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탐사 과정으로서의 정치영화

 

지난 12월 28일 금요일, 프란체스코 로지의 <마테이 사건>(1972) 상영 후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강연이 이어졌다. 프란체스코 로지의 영화적 스타일과 <마테이 사건>의 구조와 형식에 대한 이 날의 강연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마테이 사건>은 프란체스코 로지의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필모에서 중간쯤에 위치하는 작품이다. 로지는 61년에 <살바토레 줄리아노>, 72년에 <마테이 사건>, 73년에 <럭키 루치아노>를 만들었다. 이 영화들은 모두 특정 인물을 다루는 전기적인 작품들로 분류할 수 있다. <살바토레 줄리아노>는 시칠리 섬에서 살바토레 줄리아노의 시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의 죽음에 연루된 미스터리들을 파악해나가는 구조를 갖는다. 그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의 장면이 교차되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그러면서 마피아, 국가권력과의 관계 등에 초점이 맞춰진다. <럭키 루치아노>는 어느 마피아에 대한 영화다. <마테이 사건>까지 포함한 이 세 영화들의 공통점은 프란체스코 로지가 이태리 사회 내에서 정치인, 산업인, 범죄자 세 명의 인물들을 영화에서 전기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식 자체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바이오 픽쳐, 즉 인물의 연대기를 살펴보는 스타일과는 차별된다. 크게 두 가지 정도로 구분하자면, 첫째, 이런 인물을 다루는 이유가 그 인물에 대한 관심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삶이 전후 이태리의 국가 형성기 과정에 있어서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는가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 산업인, 범죄자 각각의 삶과 국가의 형성 과정을 섞어서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두 번째로, <마테이 사건> 같은 경우가 그런 케이스인데,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를 정확하게 밝혀내는 데 몰두하기보다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던 정치적, 경제적 맥락 안에서 이태리 사회 내의 권력 문제가 어떻게 조직화되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어떻게 이러한 인물들이 세계와 국가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 메커니즘에 천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대기적으로 인물을 다루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들, 삶의 디테일을 극화시키면서 발생하는 장르적 요소나 개인의 삶에 대한 부분은 많이 빠져 있다. 그런 점들이 이전의 영화들과의 차별점이고 오히려 이후의 미국 영화들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올리버 스톤은 <JFK>를 만들 때 <살바토레 줄리아노>와 <마테이 사건>에서 영향을 받았다.

 

 

<마테이 사건>을 보면 프란체스코 로지 감독이 영화에 계속 출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거의 서너 번 정도 등장한다. <마테이 사건>은 다큐도 아니고 극영화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애매한 구조를 갖고 있다. 감독이 그 자체로 영화의 한 부분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마테이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한다. 그런 과정에서 탐사의 과정들이 영화에 드러나 있다. 따라서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과정 중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란체스코 로지는 1922년생이고 루키노 비스콘티의 조감독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50년대 첫 번째 데뷔작을 찍었고, 실질적으론 60년대부터 영화작업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네오리얼리즘 초기와 큰 관련성은 없다고 본다. 오히려 비스콘티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무대극처럼 하나의 픽션을 구성해나가는 스타일이다. 오늘 보신 <마테이 사건>은 보시는 분들에 따라 감상이 갈릴 수 있는 것 같다. 잔뜩 정치적인 영화를 기대했는데 그런 게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늘 보신 <마테이 사건>이 그의 전모라고 말할 순 없지만 좀 더 극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도 만들었다.

마테이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다. 영화엔 마테이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제시된다. 2차 대전 당시엔 레지스탕스였는데 반공주의자였고, 해방이후엔 기독교 민주당의 멤버였다. 그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마테이가 이태리 산업계 전면에 등장하게 된 건 경제 부흥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마테이는 무솔리니 치하에 있었던 이탈리아 석유회사를 바탕으로 재건 사업을 하게 된다. 굉장히 국가주의적, 애국주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태리 북부지방 평원지대에서 석유와 가스를 발굴하면서 이태리 경제 성장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당시 미국과 영국이 독점을 갖고 있던 오일 컴퍼니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프리카와 소비에트와의 관계를 맺으면서 석유를 가져온다. 그런 면에서 국제적으로 경쟁적인 구도 안에서 마테이가 제거의 대상이 되는 상황들이 영화에서 묘사되고 있다. 미국에선 마테이가 비밀 공산당원이라는 설들이 있었고 제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마테이는 1962년 10월 27일 시칠리아를 출발해서 밀라노로 향해가는 전용 비행기가 폭파하면서 사망하게 된다. 이 영화는 마테이가 어떻게 과거의 파시스트 세력과 결합해나가면서 석유회사를 확장시켜나갔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들을 그리고 있다.

 

 

<마테이 사건>은 마테이라는 인물을 따라가고 있다. 영화 제목이 영화의 근본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원제는 <Il caso Mattei>, 즉 케이스 스터디처럼 한 인물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완성적인 느낌을 주기보다는 과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가 파편화된 시체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영화의 형식으로 파편화된 구조를 택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과정, 인터뷰 삽입 방식이나 장면을 교차해서 연결하는 구조들이 그렇다. 파편화 되어 있기 때문에 사건의 실체의 종합을 시도할 수 없는 구조에선 파편화된 것을 어떻게 결합해서 완성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갖는다. 그리고 영화 첫 장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다. 폭파 사고 현장을 취재하는 사람들, 이태리 국영방송 언론인들이 마테이의 죽음을 보도하기 위해 편집실에서 회의하는 장면 등의 10여분을 오프닝 시퀀스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 영화는 누가 마테이를 죽였는지부터 시작하지만 실질적으로 영화가 다루는 건 저널리스트, 방송, 언론이 이 인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이다. 실제로 마테이가 죽고 나서 프란체스코 로지는 언론한테 불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엔 프란체스코 로지가 인터뷰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로지가 저널리스트 인물 안에 들어가서 취재하고 있다는 현존성 그 자체가 이태리 저널리스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가 구상되고 있음을 증거한다. 특히나 여기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건 방송국에서 마테이가 했던 말들을 의미 없으니 잘라버리자고 말하는 부분이다. 고양이와 개에 관한 마테이의 발언은 극영화 상에서 마테이가 다시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부분이 영화 속 방송에서 누락되는 것이다. 방송에서 편집되는 부분이 영화에서 극화되어 표현된다. 그 충돌점은 마테이란 인물을 봤을 때도 의미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마테이는 자기가 언론에 어떻게 비춰지는지에 대해 굉장히 민감해했던 사람이다. 방송국에서 마테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추문에 대해 한 저널리스트가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니까 마테이는 직접 그 저널리스트를 불러다가 헬기에 태워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 장면은 마테이가 저널리스트와 맺고 있던 관계까지 이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비행기 폭파 잔해 더미를 자주 보여주기도 하지만 마테이란 인물 자체가 파편적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형식면에서 파편성을 연결해나가는 패턴 중 하나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나가거나 뉴스릴 화면을 병치하는 순간들이다. 예를 들어 마테이가 포 평원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하기 위해 밀라노 은행장을 설득하는 장면은 샷-리버스 샷처럼 구성되어 있다. 한편으론 마테이가 수행했던 드라마 구조와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교차편집하는 형태로 구성하고 있다. 이런 형식성이 영화에서 몇 차례 등장한다. 또 하나는 실제로 포 평원에서 천연가스가 채굴되고 이태리 전역으로 석유를 공급해나가는 라인이 완수되는 과정이 신문 표지 화면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마테이라는 한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인물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쇄언론의 표지 사진 정도로 등장할법한 이미지들이 영화에 많이 병치되어 있다.

 

 

프란체스코 로지가 직접 영화에 등장해서 슬라이드를 보다가 마테이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테이와 관련된 슬라이드를 보다가 전화를 걸어서 조사를 의뢰하는 순간이다. 이건 로지가 <마테이 사건>를 만들어갈 때 조사, 탐구에 대한 형식적 특징들을 영화로 드러내는 구조로서 볼 수 있다. 저널리스트적인 조사, 탐구 방식은 당시로서는 꽤나 혁신적이었다. 반면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미국에서는 동시대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 알란 J. 파큘라의 <대통령의 음모>(1976)는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다. 파큘라는 <대통령의 음모>를 만들 때 전체적인 형식을 탐사적인 구도로 하여 영화를 구성했다. 또한 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이르는 시기에 미국 영화 내에서 이런 저널리스트적인 시도들의 영화가 등장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를 가시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이런 영화들을 일컬어 정치적인 언더그라운드라고 표현한 바 있다. 권력이나 정치관계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널리스트적인 방식은 지하로 작동하는 것들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방식인데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음모다. <마테이 사건>에서 로지가 그런 시도를 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언론과 맺고 있던 관계들이 영화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마테이에 대한 탐사 형식 구조를 통해서도 당시 저널이나 방송이 드러내지 않았던 관계들을 드러낸다.

높은 구도에서 촬영된 장면들이 있다. 헬기에 저널리스트를 태워서 세계를 돌아다니는 장면이다. 로지가 이 영화를 만든 후에 했던 인터뷰에서 말하길, 마테이나 살바토레 줄리아노가 죽었을 때 그들의 은밀한 관계가 표면에 드러난 적은 없었다. 이러한 영화가 정치적인 영화라고 불리는 건 그런 관계들을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게 우리 세계의 모습이라는 거다. 영화엔 마테이가 국제적 관계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설명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지리적 공간 연결을 통해서 권력관계에 대한 인식론적인 이해에 도달해 가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인 관계들을 묘사해 나가면서 비가시화된 역학 관계를 표현해나가는 것이다. 그 최종 도착지가 시칠리아다.

영화가 진행되다 보면 누가 마테이를 죽였는지 첫 출발 질문들은 옅어져 가는 것 같다. 오히려 이 인물이 어떻게 언론과 관계 맺고 있는지, 어떤 국제적 관계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설명이 맞춰져 있다. 시칠리아에선 마테이가 영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테이는 시칠리아에서 포퓰리즘적인 경제적 공약들을 내세운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런 점에서 70년대 한국에서 신화적으로 묘사됐던 인물들이 상기되기도 한다. 영화가 거의 후반부에 들어서게 되면 프란체스코 로지가 두 명의 전문가와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번은 마테이가 어떤 상황에서 죽게 됐는지, 마피아와 연관되어 있는 측면들을 묻는다. 살인자가 누구라고 밝히는 것보다 왜 그것들이 숨겨져 있느냐에 대한 얘기가 환기된다. 다른 한편 뉴욕 학자의 발언은 마테이가 죽을 당시 프랑스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마테이가 프랑스 식민 하에 있었던 북아프리카와 협약을 맺으며 석유를 개발했기 때문에 프랑스와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의 최종 지점에 가면 공항에 프란체스코 로지가 다시 등장한다. 로지는 마테이가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났던 공항에서 실종된 신문 기자를 찾는 인물로 나온다. 실질적으로 이 영화는 범죄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데 실패하는 영화다. 최종적으로 살인자가 누군지 밝혀내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로지는 감독으로서 마테이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해명했다기보다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 중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탐사적인 플롯들을 가지고 있고 저널리스트로서 프란체스코 로지가 참여하고 있다는 건 이중적 측면을 갖고 있다. 마테이는 언론을 조작하고 대중들을 동원하는 데에 능숙했다. 또 다른 한편으론 로지가 필름 스트립, 인터뷰, 기자회견, TV 방송, 뉴스 등을 콜라주하는 형태로 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이 둘이 같이 연결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언론의 영향이 많이 표현되어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대사는 아니지만 마테이의 유명한 발언이 있다. “나는 이태리 경제 개발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같이 협력할 수 있다. 파시스트 혹은 우익집단이라고 하는 건 택시와 똑같다. 우리는 택시를 탈 뿐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내릴 것이다. 하지만 돈을 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마테이가 경제부흥 목적에 충실하도록 모든 부분을 동원하는 면들이 영화에서 많이 묘사된다. 그런 과정에서 이 인물이 어떻게 하나의 대중적 신화를 갖게 됐는지를 영화가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정치적 틀 안에서 보면 초기 작업인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보면 완성적인 것 같진 않고 과정적인 측면에서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코 로지는 인터뷰에서도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치적 소명들을 갖고 있다. 이태리에서의 정치적 문제 안에 우리가 참여하도록 관련되어 있고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최선의 방식은 내가 작품을 만드는 걸 통해 정치적 관점들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마테이 사건>은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 안에서 정치적 쟁점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것 같다. 동시에 이 인물을 다뤄가는 과정 안에서 영화를 구성해 나가는 것이 하나의 정치적 쟁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실의 탐구라는 최종적 도달을 해 나갈 수는 없다는 것이 <마테이 사건>을 만들어갈 때 로지의 생각이었다. 자기 스스로도 최종적인 해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공식적인 주장과 어떻게 충돌해 나가는지 의혹을 심어나가고 사람들로 하여금 논란을 만들어 나가는 그런 류의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관객들 안에서 역사적 기억이 자라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활력 있는 역사적인 도큐멘테이션 같은 것이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김아라(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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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우리> 상영 후 한창호 평론가 강연 지상중계

 

지난 12월 22일 ‘2012 베니스 인 서울’ 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던 파솔리니의 <돼지우리> 상영 후 이탈리아영화에 정통인 한창호 영화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있었다. ‘파솔리니의 영화세계’란 주제로 그의 작품 스틸들을 함께 보며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갔던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한창호(영화평론가): 파솔리니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922년생이다. 볼로냐 대학에서 원래는 문학을 전공했는데 미술사학자인 로베르토 롱기의 눈에 띄어 르네상스 미술사, 매너리즘 미술사로 논문 준비를 하고 있었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징집을 피해 어머니의 고향 프리올리로 피신을 하는데 그곳에서 인생의 큰 변화를 겪는다. 그곳에서 파솔리니는 정치적 신념에 따라 공산당에 가입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공산당에서 출당 당한다. 60년대까지도 이탈리아 뿐 아니라 공산당 내에서도 동성애자, 소수자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 그렇지만 파솔리니는 평생 맑시스트로 남았고, 이탈리아 공산당과는 일정한 긴장관계에 있었다. 파솔리니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티토가 이끄는 파르티잔 조직에 가담해 파시스트와 맞서 전투를 벌이다 사고로 죽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볼로냐로 돌아온 파졸리니는 원래 전공이었던 문학으로 돌아가 이탈리아 낭만주의 시인 파스콜리와 관련된 논문으로 졸업한다. 파시스트 장교였던 아버지와 사이가 아주 안 좋았던 파솔리니는 그 즈음 결국 어머니와 둘이 야반도주 하듯 집을 떠난다. 로마로 건너간 파솔리니는 시인, 문학 평론가로 활동하며 생활했지만 대단히 가난했다. 당시 전후 이탈리아 현대시 그룹을 이끌었던 시인 아틸리오 베르톨루치는 문학잡지에 파솔리니가 자신의 시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이 젊은 비평가를 만나보고 싶어 하게 된다. 그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그렇게 해서 파솔리니는 베르토루치 집안과 관계를 맺는다. 너무나 가난했던 파솔리니에게 아틸리오 베르톨루치는 사립학교의 교사 자리를 마련해주고, 파솔리니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소설 『폭력적인 삶』을 쓴다. 네오리얼리즘의 전통 속에 있는 소설로, 로마 근교의 하층민 철거민들, 청년들이 어떻게 해서 사회 문제에까지 눈 뜨게 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생생한 문장을 쓰기 위해 파솔리니는 당시 하층민 청년들이 쓰는 구어와 속어들을 마치 언어학자가 공부를 하듯이 채록하기도 했다. 그만큼 문장이 살아있다. 펠리니가 <카비리아의 밤>을 발표할 때, 파솔리니를 초대해 하층민들이 쓰는 로마 사투리를 감수를 받게 된다. 물론 파솔리니는 그 이전부터 이미 영화계에 들어와서 시나리오를 쓰며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61년 <아카토네>로 데뷔할 때 파솔리니는 베르톨루치를 조감독으로 썼고, 베르톨루치의 데뷔작을 만들 때 시나리오를 파솔리니가 썼다. 어찌 보면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은혜를 갚은 셈이었다.

 

파솔리니의 영화가 낯설고 어려운 것은 어떤 영화든지 그의 영화에 깔려있는 것은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이다. 그리스 비극을 굉장히 좋아해서 <오이디푸스>나 <메데아>를 각색해 영화로 만들기도 했고, 코뮤니스트이지만 항상 종교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예수를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마태복음>을 만들고, <맘마로마>도 마리아를 많이 의식한 작품이다. 그의 모든 작품에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 유럽 코뮤니스트의 이데올로기 이 세 가지가 항상 바탕이 된다. 그런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일반 관객과 소통하는 데에 어려움이 좀 있는 것 같다. 1969년에 나온 <돼지우리>는 정치적 알레고리의 영화이다. 68혁명으로 유럽의 지식인들이 많이 흥분해있을 때 파솔리니가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제기한 작품이다. 두 개의 에피소드가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16세기의 이야기와 20세기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본질적인 면에서는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즉 현대의 어느 나라에나 알레고리의 매트릭스를 적용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처음에 석판문이 보인다. 석판의 내용은 중간에 아버지 클로츠에 의해 다시 한 번 얘기된다. 그는 ‘아내와 오랫동안 숙고했는데, 만약 아들이 복종하지 않는다면 잡아먹기로 했다’면서 ‘그런데 나의 아들은 복종하는 것도, 복종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라며 말을 흐린다. 복종한다면 나의 부를 같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잡아먹겠다는 것이다. 시작과 함께 이 영화의 메인 테마, 즉 세대 간의 착취와 갈등이라는 것이 나타나있다. 영화는 독일의 본에 있는 성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에트나 화산에서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된다. 현대의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클로츠는 대대로 이어져오며 부를 독점하는 자본가이다. 그의 라이벌인 헤르디히츠는 나치 출신으로, 부당한 정세 속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한 자본가이다.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파솔리니는 단지 독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다. 당시 아들들이 마치 승리한 듯한 기분에 취해있을 때였다. 전후에도 여전히 기득권을 갖고 있던 아버지 세대에 대해 젊은 세대들이 일종의 세대교체를 이룬 것이 68혁명이었다. 그런데 클로츠와 헤르디히츠의 만남에서 보이는 것은 과거로부터 물려받거나 나치를 통해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사람들의 권력, 금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니 흥분해 있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아버지 클로츠는 히틀러의 외모를 패러디하고 있다. 그는 반복해서 브레히트와 그로츠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히틀러의 청년들처럼 복종을 해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안 되는 것에 대한 염려가 있는 것이다. 그로츠는 소위 다다 시절의 대표적인 작가로 독일과 독일인을 돼지우리의 돼지에 비유했다. 파솔리니도 그 점에서 이 영화를 착안한 듯하다. 클로츠는 부인과 얘기할 때도, 그로츠가 살았다면 분명히 우리를 돼지로 그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헤르디히츠는 이름에서부터 히틀러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소위 학살자, 나치였다. 그가 과거에 유태인 볼세비키 코뮤니스트의 껍질을 벗기는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비유법이다. 클로츠에게는 율리안이라는 아들이 있다. 그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가 돼지우리에 들어가 아날 섹스를 한다는 것이다. 헤르디히츠는 이 사실을 캐내 클로츠를 협박하고 합병에 성공한다. 합병을 축하하던 날 율리안은 돼지우리에서 죽는데, 그것이 살해된 것인지, 자살인지는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다.

 

이 영화에서 동물애호증은 중요한 테마로 제시된다. 돼지우리는 분명 이 세상을, 모조리 다 먹어치우는 아버지 세대를 은유한다. 그리고 율리안은 여기에 들어가 아날 섹스를 한다. 파솔리니가 과연 무엇을 강조하려고 하는지는 모호하다. 모호함으로 제시함으로써 모든 것을 포괄시키는 것이 파솔리니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돼지라는 비유는 굉장히 노골적이고 모욕적인 것이다. 율리안이 이 돼지우리에 가서 하는 행위는 부친 세대에 대한 모욕이고, 자기 나름의 소극적인 저항이다. 대단히 소극적인 68세대의 남성상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에는 저항에서 시작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기 쾌락이 되어가기 때문에 모호해진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어쨌든 아들이 나치 시대의 아이들처럼 복종하든지, 복종하지 않는다면 먹어버릴 텐데, 율리안의 행위는 결국 복종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잡아먹는다.

율리안의 애인으로 등장하는 이다는 17살의 학생으로 파솔리니가 비판하는 68세대의 전형이다. 파솔리니가 특히 혐오했던 것이 학생들이었다. 경찰들과 충동했을 때 학생들은 파솔리니가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경찰들을 옹호하고 연민을 가졌다. 그는 노동자들이나 하층민, 철거민들의 입장은 지지했지만 학생들에 대해선 관념적인 아마추어, 극단주의자로 보았다. 학생들에 대한 그러한 시선이 이다라는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이다를 연기한 안느 비아젬스키는 당시 고다르의 아내였고, 고다르가 정치영화를 만들 때거나 많이 나왔기 때문에 소위 68세대를 상징하는 배우로 많이 각인되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선 아이러니하게도 파솔리니가 손가락질했던 그런 학생으로 나온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사가 전혀 없고 마치 무성 영화를 찍듯이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인물이 쓰고 있는 철모나 조총으로 보아 대략 16세기 쯤 일거라 짐작하게 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동물애호증이 문제였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식인이 문제가 된다. 한 청년이 산에서 사람을 잡아 죽이고, 식인을 하고, 여자를 겁탈하기도 한다. 나중에는 동료들도 생기도 교회로 짐작되는 곳에 신고 되어 처형당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 청년이 군인을 죽인다는 점에서 국가권력 질서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여자도 죽인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비슷하다. 청년이 처음에 군인을 죽이고 남자를 죽였던 것은 부친살해에 대한 반복으로 느꼈다. 그렇지만 제도권에 반역하는 리더처럼 영웅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상하게 나중엔 살해 자체가 일상화되어버리는 불한당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버지를 왜 죽였는지 설명은 하지 않지만, 도피해서 그곳에서도 충동이 올라왔는지 또 군인을 죽이고, 나중에는 본질적인 것은 없어지고 나쁜 행위만 남게 되었다. 처형되기 직전에 청년은 네 번을 반복해서 말한다. ‘나는 아버지를 죽였고, 사람의 고기를 먹었고, 기쁨에 몸이 떨린다.’ 기쁨에 떨린다고 말하면서 청년은 울고 있다. 분명 부친 살해를 저지른 반역자, 저항한 반역자가 맞다. 그렇지만 한 개인으로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율린안과는 다르다. 율리안이 소극적이었다면 이 청년은 강력하게 저항하고서 처벌을 받는다. 두 청년이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 결과적으로는 아버지에게 잡아먹히지만 좀 다르다.

 

파솔리니의 영화를 많이 안 본 분들이라면 자유간접화법이라고 하는 것이 많이 낯설었을 것이다. 파솔리니는 자유간접화법에 대한 자기 확신이 강했고 그것에 근거해서 찍었다. 파솔리니의 영화를 보면 이상하게 잘 몰입이 안 된다. 시선을 둘 곳이 없어서 그렇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카메라의 시선(객관적 시선), 캐릭터의 시선(주관적 시선) 두 가지를 본다. 영화를 볼 때 자연스럽게 이 둘 중 하나를 따라가게 되어 있는데, 파솔리니는 그런 부분들을 자꾼 깨뜨린다. 이를테면 첫 장면에서 나비가 나타나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카메라가 휙 돌더니 청년이 그 나비를 보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 때 일어나는 약간의 혼란 같은 것이 있다. 관객은 이 두 시선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 일반적인 영화와 많이 다라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시선에 대해 파솔리니가 시적 영화라고 부르며 주장했던 것이 점점 현대영화의 특징을 설명하는 부분이 되었다. 파솔리니의 자유간접화법 이후에 생긴 현대영화의 흐름이라고 보면 되겠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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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vs. 엘레나 뽈라끼 베니스영화제 프로그래머 대담

 

지난 12월 15일, 김기덕 감독이 처음으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피에타> 상영에 이어 진행된 김기덕 감독과 엘레나 뽈라끼 베니스영화제 프로그래머와의 대담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문석 씨네21 편집장의 진행으로 이뤄진 이날 행사를 기다려왔던,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박수로 김기덕 감독을 맞았고, 두 시간 넘게 진행된 대담 내내 자리를 지키며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이 날의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문석(<씨네21> 편집장): 먼저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하신 소감이 궁금하다.

김기덕(영화감독): 영화제에서 상을 타기 위해 영화를 하느냐고 많이 묻는데, 명확하게 대답하기가 항상 어렵다. 영화가 세상에 보여지는 조건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질문에 대답할 때, 영화에 가치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영화를 하면서 마케팅의 벽으로 인해 객관적으로 영화가 보여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영화제의 타이틀이 항상 절박하게 필요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마케팅으로서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가 수상하게 되는지의 비밀은 아직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수상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기쁘다.

 

엘레나 뽈라끼(베니스영화제 프로그래머): 감독님의 영화로는 <섬>이 처음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그 후로 12년이 흘렀다. 그동안 영화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나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나.

김기덕: 가장 큰 변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계기로 표면적이고 물리적인 잔인함에서 간접적이고 심리적 잔인함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피에타>는 관객들이 많이 당황스러울 것 같다. 예전으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해서. 돌아간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관객웃음)

문석: 베니스영화제가 왜 유독 감독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시나?

 

 

김기덕: <섬>으로 처음 베니스를 갔는데, 원래는 비경쟁부문이었다가 경쟁부문으로 바뀌게 되었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반응도 놀라웠다. 한국영화의 다른 모델을 보여주어 한 감독의 출현에 대해 어떤 기대를 심어주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엘레나 뽈라끼: 베니스영화제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초청하는 가장 큰 이유는 베니스 관객들이 감독님 영화에 대해 아주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열광,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관객들의 그런 반응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단지 한국영화라는 바운더리를 넘어서서 영화 자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감독님의 영화가 이탈리아에서 왜 그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간단히 정의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 감독님의 영화가 인간관계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영화를 통해 같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기덕: 최근에 베니스영화제에서 소개된 한국의 신인 감독들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 영화에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에 대해서 궁금하다. 오늘 이 자리에는 영화를 하고자 하는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된다. 세계적인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서 이 분들에게 어떤 단서나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 것 같다.

엘레나 뽈라끼: 아직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만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유민영이라는 여성감독이 <초대>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받았다. 거장들의 활약도 두드러지지만 장르나 여러 다른 부분에서 한국영화가 창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베니스 뿐 아니라 다른 영화제 프로그래머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은데, 영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며, 영화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하는 강한 욕구가 보이는가 하는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영화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그런 진정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2012 베니스 인 서울”에서 상영되는 여러 영화들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사회나 자신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보실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상영작 중 파졸리니, 프란체스코 로지, 로셀리니 이 세 감독의 작품을 보시면 어떤 의미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확실히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관객1: <섬>을 본 이후로 계속 감독님 팬이었다. 감독님께선 이미지를 매혹적으로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지를 포착하고 조형하는 데에 있어 도움을 받거나 영감을 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김기덕: 영화의 이미지가 이미지로만 존재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미지가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저 사진의 쇼트이지 않을까. 그 장면이 갖는 드라마가 있기 때문에 영화의 이미지가 되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청계천의 이미지도 그렇고, 나에게 영화의 이미지라는 것은 이야기가 같이 만난다. 항상 거기에 중점을 두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 같다.

 

관객2: <피에타>에서 여자가 강도의 자위를 도와주는 행동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강도는 그녀가 자신의 엄마인지를 시험하는 말과 행동들을 하는데, 성경에서 모티브를 가져오신 건지 궁금하다.

김기덕: <피에타>의 큰 줄거리는 아마 ‘네가 내 아들을 죽였으니 너도 엄마가 죽는 고통을 느껴봐라’ 일 것 같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강도가 몽정을 하는 장면부터 보여준다. 강도의 잔인함 사라지면서 엄마가 그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성장을 멈춘 한 아이가 아니었을까. 몽정을 한다는 건 어머니의 부재, 세상에 대한 정보력의 약함 같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몽정을 도와주는 순간이 아마 배려 혹은 애정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리고 나서 바로 화장실에 가서 후회를 하기도 한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선, 일종의 시험, 테스트, 또는 둘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강도에게는 엄마를 믿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엄마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관객3: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김기덕: 영화는 가슴으로 찍어야 한다. 그러면 분명히 빛이 와서 스크린을 비출 때 영화의 심장 소리를 관객이 듣는다고 생각한다. 감독이나 배우, 스텝은 심장이 열려야 하는 직업이다. 가슴으로 만든 영화는 어디서 보여지든 그 심장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가 스타일적인 면에서 많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배울 때도 시나리오나 삶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테크닉적인 부분의 비중이 많은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컬리티라는 말로 둔갑해서 많은 배움의 시간을 뺐고 있다. 하고 싶은 마음과 열정이 있다면 삶을 밀도 있게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한다는 것은 시계가 되는 것 같다. 초침, 분침, 시침의 역할을 다 알아야 하듯이, 기술도 알아야하지만 삶도 알아야한다. 이 모든 것이 메시지가 되고 주제가 되고 호흡이 되는 시계의 구조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관객4: 감독님 영화에 대한 유럽 사람들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김기덕: <빈 집>으로 세계비평가협회 그랑프리를 탄 적이 있다. 그 때 상을 주시던 분이 소감으로 ‘김기덕은 영화를 통해서 뫼비우스의 띠를 설명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너무 이해가 됐다.(관객웃음) 구상과 추상이 하나가 되어 설명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놀랐다. 사실 나에겐 이미 ‘반추상’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우리는 반추상에 살고 있고 그것이 아이러니라고 설명하곤 했는데, 그것이 뫼비우스의 띠라는 말로 명쾌하게 설명되었다. 웃는데 슬프고, 기쁜데 고통스러운 것, 표정과 내면이 계속 만나지 못하는 슬픔 이것이 ‘김기덕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내 영화를 보면 불쾌하고 화나면서도 또 보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관객웃음), 그게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관객5: 감독님 영화에 나타나는 한국의 전통적인 면에 대해 좀 더 설명을 듣고 싶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 때 외국의 관객을 염두에 두시는지 궁금하다.

김기덕: <봄 여름…>이나 <비몽>에선 한국의 전통 가옥인 한옥이 소개가 된다. 그리고 요즘은 국제영화제에 가면 꼭 아리랑을 불러드린다. 이렇게 노래를 잘 못 부르는 사람이 불러도 그 감정을 굉장히 공감해준다. <봄 여름…>에 대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나는 이 영화가 우리가 사는 삶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을 더듬은 영화였다. 한국적이다, 한국적이지 않다는 것을 자꾸 비교하는 것은 스스로의 모순인 것 같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 아니다 대답하기가 힘들다. 지도의 어느 곳이든 거기에는 고통, 기쁨, 슬픔이 다 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어디에서나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

 

문석: 감독님의 영화는 글로벌 언어로 진화했다는 생각한다. 점점 조형화되고, 대사도 없어지고, 점점 시네마틱한 엑세스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피에타>를 보고서 감독님의 영화가 야성의 세계로 돌아왔다는 인상을 받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피에타>는 어떤 흐름 속에 있는 영화인가.

김기덕: 해외 영화제를 가면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지만 영어를 거의 못한다. 영화에서 대사가 아닌 것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배웠고, 어느 시점부터 실제로 대사가 많이 없어졌다. 대사를 줄이고 액션을 언어화하는 방향으로 갔다. 액션으로 전달 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무조건 대사를 뺐다. 그런 방법은 더 짙은 호소력을 갖게 되고, 거짓말이 갖는 트릭을 안 쓰게 된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는다. 하지만 설명을 필요로 하는 영화도 있다. <피에타>의 경우 영화의 지리적 공간, 청계천이라는 삶의 공간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대사를 많이 쓰게 됐다.

 

관객6: 감독님은 굉장히 탐미적이신 것 같다. 감독님에게 미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김기덕: 결국 삶이라는 것은 미를 찾는 것이고, 미는 맛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미를 추적하는 작업이 영화이다. 미는 모든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꽃도 아름답지만, 똥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삶을 산다는 것은 편견을 하나씩 버리는 과정인 것 같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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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인터벌> 상영 후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루이지 꾸치니엘로 매니징 디렉터가 ‘베니스 비엔날레 컬리지; 시네마’를 소개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비엔날레 컬리지는 신인 감독과 프로듀서의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매니징 디렉터가 소개하는 비엔날레 컬리지 프리젠테이션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오늘 이 자리는 방금 본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기보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가 올해 새롭게 시작하는 비엔날레 컬리지를 소개하는 자리다. 댄스, 미술, 시각 분야에는 이전부터 비엔날레 컬리지가 있었는데 영화 부문은 올해 신설되었다고 한다. 한국엔 정보가 뒤늦게 전달이 됐는지 올해는 한 명도 참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행사를 위하여 내한한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루이지 꾸치니엘로 매니징 디렉터가 처음 신설된 베니스 비엔날레 컬리지; 시네마에 대해 짧은 소개를 준비해 주셨다.

루이지 꾸치니엘로(베니스영화제 매니징 디렉터): 짧게 저희 사업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문화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여러 가지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비엔날레 컬리지는 젊고 재능 있는 신인들을 육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과거에 퍼포밍 아트, 즉 무용과 연극 등의 다른 분야들에서 이미 시작한 것이다. 올해부터는 영화 부문에서도 비엔날레 컬리지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관객들을 대상으로 일을 해 왔다가 이제부터는 새로운 영화감독들과도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비엔날레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면, 비엔날레는 1800년대에 시각예술분야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30년대가 되면서 연극, 음악, 영화 쪽으로도 분야를 확장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건축과 무용 부분이 더 추가되었다. 비엔날레 컬리지 시네마를 만들었을 때 저희는 영화가 예술이면서도 산업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엔날레의 지원금은 아무래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해서는 대단히 작은 편이다. 이 지원금은 대부분 스폰서들로부터 오며 또한 이탈리아 문화부와 베네토 주에서도 지원을 하고 있다. 목표는 1년에 최대 세 편까지의 프로덕션을 각 작품 당 약 15만 유로의 예산을 가지고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1회 비엔날레 컬리지 시네마에는 단기간에 굉장히 많은 지원자들과 약 400건 이상의 신청이 들어왔다.

이 프로젝트는 몇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전세계적으로 신청을 받은 후에 그 중에서 15개의 프로젝트를 선별한다. 이들은 베니스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의 지휘 아래 선택된 것이다. 이 15개의 프로젝트가 앞으로 계속 베니스에서 진행이 될 텐데, 중요한 것은 감독과 프로듀서가 함께 참가하는 것이 신청 조건이라는 것이다. 단지 하나의 훌륭한 아이디어의 형태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지 먼저 계획을 세우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1월에 처음 열리게 되는 워크샵에는 감독/프로듀서 팀들이 참가하게 된다. 이들은 튜터들, 일종의 선생님들과 함께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더 분석하고 각 요소들을 심화, 발전시키게 된다. 2월부터 열리는 두 번째 워크숍에는 세 개의 프로젝트만이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워크숍을 통해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다. 기존에 있던 감독과 프로듀서 외 다른 팀원들, 예를 들어 시나리오 작가, 촬영감독, 배우 등이 모여서 팀을 이루게 된다. 두 번째 워크숍이 끝나면 바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는 총 3개의 프로덕션을 목표로 하지만 3개가 안 될 수도 있다. 저희는 3~7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영화를 찍고 그 다음해 영화제에 이 작품들이 출품될 수 있도록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한편 15개 중 선택되지 못한 12개의 프로젝트들은 비엔날레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저희가 이 사업을 위해 선택한 스폰서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LA 독립영화제, 두바이 영화제, 토리노 영화제 등, 저희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받진 못하지만 각각 다른 곳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워크숍이 끝나고 5~6월이 되면 다음번 재능 있는 참가자들이 바로 준비할 수 있도록 제2회 비엔날레 컬리지 신청을 받기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잠재력 있는 사람이라면 전세계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내년에는 더 폭넓게 참가신청이 들어오길 바라고 있다. 다만 이것이 새로운 영화 학교는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이미 명성 있는 영화학교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영화 만들기에 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비엔날레 컬리지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이미 공부를 마친 사람으로서 자기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즉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작품을 만들려는 사람들이어야 하고, 저희는 적절한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영화를 찍도록 하자는 것이다. 끝으로 저의 꿈은 올해 김기덕 감독처럼, 베니스 영화제에서 이들 세 팀 중에 한 팀이 황금사자상을 타는 것이다.

 

김성욱: 15만 유로면 한화로 약 2억 원 정도 된다. 저예산이지만 작은 돈은 아니다. 베니스에서 워크숍이 진행되니까 베니스를 방문할 기회도 된다.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질문 하나만 하겠다. 400팀 중 15팀을 선별했는데, 미래의 지원자들을 위해 경험적인 조언을 부탁드린다. 가령 이전 지원자들의 어떠한 점이 아쉬웠다든지.

루이지 꾸니치엘로: 이런 창조적인 예술 프로젝트에 있어서 선별 기준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들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말씀드리기 위해 먼저 저희 재단이 어떤 재단인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 비엔날레는 문화재단이고 그 안에서 진행하는 사업의 일환인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정확한 명칭이 ‘영화예술국제전시회’이다. 그래서 질이 높은 예술 문화 프로젝트, 영화를 목표로 한다. 그래서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는 기준이라면 영화의 질, 퀄리티다. 질이 제일 중요하고, 독창성, 실험정신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그냥 좋은 아이디어만이어서는 안 되고 영화로 만들기 위한 구체성과 조합이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드리자면, 오늘 함께 본 <인터벌>의 감독 레오나르도 디 코스탄초는 나이가 어리진 않다. 하지만 자신만의 영화적 언어를 사용해 독창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저희 페스티발의 과제는 많은 예산을 갖고 있지 않은 영화, 마케팅이나 프로모션이 없는 영화와 관객이 실제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관객1: 워크숍은 어디서 진행이 되는 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선정이 되면 촬영 로케이션은 선택할 수 있는 건지, 꼭 베니스에서 찍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루이지 꾸니치엘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워크샵은 모두 베니스에서 진행될 것이다. 이 워크숍에 참가하게 될 사람들은 자신들의 여행비용만 내면 된다. 숙박비와 식비 등은 다 비엔날레 컬리지 측에서 준비한다. 제작 단계에서는 그 영화 이야기에 따라서 원하는 곳 어디서나 로케이션을 할 수 있다. 다만 저희가 드리는 15만 유로라는 돈의 가치는 그 영화를 찍게 되는 나라가 어디냐에 따라 다르게 매겨질 것이다.

 

관객2: 참가를 할 때 프로젝트 지원서 외에도 포트폴리오가 요구되는지?

루이지 꾸치니엘로: 물론이다. 평가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다 제안해 주시길 바란다.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이야기 등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 다 중요하다. 참고로 신청서는 웹사이트(www.labiennale.org)에 접속해서 컬리지 섹션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다.

 

김성욱: 극장 로비에 준비된 브로셔에 지원 자격이 자세히 나와 있다. 보면 이전에 만들었던 작품으로 최대 두 편을 요구하고 있다. 단편이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인가?

루이지 꾸치니엘로: 단편 영화를 하고 싶으신 분들도 당연히 후보가 될 수 있다.

 

김성욱: 그저께 만난 독립영화프로듀서는 영어를 얼마나 잘 해야 이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 했다.

루이지 꾸니치엘로: 저희는 참가자가 좋은 영어 실력을 갖추길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워크숍에 참가하게 될 분들은 전세계에서 오시는 국제적인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웃음). 하지만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 자신도 영어를 선생 수준으로 잘 하는 건 아니다. 물론 잘할수록 더 좋겠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 맺을 정도만 하면 된다. 또한 프로젝트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옥스퍼드 영어를 구사하지 않아도 충분히 선택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욱: 올해는 이미 지나갔고, 내년에 지원하면 내후년 2월께나 워크숍이 있다. 영어 공부하기에 1년 정도는 쉽진 않겠지만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것 같다. 지난번에 튜터들이 누군지 물어봤는데 답변을 정확하게 못 들었다. 세계적인 감독이라고 하니까 기대가 된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튜터들에 대해서 말씀을 안 드린 건 싫어서가 아니고.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도 있고 모르는 분들도 있어서다. 그 분들은 알베르토 바르베라 위원장이 초청했다. 페스티발을 하면서 알게 된 분들도 있고, 두바이 영화제, 토리노 필름 랩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저희와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는 분들이다. 사비나 네로티(토리노 필름 랩 책임자), 제인 윌리엄스(두바이 페스티벌), 조아나 빈센트(로스엔젤레스 인디펜던트 프로덕션) 등 여러 분들이 있다.

 

김성욱: 내년 7~10월 사이에 신청이 있는데 관심 있는 분들은 직접 신청하셔도 되고,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은 분들은 극장에 문의하면 저희가 안내해 드릴 수 있는 정보가 준비가 되어 있다. 올해는 한국에서 전혀 신청이 없었다. 꽤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든다. 내년에 꼭 한국에서 신청을 해서 최소 한 팀 이상 들어가서 15만 유로로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지원하려는 분들을 위해 한 마디 조언을 해주신다면.

루이지 꾸치니엘로: 구체적인 조언을 드리는 건 어렵다.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오직 영화의 질, 독창성,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생각을 크게 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실험을 하고 싶다면, 당신 자신을 믿는다면 비엔날레 컬리지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상업적인 목적의 프로젝트가 아니기 때문에 감독과 프로듀서가 어떤 아이디어가 있고 그에 대해 확신이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 여러분 자신에게 속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도전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시네마테크를 자주 들러라. 여기서 상영하는 대가들의 영화를 보고 그들의 미학, 시각적 언어와 자신의 생각을 비교해보면서 계속 새로운 자극을 얻으면 좋을 것이다.

 

김성욱: 극장 측에서도 내년 지원기간이 되면 트위터나 다른 매체들을 통해서 공지를 드릴까 한다. 영화학교나 독립영화 감독들에게도 이 내용들을 알리려 하겠다. 내년에 베니스 영화제에서 비엔날레 컬리지 영화들이 상영되고 그 후에도 ‘베니스 인 서울’이 주최된다면 그 제작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다. 시네마 컬리지를 통해 만들어질 영화들도 꽤 많이 기대가 된다. 더 궁금하신 정보는 문의를 부탁드리고, 좋은 기획에 대해 소개해주신 루이지 꾸치니엘로 씨에게 감사드린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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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베니스 인 서울 영화제 첫 주 주말인 지난 12 14일 저녁 6 <닫힌 페이지> 상영 후 이번 행사를 위하여 내한한 베니스 국제 영화제 매니징 디렉터인 루이지 꾸치니엘로가 강사로 나서 베니스영화제와 영화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전영화의 아카이브, 복원의 중요성에 대하여 실감할 수 있었던 강연 현장의 일부를 여기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베니스영화제와 영화 복원이라는 주제로 베니스영화제 매니징 디렉터로 있는 루이지 꾸치니엘로의 이야길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베니스영화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이번 영화제 중 한 섹션인 ’80!’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복원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2012 베니스 인 서울을 개최하면서 마련한 ‘80!’이라는 섹션은, 베니스영화제 80주년을 기념하면서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소개됐던 영화들로 거의 극장에서 상영될 수 없었던 희귀한 영화들을 새롭게 복원해서 상영하는 섹션이다.

 

루이지 꾸치니엘로(베니스 국제 영화제 매니징 디렉터): 먼저 지금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고 있는 ‘2012 베니스 인 서울행사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고전 영화와 베니스영화제의 과거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번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2012 베니스 인 서울은 최근의 영화뿐만 아니라 과거의 고전영화도 소개하는 자리다. 과거가 없이는 현재의 영화가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중요하다. 방금 본 <닫힌 페이지>라는 영화는 과거에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영화들 중에서 복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베니스영화제는 19327 6일 베니스의 리도 섬에서 세계 최초로 개최된 국제영화제다.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자료실(ASAC)는 중요한 영화들을 보존해왔고, 그때부터 베니스영화제는 새로운 영화들 외에도 과거의 작품들과 감독들을 소개하는 섹션을 마련해서 소개해왔다. 이런 섹션을 통해서 신문 기사와 비평만으로 접했던 영화들을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베니스영화제는 올해로80주년이지만 실제로는 11회가 모자란 69회째다.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초반에는 물류의 문제 때문에 부분적으로 중지되었다가 완전히 중지됐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가 1968년 페스티벌 자체에 대해 반대를 외치는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잠시 중단됐었다. 예를 들어 칸영화제는 1968 8월부터 경쟁부문 외에 비경쟁부문을 마련함으로써 계속해서 영화제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베니스영화제는 80년대까지 여전히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번에 상영하는 작품들을 선별한 기준은 오늘날 보기에 불가능한 작품들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자료실(ASAC)에서 보존하고 있는 필름들이 많은데, 이 필름들을 복원하는 작업 또한 중요했다. 어떤 필름들은 상태가 좋아서 복원이 쉬웠고, 어떤 필름들은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서 복원하는데 고생을 했다. 앞으로 이런 복원 작업은 기술적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과거를 재조명하면서 과거의 역사를 새롭게 분석하는 작업과 더불어, 베니스영화제의 임무는 영화제에서 선택된 영화들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영화를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아니 다 캄포의 <닫힌 페이지>는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탈리아의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문화적으로 보수와 진보 사이에 충돌이 굉장했던 상태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정식으로 상영되지 못하고 불법으로 상영되다가 결국엔 상영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칸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다시 알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관객과 만나는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 이렇듯 영화가 만들어 진지 40년 후인 지금의 시점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함께 본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복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오늘날에도 현실성이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성욱: 복원에 대한 것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닫힌 페이지>를 보면 종교적인 부분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번 베니스영화제에서 지아 다 캄포가 60년대에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관련해서 언급했었다. 이 영화가 그 당시의 종교적인 상황과 종교적인 변화의 과정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물론이다. 68년에 제작이 들어간 이 영화는, 62년 바티칸 공의회의 내용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이 회의는 이탈리아인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놨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종교 문제에 있어서 억압적이었던 교육 모델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상황을 잘 반영한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는 비토리오 데 시카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같은 네오리얼리즘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과 일치하는 영화,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을 배우로 기용한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누벨바그의 영향도 많이 받은 영화다. 소년이 가족의 문제로 인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그러한 경향이 드러나며 이것은 유럽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였다.

 

김성욱: 아까 언급했던 아카이브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자료실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지,
또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복원 작업과 영화제를 통한 상영작업을 진행할 것인지 궁금하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현재 아카이브에서는 과거 베니스영화제에서 소개됐던 영화 200편 정도를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개막작이었던 <돼지우리> 같은 경우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보관소에서 가지고 있던 것으로 얼마 전에 복원된 작품이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영화들을 복원하고, 이 작품들을 영화제를 통해 상영하고 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관객1: 페스티벌은 자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아까 1960년대에 페스티벌이란 공간을 반대했던 상황이 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50년대까지는 예술적인 기준이 아닌 국가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영화들을 상영했다. 그리고 50년대를 거치면서 예술 감독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세계를 돌면서 예술성이 있는 작품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작가라는 개념이 형성되는데, 더 이상 한 국가의 영화가 아니라 한 감독의 영화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혁신이 되면서 장인성이 나타나게 되는 건데 이 때문에 심사위원단을 통해 영화를 경쟁시켜 상을 주는 경쟁적인 체제에 대해서 굉장한 비판이 생긴다. 실질적이고 이론적인 이유들에 있어서 경쟁 자체에 대한 비판이 심했다. 그래서 칸영화제는 비경쟁부문을 통해, 영화들이 자유롭게 탄생해서 평등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고, 이런 변화를 통해 위기 상황을 해결했다. 하지만 베니스영화제는 영화제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된다. 영화제의 상업적인 면에 대한 비판 또한 많았다.

 

관객2: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필름이 사라지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없는지 디지털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듣고 싶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기술적으로는 디지털 혁명이 더 많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보통 전통적인 필름들이 주지 못했던 여러 가지 긍정적인 면이 디지털에 있다. 적절한 디지털 포맷으로 변환됐을 때 우리가 영화를 잘 보존된 상태로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봤을 때 디지털 혁명이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이건 예술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디지털 영화로 복원한다고 해서 배급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은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목적이 될 수 없다.

 

김성욱: 필름으로 상영되는 걸 보고 싶었던 사람들 안타까울 것이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고전들은 200여 개의 작품들이 전부 디지털로 복원돼서 상영됐다. 카를로스 사우라 영화는 베니스에서 상영했지만 서울에서 상영하지 못했다. 이 점이 아쉽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행위이다. 이번 ‘2012 베니스 인 서울을 통해 현대의 영화와 고전의 영화를 볼 수 있고 한국과 먼 다른 나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물론 낯선 풍경이라 이해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스스로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정리: 최혁규(관객 에디터) | 사진: 김윤슬(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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