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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서울아트시네마 개관 9주년 기념 영화제

[리뷰] 시드니 루멧의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이하 ‘’)는 두 가지 이유로 기억할만한 영화이다. 최근 작고한 시드니 루멧의 유작이라는 사실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 명철한 이야기꾼 감독이 현대적 내레이션 방식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다루는 능숙한 솜씨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는 점이 두 번째이다. 는 멀티플 캐릭터의 시점으로 재구성된 비선형 복합 내러티브 방식의 이야기이다. 내러티브는 각자의 삶에서 궁지에 몰린 앤디(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와 행크(에단 호크) 형제가 모의한 보석상 강도의 날을 중심으로 앞과 뒤의 시간들이 조금씩 살을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빚에 찌들어 있고 건사해야 할 아이가 있는 행크, 가족과 일터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앤디는 강퍅한 삶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피안의 세계를 찾아 부모님의 보석상을 털기로 한다. “여드름 .. 더보기
[리뷰] 시드니 루멧의 '뱀가죽 옷을 입은 사나이' 시드니 루멧의 (1960)는 사실 정확한 제목은 아니다. 이외에도 등으로 소개가 됐는데 이들 제목 모두 영화의 본질을 압축했다기보다는 극중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사비에르의 특징을 가져와 제목으로 둔갑시킨 경우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을 테네시 윌리엄스 본인이 직접 각색한 는 당시의 미국 사회를 겨냥해 관계의 부조리를 묘사한 거대한 우화다. 기타를 애지중지 아끼는 사비에르는 뱀가죽 재킷을 입고 다녀 ‘스네이크 스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뉴올리언스에서 악사생활을 하던 중 예기치 않은 소동에 휩싸여 새로운 도시로 떠나던 중 이름 모를 작은 마을에 기거하게 된다. 마을 주민의 도움으로 옷가게 점원 일자리를 얻게 돼지만 그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오래 전 병들어 누운 남편의 감.. 더보기
세상은 사악한 곳이다 시드니 루멧 추모 상영회를 준비하며... 지난 4월, 시드니 루멧이 세상을 떠났다. 다작의 감독으로 멜로드라마, 코미디, 풍자극, 형사물, 법정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 손을 대었던 루멧은 미국 사회와 법적 시스템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생전에 사회파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24년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 시절이 그러했듯 대공황기의 아이로 성장했다. 사회적 문제에 민감했던 것은 태생적이었고 인간의 의식과 조건, 사회적 불평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특히나 인간을 구속하는 형사 사법제도에 흥미를 느꼈다. 루멧의 영화는 정서적이지만 감상적이지는 않다. 그가 시스템에 관심을 가졌던 탓이다. 좋은 영화는 ‘보이지 않는 스타일’을 지녔다고 늘 생각했기에 그는 불필요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과.. 더보기
[리뷰]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 ‘영화적’,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 어떨 때 ‘영화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실감하게 되는가. (2010)의 도입부는 문자 그대로 ‘영화적인 것과 대면하는 순간’이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피아노 연주가 흐르는 아늑한 밤, 비가 오고 있다. 거리를 비추는 나트륨 등의 따뜻한 빛은 비의 차가운 질감과 대비된다. 불빛과 함께 차가 도착하고 우산 쓴 남자가 사진관의 벨을 누른다. 그는 (‘죽은 자’의 사진을 찍어줄) 사진사를 찾는데, 사진사는 멀리 출장 중이다. 우연히 지나가던 남자가 젊은 사진사를 추천한다. 젊은 남자 ‘이작’(리카르도 트레파)은 그렇게 해서 죽은 자의 초대를 받는다. 슬픈 운명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단 2분 30초에 걸쳐 영화는 느와르, 드라마, 미스터리로 시시각각 변하고, 내 가슴은.. 더보기
[리뷰] 스파이크 존즈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 Where the Wild Things Are' 모리스 샌닥의 동명 그림책을 영화화한 (2009)는 제작 단계부터 악소문에 시달린 영화였다. 그것은 모두 연출자인 스파이크 존즈 감독에 대한 것이었다. 원작의 이야기를 제멋대로 바꿔 모리스 샌닥을 분노케 했다는 얘기부터 너무 난해하게 찍은 까닭에 제작자가 직접 편집에 나섰다는 소식까지. 일단 와 관련한 오해부터 풀자면, 스파이크 존즈를 연출자로 결정하는데 가장 목소리를 높인 인물은 바로 모리스 샌닥이다. 샌닥은 오래전부터 의 실사 영화를 기획해왔다. 는 과거 10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적이 있는데 이에 실망한 샌닥은 괴물의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실사가 낫다고 판단했다. 단, 실사 화면에 CG로 처리하는 것이 아닌 라이브 액션이어야만 했다. 샌닥의 기획 의도처럼 스파이크 존즈 역시 애니메이션.. 더보기
[리뷰] 페드로 코스타의 '아무 것도 바꾸지 마라 Change Nothing' 예쁜 얼굴의 여배우는 아니다. 키는 멀대 같이 크고, 넓은 미간이 빚는 표정은 기이하며, 허스키한 목소리는 여성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어떤 여배우의 그것보다 오묘하다. 그녀의 신비한 눈동자가 무얼 말하는지 알아차리기란 힘들기에, 소수의 감독만이 그녀로부터 진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다. 그 리스트에는 자크 리베트, 라울 루이즈, 아르노 데스플레셍, 올리비에 아사야스 같은 작가들의 이름이 자리한다. 그런데 그녀를 익숙하게 대하는 시네필조차 모르는 게 하나 있으니, 그녀가 언젠가부터 밴드를 이끌고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다. (2009)는 잔느 발리바르와 그녀의 밴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다. 뮤지션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흔하디흔하다고 생각한다면 연출을 맡은 사람이 페드로 코스타.. 더보기
[리뷰] 바벳 슈로더의 '공포의 변호사 Terror's Advocate' 한 공동체가 악(惡)이라 규정하는 것의 속성과 범위를 살펴보면 거꾸로 그 공동체의 이상이 무엇인가를 파악할 수 있다. 즉 어떤 공동체든 그 존재를 위해 반드시 배타적인 악의 명명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좀 우스꽝스러운 예를 들자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일부 수구세력들이 그 존재를 위해 ‘친북좌파’라는 악의 명명을 필요로 하듯 말이다. 그런데 ‘친북좌파’란 잘못된 명명, 즉 실체 없는 악에 대한 명명이기 때문에 결국 이러한 명명을 수행하고 있는 공동체의 이상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굳이 그러한 공동체의 이상에 대해 논하자면 ‘친북좌파’라는 명명을 목청껏 수행하는 것 정도가 되겠다.) 2007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공개돼 작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벳 슈로더의 다큐멘터리 는 극.. 더보기
[리뷰] 스티브 맥퀸의 '헝거 Hunger' 스티븐 맥퀸의 데뷔작 (2008)는 1981년 메이즈 교도소에서 단식(hunger) 투쟁을 벌이다 66일 만에 사망한 IRA(아일랜드 공화군) 소속 보비 샌즈(마이클 패스벤더)의 실제 옥중 투쟁을 소재로 한다. 스티브 맥퀸의 표현을 빌면, “11살 때 보비 샌즈의 단식 투쟁을 TV로 접한 이후 내게는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연출자로 데뷔할 기회를 얻게 됐을 때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된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는 북아일랜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신교도(성공회)와 구교도(가톨릭), 즉 영국과 북아일랜드 간의 역사적 대립에서 연유한다. 17세기 이후로 줄기차게 아일랜드를 넘봤던 영국에 저항해 아일랜드는 독립하는데 성공하지만 신교도들이 월등한 북아일랜드는 영국 잔류를 주장했다. 과격단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