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시네바캉스 서울, 7월 28일~8월 2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

올해로 6회를 맞는 ‘시네바캉스 서울’이 7월28일부터 8월28일까지 한달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데자뷰’란 컨셉으로 기획된 이번 영화제는 ‘클리셰’란 단어를 존재하게 한, 영화사의 위대한 선배감독들의 30여 작품을 소개한다. 이 지면에서 소개하는 작품 이외에도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 <싸이코> <새>, 오슨 웰스의 <위대한 앰버슨가>와 자크 투르뇌르의 <캣 피플>, 브라이언 드 팔마의 <드레스드 투 킬>과 마이클 만의 <히트> 등이 상영된다. 자세한 상영시간표는 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를 참조하시길.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두 얼굴
<마이클 치미노 특별전>
마이클 치미노의 장편영화 7편 중 무려 4편이 ‘특별전’ 형식으로 초대된다. 데뷔작인 <대도적>(1974)을 비롯해 출세작이었던 <디어 헌터>(1978), 이후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를 문 닫게 만든 저주받은 걸작 <천국의 문>(1980), 그리고 작품성에 비해 연달아 상업적 실패를 안기며 그를 절망에 빠지게 했던 <이어 오브 드래곤>(1985)이 그 목록이다. 이 작품들은 전혀 다른 스토리의 흐름을 보이지만 분명 관통하는 정서의 코드는 존재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메시지, 감성을 부각하는 음악 사용, 약간의 연극적 성향과 그를 상쇄시킬 만큼 조화로운 역사적 배경이 그러하다.

치미노가 활동을 하던 당시 미국은 ‘뉴아메리칸 시네마 운동’이 정점에 달했다. 뉴아메리칸 시네마는 우선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폭발적 성장을 가져왔는데, 그와 비견되어 미국영화 특유의 고전적 내러티브를 극대화한 사회비판물 역시 쏟아지게 됐다. 치미노의 경우가 후자에 해당한다. 우리는 그를 통해 존 포드 같은 클래식한 내러티브에서 얻는 광대한 시각적 쾌감을 느낄 수 있고, 샘 페킨파 같은 혁신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영광과 굴욕을 동시에 맞볼 수 있는 이번 특별전 구성은 흥미롭다. 치미노가 활짝 연 천국으로의 문을 명쾌하게 정리할 기회다.

시나리오작가로 일하던 때, 치미노는 <더티 해리2>(1973)의 작업을 통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만났다.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도적>을 통해 치미노는 경쾌한 리듬으로 버디무비를 풀며 ‘천재 감독’이라 명명된다. 두 번째 연출작인 <디어 헌터>는 큰 성공을 거둔다. 이 작품으로 그는 스튜디오의 전폭적 지지를 얻는데, 이는 뒤에 양날의 칼이 된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세 친구의 운명을 다룬 이 영화는 전쟁의 이전과 이후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스토리의 마지막에 견고한 감동을 전하는데, 작품의 주제 의식 또한 흠잡을 데 없다. 이후 <천국의 문>이 끔찍할 정도로 실패하며 미국에서의 치미노는 완전히 몰락하지만 오늘날 컬트로 불릴 정도로 매혹적인 이 작품은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아야 묘미가 살 것이다. 백인전쟁의 끔찍함을 광활하게 다룬 이 극에서 연출자의 미장센은 극대화된다. 이후 5년의 공백 뒤 <이어 오브 드래곤>을 통해 그는 재기한다. 물론 이 영화도 상업적으로 성공하진 못하지만 젊은 날의 미키 루크가 아름답게 새겨진 이 작품에는, 차이나타운의 끈적한 공기와 함께 액션신이 묵직하게 담긴다.

칸영화제 상영 버전 그대로
<카를로스> Carlos
올리비에 아사야스/ 330분/ 프랑스, 독일/ 2010년

무려 5시간30분이다. 칸영화제에서 <카를로스>(2010)가 얻은 유명세는 무엇보다 그 긴 상영시간에 있을 거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는 여느 전기영화보다 훌륭하다. 처음 이 작품은 카날플러스의 TV판 ‘3부작 미니시리즈 영화’로 기획되었다. 당시 전체의 길이는 550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버전은 칸영화제 당시의 것과 동일한 330분이다. 혹시 나중에 국내 개봉이 확정된다 하더라도 미국과 독일에서처럼 반으로 편집될 확률이 높아 이 영화의 진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길 권한다.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자칼’이란 호칭으로 유명한, 전설적 테러리스트 카를로스(암호명)의 일대기를 침착하게 영화에 담아냈다. 냉전기의 상징과도 같은 그를 묘사하며 아사야스는 조급함 대신 관조를, 그리고 ‘차라리’ 명백해지지 않을 것을 선택하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세 파트로 묘사되는 카를로스의 캐릭터는 상당히 광적이지만 또한 매우 복합적이라서 결국은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닌다. 범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비현실적 상황을 그는 록스타처럼 당당하게 헤쳐나가고, 반면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오히려 몽환적 자태로 나르시시스트적 기질을 드러낸다. 주인공을 맡은 에드거 라미네즈는 이 역을 위해 무려 15kg를 살찌웠다. 사진과 비교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카를로스가 된 그를 래리 로흐터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약간의 악마성과 몽상가적 기질, 그리고 이상주의적 성향과 더불어 암살범으로서의 적의가 묻어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섞어놓은 모순 덩어리의 캐릭터.” 물론 캐릭터도 뛰어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감독의 미장센일 것이다. ‘1975년 비엔나 석유수출기구(OPEC)에서의 인질극’ 시퀀스에서 아사야스의 솜씨는 보기 좋게 드러난다.

거장이 본 유럽의 현재
<필름 소셜리즘> Film Socialsm
장 뤽 고다르/ 102분/ 프랑스/ 2010년


장 뤽 고다르의 최신작, 이 짧은 문구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히 설명된다. 하지만 여타 영화제를 통해 관객이 전한 것처럼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조금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필름 소셜리즘>은 한마디로 매우 현대적인 작품이다. 총 세 갈래의 흐름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 영화는, 각각 ‘이것과 같은 것들’,‘신이시여 어디로 가나이까?-우리의 유럽’,‘우리의 휴머니티’란 소제목을 달고 있다.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촬영되었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나열돼 있다.

첫 번째 부분, 이 파트에서 카메라는 지중해를 항해하는 거대한 여객선 안에 있다. 이 부분의 에피소드는 고다르가 지중해를 여행하며 생각한 유럽의 상황을 우회적으로 담는다. 바캉스를 즐기려는 승객이 각자의 언어로 다양한 화젯거리를 내뱉는데, 이들의 말은 때로는 화면과 매치되고 때로는 분절된다. 굳이 내러티브로 이를 연결할 필요는 없다. 소쿠로프의 <러시아 방주>(2002)처럼 이 영화는 천천히 주제에 접근한다. 이윽고 밤이 되자 두 번째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이는 첫 번째와 다르게 실험적 극영화에 가깝다. 한 소녀와 그녀의 남동생은 자신들의 부모를 마치 재판하듯 닦달하는데, 이들이 집중하는 유년기의 기억에는 ‘자유와 평등, 형제애’가 담긴다. 챕터의 제목처럼 이는 마치 유럽의 과거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영화는 여섯개의 장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상자료를 펼쳐 보인다. ‘이집트, 팔레스타인, 오데사, 헬라스, 나폴리, 바르셀로나’가 그 배경인데, 그곳엔 각자만의 전설이 있다. 개중에는 진실된 이야기도 있지만 얼토당토않은 거짓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세 에피소드가 당도하는 곳에서 고다르는 2010년의 유럽, 세계의 모습을 말하고자 한다.

<브리가둔> Brigadoon
빈센트 미넬리/ 108분/ 미국/ 1954년


‘브리가둔’은,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환상 속 마을을 가리키는 단어다. 어느 날 두 미국인이 길을 잃는데, 그들이 고생 끝에 발견한 곳이 브리가둔이다. 놀랍게도 그곳은 18세기 중엽의 어느 지점에서 시간이 멈췄다. 게다가 그들이 도착한 날은 결혼식 준비로 분주한 상황인데, 이같은 동화적 배경에서 진 켈리가 연기한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며 영화는 더욱더 로맨틱해진다. 이 작품은 <2000 매니악>(1964)이라는 호러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이와 비견할 때 <브리가둔>의 독특함은 장르적 특성에서 배가되는 것을 알게 되는데, 같은 소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영화의 색은 달라진다. ‘결혼식과 환상의 마을’이라는 코드를 미넬리는 ‘뮤지컬과 판타지’에서 찾았고, 그 선택은 옳았다.

<피닉스> The Flight of the Phoenix
로버트 알드리치/ 142분/ 미국/ 1965년


1965년작인 이 영화의 오프닝은 TV시리즈 <로스트>의 시작점과 꽤 흡사하다. 드라마의 첫 번째 시즌이 방영되던 2004년, <피닉스>라는 동명의 영화로 이 작품은 리메이크되기도 한다. 그만큼 이 플롯은 상업적인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어느 날 비행기가 사막의 중심부에 불시착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공황상태에 빠진다. 어떤 이는 죽고 어떤 이는 남는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맡은 ‘파일럿’은 이들의 정서적 리더가 되는데, 이후 독일인 ‘비행기 디자이너’가 등장하면서 극은 새로운 전개를 맞게 된다. 사람들이 부서지지 않은 비행기의 몸체를 이용해 ‘피닉스’라는 이름의 경비행기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고, 그들은 더욱 곤란해진다. 당시 유명한 스턴트맨이었던 폴 만츠가 피닉스호의 항공장면을 찍다 사망하는데, 이 사건으로 영화는 더 유명해졌다. 2차대전 당시 제임스 스튜어트가 ‘봄바디어’사의 항공기 조종사로 있었던 것과도 그의 배역이 특이하게 맞물린다.

<뮤리엘> Muriel ou Le temps d’un retour
알랭 레네/ 115분/ 프랑스, 이탈리아/ 1963년


때는 1962년이다. 불로뉴쉬르메르에서 고가구상을 운영하는 엘렌은 남편과 사별한 뒤, 알제리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온 아들 베르나르와 함께 산다. 젊은 시절 그녀의 연인이었던 알퐁스가 알제리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프랑스로 귀환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그를 초대한 것이 배경이다. 이렇게 알퐁스는 조카딸이라며 ‘프랑소와즈’란 젊은 아가씨를 대동하고 나타나는데, 그녀는 연기자 지망생이다. 4명의 캐릭터가 모이자 영화는 본궤도에 오른다. <뮤리엘, 혹은 귀환의 시간>(1963)이라는 원제를 지닌 이 작품에서 알랭 레네는 특유의 시간에의 탐구를 주제로 다룬다. ‘뮤리엘’은 베르나르의 기억을 잠식하는, 고문과 전쟁으로 숨진 알제리 소녀의 이름이다. 그녀는 직접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와 인물간 의사소통 불능의 상징으로 승화되어 영화에 기록된다. 프랑스 개봉 당시, 난해한 주제와 스토리의 탓으로 개봉된 지 15일 만에 극장에서 내린 불명예를 기록하고 있다.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프랭클린 J. 샤프너/ 112분/ 미국/ 1968년


<혹성탈출>(1968)은 <콰이강의 다리>(1957)의 원작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디스토피아 소설가 피에르 바울러의 SF소설 <원숭이들의 행성>(1963)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할리우드 시리즈는 올해 8월, 그 일곱 번째 작품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68년작 오리지널 카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스토리의 시작은 2673년 3월이다. 주인공 테일러를 실은 우주선이 18개월간의 항해를 마치고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는데, 광속 여행 탓에 실제로 흐른 시간은 2천년이나 지났다. 그곳에서 인간은 원숭이에게 사육되는 동물이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퇴화된 존재다. 전쟁을 포함한, 인류의 이기적 집단의식 배척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글: 이지현(영화평론가) 제공: 씨네21

*이 글은 영화전문 주간지 씨네21 814호(2011. 7. 27)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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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1936년 앙리 랑글루아, 조르주 프랑쥬, 장 미트리 등이 참여해 비영리 단체로 사라지는 무성영화를 보존하고, 복원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박물관의 기능으로 출범했다. 앙드레 말로의 표현을 빌자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상상의 박물관이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본격화된 것은 물론 전후의 일이다. 1948년 10월 메신느 거리에 50석 규모의 작은 상영관과 영화 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시네마테크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고다르, 트뤼포, 로메르, 리베트, 샤브롤 등의 미래의 누벨바그 감독들은 어느 날 랑글루아의 낡고 허름한 작은 영화의 집을 방문했고 거기서 진정으로 영화의 빛과 마주했다. 그들이 접한 빛은 당시 카누도와 델뤽을 매개로 ‘알고 있다’고 여겼던 영화들, 혹은 주말의 명화에서 접하는 그런 영화들이 아니었다. 젊은 친구들에게 진정한 영화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이었다. 혹은, 장 콕토의 표현을 빌자면 ‘저주 받은 영화들’이었다.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는 미학적 저항의 교두보와도 같은 장소였다. 누벨바그리언들이 이곳에서 발견한 것은 영화의 되찾은 시간들, 기억들, 역사들이다. 랑글루아는 50석의 상설관에서 야심찬 기획으로 전쟁의 고아이자 과거가 없는, 혹은 과거를 원치 않았던 아이들에게 진정한 영화의 기억을 선물했다. 그 과거란 결국 언제나 뒤늦은 기억들이다. 이들은 이후에 작가주의를 주창했지만 방점은 언제나 작품에 있었다. 작가 이전에 작품이, 작가 이후에 작품이 존재한다. 작가는 부재하지만 사라진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젊고 영원하다. 누벨바그리언들은 작품에서 부재의 빛을 발견한 자들이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허식에 가득한 이들이 수다스럽게 본 영화들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누벨바그리언들이 발견한 빛은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흔적과 잔재들이다. 시네마테크와 더불어 비평은 그 흔적을 더듬어 작품의 유예된 시간성을 회복하는 작업이었다.


전후, 전 세계를 통틀어 하워드 혹스의 영화를 무성에서 유성영화까지, 그리고 코미디, 스릴러, 서부극, 누아르의 영화들을 모두 볼 수 있었던 곳은 단연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 뿐이었다. 앙드레 말로가 ‘벽 없는 미술관’이라 불렀던 상상의 박물관을 랑글루아는 현실 속에서 실현했다. 영화의 박물관은 영화의 새로운 관계들을 매번의 상영을 통해 회복하는 곳이었다. 범주화나 연대기, 혹은 연상이나 연합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구적인 이질성, 생산적인 혼란을 거치면서 영화의 진정한 역사가 창조된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매번의 상영을 통해 영화의 역사가 과거와의 관계에서 갱신되고 매번 변경된다고 믿었다. 이는 하나의 총체적인 역사가 아니라 일시적이고, 덧없고, 불안정하고 복수적인 영화사의 시간성을 상정하는 기획이었다. 랑글루아의 상영은 영화의 역사를 마치 초현실주의자가 그러했듯이 매번 시공간의 거리와 차이가 있는 영화들 간에 새로운 성좌를 그려낼 수 있게 해주었다. 젊은 비평가들은 랑글루아 덕분에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뒤범벅으로 볼 수 있는 자유를 누렸고, 이는 창조의 자유로 이어졌다. 시네마테크가 없었다면 트뤼포, 샤브롤, 로메르, 고다르의 새로운 영화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68혁명을 거치면서 힘든 1970년대를 보냈다면, 1980년대 이래로 ‘영화의 집’의 건설계획 등을 거쳐 영화박물관의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5년 영화도서관과 박물관, 시네마테크가 함께 베르시로 이전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재정의 80%를 국가의 도움으로 받고 있지만 시네마테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은 국가의 어떤 간섭도 없이 ‘문화적 예외’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특별전’은 그런 시네마테크의 역사 안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은 프랑스 영화들을 상영하는 행사이다. 새롭게 복원된 영화들, 시네마테크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작가들의 영화, 시네마테크가 발굴한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함께한 영화들. 이는 프랑스 영화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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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트 블랑슈: 한국영상자료원 컬렉션

1974년에 만들어진 이두용 감독의 <용호대련>은 만주를 배경으로 태권액션영화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이 영화의 전설적인 주인공으로 오디션을 통해 다리가 길고 화려한 발차기를 소유한 차리 셸(한용철)이 발탁되었다. 이두용 감독을 유명하게 만든 이 영화는 그러나 오리지널 네거티브가 테크니스코프(생필름을 절약하기 위해 필름의 한 프레임에 두 장면을 담는 방식)이어서 오랫동안 제대로 상영할 수가 없었던 작품이었다. 2009년 한국영상자료원은 이 영화를 복원해서 2010년 5월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이번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시네마테크의 또 다른 친구로 영상자료원을 초대했고, 이두용 감독의 <용호대련>을 포함해 영상자료원이 새롭게 복원한 네 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복원된 영화필름을 함께 보는 즐거움을!


올해로 6번째 열리는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를 축하합니다. 서울 아트시네마의 파트너인 한국영상자료원이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의 한 섹션으로 그동안 공들여 복원한 한국고전영화 4편을 상영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특별히 이번 영화제가 “영화의 즐거움을 나누다“라는 컨셉이라니, 셀룰로이드 필름 한 조각, 한 조각을 정성스럽게 만지고, 35밀리 영사기에서 한 릴이 다음 릴로 넘어갈 때 내는 그 찰칵 소리에 흥분되어 영화를 보는 필름 아카이브의 한 사람으로 복원 필름을 함께 보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이라는 명칭이 낯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영상자료원은 영화필름들을 수집하여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보관고에 보존하는 일(영화필름은 높은 온도와 습도에서 쉽게 손상됩니다)과 더불어 이 영화필름들을 영사기에 걸 수 있는 프린트를 만들어 서울 아트시네마처럼 극장(시네마테크KOFA)에서 상영하는 일을 합니다. 또 수집된 자료들을 영화박물관에서 주제별로 전시하고 일반인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영화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영상자료원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작업은 우리 영화필름을 발굴하고 손상된 자료들을 복원하여 보존하는 일입니다. 이번에 상영되는 4편의 영화는 이런 수고스러운 작업의 결과물들입니다.


이두용 감독의 <용호대련>은 70년대 생필름을 절약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테크니스코프 방식으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복원되기 까지 몇 년의 시간이 투여되었습니다. 영화를 다운로드해서 보거나 DVD로 보는 데 익숙한 지금의 관객들에게 이런 작업이 별스러워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는 스토리가 전부인 매체가 아닙니다. 영화는 그 스토리를 담고 있는 매체- 8, 16, 35밀리 필름 혹은 디지털 파일-,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 -일반적인 35밀리 영사기로 상영되는 혹은 70mm 영사기로, 혹은 3D 영사로-, 그리고 캄캄한 극장에서 낯선 타인과 함께 보는 그 경험 자체가 중요한 대중매체입니다. 이전에 제가 잠시 있었던 필름 아카이브의 극장에 피터 그린어웨이 감독이 온 적이 있었답니다. 자신의 작품이 영사되는 방식에 대해 그린어웨이가 어찌나 까다롭게 굴었던지 이 극장 영사기사들이 한차례 수난을 겪었답니다. 창작자가 원했던 그 오리지널 방식에 가깝게 영화를 볼 때 영화보기의 즐거움은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4편의 복원영화들을 함께 보면서 1960년대로, 혹은 70년대, 80년대로 돌아가 이 영화필름을 온 몸으로 체험했으면 합니다. (오성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부)






군중 액션신의 대가...발차기의 쾌감



나팔바지를 화려하게 펄럭이며 미국에서 날아와 최고의 발차기를 선보인 한용철은 “발차기로 악당 귀싸대기를 파바박 때리는 장면”을 원했던 이두용 감독에게 발탁된, 당대 최고의 액션스타 중 한명이다. 당시 나이가 스무살에 불과해 나이들어 보이게 수염도 기르게 했고, 유난히 긴 다리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나팔바지를 입혔으며, 사실 정확하게는 태권도 빨간 띠였던 그를 태권도 7단이라 속여 마케팅을 했다. 이두용 태권액션영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용호대련>은 말끔하게 복원된 상태가 “급조해서 만든 작품”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프로덕션디자인 등 상당한 수준의 퀄리티를 증명하고 있다. 웨스턴 무대를 연상시키는 만주시장 장면 등은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까지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마카로니 웨스턴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주인공 한용철이 일본과 중국의 두 조직을 오가며 보여주는 모습은 <요짐보>(1961)와도 닮았다. 이두용 감독은 “제작자인 곽정환 사장과 해외시장에도 통할 만한 우리만의 태권도 액션영화를 만들자는 목표하에 첫 번째 작품 <용호대련>을 만들었는데, 처음이다 보니 3배 정도의 제작비를 더 들여 준비기간도 길었고 세트도 공들여 만들었다”고 밝히며 “이후 작품들은 지방 극장들의 요구 등 흥행성에 치우쳐 빨리빨리 영화를 만들다보니 완성도에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 있었지만, 시리즈를 더해가며 액션 스탭들의 호흡은 더 잘 맞아서 오히려 더 뛰어난 액션장면이 나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주성철, 씨네21 에서) 


챠리 셸의 멋진 발차기를 추억하며

아내를 되찾으려는 챠리 셸의 분노의 왼발은 적의 양쪽 뺨따귀를 열 다섯 방씩 숨 돌릴 새 없이 가격하는 명장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여기까지. 불행하게도 의문의 사나이 권용문에게 오히려 당해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배수천과 그의 졸개들은 상하이 호랑이의 무시무시한 왼발을 아예 못쓰게 만들어버린다. 아하! 왼발을 못쓰게 된 상하이 호랑이가 외다리로 적들을 물리치겠는걸 하는데, 웬걸? 의문의 사나이 권용문은 역시나 독립군이었고 상하이 호랑이에게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라는 감동에 찬 연설을 하여, 왼발을 못쓰게 된 상하이 호랑이는 내가 다쳤는지 누가 봤어? 하며 시치미 뚝 떼고 조국 독립의 투지 때문인지 두 다리로 멀쩡하게 배수천을 무찌른다. 뭐야? 뭐가 돌아온 외다리란 거야? 두 다리로 잘 싸우는구먼 하는 불만은 잠시 접어두자. ...(중략)  내가 꿈꾸는 DVD 박스 세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챠리 셸 주연 이두용 감독의 태권 영화 여섯 편이 모두 복원되어 들어있는 초호화 박스 세트다. 챠리 셸의 멋진 발차기가 담긴 아름다 운 흑백의 스틸 사진들과 챠리 셸과 한국 액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던 우락부락한 토종 얼굴의 아저씨들, 이두용 감독의 인터뷰가 담긴 그런 박스 세트는 언제나 만들어질까? 언젠가는 꼭 만들어질 것이다. (오승욱 영화감독, 챠리 셸의 멋진 발차기를 추억하며, 웹진 영화천국에서



Cine-Talk
1월 20일(목) 7시. <용호대련> 상영 후 이두용 감독과의 시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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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에릭 로메르의 부음을 접하면서 과거의 추억이 떠올랐다. 2001년 7월 29일. ‘문화학교 서울’ 주최로 아트선재센터 지하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에릭 로메르의 17편의 작품을 상영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었다. 당시 문화학교서울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기획한 두 번째 회고전이었다. 지금에야 에릭 로메르는 시네마테크에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 작가이지만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여름이야기>가 개봉당시 천명의 관객을 넘기지 못했을 정도로 그는 소수의 시네필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2001년의 회고전은 로메르를 국내에 처음 온전하게 알리는 행사였다.


회고전에 즈음해 로메르의 영화사인 ‘로장주 필름’(로메르는 누벨바그 작가 중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해 40년 동안 거의 전작을 그곳에서 독립 제작했다)을 통해 그가 직접 서신을 보내왔다. 친필로 쓴 팩스에는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 저희 모든 작품에 대한 당신들의 오마주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 모든 감사와 따뜻한 우정의 표현을 받아주시길’이라는 짤막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당시 17편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그의 ‘연작들’을 소개하는 것과 두 편의 시대극인 <O후작 부인>(76)과 <갈로아인 페르스발>(78), 그리고 여전히 미지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나무, 시장, 메디아테크>(93)를 상영하는 것이었다. <나무, 시장, 메디아테크>는 로메르적인 우연이 전체에 일관되게 작동하는 영화로 거의 책 한권 분량의 대사가 담긴 가장 ‘수다스런’ 영화다. 이 영화는 지금도 프랑스를 제외하자면 로메르의 영화들 중 전 세계적으로 많이 상영되지 않는 작품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로메르의 팬이라면 이 영화를 꼭 봐야만 한다!






그 때의 회고전 이래로 한국에서 로메르의 영화를 필름으로 만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영화는 덜 소개되어 있고, 덜 평가되어 있다. 그가 평생을 연애 이야기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를 ‘연애박사’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특히나 그가 70년대에 만들었던 도시와 건축에 관한 다큐멘터리들을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80년대 ‘희극과 격언 시리즈’의 무대가 되어있는 장소들은 사실 70년대에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를테면, <비행사의 아내>의 인조공원이나 <내 친구의 남자친구>의 파리외곽의 도시건축물들이 그러하다. 로메르는 영화가 ‘공간의 예술’이라 여긴 작가였다. 공간이 인물과 맺는 극적관계는 그의 영화에서 풍경과 자연이 그러하듯 언제나 중요하다.


로메르는 대단한 절약의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영화가 선택의 예술이자 거절의 예술이라 여긴 사람이다. 영화는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것, 버려야할 부분을 버리는 것이기에 기술적 결함을 제외하자면 그는 놀랍게도 언제나 한 번의 촬영만을 했다고 한다. 그는 배우를 선택할 때 리허설을 하지 않았고, 연기지도를 절대 하지 않았다. 연기는 배우의 몫이라 여겼던 탓이다. 데뷔작을 제외하자면 그는 조감독을 평생 두지 않았고 단지 5-6명의 스태프로 영화를 만들었다. 시네마테크에서 무성영화로 영화를 배웠던 그는 영화가 문학이나 회화처럼 그 역사의 초기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변용해 뛰어난 영화가 나온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가장 근대적인 화가가 결국은 가장 잘 과거의 화가를 이용한 사람인 것처럼, 그는 영화에서도 자연을 앞에 둔 인간의 감동을 가장 웅변적으로 표현한 거장들의 작품을 계승하고자 했다.


로메르는 ‘우연성을 믿는 것, 그것이 나의 영화적 방식이다’라 말한다. 이 발언은 그런데 그가 영화의 전권을 통제하는 작가를 옹호하는 ‘작가주의 정책’의 주창자였음을 감안할 때 미학적인 입장에서 무언가 작은 모순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작가주의는 통상적으로 반우연성의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영화의 모든 장면들에는 견고한 의미론적 연결이 존재한다. 히치콕, 프리츠 랑, 스탠리 큐브릭 등 그들만의 고유한 영화적 구조를 구축한 작가들의 경우 그러하다. 로메르는 그러나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설사 인과론적인 연결이 존재할지라도 영화적 사건은 결정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령 그의 단편 옴니버스 영화 <파리의 랑데부>의 한 장면에서 우연히 장터에서 만난 낯선 사내는 남자친구의 새로운 애인에 대해 의혹을 갖는 여주인공 에스테에게 접근해 수작을 부린다. 그는 에스테에게 “항상 예외적인 만남은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이루어진다고 확신 했었죠. 가령, 여행 중이나, 휴가의 마지막에 혹은 급한 약속이 있을 때요. 이건 내 불행이기도 하고,  또 행운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대담해지거든요”라 말한다. 에스테는 그에게 싫지는 않은 표정을 보이지만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의 표시로 “그래요, 하지만 당신도 알듯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않죠”라 응수한다. 로메르의 영화에서 이런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과 예기치 않은 사건의 전개는 흔히 엿보인다. 가령, <봄이야기>에서는 목걸이의 실종과 우연한 목걸이의 발견이 발생하고 <겨울이야기>에서는 서로 헤어진 두 남녀가 우연히 수년이 지난 후에 버스 안에서 재회하는 사건이, 그리고 <여름이야기>에서는 세 명의 여성과 동일한 약속을 해 궁지에 몰린 남자가 우연히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위기를 모면하는 일이 벌어진다.






우연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화연출에 있어서 대단히 위험스런 시도다. 스토리의 공백과 결여, 거대한 빈틈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메르의 영화에서 우연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에게 우연은 생생한 현재, 신비로운 현재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어떤 인과율과 결정론에 좌우되지 않는 현실의 불투명성과 애매함, 즉 무언가를 읽어내기 어려운 불분명함으로 가득한 생생한 현실이 신비롭게 드러난다. 여기서 우연은 마치 어떤 패가 보일지 알지 못하는 포커 판의 카드 패와도 같은 것으로 그 패들은 현실의 표면에 다만 덮여 있을 뿐이다. 아직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은 불투명한 패의 향방에 따라 로메르적 사건이 발생한다. 그에게 영화는 마치 거친 바다 속을 항해하는 것과 같다. 진행하고 싶은 방향으로 가려해도 능숙하게 가지 못해 순풍대로 항해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다른 예술보다 우연에 좌우된다. 많은 영화작가들은 그러나 반대로 말하곤 했다. 사건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조직해 계획을 세워 우연에 맡기는 것을 멈추어버린다. 로메르는 그러나 일견 부조리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우연에 자신을 내어 놓아 자연의 바람과 흐름대로 영화를 이끌려가게 했다.


로메르의 영화에서 우연은 인물들의 실존적 선택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실존의 양식, 선택들, 거짓된 선택들, 그리고 선택에 대한 의식의 전체이야기가 그의 초기 ‘도덕이야기 시리즈’를 지배하고 이는 오랫동안 지속했다. 그런데 왜 이러한 것이 영화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되는 것일까? <모드 집에서의 하루 밤>, 그리고 <겨울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파스칼의 ‘내기’는 신이 존재하는가 혹은 존재하지 않는가를 내기할 때 분별 있는 도박사라면 신이 존재한다는 데에 배팅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파스칼의 논증은 행위자가 행위를 선택할 때 결단의 결과에 따른 효용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로메르의 선택과 관련한 문제는 또한 키에르케고르의 미학적, 윤리적, 종교적 인간과 관련해 보다 풍요로워진다. 파스칼에서 키에르케고르에 이르는 하나의 매혹적인 사상이 말해주는 것은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양자택일이 선택하는 사람의 실존 양식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도덕적 필연성에 의해(선, 올바름), 때로는 물리적 필연성에 의해(사물들의 상태, 상황), 때로는 심리적 필연성에 의해(어떤 것에 대해 가지는 욕망),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설득한다는 조건 위에서만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키에르케고르를 경유한 로메르의 결론은 이러하다. 선택과 비-선택 사이에서 제기되는 선택이란 우리를 내밀한 심리적인 의식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외부 세계 저 편에 있는 바깥과 절대적인 관계를 맺게 한다. 이것만이 우리에게 세계와 자아를 다시 부여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로메르의 영화가 지닐 수 있는 고귀한 주제이다. 그런데, 이 바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연, 혹은 은총인가? 여기에 우연의 놀이, 그리고 진정한 선택, 이를 통한 은총의 도래가 있다. 로메르의 유작인 <로맨스>는 이러한 것들의 집대성이었다. 몸과 영혼의 문제, 자연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문제, 남녀의 사랑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거짓말들, 불멸의 문제 등이 망라되어 있다. 최종적 국면에서 인물들이 누리는 은총은 로메르가 평생을 걸쳐 영화에 담아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메르의 명성에 비해 이런 신비로움은 적게 논의되어 있다. 이 작은 추모전이 로메르의 영화를 되돌아보는 기쁜 기회가 되기를 기원한다.(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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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개막, 누구 추천작 볼까? 즐거운 고민의 시작

연초가 되면 어김없이 열리는 성대한 영화 축제가 있다.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어깨동무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 축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올해로 제 여섯 번째를 맞이한다.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1월 18일 개막하여, 2월 27일 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된다. '영화의 즐거움'이라는 큰 테마로,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상영작과 많은 부대 행사들이 마련되어 있으니, 관객들은 올해 벌어지는 첫 영화축제의 즐거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한 친구들의 명단과 그들이 선택한 영화들을 공식적으로 처음 소개하는 자리인 기자 간담회가 2011년 1월 5일 오전 11시에 서울아트시네마 인근 카페인 '카페 신'에서 열렸다. 이준익, 김태용, 이해영 감독이 참여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고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전반적 테마와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송승민(서울아트시네마 사무국장):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자 간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서울아트시네마 사무국장 송승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기자 간담회에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올해는 영화인들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영화에 있어 즐거움이란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2010년 많은 영화인들과 관객 분들이 상당히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2011년은 그 괴로운 시간을 넘어서서, 영화의 즐거운 시간들을 누려보자, 영화의 즐거움을 낙원에서 누려보자. 이것이 2011년 서울아트시네마의 모토입니다. 영화의 즐거움이란 것은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을 누려보는 것입니다.
올해는 친구들의 선택 이외에도 지난 한 해 동안의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활발한 논의들을 이어나가는 차원에서 특별히 두 기관의 시네마테크에 카르트 블랑슈, 일종의 백지수표를 위임하는 편지를 보냈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함께 하게 됐습니다. 지난 2010년 2월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대표인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님으로부터 서울아트시네마의 응원의 메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운영에 있어서의 독립성, 안정적인 재원의 확보, 안정적인 전용관의 확보가 시네마테크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이라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올해에는 특별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역사와 함께 했던 12편의 프랑스 영화가 소개됩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복원하고 발굴한 영화들, 시네마테크에서 꿈을 키웠던 고다르의 영화, 그리고 누벨바그 이후의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등의 영화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장 프랑수아 로제가 2월에 서울 아트시네마를 방문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역사와 지금 시네마테크가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좌담과 포럼이 열릴 예정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영상자료원에서 새롭게 복원한 한국영화 네 편이 상영됩니다.
시네마테크는 지난해부터 우리 시대의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를 벌였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이탈리아 문화원의 협조로 마테오 가로네의 작품들이 소개됩니다. 그동안 <고모라>를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는데, 이번에 가로네의 3편의 영화를 구매해 상영하고, 이전 작품들도 소개합니다. 또 하나 시네마테크가 사랑하고 또 시네마테크를 사랑했던, 지난해 타계한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 여섯 편이 상영되는 '오마주 에릭 로메르' 행사가 열립니다. 동시에 영화가 허락한 욕망 중의 하나는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망도 포함되어 있는데, 6명의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고 싶은 젊은이들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클럽' 행사가 열리게 됩니다. 지난 10년의 한국영화를 되돌아보는 아주 특별한 행사도 있습니다. 장현수 감독의 <라이방>과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2001년도에 개봉했던 영화입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와라나고'라고 해서 한국영화에 있어서의 예술영화, 그리고 이런 영화들에 대한 제작의 활성화, 그리고 이런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예술영화 상영공간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던 영화들입니다. 지원이 중단되고 예산이 50% 정도 삭감된 상태이긴 하지만, 반대로 올해의 친구들 영화제는 예년에 비해 더 많은 작품들과 영화인들이 참여한 행사가 됐습니다. 영화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해영(영화감독): 늘 관객으로서 친구들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친구들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저는 <매드 맥스>를 골랐습니다. 그동안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영화들이 주로 영화인으로서, 감독으로서 애정을 가졌던 작품들이었다는 느낌이 있었다면, 저는 이번에는 좀 더 순수하게 관객 입장에서 '가장 순수하게 좋아했던 영화가 어떤 것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 시절에 열광했던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영화의 원초적 즐거움을 줬던 영화들에 대한 상기가 자연스럽게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당시에는 불법 비디오로 밖에 볼 수 없었던 작품을 필름프린트로 극장에서 보면 꽤 특별하고 신선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도 매우 기대되고 설레고 있습니다. 시네마테크가 형식적인 예술영화만 상영하는 곳이 아니라, 뭔가 영화의 원초적인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인들, 관객들 문턱 없이 모두가 다 어깨동무하고 이 모든 즐거움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흔쾌히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준익(영화감독):
모든 인간이나 동물은 고향이 있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자기가 자란, 그런 어떤 생리적인 고향이 있습니다. 저 같이 영화로 밥을 먹는 사람들은, 제가 밥벌이 하는 영화라는 문화적인 한 장르의 고향이 있겠죠. 근데 저 뿐이 아니고, 현대인들은 태어나서 TV든 극장이든 어떤 매체를 통해서, 영화라는 문화적인 자신만의 추억과 어렸을 때 혹은 젊었을 때 그 영화를 보면서 이식되었던 어떤 영혼이 있습니다. 그 영혼의 고향 같은 게, 저에게는 이 시네마테크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고향에서 태어나서 모든 인간은 고향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저 역시 멀리 도망가려고 달려갔지만, 가끔 문득 영화라는 문화적 영혼이 저의 뒤통수를 간지럽힐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네마테크가 아니고서도, DVD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고향에 있던 추억의 영화를 볼 수는 있겠죠. 하지만 모든 인간이 고향에서는 혼자 있지 않았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가족도 있었고,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있었죠. 그것처럼 영화의 고향인 시네마테크에서는, 이제는 자주 만나지 않는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합니다. 그 안에는 동료도 있겠지만, 또한 영화 속에 담겨져 있는, 영화 속의 인물들의 갈등과 관계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인간의 관계성도 있죠. 이런 것들이 저의 심리 구조나 뇌 구조 안에 영향을 주었어요. 인간의 관계성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던, 그리고 지금도 그 연장선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세상을 보는 눈, 인간을 보는 눈이 계속 자라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지금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감독의 생각이나 인물들이, 미래에 또 다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영혼에 영감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액체인 눈물을 흐르게 해주고, 또 이를 넘어서는 것으로 신의 가장 위대한 선물인 웃음을 짓게 하고, 이런 것들에 대한 고향이 바로 시네마테크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고향의 가치를 사랑하는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곳, 그래서 아마 이런 자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를 관람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좋은 고향의 향기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을 사랑합니다.


김태용(영화감독): 친구들 영화제에 몇 번 참여를 했었지만, 작년에는 영화작업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고 올해 참여하게 됐습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준익 감독 말씀대로 고향에는 혼자 있지 않았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던 세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골방에서 비디오를 보면서, 그 비디오를 친구들에게 추천해 주고, 어떤 친구가 재밌다고 하면 그 영화를 다시 보고 그러면서 영화를 좋아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영화를 보는 가장 좋은 방식은, 누군가의 추천을 받거나 제가 봤던 영화를 누군가에게 추천해 줄 때였어요. 시네마테크는 친구들이 계속 무언가를 추천해 주고, 추천받은 영화를 와서 봤더니 그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 그런 공간인 것 같아요. 영화를 본다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즐거운 일이고, 그리고 외로운 일이 아니라는 걸 계속 알려주는 게 시네마테크인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는 다양한 방식들이 앞으로도 계속 생길 텐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끝까지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방식일 것 같아요. 누군가를 계속 만나고 영화를 통해 확장되는 세계라는 생각에 매년 참여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번에 선택한 영화는 <수쥬>라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즐거움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뭐가 즐거울까 생각했더니 별로 즐거운 일이 없더라고요. 옛날처럼 버스터 키튼 영화를 봐도 별로 안 웃기고, 개인적으로 요즘 즐거움을 잘 못 느껴서, 오히려 처절한 사랑 영화를 하나 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10년 전에 잠시 개봉했다가 사라진 영화인데, 상하이에 흐르는 수주라는 강에서 살고 있는 한 아름다운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동시대 아시아 영화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를 같이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아서 절절한 사랑 영화를 꼽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욱:
가장 궁금해 하는 문제가 있으실 것 같아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 공간 확보와 재정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2010년에 시네마테크에 대한 일시적인 지원 중단과 예산 삭감이 있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사실 극장의 임대료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영화인들과 배우들의 후원 광고 촬영 덕에 2010년을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준익 감독님도 광고를 촬영하셨는데, 아마 영화가 개봉할 즈음에 나올 것 같습니다. 두 차례의 후원광고 촬영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잡지나 화보, 그리고 직접적인 후원들이 영화인들을 통해 있었고, 2010년의 운영은 그런 후원들로 진행이 됐습니다. 동시에 2010년 말미에 삭감된 예산을 복원하려고 하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국회를 방문해 삭감된 지원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벌였지만, 잘 아시다시피 지난 해 예산안이 그냥 통과되어 버리는 사태가 있었습니다. 시네마테크 예산을 복원하는 문제는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2011년에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구체적인 청사진과 공간 확보와 예산 조정과 관련된 일들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문화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 그리고 서울시의 협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월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관계자가 방문해 시네마테크와 관련된 좌담과 포럼이 진행되고, 3월에는 시네마테크 지원정책과 관련된 포럼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해외 시네아스트 초청 방한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업의 후원으로 매년 한두 번 진행될 예정입니다. 2012년은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 십 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2012년에는 일 년 내내 십주년의 기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준익: 맥주 광고에 출현을 했는데, 작년에 많은 감독들과 배우들이 시네마테크 기금 조성을 위한 촬영이 있었고, 저도 요청이 있어서 흔쾌히 찍었습니다. 목표는 "돈을 모으자. 그 돈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을 해내자"였는데,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영화가 지극히 상업주의로 획일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 있는 두 젊은 작가정신이 투철한 감독들이 점점 가난에 찌들어가고 있습니다.(웃음)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의 더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에 꿈을 갖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희망과 꿈을 제시할 수 있는 근원이 필요합니다. 그 근원 중의 하나가 여기서 상영되는 영화들이죠. 당시엔 그다지 주목받거나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영화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그 가치가 식지 않는 영화들이 시네마테크에서 상영이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기본이 되는 상영관의 조성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나라에서든 선진국에서는 굶어가는 예술가들의 영혼이 부패되지 않도록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후원을 합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같은 경우는 가장 좋은 모델이 되겠는데, 젊은 영혼들이 상업주의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거기서 획득되지 않는 어떤 소외된 영화적 가치, 어떤 정서나 사상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외로운 영혼의 필수 아미노산 같은 양분이 되는 것들이 시네마테크를 메카로 해서 파생되어 일상의 따뜻함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모두가 상업 영화에 열광할 때, 남들과 다르고 싶은 인간 객체의 자존심과 욕망을 달래줄 수 있는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자본주의의 미덕도 있지만, 그 미덕이 유지되기 위해선 그 해악들을 메우는 활동도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모순을 메우는 데 참여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해영: 요즘 많이 잊고 있었던 게 영화의 즐거움이 아니었나 싶어요. 시네마테크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단순하지만 영화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란 것이 막연하게 설레게 만들고, 왠지 좋은 책을 받아서 첫 장을 넘길 때의 설레임이나 좋은 음반의 재킷을 처음 뜯을 때의 쾌감이 있습니다. 영화에도 그것에 못지않은 굉장히 설레는 순간들, 원초적인 즐거움 같은 것이 있죠. 영화인으로 살든 비영화인으로 살든 마찬가지입니다. 제 영화가 시장에서 크게 환대를 받진 못했지만(웃음), 영화의 즐거움과 영화를 만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즐거운 일이구나, 하고 다시 깨달은 시간이었죠.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참여도 시의 적절하게 영화의 즐거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김태용: 개봉할 영화가 외면 받고 소외받는 영화가 될지 사랑받는 영화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매 순간에 친구들을 만나는 느낌이 저한테는 영화를 작업하는데 굉장히 큰 힘이 됩니다. 영화 작업하는 사람들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그 시간을 보상받고 싶을 때 극장에 오면 사람들을 만나고, 무언가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느낌은 보통 극장에서는 받기 힘들고, 시네마테크에 오면 받는 거 같아요. 그런데, 매년 시네마테크의 안정적인 지속을 위해 노력하지만,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2012년을 원년으로 삼고 조금씩 힘을 모아야 할 것 같고, 올 해가 매우 중요할 것 같아요. 안정적인 공간에서, 세상에 생각보다 재미있는 영화도 많고 생각보다 좋은 사람도 많은데, 이런 것들이 의미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삶이 보다 윤택해지는 걸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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