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과 암컷의 관계, 그 풀 수 없는 삶의 비밀

 

수부는 음화(淫畵)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내다. 그는 미망인 하루의 집에 하숙 들어 살며 그녀와 애인 사이로 지낸다. 하루의 아들 코이치는 엄마 품에 안겨 수부에게 돈을 뜯어내려 한다. 딸 케이코는 수부의 음탕한 시선을 거절하지 않는다. 이마무라 쇼헤이를 잘 아는 관객이라면 예상하겠지만, 사실상 가족처럼 살아가는 이 네 사람 사이에 어떤 일정한 질서는 없다. 그가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을 거쳤으나, 사부의 정연한 세계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그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 만의 길을 찾아 떠났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세계는 어지럽다. 인간의 욕정 때문이다. 그 욕정이 오즈의 세계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마무라의 세계에서는 종종 자연적 상태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잦은 충돌을 빚는다. 수부, 하루, 코이치, 케이코, 네 사람의 욕정이 일으키는 작용과 반작용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끝내 부수어버린다.

“그 누구도 수컷과 암컷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조수를 앞에 두고 수부는 말한다. <인류학 입문>에서 탐구의 대상은 수컷이나 암컷으로서의 인간이다. 수컷과 암컷 외의 명명법은 허울에 불과하다. 특히,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처럼 가족적 위계 내에 자리 잡고 있는 호칭은 제대로 정박하지 못하고 늘 불안하게 떠돈다. 딸이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남동생이 아들이 되기도 하며, 여동생이 아내가 되기도 한다. 이마무라의 현미경에 포착된 세계에서 가족이라는 기계는 작동을 멈추고 인간들 사이에는 욕정의 난반사가 일어난다. 그렇게 성과 욕망은 모든 문명적 조리에 선행하고, 포르노그래피는 인간에 관한 학문이 될 수 있다.

들여다보다. 그것은 이마무라 식 인류학의 중첩적 구조를 특징짓는 행위다. 수부가 만든 포르노그래피는 동시에 수부에 관한 포르노그래피다. 하루가 죽은 남편의 환생으로 여기며 매일 들여다보는 잉어도 동시에 매일 하루를 지켜보고 있다. 렌즈의 안쪽과 바깥쪽이 뒤바뀌면서, 삶과 영화적 기록의 경계도 얇아진다. 이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부에게 제작비를 대려는 의사 양반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 남자의 욕망은 영화 속으로 흘러들고, 영화 속 사태는 남자에게로 전이된다. 인물들은 주체와 대상의 자리를 끊임없이 헤맨다. 다만 그 과정에서 더욱 혹독하게 시달리며 그 과정을 더욱 씩씩하게 견뎌내는 쪽은 여자들이다. 그들은 남편 혹은 아버지 자리에 대신 앉게 된 남자를 그 자리에 붙들어 놓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생명체로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질서가 기능한다면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바로 그런 동물적 질서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부는 하루를 닮은 인형과 함께 태평양 바다로 흘러든다. 그는 그녀에게 털을 심어주며 아파도 조금만 참으라고 말하지만, 하나의 고통이 끝나면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될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이라고 말한다. 섹스를, 고통을, 살아있음의 증거로 받아들이며 견뎌나가는 것.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본들 명쾌하게 이해하거나 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 욕정에 젖은 인간이 삶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일 뿐이라고, 누군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태평양 바다가 경쾌하고도 무심하게 일렁이며 이쪽을 내다보고 있다.

 

글/ 이후경(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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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영화가 있기 때문에, 전진

 

1962년 5월 12일 밤, 니시노미야 항구에서 한 사내가 몰래 배에 오른다. 분명한 목적 없이는 출국이 금지되었던 시기다. 그렇다면 남자는 몰래 어딘가로 도피하려는 중일까. 아니면 비밀리에 어떤 임무를 수행 중일까. 어느 쪽도 아니다. 남자는 혼자 힘으로 태평양을 건너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목표가 아주 절대적이어서, 이 영화에 충분한 동력을 제공한다. 짐작하겠지만 거기에 대단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남자가 배에 오르기까지 거쳐 온 시간을 되새김질한 것들일 따름이다. 심지어 이야기는 때때로 한 자리를 맴맴 돌고 있는 듯하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망망대해에 떠 있는 남자의 배처럼 말이다. 모터가 달려있지 않은 배의 운명은 오직 바람의 주관이다. 바람이 그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줄까.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 속에서 남자는 샌프란시스코 해안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

2008년에 타계한 이치가와 곤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일관성과 거리가 멀다. 오즈 야스지로나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앞 세대 거장들과 비교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사회적 논평이 짙은 드라마, 밝고 경쾌한 장르물, 인간의 욕망에 천착한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공존한다. 그들을 관통하는 공약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나홀로 태평양>도 그의 다른 영화들과 어떤 방식으로 묶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보트 안에서 홀로 세 달을 버텨내는 남자의 고독을 이미지와 사운드의 배치를 통해 설득시키고 남자의 눈앞에 놓인 자연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는 능력을 보면, 그가 스스로를 화가로 생각했던 완벽주의자였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는 있다.

남자의 항해에 대한 몰두는 감독의 영화에 대한 몰두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남자는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듯 출항을 준비한다. 배의 설계도를 찾고, 그 배를 완벽하게 지어줄 기술자를 섭외하고, 관계된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고, 항해에 필요한 물건들을 빠짐없이 챙긴다. 실제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숙지하고 있는 이라면 그것이 집단적 노동의 산물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이 영화에서 그 과정은 개인적 고독의 산물로 이해된다. 감독이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적지 않다. 그 때 감독은 매번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야할 것이다. 하지만 남자에게 태평양이 거기에 있듯, 감독에게도 영화라는 ‘목적지’가 거기에 있기에 그는 계속 전진한다. 그 불안하지만 우직한 운동성이 이 영화에도 있다. 그리고 그 점이 이 영화를 극히 단순하지만 힘 있게 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남자는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다. 그는 태평양을 횡단한 첫 일본인이었기에 엄청난 환호를 받는다. 하지만 그에게 주변의 관심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목적지를 통과했고, 그 사실이 제일 중요하다. 그제야 그는 피곤을 느낄 수 있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도 받지 못할 만큼 잠에 빠진 그가 침대에 코를 파묻으면서 영화는 끝난다. 극심한 노동 끝에 허락된 평온의 시간. 그 간명한 결말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체험케 하는 작품이다.

 

글/ 이후경(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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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족 전통의 계승과 극복

 

 

 

<치사한 놈>의 감독인 구라하라 고레요시는 한국에는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지만 1957년에 감독으로 데뷔한 후 90년대까지 3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며 오랜 기간에 걸쳐 일본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1927년생으로 같은 세대의 감독 중에서는 드물게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쇼치쿠에 입사했으나 1954년에 닛카츠로 소속을 옮겨 1967년까지 닛카츠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태양족 영화’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린 나카히라 코우 감독의 <미친 과실>(1956)에서 조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그 후로는 젊은 감수성의 톡톡 튀는 영화에서 블록버스터까지 연출하며 폭넓은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특히 1983년에 만든 <남극 이야기>는 다음 해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으며,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가 개봉하기 전까지 일본최고흥행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치사한 놈>은 구라하라 고레요시가 닛카츠에서 한창 활발하게 활동을 펼친 시기에 만든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그가 영화를 통해 추구한 것이 무엇인지 잘 나타난 영화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젊어 보이는 세련된 스타일이다. 주인공인 다이사쿠와 노리코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과 그 매니저답게 세련된 최신 의상을 입고 다니며, 다이사쿠가 자주 찾는 클럽이나 그의 일터인 방송국 무대 역시 화려함을 자랑한다. 여기에 경쾌한 재즈음악과 광각렌즈까지 동원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워킹, 예고 없이 휙휙 넘어가는 편집까지 더하면 이 감독의 장기가 무엇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약간의 과장을 동반한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 스타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히 당시 젊은 세대를 위해 만든 오락 영화로만 보기에는 아까운 면이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태양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번에 상영하는 스즈키 세이준의 청춘 영화에도 잘 드러나지만 당시 일본의 전전 세대와 전후 세대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파시즘과 전쟁을 통과한 기성세대들의 눈에 전후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부를 바탕으로 놀기만 하는 못마땅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젊은이들은 그런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미국에서 수혈 받은 신식문화를 바탕으로 <이유 없는 반항> 속 제임스 딘처럼 스피드를 즐겼으며 전자 음악과 록에 맞춰 춤을 췄다. 그리고 이때 때맞춰 나와 젊은이들의 큰 지지를 받은 이시하라 신타로의 소설 『태양의 계절』의 제목을 따서 당시의 젊은이들은 ‘태양족’이란 이름을 얻었다. 또한 이시하라 신타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친 과실>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닛카츠를 필두로 ‘태양족 영화’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당시에 만들어진 태양족 영화들은 저마다 다양한 특징이 있었지만 그 핵심에 자리 잡은 것은 젊은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과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자신들을 속박하는 장애물로 여겼다. 이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반항이었지만 그 반항은 기성질서를 전복하는 것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태양족 영화 속 젊은이들은 순간의 젊음을 만끽했으며, 기성세대에 무조건적인 증오를 보였으며,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전망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젊은 육체를 스크린 가득 뽐내면서도 자주 비극적인 결말을 맞곤 했다.

 

그런 맥락에서 <치사한 놈>의 주인공들은 50년대의 태양족 젊은이들이 몸만 성장한 채 사회에 정착한 인물들처럼 보인다. 다이사쿠는 화려한 생활을 즐기면서도 빡빡한 일상에 지쳐 피곤해하고 어떤 일에도 쉽게 흥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다이사쿠와 노리코 커플은 737일이나 만났지만 섹스도 하지 않고 키스도 하지 않는다. 그 둘 중 하나라도 선을 넘을 경우 자신들의 ‘순수한 사랑’이 변질되고 말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명분은 거창하지만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스스로의 젊음에 족쇄를 채우고 거세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대신 강박적으로 자신들이 함께 한 날짜를 기록하고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반복적인 하루를 보낼 뿐이다. 60년대의 태양족 청년들은 이렇게 최소한의 저항마저 잊은 채 외양의 화려함만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명백히 당시 세대에 대한 감독의 논평으로 읽힌다. <미친 과실>의 조감독으로 참여하며 젊은 세대의 억눌린 욕망을 파괴적으로 분출시켰던 장본인 중 한 명이 다시 영화를 통해 어떤 목표도 없이 그저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는 태양족 세대를 비판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다이사쿠는 순간의 충동을 좇아 낡은 지프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노리코 역시 그를 붙잡기 위해 최신식 재규어를 타고 그의 뒤를 좇는다. 그리고 이 사고 많은 긴 여행 끝에 놓인 것은 묻어뒀던 자신들의 욕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스스로 채운 족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이 뒤에 유의미한 삶의 목표를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처음으로 생기를 찾은 눈동자를 보여주며 방송국의 카메라를 뒤로한 채 하늘의 태양을 바라본다. 이 결말은 너무나 직접적인 감독의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메시지가 가진 무게는 어느 영화보다 묵직하게 다가온다. 젊음은 그대로 간직한 채, 이번에는 제대로 박차고 일어서라는 것이다.

 

글/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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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욕망> 상영 후 유양근 박사와의 시네토크 지상중계

 

지난 10일, 이마무라 쇼헤이의 <끝없는 욕망> 상영이 끝난 후 유양근 박사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스즈키 세이준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번 닛카츠 100주년 특별전 가운데에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특별한 자리였다. 50년대 전후 신세대 일본 감독들의 특징과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세계의 디테일을 짚어보던 현장을 전한다.

 

 

유양근(니혼대학 예술학 박사): 이번에 함께 상영한 <인류학 입문>을 보신 분들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대략 어떤 유형의 영화를 찍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에 이르기까지 사실 이마무라는 어느 정도 일관된 작품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보신 <끝없는 욕망> 안에 그런 공통점들이 상당부분 드러나 있다.

 

50년대 중후반은 일본에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났고, ‘전후는 끝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전쟁의 아픔이나 현실적인 문제에서 회복되었다는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와 더불어 전장을 경험하지 않은 신세대들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나라를 망가뜨린 기성세대가 아무런 반성도 없이 이전에 하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분노한 상태였다. 그 분노에는 이때까지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가치에 대한 부정과 미국식 민주주의를 따라가자는 여론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이 시기에 등장한 신세대 감독들의 영화에서도 나타났다. 닛카츠는 전쟁 전에도 이미 있었지만 전쟁이 활발해지면서 국책으로 다른 회사와 합병되어 없어졌었다. 그런데 50년대 후반에 제작 부분이 회생되어 일종의 신생회사가 되었다. 당시 일본영화는 도제 시스템으로 감독이 되기까지는 조감독 5, 6년, 그 전 견습생을 포함해서 총 15년, 길게는 20년이 걸렸다. 그러나 새로 생긴 닛카츠는 신인 감독들을 등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마무라도 여기에 속한다. 예전의 룰에 따르면 감독이 되기 힘들었던 젊은 세대가 감독이 될 수 있는 세태가 생긴 것이다. 이 세대는 또한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전 세대인 오즈 야스지로나 미조구치 겐지, 나루세 미키오 등의 거장들이 가지고 있는 학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세대의 감독들은 영화사에 들어가서 감독이 하는 일들을 보고 그걸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굉장히 넓은, 대학교육을 받은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다 보니 나타나는 캐릭터들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 또한 일본영화에서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인 ‘템포’도 달라졌다. 커트 수를 떠나서 스토리의 전개 방법이나 캐릭터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템포다. 이전까지는 상당히 느리고 정보를 많이 주는 방식이었다면 이들은 스토리텔링을 빠르게 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런 영화가 결국 젊은 세대에게 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끝없는 욕망>은 오프닝부터 굉장히 이색적이다. 이마무라는 평이한 앵글을 써오던 이전세대의 감독들과 달리 특이한 앵글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일종의 분할화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에 있는 부분과 아래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는 합성과 세트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그는 지속적으로 부감에 가까운 각도를 사용한다. 사람들 머리 위에서 상황을 한 번에 잡는 앵글이다. <붉은 살의>나 <돼지와 군함>에서도 이런 샷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일종의 모험심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인간세상 사는 것들이 다 똑같은 것 아니냐’ 라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조명 역시 독특하다. <도둑맞은 욕정>이나 <끝없는 욕망>은 사실 일종의 코미디이다. 이런 영향을 준 사람은 그와 함께 많은 작업을 했던 가와시마 유조라는 감독인데, 그 감독의 작품들이 소시민들의 삶을 다룬 가벼운 희극이었다. 거기에 비해 이마무라는 자신의 작품을 ‘중희극’, 무거운 희극이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희극임에도 불구하고 히치콕의 <싸이코>에서 보일법한 흔들리는 조명들을 쓰고 있다. 이는 장르를 떠나 상황에 맞게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그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캐릭터다. 이전의 영화들은 악역과 선한 역이 분명한 차이를 보였고 끝내는 선이 악을 이기는 이분법적 스토리였다. 그러나 이마무라의 영화에서는 그다지 착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악인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고 그 둘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마무라는 사람 사는 것은 다 양면성을 지니고 있고, 그런 인간을 사랑하며, 그 캐릭터를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중심적 모티프 중 또 하나가 ‘구멍 파기’다. <신들의 깊은 욕망>에서는 남근 모양의 바위를 파서 무너뜨리는 형벌을 받는 남자가 나온다. 50년대 중후반에 나온 영화 제목들 중에 욕망이나 욕정이라는 단어로 원초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경우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전까지의 영화의 가치관들이 계속 억압해 왔던 것들이 바로 그 ‘욕’이다. 이마무라는 특히 <돼지와 군함>에서부터 그 억압에 반발하며 성과 욕망에 대해 적나라하게 표현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세계』라는 책에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특징 6가지를 꼽았는데, 그 중 세 가지가 하층계급에 대한 것이다. 그는 자신보다 1년 늦게 데뷔한 동시대 감독 오시마 나기사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말에 “그가 사무라이라면 나는 농민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둘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오시마가 사회의 부조리를 정치적으로, 저널적으로 이야기했다면 이마무라는 기표에 나타나는 움직임에 주목하기 보다는 정말 ‘구멍을 파서’ 그 아래를 본 사람이다. 오시마와 이마무라 둘 다 나름의 일관적인 길을 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구에 오시마가 먼저 눈에 띈 것은 천황이나 전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가지는 선정성, 선명성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밑으로 파고들어간다’는 면에서, 일본 영화를 지속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은 이마무라와 이치가와 곤에게 주목하고 인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보신 <끝없는 욕망>이라는 작품 전체를, 이 우에노의 작은 마을을 일본이라고 생각해보자는 것이 제 아이디어다. 이것을 일본이라고 상정했을 때, 이마무라는 변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이 뭘까. 전쟁 전에는 천황에 따르고 군국주의를 숭배하다가 전쟁이 끝나자마자 미국식 자본주의에 달려드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이마무라가 생각하는 일본적인 것이 아닌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를 생각했을 때 그 답은 인간이다. 욕망을 가진 인간. 즉 욕망이라는 것이 이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기제임은 분명한데, 욕망의 분출을 억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그것을 억압하는 것은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오시마 나기사가 그것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했다면 이마무라쇼헤이는 드러내지 않고 하층민의 삶을 통해 이야기 한 것 같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일본영화사에서도 전무후무한 감독이며, 전무후무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 하는데, 이런 지점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와도 통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역시 이런 보편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관객1: 영화를 보면서 김기영의 <하녀>나 봉준호의 <괴물>이 떠올랐는데 특히 괴물은 플롯과 스타일이 거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늘 본 영화를 포함해서, 이 영화들이 하층계급들의 욕망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긍정한다기보다는 약간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층계급을 바라보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무조건 긍정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어떤 냉소인 것 같기도 하고. 봉준호의 경우 하층계급을 정말 긍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유양근: 김기영의 경우 물론 하층민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당시 주류로 형성되어가고 있었던 중산계급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파헤치기 위해 하층민들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하층민들을 그리려고 했던 것들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봉준호의 경우 <괴물> 속에서 송강호 일가족이 겪고 있는 아픔이나 삶의 대척점에는 정권이 있고, 가진 자들이 있고, 언론이 있다. 일종의 대비효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하층민들의 아픔을 그렸다고 극단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마무라는 반대항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마무라는 하층민들 그 자체를 다룸으로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오시마는 오히려 반대편에 있는 것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한 사람이다. 사실 이마무라는 의사의 아들로 나름대로 유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초반부터 하층민들의 삶을 발굴하고 이야기했다. 그들이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자신의 영화 속에 나오는 어떤 캐릭터든 모두 사랑한다는 점이다. 인간이라는 속성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같다. 언급하신 감독들과는 결론적으로 대척점을 가지고 있느냐, 반대편의 것들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정리: 박예하(관객 에디터) | 사진: 황초희(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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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 쇼헤이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영화는 광기의 여행’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런 광기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신들의 깊은 욕망>(1968)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의 혼신이 담긴 괴작이자 최고의 작품이며 전환점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는 일본 열도 남단의 오키나와 근처의 가공의 섬. 일본이 가진 낡은 습속이 이곳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낡은 샤머니즘이 여전히 있어서 무녀가 몰아지경의 상태에서 신의 소리를 들어 그것을 사람들에게 고지하면 주민들은 그 말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이런 외딴 곳에도 산업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섬에는 비행장을 만들고 관광객을 들이는 계획이 진행된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위대함은 본토에서 떨어진 작은 섬마을 공동체의 성스러운 의식들을 지극히 느리게, 하지만 숨 막힐 정도로 공포스럽게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 특히나 영화 말미에 나오는 장엄한 제의적 죽음의 장면이 압도적이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이 이곳 주민들이 ‘호모 루덴스’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비롯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모던한 일본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당시 이마무라 쇼헤이가 이상적인 일본 민주주의를 하나의 환영에 불과한 것으로 바라봤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들이야말로 더 현실적인 사람들이었고 모던한 일본을 비판할 수 있는 원형의 사람들이었다. 그는 마을의 정신적인 연대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유지되는지, 그러기 위해서 낡은 신앙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그리고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배제하고 말살하는지 보여준다. 이런 몰살의 의식을 고려하면 영화에 나오는 상어와 돼지의 조우는 꽤 우화적인 설정이라 할 수 있다. 배에 실린 돼지들의 농담처럼 평안한 모습과 이어지는 상어의 습격은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지극히 무감한 카메라의 응시로 표현된다. 아주 취약한 죽음이 벌어지는 것과 이에 대한 카메라의 무감한 응시는 희생자를 구제할 길은 없다는 것과 그들의 운명을 상기시킨다. 돼지가 가라앉고 푸른 배경 위에 붉은 오점이 남는다. 앙트안 드 베크가 지적하듯이 이 시퀀스에는 인간의 감정도, 상황의 스펙터클도 없다. 카메라는 이 고요한 응시를 영화 내내 유지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이마무라 쇼헤이의 위대함이다. 인간은 여기서 피를 흘리는 작은 돼지이다.

<신들의 깊은 욕망>은 일본영화가 이제 막 변혁의 시기로 치닫던 때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1968년은 여전히 영화의 혁명을 믿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오시마 나기사는 쇼치쿠를 뛰쳐나가 독립제작사인 ‘창조사’에서 <일본 춘가고>, <교사형>, <돌아온 주정뱅이>등을 만들었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돼지와 군함>, <일본 곤충기>, <붉은 살의>, <인류학 입문>을 거쳐 <신들의 깊은 욕망>에 이르러서는 닛카츠를 떠나야만 했다. 영화가 사회와 대치하고 국가라는 환상과 대항하던 때였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 영화 이후에 근 십년간 영화작업을 제대로 못했지만 촬영소의 붕괴와 영화사의 몰락 이후 갈 곳 없어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영화학교를 개설하기도 했다. 1975년에 개관한 ‘요코하마 방송영화 전문학원’(이 학교는 1986년에 요코하마에서 가와사키로 이전해 일본영화학교로 개칭했고 2011년 4월, 일본영화대학의 모체가 되었다)은 현역 감독, 극작가, 카메라맨, 녹음기사 등이 실제로 영화를 만들며 일의 방식을 배우는 학교였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광기의 여행’은 일본영화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글/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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