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화학자 한스 슐레겔 박사 마스터클래스 지상중계] '이콘과 영화'

지난 11월 12일 오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세계적인 영화학자 한스 슐레겔 박사의 내한을 기념하여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 특별상영과 함께 '이콘과 영화'를 주제로 한스 슐레겔 박사의 초청강연이 열렸다. 영화에서 시각적인 것,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등에 대해 논의하며,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초청강연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한스 슐레겔(영화학자): 타르코프스키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굉장히 기쁘다. 사실 한국의 이 극장, 이 자리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다른 해외 어느 도시보다도 의미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해 몇 가지 말씀 드릴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내가 본 많은 한국영화들 중에서 상당수의 것들은 예술적인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와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타르코프스키에 대해 규정하기를, 가장 러시아적인 감독이라고도 하고 동시에 가장 정교적인 감독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아시아에 대해 타르코프스키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기본적인 문화 요소인 다오이즘, 도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구의 음악은 나를 중심으로 주장을 하고 나의 목소리를 통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항상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신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이 있고 신과 자연, 다음에 그 계절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 전체적인 것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발견한다고 볼 수 있다.

타르코프스키를 러시아의 정교적인 감독이라고 말 하지만 소비에트 시절에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그런 경계적인 위치였다. 서구에서는 그를 물질주의에 반대되는, 영혼의 신비를 추구했다고 평가했지만 소련에서 그의 작품은 일반극장에서 개봉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거기에는 소련의 이데올로기 문제가 작용했다. 이런 측면에서 타르코프스키가 가장 러시아의 정교적인 감독이라고 칭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 적으로 물질이 강조되는 거친 소비에트 시절을 살아가면서도 <안드레이 류블로프>(1966)와 같은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타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종교적 전통을 보여준다. 타르코프스키 영화세계와 비교할 수 있는 다른 감독의 작품이 있는데 불가리아 감독 흐리스토 흐리스토프(Hristo Hristov)의 <Ikonostasat>(1969)라는 영화다. 불가리아 인들에게 '이콘 Icon'이라는 것은 <안드레이 류플료프>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반항자, 대항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 도그마적인 제도, 관습으로부터 진정한 영혼의 해방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국가의 독단주의 자체에 대한 저항일 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그는 예술이 인간에게 기여하고 봉사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극 중 류블로프가 그린 가장 유명한 성상화는 서구 이콘의 구조적인 것을 따르지 않는다. 비잔틴적으로 보자면, 형상에 대한 이해는 구체적인 것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일종의 창문 같은 것이다. 추상적인 물체에 대한 사고, 관념이고 성찰적인 시선이다. 이런 것들이 다오이즘과 관련된, 이콘에 대한 성찰적인 시선, 즉 형상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는 창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이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죄로 인해서 얼굴이 낯짝으로 바뀐다. 이것이 오늘날 아시아의 영화와 서구의 영화가 기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제들이 그리는 이콘은 사실 복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보통 교회에서 이콘을 그린 사제들은 자기 개인의 상상력으로 그릴 권한이 없었다. 그 사람들은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원초적인 형상을 복사했을 뿐이다. 하지만 타르코프스키와 같은 인물은 항상 자신의 개인적인 창작품을 만들어냈다. <거울>(1975)에서 타르코프스키는 주관적으로 회상된 시간을 잘 이용해 유년시절의 물질적인 요소들을 아주 정확하게 재구성했다. 예컨대, 타르코프스키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다큐멘터리 장면을 삽입할 때 당초에 생각했던 것과 일치하는 장면을 찾아내기 위해 상당히 오랜 시간 공들였다.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소리와 관련이 된다. 그는 라디오 극을 만들 때 자기가 사용했던 스튜디오를 마치 다음 영화제작을 위한 음향 실험실처럼 이용했다. 그는 본인의 정신을 감동시키는 자신만의 소리를 찾기 위해 직접 음향기기를 들고 결국 찾아냈다. 이렇듯 이미지, 형상이라는 것은 매우 심도 있게 주관적인 것과 연관된다. 이렇게 하면서 정교의 도그마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영화가 상업적인 주류가 되고 글로벌화가 되면서 자기만의 집, 자기의 고향을 상실하고 있는 그런 시대다. 타르코프스키는 항상 보이는 외부세계 뿐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현실의 물체를 볼 때 별별 것이 다 있을 수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에이젠슈타인과 상당히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예술에 있어서 관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였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영화에 대해 비가시적인 것, 즉 보이지 않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후계자라고 말하는 알렉산더 소쿠로프 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헝가리 감독인 벨라 타르도 타르코프스키적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벨라 타르 역시 성찰적인 시선으로 외면의 내면적인 본질을 포착했던 감독이다. 에이젠슈타인은 아주 철저하게 물질적이고 변증법적인 입장에서 영화형식을 추구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정신분석적인 의미에서만 그런 것을 이해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다음에 형상적인 것과 개념적인 것, 논리적인 것과 초논리적인 것, 감성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 말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요소들의 상호작용이었다. 에이젠슈타인도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타르코프스키도 마찬가지였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런 상호작용의 개념이 꼭 영화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를 모순으로 보기 보다는 통일체로 보고, 접근했다. 우리는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감성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의 새로운 결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해 없이 우리 문화는 결국 죽어버릴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상호작용을 가지고 기능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진정한 작가영화를 볼 수 있도록 허용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서울의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
오늘의 강의는 벨라 타르의 영화를 마지막으로 끝내고 싶다. 벨라 타르는 아주 긴 영화를 찍는 감독이지만 지금 보여드릴 영화는 아주 짧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영화들이 자기들의 연방과 결합했을 때 그 시기를 그린 작품이다. 5~6명의 감독들이 그 시대에 어떤 희망이 있었는가를 질문하는 짧은 영화들을 만들었다. 벨라 타르는 <프롤로그>라는 짧은 단편을 연출했다. 이 영화에서 대사는 거의 없다. 하지만 집이 없고 자기의 일이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에 대해서 성찰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관객1: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거울>에서 유년시절을 완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몽타주를 사용하지 않았나?
한스 슐레겔: 대략은 맞게 이해했다. 타르코프스키는 반복적으로 이를 주장했는데 몽타주는 영화에서 정서적인 흐름을 느낄 때 해가 된다고 쓴 적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관객2:
<프롤로그>를 보면서 <희생>(1986)이 많이 생각났다. 두 영화 모두 광인의 이미지가 나온다. <희생>은 집을 불태우고 <노스탤지어>(1983)는 분신을 한다. 타르코프스키가 불에 대해서 어떤 의미로 혹은 다른 영화에서도 그렇게 불을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더불어 물의 이미지 역시 강렬하게 썼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고 싶다.
한스 슐레겔: 불에 대해서 쓴 바는 없지만 물에 대해서 쓴 것은 있다. 타르코프스키에게 물, 불, 안개와 같은 자연이 가장 근본적인 요소였다. 안개가 중요했던 이유는 일종의 장막과 같은 역할로 이 세계와 저 세계를 가르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바람소리, 빗소리 같은 근본적인 소리들. 아주 근본이 되는 요소들이지만 타르코프스키가 그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는 없다. 물론 타르코프스키가 자기 영화에서 이런 요소를 상징으로 대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고 금지하다시피 했지만 우리는 이 사람 영화에서 물, 불, 안개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상징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스크린을 향한 관객의 정신분석적인 의미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어두운 극장에서영화를 볼 때 완전히 잠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낮에 꾸는 꿈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꿈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영화는 모여서 보기 때문에 집단적인 꿈으로 볼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정신분석과 영화와의 관계를 연구했고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타르코프스키는 사실 이런 것들을 굉장히 싫어했다. 당초에 이렇게 바라보는 대상들은 그냥 구체적인 물질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단순한 물질적인 대상은 구체적인 것인데 대상 너머의 어떤 것을 느끼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입장이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박사로서 타르코프스키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이 궁금하다.
한스 슐레겔: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무슨 이야기를 아침에 해 놓고 점심 먹은 다음에 또 반대되는 소리를 한다.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의 의미에 반대되는 것이 깔려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그 사람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제 타르코프스키에 대해서 감독으로서 그를 규정하자면 보통 누구나 다 언어의 장인이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타르코프스키가 형상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거장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상업영화와 이데올로기적인 도그마에 대해 반대했던 저항자였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정전으로 따르는 구호는 없었다. 자기 영화에서 이콘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훌리건이었다. 그는 삶 자체가 그러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의 모순된 것을 하나의 통일체로서 묘사하는 것을 선호했다.

정리 이정아(자원 활동가) | 사진 주원탁(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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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영화감독 알렉산더 미타 마스터클래스

지난 10월 15일 오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알렉산더 미타 감독의 내한을 기념해 그의 영화를 함께 보고, 그의 특강을 들을 수 있는 '알렉산더 미타 마스터클래스'가 열린 것. 그의 1969년작 코미디 영화인 <빛나라, 내 별이여(Gori, Gori Moya Zvezda)> 상영 후 그가 직접 '스타니슬라프스키 방법론과 에이젠슈테인의 견인 몽타주'를 주제로 들려준 특강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알렉산더 미타(영화감독): <빛나라, 내 별이여>는 젊은 예술가가 접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는 코미디다. 연극을 하는 사람, 영화를 하는 사람, 그리고 화가 이 세 사람이 예술에 있어서 자신의 길을 찾는 이야기이다. 특히 화가의 캐릭터는 권력이나 주위 환경으로부터 굉장히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내면의 자아를 창조적으로 구현하려고 하는 인물이다. 화가를 연기한 올렉 에프레모프는 당시 러시아 연극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경향의 연극에 종사하고 있었고, 영화를 하는 역할의 예브게니 레오노프는 코미디 분야에서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배우였다. 이 영화는 우리 직업상의 일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권력으로부터의 억압과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행동하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한 돈을 실제로 전달하는 것은 관료들이었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메타포는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메타포는 주인공의 가장 근본적인 것을 이루는 것으로, 어떻게 공포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14개의 견인몽타주에 의해서 진행되며, 그 각각은 에이젠슈테인의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에이젠슈테인은 각 장면이 행동의 형태로서 공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분은 영화에서 한 예술가의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았을 것이다. 그 과정은 어떤 예술가가 예술을 창조할 때는 언제나 그를 둘러싼 상황과 관련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영화는 늘 어떤 드라마적인 상황이나 특징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이론의 기본이 된다. 테마와 반테마가 있고 그 사이에 충돌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주인공 이스크레마스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은 갈등을 겪는 것이다. 영화 속 또 다른 예술가인 화가는 사과의 이미지와 관련해서 볼 수 있었다. 예술가의 운명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으로, 그가 죽을 때 사과도 역시 떨어지게 된다. 이 인물은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 상반되는 내용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인물에 대한 것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는 이미 여러 편의 영화를 찍고 난 뒤였지만, 여전히 처음 영화를 만들었을 때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는 내게 심리 치료와도 같은 것이어서, 자신에 대한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를 치료한 셈이다. 출연했던 배우들은 모두 친구들이었는데, 당시 돈이 없이 만들어서 영화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들 스스로 제작했다. 그런 과정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굉장히 행복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만든 영화가 금지되었지만, 그래도 어찌됐든 영화를 만들 때는 행복했으니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얘기를 했었다. 이 영화가 어떻게 해서 권력에 의해서 고통 받았는지,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권력층으로부터 분노를 산 측면이 있었고, 그래서 1년 정도 지나서 나서야 영화 상영이 허락되었는데, 언론에서는 영화에 대해 단 한 군데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아예 침묵하기도 했다. 나중에 어느 유명한 감독이 내게 말하기를 당신의 영화에 대해 쓸 기회가 있었는데, 단 부정적인 평가를 써야한다는 조건 하에서였고, 그래서 아예 침묵했다고 한다. 소비에트 권력은 이 영화를 어떤 영화제에도 출품하지 못하도록 금지했지만,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러시아 혹은 세계 어디에선가 상영되어 보여지고 있다. 주인공을 연기한 올렉 타바코프는 아직까지도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이며, 그와는 전 생애에 걸쳐서 우정을 나누고 있다. 그는 현재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아트디렉터인데, 그곳은 과거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설립하고 활동했던 곳이다.

관객1: <빛나라, 내 별이여>의 어떤 면이 그 당시 소비에트 당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가.
알렉산더 미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보여줬어야 했는데 묘사 방식이 맘에 안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그들 입장에선 이 영화가 맞게는 얘기했는데, 뭔가 자기들 방식과 맞지 않는 방식, 권력층에서 생각하는 방식과 유사하지 않은 방식으로 얘기했던 것이다.

관객2: 화가 캐릭터를 말이 없는 인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알렉산더 미타: 최근에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화가 중에도 퍼포먼스 등 많은 방식으로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이전 세대는 사실 말을 통한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그리고 나면 그것으로 끝내고, 그것을 말로 다시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영화 속 화가는 말로 그림을 설명하거나 하는 것과는 상반된 스타일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소비에트 시절에는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에서, 하루 종일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런 것과 상반되는 인물라고 할 수 있다.

관객3:
모스필름 회고전들을 통해 러시아 영화를 접하게 되면서, 러시아 영화 특유의 인간에 대한 느낌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빛나라, 내 별이여>에서 백군, 적군, 청군이 등장하는 배경이 잘 이해가 안됐다. 그리고 캐릭터 중에 특별히 영화를 상영하는 사람을 설정하신 의도가 궁금하다.
알렉산더 미타: 영화가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알아야한다. 언급해야 되는 것들과 언급하지 말아야할 것들이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소비에트 권력이 영원할 것이고, 공산주의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야함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런 것에 해가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엔 침묵해야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비에트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 간의 반목이 있다는 것을 말하면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소비에트 사회에서는 하나의 계층만 있어야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관료들이란 쓸모없는 존재들라는 것에 대해 말해선 안 된다. 어떤 것에 대해 침묵해야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기가 다뤄도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게 된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어떤 미로를 헤매며 자기 영화가 가위질 당하지 않도록 애를 쓰게 된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가리키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묘사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영화에 등장하는 백군, 적군은 비유적인 표현인데, 일종의 예술에 대한 적이라고 볼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예술이 권력에 봉사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예술의 적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셰익스피어 극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을 때, 백군은 다들 이해도 못하고 싫어할 테니 그만두라고 말한다. 이는 영화가 개봉될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겪었던 상황이기도 하다. 히틀러가 조약 체결을 위해 소련을 방문했을 때, 메이어홀드에게 <니벨룽겐의 반지>를 연출해보라고 했다. 메이어홀드는 이를 거절했고, 이때 스탈린은 그가 권력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 후 메이어홀드는 체포당해 고문을 당했다. 그 다음으로 에이젠슈테인에게 제안 했는데, 그는 연출에 동의했다. 사실 가장 위대한 바그너의 오페라를 가장 훌륭한 극장에서 훌륭한 단원들과 연출한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다. 게다가 이는 히틀러의 방문을 기념한 공연이었다. 에이젠슈테인의 입장에서는 국가로부터의 주문이었기 때문에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예술가와 권력의 관계가 그만큼 복잡하고, 단순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이다. 비극적인 것은 분명하다. 20세기 연극의 가장 혁명적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메이어홀드가 죽게 된 원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빛나라, 내 별이여>는 이러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명랑하게 얘기하려고 했던 것인데, 당시 러시아 당국은 그것이 뭘 뜻하는지 이해한 것이다. 여러분들이 모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만일 여러분들에게 이것이 유쾌한 코미디로 남아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진부한 것이 아닌, 가능한 독창적인 것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영화의 진정한 의미는 ‘비극적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만든 사람들끼리 내부에서 부른 이 영화의 제목은 ‘메이어홀드에 대한 진혼곡’이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이 영화를 14개의 견인몽타주로 구성했다고 하셨다. 에이젠슈테인의 견인몽타주는 단순해 보이면서도, 모호하고, 복잡한 개념이기도 하다. 감독님이 이 영화에서 구성하신 몽타주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인지, 그리고 에이젠슈테인의 견인몽타주 개념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알렉산더 미타: 에이젠슈테인은 연극계에서 약간 이단아였다. 그는 고전 희곡을 가지고 마치 일련의 서커스를 연출하듯 연출했다. 그는 일련의 번호를 매긴 공연에 각각의 번호와 견인 명칭을 붙였고, 이는 관객에게 일정한 정서적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들의 집합이라고 말했다. 어떤 경우에는 ‘정서적’ 이란 표현이 아닌, ‘사회적으로 방향 지워진’ 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에이젠슈테인은 관객들에게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했던 것이다. 연극에서 영화로 옮겨 가면서, 연극에서 출발했던 에이젠슈테인의 견인몽타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개념이 되어, 오늘날에도 계속 얘기 되는 새로운 영화언어를 창조해내었다. <빛나라, 내 별이여>에서 이를테면 주인공이 화가를 만나는 장면에서, 화가는 나무에 달린 사과에 색을 칠하고 있고, 카메라는 사과 보다는 화가에 집중하게 된다. 이는 그가 자신의 희망이나 창작 세계 안에 존재함을 나타내는데, 바로 이러한 것을 ‘견인’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 한 인물은 영화를 틀면서 자신이 그에 대해 설명하는데, 세 번에 걸쳐 같은 영화에 대해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청중들에게는 이렇게 얘기하고, 다른 청중들에게는 다르게 얘기하고 있다. 이 세 개의 이야기를 다 모으면 자기 예술을 배반하는 것에 대한 견인 효과를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이 잔 다르크에 대한 퍼포먼스를 했을 때,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고, 연기도 잘 안 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성숙하지 않은 혁신’에 대한 견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감정적인 순간에 있어서 각각의 장면들은 관객들과의 접촉을 상당히 고려한 것으로, 배우의 견인의 형태로 고려되었다. 이는 에이젠슈테인의 방법론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4: 견인적 요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견인몽타주’와 내용적인 면에서의 ‘견인’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감독님 작품을 보면 견인몽타주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견인에 대한 부분을 모두 몽타주 안에 포함시키시는 건지 궁금하다.
알렉산더 미타: 아주 좋은 질문이다. 에이젠슈테인에 있어서도 분명하게 순수한 몽타주를 찾기 어렵다. 견인적인 것이 있고, 약간의 틈이 있고, 다시 견인적인 나오는 식이다. 영화에서 사실 견인몽타주에 가장 가까운 것은 서스펜스 장르에서 볼 수 있다. 행위가 본질적으로 진행될 때 관객의 긴장도 올라가게 되는데, 뭔가 기대하고 있다가 갑자기 단절되면 견인효과가 생긴다. 긴장을 높였다가, 잠시 틈을 줬다가, 다시 진행하는 그러한 방식은 히치콕의 대표적인 작품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서스펜스라는 것 자체가 견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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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조셉 로지 <무슈 클라인>

지난 3월 20일 열린 시네클럽 행사에서는 조셉 로지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무슈 클라인>을 상영하고, 상영 후에는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강연이 이어졌다. ‘조셉 로지의 정치학’이란 제목으로 펼쳐진 이날 강연은 <무슈 클라인>이 갖는 의미와 무엇보다 조셉 로지가 자신의 영화에서 보여준 정치적인 태도에 대해 알아보고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번에 루키노 비스콘티 전을 개최하면서 <저주받은 자들>의 정치적 맥락 안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 아직 진행되지 못했지만 2년 전 쯤부터 조셉 로지 특별전을 생각하고 있는데, 로지의 영화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인 <무슈 클라인>을 한 번 쯤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싶어 이 시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6, 70년대에 파시즘이나 2차 대전 당시의 시기를 다루었던 영화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영화도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앙리 루소는 「비시 신드롬」이라는 책에서 이 영화가 나왔던 70년대 초를 ‘깨어진 거울의 시대’라고 묘사한다. 이때는 회상과 의문을 제기하는, 홀린 듯한 이끌림의 시대이자 회고 풍조를 통해 프랑스의 40년대의 문제들이 유령처럼 되돌아오는 시대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 되돌아왔던 문제들은 크게 보면 세 가지로, 반유대주의, 대독협력, 레지스탕스의 신화가 그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몇 편의 영화들이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데 선구적인 시도를 보여주었다. 레네의 경우 일찍이 이런 작업들을 하고 있었지만 60년대 말에는 마르셀 오퓔스의 <차와 동정>이라는 작품이 있고, 70년대 초에는 멜빌의 <그림자 군단>도 등장했으며 특히 이 시기에 루이 말이 만든 <라콩브뤼시앵>은 굉장히 큰 여파를 불러 일으켰다. 앙리 루소는 이런 영화들이 등장한 것이 특정한 역사적 사건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가 촉매가 되어 그런 역사적 시기를 되돌아보게 하고 그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70년대 초에 프랑스에서 이런 일종의 회고주의가 등장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시기에 경제적인 위기가 불어 닥침에 따라 미래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래의 시간을 생각하기 보다는 과거의 노스탤지어나 복고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또 중동에서의 위기와 관련하여 반유대주의나 유대적인 기억이 불거지게 된 면도 있다. 동시에 2차 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만들어진 레지스탕스의 신화가 샤를 드골이 몰락하면서 그 신화에 대한 의문들과 질문들이 동시에 발생하게 되기도 했다. 74년부터 78년까지 제작된 영화 중에 독일의 점령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만 45편에 이르렀으며, 이것은 그 이전 10년 동안 만들어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였다. 이런 영화들은 몇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가장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발형 영화들이다. 그 시대에 있었던 끔찍한 문제들을 다루는 것인데 이건 가장 일차적인 부분인 것 같다. 잊고 있었다든가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금 더 노스탤지어적인 영화들이다. 분노를 보여주기보다는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복고적인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이 단어가 완벽하게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탐미적인 영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이다. 루이 말의 <라콩브뤼시앵>이 이에 해당되며 방금 보신 영화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은 앙리 루소가 기회주의적 영화라고 표현하고 있는 성인물 같은 것들이다. 나치 점령기의 부분들을 포르노그라픽한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 안에서 나온 영화가 방금 보신 <무슈 클라인>이다. 또한 이 영화는 70년대적인 보편성을 획득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70년대에는 굉장히 패러노이드적인 영화, 컨스피러시 필름 등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미국에서 이는 정치적인 느와르 같은 양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특히 시드니 루멧의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도 그런 특성들을 약간 갖고 있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적해 들어갔다가 결국 그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 유형의 영화중에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고, 동시에 굉장히 잘 직조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일종의 덫에 걸린 사람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로베르 클라인이 자신과 이름이 같은 또 다른 로베르 클라인을 찾아가는 추적의 과정 사이에 잠깐씩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상황의 변화들이 인서트처럼 많이 들어가 있다. 별로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던 이런 부분들은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클라인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그를 호송해가기 위한 준비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주 잘 직조된 태피스트리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크레딧 시퀀스에 등장하는 태피스트리를 통해 암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셉 로지는 종종 영국인으로 착각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위스콘신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17세 때부터 이미 연극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나중에 극영화로 데뷔하게 된다. 로지는 오손 웰즈와 굉장히 친했고 특히나 그가 만들었던 <심판>이라는 작품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영화에는 <심판>에 등장했던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으며, 몇몇의 공간적 배경 역시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로지는 공산주의자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했었다. 미셸 시망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헐리우드의 사람들은 늘 배우의 스캔들에만 관심을 갖고 잡담만 나누었는데 공산당에 입당하면 어떤 문화적 소양을 더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입당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이데올로기적 요인은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공산당에 입당했던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의 활동이 더 이상 어렵겠다는 판단 하에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로지는 크게 보면 네 가지 정도의 시기를 겪게 된다. 초기 헐리우드 시기가 있고, 영국에서도 두 가지 정도로 시기가 나누어지며 작품의 경향이 조금 달라지고, 마지막으로 프랑스로 건너가서 보내는 시기가 있다. 그때마다 그는 이름을 바꾸어가며 영화를 만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아이덴티티의 문제가 로지에게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했을 것 같다.

<무슈 클라인>에서 역시 아이덴티티의 문제가 굉장히 큰 맥락을 차지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로베르 클라인이 다른 로베르 클라인을 추적한다는 이야기는 일종의 도플갱어적인 스토리다. 이런 부분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은 거울이나 여러 가지 공간적인 매치들이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거울들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장치들이다. 클라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변화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거나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배경들이 특정한 사건을 몰아가는 양상을 취하고 있다. 특히 크레딧 시퀀스 다음으로 이어지는 시퀀스가 이 영화 전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며 보는 사람을 굉장히 날카롭게 후벼 파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여자의 클로즈업으로 시작되는데, 입술을 뒤집어 치아 상태를 보고, 자를 대어 얼굴의 크기를 재며 이 사람이 유대인인지 여부를 의사가 획인하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가 빠지면 이 여자가 벌거벗은 상태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 장면은 클라인을 추적하는 스토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사실상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먼제 이 장면은 당시 유대인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굉장히 비인간적이고 냉담한 방식으로, 섹슈얼한 부분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가운데 사람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장면은 다음 시퀀스에서 이어지는, 한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장면의 활력성과 비교된다. 동시에 클라인은 나중에 앞선 그 여자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 첫 번째는 클라인이 유대인에게 넘겨받은 그림을 흥정하는 장면이다. 클라인은 앞서 의사가 했던 것과 똑같이 그림의 치수를 잰다. 또한 그가 잔느 모로를 만났을 때, 그녀는 클라인의 얼굴 크기에 대해 말하며 그가 가진 동물적인 지점을 이야기한다. 이렇듯 그가 클라인을 찾아가는 개인적인 여정, 즉 자신의 자아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42년이라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 안에서 유대인을 다루었던 프랑스 사회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영화의 곳곳에 그런 느낌을 주는 부분들이 있다. 가장 극단적인 것은 그가 유대인을 조롱하는 내용의 공연을 보는 장면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클라인의 여자친구만이 유일하게 역겹다는 반응을 보이며 나가자고 말한다. 그런데 그녀가 여기를 떠나자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은 무대에서 ‘유대인들은 떠나야 한다’는 대사가 등장하는 순간과 교묘하게 겹쳐진다. 이는 클라인이 처하게 될 운명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결국 반유대주의적인 정서들이고, 이는 2차 대전 종전 이후에 프랑스 사회가 끊임없이 덮어버리려고 했던 문제다. 실제로 대독협력이나 반유대주의라는 문제들을 대치하는 것으로서 레지스탕스의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이 영화의 상당히 많은 장면들은 인물들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공연을 보는 관객들의 얼굴을 굉장히 과도한 시간동안 차례로 훑어나가는 것, 그리고 근방의 레스토랑에서 클라인을 찾는 급사를 따라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이 그러하다. 이런 장면들은, 의도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독협력을 하거나 반유대주의 정서에 몰입해있었던 당시의 프랑스 사람들을 고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결국 이 영화는 도플갱어적인 또 다른 존재성의 호기심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개인적인 차원의 이야기와, 42년에 프랑스인들의 무관심에 의해서 발생하는 사건을 연결해서 표현한 작품이다. 특히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차이를 넘어서서 그 둘이 갖고 있는 수렴점이라는 지점에서 유대인 문제를 바라보는 영화로, 선구적인 작품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진행이나 카메라 움직임, 미장센 같은 부분들 역시 잘 연결되어 있어서 작품으로서도 굉장히 훌륭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화가 겨냥하고 있는 특정한 역사적인 문제와 그것을 다루는 시각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은 작품이 아닌가 한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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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니콜라스 레이의 <실물보다 큰>

지난 11월 28일 시네클럽 행사로 니콜라스 레이의 <실물보다 큰>을 상영하고 상영 후에는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니콜라스 레이의 작업과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시네토크가 열렸다. 1956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통해 진가를 발휘하는 화면과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문제의식은 오늘날까지 현저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실물보다 큰>을 중심으로 살펴본 11월 시네클럽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방금 보신 니콜라스 레이의 <실물보다 큰>은 굉장히 독특한 영화다. 이 영화는 굉장히 짧은 러닝타임과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지만, 굉장히 밀도가 높고 일종의 실내극 같은 느낌을 준다. 실내극처럼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들을 갖고 만들어진 밀도 높은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 거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지만, 사회극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한 공포에 가깝고 가족의 문제도 포함되어있다. 이렇듯 장르적으로도 굉장히 다양하게 혼성화 되어있고, 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멜로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이 영화의 초중반부터 주인공은 아내와의 관계를 거의 끊어버린다. 몇 가지 상징적인 장면들로 그런 부분이 나타난다. 특히 우유 시퀀스는 잊을 수가 없는데, 그 장면에서 주인공은 ‘당신과는 거의 이혼한 상태’라고 폭발적인 발언을 한다. 이렇듯 이 영화에서 중심적인 것은 아들과의 관계지 일반적 멜로드라마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것을 일반적인 의미의 멜로드라마, 사랑과 가족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면 약물 남용에 의한 드라마냐. 그러나 사실 그것을 주제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주제는 무엇일까. 거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의 종반에 갑자기 중심적인 주제로 떠오르는 것은 믿음의 문제다. 그 믿음 덕분에 남편이 깨어났을 때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다. 보셨다시피 이 영화는 갑작스러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물론 이것은 당시 할리우드 영화의 필연적인 귀결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 결국은 믿음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이렇듯 주제적인 면이 굉장히 다양한 부분에 포진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또한 밀도가 높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 밀도를 만들어내는 레이의 역량 중 상당부분은, 이 사람이 B급영화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는 데 기인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 표현의 방식, 그리고 이야기와 플롯 모두가 절약적이다. 그리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가는 데 있어서 플롯이나 인물에만 의존하지 않고, 미장센을 사용하고 있다.

체육 선생님이 등장해서 아들에게 요구르트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CF의 한 장면 같다. 이 영화에 나오는 신약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듯이, 동시에 영화의 전반에는 신약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서 새로운 소비상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방금 말씀드린, 요구르트를 만드는 장면은 새로운 소비상품과 그 상품에 의해서 사람들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단순히 아들이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비슷한 양상은 이 영화의 도처에 있다. 새로운 세제, 그리고 부엌에 장식되어있는 물품들 같은 것들 모두가 새로운 소비상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감독이 고다르라고 생각한다.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같은 영화에서는 새로운 소비상품들을 굉장히 많이 나열하고 있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또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집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여행 포스터들이다. 그리고 관객들이 제발 이것을 봐 주기를 바라는 식으로 인물을 통해 직접 지칭하기도 한다. 그 포스터의 모든 부분은 대단히 이국적인 다른 나라의 풍경들을 담은 것이다. 그것이 왜 붙어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용상으로는 이 사람들이 여행을 가고 싶은 욕구가 그것을 통해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다르의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에서는 파리 근교 신도시의 주택에 거주하는 여자들이 주택의 상환금 때문에 매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 영화에서 에드가 하는 부업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매춘을 하는 공간은 여행사로 위장되어있고, 그곳에 그런 여행 포스터가 붙어있다. 개인적으로는 고다르가 이 영화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영화의 굉장히 다양한 부분들이 정확한 의미로는 포착되지 않더라도 기능적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도 상당히 밀도가 높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한 번 봐서는 놓치는 부분도 많을 것 같다. 큰 화면에서 보았을 때 그런 밀도들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통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아메리칸 드림이 악몽이 되는 영화이다. 50년대 이전의 영화들은 현실이 어떤 방식으로든 아메리칸 드림으로 봉합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전쟁과 냉전과 매카시즘의 광풍을 거치며 꿈이 현실화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꿈의 현실화가 불가능해질 때, 그 꿈을 버리지 않는 이상 그것은 망상이나 악몽이 되어버린다. 그것이 50년대 이후의 미국 영화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니콜라스 레이나 사무엘 풀러 같은 작가들이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 풀러의 <충격의 복도>역시 그런 편집증적인 영화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충격의 복도>처럼 예외적인 상황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중산층 가정 안에서 얼마나 끔찍한 악몽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악몽이나 잠복해있던 불안감이 외부로 드러날 때 그 촉매로 활용되는 것이 기적의 신약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을 드러내게 하기 때문에 치유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굉장히 물리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색채, 공간, 그리고 인간에 대해 다룰 때까지 굉장히 물리적인 지점에서 접근한다. 심지어 에드의 주변 인물로 체육 선생을 설정하고 있고, 검진을 받는 장면들 역시 굉장히 물리적인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공간에서도 그런데, 사실 니콜라스 레이는 원래 건축을 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건축적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계단이 대단히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계단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벽면에는 여행 포스터들이 있다. 여행 포스터는 일상의 삶을 다른 휴양이나 레저의 목적지와 연결시키며 그곳들을 상기시킨다. 이 사람들이 그 목적지에 가려면 집을 떠나야 하는데, 이 영화는 집이라는 덫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 덫처럼 구성되는 건축적 공간을 만들어나갈 때 1층은 모든 사람이 모이는 공간으로, 2층은 모든 사람이 각자 분리되는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둘을 연결하는 계단은 일종의 떠있는 공간이다. 떠있다는 느낌은 집을 다른 휴양지들과 연결시키는 포스터들로 인해 더해지고 있다. 그것이 깨어지는 부분이 이 영화의 마지막 액션시퀀스다. 액션이 벌어지는 것이 계단이고, 그 계단이 파괴되어져 가면서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라인 자체가 파괴되는 것이다. 그것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어떤 망상들이 물리적으로 깨어져버렸기 때문에 대지나 지평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 깨어짐이 불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처럼 레이의 영화는 양가적이고 모순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유 없는 반항>에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반항하지만, 거기에는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부분도 있다. 그것은 B급 영화로 시작한 레이라는 감독이 갖는 작가적인 모순이기도 하다. 오손 웰즈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들은 고전적인 할리우드 시스템에 반발했지만 동시에 할리우드가 자기를 품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부분들이 건축적인 공간의 배치나 색상의 배치에서도 부각되고 있다.



이 영화는 컬러에서 시작해서 점점 더 흑백으로, 표현주의적인 요소들로 향하는 영화다. 영화의 서두에서 파티가 끝나고 에드는 집안의 모든 불을 하나씩 꺼나간다. 그것은 어둠이라는 세계의 하나의 전조적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나중에 가면 이것은 굉장히 과장된 형태의 조명과 어둠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어둠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조명술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내재되어있는 어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내재된 어둠을 대표하는 것은 폭력의 충동들이다. 잘 따져보면 이 영화에서는 아내 역시 대단히 폭력적이다.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순간들이 있다. 심지어 아들 역시 마찬가지다. 레이나 풀러, 엘리야 카잔의 영화를 보면 인물이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순간이 있다. 레이는 그런 부분을 대단히 좋아했던 감독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양가적인 부분을 갖고 있으며, 그것들 중의 하나가 어떤 상황에서 확 돌출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어둠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인물 내부의 폭력적 경향들이 갑자기 드러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 중요하게 봐야할 것은 이것이 <이유 없는 반항>과는 좀 다르다는 젓이다. 그 영화에서는 기성세대나 사회 등 외부적인 면들에 반발하여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부분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거기에 비하면 이 영화의 충동과 폭력은 내부로부터 기인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레이의 <고독한 거리에서>라는 영화와 비슷하다. 그 영화에는 소설가로 험프리 보가트가 등장하는데, 그는 종종 급작스럽게 화를 내며, 과잉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이 영화상에서도 아무리 약물을 복용했다고는 하지만 과잉된 폭력들이 있다. 그 과잉이 <이유없는 반항>에서는 외부의 영향에 의해 반발적이고 반사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이 영화에서는 이미 누적되어진 것들이 폭발하는 경향으로 표현되고 있다. 일종의 내적 폭력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유 없는 반항>에 비해 도대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들어가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감독 역시 저 남자의 폭발적인 분노와 충동적인 폭력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이 영화상에서 정확하게 고찰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대신 이 영화에서는 그런 분출과 그 분출이 갖는 효과가 다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왜 저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원인에 대한 부분을 생각해보실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Bigger Than Life>, ‘삶 보다 큰’이다. 여기서 ‘보다than’라는 것은 통상적인 것보다 큰 것, 곧 과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과잉에 대한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건 약물 과잉, 초과 노동, 그리고 집에서 새로운 소비상품을 사는 것과 관련된 소비적 과잉의 문제도 있다. 행위의 과잉도 있다. 공을 너무 세게 던지는 것, 그것이 나중에는 과잉 폭력으로, 과잉 해석으로, 과잉 지위로 확대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네마스코프 화면 자체도 과잉이다. ‘TV보다 큰’ 것 이다. TV보다 큰 영화 안에서 레이는 현미경처럼 디테일들을 보여준다. 시네마스코프다 TV보다 크기 때문에, 그 디테일들 역시 TV에서보다 더 크게 보여진다. 모든 사물과 인물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실물보다 큰’, ‘삶 보다 큰’ 것이다. 레이가 미국영화에서 이루어낸 혁신 중에 하나는 마이크로한 세계를 매크로하게 풀어낸 것이다. 중요한 점을 하나 더 꼽자면, 이 영화는 삶을 그리는 영화다. 약물 과용이나 가족 멜로, 아버지나 아들의 관계로도 다 말해질 수 없는 삶 그 자체를 그리는 영화이다. 영화에 어떻게 삶을 담아낼 것인가. 여기에 대해 고다르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영화에 넣으면 된다.” 처음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밀도를 높게 만들어가는 여러 가지 요소들, 혹은 이 영화를 연극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장치를 쓰는 것들 모두가 삶에 근접해가기 위한 방법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이 영화가 통상적인 삶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과장된 형태로 일상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보다 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니콜라스 레이의 영화적 예술이 갖는 특별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리: 박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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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존 포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지난 9월 19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영화에 대한 강좌와 함께 관객들과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과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인 ‘시네클럽’ 행사로 존 포드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를 상영했다. 존 포드의 작품 세계와 웨스턴 장르의 창조, 변형, 발전을 주도한 그가 남긴 발자취를 살펴보는 소중한 기회가 된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번 시네클럽 상영작으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를 선택하게 된 건 추석을 맞이해서 고향이나 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져 있는 영화이고 잘 설명되어 있는 편이지만 내부적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볼 만한 지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수색자>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두 편의 영화는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반복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 있다. 또한 그 차이에는 수많은 변경들이 있다. 그런 점들을 간략하게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이 영화는 서부극으로 불리기엔 꽤나 심심한 영화이다. 일단 존 포드의 웨스턴 중에서 이렇게 말이 많은 영화는 드물다. 또한, 웨스턴의 주 무대인 공간들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존 포드의 웨스턴에서 등장하는 서부의 로케이션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실내극이라 불릴법하다. 그리고 남성적인 공간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주된 공간은 부엌이다. 도박장이나 보안관 사무실, 바, 목장 같은 남성적 공간이 아닌 부엌이나 신문사 사무실이나 교실과 같은 공간들이 주로 등장하고, 이것은 웨스턴 영화에서는 보통 여성적 공간들이다. 바가 나오긴 하지만 그곳도 액션이 벌어지는 공간이 아닌 수다스러운 공간, 정치적 집회장이다. 유일하게 마을 변두리에 위치한 톰의 집만이 로케이션 촬영 된 예외적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존 포드의 웨스턴으로서는 액션이 적고 말이 많은 영화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화의 후반부쯤에서 존 웨인이 술에 취해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 장면이다. 집도 법도 없는 방랑자적 인물인 리버티 밸런스와는 달리 톰은 이미 집이 있고, 또 새로운 집을 지으려고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집을 불태워 버리는 장면의 느낌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되었다. 왜 자신의 집을 불태워버리는가. 가장 단순한 이유는, 그 집은 자기가 살 집이 아니라 여자를 위한 집이었기 때문이다. 할리라는 여자가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아닌 랜섬에게로 떠나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집이 필요 없게 되었고, 그래서 그녀가 살 집 뿐만 아니라 자기 집까지 태워버리게 된다. 그 이후에 톰은 아무 곳에도 거주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집을 불태운다는 것은 <수색자>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보다 훨씬 격렬한 감정의 상태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기는 가장 큰 의문은 톰이 왜 집을 불태워버리는가 하는 지점이다. 그런 관점 안에서 이 영화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기차의 도착과 랜섬은 거의 등치되어 표현된다. 동시에 그것은 문명의 도착이기도 한데, 그것이 조금 애매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를테면, 랜섬이 밤에 낡은 역마차를 타고 처음 서부에 도착할 때는 그가 진정한 의미에서 서부의 법과 충돌하게 되는 순간이다. 자기가 들고 온, 문자로 쓰여진 법전이 총과 채찍과 폭력으로 의해 진행되는 서부의 법과 혹독하게 충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법전은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다. 리버티 밸런스는 영화 내내 문자에 대한 심각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의 행동의 상당수는 총질보다도 문자를 찢어버리는 일이다. 처음에는 법전을 찢어버리고, 다음에는 신문, 그리고 끝내는 신본 스타라는 신문사에 들어가서 모든 윤전기나, 조판기를 뒤집어엎고 신문으로 피바디의 얼굴을 덮어버리기까지 한다. 그것은 통설적으로 보자면 문명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굉장히 물질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영화의 첫 부분에 랜섬에게 혹독한 서부의 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그가 벌이는 행위는 법전, 문자, 질서, 체계에 대한 공격이다.

흥미로운 것은, 랜섬이 쓰러져있을 때 그를 마을로 데려온 것이 톰이었다는 사실이다. 랜섬을 황야에 쓰러지게 한 인물이 리버티 밸런스라면, 방치된 그를 마을로 데려온 것이 톰이라는 점에서 톰과 리버티 밸런스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동시에 톰이 랜섬을 마을로 데려오는 과정 안에서 스스로 자기파괴적인 상태로 빠져들게 되는 운명적 상황들이 있다. 톰이 랜섬을 맨 처음에 데려간 곳은 부엌이라는 공간이다. 그곳은 여자들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공간이다. 초반부 장면에서 특히 할리는 그 안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존 포드의 영화에서 에이프런을 한 남자가 나오는 것은 이 영화가 유일할 것이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서도 볼 수 있듯 존 포드의 영화에서는 에이프런이란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모성적 소품이다. 제임스 스튜어트 자체가 웨스턴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기도 한데, 그가 에이프런을 두른 인물이라는 점이 이 영화에서 특별하게 위치하고 있다. 랜섬은 부엌이라는 여성적인 공간에서 친숙하게 에이프런을 두르고, 접시를 닦고, 웨이터 일을 하면서 지극히 여성화된 인물로 나타난다. 존 포드의 웨스턴에서 보면 서부사나이의 여성화라고 볼 수 있다. 랜섬은 철저하게 여성화된 인물로 표현되어있고, 그것은 또한 문명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기차의 도착, 문명화, 법과 관련된 부분들이 모두 여성적인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과 반대 위치에 있는 것이 무법적인 것, 혹은 바나 술집과 연결된 남성적 공간들이다. 그 두 가지가 충돌적인 방식으로 영화 안에서 표현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의 설정은 일종의 삼각구도다. 할리라는 여자를 제외해놓고 보면, 랜섬과 톰과 리버티 밸런스라는 삼자의 관계가 이 마을 안에서 어떻게 벌어지는가가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다. 톰과 랜섬 간에는 빛과 어둠 같은, 일종의 그림자적인 관계의 느낌이 굉장히 강하다. 그러나 유사성의 측면에서는 톰과 리버티 밸런스가 맺고 있는 관계가 더욱 강하다. 앞서 말했듯 조형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고, 톰이 랜섬을 집에 데려가서 총질로 모욕을 주는 행위는 나중에 랜섬과 리버티가 벌이는 총격의 순간과도 굉장히 비슷하다. 랜섬이 진행하는 교육을 중단시키는 것 역시 리버티 밸런스와 톰이다. 결국 톰이라는 인물은 랜섬이 시도하고 있는 서부의 문명화와 남성의 여성화에 대해서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 부분은 리버티 밸런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사실상 리버티 밸런스가 서부에서 사라질 때 동시에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톰이라는 인물이다.


이 영화의 톰과 <수색자>의 이단이라는 인물 간에는 유사관계가 있지만, 차이점 역시 갖고 있다. 그나마 수색자에서 이단이라는 인물은 마을에는 들어올 수 없지만 황야로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톰은 황야로 떠날 수도 없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서 완전히 추방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리버티 밸런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리버티 밸런스도 계약관계 안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런 관계에조차 소속되지 않은 황야의 인물로 설정된 것이 톰이고,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마을의 변두리에 집을 짓고 할리를 맞아들여 아이를 낳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할리를 데려올 수 없는 상태가 됨으로써 그는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인물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집을 불태운다는 것은 마을의 외곽에서 서부의 사나이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며, 영화에서 가장 끔찍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톰이 집을 불태우는 것과 리버티 밸런스를 죽이는 것은 거의 비슷한 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톰이 리버티 밸런스를 쏘는 것은 일종의 자해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리버티 밸런스만 없다면 영화에 후반에 그려지는 것과 같이 랜섬이 언설과 정치적 절차를 통해 충분히 대표자가 되어 법과 질서를 지켜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리버티 밸런스라는 인물이 존재했기 때문이고, 그런 점에서 톰의 존립 근거는 리버티 밸런스라는 인물이다. 그래서 리버티 밸런스를 죽인다는 것은 톰이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 이르게 되면 톰은 첫 번째로 자기 집을 불태우고, 두 번째로 리버티 밸런스를 죽이고, 세 번째로 랜섬에게 리버티 밸런스를 죽인 것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는 세 가지의 과정을 거치며 완벽하게 자기파괴적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수색자>보다도 훨씬 더 비극적인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존 포드의 웨스턴은 여러 가지 형태의 국가 공동체의 건립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전체적으로 보면 법과 문명화와 교육을 통해 미국적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것은 서부적 남성성이 철저하게 여성화 되는 것이다. 톰의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적 공동체의 건립을 위해 총을 들었던 인물들이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톰이 영화의 후반에 드러내는 느낌은 <그랜 토리노>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느낌과 굉장히 비슷하다. 거기서 이스트우드는 총을 다시 들지만 쏘지는 않고 죽게 된다. 물론 이 영화에서 톰이 리버티 밸런스와 격돌해서 죽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리버티를 죽임으로서 사실상 자살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사회에서 총과 폭력은 국가 성립의 기초가 되었지만, 국가가 성립된 이후에는 총을 들었던 사람들을 지워버리지 않고서는 미국적 공동체가 진행될 수 없다는 맥락이다. 똑같은 관점에서 그것은 <미스틱 리버>와도 굉장히 비슷하다. 미국이라는 공동체가 성립되는 과정 안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내재적 폭력성이 있고, 그것은 결코 사라질 수 없으나 감춰지고 덮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렇게 덮어져야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 톰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편집장 피바디가 영화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집회가 열리는 바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피바디는 ‘자유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바에서 술을 마실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정치적인 문제, 또 그것과 연결된 자유의 문제나 법과 질서 간에 이상한 충돌성을 보이고 있다. 리버티 밸런스와 피바디와 톰은 이 마을에서 가장 법과 질서를 무시하며 자유롭게 살아간다. 그러나 톰은 동시에 제약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옛날의 방식대로 할리를 데려올 수도 없고, 이 마을을 끌어갈 수도 없다. 피바디라는 인물 역시 자유를 위해 글을 쓰고 활동하기는 하지만 제약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리버티 밸런스 역시 망나니처럼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제약되어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공동체나 국가가 건립되는 과정, 그리고 법과 질서가 집행되는 과정은 개방되어있던 부분이 폐쇄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굉장히 역설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리버티 밸런스의 이름 안에 리버티라는 단어가 들어있고 그를 죽인다는 부분은, 어떤 면에서는 법과 질서가 정립되며 자유를 죽인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종합적인 측면들이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든다. 법과 질서, 충돌과 폭력 같은 문제들을 다룬 정치적인 우화 같기도 하다. 그런 정치적인 상황들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지켜볼 수 있는 하나의 흥미로운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고향에 대한 이야기 혹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집을 잃어버린 사람과 자신의 집을 불태워버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공동체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리버티 밸런스라는 악당조차도 자족적일 수 없다. 무뢰한들의 세계가 끝난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보면 대단히 비극적이기도 하다. 무뢰한들의 세계가 사라지고, 동시에 영웅들의 세계마저 사라지는 모습을 보는 존 포드의 시선은 우울하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수색자>와 이 영화를 항상 함께 생각하게 되는데, 두 편의 영화에서 오는 슬픔이 약간 다른 것 같다. (정리: 박예하)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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