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다] '소름'의 윤종찬 감독

9월의 ‘작가를 만나다’는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그리고 있는 영화 <소름>의 개봉 10주년을 맞아 10주년 기념상영을 하고, 상영 후에는 이 작품을 연출한 윤종찬 감독과 함께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첫 데뷔작이었던 <소름>의 제작기부터 최근의 근황까지 들려준 윤종찬 감독과의 시네토크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소름>은 10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이면서 감독님의 첫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 전에는 외국에서 공부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데뷔작으로 <소름>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윤종찬(영화감독): 외국에서 공부하던 중에 당시 이 영화의 모티브를 구성했었고 먼저 단편영화로 외국 배우들과 함께 영어 버전으로 <메멘토>를 찍게 되었다. 당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아내를 잃게 되었는데, 지내던 뉴욕의 아파트에서 새벽까지 잠이 안와서 눈 내리는 것을 보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순간 여기에 있는 것이 과연 운명일까 아니면 아무런 의미 없이,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세상에 그저 내던져진 걸까 하는. 그날 밤 새벽부터 그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소름>의 주인공이 아파트에 들어오게 된 게 운명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는데 그 모티브가 가장 컸던 것 같다. 당시에 삼풍백화점 사고가 있기 전에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다. 그날 아침에 아내와 남의 일처럼 뉴스를 봤다. ‘저 사람들 정말 운도 없다. 희박한 확률을 뚫고 그 시간 그 곳을 지나다 사건을 겪다니’하며 얘길 나눴는데 그리고 몇 달 후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서 ‘삶이란 것이 굉장히 불안정하구나’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영화 작업에 있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뀔 정도로 충격이 컸었다.

김성욱: ‘가족의 파괴’라는 점이 영화의 큰 모티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종찬: 그런 부분도 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예측불가능하고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인 것 같다. 우리 마음의 한 부분은 때때로 사람을 믿지 못하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그런 나쁜 생각을 한번 쯤 하게 된다. 그런 분노와 어두운 면이 마음 한구석에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굉장히 나약하다. 개인적으로 <소름>에서 쓸 때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나와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소름>의 아파트와 결코 멀리 살고 있지 않다는 것,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남의 얘기처럼 했지만 사실 나도 그 안에 있었던 것처럼 언제든지 재앙이 올 수 있다는 것, 혹은 나도 어떤 사람을 오해하거나 실수로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비정상적인 인물들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이 아닌가 생각했다.

김성욱:
영현(김명민)의 캐릭터가 굉장히 특이하다. 영현은 갑자기 이소룡 흉내를 내곤 하는데, 그러한 설정은 어떻게 구상하신건지?
윤종찬: 영현이란 인물은 이소룡과 동시대성을 갖지 않는다. 인물에게 별 의미 없는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지만 자기도, 다른 사람도 모른다는 것, 달리 말해, 우리가 집착하는 것이 때로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성욱: 선영(장진영)과 영현의 관계는 여러 층위에서 만나면서 조응관계를 이룬다. 선영의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하신건가?
윤종찬: 선영의 캐릭터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구상했다. 첫 번째는 팜므파탈적인 이미지와 용현의 비극성과 대칭적으로 구성해보고 싶었던 부분이 있고, 두 번째는 지극히 영화적인 면에서 그 전까지 한국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의 여성 캐릭터들에 가장 불만이었다. 남자들의 상상 속에 나온 것 같고, 여성이 동의할 수 없는 여성 캐릭터가 많았다. 선영은 적어도 살아있는 느낌을 최대한 주려고 노력 했다. 그래서 가꾸어지고 조작된 이미지가 아니라, 금방 어디선가 튀어나온 듯 꿈틀거리는 캐릭터다.

김성욱: 영화에서 소설가는 아파트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실에 근거해서 픽션을 구성해나가는데, 중후반에는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서 설명적인 부분을 맡게 된다. 그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계속해서 얘기하고, 그것이 나중에는 현실화되는 과정이 영화에서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윤종찬: 영화 속의 소설가는 전형적인 소설가로서 다룬 것은 아니고, 내레이터나 고대희랍연극에서의 코러스,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선지자적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난해하다보니 거기에 약간의 설명을 부여하는 역할이었다.

김성욱: 택시에서의 장면은 굉장히 영화 전체의 톤과 앞으로의 부분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윤종찬: 사실 <소름>이라는 영화가 공간이 굉장히 한정된 영화다. 아파트나 방, 편의점, 택시회사 정도가 중요한 공간이다. 택시 장면을 설정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외부세계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시나리오 상에서는 야식 배달부가 아니라 폭주족들이 등장하는데 당시 제작 여건 때문에 설정을 바꾸게 되었다. 여러분들도 경험을 했겠지만 우리의 몸 속에는 굉장히 나쁜 피가 흐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상황을 직면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흥분하게 되어서, 뭔가 확 배설되었을 때 소위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게 되는데,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잔인한 면이 있는 것이다. 때때로 광적이기도 한 그런 면을 다들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었다.

관객1:
영현은 고아로 자라면서 살아남기 위해 본인 앞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식으로 인생을 살아왔지만 선영을 만나 사랑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캐릭터가 상반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윤종찬: 누군가를 처음 만나 사랑했고, 온통 그 사람만 생각하고, 수없는 맹세를 하고, 헤어졌다. 그랬을 때 처음의 감정을 가지고 있기란 굉장히 힘들다. 사랑이 끝났을 때 그 감정은 증오로 바뀌어 있거나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영현이 선영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모성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가 선영을 죽이게 되는 것은 오해에서 온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그만큼 그의 감정이 절실하고 컸기 때문에, 과거의 여자처럼 자신을 이용하기만하고 떠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공포가 된다. 결국 자신의 목을 따뜻하게 감싸줬던 그녀의 목도리로 그녀의 목을 죽이는 끔찍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랑이라는 비유로 표현을 한 것이지만, 우리가 겪는 불행의 상당 부분이 그런 오해나 증오로부터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 우리를 나약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일까, 그런 생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설정하게 되었다.

관객2: 영화의 배경이 된 아파트도 또 하나의 주인공인 것 같다. 어떻게 장소를 선택하셨는지, 촬영할 때는 어떠셨는지 궁금하다.
윤종찬: 시나리오를 쓸 때 아파트 복도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생각했었다. 그래서 복도 씬이 많다. 영화의 배경이 된 금호아파트는 서대문의 경기대학교 뒤편에 있던 것인데,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빈민촌을 밀어내고 70년대에 과시용으로 지은 아파트였다. 구조 자체가 특이하고 지을 당시엔 고급 아파트였지만, 영화를 찍기 위해 갔을 때는 재건축 직전의 재개발 아파트였다. 고생을 많이 했다. 주민들은 생존권 때문에 투쟁을 하고 있던 상황이어서, 그곳에서 영화를 찍기 위해선 그 분들을 설득해야했고, 촬영할 때는 복도가 좁고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스태프들이 고생했다.

관객3: <소름>을 보기 전에는 공포영화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다른 느낌이었다. 영화를 만드실 때 공포영화로서 새로운 미학이나 경향을 염두하고 만드셨는지, 아니면 개봉 당시 마케팅을 위해서 공포라는 부분이 부각되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윤종찬: 부모를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존경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삶의 의욕이 없어지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어느 날 귀신을 봤다고 해서 그것 하나로 인생이 바뀌진 않는다. 이 영화에서 귀신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고, 그 원인에 대해 얘기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겠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얘기를 보여주겠다는 욕심으로 만들지 않았다. 앞으로 더 영화를 만들지 않게 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찍겠다고 생각 했다.


관객4: 영화의 사운드를 굉장히 공들여 작업하신 것 같다. 선영이 영현의 신발 끈을 묶을 때 비행기 소리가 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윤종찬: <소름>이 다루는 것은 부조리함이다. 세상은 불합리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부조리하다. 부조리한 것은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소름>을 만들면서 가장 현실적인 화면에 가장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찍어보고 싶었다. 영화를 공부하면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영화적 관성들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맘껏 찍었던 영화이다. 신발 끈을 묶을 때 나는 비행기 소리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굉장히 쉬운 장면인데 사운드 때문에 NG가 계속 났었다. 근처에 비행장이 있어서 계속 비행기가 지나가니까 사운드 맨은 참지 못했던 것이다. 감독으로서의 생각은 그 장면에서 비행기 소리가 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실은 멀리 들리는 소리인데, 믹싱 작업에서 아예 가장 좋은 비행기 소리를 넣은 것이다. 이런 부류의 영화를 볼 때 장면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며 보게 되는데, 사실 매 장면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의미를 생각하며 담을 수는 없다. 때때로는 관객들에게 공간을 주고 싶었다.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방금 질문하셨듯이 그런 식으로 질문을 떠올리게 되는 공간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객5: 영화에서 영현은 사람들을 죽이고 매장하는 일을 반복하는데, 그런 설정에 대해 궁금하다.
윤종찬: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사실 많은 영화에서 다뤄지는 부분이다. 사실 액션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지만 우리에게 그 사람들의 죽음이 전달되진 않는다. 한번이라도 영화를 보면서 죽는다는 것, 죽인다는 것에 대해 끔찍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우리를 소름 속에 몰아갈 수 있을 테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이 영화가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작가를 만나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

8월의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2011 시네바캉스 서울’ 시즌에 맞춰 특별행사로 멜로의 제왕 허진호 감독과 함께 했다. 일찌감치 매진사례를 기록, 객석을 꽉 채운 가운데 그의 초기작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연이어 상영되고 상영 후에는 영화를 만든 허진호 감독과 <봄날은 간다>의 주연배우인 유지태씨가 함께 자리하여 관객과의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허남웅 프로그래머의 진행 하에 사랑과 시간, 기억에 대한 열띤 이야기들이 오가며 후끈 달아올랐던 그 현장을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방금 보신 영화 <봄날은 간다>는 올해로 개봉 10주년을 맞았다. 오늘의 행사를 위해 중국에서 어제 오신 허진호 감독과 주연배우인 유지태씨를 모셨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허진호(영화감독): 늦게 와서 마지막 장면만 봤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저에게 중요한 영화인데 이렇게 많은 분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유지태(배우): 제가 시네마테크를 종종 오는데, 이렇게 많은 관객이 온 걸 처음 봤다. 역시 스타감독님이 오니 그런 것 같다. 제 인생의 영화를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한다는 게 기쁘고 10년 전 영화를 같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허남웅:
<봄날은 간다>는 사운드 엔지니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하고 이야기를 구상한 걸로 안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생각하셨는지?
허진호: 요즘은 이렇게 영화를 만들지 않는데 예전엔 단편적인 생각들이나 어떤 정서들을 쌓아가면서 이야기를 만든 것 같다. 시작은 노래에서 했다. 어머니가 자주 부르시던 18번이다. 그 노래가 가지는 어떤 멜로디와 가사가 저에게 정서적인 느낌으로 왔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걸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다가 우연히 KBS ‘직업의 세계’에서 사운드 엔지니어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

허남웅: 여기서 나오는 상우는 순수하고 착한 영혼인데 사랑에는 미숙한 인물이다. 그 인물을 봤을 때 어떠한 느낌에서 출연을 결심했는지?
유지태: <봄날은 간다>는 참 좋은 영화가 될 거라 생각해서 출연했다. 그 당시에는 최고의 감독님이셨기 때문에 (웃음) 아 물론 지금도 최고다. 그리고 배우로써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우를 보면 저의 모습이 영화 안에 담겨 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다시 찍는다면 다시 표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허남웅: 감독님은 유지태란 배우의 어디서 상우를 봤는지, 처음부터 염두에 두신 건지?
허진호: 처음부터는 아니다. 그 당시 배우를 먼저 생각하진 않았다. 전에 찍은 영화도 그렇고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어떤 배우랑 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원래 영화가 연상연하구조가 아니고 같은 나이의 커플이었는데, 갑자기 연상연하로 가면 어떨까 그런 걸 생각하면서 지태를 생각했다. 제 기억에 처음 만났는데 한 시간에 두 마디 했던 것 같다.

허남웅: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 배우는 감정을 드러내는데 미세한 연기를 하고 대사도 중의적인 느낌이 많은데 연기 하면서 어떠한 식으로 상우를 준비해갔는지 궁금하다.
유지태: 감독님이랑 카페에서 말없던 시간이 세 달이 되니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겠더라. 감독님의 연출스타일이 배우를 지켜보는 방식을 취한다. ‘저 사람은 뭘 가지고 있을까’ ‘저 사람은 컷을 부르지 않으면 무슨 반응을 할까?’ ‘저 사람의 실제성격은 무엇일까?’ 이런 걸 많이 탐구하신다. 그래서 때로는 컷을 안 해서 굉장히 당황하고 불쾌한 의사를 표현하는 배우들도 있었다. 그만큼 예민하고 섬세한 분이다. 그래서 호흡 맞추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그런 방식이 재미있었다.

허남웅: 유지태 배우는 대사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좋은 영화는 인상적인 대사들이 많이 있다. 영화 개봉 후에 광고에도 대사가 많이 쓰였는데 특히 기억나는 대사가 있다면?
유지태: <봄날은 간다>의 작업방식은 기존의 영화제작방식과 차이가 있었다. 기억을 수놓는 듯한 작업이다. 만든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순간, 기억 그리고 공간을 담는다. 마치 다큐멘터리 형태 같다. 그래서 제가 기억하기로는 대사들이 대체적으로 수정되고 바뀌었다. 리허설을 통해 만들어졌다. 근데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건 대본에 있던 대사다. 나머지는 리허설 하면서 감독님, PD, 스태프, 배우의 머릿속에서 나온 대사들이다.

허남웅: 이 영화가 재미있는 지점은 인물의 감정들을 사운드로 자연의 소리로 표현을 한다. 그런 아이디어는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출발에서 이미 생각을 하신 건지 아니면 헌팅을 다니면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된 건지?
허진호: 헌팅 하면서 생각했다. 파도소리를 헤어질 때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헤어질 때는 쓸쓸한 바닷가가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허남웅: 개인적으로 유지태 배우의 연기관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은수네 집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지는 장면이다. 그때 머리는 정말로 자다가 일어난 사람 같았다. 그럴 싸 한 게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느낌이 보이는데.
유지태: 감독님을 만나면서 리얼리티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배우가 얼마나 극에 빠져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머리 눌린 것은 순간 만들었다. 연기는 만드는 것 같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인생이 괴롭다. 어쨌든 영화 속의 리얼리티 그리고 배우가 얼마만큼 영화에 몰입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관객: 영화 중간에 보면 은수랑 상우가 헌팅 하다가 무덤을 보면서 은수가 저기 둘이 같이 묻히자는데 대답을 안 했다. 그 장면은 어떤 계기에서 넣으신 장면인지 미리 염두에 두고 찍은 건지 아니면 즉흥인지 궁금하다.
허진호: 그때 그 장면은 꼭 필요한 장면이라 생각했다. 죽어서도 같이 묻히는 약속.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가사에서도 약속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때 배우들의 작품해석이 달랐다. 은수랑 상우 중 누가 먼저 좋아한 건지에 대한 신경전이 있었다. 그래서 제가 둘이 정말 좋아하는 거다. 누가 먼저 좋아하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했다. 그 당시에 행복한 순간 이런 걸 생각했는데 그 대답을 왜 안 했는지는 지태씨에게 듣고 싶다.
유지태: 갑자기 당황스럽다. 신경전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런 것 보다 이제 영화를 어디까지 생각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영화 속 주인공 남녀가 사랑을 하면 진짜 사랑을 해야 하는 건가? 그래서 분위기를 조장하는 영화들도 있다. 씬을 잘 만들기 위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혼란스러웠다. 무덤 씬 같은 경우는 기억을 하는데 차 타고 가다가 차를 세워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다. 즉흥적이긴 하지만 감독님이 생각을 반복했던 그림이 있어서 헌팅 하다가 저 장면이 내가 찍고자 하는 장면이다 해서 찍은 것이다.


허남웅: 마지막으로 소감과 앞으로 계획을 듣고 이 자리를 마치겠다.
유지태: <봄날은 간다>를 여러분들과 같이 보고 이야기해서 너무 좋았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서 소설 중에 『사랑을 묻다』라는 소설이 기억난다. 사람이 싸울 수 없는 것은 자부심이라더라. 세상에는 많은 가치관도 있고 트렌드를 따르는 대중도 있는데 이렇게 영화를 고집하고 이런 작품을 만들어서 저는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허진호: <봄날은 간다>가 언제까지 기억될지 생각을 한다. 영화가 슬픈데 그런 기억들이 어떤 평온함을 주는 것 같다. 그런 기억과 평온을 주는 영화로 계속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정리|정태형(관객에디터) 사진|정은정(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작가를 만나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

‘2011 시네바캉스 서울’ 개막 첫 주인 지난 7월 30일 이른 저녁 바캉스 시즌에 맞춰 특별히 준비한 ‘작가를 만나다’가 열렸다. 이번 달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협영화로 평가받는 10년 전의 영화 <무사>를 상영하고, 상영 후에는 이 영화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과 함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작업당시 제작과정에서의 에피소드부터 영화에 대한 애정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간 소중한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담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무사>가 개봉했을 당시의 평가가 약간은 야박했다고 생각된다. 다시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 영화가 갖는 힘과 이 정도 규모에 이 정도 에너지를 갖고 있는 대중영화가 있나 의심스럽다. 많은 분들이 궁금하실 것 같은데, 애초의 4시간 30분 분량에서 주로 어떤 부분들이 빠진 건가?
김성수(영화감독): 굉장히 긴 영화를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감개무량하다. 이 영화를 만들 때 호기를 부려서 아주 긴 영화를 만들어보자 했다. ‘내 영화는 이렇게 담겨져야 해’하고 편집을 했더니 처음에는 4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나왔다. 욕심을 내서 9명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 가져가고 싶었고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었다. 몇몇 에피소드들과 전투장면들의 시퀀스 자체가 빠지고 150분가량으로 완성됐다.

김성욱: <7인의 사무라이>같기도 하고, 마지막 부분은 <와일드 번치>의 느낌도 있다. <비트>나 <태양은 없다>와 같은 전작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협업으로 진행되었던 전작들과 달리 <무사>의 구체적인 원안과 시나리오도 직접 쓰셨다.
김성수: <비트>나 <태양은 없다>는 당시 유행하던 영화들, 특히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해체되고 인물중심으로 따라가고, 젊은 인물들이 나오는 영화 스타일에 편승해서 찍은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사랑했는데, 누구나 자기 마음속의 영화는 어린 시절에 있는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의 영화들은 서부극들이다. 재밌는 건, 외국의 친구들이 <무사>를 보더니 아시아 무협영화의 외피를 두른 웨스턴영화라고 말하더라. 만들고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페킨파의 영화나 <7인의 사무라이>같은 영화들이 섞여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기억 속에 있는 영화의 원형 같은 것들을 섞어서 만들다보니 다른 작가들과 작업하는 것이 불편해서 혼자서 썼다.

김성욱: 숲에서 주진모 씨가 부상을 입고 4~5명이 매복을 하면서 공격을 하는 순간의 장면은 거의 대부분 클로즈업으로 이루어졌다. 굉장히 긴박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거기에 음악의 리듬까지 더 해진다. 숲에서의 전투의 혼란스러움, 게릴라전의 느낌이 있다. 액션씬에서의 리듬과 인물의 얼굴들, 느낌이 인상적이다.
김성수: <무사>를 찍을 때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고전적으로 찍겠다고 생각했다. 말씀하신 숲에서의 장면은 계획한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찍은 장면이다. 원래는 정글 같은 숲에서 액션을 찍고 싶었는데, 장소 헌팅이 안돼서 과수원에서 찍어야 했다. 과수원의 나무들이 일렬로 쭉 서있어서 애초에 생각했던 숲의 전투 느낌이 전혀 나질 않았다. 고민 끝에 과수원의 나무들 사이에 산에서 가져온 풀과 잡목들을 스태프들이 들게 했다. 그렇게 공간 전체를 찍는 대신 가까이서 찍으니까 숲의 느낌이 났다. 개인적으로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좋아하고, 이전 작품들에도 클로즈업이 많다. <무사>엔 그런 장면들이 별로 없는데, 그 장면에서는 클로즈업을 많이 쓰게 되었다. 그렇게 편법으로 찍었는데 그 장면에 대한 반응들이 좋더라. (웃음)

김성욱:
상당 부분 사막에서 촬영되었는데, 사막에서의 촬영은 어땠나?
김성수: <무사>를 찍은 곳은 회족자치구에 있는 사막이다. 보통 다른 영화들에서 보는 사막 장면은 좀 더 북쪽의 신장자치구의 사막인데, 실제로 가보면 굉장히 딱딱한 바닥이다. <무사>를 촬영한 곳은 관광지로 꽤 알려져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영화촬영은 하지 않는 지역이다. 모래가 굉장히 고아서 촬영하기가 어렵고 여름엔 더욱 힘들다. 하지만 사막에서 촬영하고 싶었고, 여름에 시작해서 겨울로, 계절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고집했다.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한낮에는 기온이 45도 정도이고 모래의 열반사 때문에 서있기 조차 힘들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까 사막에서의 촬영이 추억으로 남는다.

김성욱: 영화를 처음 설계할 때부터 토성에서의 액션씬을 제일 마지막에 염두에 두었나?
김성수: 그렇다. 토성씬은 <무사>에서 가장 찍고 싶었던 장면이었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바닷가에 있는 토성을 상상하며 그려둔 게 있었다. 영화의 토성은 직접 만든 것이다. 잘 만들어진 토성이 허물어져서 십여 년 정도 방치된 것을 원했는데, 해안의 암반위에 직접 토성을 만들어서 다시 부수고 거기에 불을 지르고 소금물을 입히는 작업을 반복해서 완성된 모습이 전혀 세트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잘 만들어져서 깜짝 놀랐다.

관객1: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원나라의 장수가 불리함을 무릎 쓰고 정우성씨를 보내주는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김성수: 원의 장수가 그를 보내주는 것은 일종의 남자들의 가오다. 그 전에 전쟁도중 전령이 자신들의 장수가 죽었다고 전하는 장면이 있는데, 역사상으로는 몽고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승패를 떠나 자기를 소진시켜버리겠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더 이상 승리에 연연하지 않는 느낌이 있다. 단, 공주는 명나라 사람이고 자신들의 시대에 종언을 고한 것이 명나라였기 때문에 공주만은 죽이려 했던 것이다.

관객2: 액션영화를 더 찍으실 생각은 없으신지?
김성수: 액션영화를 좋아한다. 정말 찍고 싶은 영화는 순도 100%의 액션영화이다!



김성욱: 영화가 개봉했을 때 여러 가지 악재도 있었고, 개봉 이후의 반응들에 아쉬운 부분이 있으셨을 것 같다.
김성수: 영화의 편집을 직접 하는 편이다. 편집을 하면서 굉장히 집중해서 300번 정도는 보게 되니, 사실 촬영할 때보다도 편집할 때 더 탈진상태가 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영화의 운명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그 영화를 떠나보내는 느낌이 있다. <무사>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고생을 많이 했던 영화라 이 영화를 같이 했던 사람들과 함께 다시 보고 싶다. 그 친구들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영화이다. 그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한 번 파티하듯이 보고 싶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작가를 만나다] 김태일 감독의 '오월애'


지난 6월 25일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으로 다큐멘터리 <오월애>가 상영된 후, 영화를 만든 김태일 감독과 다중지성의 정원 조정환 대표가 함께 하는 대담자리가 마련되었다. 오월의 기적 같은 열흘을 만든 보통 사람들의 힘과 공동체에 대한 긍정을 느끼고 얘기를 나누던 자리는 점점 묵직하고 열띤 분위기를 띠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오늘 작가를 만나다 시간에는 <오월애>를 만드신 김태일 감독님과 지난해 『공통도시』라는 광주에 관한 책을 다중지성의 정원 조정환 대표를 모셨다. 먼저 감독님께서 영화를 작업하게 된 과정과 오월부터 영화가 상영되어온 과정에 대해서 들려주시면 좋겠다.

김태일(다큐멘터리 감독): 전체 기획을 한 것은 그 동안 다큐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 년 반 동안이었다. 더 떨어질 것도 없었고 한계상황 속에서 무기력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가 내 모습과 주변의 삶의 모습을 진지하게 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기존의 모든 역사는 승자와 서구의 시선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그 시선이 불편했다. 우리나 제3세계의 시선이 담긴 ‘민중의 세계사 10부작’을 만들고 싶었다. 그 첫 번째로 오월 광주를 택했다. 짧은 십일 동안에는 아픔도 있지만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공동체의 모습도 있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국가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울 수 있었는지, 그 싸웠던 분들이 누구였는지 풀어보고 싶었다. 지원 받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장모님한테 이천만 원을 빌렸다. 촬영 잘하고 구성 잘하는 이들과 작업할 여건도 안 돼서 저와 함께 하고 있는 친구를 조연출 겸 구성작가로 삼았다. 십오 년 전부터 나름대로 교육을 시켜왔다. (좌중 웃음) 작업을 할 때 먼저 제가 읽었던 책을 읽어보게 했다. 강요한 것은 아니고 ‘읽어보세요 탁’ 하면서 그렇게 십 년 정도 하니까 생각하는 게 비슷해졌다. 생계 문제에 관해서 타박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환상의 콤비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서 광주 작업을 함께 하게 되었다. 여성분들에게 깊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조연출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작사 이름도 ‘상구네’인데 상구는 첫째 아들의 이름이다. 이런 가족적이고 가내수공업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에 광주에 계신 분들의 속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 년에 걸친 작업 중에 인터뷰 허락을 받기까지는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었다.

김성욱: 조정환 선생님은 <공통도시>라는 작업을 비슷한 시기에 하셨는데 <공통도시>는 어떤 작업이었고 오늘 작품을 보면서 어떤 점을 느끼셨는지?

조정환(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공통도시>는 광주 민주화항쟁을 현재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과 연결시키려는 작업이었다. 5.18은 지금의 신자유주의와 다를 바 없는 정책을 전두환 정권이 미국의 합의 아래 도입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민중의 저항이었다고 생각했다. 오늘 영화를 통해 본 열흘의 걸친 피의 시간도 그 이전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이 도입되고 부산과 마산, 사북 등지에서 갈등이 빚어지던) 시간과 결코 분리시켜서 얘기할 수 없었고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정치와 5.18 민주항쟁에 대한 위로부터의 진압을 연결시켜서 사고하지 않으면 5.18은 눈물을 흘리고 참 아픈 기억이었다고 말하면서 감상으로만 남게 되고, 기억의 문제로만 치부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책의 관심사였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오늘 영화에서 광주 항쟁과 관련하여 부각되는 인물들은 김대중 같은 정치가도 아니고 윤상원 같은 학생운동 지도부도 아니라는 점이다. 김밥을 말고 주먹밥을 배급했던 취사조를 비롯하여 운전을 통해 항쟁에 참여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 그리고 끝까지 항쟁에 참여했으나 실제로 고등학생에 불과했던 이들이다. 그런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난 삼십년 동안 광주 항쟁에 대한 기억 투쟁과 그것을 현실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투쟁 모두에서 다 배제되었던 사람들이지 않나. 이들이 영화 속에서는 주역이 되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에너지로 조명되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러한 육성들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5.18 자료집을 보면 인터뷰를 통해서 꽤 많은 부분이 만들어졌지만 공식적인 역사로 정리되는 과정에서는 누락되고 다른 관점으로 바뀌어왔다. 이게 정말로 어떤 가감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육성으로,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에게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대중적인 사건은 이 영화가 처음이라고 할 정도이다.

김성욱: 공식적인 역사에서 부각되지 않은 분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삼게 된 과정과 실제로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겪었을 어려움이 궁금하다.

김태일: 기존의 인물이나 자료를 배제하고 직접 내려가서 발로 담았다. 그 중 가장 담고 싶었던 분들이 넝마주이 분들이나 갱생원 분들이었다. 두 번째로 마지막까지 방송을 하고 주먹밥을 만드셨던 여성분들의 그때 심정이 궁금했다. 광주하면 총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지만 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밥의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나. 여성의 활동이 드러나지 않은 것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어 제 작품에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내려갔다. 그런데 넝마주이와 관련된 자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재판기록도 다 뒤졌는데 거기에도 나오지 않았다. 넝마주이들이 살았던 동네를 뒤지면서 가장 오래된 집의 초인종을 눌러 나이든 할머니의 얘기를 한 달 동안 전해 들었다. 5월 27일에 계엄군이 광주를 장악하고 28일과 29일 사이에 군인들이 중무장을 하고 넝마주이들을 어디로 끌고 갔다고 했다. 하지만 끌고 가는 장면은 봤지만 어디로 끌고 갔는지, 그 이후의 행적을 아는 분이 없었다. 정말 흔적이 없었다. 그게 가장 안타깝고 힘들었다. 또 팔십년 당시에 대부분 시민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자부심을 많이들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나자마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나에게 얘기를 들으려고 하느냐. 나는 다시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앞으로 나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도 때가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포기하는 게 맞을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시장에 계신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생활했던 공간이 대인시장의 빈 옥탑방이었는데 그때 한문순 어머니께서 리어카를 끌고 과일 행상을 하셨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던지 풀이 죽어있던 저희를 바로 나오게 만들었다. 혹시 팔십년 당시를 아시느냐고 했더니 당당하게 그 때 주먹밥을 하셨다고 했다. 그 이후에 쉽게 시장에 계신 분들과 접촉해서 인터뷰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 전에는 무진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광주 내에서는 피해 보상이 되고 나면서 여성분들 간에 항쟁에 참여했냐 안 했냐를 두고 광주 내에서 내분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근 일년을 계속 쫓아다니고 설득하고 같이 아파하고 눈물 흘리고 나서야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그런데 인터뷰를 듣고 났을 때는 이 분들이 이런 아픔을 삼십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한국 사회가 여성분과 당사자분들에 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가 생각이 들면서 죄송스러워지게 됐다. 제가 들었기 때문에 그분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고 이런 아픔을 담아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것 같다.

김성욱: 다큐멘터리의 인터뷰 대상자들은 광주의 주역이기는 했지만 현재 상태에서의 이들은 또 타자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청을 철거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부분에 대한 분열 등도 혼란스러운 양태로 삼십년이 지난 지금 나타나고 있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조정환: 광주 항쟁 당시 이름 부를 수도 없고 역사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 저는 다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다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독재 저 위에 자본주의라는 것에 의해서 고통받아왔고 독재가 해결된 다음에도 여전히 그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투쟁의 발전 경로를 놓고서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할 때 이들 대부분의 목소리가 도청에서의 결사항전을 옹호하는 목소리로 전달되었는데, 이 목소리는 지난 삼십년간 5.18에 관한 극소수의 입장이고 짓눌려서 제대로 발언하지도 못하는 목소리에 속한다. 광주에 관한 일반적인 목소리가 결코 아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려고 하다가 주저앉히는 그런 목소리가 이 영화의 주된 목소리로 쓰였다.

김태일: 광주에 있을 때 시장에 있던 분들이라든지 시민단체에 있는 분을 만나면 대부분 이렇게 말씀하신다. 광주가 경제적으로 낙후되어있는데 좀 발전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신다. 광주 아시아 문화의 전당 건축비가 6조 8천억원에 달하는데 구 도청 자리에 생기면 주변 상권과 광주 지역의 경제적인 여건이 좋아질 수 있다고 어필되는 것 같다. 광주 지역 이외 사람들의 지지나 응원이 없다면 도청은 분명 철거될 것이다. 80년에는 하나가 되었지만 보상의 이름으로 상처를 받고 아시아 문화의 전당 건립이 추진되면서 많은 돈이 지역 사회에 뿌려졌다. 단체이기주의가 대두되면서 또 고통을 받고, 아픔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아파왔기 때문에 힘이 많이 약화되어있다. 이제는 지쳐있다고나 할까.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여전히 오월에 관한 자부심이 가슴 저 깊은 곳에 꼬깃꼬깃 숨겨져 있다고 봤고 그전의 공동체가 만들어서 보여줬던 꿈같은 현실이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끄집어내줘야 하는데 광주의 힘만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한국사회 전체, 시민단체나 학생 운동하는 친구들이 함께 도와주고 싸워준다면 이런 항쟁의 마지막 남은 사적지라도 지키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정환: 광주 사람들은 이미 보상까지 받은 사람들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한은 계속 기억만 한다고 해서 풀리는 건 결코 아니다. 한스러운 사건을 빚어내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게끔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그날의 광주를 낳았던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도청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수호하는 것은 기억 투쟁 속에서만 중요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넓게 본다면 광주의 사태는 지구 어디에서나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싸움에 함께 하면서 우리의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는 것, 반값등록금, 비정규직화에 대한 운동,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싸우는 것이야말로 도청을 사수하는 일이고 계엄군에 맞서서 계엄해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투쟁에 함께하는 행동적 길이 되리라 생각한다.

정리: 최용혁 (관객 에디터) 사진: 이호규(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상반기 마지막을 장식한 일본영화걸작 정기 무료상영회

올 상반기 마지막 ‘일본영화걸작 정기 무료상영회’가 열린 지난 6월 13일 월요일 저녁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이날 상영작 중 한편인 <안녕 김치>를 연출한 마쓰에 데쓰아키 감독이 내한하여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진 것. 한국계 일본인인 가족들이 걸어온 역사와 현재를 재일한국인 3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웃음과 눈물의 다큐멘터리 <안녕 김치>에 대한 영화 이야기부터 현재의 일본사회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들려준 뜻 깊은 시간의 일부를 이 지면에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안녕 김치>는 영화학교의 졸업 작품이기도 한데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마쓰에 데쓰아키(영화감독): 원래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공부를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결정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60~70년대 아메리칸 뉴시네마를 보면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도 그런 영화들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누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세운 학교인 일본영화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 학교에 들어갔을 땐 극영화를 만들 생각이었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한동안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학교의 커리큘럼에도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이 있었다. 수업과정에서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취재 하는 과정은 평상시에는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하게 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재일한국인이라는 걸 주위에 말해본적이 없었고,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런 것에 대해 얘기해 본적이 없었다. 왠지 화재삼아선 안 되는 이야기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안녕 김치>를 찍자고 생각했다는 것 중 하나가 카메라가 있으면 취재라는 명목으로 기존에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족들이 굉장히 편하게 얘기하는 것 같지만 평상시에는 거의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이뤄지는 대화들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보겠지만 내겐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카메라가 있음으로 해서 가깝게 한 단계 더 들어가서 가족을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성욱:
<안녕 김치>라는 제목이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마쓰에 데쓰아키: 이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었을 때만해도 한국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어서 내가 좋아하는지 혹은 싫어하는지 확실히 알고 싶었다. 근데 오히려 영화를 찍으면서 알게 된 건 확실하게 무엇이라는 게 아니라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족들이 서로 태극기를 드느냐 일장기를 드느냐로 나눠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처음부터 분명히 생각했던 장면이었다. 그 장면으로 하여금 나의 어떤 기분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데, 우연치 않게 그 장면을 찍을 때 바람이 불면서 국기들이 떨어져버렸다. 결국 내가 잘 모른다고 하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김성욱: 재일한국인 3세로서 여전히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들을 일본 사회 안에서 많이 겪게 되는지 궁금하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제기된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살수는 없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게 된다는 생각이 드는데.
마쓰에 데쓰아키: 12년 전에 만든 영화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재일한국인을 다룬 영화는 대부분 비슷했는데, 둘 중의 하나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고민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한 고민 자체가 드라마로써 만들기 더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처럼 확실하게 나누지 않고 그런 고민 자체를 긍정적으로 다룬다는 점 때문에 당시에 많은 재일한국인들에게서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 <안녕 김치>를 찍고 나서 얼마 뒤 <쉬리>가 일본에서 개봉해 화제를 일으켰고, 드라마 등을 통해 한류 붐이 일었다. 이 영화를 찍을 때는 해도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어서 아마 지금 이 영화를 찍게 된다면 다른 형태가 될 것 같다.

김성욱:
가족 영화를 본 느낌이어서, 가족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마쓰에 데쓰아키: 할머니는 2005년에 돌아가셨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것을 생각하면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이었지만 같은 해 가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일은 큰 충격이었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큰 병도 앓은 적도 없고 입원했던 적도 없었는데, 우연히 병원에서 병을 진단 받고 3주 만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사실 지금도 이 영화를 돌이켜보는 것이 개인적으로 힘들다. 큰 고모님도 일 년 전 쯤 돌아가셨다. 영화라는 것이 잔혹한 면이 있다. 특히나 다큐멘터리가 더 그렇지만 촬영했던 당시의 시간이 그대로 남아있어 이후에도 계속 반복된다. 이 영화를 보는 일이 개인적으로는 힘든 일이지만, 오늘 영화를 보신 분들에게는 아버지나 할머니나 고모님의 모습이 아마 첫인사처럼 다가갈 텐데 그런 점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씀하신 것 중에 가족 영화를 본 것 같다, 가족들을 만난 것 같다는 얘기가 정말 기쁘다.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재일한국인 1,2세에게는 재일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지만, 3세의 입장에서는 재일한국인이 우선이기 보다는 가족 안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다보면 그 안에 자연히 재일한국인으로서의 이야기도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12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화를 내고 항의를 했을 거다. 실제로 당시 그런 반응들이 꽤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들 때만해도 가족을 먼저 그리고 싶었고 그게 내게는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김성욱: 최근에는 도쿄 지진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안녕 김치>를 만든 다음에는 AV를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작업을 하게 되었고, 어떤 과정이었는지, 본인의 영화 작업에서 어떤 시간들이었는지 궁금하다.
마쓰에 데쓰아키: 재일한국인 2,3세가 주인공인 AV를 찍었다. 포르노가 재밌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는 섹스씬만 찍으면 나머지는 감독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닛카츠 로망포르노나 핑크영화처럼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지만 AV는 또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AV 작업이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플러스됐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선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 대상을 계속해서 만나면서 관계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는데, AV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알몸이 되려는 사람들을 데리고 찍기 때문에 관계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굳이 필요 없이 바로 만들 수 있다. 그런 AV의 특징 때문에, 대상에 바로 접근해서 재일한국인에 대한 아이덴티티를 물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안녕 김치>와는 또 다른 형태로 재일한국인에 대해 얘기하는 다큐멘터리가 됐다고 생각한다. 당시 AV를 찍으면서 크게 배운 것은 정해진 시간 안에 찍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상대와 관계를 쌓아가면서 하나하나 이야기를 구성한다면 AV는 작품을 하루 만에 찍어야 하기 때문에 배우를 만나 바로 촬영을 시작하면서 액션을 걸고, 리액션을 도출해내서 그걸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점을 익혔다. 그래서 아마 일반적으로 여러분이 많이 본 다큐멘터리가 마라톤 같은 영화라면 나의 영화는 100미터 단거리를 달리는 것 같은 면이 있다. 지금은 AV를 찍고 있지 않은데,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만든 AV가 안 팔리기 때문에 일이 들어오지 않는다. 또 하나는 AV업계에서 변화한 부분인데 내가 찍었을 때만 해도 섹스씬만 찍으면 나머진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관객1:
재일한국인을 다룬 다른 영화들에서는 북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안녕 김치>에는 그런 언급이 등장하지 않아 신기하다. 그리고 로망 포르노 같은 장르에서 섹스장면만 찍으면 나머지는 감독이 자유롭게 만들 수 있던 것의 배경이 궁금하다.
마쓰에 데쓰아키: 예전에는 AV가 렌탈이었기 때문에 300엔만 내고 영화를 보게 되는데, 케이스에 적힌 내용과 실제 내용이 다르다하더라도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렌탈에서 지금은 판매하는 것으로 시스템이 바뀌면서, 내용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정보를 게재하는 일반적이다. 비단 AV 뿐 만이 아니라, 간혹 ‘이 영화는 관객을 만족시켜드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과연 영화라는 것이 관객을 만족시키는 것만을 위한 것이어도 되는 걸까? 아메리칸 뉴시네마나 닛카츠의 로망포르노처럼 관객을 만족을 시켜주는 것보다 만드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기분들, 관객에 대한 도발들이 존재하고, 스크린 안에서 싸움을 거는 것 같은 그런 영화들이 더 자극적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TV나 DVD와는 다르게 영화를 보러오는 사람들은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이지 않나. 그런 만큼 영화 안에는 어떤 긴장감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북조선 국적과 관련해서는 이 영화 찍기 전에 사실 취재를 했었다. 조총련계의 학교도 가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봤다. 폭넓게 접근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여러 취재를 하게 되면 정보는 많이 얻겠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는 것이 체감으로서 와닿질 않았다. 물론 그렇게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목소리를 담았다면 좋은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었겠지만 나의 관심은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난 가족이 건강하면 돼’ 라든가 할머니가 ‘나는 네 할아버지 별로 안좋아했었어’ 하는 말들이 내게는 더 와 닿았다. 이 영화를 통해서 ‘재일한국인들은 이렇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이 영화를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려보고 싶다는 어떤 출발점으로 생각했다.

관객2: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찍다가 이번에는 졸업작품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에 대해 찍기로 결심을 했는데도 아직 카메라가 어색하다. 감독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만들기로 하셨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지금 작업하고 계신 작품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쓰에 데쓰아키: 사실 다큐멘터리는,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는다는 것은 대단히 무서운 일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조심히 하더라도 누군가를 상처 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찍은 풍경에 뒤에 자신은 찍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찍힐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무서움이라는 것 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촬영하면 좋겠다. 10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데 왜 다큐멘터리를 찍느냐고 물으면 이것으로 밖에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영화나 TV영화로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촬영을 하면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안녕 김치>도 그렇지만 가족들이 영화에서처럼 이야기하는 건 내겐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카메라를 의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식이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있을 수 있다. 일본에 큰 지진이 있었을 때 놀랐던 건 도쿄가 굉장히 어두웠다는 것이다. 33년 동안을 도쿄에서 살면서 그렇게 어두웠던 걸 본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동경이 어떻게 보면 너무 밝았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어두운 도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고정시키고 싶었다. 지인들 중에서도 후쿠시마원전이 있는 곳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찾아간 사람들이 많은데, 내 생각에는 도쿄도 피해지중 하나다. 어두운 도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본의 뮤지션과 같이 라이브를 하며 거리를 걸으면서 동이 트는 것을 맞이하는 하루 동안을 담았다. 도중에 비가 와서 비를 맞으며 아침을 맞이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어두운 거리에서 어두운 하늘아래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가을정도에는 공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관객3: 인터뷰를 통해서 가족들의 얘기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생각되지만 감독님의 생각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마쓰에 데쓰아키: 직접적으로 나의 감정이나 생각이 비춰지는 부분들은 적지만 영화 안에서 질문의 순서, 제가 사용하는 단어 등에서 많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카메라의 시점을 가지고 이야기하는가를 통해 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원래는 영화의 나레이션을 내가 하려고 했으나, 찍는 도중에 여동생으로 바꾸었다. ‘나는’이 아니라 ‘오빠는’이라고 영화 안에서 이야기하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등장시키고 등장인물 중의 하나로 보이게 했다.

정리:
장지혜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삶의취향 2013.05.26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가 왜 걸작일까요?
    프로그래머의 취향을 걸작으로 승화시키려다 반감만 불러일으킬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