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손 웰즈와 아나크로니즘

지난 8월 21일 오손 웰즈의 <위대한 엠버슨가> 상영 후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현대성’이란 제목의 영화사 강좌 마지막 시간이 이어졌다. ‘오손 웰즈와 아나크로니즘’을 주제로 열린 아닐 강좌의 강사는 유운성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맡았다. 그날 현장을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지금 보신 <위대한 앰버슨가>는 오손 웰즈가 처음에 편집했던 버전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고, 오리지널 버전은 아직 볼 수가 없는 상태다. 오리지널 버전은 132분인데 지금 보신 버전은 88분이고, 심지어 몇 개의 장면은 웰즈가 연출하지조차 않았으며 그나마 웰즈가 연출한 장면들조차 순서가 많이 바뀌어있는 상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 공개된 이래로 지금까지 영화 비평가들에게 ‘어디까지가 영화 비평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해오고 있다. 삭제된 장면들은 볼 수 없지만 스크립트, 시나리오, 그리고 웰즈가 내렸던 연출 지침 등은 남아있기 때문에 원래의 영화를 어느 정도 추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사료들을 토대로 ‘이 장면은 원래 이런 것이었어, 몹시 탁월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영화 비평인가 하는 지점이다. 그런 면에서 먼저 이 영화에 얽힌 사건들을 말씀드리며 웰즈가 처음 만들려고 했던 것을 상상적으로라도 그려보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웰즈가 영화를 만들고 나서 개봉 이후에 다시 본 첫 번째 영화가 <위대한 앰버슨가>라고 하는데, 아주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차라리 이 영화에 가해진 일을 모르는 채로 죽는 편이 나았으리라는 것이다. 웰즈는 자신 몰래 행해진 편집들만 아니라면 이 영화는 <시민 케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이렇게 불완전한 판본으로 남게 된 이유에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텐데, 하나는 흔히 회자되는 대로 ‘뛰어난 예술가의 영혼을 억누른 사악한 헐리우드 제작사들’ 때문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웰즈 자신의 심리적인 기벽과 성격적인 결함이 이 영화를 시작부터 파탄으로 몰고 갔다는 주장이다. 찰스 히건 같은 평론가는 웰즈가 이 영화의 후반작업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것은 완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주장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로버트 캐링거라는 학자의 것으로, 그는 RKO에 남아있던 여러 자료들을 모아 <위대한 앰버슨가>의 일종의 텍스팅적인 복원을 시도하여 <위대한 앰버슨가의 복원>이란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에 실린 자료들 자체는 후에 평론가들이 많이 참조하게 되었지만, 그가 시도하는 오이디푸스적인 맵핑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를테면 엄청난 셰익스피어주의자였던 웰즈가 어떤식으로도 <햄릿>을 연출한 적이 없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고, <햄릿>이 그의 자전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조너선 로젠봄은 캐링거의 이러한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이 영화에 일어난 일은 당시 웰즈가 처해있던 제작 상황을 보는 것으로서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위대한 앰버슨가>의 촬영이 끝나고 바로 1주일 후에, 웰즈는 차기작으로 계획했던 <잇츠 올 트루>의 촬영을 위해 브라질로 떠나게 된다. 리오 카니발 장면이 꼭 필요했는데, 그 시기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당시 <위대한 앰버슨가>의 편집 담당은 로버트 와이즈였는데, 웰즈는 그와 전화와 전신으로 연락을 해가며 원격 편집 감독을 했다. 이런 방식은 한 달여 동안 순조롭게 이루어져 132분짜리 오리지널 판본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런데 42년 3월, 당시 RKO의 수장이었던 조지 셰퍼는 와이즈에게 영화 길이를 좀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 했고, 와이즈는 이를 웰즈에게 전한다. 웰즈가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사이, 무작위의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오리지널 판본의 첫 사전시사가 진행되었다. 관객들로부터 회수된 설문 결과는 그리 처참한 편이 아니었지만, 당시 참가자들의 회고에 따르면 상영장의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고 한다. 이에 당황한 경영진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이틀 후에 임의로 17분을 단축시킨 115분 버전의 시사회를 한 것인데, 이번에는 설문 결과가 조금 더 호의적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웰즈는 이후에 영화를 더 단축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이에 따라 웰즈는 여러 가지 수정안들을 미국으로 보내지만, 마침내 셰퍼는 웰즈의 동의 없이 재촬영을 결정한다. 결국 재촬영 분량들을 끼워 넣고 러닝타임을 단축시키고, 장면들의 순서를 바꾼 상태로 <위대한 앰버슨가>는 결국 42년 8월에 개봉했고, 처참히 실패했으며, 웰즈는 다시는 헐리우드에 발붙일 수 없게 된다.

이런 대략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원래 웰즈가 만들려고 했던 <위대한 앰버슨가>를 상상적으로나마 그려보고 나서야 여기서 드러나고 있는 아나크로니즘, 시대착오적 감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웰즈의 몇몇 특이한 영화들, 대표작인 <시민 케인>이나 후기의 걸작 <한밤의 종소리>, 혹은 <위대한 앰버슨가> 못지 않게 수난을 겪다 결국 미완으로 남겨진 <돈키호테> 같은 영화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사라져간 귀족적 용맹함에 대한 송가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휄즈는 실제로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미덕들이라고 말했다. 이는 어떤 매너나 예법,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던 시대에 대하 향수가 아니라, 매너나 예법을 넘어서서 말하는 것이 허락되고 그것이 생기의 원천으로 받아들여졌던 시대에 대한 향수다. 이 영화에서 어린 시절의 조지는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런 소년이 마을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사실 웰즈적 영웅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그들 모두가 자신의 시대에 충실한 채로 남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구식이 되었음을 알고도 그것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이 구식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구식으로 남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웰즈의 인물들은 전자다. 조지 역시 그런 사람이고, 심지어 유진조차도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자신이 예견했던 시대와 어긋난 사람이 된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유진이라는 캐릭터가 꽤 중요한데, 이 인물에게는 웰즈의 좀 다른 측면의 아나크로니즘이 투영되어 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것이 흔히 뒤쳐진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나크로니즘이라면, 발명가인 유진은 자신의 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를 불러들이는 사람이지만 정작 그 시대가 왔을 때는 그 시대와 자신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는 사람이다. 사실 이 영화를 거듭 볼수록 가장 웰즈적이라고 느껴지는 인물은 조지가 아니라 오히려 유진이다. <위대한 앰버슨가> 같은 영화들을 만들던 시기에 웰즈는 혁신가였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이 길을 닦았기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영화들의 시대가 왔을 때 그는 구식 인물이 되어있었다. 예언적이라고까지 말하는 건 아니지만 유진이라는 인물은 웰즈가 느꼈을 시대에 대한 어긋남이나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인물들은 타임머신이 발명된다고 해도 자신과 맞는 시대를 발견할 수 없다. 오직 시대와의 어긋남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들이다. 남아있는 판본들과 사료들을 통해서 재구성해보면, 이러한 웰즈의 시대착오적 영웅들의 딜레마가 가장 잘 표현된 영화가 바로 <위대한 앰버슨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 박예하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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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드 팔마, 희생자의 비명

‘2011 시네바캉스 서울’이 한창인 지난 8월 14일 오후 브라이언 드 팔마의 <드레스드 투 킬> 상영 후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현대성’이란 제목의 영화사 강좌 세 번째 시간이 이어졌다. ‘브라이언 드 팔마, 희생자의 비명’을 주제로 열린 이 날 강좌에는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나섰다. 그는 드 팔마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과감성과 저열함을 끝까지 끌고 온 감독으로 체질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드 팔마 영화와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현대성에 대한 흥미로운 지점들을 여기에 옮겨 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보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무엇인지를 따라가게 만들고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텔레비전으로 중학생 무렵에 봤었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과 <태양은 외로워>가 그런 작품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오늘 보신 <드레스드 투 킬> 같은 류의 영화로, 고등학교때 보았다. 일종의 체질적으로 몸에 와닿았던 영화다. 영화의 리듬 자체가 몸에 딱 달라붙는 것 같은 느낌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개인적으로 아메리칸 뉴 시네마 감독 중에 체질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역시 뛰어나지만 체질적으로 몸에 달라붙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작가들보다 드 팔마를 좋아하는 건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일종의 B급스러운 저급함 때문인 것 같다.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는 마지막에 리즈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했던 말들의 상당수가 드 팔마의 심중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굉장히 더러운데 너는 내게 매력을 느끼냐’는 식의 말이다. 일종의 도발로, 드 팔마가 자신의 영화로 사람들에게 했던 도발과 비슷한 뉘앙스로 느껴졌다. 7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감독들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정할지를 두고 고민하게 되는데, 이들은 주로 두 가지 경향을 보였다. 보통의 경우는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추구하는 제작방식을 따라가면서 스스로가 갖고 있던 60년대적인 모던한 경향들을 추가해가며, 일종의 고급화를 해가는 방식을 택한다. 드 팔마의 경우, 똑같이 상업적인 세계로 들어가려 했고 <캐리>나 <퓨리> 이후에 실제로 그런 세계로 진입하기도 했지만,당시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저열하게 평가되던 하위성들을 끌어당기며 나아갔다. 저급함과 하위성을 정치적 함의가 담긴 언더그라운드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팜므 파탈>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과감성과 언더그라운드 성격을 이렇게 까지 끌고 온 사람은 드 팔마가 유일하다는 생각이다.

<드레스드 투 킬>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양산했으며 영화가 개봉했을 때 페미니스트들의 상당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몇 가지 지점들이 있다. 드 팔마로서는 80년대에 들어 나름대로의 전략을 세웠던 첫 번째 작품이다. 전략이라는 건 이 영화가 왜 히치콕의 영화를 가져왔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드 팔마가 히치콕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할리우드 고전영화 세계 안에서 끌어올 가장 적절한 대상을 히치콕으로 설정했다는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히치콕 정도의 작가를 자신의 영화 안에 가져오면 비판이나 비난을 받을 위험이 조금 덜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히치콕을 완전히 패러디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령, 이 영화에서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살인 장면에서 볼 수 있다. 드 팔마 영화에는 언제나 살인이 등장하며 그 장면들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특징적인 도구를 사용한 살인이라는 점이다. 총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를테면 <바디 더블>에서는 드릴이, <스카페이스>에서는 전기톱이, <자매들>에서는 식칼이, <드레스드 투 킬>에서는 면도칼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도구성, 어떤 것이 매개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도구들 때문에 살인의 시각적 표상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비교해보자면, 칼의 종류는 다르지만 <싸이코>의 살인 장면에서도 <드레스드 투 킬>과 마찬가지로 칼로 여자를 찔러서 살해한다. 그러나 <싸이코>에서는 실질적으로 몸에 상처를 만들지는 않는다. 직접적인 피부 손상을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60년대 무렵까지만 해도 미국영화에서 신체 손상이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드 팔마의 경우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몸에 대한 손상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살해되는 순간의 시각적 표상성의 변화들을 만들어 간다. 다시 말해 편집이나 미장센의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살인 시퀀스에서 면도날에 의한 손상은 몸의 상처뿐만 아니라 필름의 프로세스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드 팔마 영화의 살인 장면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언제나 살인에 증인이 입회한다는 점이다. 드 팔마의 모든 영화들, 특히 오늘 보신 <드레스드 투 킬>에서 살인과 관련된 모든 장면에는 살인자와 피해자 외의 제 3의 인물이 입회하게 된다. 이를테면 이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일종의 꿈 시퀀스는 정신병자 같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엘리베이터 살인 시퀀스에는 리즈가 입회해있고, 기차에서의 살인 시퀀스에도 여러 명의 흑인들이 있다. 이는 굉장히 흥미로운 점이다. 살인 장면을 살인자-희생자-관객의 3자 게임으로 구성하지 않는 것이다. 그랬을 경우에 발생하는 감각적인 쾌락을 증인을 경유해 비켜가고 있는데, 여기에는 드 팔마라는 감독에게 영화사적 영감을 준 역사적 건들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그가 언제나 스스로 이야기 하는, 드 팔마의 영화를 특징짓게 된 몇 가지 사건들이 있다. 첫 번째는 베트남전이다. 드 팔마는 베트남전 반전 투쟁의 기운이 있었던 시기에 영화를 시작했던 베트남의 자식이다. 실제로 초기 드 팔마 영화는 굉장히 정치적이었으며, 그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가는 고다르다. 물론 안토니오니나 혹스, 히치콕 등을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드 팔마와 고다르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은 영화사적으로나 시기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정치적인 암살들, 특히 존 F 케네디의 암살이다. 특히 JFK의 암살이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은 단순히 사건적인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 사건 자체가 미디어를 경유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JFK의 암살 순간은 소리도 없는 8mm 영상으로 촬영되었다. 나중에 파솔리니 역시 이 제프루더 필름에 대해 이야기한 바이지만, 사람의 죽음의 순간이 필름에 기록되었으며 그것은 심지어 한 테이크인 롱테이크이다. 그러나 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컷들이 필요하게 된다. 이해하기 위해서 그 장면을 분석해야 하는데, 그 분석의 도구로서 영화적 도구들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은 몽타주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나중에 <블로우 아웃>에서 명백히 볼 수 있으며 동시에 <드레스드 투 킬>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나고 있다.

<드레스드 투 킬>은 결국 드 팔마 자신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피터라는 인물은 드 팔마와 거의 동일 인물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인물을 통해 드 팔마가 이 영화를 만들 즈음의 정신사가 어떠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  피터는 일종의 발명가로, 드 팔마 역시 뭔가 새로운 것을 창안하고 창조하려 했던 사람이고, 스스로 명칭을 정할 수 없는 영화들을 만들어 내었다. 극 중에서도 피터가 기계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자 어머니가 ‘이름은 붙여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데, 그 때 피터는 그 기계에 피터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부분은 드 팔마의 자의식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드레스드 투 킬>은 드 팔마가 연출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전권을 구사한 첫 번째 영화였기 때문에 그의 자의식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피터는 자신의 발명품에 스스로의 이름을 붙여줌으로서 그것을 자신이라고 여기는데, 이를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더블로서 기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드 팔마는 영화에서 언제나 더블을 만들어 낸다. <바디 더블>, <캐리>, <퓨리> 모두가 그 예라고 볼 수 있는데, <드레스드 투 킬>에도 수많은 더블들이 존재한다. 피터와 리즈의 대화 장면에서 피터는 ‘컴퓨터 만드는 것을 중단하고 내 안에서 여자를 한 명 만들어야겠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여자를 창조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드 팔마가 보여주는 더블의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엘리엇과 바비 간의 더블 관계는 히치콕의 <싸이코>에서 빌어 온 것이기 때문에 드 팔마 스스로 창조한 부분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고로 그 둘 간의 더블 관계에 집중해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해석했을 때 <드레스드 투 킬>은 단순한 <싸이코>의 재탕이며 드 팔마는 뛰어나긴 하지만 결국 히치콕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메리칸 시네마의 작가 정도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안이하다. 이 영화에는 그외에도 수많은 더블들이 있으며, 이들을 다 연관 지어 전체적인 영화를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 해보면, 먼저 피터는 드 팔마의 구현체로서 더블을 이루고 있고, 극중에서 자신이 만든 기계와도 더블을 이루고 있다. 이는 영화를 만드는 작가의 무의식과 영화 이미지 간의 더블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드 팔마는 지속적으로 이런 관계를 영화에 등장시키곤 한다. 또한 케이트는 당연히 리즈와 더블을 이루고 있다. 이 점 또한 <싸이코>와 다른데, <싸이코>에서 마리온과 그 여동생이 일종의 짝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여동생의 존재성은 미미할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케이트에서 리즈로 전이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며, 이는 엘리베이터 시퀀스가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살해당하는 케이트가 내미는 손을 잡는 또 다른 손이라는 설정은 리즈가 단순히 하나의 목격자를 넘어서 케이트의 더블로 형성됨을 보여준다. 동시에 리즈 역시 더블을 갖고 있다. 이런 수많은 관계들을 통해 반복되는 장면들이 나타나며, 영화가 전체적으로 순환성을 갖게 되기도 한다. 결국 이 더블이라는 부분들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읽어나가는가, 또 더블의 관계가 가장 집중적으로 표현된 피터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또한 <캐리>에서부터 기원한 영화들의 궤적에서 보자면 일종의 홈무비다. 즉, 가족에 관한 영화라는 말이다. 이 영화 바로 직전에 드 팔머는 <홈 무비>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리즈와 피터가 함께 하는 것, 이 둘의 결합은 중요하다. 리즈는 악몽 속에서 깨어나 비명을 지르는데, 그 순간 피터가 달려온다. 앞서 말했지만, 영화의 카메라는 소리를 담아내지 못한다. 거기에는 영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케네디의 죽음의 순간을 담아낸 영상도 마찬가지로 소리는 담겨있지 않다. 비명소리를 담아내는 것, 그것이야 말로 드 팔머가 추구했던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의 마지막 말은 이 영화와도 연결된다. '폐허를 보며 괴물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통의 절규에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희생자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는 한 역사의 끔찍한 사건은 반복될 것이다. 드 팔머는 다음 영화로 <블로우 아웃>을 만들었고, 거기서 녹음기사인 존 트라블타는 희생자의 비명소리를 영상에 넣게 된다. 물론 그것은 대단히 비극적인 미국의 초상이다.

(정리: 박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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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작품으로서의 완결이나 가치를 논하기도 전에 그들이 야기한 스캔들로 인해 영화사에 오명을 남기기도 한다. <천국의 문>은 이런 범주에 해당하는 불운의 전범으로 곧잘 거론된다. 720만 달러 정도의 규모로 제작되기로 한 영화가 4400만 달러를 쏟아 부어 가까스로 완성된 뒤, 고작 2백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스코어를 기록함으로써 제작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 치명적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 이 영화에 쏟아진 저주에 가까운 혹평의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장장 세 시간 삼십 분에 달하는, 미국의 탄생과 역사에 대한 이 기념비적인 메타포는 미국영화사의 문제적 감독 중 하나인 마이클 치미노의 웅혼이 하나하나의 쇼트 마다 서려 있는 역작이다.

장대한 규모와 서사시적 작풍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00년>(1976)이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1972),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에 견줄만하며, 하늘과 산, 대평원을 훑어가는 장쾌한 파노라마 쇼트는 조금 먼저 나온 테렌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1978)에 필적한다. 맬릭이나 코폴라, 베르톨루치를 의식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치미노의 야망만큼은 저들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이야기는 19세기 말 와이오밍 주 존슨 카운티를 물들인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부터 시작된다. 존슨 카운티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법원 수사관 제임스(크리스 크리스토퍼슨)는 패악의 온상이 된 그곳의 사정을 조금씩 알게 된다. 부유한 앵글로 색슨계 백인들의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 청소 작업이 모의되면서 프랭크 칸톤(샘 워터스톤)이 이끄는 지주들은 강도 혐의를 씌워 존슨 카운티의 이주민들에 대한 합법적인 살생부를 만든다. 살생부에는 제임스와 그의 친구 네이트(크리스토퍼 월큰) 사이에서 삼각관계에 놓인 창녀 엘라(이자벨 위페르)도 끼어 있다. 20년 전 대학 졸업식에서 자유와 이상을 꿈꾸었던 동무들은 찌들은 모습이 되어 재회한다. 희망과 패기는 온데간데없고, 온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돈만 밝히고, 뿔뿔이 패거리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거린다. 한때 평화와 생기가 넘쳤던 이 공동체는 점점 위험해지더니 천국의 향기가 사라진 학살과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 버렸다.


<디어 헌터>와 같이 <천국의 문>은 미국의 다원주의가 어떻게 전체주의로 변질될 수 있는지에 대한 알레고리를 보여준다. 몇몇 평자들은 영화 안에서 서사시적 엄숙주의와 웅장한 세계관이 정교한 서사로 응결되지 못했음을 지적했지만 치미노는 그 자체로 미국의 뿌리와 동일시되는 서부의 역사를 탈신화화하여 그 본질을 들추어낸다. 특별히 여러 번 등장하는 춤 시퀀스와 풍경의 시각화 방식이 눈길을 끈다. 도입부 대학 졸업식 장면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청년들의 집단 군무, 이민자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롤러스케이트 댄스와 이어지는 제임스와 엘라의 아름다운 춤 장면은 영화적 음율과 미감이 한 경지를 보여준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춤은 공동체적인 가치가 충만하게 넘치고, 변질되고, 마침내 파괴되어 버리는 과정을 은유하는 장치로 쓰인다.

<천국의 문>은 백인 신교도들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되어 온 미국의 탄생을 타자에 대한 정복과 학살의 역사로 규정한다. 반골 감독 치미노는 여러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생각대로 영화를 찍었고, 결국 사상 최악의 재앙이자 할리우드에서 가장 체제 전복적인 문제작을 만들어냈다. 거대한 세계의 상징과 알레고리로 점철된 다분히 문학적인 각본을 보완하는 것은 <서바이벌 게임>(1972), <옵세션>(1976), <디어 헌터>를 찍은 명 촬영감독 빌모스 지그몬트의 유려한 카메라워킹이다. 회화적인 구도와 색감,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이동 촬영 쇼트는 장면마다의 품격을 한 뼘쯤 높여 놓는다. 풍부한 정서와 뉘앙스를 전하는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으로도 <천국의 문>을 필름으로 확인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글/장병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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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레네의 영화를 진정한 현대영화의 출발점이라 말하면서 종종 간과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가 프랑스 역사의 어두운 지대를 통과하며 세계 기억(홀로코스트, 히로시마, 알제리 전쟁)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이다. 레네에게 중요했던 것은 기억의 지리정치학이다. 그는 전후 20년의 침울한 시기동안 프랑스인들이 기억상실증에 빠졌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기억의 계속적인 변경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레네적 인물들의 무기력은 그들이 과거의 기억과 망각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예외적인 인물들, 즉 수용소의 시간에서 되돌아온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망각만이 아니라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와 관련한 거짓 기억들과의 다툼에서도 발생한다. <히로시마 내 사랑>(1959)에서 레네는 글로벌한 기억과 개인적 기억의 충돌을 그렸다. 글로벌한 공포의 기억은 히로시마라는 장소에 구현되어 있고, 개인적인 기억은 느베르에서 프랑스 여인이 겪은 외상에 있다.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기억 저편에는 기억상실과 망각을 강요한 억압된 기억이 또한 있다. <지난해 마리앵바드>(1961)에서 기억은 미로와도 같은 거울들에 왜상을 만든다. 남자는 여인에게 둘이 지난해에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눴고 그녀가 정한 약속을 위해 지금 왔으며 이제 그녀를 데려가겠다고 말하지만, 여인은 남자의 주장을 부인한다. 둘은 기억을 공유하지만 한 명이 확언할 때 다른 이는 부인한다. <뮤리엘>(1963)에 이르면 두 개의 글로벌한 기억(2차 대전의 폭격과 알제리 전쟁)이 개인적인 사랑의 기억과 연결된다. 불론느에서 중고가구점을 운영하는 엘렌은 알제리에서 돌아온 옛 애인 알퐁스와 재회하면서 기억의 혼란에 빠진다. 한편 알제리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엘렌의 아들 베르나르는 고문으로 사망한 알제리 소녀 뮤리엘에 대한 기억 때문에 강박증에 시달린다. 레네는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의 재건축 과정과 전쟁의 기억을 병치시키면서 조심스럽게 알제리 전쟁이 초래한 정치적인 문제를 끄집어낸다.

<뮤리엘>의 첫 장면은 유례없는 몽타주로 시작한다. 이야기의 층위에서 보자면 엘렌이 자신의 중고가구점에 온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장면이다. 하지만, 마치 깨어진 유리조각들처럼 엘렌과 여인, 가구들, 그리고 누군가 커피 잔을 매만지는 손의 파편적인 쇼트들이 불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가 세계와 맺는 관계의 방식이 이러하다. 전쟁의 파괴에서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세계에 거주하는 이들이 서로 공유할 수 없는 기억에 의해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레네의 몽타주는 이런 파괴된 세계, 뿔뿔이 흩어진 세계, 중심을 잃어버린 세계의 감각을 파편적인 몽타주로 구축한다. 기억과 의식 그 자체가 무질서를 조건으로 하기에 불연속적 쇼트가 구축한 세계 또한 무질서가 허용된다. 시간의 혼동, 공간의 혼동 속에 속박되어 있는 인물들, 그들의 정신적 상태는 사고와 언어의 위기뿐만 아니라 표상의 절대 위기를 반영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뒤라스의 문학에 대해 지적하면서 ‘극악무도하고 고통스런 그런 광경들이 (결국) 해를 입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지각장치와 표상장치다’라고 말했던 것이 이와 같다.

글/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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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송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죄인이다. 그들은 자의건 타의건 간에 매우 운명적으로 혹은 우연적으로 죄인이 된다. 그러나 브레송의 마지막 작품인 <돈>에서 희생과 그에 따른 구원의 메타포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는다. 브레송의 엄격한 얀세니즘은 신의 이름 아래 살아가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예정된 운명이 일으키는 끊임없는 모순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후기 영화로 갈수록 그는 촘촘한 사회의 계약 관계와 그 사이의 그물망으로 인해 물질화되어 버린 세계에서 인간과 신을 소통시키는 단 하나의 끈인 구원과 은총의 부재에 대해 침묵을 지키면서 다분히 묵시록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을 구원하는 신은 망설이고 있으며 인간은 혼자의 힘으로 갖가지 종류의 물신에 도전하고 저항해야만 한다.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금욕적인 정신 상태를 통해 신에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들과 싸워가는 동안 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금욕주의는 점점 확장되어 마침내 한 인간을 철저히 파괴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이본이 처음 감옥에 가기까지의 과정에서 그 자신의 의지나 욕망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철저하게 다른 사람의 욕망의 희생자이자 마치 그들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듯한 일종의 속죄양의 위치에 서게 된다. 실제로 그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채 죄인의 몸이 되어 감옥에 갇힌다. 아이는 죽고 아내는 떠나버린 채 감옥에서 출소한 그는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진정한(?) 죄인이 된다. 이러한 모든 사건은 한 소년이 만든 위조지폐에서 비롯되지만 정작 그 소년들은 부모들이 소유한 돈의 힘 덕택에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결국 모든 상황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돈의 힘이며 돈은 이 영화에서 마치 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듯 보인다.


브레송이 그려내는 얀세니즘적 세계에서 죄는 실제 죄를 짓는 행위보다는 거꾸로 결과적인 처벌에서부터 비롯된다. 늙은 여인은 운명적으로 이미 죄인이며 그녀 앞에 놓인 모든 고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내와 아이를 잃어버린 후 완전히 변해버린 이본의 모습은 마치 사드(sade)적인 영웅과도 같다. 사드적인 의미에서 영웅은 이미 정해진 운명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신보다 앞질러 스스로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앞당겨 실행한다. 이는 신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이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주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본은 부조리한 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그 신에 대항해 스스로 죄를 짓고 경찰에 자수함으로써 신의 뜻을 앞질러 이행한다. 이는 신의 부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정면 도전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브레송은 이본의 선택에 어떤 가치 부여도 하지 않는다. 이본은 반드시 사형당할 것이지만 또한 브레송은 그의 죽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돈>에서 브레송은 더 이상 <잔다르크의 재판>(1962)과 <무셰트>(1967)에서와 같은 성스러운 죽음을 통한 구원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돈>에서 브레송은 진실로 인간 세계의 깊숙한 내면으로 침투하여,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신을 긍정한다. 이 영화에서 인간을 배반하는 물신의 이름, 그것은 바로 ‘돈’이다. 그것은 브레송의 가장 참혹한 결론이기도 하다.

글/최은영(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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