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 시네마테크 오픈 토크 지상중계

 

지난 5월 17일 저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한 ‘시네마테크 오픈 토크’에 참여하기 위한 5인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서울에 시네마테크를 허하라! - 내가 사랑한 영화들, 극장의 추억”이란 주제로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이날 행사 진행은 시네마테크의 오랜 친구인 변영주 감독과 이해영이 감독이 맡았고 초대손님으로 진행자의 절친인 김태용 감독을 비롯해 시인 심보선 씨, 그리고 뮤지션 정바비 씨가 함께 했다. 1부 프로그램으로 파리의 시네마테크를 최초로 설립한 앙리 랑글루아를 다룬 다큐, <시티즌 랑글루아>가 상영되었고, 본격 오픈 토크는 상영 후에 이어졌다. 평소 아트시네마의 경직되고 무거운 분위기를 넘어서 자유롭고 장난스러운 농담과 영화관에 대한 애정, 소소한 추억이 오가며 관객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 진행을 맡은 저와 메인 MC를 맡은, 최근 방송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해영 감독 외에 특별히 초대손님으로 2~30대의 젊은 여성들의 심장을 두드리는 뮤지션, 정바비님과 심보선 시인님, 그리고 김태용 감독님을 모시고 시네마테크 개관 10주년 기념 오픈 토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이해영(영화감독): 우선 1부 행사로 <시티즌 랑글루아>를 상영했는데 다큐 다 보시고 나서 어떠셨는지 소감부터 듣고 싶다.

정바비(가수, 작곡가): 영화에 고전 영화 장면이 시의 적절하게 삽입되면서 영화 만드는 분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묻어났다. 만약 내가 영화인이라면 이 메타적인 작품에 감동 받으면서 봤을 것 같다.

심보선(시인, 사회학자): 저도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오늘 랑글루아에 대한 영화를 보니까 총을 들고 프린트를 지키는 애정이 내 영화의 애정에 비할 바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용(영화감독):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영화가 사실 가치가 있어서 좋아 한다기 보단, 영화를 좋아하게 돼서 가치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저 분이 영화가 아닌 시나 나무를 만났어도 소중히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지키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열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해영: 영화 속 ‘시간은 곧 공간이다’라는 내레이션이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서울에는 시간을 담고 있는 공간들이 철거가 진행되면서 많이 사라졌는데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변영주 감독님은 많이 괴로하시면서 보시던데.

변영주: 괴로워하지 않고 재밌게 봤다. 영화를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면 영화 속 인물들이 어디선가 들은 인물들이지 않나. 영화를 열심히 보던 시기에 힘들게 보았던 작품들이 나오면서 두근거린 느낌도 나서 좋았다. 이 자리는 사실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원했던 것보다 대단한 자리였다. 초대 손님들도 많고 저희가 축제처럼 관객 분들을 무대로 모시면 애정에 가득 차서 시네마테크 나가면서 관객회원으로 등록 하게 하고 싶었다. 한 마디로 부흥회 느낌(웃음), 어떻게든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데울 수 있었음 했는데, 영화로 데운 것 같다. 심보선 시인에게 영화를 어찌 사랑하게 되셨는지 묻고 싶다.

심보선: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영화관에 데려갔고, 어두운 곳에서 아버지가 저를 데려 가셨는데 눈앞에서 스크린이 환한 빛처럼 펼쳐졌다. 그게 <메리 포핀스>였다. 영화라는 매직을 어린 아이가 처음 경험한 것. 어두워서 무서워하다가 눈앞에서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경이로워하며 봤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환상적 사건으로 영화적 첫 경험은 마술이었다. 부모님이 영화를 좋아하셔서 TV의 영화 프로그램 있으면 보여줬다.

이해영: 처음 영화가 <메리 포핀스>라니 참 시적이다. 정바비씨는 어땠는지?

정바비: 저는 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많이 봤는데, 가장 좋아하는 건 음악이었고 영화는 엔터테이먼트였다. 2004년 대학생 시기에 아트시네마의 에른스트 루비치 회고전을 교수님이 보라고 추천하셔서 보러왔다. 그레타 가르보가 처음으로 웃는 스파이 영화 <니노치카>였는데 극장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였다. 이를 계기로 영화에 대한 생각들과 감정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그래서 집에서 팜플렛을 찾아봤는데...(2004년 11월 에른스트 루비치전 팜플렛 꺼내며) 재밌는 말이 있었다. 트뤼포가 말하길 ‘예술가는 두 종류가 있는데 관객이나 독자 없이도 잘 할 수 있는 예술가가 있다면 반대로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보람을 느낄 수가 없는 감독이 있다. 루비치는 후자에 속하는 감독이다’고 했다. 저도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라 루비치가 와 닿았다.

 

 

이해영: 김태용 감독님은 영화와 첫 사랑에 빠진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김태용: 처음 본 영화는 <킹콩>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사촌형이 시내 나가서 여자 친구랑 영화 보는데 데리고 가게 된 거다. 그 때 기억에 영화는 너무 무서웠다. 지금 보면 그렇게 많이 무섭진 않지만 신기하고 마술적인 느낌이었다. 어리석게도 다큐와 극영화의 구분도 못했다. 근데 계속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은 안했고 시네필로 자라지 못했다. 대학교 때 극장의 경험이 영화를 하게 만든 건 아니고, 선배들이 영화를 찍는 현장에서 조연출로 일했다. 연출부 일을 돕는데 신비한 경험이었다. 카메라로 영화를 찍고, 현상을 하는 메카니즘에 빠져서 영화를 하고 싶어 의식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비디오 세대로, 문화학교 서울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몇 번이고 복사한 저화질의 영상을 보면서 영화를 꿈꿨다.

이해영: 변감독님은 어떠신지? 맞먹고 막대하긴 하는데 저보다 엄청난 선배님이시다. 대화를 하다보면 영화 관련 서적에서 본 것 같은 역사적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겸상하면서 들을 기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렇게 들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변영주: 방금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1992년 93년 사이에서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다큐멘터리가 뭔지 모르고 만들었다. 첫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어떤 누구보다 이 영화가 끔찍하다는 걸 알았다. 그 뒤 정말로 감독이 되고 싶어졌다고 결심했다. 문화학교 서울 이전에는 유학한 선배들이 지령을 받은 것처럼 비디오를 카피해서 소포로 보내서 복사본들을 계속 만들었다. 저는 <미치광의 피에로>가 흑백영화인줄 알았을 정도였다. 근데 일본의 다큐 영화제에서 초청해서 많은 다큐를 접했다. 그러면서 영화사적인 작품들 중 내가 본 게 없구나. 과연 나는 감독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혼식 비디오 찍고 알바를 해서 돈을 모아 파리로 갔다. 파리스코프를 사서 영화를 하루에 8편에서 9편 보러 다녔다. 아프리카 영화를 불어자막으로 볼 때는 마음대로 줄거리 상상을 하면서 봤다. 두 달 동안 미치도록 영화를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젠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낮은 목소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영화제목을 기억 못하지만, 그렇게 많은 소극장 시네마테크들에서 다양한 영화들 중 뭘 봐야할지 고민하고 아쉬워했다. 그 시간이 제가 아직까지도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가장 큰 힘 중에 하나다. 만약에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낮은 목소리> 만들 때 나의 부모님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만들었을 거다. 이 감독님은 감독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던 시기가 언제인지?

이해영: 일단 영화에 사랑에 빠지게 된 건, 80년대 초등학교 때 MTV를 보면 전 세계 영상언어가 만국 공통어일 때,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가 <E.T>다. 어려운 영화는 아니지만 어려웠다. 다시 극장에서 필름으로 보다가 영사사고가 일어나서 중간에 끊겼었다. 영화가 마법 같다고 다들 얘기했지만 영화의 물리적인 면을 깨달았다. 청소년기에는 홍콩영화 전성기라 동시상영관에서 <천녀유혼>, <첩혈쌍웅>, <영웅본색> 을 수십 번 봤다. 그러면서 영화랑 친해졌다. 80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좋아했는데, 지금보다 그 시기의 영화들 이 창작할 때도 많은 자극을 준다. 그러면서 특별히 영화기 멀리 있거나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화를 해볼까 마음먹을 때도 큰 결단이 필요하진 않았다. 김 감독님과 반대로 요즘 저는 영화가 무섭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극장에 관한 추억이라면, 동시상영관 의 풍경은 엄청났다. 콘서트 장에 온 것처럼 영화에 열광하면서 봤다. 아이돌 콘서트에 온 것 같은 뜨거운 분위기가 영화가 누군가를 열광시킬 수 있구나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극장에 관한 인상적인 기억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정바비씨부터 말씀해 주신다면.

 

 

정바비: 아트시네마가 박물관이거나 성스러운 공간이지만, 평소에 영화하시는 분들이 젠체하는 느낌을 받는다. 데이비드 린의 <밀회>를 보는데, 한 아저씨의 징글벨 멜로디의 벨소리가 울렸다. 세 번 넘게 흘러나오는데도 아무도 저지를 안 해서 결국 그 아저씨에게로 가 핸드폰을 꺼내서 벨소리를 껐다. 그 아저씨는 약간 취한채로 깨어 있어서 공포스러웠다.

심보선: 저는 영화를 혼자 많이 보러 다녔는데, 극장에서 담배를 피면서 군복을 입고 보니 누가 뭐라 하지 않았다. 저한테는 군대에 있을 때나 혹은 대학교 다닐 때도 유일한 문화생활이었다. 사실은 그 때는 영화 보러 혼자 가는 건 이상하게 봤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런 공간은 혼자 편하게 보고 쏙 빠져나올 수 있는 공간이다. 멀티플렉스는 이벤트나 데이트 공간으로 혼자 가려면 용기를 내야한다.

이해영: 멀티플렉스는 고기 집에 가서 혼자 삼겹살 먹는 느낌이고, 여기는 기사식당 같다.

변영주: 전 멀티플렉스도 혼자 자주 간다.

김태용: 저도 극장 혼자 많이 간다. 혼자 가서 영화 보는 것 좋아하는 편이고. 좀 다른 이야긴지만 <가족의 탄생>을 개봉하고 그 영화를 곧 내릴 것 같아서 극장에 혼자 가서 봤다. 너무 촌스럽게 마지막 크레딧 올라가면서 눈물이 났다. 사람들 이름 올라가면서 이 영화가 내린다는 생각에 뭉클했다. 불 켜지고 혼자 울고 있는데 뒤에서 당시 씨네 21 기자 분이 나를 알아보더라. ‘감독님 뭐하세요, 우세요? 자기 영화 보고 우세요?’ 묻는데 변명할 수 없고 부끄러워서 도망갔다. (웃음)

변영주: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개봉한 날 낮에 <화차>를 봤다. 제 앞에 계시는 아저씨가 전화를 받으셔서 영화가 아닌 그 분을 보게 되었다. 가서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영화 중간 이후를 그 분 때문에 보질 못했고, 끝나고 보니 극장에서 일하시는 분이신데 ‘감독님이 첫날 영화 보러 왔네?’라고 해서 황당했다.

김태용: 99년에 <여고괴담 2>로 데뷔했을 때 멀티플렉스가 없어서 제작진이 극장에서 영화를 제대로 상영하는지 돌아가면서 체크했다. 영등포에 명화극장 밑에 명화 나이트가 있는데, 극장가서 보니까 거의 대사도 안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틀어 놓았다. 영사기사에게 말씀드렸는데 소리를 크게 틀어놓으면 나이트에서 불평이 온다고 얘기했다.

이해영: 지금은 그런 일들이 많다. 요즘은 멀티플렉스라 상영관들 환경이 통제가 잘된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볼 때 사운드가 너무 안 들려 영사실에 올라갔다. 소리가 너무 작다고 얘기했는데 결국 싸운 적 있다. 무대 인사를 하러 부산에 갔는데, 덕환이랑 기다리다가 몰래 들어가 반응을 봤다. 한 중년 남자 분께서 덕환이 립스틱 바르는 장면에서 아저씨가 갑자기 ‘뭐꼬 변태아이가!’라며 화를 내서 조용히 나왔다.

 

변영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이제 관객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될 것 같다. 나는 영화와 이렇게 사랑에 빠졌다 얘기하고 싶으신 분은 손들고 이야기를 해주시기 바란다.

관객1: 저는 48시간 국제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행사가 있어서 보게 되었다. 전 세계 107개 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인데, 48시간 동안 시나리오 작성해서 영화를 만드는 게임이다. 올해 서울에서도 준비하고 있고, 10월 19일에 시작하여 누구나 출전할 수 있다. 시작하기 15분 전에 주인공 이름, 직업, 들어 가야하는 대사와 소품을 주고 촬영 직전에 장르를 추첨해서 맞춰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해영: 영화가 순발력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데. 순발력이 왜 가장 중요한 기준인지?

관객1: 순발력을 측정한다기보다는 잠시 쉬고 있는 감독님들에게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행사다.

변영주: 지금까지 영화에 대한 사랑과 극장의 추억 대해 얘기해보았으니 다음은 관객의 입장으로서 개선되어야할 점과 시도하면 좋을 것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도 듣고 싶다.

정바비: 개인적인 로망으로, 같이 영화를 봤던 여성분과 또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만남, 애프터에 대한 판타지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유도하는 장치나 테크닉이 필요한 것 같다. 영화관에서 우연히 만난 분과 잘 된 경우 있지 않는지?

관객2: 관객 분이 인터뷰를 할 때 아트시네마에서 연인을 만났고 다시 여기서 헤어지셨다고, 그래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이 아트시네마 밖에 없다고 말씀을 했었다.

이해영: 몇몇 대도시들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가면 라운지가 잘되어있어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다. 건전하게 영화에 대해서 토크가 가능하고 네트워크가 관객들끼리 생길 수 있는 환경인데, 아트시네마 로비에 있다 보면 앞의 공간이 잘 활용이 안 되는 것 같다.

변영주: 정바비씨의 로망이 시네마테크에게 필요한 것 같다. 슬쩍 맞은편에 앉아서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그런 애프터가 가능한 공간이 시네마테크에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심보선: 얘기를 듣다보니까 정바비씨에게 얘기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극장 앞에서 친구랑 커피 숍에 앉아있는데 밖에 비가 오고, 할머니가 곱게 단장을 하시고 우산을 쓰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극장 앞을 계속 서성이기 시작하는데 마치 스텝을 밟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가 시작했는데도 친구랑 같이 그 할머니를 걱정했었다.

정바비: 가사가 될 만 한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심보선 시인님의 팬이다. 시낭송회에 예전에 간 적이 있었는데, 시 낭송회는 지금 분위기보다 더 많이 무겁다. 좀 힘들었던 경험으로 바로 앞에 앉아있던 남자분이 시낭송회에서 빵을 꺼내 먹었다. 그 옆에 있던 일행분이 움직여서 말리는 줄 알았더니 음료수를 꺼내서 주었다. 순간 너무 웃겨서 손톱으로 누르고, 혀 깨물고 죽은 사람 생각하고 그랬는데...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고 싶었다.

 

이해영: 심 시인님은 극장에 바라는 게 없으신지?

심보선: 비슷한데, 학교 다닐 때 씨네꼼이라는 영화동아리를 만들었었다. 같이 한 황동엽이라는 친구가 그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감독의 길로 들어섰고 <도가니>를 만들었다. 그때 씨네꼼의 목표는 영화를 보고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자였다. 영화를 통해서 우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홈커밍 데이라고 해서 갔는데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문화가 깨졌다. 사실 공간적으로 바깥에 테이블을 놓고 배치한다고 해서 될까 의문이다. 요새만큼 토크가 많은 시대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토론자들은 무대 위에, 관객들은 아래에, 객석은 꽉차있지만 교류가 없는 게 전반적인 경향이다. 그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 다른 장르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고민을 이 공간이 좀 해줬으면 좋겠다.

변영주: 공간이 만들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야기 나누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두 분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해영: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많이 들으셨을 거다. 정책 문제와 영화인들 참여가 문제지만, 사실 교류가 가능한 가상의 공간에 대한 갈증을 공유하는 것을 잊지 않을 거다. 이제 자리를 마감해야 할 것 같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한다.

김태용: 아까 말처럼 시네마테크 분위기가 무거운데 이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다른 극장에서는 혼자 영화보고 나오지만 여기 시네마테크에서는 관객들을 한번 보게 되는 습관을 보게 된다. 그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끼리의 동질감을 느낀다. 10주년을 축하하고 이후 10주년을 기획하는 자리인데 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가에 대해 많은걸 느끼게 해서 좋았다. 현재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언제일지 기약은 없다.

정바비: 언니네 이발관 1, 2집에서부터 줄리아 하트, 바비빌, 가을방학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더 많은 교류를 했으면 좋겠다. 아까 그 사연을 보내주시면 참고하겠다.

심보선: 우울한 상황은 두 가지, 시를 못 쓴지 너무 오래됐거나 혹은 영화를 못 본지 오래되었을 때다. 비록 모든 관객이 아는 친구는 아니지만 좋은 영화에 대해서 같이 감동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간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세분 감독님한테 좋은 영화 계속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영화 없으면 저는 죽는다.

 

김태용: 영화 만들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몸담은 곳이 생각보다 좋은 곳이라는 걸 극장에서 느낀다. 그 점에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많이 뵈었으면 좋겠다.

이해영: 저도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 식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변영주: 마무리를 하자면, 서울아트시네마가 시네마테크로서 좌석수가 작아져도 상관없으니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에서 시네마테크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오늘을 시작으로 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넘어서서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 30일부터 인디포럼 영화제가 시작된다. 문득 랑글루아가 해임되어진 뒤 상황들이 흡사 6년 전 정부가 새로 만들어지고 문화부 장관이 바뀌면서 발생한 일들이 떠올랐다. 인디포럼은 소송비도 모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인데, 관객 분들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2012년도 독립영화가 어떤지 열심히 봐주는 거다.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에서 하니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아무튼 어느 순간 관객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어떤 정책이 와도 신경 안 쓸 수 있고, 올바른 문화들이 만들어질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리: 윤서연(관객 에디터) | 사진: 최미연(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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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들> 상영 후 황덕호 재즈평론가 시네토크 현장 스케치 

 

지난 5월 15일, 존 카사베츠의 데뷔작인 <그림자들> 상영에 이어 “재즈와 영화: 존 카사베츠와 찰스 밍거스”라는 제목으로 재즈 평론가 황덕호씨와 함께 하는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다. 이 날 시네토크 시간에는 제목처럼, 찰스 밍거스의 음악적 태도나 작업 방식, 카사베츠 영화와의 유사한 지점들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며, 특별히 찰스 밍거스의 음악을 함께 듣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재즈와 영화 이야기가 함께 했던 이날의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존 카사베츠는 데뷔작 <그림자들>을 만들면서, 그 무렵인 50년대 후반에 프리 재즈에 깊은 영향을 많이 받았고, 동시대적으로 그런 음악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거의 첫 번째 감독으로 이야기된다. 프랑스의 비평가 티에리 주스가 카사베츠의 영화와 재즈와의 연관성에 대해 얘기한 부분이 있다. “카사베츠의 <그림자들>은 오넷 콜맨의 프리 재즈를 최초로 경험한 동시대의 영화였다. 단지 찰스 밍거스가 영화 음악에 참여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카사베츠와 재즈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다. 살아있는 시간을 기입하고, 쇼트의 중심에서 여기와 지금을 보여주고 있고, 굴절에 대한 불가능한 예측이 있다.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대사에 스윙이 있고,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소리의 우연성과 독특성에 대한 우월성이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악보의 우월성에 순종하는 데에 대한 거부가 있다.” 50년대 후반의 프리 재즈, 특히 찰스 밍거스나 오넷 콜맨이 카사베츠와 관련해서 많이 언급된다. 프리 재즈란 어떤 것이었고, 두 음악인이 당시 어떤 영향성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황덕호(재즈 평론가): 프리 재즈에 국한해서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찰스 밍거스 음악의 특징을 놓고서 카사베츠 영화와의 공통점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오늘 보신 <그림자들>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겠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이 혼혈 부모 밑에서 태어난 세 남매인데 밍거스 역시도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다. 밍거스의 아버지는 흑인 하사관이었고, 밍거스를 낳기 전에 백인여성과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그 중 한 명은 완전히 엄마를 닮아서 백인처럼 보이고, 다른 한 명은 아버지를 닮아 완전히 흑인처럼 보인다. 밍거스의 아버지는 이후 밍거스 어머니와 재혼했는데, 그녀는 중국인이었고, 밍거스를 낳고 곧 죽게 된다. 밍거스가 어린 시절에 집 안 거실에는 이상하게 백인 엄마의 사진만 걸어놨었다고 한다. 그래서 밍거스는 그녀가 자기 엄마라고 생각하고 자랐었고, 큰 누나와 함께 둘째 누나의 피부가 검다고 놀렸다고도 한다. 영화에서의 벤과 비슷했던 셈이다. 벤 역시 혼혈인데, 그가 늘 같이 돌아다니는 친구들은 백인친구들이다.

밍거스는 고등학생에 되어서야 흑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피부가 검은 색인데도 자기가 흑인이라는 생각을 별로 갖지 못했던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까 자기 근처에 다 흑인친구들만 모이는 것을 보고 비로소 내가 흑인이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 이미 많은 시간이 걸렸고, 어린 시절에 자신의 미적 체험이나 취향이 결정되는 과정 속에서 백인문화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밍거스는 처음에는 첼로를 연주하다가 콘트라베이스로 악기를 바꿨는데, 열심히 첼로를 해서 교향악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자, ‘미안하지만 흑인을 뽑는 교향악단은 없다. 콘트라베이스로 바꿔서 재즈를 해보라’ 는 권유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후에 재즈 뮤지션이 됐지만 클래식 작곡 기법으로 일일이 악보에 모든 음들을 써서 하는 작품들을 50년대 초반까지도 쓰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일정정도 반성을 하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재즈 작품이라고 썼지만 막상 연주자의 연주를 들어보면 뭔가 어색하고, 이 음악도 저 음악도 아닌 스타일로 들린다는 느낌을 받고 나서 그 해답을 듀크 엘링턴에게서 찾게 된다. 일단은 음악을 듣고서 좀 더 이야기를 할까한다. <그림자들>이 나왔을 무렵인 1959년에 발표된 곡이다. “수요일 밤의 기도회”이다. 수요일이 되면 흑인들이 모여서 신도들이 열띤 예배를 보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선곡한 음악이 있으니 함께 들어보고 얘기를 계속 나누면 좋겠다.   

 

♬ Charles Mingus - Wednesday Night Prayer Meeting ♬

 

 

보통 재즈에서 16마디나 12마디의 테마를 연주한 뒤, 솔로 연주자들이 차례로 연주하고, 다시 다 같이 테마를 연주하는 것이 기본적인 포맷이었다. 찰스 밍거스는 이러한 방식이 불만이었다. 대신 그는 더 많은 음악적인 내용들을 작곡을 해서 만들어내려고 했는데, 그가 작곡한 내용을 일일이 악보에 써서 연주자들은 그 악보를 보고 연주하다보니 재즈 특유의 즉흥성이나 에너지가 표현이 안됐던 것이다. 그런 면을 가지고 많은 시행착오를 하다가, 듀크 엘링턴의 방식에서 해답을 얻게 된다. 작곡자는 기본적인 작품의 테마를 가지고 리허설을 하면서, 멤버들에게 떠오르는 멜로디를 묻고, 그렇게 다른 연주자들과 연주를 해가면서 곡을 완성해 간다. 사실 재즈에서의 작곡이라는 것은 집단적인 창작이다. 그래야 보다 풍부한 것을 담아낼 수 있고 연주자들의 즉흥성과 자발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카사베츠가 영화를 찍는 방식도 그런 면에서 일치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카사베츠은 1957년 4만불의 저예산으로 <그림자들>을 찍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소규모 자본을 가지고 스스로 모든 결정하며 창작한다는 데에서 밍거스도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밍거스 역시도 카사베츠 만큼이나 메이저 음반사와 많은 갈등이 있었고, 그래서 결국 자기 음반사를 직접 차리기도 했는데, 그런 면에서 카사베츠와 밍거스의 태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57년에 <그림자들>의 촬영을 마치고, 58년에 음악 제작에 들어갔는데, 찰스 밍거스가 쓴 작품이 영화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베이스나 드럼 솔로를 한 정도만 들어가있다. 크레딧에도 색소폰 솔로에 샤피아 하디, 그 외에 추가적인 음악에 찰스 밍거스 이렇게만 나온다. 찰스 밍거스가 실제로 이 영화를 쓴 작품들은 거의 반영이 안돼서 굉장히 화가 났었다고도 한다.

찰스 밍거스 같은 뛰어난 거물이 어떻게 이런 독립영화의 음악을 맡게 되었을까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신화적 존재였던 찰리 파커나, 미국무부 지원 아래 해외 투워를 했었던 디지 길레스피, 콜럼비아사와 계약했던 마일즈 데이비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실 대부분의 재즈 뮤지션의 사회경제적 입지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몇몇 메이저 음반사가 아니라면 음반을 제작해도 사실 배포망이 거의 없기 때문에 판매가 어려웠던 것이다. 자신이 직접 음반사를 만들기도 했던 찰스 밍거스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자, 50년대 초에는 전업 뮤지션의 길을 벗어나서 우편배달부가 되기도 했다.

찰스 밍거스는 흑인으로서의 아이덴테티를 늦게 가지면서, 흑인성에 대한 굉장히 강렬한 태도를 갖게 되고, 정치적으로도 확고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콜럼비아에서 녹음한 <Fables of Faubus>은 남부의 포버스라는 인종주의적인 주지사를 비꼰 음악이다. 당시에 포버스는 흑인과 백인의 학교를 통합해 운영하라는 법령을 지키지 않고, 주의 독립된 군대를 가지고 정부군과 대치하기도 했었다. 원곡에는 가사가 있는데, 콜럼비아사가 이를 못 싣게 해서 보컬 부분이 빠지게 된다. 나중에 밍거스가 독립 음반사를 차린 뒤 보컬을 입혀서 포버스를 조롱하는 가사를 그대로 실어 다시 발표하기도 했다.

 

김성욱: 정확하게 프리 재즈 스타일이라는 게 어떤 것인가?

황덕호: 프리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이전의, 찰리 파커로 대변되는 비밥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프리 재즈는 비밥의 조성적 특징, 리듬과 같은 규칙들을 다 벗어던지는, 그래서 보다 자유로운 재즈를 추구한다는 의미였고, 59년도 무렵에 오넷 콜맨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선언처럼 등장했다. 사실 밍거스는 프리재즈와 태도가 상당히 가까우면서도, 자기 음악을 프리 재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밍거스는 작곡이라는 측면에 굉장히 많은 열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프리 재즈와 거리를 뒀었다. 그렇지만 비밥을 넘어셔려는 태도에 있어서 프리 재즈와 상당히 가까웠다. 불협화음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조성에서 탈피하고,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스윙감에서 벗어나서 리듬에서도 파격성을 주는 점들이 프리 재즈와 가까웠기 때문에 프리 재즈로 오인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밍거스는 오넷 콜맨의 음악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밍거스는 무조건 조성을 버리는 것이 과연 음악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했다.

 

관객1: 들려주신 음악의 느낌도 그랬고, 영화에서는 인종적인 문제가 나오지만, 결국엔 벤이라는 캐릭터가 그냥 잊어버리자는 느낌으로 끝나는데...

황덕호: 비트 세대라는 말이 영화에도 등장하는데, 사실 케루악이나 버로우즈, 긴스버그 같은 비트 세대의 작품들에 대해 흑인 재즈 뮤지션들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비트 세대의 작품들을 대부분의 작가들이 백인이어서 그런지 동시대를 살면서도 의아할 정도로 인종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고민이 없다. 그런데 카사베츠의 <그림자들>을 보면서, 카사베츠가 흑인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인종문제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예리하게 파헤쳤을까 싶어서 깜짝 놀랐다. 마지막에 벤이 인종문제를 잊는다기보다는 뮤지션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인종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재즈도 범위가 넓기 때문에 단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뮤지션에 따라서도 달랐던 것 같다. 하지만 흑인 뮤지션들이 인종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봤던 부분은, 사실 일반 대중들이 혹은 백인 재즈 평론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 예를 들어, 아트 블레이키의 <Freedom Rider>라는 음반이 있다. 당시에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서 미국의 남부를 순회하고 다녔던, 우리로 치자면 희망버스 같은 운동이 있었는데, 바로 그 운동을 위해서 쓴 작품이었다.

 

관객2: 영화 마지막에 이 영화는 즉흥적으로 촬영된 것이라는 자막이 뜨는데, 어디까지가 즉흥적인 것인가.

김성욱: 즉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부분들이기 때문에 사실 굉장히 계획된 연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배우들은 카사베츠가 운영하던 일종의 액터즈 스튜디오의 수강생들이었다. 매일 연기수업을 진행하다가, 조금 더 실제적인 방식으로 해보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연기를 무대가 아닌 실제 현실에서 진행해보자는 의도였기 때문에 이 것을 영화로 만들어서, 개봉하거나 배급하려는 계획은 애초에 없었다고 한다. 로메르의 영화도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요소를 개입시킨다고는 하지만, 100퍼센트 완성된 대사에 따라서 끊임없이 액팅들을 해나가는 과정 안에서 굉장한 자연스러움에 도달하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한 번에 해서 생기는 그런 방식의 즉흥성은 아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주원탁(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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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상영 후 김영진 평론가와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대담

 

지난 5월 13일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존 카사베츠 회고전’ 상영작 중 <얼굴들> 상영 후, 영화평론가들의 대담이 이어졌다.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다. 비정형적인 내러티브, 인물들의 불안감을 담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존 카사베츠의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를 보고 나니깐 담배를 태우고 싶기도 하고, 술을 마시고 싶기도 하다. 오늘은 ‘존 카사베츠 회고전’을 맞이해서 카사베츠 영화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오늘 초대 손님은 김영진 영화평론가다.

김영진(영화평론가,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오늘 이 영화를 세 번째로 봤다. 두 번째로 볼 때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보았는데 학생들이 졸더라. (웃음) 그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희들도 밤새 술 마시고 그러지 않냐. 그런 것을 영화로 찍었다고 생각해봐라. 처음에는 기분 좋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여러 가지 일이 생기고 새벽에 황폐하게 헤어진다. 아니면 다큐멘터리로 술 마시는 걸 찍었다고 생각해봐라”라고 했더니 어떤 학생들은 공감하고 어떤 학생들은 그렇지 않더라. 그리고 이 카사베츠 영화는 엄청 말이 많은데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정서는 굉장히 강렬하게 남는다. 접촉되지 않는 정서들, 그러한 잔상들이 굉장히 강렬하게 남는다.

 

김성욱: 이 영화도 그렇고 <남편들>이란 영화도 그렇고 술의 취기성이 강하다. 오늘은 이 영화를 3,40대 사람들이 보는 게 어울릴까, 아니면 20대 정도의 사람들이 보는 게 더 어울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대사의 상당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거기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은 확실해 보인다. 특히 나이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이 있다. 영화제작 당시인 67,8년의 상황을 생각하면 실제로 굉장히 들끓었던 상황이다. 우리도 며칠 전부터 계속 정치적인 사태들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누군가 ‘정치인의 눈물이나 얼굴을 보고 배신감을 느낀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제목이 <얼굴들>이다.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로 계속해서 벗겨나가는 느낌이다. 간밤에 있었던 무언가의 느낌과 흥취 같은 느낌이 든다. 우연적인 것 같지만 계획적이고 면밀하게 준비되지 않고서는 이런 느낌이 만들어질 것 같지 않다.

김영진: 만약 카사베츠 감독이 등장인물들을 20대로 잡아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3,40대 50대로 넘어가면 자기들이 한 번 살아봤으니까 망쳤다는 느낌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공허감이 있는데, 젊은 세대에 대해서 약간의 질시와 부러움이 있고 상반된 것도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20대에는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다. 20대들은 정말 잘 논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학생들과 면담을 해보면 엄청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카사베츠의 대다수의 영화가 실제로 불안에 관한 영화 같다. 대표적인 영화가 <영향 아래의 여자>이다. 여기서 가장 경의적인 부분은 지나 롤랜즈의 뛰어난 연기다. 영화를 볼 때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영화가 끝날 때에는 그녀가 가장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인다는 느낌이 경이롭다. 감정표현에 매우 솔직하고 아주 민감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느끼는 여자다. 그 여자가 상처받고 다치고 그녀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을 때 관객인 우리도 굉장히 서스펜스를 느낀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들, 구획지어 살아가는 것 같은 억압, 이것을 카사베츠는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끄집어내는 것 같다. 상업영화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찍긴 했지만 전체적인 맵핑은 정해져있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끊임없이 배우와 감독이 계속해서 창조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발견한 영화이다. 분명히 영화를 찍으면서 전체적인 목적지는 있었겠지만 배우와 감독 모두 굉장한 발견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제목에 충실한 영화다. 카메라가 절대 배우들의 연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포착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배우가 그 정도의 감정 상태로 자연스럽게 도달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성욱: 카사베츠의 영화는 미국 내에서는 환대받지 못했지만 유럽권에서는 환대받은 영화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굉장히 미국적인 영화다. 분명히 카사베츠는 동시대아메리칸 시네마가 했던 과정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적으로 보면 미국은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 <와일드 번치> 같은 여정을 그리는 영화를 만들었다. 카사베츠는 그 여정을 더 심각하게 벌였던 것 같다. 그리고 훨씬 내적인 여행을 추구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집안 내부에서라도 인물들의 심리적 여정, 술에 취해서 이상한 퍼포먼스를 벌이다가 하루 정도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여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여정의 공통성과 보편성에 있어서 동시대 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여정을 그리는 방식이 미국보다는 유럽적인 방식으로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볼 때마다 느껴지는 연기의 활력이라든가 연기의 놀라움들을 어떻게 뽑아냈을까 나도 궁금하다. 몇 가지 정보에 따르면,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여러 번의 테이크에 의해서 얻어지게 됐다고 한다. <얼굴들> 같은 영화는 얼굴에 굉장히 집중하지만 인물들의 거리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분위기와 감정의 흐름들이 쏠렸다가 흩어지는 느낌의 감정의 패턴들이 영화 화면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놀라운 것 같다. 하룻밤 내내 폭풍우가 치다가 걷히고 나면 집에 들어갈 때의 초조함. 불안한 상태의 느낌들. 불안감 측면에서 보자면 다른 감독들도 3,40대 넘어가는 과도기에 굉장히 흐트러지면서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많이 보인다. 이 시기는 카사베츠 영화 안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기점이면서 동시에 시대적인 흐름 안에서도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김영진: 이 영화는 어느 순간에 클라이맥스에 올랐다가 공허하게 끝난다. 보통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런 순간들을 포착하지 않는다. 예정된 결말을 향해 간다. 인과론적 구조 속에서 갈등을 해결한다. 카사베츠는 훨씬 그런 의미에서 무정형에 가깝다. 사실 삶이라는 게 언제나 갈등과 해결의 구조는 아니지 않나. 결국 영화를 보면 계속 수면 아래로 묻어두었던 것, 그런 관습과 기성관념, 기성도덕에 대해서 엄청난 에너지로 헤쳐 놓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60년대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다. 그때가 영화로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정형이 있었고 그 정형을 전세계에서 마구 부수는 시기였다. 이번에는 상영하지 않는 영화인데 <빅 트러블>이란 영화가 있다. 이게 비디오로 나왔는데, 감독이 존 카사베츠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그 느낌이 아니었다. 굉장히 정형화된 영화고 웃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카사베츠는 이 영화를 찍다가 콘티대로 찍지 않는다고 퇴출됐다. 그는 결국 끝내 시스템과는 타협하지 못했던 감독이다. 그래서 메이저 돈을 받는 것을 굉장히 끔찍하게 여겼다. 몇 편 만들기도 했지만 잘 안됐다. 인터뷰에도 나왔는데, 영화 찍을 때는 행복하지만 끝나고 나면 너무 슬프다고 했던 사람이다. 스탭들과 헤어지기 싫어서다. 그렇지만 메이저 사람들과 일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는 표 한 장도 넣어주기 싫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일정한 돈을 들이고 배급을 해야 하는 시스템 내에서 결코 화해할 수 없었던 유형의 예술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관객1: 균형적이지 않고 파괴적인 인물들이 카사베츠 영화에는 도사리고 있다.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어서 상승과 추락은 있지만 중간상태는 없는 느낌이다. 마지막 장면도 봉합되지 않은 상태 텅 빈 폐허 같은 공간을 보여주는데, 카사베츠의 영화는 주로 불안을 담고 있는 영화 같다.

김성욱: 이 영화의 결말도 그렇고 6,70년대 많은 영화들이 보면 탈주의 경향을 갖는다. 카사베츠는 탈주라기보다는 해체의 경향에 가까운데, 원래의 지점으로 되돌아온다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도 여자가 클럽까지 가서 젊은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다음에 자신의 집으로 남자를 데리고 와서 완전히 고꾸라진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일어선다. 존재성의 영도지점까지 갔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까지다.

김영진: 와이프의 외도를 목격한 남편이 난폭하게 굴려고 하자 여자가 남자를 때린다. 그러고 나서 카사베츠가 이 부부를 계단에 앉혀놓는다. 그러면서 부부들이 담배를 나눠 핀다.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잔영은 폐허의 느낌은 아니었다. 여기서 더 나빠질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하는 느낌이었다.

 

관객2: 40대가 된 남자로서 이 영화를 보니까 위안이 되었다. 이 사람이 29년생인데, 미국 문화적으로 세대를 놓고 보자면 비트 세대,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 끝나고 50년대에 2,30대를 맞이했던 세대고 그래서 재즈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 기성세대가 되고 히피세대에 느꼈던 불안감 같은 것이 영화에 반영됐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 미국인들의 내면적인 우울 특히 40대들이 느낌 우울증이 잘 나타난 것 같다.

김성욱: 본인 스스로 결과는 불만족스럽다고 했지만 <기다리는 아이>도 흥미로운 영화중 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 감독으로서도 자신의 존재에 영도까지 간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카사베츠는 그런 시작점이 많기도 하다. 이후에 찍은 <남편들>도 배우가 많이 바뀐다. <그림자>에서 너무 기운을 빼서, 그 다음에는 어떤 영화를 찍을지 애매해졌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고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게 벤 가자라와 피터포크다. 그 다음에 이야기는 정해졌던 것이다. 이런 패턴이라는 게 카사베츠 영화 작법 안에서 굉장히 중요했다. 영화는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여정을 보여준다. 환각, 꿈, 술, 담배라는 것을 거치지 않고서는 진행할 수 없는 여정 혹은 거기에 동반되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갈망, 그런 미국적인 상황에 대한 진실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미국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이런 유의 영화가 당시에도 만들어지기 어려웠겠지만, 지금도 만들어지기 어렵다. 1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상영한 영화이기에,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한 또 다른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함께 공유 됐으면 좋겠다.

 

정리: 김고운(관객 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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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식 현장의 이모 저모

 

지난 5월 10일,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개관기념식 및 축하 파티가 열렸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소격동에서 문을 연지 정확히 10년이 되던 날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극장이 없어질 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관객들의 힘으로 버텨올 수 있었다. 이 날 행사는 서울아트시네마가 무사히 10주년을 맞이함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관객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다. 시네마테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축하하고, 감사하고, 약속하던 그 날의 현장을 전한다.

 

 

매년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5월 10일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생일이다. 하지만 2012년은 다른 년도보다 조금 더 특별한 생일을 맞는 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한지 딱 10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1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관객들이 하나 둘 극장으로 모여들었다.

개관 10주년 기념식은 서울아트시네마의 김보년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그는 관객들에게 “바쁘신 와중에도 오늘 10주년 기념행사를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 날 개관 10주년 축하 영상은 총 세 개로 구성되었다. 먼저 아레나 옴므 플러스의 시네마테크 10주년 기념 화보에 참여한 영화인들의 촬영 현장 영상이 첫 번째로 공개되었다. ‘시네마테크는 나에게 ○○다’라는 내용로 구성된 첫 번째 영상에는 ‘최종병기’, ‘축복’, ‘보물창고’, ‘애인’, ‘강의실’, ‘꿈’, ‘쫀득이’, ‘영화의 미래를 보여주는 곳’ 등 영화인들의 다양한 대답들이 흘러나왔다. 두 번째 영상은 ‘서울아트시네마 10년의 기억’이라는 테마로, 2002년부터 10년간 아트시네마가 걸어온 길을 극장 사진, 특별전 포스터, 시네토크 기록 영상 등으로 조망하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영상에서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축하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이후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최정운 대표의 축사가 이어졌다. “돌아보니까 벌써 10년이 되었다”고 말문을 연 최정운 대표는 먼저 “서울아트시네마 한국 시네마테크 협의회의 극장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내빈여러분, 관객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온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이어 그는 “필름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마테크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10년 전 5월에 아트 선재에서 첫 문을 열게 되었고, 그 후 2005년도에 허리우드 극장의 한 칸을 차지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소회를 밝혔다. 또한 “지난 시네마테크의 역사 10년을 넘어서 미래의 10년은 멋진 역사가 펼쳐지기를, 안정된 공간에서 쾌적한 공간에서 멋진 영화를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어지는 순서로 영화진흥위원회의 고정민 부위원장의 축사가 있었다. 김의석 위원장 대신 오게 되었다는 고정민 부위원장은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서울 아트시네마가 있기에 시대를 초월한 수많은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었고, 서울아트시네마와 10년의 나이를 보내면서 동반하는 추억을 쌓아 왔다”는 말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좋은 영화와 좋은 관객이 극장을 지켜주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역시 서울아트시네마와 미래를 함께 할 것”이라 약속했다.

사회자 김보년 씨는 존 카사베츠 회고전이 열리는 현재 극장 로비와 사무실 쪽 복도와 계단이 리모델링 중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공간에서는 작은 전시가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리를 빌어 극장 리모델링을 후원해준 아레나 옴므 플러스와 코오롱 인더스트리 측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또한 개관 10주년 기념 영화제로 존 카사베츠 회고전이 영상과 함께 짧게 소개되었다. 이전에 몇몇 영화제에서 카사베츠의 영화들이 몇 편 상영된 적은 있었지만, 거의 전작에 달하는 규모의 회고전은 국내 최초로 열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개관기념식에서 상영되는 영화 <글로리아>(1980)에 대해 소개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그는 먼저 서울아트시네마의 10살 생일날에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을 전한 후,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와 <글로리아>가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자리에 가든 ‘시네마테크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항상 받는다. 오늘은 출연한 라디오에서는 ‘시네마테크는 고아원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쫓겨나서 길거리로 나앉기도 한다. 옛날 영화도 들어갈 만한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아의 상태에 빠져 있다. <글로리아>라는 영화가 그런 느낌을 준다. 한 꼬마 아이가 고아 상태에 빠져 있다. 영화 속 꼬마는 서울아트시네마와 비슷한 나이대의 열 살 무렵이다. 그가 유일하게 붙어 다닐 수 있는 사람은 ‘글로리아’, 라틴어로 말하면 빛의 영광이다. 꼬마는 글로리아를 만나서 그녀를 끝까지 쫓아다니고, 글로리아는 그런 꼬마를 떼 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돌아다닌다. 시네마테크가 빛의 영광, 글로리아와 더불어 10대를 사랑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글로리아와 더불어 시네마테크는 이제 막 10대에 접어들었다. 엄청난 사춘기 시절을 보낼지도 모른다. 2010년도에는 10주년을 앞두고 남겨진 한 2년 정도가 유예된 생각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올해부터 남겨진 시간들은 유예가 아니라 지속해야 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는 요지였다.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이번 개관 10주년 기념 영화제에 관한 설명을 끝으로, <글로리아> 상영과 개관 10주년 축하 파티가 이어졌다. 영화 상영이 끝난 이후에도 많은 관객들이 떠나지 않고 축하 파티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파티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은 준비된 음식과 음료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1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관객들의 열기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이어졌다. 그만큼 서울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맞이하는 날을 고대해왔던 사람들이야말로 극장이라는 공간을 소중히 여겨온 관객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힘으로 서울아트시네마는 10년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제 두 자리대 나이로 진입한 서울아트시네마의 미래 역시 극장을 방문하는 관객들과 함께할 것이다.

 

글: 송은경 관객 에디터 | 사진: 최미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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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노동자, 메소드

 

존 카사베츠는 그리스계 미국인이다. 이민 2세로 뉴욕에서 자랐다. 말하자면 부모들은 미국이 이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던 20세기 초에 이주했다. 이들의 신분이 어땠는지는 쉽게 짐작이 될 터이다. 작고, 가무잡잡하고, 곱슬머리의 지중해 혈통 소년은 온전한 미국인으로 대접 받지 못 했다(지금도 그런 차별은 일부 남아 있다). 카사베츠의 사회 주변부에 대한 통렬한 시선은 운명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영향 아래의 여자>도 그런 시선이 드러나 있다. 닉 롱게티(피터 포크)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L.A.의 건설노동자다. 주연을 맡은 피터 포크는 <형사 콜롬보>로 유명한데, 지중해 쪽 사람들과 외모가 닮은 유대인이다. 게다가 피터 포크의 오른쪽 눈동자가 인공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평생 육체노동만 해온, 그래서 사고를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 같은 40대 이탈리아계 노동자를 연기하기엔 이 보다 더 적합한 배우가 없을 듯싶다. 카사베츠의 영화는 캐스팅에서부터 이처럼 현실성이 강하다. 닉의 친구들도 거의 다 이탈리아 남자들이거나 흑인들이다. 신분이 불안하고, 사회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닉의 아내 메이블(지나 롤랜즈)은 전업주부다. 남편을 사랑하는데, 그 방식이 좀 지나치다. 일종의 조울증이다. 너무 사랑하고, 또 갑자기 너무 우울해진다. 다시 말해 기분이 취한 듯 종잡을 수 없게 변한다. 제목의 ‘영향 아래’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나왔다. 닉은 정신병원으로 보내라는 주위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힘으로 아내를 보호하고 싶다. 이들 부부의 역경이 주요 내용이다.

카사베츠는 원래 연극배우 출신이다. 연기도 하고, 또 심리 표현에 기반한 메소드(Method) 연기를 가르치면서 예술계에 진출했다. 그래서인지 카사베츠는 물론이고 동료들, 특히 지나 롤랜즈, 피터 포크, 벤 가차라 등은 전부 메소드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다. 1950년대부터 발전해온 이런 연기법은 지금도 할리우드의 자랑이다. 그런데 메소드 연기는 칼의 양날 같아서 잘못 쓰면 심리가 넘쳐, 보기 민망할 정도로 과장되고 유치해지기도 하는 위험이 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메소드 같은 건 없는 점을 떠올려보라.

나는 메소드는 누구에게나 맞는 연기법이기 보다는, 특정 배우에게 태생적으로 맞는 연기법이라고 본다. 그런 타고난 배우를 보고 싶으면, 지나 롤랜즈가 제격이다. 금발의 빛나는 외모를 갖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외롭고 불안한 눈빛을 자주 드러내는 롤랜즈의 연기가 <영향 아래의 여자>의 최고의 매력이다. 닉의 친구들이 모두 몰려와 이탈리아 사람들답게 왁자지껄하며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 자리에서, 롤랜즈가 펼치는 흥분한 여성의 조증은 그게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원래 이 작품은 카사베츠가 연극으로 발표하려 했는데, 주연을 맡은 롤랜즈가 너무 강한 심리 연기를 1주일에 8번 무대에서 펼치는 것은 무리라고 반대해, 영화로 바꿔 발표했다. (한창호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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