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심이 많아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새로운 역을 연기 해보고 싶다”

- 나카다이 다쓰야 배우와 이준익 감독 대담


“고바야시 마사키 탄생 100주년 특별전”을 맞아 나카다이 다쓰야 배우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직접 찾아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나누었다. 각 영화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은 물론, 15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대배우의 연기론과 영화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이 지면에는 9월 4일 <할복> 상영 후 진행한 이준익 감독과의 대담 내용을 일부 옮긴다.


(이준익 감독, 나카다이 다쓰야 배우)


김홍준(영화감독) 오늘은 나카다이 다쓰야 선생님과 이준익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는 귀한 시간을 마련했다. 두 분의 소감을 여쭤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나카다이 다쓰야(배우) 나도 아주 오랜만에 <할복>을 여러분 뒤에 앉아서 큰 화면으로 보았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 나는 29살이었다. 지금 84살이니 50년이 지나 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된 셈이다. 참 젊었죠?(웃음)

이준익(영화감독) 나는 일본 사극 영화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그런데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영화와는 기회가 잘 닿지 않았다. 그런데 <사도>의 시나리오를 쓰던 중 동료 감독이 <할복>을 추천해 주었다. 그렇게 이 영화를 처음 보고서는 시나리오가 탁 풀려버렸다. <사도>의 경우에는 50여 년에 걸친 긴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진행한다는 게 상당히 어려웠다. 그런데 현재와 과거가 동시에 진행되는 <할복>의 이야기 구조에 큰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다음에 만든 <동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사실과 과거의 진실 사이에 대해 영화로 풀어보려 했다.

김홍준 나카다이 선생님이 <사도>를 이미 본 것으로 알고 있다. <사도>의 감상평을 물어보고 싶다.

나카다이 다쓰야 이준익 감독의 <사도>를 일본에서 보았다. 정말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복잡한 관계를 훌륭하게 그려내어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훌륭했다. 이 영화를 보며 일본 배우들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홍준 <할복>을 보며 <사도>의 해결책을 찾았다고 했는데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준익 사실과 진실의 사이에 영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할복>에는 주인공이 어떤 높은 가문을 찾아가 할복을 하겠다고 말하는 사실이 있고, 그 사실 뒤에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 가문 수장의 위선이 있다. 물론 내용은 <할복>과 <사도>가 완전히 다르지만, 진실과 사실 사이의 틈새를 파고 들어가려 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할복>의 이야기 구조는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나카다이 선생님은 29살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마스크를 갖고 있다(웃음). <할복>을 본 뒤 나카다이 선생님이 출연한 <대보살고개>(오카모토 기하치, 1966)도 보았는데, 거기에서도 정말 멋지고 대단한 사무라이 액션을 선보인다.

나카다이 다쓰야 지금 이야기한 대로 당시 나는 29살이었는데, 영화 속 설정은 50세 정도이다. 손주를 안는 장면에서는 위화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오늘 다시 보니 <할복>은 정말 여러 의미에서 위대한 고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일본 영화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많은 영화들이 가능한 한 돈을 들이지 않고 짧은 기간 동안 촬영을 하고 제작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6개월 이상 촬영을 했었다. 이 영화의 훌륭함은 그런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이준익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60년이 넘게 여러 감독들과 작업을 해왔는데, 이준익 감독은 배우에게 어떤 연기 지도를 하는지 궁금하다.

이준익 나는 지도를 하기보다는 그 배우의 내면과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한다. 모든 배우는 그 캐릭터의 내면을 자기의 내면과 일치시키는 과정 안에서 관객들에게 믿음을 주고 몰입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연기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느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자신이 연기하고 느끼는 감정에 스스로 솔직한 사람이 관객에게 가장 가까이 들어가는 배우이지 않을까.




나카다이 다쓰야 좋은 답변을 들려주어서 감사하다. <할복>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은 <할복> 이전에 <인간의 조건>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의 길이는 9시간 30분 정도이고, 4년에 걸쳐 촬영한 작품이다. <인간의 조건>과 <할복>은 어떤 악한 체제에 대한 저항이 그려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무사도나 사무라이 정신이 굉장히 훌륭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고바야시 감독은 그 안에 숨어 있는 악한 체제를 그리려고 했다.

그래서 <할복>은 사무라이, 또는 일반적인 ‘조직’을 개인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비판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조건>도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전쟁에 대한 고민이 담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악에 대한 저항이 고바야시 마사키 영화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준익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이 여기 직접 와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걸 묻고 싶다. 목소리가 왜 그렇게 좋은지 궁금하다(웃음).

나카다이 다쓰야 내가 아무래도 84세이다보니 노인의 목소리가 되어가고 있다. <할복>을 찍을 당시에는 영화 속에 일본의 구전口傳 예능의 요소가 들어 있었다. 가부키, 노, 교겐 狂言 같은 일본의 전통 예능들은 전부 말로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 하시모토 시노부의 시나리오 역시 직접 보면 구전 예능의 형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말로 이야기를 푸는 방식이 굉장히 어려워서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할복>은 내 목소리가 가진 가장 저음으로 승부를 걸었던 작품이다.

이준익 목소리뿐 아니라 소위 ‘침묵의 시간’이 있다. 그런 건 배우가 직접 자기 감정에 몰입해서 연기한 것인지, 아니면 감독이 그 정도 길이의 침묵을 요구한 건지 궁금하다.

나카다이 다쓰야 <할복>을 찍을 때는 침묵의 시간에 대해 감독이 전적으로 나에게 맡겨주었다. 그런데 과연 이 긴 ‘마’(간격, 間合い)가 영화 속에서 제대로 표현이 될까 궁금했는데, 음악 감독인 다케미쓰 도루가 정말 훌륭하고 적절하게 음악을 넣어주었다.

간격이나 호흡을 잡는 방법은 미쿠니 렌타로나 단바 데쓰로도 정말 훌륭했다. 배우들이 그런 간격을 잡는 것에 대해서 감독이 특별한 요구를 한다거나 NG를 외치거나 한 적은 없다.

이준익 ‘마’는 관객들이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주인공이 남의 집에서 할복을 하려는 이유에 대해 관객들의 궁금증을 계속 붙잡고 있는 시간이다. 특히 <할복>처럼 대사가 많은 영화일수록 이런 간격이 더욱 중요한데, <할복>은 이 간격이 주는 긴장과 힘이 굉장히 좋다.

내 짐작에는 당시의 배우들은 앞뒤 장면의 편집을 직접 생각하면서 연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모니터도 없이 감독이 배우를 직접 보며 OK와 NG를 고르던 시기였으니 배우들의 선택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했을 것이다.

나카다이 다쓰야 간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당시 감독들은 배우가 갖고 있는 간격에 대한 감각에 많이 의존을 했던 것 같다. 물론 “3초 정도 마를 줘라”, “빠르게 이야기하다가 바로 다음 대사로 넘어가라” 같은 디렉션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도 호흡의 길이나 간격의 문제는 배우에게 전부 맡겼다. 간격이 제대로 안 잡혔을 경우에는 몇 번이고 “다시 한 번”이라고 지도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일본 구전 예능 중에는 라쿠고落語 라는 장르가 있다. 라쿠고에서는 간격을 잘 잡는 사람을 진짜 명인으로 인정해준다. 그런데 연기를 못 하는 배우들은 이 간격을 잡는 방법이 굉장히 서투르다. 배우에게 필요한 여러 조건이 있지만 호흡과 간격을 잘 잡는 것이 정말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준익 감독이 얘기했듯이 관객들이 그 침묵 속에서 많은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마’를 못 잡는 사람을 흔히 멍청하다고 이야기한다.

김홍준 이 시기에 만들어진 <쓰바키 산주로>, <요짐보> 같은 영화와 비교해 <할복>은 액션의 무게감이 강조된다는 평을 받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 속의 칼들이 진검이라서 그런 것 같다. 진검을 들고 액션신을 찍는 건 배우로서 어떤 느낌인지, 그리고 영화 전체의 스타일이나 액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듣고 싶다.

나카다이 다쓰야 참고로 처음부터 끝까지 진검을 사용해 촬영한 장면은 단바 데쓰로와의 결투 장면이다. 진검을 썼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스치며 베는 장면에서 칼과 머리 사이에 공간이 있다. 더 아슬아슬하게 베지 못한 것이 진검 사용의 단점이 아닐까 싶은데, 그 중량감은 잘 표현됐을 것 같다. 진검을 사용했을 때 좋은 점은 진검의 무게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도는 민첩하고 빠르게 휘두를 수 있지만 고바야시 감독은 묵직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수와 펼치는 ‘찬바라’ 장면은 반이 진검이고 반이 죽도이다. 어느 것이 진검인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관객 1 160편 정도의 영화에 출연했다고 알고 있는데 정말 다양한 배역을 연기했을 것 같다. 혹시 아직 못 해본 연기라거나, 꼭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나카다이 다쓰야슬 현역을 접을 시기가 아닌가 생각하지만, 지금은 85세까지 일이 잡혀 있다. 그래서 그때까지 살아있어야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욕심이 많은 성격이라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얼마 전에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과 함께 신작을 찍었다. 이번 작품은 왕년의 대배우가 치매에 걸려 가족들이 곤란해하는 내용의 영화다. 치매에 걸려 다른 건 못 하는데 『리어왕』의 대사는 줄줄 외운다거나 하는 그런 상황이 등장한다. 이런 역할은 태어나서 정말 처음 맡아본 역할이고, 지금 편집 중인데 어떤 영화가 나올지 무척 기대를 하고 있다.

관객 2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란>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를 직접 만나 정말 영광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나카다이 다쓰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는 많은 추억이 있다. 구로사와 감독의 현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예를 들어 <할복>의 현장은 정말 조용했다. 반면에 구로사와 감독의 현장은 정말 시끄럽고, 소란스럽고, 호통과 통곡이 날아다니는 훌륭한 현장이었다(웃음).

구로사와 감독은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항상 왜 긴장을 하냐고 야단을 쳤다. 그런데 배우 입장에서는 그런 야단을 맞으면 더 긴장을 하게 된다(웃음). 그래서 왜 그런 야단을 치냐고 말을 했더니 “아 그러냐”고 답을 하더라. 그만큼 순진한 감독이었던 것 같다.

김홍준 <할복>의 시나리오 작가인 하시모토 시노부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이 분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 <라쇼몽>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할복>의 현장에서 고바야시 감독이 시나리오대로 촬영을 했는지, 아니면 영화를 찍으면서 고쳐나갔는지 궁금하다.

나카다이 다쓰야가 아는 한 고바야시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의 글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문장이 -다, -사로 끝날 때는 둘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그런 것까지 완벽하게 대본대로 외웠던 기억이 난다. 하시모토 선생의 대본에는 대사 말고도 지문도 많이 있는 편인데, 배우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까지 상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배우들은 대본에 나와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연기를 하려 했다. 참고로 하시모토 선생은 지금 95세인데 여전히 건강하다.

관객 4 어제 자리에서 배우는 ‘문학성’을 갖고 연기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인물에 몰입하는 공감 능력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나카다이 다쓰야 책을 많이 읽고 책을 통해 생각하고 상상력을 키우는 건 지금도 꾸준하게 하는 일이다.

사실 ‘아, 나는 이런 놈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역할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역할이 배우 입장에서는 재미있기도 하다. 굉장히 미워할 수밖에 없는 싫은 사람이라도 인간에게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양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배역이면 연기하기에 훨씬 재밌다고 느낀다. 지금까지 연기를 하면서 ‘아, 이 인간은 정말 나랑 쏙 닮았네’라고 느끼게 되는 역할은 거의 오지 않았다.



관객 5 나루세 미키오의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에서 보여주신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상대적으로 표현을 덜 하면서 미니멀한 연기를 선보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카다이 다쓰야 나루세 감독의 영화는 다섯 편 정도 출연을 했다. <요짐보>, <쓰바키 산주로>에서 나를 좋게 본 것 같다. 처음에 나루세 감독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내가 연극 배우 출신이기도 하기 때문인지, 내 영화에서 일절 ‘연기다운 연기’를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나루세 감독은 후배인 구로사와 감독을 ‘쿠로짱’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는데, “쿠로짱 현장에서처럼 거창한 연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서 있을 거면 그냥 서 있기만 하면 된다, 그냥 자연스럽게 서 있으면 내가 알아서 자유롭게 찍을 테니 연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나는 당시 젊었기 때문에 거기에 납득을 하지 못하고 의문을 가졌다. ‘그냥 서 있는데 그게 왜 좋은 연기지?’하고 말이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본 뒤 훌륭한 작품이 나온 걸 보고 굉장히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냥 서 있으라’는 건 극단적인 표현이고, 내 생각에는 굉장히 현실적인 연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나루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기도 했다.

김홍준 두 분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준익 새로운 영화를 찍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내용이 <동주>보다 더 파격적인 ‘반일 영화’다. 나카다이 선생님을 꼭 캐스팅하고 싶은데, 이 영화에 출연하시면 입국 거절 당할 것 같아 제안을 못 드리겠다(웃음).

나카다이 다쓰야 역사 속에서 일본의 군국주의가 있었고, 그것으로 한국의 많은 분들께 폐를 끼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준익 감독이 ‘반일 영화’를 찍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나는 그 영화를 꼭 보고 싶다. 역사 속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반성을 하는 일본 사람들도 사실 많이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반성을 못 하고 있는 사람이 정치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이 꼭 일본에 소개가 되면 좋겠다.

김홍준 어제 사석에서 나카다이 선생님이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 회고전을 하면 나이 든 관객이 많은데 한국은 젊은 관객이 많아서 인상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오늘 온 관객들에게, 특히 젊은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

나카다이 다쓰야 최근까지도 연극이나 영화, TV 드라마에 출연을 했지만 일본도 점점 효율을 좇는 효율화의 시대에 접어드는 것 같다. 그래서 일부러 극장에 와서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거나 돈을 주고 연극을 보는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살아 있는 무대, 살아 있는 극장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에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을 와서 보니 청년들이 더 많더라. 그래서 한국을 부럽게 느끼고 있다.

물론 엔터테인먼트도 중요하지만, 영화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고 전쟁과 같은 악한 체제에 저항하는 인간의 삶이 담겨 있다. 영화를 통해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담긴 영화를 이준익 감독을 포함한 사람들이 계속 만들어 나갈 것이다. 아무쪼록 여러분도 그런 영화를 계속 많이 봐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창섭 관객에디터

사진 최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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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마사키 탄생 100주년 특별전]



한없이 냉혹한 결말

-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



영화는 이이 가문의 저택 앞에 몰락한 히로시마 후쿠시마 가의 가신이었다는 쓰구모 한시로라는 사내가 모습을 보이면서 시작한다. 이 쓰구모라는 남자는 가문의 몰락 이후 수치스러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음을 밝힌 뒤, 사무라이다운 최후를 위해 할복을 치를 수 있도록 저택의 마당을 빌려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이이 가문을 관장하는 고문 사이토 가게유는 이러한 쓰구모의 천명을 전해듣고는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또 기어 들어왔군...” 이 심드렁한 답변의 이유인즉 당시 에도에는 현관에 들이닥쳐 짐짓 호기롭게 거짓 할복을 맹세한 뒤, 사태를 지연시키고 미적거리면서 처치가 곤란해진 다이묘에게 돈 몇 푼을 구걸하는 하찮은 짓거리가 낭인들 사이에서 유행했기 때문이다. 사이토는 이미 한 차례 저택의 현관에 발을 들여 거짓 할복을 천명한 낭인 하나를 가차없이 압박하여 자결로 몰고간 바 있다. 영화는 심상치 않은 속셈을 가지고 나타난 쓰구모와 저택에 들어선 자들을 쉽게 내보내지 않으려는 사이토의 대화와 플래시백을 중심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이루며 전개된다.


<할복>의 서사를 수렴하는 이미지는 사변형의 틀로 시각화되어 화면에 나타난다. 그 사각의 틀의 범람이란 네모꼴로 구성된 이이 가문 저택의 설계 도면이 영화의 도입부에 제시됨으로써 일찌감치 예고된 것이며, 관객은 저택 여기저기에서 해당 무늬의 출몰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사각의 틀은 이이 가문 저택을 구성하는 일본식 전통 가옥의 구조이자, 할복 의식이 거행되는 마당 지붕의 구도이며, 마당의 중앙에서 할복자가 자리하는 다다미 받침의 형태이기도 하다. 그 사각의 틀이 최종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마루 한복판에 우물 정井 문양을 새겨 넣어가며 사변형의 기하학적 이미지를 과시하는 이이 가문, 나아가 무사 공동체의 속성이다. 저택 내부의 가신들은 저택에 들어온 낭인을 사각의 틀에 가둔 뒤, 사방에서 포위하기를 반복한다. 다시 말해 공동체 내부의 일원들은 끊임없이 사각의 틀 안에 먹잇감을 포획한다.



고바야시 마사키는 전반적으로 정적이고 엄격하게 공간을 누비는 카메라 운동을 채택함으로써 무사도 세계의 특성을 구축하는 동시에 부분적으로 빠른 줌인, 사각 앵글, 클로즈업 등 상대적으로 매우 과장된 테크닉을 사용하여 정교한 구조로 체계를 이룬 저택 한가운데에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테크닉의 간헐적 사용은 저택의 한복판에서 무사 공동체의 모순과 비합리를 폭로하는 쓰구모의 역할을 은유하는 제스처이기도 한 셈이다. 텅 빈 가옥의 이곳저곳을 훑어보이던 오프닝에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조차 없던 이이 가의 가신들은 쓰구모의 생존이 지속됨에 따라 점층적으로 그 수를 늘리더니 쓰구모와의 최후의 교전이 발생하는 마지막 시퀀스에 이르러서는 시네마스코프로 포착된 그 넓은 실내를 빼곡히 채울 정도로 증식되어 있다. 저택 안에서 쓰구모가 맞서는 상대는 단순히 수치로 환산되는 십수 명의 가신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보존해내려는 의인화된 하나의 체제이다.

무사 공동체의 모순을 꿰뚫어내는 쓰구모의 저항의 몸부림이 감동적이라면, 그 까닭은 쓰구모가 대의를 지닌 위대한 영웅이나 부조리한 기득권 세계를 전복시키려는 혁명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최후의 액션 시퀀스에서 무사 공동체의 질서를 상징하는 정井 자 문양의 벽지를 배경으로 삼은 뒤 전투를 속행하는 쓰구모의 모습은 그 역시 무사도의 세계에 속해 있는 쇠락한 사무라이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낸다. 그의 언행이 공동체 내부의 환부를 날카롭게 겨냥했다면, 그것은 그가 바로 그 공동체의 질서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처음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숏에서부터 쓰구모는 이미 이이 가문의 가신들로부터 모욕을 받은 이후의, 사무라이로서 칼을 바닥에 내팽개친 이후의, 가족이 차례로 죽음을 맞이한 이후의 상태이다.


이 영화를 보고 쓰구모 한시로를 연기한 나카다이 다쓰야와 가문의 고문 사이토로 분한 미쿠니 렌타로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갈등이 폭발하는 대단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들의 연기는 그저 한 편에 마주하고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미세한 반응과 떨림을 화면에 겨우 내놓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서스펜스가 성립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사적인 사건에 가깝다. 그들의 언어와 표정은 가히 대화의 활극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격렬하고 장중하며 위엄 있다. 영화를 지배하는 비장미를 한층 더 강화하는 것은 그들이 연기하는 자들이 유사한 이념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이다. 쓰구모와 사이토는 공통적으로 무사도의 이념에 소속된 인물이며, 그 이념의 맹점을 충분히 견지하는 인물이다. 차이는 명료하고 냉정하다. 전자는 이념의 맹점에 의해 자신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진 자이고, 후자는 그 이념의 맹점이 드러나는 순간,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리라는 것을 알고 필사적으로 이를 막으려는 자이다. 쓰구모와 사이토는 대척되는 인물이 아니다. 두 세계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는 5월 13일, 쓰구모 한시로가 저택에 찾아왔다는 기록을 일지에 적는 사이토의 내레이션에서 출발하여 그의 할복 소식을 알리는 동일 화자의 내레이션에서 종료된다. 공동체의 역사에서 쓰구모의 행적은 철저히 누락된다(이때 화면은 상황이 종료되어 텅 빈 저택의 풍경을 비춤으로써 영화의 도입부로 재귀한다). 최후의 액션 시퀀스에서 관객이 목격하는 것은 수많은 가신들의 포위망을 뚫어내고 에워싸이기를 반복하는 한 귀기 서린 육체의 길고 피로한 몸부림이다. 여기엔 영웅의 화려한 칼싸움도, 존중받을 만한 무사의 이념도 없다. 그것은 쓰구모의 회상을 통해서 간신히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 보일 뿐이다. 동시대의 찬바라 영화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지극히 반反 활극적으로 보일 정도로 화려함이 부재한 결말의 액션은 고작 개인의 폭로에 의해 존폐를 위협당한 공동체가 부리는 천박한 위악이다. 권위가 추락했을 때 무사 공동체가 실천할 수 있는 행위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집단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며 여기에 그토록 강조되던 무사다움이란 찾아볼 수 없다. <할복>의 가장 강력한 미덕은 공동체의 기능 부전과 단독자로서의 영웅의 불가능함을 동시에 선언하는 저 냉혹한 결말에 있다.

김병규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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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을 다룬 일본 영화에 대한 짧은 소개


 

일본의 카이단Kaidan  괴담怪談 도깨비나 귀신원귀 따위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지칭한다에도시대(1603~1868) 널리 퍼졌으며 일본 전통 가면극이나 인형극을 통해 일찍이 대중들에게 보여졌다대부분의 괴담은 일본의 특정 지역성이나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참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원래는 에도시대의 전통적인 유령 이야기를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과 같은 현대 공포영화에도 쓰이고 있는 용어이다.

 

괴담의 유행: 햐쿠모노가타리 hyakumonogatari kaidankai

 

일본에는 햐쿠모노가타리(百物語)'라는 아주 오래된 게임이 있다 게임은 유령을 불러오는 일종의 의식이라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100개의 촛불을 켜고 차례로 자신이 알고 있는 괴담을 이야기한다이야기를 마친 사람은 촛불 하나를 끈다괴담을 말할수록 하나 촛불이 꺼지기에 방은 점점 어두워져 간다그리고 드디어 번째 촛불이 꺼지고 나면 유령이 찾아온다고 한다. 햐쿠모노가타리의 유행으로 괴담집이 하나의 문학장르로 자리 잡게 된다 이야기들은 지금까지 일본의 다양한 극예술의 소재로 빈번하게 쓰이며 반복적으로 각색되어왔다.

 

 

<우게츠 이야기>(1953), 미조구치 겐지

 

1776 우에다 아키나리는 우게츠 모노가타리라는 제목의 괴담집을 쓴다.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 괴담을 원작으로 한다. 전쟁 혼란스러운 정세를 틈타 돈을 벌려고 하는 도공 겐주로는 아내를 두고 도시로 떠난다. 도시에서 그릇을 팔던 그는 산속 저택에 사는 와카사라는 미지의 여인에게 현혹되어 그녀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러던 중 겐주로는 시장 상인에게 산속 저택의 일가가 이미 예전에 몰살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많은 일본 괴담이 그렇듯, 우게츠 이야기에서 역시 지위와 물질적 부에 대한 탐욕이 살인, 갈취, 간음의 동기를 제공한다. 작품은 전쟁 에도시대의 모습을 뛰어나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1959), 나카가와 노부오

 

'요츠야 괴담' 30가지 이상의 버전으로 영화화될 만큼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눈에 띄게 얼굴이 예뻤던 오이와가 천연두를 앓으면서 얼굴이 흉측하게 변하자다미야 마타자에몬은 로닌(주군이 없는 사무라이) 이에몬을 속여 딸과 혼례를 치루게 한다. 이후 장인과 장모가 죽자 이에몬은 방탕한 생활을 하며 오이와와 이혼하려는 계략을 세운다. 이에몬에 분노한 오이와는 모노노케(사람을 괴롭히는 원령) 변해 이에몬에게 찾아온다.

요츠야 괴담은 가부키 작가 쓰루야 난보쿠에 의해 '토카이도 요쓰야 괴담'으로 각색된다. 괴담은 나카가와 노부오의 영화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 원작으로 삼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에몬과 오이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장인의 반대가 심하다. 이에몬은 결혼허락을 받으러 장인을 찾아갔다가 자신을 무시하는 장인의 태도에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고 만다. 이에몬은 장인의 원수를 갚겠다는 거짓 약속으로 오이와를 속이고 그녀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이후 오이와에게 독약을 먹인 다음 신분 높은 사무라이의 딸인 우메와 혼인할 계획을 세운다. 원작 요츠야 괴담과 달리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에선 오이와가 독약을 먹음으로 얼굴이 흉측하게 변한다이에몬에 대한 분노로 원령이 오이와가 이에몬에게 나타나는 모습을 영화는 실험적인 미장센을 통해 보여준다.

 

<괴담>(1964) 고바야시 마사키

 

고바야시 마사키의 영화 <괴담> 고이즈미 야쿠모(라프카디오 ) 괴담 모음집 괴담kwaidan(1904) 영화화한 것이다. 괴담을 다룬 일본 영화 중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흑발, 설녀, 없는 호이치, 찻잔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물에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오프닝 크레딧이 기묘한 인상을 준다. 고바야시 마사키는 <괴담>으로 <할복>(1962) 이후 두 번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번째 에피소드: 흑발


자신이 모시던 영주가 죽자 가난해진 무사는 아내를 버리고 새로운 영주를 찾아 멀리 가려고 한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내는 남자에게 애원하지만, 남자는 출세를 위해 아내를 두고 떠난다. 후에 그는 명문가의 딸과 새로 결혼해 출세하는데, 점점 버리고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커진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남자는 임기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가 교토에 도착했을 그의 집은 이미 많이 변해 있다. 아내를 그리워하던 주인공의 심리묘사, 사운드의 활용이 돋보이는 에피소드다.

 


 

번째 에피소드: 설녀


어머니와 둘이 사는 미노키치는 나무를 하러 갔다가 눈보라를 만나 오두막으로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사람을 얼려버리는 설녀를 만나는데, 설녀는 미노키치에게 누구에게도 자신을 봤다는 말을 하지 것을 당부한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그는 1 유난히 피부가 하얀 여인 유키를 만나 결혼생활을 꾸린다.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작품에선 보기 드물게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세트가 눈에 띄는 에피소드로, 인간적 마음을 갖는 귀신의 모습을 있다. 고바야시 마사키는 영화제 출품을 위해 상영시간을 줄여야 했을 설녀 에피소드를 잘라냈다고 한다.

 


번째 에피소드: 없는 호이치

 

없는 호이치 사무라이 집단인 헤이케 일족과 겐지 일족의 싸움인 단노우라 해전을 배경으로 한다. 헤이케 일족은 승리의 가망이 없자 물에 뛰어 들어 전멸한다. 이곳에서 잡힌 게의 등껍질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어 헤이케의 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고 한다. 없는 호이치는 단노우라 전투로부터 700 후의 이야기다. 헤이케 일족의 유령들은 비파 연주 솜씨가 좋기로 소문난 맹인 호이치를 홀려 헤이케 일족에 관한 노래인 <헤이케의 모노가타리> 연주시킨다. 호이치가 묵고 있는 절의 주지스님은 사실을 알고 호이치의 전신에 반야심경을 밤마다 찾아오는 유령을 피하려 한다. 개의 에피소드 가장 알려진 이야기로, 전투 죽은 혼령이 가진 비애와 원한을 있다.

 


번째 에피소드: 찻잔

 

마지막 에피소드인 찻잔 찻잔 속에 비친 귀신의 영혼을 마셔버린 남자 관한 괴담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다. 작가는 이야기를 쓰던 도중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영화 작가가 쓰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찻잔 속에 비친 남자의 형상을 무시하고 물을 마셔버린 무사 칸나이에게 그날 찻잔 비췄던 남자가 찾아온다. 칸나이는 찾아온 남자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고, 다음날 남자의 가신이라 말하는 명의 유령이 칸나이를 찾아오고, 칸나이는 점점 미쳐간다.

 

일본에서 괴담이 특히나 유행하는 이유로 연구자들은 지진과 같은 재해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일본의 전통적인 종교관 때문이라고도 본다. 또 잦은 전쟁, 사무라이들의 전투 등으로 생겨난 비극적 이야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현대 영화에서도 일본의 괴담은 그 공식을 유지하며 변형되어 오고 있는데, 시라이시 코지 같은 감독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빨간 마스크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일본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현대의 도시 괴담역시 전통적 괴담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황선경 |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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