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로버트 알트만 특별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1.02 할리우드의 이단아가 바라 본 할리우드
  2. 2011.12.18 내쉬빌, 미국 고향냄새
  3. 2011.12.01 로버트 알트만 특별전 열린다!

지난 12월 2일 금요일 저녁 <플레이어> 상영 후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에 애정을 바치는 영화평론가 김영진 교수의 강연이 이어졌다. 그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플레이어>(1992)는 할리우드에 대한 로버트 알트만의 복수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 사람들이 이렇게 비열하게 나온 영화가 또 있을까. <선셋대로>같은 영화처럼 ‘인사이드 할리우드’ 유형에 속한 영화들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할리우드 내부 사람들을 비열하게 그린 영화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알트만은 80년대 내내 할리우드 주류 바깥으로 추방된 채, 소규모 자본의 영화만 찍고 있었고, 거의 잊혀져가던 이름이었다. 마치 지금의 데이비드 린치 같았다. 그의 영화세계는 이미 빛을 발하고 있지만, 할리우드의 입장에서 보면 다시는 프로젝트를 맡겨서는 안 될 감독으로 찍혀있는 그런 상태였다. 할리우드의 내부 시스템이 변하기 시작했던 건 60년대 말부터이다. 메이저 스튜디오의 1세대들의 시대가 가고, 60년대 말부터 할리우드가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 쯤으로 되고나서부터, 60년대 말부터 70년대 후반까지, 뉴 할리우드 시네마가 막 기승을 부릴 때, 젊은 감독들에게 완전히 권력을 내줬던 시기, 그래서 코폴라, 스콜세지, 드팔마 같은 사람들이 할리우드의 주류 감독이 되었던 아주 좋았던 시대가 80년 무렵에는 장렬히 끝난다. 이후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주도하는 블록버스터의 시대가 열리고, 할리우드의 고급인력들은 아이비리그의 MBA를 가진 사람들이 차지하게 되는데, 오늘날 한국영화도 그렇게 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데이터에 의존해서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영화 제작에 MBA 경영기법을 도입하면서 시나리오를 가지고 무작위로 모니터를 한다. 데이터로 만들어서 편집할 때도 모니터하고, <플레이어>의 마지막에도 나오지만, 그렇게 해서 영화의 엔딩도 바꾼다. 할리우드에서는 지금도 개봉하기 전에 시사회를 해서 엔딩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영화가 좋아지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여하튼 그런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게 80년대고 90년대는 이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계속 할리우드의 자본이 갈아타면서 금융자본이 완전히 주도권을 쥐게 된다. 그러면서 할리우드가 이제는 완전히 돈을 물 쓰듯 하는데, 상당 부분은 필요 없이 물 쓰듯 하는 하게 된다. <플레이어>는 그런 과정 속에서 굉장히 물화되어가는 무의식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70년대만 해도 관객들, 특히 대학생들이 굉장히 크리티컬했다. 미국영화의 해피엔딩의 시대가 가고 언허피엔딩의 시대가 와서 70년대의 대부분의 영화의 엔딩은 언해피엔딩이었다. 그런 영화들이 흥행을 했던 시대였고, 그때 알트만도 스타감독이 되었다. 알트만은 사실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다른 세대와는 차이가 있다. 이미 50년대부터 텔레비전 작업을 계속 하면서 간간히 영화를 찍었던 감독인데, 굉장히 과시적이고 야심이 많았던 사람인 것 같다. 알트만은 굉장히 인습 파괴적이고 풍자적인 반전영화 <매쉬>를 만들어서 스타감독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70년대의 알트만은 <매쉬>의 흥행으로 버텼던 셈이다. 그 영화가 기록적인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이후에도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알트만은 거의 모든 장르의 영화를 찍었는데, 이 사람이 찍으면 그 장르는 망가진다. 이를테면 <맥케이브와 밀러부인>에선 존 포드 이후로 이어져 왔던 웨스턴의 신화적 기운이 아주 속화된 채로 해체되어 버린다. 그러다가 크게 흥행적으로도 바쳐준 영화가 <내쉬빌>이다. 아주 이상적인 열망들이 있는 예술가를 보여주면서 서서히 다른 기운에 잠식 되어가는 쇼비즈니스의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다. <대부>와 더불어서 70년대 대표적인 미국영화로 인식된다. 그 이후로는 다시 잘 안 풀리다가, <플레이어>로 다시 재기하는데, 그 이후의 과정도 그렇고, 알트만의 작업은 태작과 성공작을 계속 오가면서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던 것 같다.
로버트 알트만은 스타일이 앞으로 튀어나올 때 영화가 망가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 영화가 바로 <숏컷>이다. 이 영화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걸작이지만, 그 뒤로 계속 굴곡이 있었다. 깐느영화제에 <캔사스 시티>를 출품했었는데,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미국에서는 알트만을 가리켜서 ‘유럽인이 되고 싶은 미국인’이라고 비웃고, 프랑스에서는 ‘할리우드의 레지스탕스’라고 존경해주었다. 알트만은 부침이 심한 그런 경력 속에서도 끝까지 반골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의 냉소주의는 미국 영화감독 중에 이런 사람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굉장히 차가운 온도로 끝까지 밀어붙인다.
<플레이어>는 꽤 흥행한 영화인데 알트만의 중에 가장 전통적인 플롯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스타일면에서 특기할만한 건 사운드 오버랩이다. 화면에서 카메라가 곧잘 헤집고 다니는데, 스타일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기보다 예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짧은 시간 안에 촬영을 하기 위해 시도 했던 카메라 무브먼트가 스타일에 있어서도 굉장히 잘 들어맞았다. 사운드들, 대사들이 바톤 터치하듯 진행되면서 디졸브와 오버랩이 많이 된다. <매쉬>같은 영화에서 사운드도 딥포커스가 가능하구나 싶을 정도로 정말 창의적으로 했던 것에 비하면 <플레이어>에서는 그리 과하게는 안했다. 알트만은 사운드에 뛰어난 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줌을 통해 공간을 신축성 있게 좁혔다 넓히면서 드라마를 움직여가는 가운데, 소리를 아주 민감하게 잘 조절하고 있다.
알트만에 대해서 대체로 호의적인 평을 썼으며, 지속적인 후원자였던 사람 중에 한 명이 폴린 카엘이라는 평론가이다. 지금은 미국도 마케팅이 세지면서 사실 평론이 개입할 틈이 없어지고 평론이 거의 사멸해 가고 있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비평이 힘이 있었기 때문에 폴린 카엘이 지지한다고 하면, 영화가 흥행하고 그랬었다. 그녀는 알트만에 대해 지속적으로 호의적이었다. 반면 로빈 우드 같은 평론가는 알트만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그의 저서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를 보면 초반부에 알트만 영화에 대한 비평이 있는데 ‘젠체하는 속물’ 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쓰고 있다. 미국평론가들이 속물이라는 거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드 팔마는 히치콕을 베낀다고 해서 독창성이 없다고 평생 비판을 받았고, 미국 내에서 호의적인 평을 받은 적이 없었던 데 반해, 알트만에 대해선 미국평론가들이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안토니오니 같은 유럽 영화의 영향을 받아서 예술 영화를 추구하니까. 루빈 우드가 보기에는 장르를 가지고 폼을 잡고 있으니 안 맞는다는 거라고 하면서, 혁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이비혁신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트만의 모든 영화들이 70년대의 미국영화와 사회에 만연해 있던 어떤 재앙·파국의 느낌, 한 사회가 총체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잘 재현하는 감독이라는 평가 내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알트만의 영화 중에 <숏컷>이나 <내쉬빌>을 좋아한다. 알트만은 영화감독으로서 여하튼 계속 영화를 찍었다는 것,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실패작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패작을 찍으면서도 계속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 태작과 실패작과 가끔씩 걸작을 찍으면서,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반골정신, 냉소주의, 시니컬한 태도로 팔십 평생을 일관하면서, 형식·주제·태도를 관통하는 영화들을 계속 찍었다는 점이 대단하다. 점점 이런 사람을 보기가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요즘의 상황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자본의 매커니즘이 더욱 세져서, 아예 초저예산으로 가거나 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기가 어렵다. 영화 감독은 물론 재능도 중요하지만, 뚝심·베짱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알트만은 그런 면에서 보면 해볼 거 다해본 사람이고, 그런 게 진짜 영화감독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플레이어> 베짱있는 반골 감독의 아주 흥미로운 소품이다. 영화가 그리 정교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속도감으로 밀어붙인다. 플롯의 허점이 많지만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속도감으로 밀고나가면서 결국 플롯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 할리우드 피플들에 대한 얘기, 영화사 책임자의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가에 대한 얘기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알트만의 후기 영화의 징검다리를 역할을 하는 영화이면서,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고백이다.



관객1: 마지막 작품 <프레니 홈 컴패니언>은 알트만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굉장히 따뜻한 영화이다. 원래 성향에 비해 다른 느낌이었는데,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지.
김영진: 말씀하신대로 의외로 따뜻한 알트만의 영화이다. 존 휴스턴의 유작 <죽은 자들>을 보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이 원작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죽음이 임박해서 남기는 작업이라는 어떤 느낌들이 있다. <프레니 홈 컴패니언>을 만들 때, 알트만은 계속 몸이 안 좋았었다. 영화를 보면 왠지 따뜻하게 안녕 하는 느낌이 있다.

관객2: 혹시 이런 내용을 충무로를 배경으로 만든다면 어떤 감독이 할 수 있을까.
김영진: 제가 보기엔 없을 거 같은데..(웃음) <플레이어> 보다 훨씬 부드러운데, 60년대에 김수용 감독의 <어느 여배우의 고백>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국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이야기에 정형적인 신파스토리가 덧붙여있다. 당시 한국영화의 환경에 대한 부분들이 재밌다. <플레이어>는 할리우드 입장에서는 독립영화 정도의 제작규모이고, 메이저 자본으로는 찍기 힘든 영화다. 우리나라는 완전히 양극화이다 보니 이런 조건에 있는 감독이 일단 없다.

정리: 장지혜 관객 에디터 사진: 조유성 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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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성기완이 말하는 로버트 알트만과 그의 영화 속 음악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에 애정에 바치는 사람은 많다. 그중 지난 11월 29일 저녁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이자 시인 성기완이 로버트 알트만 특별전을 찾아 관객들과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토크 시간을 가졌다. <내쉬빌> 상영 후 ‘내쉬빌, 미국 고향냄새’라는 주제로 열린 그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가수이자 시인이신 성기완 씨를 모셨다. '내쉬빌, 미국 고향냄새'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 주실 예정이다.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성기완(‘3호선 버터플라이’, 시인): 좋은 영화 보여주셔서 감사하다. 필름에 스크래쳐가 많은데 보다 보니 굉장히 환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많은 종류의 음악들이 등장해서 그 음악을 듣는 재미만으로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허남웅: 이번 강연은 영화에 대한 내용보다는, 영화에 나온 내쉬빌이라는 지역성에 대한 부분과 컨트리 음악에 대한 부분에 중점을 둬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모셨다. 영화 구조도 상당히 음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성기완: 구조가 굉장히 복잡하더라.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마치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의 인간희극 시리즈의 인물들 같았다. 다양한 인물들의 초상화를 보여준 달까. 발자크는 사람들을 하나씩 등장시키면서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측면들에 대해 아주 현실적인 구조 안에서 그려내는 반면에, 알트만 감독은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거기서부터 떨어져나와 아이러니컬하게 다루는 방식까지 동시에 쓰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브레히트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의 전형적인 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알트만이 특이했던 게 어떤 사람을 볼 때, 어떨 땐 진지하고 어떨 땐 아이러니컬하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늘 진지하면서 동시에 아이러니컬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음악을 다루는 방식도 그렇다. 모든 음악이 다 비꼬는 방식으로 활용되면서도, 모든 음악이 다 진지하며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와 겹치는 것이 시간적인 구조다. 이게 1970년대 중반 정도에 나왔는데, 70년대는 사실 의심의 시대였다. 히피족도 한 물 갔고, 사람들은 '깨어진 꿈' 같은 것을 안고 있었다. 케네디처럼 정치적인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세력이 아주 잔인하게 죽거나 분산된 후에 과연 뭐가 남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시대였다. 이런 생각은 히피에서부터 나왔지만, 그것이 하나의 태도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70년대가 아닌가 싶다. 그런 시대에 사람들이 갖는 시간관은 과거로 휘는 것 같다. 처음으로 자꾸 돌아가게 되는 신화적인 시간관이랄까. 이것을 노래로 치면 후렴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노래가 시작되는 지점을 알려주는 것이 후렴구인데, 담론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것이 신화적인 담론인 것이다. 그 당시 본 영화 중에서 <대부>가 그렇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시간을 미래로 가는 한 줄기의 수단으로 보는 게 아니라, 휘어서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지’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관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휘어서 후렴구로 돌아가는 그 대목에 노래나 음악이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종의 같은 시간대로 놓는 것으로 노래가 쓰이는 것 같다. 또 하나는, 다 각자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주로 이민 온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 그래서 각기 뿌리가 다르고 각각 자신의 시간이 다 있는 것이다. 특히 멤피스 같은 도시는 백인 노동자들, 특히 폴란드나 동유럽 ‧ 북유럽 쪽에서 많이 와서 세례를 받고 살게 된 곳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사실 남에게 관심이 없을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자기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라서 여러 시간들이 겹치게 때문에 복잡하게 되는데, 그때그때마다 하나의 타임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노래가 감당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노래가 나올 때 마다 시간이 휘어서 그 사람들이 출발한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허남웅:
<내쉬빌>의 첫 편집본이 나왔을 때 다섯 시간이 넘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쉬빌 레드>, <내쉬빌 블루> 이렇게 두 편으로 해서 개봉을 하다가 다시 2시간 40분으로 줄였다는 일화가 있다. 30명에 달하는 출연진이 나오기 때문에 그만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내쉬빌이라는 배경이 가장 중요하게 기능한다. 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성기완: 음악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기를 번역한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 남부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엘비스는 멤피스에서 태어났는데 사실 생각보다는 내쉬빌보다 멤피스에 더 유명한 가수가 많은 것 같다. 더 뿌리로 내려가면 뉴올리언스가 있다. 거기 음악을 '딥 싸우스Deep South'라고 하는데, 질척하고 더운 날씨에서 나오는 끈적거리는 음악이다. 그런 것들을 들으면서 자란 백인들의 음악이 멤피스 음악인 거 같다. 내쉬빌은 '딥 싸우스'의 끈적거리는 블루스적 자장의 끝머리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블루지한 느낌이 보다 옅게 나타난다. 이후 내쉬빌 음악은 백인 노동자들의 음악이 되고, 그런 사람들의 음악의 뿌리인 컨트리의 한 거점이 된다. 내쉬빌의 '내쉬'는 원래 독립전쟁 당시의 장군 이름인데 그래서 애국주의의 느낌이 강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컨트리와 군가의 느낌이 섞이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진지하면서 동시에 아이러니컬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 생긴 것 같다.

허남웅: 컨트리 음악 자체가 보수적인 느낌이면서 고향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컨트리 음악이 미국에서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성기완: 컨트리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은 국내에서는 '바비 빌'이란 사람들의 음악을 찾아보시면 좋다. 홍대 '스트레인지 프룻'에서도 자주 들어보실 수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들의 박자를 정리해 보면, 처음에 해밀턴이 부르는 음악은 컨트리 풍인데 사실 그 반주는 군가였던 것 같다. 그 이후에 나오는 가스펠은 진지하면서도 매우 웃기게 박수치면서 열광적으로 부른다. 컨트리 이전에 군가와 가스펠이 나오는 게 특이하다. 그 다음 중간에 컨트리 음악이 나오는데 특이하게 박자를 앞에서 친다. 두 박자짜리 군가 같은 박자의 음악이다. 그 다음에 세 박자의 음악이 나온다. 어떤 장면이든 처음에는 두 박자로 시작했다가 점점 끈적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더라. 가령 스트립쇼 장면에서도 나중에는 블루스로 변한다. 컨트리 음악의 특징은 1인칭이라는 점에 있다. 자기를 까서 보여주는 거. 컨트리는 자기가 겪은 이야길 하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겪었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에서도 모든 여자들이 다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고 쳐다본다. 그 다음에 블루스적인 게 등장한다. 맨 끝에 거지로 보이는 여자가 마이크를 받아 노래를 했을 때, 결국엔 컨트리가 아니라 블루스 풍의 가스펠로 끝나서 인상 깊었다. 이 영화는 얼핏 컨트리가 주인공인데, 그것을 감싸는 것이 군가, 가스펠, 블루스이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음악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영화에서 다 각자의 시간을 이룬다고 생각된다. 이런 음악들이 충돌하고 서로 바라보는 효과가 있더라.

허남웅:
각자의 음악을 부여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내쉬빌>의 시나리오 자체가 대략적인 이야기만 완성한 채, 각 연기자들이 좋아하는 음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연주를 직접 할 수 있도록 연습하면서 음악들에 대해 구분을 지었다고 한다.
성기완: 내쉬빌에 '홍키통크'라는 이름이 바가 있는데 '홍키'는 백인을 뜻하고 '통크'는 피아노의 상표다. 누가 오면 바에 올려서 노래도 시키고 하는 시골스러운 분위기다. 영화에 정치적인 색채도 집어넣었는데, '희망'이라던 사람도 선거자금을 모으려고 여자한테 스트립쇼도 시키지 않나. 이런 것들이 70년대 중반의 미국이라는 복잡한 시대를 드러내는 것 같다. 몰락의 시기랄까. 몰락의 전조랄까. 무언가 반추해볼 만한 시대를 대표하지 않나 싶다.
허남웅: 마지막 장면을 보면 최근에 보여지는 한국적인 상황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벌어지는 충돌도 있고 자동차 충돌도 있다. 영화 속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자동차 충돌을 넣은 게 아닌가 싶었다.

관객1: 내쉬빌도 그렇고 미국 영화에 국기가 자주 나오는데, 그게 어떤 심리로 그러는지 궁금하다.
성기완: 영화에서 기름통에 국기가 새겨진 오토바이를 타고 국경을 넘어서 멕시코에서 마약을 가져오는데, 그런 반체제적인 부분에서 국기를 사용했다. 성조기를 자주 활용하는 건, 내 생각에는 하나로 모을 게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인종도 종교도 모든 게 다양하고 가지가지이기 때문에, 뭔가 하나 포장할 게 필요한데 그게 성조기가 아닐까 싶다. 그것들의 밑바닥에 있는 게 뭘까. 미국사람들이 흑인 노예를 부렸지 않나. 그 사람들이 가졌던 죄의식과 그 죄의식 아래에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리듬인 블루스가 죄다 밑바닥에 있는 것 같다. 무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거다. 이게 신화의 핵심인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어떤 신성화된 지역이 있는 거고, 그런 게 '딥 싸우스'가 된 것 같다. <내쉬빌>은 각 지역의 음악적인 여러 모델들이 결합하는 방식들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다. 그리고 미국 남부 사람들이 간직했던 음악적 리듬들이 전 세계로 퍼지는 게 20세기 대중음악의 흐름이 아닐까 싶다.


관객2: 박자 설명이랑 음악 설명이 도움이 많이 됐다.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박자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하다.
성기완: 외국의 박자는 맥박에 맞춰져 있는데, 우리는 호흡에 기반 한다. 농악의 장단은 흑인 음악의 비트 운용 방식과 비슷한데, 커다란 비트로 엑센트를 주면서 세부적인 비트의 다발들을 묶어나가는 것이다. 묶인 다발들이 레이어를 쌓아가면서, 그것들을 다시 풀어서 엮어나가는 방식들이 있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각 지역마다의 로컬한 리듬의 다발과 흑인들에게서 나온 미국적 대중음악의 리듬을 어떻게 결합시키는지 주목할 만하다.

관객3: 블루스를 이해하면 모든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있고, 남부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유명한 밴드도 많다. 미국 내에서 지역 색채가 강하며 영향력이 큰 것 같은데 이에 대해 말씀 부탁드린다.
성기완: 컨트리의 가사는 자기 시점으로 '내가 어떻게 어렵게 살았나' 얘기하는 거다. 자기 얘기를 하는 걸 들어보는 기회, 그런 뿌리 깊은 어떤 것을 컨트리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음악적인 당당함과 쿨함, 그리고 자기 얘기들, 그리고 여전히 유럽적인 방식으로 감싸고 있는 리듬들 때문에, 백인들이 놓치기 어려운 것 같다.

정리 박영석(관객에디터) | 사진 임유정(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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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대표 최정운 www.cinematheque.seoul.kr)11 22일부터  12 4일까지 약 2주간 5년 전 80세의 나이로 타계한 세계적인 거장 로버트 알트만의 대표작을 모아 상영하는 로버트 알트만 특별전을 개최한다.
로버트 알트만이 우리 곁을 떠나 영화의 우주에서 별을 반짝인 지가 올해로 벌써 5년째이다. ‘할리우드의 반골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2006 11 20 80세의 나이로 타계해 전 세계의 영화 팬들을 슬픔에 빠뜨리기도 했다. ‘임은 갔어도 영화는 남아 있다는 말처럼 이번 특별전은 5주기를 맞은 그의 기일을 기념해 마련한 그를 기리는 자리이자 그의 작품을 통해 로버트 알트만을 다시금 조명해보고자 함이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여섯 편을 추린 목록이지만 다시 그의 영화를 생각하고, 그의 작품을 기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 같은 기획전을 열 수 있는 것처럼 로버트 알트만이 세계영화계에 미친 영향은 너르고 깊다 할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각각의 캐릭터가 나름을 개성을 갖는 주요인물이 대규모로 등장해 그들 각자의 에피소드를 교차시키는 구조를 알트만에게서 배웠다”고 고백했고 존 카메론 미첼은 <숏버스>를 만들면서 “촬영 중 세트 위에서 즉흥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을 참고했다”고 밝혔으며 2002년 베를린 영화제와 2006년 아카데미 영화제는 그런 알트만의 공로를 기려 평생공로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로버트 알트만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할리우드의 주류 시스템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면서도 미국영화의 중심에서 인디영화의 정신을 주입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초기작 <매쉬>(1970)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 군의 지휘 체계를 유린하는 외과 전문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미국이 주도한 전쟁을 조롱하며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플레이어>(1992) <패션쇼>(1995)를 통해 미국 대중문화의 선봉에서 화려함을 뽐내는 패션계와 할리우드의 허상을 통렬하게 비판했으며 <숏 컷>(1993)에서는 아홉 쌍의 부부를 등장시켜 미국 중산층의 허약한 내면을 날카롭게 폭로하기도 했다. 그런 특유의 반골기질을 증명이라도 하듯 알트만은 생전에 다섯 번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고도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하는 명예 아닌 명예를 안기도 했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미국 사회의 치부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로버트 알트만을 통해 ‘아메리칸 뉴 시네마’라는 새로운 영화 사조를 주도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에 발흥하여 권불십년으로 마감한 아메리칸 뉴 시네마였지만 이후에도 로버트 알트만의 경력의 창끝은 날카롭게 날을 벼르고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해 미국영화의 찬란한 유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데뷔작 <범죄자들>(1957)에서부터 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2006)까지 옆길로 새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고 유지해온 감독은 ‘사회파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시드니 루멧을 제외하고는 그가 유일할 것이다.
한편 이 기간 중에는 로버트 알트만의 팬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관객들과 함께 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차례의 시네토크도 준비되어 있다. 강사로는 명지대 교수이자 영화평론가인 김영진 씨와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멤버이자 시인인 성기완 씨가 각각 <플레이어> <내쉬빌> 상영 후 할리우드의 이단아였던 로버트 알트만과 그의 영화에 대해 관객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로버트 알트만 특별전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rque.seoul.kr)를 참고하면 되며, 맥스무비, 예스24 등 지정 예매처에서 인터넷 예매도 가능하다. (문의 02-741-9782)

 

★ 부대행사: 시네토크 Cinetalk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에 애정을 바치는 사람은 많다. 그 중 로버트 알트만 팬을 자처하는 영화평론가 김영진과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이자 시인 성기완이 각각 <플레이어> <내쉬빌> 상영 후 관객들과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토크 시간을 갖는다.

 

11 29() 18 <내쉬빌> 상영 후

내쉬빌, 미국 고향냄새 │ 성기완(3호선 버터플라이’, 시인)

 

12 2() 18 30 <플레이어> 상영 후

‘할리우드의 이단아가 바라 본 할리우드’ │ 김영진(영화평론가)

 

■ 감독 소개

로버트 알트만 Robert Altman (1925 ~ 2006)

로버트 알트만은 1925년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났다. 할리우드의 반골 감독으로 유명한 그는 할리우드 주류와는 거리를 두면서 다만 미국영화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매쉬>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내쉬빌>(1975) <플레이어> 등과 같은 수작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또한 집단 주인공을 등장시켜 그들 각자의 이야기를 공정하게 다루는 <숏컷>을 발표하면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영화 속 이야기 서술의 변화를 가져온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프레리 홈 컴패니언>을 유작으로 남기고 2006년 사망하였다.

 

■ 상영작 목록 (6)

내쉬빌 Nashville

1975 | 159min | 미국 | Color | 35mm | 청소년 관람불가


플레이어
The Player

1992 | 124min | 미국 | Color | 35mm | 청소년 관람불가


숏컷
Short Cuts

1993 | 187min | 미국 | Color | 35mm | 청소년 관람불가


캔자스시티
Kansas City

1996 | 116min | 미국, 프랑스 | Color | 35mm | 청소년 관람불가


고스포드 파크
Gosford Park

2001 | 137min | 미국, 영국, 독일 | Color | 35mm | 15세 관람가


프레리 홈 컴패니언
A Prairie Home Companion

2006 | 105min | 미국 | Color | 35mm | 12세 관람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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