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집시의 역사, 음악으로 듣다
- 토니 갓리프의 '라쵸 드롬'

 

길 위의 한 소년이 타악기 리듬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 소년의 가족은 가축들을 이끌고 사막과 다를 바 없는 황무지를 지나 어딘가에 도착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밤을 보내는 동안, 주민들은 첫날밤을 맞게 될 신혼부부를 위해 노래로 밤을 지새운다. 날이 밝으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시 이동을 시작하고, 몇몇 소년들이 길을 가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홀려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노래가 멈추면 다시 이동, 노래가 들리면 다시 쉬어감, 다시 이동, 다시 쉬어감의 반복. 여정은 그렇게 계속된다.
‘라쵸 드롬’이란, ‘좋은 길’을 뜻하는 로마니어다. 현재는 그 모태가 거의 사라져 남아있지 않은 로마니어는, 우리가 흔히 집시라 부르는 로마니인들의 고유 언어다. 로마니인들은 천여 년 전 인도의 북서부 지방에서 출발해 전 세계로 흩어져 유목민처럼 살아가고 있으며, 유럽으로 가장 많이 흘러들어왔다. 토니 갓리프 감독의 몸속에도 그런 로마니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알제리인 아버지와 로마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로 이주해 연극에 뛰어들었다가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운명처럼 로마니인에 관한 3부작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라쵸 드롬>은 그중 <레스 프린스>와 <가쵸 딜로> 사이에 놓인 2번째 작품이다. 언뜻 다큐멘터리로 오인하기 쉬우나 실은 섬세한 연출을 거친 이 영화는, 천 년에 걸쳐 로마니인들이 걸어온 길을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따라 걷는다. 각기 다른 시대와 지역에 도착하면 그들의 음악도 그에 맞춰 조금씩 다른 옷을 입는다. 인도 라자스탄-이집트-터키-루마니아-헝가리-슬로바키아-프랑스-스페인 안달루시아에 걸친 그 길은 실크로드 버금갈 만한 집시들의 노랫길이다.
집시에 관한 이 음악적 인류학의 신비로운 흥취는 천년의 세월과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음악으로 이어내는 방식에 있다. 거기에는 음악에 대한 매혹이 있다. 영화는 음악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소년들을 뒤따르고, 그 순간에 힘입어 이야기도 한 시대와 지역의 로마니인들로부터 다른 시대와 지역의 로마니인들에게로 넘어간다.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를 사는 로마니인들의 때로는 쾌활하고 때로는 구슬픈 멜로디와 춤사위는 어떤 시련에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아우슈비츠가 남긴 흉터와 프랑코 독재 정권의 어두웠던 시절까지 통과한다. 어쩌면 주소 없이 살아온 그들의 유일한 주소는 음악에 새겨져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주소의 변경을 따라 흘러가는 영화는 플롯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음악을 놓는다. 신과 신 사이,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의 도약은 음악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니 로마니인들로 하여금 오랜 세월 동안 떠돌이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준 힘도 음악에 있고, 이 영화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도 음악에 있는 셈이다. 시공을 뛰어넘는 음악의 힘은 그렇게 영화에까지 전염되어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스토리텔링도 아니고, 비주얼텔링도 아니고, 사운드텔링으로 집시의 역사를 전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까닭이다.

 

이후경 /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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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작은 몸짓과 시선이 전하는 통렬함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가 말하는 시네마테크 선택작 ‘내일을 위한 길’

 

지난 1월 30일,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인 레오 맥커리의 <내일을 위한 길> 상영 후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이 영화는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작품 중 하나'라는 소회로 시작된 강연은 영화의 감흥을 곱씹을 수 있도록 한 시간이었다. 그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을 고르며 고민하던 중 문득 생각했던 작품이 레오 맥커리의 <내일을 위한 길>이었다. 노년이 되신 분들이 시대의 흐름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 있지 않나.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영화의 목록들도 있지만, 삶의 마지막에 아마도 보고 싶은 영화들도 있다. 예를 들어 파스빈더는 삶의 마지막에 죽어가면서 더글라스 서크의 영화를 봤다고 한다. 나에게는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후반부가 아주 인상 깊다. 부부가 작별을 고하기 위해 허니문을 떠났던 도시를 다시 방문하는 부분이다. 앞으로 서로를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해 가는지,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왠지 뭉클하다. 영화가 아주 정갈하다.

이 영화에 대해 할 말은 많지 않다. 다만 몇 가지 사전적인 정보를 말씀드리고 싶다. 이 영화를 만들었던 시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경제 불황이 계속되던 때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의 차압이나, 일자리 부족 같은 문제가 많았다. 시기적으로만 보자면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와 비슷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또한 루즈벨트에 의해 사회보장제도가 처음 마련되던 시기였다. 영화의 후반부, "젊은 때 저축하라"는 표어가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이 보장제도에 대한 것이다. 사회적인 맥락에서만 보자면, 이 시대에 노년의 부부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은 결혼 생활동안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다 보니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불행인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레오 맥커리의 개인적인 사정이다. 1936년에 레오 맥커리는 상한 우유를 먹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경험이 맥커리에게 죽음에 대한 불안과 민감성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개인적인 사연 때문인지 맥커리의 영화 인물들은 동시대 비고되는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 속의 인물들보다 어둡고 자기비하적이거나 불안, 혹은 민감함이 더 커 보인다. 비슷한 스크루볼 코미디를 찍어왔음에도 이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 1936년에 맥커리가 건강을 회복 한 후에 정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와 관련해 영화 속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1937년에 노인을 다루는 영화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레오 맥커리는 로렐과 하디, 막스 브라더스와 함께 코미디 영화를 찍어왔던 감독이다. 그런 감독이 이렇게 슬픈 멜로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노년의 멜로드라마, 이것은 장르적으로도 특별한 경우다. 이 영화가 맥커리의 가장 웃긴 영화라고 하는 <놀라운 진실>과 같은 해에 나왔다는 것은 놀랍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영화의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와 비슷하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레오 맥커리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장면 편집, 카메라 워킹에는 화려한 부분이 전혀 없다. 하지만 한 장면 안에서 인물들을 위치시켜놓고 찍어 나가는 그 순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통렬함이 잘 표현되어있다.

 

공간 속에 있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아주 작은 표정, 시선, 몸짓들이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브리지 게임을 하는 중, 헤어진 아내에게 남편의 전화가 걸려오는 장면을 보자. 카메라는 앞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그 아내를 관객들이 정명으로 보게끔 만든다. 이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중심인물들을 정면으로 보도록 만들거나 반대로 거꾸로 등져 보이도록 한다. 마치 중심인물들이 무대의 객석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남편이라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서 아내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브리지 게임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소리가 커져가자 게임을 중단하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이 장면이 지속되는 내내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며 그녀가 이 장면에서 초래하는 결과들, 그녀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런 것이 멜로드라마적인 통렬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영화 속에 많이있다. 양로원에서 온 편지를 보는 장면, 이 장면은 아주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다. 양로원에 가겠다고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자 아들의 표정에는 잠깐 미소가 번지다가 다시 평소의 상태로 돌아온다. 하나의 장면 안에서 감정의 미묘한 상태가 변해가는 미니멀한 부분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위치와 시선, 몇 개 정도의 짧은 컷들이 복합되어 감정을 컨트롤 해 나간다. 특히 관객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며 구성해 나가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17살 손녀딸 로다와 할머니가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자. 할머니는 손녀딸에게 17살 때는 모든 게 아름답게 보였고, 70살이 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짐짓 그런 것인 척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받아들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편의적으로 3막으로 보자면, 영화의 초반에 주인공의 집이 저당 잡히는 순간으로부터 모든 파국이 발생한다. 사실 이 출발점은 작은 사건에 불과해 보인다(아마도 얼마 후에 부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라는 대사처럼). 이후의 이야기는 작은 헤어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알 수 없는 일로 흘러가는 것이다. 2막에서 부부는 헤어졌다가, 3막에서 다시 만난다. 1막과 2막은 가족의 이야기다. 그런데 3막이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는 이야기가 가족에서 소셜한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짐짓 그런 것인 척 한다'는 태도가 사회적인 영영에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장면을 보자. 노부부는 1막에서부터 '짐짓 그런 것인 척 한다'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3막에서 노부부에게 차를 판매하려던 사람 역시 차를 태워주며 그런척한다. 결국 부부가 차를 자랑하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며 차를 살 형편은 아니다 라고 말 했을 때, 그 또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 호텔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가족 관계에서는 잘 기능하기 힘들었던 일이사회적인 규모로 확장되어 진행된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정작 노부부는 대우를 받고 있다. 3막의 부분은, 감독이 생각하는 가족을 넘어선 사회적 관계에 의한 대우랄까, 관계성의 회복에 대한 사회적 비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감정을 분명히 토로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간다. 이 영화의 세계는 잘 구성된 세계인 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이유가 다 있지 않나. 부모도, 자식들도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이유가 있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계 내에서 조그만 하나의 변화가 어떻게 이 전체를 교란시켜나가는가를 보여준다. 조화로운 질서의 파괴가 어떻게 작은 것에서 번져나가는지를 보게 된다.

 

정리: 김경민(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주원탁(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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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당대의 공기를 올곧게 증명하는 것”

변영주 감독이 말하는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지난 1월 27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감독 변영주가 추천한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상영 후 시네토크가 열렸다. 어린 시절, 멜빌의 영화에 매혹되었던 기억을 비롯하여 <그림자 군단>에 대한 감흥, 멜빌 영화의 현대적 특징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이 날의 대화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추천할까를 고민하면서 영화적 매혹을 강렬하게 느꼈던 어떤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보시던 비디오를 통해 <암흑가의 세 사람>(1970)을 처음 접했었다. NHK에서 방영되었던 일본어 더빙판을 녹화한 비디오였기 때문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영화에 대한 느낌은 굉장히 강렬했다. 나중에서야 당시 보았던 영화가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멜빌의 영화 중 <암흑가의 세 사람>이나 <사무라이>(1967) 같은 영화들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훨씬 더 어울릴 영화가 <그림자 군단>(1969) 같다는 생각을 해서 추천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던 때 읽었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라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소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인용하는 구절이 있다. “왜 나는 인류를 사랑하면 할수록, 특정한 어떤 사람을 혐오하고 증오하게 되는가. 반면 특정한 인물을 증오하고 혐오할수록 왜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은 깊어져 가는가.” 오늘 보신 <그림자 군단>과도 잘 맞는 구절이라고 생각된다. 폭압이나 독재와 싸우는 일은 멋진 일이 아니다.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영화 속 레지스탕스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계속해서 잡히거나 도망가거나, 누군가를 의심하거나 죽일 수밖에 없거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독일군에게 위협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다. 이처럼 불의에 항거한다는 것이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이상과 싸울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 군단>은 실제 레지스탕스인물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원작이고, 멜빌 감독 자신도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었다. 마틸드 역을 연기한 시몬느 시뇨레은 부모가 유태인으로 독일에서 탈출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처럼 감독과 배우들이 그 때의 기억을 명백하게 갖고 있었고, 그것이 어떤 일이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영화였다. 멜빌 감독의 영화는 다이렉트하면서도 굉장히 힘이 있다. 멜빌의 영화를 흔히 장르 영화라고 하지만, 단지 스타일로서의 장르가 아니라, 당대의 공기를 올곧게 증명하는 것으로서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악의가 아니었건, 누군가가 겁에 질렸건 간에 ‘잘못된 일에 대해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굉장히 명백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건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대이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나의 아버지 세대를 이해해 본적이 없었다. 왜 아버지에게는 내 가족과 삶의 안정 이외에 보다 더 높은 가치, 이를테면 대의, 올바름, 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철이 든 이후에는 아버지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었고, 언제나 서로 굉장히 방어적이었다. 하지만 마흔 살이 되던 해에 우연히 박완서 작가의 『그 남자네 집』을 읽다가, 청춘이라는 것이 살아야한다는 강박과 공포로 대치된 인생을 산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가정과 삶 외에 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훨씬 역사의 과오에 대해 훨씬 더 냉정해지는 것, 그 앞에서 정말 명징해지는 것들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그 세대가 그 세대의 나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사는가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1: <그림자 군단>이 주제적인 측면 외에, 스타일이나 형식, 연출에 있어서 현재에도 호소력을 갖고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지 궁금하다.

변영주: 멜빌의 영화가 놀랍도록 현대적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장르라는 것은 이미 관객에게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하기가 쉬워진다. 장르로서의 완벽한 자기 구조를 갖게 되면 관객에게는 구조 자체가 낯설지 않기 때문에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더 나아갈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보다 어려운 이야기, 어떤 심층의 이야기를 숨겨서라도 표현하고 싶을 때 장르라는 것이 용이하다고 생각한다. 멜빌은 <암흑가의 세 사람>이나 <사무라이>와 같이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느와르 장르의 이야기 구조를 가져오는데, 그러한 방식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고조된 감정과 상황에서 더욱더 당대의 향기를 맡기가 쉬워진다. 당대의 질서, 그 세대의 감정에 대해 알기 쉬워지는 부분이 있다. 멜빌의 영화는 미학적으로 현대적이라기보다는 영화에 담겨있는 시대적 공기라든가 하는 것들이 훨씬 현대적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무엇보다 탁월하다. <그림자 군단>의 경우 실제 인물들을 참조해 캐릭터가 만들어짐으로써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최대치를 담을 수 있었고, 그래서 러닝타임이 긴 편임에도 매 순간 긴장감이 있다. 일본어 더빙판으로 멜빌의 영화를 보았던 어린 시절, 내용을 알 수는 없어도 영화에 매혹되었던 건, 쇼트와 쇼트를 연결하는 방식과 카메라의 움직임들에서의 김장감을 때문이었던 것 같다.

 

관객2: 멜빌의 영화 중 <그림자 군단>이 요즘 시대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변영주: 물론 지금의 우리가 레지스탕스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웃음) 우리가 어떤 것들을 바라고 꿈꿀 때 그것이 어느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필리핀 감독 닉 데오캄포의 <혁명은 유행가 가사의 마지막 후렴구처럼 다가온다>는 영화가 있다. 혁명이든 변화든 우리가 바라는 어떤 세상은 어느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은 굉장히 지지부진할 수 있고, 누군가를 의심하게 되거나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 유행가의 후렴구를 떠올리듯이 그렇게 혁명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자면, 올바르다는 것, 정의롭다는 것은 끊임없이 검증되어져야하고,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주인공이 내레이션을 통해 갈등하듯이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그 다음 걸음을 가기가 힘들다. 그런 면을 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정리: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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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우습고, 비열하고, 진짜 사람 같은 사람들

- 윤종빈 감독이 말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

 

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의 로비는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1990)과 이 영화를 선택한 윤종빈 감독과의 시네토크를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윤종빈 감독은 <좋은 친구들>을 서른 번도 넘게 봤을 정도로 좋아한다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 흥미로웠던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평론가):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을 여러 번 봤다고 했다. <좋은 친구들>에서 어떤 면들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오늘 또다시 보면서 어떤 것들을 새로이 생각하게 됐는지.

윤종빈(영화감독): 23살 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마피아도 아니고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지만 왠지 그 세계는 진짜 그럴 것 같아서 충격을 받았다. 두세 번 보니까 영화에 플롯도 없고, 장르적인 면도 거의 없다는 게 들어왔다. 그런데도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힘 있게 끌어갔던 게 신기했다. 그리고 계속 보다보니까 음악이 들어왔다. 이 영화는 사운드트랙이 굉장히 훌륭하다. 기존에 있던 곡들을 삽입한 건데, 그 장면의 정서에 맞거나 부딪히는 방식으로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그리고 또 재밌는 건, 이 영화엔 어떠한 멜로드라마적인 순간도 존재하지 않고, 영화에 나오는 인물에게 이입할 수도 없고, 그 사람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순간도 없는데 왠지 그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진짜 인간인 것처럼 착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들이다.

 

김성욱: 내면을 보여주지 않고 인물을 그려나간다는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내레이션을 쓰고 있지만 전통적이지 않은 다른 방식으로 쓰는 것 같다. 짧긴 하지만 부인의 내레이션도 나온다. 내레이션보다 오히려 코멘터리 같은 느낌이 강하다. 방금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인물들이 그럴듯하게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는데, 정확하게 어떤 부분들이 그러한가?

윤종빈: 가령 이 영화와 비슷하다고들 하는 <대부>(1972)는 멜로드라마적인 면에 많이 기대고 있다. <대부>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착해 보이기도 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영화엔 사람들이 시종일관 우스꽝스럽고, 비열해 보이고, 그런데도 사람 같다. 그런 것들이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많이 드러난다. 헨리가 폴리의 식당을 찾아가서 잘못했다면서 우는 장면에서 헨리의 그 표정이 너무 불쌍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김성욱: 이 영화는 인상적인 촬영 방식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얘기할 때 꼭 언급하는 장면, 헨리가 카렌과 데이트를 하면서 코파카바나 클럽으로 내려가면서 맨 앞자리까지 들어가는 장면이 하나의 컷으로 길게 촬영됐다. 마치 다큐멘터리적인 촬영 방식이다. 그런 식의 촬영이 내용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 같다.

윤종빈: 내용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 같지만 촬영은 매우 스타일리시하다. 무빙이 많고 테크닉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 영화다. 그런데 영화에 빠지게 되면 그런 스타일을 인지하기 힘든 것 같다.

 

 

김성욱: 어떤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가?

윤종빈: 대부분의 장면을 다 좋아하는데 에릭 클랩튼의 ‘Layla’ 후반부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핑크색 차 안에 죽어 있는 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일순간 화면이 정지하고, 음악이 흐르고, 죽은 사람이 나오는, 굉장히 영화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니콜라스 필레지라는 마피아 갱단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그런데 영화 속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너무 리얼해서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가 각색이 됐는지가 진짜 궁금하다. 가령 헨리, 지미, 타미가 마피아를 묻으러 가다가 칼 가지러 집에 들렀는데, 엄마한테 붙잡혀서 밥을 먹고, 엄마는 난데없이 그림을 보여준다.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에피소드인 것 같다. 끊임없이 봐도 이 영화가 참 좋은 게, 전형적인 씬들이 거의 없다. 항상 뭔가를 비틀어낸다. 지미가 새벽에 식당에서 나오면서 잠복하다가 잠든 FBI를 깨우는 장면도 참 재미있다.

 

김성욱: <대부>도 그렇고 <범죄와의 전쟁>도 일종의 범죄자의 공동체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좋은 친구들>의 조직은 좀 묘한 구석이 있다. 이 영화의 패밀리는 그렇게 인위적이지도 않고 인정으로 뭉쳐있다는 느낌도 별로 없고, 돈이라는 커넥션에 의해 뭉쳐져서 <대부> 1편에서 보이는 가족적인 느낌과는 굉장히 다르다. 게다가 주인공은 마피아로 보자면 일종의 진골이 아니기에 정통 시칠리 마피아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윤종빈: <대부>는 영화가 좋고 나쁜 것과 상관없이 리얼한 것과는 좀 거리가 먼 것 같다. <대부>의 패밀리는 약간 과장되고 판타지가 있는 패밀리 아닌가. 얼마 전 스콜세지 인터뷰집을 봤는데 <좋은 친구들>, <비열한 거리>(1994) 얘기 할 때는 그냥 자기가 살던 동네가 진짜 그랬다고 하더라. 이태리 이주민들이 모여서 정말 못사는데, 다 갱들이 있고, 갱이 없으면 생활에 불편함을 겪는다고 했다. <좋은 친구들>은 왜 마피아를 할 수밖에 없는지, 집단을 합리화시키는 명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자기가 갱스터 되고 싶은 이유는 줄을 서기 싫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쿨하고 재밌는 화법인 것 같다.

 

관객1: 영화 안에서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폭력성은 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장 심한 폭력이라고 보는 부분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윤종빈: 이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인 장면은 두 씬이 있다. 식당에 찾아온 헨리에게 폴리가 돈 몇 천 주고 관계를 끝내버리는 장면, 그리고 지미가 헨리를 불러서 누구를 죽이고 오라고 부탁하는 장면. 그 장면에선 배우들의 표정도 굉장히 서늘했던 것 같다. 물리적 폭력도 무섭겠지만 좋게 지내던 관계들이 한순간에 탁 끊어지는 게 싸늘하면서도 무서웠다.

 

관객2: 관객의 입장에서 이 영화엔 그렇게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범죄와의 전쟁>은 보기에 약간 불편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영화가 묘사하는 폭력의 수준이 어느 정도가 적절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하다.

윤종빈: 기본적으로 피나 신체가 절단되는 것들을 직접 보여주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영화마다 다른데, 드라마가 있는 영화라면 표현하는 형식들이 주제를 뛰어넘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담담하게 수위를 많이 줄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관객3: 스콜세지는 최근까지도 영화를 찍고 있는데, 스콜세지의 다른 영화들 중에 무슨 영화를 좋아하시는지 궁금하다.

윤종빈: 스콜세지 영화는 거의 대부분 다 좋아한다. 스콜세지가 만든 영화들 중에서 정말 좋아하는 영화는 <카지노>(1995)가 마지막인 것 같다. 그 이후보단 이전 영화들이 더 좋은 것 같다. 최근에 본 <휴고>는 좋았다.

 

정리: 송은경(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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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사람의 기억은 머리에 남을까,

마음에 남을까?!”

- 배우 배수빈이 말하는 미셀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2013년 여덟 번 째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인 지난 24일,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상영 후 배우 배수빈과 함께 한 시네토크 자리가 마련되었다. 배수빈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함께 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인사를 전하며, 삶과 영화에 대한 진심어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배수빈(배우): <이터널 선샤인>을 네다섯 번 정도 봤는데, 볼 때마다 가슴에 와 닿는 장면이나 대사가 달랐다. 볼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서 신기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인 후 다시 본다면 또 어떤 장면과 대사가 나에게 영감을 줄까하는 기대감에 이 영화를 같이 보자고 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자주 보게 됐던 건 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뭔가 잊고 싶은 게 있었던 건가?

배수빈: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나와 너무 달라서 혹은 나와 너무 비슷해서, 자기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끌림들 때문에 상대를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경험하게 되지 않나. 잘 끝났건, 잘 끝나지 못했건 그 기억들은 소중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기억들로 인해 우리는 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고,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됐다. 딱히 나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었던 게 아니라. 나는 좋은 기억이든 안 좋은 기억이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고 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김성욱: 영화 속 조엘(짐 캐리)이라는 인물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기억을 지웠다. 상대역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도 그렇다. 짐 캐리는 이런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다. 나에게는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의 캐릭터로서 조엘이라는 인물이 특별하게 와 닿는다. 배우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이는가?

배수빈: <이터널 선샤인> 속의 짐 캐리를 보면 당시에 어떤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것 같은 모습이다. 얼굴에서 그런 분위기가 나지 않나. 나도 연기를 하면서 상처를 갖고 있고, 결핍을 가진 인물들에게 끌리곤 했다. 작년에 작업한 <26년>이라는 작품 같은 경우, 혼자만의 트라우마가 아닌 전 국가적인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다. 나는 트라우마가 너무 크다면 살아가는 힘마저도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들이 올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이겨내다 보면 또 다른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는 트라우마에 빠져버린다 해도 최소한 삶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욱: <이터널 선샤인>과 함께 추천했던 작품은 <태양은 가득히>였다. 이 작품은 어떤 점에서 끌렸나?

배수빈: 그 영화 역시 알랭 들롱의 부와 명예에 대한 결핍 때문이었던 것 같다. 거짓말에 거짓말이 더해지고. 자신이 따라가고 있는 욕망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내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배우로서 추구해 나가야하는 방향성 같은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김성욱: 이 영화를 보며 짐 캐리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초기작 <마스크>나 <케이블 가이>를 보면 몸으로 CG를 구현하는 듯한 배우였는데(웃음), 2000년대 초반에는 진지한 역할을 자주 맡았다. <트루먼 쇼>도 그렇지 않나. 오늘 영화에서 인상 깊은 탁자 장면을 보면, 한편으론 진지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위트 있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다.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배수빈: 굉장히 특별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나도 배역을 맡다보면 한 쪽으로 치우쳐진 경우가 많다. 짐 캐리 같은 캐릭터 소화가 가능한 것은 여유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반에는 나이도 어리고 경험치도 없는 배우가 본인의 개성으로 이슈화되어 나오다가, 시간이 흘러 여유가 생기면 그 개성이 페이소스 있게 풀어지는 게 아닐까. 나도 세월의 무게가 더해지면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 어떤 장면을 특히 좋아하나? 내 경우에는 탁자 장면이 인상 깊다.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다.

배수빈: 짐 캐리가 어린 시절 자위행위 하던 기억으로 돌아간 장면. 중고등학생때 누구나 경험해봄직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욱: 다 경험하지는 않는다. (웃음)

배수빈: 미셸 공드리의 편집도 좋다. 그러니까 중간 중간 갑자기 인물이 사라지고 거꾸로 진행되고, 신기할 정도로 편집을 잘 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천재 감독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기억을 없애는 방법이 머릿속의 점들을 지우는 것이란 아이디어 자체도 신기했다. 사람의 기억은 머리에 남아있나, 마음에 남아있나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이 영화를 촬영했을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짐캐리가 몇몇 장면들에서 편집에 의존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어떤 장면은 카메라 뒤로 돌았다가 본인이 직접 다시 카메라 앞으로 나타나고. 두 명이 나오는 장면도 각기 찍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인터뷰에서 미셸 공드리는 이런 방식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 때 한 대답이 “해보지도 않고 가능하냐고 묻느냐”는 것이었다. 배우로서 감독과의 그런 경험이나 일화가 있는지.

배수빈: 유지태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마이 라띠마>에서 함께 촬영을 했는데, 매 장면마다 2테이크 씩 간 것 같다. 한 장면 장면을 위해 합심해서 노력 했다. 감독의 의지가 이렇다고 해서 이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그렇지 않나. 함께 합의를 한다면 몇 테이크인들 촬영 못하고, 거꾸로 찍는 것인들 못하겠나. 배우는 자신의 역할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보면 사족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매체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관객들이 느끼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김성욱: 그런 식의 경험이 있있던 장면이 있나? <26년> 같은 작품에서는 많았을 것 같다.

배수빈: <마이 라띠마>를 찍을 때 스테디캠으로 1분 이상 지속되는 장면이 있었다. 출연 인원만 30-40명이 얽혀서 나오는 건데, 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8시간 정도를 투자한 것 같다. 딱 한 테이크를 위해서. 거기에는 주연, 조연 배우도 있겠지만 보조출연 하시는 분들도 있고 스탭분들도 있다. 정말 작은 역할부터 스탭들까지 전부.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다 함께 힘을 기울였던 장면이 생각난다.

 

김성욱: 짐 캐리는 <이터널 선샤인> 시나리오를 받고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배우로서 활동하면 여러 종류의 시나리오를 받을 텐데, 어떤 식으로 판단을 하나?

배수빈: 반반이다. 정말 잘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시나리오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 <광해>의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광해>의 영화 시나리오를 봤는데 이 영화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확실했다. 시나리오가 주는 묵직함이 있었다. 배우들은 내 생각에 감인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잘 넘어가느냐, 읽는 중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잘 넘어가느냐, 시나리오를 다 읽고 딱 덮었을 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작품들은 거의 그런 식이었다.

 

김성욱: 첫 영화, 첫 작품을 한지 거의 1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안다. 어떤 계기로 배우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배수빈: 사실 처음에는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다. 원래 나는 사진을 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엔 사진, 음악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다. 우연찮게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거다. 배우로 지내다보니 결국 과연 무엇 때문에 내가 창작 활동을 좋아했을까 궁금해졌다. 결국 그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들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연기를 하면 캐릭터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상처들을 감싸 안으면서 따뜻한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도 휴머니티가 살아있는 작품들을 위주로 선택하고자 한다.

 

관객: 지금까지 TV나 영화에서 진지하고 의미 있는 캐릭터 위주로 선택했던 것 같다. 사극도 그렇고. 생각하고 있는 롤모델 배우나 감독이 있나? <26년>, <마이 라띠마>, <무서운 이야기> 등 영화 선택이 대중적이지 않을 것 같다.

배수빈: 마음이 가면 그냥 한다. 그게 정답인 거 같다. 어디에 구애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연기만 할 뿐이다. 실험적인 작품에 가능한 한 많이 출연하고 싶다. 본받고 싶은 배우라고 하면, 상(像)이 없는 배우가 되고 싶다. 고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싶지 않다. 상을 부수상이 없는 배우. 고정적으로 저런 느낌이야, 이런 상을 갖는 게 싫다. 상을 부수는 작업을 해나갈 생각이다.

 

정리: 김경민(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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