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젊음의 건강한 육체와 자아실현의 꿈

- 1980년대의 댄스영화, <페임>과 <플래시댄스>

 

 

<토요일밤의 열기>(1977)나 <그리스>(1978)와 같은 작품들이 이미 70년대 말에 나오긴 했지만 80년대에 알란 파커의 <페임>의 등장은 의미심장하다. 계보를 그려보자면, 정확히 1980년에 화려하게 성공한 <페임>에 이어서 ‘MTV’가 등장하게 되고, 1983년 애드리안 라인의 <플래시댄스>가 만들어졌다. 순서대로 보자면 <페임>, MTV, <플래시댄스>. 이 세 국면이 1980년대의 대중문화를 이끄는 선구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는 미국의 대중문화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다. 레이건의 신보수주의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기운이 거세어져 가는 가운데, 이른바 ‘블록버스터 문화사업’의 돛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영화 산업에서는 <E.T>, <스타워즈>, <백 투 더 퓨처>, <인디아나 존스>에 이르기까지 공상 과학적 상상력을 스크린에 옮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포문이 열렸다. 한편 대중음악 산업에서는 MTV의 등장과 함께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80년대의 마이클 잭슨, 마돈나, 프린스와 같은 대형 팝 뮤지션들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타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1981년 24시간 뮤직비디오를 보여준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MTV는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시청자들이 뮤직비디오의 아방가르드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동안의 영화가 쌓아온 관습들은 뮤직비디오에 의해 순식간에 무력해졌다. 뮤직비디오 시청자들은 실험영화에서 볼 법한 장면과 장면 사이의 급격한 이동이나 논리의 부재 등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뮤직비디오는 할리우드 영화 장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는 고딕, 호러 장르를 가져왔고, <빌리 진>은 스파이 영화를 도입했다. 뮤직 비디오가 영화 장르를 모방하는 경우의 예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MTV의 무서운 열풍 속에서 만들어진 애드리안 라인의 <플래시댄스>의 경우는 뮤직비디오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모방의 모방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성이기도 했다.

 

 

 

 

 

<플래시댄스>에는 노골적인 클로즈업이 등장한다. 춤을 추고 있는 제니퍼 빌즈의 엉덩이와 허벅지에 시선을 떼지 않는 장면은 춤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며, 그 지속성은 제니퍼 빌즈라는 스타를 향한 페티쉬적인 시선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뮤직비디오에서 볼 법한 클로즈업이다. 뮤직비디오는 본디 광고와 결탁한 것이어서 스타를 상품으로서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서 이 같은 클로즈업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조각조각난 이미지들을 한데 모으는 것은 인간의 얼굴이다. 많은 뮤직비디오들이 시청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오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인간의 얼굴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플래시댄스>의 경우에는 제니퍼 빌즈의 매력적인 얼굴이 그 역할을 해낸다. 제니퍼 빌즈가 얼굴을 드러내는 그 순간부터 관객은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용접 마스크를 벗을 때 쏟아져 나오는 풍성한 머리카락과 땀에 젖은 얼굴, 그 또렷한 눈매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80년대의 미국은 ‘화려함’과 ‘긍정적 확신’의 기운으로 넘쳐났다. 두 편의 댄스영화 흥행작인 <페임>(1980)과 <플래시댄스>(1983)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자장 안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두 영화가 내세우는 기치는 ‘건강한 육체’와 ‘자아실현’이다. 이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새파란 젊은이들이다. <페임>은 아직 스무살이 되기도 전의 젊은이들이 예술학교에서 4년 동안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동시에 유일한 무기는 자신의 몸이다. 연기 지도 선생은 “너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고, 느끼는지를 관찰해라”라고 가르친다. 아이들의 몸은 자신을 표출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 있다. 모두가 거리를 메운 채 「Fame」에 맞춰 혼 들린 듯 춤을 추는 명장면은 물론이고, 리로이가 선생님에 대한 반항으로 서재 유리를 모조리 깨부수는 장면이나 코코가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은 젊은 육체의 날 선 에너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플래시댄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카메라가 집요하게 따라붙는 제니퍼 빌즈의 표정과 몸동작은, 이 영화가 가진 신체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처럼 화면 안을 방방 뛰어다니는 젊음의 기운은 ‘자아실현’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파고든다. 두 영화의 내러티브는 모두 ‘꿈은 이루어진다(혹은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확신 아래 흘러간다.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꿈을 이룬다는 스토리는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는 화려한 대중문화와 맞물린다. 번쩍이는 도시의 밤풍경, 극장에서 다함께 떠들며 <록키 호러 쇼>를 보는 영화관람 문화와 함께, 두 영화에서는 특히 ‘춤’과 ‘사운드트랙’이 미국에 대한 긍정적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페임>의 학생들은 고전무용인 발레를 전공함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막론하고 춤을 춘다는 설정에서 자유로움을 한껏 뽐낸다. <플래시댄스>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다. 그녀는 밤무대 위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길거리에서 흑인들의 춤을 관찰하고 따라하며, 결국엔 발레 학교 시험을 보는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무용 실력을 보여준다. 여기서 기묘하게도 사운드 트랙은 모두 ‘현대 팝 음악’이라는 것에서 80년대 특유의 정서가 녹아있다. 공교롭게도 <페임>에서 「Fame」을 부르며 일약 스타가 된 아이린 카라는 <플래시댄스>의 주제곡인 「What A Feeling」까지 ‘80년대 대표적 송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두 영화 이후에도 <더티 댄싱>(1987) 등 댄스영화의 열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페임>과 <플래시댄스>만큼 레이건 시대의 미국을 잘 드러내는 영화는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성장에 대한 기대, 그에 대한 흥분을 고조시키는 문화사업의 팽창 등 미국문화의 반짝이던 시절이 이 두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마도 미국 스스로가 기억하고 싶어할 얼굴인 일련의 댄스영화들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덩달아 웃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자극적인 감각만 잔뜩 안은 채 향수병에 시달리지는 않을까.

 

배동미 · 지유진 /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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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미국사회의 내밀한 관찰

- 마틴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에 대하여

 

윤종빈 감독이 추천한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은 <카지노>와 <갱스 오브 뉴욕>, 그리고 <디파티드>로 이어지는 일련의 갱스터 연작의 시작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마피아 조직의 중심에 진입하지 못하는 주변부적인 인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장르적 틀 안에 머물지 않고, 미국 사회에 대한 가장 흥미롭고 빼어난 관찰을 이뤄낸 그의 갱스터 연작을 살펴본다.

 

 

 

<좋은 친구들>(1990)의 헨리(레이 리요타)는 내레이션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난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갱스터가 되고 싶었다.” 소년에게 갱스터란 멋진 구두와 양복을 걸치고, 남들처럼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모두가 자신을 알아보는 그런 존재이며,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다. 갱스터의 세계, 그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헨리는 법정에서 동료들을 배신한 뒤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갇혀 갱스터의 세계에서 이탈하게 되는 순간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씁쓸하게 읊조리고 만다.

 

사실 헨리와 그의 ‘좋은 친구들’은 모두 갱스터 세계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을 뿐인데, 비非시칠리안인들인 그들은 정통 시칠리아 출신의 마피아 조직의 일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주변부적인 특징은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들이 갖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카지노>(1995)의 에이스(로버트 드 니로)와 니키(조 페시) 역시 라스베가스라는 사막의 도시에 이주한 외부인들로 라스베가스라는 공간에서 그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군림하고자 한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에서 에이스가 카지노에 대해 묘사하던 중에 “여기는 나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며 화면에서도, 내레이션에서도 사라져버리는 순간이 존재한다. 이처럼 ‘외부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으로 인해 진입이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디파티드>(2006)에서 경찰이 되고 싶었던 빌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어쩔 수 없이 갱 행세를 해야 했던 것 역시 그의 ‘출신’ 때문이다. 내부로 진입한 외부인의 위치에 선 인물들의 양상은 <갱스 오브 뉴욕>(2002)에서 뉴욕 혹은 미국의 근간을 이루는 이주민들의 역사로 확장되기도 한다.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에서 인물들은 강렬하게 무언가 되고 싶어 한다. 그들은 갱스터가 되고 싶고, 카지노 왕국의 제왕이 되고 싶고, 경찰이 되고 싶다. 그러나 ‘혈통’이라는 인물들의 운명적 조건은 그들이 동경하는 세계의 내밀한 곳까지 가닿는 것을 막아선다. 이런 상황이 인물을 두 유형으로 가른다. “난 환경의 산물 따윈 되고 싶지 않아. 나 스스로 환경을 만들면서 살고 싶은 거야”라는 <디파티드>의 코스텔로(잭 니콜슨)의 말처럼, 한편에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가려는 시도가 있다. 특히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에서 조 페시가 보여주는 모습이 그러한데, 물론 이러한 시도는 곧장 처참한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주변부만을 맴돌며 그럭저럭 자신의 삶을 유지해가는 인물들도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동료들을 배신하거나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상반되는 듯하지만 결국 이 둘은 동일한 곳에서 갈라져 나온 두 얼굴인 셈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비열한 거리>(1973)의 찰리와 자니, <좋은 친구들>의 헨리와 토미, <카지노>의 에이스와 니키, <디파티드>의 빌리와 콜린과 같은 짝패가 이루는 분열증적인 초상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 가운데 폭력이 존재하게 된다. 이때의 폭력은 고전적 갱스터 영화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던 폭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스콜세지의 영화에서 폭력의 묘사는 그런 점에서 ‘극’적이라기보다 ‘다큐멘터리’적인 것에 가깝다. 이로서 갱단이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카지노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시스템, 더 나아가 뉴욕 혹은 미국의 역사로 확장되는 스콜세지의 갱스터 연작은 단지 장르적 틀 안에 머물지 않고, 미국 사회에 대한 가장 흥미롭고 빼어난 관찰을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다.

 

장지혜 /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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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공간, 시네마테크

2013 친구들 영화제, 성황리에 개막!

 

1월 17일, 어느덧 여덟 번째를 맞는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그 성대한 막을 올렸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은 ‘관객들의 선택’을 통해 선정된 우디 알렌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 여느 때 보다 뜨거운 관객들의 호응으로 객석은 모두 매진되었고, 극장은 개막작과 영화제에 대한 기대들로 가득 찼다. 성황리에 열린 ‘2013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 현장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지난 1 17, 저녁 7 30분 종로 3가 낙원동에 위치하고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개막식이 열렸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앞 매표소에는 표를 구하려는 관객들로 가득 찼고, 올해의 친구들을 비롯한 영화문화계 인사들이 극장을 찾았다. 이날 행사의 사회는 2006년 첫 영화제 때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함께해준 권해효 배우가 맡았다. 사회자 권해효 배우는 첫 영화제 때 이 공간은 참 춥게 느껴졌지만, 오늘 관객으로 꽉 찬 이 극장을 보면서 8년의 시간 동안 조금씩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는 말로 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 지난 한 해, 서울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맞이해 다채롭게 진행했던 부대행사들을 소개했다. 여러 스폰서들의 다양한 재능기부와 참여로 시네마테크의 발전 기금이 마련되었고,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알리는데 보다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시네마테크 어워즈를 개최해 지난 10년 동안 시네마테크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줬던 감독과 배우, 단체들에베스트 프렌즈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후원보고가 끝난 후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의 개막 선언 인사가 이어졌다. 그는오랫동안 함께해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선정해주신 영화 하나하나가 모두 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인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뜻 깊은 시간이 아닌가 한다. 영화제 기간 동안 좋은 영화,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들의 이상한 우정

다음 순서로는 영화제 상영작의 하이라이트 영상과 함께 트레일러 상영이 이어졌다. 2012, 시네마테크 10주년을 맞이해 만들어진 김종관 감독의 트레일러에 이어 올 한 해 동안 상영될 새로운 트레일러의 연출은 윤성호 감독이 맡았다. 권해효 배우는충격적인 트레일러였다앞으로 모든 관객들이 이상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지 않을까 싶다며 농담을 던졌고, 트레일러에 출연해열연을 보여준 정우열 작가는그냥 그림 하나 그리면 된다고 해서 왔다가 현장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설명했다. 윤성호 감독은현장에 와 준 연기자들이 할 수 있는 제일 값어치 있는 일을 시켰던 것 같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제가 1년 동안 극장에 앉아 두고두고 보려고 만든 트레일러다라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윤성호 감독은 트레일러의 자막에 대한 질문에, 중간의 자막들은 <전함 포템킨>의 대사, 마지막에우리들의 이상한 우정은 시네마테크가 후원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어느 작가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을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제에 참여하는친구들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김태용 감독은 추천작인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이사쿠의 아내>를 소개하면서, “옛날 영화를 볼 때마다 격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법에 대해 계속 배워가는 것 같다. 60년대 영화를 보면 감정을 어떻게 추스르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비극적 결말을 가져왔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만나는 매혹

마지막으로 영화제 개막작인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 대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의 소개가 이어졌다. “관객들의 선택작이기도 한 이 영화와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은 모두 1930년대 대불황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이 꽤 어려운 시기이기도 해서 이 영화가 선택된 데에도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에 미국에선 영화관을 영화를 보러 가는 공간만으로 여기진 않았다고 한다. 할 일 없을 때 어떤 사람들은 잠을 자기 위해, 젊은 친구들은 부모님의 눈을 피해 연애를 하기 위해서 영화관을 찾기도 했었고, 거리가 추울 때 영화관은 사람들의 휴양소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오늘 보실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그런 영화관에 대한 매혹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현실과 환상 간의 선택이라는 어려운 질문이 담겨 있는 영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부딪히는 질문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한다. 저는 이번에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정말 어려운 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의 조건에서 일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그나마 삶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주 예외적인 일탈의 장소였고, 지금 여기에서 다른 위치와 장소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통해서 슬픔과 기쁨을 같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로 11년을 맞고, 8번째를 맞은 친구들 영화제가 이런 기쁨과 슬픔, 감정들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영화관으로서 꾸준히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개막식이 끝나고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가 상영되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함께 웃었고, 슬픔 또한 함께 공감하고 있음이 전해졌다. 극장에서 영화를 만나는 기쁨과 매혹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이 날의 상영이 모두 끝나고, 극장 근처의 공간에서 진행된후원 파티에서 관객들은 다시 삼삼오오 모여 술과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_송은경,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_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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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친구들로 새롭게 합류한 올해의 관객에디터 7명이 이번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상영작 들 중 추천작을 꼽았다. 그들 각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추천작들이다. 이미 본 영화들도 있고 새롭게 극장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는 작품들이다.

 

 

 

송은경(관객에디터)

우디 앨런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마스무라 야스조 <세이사쿠의 아내>(1965)

 

극장에서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보고 나오면 내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 세실리아(미아 패로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세실리아의 클로즈업으로 가득 찬 거대한 스크린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또한 이미 본 영화라 할지라도, 극장에서의 관람이라면 영화 속 내용과 영화 밖의 현실이 묘하게 중첩되어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좋은 영화는 물론 집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극장에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감상해야 영화가 주는 감각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내 경우엔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찍힌 영화들이 그렇다. 그리고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정말 ‘제대로’ 감상하기 좋은, 서울 내 몇 안 되는 극장 중 하나이다.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이사쿠의 아내>는 그의 다른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2.35:1의 화면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매우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그 이미지들에 압도당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배동미(관객에디터)

알란 파커 <페임>(1980)

애드리안 라인 <플래시댄스>(1983)

 

2013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 중 알란 파커의 <페임>과 애드리안 라인의 <플래시댄스>를 추천하고 싶다. 예술고등학교와 무용학교를 배경으로 한 두 영화를 비교하면서 봐도 재밌을 것 같다. <페임>의 경우 연기,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들이 펼쳐지는 반면 <플래시댄스>는 무용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두 영화 모두 아이린 카라의 노래가 흐르고, 3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적 차이를 두고 탄생한 만큼 80년대 특유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두 영화 모두 개봉당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1983 11월자 동아일보에는 <플래시댄스> 히트로 디스코 음악도 인기라며, ‘몇 년 전만해도 디스코 음악에 염증을 느끼던 대중이 영화의 히트로 음악에 대한 기호도 달라졌다.’고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1 19일 토요일에는 가수 이자람의 <페임>의 상영후 시네토크와 2 2일 토요일에는 이명세 감독의 <플래시댄스> 시네토크도 준비되어 있다.

 

 

지유진(관객에디터)

마스무라 야스조 <세이사쿠의 아내>(1965)

알란 파커 <페임>(1980)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계에 한 번 발을 들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결코 무심히 지나쳐버릴 수 없다. 그만큼 강렬하다. 매 컷마다의 완벽한 화면 구도, 시야를 꽉 메우는 육체, 인물들 간의 절절한 욕망 등이 뒤섞여 영화관 안의 공기를 데워줄 것이다. 야스조 감독의 전작 <아내는 고백한다> <만지>에서도 열연했던 와카오 아야코가 이 작품에서 다시 한 번 정점을 찍는다. 그녀의 가느다란 얼굴선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올 때엔 무의식적으로 숨을 멈추고 지켜보게 된다.

“난 예술학교가 좋아. 왕따도 없고, 모두 개성이 넘치거든” 이 말이 맞든 아니든 간에, <페임>은 각자의 가장 천진한 시절을 돌이켜보도록 만든다. 식탁에서 박자를 맞추기 시작해 모두가 거리로 쏟아져 나가는 장면과 함께,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졸업식 장면은 예술학교 학생들이 한 번쯤 꿈꿔보는 유토피아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정확히 1980년도에 개봉한 이 영화는 80년대를 관통하여 펼쳐질 댄스 팝 세계의 전조를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박민석(관객에디터)

가이 매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2003)

우디 앨런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의 묘미는 누군가가 선택한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것 자체에 있다. 영화제에 참여하는 감독, 평론가, 혹은 관객들 중 다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기 위해서 그 영화를 선택했다. 여기서 방점은 ‘스크린’에 찍힌다. 그 영화를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 각자의 이유들이 존재할 것이고, 영화제 기간 동안 마련된 시네토크를 통해 그 이유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선택한 수많은 영화들 중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할 두 편의 영화가 있다.

첫 번째 추천작은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이다. 캐나다 감독 가이 매딘이 2003년에 연출한 이 영화는 8mm로 찍힌 무성영화다. 더 좋은 해상도로 영화를 보기 위해 70mm 규격의 아이맥스 상영관을 찾는 현재에 8mm 영화를 보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선명한 화질로 보는 것보다 필름의 거친 질감을 경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영화이다. 파편화된 동작들, 이따금 뒤섞이는 현재와 미래,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에 더해 악몽 같은 비전을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8mm 필름의 거친 입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추천작은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 이 영화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대신하려 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어떤 기분일까?

 

최혁규(관객에디터)

가이 매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2003)

토니 갓리프 <라초 드롬>(1993)

 

가이 매딘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물론 몇몇 영화제에서 그의 영화를 소개한 적이 있기 때문에 마니아층은 생기긴 했으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소개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듯이 <김리 병원 이야기>, <세계의 심장>, <드라큘라의 춤>, <나의 위니펙> 같은 작품들은 그 유명세도 매우 독특해서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혹시 그의 작품이 기존의 내러티브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다소 실험적인 영화라 그럴까? 유성영화 시대에 무성영화를 만들고 있어서일까? 컬트적인 감성을 가진 이미지와 특유의 리듬감이 거북해서일까? 전작들에서 그러했듯, 가이 매딘은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에서 발레, 연극, 인형극 등에 대한 그의 관심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 보기 전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단단히 각오할수록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 더 힘들 것이다. 강박적으로 해석하려 하면 이 작품은 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흑백 영상들의 특유의 속도감을 그대로 따라가며 영화에 자신을 맡겨라! 그러면 이 영화가 주는 매혹적이고 섬세한 영상을,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의 물성을 흠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토니 갓리프는 <추방된 사람들>이라는 영화로 국내 관객들에게 더 유명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작업하고 있는 알제리 출신의 감독으로 그는 집시 부모에게서 태어나 집시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자신의 뿌리와 현재에 대한 탐구를 고스란히 그의 작업에 담아낸다. 이런 그가 본격적으로 집시의 운명에 대해 다룬 영화가 바로 <라초 드롬>이다. 이 영화는 천 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북인도를 떠난 집시들이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망한다. 집시들의 음악과 화려한 춤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는 작품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라초 드롬( latcho drom: safe journey)’을 우리말로 옮기자면 ‘안전한 여행’ 혹은 ‘무사한 여행’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텐데, 이 영화는 방랑할 수밖에 없는 집시들의 운명의 안녕을 기원한다. 영화 내내 우리를 사로잡는 집시들의 노래와 춤은, 항상 떠돌아야만 하는 그들의 운명이 무사하길 바라는 의식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라초 드롬>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제의 행위이다.

 

 

 

김경민(관객에디터)

레오 맥커리 <내일을 위한 길>(1937)

장선우 <우묵배미의 사랑>(1990)

 

못내 그리던 영화의 상영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감상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던 순간. 별 기대 없이 들어 간 극장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잊을 수 없는 영화 한 편을 새기게 된 순간. 혹은 고대하던 영화에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엔딩 크레딧을 보는 순간. 이 시간들은 우리의 기억에 어떤 식으로 변형되어 남겨질까. 모든 영화는 나름의 기억을 남기겠지만 유독 그 이후가 궁금한 영화 두 편을 꼽아보았다.

첫 번째 영화는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이기도 한 레오 맥커리의 <내일을 위한 길>이다. 쓸쓸한 사연을 담담하고 정직하게 그려내는 이 작품은, 자칫 악인으로 보일법한 인물들의 사연마저 끌어안는다. 특히 눈부셨던 영화의 댄스홀 장면을 함께 기억할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두 번째 영화는 윤성호 감독의 추천작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이다. 김태용 감독은 2008년 친구들 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추천하며 “영화가 사람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보다 아름다운 추천의 말이 또 있을까. 여관에서 사랑하는 이의 양말을 빠는 공례(최명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사랑은 육체로 표현되는 사랑과는 또 다른 감정을 전해주리라 믿는다.

 

 

 

장지혜(관객에디터)

장 피에르 멜빌 <그림자 군단>(69)

보이체크 하스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64)


<그림자 군단>은 멜빌 특유의 단호함이 가장 묵직하게 다가왔던 영화였다. 인물들은 어떤 타협이나 망설임 없이 자신들의 방식과 규칙을 고수한다. 감금과 고립이 반복되는 ‘출구 없음’의 상황임에도, 염세주의적인 시선 보다는 인물들의 완강함, 더불어 멜빌의 단호한 미학적 태도에 매혹된다.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는 제목도, 감독도 모두 낯설지만 ‘폴란드의 가장 위대한 컬트영화’라고 알려져 있는 작품. 원작은 18세기 폴란드의 얀 포토츠키의 소설이며, 원고 소실로 오랜 시간 동안 잊혔다가 초현실주의자들 등에 의해 ‘판타지 문학의 걸작’으로 재평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그리고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 원작의 액자식 구성이 영화로 옮겨왔을 때의 결과물이 궁금해진다. 영화야말로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동시에 발생하고, 연결되면서 빚어내는 매혹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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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개막작 소개: 영화를 사랑한 영화

-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개막작은 관객들의 선택작이기도 한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이다. ‘영화를 사랑한 영화들’이란 주제의 10편의 작품들 가운데 관객들이 최종 선택한 작품이기도 하다. 고다르의 <경멸>, 버스터 키튼의 <카메라맨>, 페데리코 펠리니의 <8 1/2>을 제치고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영화 관람이 대중적인 오락거리이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영화관을 가던 1930년대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한 유쾌하면서도 통렬한 사랑이야기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이 떠오를 때 우리 귀에 들려오는 것은 뮤지컬 영화 <톱 햇>(1935)에서 프레드 아스테어가 부르는 노래 “칙 투 칙(Cheek to Cheek)”이다. “천국에, 나는 천국에 있어요”라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이 노랫말은 아마도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여주인공 세실리아(미아 패로)가 영화를 볼 때의 기분과 같을 것이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콤비가 출연했던 <톱 햇>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얼어붙은 관객들의 마음을 달래주었고, 세실리아 역시 그런 관객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1930년대 뉴저지에서 시작한다.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세실리아는 실직한 남편의 구타와 음주, 외도에 못 견디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직장에서의 잦은 실수 때문에 결국 해고당하고 만다. 앞길이 막막해진 세실리아는 눈물을 훔치며 늘 그랬듯 극장으로 향해 영화 속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관람한다. 그때 그녀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세실리아가 좋아하는 영화 속 캐릭터인 톰 벡스터(제프 대니얼스)가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와 말을 걸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감독 우디 앨런은 영화 속 허구의 인물이 현실세계로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긴급한 상황에서 닥치는 대로 잡아탄 자동차는 움직이지 않고, 조명은 로맨틱한 순간에 알아서 꺼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영화와 현실이 같은 세계에서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의 양립불가능성이 현실 앞에서 영화가 쓸모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불어넣어 현실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세실리아는 남편에게 얻어맞는 벡스터를 보고 소극적이었던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대항한다.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해지는 건 영화와 현실의 중간 단계, 즉 톰 벡스터를 연기한 배우 길 셰퍼드가 개입하면서부터다. 그는 자신의 복제인간이 영화 밖으로 튀어나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할리우드에서 곧장 뉴저지로 달려온다. 셰퍼드는 세실리아에게 사랑 고백을 하면서 벡스터와 자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요구한다. 세실리아는 벡스터가 아닌 현실에서 살아가는 셰퍼드를 택한다. 허구와 현실 가운데 허구를 선택하는 일은 우디 앨런의 말을 빌자면 ‘정신 나간 짓’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선택한다는 것은 ‘상처를 받는 것’이기도 하다. 셰퍼드는 혼자 할리우드로 떠나버리고 세실리아는 버림받는다. 그녀는 다시금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즉 극장으로 향한다. 우디 앨런은 영화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낙관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냉소도 하지 않는다. 다만 스크린을 응시하는 세실리아의 얼굴을 우리로 하여금 마주하게 만든다.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세실리아의 표정은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보는 우리의 표정과 닮았다. 영화와 현실이 서로를 거울처럼 마주보는 통렬한 순간이다.

 

송은경 /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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