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내리던 저녁, <평양성>의 이준익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지난해에 <몬티 파이튼의 성배>를 추천한 이준익 감독은 올해는 평소에도 자신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곤 했던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선택했다. 이준익 감독은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영화에 담긴 의미가 여전히 새롭다며, 전쟁과 이념 대결구도를 풍자한 큐브릭의 작가적 행보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시네토크 현장을 소개한다.



이준익(영화감독): 이 작품은 호불호가 갈리는 극단적인 작품이다. 내게는 중요한 영화라 이 작품을 추천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선택했는데 많이 와주신 것 같아 다행이다.

허남웅(영화칼럼니스트) : 작년<평양성> 연출 후 상업영화계 은퇴를 선언 하셨다. 그 이후로 힘들게 보내실 줄 알았는데, 좋게 보내신다고 들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준익 : 조심성이 없는 사람이라 평생의 반을 실수하며 산다. 감정적인 인간이라 욱하는 바람에 말실수를 했다. 인간은 실수로 비극을 맞이하는데 이 영화도 그렇다(웃음).

허남웅 : <황산벌>을 연출할 때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가 모범이 되는 영화였다고 말했었다. 추천한 이유를 듣고 싶다.

이준익 : 이 영화는 미국 냉전 이데올로기를 비꼬는 블랙 코미디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경쟁 속에서 과대망상이 만들어졌고, 과학의 힘을 빌어서 핵무기를 생산해 놓지 않았나. 동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심화되었을 때 큐브릭은 이 영화를 만들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은 핵무기의 냉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전쟁이나 이념 대결 구도 자체가 일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이 영화가 나에겐 매우 중요하다. 1964년에 이런 생각을 한 큐브릭은 50년이 지난 이 자리에서도 공론화 할 수 있는 철학자다. 이 작품은 반영웅주의 영화며 미국의 군사중심주의마저도 풍자한 영화다. 간단한 미학이지만 상징적 비유가 있는 블랙 코미디라서 이 작품을 추천했다.

허남웅 : 한국에서 이런 영화를 수용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준익 : 과거 한국의 목표는 학생들이 권력에 의해 순종적 인간이 되어 고도성장을 이룩하는 거였다. 그런데 현재는 그 사회 시스템이 건강한지를 의심하는 시대다. 내가 20대였을 때에는 정보가 차단되어 의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미국은 60년대에 이 시기를 건너갔다. 이 작품을 통해서 이 사회가 다른 나라들처럼 집단 소통이 잘 이뤄졌는지를 가늠해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시네마테크에서 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30년 전 재밌게 봤던 영화 속에 담긴 의미가 여전히 새롭기 때문이다. 지금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 시간도 내겐 매우 행복하다.

허남웅 : 이 영화를 접했을 때가 언제인가?

이준익 : 남들처럼 처음에는 할리우드 상업 영화를 열심히 봤다. 데뷔작도 <키드 캅>인데, 당시 <나홀로 집에>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 냈다. 첫 영화가 망한 후, 10년 동안 감독 대신 외화 수입 및 영화 제작 일을 했다. 나중에야 내가 알고 있는 기준과 다른 작품들을 시네필 친구들에게 추천 받았다. 30대 중반 넘어 본 영화들은 내가 모르던 세상이었다. 100년을 넘어 장르를 지탱해 온 영화사에 남아있는 영화들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런 영화들을 관람한 뒤 <황산벌>을 만들었다.

허남웅 : <황산벌> 같은 사극을 제작한 것은 이런 식의 코미디를 현대극으로 만들기엔 사회가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지금 현대극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할 의향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준익 : 물론이다.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 사회는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젊은 세대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박이 적지만 중년층 이상은 바뀌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일상의 많은 부분을 대결 구도가 지배하고 있다.



관객1 :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을 봤는데, 가진 자들의 횡포를 빗대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세상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나 비꼬는 방식을 많이 사용했는데, 감독들이 이렇게 세상을 비꼬는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이준익 : 이상하게도 영화를 찍으면 신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세상을 버즈아이로 보려한다. 제일 윗선에 있는 우두머리들의 뒤통수를 위에서는 볼 수 있다. 관객 전체가 이러한 시각을 가져야한다. 감독은 이를 풀어서 관객들도 똑같이 권력자들의 뒤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채플린이 말했던 것과 반대로,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근엄해 보이고 과도한 의미가 부풀려지지만, 카메라를 가까이 하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그걸 통렬하게 찔러서 보여주고, 관객들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역할을 이 영화가 한다. 그래서 영화는 돈의 가치만이 아닌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관객2 : 배우들이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감독님 영화에서는 과장되어있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자연스러운 것 같다. 어떻게 과장을 절제 하는지 궁금하다.

이준익 : 얼마 전 중국 아카데미에 초청을 받아 특강을 했는데, 중국 배우들은 연기가 너무 과장되었다고 일침을 놓았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중 돌아가시기 전 작품들, 예를 들어 <아이즈 와이드 셧>을 보면 과장이 하나도 없다. <풀 메탈 자켓>도 다큐멘터리적으로 찍은 최초의 베트남전 영화로 생각된다. 1964년도의 연기법이 바로 이건데, 연기 톤이 저 정도면 과장이 아닌 거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과장이지만, 그때 기준으로 보면 과장이 아니라 생각한다.

허남웅 : 이 작품이 칼라로 찍으려다가 제작비 때문에 흑백으로 진행했다고 들었다. 선악의 이분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알 맞는 형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 인터뷰 때 세상 자체를 흑백으로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이준익 : 칼라는 같은 색을 오래 보면 식상해서 그것보다 다른 고급의 색을 찾게 된다. 그게 눈의 사치를 채우려는 인간의 욕망이다. 차라리 흑백이라면 비교가치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다. 흑백 논리가 아니라, 담백하고 조촐한 일상이 행복 지수를 키우는데 유리할 것 같다. 지혜로울 수 있는 방법은 심플하고 가식 없이 사는 거다.

허남웅 : 다음에는 그런 가치관을 갖고 변화한 이야기를 선택할 것인지?

이준익 :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문을 열어야하는데 너무 사회적, 역사적, 공동체로서의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영화만 만든 것 같다. 영화 미학을 포기하는 서투름이 있었는데, 이젠 영화 미학도 추구하고 싶다.

 
관객3 : 자본주의 사회의 과열 경쟁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어떤 예술이든 제작자가 대중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감독은 관객들을 계몽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추측하는데, 요즘 사람들한텐 어떤 계몽을 하고 싶은지.

이준익 : 나는 계몽이란 단어를 싫어하기 때문에 계몽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영화를 하다보면 우월한 심리가 스며든다. 감독이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대로 스태프들이 실행해주니까. 여러 편을 찍으면서 메시지 전달이 부정확한 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모하다. 그래서 더 올바른 가치에 대한 다음 행보는 무엇인가? 찾아야 하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관객4 : 비행기 안에서 폭탄이 작동 안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작동되어 멸망한다. 관객들이 해피엔딩을 원할 텐데, 죽여서 참담함을 안겨주는 감독의 심리가 궁금하다.

이준익 : 당시 대부분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영화는 질문하신 분이 원하는 그런 결말대로 찍었다. 그래서 큐브릭은 반대로 촬영했다. 좋은 결말을 다 알고 있고 그걸 충족시키면, 그것도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지금도 할리우드는 폭발을 멈추는 해피엔딩으로 만들고 있다. 30살 전까지 할리우드의 권선징악에 도취되어서 살았는데, 30대 중반 넘어가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입된 그 사고방식을 따를까봐 두렵다고 느꼈다. 반대가치에 대한 발견을 추구하는 것이 작가적 행보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작가가 못되었지만, 큐브릭은 초지일관 작가적 관점에서 끝까지 밀고 간 거다. 나는 큐브릭이 인류에 진정 이바지한다고 본다.

허남웅
: 앞으로의 방향은 어떻게 되는지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이준익 : 계획의 희생자였다(웃음). 너무 계획하고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이젠 인생을 계획 없이 살려고 한다.

정리: 윤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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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자원활동가 한바름·김샛별 양

작년 말부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 가면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아름다운 봉사정신을 발휘하는 10명의 자원활동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타 영화제와 달리 6개월 이상 장기간활동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영화와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 하나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해주고 있는 자원활동가들. 이들 중 행사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한바름(23세) 양과 촬영지원을 하고 있는 김샛별(20세) 양을 만났다. 긴 머리에 뿔테안경을 쓴 바름 양은 귀여운 운동화를 신고 여기 저기 뛰어 다니며 관객과 마주하고, 노란 머리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검은 피어싱이 유난히 눈에 익은 샛별 양은 부대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대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봤다.

어떻게 알고 지원했나요?
바름: 다른 영화제에서도 일해 봤어요. 영화 쪽에는 꾸준히 관심이 있었고요. 고전영화와 예술영화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관심이 생겼죠. 우연한 기회에 자원활동가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어요. 영화제도 즐기고 도움도 주고 겸사겸사 좋은 기회잖아요. 
샛별: 매일 상영시간표 보러 서울아트시네마 사이트에 와요. 그러던 어느 날 모집 공고를 보았죠. 이제 하고 싶은걸 할 나이가 되었기도 해서 지원하게 됐어요.

서울아트시네마에는 언제 처음 왔나?
바름: 자원활동가가 되면서부터 극장에 오기 시작했어요.
샛별: 처음에 친구 따라서 모금운동을 할 때 돈 기부하러 왔는데, 그때 굉장히 신기했어요. 서울아트시네마에선 글로만 배우고 듣기 만했던 누벨바그니 아방가르드니 하는 영화들을 직접 볼 수 있더라고요.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바름: 자원활동을 하며 극장에 자주 오게 되면서 점점 커져요. 그리고 영화를 보며 즐거워하는 관객들을 볼 때요.
샛별: 모금활동에 참여했을 때 마음이 아팠어요. 서울아트시네마가 처한 재정적 어려움이 확 와 닿았거든요. 봉사를 하면서 시네마테크의 현실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실정을 보고 마음이 조금 더 불편해 졌어요.

극장 안에 선호하는 자리가 있나요?
바름: 그냥 뒷자리를 선호하는 편이예요.
샛별: 라열 113번 자리요! 자막 오퍼레이터 2줄 정도 뒤에요. 자막이 오른쪽에서 나오니까 빨리 자막 읽고 영상을 보려고 그 자리에 앉아요.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강추하는 작품이나 꼭 보고 싶은 영화는?
바름: <붉은 살의>와 <미친개들> 둘 다 보고 싶은데 제 자원활동 일정과 겹쳐서 못 볼 것 같아요.
샛별: <박제사>요!

자원활동을 하면서 겪은 가장 큰 애로사항은?
바름: ‘사랑한다면 춤을 춰라’ 공연 소리가 위에서 ‘쿵쿵‘ 들릴 때요.
샛별: 저는 가끔 옆 실버 극장관객이신 할아버지 분들이 오셔서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실 때요.

시네마테크가 다른 영화관과 어떤 면에서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바름: 멀티플렉스보다 분위기가 편안하고 특별해요.
샛별: 일반 극장에는 갓 나온 영화가 대부분이지만, 여기는 일정 시간이 지나서 영화에 대한 의견이 존재하는 영화들이 상영된다는 점이 좋아요. 어떤 영화인지 미리 알 수도 있고 막연히 좋은 영화를 상영할거라고 믿고 극장을 찾게 되죠.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네요.
바름: 관객회원 분들이 항상 꿈꿔오고 바라는 지향점이잖아요. 꼭 좀 건립되었으면 해요.
샛별: 저는 꿈까지 꿨어요. 여기서 활동한지 한 2,3주 됐을 땐데, 꿈속에서 버스를 타고 있었어요. 버스 안 TV에서 뉴스가 나오는 것이에요. “내년 1월에 서울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건립될 예정입니다.” 제발 제 꿈이 허황된 꿈이 아니라 예지몽이길!

시네마테크란 OO이다.
바름: 좋은 영화를 보여주고 편안한 영화적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죠.
샛별: 시네마테크란 시네마테크다. 다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어요. 시네마테크는 시네마테크에요.

(인터뷰·글Ⅰ배준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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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김지운 감독의 선택작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설 연휴가 끝난 지난 5일 저녁, 1회부터 빠지지 않고 매년 친구들로 참석한 김지운 감독의 올해의 추천작인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상영 후 김지운 감독과의 솔직담백한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코폴라가 선사하는 암흑의 세계에 갔다 온 관객들은 혼이 빠진 상태로 허기를 참으며 많은 질문을 던졌다. 영화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에 관한, 영화를 보는 것에 관한 치열한 토크열전이 펼쳐졌던 그 현장의 일부를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영화였는데.
김지운(영화감독): <악마를 보았다> 끝내고 광기, 복수, 지옥, 어두운 내면을 다룬 영화를 멀리 하려고 했는데... (웃음) 오늘 <지옥의 묵시록> 그것도 리덕스 판, 코폴라가 생각한 지옥의 완전판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게 됐다.

김성욱: 2001년에 리덕스판이 개봉했을때 보고 몇 장면을 간헐적으로 보기는 했지만 큰 화면으로 제대로 본 건 오늘이 10년만이다. 
김지운: 79년 원판을 보고나서 처음이다. 어릴 때 봤을 때도 힘들었는데 나이 먹고 보려니까 더 힘들더라. 이 영화는 1902년에 나온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라는 모호하고 어두운 중편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미 베르너 헤어조크도 이 소재로 영화를 만든 바 있고, 오손 웰즈도 이 소재로 만들려고 했다가 세계 대전이 일어나서 중도에 그만둔, 약간 마가 낀 작품이다. 원래 존 밀리어스와 조지 루카스가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베트남전이 민감한 소재여서 제작자와 감독들이 거절했다고 한다. 그걸 코폴라에게 가져다줬고 그 때부터 코폴라의 악몽이 시작된 것이다.

김성욱: 이 영화를 만들면서 코폴라 자신도 ‘내가 뭘 하고 있나’라고 말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79년 개봉버전보다 리덕스판은 50여분이 더해졌다. 추가됐더라도 여전히 애매한 구석이 많은 영화이고 사람들마다 영화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다. 리덕스 판으로 다시 보신 느낌은?
김지운: 한 인터뷰에서 코폴라가 ‘영화의 흐름을 많이 따라 간다’고 밝혔던 기억이 있다. 나도 약간 그런 편인데, 생각해놓은 큰 그림들은 있지만 영화가 흘러가는 것을 막 쫓아가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코폴라 자신도 문명과 반대지점의 정글이 갖는 미스터리, 신비적인 것과 마틴 쉰의 투명한 눈으로 전쟁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면과 광기를 관찰하는, 그런 매혹적인 지점들에 말려들어간 게 아니었나 생각된다. 필리핀 촬영지의 악조건도 있었고, 코폴라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은 내외적인 상황의 결과인 듯하다.

김성욱:
전체적으로 환상적이고 망상적인 세계로 진입해가는 영화인데.
김지운: <지옥의 묵시록>은 <이지 라이더>와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인 드럭(drug) 영화라고 생각된다. <스피드 레이서>가 코카인 영화라면 <이지라이더>와 <지옥의 묵시록>은 마리화나 느낌의 영화가 아닌가 싶다. 살인이나 자살 외에 약물이 아니고선 지옥에서 도망쳐 나올 수 없지 않은가. 코카인, 환각제, 마리화나는 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 같다. 타인과 자신에게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약은 월남전에 처박힌 인간의 돌파구로서 의미가 있다. 이것이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연기, 화면, 편집, 음악의 사용, 세계관까지도 그러한 약의 느낌이 있는 영화다.

김성욱: 실제 영화에서 약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이지 라이더>의 데니스 호퍼도 잠깐 등장한다. 랜스라는 인물도 그런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의 비전을 랜스라는 인물의 약물복용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사람도 있다. 원판과 리덕스 판의 차이는 많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결말이다. 커츠의 왕국이 79년 개봉버전에선 폭격에 의해 없어지는데 리덕스 버전은 그렇지 않다. 엔딩의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지운: 코폴라가 언젠가 말했는데 폭격 장면을 넣으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급하게 편집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라 알고 있다. 오늘 봤을 때는 마틴 쉰이 그 왕국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마틴 쉰이 보트를 타고 밖으로 다시 나가는 것을 보고 ‘지옥을 경험하고 나서도 희망을 가지게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커츠는 광기를 보았고 문명 세계에 대한 희망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나아질 것이 없어서 안주했다고 생각했는데 마틴 쉰이 커츠와 똑같은 과정을 겪고도 그를 죽이고서 다시 나온다는 것 때문에 코폴라가 전쟁을 다루는 세계에 대한 모호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절망적인 상황, 광기의 밑바닥을 윌러드를 통해서 보여주고 나서 윌러드가 다시 커츠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폭격 되고 안 되고 이전에 윌러드가 다시 문명세계로 나온다는 부분이 모호하게 느껴졌다.

김성욱:
커츠를 찾아 가는 여정에서 중간에 마틴 쉰이 베트남 민간 여자를 총으로 쏴 죽이고선 ‘그러니까 건드리지 말고 놔두고 가자고 하지 않았냐’고 말할 때의 느낌이 오늘은 강하게 느껴졌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면?
김지운: 모든 이미지들이 하나하나 낙인이 찍혀있다.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를 틀면서 월남인들을 폭격하는 장면이 압도적이었다. 그 이후의 어떤 영화에서도 그만한 스펙터클과 에너지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누가 훔쳐내도 훔쳐낼 수 없는 명불허전의 장면이 아닌가 싶다. 리덕스 판에 크게 추가된 장면은 플레이걸과의 섹스 장면, 프랑스 농장주 가족들 장면이다. 이 장면들이 쓸데없는 것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코폴라의 변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의 시선으로 미국을 고발하고 경고하는 유령 같은 느낌으로 그 장면을 넣었다고 한다. 그만큼 흐름에 역행하면서까지 코폴라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지옥의 묵시록의 회상>이라는 뒷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는 영화보다 더 재밌는 애기가 많이 나오는데 모든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그건 미친 짓이었다. 우린 미쳤었다’고 하더라. 그걸 보고 있으면 진짜 점점 미쳐가는 모습이 역력해보이더라. 제작비 올라가고 사건사고가 생기고 촬영이 끝나질 않았다 한다. 하비 케이틀을 해고하고 마틴 쉰을 데리고 와서 찍은 것처럼 코폴라는 스태프가 마음에 안 들면 해고를 많이 시켰던 감독이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서 제작비는 올라가고 태풍 불어서 세트도 떠내려가고 했다 하더라. 마틴 쉰은 심장발작을 일으켜 미국 가서 치료받기도 하고, 정말 영화 찍으면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사고가 코폴라에게 모두 일어났던 작품이라고 하더라. 감독 입장에서는 영화고 뭐고 총으로 쏴죽이고 싶지 않았을까. (좌중 웃음) 모든 사람이 미쳐가는 과정의 영화가 <지옥의 묵시록>이었던 것 같고, 그런 제작과정에서 점점 미쳐간,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모습이 그래도 영화에 들어있는 듯하다. 찍는 것 자체가 전쟁인 영화를 함께 봤는데 지옥에서 벗어나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함께 느꼈으면 한다.

관객1: 코폴라는 70년대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만들었지만 8, 90년대에는 쇠퇴해갔다. 코폴라가 이후 작가적 역량을 발휘 못한 이유가 혹 <지옥의 묵시록>에서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소진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싶은데.
김지운: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록>에 자신의 열정을 다 쏟아 부은 것 같다. 코폴라는 이전 세대의 감독들과는 달랐다.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기수였고, 시스템에 놓여있던 전 세대의 감독들과 달리 학교에서 학문으로 영화를 배우고 유럽 예술영화를 탐닉했던 인물이다. <대부>를 만들 당시, 그의 상황은 처참해서 이런 갱 영화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졌는데 조지 루카스가 ‘무조건 해라. 돈 벌고 빚도 갚아라’는 얘기를 듣고서 하게 됐다고 한다. 코폴라의 예술가적 야심과 현실적인 요구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 명작들이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지옥의 묵시록> 이후에 자기는 무조건 상업영화 만들겠다고 사람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말하고 나서 모든 것이 상업적으로 망가진 것 같다. 예술적인 비전과 현실적인 삶의 욕구가 매치된 영화가 <대부>고 뭐든 다 할 수 잇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낸 작품이 <지옥의 묵시록>이라고 생각한다. 정글이라는 로케이션이 갖는 미스터리에 말리면서 쇠잔해버린 느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어마어마한 영화가 나온 것 같다. 물론 다 쏟아버렸고 고갈되기도 했다. 재능이 고갈되는 것을 방지하거나 유보하는 방법 중 하나는 저처럼 조금씩 쓰는 것도 있고 (웃음) 쏟아낸 만큼 초심의 상태로 빨리 돌아오는 것도 있다. 그런 상태로 빨리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쉽지는 않다. 코폴라는 스튜디오와 차별된 자기 회사를 만들었는데 결국엔 똑같이 대형 스튜디오가 벌이고 있는 착취를 다시 벌이게 되지 않았나. 자기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을 늦추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관객2: 영화 막바지에 커츠 대령이 본인 왕국을 왜 건설했고, 현실의 무엇으로부터 도피하려 했는지 정당성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 때문에 공감이 많이 됐는데 감독님은 어떤 지점에서 공감하셨는지?
김지운: 코폴라가 모호하게 전쟁의 광기를 얘기하고 있지만 이 영화만큼 강력하고 처절한 반전 영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연평도 사태 후 일각에서 당장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일면서 되게 겁이 났다.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지옥의 묵시록>에서 전쟁이 인간을 광기로 몰아넣는 과정을 보면서 소름끼쳤다. 사실 전쟁이 인간을 광기로 몰아넣는지, 인간에게 악마적 기운이 있는데 전쟁이 그것을 들춰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무서웠던 점이다. 초반에 이미 장군들을 만날 때 ‘더러는 악의 기운이 선을 이길 수 있다’고 한 장군이 얘기하는데, 그때 이 영화가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알게 된다. 윌러드가 발견한 것은 커츠가 아니라 공포의 세계였다. 전쟁이 인간을 광기로 몰아넣는다기보다 광기가 원래 있는 것인데 전쟁이 그것을 들춰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처절하고 소름끼치게 봤다.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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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남아>(1988)는 왕가위 감독의 첫 번째 영화다. 홍콩 느와르가 인기 절정을 누리던 80년대는 한편의 히트작에 관한 속편과 아류작들이 대량으로 제작되어 영화감독과 스태프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왕가위도 시나리오 작가에서 감독으로 나섰다. 당시 왕가위는 흑사회를 소재로 한 ‘홍콩 느와르’ 장르를 정착시킨 등광영 밑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친구인 유진위가 왕가위를 추천하게 되면서 등광영의 지원, 제작으로 연출하게 되었다 한다.

<열혈남아>는 줄거리 상으로는 80년대 홍콩영화의 주류장르였던 홍콩 느와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왕가위는 느와르 혹은 갱스터 장르의 정석적인 틀만을 유지하고 있다. 구룡의 어두운 뒷골목을 방황하는 두 청년 소화(유덕화)와 창파(장학우)에게서 강호의 호걸과 초막의 군자가 결합된 홍콩 느와르풍의 영웅은 볼 수가 없다. 오히려 소화와 창파에게서는 실패한 영웅의 모습과 영웅 콤플렉스로 가득 찬 어린 남성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진 것 하나 없으며 사랑하는 여자에게 어떤 앞날도 약속을 할 수 없는 소화와 단 일분이라도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창파의 모습은 어두운 뒷골목을 방황하며 쓰레기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영웅의 모습으로 왕가위는 기존의 홍콩 느와르와 구별되는 변형된 영웅 캐릭터를 만들었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암울함, 불안함, 허무함, 우울함의 정서는 10년 후인 1997년 중국으로의 홍콩반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의 정서로 읽히기도 한다. 특히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화의 말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홍콩의 운명에 대한 은유다. 그리고 오우삼의 크고 화려한 홍콩 도시와 대비되는 싸구려 네온사인 간판과 불빛만 반짝이는 어둡고 비좁은 뒷골목이라는 영화 속 공간은 홍콩의 미래에 대한 불안의 정서가 반영된 공간적 메타포다.

한편 왕가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그의 트레이드마크 된 슬로우 모션효과의 ‘스텝프린팅’ 기법이다. 데뷔작인 <열혈남아>에서도 왕가위 특유의 스텝프린팅 기법이 눈길을 끈다. 소화가 창파의 복수를 하는 포장마차 액션씬과 소화와 아화(장만옥)의 공중전화부스 키스씬 장면이다. 시간을 늘려서 액션의 순간과 키스의 찰나를 담아내는 이 장면들에서 왕가위는 액션의 강약을 조절하고 슬로우 모션을 통해 심리적 지속감을 유지시킨다.

1989년 국내 개봉 당시 <열혈남아>의 마지막 장면은 바보가 된 채 감옥에 수감된 소화를 아화가 면회하고 나오는 버전이었다. 실제로 <열혈남아>는 소화를 면회하고 나오는 아화로 끝나는 홍콩판과 경찰서에서 바로 죽은 소화로 끝나는 대만판, 이렇게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이 영화가 가진 서로 다른 결말을 어떻게 읽어야 될까? 정확한 대답은 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어떤 결말이라도 영화가 주는 여운은 강하다는 것이다. (신윤하)

▣ 상영일정
1월 21일 (목) 19:00 상영 후 시네토크_류승완, 진행_주성철
1월 26일 (화) 17:30
2월 7일 (일) 19:00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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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오즈 야스지로는 가장 일본적인 감독이자 소시민극이라 불리는 독특한 미학적 스타일로 이후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친 감독이다. 또한 그는 현대사회 속 가족의 의미와 해체에 대해 가장 깊이 천착하고 생각했던 감독으로 거의 모든 영화에서 일관되게 가족을 다룬다.

<동경이야기>(1953)는 그러한 오즈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잘 알려진 명실상부한 오즈의 대표작으로 내러티브나 스타일 모든 측면에서 그의 전략이 고스란히 농축된 작품이다. 스토리라인은 이보다 더 단순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조롭다. 영화는 시골에 사는 노부부가 오랜만에 자식들과 손자를 보기 위해 동경에 온 여정을 그린다. 하지만 사는 게 바쁜 자식들은 그들의 방문을 귀찮아하며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오히려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며느리만이 그들을 반기며 극진히 모신다. 노부부는 그러한 자식들에게 서운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자식들이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에 만족하며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며칠 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이제는 거꾸로 자식들이 시골집에 오지만 누구나 한번은 겪는 절차인 듯 담담히 장례식을 치루고 곧 동경으로 상경한다.

영화는 철저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고 반복과 대비가 강하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는 시골동네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통통거리는 배의 엔진 소리와 풍경이 동일하게 보인다.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대사도 수없이 반복된다. 외부 공간은 실내 공간에 비해 역동적으로 느껴지고 내부는 숨이 막힐 것처럼 정적이다. 그 안에서 오즈는 산업화라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사회의 단면을 비추며 서서히 무너져버리는 일본 가족제도의 붕괴를 그린다. 한마디로 <동경이야기>는 산업화 시대의 가족 풍경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즈는 목표는 단순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현 사회의 가족이 해체되는 모습을 폭로하는 데 그쳐 보이지 않는다. 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삶 그 자체에 다가가고자 하며 삶에 대한 근원적인 영역을 탐구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깊이 있게 관찰하며,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삶의 덧없음’을 씁쓸한 성찰로 보여 준다.

오즈의 영화에는 어떤 극적인 전환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작위적인 요소가 없다. 오히려 그의 영화에서 감정은 억제되어 있다. 카메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대체로 정지된 채 일본의 전통 가옥인 다다미에 앉은 이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차갑게 고정된 카메라의 시선 속에서 인물들 간의 대화가 이어질 뿐이다. 인물이 대사를 할 때도 겹치는 것 없이 캐릭터가 대사 전체를 하는 모습을 묵묵히 다 보여 준다. 여럿이 모여 있는 장면에서 인물들은 항상 비스듬히 사선을 그리고 앉아 있다. 아울러 그는 종종 인물이 등장하기 전, 후의 텅 빈 공간을 보여주고 평상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단순한 사물을 지그시 응시한다.

오즈의 영화에서 움직임은 카메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연이나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그가 프레임에 담는 공간은 인물을 뒷받침하는 배경이 아니라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 같다. 가령 <동경이야기>에는 산업화 시대를 대변하는 연기가 치솟는 높은 굴뚝, 기차, 배, 매번 지나치는 동네 거리가 자주 등장한다. 크고 작은 건물들과 빨랫줄에 걸린 빨래, 작은 선술집, 찾잔, 꽃병 하나에도 눈에 간다. 이것들은 영화가 진행되는 장소이며, 소품에 불과하지만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오즈의 영화가 특별하고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의 영화에서는 ‘사물 그 자체’가 느껴진다. 장식 없는 소박한 세계를 그저 바라만 보지만 그러한 표면의 잔잔함 아래 우리의 본성과 삶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표현을 담고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뭐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가 있어야 할 곳, 있어야 할 시간에 배치되어 있다. 기계적인 효과와 편집을 제거한, 비워져 있는 시간과 대화 ‘사이’의 미학, 일명 ‘여백의 미’라 칭할 수 있는 그의 스타일은 가장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 오며, 우리네 삶을 순화시키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동을 선사한다. (신선자)

 >>상영 일정
1월 24일 일요일 15:30 상영 후 시네토크_이명세
2월 2일 화요일 19:00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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