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시네바캉스 서울, 7월 28일~8월 2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

올해로 6회를 맞는 ‘시네바캉스 서울’이 7월28일부터 8월28일까지 한달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데자뷰’란 컨셉으로 기획된 이번 영화제는 ‘클리셰’란 단어를 존재하게 한, 영화사의 위대한 선배감독들의 30여 작품을 소개한다. 이 지면에서 소개하는 작품 이외에도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 <싸이코> <새>, 오슨 웰스의 <위대한 앰버슨가>와 자크 투르뇌르의 <캣 피플>, 브라이언 드 팔마의 <드레스드 투 킬>과 마이클 만의 <히트> 등이 상영된다. 자세한 상영시간표는 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를 참조하시길.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두 얼굴
<마이클 치미노 특별전>
마이클 치미노의 장편영화 7편 중 무려 4편이 ‘특별전’ 형식으로 초대된다. 데뷔작인 <대도적>(1974)을 비롯해 출세작이었던 <디어 헌터>(1978), 이후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를 문 닫게 만든 저주받은 걸작 <천국의 문>(1980), 그리고 작품성에 비해 연달아 상업적 실패를 안기며 그를 절망에 빠지게 했던 <이어 오브 드래곤>(1985)이 그 목록이다. 이 작품들은 전혀 다른 스토리의 흐름을 보이지만 분명 관통하는 정서의 코드는 존재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메시지, 감성을 부각하는 음악 사용, 약간의 연극적 성향과 그를 상쇄시킬 만큼 조화로운 역사적 배경이 그러하다.

치미노가 활동을 하던 당시 미국은 ‘뉴아메리칸 시네마 운동’이 정점에 달했다. 뉴아메리칸 시네마는 우선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폭발적 성장을 가져왔는데, 그와 비견되어 미국영화 특유의 고전적 내러티브를 극대화한 사회비판물 역시 쏟아지게 됐다. 치미노의 경우가 후자에 해당한다. 우리는 그를 통해 존 포드 같은 클래식한 내러티브에서 얻는 광대한 시각적 쾌감을 느낄 수 있고, 샘 페킨파 같은 혁신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영광과 굴욕을 동시에 맞볼 수 있는 이번 특별전 구성은 흥미롭다. 치미노가 활짝 연 천국으로의 문을 명쾌하게 정리할 기회다.

시나리오작가로 일하던 때, 치미노는 <더티 해리2>(1973)의 작업을 통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만났다.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도적>을 통해 치미노는 경쾌한 리듬으로 버디무비를 풀며 ‘천재 감독’이라 명명된다. 두 번째 연출작인 <디어 헌터>는 큰 성공을 거둔다. 이 작품으로 그는 스튜디오의 전폭적 지지를 얻는데, 이는 뒤에 양날의 칼이 된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세 친구의 운명을 다룬 이 영화는 전쟁의 이전과 이후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스토리의 마지막에 견고한 감동을 전하는데, 작품의 주제 의식 또한 흠잡을 데 없다. 이후 <천국의 문>이 끔찍할 정도로 실패하며 미국에서의 치미노는 완전히 몰락하지만 오늘날 컬트로 불릴 정도로 매혹적인 이 작품은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아야 묘미가 살 것이다. 백인전쟁의 끔찍함을 광활하게 다룬 이 극에서 연출자의 미장센은 극대화된다. 이후 5년의 공백 뒤 <이어 오브 드래곤>을 통해 그는 재기한다. 물론 이 영화도 상업적으로 성공하진 못하지만 젊은 날의 미키 루크가 아름답게 새겨진 이 작품에는, 차이나타운의 끈적한 공기와 함께 액션신이 묵직하게 담긴다.

칸영화제 상영 버전 그대로
<카를로스> Carlos
올리비에 아사야스/ 330분/ 프랑스, 독일/ 2010년

무려 5시간30분이다. 칸영화제에서 <카를로스>(2010)가 얻은 유명세는 무엇보다 그 긴 상영시간에 있을 거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는 여느 전기영화보다 훌륭하다. 처음 이 작품은 카날플러스의 TV판 ‘3부작 미니시리즈 영화’로 기획되었다. 당시 전체의 길이는 550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버전은 칸영화제 당시의 것과 동일한 330분이다. 혹시 나중에 국내 개봉이 확정된다 하더라도 미국과 독일에서처럼 반으로 편집될 확률이 높아 이 영화의 진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길 권한다.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자칼’이란 호칭으로 유명한, 전설적 테러리스트 카를로스(암호명)의 일대기를 침착하게 영화에 담아냈다. 냉전기의 상징과도 같은 그를 묘사하며 아사야스는 조급함 대신 관조를, 그리고 ‘차라리’ 명백해지지 않을 것을 선택하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세 파트로 묘사되는 카를로스의 캐릭터는 상당히 광적이지만 또한 매우 복합적이라서 결국은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닌다. 범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비현실적 상황을 그는 록스타처럼 당당하게 헤쳐나가고, 반면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오히려 몽환적 자태로 나르시시스트적 기질을 드러낸다. 주인공을 맡은 에드거 라미네즈는 이 역을 위해 무려 15kg를 살찌웠다. 사진과 비교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카를로스가 된 그를 래리 로흐터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약간의 악마성과 몽상가적 기질, 그리고 이상주의적 성향과 더불어 암살범으로서의 적의가 묻어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섞어놓은 모순 덩어리의 캐릭터.” 물론 캐릭터도 뛰어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감독의 미장센일 것이다. ‘1975년 비엔나 석유수출기구(OPEC)에서의 인질극’ 시퀀스에서 아사야스의 솜씨는 보기 좋게 드러난다.

거장이 본 유럽의 현재
<필름 소셜리즘> Film Socialsm
장 뤽 고다르/ 102분/ 프랑스/ 2010년


장 뤽 고다르의 최신작, 이 짧은 문구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히 설명된다. 하지만 여타 영화제를 통해 관객이 전한 것처럼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조금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필름 소셜리즘>은 한마디로 매우 현대적인 작품이다. 총 세 갈래의 흐름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 영화는, 각각 ‘이것과 같은 것들’,‘신이시여 어디로 가나이까?-우리의 유럽’,‘우리의 휴머니티’란 소제목을 달고 있다.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촬영되었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나열돼 있다.

첫 번째 부분, 이 파트에서 카메라는 지중해를 항해하는 거대한 여객선 안에 있다. 이 부분의 에피소드는 고다르가 지중해를 여행하며 생각한 유럽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담는다. 바캉스를 즐기려는 승객이 각자의 언어로 다양한 화젯거리를 내뱉는데, 이들의 말은 때로는 화면과 매치되고 때로는 분절된다. 굳이 내러티브로 이를 연결할 필요는 없다. 소쿠로프의 <러시아 방주>(2002)처럼 이 영화는 천천히 주제에 접근한다. 이윽고 밤이 되자 두 번째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이는 첫 번째와 다르게 실험적 극영화에 가깝다. 한 소녀와 그녀의 남동생은 자신들의 부모를 마치 재판하듯 닦달하는데, 이들이 집중하는 유년기의 기억에는 ‘자유와 평등, 형제애’가 담긴다. 챕터의 제목처럼 이는 마치 유럽의 과거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영화는 여섯개의 장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상자료를 펼쳐 보인다. ‘이집트, 팔레스타인, 오데사, 헬라스, 나폴리, 바르셀로나’가 그 배경인데, 그곳엔 각자만의 전설이 있다. 개중에는 진실된 이야기도 있지만 얼토당토않은 거짓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세 에피소드가 당도하는 곳에서 고다르는 2010년의 유럽, 세계의 모습을 말하고자 한다.

<브리가둔> Brigadoon
빈센트 미넬리/ 108분/ 미국/ 1954년


‘브리가둔’은,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환상 속 마을을 가리키는 단어다. 어느 날 두 미국인이 길을 잃는데, 그들이 고생 끝에 발견한 곳이 브리가둔이다. 놀랍게도 그곳은 18세기 중엽의 어느 지점에서 시간이 멈췄다. 게다가 그들이 도착한 날은 결혼식 준비로 분주한 상황인데, 이같은 동화적 배경에서 진 켈리가 연기한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며 영화는 더욱더 로맨틱해진다. 이 작품은 <2000 매니악>(1964)이라는 호러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이와 비견할 때 <브리가둔>의 독특함은 장르적 특성에서 배가되는 것을 알게 되는데, 같은 소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영화의 색은 달라진다. ‘결혼식과 환상의 마을’이라는 코드를 미넬리는 ‘뮤지컬과 판타지’에서 찾았고, 그 선택은 옳았다.

<피닉스> The Flight of the Phoenix
로버트 알드리치/ 142분/ 미국/ 1965년


1965년작인 이 영화의 오프닝은 TV시리즈 <로스트>의 시작점과 꽤 흡사하다. 드라마의 첫 번째 시즌이 방영되던 2004년, <피닉스>라는 동명의 영화로 이 작품은 리메이크되기도 한다. 그만큼 이 플롯은 상업적인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어느 날 비행기가 사막의 중심부에 불시착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공황상태에 빠진다. 어떤 이는 죽고 어떤 이는 남는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맡은 ‘파일럿’은 이들의 정서적 리더가 되는데, 이후 독일인 ‘비행기 디자이너’가 등장하면서 극은 새로운 전개를 맞게 된다. 사람들이 부서지지 않은 비행기의 몸체를 이용해 ‘피닉스’라는 이름의 경비행기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고, 그들은 더욱 곤란해진다. 당시 유명한 스턴트맨이었던 폴 만츠가 피닉스호의 항공장면을 찍다 사망하는데, 이 사건으로 영화는 더 유명해졌다. 2차대전 당시 제임스 스튜어트가 ‘봄바디어’사의 항공기 조종사로 있었던 것과도 그의 배역이 특이하게 맞물린다.

<뮤리엘> Muriel ou Le temps d’un retour
알랭 레네/ 115분/ 프랑스, 이탈리아/ 1963년


때는 1962년이다. 불로뉴쉬르메르에서 고가구상을 운영하는 엘렌은 남편과 사별한 뒤, 알제리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온 아들 베르나르와 함께 산다. 젊은 시절 그녀의 연인이었던 알퐁스가 알제리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프랑스로 귀환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그를 초대한 것이 배경이다. 이렇게 알퐁스는 조카딸이라며 ‘프랑소와즈’란 젊은 아가씨를 대동하고 나타나는데, 그녀는 연기자 지망생이다. 4명의 캐릭터가 모이자 영화는 본궤도에 오른다. <뮤리엘, 혹은 귀환의 시간>(1963)이라는 원제를 지닌 이 작품에서 알랭 레네는 특유의 시간에의 탐구를 주제로 다룬다. ‘뮤리엘’은 베르나르의 기억을 잠식하는, 고문과 전쟁으로 숨진 알제리 소녀의 이름이다. 그녀는 직접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와 인물간 의사소통 불능의 상징으로 승화되어 영화에 기록된다. 프랑스 개봉 당시, 난해한 주제와 스토리의 탓으로 개봉된 지 15일 만에 극장에서 내린 불명예를 기록하고 있다.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프랭클린 J. 샤프너/ 112분/ 미국/ 1968년


<혹성탈출>(1968)은 <콰이강의 다리>(1957)의 원작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디스토피아 소설가 피에르 바울러의 SF소설 <원숭이들의 행성>(1963)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할리우드 시리즈는 올해 8월, 그 일곱 번째 작품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68년작 오리지널 카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스토리의 시작은 2673년 3월이다. 주인공 테일러를 실은 우주선이 18개월간의 항해를 마치고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는데, 광속 여행 탓에 실제로 흐른 시간은 2천년이나 지났다. 그곳에서 인간은 원숭이에게 사육되는 동물이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퇴화된 존재다. 전쟁을 포함한, 인류의 이기적 집단의식 배척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글: 이지현(영화평론가) 제공: 씨네21

*이 글은 영화전문 주간지 씨네21 814호(2011. 7. 27)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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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윤성호 감독의 말, 말, 말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일환으로 마련된 시네클럽 행사가 끝을 맞이했다. 그 마지막 주자는 개성 있는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윤성호 감독.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농들을 통해서 직접 현장에서 겪었던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팁들을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그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윤성호(영화감독):
늦게 입문한 탓인지 막연하게 예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컸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리감, 고산식물처럼 보는 것? 어쨌든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콩트 같은 것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10만원 비디오 페스티벌이라는 행사를 통해 아트선재센터에서 틀게 되었다. 그때 고맙게도 10만원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문화예술계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살짝 처음 인사를 나누었는데 영화를 틀면서 두근거렸을 때 이상으로, 와 출세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지나칠 정도의 경외감에서, 오히려 내가 지금 여기서 독특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가끔 신기하다. 나는 문맹에서 국어도 배우고, 문학도 배우고, 사회문화도 배우면서 시를 쓰게 되었다기보다는 문맹에서 갑자기, 문법도 모르고 시를 쓰게 된 경우인 것 같다. 그래서 의도치 않았던 소소한 문법적 일탈들이 개성으로 인정받는 사이드 이펙트가 있었던 것 같고, 이제 조금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다. 어쨌든 지금 생각난 거지만 팁 일번.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두 가지를 말하는 것.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라고 말을 시작하면 좋다. 왜냐하면 일단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대개 모든 문제는 진짜 두 가지다. (웃음) 이번. 이건 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배우들에게 은유를 쓰지 말 것, 현장에서 동사를 사용할 것. 나는 영화에 입문한 것도 늦었지만 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과 작업하는 건 더 늦었다. 전편을 연기자들과 작업한 것은 2007년에 <은하해방전선> 작업할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다른 장치들을 제거하고 배우의 연기만으로 가는 방식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많이 써먹었던 게 비유였다. 배우가 약간 헤매고 있으면 ‘자, 형, 생각해봅시다. 초등학교 때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안 계셔서 당황하는 느낌 어떨까요?’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최악의 연출법이었다. 각본상에서 애초에 상황을 제시하고, 연출할 때 그 상황에 맞는 행위를 주는 게 가장 좋다. 누군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집에서 나가야하는 상황에서 허둥대는 연기를 끌어내려면 비유로 군살을 늘리는 게 아니라 열쇠를 감추는 게 맞다.

관객1: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책상에 앉아 한 번에 작업을 시작하시는 편인지, 아니면 다른 메모라든가 하는 것들을 통해서 시나리오를 쓰시는 건지 궁금하다.
윤성호: 사실 나는 참 애매한 경우인데, 처음 만든 단편 외에는 자발적으로 구상해서 만든 작품이 거의 없다. 그래도 대답을 드리자면, 평소에 메모는 굉장히 많이 해두는 편이다. 그냥 생활 속에서 기승전결이 아주 짧게 해결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게 영화적으로 현신될 수 있을 것 같을 때는 얼른 메모를 해두는 거다. 그런데 그게 지금 내가 주로 하고 있는 단편, 콩트 작업에는 유리하지만 장편의 미션이나 내 안의 욕구가 있었을 때 거기에 맞추기란 굉장히 힘들다. 장편이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것이고 단편이 가회동에서 안국역까지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라고 치면, 단편은 큰 지도가 없이도 완만한 산보를 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때는 어떤 플랜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메모들로 접근하기는 힘든 면이 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본인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윤성호: 사실 예산 내역서에 들어간 돈이 없는 거고 밥이나 술은 많이 산 것 같다. (웃음)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어디서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데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딱 하나 제가 처음 기획한 게 작년에 만들었던 인디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였다. 그때도 돈 없이 찍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그런 걸 못 견딘다. 일단 잘 먹어야 된다. 나는 김밥 먹으면서 못 찍는다. (웃음) 다른 감독님들보다 내가 윤리적이거나 해서가 아니라, 안온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웃음) 어쨌든 그게 내가 처음으로 먼저 돈을 달라고 한 경우였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렇게 작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식의 순환이 아직까지는 흥미로운데, 배우나 스태프들한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남는 건 연출자인데, 사실 내가 도움을 엄청 많이 받은 같이 작업한 스태프들이 성장하거나 다른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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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자원활동가 강한나·박우리·오은교

작년 말부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향한 사랑으로 아름다운 봉사정신을 발휘하는 서울아트시네마 자원활동가 ‘친구들’을 만나봤다. 미술사를 전공하는 25세 강한나 양, 심리학 전공자인 23세 박우리 양, 그리고 독일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22세 오은교 양. 이 세 명의 풋풋한 여대생들은 영화와 친해지고 영화를 통해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친구를 만나고자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다음은 그들과의 일문일답.

어떻게 처음 오게 됐어요?
은교: 6년 전부터 서울 아트시네마를 찾았죠. 1회 친구들 영화제때 본 <충격의 복도>가 너무 인상적이었죠.
한나: 고3 수능이 끝나고 이것저것 해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할일 없어서 찾아보다가 서울 아트시마라는 곳이 있다고 해서 와보게 되었는데 그때 반해서 계속 오네요.
우리: 2008년 친구들 영화제가 처음이에요. 와서 ‘와 이런 영화도 있구나’ 했죠.

해가 바뀌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은교: 사람이 좀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우리: 소식지가 예뻐지고 있어요.
은교: 해가 거듭해 갈수록 한국에서 열리는 주요 영화제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한나: 매년 알차고 더 준비가 잘되는 것 같아요. 사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런저런 회고전이니 특별전이 1년 내내 열리잖아요. 그래서 친구들 영화제도 하나의 특별전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 전체적인 참여도도 높아지고 영화제때는 자그마한 포토월도 생기고...

자원활동을 하며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이 커졌나요?
한나: 내부자가 된 것 같아 재밌어요. 그리고 극장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어서 좋아요.
은교: 자원활동을 하면서 극장에 더 힘이 되고 싶어졌어요. 
우리: 일반 상영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원 활동하며 참석해야하는 시네토크나 기타 강연을 듣다보면 배울 점이 많아요. 시네마테크만의 또 하나의 장점이죠. 그리고 영화 근처에 늘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애정이 커져요.

6개월 장기 자원 활동인데 지원 할 때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우리: 나름의 큰 결심이 필요했죠. 긴 시간 동안 시간을 내야 하니까요.
한나: 지금은 친구들 영화제 때문에 많이 바쁘지만 3월부터는 주1회 출근이에요. 그래서 그냥 날짜를 조절하면 개별 스케줄에 문제될 건 없어요.
은교: 원래도 영화관에 자주 오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출근제다 보니까 꼭 아르바이트 하러오는 것 같아요. 대신에 사랑하는 아트시네마를 위해 자원 활동 하러 오는 거죠.

친구들하고 영화 보러 같이 오는 편인가요?
은교: 굳이 친구와 같이 오지 않아도 여기서 친구를 만나요. 오래 오다 보니까 눈인사 하는 분도 생기고요.
한나: 주로 혼자 오는 편이에요. 저는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연락을 안하다가 여기서 만나게 되는 거죠.
우리: 저는 혼자 올 때도 있고 같이 올 때도 있어요.

극장 안에 선호하는 자리가 있나요?
은교: 저는 명당 자리 있어요! 다열 99요.
한나: 저는 라열의 자막 오퍼레이터 근처에 앉아요. 빛이 덜 보이거든요. 

시네마테크전용관 건립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네요.
은교: 전용관은 진짜 필요한 곳이에요. 안정적인 공간도 필요하고 옮겨 다니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관이 한개라는 사실이 조금 아쉽거든요.
한나: ‘사.춤’ 극장에서 들리는 쿵쿵 소리가 좋은 영화 감상에 너무 방해 되요. 방해 받지 않고 좋은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빨리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저는 약간 70 대 30이에요. 전용관이 생겨서 세련되고 시설이 좋으면 참 좋겠죠? 그렇지만 저는 이 낙원상가도 좋고 종로가 주는 느낌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낭만이 사라질까봐 걱정돼요.

영화관이 위치한 낙원상가나 주변지역인 인사동에 대한 남다른 느낌이 있다면?
우리: 뭐 인사동 들려서 율무차 한잔 마시는 것? 제가 율무차를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근처에 맛집도 많잖아요.
한나: 낙원 상가의 옥상은 도심 속에 탁 트인 느낌도 주고요, 훌륭한 흡연 스팟아닌가요?

시네마테크란 OO이다.
우리: 시네마테크란 시간이 멈춘 곳? 제 가 말해놓고도 너무 멋있는 거 아니에요? (웃음) 네, 시간이 멈춘 곳 같아요. 단순히 옛 영화를 상영해서 라기 보단 이곳의 느낌이나 극장이 주는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은교: 저는 너무 자주와요. 학교 집 시네마테크. 그래서 딱히 시네마테크는 뭐다 하기가 어려워요. 일상이거든요. 

(인터뷰·글: 배준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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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객 2011.03.01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감사합니다!

지난 2월 18일 저녁, 인사동의 한 카페에 서울아트시네마 에디터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벌써 막바지에 접어든 친구들 영화제 기간 동안 숨 돌릴 틈 없이 쏟아지던 업무들을 잠시 잊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그간의 고충과 사소한 이야기들을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영석: 다들 에디터 활동을 처음 시작했으니 프리뷰, 리뷰 작성, 인터뷰나 녹취 다 처음 해 본 셈이다.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나는 늘 하던 일이라 별다른 감흥이 없는데. (웃음)

박예하: 나도 녹취는 에디터 활동 전부터 도와드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글 쓰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이 굉장히 크다. 그래서 글을 한 편씩 쓸 때마다 사실은 굉장히 고생을 한다. 처음 에디터 시작할 때 우리가 지금 쓰는 글이 갖추어야 할 구조를 배웠는데, 계속 거기에 맞춰서 써나가는 연습을 하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런 형식에 맞추려다보니 지금 쓰는 글들이 내 글이라는 느낌은 아직 잘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차차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최용혁: 녹취야 여러 번 하다 보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은데, 글 쓸 때는 나아지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요즘은 어떻게 영화를 한 번 보고 리뷰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불가피하게 그래야만 할 때가 있으니까 걱정도 되고. 또, 예를 들어 비스콘티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써야 할 때는 비스콘티 전작을 다 봐야 하는 건가, 하는 강박도 있는 것 같다.

박영석: 맞다. 그런 작가들이 있다.

최용혁: 근데 보기 싫고. (웃음)

박예하: 게다가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최용혁: 맞다. 한 편도 여러 번씩 봐야 하는데. 그리고 또 있다. 물론 남들이 우리의 글을 무척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웹블로그에라도 공개가 된다는 건 어느 정도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물론 경쟁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 글을 써오시던 분들의 글과는 너무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준을 맞추려다보니 인용이나 레퍼런스를 무리하게 끌어오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지만 어쨌든 잘되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고, 지금 아니면 영화에 대해 뭔가 내놓을만한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영화를 많이 본 편이 아니고, 그래서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하고 있다.

 

정태형: 사실 에디터 활동 자체를 급작스럽게 시작했다. 에디터를 선발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아는 분의 소개로 지원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글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웹 공간에도 글을 절대 올리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내가 글을 잘 쓰고 있는 건가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 서울아트시네마의 특수성 때문에 에디터 활동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과에 재학 중이라 학교에서 리뷰를 항상 쓰긴 하지만, 거기에서 쓰는 건 일종의 분석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 장면은 이렇게 보였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라는 식의 나열적인 글을 써왔다면, 지금 쓰는 리뷰는 총체적으로 좀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래서 앞서 써왔던 식의 글들을 다시 정리해야하니까 힘든 점이 많았다. 그리고 녹취나 기타 업무들 역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도 했다. 그래도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활동이다.

 





백희원: 다들 힘드셨다는데 나도 힘들었다. (웃음) 나 역시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마음으로 글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다. 개인적으로 원래 좋아하는 글쓰기 방식은 내가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감각들을 나열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쓰는 글들은 예하 씨 말씀대로 형식이 있고, 자기만족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을 위해 쓴다고 생각하니까 어쭙잖게 정보를 많이 끌어와서 덧붙이면서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봐온 사람인 것처럼 쓰게 되었다. (웃음) 그런데 그게 싫은 건 아니고, 결과적으로는 글의 완결성을 갖추고 틀 안에서 써내려가는 작업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었다. 일종의 미션을 클리어하는 느낌? (웃음) 그리고 다들 옛날 영화들이고, 훌륭한 영화들이고 이야기가 많이 되었던 작품들이니 오히려 부담을 버린 면도 있었다. 어차피 훌륭한 이야기는 나올 만큼 다 나왔으니 내가 본 걸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뭘 봤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물론 괴롭기도 하다. 나는 영화의 난해함과는 별개로 <미치광이 피에로>가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프리뷰를 써놓고 보니까 글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웃음) 이 영화는 진짜 재미있는 영화인데 왜 그런 부분을 전할 수가 없을까. 그때 영화에서 메시지나 관념적 틀을 보는 것 보다 거기서 얻은 감흥을 글로 쓰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느꼈다. 앞으로 글을 계속 쓰면서 그런 감각을 전할 수 있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예하: 글을 쭉 써놨는데, 내가 진짜로 이 영화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글에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 정말 당황스럽다. (일동 공감)

백희원: 진짜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장면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분석만 하게 되는 것 같으니 이게 아니었는데 싶은 생각이 든다.

박영석: 프리뷰나 리뷰가 아니라 비평에 가까운 글을 쓰면 그런 부분을 좀 더 많이 이야기 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지금 써야하는 글의 특성인 것 같다. 힘든 것도 재미라고 생각해야지. (웃음)

 



배준영: 나는 사실 글 쓰는 거나 녹취 푸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나름대로 나의 방식으로 형식에 맞춰 의견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피드백이 없으니 내 글이 어떤지 알 수가 없다.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친구들 영화제는 너무 바쁜 기간이니, 다음부터 에디터들끼리라도 서로 피드백을 줬으면 좋겠다. 다른 부분은 딱히 어렵지 않다.

박영석: 사실 우리가 이렇게 글을 써서 1년에 댓글 한두 개라도 받으면 다행인 편이다. 그나마 서울아트시네마 네이버 카페 같은 경우는 댓글이 좀 달리는 편인데 웹블로그는 거의 없다.

최용혁: 공부하는 차원에서 쓴다고 생각하면 괜찮긴 하지만, 아무도 이 글을 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박영석: 옛날 영화를 쓸 때 힘든 면이기도 하고 좋은 면이기도 한데, 사실 사람들이 정말 별로 안 읽는다. 그런데 그러니까 오히려 더 편하게 쓸 수도 있다. 방금 개봉한 영화에 대한 첫 번째 글을 쓴다고 생각해봐라. 엄청난 부담이다. 그럴 때보다 오히려 편하게 쓸 수 있는데, 또 그만큼 실제로 읽는 사람이 적다는 건 어느 정도 인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최용혁: 가끔 그런 자부심은 생긴다. 이를테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고전 영화들에 대한 리뷰가 많이 나왔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쓰는 글이 이 영화에 대한 첫 번째 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박영석: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글 쓸 때 그런 부분 역시 고려하면 좋다. 외국에서는 엄청난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영된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말로 쓰인 글이 없을 경우에는 정보도 많이 넣고, 소개한다는 느낌으로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 아무튼 우리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읽는 사람들은 열심히 읽어준다.

 

박영석: 말이 나온 김에 앞으로 영화 글을 계속 쓰고 싶은지, 아니면 영화 관련 활동을 하고 싶은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용혁: 기본적으로는 연출을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다보면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것이 영화적인지 하는 부분들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 같다. 일단 에디터 활동하는 동안 여기서 열심히 글을 쓰고, 내년부터는 혼자 시나리오를 쓸 것 같다.

배준영: 나는 연출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고, 찍고 싶은 게 없었다. 그런데 요즘 찍고 싶은 게 막 생긴다. 그래서 굉장히 여러 가지를 생각 중이고 예전에 써두었던 시나리오들을 다시 꺼내서 고치고 있다. 지금은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고, 앞으로는 해외 영화제들에서도 일해보고 싶다. 그래도 언젠간 한국에 돌아올 거고, 한국 영화계가 부흥이 되고 외국에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어쨌든 요즘은 연출을 젊을 때 해보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예하: 나는 사실 뭘 할지 모르겠다.

박영석: 아직 애라서 그렇다. (웃음)

박예하: 맞다. 난 아직 애니까. (웃음) 사실 진짜 꿈은 관객이다. 그게 제일 좋은 것 같고, 누구나 그럴 것 같다. 그런데 그건 직업이 될 수 없지 않나. 그렇다면 최대한 관객과 가까운 위치에서 영화의 주변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라고 계속 고민하고 있다. 일단은 영화에 대해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고, 그래서 불어 전공도 택했다. 나도 영화제에서도 일했었고, 현장도 나가고,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지금은 그냥 서성거리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박영석: 내가 처음에 영화 공부를 시작한 이유도 단순히 영화가 좋아서였다. 별다른 야망은 없었다. 처음부터 연출 욕심은 없었고, 스스로 뭔가 창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냥 영화 보는 게 너무 좋았고 관객만으로 남고 싶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가 있지 않나. 남들보다 조금 더 이해하고 싶고, 허세 부려보고 싶을 때도 있고. (웃음)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했고 이제는 결과물을 낼 때다. 어쨌든 앞으로도 계속 영화 글을 써가면서, 저널 일도 하고 싶다. 직업적인 꿈이라면 예전부터 지금까지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하고 싶다. 내가 정한 영화를 사람들이 볼 때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영화 추천해주는 걸 좋아한다. 글은 계속 쓸 거고, 공부도 계속 할 거다. 끝이 없는 것 같다. (웃음)

 

백희원: 나는 25살에 대학교 4학년 1학기다. 그러다보니 가는 데마다 취직은 어디로 할 거냐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사실 나도 그냥 관객이고 싶다. 다만 관객이기 위해서 일정정도의 물적 조건이 필요하니까, 지금 목표는 관객으로 살 수 있도록 어떤 일이든 직장을 갖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저널 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굉장히 애매하다. 내가 기업 타입이 아니다보니 주변에서 당연히 너는 저널 일을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틈새가 보이면 다른 곳을 찾을 것 같다.

 

정태형: 아버지께서 극장을 워낙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많이 다니긴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영화를 하고 싶어 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가 16살 때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다.

박영석/박예하: 친구를 잘못 만났나. (일동 폭소)

정태형: 그런 셈이다. (웃음) 그 전에는 영화 보는 게 단순한 취미였는데 그 친구를 만나고 나니 영화에 대한 일, 그러니까 감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 독서실 간다고 하고 언제나 극장에 갔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3년 내내 영화만 봤다. 대학도 운 좋게 갔는데, 그래도 영화과를 갔을 땐 자신한테 굉장히 대견스러웠다. 요즘 갈수록 드는 생각은 영화 찍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거다. 사실 습작 단편들을 논외로 치면 바로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다. 일단 돈을 충분히 많이 모아놓을 생각이다. 어떤 일을 해서든지 재정을 확보해두고 나중에 안정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어떻게든 영화 일을 하고 싶지만 힘들고 어렵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내가 스스로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건, 어떤 것도 이렇게 오랫동안 해오지 못했으니까.

박영석: 나도 스물다섯부터 영화만 봤다. (웃음)

백희원: 나는 그런 게 정말 신기하다. 나는 몰입을 못한다.

박예하: 사실 나도 그런 편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만이 그 몰입을 지탱해주었던 것 같다.

정태형: 맞다. 바로 그거다. 그냥 영화만 보면 다른 건 상관없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박영석: 어쨌든 우리 많이 이야기 한 것 같다. (일동 폭소와 박수) 앞으로 잘해봤으면 좋겠다. 오늘 들어보니 다들 피드백을 많이 원하는 것 같다. 서로 원하는 게 뭔지 알았으니 앞으로는 좀 더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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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객 2011.02.27 2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흔적은 안 남겼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

  2. 관객2 2011.03.01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요^^매번 읽으면서 봤던 영화들은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안 봤던 영화들은 아~내용을 알고 봐야 더 재밌구나 느껴요~

  3. 관객3 2011.03.01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나름 이곳 글을 열심히 읽고 있어요.
    영화를 보기 전이든 본 후든 나름 저 개인의 감상을 정리하거나 좀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니까요.
    '이거 아무도 안 읽는데 우리만 애쓰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은 안해도 될 듯해요.

  4. 배준영 2011.03.01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 뭐죠 이 훈훈한 댓글들은... ㅎㅎ 감사합니당

  5. 정태형 2011.03.02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훈훈하네요.. 아름다운 아트시네마^^

[시네토크] 김영진 평론가가 추천한 로버트 와이즈의 '산 파블로'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시네토크는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함께했다. 그는 자신의 유년기 추억이 새겨진 영화 <산 파블로>를 이번 영화제에 추천했다. 필름 수급이 확실치 않아 불안했다는 말을 하며 시작한 시네토크는 영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로 차려진 소담스러운 식탁과도 같았다. 그 현장을 전한다.


김영진(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에서 내가 누리는 호사는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재미있는 영화를 스크린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제 선택으로 <산 파블로>를 골랐는데 재미있게 봤다. 필름수급이 될지 확실치 않아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시네토크도 마지막으로 잡은 거다. 그런데 예상보다 어려움 없이 필름수급이 되어서 상영을 하게 되었다. 오늘 보신 것은 개봉 당시의 버전이다.

로버트 와이즈감독은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이걸 대표작으로 생각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서운했다고 한다. 얼마나 이 영화를 좋아했는지 감독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크리스마스마다 <산 파블로> 출연진과 스탭들을 모두 초대해서 파티를 했다고 한다. 스티브 맥퀸도 이 작품에 애정이 많았는데 알아주지 않아서 낙심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스티브 맥퀸이 출연한 영화 중에 유일하게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다. 그래서 내심 기대를 했었지만 노미네이트 된 것에 만족을 해야 했다. 그런 것들에 상심해서 1년간 영화를 찍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영화는 1년 반 정도 촬영된 영화다. 그리고 미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대만과 홍콩 로케이션을 했다. 이 영화에는 군중 씬이 많다. 사람 통제도 안되고 기후나 여러 가지 때문에 어려웠다고 한다. 원작소설은 베트남 전에 대한 메타포를 집어넣은 이야기고 로버트 와이즈도 확실하게 이러한 자의식을 가지고 만들었다. 소설이 나왔을 땐 그런 말이 없었는데 영화가 나오니 확실하게 베트남 전에 대한 은유가 강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대사가 너무 유명했다. 집에 다 왔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 대사가 히트를 쳤다. 아무튼 미국의 제3세계에 대한 개입으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에 대해 로버트 와이즈가 힘을 주어 말했는데 평가를 잘 받진 못했다.

어렸을 때 스티브 맥퀸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셜리역의 캔디스 버겐을 좋아했다. 그야 말로 환상의 캐스팅이다. 스티브 맥퀸을 보면 연기가 미니멀 하다. 간결하고 액션이 없고 굉장히 특이한 독자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 캐스팅 할 때 5명의 후보가 있었는데, 후보 중 제일 아래가 맥퀸이었다. 그러나 로버트 와이즈는 맥퀸을 뽑고 싶었다고 한다. 1순위가 폴 뉴먼이었다. 근데 하나씩 빠져나가면서 결국엔 맥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폭스에서 반대를 했다고 한다. 대작인데 스티브 맥퀸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맥퀸이 출연한 <대 탈주>와 <황야의 7인>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맥퀸은 이 영화에 애착을 가진 이유가 영화의 주인공 제이크 홀맨이 자신과 너무 닮아서, 라고 한다.

오늘 보신 영화는 길다. 요즘 이렇게 시나리오 쓰면 아무도 투자 안 할 거다. 정석대로라면 역사적 사건 안에서 휘말리는 제이크와 셜리의 사랑으로 압축돼야 한다. 그런데 가지가 많다. 프렌치와 메일리의 이야기, 제이크와 포한의 이야기, 산 파블로 내에서 장교와 병사들의 이야기도 있고, 또 미국인과 쿨리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자르라고 했는데 그대로 갔다. 가만히 보시면 홀맨이 가장 사랑하는 게 셜리가 아니고 기계, 엔진이다. 그리고 영화가 공들여서 묘사하는 게 엔진이 나오는 장면이다.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보듯이 엔진을 본다. 그 점에서 로버트 와이즈와 맥퀸의 해석이 일치한 거다. 보통 극영화에선 그런 걸 길게 찍지 않았을 거다. 홀맨은 맥퀸과 유사하다. 굉장히 단독자 적인 성격이 있고 어느 조직에 가도 그 조직에 속하지 않는 유형이다. 캔디스 버겐의 말에 따르면 우리에 갇힌 맹수와 같은 사람이 스티브 맥퀸이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 하는 거에 대해서 역겹다는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인데 그런 게 너무 잘 맞았다. 그래서 감독이 맥퀸을 좋아했다. 영화에서의 연기가 심플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준비를 했다고 한다.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하는 말이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에 맥퀸이 정오쯤에 와서 자기 의상에 마름질이 안 돼서 계속 입었던 느낌이 안 난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건 의상담당에게 말하라고 했는데 2시에 다시 와서 말하자, 감독이 화를 냈다고 한다. 화를 내자 맥퀸이 삐져서 감독하고 말을 안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싶다가 제작자의 중재로 미군기지 극장에서 일주일 동안 찍은 러시필름을 보러 같이 갔고, 그래서 감정을 풀었다고 한다.

로버트 와이즈에 대해 말씀 드리면 대개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많이 기억된다. 이분은 굉장한 작가적 야심이 있었다. 그래서 세속적 명예와는 별개로 자신의 커리어에 불만이 많았다. 원래 공부하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서 할리우드에 가서 편집실 심부름을 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퍼스트가 아파서 와이즈를 시켰는데 잘해서 조수에서 금방 편집기사가 된다. 그래서 편집한 게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이란 작품이다. 그 이후에 <위대한 앰버슨 가> 등을 편집하는데 잘 아시는 대로 스튜디오와의 갈등 때문에 고충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감독이 된 계기가, 영화의 편집을 맡았는데 그 영화의 감독이 해고당해서 와이즈가 하게 되었다. 자기 의지대로 감독이 된 사람이 아니라 일 잘해서 감독이 된 케이스다. 데이비드 린과 비슷하게 편집기사에서 감독으로 성공한 사람인데 이 감독의 취향은 어떤 건지 모르겠다. 자기 작가적인 세계가 있었던 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주문한 영화만 찍은 감독이라서 그렇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엄청난 주류 감독이 되었고 <사운드 오브 뮤직>은 윌리엄 와일러가 찍다가 해고당한 상태에서, 뮤지컬장면만 남겨놓고 중간에 추가로 찍어서 대박이 났다. 그 이후 자신이 욕심을 내어 찍고 싶은 영화를 찍었는데 그게 <산 파블로>다. 그에게는 이 영화가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같은 영화다. 엄청나게 진지하고 감동이 있는 영화. 자기가 정말 찍고 싶은 영화를 찍은 거다. 그러나 아쉽게도 반응이 열광적이지 않아서 크게 실망했다. 감독은 자기 스스로 이 영화를 대표작으로 쳤다. 역사적으로 이 영화를 크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60년대 이후, 뉴 아메리칸 시네마 시대에 웨스턴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영화들이 베트남 전에 대한 메타포를 가진 영화가 많았는데, 그 중에 가장 선구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면에서 과소평가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닥터 지바고>처럼 방향을 잡아서 거대한 격변에 휘말린 남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파워 넘치는 클래식이 되었을 텐데, 너무 많은 걸 보여줘서 대중성이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가치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식으로 많은 레이어가 있는 영화를 찍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관객들도 잘 따라오는 시대가 있었다.


관객1: '산 파블로'가 '샌드 페블스' 인데 혹시 특별한 뜻이 있는지 궁금하다. 영화가 당시 베트남 전에 대한 은유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보는 내내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인의 시각이 불편했다. 감독이 베트남전과 미국에 대해서 느끼는 시각이나 입장이 뭐였을지 애매해 보인다.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영진: '산 파블로'는 스페인전쟁부터 있던 배라서 그런 것 같다. 두 번째 말씀하신 것은 제3세계의 우리가 당면하는 문제다. 최근에 나온 <007 어너더 데이>를 보면 느낄 수 있다. 북한 애들이 저렇지 않은데 왜 저렇게 그려지고 있나? 그런 것처럼 이 영화에도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많이 왜곡 되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물론 기분은 나쁘다. 시각이 정형화 되어있다. 초첸 같은 캐릭터들을 보면 인간처럼 묘사 되지 않는다. 그게 미국이 보는 한계다. 어쩔 수 없는 부분 인 것 같다.

관객2: 어려서 맥퀸을 좋아해서 맥퀸 영화를 많이 봤다. 이 영화 이후에 73년 <빠삐용>을 찍고 80년대 <헌터>에 출연하고 죽었다. <빠삐용>과 <헌터> 사이에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그 기간에 영화 출연 했는지 궁금하다.
김영진: 이분은 영화를 찍는 걸 그렇게 즐거워하진 않았던 것 같다. 카 레이싱을 더 좋아하여 이에 열중했다. 몸매도 <타워링> 이후로 통통하게 바뀌어서 대중에게 노출이 되지 않았다. 영화복귀에 대해서 많은 제의가 있었는데 검토만 하면서 미루다가, 병에 걸린 상태에서 <헌터>를 찍은 거다. 맥퀸은 나 아닌 자기로 산다는 것에 혐오감이 있었다고 한다. 배우라는 직업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던 거다. <산 파블로>에서 홀맨이 자신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에 발가벗겨진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힘들었다고 한다.

(정리 : 정태형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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