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7.25 여인들의 영화 감독
  2. 2011.07.25 정숙하고도 정념어렸던, 그녀들과의 재회
  3. 2011.07.06 日멜로 거장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 세계

나루세 미키오는 영화란 언제나 개봉 뒤 몇 주가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들이 우리의 머릿속에 새겨놓은 깊은 인상은 나루세의 그 이야기가 전적으로 옳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다만 그의 영화가 꽤 오랫동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아 정당한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는 사실은 존재한다. 일례로 그는 그와 비교 대상이 되는 오즈 야스지로에게 거의 항상 밀려 있는 존재였다. 그는 오즈보다 먼저 쇼치쿠 영화사에 들어갔음에도 그보다 훨씬 늦게 감독의 자리에 올랐고(1920년에 쇼치쿠에 입사한 나루세는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뒤에야 감독이 되었던 데 반해 오즈는 1926년에 같은 영화사에 들어가 다음해에 첫 영화를 만들었다), 쇼치쿠의 가마타 스튜디오 소장 기도 시로가 자기 영화사엔 두 명의 오즈가 필요 없다고 이야기했듯이 일찍부터 ‘또 하나의 오즈’ 같은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세계무대 입성에서도 (그 역시 비교적 뒤늦게 국제적 주목을 받은) 오즈에게 뒤졌다.

위기와 혼돈의 홈드라마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루세의 영화들이 사라져버리기는커녕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기회를 점차 더 갖게 됨으로써 앞에서 열거한 사항들 가운데 두 번째 것에 대한 오해가 벗겨져가고 그래서 온전한 그의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영화 전문가인 도널드 리치가 이미 나루세란 존재를 두고 “오즈의 대안”이라고 평가했듯이, 비록 나루세의 세계에 오즈의 그것과 공유하는 (듯한) 영역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즈의 것과는 그 시선과 미학에서 구별되는 독자적인 대륙이라고 봐야 한다. 나루세는 오즈의 주변에 놓이는 데 그치고 마는 또 다른 오즈가 아니라, 그만의 세계를 구축한, 고전기 일본영화의 또 다른 거장인 것이다.

나루세에 대해 여러 평자들이 이미 붙여놓은 호칭 가운데에는 물질주의자(materialist)라는 것이 있다. 그에 걸맞게도 나루세의 영화 속에서 우리는 돈을 세거나 건네는 손과 돈을 갚으라고 하거나 빌려 달라고 하는 대사를 자주 보고 들을 수 있다(세 명의 중년 여주인공 가운데 하나가 사채업자로 나오는 <만국>(1954)은 이걸 특히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나루세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돈의 막중한 하중을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이 지점에서부터 나루세의 ‘홈드라마’는 오즈의 그것과 갈린다. 오즈는 대체로 나루세의 영화 속 그것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서로간의 예절과 조화도 좀 더 잘 유지될 수 있는 가족을 자기 앞에 정중하게 초대해놓고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궁극적으로 자연의 질서 속으로 융합되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본다. 반면에 나루세가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족은 위기 상황 혹은 혼돈이란 표현에 더 가까운 공동체이다. 나루세의 가족은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에서처럼 한 사람이 ‘착취’됨으로써 지탱되는 무자비한 것이거나 <번개>(1952)에서처럼 갑작스럽게 생긴 보험금이 갈등을 불러오는 취약한 것이 되곤 한다. 차가운 바깥 세계와 다를 바 없는 그런 곳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경이 근본적 미덕이 될 리는 만무하다.

고통과 희생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여인들

나루세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공간으로 말하자면 ‘조금만 움직이더라도 벽과 맞부딪칠 정도로’ 협소한 세계이고(좁은 실내를 주요 공간으로 삼는 그의 영화는 바깥으로 나간다 할지라도 역시 주로 좁다란 뒷골목만을 보여줄 뿐이다), 색깔로 비유하자면 뿌연 회색에 가까운 세계이며, 맛으로 치자면 씁쓰름한 맛을 안겨주는 세계이다. 막스 오퓔스, 미조구치 겐지, 잉마르 베리만, 칼 드레이어 등과 함께 영화사의 출중한 ‘여인들의 영화감독’ 대열에 낄 그는 그 세계 안에다가 그의 여주인공을 내던져놓는다. 한데 다시 한 번 오즈를 불러오자면, <만춘>(1949) 같은 영화 속에서 항상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던 하라 세쓰코와는 그 세계가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만일 그녀가 나루세의 세계로 들어온다면 <산의 소리>(1954)에서 보듯 이제 더한 고통과 수모를 견뎌낼 준비를 갖춰야 할 것이다. 고집스러운 표정의 다카미네 히데코로 대표되는 나루세의 여주인공들은, 때로는 영화를 보는 우리조차도 쉽게 공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완고한 성격과 강한 의지를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 고통과 배신과 실망으로 가득 찬 나루세의 황폐한 세계를 어떤 식으로든 통과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때 우리는 고통과 희생으로서의 삶을 우아하게 살았던, 영화 속의 또 다른 눈에 띄는 여인들, 바로 미조구치의 여인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나루세의 여인들은 분명 미조구치의 여인들과 닮은 데가 있긴 했지만 둘은 알고 보면 다른 영토를 점하는 존재들임이 드러난다. 요컨대, <오하루의 일생>(1952)의 여주인공은 거의 낭만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희생을 겪으며 결국에는 초월을 거쳐 미학적인 세계로 진입한다. 하지만 미조구치의 여인보다 어떤 면에서든 현세적이라 부를 수 있는 나루세의 여인에게 그 같은 ‘초월’이란 존재론적 사치에 해당할 뿐이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생존을 우선시하는 현실적 존재이며, <밥>(1951)의 서두에서 자신의 감정적 공명을 찾았던 작가 하야시 후미코를 인용해 “무한히 광활한 우주 속에 놓인 인간이 꾸려가는 애절한 영위(營爲)가 나는 참을 수 없이 좋다”고 했던 나루세는 바로 그런 존재에게서 결국에는 인간적인 기품을 발견해내고야 만다. 이를테면,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의 마지막에서 게이코는 자신을 둘러싼 일들에서 계속 실망할 뿐이지만 그날도 자기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일인 계단을 올라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는다. 거기에서 나루세는 앞에 놓인 날들의 불투명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지 보여준다.

감정의 리듬을 따라 흐르는 짧은 숏들

나루세는 자신의 이 주인공들이 내딛는 삶의 행보를 따라가면서 흘러가듯 진행되는 영화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 그건 우리의 삶 자체와 유사하게 멈추지 않는 현재의 연속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런데 미조구치나 오즈의 경우와 달리 미학적인 엄정함이나 압도감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 단지 간소하면서 수수하게 짜인 숏들을 막힘없이 이어놓기만 한 이런 식의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눈에 확 들지 않는 영화, 혹은 그것만의 어떤 비범함이나 특별함을 찾을 수 없는 영화로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나루세 밑에서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구로사와 아키라가 지적하듯 얼핏 조용하고 평범해 보이는 짧은 숏들의 흐름이 실은 “격렬한 조류가 조용한 수면 밑에 가려진 깊은 강”과도 같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구로사와의 이 이야기를 가져와서 말하자면, 나루세의 영화는 잔잔히 흘러가는 영화적 세계 그 아래에 어떤 저류의 활동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저류의 다른 이름은 바로, 나루세 자신도, 그리고 영화평론가 야마네 사다오도 썼던 ‘감정의 리듬’이다.

이에 대한 훌륭한 예를 우리는 나루세의 마지막 영화가 된 <흐트러진 구름>(1967)의 대사가 거의 없이 진행되는 마지막 10분여의 시퀀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로 사랑해서는 안 되는 두 남녀가 함께 보내는 짧은 여정 안에서 그 정서적 공기는 두려움과 초조감이 섞인 기대감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고 떠오르는 과거에 의해 생겨나는 일종의 열패감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서로 사랑할 수 없다는 운명적 자책의 심경으로 이동한다. 그 흐름을 나루세는 두 사람 사이에서 행해지는 시선의 만남과 회피, 몸짓, 그들 앞에 펼쳐지는 사건의 단편적 광경들을 통해 천의무봉의 솜씨로 그려낸다. 여기서 우리는 나루세의 영화에는 고저의 움직임이 없다는 (기도 시로식의) 비판이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한편으로 이 시선과 몸짓 연출의 대가는 단 하나의 몸짓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걸 보고 느끼게 해준다. <만국>은 젊었을 적에 게이샤였다가 지금은 사채업을 하는 중년 여인 긴이 열차 역에서 가방을 뒤지며 차표를 찾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바로 이 순간적인 몸짓 하나로 나루세는 이전까지 그토록 매정해 보이기만 했던 긴에게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는가 하면 우리에게 삶의 지속됨의 한 증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언어적 표현을 넘어서는 삶과 인생의 미스터리가 존재함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그 단순한 장면은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과도 비교할 수 없는 미묘한 영화적 서스펜스와 묵직한 감동을 안겨준다. 아마도 이런 것이야말로 하스미 시게히코가 나루세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 ‘과묵한 웅변’의 한 실례가 아닌가 싶다.

언어적 표현을 넘어선 삶의 미스터리
나루세 영화가 보여주는 이 같은 미묘한 ‘풍요로움’의 예들은, 그가 죽기 전에 품고 있었던 프로젝트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말년에 그는 병 때문에 비록 현실화하지는 못했지만 오로지 흰 커튼을 배경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인간 움직임의 뉘앙스, 그것의 풍성함에 집중한 영화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정말 그것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나루세는 과연 어느 지점까지 나아갈 수 있었을까? 이처럼 실제로 남겨놓은 세계만 해도 더욱 탐사할 것으로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그 너머까지 공상에 이르게 하는 것도 역시 거장만이 우리에게 행사할 수 있는 힘일까?

글/ 홍성남(영화평론가) 기사제공/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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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 회고전, 7월15일부터 24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나루세 미키오(1905~69) 감독과 작업했던 사람들은 그가 구상하는 화면에 대해 짐작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의 영화 15편에 출연한 여배우 다카미네 히데코는 한번도 연기 지도를 받은 적이 없어서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촬영현장에서는 이런 혼란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완성된 영화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이음매가 전혀 표시나지 않는다. 야마네 사다오의 말처럼 자신의 기교조차 지워버릴 기교를 지니고 있는 나루세의 영화는 지극히 사실적이고 잔잔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태도의 문제일 뿐, 그의 멜로드라마는 어떤 작품보다도 격정적이며 우리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특히 나약함과 강인함, 정숙함과 정념을 동시에 지닌 아이러니한 그의 여성 주인공들은 오로지 나루세만의 인장이다. 동시대에 활동한 오즈 야스지로가 아버지와 딸로 대표되는 남녀 주인공에게 에너지를 분배했다면 나루세는 그가 사랑한 문제적 여성 인물들에 집중한다.

1930년 <찬바라 부부>를 시작으로 1960년대까지 총89편이 기록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본령은 멜로드라마다. 이번 회고전에는 총 12편의 멜로드라마가 상영되는데 <아내여 장미처럼>(1935)을 제외하고 모두 50, 60년대 대표작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상영작은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된다. 우선 가족 멜로드라마 성격의 <아내여 장미처럼> <엄마> <산의 소리> 등이 있고, 두 번째는 화류계에 종사하는 여성주인공의 애환을 그린 <흐르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방랑기>가 있으며, 마지막은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부운> <흐트러진 구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몰락해가는 게이샤 집의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낸 <흐르다>에는 나루세 영화의 히로인이 총출동한다. <흐르다>와 긴자의 바를 배경으로 한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의 주인공은 성격이 비슷한 여성들이다. 화류계 여성이지만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이들은 그런 성격 때문에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두 영화에 모두 등장하는 주판과 가계부, 전표가 클로즈업된 숏은 이들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뭇 남성들의 추앙을 받지만 정작 내 남자는 없는 이들이 사랑에 빠지면 돌아오는 것은 몰락과 환멸밖에 없다.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이들이 처한 환경은 근원적으로 거기에 배치된다. 모순을 껴안고 타협하지 않는 나루세의 여자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진다. 바가 있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는 발걸음이 무거워도 이들은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간다.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이기적이고 비겁하다. 옛정에 기대 공짜로 놀아보려 하거나 떠나기 직전에야 사랑을 고백할 용기를 내는 남자들이지만 나루세는 그들까지도 측은하게 바라본다. 여자들은 남자를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단련시킬 다짐을 한다.


<아내여 장미처럼>은 딸의 시선으로 두집 살림을 하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딸은 아버지를 되찾기 위해 집을 나서지만 아버지가 이룬 또 다른 가족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해외에서 더욱 호평받은 <엄마>에서 딸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연민을 갖고 바라본다. <번개>와 <오누이>는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으며, <부운>과 <방랑기>는 하야시 후미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로 다카미네 히데코의 열연이 돋보인다. 나루세 영화 중 가장 드라마틱한 <부운>은 유부남과 처녀의 비극적 사랑을, <방랑기>는 사랑을 따라 화류계를 떠난 여성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담고 있다. 스기무라 하루코의 유일한 주연작 <만국>은 게이샤를 은퇴한 여주인공의 삶을 보여주는데 <흐르다>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와 일맥상통하는 비애감이 존재한다. 하라 세스코가 주연인 <산의 소리>는 외도를 하는 남편을 묵인하는 젊은 아내와 그런 며느리를 바라보는 시아버지의 섬세한 감정 교류가 돋보이는 독특한 영화다. <흐트러지다> <흐트러진 구름>은 미망인이 주인공인 영화인데 유작 <흐트러진 구름>(1967)은 남편을 죽인 장본인을 사랑한다는 내용이 더글러스 서크의 <마음의 등불>(1954)을 떠올리게 한다.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은 7월15일부터 24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된다.

글/ 이현경 (영화평론가)

* 이 글은 영화전문 주간지 씨네21 2011. 7. 13일자에 게재된 것을 발췌해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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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부터 24일까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대표 최정운 www.cinematheque.seoul.kr)7 15일부터 724일까지 열흘 동안 시네마테크부산 부산아시아필름아카이브의 제공으로 일본영화의 4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나루세 미키오의 대표작을 모아 상영하는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을 개최한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은 40년 가까운 연출자 생활 동안 모두 89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번에 열리는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에서는 그의 주옥 같은 작품 중에 <아내여 장미처럼>(1935) <오누이>(1953) <산의 소리>(1954) <부운>(1955)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 <흐트러지다>(1964)와 같은 잘 알려진 걸작을 비롯해 해외에서 더 좋은 평을 받은 <엄마>(1952), 가족들 각자가 마음을 숨긴 채 소바를 먹는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번개>(1952), 인생의 씁쓸함이 짙게 표현된 <만국>(1954),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출연해 게이샤의 애환을 담은 <흐르다>(1956), 나루세 미키오의 페르소나 다카미네 히데코의 절정의 연기를 볼 수 있는 <방랑기>(1962), 그리고 유작 <흐트러진 구름>(1967)까지 총 12편을 상영한다.

나루세 미키오는 ‘가족의 스펙터클’, 즉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가족 구성원의 속마음을 일상의 풍경으로 끄집어낸 연출로 유명하다. 나루세 미키오 영화 속 인물들은 갈등이 극에 달한 가족도, 열렬한 사랑을 나누는 남녀도 웬만해선 말이 없다. 격렬한 몸짓도 사치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은 겉에서 보면 잔잔하게 일렁이는 수면 같지만 그 아래에는 엇갈리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진흙탕을 이루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루세 미키오가 다루는 사건은 정적인 형태를 취하지만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일상적인 인간관계에 침전한 미묘한 의미가 뚜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다루는 소재 자체가 가족(<아내여 장미처럼> <오누이> <산의 소리> <흐트러지다> )이나 남녀의 사랑(<부운>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흐트러진 구름> )과 같은 극히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풀숏으로 보게 되면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나루세 미키오는 여기에 클로즈업과 같은 시선의 연출로 관계의 이면에서 꿈틀거리는 극세사 같은 감정을 영화화한다.

그러다 보니 나루세 미키오가 보여주는 감정의 스펙터클에는 결코 해피엔딩과 같은 완결된 형태의 마무리라는 게 없다
. 갑작스럽게 생긴 보험금으로 갈등을 겪는 <번개>의 가족들은 본심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식사를 마쳐야 하고, 전쟁 중에 만난 <부운>의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은 2차 대전 직후 일본의 절망적인 시대상 속에서 비극적으로 끝맺음 될 수밖에 없으며, 남편을 잃은 후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의 그녀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홀로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나루세 미키오가 보건데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결코 관계의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인생을 살아가는데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뿐이다. 하여 가족도, 남녀 간의 사랑도 모두 쓸쓸하고 애잔한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풍경을 품은 인물은 바로 다카미네 히데코다. 모두 15편을 함께 작업했던 다카미네 히데코는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여성상을 대표한 배우로 유명하다. 그녀에게는 감정의 진폭이 아닌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확실히 나루세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역경과 갈등에도 굴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나루세 영화 속 여인들 특유의 강한 생명력이 다카미네 히데코에게서 좀 더 두드러진다. 아마 이 점이 가족 이야기를 공유해온 오즈 야스지로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일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가 주로 노부부의 회한을 통해 당대 가족의 삶을 보여줬다면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의 인내를 스크린에 새겨 넣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영화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만큼 여자의 감정을 포착하는데 남다른 연출력을 보여줬다. 다만 오즈 야스지로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쇼치쿠의 가마타 스튜디오 소장 기도시로는 “우리에게 두 명의 오즈는 필요 없다”라는 얘기를 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그 가치를 인정받은 감독이다. 이번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은 그러한 그의 가치를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 기간 중에는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세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네토크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이 시네토크 시간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유운성 영화평론가가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서 감정과 형식과 제스처란 주제로 관객들과 함께할 예정이다. 보다 상세한 작품 정보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 홈페이지(www.cinemathrque.seoul.kr)를 참고하면 되며, 지정 예매처에서 인터넷 예매도 가능하다. (문의 02-741-9782)



 

■ 감독 소개

나루세 미키오 成瀨巳喜男 (1905~1969)

 

1920 15세에 쇼치쿠에 입사하였으며, 조감독을 거쳐 1930년에 <찬바라 부부>로 감독 데뷔하였다. 자신이 성장했던 도쿄의 빈민가를 무대로 서민극 장르의 영화를 주로 만들었고,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 ‘여성영화감독’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유작 <흐트러진 구름>까지 시대를 넘나들며 89편에 달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1세대 감독으로 꼽히며,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일본영화의 4대 거장으로 불린다. 사후 10여 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재평가되기 시작했으며, 평론가는 물론 후대 감독들로부터 현대적인 영화미학을 성취한 감독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 시네토크 Cine-talk

7 17() 15:30 <흐트러진 구름> 상영 후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에서 감정과 형식과 제스처│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상영작 목록 (12)

아내여 장미처럼 薔薇のやうに / Wife! Be Like a Rose!

1935 74min 일본 B&W 35mm 15세 관람가

 

엄마 おかあさん / Mother

1952 98min 일본 B&W 35mm 15세 관람가

 

번개 稻妻, Lightning

1952 87min 일본 B&W 35mm 15세 관람가

 

오누이 あにいもうと / Brother and Sister

1953 86min 일본 B&W 35mm 15세 관람가

 

산의 소리 , Sound Of The Mountain

1954 96min 일본 B&W 35mm 15세 관람가

 

만국 晩菊 / Late Chrysanthemums

1954 102min 일본 B&W 35mm 15세 관람가

 

부운 浮雲 / Floating Clouds

1955 127min 일본 B&W 35mm 15세 관람가

 

흐르다 れる / Flowing

1956 117min 일본 B&W 35mm 15세 관람가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階段 / When A Woman Ascends The Stairs

1960 111min 일본 B&W 35mm 15세 관람가

 

방랑기 放浪記 / A Wanderer's Notebook

1962 124min 일본 B&W 35mm 15세 관람가

 

흐트러지다 れる / Yearning

1964 98min 일본 B&W 35mm 15세 관람가

 

흐트러진 구름 / Scattered Clouds

1967 108min 일본 Color 35mm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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