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가 진행되는 극장을 둘러보면, 구석에서 노트북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누군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바로 2012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웹데일리 팀으로 활동한 서울아트시네마 소속 에디터들이다. 영화제를 딱 일주일 남기고 에디터들은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날의 대화는 그간의 아쉬움을 털어놓으면서도 결의를 다지는 훈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이제 친구들 영화제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인터뷰, 녹취, 리뷰 등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부터 말해보자.

장지혜:
인터뷰 핑계로 자원 활동가 분들과 얘기 나눈 게 좋았다. 얘기해보면 다들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과 애틋한 마음이 크더라. 녹취는 에디터 활동 전부터 조금씩 했던 것이라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던 반면에 리뷰를 제대로 쓴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부담이 많이 됐다. 또 리뷰를 쓸 땐 집에서 혼자 영화를 봤는데 영화제가 시작하고 난 뒤에 극장에서 보니까 느낌이 달랐다. 그때서야 ‘왜 글을 이렇게 썼을까’하면서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극장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보는 게 다른 걸 확실히 알 것 같다.
송은경: 나도 <스카페이스>를 쓰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 브라이언 드 팔마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스카페이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리뷰 쓸 때도 괴로웠다. (웃음) 그런데 극장에서 보고난 뒤에는 글을 이런 방향으로 썼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컸다.
이정아: <멀홀랜드 드라이브>랑 <로스트 하이웨이>는 필름으로 보니까 색감이 달라서 놀랐다.
손소담: <정복자 펠레>의 상영시간은 150분인데 내가 리뷰를 쓰기 위해 본 건 120분짜리였다. 결말이 다른 건 아니었지만 결말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의 행동 이유가 완전히 달랐다. 영화관에서 150분 버전을 보고나서 ‘내가 이걸 어떻게 다시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줄까’하는 생각을 했다.
김준완: <로제타>와 <샤이닝>도 극장에서 보는 것이 집에서 볼 때와는 느낌이 월등히 다른 영화들이었다. 사실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한, 혹은 이 영화에 대해 특정 목적이 있지 않는 한 그렇게 여러 번씩은 안 보게 되지 않나. 그래도 이 두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극장에서 여러 번 볼만한 가치가 있고, 그때서야 반응이 확실히 오는 거 같아서 극장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단 걸 느꼈다.
이정아: 그래도 이야기의 힘이 강한 영화의 경우에는 변함없는 부분이 있다. <부기나이트>도 물론 영화적인 충격이 크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힘이 워낙 강해서 모니터로 봐도 그게 여실히 다가오는 편이다. 그리고 확실히 혼자서 끄적거리는 글이랑 웹진에 올리는 목적으로 쓰는 글은 다르더라. 녹취는 이전에 녹취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봐서 좀 빠른 편이다. 그런데 녹취를 정리하면 게스트와 진행자가 한마디씩 하는 걸로 올라가지만 실제 대화에서는 서로 끼어들기 때문에 그걸 정리하는 게 쉽지 않더라.

시네마테크 에디터 활동을 통하여 좋았던 점이나 아쉬움, 혹은 변화될 지점 등에 대한 생각은?

송은경: 나는 관객인터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원래는 모르는 분이었지만 인터뷰 이후 마주치면 눈인사도 하게 되고, 이번 에디터 업무를 하면서 극장 사람들과 좀 더 친해진 것 같아 좋았다. 리뷰 쓰는 건 굉장히 힘들었다. 원래 글 쓰는 걸 굉장히 힘들어하고 나의 글을 보여주는 건 너무 부끄러워해서 피하고 싶었다.
손소담: 그래도 나는 내 글이 실리니까 기분이 좋았다. (웃음) 트위터로 내 글이 링크됐을 때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시네마테크에 자주 오시는 분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눴는데 그 분은 서울아트시네마 웹진 블로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시더라.
장지혜: 아트시네마를 오래 다닌 관객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정아: 나도 블로그가 있다는 걸 늦게 알았다.
송은경: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웹진에 올라가는 글을 많이 읽는 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약간 안심하고 있다. (웃음) 그래도 잘 써야한다는 바람이 있고, 그러면 또 부담감을 갖게 되고, 계속 악순환이 되더라. 에디터들끼리라도 글에 대한 피드백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김준완: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현실적으로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지만 필요한 것 같다.
이정아: 이를테면 내가 <스카페이스>를 안 봤더라도 독자로서 물어볼 수 있는 질문들이 있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편하게 공유하고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송은경: 그런 것들이 영화제 데일리의 한계인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영화제들에서도 보면 매일매일 리뷰가 계속 쏟아지는데 독자와 글 쓰는 사람 간의 의사소통이 안 되고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친구들 영화제도 ‘영화제’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여긴 시네마테크의 영화제니까 뭔가가 좀 달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정아: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외에 다른 독자들의 생각을 알 수 없는데 영화를 안 봤더라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아무리 주관적인 선택이라 하더라도 좋은 영화라는 공공연한 합의에 따라 튼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이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인정을 받았고, 이미 얘기는 다 나와 있는 상태에서 무슨 얘기가 더 나올 수 있을지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 영화의 이것이 좋아서 쓰는데 나만 새로운 듯이 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게 어렵고 망설이게 되는 지점이다. 그래도 중요한 얘기는 꼭 써야 하는데. (웃음)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어땠나?

이정아:
큐브릭의 두 영화가 상영되고 린치의 두 영화가 상영됐는데, 이렇게 감독이 겹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는 <샤이닝>, <롤리타>, <시계태엽 오렌지> 등을 봤는데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큐브릭의 이미지와 달라서 조금 놀랐다.
송은경: 영화제가 아직 안 끝났지만 지금까지 본 영화중에서 얘기하자면 나는 <붉은 수염>이 가장 큰 수확이었던 것 같았다. 시네마스코프에 완전히 압도된 느낌이었다. 보리스 바르넷의 영화도 굉장히 큰 기대를 하고 봤는데 기대만큼이나 좋았다.
손소담: 옛날 80년대 영화들은 동시대에 극장에서 못 봐서 항상 아쉬웠다. 그런데 이번 영화제에서 <아비정전>을 보니까 너무 좋더라. <멀홀랜드 드라이브>도 개봉 당시엔 미성년자여서 못 봤는데, 옛날에 못 봤던 영화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는 느낌으로 재밌게 봤다.
이정아: 이해영 감독은 자신이 영화학교 출신이 아니어서 영화학도라면 으레 보는 고전들을 교과서 대하듯 접했던 게 아쉬웠다고 얘기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공부하는 마음으로 고전을 접하다보니 제대로 와 닿지 못하는 편이었다. 감독님 그런 얘기에 공감이 갔다.
김준완: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제 특성상 정말 아무도 모르고 지극히 숨겨진, 더 안 알려지고 비대중적이면서 이런 것도 있다는 식으로 선택이 이루어지면 관객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좋은 영화고 유명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영화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영화보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의미가 있는 영화를 보고 나서 진짜 ‘친구’가 되는 거다.
이정아: 나는 옛날 영화, 클래식을 늦게 보기 시작했다는 자격지심도 약간 있다. 하지만 당장 <부기 나이트>만 해도 많이들 사랑하는 대중영화였다. 지금 상영하는 영화도 나중에 클래식으로 거론될 수 있는 영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의견인데 다른 분들도 시네마테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오셨으면 좋겠다.
김준완: 우리 에디터만 해도, 영화를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고, 영화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경향이 시네마테크의 취지에 부합하는 건지 궁금하다. 이렇게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이유는 제대로 느껴 보겠다는 유희의 목적도 있지 않나. 그런 게 시네마테크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글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 당시 개봉했던 시기의 평범한 관객의 입장에서 옛날 영화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힘을 빼고 편하게. (웃음) 시네마테크에 가는 걸 의식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편하게 보는 게 이상적일 것 같다.

영화의 매혹, 혹은 시네필?!

손소담: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시네필리아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도 영화는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심야영화, 토요명화로만 보고 그랬다. 소도시에서 자라서 기회가 없는 편이기도 했고, 영화랑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스무 살 이후부터 영화를 혼자 많이 봤던 편이다. 그런데 그런 나더러 누가 시네필이라고 하는 거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나는 아름다운 이미지에 매혹을 느낀 적이 많았다. 그 이미지를 소유하려는 욕구가 크다.
송은경: 나는 아직 시네필리아가 아닌 것 같다. (웃음) 사실 영화를 볼 때 서사 따라가기에 급급한 편이다. 영화를 무관심하게 보다가 감각적인 이미지를 뽑아내는 훈련이 덜 됐다. 그래서 반복관람이 필수다. 두 번째 보면 좀 풀어져서 보게 되니까.
이정아: <로스트 하이웨이>나 <멀홀랜드 드라이브> 같은 경우는 스토리를 따라가려고 하면 견디기 힘든 영화들이다. 나 역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아닌 영화들은 여러 번 보게 되는 것 같다.
장지혜: 영화를 보다보면 누구에게나 특정 순간에 도드라지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걸 계속 붙잡고 얘기를 풀어가기에는 자신이 없다. 이 영화에서 그 장면이 중요한 건지, 너무 쓸데없는 데 매달리는 건지 나도 헷갈릴 때가 많다. 자신감 부족인 것 같은데 그걸 계속 붙들고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은 거 같다.
김준완: 그것에 대해서는 사람 수만큼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적인 기준은 있을 수가 없다. 개인적인 자신의 느낌이 확장되고 그걸 표현 하는 게 낫지 않나. 절대다수의 공감을 얻으려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손소담: 그래도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가르는 기준은 있지 않나.
이정아: 감상이 개인적이기는 해도, 글은 객관적으로 써야 하는 것 같다. 아무리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더라도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은 있는 거 아닌가.

이제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씩 얘기하고 자리를 정리해보자.

장지혜:
마지막 날 상영하는 <사랑의 행로>를 다들 꼭 봤으면 좋겠다. 영화제를 마무리하기에 정말 좋은 영화다. 다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
김준완: 꼭 보도록 하겠다. (웃음)
손소담: 다들 수고했다.
송은경: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자.
이정아: 극장에서 자주 보면 좋겠고, 아까 얘기했듯이 서로 의견을 많이 공유했으면 좋겠다.

참석 에디터: 김준완, 손소담, 송은경, 이정아, 장지혜
진행/정리: 송은경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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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oimyeon 2012.02.26 0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글 고대해왔어요.. 힛


‘A는 B의 뮤즈 혹은 페르소나’라는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두 단어 모두 주로 대중문화에서 자주 쓰는 표현으로 뮤즈는 작가나 화가 등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사람을, 페르소나는 주로 영화에서 많이 쓰이는데 감독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배우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이 단어가 갖는 무게에 비하여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누가 보아도 그 관계가 ‘페르소나’로 표현 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왕가위와 장국영, 양조위’를 빼놓을 수 없다. 누군가는 왕가위의 페르소나는 장국영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양조위, 누군가는 장국영과 양조위라고 말한다. 페르소나가 다른 배우로 옮겨가는 경우는 간혹 있는데, 이들의 관계에 유독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장국영의 죽음(2003)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왕가위의 페르소나가 양조위로 대표되는 시점은 <화양연화>(2000)도 있지만 장국영의 죽음 전후로도 나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조위는 조연이었음에도 그만의 색깔을 담은 연기로 왕가위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왕가위가 그에게 <중경삼림>(1994)의 주연을 주었다는 것은 그에 대한 감독의 신뢰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만약 장국영이 살아 있었다면, 그 이후의 작품들에서 양조위와 장국영이 각각 어떤 캐릭터를 구축했을지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해보게 된다.


왕가위는 <열혈남아>(1988)로 시작하여 <아비정전>, <동사서독>,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2046>, <마이블루베리나이츠> 까지 장르의 변화는 있어도 주제는 올곧다. 언제나 ‘사랑’에 대해 말한다. 주인공은 사랑이 부족하고, 사랑을 모르고, 사랑을 받고 싶고, 하고 싶고, 떠나보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그의 영화에서 중요 캐릭터들을 보면 ‘버림받기 전에 먼저 떠나는 사람’과 ‘실연을 극복하고 변화를 통해 새로 출발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전자가 바로 <아비정전>(1990)과 <동사서독>(1994)의 장국영이다. 이 두 영화 속의 장국영은 모두 사랑받지 못했거나 사랑하지 못해서 불행하다. 왕가위 감독은 자신의 작품들에 전반적으로 60년대의 홍콩 중국 반환의 불안한 심리를 허무주의와 유한성에 대한 순응으로 표현해내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장국영이 두 영화에서 맡은 역할은 감독의 가치관을 담아내는 매개체, 페르소나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비정전>에서 아비 역할의 장국영은 과거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사랑은 물론 정착도 하지 못한 채 버림받기 전에 먼저 여자를 떠나간다. 여자에게조차 꿈에서 만나자고 하는 그는 ‘날개 없는 새’로 살기 위하여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부유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이러한 결말은 감독이 바라보는 당시 홍콩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반환된 역사를 볼 때, 홍콩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비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방황하는 홍콩 젊은이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 캐릭터는 <동사서독>의 동사, 구양봉으로 이어진다. 이 역할 또한 장국영이 맡았는데, 반복되는 성격으로 등장해 장국영이라는 배우에 캐릭터를 입혀서 받아들이기는 훨씬 더 수월했을 듯싶다. 구양봉 역시 아비처럼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이다.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그는 영화가 끝나갈 무렵 “거절당하기 싫으면 먼저 거절하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는 흡사 아비의 독백처럼 느껴진다. <해피투게더>(1997)에서 보영 역할의 장국영은 뒤늦게 사랑을 깨닫고 떠난 아휘의 방에 ‘돌아와’ 통곡한다는 점에서 아비와 구양봉보다 더 진전해있는 캐릭터이다. 허나 여전히 큰 골격에서는 사랑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 전작들의 캐릭터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왕가위의 또 다른 페르소나로 꼽히는 양조위는 장국영이 왕가위의 영화에서 처음부터 주연으로 성장한데에 비하여, 장국영이 주연인 영화에 조연으로 참여했다가 주연으로 성장한 경우이다. <아비정전>의 본 내용이 모두 마무리 된 후, 약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양조위는 대사도 클로즈업도 없이 묵묵히 손톱 다듬고, 멋 내고, 돈과 카드를 챙기고 외출하는 모습으로 양가위의 영화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다. <아비정전2>에서 주인공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영화 제작이 무산됨으로써 안타깝게도 아비정전에서 양조위가 어떤 역할이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동사서독>에서 눈먼 무사 역할의 양조위는 구양봉처럼 과거 사랑에 대한 상처를 안고 있다. 하지만 눈먼 무사는 친구와 정을 통한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눈이 멀기 전에 복사꽃에 다가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인물이다. 눈먼 무사처럼 구양봉 역시 복사꽃을 보러 가고 싶어 하지만 더 이상 그곳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둘은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양조위는 왕가위 영화 중 <중경삼림>에서 첫 주연으로서 실연당한 경찰 663 역할을 맡았다. 경찰 663은 비록 실연당해 방안의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이를 극복해내고 해피엔딩으로까지 나아가는 긍정적인 인물이다. 또 <해피투게더>의 보영으로서의 양조위 역시 이와 비슷하다. 아휘 역할의 장국영이 아휘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떠나가는 데에 반하여 보영은 아휘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고 보살핀다. 그리고 후에 보영과 헤어졌을 때에도 실연의 아픔을 극복해나가며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까지 왕가위 작품 속의 장국영과 양조위의 역할을 비교해보았을 때, 둘의 캐릭터는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해피투게더> 이후 왕가위의 페르소나였던 장국영의 자리를 처음으로 양조위가 대신한 작품은 <화양연화>(2000)이다. <화양연화>는 장국영의 죽음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그의 죽음 때문에 양조위가 왕가위의 새로운 페르소나가 되었다고 단정하기에는 다소 어렵다. 허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양조위가 왕가위의 영화에서 맡게 된 캐릭터의 변화이다. <화양연화>에서 차우 역할의 양조위는 처음으로 사랑에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화양연화>는 <아비정전>, <2046>(2004)과 ‘60년대 홍콩3부작’으로 이어지는 영화이다. <화양연화>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움으로 놓치고 뒤늦게 후회하던 차우는 <2046>에서 그 상처로 진정한 사랑보다는 육체적 사랑에만 빠져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마치 <아비정전>의 아비 역할인 장국영과 같다. 게다가 양조위가 왕가위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는 바로 <화양연화> 이후이다. 양조위가 <중경삼림>과 <동사서독>, <해피투게더>에서 연달아 보여주었던 사랑에 상처받았지만 긍정하는 캐릭터에서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투게더>에서 사랑하지 못하고 먼저 떠나가는 장국영의 캐릭터로 처음 옮겨온 작품이 바로 <화양연화>인데, 그렇다면 왕가위의 페르소나가 갖는 고유의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공통점을 찾아보면 첫째로,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결핍된 성격이며 둘째로,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먼저 떠난다는 것, 하여 외로운 사람이다.


개인적인 추론이기에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장국영의 죽음이 양조위가 왕가위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는 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다. 물론 양조위가 장국영의 부재로 스타덤에 올랐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장국영이 지금까지 왕가위의 페르소나로서 연기하고 있다면 왕가위와 양조위의 관계가 지금처럼 ‘페르소나’라는 말로 명확하게 표현이 될 수 있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있다. 동시에 왕가위의 페르소나가 변화해가는 과정에 대한 생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는 장국영과 양조위 중 한 명만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장국영의 죽음이 주는 안타까움 때문에 그가 왕가위의 유일한 페르소나여야 한다고 하지만, 장국영과 양조위, 두 배우는 왕가위 감독이 영화마다 그려내고 있는 결핍된 자들의 순수함을 제대로 표현해낸다. 장국영이 아직은 젊은 남자의 허무를 담아내고 있다면, 양조위는 세상을 적당히 경험하여 고독한 중년 남자의 외로움을 연기한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주인공들의 연령이 <해피투게더> 이후로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갔음을 짚어본다면, 장국영에서 양조위로의 페르소나의 변화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장국영과 양조위에게는 배우로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말’보다는 ‘눈’으로 연기한다는 것. 이러한 점 때문에 왕가위 감독에게는 장국영과 양조위가 서로 다른 배우이면서 하나의 페르소나로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양조위는 왕가위의 영화에서 형성된 캐릭터가 다른 감독들의 영화로까지 이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화양연화> 이후, 장이모 감독의 <영웅>(2002), 맥조휘, 유위강 감독의 <무간도>(2002)와 <상성>(2006), 이안 감독의 <색, 계>(2007)가 그렇다. 이 영화 안에서 양조위는 장르와 역할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혼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웅의 파검은 연인과 서로 검을 맞대는 운명이었고, 무간도에서는 9년 동안 경찰이면서 조직원의 스파이로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고, 상성에서도 과거의 일로 장인과 아내를 죽이는 암살자였으며, 색, 계에서는 사랑을 느꼈던 자도 정치적인 입장으로 인해 죽여야 했다. 대표작들 속의 양조위들은 강인하면서도 홀로 고통을 인내해야하는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는 공통점이 또 있다. ‘존 웨인’이 ‘존 포드’만의 페르소나가 아니라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페르소나일 수도 있다는 말처럼, 양조위 역시 왕가위만의 페르소나가 아닌 홍콩 영화의 ‘고독’과 ‘외로움’의 페르소나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왕가위를 만나 비로소 배우로서의 얼굴을 찾은 장국영에 대해 안타까움이 남는다. 그도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었다면, 아마 상처받은 현대인의 페르소나로서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으로 이어져서이다.

페르소나는 존 레논의 표현처럼 ‘예술적 온도’가 맞는 예술인들의 관계를 잘 드러내주는 단어 같다. 페르소나인 배우와 감독의 관계는 누가 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한곳에 섞어도 온도가 변하지 않는 커피와 같다. 내가 상대방이고 상대방이 내가 될 수 있어서 말보다는 ‘눈’으로 이끌어가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꼭 영화뿐이랴. 나를 그대로 표현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왕가위는 페르소나라고 부를 수 있는 배우가 둘이나 있으니 참 운이 좋다. 부러운 일이다.


김휴리(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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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randcouu 2015.03.12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극장이 암전되고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나는 온전한 긴장감으로 충만해지는데, 이 긴장감은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겠다는 나의 우스운 강박에서 비롯되었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동안 어떤 순간에 와 닿는 대사들을 내내 상기하거나 어딘가에 적어두지 않으면 곧 잊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 순간의 강렬함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해 이어지는 화면을 아깝게 허비해 버리기도 한다. 대사의 개별성에 집착하게 된 이러한 습관 탓에 언제부턴가 나는 아주 미시적인 감상자가 되어버렸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전체를 가늠하는 일에는 완전히 실패한 채 그 순간순간의 대사로 영화를 기억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대사를 만나면 고유한 시간이나 기다림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한두 줄에 농축된 타인의 삶을 내 것으로 온전히 편입시키고자 하는 이 욕망은, 내가 결코 입 밖으로 내어보지 못했던 말에 대한 눈물 나는 체험인 것이다.


지난 여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단 한 번 상영되었던 장 뤽 고다르의 신작 <필름 소셜리즘>은 나의 그러한 집착이 극에 달했던 영화였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미 한 차례 놓쳤던 탓에 아쉬움이 있는데다, 언제 다시 개봉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다. 파편처럼 내던져지던 인물들의 대사와 자막은 몰이해를 위한 거대한 몽타주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모든 자막을 죄다 받아 적고 싶을 만큼 좋아했던 영화였다. 영화가 끝난 직후 부정확한 기억을 되살려 메모지에 대사를 옮겨 적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겨우 구한 영어자막으로 의미를 조합하며 장면들의 기괴함을 헤아리는 일에 열중했다. “이해란 어려운 것이에요”, “사느냐 죽느냐,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확실히 be동사에는 현실이 없어요”, “뭔가를 쓰는 것을 배우기 전에 뭔가를 보는 것을 배워요”, “개인은 둘이 되길 원하고 국가는 독존을 원하죠” 등등. 이렇게 공들여 기억한 대사는 그 말이 쓰인 장면을 각별하게 보존시켜주는 최초의 매개로 남는다.


이러한 습관은 안일한 마음으로 영화 보는 것을 방지해주기도 하고, 또 영화를 여러 측면으로 기억하게 하는 수단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아직도 이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미시적인 방법으로 모든 영화를 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 있게 부릴 수 없는 언어에 대한 패배감, 깊이 있는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동경 같은 것이 이상한 집착으로 발현되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아직은, 무딘 생활을 견디는 가장 의미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내가 택한 영화의 체험이 이러한 끝도 없는 긴장의 연속이라는 게 좋다. 예고 없이 잘도 등장하는 대사나 문장의 강력함에 어쩌지도 못하고 다시 휩쓸리게 되더라도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을 돌아오는 영화들을 만나는 일, 그리고 그 영화들에 가장 아름답게 패배하는 일을 나는 바로 이곳 시네마테크에서 반복하고 있다.


글: 장미경(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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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oimyeon 2012.02.08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필름 소셜리즘>과 <카르멘이란 이름> 모두 두 차례씩 감상하며 나중엔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채 손등 위에 펜으로 메모하는 지경에 이르렀었다죠. 그 중 하나로 필름 소셜리즘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 "주름 잡힌 감상이 아니라 이상향이 우주를 잊게 하는 미소가 있어요". 어디서 텍스트로 읽는 고다르 영화 대본집같은 거 없으려나요..

두 개의 다른 엔딩


1942년, 찰리 채플린은 애초에 무성영화로 만들어진 <황금광 시대>에 자신의 내레이션과 그가 작곡한 음악을 삽입했다. 이 때 몇몇 장면들이 삭제되거나 수정되면서 재개봉 버전의 러닝타임은 오리지널보다 20여 분 짧아진 형태로 완성되었다.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영화의 엔딩이다.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1942년의 재개봉 버전의 엔딩은 다음과 같다. 떠돌이 찰리는 금광을 찾아내 백만장자가 되고, 그가 탄 배에서 사랑하는 여인 조지아와 우연히 재회한다. 둘은 손을 맞잡고 함께 갑판의 계단을 오르고 화면은 페이드 아웃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엔딩이 숨겨져 있다. 1925년의 오리지널 버전에서 두 사람은 계단을 오른 뒤, 사진 기자의 카메라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다. 마주 본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사진 기자의 투덜거림에도 아랑곳 않고 행복한 키스를 나누며 영화는 끝난다. 그로부터 17년 후, 재개봉을 위한 편집 과정에서 채플린은 이 장면을 삭제해 버린다. 대신 그는 계단을 오르는 두 사람의 뒷모습과 함께 ‘해피엔딩’이라고 읊조리는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본래의 엔딩에 비하면 재편집된 버전의 엔딩은 내러티브나 화면 구도에 있어서 조금은 어색하고 불안정해 보인다. 어째서 채플린은 이 마지막 키스 씬을 잘라낸 걸까?

찰리 이후의 채플린


그의 영화에서 희극과 비극은 늘 맞물려 있지만, <황금광 시대>에는 분명 어떤 낙관주의가 남아있다. 당시 채플린은 당대의 스타 배우들, 감독과 함께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영화사를 창립했는데, 이로써 그는 기존 스튜디오와의 착취적인 계약관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황금광 시대>는 그가 바로 이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시절에 감독과 주연을 겸하여 만든 첫 영화이다. 채플린은 종종 이 영화로 자신이 기억될 거라 말하곤 했다고 한다. ‘좋은 시절’로 기억되는 미국의 20년대, 채플린 역시 어떤 기대와 믿음, 낙관의 정서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황금과 여인, 모두를 얻는 <황금광 시대>의 이야기는 그의 영화에서 유일한 키스 씬으로 행복하게 끝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영화들에서 ‘해피엔딩’은 점차 사라진다. 마지막에 이르면, 결국 모두가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지거나(<서커스>(1928)), 시력을 되찾은 소녀의 앞에서 깨어진 꿈으로 남거나(<시티 라이트>(1931)), 애잔한 뒷모습으로 멀어져만 간다(<모던 타임즈>(1936)). 특히 떠돌이 찰리 캐릭터와 작별한 이후, 그의 영화는 더욱 어두워진다. <위대한 독재자>(1940)에서는 고통 받는 연인에게 목소리만이 간신히 가닿을 뿐이고, <살인광 시대>(1946)에서는 ‘살인이 사업의 연장’인 베르두 씨로 등장해 무심히 교수대에 오른다. 대공황, 산업화, 전쟁, 학살의 시간을 지나면서 그의 영화는 점점 세상을 향해 비판과 근심, 냉소를 내비치고 있었다. <황금광 시대>가 처음 만들어진 1925년의 채플린과 재편집된 1942년의 채플린, 이 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간극의 흔적이 이 영화의 삭제된 엔딩에 남아있는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삭제된 장면 그 자체보다, 그러한 차이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한 예술가의 ‘선택’이다. 당시 채플린은 이미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단지 그가 <황금광 시대>가 재개봉하던 1942년에도 전쟁과 관련된 수많은 대중 집회에서 연설하는 등 사회적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영화사상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물을 창조해낸 그는 어느 순간 영화가 단지 대중의 꿈이 투사되는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고서, 이 통렬한 과정을 이후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채플린의 후기 영화들은 보는 것은 작품들 하나하나가 지닌 흥미와 놀라움 뿐 아니라, 용기 있고, 열정적인 한 예술가가 자신의 시대를 예민하게 바라보는 방식과 만나는 것이며, ‘찰리’ 이후의 시기에 재편집된 버전의 <황금광 시대> 역시 미묘하게나마 그러한 과정 안에 있다.

by 장지혜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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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종종 ‘뫼비우스의 띠’에 비유되곤 한다. 꿈을 꾸는 듯 진행되는 이 영화의 구조를 생각하면 참으로 적절한 비유 같다. 그런데, 만약 뫼비우스의 띠를 가위로 자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비로웠던 미로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선분으로 바뀌어버리고 말 것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본 러닝타임은 147분이지만, 국내에서는 어떤 이유에선지 한 씬이 통째로 잘려나가 136분 버전으로 개봉하였다. 물론 삭제된 장면이 있다 할지라도,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성취해 낸 경이로움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을 입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처를 봉합할 수는 있어도 가위질로 인한 흉터는 남는다. 시작과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남은 작은 흔적. 그렇다면 이 흔적을 역으로 이용, 출발점으로 삼아서 뫼비우스의 띠를 천천히 짚어나가도 되지 않을까?



삭제된 장면은 베티(나오미 왓츠)가 오디션을 보는 장면이다. 이보다 앞서 베티가 리타(로라 해링)와 함께 연기 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베티의 연기는 오디션에서의 그것과 대사만 똑같을 뿐 완전히 다르다. 베티는 리타와의 연습에서 복수심에 들끓는 여인을 연기하지만, 오디션에서는 아버지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연기를 한다. 오디션에서 보여준 연기가 진짜라면, 리타와의 연습은 무엇이었을까? 필요하지 않은 연기를 연습한 까닭은 무엇일까?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이런 질문은 확실히 어리석은 것이다. 사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히 추측하건데, 이 영화를 수입, 배급한 회사가 이 장면을 삭제하고 심의에 넣은 것도 아마 ‘설명이 되지 않으므로 쓸데없는 장면’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 생각하면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의 ‘클럽 실렌시오(Silencio)’가 떠오른다. “밴드는 없다”고 외치는 사회자,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이)는 여가수, 그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베티와 리타. 거짓으로 위장한 쇼는 베티의 거짓 연기 혹은 거짓 연습을 상기시킨다. 이것은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중요한 질문, 즉 영화 이미지의 증명 가능성에 대한 의심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베티의 두 가지 연기 모두 결코 빼놓고 지나갈 수 없는 장면인 것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제작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처음엔 ABC TV 미니 시리즈로 기획되었지만, 제작 도중 프로젝트가 백지화되자 프랑스 영화제작사의 도움을 받아 영화로 재구성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극장에서 개봉시에 볼 수 있는 것은 창작자의 의도가 훼손된 <멀홀랜드 드라이브>이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영화가 중요한 장면이 삭제된 채로 개봉되었다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한 씬을 뭉텅 들어낸 국내 배급사의 결정은,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수수께끼 같은 성격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송은경 |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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