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두 여덟 명의 친구들이 참여해 주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들려준 영화와 극장 이야기들을 일부 옮겨보았다.

 

◆2월 24일(일), <베라 드레이크> 상영 후 전고운 감독 시네토크

김숙현(프로그래머) 사실 <베라 드레이크>는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한 적 없는 작품이다.

전고운(감독) 나도 극장에서는 이번에 처음 봤다. 느낌이 크게 다르다. 좋은 감독이 되고 싶어서 공부할 때부터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들을 봤는데 너무 훌륭했다. ‘연출’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그중 배우에게 좋은 연기를 끌어내는 것도 연출의 일인데, 물론 좋은 배우가 연기를 잘해야 하지만 감독의 연기 지도도 중요하다. 그런데 좋은 연기가 좋은 연기로 보일 수 있게끔 이야기나 감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몇 숏 안에 만들어지게 하는 것도 감독의 큰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놀라울 정도의 세공법이라고 생각했다. 

찾아보니 마이크 리 감독의 연출 방법이 특이하더라. 완성된 대본을 배우에게 주지 않고 기본적인 설정만 알려준다고 한다. 그래서 주연을 제외하고는 다른 배우들이 <베라 드레이크>가 낙태에 관한 영화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현장에 도착한 뒤 리허설을 매우 오랫동안 한다고 한다. 그 결과 이렇게 자연스럽고, 마치 스크린이 살짝 벗겨진 것 같은 생생한 기운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런 방법을 안 건 얼마 안 됐지만 정말 부러웠다. 나도 리허설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우와 소통을 통해 많은 것을 함께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베라 드레이크>의 준비 과정이 여섯 달 정도였다고 하는데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 길어질수록 그만큼 돈이 더 들어간다.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보통 3개월 안에 찍어야 한다고 했을 때 배우와 오랜 기간 뭔가를 함께 준비하는 게 아직은 좀 힘들다. 그리고 경제적인 조건을 떠나서 감독이 배우와 빛나는 무언가를 끌어낸다는 건 어떤 감독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이크 리 감독의 연출과 그 결과물에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여성 캐릭터를 여성인 나보다 더 통찰력 있고 깊게 다룬다는 점에서 감사하는 마음도 갖고 있다.

김숙현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친구들영화제에서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를 추천해준 친구들도 모두 여성이었다(박찬옥 감독-<네이키드>(1993), 윤여정 배우-<커다란 희망>(1988)). 오늘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전고운 사실 아직도 얼떨떨하고 먹먹해서 무슨 장면부터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이 영화를 ‘낙태’ 또는 ‘여성’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요약하기 쉽지 않다. 사회 구조적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 너무 많은 레이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그전에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찍을 수 있는 환경이 언제 갖춰질지 모르겠다는 슬픈 생각도 들었다. 일단 지금 생각나는 장면은 너무 많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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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두 여덟 명의 친구들이 참여해 주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들려준 영화와 극장 이야기들을 일부 옮겨보았다.


◆2월 23일(토), <블루> 상영 후 조민석 건축가 시네토크

김보년(프로그래머) 상영본을 결정하는 데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다. DCP와 35mm 필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그 질감의 차이가 너무 클 것 같았다. 그러다 이 영화를 디지털로 극장에서 틀었을 때를 상상해 봤는데 90분 동안 디지털로 재현한 균일한 클라인 블루를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논의 끝에 35mm 필름으로 상영하기로 했다. 이 영화는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봤을 때는 파란색이 ‘고여 있는’ 느낌이었고, 오늘 본 버전에서는 스크래치 때문인지 파란색이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필름에 시간의 두께가 쌓인 건데, 어쩌면 데릭 저먼이 원래 의도한 버전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웃음).

조민석(건축가) <블루>는 내가 뉴욕에서 살고 있던 93년에 ‘개봉 영화’ 중 한 편으로 봤다. 그 후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은 영화여서 이번에 추천했다. 그동안 시각 경험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변했다. 오늘 보면서 크게 느낀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막이다. 뉴욕에서는 자막 없이 봤는데 영국식 영어라서 다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이번에 자막과 함께 보니 자기 얘기를 심할 정도로 많이 했다는 걸 알았다(웃음). 데릭 저먼의 필모그래피에는 역사적인 인물을 다룬 작품이 많은데, 주로 이 인물들을 거쳐서 에둘러 자기 이야기를 했다면, <블루>는 이브 클라인에게 헌정은 하지만 결국 자기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아무래도 죽음을 앞둔 상황이다 보니 할 얘기가 더 많았을 거고, 더 직접적으로 말한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상영본이다. 내가 예전에 본 영화와 굉장히 다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당연히 지금처럼 필름이 낡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완벽하게 파란 추상적인 ‘이브 클라인 블루’로 기억하고 있다. 이브 클라인은 34살에 요절해 커리어가 10년 정도밖에 안 되는 작가이다. 이 사람은 공간 전체, 심지어 지구의 하늘까지 자기의 매체라고 생각했고, 시간과 장소를 비롯해 물질성을 초월한 작업을 목표로 했던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앞둔 데릭 저먼이 자기 몸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블루>는 굉장히 순수한, 아주 개념적인 이브 클라인 블루로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동안 25년의 세월이 덧입혀지며 낡은 필름이 된 <블루>는 원래의 작품 위에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이 생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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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두 여덟 명의 친구들이 참여해 주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들려준 영화와 극장 이야기들을 일부 옮겨보았다.

 

◆2월 17일(일), <더 체인질링> 상영 후 이경미 감독, 이해영 감독 시네토크

이경미(감독) 공교롭게도 이해영 감독은 이번에 <더 헌팅>(1963)을 추천했다. <더 체인질링>(1980)도 그렇고 소위 ‘귀신 들린 집’ 영화다. <더 헌팅>이 60년대 유령 영화의 대표적 작품이고 그 뒤 다시 이 장르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대표적 작품이 <더 체인질링>이다. 이 작품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 다른 영화들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컨저링>(2013) 같은 영화도 이 계보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해영(감독) <더 헌팅>과 <더 체인질링> 그리고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힐 하우스의 유령>(2018)까지 쭉 연달아 보면 ‘귀신 들린 집’ 장르가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경미 감독이 장담한 것만큼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지만(웃음),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흥행에 성공했던 사실은 몰랐다.

이경미 독립영화 규모로 제작을 했는데 흥행에 성공을 했다. 그런데 비평적으로는 비판도 좀 받았다. 실망한 사람들은 특히 영화 후반에 이르면 장르가 바뀐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보았고, 그래서 장르에 대한 배신감을 특별히 느끼지 않았다. 

요즘 귀신이 등장하는 각본을 쓰는 중이라 더 와닿았던 부분도 있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등장인물의 기분을 계속 상상하며 써야 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죽은 사람의 기분과 생각은 상상 밖의 일이지 않나. 오늘 <더 체인질링>에서 죽은 아이가 성질을 그렇게 많이 내는 걸 보면서(웃음), 그 지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죽고 난 이후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존재는 어떤 논리적인 합의가 안 되는 존재, 감정만 강하게 남아있는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해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링>(나카다 히데오, 1998) 생각도 많이 났고, 한편으로는 오컬트 공포물이라기보다는 추리물이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게 들기도 했다. <더 헌팅>이나 <힐 하우스의 유령>은 오컬트적 정서를 살리기 위해 장르적 세공을 정말 열심히 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는 조금 투박한 편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추리물적인 재미를 살리는 게 대중적인 장르적 접근 같기도 하다. 

이경미 70년대부터 여러 장르의 호러영화가 굉장히 붐을 이뤘다. <엑소시스트>(1973), <오멘>(1976)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초자연적 소재의 오컬트가 많이 나오다 보니 오히려 <더 체인질링>이 차별점을 보여주었다는 생각도 든다. 호러영화 팬으로서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관객들이 조금 부럽다. 당시에는 오컬트에 슬래셔 장르, 좀비까지 정말 여러 장르가 계속 등장했다. <나이트메어>, <13일의 금요일>, <할로윈>, <살아있는 시체들> 시리즈 등등. 

이해영 <더 체인질링> 이후에 <폴터가이스트>(1982)가 나왔다. 역사적으로 따진다면 이전의 호러영화들이 정서나 분위기가 주도하는 공포를 만들었는데  <폴터가이스트> 같은 작품들은 귀신 들린 집을 소재로 취하면서도 훨씬 투박한 장르적 요소들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배치한다. 그 후 80년대로 넘어가면 ‘팝콘 무비’ 계열의 호러영화들이 등장한다. 사실 으스스한 분위기의 호러영화는 팝콘 무비로 즐기기는 힘들다. <13일의 금요일>(1980) 같은 영화는 맥주 마시면서 왁자지껄 떠들며 보기 좋은 대표적인 영화다. <더 체인질링>은 이런 호러영화의 변화 가운데 놓인, 가교 역할을 한 작품이 아닐까 한다. 장르의 역사를 읽을 때도 중요한 징검다리로 한번 짚어야 할 작품 같다.

이경미 귀신 들린 집 소재가 왜 이렇게 늘 흥미롭고 무서울까 생각을 해봤다. 공포는 내가 가장 안전해야 하는 곳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것 같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 사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상황이 공포스럽듯이 말이다. 집은 내가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인데, 그곳이 무너질 때의 공포는 정말 클 것 같다. 그래서 집에 귀신이 들린다거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죽어서 나를 괴롭히는 상황, 즉 내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어떤 최후의 대상이 사라지고 무너질 때 공포를 느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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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두 여덟 명의 친구들이 참여해 주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들려준 영화와 극장 이야기들을 일부 옮겨보았다.

 

◆2월 17일(일), <마음의 저편> 상영 후 이해영 감독

이해영(감독)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컨셉이 극장과 영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옛날 동시상영관이 떠올랐다. 동시상영관에서는 개봉관에서 내린 영화 두 편을 연속으로 상영했는데, 가족 코미디와 더럽고 야한 영화를 붙인다거나 최첨단의 잘 만든 SF 영화에 터무니없는 B급 저예산 코믹 호러 영화를 붙인다거나 하는, 굉장히 다른 장르의 영화를 묶는 프로그래밍이 늘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그래서 이번에 약간 다른 색깔의 장르 영화를 붙여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한 편은 호러 영화 <더 헌팅>을 추천했고, 다른 한 편은 <마음의 저편>을 추천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대부>(1972)와 <지옥의 묵시록>(1979)을 연달아 찍고 난 뒤 <마음의 저편>을 만들기로 선택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상상해봤다. <대부>나 <지옥의 묵시록>의 그 완벽한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 썼던 에너지와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를 써서 정말 재미있게 즐기며 영화를 찍고 싶었을 것 같다. 그래서 유행가의 후렴구 한 줄밖에 안 되는 아무 내용도 없는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만들고, 자기가 좋아하는 톰 웨이츠를 데려다가 ‘마음대로 하는’ 느낌의 음악을 마치 뮤지컬처럼 계속 사용한 게 아니었을까.

게다가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것처럼 이 영화의 모든 공간은 다 세트다. 행크와 프래니가 사는 집 저 뒤로 희미하게 자동차와 사람이 지나다니는 게 보이는데, 그게 전부 진짜다. 보통은 소스를 찍어놓고 후경을 합성으로 붙이는데 실제 자동차와 사람이 지나가게 했다. 또 행크와 돈이 대화를 하다가 방이 어두워지고 창 너머에 있는 프래니로 신이 넘어가는 경우도 합성과 같은 영화적 기술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데, 실제로 세트 두 개를 만들어 촬영했다고 한다. 즉 감독이 정말 마음껏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면서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대단한 감독이 영화 한 편에 자기가 갖고 있는 권력과 재능을 마구 ‘낭비’하는 게 느껴져 볼 때마다 굉장히 즐겁고 재밌다.

허남웅(영화평론가) 감독님 말씀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즐기면서 다 했는데, 그 후폭풍이 너무 심해서 이후 코폴라 감독이 재기하기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마음의 저편>과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기록적으로 흥행에 실패했다고 한다. MGM에서 처음 이 영화를 제안했을 때는 제작비를 한국 돈으로 24억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코폴라 감독이 판권을 직접 사서 진행했고 결국 최종 제작비가 312억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하고 사흘간 흥행수입이 35억이었고, 그 뒤로는 관객수가 빠르게 떨어지면서 총 흥행수입이 76억 정도에 그쳤다.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실패했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코폴라 감독의 전성기가 이 영화 때문에 좀 더 빨리 끝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해영 코폴라 감독이 정말 자기 마음의 소리만을 따라가면서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과하기도 하고 자기 절제력도 전혀 없다. 하지만 그만큼 영화에 대한 동경이 순수하게 드러나 보였다. 나는 오늘 이 영화를 처음으로 극장에서 봤다. 어떤 느낌일지 굉장히 설렜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프린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옛날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이런 느낌을 자주 받았다. 아무것도 없는 무지 화면에 스크래치가 있고 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 영화사 로고나 영화 제목이 뜨면 영화가 시작하는구나, 하고 집중하던 그때 생각이 났다. LP로 음악을 들을 때 먼지 긁히는 지지직 하는 노이즈를 음악의 전주처럼 여겼던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 그런 느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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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친구들이 들려준 영화 이야기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는 모두 여덟 명의 친구들이 참여해 주었다. 친구들은 자신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본 뒤 관객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들려준 영화와 극장 이야기들을 일부 옮겨보았다.


◆2월 16일(토), <사울의 아들> 상영 후 김일란 감독

김보년(프로그래머) <사울의 아들>을 극장에서 보니 좀 더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들이 저절로 더 날카롭게 다가왔다. 

김일란(감독) <사울의 아들>은 2016년에 개봉했는데 그때는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이번에 극장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 추천을 했다. 보셨다시피 이 영화의 화면 비율이 1.37:1이다. 이 비율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일이 별로 없고, 상영한다고 해도 마스킹을 잘 해주는 극장은 찾기 힘들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의 작은 화면으로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더 잘 보이는 경험도 했다.

다른 작품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보기 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진짜 영화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소설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재현한다. 그중 한 챕터의 인칭이 “너”이다. ‘너는 ~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소설에서 인칭의 문제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이고 2인칭, 즉 ‘너’라는 인칭은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소년이 온다』에서 만난 ‘너’라는 인칭이 영화적이라는 것은 ‘영화의 시선’이 많은 경우 ‘너는’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카메라는 현재진행형으로 ‘너는 ~을 하고 있다’를 보여준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도 카메라의 워킹으로 주인공을 따라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다음 챕터에서 인칭이 ‘나는’으로 바뀐다. 그때는 다시 한 번 화자의 감각을 내가 생생하게 느끼며 책을 읽게 되더라. <공동정범>을 끝낸 다음 이 소설을 읽었는데 그때 내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도 이런 감각의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잠시 했었다. 1인칭과 2인칭의 차이. 고통의 감각을 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자문하기도 했었다.

그 뒤 <사울의 아들>을 봤다. 나는 이 영화의 오프닝 장면을 보며 『소년이 온다』의 첫 번째 챕터를 읽는 것 같았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사울이란 인물에 집중한다. 그리고 사울을 바라보는 카메라가 나, 혹은 우리라고 느끼기 시작하자 이 영화가 어느 순간 현재형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너는 지금 시체를 처리하고 있다.” 같은 문장을 읽는 것 같았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끊임없이 ‘너(사울)’를 쫓고 있지만 관객인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이 속에서 매우 강렬한 공포와 답답함을 느꼈다. 내가 왜 이 폐쇄적인 상황을 견뎌야 하냐고 자문했다. 고통을 다르게 감각하게 만드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객들과 같이 보고 싶었다.

김보년 감독님이 『소년이 온다』 얘기를 미리 하셔서 나도 읽어 보았다. 광주를 다룬 소설이란 것만 알고 있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폭력을 묘사하는 방식이 굉장히 강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고통이 생생하게 그려졌을 때 내가 과연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도 되는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년이 온다』는 소설이라서, 즉 문자를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작가가 쓴 만큼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사울의 아들> 같은 극영화는 이미지를 재료로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과잉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로서 이 영화의 어떤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는지 궁금하다.

김일란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지의 원칙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사운드를 어떻게 쓸 것인지 결정하고, 후경에 등장하는 시체를 어떻게 얼마만큼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원칙을 정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문제다. 자료를 찾아봤더니 감독은 촬영감독과 논의하면서 사울이 볼 수 있는 것만 찍겠다는 원칙을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전지적 시점의 숏, 또는 소위 ‘설정 숏’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울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으로만 영화를 구성하는 게 첫 번째 원칙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연출 중 하나는 ‘포커스 아웃’이다. 아마 주인공이 느끼는 실제 감각을 포커스 아웃을 통해 구현한 게 아닌가 한다. 

나도 용산 참사를 다큐로 만들면서 많이 조심스러웠다. 어떤 컷을 선택할지 고민하며 혹시나 이 장면이 ‘선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무척 많이 고민했다. <알제리 전투>(1966)를 만든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이 <카포>(1960)라는 홀로코스트 소재 영화를 만들었었다. 이 영화에서 수용소에 갇힌 소녀가 철조망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 장면이 등장한다. 감독은 이 장면을 트래킹숏으로 연출했다. 평론가이자 감독인 자크 리베트는 이 장면을 ‘천박하다’고 평가했다. 한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스펙타클한 대상으로 만들 수 있는지 질문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아무리 실재했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다루더라도 폭력적인 상황을 재현하며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건드릴 때 감독은 늘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사울의 아들> 역시 그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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