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삶은 왜 이토록 허무한가?

 

- 졸탄 후스자릭의 <신밧드>

 

 

 

 

졸탄 후스자릭의 <신밧드>는 ‘헝가리의 프루스트’라고 불리는 쥴라 크루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쥴라 크루디가 그러했듯(그리고 그 누구보다 프루스트가 그러했듯), 졸탄 후스자릭은 <신밧드>에서 한 남자가 죽음과 사랑이라는 화두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한 남자가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들을 만나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 간다는 면에서 이 영화는 짐 자무쉬의 <브로큰 플라워>나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과 유사점이 있다. 하지만 “삶은 아름다운 거짓말의 연속이다”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죽음을 앞둔 한 부르주아 남자의 삶의 공허함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두 영화와 방향을 달리 한다.

 

사실 <신밧드>는 죽어가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이미 죽은 남자가 내레이션과 이미지를 통해 기억을 소환해내는 영화다. 영화는 개화하는 꽃, 물에 떨어진 기름의 이동, 썩어가는 낙엽, 여성의 머리카락, 타들어가는 숯, 거미줄, 여성의 사진과 꽃, 떨어지는 빗방울 등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숏으로 시작하고, 이어서 죽은 남자가 마차에 실려 가는 장면과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클로즈업의 촉각적인 이미지들은 그 남자의 기억을 구성하고 있는 이미지들로 밝혀진다. 이렇듯 영화는 프롤로그에서 그 구성을 명확히 밝힌다. 즉 <신밧드>는 죽어가는 남성을 통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로만 남아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죽은 자의 목소리를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들과 그녀들의 나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집들, 그리고 낙엽이 깔린 길과 설원의 광활한 풍경 등의 이미지로 재구성된 기억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죽음 때문에 우리는 하루도 한가하게 지낼 수 없다”라는 사무엘 베케트의 말처럼, 신밧드는 하루도 한가하게 지내지 않고 사랑했던 여인들을 찾아가 그녀들과의 추억을 떠올려 보지만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삶은 공허하다. 그녀들은 항상 묘지 주위를 배회하는 사람처럼 그에게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는 그녀들에게 퇴폐적인 향락만을 갈구할 뿐이다. 이렇듯 물신주의자인 상류층의 한 남성이 느끼는 극도의 허무감은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다.

 

영화에서 간접적으로 제시하듯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후반이다. 이 시기는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의 등장으로 인해 전 유럽이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을 때이다. 이런 영화가 풍기는 기이하고 불안한 분위기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사회주의 혁명을 앞둔 시대의 분위기를 퇴폐적인 몰락의 이미지로 그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실패한 사회주의 국가가 어떻게든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려는 상황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 과오를 씻으려던 죽은 남자의 행위가 결국 들판을 가로질러 실려 가는 그의 주검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가 어떻게든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치지지만 결국은 몰락하고 실패했다는 것을 허무주의적 태도를 통해 우화적으로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구권의 영화에 대해 소개가 많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신밧드>는 보석 같은 작품이다. 한국에서 헝가리 감독에 대한 정보는 벨라 타르, 미클로스 얀초, 이스트반 자보와 같은 감독 정도일 것이다. <사이트 앤 사운드>의 마이클 앳킨슨은, 졸탄 후스자릭의 작품이 굴절된 시간 구조와 분절된 숏을 연결하는 빠른 몽타주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서 미클로스 얀초의 우아한 트래킹 숏과는 대비되는 미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동구권의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놨다는 점에서, 죽음의 의미와 삶의 공허함 그리고 사랑에 대한 사색을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분위기 속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죽은 것을 통해 세상을 둘러싼 기억들을 소환한다는 점에서 <신밧드>는 눈 여겨 봐야할 작품이다.

 

최혁규 /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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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한없이 건조한 레지스탕스 필름누아르

-장 피에르 멜빌의 <그림자 군단>

 

 

장 피에르 멜빌은 프랑스 영화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볼 때 비평가들이 정의하기 어려운 감독 중 하나이다. 그럴만한 사정은 있다. 미국영화를 추앙했던 누벨바그리언들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영화들에 미국의 양식을 이식하는 것을 회피했던 것에 비해 멜빌은 미국식 장르를 프랑스 영화계에 전용한 ‘파리의 아메리카인’이었다. 멜빌의 노작들은 장르(필름 누아르나 하드보일드 범죄영화)에 대한 페티시즘이 미학의 경지로 승화된 사례를 제공한다. 차갑고 건조한 그의 범죄영화는 냉소주의와 비관주의, 어둠과 연결되는 장르의 특성을 양식화된 표현을 통해 제공(<바다의 침묵> <도박꾼 밥> <사무라이>)했다. 

 

<그림자 군단>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조셉 케셀의 1943년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2차 대전 말기 프랑스 레지스탕스 조직 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필립 제르비에(리노 벤츄라)가 이끄는 조직의 요원들이 체포와 구금, 고문, 탈출을 반복하는 과정이 별 다른 사건없이 건조하게 묘사된다. 케셀의 소설이 레지스탕스에 대한 것이었다면 멜빌의 영화는 저항 행위 자체에 대한 것이다. 정치적 행위로서의 저항이 아니라 실존적 양식으로서 저항 행위를 다룸으로써 그는 텍스트의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삭제한다. 프랑스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깔았지만 영화는 범죄 누아르와 스파이 영화를 교배한 형태를 띠고 있다. 게슈타포를 경찰, 레지스탕스들을 범죄조직이나 첩보원으로 바꾼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멜빌은 레지스탕스 스토리(멜빌 자신이 점령기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를 범죄 누아르의 자장 안으로 밀어 넣는다.
 

어떤 장면들은 흡사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스타일에 대한 접근방식, 사운드, 특히 과묵한 인물들의 내면을 진술하는 나레이션은 노골적으로 브레송 풍이다. 극적이나 심리적이기를 거절하고 철저하게 현상적인 기술에 그치는 나레이션을 암송하는 인물들은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삶을 견디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림자 군단>에 만연한 것은 심리적 동기화나 감정을 배제한 냉혹한 묘사, 침묵, 생략이다. 이를테면 펠렉스나 장 프랑소와에게 행해지는 고문의 과정은 생략된다. 필립의 조직원들은 미래가 없을뿐더러 과거도 없다. 필립은 자신이 엔지니어라고 말하지만 직업은 그의 임무와 어떤 연관성도 맺지 않는다. 장르의 존재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따라 멜빌은 특정한 방식으로 입고, 말하고, 행동하고, 죽음을 맞는 인간을 묘사하는 것에 치중한다. 따라서 그들이 입는 옷과 중절모, 자동차, 총, 시가, 어둡고 한적한 거리에서의 달리기 따위가 더 중요하다. 

‘저항’이라는 세상의 요구를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묘사하는 이 영화가 유일하게 다루고자 하는 테마가 있다는 그것은 ‘죽음’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조직원 마틸드(시몬느 시뇨레)의 처형 장면에서 이런 사정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대장은 타살도 자살도 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마틸드의 운명을 단정하고 그를 암살하지만 죽음의 순간 마틸드의 눈빛은 이와 같은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그녀는 정말 조직이 자신의 명줄을 끊어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이 순간 <그림자 군단>은 언제나 죽을 수 있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짊어진 실존의 부조리함을 다룬 영화가 된다.

장병원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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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개막작 소개: 영화를 사랑한 영화

-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개막작은 관객들의 선택작이기도 한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이다. ‘영화를 사랑한 영화들’이란 주제의 10편의 작품들 가운데 관객들이 최종 선택한 작품이기도 하다. 고다르의 <경멸>, 버스터 키튼의 <카메라맨>, 페데리코 펠리니의 <8 1/2>을 제치고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영화 관람이 대중적인 오락거리이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영화관을 가던 1930년대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한 유쾌하면서도 통렬한 사랑이야기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이 떠오를 때 우리 귀에 들려오는 것은 뮤지컬 영화 <톱 햇>(1935)에서 프레드 아스테어가 부르는 노래 “칙 투 칙(Cheek to Cheek)”이다. “천국에, 나는 천국에 있어요”라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이 노랫말은 아마도 <카이로의 붉은 장미>의 여주인공 세실리아(미아 패로)가 영화를 볼 때의 기분과 같을 것이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콤비가 출연했던 <톱 햇>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얼어붙은 관객들의 마음을 달래주었고, 세실리아 역시 그런 관객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1930년대 뉴저지에서 시작한다.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세실리아는 실직한 남편의 구타와 음주, 외도에 못 견디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직장에서의 잦은 실수 때문에 결국 해고당하고 만다. 앞길이 막막해진 세실리아는 눈물을 훔치며 늘 그랬듯 극장으로 향해 영화 속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관람한다. 그때 그녀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세실리아가 좋아하는 영화 속 캐릭터인 톰 벡스터(제프 대니얼스)가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와 말을 걸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감독 우디 앨런은 영화 속 허구의 인물이 현실세계로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긴급한 상황에서 닥치는 대로 잡아탄 자동차는 움직이지 않고, 조명은 로맨틱한 순간에 알아서 꺼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영화와 현실이 같은 세계에서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의 양립불가능성이 현실 앞에서 영화가 쓸모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불어넣어 현실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세실리아는 남편에게 얻어맞는 벡스터를 보고 소극적이었던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대항한다.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해지는 건 영화와 현실의 중간 단계, 즉 톰 벡스터를 연기한 배우 길 셰퍼드가 개입하면서부터다. 그는 자신의 복제인간이 영화 밖으로 튀어나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할리우드에서 곧장 뉴저지로 달려온다. 셰퍼드는 세실리아에게 사랑 고백을 하면서 벡스터와 자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요구한다. 세실리아는 벡스터가 아닌 현실에서 살아가는 셰퍼드를 택한다. 허구와 현실 가운데 허구를 선택하는 일은 우디 앨런의 말을 빌자면 ‘정신 나간 짓’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선택한다는 것은 ‘상처를 받는 것’이기도 하다. 셰퍼드는 혼자 할리우드로 떠나버리고 세실리아는 버림받는다. 그녀는 다시금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즉 극장으로 향한다. 우디 앨런은 영화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낙관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냉소도 하지 않는다. 다만 스크린을 응시하는 세실리아의 얼굴을 우리로 하여금 마주하게 만든다.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세실리아의 표정은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보는 우리의 표정과 닮았다. 영화와 현실이 서로를 거울처럼 마주보는 통렬한 순간이다.

 

송은경 /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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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A to F: 액션에서 판타지까지

 

친구들의 추천작을 소개합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인들이 참여해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를 후원하기 위해 해마다 1월에 열리는 가장 빠른 영화제다. 올해로 8회를 맞이한 이 영화제에는 감독, 배우, 제작자, 음악인, 시인, 평론가 등 총 17명이 참여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직접 선택해 상영하고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된다. 1 17일 개막해 2 24일까지, 한 달 반 동안 열리는 가장 긴 영화제에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선택한 영화들을 6개의 키워드로 소개한다. (신선자 / 서울아트시네마 홍보팀장)

 

 

 

 

 

 

Action 액션

 

 

황야의 7 The Magnificent Seven (존 스터지스, 1960)

멕시코 국경지대의 어느 작은 마을에 도적단이 들이닥쳐 곡식을 훔쳐가고 주민들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보안관도 이들을 돕기를 거부하자 마을 사람들은 자기 재산을 팔아 돈을 마련해 총잡이를 고용하기로 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총잡이 크리스를 이 일의 적임자라 생각하고 설득에 들어간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의 서부극 버전 리메이크.

 

오승욱(영화감독)

“이 영화는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스티브 맥퀸의 팬이 됐고, 걸음걸이 하나로 자신의 캐릭터를 설득시키는 율 브리너나 제임스 코번, 하모니카를 부는 찰스 브론슨 등의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오랜만에 필름으로 상영하는 것이니 만큼 다 같이 즐겁게 봤으면 좋겠다.

 

 

그림자 군단 L'Armee des ombres (장 피에르 멜빌, 1969)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대장인 필립 제르비에는 동료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포로수용소로 보내진다. 가까스로 탈출한 필립은 마르세이유에서 동료들과 합류하여 자신을 밀고한 배신자를 처형하려 한다. 멜빌 자신의 전쟁경험을 토대로 2차 대전 시기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을 다큐멘터리적 화법으로 생생하고 현실감 넘치게 그린 작품.

 

변영주(영화감독)

“멜빌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밀고자>이지만, 이번 영화제에선 <그림자 군단>을 추천한다. 2013년의 이 공간과 가장 ‘어울린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인류를 사랑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인류 전체를 사랑하면 할수록 특정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서 사랑하는 일은 적어진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특정한 사람들을 혐오하면 할수록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이 뜨겁게 불타오른다」”

 

 

 

좋은 친구들 Goodfellas (마틴 스콜세지, 1990)

헨리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 마피아의 잔심부름을 도와주며 어둠의 세계를 마음 속 깊이 동경한다. 특히 마피아의 해결사인 제임스를 롤모델로 삼아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헨리는 친구인 토니와 함께 본격적인 마피아의 길을 걷기 시작하지만, 그 길에는 항상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윤종빈(영화감독)

<좋은 친구들>은 매해 꼭 한 번은 보고 영화 준비할 때도 보면서 지금까지 서른 번도 넘게 본 영화다. 처음 볼 때는 좋았다가 나중에 다시 보면 별로인 영화들이 있는데, 이 영화는 주제적인 면이나 스타일적인 면에서 볼 때마다 새롭고 지루함이 없다. 주로 DVD로만 봤었는데, 이번 기회에 관객 분들과 함께 꼭 필름으로 보고 싶다.

 

Battle 전투

 

 

 

칠레 전투 La batalla de Chile (파트리시오 구즈만, 1975-1978)

민주적 투표로 대통령으로 선출된 아옌데의 민중연합정권은 개혁을 시도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반정부세력은 무장공세를 퍼붓는다.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은 칠레의 민주화 과정과 피노체트의 쿠테타, 그리고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을 기록했다.

 

김동원(영화감독)

<칠레전투>는 다큐멘터리의 힘과 미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은 사회주의자 아옌데 대통령 집권 3년간의 정치적 실험과 그 비극적 종말을 냉정한 목소리로 4시간여에 걸쳐 이야기한다. 그 안에는 광범위한 계급투쟁의 실체와 그 과정이 치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분노와 절망을 견디며 희망을 놓지 않는 감독의 의지도 함께 담겨있다.

 

 

남부군 North Korea's Southern Army (정지영, 1990)조선중앙통신사의 기자인 이태는 한국전 당시 전주까지 내려와 취재를 한다. 낙동강까지 내려왔던 인민군은 다시 북쪽으로 쫓겨 가고, 이태는 취재를 위해 남부군의 진로를 따라가며 지리산 빨치산의 기록을 담당하는 동시에 전투에도 참여한다.

 

민규동(영화감독)

“요즘 정지영 감독님이 만드신 새로운 영화들을 보면서 나의 관심사와 영화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자극했던 감독님의 옛날 영화가 떠올랐다. <남부군>은 거의 20년 전에 봤던 영화인데, 이번 기회를 통해 한 감독의 연대기를 보는 동시에 한국 영화의 연대기까지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역사에 대한 왜곡도 많고 논쟁도 많은 이런 중요한 시기에 역사적 논쟁의 현장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를 보는 것이라서 더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Characters journey 여정

 

 

 

라쵸 드롬 Latcho Drom (토니 갓리프, 1993)

집시 음악의 매력을 생생하게 포착한 음악 다큐멘터리. 감독은 집시들의 여행을 따라 인도에서 이집트, 루마니아, 터키, 스페인을 여행하며 이들의 다양하고 독특한 음악을 기록한다. 음악은 이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인 동시에 기쁨의 순간을 함께 하는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1993년 깐느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상 수상.

 

하림(가수)

“북인도의 하층민으로 살던 만가니야르는 어느 날 여행을 시작한다. 그 여행은 혼란스러운 세상의 시작부터 예정된 순례길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행을 하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천 년 전부터 시작된 여행은 아직도 멈출 수가 없다. 그들은 아직은 세상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투 더 와일드 Into the Wild (숀 펜, 2007)

좋은 직장과 안정적인 삶을 뒤로하고 자연 속에서 살고자 했던 크리스토퍼 맥켄들리스라는 실제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만든 숀 펜의 네 번째 연출작. 크리스는 명문대를 졸업하자마자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알래스카를 향해 떠난다. 모든 것이 낯선 여행길에서 크리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지혜를 얻지만 문명세계를 떠난 그의 여행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김경주(시인)

“여행은 보이지 않던 삶의 결을 보여주고 우리 눈에 가려진 시야를 맑게 해준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는 한 청년이 길을 떠나며 자신과 관계했던 기나긴 상실을 하나씩 극복해가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야기이다. 배우 숀 펜의 연출과 펄 잼의 사운드트랙으로 다시 태어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잊지 못할 여행의 여운과 삶에 대한 새로운 자장력을 선물할거라고 믿는다.

 

Dance

 

 

 

페임 Fame (알란 파커, 1980)

뉴욕의 예술고등학교에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아이들이 미래의 예술가를 꿈꾸며 연기, 음악, 무용 등 각자의 분야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개성이 너무 강한 아이들은 기존의 교육제도나 가정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만 그때마다 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예술가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이자람(가수)

“그저, 관객들과 함께 영화 <페임>을 보고 나면 모두가 기분도 좋아지고 가슴도 뜨거워질 것 같아서 추천했다. 나 역시 그렇다.

 

 

플래시댄스 Flashdance (애드리안 라인, 1983)

낮에는 공사장의 인부로 일하고 밤에는 클럽의 댄서로 열정적인 춤을 추는 알렉산드라는 춤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무용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한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꿈을 응원해주는 친구들과 거리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춤의 아이디어를 얻고, 연인인 닉의 응원과 함께 오디션의 기회를 잡는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오마주를 낳고 있는 80년대 댄스영화의 대표작.

 

이명세(영화감독)

“이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보면서 감각적인 느낌을 확인하고 싶다. 특히 <플래시댄스>는 애드리안 라인의 초기작이기도 한데,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광고적인 느낌, 특히나 조명과 음악의 사용이 특출났다. 새로운 감각을 다시한번 느끼고 싶다.

 

Emotions 감정

 

 

 

세이사쿠의 아내 作の妻 (마스무라 야스조, 1965)

요시다 겐지로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무라타 미노루 감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러일 전쟁 시대의 궁핍한 농촌 마을에 사는 오카네는 사랑하는 남편 세이사쿠를 전쟁에 내보내지 않기 위해 아내 무시무시한 일을 벌인다.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여자의 모습과 그 소름끼치는 면모에 깃든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김태용(영화감독)

“세이사쿠의 아내는 아름답다. 그녀는 때론 위태롭고 항상 절실했고 결국 충만했다. 기만과 망상, 탐욕이 지배하는 전쟁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사랑이라 믿는다면 가장 파괴적인 집착이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었을 것이다. 차가워지는 이 시절에 세이사쿠의 아내의 뜨거운 피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

 

 

 

안개마을 Mist Village (임권택, 1982)

조용한 산골마을의 초등학교로 갓 부임온 수옥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앉아 있는 깨철을 만난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 보이지만 순간순간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는 깨철의 존재를 이상하게 여긴 수옥은 그의 이상한 행동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러는 도중 수옥은 깨철과 마을의 이상한 분위기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심재명(명필름 대표)

“이 영화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폐쇄적인 집성촌 속 암묵적 성의 거래를 통해 인간들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로 작은 이야기로 큰 주제에 도달하는 임권택 감독의 장인적 재능이 빛나는 작품이다. 30여년 전 이 영화를 본 곳이 바로 허리우드 극장이었어요. 같은 공간에서 이 영화를 다시, 관객들과 함께 본다는 것이 무척 설렌다.

 

 

 

우묵배미의 사랑 A Short Love Affair (장선우, 1990)

봉제기술자 배일도는 술집 출신의 아내와 우묵배미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치마공장에 취직한 배일도는 함께 일하게 된 민공례에게서 아내에게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을 느낀다. 공례 역시 폭력만 일삼는 남편보다 일도에게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산업사회의 그늘에 대한 비판과 주변인들에 대한 연민을 애틋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

 

윤성호(영화감독)

“기형적으로 편중되는 산업의 문제를 차치하면 한국영화 르네상스다 싶던 어느 날 밤 문득 케이블에서 방영해주는 <우묵배미의 사랑>을 보고 다시 각성했다. 지금은 또 이런 대중영화 한 편을 못 만든다는 걸. 이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고만고만한 샛길 사랑이야기를 큰 스크린으로 함께 하고 싶다.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미셸 공드리, 2004)

조엘은 충동적으로 떠난 바닷가에서 파란색 머리를 한 클레멘타인을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성격차이로 인한 싸움이 반복되자 둘은 헤어지고, 그 충격과 아픔 때문에 괴로움을 겪던 조엘은 기억을 지워준다는 회사를 찾아간다. 이제 조엘의 옛기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하고, 조엘의 마음 속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배수빈(배우)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나요?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가오는 사랑. 누군가는 사랑을 교통사고라고도 한다. 나는 사랑을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랑에 아프고 힘들었다고 해서 행복한 기억들을 다 지워버리는 것이 정답일까?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사랑에 아파했고 사랑을 꿈꾸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하고 싶다.

 

Fantastic 환상성

 

 

지옥 인간 From Beyond (스튜어트 고든, 1986)

과학자 크로포드는 에드워드 박사와 함께 인간의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실험에 몰두한다. 실험이 성공하는 순간 끔찍한 존재와 마주친 크로포드는 정신병원에 갇히고, 실험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레이가 크로포드를 찾아온다. 결국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실험을 시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결과와 마주한다. H.P. 러브크래프트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이해영(영화감독)

“이것은 말하자면 중고등학교 때 즐겨듣던, 악마를 숭배하는 어느 데쓰메탈 밴드의 백판 LP를 오랜만에 꺼내듣는 기분과 비슷하지 싶다. 위악적인 취향이라면 일단 덮어놓고 피부터 끓던 십대시절, 유독 강렬히 각인됐던 영화다. 무엇보다 내게도 스크린으로서는 첫 경험이니 십대 때 마냥 대책 없이 설레기도 한다. 극단적인 신체 변형의 80년대식 즐거움. 껄렁한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즐기고 싶다.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 Cowards Bend the Knee (가이 매딘, 2003)

데뷔 이래 꾸준하게 실험적인 형식의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가이 매딘의 2003년 작품으로 아이스하키 선수가 가족들과 겪는 일련의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의도적으로 무성영화의 스타일을 차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슈퍼 8mm 카메라로 촬영한 필름의 질감과 스크래치마저 전면에 드러내며 이미지와 사운드의 기묘하고 매혹적인 불일치를 만들어낸다.

 

김곡(영화감독)

“우린 돈을 많이 버는 영화도, 웰메이드한 영화도 부럽거나 두렵지 않다. 그러나 가이 매딘의 작품들은 질투가 나며, 그의 신작 소식이 들릴 때마다 두려움에 치를 떤다. 그의 작품들은 우리를 얼어붙은 아이스하키 마리오네트로 만들어버리는 마력이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매딘의 필름들을 훔쳐서 인천 자유공원에서 베고 잠들고 싶다.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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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감독이 선택한 영화 <로제타>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거의 빈자리 없이 관객들이 꽉찬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매서운 한파보다 더 무서운 취업 한파의 아픔을 더욱 실감하게 해준 다르덴 형제 감독의 <로제타>에 대해 정지우 감독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를 함께 볼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기쁨을 표시했다. 그의 찬사대로 시네마테크를 찾은 친구들은 거의 쇼크에 가까운 감정의 동조를 경험할 수 있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로제타>는 비평가들에게는 영화 미학과 윤리학의 결합이 가장 잘 구현된 시금석 같은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로제타>와 다르덴 형제의 영화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정지우: 먼저 여러분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게 된 데 일조한 것이 자랑스럽다. 볼 때마다 숨차다. 몇 번을 봤는데도 마지막에 숨이 차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연약하고 부패하기 쉽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려는 마음을 끝까지 고수하는 주인공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연민을 느낀다. 마지막에 새로 받아가는 가스통을 들고 가는 로제타의 모습은 너무 무겁다. 두 감독의 시선과 견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고개 숙이게 된다.


김성욱:
마지막 장면에서 로제타는 자살을 시도하는 듯한데, 그것도 모르는 남자는 오토바이를 몰고 와 로제타를 훼방을 놓는다. 그 느낌이 영화의 여운을 주는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을 몰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다르덴 형제가 특별히 주목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정지우: 사회적 주제, 즉 일할 기회가 없는 상황에 놓인 젊은이들에 대한 언급을 이런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게 경이롭다. 환경 때문에 인간이 어디까지 삐뚤어질 수 있는지를 형상화한 작품들은 많았지만, 다르덴 형제는 인물을 끝까지 믿고 의지하고 변치 않을 것을 확신한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을까? 픽션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저만큼 버틸 수 있다는 것은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어떻게 저기까지 인물을 믿을 수 있을까? 자신을 도와 준 남자를 고발해서 기회를 갖게 된 것까지의 처절한 과정은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자신의 그릇만큼 인간을 그리는데, 이 두 분은 참 경이롭다고 생각한다. 계속 봐도 그렇다.


김성욱:
감독이 믿고 있는 것을 표현했기 보다는 인물이 갖고 있는 것을 믿었다는 것이 작가의 특별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지우: 영화라는 게 전지전능한 감독의 역할로 모든 것을 허구로 만들 수 있지만 어느 순간에 영화를 만들다보면 내가 믿을 수 없어서 장면을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배우가 되묻는 경우에 거짓말을 자신 있게 할 것인가, 말을 안 하거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순간이 닥치는데, 이 영화는 내가 감독이었다면 자신 없었을 거다. 밀가루 부대를 안고 놓지 않으려는 장면을 찍을 때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 카메라 뒤에서 버텨내고 있는 감독이 무시무시하다. 사회의 이런 일말의 단서들이 계기가 되어 내가 믿는 수준과 한계의 무의식이 영화에 반영 된다. 사람을 믿고 있는 감독의 끈기가 대단하다.


김성욱:
감독이 어떤 것을 이해했다기보다 소녀를 이해했다고 보이는데, 가령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물에 빠지는 순간 카메라는 그녀가 손을 놓았는지 아니면 미끄러졌는지 분명하게 그리지 않는다.

정지우: 이 영화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다큐 같은 느낌을 주지만 아주 정교한 미스터리 영화처럼 계산된 움직임이 자로 잰 듯 수행되고 있다. 남자가 물에 빠지는 순간 카메라가 손을 정확하게 안 보여주는데, 만약 카메라가 손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악마적 눈빛을 보여줬다면 서스펜스가 돼서, 이 남자를 어떻게 곤경에 빠지게 할까 기대했을 것이다. 사장의 아들도 아주 잠시 보이는데 이런 방식으로 정보가 매우 정교하게 제공된다. 편집과 사운드의 창조적 활용도 탁월하다. 엄마의 캐릭터도 모성이 없고 짐이 되어 딸을 죽고 싶게 만든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희생적인 엄마에 의해 보호받고 자란 느낌이다.


김성욱:
로제타라는 소녀는 보호받을 여지가 전혀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있다. 제대로된 부모도 따를 수 있는 인물이 없는 수직적 관계의 부족과, 다른 동료가 한 명 해고되어야 자기가 일할 수 있는 수평적 상황의 한계도 있다. 그 어느 쪽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상태인데, 그런 관점에서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가는 것은 적절하다. 그것은 이 소녀의 고립무원의 상태를 보여주면서 그녀가 관계해 가질 수 있을수 있는 공동성을 탐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르덴 형제의 전매특허처럼 보이는 카메라의 위치와 인물을 따라가는 방식, 움직임의 존재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정지우: 다르덴 형제가 사용했던 같은 종류의 16미리 카메라로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다르덴 형제의 작품과 비교될까봐 포기한 경험이 있다.(웃음). <로제타>는 계획되어 있고 찍기 어려운 방식으로 찍혀있다. 심도가 얕아서 포커스를 맞추기 힘든데도 정확하고 계획적으로 카메라를 운용해 완벽하게 연출자의 의도대로 화면을 통제하고 있다. 할리우드 문법인 시선과 그 대상으로 구성되는 방식에서 자유롭다. 무엇을 보는지 어디로 가는지 정보가 소개되지 않는데도 큰 틀에서 보면 정서적으로 이해가 간다.


김성욱:
마지막 장면의 카메라 느낌은 볼 때마다 큰 울림이 있다. 그 전까지는 여자가 바라보거나 카메라만 있고 인물은 없다는 느낌이 드는데, 마지막 장면의 로제타의 시선에 바깥에는 그나마 남자가 있다.

정지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남자가 일으켜줄 걸로 생각되는데 위로가 된 건지, 친구가 생긴 건지 죽기로 짐작되는 걸 멈출지, 아무튼 그 남자가 조금 위로는 될 것 같은 느낌이긴 하다. 위대한 영화의 어떤 단계는 아무리 참혹하게 밀어붙여도 어떤 방식으로든 보는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


김성욱:
어떤 구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려는 느낌이다. 이런 영화를 봤을 때 카메라의 시선은 알겠지만, 인물의 심리는 알기 힘들다.

정지우: <아들>이란 영화의 끝은 더 혹독하다. 갑자기 블랙이 되면 모든 관객이 일어나야 할지 머쓱해하며 감정의 동조가 된다. 예술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순간적인 이동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자리를 흔들기 때문에 불쾌하고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예술적 경험으로써 훌륭할 수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전주 영화제에서 허우 샤오시엔의 <해상화>를 보았는데 단체로 온 고등학생들이 내내 졸다가 엔딩에서 박수를 쳤다. 그들 중 일부는 그들이 느낀 영화적 경험을 분명 어떤 순간에 회고할 수 있을 것이다. 자다가 나가도 다음에 또 와서 보게 되는 소중함이 바로 그것이다. 불편하고 당혹스러운 영화라도 보게 만드는 시네마테크의 위대함이 아닌가.(웃음)



관객1: 영화 상영 전에 이해영 감독과 신하균씨가 추천한 <부기 나이트>가 매진되었다. <로제타>도 거의 매진이었다. 감독님의 승리라고 본다.(웃음) 다르덴 형제의 인터뷰 중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현실에 참여하기 위함이라 했다. 그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영화를 만들고 흥행에도 성공하는 것 같다. 흥행을 무시할 수 없는데 어떤 타협을 하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박해일씨와의 비화도 듣고 싶다.

정지우: 난 박해일을 사랑한다. 부부동반으로 만날 때도 그렇게 말한다.

김성욱: 왜 사랑하나? 물론 사랑엔 이유가 없겠지만.(웃음) 박해일이란 배우는 뭔가 평평하고 매끈한 마스크의 미묘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얼굴의 표면 아래 무엇이 있을지가 궁금하다. 감독으로서의 느낌은 어떤가.

정지우: 소년 안에 있는 범죄자의 느낌에 매혹 당했다. 좋은 배우들은 예민함과 성숙함을 모두 갖고 있다. <은교>라는 작품에서 분장을 하는데 8시간이 넘고, 지우는데만 2시간이 걸려도 그걸 버틴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상업적 타협은 어수룩한 나는 하기 힘들다. 마케팅 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관객들은 잘 속지 않는다. 타협을 통해 혹은 관객을 속여 가며 돈을 쓰게 할 수는 없다. 그냥 죽도록 좋고 이걸 꼭 해야겠고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방식으로 접근할 뿐이다. 관객의 마음을 미루어 안다는 것은 거짓이다. 내 영화 세 편중 한 편만 수익을 거뒀고, 나머지는 손실을 보았다. 그래도 네 번째 영화를 찍는다. 잘 될 것 같아서가 아니라 로제타가 밀가루 부대를 잡고 있듯이 그렇게 버티고 하는 거다.


관객2:
‘은교’라는 소설을 봤는데 내러티브가 명확하거나 줄거리를 따라가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매력으로 영화화하기로 한 건지,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 궁금하다.

정지우: 대중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 투자를 받은 것 같다.(웃음) 소설은 늙어가는 기분이 슬프다는 생각을 하는 도중 접하게 됐고, 영화까지 만들게 됐다. 사람 마음 밑바닥까지 가는 감정들에 대해 매료되는 것 같다. 로제타처럼 사람 마음의 끝까지 가면 어떤 기분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느끼며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넉넉하게 촬영을 마쳤다.


관객3:
로베르 브레송의 <무세트>가 떠올랐다. 소외된 여자와 숲과 호수, 그리고 물에 빠져 자살하는 장면까지 다르덴 형제가 의식한 것은 아닌가.

정지우: 다르덴 형제가 브레송 영화를 봤을 것으로 생각된다. 브레송의 연기 연출 방식과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배우에게 인과나 실제 감정의 요구가 아니라 전체적 맥락의 공감만 있고 정확한 디렉션 없이 많은 반복을 통해 의식적인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영화의 새로운 미학과 움직임을 만들고 새로운 감정을 환기시킨다. 다르덴 형제는 지금 벨기에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보다 주목했다고 본다.

김성욱: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 하지만, 브레송의 <무세트>는 몸의 무게와 영혼적인 은총, 개인과 실존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로제타>는 사회성과 공동성의 추구에 훨씬 무게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르덴 형제는 원래 다큐를 만들었고 픽션으로 넘어올 때 현실의 개입을 증가시키고자 했다. 자신들의 동네에서 공장은 폐쇄되고 파업은 실패했고 노동자는 공동체는 상실되고 파괴되었다. 자연스럽게 공동체는 불가능한 것이 된다. 로제타 같은 이들을 보호해 줄 노조나 전 세대가 없어진 것이다. 불가피하게 픽션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지우: 영화를 보고 많은 분들이 늦은 시간까지 남아 있는 게 위안이 되고 정말 훌륭하다. 이렇게 사시면 행복해진다.(웃음) 나도 얼른 관객의 입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정리: 김준완(관객에디터) 

사진: 최용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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