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1. 10:42ㆍ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오즈 야스지로는 가장 일본적인 감독이자 소시민극이라 불리는 독특한 미학적 스타일로 이후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친 감독이다. 또한 그는 현대사회 속 가족의 의미와 해체에 대해 가장 깊이 천착하고 생각했던 감독으로 거의 모든 영화에서 일관되게 가족을 다룬다.
<동경이야기>(1953)는 그러한 오즈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잘 알려진 명실상부한 오즈의 대표작으로 내러티브나 스타일 모든 측면에서 그의 전략이 고스란히 농축된 작품이다. 스토리라인은 이보다 더 단순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조롭다. 영화는 시골에 사는 노부부가 오랜만에 자식들과 손자를 보기 위해 동경에 온 여정을 그린다. 하지만 사는 게 바쁜 자식들은 그들의 방문을 귀찮아하며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오히려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며느리만이 그들을 반기며 극진히 모신다. 노부부는 그러한 자식들에게 서운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자식들이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에 만족하며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며칠 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이제는 거꾸로 자식들이 시골집에 오지만 누구나 한번은 겪는 절차인 듯 담담히 장례식을 치루고 곧 동경으로 상경한다.
오즈의 영화에서 움직임은 카메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연이나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그가 프레임에 담는 공간은 인물을 뒷받침하는 배경이 아니라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 같다. 가령 <동경이야기>에는 산업화 시대를 대변하는 연기가 치솟는 높은 굴뚝, 기차, 배, 매번 지나치는 동네 거리가 자주 등장한다. 크고 작은 건물들과 빨랫줄에 걸린 빨래, 작은 선술집, 찾잔, 꽃병 하나에도 눈에 간다. 이것들은 영화가 진행되는 장소이며, 소품에 불과하지만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오즈의 영화가 특별하고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의 영화에서는 ‘사물 그 자체’가 느껴진다. 장식 없는 소박한 세계를 그저 바라만 보지만 그러한 표면의 잔잔함 아래 우리의 본성과 삶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표현을 담고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뭐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가 있어야 할 곳, 있어야 할 시간에 배치되어 있다. 기계적인 효과와 편집을 제거한, 비워져 있는 시간과 대화 ‘사이’의 미학, 일명 ‘여백의 미’라 칭할 수 있는 그의 스타일은 가장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 오며, 우리네 삶을 순화시키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동을 선사한다. (신선자)
>>상영 일정 1월 24일 일요일 15:30 상영 후 시네토크_이명세 2월 2일 화요일 1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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