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니의 세계에 ‘끝’은 없다” - <네버엔딩 펠리니> 상영 후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시네토크

 

김성욱(프로그램디렉터) <네버엔딩 펠리니>를 만든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감독을 소개한다. 올해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탄생 백 주년을 맞는 해이고, 오늘 1월 20일은 펠리니의 100회 생일이기도 하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과 함께 작업한 분을 직접 만나는 건 나도 처음인데, 일단 이번 행사에 참여한 소감부터 듣고 싶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감독) 이 시간 나와 함께 해주시는 모든 벗들, 관객들에게 감사한다.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건 큰 결정이었는데, 왜냐하면 오늘이 정말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펠리니의 100회 생일은 단지 이탈리아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날이다. 그래서 조금 의무감을 갖고 서울에 왔다. 일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김성욱 에토레 스콜라 감독은 2013년에 펠리니 감독의 사후 20주년을 맞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었다. 이번 <네버엔딩 펠리니> 역시 펠리니 탄생 백 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작품 같다. 이 작품의 연출을 제안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이탈리아 국영 방송인 라이(Rai)의 아카이브 부서로부터 이 영화의 제작을 제안 받았을 때 처음에는 굉장히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곧 이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위험한 일인지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 또한 감독인데 다른 거장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 라이의 모든 자료들을 정리하며 펠리니와 나 사이의 자전적 이야기도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굉장히 예민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경험하며 본 것과 이 자료들로 인해 새로 알게 된 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보다는 하나의 극영화에 더 가깝게 생각했고, 지금은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방금 얘기한 에토레 스콜라 감독의 영화 제목도 <페데리코, 불가사의한 존재(Che strano chiamarsi Federico)>이다. 감독님의 <네버엔딩 펠리니>도 펠리니를 대단히 신비한 존재로 그린다. 감독님은 펠리니라는 감독을 어떤 존재로 기억하는지, 그리고 펠리니가 가지고 있던 비밀스러움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어떤 분인지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일적으로도 그분을 잘 알았는데 어떤 면에서든 펠리니와 가까이 있었다는 건 대단한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펠리니는 굉장히 주의 깊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주의 깊음은 시각적 지각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직관의 영역까지 포함한다. 그는 사람을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펠리니는 위대한 배우들과도 연기를 했지만 배우가 아닌 사람도 연기를 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마 이런 능력 때문일 것이다. 물질과 창조성 사이에 매개자가 있다면 바로 펠리니가 아닐까? 그는 마치 마술사처럼 느껴지는 존재였다. 자석과 같은 끌어당김을 가진 분이었다.

김성욱 에우제니오 감독님은 펠리니의 조감독이기도 했다. 펠리니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특별히 기억하는 점들이 궁금하다. 그리고 펠리니 감독이 실제 작업 현장에서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또 어떤 진행 과정들을 거쳤는지 듣고 싶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펠리니는 굉장히 꼼꼼하고 정확한 감독이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하나의 줄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촬영 바로 전날까지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또한 펠리니는 그 자신이 대단한 배우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 심지어 물체가 연상시키는 이미지들까지 잘 표현했다. 지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하루는 촬영을 하다가 어떤 젊은 배우에게 “가만히 있되 불 켜진 램프처럼 서 있어봐” 라고 했고, 그 배우는 그 느낌을 잘 캐치해 표현했다. 역동성과 즉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굉장히 정확하고 꼼꼼했다. 특히 중요한 신을 찍을 때는 기술팀을 위해 촬영 당일 아침에 모든 장면을 아주 꼼꼼하게 그려주었다. 즉흥적이지만 실행에 있어서는 굉장히 꼼꼼했다.

김성욱 지금 관객석에 이명세 감독님도 오셨다. 평소 이명세 감독님이 페데리코 펠리니를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손꼽으셨다.

이명세(감독) 일단 페데리코 펠리니 탄생 백 주년에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 오래 전 내가 이탈리아에 갔을 때 펠리니를 느껴보기 위해 치네치타(*로마의 남쪽 교외에 위치한 거대한 규모의 촬영소)에 갔던 기억이 있다. 나는 펠리니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지만 특히 <로마>를 너무 좋아한다. 오늘 이곳에 계신 분들이 펠리니의 놀라운 상상력과 열정을 많이 가져가길 바란다. 

김성욱 에우제니오 감독이 실제로 펠리니의 작업에 참여한 건 <진저 앤 프레드>부터인데, 이 작품은 펠리니의 후기작에 속한다. 이 당시 이탈리아 영화 산업은 TV와 경쟁하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치네치타 스튜디오 자체도 위기에 처한 시기였다. 그 시기의 펠리니 감독과 작업하며 펠리니 감독의 영화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펠리니는 예지자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분은 이탈리아, 나아가 세계 인류사적 변화를 보며 그 변화의 과정을 담은 기념비적 작품을 찍었다. TV가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찍은 <인터뷰(Intervista)>(1987)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작품은 영화의 변화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질문하는 영화였다.

김성욱 에우제니오 감독과 펠리니 감독이 겹치는 부분은 ‘리미니(Rimini)’라는 마을이다. 펠리니가 연출한 <아마코드>(1973)의 배경이기도 하다. 펠리니에게 리미니는 어떤 곳이었고, 감독님은 리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은 <아마코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듣고 싶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내가 리미니로 이사했을 당시 <아마코드>가 상영되고 있었다. 이건 대단한 우연인데,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리미니에서 살게 되었지만 내가 거기서 태어나진 않았다. 그런데 펠리니 감독은 그곳에서 태어났다. 

<아마코드>는 펠리니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펠리니는 거의 모든 영화를 로마의 치네치타에서 찍었고, 로마 근교에서 모든 걸 찍었다(펠리니는 한 장소에서 촬영하는 걸 선호했다). 결과적으로 리미니라는 마을은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의 어떤 과거를 연상시키는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펠리니 감독은 이미지를 통해 그곳을 연상하도록 만들었다. 리미니가 펠리니 때문에 유명해진 건 사실이고, 현재 그곳에는 펠리니 박물관도 있다.

관객 1 펠리니의 영화를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순서대로 보며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분위기가 너무 달라 같은 감독의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다. 이런 변화에 관한 에우제니오 감독님의 생각이 듣고 싶다. 펠리니는 매 순간마다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며 다양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인지, 아니면 이 다양한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어느 순간 펠리니 감독이 “나는 계속 같은 영화만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굉장히 단순화한 말이지만 여기엔 진실도 담겨 있다. 펠리니의 영화는 스타일적으로 계속 진화했고, 나중에는 무한한 크기가 되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미지의 땅에 도달한 뒤 대단한 관찰력을 갖고 그 세상에 익숙해진 다음, 더 시간이 지나 아예 완벽할 정도로 그 땅을 잘 알게 된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사람, 바로 펠리니가 미지의 땅을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거다. 그것도 매우 서정적으로. 나에게 펠리니의 비밀은 시적인 서정성에 있다. 질문하신 분이 시(詩)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관객 2  <8과 2분의 1>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사람들이 나온다. 감독님은 실제로 펠리니가 초현실적 경험을 하는 걸 듣거나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펠리니 감독이 대강의 스토리만 갖고 영화를 찍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펠리니가 영화의 결말을 미리 정하고 찍는지, 아니면 현장에서 바꾸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펠리니 본인은 형이상학적인 것, 비현실적인 것, 마법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 속에 진실이 들어 있다. 펠리니는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현실 뒤에 있는 것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그가 가진 모든 도구들이 인간과 영혼을 잘 인식하기에 적합한 도구들이었다. 그 도구에는 과학과 비현실적인 것이 함께 들어있다. 그리고 이 도구들을 심리 분석을 통해 얻고자 했다. 실제로 펠리니는 융의 연구에 기반해서 다른 세계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고, 어느 순간부터 점점 더 심리 분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세계를 말하는 게 그의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그건 다만 도구일 뿐이다. 펠리니가 렌즈를 통해 세상에서 보고자 한 건 항상 아이러니였다. 이를 통해 아주 복잡한 테마도 잘 다룰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러니의 중심에 있는 건 결국 인간이었다. 특히 이런 부분이 잘 드러난 영화로는 주로 그의 흑백 영화들, <8과 2분의 1>, <달콤한 인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영화 이후에는 굉장히 어려운 작품들이 탄생한다. 여기에는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펠리니의 비전이 담겨 있다. 

시나리오의 경우에는 연대기적으로 나눌 수 있다. 초기작은 시나리오가 보다 구조화되어 있어 따라갈 항로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 반면 후기작은 마치 한 그루의 나무에서 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어나오는 것과 같다. 이런 특징이 펠리니의 영화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점점 열린 구조의 시나리오가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가벼워지기도 했다.

관객 3 나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탈리아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이번 영화제에 왔고, 사실 오늘 펠리니를 처음 알았다. 펠리니 영화들 중 처음으로 보기 좋은 영화를 추천받고 싶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아주 멋지고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 맨 처음에는 가장 중요한 영화를 봐야 한다. <8과 2분의 1>이라는 복잡하지만 아주 재밌는 영화를 추천한다. 아마 영화 속에서 아주 아름다운 음악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후 <8과 2분의 1>에서부터 시작해 일곱 번째 영화, 여섯 번째 영화, 그렇게 첫 영화까지 내려가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 순서대로 올라가길 추천한다. 행운을 빈다. 사실 당신이 너무 부럽다. 나도 극장에 와서 처음 펠리니를 보는 행운을 느껴보고 싶다.

관객 4 먼저 펠리니 감독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삶의 동반자인 줄리에타 마시나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그리고 <네버엔딩 펠리니>에 ‘진정한 현실주의자는 망상가’라는 말이 나온다. 에우제니오 감독님은 이 말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페데리코 펠리니는 위대한 감독이자 위대한 인간이었다. 그는 천재였고 운도 아주 좋았다. 왜냐하면 그의 곁에 다른 천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에타 마시나는 물론이고 시나리오 작가인 엔니오 플라이아노(Ennio Flaiano), 작곡가인 니노 로타(Nino Rota)도 천재였다. 펠리니 주변의 사람들은 마치 하나의 별자리처럼 그의 곁에 자리 잡았다. 

줄리에타 마시나와 펠리니 감독은 예술적으로 한 몸 같은 관계였다. 물론 충돌도 많은 커플이었지만 어떤 것도 둘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항상 영화가 둘을 묶어주었고 진정한 사랑으로 단단히 묶인 커플이었다. 줄리에타 마시나가 없는 <길>이나 <카비리아의 밤>을 상상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마치 두 개의 기관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관처럼 둘은 예술적으로 한 몸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현실주의자는 망상가다’라는 말은 표면적인 것에 머물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보다 더 뒤에 있는 차원, 바로 진실의 차원으로 가야 한다. 더 상상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마치 영매의 능력 같은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펠리니는 영매이기도 했다. 그는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는 감독이었다.

관객 5 펠리니 감독은 TV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TV 광고를 찍었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펠리니와 TV의 관계가 안 좋았던 건 아니다. 펠리니의 마지막 작품들은 TV 덕에 만들어졌고, 말씀하신 것처럼 직접 광고를 찍기도 했다. 펠리니는 광고를 반대하지 않았고, 어떤 광고는 매우 좋아했다. 젊은 시절부터 광고 아이디어를 많이 메모하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용서하지 않았던 건 영화 방영 중간에 광고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펠리니는 TV 광고를 싫어했고 이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김성욱 영화 제목을 “네버엔딩 펠리니”로 지었다. 펠리니의 어떤 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우리가 백 주년을 기념하는 건 또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펠리니의 인터뷰를 보며 이 제목을 떠올렸다. 한 기자가 펠리니에게 영화의 마지막에 왜 “끝(Fine)” 자막을 넣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펠리니는 “엔딩이란 말을 넣는 게 나는 싫다. 왜냐하면 이건 영화에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펠리니에게 영화는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가 끝날 때 ‘끝’이란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펠리니는 ‘Continue’란 표현을 쓰지 않을까? 펠리니의 영화는 물론 펠리니 역시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으로 이런 제목을 지었다. 나는 이 제목이 마음에 든다. 관객 여러분도 이 제목이 마음에 들기를 바란다.

 

일시 2020년 1월 20일(월) 오후 <네버엔딩 펠리니> 상영 후

정리 예그림 홍보팀장

사진 예그림 홍보팀장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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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감독) <열정> 이후 10년간의 내 작업을 요약하면 ‘우연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개의 장면을 예로 들고 싶다. 먼저 남자가 여자에게 고백하는 후반부의 장면을 보자. 남자는 여자에게 고백을 한 뒤 기뻐하며 여자의 주위를 돌다가 다시 여자에게 돌아온다. 이때 트럭이 뒤에서부터 두 사람에게 다가오는데, 이건 정말 우연히 찍힌 장면이다. 트럭이 프레임 인해서 여자에게 다가오고, 여자가 프레임 아웃할 때 트럭도 유턴해서 같은 방향으로 프레임 아웃한다.

 

우연히 찍힌 장면

이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일단 이 롱테이크는 두 번 찍었고, 영화에 들어간 건 두 번째 찍은 테이크다. 원래 의도는 일출, 즉 10분 정도의 매직아워 시간에 찍는 것이었다. 새벽은 하루에 한 번만 오는 것이니 무조건 한 테이크에 촬영을 끝내야 했다. 그래서 원래는 그렇게 하지 않는데 이 장면을 찍을 때만 배우에게 동선을 구체적으로 지정해주었다. 여기쯤 멈춰서 대사를 해야 한다, 이런 지시였다. 다음 날 다시 찍을 여유가 없어서 타협을 해야만 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첫 번째 테이크가 정말 멋있게 찍혔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는 것에 맞게 배우의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이 매우 아름답게 그려졌다. 그런데 배우의 움직임이 조금 신경 쓰였다. 아무래도 배우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지시해서 그런지 움직임이 좀 딱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찍기로 했다. 날은 이미 밝아졌지만 여전히 뒷 건물에 햇빛이 서서히 비치는 장면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 찍을 때는 배우들에게 좀 더 자유롭게 움직여달라고 했고, 카메라는 망원렌즈를 써서 배우들과 수십 미터 떨어져 있었다. 배우들이 더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촬영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프레임 밖에서 트럭이 들어왔다. 모니터로 이를 보고 있다가 너무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이 부두는 장거리 트럭 운전사들의 휴식 공간이었고, 날이 밝자 일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건 NG라고 생각한 나는 당연히 첫 번째 테이크를 쓰기로 했다.

두 번째 테이크의 가치를 깨달은 건 편집할 때였다. 다시 보니 트럭이 화면에 들어오는 순간이 마침 여자가 남자의 고백을 거절하는 순간이었고, 트럭의 움직임과 여자의 떠나는 몸짓이 완전히 링크된 것처럼 보였다. 또한 배우들은 세로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트럭은 수평으로 프레임 인한다. 그러면서 리듬이 바뀌고 여자의 심정이 바뀌는 것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나 역시 관객의 한 사람으로 뒤늦게 발견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번째 테이크를 썼고, 이는 첫 번째 테이크에 찍힌 빛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두 번째 테이크의 순간적 강렬함을 택한 결과였다. 또한 이 테이크에는 세상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순간이 포착되어 있었다. 우연이기는 했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장면이라 더욱 소중했다.

이후 <열정>은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고 해외 영화제에 초대를 받기도 했다. 내 영화 경력의 본격적인 첫 걸음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인터뷰에서 ‘트럭 장면은 어떻게 연출한 거냐?’란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때마다 부끄러웠다. 우연히 그렇게 찍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심지어 ‘영화의 신이 내려왔다’는 말까지 들었다. 좋은 평가를 받은 장면이 내 의도적인 연출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종의 부채 의식 같은 것도 있었다. 원래 실력 이상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만 이 ‘우연의 숏’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배운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영화의 연출을 배운 것 같다는 기분은 느꼈다. 그건 바로 ‘우연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우연의 순간과 마주하는 건 ‘목격자의 감각’을 갖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조형 예술이 아닌 영화가 만들 수 있는 가장 고유하고 강렬한 순간이 이런 우연의 순간이라 생각했다. 나는 첫 번째 테이크와 두 번째 테이크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했고 이 과정에서 이런 배움을 얻었다. 어떤 영상의 아름다움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무언가와 마주치고 말았다는 감각에는 비길 수 없는 것 같다. 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어떤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 카메라라는 기록 장치의 본질에 가장 맞는 것이라고 느꼈다.

 

우연의 아름다움

이제 감독인 내가 할 일은 나의 연출로 이 우연을 포착하는 것이다. 운에 맡기지 않고 운을 만드는 것.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기 위해 두 번째 장면을 예로 들겠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대화를 나누는 두 남녀의 시선이 거의 서로 마주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두 배우가 그렇게 미리 정하지도 않았는데, 서로 마주보는 게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본다. 두 남녀의 기억이나 감정이 연결된다는 뉘앙스가 생겨났다.

<열정>을 찍기 전에는 배우들의 연기를 꼼꼼하게 지도했었다. 마주 보라든지, 다른 곳을 보라든지 등 모든 걸 다 지시했었다. 그런데 <열정>을 찍을 때는 이런 방법을 반성한 뒤 의도적으로 연출 방법을 바꾸었다.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세세하게 하면 기본적으로 배우들의 자유로운 감각이 무뎌진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배우의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다. 이걸 안 뒤로 나의 우선 순위는 화면 구성이 아니라 배우의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방금 이야기한 마지막 장면은 배우들의 자발적인 감정에 의해 만들어진 순간이다. 내가 원하는 걸 이상적인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내 손에 쥔 걸 놓아야 한다는 걸 느꼈다. 이는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원하는 게 일어날 수 있도록 미리 최선의 준비를 해야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냥 일어나는 대로 놔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한다고 항상 바라는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건 얻을 수 없다.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단 한 번만 일어나는 그 무언가를 마주하는 감각. 이런 일은 오로지 우연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연적 요소가 있어야 비로소 그 자리에서 삶 자체가 펼쳐지는 것 같은 감각이 발생한다.

두 번째로는 우연을 어떻게 화면에 정착시킬지 고민해야 한다. 두 번째 장면을 예로 들면, 두 사람이 서로 동조하는 순간, 그 관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에 카메라를 두고 기록해야 한다. 첫 번째 장면에서도 카메라가 배우와 트럭을 링크시킬 수 있는 곳에 서있어야 한다. 이런 감각은 카메라의 위치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사라져버린다. 우연은 영어로 coincident이다. incident의 뜻은 사건이니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는 걸 co-incident, 즉 우연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바라는 건 본래 아무 상관이 없는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 순간을 영화에 아로새기는 것이다.

이런 내 나름의 교훈을 발전시킨 게 지난 10년간 나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만든 <심도>나 <친밀함>의 라스트 신에서는 자동차나 전철이 서로 교차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열정>의 트럭 장면을 내 나름대로 발전시킨 버전이라고 봐도 좋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인 <파도의 목소리: 신치마치>의 마지막 장면에도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담겼고, 이를 <아사코>에서 다시 한 번 시도하려 했다. <해피 아워>에서는 더 작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우연들을 발전시키려 노력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는 기본적으로 관객을 설득시키기보다는 관객에게 발견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우연을 만들어내는 연기 연출

이때부터 내 문제는 더 이상 이 숏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배우를 캐스팅해 어떻게 연기 지도를 할 것인가로 바뀐다. <열정>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감정을 포착하는 순간과 같은 장면을 계속 만들려 하는 게 <해피 아워> 이후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다(<해피 아워>에 대해서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란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 <해피 아워> 때는 <장 르누아르의 연기 지도(La direction d'acteur par Jean Renoir)>(지젤 브란베르거, 1969)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이탈리아식 대본 리딩’을 내 방식대로 응용했다. 장 르누아르는 배우들이 아무 감정 없이 전화번호부를 읽듯 대본을 읽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각본을 덮은 상태에서도 시나리오의 대사를 문자 그대로 아무 감정 없이 자동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연습을 반복했다. 이 상태가 되면 배우의 목소리에 무게감이 더해지고 흔들림 없이 대사를 소화하게 된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연기자의 동선을 최대한 간단한 수준으로 제안하고, 리허설까지도 감정 없이 대사를 말하게 한다. 하지만 이후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갈 때는 그 자리에서 받은 느낌과 감정에 바로 즉각적으로 반응해달라고 주문한다. 나머지는 모두 연기자에게 맡긴다. 이렇게 연출한 작품이 <해피 아워>와 <아사코>다. 배우들의 감정을 우연 속에서 포착하기 위해 택한 방식이다.

텍스트와 배우 사이에는 원래 아무 관계가 없다. 배우는 일이 아니라면 그 텍스트를 굳이 말할 내적 필요가 없다. 서로 관계가 없는 배우와 텍스트. 이 두 요소 사이에 우연의 일치(coincident)가 생겼을 때 감독은 이를 포착할 준비를 해야 한다. 어쩌면 미리 정해진 대사를 우연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요소로 볼 수 있겠지만, 내 경험상 소위 애드립은 연출자나 각본가의 역할을 배우에게 강요하는 연출이다. 애드립은 배우가 스스로 안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연기하게 만든다. 배우에게 즉흥이 아닌, 자동적으로 대사를 말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대사의 감정에 더 집중하게 할 수 있고 나아가 즉흥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게 할 수 있다. 나도 잘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텍스트를 계속 집중해서 보고 읽다 보면 저절로 의미가 열리는 순간이 있다. 이 의미가 배우의 신체에 작용을 하기 때문에 배우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 내가 배우의 연기를 카메라로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배우의 신체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극영화는 배우의 신체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도 있다. 배우는 픽션의 캐릭터가 아니라 그/그녀의 매력을 가진, 실제로 존재하는 한 사람이다.

그래서 캐스팅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해진다. 나는 <해피 아워>와 <아사코>의 배우들이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내재된 인품의 솔직함이 내게는 매우 중요했다. 나는 텍스트에 대한 그들의 솔직한 반응을 원했다. 리딩 당시 연습했던 무감정의 톤에 익숙했다가 처음으로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배우 자신의 의도를 넘어선 감정이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열정> 이후 지난 10년간의 작업은 내가 바란 우연을 손에 넣기 위해 그 정밀도를 높여가는 작업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연출 방식을 고착시키는 게 내 영화 세계를 좁히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하고 있다. 다음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앞으로 10년간 다른 작업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수준의 작품이 나올 것이니 따뜻하게 지켜봐주면 좋겠다.

 

일시 2019년 6월 1일(토) 오후 6시 30분

정리 김보년 프로그래머

사진 강의영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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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영화의 역할 중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 <눈꺼풀> 상영 후 오멸 감독, 이용철 평론가 시네토크



지난 5월 14일(토)에 열린 “작가를 만나다”의 상영작은 오멸 감독의 신작 <눈꺼풀>이었다. <눈꺼풀>은 동화와 같은 이야기 속에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로서,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감독과 관객 사이에 종종 깊은 침묵의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다. 영화로 만들기 어려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오멸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좌) 이용철 평론가 우) 오멸 감독 


이용철(영화평론가) 오멸 감독과는 원래 친분이 있었다. 몇 년 전 현장에 한 번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그게 무인도였다. 마음대로 섬을 나올 수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곳이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텐트 치고 혼자 지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틀도 못 참고 도망치듯 섬을 나왔다(웃음). 그게 바로 <눈꺼풀>의 촬영 현장이었다. 이 작품은 오멸 감독이 처음으로 제주도가 아닌 곳에서 찍은 작품으로 알고 있다.

오멸(영화감독) 이걸 말로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와 같은 제주도 출신들, 특히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는 제주도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나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본토’에 의해 ‘섬’이 이용당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 ‘건강한’ 국가관을 갖고 있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나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만들었다. 제주도 사람으로서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고 살았고 그래서 다른 국가관을 갖고 있었는데, 세월호 이후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꾸 뭔가를 고민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가 나아질 수 있을까 지금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

이용철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전작인 <하늘의 황금마차>(2014) 때는 비교적 많은 스탭들과 작업했었는데 <눈꺼풀>은 다시 다섯 명 정도의 스탭과 ‘자가 제작’을 했다. 누구에게 제작비 투자를 받은 것도 아닌 걸로 알고 있다. 그야말로 무인도에 가서 텐트를 치고 그곳에 살면서 영화를 찍었다.

오멸 지금도 고민 중이다. 우리 같은 여건의 사람들은 제작비가 없으면, 또는 제작 지원을 못 받으면 작품을 못 만든다. 자체적인 ‘독립 영화’의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계속 고민 중이다. 나는 ‘지역 영화’를 만들어 왔다. <지슬>은 다행히 해외에서 상을 받으면서 개봉에 탄력을 받은 경우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지역 영화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내가 제주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극단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배우들이 함께 모여 카메라 작동법 등 영화 제작을 공부하면서 <눈꺼풀>을 만들었다. 제작비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나는 타르코프스키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 그의 작품 중 <희생>에 이런 말이 있다. “희생이 동반되어야 진정한 선물이 된다.” 특히 이십대 때는 이 말에 꽂혀 있었는데, 나도 <눈꺼풀>을 통해 어떤 희생을 겪더라도 유의미한 선물을 만들고 싶었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 극단이 갖고 있던 재산을 처분하기도 했다.

이용철 <눈꺼풀>을 만들기 전 처음 상상했던 모습과 지금 나온 영화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오멸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날 뉴스를 본 뒤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루었다. 그렇게 잠을 못 자다가 결국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0페이지 정도의 짧은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이 영화를 찍을 무인도를 찾았다. 그 뒤 섬에 들어가서 여러 풍경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다시 영화를 만들어갔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섬과 섬 안의 여러 생물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들과 함께 만든 기분이다.

이용철 촬영을 했는데 빠진 장면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편집했는지 궁금하다.

오멸 생각보다 촬영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직접 해 먹고, 저녁에는 또 다음 날을 위해 생선 낚시를 해야 해서 우리 현장은 ‘출근 9시, 퇴근 4시’였다(웃음). 시간이 한정돼 있다 보니 찍은 건 웬만하면 거의 다 영화에 썼다. 또는 영화에 정말 필요한 장면만 촬영했다. 지금 이야기한 건 예외에 속하는 장면이다.

이용철 말만 들으면 꽤 낭만적인 현장인 것 같은데 내 경험으로는 꽤 힘들었다.

오멸 열악한 환경인 건 분명하지만 나는 벌써 그곳이 그립다(웃음). 화장실도 땅을 파서 만들고 개울에서 씻는 환경에서 두 달을 살았다. 일주일만 견디니 할 만하더라.

이용철 오멸 감독의 작업 속도에 항상 놀란다. <으이그 저 귓것>을 보러 가면 <뽕똘>이 이미 만들어져 있고, <뽕똘>이 개봉하면 <이어도>가 만들어져 있다. 제작 기간이 짧고 작품 사이의 시간 간격도 짧다. 그런데 <지슬> 이후 제작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오멸 내 부족함 때문이다. 스탭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영화를 빨리 만들던 시기의 제작 방식은 철저하게 ‘내부인’들과 찍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외부인’들과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제작에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용철 그 두 가지 방식 사이에서 답을 찾았는가.

오멸 지금까지 일곱 편을 만들었는데 열 편은 만들어 봐야 알 것 같다.

이용철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영화에 나온 흑염소이다. 신화적인 느낌까지 줄 정도다. 그런데 이 흑염소에 어떤 사연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오멸 섬에 뱀도 많고 지네도 많다. 그런데 바위 틈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굉장히 심하게 났다. 그게 염소 시체였다. 알고 보니 무인도가 되기 전 이 섬에 살던 사람들이 키우던 염소가 아직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온 염소는 그중 한 마리였다. 우리가 섬에 도착할 때부터 우리를 관찰하던 염소였다. 우리와 같은 시냇물을 쓰다 보니 물 먹으러 왔다가 우리와 가까워졌다. 나중에는 우리를 봐도 도망치지 않길래 잘 됐다 싶어 시나리오를 고쳐 같이 촬영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염소가 보이지 않기에 찾아봤더니 외딴 곳에서 혼자 죽어 있더라. 잘 수습해서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염소가 우리를 이 섬과 이어준 것 같았다.

이용철 <눈꺼풀>에는 인물만큼이나 자연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 말한 염소도 그렇고 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쥐가 영화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오멸 쥐는 처음부터 출연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쥐에게 연기를 시킬 수 없어서 CG 업체랑 미팅까지 했었다(웃음). 하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포기를 했고, 찾아보다가 실험용 쥐를 한 마리 특별히 주문했다. 그리고 섬에 데리고 가서 두 달 동안 같이 살았다. 웃을 수도 있지만, 쥐를 위한 텐트도 있었고 전담 스탭도 있었다. 절대 쥐를 놀라게 하지 않고 쥐와 친해지려 했다. 그렇게 쥐와 편해지니 나중에는 사람 연기 지도하는 것보다 쥐 연기시키는 게 더 쉽더라. 우리가 원하는 위치로 가주고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었다. 참고로 쥐의 이름은 ‘C쥐’다(웃음). 지금은 한 스탭의 조카가 키우고 있다.

이용철 이 섬이 보이는 것보다 매우 가파른 섬이다. 사람, 특히 노인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섬이다 보니 저절로 무인도가 되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지게에 쌀가마니를 지고 언덕을 오르내리는데, 그 가마니가 소품이 아니다.

오멸 움직임이나 호흡에서 배우의 간절함이 정말 드러나길 바랐다. 쌀가마는 모래와 자갈을 넣어 무겁게 만들었고, 돌절구는 진짜를 사용했다. 배우분이 그 장면을 촬영한 다음 손이 떨려서 국그릇을 제대로 못 들었다.

이용철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부러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제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도록 하겠다.


관객 1  주인공이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등 불교적인 느낌이 들어있다.

오멸 내 동생은 기독교이고 어머니는 불교고, 나는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영화 속에는 말씀하신 불교도 있지만 토속적인 토템 신앙도 있고, 성호를 긋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천주교도 들어 있다. 딱히 특정 종교를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노인 역시 불교 신자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아직 수양이 많이 부족한 인물이다. 특히 분노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와 같은 인물로 설정했다.

관객 2 노인이 남학생에게 여기 왜 왔냐고 물으니 떡 먹으러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때 남학생을 연기한 배우의 목소리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마치 호러 영화 같았다.

오멸 그 학생은 거제도에 사는 학생이다. 후시 녹음을 할 때 그 친구가 사정상 오지 못 해서 다른 사람이 녹음을 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잘 매칭이 안 돼서 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우연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지금 관객분이 말씀하신 그런 이질감을 그대로 살리려고 했다.

관객 2 염소, 쥐 외에도 지네, 뱀, 풍뎅이 등 다양한 생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단순히 움직이는 게 아니라 풍뎅이가 다리를 떠는 것 같은 ‘연기’가 필요한 장면들이 있다.

오멸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GV를 할 때 이 질문에 대답하려다 감정이 복잡해져서 대답을 잘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영화의 벌레를 우리들이라고 생각했다. 지네, 풍뎅이, 파리, 거미 등이 미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이 살고 있는 방이 이 세상이고, 우리가 그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질문에 답을 하자면... 풍뎅이 때문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이상하게 텐트를 치고 살고 있으면 풍뎅이가 텐트로 들어와 그 속에서 죽는다. 너무 미안했다. 우리가 섬의 ‘주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 때문에 그 생물들이 나쁜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영화에 나온 풍뎅이는 텐트 안에서 기운을 잃은 채 떨고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촬영이 끝난 뒤 곧 기운을 차려 살아났다.

이용철 오멸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어려워하는 걸로 알고 있다. <지슬> 때는 개봉에 맞춰 외국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오늘도 어렵게 마련한 자리로 알고 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할 결심은 어떻게 했나.

오멸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을 하기는 했는데 관객과의 대화가 너무 힘들더라. 그런데 요즘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고 있으니 내가 힘들다고 피할 처지가 아닌 것 같았다. 아주 미약하지만 한 번이라도 더 상영을 하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눈꺼풀>의 배급사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많은 사람이 보지는 못하더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 3 영화에 나온 학생들과 선생님의 얼굴이 나를 옥죄는 느낌이었다. 아득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 배우들에게 어떤 표정을 지으라고 지도했는지 궁금하다.

오멸 연기 지도는 거의 안 하는 편이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서 육지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본 적이 있다. 배 안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는데, 이상하게 너무 힘들어지면서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서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을 만났을 때, 그렇게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을 때 부끄럽지 않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했다. 그런 맥락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렸다. 같이 마주보게 하고 싶었다.

이용철 영화 속 선생님을 연기한 배우분이 여기에 와 계신다. 어떤 지도를 받았는지 직접 들어보면 어떨까.

이상희(배우) 감독님이 딱 그 장면에서만 디렉션을 준 기억이 있다.

오멸 학생이 웃고 있기에 웃지 말라고 디렉션을 주기는 했다.

관객 4 영화에서 떡을 굉장히 정성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이 섬에 온 사람들은 떡을 먹고 갈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오멸 내가 답을 하면 내 이야기에 영화의 의미가 한정이 될 것 같아 조심스럽다. 영화에도 시적 표현이란 게 있는데, 그걸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좀 난감하다. 관객분들이 각자 내용을 느낀 부분이 있을 것이다.

관객 5 지금까지 세월호를 다룬 영화들이 나왔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눈꺼풀>은 무슨 영화인지 모르고 봤다가 많은 위로를 받았다. 다른 분들은 이 영화를 보며 어떤 감상을 받을지 궁금하다.

오멸 개봉을 많이 고민했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지금 세상에 내놓아도 괜찮을지 확신이 없었다. 영화 찍는 사람으로서 세월호 사건 앞에서 뭔가 해야 하는 건 맞는데, 정작 이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지 자신이 없었다. 유가족을 직접 만나지도 못하고 분향소만 갔다. 솔직히 말하면 개봉 이후에도 내가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결정하지 못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까 관객과의 대화를 열심히 하겠다고 한 건... 어떤 미안함 때문이다. 시간이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우리 앞에 그대로 놓여있다. 여기에 이제 무기력까지 더해졌다. 영화의 역할 중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개봉을 할 것이다.

이용철 참고로 <눈꺼풀>은 사고가 난 그해에 바로 만들어졌다. 오멸 감독이 정말 많은 고민을 하는 걸 보고 당장 개봉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조언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너무나 많은 말들이 있었고 그때 개봉했다면 어떻게든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세월호는 아마 수십 년간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좀 더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때 개봉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관객 6 할머니가 제주도 출신이고 지금은 일본에 있다. 제주도에 왔다가 일본으로 돌아갈 때마다 할머니는 떡을 먹고 싶다고 하신다.

오멸 처음 영화를 만들기 전 떡을 절대 사서 쓰지 말자고 PD와 이야기했다. 직접 만들자고 했다. 쌀을 빻고, 물을 떠오고, 장작불을 떼고, 솥을 밀가루로 싸고, 떡을 찌고 하는 과정에 1박 2일이 걸렸다. 처음에 몇 번 실패하니까 시간이 훌쩍 지나가더라(웃음). 그런데 떡을 만들다 보니까 경건해졌다. 촬영 자체가 어떤 제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그 동그란 모양의, 깨끗한 떡이 감동적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떡이 우리가 정말 정성껏 만든 떡이란 걸 알아주면 좋겠다.

이용철 저승 가는 사람에게 노잣돈을 주는 문화는 알고 있는데, 저렇게 떡을 주는 것도 원래 우리 전통 문화에 있는 것인가?

오멸 나의 창작물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현실을 무대로 하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완전한 창작의 세계로 넘어가면 모든 문제가 덮여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중간 지점을 상정했다.

관객 7 내가 음악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음악이 가장 귀에 들어왔다. 이 영화의 음악을 위해 어떤 컨셉을 떠올렸는지 궁금하다.

오멸 지금 질문하신 분은 킹스턴 루디스카의 리드 보컬이고, <하늘의 황금마차>에 출연도 하신 분이다.

영화 음악 작업을 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조언을 받는 분이 있다. 그 분이 내 시나리오를 본 뒤 CD를 몇 장 추천해 주면 나는 그걸 열심히 들으며 영화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중 몇 곡을 가이드 삼아 비슷한 정서의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작곡가에게 부탁한다. 이번에 고른 곡 중에는 의도한 게 아닌데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 있었다. 묘한 일치감을 느꼈다.

이용철 시간이 많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멸 오늘 오기 전에 너무 슬픈 이야기도 하기 싫었고, 유쾌하게 풀어나갈 수도 없었다. 일단 오늘 관객들이랑 같이 영화를 봤다.

<눈꺼풀>을 찍은 뒤 <지슬> 때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과거는 정리되지 않고 현실로서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게 너무 힘들다. 세월호는 ‘과거의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전혀 진행되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외면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다. 하루 빨리 많은 분들이 새로운 삶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가길 바란다.

이용철 무엇보다 잊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눈꺼풀>도 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 생각한다.


정리ㅣ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ㅣ주민규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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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66707234 2016.06.24 0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하루되세요

  2. 1466712101 2016.06.24 0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가요~

  3. 1466712594 2016.06.24 0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하루되세요

[작가를 만나다: 오멸]


세월호 참사 앞에서 <눈꺼풀>이 취하는 태도



한 섬이 있다. 이 섬은 실제 존재하는 섬으로 보이지 않는다.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은 “먼 길”을 떠나기 전 이 섬에 잠깐 들른다. 이곳에는 한 노인이 외롭게 살고 있다. 노인은 평소에는 특별한 일 없이 시간을 보내지만 누군가 섬을 방문할 거란 전화를 받으면 일을 시작한다. 노인은 정성스럽게 절구에 쌀을 찧고 떡을 찐다. 그리고 섬에 온 사람에게 떡을 준다. 사람들이 떡을 갖고 섬을 떠나면 노인의 일은 끝난다. 그런데 어느 날, 세월호 침몰로 사망한 선생님과 학생들이 섬으로 온다. 학생들은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당한지도 모르는 눈치다. 노인은 떡을 만들려 하지만 쌀을 훔쳐먹는 쥐를 잡으려다 절굿공이를 부숴버린다. 당황한 노인은 다른 방법을 동원해 떡을 만들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절구가 부서지고 우물물이 더러워진다. 노인은 결국 떡을 만들지 못하고 아이들은 계속해서 떡을 기다린다. 노인은 참담한 심정에 사로잡힌다.

<눈꺼풀>을 보기 전에 이 영화가 ‘세월호 영화’라는 사실을 먼저 알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것을 적지 않게 망설였다. 내가 이 영화를 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지금도 세월호와 관련된 뉴스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사건 자체의 끔찍함이 내 마음을 계속해서 힘들게 하고, 사건 이후 펼쳐진 한국 사회의 추한 모습 역시 세월호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눈꺼풀>을 보며 세월호에 대해 생각할 때 내 마음에 찾아올 어떤 감정들이 두려웠다.

또 다른 걱정도 있었다. 극영화인 <눈꺼풀>이 세월호를 소재로 어떤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필연적으로 따라올 한계가 마음에 걸렸다. 누군가가 겪은 고통을 재가공해서 픽션을 만들 때 그 사람이 겪은 고유한 고통의 경험은 변형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고통에 자의적인 해석을 덧붙일 바에는 그냥 재현 불가의 영역으로 두는 편이 낫다. 하지만 실화를 영화화하는 많은 작품들이 이 지점에서 실패하고(소수의 영화들은 고통의 사실적 재현에 집중하는 대신 다른 문제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예정된 실패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가고는 한다), <눈꺼풀> 역시 그런 실패를 보여줄까 두려웠다. 게다가 세월호 문제는 시간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여전히 나와 너무 가까이 있다. 의자에 기대 앉아 스크린에 등장한 세월호 피해자들의 아픔을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미리 말하자면, <눈꺼풀>의 모든 장면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대신 동화와 같은 형식을 가져와 세월호 참사를 간접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몇몇 장면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감독의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처럼 보이기도 하고(학생들의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해맑은 웃음과 순진한 행동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 몇몇 설정은 실제 사태에 대한 너무 직접적인 상징으로 보여 극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노인을 방해하는 역할로 “쥐새끼”가 등장하는 장면이나 불상의 머리가 부서지는 장면 등이 특히 그랬다). 무엇보다 거의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감독의 심정을 드러낸 장면들이 나를 종종 영화 밖으로 밀어냈다. 한 장면에서 노인은 학생에게 화를 내듯 소리친다. “너 누구냐? 어린 놈이 여긴 뭐하러 왔어!”(학생의 대답. “저 떡 먹으러 왔는데요.”) 이와 같은 장면은 <눈꺼풀>을 픽션이 아니라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관객에게 그대로 외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내 생각과 마음은 여러 차례 어지러워졌다. 세월호 참사와 그 피해자들을 이런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이 옳은지 계속해서 물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단호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눈꺼풀>이 취하는 입장과 거기서 만들어지는 어떤 정서가 계속해서 세월호 참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에는 부인하기 힘든 뚜렷한 미덕이 있다. 바로 책임감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노인은 세월호 참사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세월호 앞에서 짐짓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고, 세월호에 대해 생각할 때 자신이 입을 상처를 미리 두려워해 (나처럼) 문제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도 않는다. 이는 고통 받은 사람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고,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당한 일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 같은 것도 아니다. 노인은 그냥 처음부터 세월호 참사를 자신이 직접 수습해야 할 일로 여긴다. 그는 어떻게든 떡을 만들어 먼 길을 떠날 선생과 학생들에게 먹이려 하고, 그것이 어려워질 때 진심으로 화를 내고 슬퍼한다. 그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때로 거칠고 때로 너무 직접적이지만 노인의 입장을 생각할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노인은 지금 문제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눈꺼풀>에는 ‘세월호’라는 문제를 나의 일로 생각한 뒤, 비록 괴롭더라도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을 찾으려는 태도가 깔려있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눈꺼풀>이 굉장히 솔직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본 뒤 남는 건 줄거리나 특정 장면이 아니라 영화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노인의 근심 어린 눈빛과 한탄의 한숨, 느리고 무거운 몸짓과 분노의 욕설이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영화의 정서는 거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건 반사에 가깝다. 어쩌면 ‘좋은 영화’는 이 조건 반사적 감정을 영화라는 체로 거른 뒤 고운 입자만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눈꺼풀>은 좋은 영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멸 감독의 <눈꺼풀>은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을 거르지 않은 채 그냥 최대한 솔직하게 드러내는 쪽을 택한다. 나아가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피해자나 자기 자신을 위로하려 하지도 않는다(오히려 영화는 절망의 심정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다만 세월호 사태 앞에서 한 명의 당사자로서 느끼는 복잡하고 무거운 심정으로 인해 어쩔 줄 몰라하고 망연자실할 뿐이다. 자신의 무력함조차 솔직하게 드러내는 이러한 태도는, 이상하게도, 나로 하여금 세월호의 비극에 대해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지금도 이것이 <눈꺼풀>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보년 프로그램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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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고급 영화가 아닌 진짜 영화를 만들고 싶다”

- 김지운 감독과의 대화


지난  10월 11일(일), 신작 <밀정> 준비로 바쁜 김지운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개봉 10주년을 맞은 <달콤한 인생> 특별 상영에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김지운 감독은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달콤한 인생>은 물론 자신의 다른 영화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늦게까지 자리를 뜨지 않은 관객들의 열정 때문에 신작을 찍을 큰 힘을 얻었다는 감사의 인사 또한 잊지 않았다.






<달콤한 인생>의 시작


나는 차기작을 만들 때 항상 전에 만든 영화와 다른 영화를 기획한다. 한 가지 테마를 계속해서 파고드는 감독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여러 장르를 옮겨 다니는 것 같다. <달콤한 인생>의 전작이 <장화, 홍련>이다보니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남자의 내면에 있는 섬세함, 그리고 그 내면에서 발생한 작은 균열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필름누아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것도 홍콩 누아르가 아니라(나는 홍콩 누아르 세대가 아니다), 프렌치 누아르. 알랭 들롱이나 장 폴 벨몽도, 장 가뱅 같은 배우들이 뿜어내는 멜랑콜리를 나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병헌의 얼굴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를 기획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와 작업을 하게 됐는데, 물론 지금은 더 멋있어졌지만, 이병헌 씨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이 영화를 찍은 걸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바람


내 영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들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 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사람이 걷는 것과 바람이 부는 걸 계속 등장시키고 있더라.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짐작해 보자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일을 결정하는 것이 사소하고 찰나적인 느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람을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건 정말 사소한 계기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영화의 경우에는 그걸 갑자기 부는 바람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이병헌이 갑자기 신민아의 집으로 들어갈 때 순간 바람이 부는 그런 것 말이다.

지금까지 찍은 영화들


나는 지금까지 찍은 영화가 다 아쉽다. 그래서 내 영화를 극장에서 못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칸에 갔을 때는 자리를 떠날 수 없어 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심지어 기술 시사 때도 못 참고 밖으로 나가 버린다. 나의 부족한 점이 자꾸 눈에 들어와서 그렇다. 그런데 초기에 만든 단편인 <커밍 아웃>(2000)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다. 영화적 자의식 없이 아주 순수한 유희를 즐기듯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소위 ‘창작의 고통’ 같은 것도 없었다. 십만 원의 제작비로 만든 단편 <사랑의 힘>(2003)도 비슷한 이유로 제일 좋아한다.

가장 이질적인 영화는 <라스트 스탠드>이다. 단순히 미국에서 찍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영화는 장르도 이야기도 전부 다르지만 주인공이 전부 어딘가 쓸쓸한 사람들이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


새로운 영화를 생각할 때 이야기, 장르, 톤앤매너, 무드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그게 처음에는 흐릿하다. 이걸 나에게 편한 옷처럼 받아들이기 위해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다. <악마를 보았다>를 만들 때는 제일 먼저 모그Mowg에게 흥겹지 않고 슬픈 느낌의 보사노바 테마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 음악을 들으며 영화의 전체 톤을 잡아나갔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영화의 색깔을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번 <밀정>도 비슷하다. 송강호가 연기할 캐릭터에 대한 아트워크를 만드는데, 그걸 그린 분이 캐릭터의 눈매를 매섭게 그려놨더라. 그게 또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 인물이 이렇게 차가운 시선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즉 희미했던 것을 선명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다른 작업자들의 영감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액션


액션씬을 찍을 때는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리듬, 감정, 창의성. <달콤한 인생>을 찍을 때는 창의적인 액션씬을 만들기 위해 아이스링크 같은 공간을 섭외하거나 새로운 촬영 장비를 쓰기도 했고, 핸드폰 배터리라든지 ‘불각목’ 같은 걸 써보기도 했다.

후반부의 총기 액션은 내가 갖고 있던 ‘전멸’의 판타지를 실현시킨 것이다. 원래는 엄두를 못 냈었는데 그 당시 러시아 마피아가 부산에서 총기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한국에서 총기 액션을 시도해도 리얼리티에 위배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편해졌다. (장 피에르) 멜빌과 <킬 빌>의 중간에 위치한, 그런 액션을 시도하고 싶었다.

메이저와 마이너


나는 영화를 고급과 저급으로 나누지 않고 진짜와 가짜로 나눈다. <패왕별희>(첸 카이거)와 <터미네이터 2>(제임스 카메론)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을 때 다들 ‘예술영화’인 <패왕별희>를 좋아하고 ‘상업영화’인 <터미네이터 2>를 싫어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터미네이터 2>가 <패왕별희>보다 진실하게 느껴졌다. <패왕별희>는 뭔가 과시적이고 예술가연하는 영화 같았다. 반면 <터미네이터 2>는 영화의 목표와 창작자의 태도가 정확하게 밀착해 있는 영화였다. 그래서 <터미네이터 2>가 더 좋다. 대기업 CEO와 작은 식당의 주방장의 직업 간 우열을 가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기작


어느 순간 내가 ‘누아르’ 장르를 계속 변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밀정>은 그런 맥락에서 ‘콜드 누아르’로 만들어 보려 한다. 이전까지와는 달리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라 더 진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영화가 나올지 오히려 더 기대가 된다. 빛으로 나왔다 다시 어두움으로 들어가는 사람, 또는 역에 잘못 내린 남자의 입김 같은 영화라고 컨셉을 잡았다. 이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지금부터 알아가려 한다.

참고로 내가 금연 이후 처음 만든 영화다. 금연이 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영화 잘 나오면 계속 금연하려 한다(웃음).


정리ㅣ 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ㅣ 장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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