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30년 전의 안개마을과 현재의 안개마을

- 영화제작자 심재명이 말하는 임권택의 '안개마을'

 

지난 20, 영화 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추천한 <안개마을> 상영 후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다. 심재명은 1984년에 허리우드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본 이후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게 삼십여 년만이라며 감회가 새로움을 술회했다. 영화 제작자로서는 처음으로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한 심재명은 제작자 지망생들을 위한 진심어린 충고를 전해주기도 하였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안개마을> 1983년 당시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더라. 30년 만에 다시 상영을 하는 게 특별하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를 추천할 때 84년도에 허리우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고 했는데.

심재명(영화 제작자): 84년에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당시에 대학교 1학년이었다. 84 3월에 월간 스크린이라는 잡지가 처음으로 창간이 되었다. 거기서 대학생 모니터 기자를 뽑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매달 15일 마감을 지키는 것뿐이었는데, 그땐 모니터기자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기뻤다. 잡지의 창간  이벤트를 허리우드 극장에서 했었다. 80년대뿐만 아니라 당대 대표적인 한국감독이었던 이두용, 하길종 등의 70년대 영화들까지 상영을 했는데, 이분들의 영화를 이때 처음 보게 되었다. 84년도에 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를 본 것은 굉장히 충격이었다. 영상문화의 충격. 그 중의 하나가 안개마을이었다.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는 84년도에 봤던 영화가 뭐였는지, 내가 본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비디오테이프가 아닌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김성욱: 그 때 당시의 느낌이 어떤 것이었고, 오늘 느낀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심재명: 많은 부분이 다르다. 당시에는 집성촌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암묵적으로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것의 매혹을 느꼈다. 이 영화는 12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고 하는데, 12일 만에 미장센과 주제에 깊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감탄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영화가 되게 설명적이다. 임권택 감독님을 당시에 알았다면 내레이션을 다 빼면 좋을 거란 생각을 말씀드렸을 것 같다. 하지만 화면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30년 만에 안성기 씨나 정윤희 씨 얼굴을 보는 게 굉장히 반가웠다. 조연출의 김상범 씨는 지금은 한국 최고의 편집감독이다. 그런 분들의 이름을 다시 이렇게 보니까 남다르다.

 

 

김성욱: 80년대의 제작자는 감독을 고르는 일에 몰두하고, 감독을 선택하면 모든 걸 감독이 다 하는 식이었다고 하더라. 80년대와 90년대 제작환경의 차이가 있었다면 무엇인지.

심재명: 80년대 제작환경이나 시스템에 대해서는 풍문으로 듣고 경험은 못해봤다. 90년대 중반에 내 또래의, 혹은 바로 윗세대인 젊은 제작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들은 창작자인 감독과는 또 다른 입장에서 영화란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창작에 존경심을 가지며, 제작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새로운 세대였다. 그들이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등의 젊은 감독들과 만나게 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에 새로운 한국영화의 세계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제작자님들이 하는 풍문 같은 얘기들을 들어보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바보들의 행진>(1975, 하길종)을 제작할 당시 하길종 감독님이 제작자 몰래 영사실에 들어가서 제작자가 잘라놓은 걸 다시 붙여 상영을 했다고 한다. 제작자가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그 이후에는 서로 통쾌한 미소를 지으며 그냥 넘어갔다고 하더라.

  

관객1: 여성 관객으로서 마지막 장면은 깨칠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부분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심재명: 개인적으로 성적욕구의 배설구이자 암묵적인 합의하에 벌어지는 이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여성의 욕망을 다룬 것을 보기 힘들기도 했고. 남성 중심적인 영화만 보다가 신선했다.

 

관객2: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심재명: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한편의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그것이 소재일수도 있고 한 장면의 이미지가 떠오를 때도 있고 제작자의 손에서든 감독의 손에서든 출발한다. 영화 제작은 굉장히 많은 회의와 의구심이 들게 하는 작업이다. 이 시대의 관객에게 효용가치가 있는 것인가가 굉장히 애매한 상태인 것이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가 수십억 원의 자본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든다. 투자사를 설득하고 주연배우를 설득하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상대를 향해서 계속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만들어내는 것이 영화작업이다. <안개마을>처럼 12일 만에 프로덕션이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건축학개론> 같은 영화는 십년이란 기간 동안 공회전을 하다가 2012년에 간신히 만들어지기도 했다. 콘텐츠를 책임지는 작가의 힘도 중요하지만 투자 배급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힘의 역학관계가 바뀌는 상황이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형도를 읽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관객3: 임권택 감독님 작품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심재명: 대중적으로 정말 재밌게 본 건 <장군의 아들>,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만다라>. 작가주의 감독이라기보다는 영화 장인의 선에 서서 새로운 영화문법이나 영화세계를 깨쳐나갔던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개마을>을 추천하게 된 데에는 이 영화를 다시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과 동시에 임권택 감독님의 다음 영화를 명필름에서 하게 될 것 같다는 점도 작용했다. 얼마 있으면 팔십이 되시는데 유일한 현역이다. 임권택 감독님의 마지막 영화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게 소망이다.

김성욱: 영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관객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한다.

심재명: 꿈꾸는 일로 먹고 사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영화를 하고자 하는 감독 지망생과 제작자 지망생에게 무엇보다 치열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제작자도 감독과 함께 궁극의 영화를 꿈꾼다. 궁극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에 의해서 출발을 하고 함께 견디는 거다. 궁극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 본질적인 영화정신이 갈수록 필요한 때이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2015년에 파주에서 만들게 될 명필름영화학교는 졸업과 동시에 장편영화 한편을 만들게 된다. 새로운 재능들이 끊임없이 영화계에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리고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든 노하우를 젊은 후배들에게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영화학교를 기획하게 되었다. 혹시 지원하실 분이 이 자리에도 계실지 모르겠으나 관심 가지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정리: 박민석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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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두려움과 매혹의 공존

-임권택의 <안개마을>

 

이문열의 소설을 각색한 <안개마을>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그린 작품으로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안기는 작품이다. 당대 절정의 미모를 자랑하던 정윤희,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존재감만으로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준 안성기의 열연으로도 기억되는 이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반드시 재평가 받아야 할 수작이다.

 

 

임권택 감독의 79번째 영화. <짝코>(1980)로 시작하여 <만다라>(1981), <길소뜸>(1985), <티켓>(1986), <씨받이>(1986)로 이어지는 임권택 감독의 1980년대 걸작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덜 보여지고 덜 말해진 작품이다. 이문열의 단편소설 『익명의 섬』을 가져와 임권택과 그의 시나리오작가 송길한은 그 이야기에 좀더 여성중심적인 시선을 가미하였다. 성적 욕망이라는 모티프를 두고 하나의 폐쇄된 공동체가 그 순도를 지키기 위해 이방인을 필요로 했다는 이야기를 또 한명의 이방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들려준다. 이 이야기가 독특하다면 그 공동체의 해소되어야 할 욕망이 여성의 것이며 그 욕망의 도구로 쓰인 것이 남성 타자의 육체라는 점에 있다. 임권택 감독은 여기에 몽환적이고 음침하며 아름답고 신비한 기운을 불어넣어 그의 작품 중에서도 눈에 띄게 강렬한, 일종의 무드의 영화를 내놓았다. 12일의 촬영으로 이토록 균질적이고 밀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지금 보아도 놀랍다.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가 짙은 안개에 파묻혀 이중으로 은폐되고 고립된 어느 산골마을에 도시의 여선생이 부임해 온다. 이 마을은 다들 친인척으로 엮인 집성촌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수옥이 처음 마주친 이는 부랑자차림의 깨철. 바보 깨철의 멍한 눈이 그녀를 향해 순간 맹렬한 빛을 띨 때 수옥은뱀 같은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곧 그녀는 깨철과 동네아낙들의묘한 관계를 감지하게 된다. 폐쇄된 공동체를 떠도는 음침한 침묵의 규약. 이 마을에서 그녀는 처음에 관찰자였다가 잠시 도덕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수사관 행사도 하지만 결국에는 공모자가 된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의 문제에 그 나름의 존재방식을 제시한 이 영화가 무척 신선하다면 그것은 그 보편적 욕망이 자리잡은 공간의 특정성 때문일 것이다. 산과 안개, , 비에 싸인, 거대한 혈연 공동체의 비밀. 그 비밀은 낱낱이 까발려진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무척 적은데도 불구하고 (원작에서 옮겨온) 다소 문학적이고 설명적인 수옥의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이 너무 친절하여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그에 반해 대사 없는 수옥의 클로즈업들은 무척 매혹적이다. 당대 절정의 미모를 자랑하던 정윤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만 임권택은 그 아름다운 얼굴에 캐릭터의 심상을 새겨넣었다. 호기심과 두려움을 숨기면서 드러내는 그 얼굴에 말은 군더더기일 뿐. 안성기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다. 이 영화로 여러 개의 주연상을 수상한 안성기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며 클로즈업도 몇 되지 않지만 그 존재감만은 압도적이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핸드핼드로 찍힌 그는 불안을 자아내는 사운드와 함께 나타나 그의 정체를 되묻게 하는 눈빛으로 깊게 각인되는 흥미로운 존재를 체현한다.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안기는, 다시 재평가되어야 할 임권택의 수작.

 

글_강소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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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정의를 지키는데 이유가 어딨어

-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

지난해 <황야의 7인>이 톰 크루즈 주연으로 다시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있었다. 존 스터지스 감독이 만든 <황야의 7인>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무엇보다 율 브리너, 스티브 맥퀸, 제임스 코번, 찰스 브론슨 등의 개성적인 배우들이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작품의 성공으로 이후 속편이 세편이나 만들어지기도 했다. 때마침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격자>가 개봉하는 즈음에 과거의 서부극과 새롭게 만날 좋은 기회다.

 

 

서부극에서 총싸움은 장르의 약속이다. 서부극의 주인공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총을 빼들고 상대와 싸워야 한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보안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가장을 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인디언들의 포위를 벗어나기 위해서, 잃어버린 조카를 찾기 위해서 등등. 이들은 결국 싸워야만 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싸움의 이유다. 제대로 된 싸움의 이유만이 이들의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존 포드의 <역마차>의 키드(존 웨인)는 처음에 등장할 때만 해도 위험한 무법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가 승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디언들과 싸우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총을 빼들 때 정의의 편에 설 수 있었다. 즉 왜 싸우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존 스터지스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해 만든  <황야의 7>은 흥미로운 영화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세 번의 총격전에서 눈여겨 볼 것은 첫 번째와 마지막 싸움인데 여기서 주인공들은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데도 싸운다. 이를테면 마을 사람 모두가 죽은 사람의 장례를 거부하고 있을 때 크리스(율 브리너)는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이 실린 마차에 용감히 올라탄다. 그리고는 생명의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총싸움을 한바탕 벌인 뒤 결국 죽은 자를 땅에 묻어준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거기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해내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이 거침없는 행동이 관객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준다.

 

마지막 싸움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악당은 의외로 이해심이 넓은 편이라서 힘들게 붙잡은 크리스 일행을 말까지 태워서 마을을 떠나게 해준다. 그러니 주인공들이 이대로 마을을 떠났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예전처럼 악당에게 세금을 바치며 살았을 테고, 주인공들은 다시 자유로운 총잡이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말머리를 돌린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액션 장면보다 이 결심의 순간이 가장 큰 짜릿함을 준다. 꼭 싸워야 할 이유도 없고(배신은 마을 사람들이 먼저 했다) 수적으로도 불리하지만(“자네들 정말 미쳤군!”), 결국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 그 이유는 마을 사람들을 향한 측은지심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총을 함부로 다룬 악당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다. 또는 마을에 숨겨 놓았다고 믿는 보물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관객의 짐작일 뿐이며 우리는 7인의 총잡이들의 속마음을 끝내 명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죽는 순간에 조차 흔들리지 않는 그들의 눈빛과 단호한 몸짓은 결국 관객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설득시키고야 만다. 이보다 명쾌하고 매력적으로 싸움의 이유를 납득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글_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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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젊음의 음악과 꿈을 찬미하라

- 알란 파커의 <페임>

 

뉴욕에 실존하는 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알란 파커 감독의 <페임>은 예비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을 그리고 있다. 1980년에 개봉해 흥행을 거둬냈고, 삽입된 음악이 크게 유행했으며, 노래를 부른 아이린 카라가 단숨에 스타가 됐다. 이후 1982년부터 1987년까지 TV 시리즈로 제작되어 사랑받기도 했다. 거기다 할리우드의 끊임없는 자기복제의 유행을 따라 <페임>은 2009년에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페임>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평범한 외모 때문에 연기에 자신이 없는 도리스(모린 티피), 겉으로는 당당한 체하지만 불우한 가정환경과 상처를 지닌 연기 전공자 랄프(베리 밀러), 클래식 음악을 지루해하는 음악 전공자 브루노(리 커레리), 무용으로 입학했지만 노래와 연기에 더 관심 있는 코코(아이린 카라). 뉴욕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맞게 흑인, 백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모여 있고, 또 개성이 강한 학생들이 모인만큼 학교 안에는 다양한 문제가 터져 나온다. <페임>은 그들이 함께, 또 따로 자신들의 인생을 개척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문제들로 힘겨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무게를 떨쳐낼 수 있는 찰나적인 순간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과 춤으로 모두가 하나 되는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1930년대에 거의 모든 관습이 세워졌고 황금기를 구가했던 할리우드 뮤지컬은 한 동안 관객들에게 잊힌 장르중의 하나다. 1980년에 등장한 <페임>은 그러나 이전의 관습적인 뮤지컬 영화들과는 좀 달랐고 성공을 거뒀다. 관습적인 뮤지컬 영화들이 유토피아적인 공간으로 이동해 노래와 춤의 향연을 보여줬다면, <페임>은 이야기와 완벽하게 합치된 음악과 춤을 선보인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공상이 아니라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또 춤도 마찬가지다. 점심시간동안 식당에서 펼쳐지는 그들만의 공연이나, 그 유명한 아이린 카라의 ‘Fame'에 맞춰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뛰쳐나와 흥겹게 춤추는 장면은, 그 연결에 있어서 단절적인 느낌이나 끊어짐 없이 매끄럽다.

여기에 한판의 음악과 춤으로 마무리하는 뮤지컬 영화의 관습을 이어받아 <페임>졸업공연의 전시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페임>의 엔딩은 그 에너지도 대단하지만 이야기의 맥락에서도 딱 맞아떨어진다. 인물들은 저학년 때는 저학년 나름대로 친구들과 경쟁하며 예술적 창의력이나 외모에 대한 걱정으로 힘들어했고, 또 고학년이 되면 불투명한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괴로워한다. 관객으로서는 졸업 후에 그들이 스타가 될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상처받고, 성장하고, 다시 좌절하더라도 음악과 꿈을 찬미하는 이들의 축제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입학을 위한 오디션에서부터 시작해 졸업공연으로 마지막 막이 내린다. 관객도 마찬가지로 저마다 가장 뜨거웠던 순간을 상기하면서 극장을 빠져나올 것이다.

 

글_배동미(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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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공간, 시네마테크

2013 친구들 영화제, 성황리에 개막!

 

1월 17일, 어느덧 여덟 번째를 맞는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그 성대한 막을 올렸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은 ‘관객들의 선택’을 통해 선정된 우디 알렌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 여느 때 보다 뜨거운 관객들의 호응으로 객석은 모두 매진되었고, 극장은 개막작과 영화제에 대한 기대들로 가득 찼다. 성황리에 열린 ‘2013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 현장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지난 1 17, 저녁 7 30분 종로 3가 낙원동에 위치하고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개막식이 열렸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앞 매표소에는 표를 구하려는 관객들로 가득 찼고, 올해의 친구들을 비롯한 영화문화계 인사들이 극장을 찾았다. 이날 행사의 사회는 2006년 첫 영화제 때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함께해준 권해효 배우가 맡았다. 사회자 권해효 배우는 첫 영화제 때 이 공간은 참 춥게 느껴졌지만, 오늘 관객으로 꽉 찬 이 극장을 보면서 8년의 시간 동안 조금씩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는 말로 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 지난 한 해, 서울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맞이해 다채롭게 진행했던 부대행사들을 소개했다. 여러 스폰서들의 다양한 재능기부와 참여로 시네마테크의 발전 기금이 마련되었고,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알리는데 보다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시네마테크 어워즈를 개최해 지난 10년 동안 시네마테크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줬던 감독과 배우, 단체들에베스트 프렌즈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후원보고가 끝난 후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의 개막 선언 인사가 이어졌다. 그는오랫동안 함께해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선정해주신 영화 하나하나가 모두 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인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뜻 깊은 시간이 아닌가 한다. 영화제 기간 동안 좋은 영화,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들의 이상한 우정

다음 순서로는 영화제 상영작의 하이라이트 영상과 함께 트레일러 상영이 이어졌다. 2012, 시네마테크 10주년을 맞이해 만들어진 김종관 감독의 트레일러에 이어 올 한 해 동안 상영될 새로운 트레일러의 연출은 윤성호 감독이 맡았다. 권해효 배우는충격적인 트레일러였다앞으로 모든 관객들이 이상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지 않을까 싶다며 농담을 던졌고, 트레일러에 출연해열연을 보여준 정우열 작가는그냥 그림 하나 그리면 된다고 해서 왔다가 현장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설명했다. 윤성호 감독은현장에 와 준 연기자들이 할 수 있는 제일 값어치 있는 일을 시켰던 것 같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제가 1년 동안 극장에 앉아 두고두고 보려고 만든 트레일러다라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윤성호 감독은 트레일러의 자막에 대한 질문에, 중간의 자막들은 <전함 포템킨>의 대사, 마지막에우리들의 이상한 우정은 시네마테크가 후원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어느 작가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을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제에 참여하는친구들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김태용 감독은 추천작인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이사쿠의 아내>를 소개하면서, “옛날 영화를 볼 때마다 격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법에 대해 계속 배워가는 것 같다. 60년대 영화를 보면 감정을 어떻게 추스르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비극적 결말을 가져왔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만나는 매혹

마지막으로 영화제 개막작인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 대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의 소개가 이어졌다. “관객들의 선택작이기도 한 이 영화와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은 모두 1930년대 대불황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이 꽤 어려운 시기이기도 해서 이 영화가 선택된 데에도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에 미국에선 영화관을 영화를 보러 가는 공간만으로 여기진 않았다고 한다. 할 일 없을 때 어떤 사람들은 잠을 자기 위해, 젊은 친구들은 부모님의 눈을 피해 연애를 하기 위해서 영화관을 찾기도 했었고, 거리가 추울 때 영화관은 사람들의 휴양소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오늘 보실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그런 영화관에 대한 매혹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현실과 환상 간의 선택이라는 어려운 질문이 담겨 있는 영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부딪히는 질문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한다. 저는 이번에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정말 어려운 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의 조건에서 일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그나마 삶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주 예외적인 일탈의 장소였고, 지금 여기에서 다른 위치와 장소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통해서 슬픔과 기쁨을 같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로 11년을 맞고, 8번째를 맞은 친구들 영화제가 이런 기쁨과 슬픔, 감정들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영화관으로서 꾸준히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개막식이 끝나고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가 상영되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함께 웃었고, 슬픔 또한 함께 공감하고 있음이 전해졌다. 극장에서 영화를 만나는 기쁨과 매혹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이 날의 상영이 모두 끝나고, 극장 근처의 공간에서 진행된후원 파티에서 관객들은 다시 삼삼오오 모여 술과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_송은경,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_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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