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역사의 새로운 시각들이 힘을 갖고 반향을 일으켰던 시기의 영화   

- 민규동 감독이 말하는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지난 2월 16일, 민규동 감독의 선택작인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 상영 후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들을 열렬히 지지하기 보다는 기본적인 애정을 갖고서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있는 민규동 감독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선택작들 중 가장 의외의 선택이라는 인상도 잠시, 시네토크가 끝날 즈음 민규동 감독이 만든 역사극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여러 편을 추천해 주셨는데 우여곡절 끝에 최종적으로는 <남부군>(1990)을 상영하게 되었다. 처음 선택하신 영화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민규동(영화감독): 2차 세계대전 말기를 배경으로 독일군의 패배를 다룬 전투 영화 <벌지 대전투>(1965),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기작인 <미행>(1998)이나 <뮤직 박스>(1989), <레미제라블>의 예전 버전의 영화 등을 추천했지만 모두 상영이 어려웠다. 해방 공간에 대해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서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보니,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즈음 <닥터 지바고>(1965)를 봤다. 두 영화 모두 사상적인 압박 속에서 개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남부군>은 당시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었고, 당시 흥행에도 성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 번쯤 언급하곤 했던 영화였다. 


김성욱: 90년대 초에 <남부군>, <우묵배미의 사랑>(1990), <그들도 우리처럼>(1990) 같은 영화들, 대학가에서는 자주제작으로 만든 영화들이 나왔다. 사회적인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고, 소비에트 붕괴나 천안문 사태 등 여러 면에서 사회 격변기였다. 감독님은 90년대 초반, 그 시절에 어떻게 살아가고 계셨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90년대 전세 값이 급하게 올라서 파동이 있었다. 어딜 가도 비싸다 보니 사람들이 자살을 많이 시도하기도 했다. 암울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제는 못 버틸 거라는, 세상이 곧 뒤집혀질 거라는, 낭만적인 혁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남부군>과 같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것이었고, 우리가 잘 몰랐고 언급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이런 분위기에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은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이었다.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전쟁이나 빨치산, 좌우대립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새로운 시각들이 언급되면서 역사에 관심이 없었거나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굉장한 카오스를 겪으며 흔들리게 된다. 그 흔들림에서 오는 에너지들이 문화에 반향을 일으켰었다. 『태백산맥』이 워낙 깊이 있고 진동이 큰 문학이었기 때문에 그에 비해 『남부군』은 상대적으로 얕고, 또한 전향을 해서 살아남은 사람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수정주의적이고 타협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도 빨치산의 인간적인 면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빨치산을 미화하는 것이라고 격하게 비난하는 시각과 더 흔들림 없는, 진짜 빨치산을 그리기에는 너무 온정적이지 않느냐는 비판 사이에 묘하게 위치하고 있었다. 



김성욱: <벌지 대전투>나 <남부군>처럼 주로 대규모로 인물이 등장하고 소셜한 관계들을 다룬 영화들을 선택하셨는데. 

민규동: 어릴 때부터 전쟁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혐오감이 많았지만, 그렇게 굉장히 큰 필드에서 벌어지는 생과 사의 문제, 국가 사이의 정치적인 역학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 이런 것이 주는 긴장과 재미를 즐겼던 것 같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작은 영화들을 만들어오긴 했지만, 역사를 관통하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소우주로 넓혀내는 개인에 얽힌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지금도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전쟁과 혁명을 다룬 그런 큰 영화들을 떠올려보다가 <남부군>까지 온 것 같다. 


김성욱: 이런 류의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어떻게 보셨나. 

민규동: 이 영화는 <피아니스트>(2002)처럼 한 인물을 끝까지 따라간다. 안성기 씨의 시점으로 존재하고 중간에 등장했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인물들이 많다. 실화에 많이 근거하다 보니 실제 공간, 실제 인물들에 맞춰져 있어 전형적이지 않는 인물 배치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실제 일지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장르적으로 균형을 맞추는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그리도 빨치산 내에서의 인물군을 잘 뽑아서 균형 있게 배치하려고 많이 노력하신 것 같다. 


김성욱: 말씀하신 것처럼 <피아니스트>와 전체적인 이미지의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 <피아니스트>를 만들면서 로만 폴란스키가 염두에 둔 하나의 이미지는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것, 완전히 폐허 더미가 된 가운데 혼자 서 있는 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남부군>에서 인상적인 이미지는 아무래도 안성기 씨가 하얀 눈밭에 혼자 남겨져 있거나 시체들이 뒹구는 가운데 혼자 서 있는 상태의 느낌들이 크게 와 닿는다. 

민규동: 이 영화가 멜로드라마적인 부분, 따뜻한 점들을 덜어내고, 좀 더 다큐멘터리처럼 인물들을 따라다녔으면 좀 더 냉정한 시선들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김성욱: 근래에 나왔던 전쟁을 다룬 영화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당시에는 이런 내용을 다루면 굉장히 문제가 많이 됐다. 대학생 때 학교에서 북한 영화를 상영한다는 날 대학에 헬기가 뜨고 최루탄이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영화를 상영하거나 본다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이나 세상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나라에서 진압을 할 정도였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이런 영화들을 편하게 볼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있다. 오히려 무관심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의미가 없어진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영화를 보려고, 혹은 만들려고 했던 힘들이 증발되고, 이제는 전쟁을 하더라도 반드시 재미가 담보되어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데 정말 좋은 세상이 오겠지?’라는 회의적인 질문을 불안하게 던지는데, 시간이 지나 그 의미는 없어지고 이미지만 남게 된 지금의 순간이 묘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김성욱: 90년대 초반에는 영화를 전복적인 예술로 봤던 것 같다. 상업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대중적 동원의 측면에서 영화를 하나의 스펙타클의 장으로도 봤던 것 같다. 자주제작의 영화들이 대학에서 상영될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가 굉장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에서 <레미제라블>(2012)을 보면서 혁명에 대한 찬가를 듣게 되는데 그 느낌이 묘했다. 이런 영화들을 지금 우리가 극장에서 보고 있는 경험적인 측면에서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규동: 어떤 박제를 바라보는 느낌이지 바리케이드에 서있는 그 절절함의 의미를 이해하는 느낌은 아닐 것 같다. 예전에 <닥터 지바고>를 보면서 주인공이 빨치산에 끌려가 의도치 않게 혁명에 종사하다가 탈출하고 죽어갈 때 당시에는 정말 그 인물과 함께 행군하는 느낌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환희 같은 것이 절절하게 다가왔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모두 다 이미지화된 것 같다. 


관객1: 정지영 감독님의 영화들에 대해 너무 감정 묘사가 직접적이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반응이 있지만, 그럼에도 항상 어떤 진정성이 느껴진다. 정말 뭔가 말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다는 느낌이다. 

민규동: 이야기의 선택에 있어서 남다른 지점이 있으신 것 같다.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이야기를 선택했을 때는 그 방향이 명백한 것 같고, 그런 감독님의 역사적, 철학적 입장을 반영하는 가장 적합한 얼굴이 안성기 씨라는 생각이 든다. 안성기 씨의 얼굴은 잘생겼고, 지식인 얼굴이기도 하고, 휴머니즘을 담고 있고, 연륜도 있고, 그런데 뭔가 성욕은 제거되어 있다. 더 자신을 학대하는데 익숙하고,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는데 서툰 지점들이 비슷하게 영화에 결기가 이어지고 있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사람을 끌어가려는 어떤 결기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정지영 감독님의 영화가 선택을 강요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모호한 입장을 취할 수 없게 하고,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이다. 감독님의 행동가로서의 어떤 확고한 지점들이 계속 있는 것 같다. 


관객2: <남부군>과 비교해서 <태백산맥>(1994)과 <하얀 전쟁>(1992)은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민규동: 『태백산맥』은 긴 서사시이고, 어떤 한 인물도 평면적이지 않게 입체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태백산맥>은 소설이 갖고 있는 진지함이나 무서울 정도로 깊이 바라보던 시선이 많이 희석되고 결국은 별로 모난 것 없이 안성기 씨가 바라보던 시선처럼 상식적인 메시지밖에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를 많이 노출했었다. <하얀 전쟁>도 비슷하게, 전쟁의 무의미함과 남겨진 트라우마에 대한 메시지 자체는 굉장히 상식적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특별한 자극을 받지는 못했다. 한국군의 모호한 입장에 대해 좀 더 문제제기하고 깊이 있게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정지영 감독님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긴 하지만 열렬히 지지하기는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 


김성욱: 이런 영화들을 선택한 데에는 차기작에 대한 생각들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

민규동: 차기작이 뭐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남녀 간의 멜로드라마를 써놓은 것이 있고, 40년대 해방공간의 느와르, 전쟁직후의 첩보멜로를 써놓고 구상 중이다. 좀 더 열어놓고 스스로도 궁금해 하고 있다.


정리: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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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작가들이 공유하는 공기가 그들 영화의 특


징을 만들어 낸다


이용철 평론가에게 듣는 그가 추천한 ‘Unseen Cinema’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처음 친구로 참여한 이용철 평론가는 ‘Unseen Cinema’ 섹션에 포함된,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쉽게 만나보기 어려웠던 영화 세 편을 추천했다. 그리고 지난 7일과 8일 양일간 그가 선택한 세 편의 영화 <마르케타 라자로바>,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마을을 위한 레퀴엠>가 연이어 상영되었고, 8일 저녁 마지막 상영작인 <마을을 위한 레퀴엠> 상영 후 이용철 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영화를 선택한 개별적 이유와 각 영화들에 특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그의 강연 일부를 옮긴다.


 

이용철(영화평론가): 이번에 유운성 평론가와 함께 Unseen cinema를 맡게 됐다. 이번에 상영하는 작품은 <마르게타 라자로바> <마을을 위한 레퀴엠>,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이렇게 총 세 편이다. 내일이 추석 연휴날인데 이런날 <마을을 위한 레퀴엠> 같은 영화를 배치한 시네마테크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웃음) 사실 개인적인 취향은 웨스턴과 느와르에 더 가깝기 때문에 이번에 뽑은 영화는 취향과 상관없는 영화다. 세 작품은 취향에 따라 선택한 게 아니라 개별적인 이유에 따라서 선택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강연의 전반부는 <마르케타 라자로바>,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후반부는 데이빗 글래드웰 영화의 특성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마르케타 라자로바>는 몇 해 전 광주국제영화제에서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선택한 영화다. 2004년 광주영화제에서 시네마스코프 시절의 명작들을 상영한 적이 있었는데, 더글라스 서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니콜라스 레이의 <파티 걸>, 프리츠 랑의 <문플릿>과 같은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꼭 시네마스코프 작품뿐만 아니라 시네마테크를 다니면서 봤던 무르나우의 <파우스트>나 프리츠 랑의 <니벨룽겐> 같은 작품들이 줬던 스크린의 위대함과 거대함을 한 번 더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작품이 <마르케타 라자로바>.

흔히 체코 영화에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감독들은 이리 멘젤, 밀로스 포먼, 얀 네멕 등일 것이다. 프란티세크 블라칠은 서구에서조차도 많이 거론된 감독이 아니었고, 90년대 이후에 조금씩 거론되고 재평가됐다. 왜 블라칠의 영화가 묻혀 있었을까? 아마도 그의 영화가 체코의 뉴웨이브 작품들과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뉴웨이브 작품은 소련이나 공산당의 부패와 같은 현실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비판을 했다. 반면에 블라칠 감독은 역사적 소재를 무게 있게 다루었다. 젊은 영화의 흐름에서 봤을 때 그의 영화는 구시대적 영화처럼 보였을 것이다. 블라칠이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억압 받는 자유의 문제다. 이런 것을 시대극에서 표현하는 방식은 종교 문제를 다루며 이데올로기의 도그마를 비판하는 형식으로 드러난다. 블라칠은 그것이 아무리 선의에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자유와 영혼을 억압한다면 비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의 가장 큰 특색은 정교하게 구성된 이미지에 있다. 다른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영화가 짧든 길든 한 장면도 허투루 만든 장면이 없다. 블라칠 영화의 이미지를 보면 그가 영화라는 미디어에 접근하는 자세를 볼 수 있다. 그의 이미지에는 이야기를 위해서 소모되는 이미지가 하나도 없다. 그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집과 도구, 그리고 자연을 비출 때 어떤 각도에서 어떤 속도로 보느냐에 따라 미적 외향을 갖춘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증명한다.

다음 추천작은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원래는 이 영화를 추천한 것은 아니었고 페이 모 감독의 1948년 작품인 <작은 마을의 봄>이라는 중국 영화를 추천했었다. 이 영화를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었던 이유는 신파라는 것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생각보다 신파라는 것에 훨씬 더 모던한 것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쉽게 폄하하는 신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봤으면 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선택한 작품이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 조너선 로젠봄이 말했듯이,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야기의 재미와 연기를 떠나서 스토리텔링하는 방식에 있다. 특히 이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은 제리 가르시아와 루이스 부뉴엘이다. 부뉴엘의 <자유의 환영>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영화 모두 고야의 그림으로 시작하고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방식도 유사하다. 물론 말하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고전영화 중에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재밌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막스 오필스의 <윤무>. 이 영화와 가장 전복적인 형태를 띈 영화가 <자유의 환영>이고, 그사이 어느 지점에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가 자리하고 있다.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와 매우 유사한 한국 영화가 있는데, 바로 손영성 감독의 <약탈자들>이다. 어쨌든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기발한 방식의 영화라는 측면에서 <사라고사의 매뉴스크립트>를 추천했다.



마지막 추천작은 데이빗 글레드웰의 1975년작 <마을을 위한 레퀴엠>이다. 영국의 정부 지원 하에 제작되던 다큐멘터리가 일정 부분 성공을 이루자 나중엔 각 산업별로 다큐멘터리 지원을 하게 된다. 데이빗 글래드웰은 이 다양한 분야 가운데 교통 산업 분야의 다큐멘터리를 담당하면서 1960년대부터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회화를 전공한 사람으로 그가 주로 맡았던 역할은 편집이다. 그가 편집을 했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린제이 핸더슨 <이프>라는 영화가 있다. 글래드웰이라는 사람이 공공의 선이나 교육을 위한 다큐멘터리에 투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적인 영화는 실험적이고 탐미적이다.

<마을을 위한 레퀴엠>에 대해 영국의 한 비평가는 이 영화가 선언이 아니라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바로 이점이 내가 이 영화를 여러분들과 함께 보고 싶었던 이유다. 보통 영화들은 자기가 고집하는 것에 대해 선언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을을 위한 레퀴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영화라는 것이 굳어진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부드러운 유기체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예를 들면 과거와 현재, 사라진 것 다가오는 것, 침묵과 소음, 탄생과 죽음, 찰나와 기억을 강요하듯이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층을 쌓고 관객이 자연스럽게 그것에 스며들도록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감독의 생각에 동의를 할 수도 비판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글래드웰의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슬로우모션이다. 그는 모든 영화에서 슬로우모션을 사용하는데 그가 슬로우모션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그가 다루는 대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가 사용하는 소재들은 항상 사라지고 있는 것들, 곧 잊혀질 것들, 곧 죽을 것들이다. 글래드웰은 그런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진 감독이다. 피사체들은 영화에서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곧 사라지고 죽을 것들이다. 이것들은 영영 보지 못하게 될 것들인데 글래드웰은 이런 피사체들에 가능한 긴 시간을 부여하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시간을 더 줌으로 인해 그들이 가진 시간을 늘려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구스 반 산트의 <앨리펀트>도 이와 유사한 측면에서 슬로우모션을 사용한다.

요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들은, 소위 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고 직접 영화를 서로 보지도 않고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젊은 감독을 만나 예전에 내가 본 영화들과 당신의 영화가 비슷하다라고 하면 그 젊은 감독은 그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카피했다, 하지 않았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숨쉬는 공기를 공유하는 것처럼 작가들이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영화들의 특징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정리: 최혁규(관객에디터) | 사진: 이유정(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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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령처럼 빨려 들어간 서울아트시네마가 안정적인 전용관 마련으로 오랫동안 함께하면 좋겠다"


단골 관객 이현미 씨를 만나다!


어쩐지 낯익었다. 극장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이미지가 쉬이 떠오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오시는 분 같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오후,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의 시네토크가 끝나고 막 떠날 채비를 하는 이현미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언제부터 시네마테크와 인연을 맺으셨는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열심히 다닌 지는 한 2007년부터다. 그 전에는 회사일 끝나고 틈틈이 보다가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리면서’ 본 것 같다. 회계 쪽 일을 하는데, 하는 일에서 예술적 감수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극장을 다니면서 자극을 많이 받으려고 한다. 처음에는 시간적 제약이 마음에 걸려 (비교적 가기 쉬운)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갔는데 필이 꽂히고 나니까 시간은 문제가 안 되더라. 영화를 본 후 기록을 하다보면 어느 해인가부터 개봉영화 보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월등히 많이 본다. 영화를 직접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 남는 게 있다. 그 뒤로 마치 유령처럼 빨려 들어가 서울아트시네마를 계속 다니게 됐다.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는 어떤 영화를 보셨는지.

개인적으로 괴기영화나 피 튀기는 영화는 안 좋아해서 지난주에 상영한 <지옥인간>은 거부했는데, 그 외의 작품들은 시간표에 나름대로 체크를 해놓았으니 다 보게 될 것 같다.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무엇인가. 

시네마테크 추천작인 <내일을 위한 길>이 좋았다.


오늘 가이 매딘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는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다. 일단 친구들의 선택작이고, 어느 감독이 추천했다고 하면 궁금해져서 다 보고 싶다. 특별히 싫어하는 장르의 영화가 아니라면 무조건 와서 다 보는 편이다. 한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나중에 그 감독의 영화를 또 보게 되었을 때 다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사전정보가 없더라도 일단 봐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더라. 원래는 영화만 보는 것도 힘드니까 시네토크는 안 듣고 집에 갔는데 시네토크를 듣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더라. 의문점이 남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해주면 해소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여유가 되면 시네토크도 들으려고 한다.


영화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말씀해 주신다면.

굉장히 독특하고,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 본 것 같다. 새로운 형식의 영화여서 살짝 졸수도 있는데 ‘이게 뭐지’ 싶어서 끝까지 보게 되었다. 아마 감독님이 추천하신 다른 작품도 찾아서 보게 될 것 같다.


이제까지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특별전이나 감독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럽연합대사관에 다니고 있다. 불어를 하는 게 수월하니까, 아무래도 프랑스 영화를 제일 많이 보게 된다. 2011년 11월에 했던 <프랑스 영화 황금기 전>이 관객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었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좋았다. 내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같은 곳에 직접 가서 찾아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영화를 모아서 왕창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특별전을 다 보고 나니까 프랑스 친구들이랑 이야기 할 때 ‘아, 그 영화’하고 딱 나와서 대화가 통하고 얘깃거리가 풍부해졌다. 그 점이 무척 좋았다. 관객들은 70년대 이후의 최근 프랑스 영화를 더 많이 보나보다. 그 특별전에서는 3, 40년대 프랑스 영화를 많이 틀어서인지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특별전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프로그램 한 번 할 때 필름을 외국에서 수급해 와서 2주 내지 3주 안에 다시 돌려보내야 하니까, 그 2, 3주 동안 내가 이곳에 있어야 이 영화들을 다 볼 수 있지 않나. 가끔 시네마테크가 있는 파리나 브뤼셀에 가서 보면, 같은 유럽이고 가까워서인지 필름 수급이 수월한 것 같다. 프로그램 북을 보면 어떤 감독전, 어떤 특별전을 할 때 일 년 이런 식으로 긴 시간동안 하더라. 이 사람 작품은 매주 월요일 상영 또는 첫째 주 무슨 요일, 이렇게 프로그래밍해서 그 감독 작품을 보고 싶으면 한 번 놓치더라도 이후에 시간을 내서 볼 수 있도록 한다. 유럽 시네마테크에 가서도 모르는 감독이 태반인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았던 작품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른 관객들의 마음과 같이, 전용관이 생겨서 안정적으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주 오랫동안 이 곳을 다니고 싶다. 농담 삼아 나이 들면 여기에 와서 수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드나들며 젊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전용관이 빨리 생겨서 그 곳에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필립 느와레가 나왔던, 70년대 영화인가, 예전에 사간동 프랑스 문화원 시절에 보았던 영화인 <녹슨 장총>(한국 개봉 제목 <추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인터뷰글/ 지유진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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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이제는 잘 아는 사람, 살면서 마주쳤던 사람들 같다”
- 윤성호 감독이 말하는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

 

지난 2월 3일,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 상영 후 이 영화를 선택한 윤성호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열렸다. 케이블TV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본 뒤 갑작스레 선택작을 바꾸게 되었다고 밝힌 윤성호 감독은 영화에 대한 세세한 감상을 들려주었다. 그 현장을 전한다.

 

 

윤성호(영화감독): <우묵배미의 사랑>을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제가 많이 좋아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여러 번 본 건 아니다. 총 세 번 봤는데 한 번은 96년 대학생 시절 공강시간에 학교 도서관에서, 또 한 번은 케이블 방송에서, 마지막은 오늘 극장에서 본 거다.

김숙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이 영화는 90년에 나온 영화인데, 90년이라는 해는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장이 펼쳐지고 새로운 감독들이 드러나서 신호탄을 강하게 쏘아 올리던 해인 것 같다. 80년대하고는 약간 다르다.
윤성호: 저는 이번에 보면서 조금 감상이 달랐다. 오히려 80년대 영화 같았다. 장선우 감독님은 90년대부터 화제에 오른 감독인데, 이 영화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좋아하실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만드시는 동안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을 텐데 감독의 자의식이나 선택이 얼마나 반영됐을지 궁금해졌다. 이 영화의 원작 「우묵배미의 사랑」은 박영환 작가의 『왕룽일가』라는 6편의 연작소설 중 하나의 중편소설이다. 8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근대와 현대가 묘하게 혼재되어 있다. 원작 소설이 80년대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먼저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이게 브랜드가 있다 보니까 배일도의 친구 역할로 최주봉 씨가 쿠웨이트 박으로 나오는데, TV에서 히트한 캐릭터를 하나 넣어달라고 부탁받은 느낌이 약간 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의 화해도 이상하게 비중이 많이 할애되어 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과연 장선우 감독의 모든 선택이 반영이 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모든 걸 장악했다기보단 제작자나 투자자의 요구와 적절하게 수렴을 하면서 노력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김숙현: 장선우 감독이 그 이전 세대 감독들의 자장 아래 있으면서 본인의 스타일을 찾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들, <너에게 나를 보낸다>, <경마장 가는 길>은 이 영화와 굉장히 다르다. 오늘 보면서 여자 캐릭터들이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일도의 아내로 나오는 새댁 역 유혜리 씨의 에피소드가 그렇게 비중있게 나오지 않아도 될 텐데 12살 때 과거도 나오고, 시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도 길고 섬세하다. 90년대는 민주화 이후 이런저런 창작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 인재들이 영화로 모여들고 대학가에서는 페미니즘도 폭발하는 시기였다. 남녀묘사는 80년대 여성을 그리던 식과는 좀 다른 것 같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 다르다.
윤성호: 그땐 저도 여성학 수업을 많이 듣던 시절이었고, 영화가 웃기고 묘하긴 했는데 불편했다. 배일도가 미싱 공장에 첫 출근하던 날, 사장이 민공례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던지고 배일도도 덩달아 더한 농담을 던진다. 그런데 민공례는 좋아 죽으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줌마들이 굉장히 걸쭉하게 리액션을 던진다. 이게 너무 낯설었다. 그런데 보다 보니까 오히려 저게 더 현대적인 것 같다. 왜냐면 가난하고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제한받은 여자가 자기 스토리를 만들어하고 싶어 하는 거니까. 구질구질하더라도 자신을 세팅한다는 게 이제야 오는 것 같다. 작년 한해 한국영화들은 나름 흥해도 되고 특별히 흠 잡을 게 없는 것 같아 부러웠다. 그러고 있다가 케이블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은 이런 영화 한 편을 대중영화로 만들 수 없구나, 하면서 뭔가 각성이 되고 기운을 수여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까 저때도 나름의 영세한 자본이나 마케팅 홍보가 작용을 했고 저때의 감독님들도 외롭게 자기 것을 지켰겠구나, 해서 지금 한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김숙현: 영화 보는데 박중훈 씨가 밥 먹는 씬이 인상 깊었다.
윤성호: 밥 먹는 장면에 테이크를 다섯 번만 갔다고 생각해보면 장선우 감독님이 박중훈 씨 괴롭히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웃음). 제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은 배일도와 민공혜가 기차에서 가위바위보 하면서 술 마시는 장면이다. 묘하게 귀여우면서 어설프다. 그런데 그 장면은 사실 원작에서 쉽게 지나간다. 배창호 감독님, 장선우 감독님, 이명세 감독님 이렇게 세 분을 보면, 각각 비슷한 영화인 것 같으면서도 스타일의 차이가 느껴진다. 배창호 감독님의 <꼬방동네 사람들>이 훨씬 위험한 설정이 많은데 절대 망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명세 감독님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예쁜 문방구를 만드시는 것 같고, 장선우 감독님은 망측한 걸 보여주길 좋아하시는 것 같다. 민공례와 배일도가 비닐하우스에서 밀회하는 장면도, 거기서 굳이 민공례의 팬티를 보여주시고 호떡이 팬티까지 젖어있다고 하면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사람의 어떤 부분을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관객1: 감독이 영화 속 인물을 냉정하게 비판하는 것 같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장선우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게 보이는지 궁금하다.
윤성호: 솔직히 말해서 비주류에 대한 따뜻한 감성은 한국영화가 다 갖고 있는 것 같다. 장선우 감독만의 시선은 아닌 것 같고, 시선이나 설정 말고 캐릭터의 터치를 봐야 하는 것 같은데 장선우 감독님은 즐거워하시는 것 같다. ‘저 사람들 저렇게 굴러가는 거지, 재밌지 않냐?’ 하시면서 자기가 그린 인물들을 귀여워하시는 것 같다.

 

관객2: 한국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한 지금 이 시기에도 이 영화 같은 걸 못 만들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윤성호: 못 만든다는 게 아니라 대중 상업영화로는 못 만들 것 같다는 얘기다. 옆에 있을 것 같은 궁상맞은 캐릭터를 다루고 해결되지 않는 서사를 다루는 영화들은 기획 단계에서 폐기될 것 같다. 일단 제목부터가 ‘우묵배미의 사랑’이 안 될 것 같다(웃음). 이건 한국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데이터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잘 모르고 배팅했던 것들은 시행착오 같지만 그게 쌓여서 스펙트럼을 낳았다. 이젠 투자자들이 연출자들의 ‘썰’에 속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산업 문제는 문제고, 괜히 엄살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이 영화도 찍으면서 고민이 많았을 테고, 촬영조건도 훨씬 열악했을 것 같다. 어느 시대건 자본과의 줄다리기는 당연히 있었겠구나, 그럼 나는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그런 고민을 한다.

 

관객3: 영화 속 민공례라는 캐릭터는 순수한 것 같다가도 결국엔 엄청난 선택을 한다. 공례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윤성호: 이 영화를 고른 가장 큰 이유가 민공례 캐릭터 때문이다. 이제는 잘 아는 사람, 살면서 마주쳤던 사람들 같다. 그리고 순수하다고만 요약할 수 없는 ‘밀당’의 고수다(웃음). 자기를 발현할 만한 도구가 너무 없어서 아무것도 못 잡을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자기 스토리 하나 만들어 보려고, 나도 뭐 하나 잡아보려고, 내 인생에서 선택 하나 있어본 척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정리: 송은경(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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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집시들은 음악으로 숨을 쉰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 가수 하림이 말하는 토니 갓리프의 '라쵸 드롬' 

 

지난 2월 2일, 영화 <라쵸 드롬>의 상영이 끝나고 ‘누에보 플라멩코 컴퍼니’의 열정적인 플라멩코 특별 공연이 있었다. 스크린 안에서 울려 퍼지던 집시 음악을 현실로 옮겨온 무대는 관객들로 하여금 넋을 놓게 만들었다. 뒤이어 가수 하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하림은 관객들을 시종일관 웃게 만들다가, 마지막에는 ‘연어의 노래’를 부르며 감동을 선사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전한다.

 

  

허남웅(영화칼럼니스트):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처음 참석하시게 된 소감은.
하림(가수): 원래 처음 친구들 영화제 있을 때부터 ‘친구들’로 있었다. 나로 하여금 영화를 고르게 해주신 건 대단한 영광이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필름으로 가져다 보여주셔서 정말 행복했다. 필름으로는 처음 본다.

 

허남웅: <라쵸 드롬>을 선택하신 이유는.
하림: 학교에서 강의할 때 교재로 쓰고 있다. (웃음) 여러분들께 나에 대한 오해를 풀어드리고 싶기도 했다. 왜 앨범을 안내고 저렇게 10년 넘게 돌아다니고 있는지. 이 영화를 보고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나도 10년 넘도록 여행을 하면서 무언가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는 것이니까 내 이야기인 것 같아서 골랐다.

 

허남웅: <라쵸 드롬>은 ‘좋은 길’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는데, 이 영화는 집시들이 이동하는 곳의 음악을 흡수하여 들려주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림 씨도 여행을 많이 다니시고, 그 곳의 음악을 배우고 악기를 익히면서 자신의 음악을 해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와 그 곳에서 배운 악기 또는 음악이 무엇인지.
하림: 최근에는 아프리카 쪽을 많이 갔다. 거기엔 악기가 워낙 없으니까 음악을 딱히 배우지는 않았다. 최근에 음악 쪽으로 많이 느낀 곳은 아랍문화권이다. 이집트 쪽 음악들에 흥미가 있다. 서양 음악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이집트 쪽의 음계나 리듬이 우리 핏속에 있는 ‘그것’을 건드려준다. 영화 중간에 할머니가 담배를 물고 왔다 갔다 하시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왜냐하면 우리는 노래 중간에 박수를 치는 박자에서 약간 촌스럽다고 말하는 포인트가 있다. (직접 노래하며 설명) 그게 촌스러운 게 아니라, 동양 문화권에서는 강세가 앞에 있어서 그렇다. 본능적으로 앞부분에 치는 거다. 그런 것들을 볼 때, 아랍권이 서양과 동양이 나뉘는 경계선 같은 곳인데, 나는 그 곳의 음악을 들으면서 많이 느꼈다.

 

 

허남웅: 개인적으로 나이 드신 분이 춤을 추고 나서, 아기를 받아 젖을 먹이는 장면을 재미있게 보았다. 음악이 특별한 게 아니라 생활과 밀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림 씨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을 소개해 달라.
하림: 프랑스에서 길을 가르쳐주는 장면에서, 처음에 말을 씻기고 재주넘기 하다가 쫓겨나지 않나. 중간에 친구가 벤츠를 몰고 찾아온다. 정착 집시가 있고 유랑 집시가 있다. 부자인 정착 집시가 기타 연주를 하며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철조망에 매여 있는 꽃을 보고 따라간다. 꽃으로 길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남웅: 음악이 생활 속의 낭만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하림: 집시들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음악을 하면서 위로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잘하기도 했겠지만. 그래서 삶이 음악이 되는 것이고.

 

허남웅: 플라멩코가 집시의 음악으로 분류되는 것인가.
하림: 집시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음악이다. 유럽에 여러 민족들의 본연의 음악이 있다. 그 중에 집시의 영향을 받은 유럽음악들이 곳곳에 있다. 그 중에 하나이다. 스페인에도 여러 종류의 음악들이 있는데, 그 중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들이 음악을 굉장히 잘했던 것이다. 스페인의 음악이기도 하지만 뿌리는 집시족에서 흘러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허남웅: 최근에 아랍 쪽을 여행하셨다고 했는데, 아랍 쪽에도 유목민들이 많지 않나. 유럽 집시들의 음악에 특징이 있는가.
하림: 집시 음악은 북인도 라자스탄, 즉 동양에서 출발했다. 그 쪽의 동양음악들을 보면, 아까 플라멩코도 그렇고, 음절이 딱딱 끊어지는 게 아니라 한 음절에서 여러 음이 나온다. (직접 ‘산토끼송’으로 시범) 이것을 전문용어로 멜리스마라고 한다. 우리나라 국악에도 이러한 전통이 있지만, 서양음악에는 멜리스마가 없다. 그리고 강세가 앞박자에 있다. 또 도레미로 음계가 구분이 안 간다. 피아노로 표현할 수 없는 음계들이 특징이다. (정리하자면) 꺾는 창법, 앞에 있는 악센트, 음계가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아니다. 박자도 세다 보면, 따라갈 수가 없다. 본능적으로 굉장히 어렵다. 이것이 집시음악을 비롯한 동양 음악의 특징이다. 토니 갓리프의 영화에서는 이런 것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루마니아에서도 서양악기들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복잡한 음악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관객1: 영화 중반에 기도상 같은 것이 나오는데, 무슨 행사인지.
하림: 검은 얼굴의 성모마리아 주간이라고 해서, 프랑스에 있는 카톨릭 명절이다. 종교들이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그 장면에 나오는 사람들은 프랑스에 있는 집시들이었다. 그들이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연주를 하고 지하 동굴에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지 않을까 추측을 할 뿐이다.

 

관객2: 영화를 보면 항상 남자들은 악기를 치고, 여자들은 춤을 춘다. 그것이 집시들의 룰인지. 여자들은 즉흥적으로 춤을 춘 것인지. 또 집시들은 항상 흥에 겨워서 숨을 쉬는 것처럼 음악을 하는지.
하림: 남자들이 춤을 추는 것보단 여자들이 춤을 추는 것이 더 멋있다. (웃음) 물론 남자들도 영화 속에서 춤을 춘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음악으로써 숨을 쉰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허남웅: 마지막 장면에서 벽으로 막힌 창문 앞에서 여성이 플라멩코 노래를 하는데, 음악에 담겨있는 가사 자체가 자신들의 처한 상황을 들어달라고 호소를 하는 것 같다.
하림: 영화의 결말에서는 집시들의 슬픈 혹은 피곤한 점을 부각시키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프랑코부터 히틀러까지 우리는 피해자였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나. 감독이 오랜 시간 동안 집시의 역사 속에 있었던 일들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중간에 아우슈비츠의 상황도 나오는데, 그 때 유대인들을 비롯한 슬라브족들, 거기에 집시들이 많이 끼어 있었다. (집시들이)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학살을 많이 당했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관객3: 집시라는 말이 유럽에서 안 좋게 쓰인다는데. 정확히 그들을 지칭하는 말이 무엇이 있나. 또 집시와 집시 음악에 대한 영화를 추천해주신다면.
하림: 집시라는 말은 ‘이집트 사람’이라는 말이다. 집시들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온 순례자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집시들이 자기 자신을 부르는 말은 ‘롬’(집시 말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보헤미안이라는 말은 동유럽의 지방을 가리킨다. 또 영화 추천은 토니 갓리프가 집시 출신인 자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영화들이 있다. (집시 3부작 등) 동유럽 집시에 대한 영화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들도 집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이 영화들을 보면 집시들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지유진(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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