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클래식 영화사 강좌 [4]

서울아트시네마의 '한겨울의 클래식' 기획전 기간에 영화에 대한 즐거움을 한층 더할 수 있도록 '영화, 역사, 풍경'을 테마로 한 영화사 강좌가 마련되었다. 지난 1월 9일,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 상영 후에는 그 마지막 시간으로 한창호 영화평론가가 "데카당스와 빛"이라는 제목으로 강좌를 맡았다. 그는 <레오파드>에서 드러나는 오페라에서 가져온 4막 구성을 따라, 공간과 미장센을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비스콘티의 데카당스 미학에 대해 들려주었다.


한창호(영화평론가): 2년 전에 비스콘티의 <루드비히>와 관련된 강좌 이후, 비스콘티로 여러분들과 만나는 두 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데카당스와 빛"이란 제목으로 준비했다.
영화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대부분 왕정이었는데,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 있는 사보이 왕가를 중심으로, 모든 왕국들이 사보이 왕가에게 충성 맹세를 하는 흡수 통일이 시작됐다. '비토리오 엠마누엘레'라는 왕과 '카부르'라는 재상, 직접 전투를 벌이는 '주세페 가리발디' 세 사람이 그 중심이었다. 그들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큰 대의에는 합의를 했지만, 어떻게 통일하느냐에 있어서는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 사보이 왕가는 입헌군주제를 원했다. 귀족과 부르주아가 서로 합의하여 권력을 분점하려 한 것이다. 반면, 가리발디는 국민주권의 공화국 건설을 하려 했다. 그런데, 가리발디가 국민적 영웅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왕가 입장에서 그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사람이 된다. 귀족들은 가리발디에게 밀려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먼저 가리발디를 숙청한다. 영화의 끝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것이 현재 이탈리아의 출발이다. 이탈리아는 비록 통일은 했지만, 그것은 처음에 목표했던 '혁명'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미흡한 상태로, 정치적 타협을 한 상태로 이뤄졌다. <레오파드>의 주인공 돈 파브리치오(버트 랭카스터)는 구시대에 속한 사람의 본능처럼 가리발디를 적대한다. 반면, 조카인 탄크레디(알렝 들롱)는 세상의 변화를 알고 있고, 가리발디에 자신의 미래를 건다. 상식적으로 가리발디는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레오파드>에서 가리발디는 공포를 주는 대상이자 무뢰한처럼 나온다. 이는 주인공인 귀족의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레오파드>부터 비스콘티가 데카당스의 미학을 시작한다. 비스콘티는 1953년에 만든 <센소>에서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처음 드러내며, <레오파드>부터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죽음이 된다. 비스콘티는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한데, 점점 대 서사를 지닌 멜로드라마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오페라의 영향일 것이다. 그는 <레오파드>부터 본격적으로 오페라의 4막 형식을 영화에 가져온다. 1막에서 큰 줄거리를 던져놓고, 2막은 아다지오처럼 살짝 내려갔다가, 3막에서 다시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해, 마지막 4막에서 종결되는 오페라의 전형적 구성이다. 이에 따라, 공간 구성도 명백하게 분리돼 있다.
1막의 경우, 황금빛 저택이 주위에 아무 것도 없이 홀로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다들 검정색 옷을 입고 성직자의 안내를 따라 가족의례를 하고 있다. 곧 그 평화가 깨지고 밖에서 소음이 들리더니, 군인의 시체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는 그 군인이 속한 구질서의 종말을 뜻하며, 돈 파브리치오의 운명을 암시한다. 2막에서는 돈 파브리치오 일가가 팔레르모에서 돈 나푸가타까지 거의 대각선으로 시칠리 섬을 가로질러 피난을 간다. 그 과정에서 사막 같은 죽은 공간이 펼쳐진다. 시칠리아의 색깔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비스콘티는 그 메마른 색이라고 잡은 것이다. 2막 부분은 분위기가 소강상태로 변한다. 가족들이 돈나푸가타의 교회에 도착하고, 교회에 나란히 앉은 모습을 보여주는 수평 트래킹 숏은 명백하고 노골적인 죽음의 암시다. 곧 밀려나는 세대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때 나오는 오르간 음악은 <라 트라비아타>의 격정적인 아리아이다. 즉 대단히 세속적인 음악을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한 것이다. 또한 1막에서는 커튼을 살랑살랑 거리게 만들던 바람이 2막에서는 매우 거센 모래 바람이 된다.

3막은 탄크레디가 비오는 날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3막에서는 안젤리카(클라우디오 카르디날레)의 집안이 상승하는데, 안젤리카의 행동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처음 안젤리카가 그 집안에 들어올 때는 심호흡을 하고 들어오는데, 3막의 시작에서는 별다른 예의를 차리지도 않고 거침없이 들어와서 탄크레디와 포옹하고 키스를 나누는 것이다. 영화는 복도에서 키스하는 장면에서 그 성의 폐허 같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산 사람이 있을 만한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먼지도 많으며, 쥐가 많다고 하지만 심지어 쥐도 없을 것 같은, 살아있는 생명이 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 남녀가 사랑을 한다. 잉태될 수 없는 사랑을 암시하는 비스콘티의 수법으로, 죽은 공간에 인물을 배치하여, 그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실을 맺지 못하리라는 표현이다. 3막부터 데카당스에 관련된 테마 이야기를 많이 한다. 토리노에서 온 정치인이 돈 파브리치오에게 상원 의원을 해달라고 부탁할 때, 돈 파브리치오의 대답은 "시칠리아인들은 늘 피곤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고 싶다. 시칠리아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불멸이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불멸이라는 것은 죽음이다. 그렇게 죽음을 원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는 정치인을 배웅하면서, "우리는 표범와 사자였는데, 지금은 하이에나와 양들의 세상이 우리를 대체했다."라고 말한다. 돈 파브리치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시스템이 바뀐다면 사실상 자신은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새로운 질서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마지막 4막은 45분 동안 이어지는 무도회 장면이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가 185분 쯤 되는데, 오페라처럼 시간도 배분하여 각 막이 45분 정도가 된다. 여기서는 중요한 춤이 세 번 등장한다. 춤추는 장면 이전에 비스콘티가 유머러스한 장면으로 자기의 코뮤니스트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4막이 시작되면서 나오는, 외부에서 왈츠가 들려오는데, 농부들은 노동을 하는 숏이 있다. 독점하고 있는 계층만 바뀔 뿐이지 혁명이라는 건 없으며, 농부들은 여전히 땅을 파고 끊임없이 노동하며, 착취당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춤을 추는 첫 번째 커플은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다. 이들은 귀족과 부르주아의 결합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자들이다. 이때 돈 파브리치오는 소녀들이 떠드는 장면을 보며 현기증을 느낀다. 사회적인 죽음은 이미 받아들였고, 머지않아 물리적 죽음도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두 번째 커플은 그 무도회를 주최한 공주와 가리발디를 패배시킨 대령이다. 승자들의 춤이며 정치적인 춤이다. 이때 돈 파브리치오는 집주인의 서재에 들어가 프랑스 화가의 그림을 보고 있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임종을 맞는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 장소로 들어오던 탄크레디는 "삼촌, 지금 죽음에게 구애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돈 파브리치오는 "나의 죽음도 저런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시트가 더 깨끗하고 자식들의 복장도 더 단정하면 좋겠다."라고 대답한다.

세 번째가 돈 파브리치오와 안젤리카의 춤이다. 3분 동안의 가장 중요한 춤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버트 랭커스터가 처음 캐스팅 됐을 때, 비스콘티는 대단히 화를 냈다고 한다. 비스콘티는 랭커스터에게 춤 선생을 붙여 유럽의 사교춤을 가르치게 한 후, 귀족들이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 1주일 후에 왈츠 스텝을 보러 온 비스콘티는 랭커스터가 귀족식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큰 모욕을 주었다고 한다. 랭커스터도 화가 나 짐을 싸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 사람하고 일을 해야겠다는 어떤 무언의 소리가 들리더라는 거다. 내가 볼 때는 랭커스터가 대인이었다. 비스콘티의 질책을 예술적인 야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친구였다. 세 번째 춤은 4막의 피날레이자 이 극 전체의 피날레이다. 하얀 옷을 입은 소녀와 검은 옷을 입은 나이든 남자의 춤이다. 소녀가 상징하는 사랑과 돈 파브리치오가 상징하는 죽음이 동시에 만나면서, 죽음과 순결한 사랑이 더 강조되는 대조법을 쓴 장면이다. 이 장면이 끝난 후 돈 파브리치오는 죽을 것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안다. 밤새도록 벌어진 파티가 끝나고 돌아가는 에필로그에서,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는 마차를 타고 가며, 돈 파브리치오는 걸어간다. 마차를 타고 갈 때 들리는 소리는 총소리이며, 파브리치오가 홀로 길을 걸어갈 때는 교회 종소리가 들린다. 종소리는 죽음을 앞둔 돈 파브리치오의 영혼은 위로하는 일종의 진혼처럼 들린다. 앞을 쳐다보니 좁고 깊은 검은 색 골목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그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걸어 들어간다.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러 들어가는 것이다. 랭커스터가 워낙 연기를 잘했다.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는 남자가 물리적으로도 죽게 되는 데 이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일종의 의례로서의 춤을 전개시키는 이러한 형식은 다른 영화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부>인데, 결혼식을 통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준 다음에 영화가 전개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공간과 소품은 세트디자인이 아니라 모두 진짜다. 시칠리아의 귀족에게 빌린 실제 성이다. 살레모라는 지역에서 매일 꽃을 공수했으며, 초는 매 시간마다 갈았다. 춤추는 홀 바로 옆방에 부엌을 설치해서 실제로 음식을 만들어 먹게 했다고 한다. 조명을 많이 쓰지 않고 거의 양초로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중에 스탠리 큐브릭이 <배리 린든>에서 양초를 활용한다. 귀족들의 파티를 재현했다기보다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비스콘티는 같은 영화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왕족 내부자가 그린 귀족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비스콘티 이외에, 극소수 계급을 대표하는 내부자의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권위를 잘 표현한 사람은, 현재로서는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가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정리: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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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객 2011.01.17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에는 이 분 강의를 꼭 들어야겠습니다. 정리해놓으신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한겨울의 클래식 영화사 강좌 [3] 

지난 1월 7일 한겨울의 클래식 상영작 중 <내 이름은 튜니티> 상영 후에 세 번째 영화사 강좌로서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강좌가 이어졌다.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 전체를 포괄하기 보다는 ‘포스트 세르지오 레오네’를 중심으로 진화한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를 살펴보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오간 그 현장을 전한다.


주성철(씨네21 기자):
오늘 주제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불량한 매력’이다. 처음에 제목 정하면서 주어진 시간 안에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 전체를 포괄하기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 어떻게 좁힐까 하다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예전에 레오네 영화를 했었기 때문에 ‘포스트 세르지오 레오네’ 그런 이야기로 서두를 열고자 한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이탈리아 웨스턴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 당시에 이탈리아 웨스턴 영화들이 스페인에서도 만들어졌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제작비를 아끼려고 스페인의 황야에 와서 영화를 찍고 돌아갔다. 그래서 스페인의 영화인들이 우리도 저렇게 찍어보자고 해서 웨스턴이 만들어지고, 독일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웨스턴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영화들은 전부 내수용이었다. 예를 들자면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북청물장수> 같은 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서 만 즐기는 영화였지, 홍콩으로 가진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 이후 굉장히 많이 만들어 지게 되는데 아시아에서도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부르고, 북미지역에서는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불렀다. 스콜세지는 누벨바그, 네오리얼리즘에 맞먹는 사조로 이탈리아웨스턴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면서 이탈리아웨스턴을 쓰자는 주장을 했다. 왠지 스파게티 웨스턴은 낮게 보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무튼 대중들에겐 스파게티 웨스턴이 익숙하기 때문에 오늘 이야기를 할 때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하려고 한다.

올해 나온 책 중에 배리 랭포드가 쓴 영화의 장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보면 서부극은 서부 개척지의 생활양식 같은 것들이 밀접하게 되어있는 미국의 로컬 한 장르인데 단지 황무지라는 공간의 특성만 가지고 유럽, 아시아 등 왜 전세계로 퍼져 나갔을까? 그런 재미있는 분석을 했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가 나온 시기는 이탈리아 영화계의 전성기였다. 그 때 웨스턴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당시 페플룸(고대 로마, 그리스 당시에 입었던 의상에 착안해서 만든 영화) 이라는 장르가 막대한 예산과 세트를 바탕으로 해서 쇠퇴해 갔다. 그런데 이 페플룸이 쇠퇴해 나가는 시기랑 스파게티 웨스턴이 도래한 시기랑 교차한다. <황야의 무법자> 이후에 스파게티 웨스턴 만들어진 통계를 보면, 일년에 만드는 영화편수의 3분의1 이었다고 하니 굉장히 많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영화는 배우가 출연하는 것이다 보니 한 배우가 출연할 수 있는 영화에 한계가 있다. 홍콩도 그렇다. 그 당시 모든 영화는 주윤발에게 시나리오를 줬는데 주윤발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다른 사람에게 갔다. 같은 맥락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모든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그 뒤에 리 반 클리프가 다른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모든 배우를 똑 같이 출연 시킬 수 없어서 영화의 레벨이 나누어지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파게티 웨스턴을 세가지 측면에서 정의를 하자면, 가장 첫 번째로 윤리적인 측면의 부재 혹은 주인공의 타락이다. <수색자> 이전의 영화들을 보면 기병대의 정의, 가족을 지키는 수호가 있다. 그러나 <튜니티>에선 형제끼리 총을 쏜다. 그런 세속적인 인물들에 대한 매혹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가장 중요한 성격 인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기존 웨스턴 장르에 대한 과장과 풍자라는 생각이 든다. 웨스턴의 가장 큰 매력은 액션이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이 쓰지 않는 기술을 영화에서 쓰는 게 영화를 부각 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세르지오 코르부치는 <장고> 에서 기관총을 등장시킨다. 그걸 눈 여겨본 셈 페킨파가 <와일드 번치>에서 똑같이 쓴다. 정통 웨스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탈리안 웨스턴이 만들어졌는데 그걸 미국에서도 베껴 쓰는 걸 보면 엄청난 혼용이 일어나고 있는걸 볼 수 있다. 90년대 할리우드 영화 <퀵앤데드>를 보면 할리우드 웨스턴이라기보단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또 <황야의 대추적>에선 마지막 액션 씬에 단검을 던지는 싸움 장면이 있다.
<튜니티>는 서부극이라고 하긴 민망할 정도로 마지막에 패싸움을 한다. 사실 서부극이라기 뭐한 영화다. 그러나 당시 <튜니티>는 이탈리아에서 역대 최고흥행작으로 남았던 영화다. 그리고 그 기록이 깨지는데 10년이 걸렸다. 2년 뒤에 나온 <튜니티라 불러다오>는 그 해 최고 흥행 기록를 세웠지만 1편은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튜니티> 의 형제 버드 스펜서와 테렌스 힐은 이후에도 같이 영화를 많이 찍었다. 두 사람의 인기요인은 할리우드로 치면 백인남자 흑인남자의 우정. <리셀웨폰>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다른 매력을 말하자면 기존의 다른 감독들이 하지 않았던 동작이라던가 액션만큼이나 영화의 유머가 있다. <튜니티>의 예를 들면 애비 없는 놈들 이라고 하면. “야 맞잖아 참아”라고 하고 “주님의 승낙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하니까 밤비노가 “그럼 빨리 승낙 받아오라”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막 던지는 개그를 한다. <튜니티> 시리즈의 코드는 막 던지는 개그와 더불어 허무개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튜니티> 시리즈의 흥행요인이 전혀 다른 개성의 두 남자가 티격태격 하며 벌어지는 내용이고 기본적으로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유래하긴 했지만 이탈리아 전통 코미디 양식과 결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테렌스 힐이 보여주었던 개그들은 상당히 웃기다. 나중엔 그 동작을 2편에서 하고, 헨리 폰다와 찍었던 <무숙자> 에서도 한다. 그것이 테렌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이다. 프랑코 네로가 기관총을 쏘는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면, 테렌스 힐은 없어 보이는 손동작이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뻔뻔한 매력에서 <튜니티>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더럽다는거다. 튜니티가 입고 있는 옷은 내복이다. 스스로 튀는 캐릭터를 하려고 그런 거 같다. 그래서 또 등장 한 게 당근이다. 똑 같은 숏에서 <황야의 무법자>는 시가를 물었다면 <튜니티>에선 당근을 먹는다. 당시 이탈리아 관객들은 이걸 보고 <총알 탄 사나이>를 보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태생적으로 불균질한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스파게티 웨스턴은 이전보다 흥행을 해야 하고, 그 중에서 자신들의 영화가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이상한 캐릭터, 제스쳐 그리고 동작을 끌어안아야 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온갖 디테일과 캐릭터가 엉키게 된다. 그럼 당연히 영화의 레벨이 낮아져야 하는 데, 그런 요소가 본의 아니게 상승효과를 빚어서 좋은 결과로 나오는 경우가 있지 않았나 싶다. 아까 말씀 드린 <와일드 번치>처럼 세르지오 레오네 자신도 다른 동료 들의 영화들에서 영향을 받은 게 있다. <황야의 대추적>을 보면 거의 <석양의 갱들>과 비슷하다.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석양의 갱들> 이후에 나온 거라고 생각하고 이 사람이 <석양의 갱들>을 보고 만들었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황야의 대추적>이 <석양의 갱들> 보다 앞에 만들어진 영화였다. 그렇게 그들의 영화는 서로 다르게 보이려 하지만 괜찮은 디테일 요소들은 가져오면서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제일 처음 웨스턴을 본 것이  TV에서 해준 <튜니티>와 <장고>여서 그전에 나온 <리오 브라보> 같은 영화들이 적응이 안되었다. 거꾸로 웨스턴을 접한 경우다. 이 시기에 꼭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게 <무숙자>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의 리 폰다, <튜니티>의 테렌스 힐이 만난 영화다.  헨리 폰다는 정통 웨스턴의 장르의 굉장히 멋진 정의의 수호신인데 그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 에서 조폭으로 다루면서 위엄을 해체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무숙자> 같은 경우 감독은 토리노 발레리라고 알려져 있지만, 조감독인 레오네가 거의 다 연출 한 것으로 보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숙자> 같은 경우는 세르지오 레오네가 스파게티 웨스턴의 전통을 스스로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느낌이 있는 작품이다. 이전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에서 악인인 헨리 폰다를 다시 멋진 남자로 등장시키기도 하고, 스파게티 웨스턴이 시도했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창밖에 있는 남자를 한방에 보내는 장면도 있고 150명의 악당들과 싸우는 장면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헨리 폰다가 죽으면서 하는 대사를 보면 “앞으로 자네에게는 더 큰 폭력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죽는데 그걸 보면서 레오네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자기가 정리를 하고 떠나가는 기분이 들어서 굉장히 뭉클했다. 그리고 그것은 할리우드 갱스터 무비라던가 스릴러 누아르 혹은 샘 페킨파라던지 또 다른 감독의 새로운 웨스턴 영화가 등장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웨스턴장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스파게티가 기존 웨스턴 장르의 기존 공식을 해체하면서 또 다른 장르가 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라고 볼 수 있다. 호러를 보면 중간에 이렇게 나타났다가 소멸하는 장르는 없다. 그러나 스파게티 웨스턴은 일년에 40~50편이 만들어지다가 생명을 다했지만 여러 장르에 영향을 줬다. 개인적으로 스파게티 웨스턴은 한 순간에 불타올랐지만 자기의 운명을 알고 자기의 자양분을 다른 장르에 넘기면서 사라졌던, 시작과 소멸의 모습이 너무나 짧고 굵었던 장르이기도 해서 좋아한다. (정리: 정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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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객 2011.01.17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만큼이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겨울의 클래식 영화사 강좌 [2]

지난 1월 6일 한겨울의 클래식 상영작 중 <리피리> 상영 후에 두 번째 영화사 강좌로서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강연이 열렸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상영된 <리피리> 상영 후에 ‘줄스 다신의 백년’이란 제목으로 열린 강좌여서 더욱 뜻깊었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뮤지컬학부 교수): 줄스 다신의 <리피피>는 범죄 강탈영화의 원형 같은 작품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스탠리 큐브릭 <킬링>도 연관이 있다. 장 피에르 멜빌도 비슷한 영화를 기획하고 있었다가 <리피피>가 나와서 좌절했다는 얘기도 있다. 멜빌은 그 시절 아내한테 영화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당신 영화 그만 했으면 좋겠어'라는 타박을 듣고 있었는데 그 때 자크 베케르가 찾아와 영화 잘 봤다고 해서 겨우 다시 기운을 냈다고 한다. 멜빌은 그때 <리피피>를 봤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멜빌은 기획하던 영화를 <리피피>와 비슷하지 않게 하려고 바로 플롯을 바꿨다고 한다. 결과는 <리피피>에 역시 못 미쳤지만. 그렇게 나온 영화가 <암흑가의 세 사람>(1970)이다. 그만큼 <리피피>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영화다. 이 영화는 사실 줄스 다신이 미국에서 쫓겨나서 프랑스에서 힘들게 지낼 때 만든 영화인데 실제 줄스 다신은 만들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영화라고 한다. 촬영도 30일만에 끝났고. 하지만 억지로 찍었는데도 줄스 다신 필모그래피 중에 정점을 찍은 것이 정말 대단하다. <리피피>가 혁신을 이룬 점은 원작에서 간략하게 넘어가는 강탈 신이 실질적인 클라이막스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봐도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다. 상황만 갖고 말이다. 음악 담당자가 음악을 다 만들어놓았는데 영화를 보더니 '아. 어떤 음악보다 긴장감이 넘친다. 장면만으로도 하모니가 좋아서 이 장면에서는 음악을 넣지 않겠다' 이렇게 얘기했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강탈 신 이후에도 매우 흥미롭게 진행된다. 엔딩도 흥미롭고, 토니는 죽어가는데 뒤에 앉은 꼬마는 '나무들을 봐요' 이렇게 말한다. 자라나는 새싹인 꼬마의 혈기왕성한 모습과 대비되는, 회한에 가득찬 토니의 모습이란. 토니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인 행위를 했다. 후배 아들을 살려줌으로써 자기 일생에서 가장 놀라운 일을 해냈다. 나무와 카오스적인 도시의 풍경, 시야가 어지러워지는 모습들은 강탈 시퀀스와 대비되면서 정말 인상적인 엔딩을 보여주었다.

오프닝 역시 흥미롭다. 역시 한 사람의 인간성을 알려면 고스톱을 쳐봐야 한다. (웃음) 돈 잃을 때 토니의 그 수식 없는 표정은 참 인상적이다. 이와 대비되는 클로즈업 장면이 보석들을 훔칠 때 나온다. 재물을 보는 사내들의 얼굴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담겨있다. 또 죄를 저지른 후에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가차없이 보여주는데 줄스 다신이 연기한 이탈리아 기생 오래비 세자르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세자르가 넷 중에 제일 쾌락주의자였는데 죽는 장면의 미장센이 묘하다. 나이트클럽에 쓰이는 소도구들이 창고에 여기저기 놓여있고 그 가운데 처절하게 묶여있는데, 그 대비가 주는 느낌이 참 좋다. 다신은 1939년까지 배우하다가 감독으로 전향한 사람인데 감독 본인이 주연하면서 멋있게 나오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에 비해 다신은 아주 의미심장한 역을 맡았다.

<리피피>는 줄스 다신 개인적으로도 전기가 된 영화이다. 다신은 이 영화로 깐느에서 감독상을 받는데, 거기서 운명적으로 두 번째 부인 멜리나 메르꾸리를 만난다. 메르꾸리도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뻔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여우주연상 없음' 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메르꾸리가 그리스 민주화에 힘쓰던 안티 파시스트이어서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깐느에서 <리피피>를 보고 다신을 만나게 되었고 이후 다신이 그리스를 왔다 갔다 하면서 둘은 사귀게 된다. 메르꾸리에 따르면 줄스 다신은 자연인으로서 엄청난 에너지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메르꾸리가 '난 새벽에 자서 오후에 일어난다. 당신은 아침에 일어나나요?'라고 하자 당연하다고 말하고 '걷는 것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에도 물론 그렇다고 했다고 한다. 멜라니 메르꾸리는 사실 500미터만 걸어도 숨차해야하는 (웃음) 그런 부잣집 딸이었는데, 그에 반해 다신은 맨날 걸어다녔다고 환다. 그것도 춤추면서. 다신은 사석에서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완전히 터득한 쇼맨십 넘치는 남자였다. 하던 얘기를 계속하자면 멜리나 메르꾸리와 결혼하고 나서 다신의 영화가 바뀐다.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바꾼다든지. 하지만 실상은 메르꾸리를 만나기 전의 영화로 줄스 다신의 영화사적 공헌이 인정되곤 한다. 그는 <리피피>와 그 전의 영화로 미국 네오리얼리즘의 아버지로 불린다. 다신 때부터 진짜 거리에서 찍는 스트릿 필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DVD로 나와있는 <브루트 포스>(1947), <벌거벗은 도시>(1948), <밤 그리고 도시>(1950) 같은 영화는 명불허전이다. <도둑들의 하이웨이>(1949)도 정말 좋다. 이 영화는 사과 농장에서 직접 시카고 선물 시장으로 사과를 옮기는 사람들의 얘기이다. 신선하게 최대한 빨리 갖다줘야 해서 트럭 기사들은 잠도 안 잔다. 그들은 폭력배에 가까운 시장 주인들과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주인공은 진짜 고물 트럭의 운전수인데 그의 뒤를 사기꾼 둘이 쫓는다. 고장나길 기다리면서. 그러다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트럭이 불타고 사과도 사라진다. 잔해를 보면서 사기꾼이 오는데 트럭 기사의 죽음을 보면서 잠바 자크를 올려닫는다. DVD 인터뷰에서 본 얘기인데 아무도 그 장면을 얘기하지 않지만 줄스 다신 본인은 제일 좋아하고 서늘하다고 느끼는 장면이라고 전한 바 있다. 그런 묘사가 이 감독의 특기이다. 미국 영화에 이런 것을 도입한 것이다. 네오리얼리즘도 그렇지만 피지컬한 것으로 감정을 묘사했다. 데 시카도 <자전거 도둑>에서 캐리 그랜트가 아니라 일반인을 쓴 건 그 사람 연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걸음걸이 때문이라고 한다. 남용하면 안 되겠지만 <자전거 도둑> 주인공의 걸음걸이, 손짓, 발짓, 눈빛 같은 것은 캐리 그랜트가 아무리 잘해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피지컬한 것을 통해서 존재를 투과시키는 것, 이걸 줄스 다신이 미국 영화에서 최초로 했다.

<도둑들의 하이웨이>는 제작 조건이 안 좋아서 도둑 촬영하듯이 했다는데 로케이션이 생생하다. <리피피>도 로케이션의 승리다. 강탈하는 날, 새벽은 초조하게 시작된다. 청소하는 차. 사람들 오가고. 도로 젖어있고. 그 공간은 일상적이면서도 위협적인 느낌을 준다. 세트에서는 절대 찍어내기 힘든 느낌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해냈는지 궁금하다. 이론 상으론 멋있는데 잘 안 되니까. 신림동 고시촌에서 억지로 찍어도 그 느낌이 잘 안 나온다. 로케이션은 미스테리다. 그래서 누벨바그 세대가 보고 경악한 것 아닌가. 트뤼포는 <리피피>가 '내가 본 최고의 필름 느와르'라고 했다. 그것도 파리에서. 미국 감독이 어떻게 파리에서 이렇게 잘 찍었나. 누벨바그도 혁신적인 것이 거리에서 찍어서였는데 직간접적으로 용기 준 것이 <리피피>였다. 좌절 받은 이들이 절치부심해서 누벨바그를 탄생시켰다. <리피피>는 <암흑가의 세 사람>보다 경제적이면서도 무드도 일어난다. 사건도 사건 대로 전개시키면서 말이다. 줄스 다신이 쫓겨난 건 미국 영화의 큰 손실이라고 생각된다. 줄스 다신이 미국을 떠나게 된 건 매카시즘 광풍 때였다. 에드워드 드미트릭이 다신을 공산주의자로 고발했다. 그 후 다신은 <밤 그리고 도시>라는 영화를 급히 만들어낸다. 폭스 사에서 급히 불러서 '이게 거의 마지막 영화 될지 모른다, 찍다가 잘릴지도 모르니까 비싼 장면부터 찍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신은 원작소설도 읽지 못하고 런던으로 가서 찍기 시작했다. 영국 언론에서는 되게 안 좋아했는데 사람들은 무척 놀랐다. 런던을 이렇게 보여주다니! 배우도 좋지만 공간이 주는 느낌이 압도적이다. 그래서 '나를 왜 크레딧에 올렸냐'면서 원작자가 화를 냈다고 한다. 이걸 듣고 다신도 인정했다고 한다.

<리피피>의 주인공 토니는 정말 인상적인 인물이다. 인생을 잘못 살았다. 막장으로 살았고 그렇다고 또 돈을 크게 번 것도 아니고. 기껏 감옥 생활했는데 나와보니 포커판에서 쫓겨나고, 애인한테도 배신당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소질을 살려서 조그마했던 판을 키운다. '진열장 말고 금고 털이를 해야지'하고. 현대 영화에서는 이런 악인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드물었다. 다신 영화에서는 주조연 가릴 것 없이 연기가 뛰어나고 풍모가 인상적이다. 그 중에 토니가 제일 인상적이다. 표정 자체가 일상적인 표정이 아니지 않나. 불만에 가득 차 있는 듯 보이면서도 포스가 있고, 강한 가운데 약함이 있고. 토니는 참 여러 가지 겹을 가진 얼굴을 지녔다. <도둑들의 하이웨이>에서도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인데, 사기꾼 역을 맡은 배우가 실은 청각 장애인이었다고 한다. 연극만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 의심할 나위 없이 영화도 배우들의 예술임을 실감한다.


<리피피>는 우리나라에서 전설로만 회자되다가 2002년에 복원판이 나오고 재개봉하면서 유명해졌다. 줄스 다신 감독도 2000년대까지 살아계셨다. 2년 전에 신종플루로 돌아가시고 최후 작품 1980년에 나온 <Circle of Two>이고, 그 전에 <일요일은 안 돼요>와 영화 음악으로 유명했던 <페드라> 같은 영화도 있었다. 마지막 히트작은 리피피 비슷한 느낌의 <토프카피>(1946). 이후엔 빅 히트작이 없다. 멜라니 여사와 더불어 사회활동하느라 에너지가 분산된 듯하다. <리피피> 정도의 영화 찍었으니 됐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줄스 다신은 스트릿 필름의 창시자까진 아니지만, 엘리아 카잔과 더불어 실제 거리를 무대로 영화를 찍은 거장이다. 잘 정돈된 스튜디오에서 조명 써가면서 찍는 게 할리우드 느와르였는데 말이다. 트뤼포가 <리피피>를 '내 생애 최고의 필름 느와르'라고 말한 이유도 이것이다. 실제 거리에서 어떻게 저리 뽑아내는지 경이로울 정도다. 그의 스타일은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스튜디오 붕괴되면서 B급 영화의 틈새가 생기고 장르 영화가 융성하던 분위기 덕분이기도 하다. 조셉 로지의 경우 유럽으로 건너간 후에도 유럽화되어서 우아한 영화를 계속 선보였는데 다신의 경우는 유럽에서 만든 작품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하지만 그는 <리피피>와 더불어 미국 영화사에 한 장을 연 작품들을 만들었다. 현대적인 영화의 원형이라 할 만한, 구구절절이 얘기하지 않고, 외형을 심플하게 드러내면서 정수를 건져내는 감독이었다. 화면만으로 긴장을 버텨내는 영화가 많지 않다. 사운드가 발달하면서 페이크가 많아졌다. 모든 위대한 영화 감독들은 무성영화감독들과 경쟁하는 것 같다. 화면만으로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줄스 다신처럼 25분 음악 없이 대사 없이 간다는 건 요새도 아무나 못할 것이다. (정리: 최용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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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클래식 영화사 강좌 [1]

지난 12월 30일 한겨울의 클래식 상영작 중 <자브리스키 포인트> 상영 후에 첫 번째 영화사 강좌로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의 강연이 열렸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사막’이란 제목으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세계 전반을 살펴보았던 그 시간을 여기에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자브리스키 포인트>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가운데 가장 떨어지는 작품으로 이야기 되며 동시에 별로 많이 논의되지 않는 작품 중 하나다. 미국 사회나 당시의 분위기로 보면 <이지 라이더>처럼 특정한 사회적 격변 이후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만든 영화다. 일단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의 상황을 조금 말씀 드리자면, 카를로 폰티라는 이탈리아의 큰 제작자가 안토니오니를 미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미국으로 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먼저 영국으로 건너가서 MGM과 만든 영화가 <욕망>이다. <욕망>은 이상할 정도로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그 덕분에 미국으로 건너간 안토니오니는 MGM과 세 편 정도의 영화를 계약하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작품이 <자브리스키 포인트>이다. 안토니오니라는 감독이 유럽에서 굉장히 모던한 영화를 찍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MGM은 그를 굉장히 신뢰했던 것 같다. 미국의 도시가 거대한 광고판들로 뒤덮여있고, 사막을 영화의 중심적인 무대로 한다는 정도의 간단한 이야기만 듣고도 30만 불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한다. 최종적인 이 영화의 제작비는 700만 달러 정도였는데, 흥행 수익은 80만 달러 가량이었다고 하니 엄청난 흥행 실패를 겪은 것이다. 또한 당시 미국의 평자들도 이 영화를 굉장히 좋지 않게 평가했고, 안토니오니에 대한 책들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은 가장 적은 편이다.


<자브리스키 포인트>는 굉장히 변형적인 영화인 것 같다. 영화의 스타일이나 이야기의 중심점들이 계속 변형 중에 있다. 크게 몇 가지 국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대학생들의 토론 부분이다.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로 촬영되었으며 당시 실제 블랙팬더의 일원이었던 흑인 액티비스트가 출연하기도 했다. 사실 이 토론의 중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는 굉장히 불확실하다. 일단 블랙팬더를 중심으로 해서, 비폭력적 투쟁에서 폭력적 투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의 과정이 있다. 또 하나는 흑인과 백인간의 갈등적인 요소이다. 당시 하나의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힘을 이야기하던 블랙팬더와 리버럴한 백인 학생들의 개인주의적인 요소의 충돌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이 초반부 장면에서의 정치성에 대한 논란은 집단성과 개인성의 충돌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장면들에서는 각각의 사람을 개별화하기보다는 뭉뚱그려서, 포커스가 나간 상태로 촬영했다. 그리고 그 토론의 과정 안에서 리버럴한 개인, 혹은 굉장히 실존적이고 시니컬하게 느껴지는 마크라는 주인공이 개별화되어 등장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다리아라는 한 명의 여자가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이 두 사람이 개별적으로 사막으로 향하는 운동선들이 두 번째 국면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안토니오니가 굉장히 강박적으로 몰두했던 것은 도시를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토론회장을 나온 마크가 친구와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강조되는 것은 도시의 곳곳에 붙어있는 광고판들이다. 거대한 광고판들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데, 이는 영화의 라스트와도 굉장히 어울리는 점이 있는 것 같다. 고다르가 60년대에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의 이미지에 몰두했던 것처럼 안토니오니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한 몰두성이 굉장히 강했는데, 특히나 미국사회를 지배하는 강한 특징으로서 도시의 광고판들을 주목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도시에서 떠난다는 것은 거대한 광고의 기호로부터 탈출하는 하나의 모험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인물들이 움직여가는 동기나 목적성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마크가 비행기를 훔쳐 사막으로 향할 때 드러나는 상황 정도만이 이 인물의 움직임, 여행을 추동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것은 폭력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 마크와 친구가 총포상에서 총기를 구매하는 장면과 연결되는 미국적인 폭력성의 문제다. 미국이라는 사회에 온존하는 폭력성과, 그런 사회에 대항하기 위한 폭력의 불가피성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인물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것이 총을 구매할 때, 혹은 대학 내에서 소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해나갈 때 발생하는 문제이다. 마크는 분명 총을 쏘지 않았지만 총에 의해서 희생당하는 학생과 경찰이 동시에 발생하게 되고, 거기에서부터 이 인물의 여정이 시작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는 도시 안에 온존하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모험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는 누구나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 두 개 있다. 첫 번째는 사막에서 두 남녀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이다. 사막이라는 공간을 굉장히 에로틱하게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이 장면은 남녀의 신체와, 사막의 모래와 먼지 같은 것들이 모두 뒤엉켜가면서 두 인물이 섞여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영화의 초반에서 토론중인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차이도 있다. 초반 토론 장면에서는 학생들이 구체적이고 정치적인 논의를 위해 집단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뭉뚱그려져 간다. 그러나 정사 장면에서는, 서로가 개별화되어 있지만 사막이라는 공간 안에서 먼지나 모래 같은 것들에 의해 섞여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동시에 증식되면서 여러 사람들의 정사로 표현되고 있다. 개체성을 넘어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집단성 같은 느낌이 있다. 또한 이 장면은 다리아의 판타지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에서 라스트의 폭파장면과도 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론 사막이라는 공간을 죽음과 연결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이 장면을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랑과 죽음이 뒤엉킨 느낌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면에서는 영화의 초반부에 마크가 ‘기꺼이 죽을 용의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정사 장면이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안토니오니라는 작가의 표상적 특징들을 고려할 때는 표면적인 뒤엉킴이라는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 같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폭파 장면이다. 이 장면은 여러 가지 뉘앙스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로는 역시 문화적인 기호들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이 장면은 사실 현실적이지는 않다. 어떻게 해서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파괴되는지, 도화선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추측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는 있다. 다리아가 황급히 저택을 빠져나오기 직전, 가정부로 보이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정확한 설명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장면은 문명화된 세계의 질서를 사막에 투입하려는, 곧 인공적인 휴양지를 사막에 건설하려는 과정에서 거기에 내재된 네이티브 아메리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를 통해 암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폭력에 대한 파괴적인 수단으로서의 다리아의 상상으로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이를 단순한 파괴행위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복잡한 연결점들이 있다. 이 장면은 십 수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되었고, 고속으로 촬영되어서 굉장히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파편들이 공중에 둥둥 떠서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굉장히 무중력적인 사건이다. 달리 말하자면 시공간이 불분명한 가운데 상품사회의 모든 문화적 기호들이 파괴되는 것이다. 시간도 공간도 무화되는 그 지대를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이렇듯 이 영화의 라스트는 어떤 것으로든 환원될 수 없는 공간을 구축하고 있는데, 영화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듯한 다리아의 얼굴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결국 그것은 대단히 상상적인 세계 안에서의 파열, 폭력, 파괴라고 볼 수 있다. 그 후에 자동차를 타고 가는 다리아의 마지막 여정이 보이고, 사막지대의 일몰을 비추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고 있다. 산업화되고 문명화된 기호들의 파괴와 동시에, 마지막에 보이는 다리아의 미소와, 움직임과, 자연을 통해 파괴의 지점 안에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창조의 흔적들이 보이는 것 같다. 영화의 시작부분에 등장했던 정치적인 것과 도시의 자본주의적인 질서들, 사회적인 영역들이 모두 한 데 뭉뚱그려져서 포화되고 융합되고 산산이 쪼개져나가면서 그 가운데 새로운 결합의 시도들을 만들어나가는 흔적을 이 라스트의 폭발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다리아의 정치성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불확실성을 굉장히 많이 갖고 있다. 내러티브의 불확실성도 있고, 인물들의 내적이고 심리적인 동기도 불확실하며, 스타일적인 변형들도 있다. 도시장면에서 과도하게 노출되는 광고판들도 고다르 같은 작가들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상품기호에 대한 비판적인, 크리틱한 부분과 비교해보자면 좀 과장된 것 같은 느낌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불확실성은 안토니오니가 보이는 기본적인 특징인 것 같다. 롤랑 바르트가 안토니오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지적했던 것은 안토니오니가 ‘의혹이 많은 작가’라는 점이었다. 안토니오니는 심층적으로 어떤 진실에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표층적인 외양을 보고 있고, 그 외양은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며 변화해나간다. 때문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세계가 언제나 의혹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표면적인 세계의 변화와 변동, 변형에 관심을 기울이며 의혹을 갖는다는 것은, 바르트식의 표현을 빌자면 ‘그가 정치가가 아닌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안토니오니에게 보낸 서신에서 “정치인들이 언제나 무언가가 진실이라고 이야기할 때,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보는 다른 관점을 탐구하며, 오히려 뭔가가 진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것이 예술가의 책무이다. 안토니오니는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분명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거나 문명 비판적인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비판의 영역 안에서 정확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냐, 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 점 때문에 주류 비평가들도 이 영화를 많이 비판했고, 당시에 정치적인 색채를 지녔던 사람들도 영화에 굉장히 불만족을 느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보자면 안토니오니가 갖고 있는 진실과 현실에 대한 시선, 당대의 상황에 예술가로서 참여하는 자신의 위치를 오히려 분명하게 잡았던 영화가 <자브리스키 포인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리: 박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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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이하 <아메리카>)>는 갱스터가 된 이민자들의 상실감을 기이한 시간성을 통해 드러내는 영화이다. 미국은 태생부터가 이민자의 나라였지만, 이민자가 미국 사회에 동화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로 인한 비극은 70년대 이후 갱스터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가령 브라이언 드 팔마의 1983년작 <스카페이스>에서 주인공은 돈과 권력으로 미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믿으며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려 미국 사회에 완전히 뿌리내릴 것이라는 허상에 집착한다. 일 년 뒤에 개봉한 <아메리카>의 주인공 누들스도 '데보라'(실제로 그녀는 훗날 할리우드라는 대표적인 아메리카 드림의 구현 공간에 무사히 안착한다)라는 동화되고 싶은 미국 사회의 은유를 향해 폭력도 불사하는 강한 집착을 보인다. 그러나 우정과 유년의 추억을 아메리칸 드림과 맞바꾼 맥스로 인해 맥스와 짝을 이루듯 사랑을 대가로 꿈을 성취한 아메리칸 드림의 체현자 데보라를 소유하는 데에 실패한다. 사랑과 우정을 모두 상실한 누들스에게 어릴 적 기억은 아편을 하고난 후의 몽롱한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아메리카>가 위험해보이기보다 서정적이고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기이한 시간성이 연관된다. 28번이나 반복되는 전화벨 소리를 타고 금주법의 폐지를 자축하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어제 yesterday'로부터 '갑자기 suddenly'의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들으며 35년의 세월을 머금은 누들스의 노쇠한 얼굴을 보게 될 때 <아메리카>는 무엇보다 플래시백의 영화임이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이자 끝에 주인공 누들스가 위치하고 있는 시공간은 금주법이 폐지된 지 조금 후인 1933년 뉴욕의 아편굴이다. 누들스는 시종일관 아편을 피면서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추억하고 미래의 자신이 어떤 비극 앞에 놓이게 될 것인가를 예견하는 것이다. 수미상관적인 구조 말고도 시간의 모호성은 등장인물들의 불변의 생김새와 성격,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나 현존하는 사물들이다. 기차역과 누들스 일당이 도원결의했던 물건 보관함 앞이라는 장소가 노년이 된 누들스 앞에서도 현존하고 보관함의 열쇠도 마법처럼 누들스 앞에 주어진다. 회중시계라는 물건도 유년의 추억과 중년인 현재와 노년의 예견된 삶이 별개가 아님을 못 박는다. 누들스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물들을 토대로 그려진 것은 현재의 연장으로서의 미래, 현재로 미루어본 미래일 수밖에 없다. 거의 나이를 먹지 않는 데보라의 모습도 누들스의 상상 속에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관객은 미래를 예견하는 누들스의 꿈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관객은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적막하고 끔찍한 맥스의 최후를 꿈을 매개로 얼떨떨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누들스의 노년은 꿈이라고 단정하기에 너무 리얼하고 또한 충분히 예견 가능한 것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자신의 영화를 ‘어른들을 위한 우화, 성인들을 위한 옛날이야기’라 불렀다. <아메리카>는 시간의 기묘한 통제 속에 유년 시절에 대한 회상을 배치해 현실 속에 잠복해있는 상실감을 불러일으킨다. 동화적인 세계에서 출발해 끝내 각성과 비애를 유발하는 <아메리카>는 단연 그의 대표작이다.(최용혁: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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