정서적 독립이 훨씬 더 장기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나 스스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감정이라고 하는 것, 특히 폭발적이고 집단적인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오랜 기간 동안 자동적으로 익힌 것이다. 예를 들어 태극기만 보면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라는 것이 절대로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런 집단적인 감정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때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2000년대 초반에 동두천의 기지촌에서 성노동을 하던 분이 미군에게 강간당하고 끔찍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시위가 일어나곤 했었는데 시위 현장에 ‘미군이여 강간은 너네 나라에서‘라는 팻말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런 거다. 특히 이런 집단적인 감정들이 민족주의적-국가주의적 감정이 되기가 쉽다. 지배적이고 주류적인 통념을 재생산하는데 굉장히 강력한 무기로 사용될 것이다. 이건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독립영화의 정치성을 보면 출발점부터 계급적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적과 싸우면서 적과 동일한 무기를 사용할 때 적과 닮아버리는 위험성이 있다. 그랬을 때 정치라는 건 동맥경화에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나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정치가 이런 동맥경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수원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 새로운 스타일이나 미학이나 이런 것들이 중요한 이유는 미학주의나 좁은 의미의 형식주의 때문이 아니라, 쉽고 관습적인 방식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또는 자연스럽게 그런 영화적 순간과 만나면서 우리가 받는 그런 감정의 재생산에 대해 질문하고 벗어나게 만들고 정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 문제의식을 벤야민을 패러디해 이야기하자면, 진정한 독립영화는 정치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정치를 시행하는 영화다.

 

 

 

남다은 : 교감이 아니라 강의를 하고 있다(웃음).

 

변성찬 : 영화 글쓰기나 비평 행위가 나에게 갖는 의미가 뭔지에 대해서 덧붙일 말이 있다. 나는 영화 글쓰기나 비평 행위가 영화를 판단하거나 심판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다른 것이 아니라 나의 문제의식을 영화와 함께 영화가 준 감흥을 갖고 실험적으로 풀어나가는 글쓰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영화에 대해 갖는 어려움 중에 하나는 찬반에 방점을 찍는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런 의식이 영화 평론가라는 위치에서는 직업윤리 상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기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하기까지가 가장 어렵다. 항상 반복되는 일이라 작정하고 시작해도 이런 직업적 자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때만 글이 써진다. 물론 판단이나 심판이 비평 전체가 가져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임은 분명하지만, 영화적 글쓰기가 반드시 그래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최근에 많이 든다. 내게 자극과 감흥을 줬던 영화에 대해 쓰면서 내가 더 원하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영화를 글쓰기를 통해서 실험적으로 만들어 가는 행위가 비평 행위라고 생각한다. 영화 글쓰기 역시 다른 의미에서는 창작이나 창조 행위인 것이다. 남다은 평론가의 글도 그렇게 보인다.

 

남다은 : 이런 게 중요하다. 영화 평론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글인가가 화두다. 어느 분은 감독을 향해 쓴다고 하고, 유운성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저널에 쓰는 글은 독자들이 이 영화를 볼 건지 말 건지를 판단하게 해줘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누구를 대상으로 쓰는가? 나는 동료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쓴다. 동료 평론가들이 좋아하면 나는 가장 좋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나를 향해 쓴다. 영화 같은 경우도 세상을 향해 만드는 영화는 점점 보기 어렵고 힘들다. 오히려 내가 그 세계 안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을 영화 속에서 들여다보면서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작가들의 궤적을 볼 때 가장 기쁘다. 다시 말해 일기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세계와 나와 영화 사이를 연결해주고 생각하게 하고, 결국은 내 내면으로 들어오게 하는 작품이다. 영화를 볼 때 가장 괴로운 것은 영화 속을 제대로 안 들여다봤다는 것을 느끼면서 영화가 내게 안 붙을 때이다. 분명 굉장히 좋은 영화라는 걸 알지만 영화가 온전히 내게 안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땐 영화를 안 보고 혼자 시간을 갖는다. 사실 어떤 매체에 쓰느냐에 따라 글이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누구를 대상으로 쓰는 지를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변성찬 : 나는 딱 한 명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플로 반응을 보이니까 관심이 없어졌다(웃음). 아까 말했던 정치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정치로의 전환이라는 것은 사실 벤야민이 했던 얘기기도 하고, 60년대 서구가 요동치고 대단히 정치화 됐던 시기에 고다르를 위시한 창작자뿐만 아니라 이론가 비평가 그룹을 다 포괄한 정치적 모더니스트들이 갖고 있던 의식이다. 그래서 영화를 평가할 때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감정을 만들어 내는지가 중요하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서구의 정치 모더니즘에 자의식을 갖고 있지도 않고 씨네필도 아니지만 기존의 독립영화에서 자리 잡아왔던 영화적 재현 방식이나 스타일에 자연발생적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거의 반세기 이상이 흘렀고 시공간적 조건이 다른데 독립영화라는 범주 내에서 새로운 흐름들이 조심스럽게 지속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서구에서는 그들의 영화 언어를 비평 언어로 바꿔주는 담론의 개입이 있었지만 한국 비평계에서 그런 작업이 부족하다. 그래서 독립영화에 대해서 글을 쓰는 자리에 있는 이상 그런 징후나 흐름들을 나름의 시각으로 최대한 지지하는 것이 내 임무인 것 같다. 그래서 철지난 방법이긴 하지만 영화를 만든 감독을 대상으로 글을 쓰다 보니 작가론적 글쓰기를 많이 한다.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작가의 전작을 보고 작가가 갖고 있는 고유한 화두가 정리가 되지 않으면 작품에 대해서 말을 보태는 게 힘든 부분이 있다. 그다음에 신경 쓰는 게 있다면 동료 평론가들의 반응이다.

 

남다은 : 그래도 비평교감인데 민망하지만 마지막으로 서로의 글에 바라는 점과 앞으로의 다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웃음)

 

변성찬 : 진짜 민망하다(웃음). 남다은 평론가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언젠가부터 미세하게 변한 지점이 있었다. 그전의 글은 특정 지면들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글들 중 하나였지만 어떤 계기 이후로 페미니즘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진정 페미니즘적인 정서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설득력 있는 비평언어로 바꿔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흐름대로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남다은 : 고맙다. 변성찬 평론가의 글을 워낙 문장도 좋고 구조도 훌륭하고 탄탄하다. 그러나 요즘 독립영화 비평을 쓰면서 경직되고 진지해진 것 같다. 조금 더 풀어졌으면 좋겠다. <아리랑>에 대해서 굉장히 자유롭게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갔으면 좋겠다. 물론 진지하게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독립영화를 아직도 경직되게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안에서 영화와 함께 자유롭게 노는 글을 가끔 쓰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변성찬 평론가를 글을 쓸 때 술을 한 두 잔씩 먹으며 쓴다고 하던데, 술을 조금 더 먹고 쓰면 어떨까?

 

변성찬 : <아리랑> 글을 쓸 때 과음했었나보다(웃음). 최선을 다해보겠다. 지금은 밀려 있던 독립영화가 품고 있는 정서를 세상에 알리는 걸 주력하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독립영화 비행‘이라는 코너에서 홍상수의 신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정서의 독립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그 누구보다 훌륭한 독립영화 감독이 홍상수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더 자유롭게 노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겠다.

 

남다은 : 늦게까지 들어줘서 고맙다. 영화를 통해서 영화 안에서 보고 내 몸으로 느낀 것을 믿고 거기서 시작하겠다. 그걸 믿기 위해서 열심히 보고 열심히 느끼고 열심히 살겠다. 글을 쓸 때 항상 이걸 염두에 두겠다.

 

변성찬 : 남아서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 비평교감이라는 프로그램이 각자 흩어져 있는 한국 비평계의 교감의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인 것 같다. 싸움이 됐건 연대가 됐던 이런 장이 필요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공감이고 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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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하이메 로살레스와 왕빙의 서신교환 프로젝트를 상영한 후 장병원 평론가와 정지연 평론가의 ‘비평교감’이 이어졌다. 두 평론가 모두 오랜 시간 영화 매체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한국 영화비평 풍토에 대한 솔직한 느낌과 영화 비평의 역할에 대한 각자 다른 견해를 들려주었다.

 

 

 

장병원 : 왕빙의 <철서구>와 <중국 여인의 연대기>를 본 적이 있다. 왕빙은 어떤 특별한 장소나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이런 삶이 있다, 라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지는 않지만 기록하고 보존하고 의미를 묻는 경향이 있다. 대상에 대해 지시적으로 의미를 주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의 삶으로 깊이 들어가서 응시하게 하는 방법론이다. 로살레스의 ‘붉은 땅’은 왕빙의 ‘행복한 계곡’에 대한 응답으로 폐광촌의 과거와 현재가 시간적-공간적으로 어떻게 연결되고 분리되어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작업이다. 로살레스는 공항 에피소드에서 사운드와 이미지를 동기화 시키지 않고 계속 분리해서 보여준다.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기원이 어디인지 알 수 없고, 카메라가 쇼트의 커팅 없이 평면적으로 훑어간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영화에 활용하고 심지어 영화 작동의 기제를 드러냄으로써 영화 형식이나 이미지와 사운드, 명확한 카메라의 존재를 통해 관심사를 표현한다. ‘붉은 땅’에서도 이것을 구조화해서 보여준다.

 

정지연 : 왕빙 작업의 맥락을 모른다면 중국내에서 전(前)근대화된 공간, 즉 산업화 되지 못한 소외된 공간을 타자화 시키는 것 같아서 약간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서구인들이 제3세계의 독특한 삶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들의 삶을 타자화 시키고 스펙터클로 찍던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그 맥락은 ‘행복한 계곡’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로살레스의 작업이 조금 더 친절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붉은 땅’이라는 폐광촌의 풍경들을 과거-현재-미래의 화석화된 공간으로 담아 왕빙에게 응답하는 친절함을 보인다. 또한 첫 번째 에피소드인 공항 에피소드를 그의 영화 <고독의 편린>과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이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의 형식성이나 자의식을 굉장히 강하게 어필한다. 롱테이크로 한 쇼트를 계속 쓰되 포커스를 달리 하면서 비물질적인 쇼트 개념을 만들어 내는 면에서 영화적 형식에 대한 탐구가 돋보인다.

이제 우리도 비평교감을 해보자. 비평이 어떤 지점을 고민하는지, 혹은 현재 비평가로서 어떤 걸 고민하는지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비평가가 됐나?

 

 

 

 

장병원 : 나는 기자로 출발했는데 그때부터 한국 영화비평의 풍토에 대한 고민을 했고 지금여전히 같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비평에 대한 문제의식은 비평이 특성별로 분화가 잘 안 돼 있고 섞여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영화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내고 비평적 의제들을 제출해낸 것은 거의 저널리즘 비평이다. 하지만 그것은 좀 더 본격적인 의제나 깊이 있는 영화분석이나 문제의식 있는 글들을 소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분명 한계가 있다. 저널리즘 비평에서 제대로 된 비평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매체별로 분화가 되어야 하는 것들이 모호하게 섞여 있는 게 문제다. 본격적으로 깊이 있는 영화적인 의제와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비평이 필요하다면, 기존의 저널에 기대기보다는 명확히 분리된 다른 형식의 매체를 고민해봐야 한다. 그전에 독자적인 매체 또는 본격적인 비평저널이 가능한 상황인지도 질문해봐야 한다.

 

정지연 : 현재는 본격적인 비평을 쓸 수 있는 저널도 부족하고, 그런 식의 글을 썼을 때 독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지도 모르겠다. 이러다 보니 한국에서 영화 평론가라는 직업이 어떤 위상을 갖는지, 혹은 한국에서 영화비평이라는 것이 충무로나 독립영화 진영에 과연 생산적인 담론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는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비평가들에게 한국영화는 늘 위기였다. 현재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 획일화와 거대화에 따른 다양성의 상실과 관련해서 여전히 위기 담론이 유효하다. 하지만 그 우려와 다르게 한국 영화는 잘 발전해왔다. 정작 늘 위기를 이야기했던 평론가들은 자신들의 위기를 스스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한국에서의 평론가로 산다는 것과 한국 영화비평의 지형에 대한 이야기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요즘 유명한 영화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면, TV나 여러 매체에 나와 개봉 영화에 대한 가십 차원의 이야기를 던지며 영화 홍보를 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영화 평론가가 할 일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된다.

 

장병원 : 상통하는 맥락의 이야기다. 나는 영화에 대해서 아주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영화 평론가나 저널리스트들의 행위가 허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과 본격적인 영화비평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제라도 이 고착화된 풍토를 분화시켜야 한다. 비평적 저널을 하면서 영화 평론가가 재생산 구조를 가지고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본이나 대중과의 친화력을 고려하지 않는 상태에서 본격적인 영화 담론이나 비평적 의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연합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의제를 가지고 비평과 관련된 새로운 매체를 할 수 있는지도 문제지만 어떤 형식과 어떤 형태로 결합해야 하는 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정지연 : 주제를 바꿔, 영화마다 고민의 지점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평론가로서 영화를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먼저 말하면 나의 경우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움이다. 새롭다는 것은 최근 영화나 첨단 디지털 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의 혁신적인 새로움이다. 이런 맥락에서 초창기 영화는 지금 봐도 놀라운 영화가 있다. 스스로 매체의 자의식을 인식하고 자신의 표현영역의 한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영화들은 항상 흥미롭다. 다른 하나는 사유나 성찰의 계기를 던져주는 영화이다. 형식적으로 진부할 지라도 묵직한 주제의식이나 사유를 던져주는 영화가 있다. 온전히 새로운 사유를 던져주기도 하지만,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담고 있을 때가 있다. 이런 두 가지 경우가 흥미를 주고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된다.

 

장병원 : 나도 두 가지 관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영화의 형식을 중요하게 보는 편이다. 평론가들이 글을 쓰게 되는 계기는 다 비슷한 것 같다. 그게 정서적인 것일 수도 있고 흥미로운 영화의 구조를 해명하고 밝혀내려는 지적인 욕구일 수도 있으며, 자신의 세계관이나 시선과 절묘하게 접속되는 영화들에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서 증명하려는 욕망일 수도 있다. 그 과정은 논증이다. 비평은 왜 그런 정서나 감정을 느꼈는지를 과학적으로 밝혀내고 입증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를 보는 두 번째 관점과 이어진다. 내가 저항감이 생기는 한국 영화비평의 풍토 중 하나는 비평이 어떤 영화를 판단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어떤 영화가 좋은지 혹은 나쁜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영화가 가지고 있는 형식적인 특성이나 구조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평가의 일차적인 임무, 혹은 본격적인 영역은 텍스트의 구조나 형식을 밝혀내는 것이지 판관의 위치에 서는 건 부차적인 것이다.

 

정지연 : 그 부분은 이견이 있다. 엄밀히 분석하고 논증하고 해부하는 작업은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불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쓰는 글은 영화가 좋을 때 왜 좋은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서 불편할 때 왜 그런지 밝혀내는 글이다. 그래서 싫거나 좋거나가 뚜렷하다. <까이에 뒤 시네마>나 <포지티프>의 예를 들면, 그 매체들은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는 영화는 애당초 다루지 않는다.

 

장병원 : 한국 영화비평의 풍토에서 매체의 정체성을 놓고 보자면 명확한 입장과 노선에 따라 지지와 비판을 선명하게 내세우는 게 그 매체와 독자들에게 중요하다. 다만 개인이 독립적으로 글을 쓸 때는 그것은 다른 문제다. 즉 영화에 대한 옹호의 지점은 영화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하나의 흐름들을 갖고 의식적으로 글을 써내야 한다. 하나의 화두를 물고 늘어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영화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이다.

 

정지연 : 영화 연구자 그리고 영화 평론가로서 화두는 모두가 똑같을 것이다. 오늘날 영화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을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례들을 통해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내 관심은 연구자적 관점에서는 영화의 형식. 그리고 또 하나는 영화의 책무이다.

 

장병원 :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비평적인 의제를 만들어 낸다고 하는 것이 어렵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영화 평론가들이 다들 개별적으로 뿔뿔이 흩어져 약진하고 있다. 공동의 모색을 하거나 교류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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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후의 사나이> 상영 후 허지웅 평론가 시네토크 지상중계

 

지난 8월 4일, 무더위의 한 가운데 <지상 최후의 사나이> 상영이 끝나고 허지웅 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열렸다. 장르 영화에 대한 애착과 사유는 물론이고, 토크만으로 유혈이 낭자하던 즐거운 시네토크 현장을 전한다.

 

 

허지웅(영화평론가): 좀비 이야기는 타자, 혹은 이방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결정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다른 것들을 죽이고 없앨 것이냐, 혹은 융합해 살아갈 방법을 모색할 것이냐 하는 두 가지 태도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또한 타자를 없앤다는 선택지를 골랐을 경우 그 과정 안에서 ‘우리는 과연 그것들에 비해 무엇이 나은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보신 <지상 최후의 사나이>는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를 최초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매드슨의 단편들은 굉장히 기발한 설정을 통해 소름 끼치는 결말을 이끌어 내는, 짧은 이야기의 미덕을 가진 작품들이다. 반면 <나는 전설이다>는 중편으로, 기존의 매드슨 소설에서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은 54년 작, 이 영화는 64년 작이다. 이후 80년대에 찰톤 헤스턴을 주인공으로 한 <오메가 맨>으로 다시 영화화되었는데, 우리나라 공중파 TV에서도 자주 보여준 작품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 2007년에 <나는 전설이다>라는 제목으로 나온 작품까지 총 세 번 영화화되었다. 그나마 원작 소설의 내용을 많이 훼손하지 않고 영화화한 사례가 역시 <지상 최후의 사나이>인데, 매드슨이 이 영화의 각본을 직접 썼다. 그러나 오프닝 크레딧에는 그의 이름이 없다. 완성된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 이름을 뺄 것을 요구했고 대신 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이 영화를 마냥 싫어했던 것은 아니고, 이 영화가 실망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지점을 지적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타당한 것 같다. 먼저, 주인공 빈센트 프라이스의 캐스팅이다. 프라이스는 B급 호러물의 영웅이자 아이콘인 위대한 배우였고, 많은 비뚤어진 감독들의 유년기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다만 워낙 유명한 스타다보니 약간 ‘꼰대스럽게’ 구는 부분이 있었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 시체들이 널린 디스토피아의 풍경이 펼쳐지며 모건이 트렁크에 시체를 싣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더미를 쓰면 더 많은 시체를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프라이스가 극의 완성도와 사실감을 위해 굳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써야 한다고 우겼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배우들을 쓰게 되었는데, 자세히 보면 프라이스가 극장에서 시체를 옮길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 한다. 시체가 널린 도로를 차로 달리는 부분에서도 굉장히 서행한다. (웃음) 이런 식으로 쓸데없는 참견을 하는 부분이 있었고, 결정적인 문제는 당대의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빈센트 프라이스는 목소리 자체가 브랜드화 되었던 사람이다. 당시 ‘페이머스 고스트 스토리즈 Famous Ghost Stories’라는 TV 쇼의 진행을 맡고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교할 대상을 찾기 쉽지 않은데, 굳이 말하자면 ‘전설의 고향’이 끝날 때 ‘이 이야기는 전남 순천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 시어머니가…’ 같은 내레이션을 하는 목소리 같은 것이다. <지상 최후의 사나이>에는 초반 내레이션이 굉장히 많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심각하게 몰입하기는커녕 키득키득 웃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드슨은 미스캐스팅이라고 생각했고, 제작진을 많이 꾸짖었다고 한다.

 

 

영화의 진행은 좀 루즈한 편이다. 당시에 표현할 수 있었던 기술적 한계도 있었고, 연출력의 문제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시나리오 단계에서 제작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본래는 해머 영화사에서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이태리 합작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 어쨌든 64년, 즉 60년대 초반에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해주셨으면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건 엄밀히 좀비가 아니고,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좀비가 아니다. 하지만 좀비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이 영화를 빼놓을 수는 없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괴물에 대한 이미지는 명확한데, 제임스 웨일이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속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의 첫 장면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괴물이 마을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며 풍차에 몸을 숨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괴물은 우리와 다른 존재고, 아름답지 않은 외양을 가지고 있으며 소외 받는 존재다. 또한 우리가 기억할만한 유명한 괴물은 당시의 시대성을 담고 있다. 드라큐라나 미이라 같은 근대의 괴물들은 중세 이전의 세계관으로부터 오는 공포를 반영하고, 그 이후에는 환경오염이나 핵으로부터 비롯한 괴물들이 등장했다. 이런 소재성 외에 개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더 재미있어진다.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괴물은 독자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1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좀비가 등장하며 괴물이 다수, 군중, 집단의 모습을 하게 된다. 개체적 공포보다 집단으로부터 오는 공포가 더 유효해진 것이다. 또한 그 좀비라는 유행은 68년도에 시작된 이래로 끊임없이 변주되고 확대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즉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존재는 여전히 개별화된 연쇄살인범보다는 무리와 집단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매드슨의 소설과 이 영화는 뱀파이어들을 다루고 있지만, 기존의 방식과는 굉장히 다르다. 신비주의적인 경로로 탄생하는 뱀파이어가 아닌 병균에 의해 전염되는 일종의 질병의 감염자들이다. 또한 이들이 마늘을 두려워하는 것은 신비주의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마늘이 함유한 특정 성분 때문이고, 십자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토록 숭배하며 자신들을 지켜주리라 믿었던 신의 존재가 자신들을 내팽개친 것에 대한 무의식적 반감과 공포 때문이라는 것이다. 뱀파이어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하려고 한다. 결정적으로 무리를 지은, 군중에 가까운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매드슨의 원작이 최초였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은 후의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조지 로메로 역시 <나는 전설이다>라는 텍스트로부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이미지를 가지고 왔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자크 투르뇌르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를 비롯해 좀비가 등장하는 과거의 영화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좀비들은 부두교의 주술에 의해 만들어진 신비주의적 좀비였고, 대부분은 인종차별과 연관되어 있었다. 결국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좀비의 컨셉과 원형, 즉 물면 전염이 되고, 느리게 걸어 다니며 사람을 먹는 좀비를 만들어 낸 것은 68년에 조지 로메로가 만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다. 결국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좀비 텍스트를 창조한 결정적인 동력이 소설 <나는 전설이다>와 영화 <지상 최후의 사나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전설이다>라는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정수는 괴물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괴물을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즉 타자에 대해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대한 문제를 명확히 꿰뚫는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역시 그렇게 뛰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괴물, 이방인에 대한 공포는 언제 어디서든 뒤집힐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다. <지상 최후의 사나이>의 마지막 장면이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건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인간인데,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인간이 아닐 때 무엇이 정상이 되는 것인가. 저들이 절대적인 다수고, 내가 말 그대로 ‘지상 최후의 일인’이라면 내가 괴물이 되는 것이다. 로메로의 비전 역시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꾸준히 이어지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 같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도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는 좀비의 존재 자체보다는 그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이야기의 정수가 있다. 특히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흑은 벤이 민병대에 의해 좀비로 오인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부분이 중요하다. 당시 사회에서 흑인은 여전히 이방인이며 타자였고, 그렇기 때문에 좀비와 다를 것이 없다. 어찌 보면 굉장히 블랙코미디 같은 설정이다.

이번 시네바캉스에서도 90년에 톰 새비니가 리메이크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상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왔고, 로메로가 상당부분을 함께 만들었으니 보시면 좋겠다. 이 리메이크판을 포함해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에 좀비 영화들이 굉장히 각광받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영웅 같은 감독들이 대거 등장했다. 스튜어트 고든, 샘 레이미, 피터 잭슨, 잭 스나이더 같은 감독들은, 어찌 보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나는 전설이다>라는 텍스트 없이는 등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반지의 제왕>을 못 봤을 수도 있다는 건 약간 무시무시한 일이다. (웃음) 아무튼 어렸을 때부터 불우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감독들에게 이 텍스트들이 좋은 학습효과를 주었다는 점, 그래서 좀비 영화는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보는 안보든, 싫어하든 좋아하든 영향을 끼쳐 왔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또한 좀비 영화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지속적으로 걸출한 작품들이 나와 주었기 때문이다. 그 중 대니 보일의 <28일 후>도 꼽을 수 있는데, 그 영화에서는 좀비들이 뛰어다닌다. 아, 정말 무서웠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원래 인터뷰도 잘 안 하는 로메로 선생님께서 여기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비추고 말았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대체 왜 좀비가 뛰는지 알 수가 없다, 좀비는 이미 죽은 시체라 뛰면 당연히 관절이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오타쿠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웃음) 아무튼 이렇게 좀비 영화의 계보 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 실험적이고 멋진 영화들은 좀비 영화에서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들, 즉 괴물과 타자에 대한 태도라는 문제를 지금 우리의 현실에 맞는 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놀랍게도 한국영화를 이에 대한 적절한 예로 들 수 있다. 최근에 만들어진 <이웃집 좀비>의 후반부 에피소드는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했다가 마침내 개발된 백신으로 정상화 된 사회를 그리고 있다. 과거에 좀비였던 사람들도 백신을 맞고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흔적이 남아있다. 얼굴이 약간 썩어있다거나 비뚤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전에 국회의원이고 변호사였던 사람도 일용직 노동자가 되고, 그마저도 고용인이 그가 좀비였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그대로 해고된다. 왜냐하면 좀비였으니까, 괴물이었으니까. 이는 노골적으로 우리가 이주 노동자를 다루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관객1: 오늘 강연의 주제가 ‘좀비의 정치학’인데, 인터넷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때 ‘좌빨 좀비’ 등의 좀비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허지웅: 집단은 분명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목소리만 강성하게 들려오는 경우 좀비 영화의 이미지가 떠오를 때가 분명히 있다. 그걸 좌빨 좀비, 수구 좀비, 뭐라고 부르든 아예 맥락이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커다란 광풍이 몰아칠 때 사람들은 두 가지 타자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하나는 선의를 투영할 수 있는 우상으로서의 구루와 같은 아이콘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종류의 공포와 부조리를 덮어씌울 수 있는 괴물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이 이번 정권 들어 여러 가지 상황이나 현실로 드러난 것이라 생각한다.

 

관객2: 괴물이나 타자를 대하는 선택지에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아우르려는 쪽을 선택하는 영화들도 있는지 궁금하다.

허지웅: 있다. 앞서 말씀드렸던 <이웃집 좀비>처럼 영화 속에서 좀비가 취급되는 방식이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취급하는 방식과 명백히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저들이 괴물이냐, 아니면 저들을 괴물로 다루는 우리가 괴물이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영화들이 있다. 또는 아예 직접적으로 이야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는 좀비가 된 친구를 쇠사슬로 감아 같이 살지 않나. 또 한국에 <리빙 데드3>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브라이언 유즈나의 영화가 아마 방금 질문하신 의도와 가장 부합하지 않을까 한다. 좀비가 되어가는 여자와 그의 연인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피해 함께 도망 다니다 끝내 용광로에 함께 몸을 던지는 내용이다. 좋은 영화니 꼭 보셨으면 좋겠다.

 

정리: 박예하(관객 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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