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나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이창재 감독



지난 8월 24일에 진행한 8월의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비구니들의 수행과정을 조용히 기록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를 상영했다. 상영 후에는 이창재 감독이 극장을 찾아 영화의 나레이션을 통해 들었던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영화 제작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다큐멘터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영화는 무엇보다 감독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라는 그는 과연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오늘 본 <길 위에서>는 1년 정도 시간을 들여서 만든걸로 알고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만들었는데, 왜 이 공간을, 그것도 1년이란 긴 시간을 들여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이창재(영화감독)│돌이켜보면 그 나이대에 관심이 가던 걸 영화로 만들었다.  <사이에서>의 경우에는 당시 가까운 사람이 어려운 일로 무당을 찾았을 때 그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돼 영화로 만들었다. <길 위에서>는, 내가 수행이랍시고 진통제를 먹듯 이런저런 수행처를 찾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구니 스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칠순쯤 되신 분인데, 그분도 수행의 성과가 없어서 여전히 수행 중인 분이었다. 그런데 말씀 도중 핸드폰 배터리가 왜 이렇게 빨리 닳느냐며 보여주는데 그게 벽돌 같은 옛날 핸드폰이었다. 산 속에서 집도 절도 없이 수행을 하시다보니 그게 옛날 것인지도 모르고 계셨던거다. 아주 마르고 작고, 재산이라고는 지갑과 휴대폰 밖에 없는 그 분의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 때의 생각을 4년 정도 삭히다 이 영화를 기획했다. 자료를 찾아봐도 한국에서 비구니에 대한 건 방송으로도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김성욱│서울역에 도착한 스님이 등장하는 첫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왜 이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했는가.


이창재│그 스님은 출가하시기 전에는 강남에서 잘 자라신 분이다. 그런데 산 속에서 수행만 하다 1년 반만에 서울로 다시 나오니 간극이 생겨서 매우 당황스러워하셨다. 스님들은 그런 걸 ‘중물’이 들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영화에는 넣지 않았지만 스님은 서울의 그 오염된 공기를 마시면서 ‘너무 좋아요’라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그리고 서울역의 사운드라는게, 교회에서 나온 분들은 큰 소리로 전도를 하고 있는데다 술 취한 사람은 스님에게 어디 가냐고 자꾸 말을 건다. 이런 여러가지 요소가 한데 섞인 상황 자체가 흥미로웠다.


김성욱│제목을 ‘길 위에서’ 라고 했는데 이 제목은 언제, 어떻게 정한 것인지.


이창재│영화 촬영이 다 끝나고 제목을 지었다. 처음에는 “비구니” 였다. 그런데 ‘비구니’라고 하면 우리나라만의 어떤 뉘앙스가 있다. 기구한 사연이 있다거나, 세상에 상처받고 도망 온 듯한 느낌 말이다. 그 뉘앙스를 그대로 사용하면 영화에 출연한 스님들의 삶을 단정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그 분들의 삶을 정의 내릴 수는 없는 것이고 여기 출연한 몇몇 분들이 한국 비구니의 대표성을 가질 수도 없다.

그리고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를 떠올렸다. 로드 무비의 시초라고도 할 수도 있을텐데 20대에 읽은 그 소설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이 분들의 삶이 우리 속세의 삶과 뭐가 다를까란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던지고 스님들에게도 던졌다. 그때 느낀 것이 스님들의 인생의 지향점은 모두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스님 중에도 게으른 스님이 있고, 아주 지독할 정도로 열심히 수련을 하시는 분도 있고, 술을 많이 드시는 스님도 있다(웃음). 하지만 어떤 분이든 간에 깨달음이란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뛰어 가든 누워 있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반면 속세의 삶은 대학에 가는 것이라든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라든지 목표가 전부 같지 않다.


김성욱│이 암자는 일 년에 두 번만 개방을 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 촬영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어느 정도 분량으로 촬영했는지, 그리고 밖에서 보면 이 공간이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막상 안에서 촬영한 부분을 보면 의외로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이창재│매 계절마다 네 번 쫓겨났다. 그때마다 수행하는 스님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다. “제가 나갈까요, 감독님이 나가실래요.” 이러면서 실제로 짐을 싸면 정말 무섭다(웃음). 산 속에서 수행만 하는 것도 좋지만 바깥에 우리의 모습을 알리는 것도 좋지않을까 해서 큰스님이 허락해 주셨지만 그 다음이 더 문제였다. 스님들의 커뮤니티는 수평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만장일치제에 가깝기 때문에 한 분이라도 동의를 하지 않으면 촬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수행하는 장면을 찍는 것이 어려웠다. 영화 속 겨울 장면은 사실 하루 동안 찍은 분량이 전부이다. 그리고 젊은 스님들이 특히 많이 어려워하셨다. 왜냐하면 영화가 개봉하고 가족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 잡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쫓겨난 것이 그대로 크랭크업이었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이서 220일 정도 기숙하며 촬영했는데, 마침 우리가 묵는 방이 마주 보는 공간이 빨래터였다. 그런데 비구니 스님들이 남자들이 오는 바람에 빨래도 잘 못 말린다면서 항의를 하셨다. 그래서 또 쫓겨났다. 그리고 거기 있다고 해서 계속 촬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곳에서 맡은 일은 불 때는 일이었는데, 낮에는 장작을 패고 밤에는 불을 때야 했다. 촬영을 안하고 일을 한거다. 비율로 따지면 일이 7할, 촬영은 3할이었는데 스님이 우리들을 잘 활용하신 셈이다(웃음). 하지만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결국 관계가 만들어졌다. 일을 나한테 열 번 정도 시키시면 인터뷰를 안 하실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촬영이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사실 사람보다 풍경을 더 많이 찍었다. 어떤 면에서는 스님들의 모습도 풍경을 찍듯이 촬영했다고 봐야한다. 망원 400mm 렌즈를 사용해 숲 속에 숨어 포착하듯이 촬영했다. 나중에 보니 렌즈 구매비가 제일 많이 들었더라. 워낙 종류별로 렌즈를 다 썼으니 말이다.


전체 분량은 160시간 정도 찍었는데, 200일 정도 찍은 것 치곤 굉장히 적은 편이다. 1주일 동안 18분 밖에 못 찍은 적도 있었다. ‘오늘은 30초 밖에 못 찍었네…’ 이러면서 얼굴이 하얘지는 거다. 내가 제임스 카메론도 아니고 정말 비싸게 찍은 셈이다(웃음). 나중에 추가촬영도 부탁했지만 실패했고, 편집이 끝난 후 영화를 보여드리면서 다시 만났다. 꾸지람도 하고 칭찬도 하시면서 이런 작품이 다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질 일이 없을거라고 하셨다. 개봉이 가까워졌을 때 보니 절에서 공사를 하고 있더라. 무슨 때 아닌 공사냐고 여쭤봤더니 개봉하면 사람들이 찾아올거라서 미리 바깥에 문을 하나 더 만든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아주 높은 산을 건넜다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비구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지만 사실 감독님 본인에 대한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스님이 감독님에게 언제 출가할지, 만약 이번 생애가 아니면 다음 생에에는 출가하실 건지 묻기도 하더라.


이창재│사실 편집을 할때쯤 내가 그동안 무엇을 본 건지 스스로 궁금증이 들었다. 1년 동안 내가 그곳에서 본 건 사실 표면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정리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편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건 ‘출입금지’ 표지판 뒤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관객들을 저 안 쪽으로 데려다 주면 그곳에서 관객들이 각자 다른 것들을 느끼길 바랐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나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 것이, 한 스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언제 출가할건지, 만약 이번 생이 아니라면 다음 생에는 출가할 것인지 말이다. 처음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분에게는 그 질문이 당연한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절에서 자라셨으니 절이 자신의 전부인 것이다. 그분에게는 오히려 내가 이 행복한 곳을 두고 왜 저렇게 머리를 기르고 사는지 궁금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이 이상하게 계속 맴돌았다. 나도 스물 다섯 쯤에 그분처럼 출가를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길을 갔고 나는 가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계속 들다보니 계절마다 스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선택을 확신하느냐, 이 선택이 틀렸을 때 돌아올 길은 있느냐라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 질문은 나에게 한 질문이었다. 답은 아직 들려드릴 수 없다.


김성욱│초월적인 문제나 삶의 저편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이창재│요즘은 호스피스의 문제를 다룬 다큐를 찍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가 아직 이르다 싶어 미뤘었는데 이제 시작했다. 주로 말기암 환자 분들을 만나고 있는데, 죽음을 받아들이고 지금까지의 자신을 놓을 때 얼굴이 확 바뀌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보면 비약적인 성장인 셈이다. 스님들의 수행도 같은 맥락이다. 자기를 완전히 버릴 때 오는 깨달음이란 측면에서 두 경우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다큐멘터리에 대한 마음도 있지만 지금 이 나이에 내가 해야하는 숙제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사이에서>부터 이런 작품 세 편이 몰린 것 같다. 하다보니 3부작이 갖춰진 것이다. 지금하고 있는 호스피스를 다룬 다큐멘터리까지 끝내면 내가 생각해왔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다큐멘터리는 오로지 내가 관심이 있는 걸 만드는 것이다. 내가 1년 동안 이 ‘여행’을 재미있게 다닐 수 있을지만 생각한다. 흥행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1년 반이나 하는 건데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지금은 죽음에 대해 1년 반 정도 충분히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재미보다는 의미로 밀어붙여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한다. 세상이 너무 재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나는 좀 진지한척도 하면서(웃음) 의미를 향해 최선을 다해보고 싶은 것이다.


작업을 하다보면 항상 ‘나’에 대한 걸로 귀결된다. 처음에는 출연자의 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관객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는 감독이 자기를 스스로 비춰보는 거울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진다. 이 세 번째 거울이 제일 좋다. 나를 위해 작업을 하다보면 거꾸로 출연자나 관객들에게도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성욱│촬영 첫 날 뭘 찍었는지, 그리고 어떤 걸 느꼈을지 궁금하다.


이창재│처음에 찍은 장면이 영화에도 많이 나왔다. 첫 사흘 동안 비가 계속 왔는데, 그때 마음이 참 그랬다. 스님은 얼굴도 못 보고 각종 비만 종류별로 찍었다. 지금 접을까 하는 생각도 사실 했었다. 촬영 내내 안개가 걷힌 적이 없었다. 늘 다음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내가 어디로 걸어왔는지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 뜻대로 방향을 잡으며 찍었다기보다는 찍을 수 있는 것, 찍히는 것에만 한정적으로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가끔 이게 내 작품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길 위에서>의 반은 스님들이 만들어 주신 것이다.



정리│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 

사진│김윤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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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것들을 내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


<마이 라띠마>의 유지태 감독



<작가를 만나다>의 7월 상영작은 유지태 감독의 <마이 라띠마>였다. 유지태 감독은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감독이나 배우라는 명칭 구분이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매 컷 마다 정성을 들여 수공예 영화를 만들었다는 자신감을 비치며, 다음 영화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 중이라는 그는 감독으로서의 ‘새로운 삶(마이 라띠마의 뜻)’에 이미 뛰어든 것처럼 보였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를 보면 남자와 여자, 두 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둘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게 된다. 처음에 이주여성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하면서 남자의 이야기가 들어가는데, ‘수영’이라는 인물만 따라가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청년 백수의 이야기도 있고,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한 사람의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붙어있던 건지 아니면 ‘마이 라띠마’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수영의 캐릭터가 같이 연관되어 들어간 것인지 궁금하다.

유지태(영화 감독): 처음 시놉시스는 대학시절부터 생각했던 이야기이다. 그 당시에는 어촌 마을 소년 소녀의 이야기였다. 소년 소녀가 아이가 생김으로써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르면서 나의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사회에 대해 좀 더 책임의식이 생기게 되고, 사회 반영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더 깊게 생각하다 보니까 이주여성이라는 소재도 등장하게 되고 청년 실업자도 등장한 것 같다. 청년실업자 같은 경우는 최종적으로 등장한 소재이다. 원래는 열아홉 살 수영이라는 캐릭터였는데, 배수빈 씨를 열아홉 살로 만들기엔 무리가 있었기에(웃음) 어떻게 하면 그를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청년실업자와 이주민의 사랑이야기를 그리면 되겠다 싶었고, 마지막에 각색을 하게 됐다.

김성욱: 영화 초반부에 한강 고수부지에서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뒤에서 석양이 막 지려다 장면이 끝나버리고, 뒤이어 배수빈 씨가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보는 순간에는 특이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똑같은 포즈로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나오더라. 두 장면이 어떻게 관련된 것인지.

유지태: 배우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현장에서 의사소통을 잘하고, 현장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가를 많이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는 철저한 ‘지속성’이었다. 나의 영화나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도 철저하게 계산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 영화에서도) 화면 디졸브 효과를 염두에 두었던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인생을 담은 영화, 성장을 담은 영화가 될 것이기 때문에 세월의 흐름을 묘사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성욱: 수영이 처음 등장할 때 집 내부가 나오는데, 지난 앨범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졸업식 사진을 찍는 순간이 있다. 수영의 과거 여자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앞서 말한 두 개의 이미지가 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유지태: 사람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수영은 마이 라띠마와 다르게 욕망을 쫓아다니는 백수기질이 다분한 사람인데, 왜 그가 청년실업자로 전락했을까를 생각했을 때 그에게 트라우마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와 함께 사랑을 나누었던 옛 여인, 그를 버렸던 주변사람들, 그를 방치했던 가족들이 트라우마로 작용했을 것이다. 마이 라띠마의 디테일한 묘사가 아닌, 화면 전환 방식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화면 속에서 설명할 수 있는 방식들을 택한 것이다.

김성욱: 영화에서 수영은 타인의 일에 관여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이 많다. 전반부에서는 포항 출입국 사무소에서 마이 라띠마가 아주버니에게 폭력을 당할 때 관여하고, 후반부에서는 소유진 씨가 폭행을 당할 때 관여한다. 수영이라는 인물이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관여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지태: 한국 남성의 전형적인 면을 담고 싶었다. 부정적인 면과 좋은 면. 간섭을 잘하고, 자기 일도 아닌데 열정적이고, 반면 좋은 점은 푸근하고 정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서의 측면이 아닐까. 요즘 친구들은 다를 수도 있지만 30대 중후반 사람들의 그러한 면을 담으려고 했다.

김성욱: 포항 출입국 사무소 장면에서 아주버니와 싸움을 벌이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두 사람이 도주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굉장히 갑작스러운 순간에 벌어지는 일 같은데, 그 장면이 전체적으로 영화를 보았을 때 도약의 지점이다.

유지태: 맞다. 혹자들은 이 부분에서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를 볼 때 개연성을 가지고 보는 방식에만 익숙해져 있는 게 아닐까. 갑작스러운 등장, 다른 방식의 서사구조를 보여주고 싶었다. 독특함이라고 할 수도 있다. B급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등장하는 게 더 매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연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건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여기에 대입해볼 수 있는 영화의 방식을 모두 적용해보았다. 다른 것들은 재미가 없었다. 일본 영화 <바이브레이터>처럼 즉각적으로 만나서 떠나버리는 방식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지금보다 어릴 때, 영화에는 엉뚱함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 같은 논리나, 알렉산더 페인의 <사이드 웨이> 같은 시선 말이다. 영화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것, 독특함, 사람들이 말하는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에 더 흥분을 느꼈다. 그런 부분에서 시작을 하기도 한다. B급영화나 저예산 영화에서 이러한 독특함을 많이 실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마음껏 작가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시스템화 되어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김성욱: 지하철에서 키스하는 장면도 참 예외적이다. 왜 하필이면 지하철인가?

유지태: 한국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걸 익숙해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상대의 비친 모습을 보며 떨리는 마음으로 첫키스를 하면, 독특한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하철 안에 조명기를 들고 가지 못해 더 예쁘게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삼각김밥 키스신이라던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행동들을 내 영화 속에서 해보고 싶었다.

김성욱: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카메라 움직임이 특이하다. 바깥으로 나갔다 한 바퀴 돌아오면, 두 사람이 누워서 꽃 이야기를 한다. 카메라의 움직임, 오버랩 등이 많은데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을 어떤 식으로 구상하셨는지.

유지태: 영화배우로서 영화를 만드는 데 이유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차원에서 영화를 만드는 데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현재 한국영화는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상업영화와 초저예산 영화로 양극단화 되어 있다. 나는 중간급의 예산으로 만들 수 있는, 저예산 영화판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5억 미만의 영화들을 보면 낙후되어 있거나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한계를 넘어보고 싶었다. 한계를 넘어가면서도 관객과 소통하는 데 유리하길 원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지루한 편집이 아닌 다이내믹한 편집과 카메라 워크를 구사하려 노력했다. 그 장면을 연출할 때 영감을 얻은 영화는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이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의 비정상적인 사랑과 그들의 사랑을 격리시키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워크가 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밝히고, 창 너머 죽어있는 도시와 살아있는 도시가 나누어진 사회를 유영하는 모습을 화면 속에 담고 싶었다. 산세베리아꽃 같은 경우는 이주여성들이 쓴 여러 글을 찾아보면서, ‘산세베리아가 자기와 같다’는 글을 보았다. 산세베리아는 자생력이 강해서 한 달에 한 번씩만 물을 주면 사막에서도 자라는 강력한 식물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음지식물로 아는 바람에 물을 안 주어서 수명보다 더 빨리 죽는다고 한다. 무관심 속에 고립되어 있는 산세베리아와 자기가 닮았다는 이주여성의 글을 읽고 감동해서 영화에 넣게 되었다.

관객1: 한국인 배우가 마이 라띠마 역을 했는데, 어떤 이유 때문인지.


유지태: 염두에 둔 태국 배우도 있었지만, 영화 예산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배우에게 항공료, 숙박료 등등의 돈을 주면서 제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을 구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미지와 부합하는 사람들은 방송국에서 모두 캐스팅한 상황이었고, 비자 문제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그래서 저예산 영화가 한국 신인의 등용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방식을 <방가방가>와 같은 영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연기를 잘 시키자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적중한 것 같다.

관객2: 마지막에 나오는 태국의 전통춤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유지태: 마이 라띠마를 그릴 때, 마이 라띠마의 색깔을 분명하게 하고 싶었다. 감독으로서 그녀의 삶을 축복하고 싶었고, 희망을 그리고 싶었다. 사실 마지막에 마이 라띠마가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장면은 거짓이다. 불법 체류자가 되면 무조건 추방되어야 하기에, 그 부분은 사실과 다르게 만들었다.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산세베리아의 꽃말이 ‘관용’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가 냉정하고 배타적인 성향이 강해졌는데, 인권의 입장에서 관용을 베풀 때가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한다.

관객3: 이 영화 안에서 감독님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답게 나왔다 싶은 장면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영화 만들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지.


유지태: 매 커트가 나에게는 아름다운 것 같다. 한 커트, 한 커트를 수공예처럼 만든 작품이다. 한계를 깨는 것은 결국 노동이다. 나는 빠르게 프로세스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잘 정렬되어 있지 않은 작품을 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프로세스가 느린 편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점은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성스러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 화면이나 테크닉에 집착하는 시기는 지났고, 지금은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소재와 주제가 중요하다.



정리ㅣ 관객에디터 지유진

사진ㅣ 자원활동가 김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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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는 버림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뭉텅뭉텅 버려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다.”

 


6월 마지막 토요일, 강석필 감독의 <춤추는 숲>의 상영이 끝나고 시네토크가 있었다. 영화 속 성미산 주민들처럼 작가와 관객 사이에서 작품성미산 주민들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 대화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다큐에는 필연적으로 보여지는 게 있고, 보여지지 않는 게 있다. 이 작품에서는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절실함은 잘 드러나지만 마을 주민들의 세부적인 측면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비교적 보여지지 않는 미묘한 마을 공동체에 대해서 궁금했다.

 

강석필 감독 : 성미산에 대한 다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3부작으로 만들려고 했다. 2, 3부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성미산 마을은 다큐멘터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정말 흥미로운 곳이다. 언론에 많이 비춰지기도 했고, 공동체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봄직한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 자체가 워낙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개성이 넘치고, 재미있고, 뭔가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처음에는 작품을 만들기로 했을 때는 영 자신이 없었다. 방송에서 6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이미 많이 다뤄졌고, 몇 주 와서 촬영하는 카메라가 아니라 일상을 지켜보고 기록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이전에 비춰진 것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만 2년 정도 했다. 원래 1부작으로 아이들을 다룬 성장다큐를 만들려고 했다. 그것을 2부에서 마을 단위의 공동체, 즉 생협이나 어린이집을 다루려고 했다. 3부에서는 내면의 소리를 쫓아가려고 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성미산 사건이 터진 거다.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이 많았다. 촬영을 계속하던 와중에 싸움에 대한 정직한 기록, 직설적인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애초 우리의 기획과 맞지 않은가는 고민이 생겨났다. 애초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꿈, 삶에 대한 희망, 그리고 비슷한 고민을 나누고 있던 사람들 사이의 관계들이었다면, 성미산 사건이 특이한 사건이긴 했지만 그것을 겪어내는 사람들에게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품 속에서 성미산 마을 사람들을 두고평범한 별종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은 정말 보통의 사람들보다 특별해 보인다. 마을에   다보니 특별해진 것인,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이 특별한 것인가.

 

평범한 별종들이란 표현은 형용모순이다. 이 일화를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몇 달 전에 한겨레 신문 1면에 이런 기사가 났었다. 박원순 시장의 주요 정책 중에 하나인마을 만들기가 일종의 종북좌빨 무리들을 만드는 것이고, 그 핵심에는 성미산 마을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종북이라면 굉장히 싫어하며 고개를 흔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좌익적인 생각들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기보다 추구하는 가치나 맺어나가는 방식들이 보통과 다를 뿐이다. 한사람 한사람을 들여다보면 평범한 회사원이고, 평범한 주부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면 뭔가 다른 특별한 게 있는 것 같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이고, 그것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운동과 관련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 한 명 잘 키우기 위해서 성미산으로 흘러 들어온 사람도 있다. 한국사람으로서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면 걸리는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한 것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행동하다보면 그것이 사회적 운동으로 비춰질 수는 있다. 그러나 한쪽의 정치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영화 중반쯤에 초대가수의 공연이 진행되는 가운데 화면이 전환되어 새벽에 마을주민이 다치고, 비가 쏟아지는 장면이 이어진다. 화면은 바뀌지만 초대가수의 음악이 계속해서 관통한다. 불일치하는 면도 있지만 묘하게 어울린다.

 

제일 먼저 확정되고, 위치 정해진 장면이다. 그 음악 자체가 이어지는 것에 대해 불편하다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영화적이라고 보신 분들도 있었다. 물론 두 장면이 같은 날 일어난 것은 아니다. 며칠간 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100인 합창단 공연 이전에 1차 문화행동으로 생태캠프가 있었다. 캠프에 시위 현장을 찾아 공연하는 걸로 유명한 홍대 가수 야마가타 트윅스터를 초대했다. 펑크하면서도 사이키델릭했고, 리듬도 반복적이라 공연 모습을 찍을 당시에도 음악이 인상적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며칠 후 사고가 났다. 술 먹고 홧김에 벌목하려는 전기톱 소리를 듣고 마을 주민이 말리다가 아킬레스건이 다친 사고였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왔고, 그런데 마침 또 우르르쾅쾅 천둥이 치면서 비가 내렸다. 사람들이 비가 갑자기 쏟아지자 주차장에 서있었다. 어두운 가운데 번쩍할 때마다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머릿속에서 생태캠프에서의 그 음악과 장면들이 연계되었다. 당시 성미산 사건이 거의 최고조에 치닫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두 가지가 연결되면서 복잡미묘한 심경, 막다른 길에 다다른 듯한 막막함, 결국엔 사람이 다치는 지경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음악은 내용과 사건이 진행되는 상황, 복잡한 심경 등이 그 음악이 튕겨내는 듯하면서도 무언가를 긁는 느낌이라 그 음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음악은 그 자리에, 그 순서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제일 먼저 결정되었다. 물론 시간 순서대로 편집하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편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결정된 장면이었다.



 관객 1 : 성미산 마을 사람들마다꽃다지딱풀이니 하는 가명을 쓴다. 그러한 관습이 성미산 마을만의 것인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별명을 부르는 것은 성미산 마을만의 문화는 아니다. 문화단체에서도 별명을 많이 쓰는 추세다. 성미산 마을의 별명 문화는 공동육아로부터 시작했다. 20여년 전에 다른 육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모들과 여성주의 사회학자들이 모여 아이들에게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울 것인가하는 생각을 나누었다. 대학입시가 최고인, 그래서 어린이집에서부터 ㄱㄴ, ABCD부터 가르치는 그러한 교육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어른이 시키는대로 무조건 따르는 억눌린 교육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다보니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의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르기로 했다. 별명은 아이들이 지어줬다. 대부분 곤충인 경우가 많다. 선생님인데도 웃긴 별명을 부르니까 아이들 입에서는 존댓말이 아닌, 예삿말이 나오게 되어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이름에는 유교적인 측면이 강하다. 우리는 이름 석자를 제대로 부르는 경우가 없다. ‘김사장’, ‘이부장처럼 직함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호칭으로 인해 억압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서 별명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다가 왜 어린이집 선생님들만 별명으로 부르나 우리도 별명으로 부르자 하는 의견으로 지금과 같아 졌다. 물론 형, 동생의 선 지키지만 호칭으로 인해서 관계 자체가 스스럼없이 되는 것 같다.

 

배우분으로 카메라가 자꾸 가서 조금 불편했다. 마을에 사는 주민이고, 활동에 계속 참여했으니까 이해가 가지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생각을 드러낸다기보다 어른들은 계속 싸우고 아이들이 말을 하는 형국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절실한 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것 같다.

 

그 배우의 말, 농담, 표정이 재밌어서 넣었을 뿐이다. 고창석씨도 그저 이웃주민일 뿐이고, 정인기씨도 바쁜 와중에 활동을 열심히 한 주민일 뿐이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언제나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인물을 활용하는 것이든, 사건을 활용하는 것이든 좀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선택하게 된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다른가. 살아가는 사람을 따라가는 게 다큐멘터리이고,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비유를 자주 사용한다. 극영화는 소조와 비슷하고, 다큐멘터리는 조각과 비슷하다고 본다. 다큐멘터리는 버림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뭉텅뭉텅 버려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다. 애초에 좀 더 알록달록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작품이 세상에 나온 형태로 선택을 내린 것이다. 영화제에서만 틀 다큐로 남고 싶지 않았다. 개봉을 목표로 만들었다. 앞으로의 작품에서는 그 지점을 더욱 주안점을 두고 싶었다.

 

관객 2: 카메라의 존재 자체가 기록을 왜곡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감독님이 이미 주민이었고, 주민으로서 같이 있는 익숙함 때문에 그런 왜곡이 적었다고 본다. 마을 주민들에게 카메라를 비출 때 왜곡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였다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다큐멘터리는 카메라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 것인가에 대해서 결정해야 한다. 카메라의 태도라고 함은 관객이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약속과 같다. 극영화도 마찬가지이나, 다큐는 처음 시작할 때 4-5분간의 카메라 형식에 따라 완전히 관객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성미산에 대해서 찍을 때는 형식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한 가지 형식으로 고정되어 버리면 역으로 거기에 얽매이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노닥거리면서 잡담하듯이 찍으려고 했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지 아닌지도 사람들이 잘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촬영 분량이 상당부분 흘러갔을 때, 카메라가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혼란스러웠다.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상황에 뛰어들고 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 결론을 내린 것은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자였다. 마을 주민들에게 깊숙이 들어가는 순간도 있고, 완전히 멀어져서 바라보는 순간도 있다. 마을 주민의 일부였다가 그저 지켜보는 사람으로 왔다 갔다 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들어감과 나오기를 반복한 끝에 완성된 결과물을 보니 꽤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기록을 하지만 상영을 하게 되면 마을 주민들이 그를 보게 된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적으로 관련되다보니 상호작용이 활발할 것 같다. 어느 정도 한계까지 계속해서 싸워야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꼬마를 찍고, 그 장면을 다시 마을 사람들이 보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렇다. 다 끝내고 마을에서 시사회를 한다고 하는데도 아직도 못 본 분들이 있을 정도다. 당시의 기억과 대면하기 힘들어서 그렇다는 거다. 대부분 다큐가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눈물을 흘린다. 당시에 정신없이 살아왔던 시간이 머릿속으로 정리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영화 배급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 마을 사람이 만들어서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는 그저우리 영화인 것이다. 거기에는 심리적인 복잡함이 담겨있다. 그 당시에 힘들게 싸웠고, 비록 만족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가치를 같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일종의 치유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들의 모습이 고정된 매체적 성질까지 인식하고 있다. 3부의 주제는 굉장히 내면적이고 복잡하다. 10년 넘게 생협을 이끌어가던 분들이 새로 들어온 젊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고 마을을 떠나게 된다. 또 마을을 떠나는 분에게 인사를 건내는 장면 모두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 점이 굉장히 불편한 것이다.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이 모습이 어떠한 맥락에서 영화 속에 들어가게 될지에 대한 불편함 같은 것 말이다. 3부는 매체 자체에 대한 성찰을 일깨우게 하는 복잡한 작품이 될 것이다.

 

녹취ㅣ관객에디터 배동미

사진ㅣ김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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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설인>의 이사무엘 감독



5월의 ‘작가를 만나다’ 상영작은 이사무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설인>이었다. 이 날 감독과의 대화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었는데, 이는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 영화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흥미로운 증언이기도 하였다. 그 대화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가 영화 안에 존재하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 어느 지점에서부터 출발했는지 궁금하다.


이사무엘(영화감독): 6년 전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시나리오를 쓰던 시기에 지인의 출장길을 따라갔다가 어떤 산을 보게 되었다. 산 안에 세상이 모르는 존재가 숨어 살고 있으면 어떨까 생각을 했던 게 모티브였다. 당시에는 이만희 감독님의 영화를 많이 찾아봤는데, 소녀와 킬러가 주인공인 <암살자>와 같은 영화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킬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좀 더 장르적인 시나리오였는데 진행되는 과정에서 시나리오가 많이 바뀌게 되었다.


김성욱: 눈 내리는 설경의 이미지를 첫 장면과 끝 장면에서 보여주는데, 정말 알 수 없는 존재가 그 산에 살고 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산이라는 공간 안에 이상한 시간성 또한 존재하는데 공간을 설정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이사무엘: 기본적인 컨셉은 한 평범한 남자가 이상한 시공간 안으로 들어와서 자신이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을 만나게 되고 그것을 해소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것을 큰 줄기로 잡았기 때문에 이런 공간과 시간을 설정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텔은 내가 10년 전에 여행을 갔다가 실제로 묵었던 모텔이기도 하다. 당시에도 눈이 많이 내렸고 사람이 많이 없었던 시기였는데 그때의 인상도 많이 남아있었다.


김성욱: IMF 이전과 이후로 시간을 설정한 데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는 것 같다.


이사무엘: 장르적인 성격이 강했던 원래의 시나리오에서 좀 더 땅에 붙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나의 개인적인 것들을 끌어오게 되었다. 내가 당시에 느꼈던 두려움이나 어려움들, 막막함과 같은 것들이 영화 속 젊은 친구들 안에 담겨있는 것 같다. 최근 4, 5년을 지나면서 세상이 잘못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라는 한 사설의 제목이 마음속에 남아있다. 자살에 대한 사설인 동시에 망가져가는 시대에 대한 사설이었다. 그 제목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는데 영화도 그랬으면 했다.

김성욱: 중반부 이후는 무국적 액션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가 그렇듯이 공간도 시간도 착종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이사무엘: 예전에 60년대 장르영화들을 많이 찾아봤다. 한국의 장르영화가 가능한 시기가 그 시기였는데 지금도 어떤 측면에서는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리얼한 영화의 톤에 맞춰져 있는 분들에게 총격이 나오는 활극은 말도 안 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의 구조 안에서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무리해서 구현해보려는 시도를 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영화들 클래식한 장르영화에 대한 판타지나 열망 같은 게 있는데 지금 현재의 한국 사회의 어떤 것들과 닿아있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김성욱: 영화 안에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사무엘: 개인적인 두려움이 투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기에는 무섭고 한계가 많은 세상이라는 것을 자주 느끼는 것 같다. 나이가 어느 정도 돼서 기성세대라고 불리는 나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 자신이 불안하고 나의 자식을 책임지거나 양육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있다. 주인공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차마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성장일 수도 있고 영화 안에서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소녀가 살아남은 것이 정말 해피엔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 소녀가 살아남은 것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이사무엘: 살아남음을 통해 이 세계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는 문제적인 세계를 살아나야 하기 때문에 온전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이 마지막 순간에 깨어나는 것이 해피엔딩에 가깝다. 그것은 현실에서 깨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 설인의 세계에서 깨어나는 것일 수도 있는데 후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연수의 깨어남을 해피엔딩으로 볼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김성욱: 중심적인 인물 외의 캐릭터들이 다들 독특하다. 어떻게 이런 인물들을 구상하게 되었는지.


이사무엘: 주인공 외의 캐릭터들이 구원을 갈구하는 상태의 캐릭터로 설정되었다. 다들 짝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기쁨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모텔의 여주인은 거류민이다.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들어와서 힘들게 사는 와중에 경찰과 만나서 나름대로 삶의 기쁨을 얻게 되는 캐릭터였다.

김성욱: 소녀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산에 다시 올라가려고 하는 것과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내려가려고 하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이 특이했다.


이사무엘: 소녀는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고 아버지의 흔적이라도 보고 싶어서 산으로 들어가는 인물이다. 꿈 장면이 여러 번 드러나듯이 몽유병과 같은 모티브가 있었다. 그 꿈은 아버지가 소녀를 산으로 불러들이는 꿈이고 그 꿈을 따라서 쫓아가는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캐릭터이다. 처음 구상에서는 소녀가 친구의 딸이 아니라는 설정이었고 이런 사실이 대사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빠졌는데 편집을 하면서 소녀가 친구의 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환기시킨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소녀는 자신을 구해주는 주인공에게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게 되고, 주인공은 소녀를 통해 자기가 지우려고 했던 아이에 대한 죄의식 혹은 친구에 대한 죄의식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정보들을 많이 뺐던 것 같다.


관객1: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감독님은 재능이 의심될 때마다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하다.


이사무엘: 지금도 시나리오를 쓰면서 끊임없이 의심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영화를 정말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들이 있다. <설인>을 찍게 되는 상황 자체도 나에게는 한계였던 것 같다. 촬영을 앞두고 과연 정해진 예산 안에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2년 정도 소요가 되었는데 전투를 벌이는 심정이었다. 모든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영화가 좀 더 현실적인 나의 세계와 연결이 되면서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 있었다.


김성욱: 장편 데뷔작의 개봉을 거치면서 영화가 관객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측면이 있는지.


이사무엘: 개인적으로는 <설인>이라는 작품이 애증서린 영화인 것 같다.(웃음) 이 영화를 완성해서 스크린으로 보게 되는 순간이 오리라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수익을 위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욕심은 없었는데,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는 분들의 시각들을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고. 지금은 좀 어정쩡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지금보다 정보를 훨씬 더 줄이는 게 좋을 것이다. 이게 이해가 될지에 대한 당시의 고민들로 인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러한 아쉬움과 영화를 만들어서 관객들과 함께 보는 즐거움이 합쳐져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에너지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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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궁금해서 갔고 많이 배웠다. 다음에는 좀 더 자신이 반영된 작품을 만들고 싶다"


- <라스트 스탠드> 김지운 감독 



배우나 감독할 것 없이 한국 영화인의 할리우드 진출 소식은 ‘성공의 여부’가 뜨거운 관심사다. <라스트 스탠드>도 한국 언론과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는 짧은 시간에 극장에서 내려져야만 했고 그 관심도 빠르게 식었다. 지난 4월 13일, 김지운 감독이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라스트 스탠드>를 연출하면서 무엇을 느꼈고 불편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지운 감독이 발매되지 않은 <라스트 스탠드>의 OST를 그날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직접 나누어 주었다는 훈훈한 일화도 덧붙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2007년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제 2회 친구들영화제’에 참석한 적 있다. 그때 기요시 감독은 미국영화에 대한 애정을 표하면서 기회만 된다면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감독으로서 제약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만약 자신이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자신을 잃지 않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김지운 감독에게는 미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었으며, 그 느낌이 어땠는지.


김지운(영화감독): 구로사와 기요시가 어떤 느낌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궁금해서 미국으로 갔다. 한국에서 <악마를 보았다>를 찍고 오래 우울했었다. <악마를 보았다>를 촬영할 때 열정은 사그라들고 기술만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장화,홍련>부터 미국으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스케줄과 미국에서 온 제의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처음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다시 그 열정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어서 미국으로 갔다. <라스트 스탠드>의 시나리오가 꼭 마음에 들어서 갔던 것은 아니다. 인터뷰에서도 많이 밝혔지만 사실 리암 니슨을 캐스팅하길 바랐다. 리암 니슨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좋아하는 배우다. 그는 단순한 상업영화의 액션스타일 뿐만 아니라 진지하고 대단한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와 같이 작업한다는 것이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인의 사고사로 인한 충격으로 그는 짧은 기간 동안 강박적으로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이미 지쳐버린 상태였다. 리암 니슨이 자체적인 휴식을 가지기로 결정한 상태였고, <라스트 스탠드>를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라스트 스탠드>에 관심이 표했고, 그렇게 그와 함께 하게 되었다. 사실 리암 니슨과 함께 했더라면 미리 완성본을 대충 그려볼 수 있었으나,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함께 한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 결과가 더 궁금했다.


리암 니슨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로 바뀌면서 시나리오의 수정이 있었을 텐데


원래의 시나리오는 딱딱하고 진지했으며, 유머가 없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완전히 다른 두 측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화려한 로스앤젤레스라는 공간과 서부의 자연주의적인 공간, 하이테크로 무장한 적을 로우 테크로 막아낸다는 이야기. 가장 빠른 차를 탄 악당을 가장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막아낸다는 점. 이런 점들이 흥미로웠다. 시나리오가 그것들을 작정하고 쓴 것 같지는 않았으나 그런 점을 더 끌어내고 싶어서 캐릭터들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다보니 유머가 많이 첨가되었다. <라스트 스탠드>는 특히 아놀드의 합류로 같은 이야기이나 완전히 다른 톤과 다른 색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우셨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워낙 이야기를 많이 해서 여러분도 많이 아실 테지만, 우선 조감독이 내 편이 아니다. 미국 조감독은 20% 정도만 내 편이고, 나머지 80%는 스케줄에 맞춰서 현장을 진행시켜 나가는 역할을 맡는다. 연출부도 없어서 현장에서 굉장히 외로웠다. 미국에서는 오후 12시가 되면 모두가 무조건 식사를 하고, 7시가 되면 퇴근해야만 하는 시스템이었다. 한국의 경우, 장면을 다 찍기 전에는 멈추지 않는다. 그건 감독이나 배우나 할 것 없이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은 다르다. 두 테이크 정도 더 찍으면 뭔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12시만 되면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조감독이 이야기해왔다.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원칙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제작사가 고소를 당한다는 거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되었다. 배우들은 점심시간 직전에 찍은 그 장면, 그 감정을 잘 되살려냈다. 모두들 그 제도에 이미 잘 적응해있었다. 사실 나만 바뀌면 되는 문제더라. 그러나 적응하기 힘든 지점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편인데 미국에서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영화에 적용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경우 감독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그대로 찍을 수 있다. 수직적인 면이 강하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지 않다. 제작자와 감독이 모두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굉장히 수평적이다.


완성된 영화에서 아쉽거나 삭제된 부분이 있는지?


아쉬운 거요? 다 아쉽죠.(웃음) <라스트 스탠드>는 <조용한 가족>을 찍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작가로서의 미학이나, 굉장한 비전을 가지고 다가간 것이 아니고 재밌고 유쾌한 영화를 찍으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에 많은 박탈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할리우드가 궁금했기 때문에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었을 뿐이다. 그럼으로써 많이 배웠다.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두 번째 작업을 해보고 싶다. 좀 더 내 자신이 많이 반영된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 이전의 김지운 감독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라스트 스탠드>는 굉장히 유쾌한 편이다. 이전의 작품들은 더 어두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많았는데 <라스트 스탠드>는 밝고, 법과 질서의 집행을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전의 영화들과는 매우 다르다. 또 굉장히 미국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미국에서 영화가 찍는다고 하면 ‘자동차, 총, 여자’가 등장하는 영화라고 이야기하지 않나. 이 영화는 그러한 점과도 잘 부합한다. 

 

애리조나만 가도 트럭 뒤에 총을 매달고 다닌다. 미국에는 총기가 매우 관대하다. 할머니가 총을 가지고 있는 장면은 미국 관객들도 많이들 좋아했다. 이를 미국 총기 문화에 대한 비판, 비틀기로 봤다.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미국에서 총기사고가 있었고, 미국 내에서도 총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던 시기였기 때문에 흥행이 더 어려웠던 것 같다.


 

흥행만 잘 안됐을 뿐이지 영화로서는 굉장히 재밌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이즈음에 회고전을 한다면 <라스트 스탠드>는 배우로서도 중요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이 영화가 어쨌든 미국에서 나의 데뷔작이 되었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컴백 작품이 되었고, 내 필모그래피 중에서는 흥행에 있어서 가장 실패한 작품이 되었다. <라스트 스탠드>에 대해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자신의 연기가 새로운 지평에 올라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로튼 토마토’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그게 연기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나 보다. 계속해서 ‘로튼 토마토봤느냐’고 물어 보곤 했다. 아놀드가 이번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그때 나는 지방에서 단편영화를 촬영 중이었는데 그가 지방에 있는 촬영지까지 찾아왔다. 아놀드가 걸어오자 주변이 웅성웅성했다. <라스트 스탠드>의 촬영장에서 아놀드가 걸어 들어올 때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면서 만들어지는 분위기와 오버랩되면서 갑자기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라스트 스탠드>를 찍을 때의 느낌이 들어서 진심으로 포옹을 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에게는 진실한 면도 많다.


관객 1 차기 할리우드 작품을 논의 중인 걸로 알고 있다. 다음에 할리우드에 영화를 찍을 때 가장 고려하는 지점은 무엇인지.


일단은 배우다.(웃음) 어떤 배우와 작업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장르, 이야기의 밀도가 중요한 것 같다. 이야기 중인 영화들 중에는 큰 이야기의 영화도 있고 작은 이야기의 영화도 있다. 어떤 이야기의 영화와 어떤 배우가 묶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에이전시와 이야기하고 있다.



웨스턴 영화와 액션 영화가 공존하는 가운데, 두 가지 액션장면이 인상적이다. 옥수수밭에서의 액션도 인상적이고, 영화 마지막의 코르테스와 다리 위에서의 액션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나이든 남자와 젊은 남자가 결국 맨 몸으로 싸우지 않나. 다리 위에서의 액션씬은 정말 서로 밀착한 채 조르고, 꺾는 식의 종합격투기 액션장면이다. 액션씬을 어떻게 구상했는지.


촬영감독과 아놀드를 놓고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 많이 논의했다. 아놀드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이 정말 멋있었고, 정말 좋았다. 그 얼굴을 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떠오르기도 했다. 돌아온 영웅의 느낌이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의 말년의 영화에서 그가 출연했던 장르영화에서의 캐릭터를 성찰하는 의미에서 돌아온 영웅들을 연기한 것처럼 아놀드에게 그러한 연기를 원했다. 다리 위에서의 액션 연기는 단순히 맞고 때리는 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놀드가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얼굴을 잡아내고 싶었다. 육체적으로 강인해서 미션을 완수한 인물이 아니라 힘들고 괴롭고 아픈 과정을 견디고 승리를 얻은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 아놀드는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그런 식의 승리를 그려본 적이 없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그런 식의 액션을 연기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옥수수밭 씬 같은 경우는 그전에 보지 못한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다. 보통 추격영화는 상대가 보이는 상태에서 거리를 좁히거나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옥수수밭 장면과 같이 상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뒤쫓아 가는 장면을 꼭 넣고 싶었다.


<라스트 스탠드>를 만들면서 느낀 아쉬움을 많이 이야기하셨지만 모순적인 두 측면이 충돌하는 모습이 크게 다가왔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시스템적인 측면과 올드한 감성이 잘 맞아떨어진 영화같다.


의도된 방치같은 것이 이 영화에 존재한다. 이러한 방치가 이 영화와 잘 맞아떨어지는 데가 있다. 그런 점들이 영화의 부족함으로 읽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영화적인 방식,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화적인 전략이 이 영화와 맞는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가기도 한다. 



정리 ㅣ 관객에디터  배동미 

사진 ㅣ 김윤슬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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