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좌담

에디터로서의 역할과 관객으로서의 역할


영화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지난 22일,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관객 에디터로 참여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간의 활동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이 자리에서 에디터들은 각자 리뷰를 쓰면서 가졌던 고민들, 녹취를 정리할 때의 어려움들, 관객 에디터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들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고민과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은 종종 교차하여, ‘에디터’가 아닌 ‘관객 에디터’로서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그 자리를 여기에 옮긴다.


 

프리뷰와 리뷰 사이에서

박민석: 에디터 활동을 리뷰부터 시작했으니 리뷰에서부터 얘기를 해보자. 개인적으로는 비평 글에 익숙해져 있어서 프리뷰에 가까운 글을 쓸 때 어려움이 있었다.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을 상대로 설득하는 것이 영화를 본 관객을 상대로 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다. 다른 분들은 어떤가?

최혁규: 자막 팀에서도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막 작업을 맡은 영화의 리뷰를 맡았다. 관객의 흥미를 어떻게 이끄느냐는 고민보다는 같은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게 조금 더 곤혹스러웠다. 자막 작업을 하면서 기술적인 부분으로 볼 때는 사운드만 먼저 들렸는데 그것이 이미지와 합쳐질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송은경: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리뷰를 맡았는데 이 영화는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놓인 영화인 것 같다. 안 본 사람도 많겠지만 영화를 자주 보는 관객들이라면 상당수가 이 영화를 이전에 접했을 것이다. 그래서 프리뷰와 리뷰 사이에 어디에 중점을 맞추고 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김경민: 러프하게 말해서 글쓰기가 자기주장이라고 치면 프리뷰는 그것과 정보전달이 함께 가야되는 건데 그것이 좀 어려웠다. 내 글을 읽었던 다른 에디터 분들도 정보전달이 좀 빠져있는걸 지적했고 그런 걸 넣으면 서술형이 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배동미: 리뷰보다는 특집기사를 쓸 때 더 어려움을 겪었다. 댄스영화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페임>과 <플래시댄스>의 특집기사를 맡았다. 영화 상영 전까지 기한도 지켜야 되고 정신 없이 썼는데, 그래서 맘에 들지 않은 부분도 많다. 스스로 만족을 하지 못했던 글이다.

장지혜: <이터널 선샤인>의 리뷰를 맡아서 쓸 때는 고민을 많이 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고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영화라서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그게 좀 더 어려웠다. 반면에 스콜세지에 대한 특집기사를 쓸 때는 영화의 한 부분에 집중해서 쓰려고 하니까 오히려 글이 더 쓰기 편하더라.


시네토크

박민석: 시네토크를 정리하는 건 경우에 따라 녹취하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정리하는 본인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영화제 시네토크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면?

장지혜: <남부군>의 시네토크에서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90년대에 나온 영화였는데 당시의 얘기와 지금의 상황이 겹쳐지고 만나는 부분들이 있더라. 그래서 이걸 정리를 하면서 관객들이 별로 없었으니까 녹취 글도 많은 사람이 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면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경민: 이번에 에디터 업무와 별개로 시네토크 소개영상 편집일도 맡았는데, 그 영상에는 친구들이 왜 이 영화를 골랐는지에 대한 게 꼭 들어가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옛날에 봤던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서 추천을 했다고 한다. 스크린으로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아직 답은 잘 모르는데, 계속 그에 대해서 생각해봤던 것 같다.

배동미: 김경주 시인의 시네토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들을 때는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는데 정리를 하는 것은 조금 어려웠다. 시인이라서 그런지 시네토크 중간 중간에 시적인 표현들을 많이 쓰셔서 이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정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송은경: 저의 경우는 오승욱 감독의 녹취가 그랬다. 정리하기는 제일 힘들었지만 시네토크는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다. 관객석에서 작년과 달리 유쾌하게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서 재밌었다.

최혁규: 평론가들의 시네토크의 정리를 맡았다. 팀장님이 다 할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제가 좀 욕심을 부렸다. 시네토크를 정리하는 것도 영화 공부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되게 달라붙어서 했다. 유운성 평론가와 이용철 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재미있었다. 영화비평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가 강하신 분들이라 특히 그랬다.


영화제 돌아보기

박민석: 이번 영화제 상영된 영화들은 어땠는가?

송은경: <황야의 7인>이 인상 깊었다. 친구들 영화제 전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특별전을 하지 않았나. 레오네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이 그대로 나오니까 너무 좋았고 집에 가서 서부극에 대해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리뷰 쓰면서 이미 여러 번 봤지만 다시 확인하려고 <마르케타 라자로바>를 스크린으로 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실패했다.

배동미: 영화보다는 감독들이 더 인상 깊었는데 그들에게서 정 같은 것을 느꼈다. 감독들이 처한 상황이 있지 않나. 김곡 감독 같은 경우는 <자가당착>이 개봉하지 못하고 있고 이명세 감독은 촬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는데, 그런 걸 서로 걱정해주더라. 서로 다른 영화로 만났으면서 또 그 감독의 영화 작업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고. 그런 게 친구들 영화제의 매력 같았다.

김경민: <좋은 친구들>이 제일 인상 깊었는데 볼 때 정말 신나게 봤고 보고 나서도 너무 좋더라. 원래 갱영화나 서부영화에 편견 같은 게 있었다. 너무 마초적일 것 같고 시끄러울 것 같고. 영화를 이어폰으로 보니까 시끄러운 영화는 기피하게 되더라.(웃음) 혼자 볼 때는 우디 앨런이나 로메르 영화 같은 조용한 영화만 봤는데, 이 영화를 계기로 남성성이 가득한 영화들에도 애정이 생긴 것 같다.

장지혜: 상영작들 보면 개별적으로 선택된 작품이지 않나. 공교롭게도 그 안에서 묶이는 게 있더라. <페임>이나 <플래시댄스>. <내일을 위한 길>과 <카이로의 붉은 장미>. <우묵배미의 사랑>과 <남부군>. 이런 식으로 상영작들 내에서 제 나름대로 엮일 수 있는 영화들을 찾는 것도 흥미로웠다.


인터뷰

박민석: 영화를 보기 전에 다른 관객들은 여기에 어떻게 왔을지,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다른 관객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궁금할 때가 있는데 이들을 모아줄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관객인터뷰가 이를 약간이나마 해소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 다른 분들은 생각이 어떠한지?

최혁규: 예전에는 에디터가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지금의 구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있어서 안으로 뭉치면서 밖으로 퍼질 수 있는 게 있었다. 앞으로는 그런 구심점 같은 걸 에디터가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가 트위터를 활용하는 것이었는데 실현되지는 않았다. 서로 수동적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발산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할 것 같다.

박민석: 관객 인터뷰 외에 아트시네마의 직원 분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배동미: 직원 인터뷰는 두 분 했는데 두 분 다 영화를 많이 좋아하시고 극장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고 극장을 누구보다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관객 에디터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극장에 오랫동안 머물고 계신 분들의 말씀이 굉장히 감동적이다. 극장에 대한 사랑이나 영화에 대한 사랑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송은경: 인터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은 몰랐다. 김보년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랑 인터뷰를 했는데 굉장히 대화가 안 이어져서 민망한 상황이 많았다.(웃음) 관객 인터뷰를 하나 실패하기도 해서 인터뷰를 어떻게 하는게 좋은 건지 방법론에 대한 고민들이 생겼다. 그리고 직원 인터뷰를 계획했던 것만큼 못했는데 영사팀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아쉽다. 필름으로 상영하는 곳은 이제 시네마테크밖에 없으니까.


관객/에디터

박민석: 이번에 관객 에디터로 참여하면서 하고 싶었지만 못한 일도 있을 테고 아쉬웠던 점도 있을 것이다.

최혁규: 기본적으로 참여를 제대로 못해서 죄송하다. 이런 작업이 지속적으로 많아졌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이 의무감을 가지고 할 필요는 없지만 무언가 하고 싶다고 느꼈을 때는 이런 활동이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바라는 점은 친구들 영화제가 끝나더라도 관객 에디터라는 형식을 끝까지 갖고 갔으면 하는 것이다.

박민석: 우리가 그냥 에디터가 아닌 ‘관객’ 에디터로 참여하는 만큼 관객 문화에 무언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다가갈 수 있는 몇몇 기획들이 회의에서만 이야기하고 실행되지 못했는데 나 스스로 조금만 더 열심히 참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배동미: 관객 에디터로 참여하는 게 굉장히 좋은 기회인데 자꾸 까먹고 게을리한 부분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극장 측에서는 많은 기회를 준건데 온전히 실현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김경민: 관객 에디터로서라기보다 관객으로서의 바람이 있다. 얼마 전에 상영 몇 분 전에 정전이 났던 적이 있다. 이게 만약에 상영 중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점이 극장을 자주 가다보니까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하루빨리 안정적인 환경의 극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참석 에디터: 김경민, 박민석, 배동미, 송은경, 장지혜, 최혁규

진행/정리: 박민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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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치밀한 기록이 더 큰 생명력을 가진다

- 김동원 감독이 말하는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칠레 전투 3부작'


올해로 8회째인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주인공은 김동원 감독이다. 영화제 마지막날이었던 24일은 그가 선택한 <칠레 전투> 3부작이, 약 4시간 반 동안 상영되었다. 마지막 3부 상영 후 이 작품을 선택한 김동원 감독과의 시네토크에서는 비껴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들과 다큐멘터리가 가진 기록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김동원 감독은 영화 속에 나왔던 빅토르 하라의 노래 ‘우리 승리하리라’를 찾아 관객들과 함께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영화제 대미를 장식한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공교롭게도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는 첫 날의 하루 전에 의도치 않게 이 영화를 틀게 되었다. 우연처럼 상영하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이 영화를 추천하셨고, 어떻게 이 영화를 어떻게 접하게 되셨고, 다시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김동원(영화감독):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처음 들은 건 86, 7년 쯤인 것 같다. 장선우 감독이 쓴 책에 남미의 영화들이 소개되었는데, 그 때는 볼 방법이 없었고, 90년대 지나서 책에 있던 영화들을 구해볼 수 있었다. 그 때 시네마 누보 운동과 맞물려 쓰이는 용어인 ‘제 3영화’들이 현실과 치열하게 맞닿아 있는 영화라고 소개 되었는데, 사실 조악한 비디오 화질이라 그런지 (영화에 대해) 실망한 경우가 많았다. 98년도에 인권영화제를 통해 <칠레 전투>를 보았는데, 4시간 반이라는 것을 알고 겁을 먹었으나 한 번 보기 시작하니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보게 되었다. 그 다음에도 몇 번씩 보면서 새로운 디테일들이 새록새록 다가오면서 매번 나에게 큰 영화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을까 궁금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있었던 현장들, 상계동부터 최근에 용산이나 강정 같은 곳의 주민들 얼굴이 떠올랐고 투쟁 과정들이 영화와 오버랩 되는 걸 많이 느꼈다. 오늘도 영화를 보면서 구즈만 감독이 끝까지 가졌던 희망의 크기가 지금 나에게 어느 정도의 크기로 남아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성욱: 새롭게 다가오는 디테일이 어떤 것들인지 궁금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이 다큐를 어떤 시각을 가지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면.

김동원: 이 영화를 보고 영화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이 얼만큼 의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는 72년부터 73년까지 1년여 동안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포함해 제 3부작이 완성되기까지는 6년이 걸렸다고 한다. 감독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1부, 2부는 주로 부르주아들의 반혁명, 즉 그들이 어떤 논리로 아이옌데를 공격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는가에 대한 논리와 과정들이 촘촘하게 들어가 있다. 반면, 노동자들과 민중의 시각에서 아이옌데 집권 하에 있었던 여러 가지 정치적인 실험들과 민중이 힘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노동자들과 민중의 역량을 따로 모아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1부, 2부에서는 아무런 음악이 깔리지 않는다. 구즈만 감독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건조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1, 2부를 묘사하고 있다면 3부에서는 애잔하게 편곡된 ‘우리 승리하리라’라는 빅토르 하라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반복해서 들려준다. 이는 구즈만 감독의 주관적인 정서일 수 있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1부, 2부에서는 감독이 중립적이지는 않되 최대한 객관적이려 하는 태도였다고 한다면, 3부에서는 자기 속내를 마음껏 내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구즈만 감독이 자기 자신을 억누르면서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맨 마지막에 자기의 표현을 하긴 했지만, 그 표현마저 절제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구즈만 감독이 이 영화를 끝내고 당연히 망명을 해야만 했다. 쿠바에서 편집을 하고 세계 곳곳을 유랑하다가 95년 즈음 20년 만에 (칠레에) 돌아왔다고 한다. <칠레 전투>를 90년 초 무렵 젊은이들에게 보여주는 장면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에 나오는 사람들을 몰아넣고 학살했던 국립 경기장 같은 장소들, 영화를 찍다 죽은 카메라맨인 호로세 뮬러의 가족들도 만나는 것을 엮어서 <칠레, 끈질긴 기억>을 만들었다. 그 영화도 인권 영화제에서 봤는데, 구즈만 감독은 첫 영화인 이 영화에서부터 최근의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까지도 아이옌데 시절과 혁명기의 칠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가들은 한 가지 주제에 평생을 매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구즈만 감독도 다른 주제의 영화들은 없는 것 같다. <칠레, 끈질긴 기억>에서 보면 젊은이들이 20년 전에 조국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더라.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이 영화를 보여주는데, 여기저기서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 몰랐다”며 흐느끼기도 한다. 구즈만 감독은 역사에 대한 이 트라우마를 가지고 평생 작업을 하는 것 같다.



김성욱: “기록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한국의 경우에도 8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기록 되었던 부분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옌데 정권 시절에 구즈만 감독도 극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다가, 지금은 극영화를 찍을 때가 아니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없었다면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다른 기록을 통해서는 알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현장성 있게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록이 가진 힘이 다른 다큐멘터리보다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사건 이후에 ‘재구성’해나가는 게 아니라, 현장의 중심에서 기록을 해나갔다는 것 자체가 크게 와 닿았다.

김동원: 다큐멘터리는 기록을 하는 영화지만, 최근에는 기록보다는 감독의 주관성을 표현하는 데 더 많이 쓰이기도 한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대상을 제작 주체보다 우위에 놓는다는 태도인 것 같다. 그만큼 대상을 존중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구즈만 감독이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고 보지만,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굉장히 절제하는 태도를 보인다. 누가 기록하느냐 보다 ‘기록됨’이 더 중요하다는 태도일 것이다. 영상시대에는 카메라로 누군가를 찍지 않으면 글로 아무리 열심히 쓴다 하더라도 묻혀진 역사가 되고 말지 않나. 요새는 ‘찍(히)지 않으면 역사가 아니다’라고도 말한다. 시각적으로 확인할만한 기록, 대중들이 다가갈 만한 통로가 없으면 수많은 역사들이 묻히고 만다. 칠레의 9‧11에 관한 영화들은 이 영화 말고도 많다. 그러나 이 영화만큼의 무게감을 가진 기록물은 없는 것 같다. 영화적인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옌데 집권 3년 동안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건이 어떤 변증법적인 충돌을 가지면서 전개되었는지 이 영화만큼 꼼꼼하게 찍은 기록물이 없다고 본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솔라나스 감독의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가 당시에는 더 문제작이었다. 이 영화는 솔라나스 감독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스타일의 힘은 강하지만 기록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시점에 와서 평가를 하자면 솔라나스가 실험했던 화려한 수사, 강렬한 톤은 구즈만의 냉정한 톤이 가진 영화적 힘에 못 미친다고 본다. 결국 치밀한 기록이 훨씬 더 큰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정리: 지유진(관객에디터) 사진: 김윤슬(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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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좌담


보여지지 않은 영화들에 대한 우리의 적극


적인 자세와 노력


- 김성욱, 유운성, 이용철 평론가가 말하는 Unseen Cinema 

지난 17, 카롤리 마크의 <러브> 상영 후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언씬 시네마(Unseen Cinema) 섹션에 참여했던 이용철 평론가와 유운성 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열렸다. 앞서 마련했던 시네토크가 두 평론가가 선택한 작품에 대해 각각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였다면, 이번에 마련된 자리는 언씬 시네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였다. “덩치가 큰 사람들 세 명이 한 테이블에 앉으니 오랜만에 테이블이 꽉 찬다는 말로 시작한 대담은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경험, 그리고 언씬 시네마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오고 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마련한 언씬 시네마 섹션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영화들을 소개하기 위한 섹션이다. 이 섹션의 상영작을 위해 이용철 평론가와 유운성 평론가가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다. 두 평론가의 작품 선택의 변과 그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두 번의 시네토크를 통해서 들어봤으니, 오늘 이 자리에서는 언씬 시네마라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 전에 방금 상영한 카롤리 마크의 <러브>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 보자.

유운성(영화평론가): 보셨다시피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매력을 주는 영화들이 몇 편 있다. 쉽게 말해 씨네필들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영화들은 영화에 대한 암시가 존재하지 않지만 영화를 본다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제공한다. <러브>도 이런 맥락에 있다. 무언가가 사라졌고 존재하지 않는데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두 여자가 말을 주고 받으며 무언가를 기다린다. 이런 부분들은 영화 보기의 경험과 같은데, 영화를 본다라는 것도 그런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스크린에 영사된 압도적인 이미지를 보는 경험이기도 하지만,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같은 영화를 보는 에로틱한 공감도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영화관에 대한 롤랑 바르트의 글은 흥미롭다.

이용철(영화평론가): 사실 나는 <러브> 90년대 초반에 우연히 비디오로 봤다. 매우 흥미로운 영화였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해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번 기회를 통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보았다. 내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던 영화를 극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본다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김성욱: 사실 영화는 사라짐, 부재, 보이지 않음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영화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다시 보인다는 것의 문제가 있다. 언씬 시네마 섹션도 그렇다. 사실 보이지 않는 걸 어떻게 보이게 하느냐의 문제는 평론가인 두 분의 역할이기도 하다. 한국적 상황에서 이런 영화들이 보여지지 못하는 것은 영화들이 위치를 잡지 못한 이유가 크다. 국내의 이런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용철: 한국에서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영화의 유통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본다. 외국의 경우, 상영되는 영화들의 수적 방대함이 국내와 비교가 안 된다. 영화 평론가들과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은 새로운 영화들을 보기 위해 각종 영화제들이나 필름 마켓에 참석해 영화를 보고 그곳에서 본 영화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화가 유통되는 형태가 이와 다르다. 영화를 소개하는 자세가 다른 것이다. 각국의 여러 영화제들에 참석해 새로운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계의 몇몇 영화제들에 참석하는 프로그래머들은 소수일 뿐이고,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해외 영화제에 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유일한 방법이 영화 잡지를 구독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 방법이 아니면 새로운 영화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니 영화를 소개하는 자세가 다른 나라와 다를 수밖에 없고 영화의 유통도 원활할 수가 없다. 이런 면에서 한국에서 영화를 보여주고 소개한다는 것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다. 언씬 시네마는 계속해서 언씬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고전의 경우에는 시네마테크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대 영화의 경우에는 계속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유운성: 일단 참고할 수 있는 한국의 잡지가 한 권도 없다. 뿐만 아니라 일간지의 문화면도 참고할 만한 게 없다. 물론 출장 지원이 안 되는 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잡지나 일간지는 영화제가 있으면 그 영화제의 현장을 잘 전달해줘야 한다. 언씬 시네마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직접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 큐레이터들의 한계가 있다. 영화제 같은 경우는 출장비가 책정되어 있지만, 시네마테크 같은 곳은 그럴 수가 없다. 운영비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지원도 필요하다. 해외 각국의 주요 시네마테크만 봐도 큐레이터들이나 프로그램 디렉터들은 출장비가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영화를 보고 좋은 영화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폭넓게 보면 복원된 영화들도 보여지지 않는 영화의 범주에 들어간다. 국내에선 그런 영화들을 소개하는 빈도가 낮다. 최근 마이크 파웰의 작품처럼 요즘엔 걸작이라고 평가 받았던 작품들도 애초에 누락된 장면을 포함해 최대한 원본에 맞게 복원하는데, 이런 작품들도 소개해야 한다. 어떤 점에서 걸작으로 평가되는지 확인해볼 수 있어야 한다. 꼭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 작품뿐 아니라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의 복원판도 마찬가지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국내에서 상영됐는데도 자리 잡지 못 하고 사라진 영화도 언씬 시네마다. 심지어 보여졌는데도 정리되지 못 하고 그냥 흘러가버린 영화들이 꽤 많다.

 

김성욱: 과거의 영화들은 지난 자료들로 아쉽게나마 접근할 수 있지만 현재의 영화들은 실질적으로 그럴 수 없다. 영화제를 가거나 직접 그 지역에 가야만 현재의 영화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국내에 있는 국제영화제의 큐레이터, 기획자, 프로그래머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용철: 가장 큰 문제는 전문가 집단들이지만 관객들도 예외가 아니다. 씨네필들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말해야 한다. 잡지도 찾아보고 감독도 찾아보고 영화도 찾아보면서 왜 국내에서 이 작품들을 상영하지 않는지 따져야 한다. 큐레이터나 프로그래머들이 보여주는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들에게 어떤 작품을 틀어달라고 요구하면, 그들도 경각심을 갖고 영화를 소개하는 일에 임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

유운성: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언씬 시네마에 상영되는 여섯 편의 영화 모두 다운로드가 가능하더라. 언씬 시네마는 존재하지만 언다운로더블 시네마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웃음). 그만큼 영화는 접근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극장에게 함께 공유하며 보는 것이 좋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한 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영화를 본 사람에게 영화가 간직하고 있는 무언가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보여지지 않은 영화들을 보여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게 하지 않기 위한 여러분 스스로의 방어와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정리: 최혁규(관객에디터)  사진: 문지현(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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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rabelle 2013.02.23 0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월의 언씬 시네마 특별전 영화들도 기대되지만 세 분 좌담도 정말 기대됩니다 ^^*

시네토크

“지속적으로 파장을 주며,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다”

시인 김경주가 말하는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


지난 2월 16일,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의 상영이 끝나고 이 영화를 추천한 시인 김경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그는 영화 속의 크리스토퍼와 같이 곧 알래스카로 여행을 떠날 것 같은 차림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여행에 관한 책을 쓴 그는 <인투 더 와일드>와의 특별한 만남과 영화에 대한 각별한 인상을 전했다. 시인의 언어로 표현된 <인투 더 와일드>에 대한 대화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보고 나면 시인이 추천할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행에 관한 영화로서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 <인투 더 와일드>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도 드물다. 김경주 시인은 실제로 여행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테마에 집중했을 거 같다. 어떻게 이 영화를 만나게 되었고, 어떤 점을 좋아하셨는지.

김경주(시인): 이 영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당히 늦게 알게 되었다. 홍대에서 오랫동안 작업해오고 있는데, 유명한 레코드 가게인 레코드포럼을 지나가다가 <인투 더 와일드>의 영화음악을 듣게 되었다. 인상 깊은 음악들은 펄잼이라는 밴드의 보이스 보컬로 활동했던 에디 베더가 작업한 것이다. 음악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가게로 들어가 에디 베더가 새로운 음반을 냈느냐고 주인에게 여쭈었다. 에디 베더는 더 이상 새로운 음반을 내지 않는데 한 영화감독이 그에게 특별히 영화음악을 의뢰해서 탄생한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을 갈 때마다 이 음악을 들었다. 음악만 듣다가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함께 보고 싶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고, 삶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나, 원작을 보면 크리스토퍼가 어떤 책을 가지고 다녔는지에 대해 밀도 있게 설명되어 있다. 실제로 크리스토퍼는 헨리 소로의 책이나 잭 런던의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토퍼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밀도 높은 경험을 제공해줬던 영화였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교감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추천했다.


김성욱: 원작과 영화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김경주: 다큐멘터리북이기 때문에 구성이나 편집은 거의 비슷하다. 동생의 내레이션으로 표현되는 크리스토퍼에 대한 정보는 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특히나 크리스토퍼가 좋아해서 틈틈이 ‘중얼거리는’ 다양한 문장들이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어진다. 원작을 보면 크리스토퍼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 그는 사숙으로 책만이 진실을 전해준다고 믿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삶의 진실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렇게 사소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작은 결들을 내 언어로 데려오기 위해서 그 ‘중얼거림’들이 중요했던 것 같다.


김성욱: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시간성이 매혹적이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90년대 안에서 부모의 시간이었던 60년대가 느껴지기도 한다. 또 크리스토퍼는 1968년에 태어났고, 시대적으로 봤을 때 1990년대는 걸프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인투 더 와일드>는 60년대에서 90년대로의 여행과도 같고, 크리스토퍼는 그 속에서 히피나 사회에서 뛰어났던 인물들을 만나는 것과 같다.

김경주: 물론 영화에서 68세대의 히피문화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비트세대라고 부르는 잭 런던,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에 대한 강한 오마주가 영화에서 느껴진다. 그러한 이 영화만이 가진 결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면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다. 80년대 말, 90년대 초반의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떠나는 배낭여행지 1순위로 크리스토퍼의 버스가 꼽혔었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보면 공유하고 체험하고 싶지 않나. 이 영화를 보면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인투 더 와일드>는 그만큼 지속적인 파장을 주는 영화다.


김성욱: 나이가 드니까 떠나는 청년보다 청년을 바라보는 나이든 사람들의 모습이 와 닿았다. 시대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90년대 초는 부시에 의해 걸프전이 일어났던 시기였고, 영화의 중간 중간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그 점이 환기된다.

김경주: 크리스토퍼가 죽기 전에 ‘행복은 실재할 때, 함께 할 때만 존재한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헨리 소로의 『월던』의 행간에 새겨 넣는다. 개인의 가족사나 행복의 공유도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개별적 관점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의 가족사,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반추하게 되었다.



관객1: 현실을 봉합하지 않더라도 크리스토퍼가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를 원했다. 크리스토퍼가 가족문제를 집착을 하고, 가족에게 복수하는 느낌이 강해서 안타까웠다.

김경주: 당시의 미국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켰을 때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질 것 같다. 당시 68세대에 대한 시대적인 혼란, 가부장, 억압된 미국 사회 등 크리스토퍼가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 가족이라는 결속력뿐만 아니라고 본다. 영화에 삽입된 에디 베더의 ‘Society'라는 곡에는 ‘내가 사라지면 사회는 나를 그리워해줄까’라는 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가족에 대한 내러티브 외에도 또 다른 내러티브가 음악에서 등장한다.


관객2: 크리스토퍼는 화폐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돈을 태워버린다. 사실 가족주의는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원작의 주인공은 가족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감독은 오히려 가족주의로 회귀하는 느낌이 들었다.

김경주: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로드무비를 동생의 목소리를 통해서 가족주의로 이끌고 가는 느낌이었고, 생선의 비늘처럼 자꾸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의 작가는 크리스토퍼의 여동생이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으로 보았다. 원작이 르포 형식이기 때문에 감독 숀 펜이 그것들을 모두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크리스토퍼가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행을 시작했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시대적인 결을 보면, 인물을 이해하기 더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알 듯, 모를 듯싶지만 분명히 다른 곳으로 건너간다는 느낌이 든다. 답을 찾기 보다는 그 느낌에 충실하면 좋을 것 같다.


김성욱: 끝으로 시인들이 영화를 볼 때 어떠한가가 궁금하다. 어떤 영화에 매혹을 느끼는지.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다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들으면서 이 자리를 마치고자 한다.

김경주: 예술 장르마다 그러한 것들이 있겠지만 시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것들이 있다. 시에서 그것은 행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시의 행간과 같은 존재는 침묵인 것 같다. 속도가 빠른, 목적이 분명한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침묵이 잘 표현된 영화를 좋아한다. 내러티브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견디면서 생기는 균열들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정리: 배동미(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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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역사의 새로운 시각들이 힘을 갖고 반향을 일으켰던 시기의 영화   

- 민규동 감독이 말하는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지난 2월 16일, 민규동 감독의 선택작인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 상영 후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들을 열렬히 지지하기 보다는 기본적인 애정을 갖고서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있는 민규동 감독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선택작들 중 가장 의외의 선택이라는 인상도 잠시, 시네토크가 끝날 즈음 민규동 감독이 만든 역사극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여러 편을 추천해 주셨는데 우여곡절 끝에 최종적으로는 <남부군>(1990)을 상영하게 되었다. 처음 선택하신 영화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민규동(영화감독): 2차 세계대전 말기를 배경으로 독일군의 패배를 다룬 전투 영화 <벌지 대전투>(1965),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기작인 <미행>(1998)이나 <뮤직 박스>(1989), <레미제라블>의 예전 버전의 영화 등을 추천했지만 모두 상영이 어려웠다. 해방 공간에 대해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서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보니,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즈음 <닥터 지바고>(1965)를 봤다. 두 영화 모두 사상적인 압박 속에서 개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남부군>은 당시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었고, 당시 흥행에도 성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 번쯤 언급하곤 했던 영화였다. 


김성욱: 90년대 초에 <남부군>, <우묵배미의 사랑>(1990), <그들도 우리처럼>(1990) 같은 영화들, 대학가에서는 자주제작으로 만든 영화들이 나왔다. 사회적인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고, 소비에트 붕괴나 천안문 사태 등 여러 면에서 사회 격변기였다. 감독님은 90년대 초반, 그 시절에 어떻게 살아가고 계셨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90년대 전세 값이 급하게 올라서 파동이 있었다. 어딜 가도 비싸다 보니 사람들이 자살을 많이 시도하기도 했다. 암울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제는 못 버틸 거라는, 세상이 곧 뒤집혀질 거라는, 낭만적인 혁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남부군>과 같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것이었고, 우리가 잘 몰랐고 언급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이런 분위기에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은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이었다.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전쟁이나 빨치산, 좌우대립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새로운 시각들이 언급되면서 역사에 관심이 없었거나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굉장한 카오스를 겪으며 흔들리게 된다. 그 흔들림에서 오는 에너지들이 문화에 반향을 일으켰었다. 『태백산맥』이 워낙 깊이 있고 진동이 큰 문학이었기 때문에 그에 비해 『남부군』은 상대적으로 얕고, 또한 전향을 해서 살아남은 사람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수정주의적이고 타협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도 빨치산의 인간적인 면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빨치산을 미화하는 것이라고 격하게 비난하는 시각과 더 흔들림 없는, 진짜 빨치산을 그리기에는 너무 온정적이지 않느냐는 비판 사이에 묘하게 위치하고 있었다. 



김성욱: <벌지 대전투>나 <남부군>처럼 주로 대규모로 인물이 등장하고 소셜한 관계들을 다룬 영화들을 선택하셨는데. 

민규동: 어릴 때부터 전쟁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혐오감이 많았지만, 그렇게 굉장히 큰 필드에서 벌어지는 생과 사의 문제, 국가 사이의 정치적인 역학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 이런 것이 주는 긴장과 재미를 즐겼던 것 같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작은 영화들을 만들어오긴 했지만, 역사를 관통하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소우주로 넓혀내는 개인에 얽힌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지금도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전쟁과 혁명을 다룬 그런 큰 영화들을 떠올려보다가 <남부군>까지 온 것 같다. 


김성욱: 이런 류의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어떻게 보셨나. 

민규동: 이 영화는 <피아니스트>(2002)처럼 한 인물을 끝까지 따라간다. 안성기 씨의 시점으로 존재하고 중간에 등장했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인물들이 많다. 실화에 많이 근거하다 보니 실제 공간, 실제 인물들에 맞춰져 있어 전형적이지 않는 인물 배치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실제 일지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장르적으로 균형을 맞추는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그리도 빨치산 내에서의 인물군을 잘 뽑아서 균형 있게 배치하려고 많이 노력하신 것 같다. 


김성욱: 말씀하신 것처럼 <피아니스트>와 전체적인 이미지의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 <피아니스트>를 만들면서 로만 폴란스키가 염두에 둔 하나의 이미지는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것, 완전히 폐허 더미가 된 가운데 혼자 서 있는 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남부군>에서 인상적인 이미지는 아무래도 안성기 씨가 하얀 눈밭에 혼자 남겨져 있거나 시체들이 뒹구는 가운데 혼자 서 있는 상태의 느낌들이 크게 와 닿는다. 

민규동: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적인 부분, 따뜻한 점들을 덜어내고, 좀 더 다큐멘터리처럼 인물들을 따라다녔으면 좀 더 냉정한 시선들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김성욱: 근래에 나왔던 전쟁을 다룬 영화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당시에는 이런 내용을 다루면 굉장히 문제가 많이 됐다. 대학생 때 학교에서 북한 영화를 상영한다는 날 대학에 헬기가 뜨고 최루탄이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영화를 상영하거나 본다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이나 세상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나라에서 진압을 할 정도였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이런 영화들을 편하게 볼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있다. 오히려 무관심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의미가 없어진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영화를 보려고, 혹은 만들려고 했던 힘들이 증발되고, 이제는 전쟁을 하더라도 반드시 재미가 담보되어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데 정말 좋은 세상이 오겠지?’라는 회의적인 질문을 불안하게 던지는데, 시간이 지나 그 의미는 없어지고 이미지만 남게 된 지금의 순간이 묘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김성욱: 90년대 초반에는 영화를 전복적인 예술로 봤던 것 같다. 상업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대중적 동원의 측면에서 영화를 하나의 스펙타클의 장으로도 봤던 것 같다. 자주제작의 영화들이 대학에서 상영될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가 굉장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에서 <레미제라블>(2012)을 보면서 혁명에 대한 찬가를 듣게 되는데 그 느낌이 묘했다. 이런 영화들을 지금 우리가 극장에서 보고 있는 경험적인 측면에서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규동: 어떤 박제를 바라보는 느낌이지 바리케이드에 서있는 그 절절함의 의미를 이해하는 느낌은 아닐 것 같다. 예전에 <닥터 지바고>를 보면서 주인공이 빨치산에 끌려가 의도치 않게 혁명에 종사하다가 탈출하고 죽어갈 때 당시에는 정말 그 인물과 함께 행군하는 느낌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환희 같은 것이 절절하게 다가왔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모두 다 이미지화된 것 같다. 


관객1: 정지영 감독님의 영화들에 대해 너무 감정 묘사가 직접적이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반응이 있지만, 그럼에도 항상 어떤 진정성이 느껴진다. 정말 뭔가 말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다는 느낌이다. 

민규동: 이야기의 선택에 있어서 남다른 지점이 있으신 것 같다.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이야기를 선택했을 때는 그 방향이 명백한 것 같고, 그런 감독님의 역사적, 철학적 입장을 반영하는 가장 적합한 얼굴이 안성기 씨라는 생각이 든다. 안성기 씨의 얼굴은 잘생겼고, 지식인 얼굴이기도 하고, 휴머니즘을 담고 있고, 연륜도 있고, 그런데 뭔가 성욕은 제거되어 있다. 더 자신을 학대하는데 익숙하고,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는데 서툰 지점들이 비슷하게 영화에 결기가 이어지고 있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사람을 끌어가려는 어떤 결기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정지영 감독님의 영화가 선택을 강요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모호한 입장을 취할 수 없게 하고,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이다. 감독님의 행동가로서의 어떤 확고한 지점들이 계속 있는 것 같다. 


관객2: <남부군>과 비교해서 <태백산맥>(1994)과 <하얀 전쟁>(1992)은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태백산맥』은 긴 서사시이고, 어떤 한 인물도 평면적이지 않게 입체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태백산맥>은 소설이 갖고 있는 진지함이나 무서울 정도로 깊이 바라보던 시선이 많이 희석되고 결국은 별로 모난 것 없이 안성기 씨가 바라보던 시선처럼 상식적인 메시지밖에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를 많이 노출했었다. <하얀 전쟁>도 비슷하게, 전쟁의 무의미함과 남겨진 트라우마에 대한 메시지 자체는 굉장히 상식적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특별한 자극을 받지는 못했다. 한국군의 모호한 입장에 대해 좀 더 문제제기하고 깊이 있게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정지영 감독님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긴 하지만 열렬히 지지하기는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 


김성욱: 이런 영화들을 선택한 데에는 차기작에 대한 생각들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

민규동: 차기작이 뭐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남녀 간의 멜로드라마를 써놓은 것이 있고, 40년대 해방공간의 느와르, 전쟁직후의 첩보멜로를 써놓고 구상 중이다. 좀 더 열어놓고 스스로도 궁금해 하고 있다.


정리: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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