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의 황금기:1930-1960’ 기간 중에는 프랑스 영화의 고전기 작품들을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두 차례의 영화사강좌가 마련되었다. 그 첫 번째 강좌로 지난 10월 30일 <무셰트> 상영 후에는 상명대 프랑스어문학과 정의진 교수가 강사로 나서 ‘브레송 영화와 프랑스 문학’에 대하여 들려주었다. 그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정의진(상명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오늘은 문학과 영화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브레송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겠다. 브레송 영화를 보고 처음부터 감동 받았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를 절망시킨 감독이 둘 있었는데, 타르코프스키와 브레송이었다. <노스텔지아>와 <당나귀 발타자르>를 보고 많이 졸기도 했다. 지금은 둘 다 매우 좋아하고 존경한다.
영화사적으로 보자면 브레송은 조금 미묘한 위치에 있다. 1901년에 태어나 1999년에 죽었다. 굉장히 오래 살았는데 이 분이 98세를 살았다는 게 큰 위로를 줄 때가 있다. 영화적 가능성의 한계까지 가며 주제에 있어서도 매우 강한 윤리의식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오래 사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브레송의 캐리어는 다소 특이한데, 최초의 장편영화인 <죄악의 천사들>이 1943년에 나왔다. 데뷔한 해가 42살이 된다. 브레송 영화의 전성기는 50대에 시작된다. 사실 브레송 미학이 완성된 시기는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와 <사형수 탈출하다>가 나온 무렵이라고 볼 수 있다.

문학과 영화라는 관점에서 브레송이 특이한 점을 누벨바그 감독들의 평가를 빗대서도 알 수 있다. 누벨바그 감독들이 처음에 평론가로 활동하며 프랑스 영화를 비판할 때 주된 이유가 프랑스 영화가 지나치게 문학적이라는 거였다.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문학적 내러티브에 너무 많이 기댄다는 것과 지나친 품격을 지향한다는 거다. 문학 작품의 선택 기준도 주로 문학사의 고전들을 선택하곤 했다. 발자크나 위고 등. 누벨바그 감독들은 차라리 미국의 B급 영화들이 보다 영화적이며 이미지의 감각적인 특수성이라는 측면에서 프랑스 영화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벨바그 감독들은 브레송을 '거장들의 거장'이라 부르며 존경했다. 브레송은 프랑스 문예영화의 시기를 종결하면서 누벨바그가 도래하는 전환점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브레송의 전성기는 누벨바그의 전성기와 대략 일치한다는 점에서 브레송을 영화사의 어떤 경향으로도 편입시킬 수 없는 특이성을 생각할 수 있다. 한국에도 브레송의 저서인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노트』라는 책이 번역되어 있는데, 이 책이 세계영화사에 직간접적으로 남긴 족적은 어마어마하다. 가령 배우들의 무표정한 연기라는 측면에서, 핀란드의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서도 브레송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브레송은 시네마가 아니라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이름을 고집했다. 브레송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시네마는 영화적이 아니라 문학적인 것이다. 반면 시네마토그래프는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생생함과 신선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예컨대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어떻게 생생하게 볼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그 선명한 명암과 미세한 떨림 같은 것. 즉 카메라의 눈을 활용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담아내는 거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 브레송은 "시네마토그래프는 일종의 글쓰기다. 운동하는 이미지와 소리로 쓴 글이다"라고 비유한다. 글쓰기는 단순히 내용 전달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언어를 조직할 것인가가 문제다.



브레송은 배우를 '모델'이라고 부른다. 모델이라는 개념을 채택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배우의 연기를 거부하기 위해서다. 브레송은 배우들의 연기를 두고 일정하게 구성된 감정이나 정서나 내용 등을 일정한 연극적 내지는 문학적 규약에 의해 연기하는 것이라 본다. 브레송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을 금지한다. 미리 계산된 감정을 넣지 않는다는 거다. 영화를 처음 발명했을 때 나뭇잎을 봤을 때의 놀라움을 보존하려면 그 이미지에 선험적인 관점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그 방식 중의 하나가 이미지를 중립적으로 놔두는 거다. 음악을 많이 쓰지 않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배우들의 연기는 중립적으로 통제된 채 그 상황에서 자신 안에 있는 것을 그대로 뽑아낼 것을 요구받는다. 통제된다는 것은 무감정이 아니라 계산되지 않는다는 거다. 예컨대 무셰트가 우는 장면은 미리 계산한 것이 아니라 정말 우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우는 장면과 다르다. 정말 운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고통이 굉장히 일상적이라서 이를 견뎌야만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감정들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평소에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울게 된다. 무셰트의 울음은 바로 그렇게 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브레송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효과음이다. 대사가 적은 대신, 아주 작은 소리까지 생생하게 잡혀있다. 아무 소리도 안 나는 시간은 거의 없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연기도 없고 대사도 적으니까, 남는 것은 이미지와 소리만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브레송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 문체다. 즉 영화로 보면 스타일이다. 문체는 보편적인 것을 벗어나는 작가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브레송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영화 일반의 것으로 규정화 한다. 브레송에게 스타일은 테크닉이 아닌 모든 것이다. 실제로 브레송은 자신이 『시네마토그래프의 노트』에서 했던 말을 영화에서 그대로 시행한다. 아포리즘으로 아주 짧게 쓰여진 글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자신의 영화관에서 나오는 일종의 일반 문법을 추출해 낸다. 많은 감독들이 여기에서 큰 영감을 얻고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 내곤 한다. 가령 카우리스마키는 브레송적인 딱딱한 연기방식을 채택하면서도 거기에 블랙유머들을 집어넣어 변용한다.

브레송 영화에서는 모든 심리 묘사가 제거돼 있다. 감정이 갑자기 격해지는 게 아니라 영화를 따라서 차곡차곡 순차적으로 쌓이게 된다. 신기한 경험이다. 무셰트가 쳐한 상황은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크게 슬프지 않다. 그런데 영화의 끝 즈음에 오게 되면 마음의 동요들이 일어나게 된다. 무셰트가 겪는 감정들을 같이 겪게 되는 느낌이 있다. 마음을 열고 감각을 열고 이미지와 소리를 느끼는 거다. 어떤 감각이나 감정이나 판단이 생겨나는 방식은 이러하다. 예를 들어 여러 장면들이 있는데 그 각각의 장면들이 서로 연결된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모든 이미지들은 다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자연 상태 그대로, 최대한 인위가 배제된 상태로. 인물들을 봐도 그렇다. 모든 등장인물이 독자적인 자기 모습을 잃는 일이 없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비중이 많든 적든 간에 말이다. 누가 누구를 위해 연기하거나 종속되었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몽타주의 방식이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용이 드러나는 방식은 더욱 간접적이고 은밀해진다. 가령 무셰트는 악센에게 강간을 당하지만, 그 이후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건 거짓말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게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영화를 감각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이해된다. 영화 전체적으로 차근차근 쌓여오던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브레송의 방식에서 다른 감독들이 배우는 점이 많을 것이다. 문학적인 서사와 인과관계가 아니라, 어떻게 이미지에 입각해서 이미지로 시작해 이미지로 종결시키는가, 소리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하는가와 같은 문제들. 그리고 어떤 장면을 어디에 넣을 것인가의 문제.

마지막으로 브레송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사형수 탈출하다>를 보면 정말 특이한 영화다. 영화 내내 화면은 어둡고 계속 감시 카메라가 돈다. 새카만 곳에서 죄수들이 몰래 이동하는 것이 장시간 보여진다. 그리고 교도소 내부를 감시하는 조명이 있다. 어두운 장면이 10분 이상 지속되다 보니까, 나중에는 감시하는 조명등이 비춰질 때 감각적으로는 해방감을 준다. 빛 때문에 어떤 시원함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그 빛이 비춰지면 죄수들은 사형을 당하는 건데, 이상하게도 그 빛이 구원처럼 느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무셰트>의 경우도 그런 역설이 있다. 무셰트는 세 번째 굴렀을 때 물에 풍덩 빠진다. 그 물소리의 여파가 남고 바로 찬양하는 음악이 나온다. 이것은 사실 죽음이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구원이기도 하다. 브레송에게서 구원의 계기 같은 것들은 철저하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물과 이미지 안에 내재한다. 예컨대 극단적으로는 감시소의 조명처럼 말이다.
정리하자면, 베르나노스의 소설과 브레송 간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원작의 내용과 주제를 그대로 다 끌고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브레송의 방식으로 변형되어 있다. 문예영화의 전통 하에 있으면서도 그 이후의 누벨바그 세대로의 전환점에 있는 미묘한 브레송의 위치를 이런 점에서 볼 수 있다. 문학과 영화라는 관계를 연구할 때, 원작과의 유비관계를 보는 것이 허무해져버리는 영화들이 바로 브레송의 영화인 것 같다. 영화가 문학을 차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철저하게 영화적으로 차용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브레송을 통해 볼 수 있다.

정리: 박영석(관객에디터) 사진: 이호규(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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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제로>는 요즘 나오는 총천연색의 빠르고 박력 넘치는 액션과는 거리가 먼 영화지만 다른 면에서 은밀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품행점수 빵점의 문제아들이 일으킨 작은 반란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부제가 오죽하면 ‘학교의 작은 악마들’일까.

<품행제로>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1933년에 처음 공개된 직후 상영을 금지 당했다가, 세계2차 대전이 끝난 1946년에야 해금되었다. 하긴, 교장선생님을 난쟁이로 표현하고 학생 하나는 선생님에게 욕을 하며 대드는가 하면, 장관까지 참석한 학교의 기념식을 아이들이 작정하고 망치기까지 하니, 지금이라면 신문 1면과 9시 뉴스에 나오고 “요즘 애들은 쯧쯧...” 하는 탄식을 전국적으로 불러일으킬 만하다. 하지만 감독 자신이 실제로 8년을 기숙학교에서 보냈고, 그러한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아이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축제’ 장면은 역사적으로 프랑스혁명을 형상화한 여러 회화작품들의 이미지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영화 속 학교가 아이들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아이들이 벌이는 반란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예를 들어, 타바르가 반란에 앞장서서 참여하는 이유에는 이 아이가 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선생님이 타바르의 손을 능글맞게 쓰다듬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선생님이 학생의 손을 만진다고 모두 성추행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그 장면을 그렇게 강조해서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는 건 단순히 ‘손을 만진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함축해서 전달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의 소지품을 뒤지고 훔치는 사감 선생은 어떠한가? 아이들과 함께 격의 없이 어울리는 위게 선생님이 교장선생님에게 엄청나게 눈치를 받는 걸 보면, 평소 이 학교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죄수처럼 대해왔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거사를 치른’ 아이들이 지붕 위를 뛰어가는 장면을 비춘다. 그들 앞에는 그저 뻥 뚫린 하늘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리 좋거나 밝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벌인 한밤의 축제는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관객들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과 해방감을 선사한다. 반짝반짝한 컬러와 엄청나게 빠른 편집의 요즘 영화들이 결코 전달해 줄 수 없는 기이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도, 이 영화만이 전해줄 수 있는 특별한 가치다.

글/ 김숙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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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제로>는 프랑스 영화의 1930년대를 대표하는 장 비고 감독의 대표작이자 데뷔작으로, 억압적인 교육에 맞선 학생들의 모습을 영화화했다. 그런 이유로 상영 당시 격렬한 논쟁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이유는 현실을 판타지로 둔갑시킨 장 비고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에서 기인한다. 이를 일러 시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지만 이에 상관없이 <품행제로>는 학교 교육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작금의 한국에서 보다 의미 있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이에 10월의 영화관 속 작은 학교의 프로그램으로 <품행제로>를 선택했는데 상영 이후 열린 이강옥 코디네이터의 강연 일부를 여기에 공개한다.

장 비고의 <품행제로>(1933)는 기숙학교의 권위적인 교육 제도와 규율에 맞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저항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어른들의 관점이 아닌 아이들의 관점에서 사실적이면서도 시적인 판타지로 그려낸 영화이다. 여기서 판타지는 단지 힘들고 갑갑한 현실을 잊기 위한 아이들의 상상력에서 나온 판타지일 뿐만 아니라 억압적인 현실을 이겨내고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판타지인데, 이는 바로 장 비고가 영화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사회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현실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를 환상적이고, 따뜻하며, 활력 넘치고, 때로는 코믹하게 표현함으로써, 관객들의 정서와 의식을 자극하여 궁극적으로 우리 삶과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1930년대 초반, 초기 유성 영화의 여러 가지 실험이 시도될 무렵 만들어진 이 영화는 여러 가지 기술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와 소리의 조화, 기발한 편집 등을 통해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들의 상상력이 가득한 판타지를 표현하는 방식이 놀랍도록 독특하고 아름답다.

<품행제로>에서 마술과 시적인 판타지는 현실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온다. 우선 공간의 변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방학이 끝나고 마치 지옥으로 끌려가듯 기숙학교로 돌아가는 기차 안은 슬랩스틱 코미디(과장되고 우스운 동작의 익살극)의 경연장이 된다. 엄지손가락을 마음대로 뺐다 끼었다 할 수도 있고, 코로 부는 나팔 소리가 제법이며, 풍선은 만지고 싶은 젖가슴이 되고, 별안간 엉덩이에 깃털을 꽂고 닭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또한 아이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증기 기차의 연기와 어우러져 이 ‘지옥 행 열차’는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화한다. 한편, 새로 부임한 위게 선생은 찰리 채플린 복장을 하고 유일하게 아이들과 교감하는 어른인데, 답답하던 교실이 때로 그와 함께 있을 땐 순수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손에 있던 공이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는 마술도 가능하고,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물구나무도 서고, 심지어 물구나무를 선 채로 만화도 그리며, 또한 이 만화가 별안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되어 숨 막히는 교실을 활기찬 동심의 공간으로 되돌려놓는다.

특히, 극 중 화면이 느려지는 곳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동시에 변화가 일어난다. 아이들이 위게 선생과 마을로 산책을 나갔을 때, 한 아름다운 여성을 좇아 위게 선생이 뛰고, 아이들도 따라서 뛰어가는 장면에서는 마치 그들이 오랜만에 맛보는 자유와 해방감을 보여주듯, 공간은 넓어지고 시간은 느려진다. 이는 아이들이 좀 더 머물고 싶은 공간이며 좀 더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시간, 즉 새로운 자유와 해방의 시공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교 축제일 전야에 아이들은 해골 깃발을 높이 들고 반란을 일으키는데, 사감과의 베개싸움으로 인해 기숙사 안은 온통 난장판이 되고 터진 베개에서 나온 깃털이 흩날리는 가운데, 화면이 느려지며 아이들은 기숙사 통로에서 마치 엄숙한 의식과도 같은 행진을 시작한다. 베개싸움 장면에서는 경쾌한 느낌의 관악기, 타악기 소리가 주를 이루는 반면, 깃털이 날리고 화면이 느려지는 부분에서는 잠시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가, 행진하는 장면에서는 마을로 산책을 나갔을 때 부르던 아이들의 합창 소리가 고음의 허밍으로 오묘하고 신비롭게 들려온다. 이때의 환상적인 음향 효과도 한밤중의 기숙사를 자유와 해방의 시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물들에게도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가장 소극적이고 유약하던 아이가 선생님의 부당한 처우에 당당하게 욕도 할 수 있으며, 반란의 깃발을 높이 들고 선언문을 낭독하는 주동자로 변모한다. 또한, 억압당하던 공간인 교실과 기숙사에 있던 아이들이 하늘을 향해 지붕 위로 올라가거나, 학교 앞마당을 당당하게 차지하는 반면, 권위적인 기존 사회 질서를 대변하는 학교 축제일의 초청 인사들은 답답한 기숙사 방으로 쫓겨 들어가 채광창으로 초라하게 밖을 내다보는 등 공간을 점유하는 주체가 완전히 뒤바뀐다.

<품행제로>에서 서서히 일상을 변화시키는 에너지, 즉 이러한 마술과 시적인 판타지의 기저에는 바로 비판적인 시각으로 부조리하고 위선적인 억압에 저항하는 아이들의 용기와 상상력이 있다. 특히, 어른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이를 잘 보여준다. 타바르가 교장 선생님의 방에 불려가, 동급생인 브뤼엘과 가깝게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이런저런 훈계를 들을 때, 타바르의 눈에 비친 교장 선생님은 마치 상자에서 스프링을 달고 튀어나온 듯한 마귀 인형 같다. 또한 학교 축제일 아침, 지난 밤 폭동으로 깊은 잠에 빠진 기숙사에서 네 명의 악동들(코사, 콜랭, 브뤼엘, 타바르)은 사감 선생을 침대에 꽁꽁 묶어 일으켜 세우고 마치 예수의 십자가형과도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아이들에게 억압적인 사감 선생이란 잠시나마 ‘처형’시켜야 할 존재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학교 축제를 위해 객석에는 기존 사회 질서를 대표하는 종교, 군대, 국가, 학교를 상징하는 인물들인 신부, 군인, 도지사, 교장 등과 함께 실제 사람 크기의 인형들이 앉아있다. 네 명의 악동들이 지붕에서 온갖 쓰레기들을 던지자 이 인형들은 힘없이 뒤로 나자빠지고 마는데, 바로 우스꽝스러운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상상력과 조롱 섞인 시선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을 이야기할 때 장 비고의 어린 시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아버지는 일체의 정치권력이나 공공적 강제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웠던 무정부주의자였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수도 없이 감옥을 드나들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무정부주의, 반(反)권위주의, 자유주의를 체득하게 된 장 비고는 12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옥중에서 사망하자, 친척집과 기숙학교를 전전하며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 감독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품행제로>다. 기성 사회의 위선적인 억압에 대한 아이들의 반항을 그림으로써 사회 질서를 교란시키는 위험한 영화로 낙인 찍혀 <품행제로>는 개봉한 지 얼마 안 되어 극장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해인 1945년까지 프랑스 내에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장 비고는 사회적인 통념에 강한 저항 정신을 가지고 있던 활동가이자, 예술 전반에 걸친 탁월한 감각과 재능으로 영화적인 실험 면에서도 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시대에 앞서가는 변화를 추구하던 혁신적인 예술가였다. 그는 생애 동안 제작한, 총 러닝 타임이 3시간도 채 되지 않는 4편의 영화만으로도 사회적으로나 영화적으로 중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건강이 악화되자 따뜻한 지방인 니스에 정착하여 만든 아름답고도 사회 풍자적인 다큐멘터리 <니스에 관하여>(1930), 실험적인 영상으로 특유의 스타일과 미학이 잘 드러난 <장 타리스, 물의 왕>(1931), 억압적인 교육에 대한 아이들의 저항을 다룬 <품행제로>(1933)와 마지막 명작이 된 매혹적인 영화 <라탈랑트>(1934) 등을 남기고 지병인 폐결핵을 앓다 1934년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치열한 예술혼은 오늘날까지 뜨거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장 비고의 유토피아적인 정신, 바로 <품행제로>의 시적인 판타지는 변화를 갈망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유산이다.

글/
이강옥(영화관 속 작은 학교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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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은 할리우드로 넘어가 작업하던 막스 오퓔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윤무 La Ronde〉(1950)에 이어 두 번째로 연출한 작품이다. <윤무>에서처럼 <쾌락> 역시나 내레이션이 등장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되며 트레이드마크라 할 만한 우아한 카메라 움직임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막스 오퓔스의 영화적 세계가 심화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영화는 기 드 모파상의 작품을 원작삼아 ‘쾌락’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쾌락>의 내레이션은 <스팔타커스>로 1961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피터 유스티노프가 맡았다. 스탠리 큐브릭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중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유일한 경우다.) 첫 번째 에피소드 ‘가면’은 지나간 젊음이 아쉬워 가면을 쓰고 무도회장에 들러 여성들에게 구애하는 노인의 이야기이고, ‘텔리에 부인의 집’은 조카의 성찬식에 참여하기 위해 창녀들과 함께 시골로 가는 텔리에 부인의 사연이며, ‘모델’은 자신의 모델과 사랑에 빠진 쟝이라는 화가가 등장해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은 사랑의 면모를 보여준다.
막스 오퓔스는 <쾌락>의 내레이션을 통해 행복에 대해 이런 생각을 드러낸다. “행복은 그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에피소드에서 보이는 쾌락의 실체는 지극히 짧고 제한적이다. ‘가면’의 노인의 경우, 무도회장에서 만난 여인들과의 짧은 쾌락 이후 나이를 이기지 못해 쓰러지고 마는데 그렇게 된 사연의 이면에는 오랫동안 젊음을 그리워해온 회한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모델’의 화가 쟝 역시 상대 모델과 뜨거운 인연을 이어가지만 사랑의 유통기한은 그리 길지 못하다. 연애 초반에는 잠시만 떨어져도 안달 나는 사이였다가 이내 관심이 멀어지면서 서로에게 상처주고 비수를 꽂는 남보다도 못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연극 연출가로 일한 경력 때문인지, 막스 오퓔스의 영화는 무도회장(‘가면’), 기차 안(‘텔리에 부인의 집’), 집안(‘모델’)과 같은 실내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오퓔스 감독은 실내에 어울릴만한, 그러니까 제한된 공간에서의 카메라 이동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쾌락>에서도 그런 카메라 이동의 미학은 여전히 눈을 사로잡는데 ‘가면’에서 젊은이로 분장한 노파가 여인의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에서의 카메라는 빙글빙글 돌아가며 우아한 움직임을 뽐내고 ‘모델’에서는 쟝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계단을 뛰어올라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카메라의 시점이 되어 실제적인 느낌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오퓔스의 카메라 이동 미학은 계단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이 계단의 미장센에는 오퓔스가 품고 있는 행복에 대한 생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찰나의 쾌락 뒤 찾아오는 씁쓸한 비애가 짧은 상승과 급격한 하강이라는 계단의 이미지 속에 덧씌워져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 크리스 후지와라는 “오퓔스의 영화에는 스타일이 있다. 숙련된 장식가들은 의미의 부재를 은폐하기 위한 예쁘장한 터치들을 ‘스타일’이라고 말하지만 오퓔스의 스타일은 오히려 의미를 생산한다.“고 평했다. 또한 스탠리 큐브릭의 초기 영화를 보면 유별나게 부드러운 카메라, 복잡한 크레인, 그리고 바람에 날리는 듯한 돌리의 움직임 등에 오퓔스의 영화가 보여준 매혹적인 숏의 운용이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또한 2편의 영화에서 함께 작업한 배우 제임스 메이슨은 막스 오퓔스의 카메라 움직임에 대한 짧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


A shot that does not call for tracks 트랙이 필요하지 않는 숏이란
Is agony for poor old Max, 불쌍한 늙은 막스에겐 고통일지니
Who, separated from his dolly, 달리에서 떨어지자
Is wrapped in deepest melancholy. 깊고 깊은 멜랑콜리에 싸이네
Once, when they took away his crane, 한번은 크레인을 뺏기자
I thought he'd never smile again. 다시는 미소 짓지 않을 사람처럼 굴었지

글/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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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에 이어 베르나노스의 소설 <무셰트의 새로운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면서 브레송은 시네마에 대한 고유한 해찰에 이른다. <무셰트>는 종래의 영화들에서 거의 강박화되어 있던 어떤 종류의 목적성도 찾아낼 수 없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중시되는 것은 사건이나 스토리 전개가 아니라 작중인물의 내면의식이다. 스토리를 통해 내면의 목소리가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의식에 의해서 스토리와 관계없는 새로운 이야기가 창출되는 것이다.

불행한 고아도, 그렇다고 사랑스러운 요정도 아닌 소녀 무셰트는 속내를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시름시름 앓는 어머니와 주정뱅이 아버지의 학대로 존재를 부정하는 그녀는 결손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되는 대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삶의 의욕을 놓아버린 그녀에게 찾아온 충일한 순간(축제에서 한 남자와의 짧은 교감)마저 아버지에 의해 좌초당한다. 무셰트가 세계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식은 침묵이다. 그녀의 반사회성은 곳곳에서 표출된다. 합창 시간에 노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우들 앞에서 멸시당한 무셰트는 비탈에 숨어 아이들에게 흙을 던지고, 진흙 묻힌 신발로 회당을 더럽혀 신을 능멸한다. 올가미에 걸린 산짐승처럼 사냥꾼에게 능욕당한 그녀는 어머니가 죽자 완전히 버려진다.


<무셰트>에서 브레송의 미니멀한 스타일은 절정에 달한다. 감각적으로 황량하고 신랄한 이미지의 잔혹함이 시종 시선을 압도한다. 단순하고 절제된 카메라워크는 심리 진술 이상을 겨냥하고 있다. 브레송의 전매특허처럼 알려진 파편화된 신체의 이미지는 <무셰트>에서 매우 엄격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스크린을 둥둥 떠다니는 머리 없고 손 잘린 이미지들은 파쇄된 영혼의 시각적 구현이라 할만하다.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프레이밍에 의해 절단된 몸의 분절은 삶을 위한 투쟁, 갈가리 찢긴 세계와 자아의 분리, 운명에의 굴복을 묘사하고 있다.

<무셰트>는 우리들 누구라도 삶의 비의를 느끼는 무셰트와 진배없는 영혼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럴듯한 의미맥락을 꾸며내는 것은 영화의 이해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브레송의 작의를 완전히 드러내기에 어떤 설명도 미진함이 남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게 삶을 옥죄어 오는 악마들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대응하던 소녀의 자살은 그래서 끝끝내 응답을 거절하는 미해결의 인상을 남긴다. 브레송의 혁신성은 바로 여기, 끈질기게 다가가려는 우리를 따돌리고 어떤 감정과 심리묘사도 제거한 이미지의 냉혹함을 이끌어내는 방식에 있다.

글/ 장병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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