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이해영 감독과 배우 신하균이 추천한 <부기 나이트>의 상영과 시네토크가 있었다. 이례적으로 현장예매가 시작한 당일에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남긴 만큼 현장 분위기 또한 떠들썩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시네토크는 팬 미팅의 분위기보다는 진지한 논의의 자리였다. 다소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시네토크 마지막까지 들뜬 분위기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현장을 옮긴다.

 

허남웅(영화 칼럼니스트) : <부기 나이트>를 추천한 이유에 대해 듣고 싶다.

이해영(영화감독) :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가 '이것이 영화다!'이고 그것에 관한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연스럽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떠올랐다. 그의 모든 작품들이 훌륭하지만 <부기 나이트>라는 영화가 가장 영화적인 유희를 주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모던함이나 기술적 완성도가 훌륭한 지점들을 스크린으로 보면 즐거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추천했다.


허남웅 :
신하균 배우님께서도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언제 이 영화를 처음 보셨고 어떤 점에서 좋으셨는지, 어떤 배우의 연기가 좋았는지도 궁금하다.

신하균(영화배우) : 90년대에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많이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오늘 다시 보니까 새롭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배우다 보니까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 깊었고. 개인적으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스카티 역)을 좋아한다. 잠깐 나오지만 인상적으로 연기를 한다. 줄리안 무어(앰버 역)도 좋았다.


허남웅 :
캐릭터를 볼 때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부분은 어디에 있나. <페스티발>의 장배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신하균 : 특별히 어떤 점에서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다. 장배는 모든 남자들이 갖고 있는 최악의 모습을 다 갖고 있는 인물이라 재밌을 것 같았다. 이런 역할과 이런 시나리오는 다시 못 만날 것 같았고 너무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허남웅 :
이번에 친구들 영화제의 상영작을 보면 90년대 작품들이 많다. 감독님에게 클래식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부기 나이트> 같은 경우는 현대의 클래식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이해영 : 난 영화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보통 클래식이라고 하는 영화들은 으레 이런 영화는 봐야하니까, 교과서 같은 느낌으로 접한 영화가 대부분이다. 그 중에 내게 직접적인 감흥을 준 영화는 적었다. <부기 나이트>가 어떤 분들에게는 얼마 안 된 영화 같은 느낌일수 있지만, 제게는 나를 영화로 이끌었던, 끊임없이 영화적 로망을 갖게 만들고 영화를 지향하게 하는 영화다.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부기 나이트>를 봤고 그 시기부터 여전히 나를 채찍질하거나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영화로 작용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게는 옛날의 대선배들이 만든 그 어떤 영화보다 어떤 맥락에서는 클래식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허남웅: <부기 나이트> 같은 경우 폴 토마스 앤더슨이 시나리오에 카메라 촬영 기법이나 어느 방면으로 찍을 것인지 등을 상세하게 적었다고 한다. 감독님께서는 현장에서는 어떻게 배우들과 호흡하셨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 나는 감독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원했거나 꿈꾸고 있는 뉘앙스, 그림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사람. 어차피 구현하는 것은 배우니까. 캐스팅을 하는 순간 그 캐릭터는 배우의 몫이고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은 미미하다. 그 뒤로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그 배우에게 내가 어떤 것을 원하고 있고 꿈꾸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정도가 최대치라고 생각한다.



관객1 :
<천하장사 마돈나>와 <페스티발>을 인상 깊게 봤다. 두 영화 다 인물들이 비주류, 언더라는 인식이 강하단 인상을 받았다. 감독님은 영화들을 통해서 비주류의 사람들을 위해 대변인으로서 영화를 찍으시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 대변인을 자청한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냥 내가 생각할 때 내가 메이저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결핍된 삶을 살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안온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정서가 쉽게 나오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안온한 삶을 사는 다수의 사람들이 다수라는 이름으로 소수에게 폭력적인 시선이나 언행을 일삼는 행태에 대한 기본적인 짜증과 불쾌함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소위 마이너한 사람들을 챙겨보고 싶고 돌아보고 싶다.

관객2 : <카페 느와르>에 롱테이크가 많은데 찍을 때 특별히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감독님도 영화에서 롱테이크를 많이 사용하실 의향이 있는지도 묻고 싶다.

신하균 : 롱테이크는 기술적인 부분이라 연기할 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연극할 때는 긴 호흡으로 한 시간 반, 두 시간 연기를 하니까. 내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해영 : <부기 나이트>에 수려한 롱테이크가 많이 나온다. 롱테이크는 이렇게 써야한다는 훌륭한 레퍼런스를 많이 주고 있다. 오프닝 때 '부기 나이트'라는 네온간판으로 시작해서 길거리를 훑다가 클럽 안으로 들어와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마지막에 더크 디글러까지 가는 그 롱테이크가 굉장히 수려하고 놀라운데, 그것이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정서라고 생각한다. 사실 롱테이크라는 것이 어떤 영화에서는 나태함,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감흥을 크게 주지 못하는 독립영화 같은 경우가 그렇다. 컷이 길어지면 손쉽게 예술영화처럼 보인다. 롱테이크를 잘 사용하고 싶은 의향은 물론 있다. 롱테이크는 감독의 연출력을 가장 쉽고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부기 나이트>나 <살인의 추억>의 논두렁 장면 같은 수려한 테크닉을 스스로 구사할 수 있단 자신감이 들기 전까지는 채를 썰 생각이다. 잘게 말이다.(웃음)




관객3: 연극 연출을 공부하고 있다. 연극의 경우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연습을 해서 러닝타임 동안만 연기를 한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경우는 카메라로 찍고 같은 장면을 반복하기도 한다. 게다가 오랜 기간 동안 찍는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그 역할에 집중하는지 궁금하다.

신하균 : 연극과 똑같다. 충분히 대화하며 조율할 시간이 있다. 매번 테이크를 갈 때마다 디렉션을 주시면 맞춰서 가기도 하고, 새로운 느낌이 있으면 제안을 하기도 한다. 배우마다 다를 것이다. 감정이 끊기기도 하고 촬영 기법에 따라서 연기를 반복해야할 때도 있지만 경험을 하다 보면 기술적인 부분이라 적응이 된다.

관객4 : 두 가지 궁금증이 있다. 하나는 더크가 친구들과 가짜 마약을 팔러 갔을 때 리드(존 C.라일리)가 빨리 나가자고 할 때, 빨리 안 나가고 더크의 얼굴이 클로즈업 돼서 뭔가를 계속 생각하는 표정이 있다.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고 두 번째는 영화가 마지막에 가서 결말이 가족적인 분위기로 끝난다. 잭은 아버지, 앰버는 어머니 같고 나머지도 가족 구성원처럼 보였는데 왜 감독은 결말을 가족처럼 구성해서 끝냈을까 궁금하다.

이해영 :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희망은 신도 이 세상도 주지 않은, 모두에게 버려졌던 사람들이 아득바득 어떻게든 살아남겠단 의지력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실에 대한 인지력이 약간 떨어져 있고 그럼에도 정신을 추슬러서 이성을 되찾는 그 생존력을 표현하는 얼굴이 아니었을까. 사실 가짜 마약을 팔려는 신을 그대로 빼도 말은 된다. 푼돈을 벌려다 수모를 당하고 잭에게 눈물로 찾아가 사과를 한다. 이렇게 하면 굉장히 쉽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많은 투자자들이 그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화시키지 않고 정말 바닥까지 한 번 더 보내고 그 바닥에서 어떻게든 살아서 나오려는, 끈질긴 악과 깡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영화는 굉장히 명징하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든다. 가족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영화 초반에 잭과 앰버와 롤러걸이 차를 타고 가다가 더크를 태우는 장면이 있다. 그 바로 다음에 왠지 마약을 하러 가거나 술을 먹거나 유흥업소에 갈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는다. 누가 봐도 엄마 아빠와 아들 딸 같은 일종의 대안가족 같은 방식으로 이 관계를 묶어주고 이 가족이 시대의 변화와 산업의 몰락, 사람들의 방탕함으로 붕괴 됐다가 다시 뭉쳐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5 : 감독님께서는 훌륭한 감독이 되기 위해서 어떤 개인적인 노력을 하시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감독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이야기를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얻으려고 하시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 특별히 노력하는 것은 없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귀를 많이 열어놓고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나이도 먹고 감각도 떨어져서 많은 것이 남아있지 않지만 그 정도의 노력을 하는 편이다. 영화는 감독과 배우, 스텝 그 사이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스란히 내 입맛대로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던 것은 감독이 이야기를 꾸준히 해야만 그 삼각구도의 한 꼭짓점이 뾰족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이 구도의 긴장감이 팽팽해지고 영화가 잘 나온다고 생각한다.

허남웅 : 시나리오가 굉장히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의 계획과 오늘 관객들과 함께한 소감이 궁금하다.

신하균 : 굉장히 많지는 않다.(웃음) 검토 중이고 아마도 다음엔 영화를 하게 될 것 같다. 오랜만에 <부기 나이트>를 많은 분들과 같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정리: 이정아(관객에디터)

사진: 최용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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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국내관객들에게도 조금은 생소한 제리 샤츠버그의 <허수아비>가 매진을 기록했다. 이창동 감독의 시네토크가 있던 날이었다. 상영관을 가득 매운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시네토크 내내 자리를 뜨지 않았고 감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많은 질문들이 오갔고, 질문들 하나하나에 차분하게 대답하던 이창동 감독의 모습은 영화의 여운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젊음이란 주제를 떠올려 이 영화를 선택했다는 이창동 감독과의 대화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프로그램 디렉터):
오래간만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것으로 알고 있다. 제리 샤츠버그 감독은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일원이긴 했지만 오랫동안 잊혀진 감독이었다. 여전히 국내관객들에게도 그의 작품은 생소한 편이다. <허수아비>를 선택한 이유를 먼저 듣고 싶다.

이창동(영화감독): 사실 무언가 추천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다.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많은 영향을 받아서라기보다, 어떤 영화를 추천해야 나에게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작품일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주제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경우에 ‘젊음’이라는 주제를 먼저 떠올렸다. 영화를 좋아하고, 그 감정이 가장 강했을 때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까지였다. 그때 영화들을 보며 느꼈던 어떤 감성이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소중하고, 지금은 많이 닳아 없어진 것 같아서 어떤 슬픔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젊음’에 관한, 젊은이들의 감정을 그린 영화들을 골라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요즘의 시대적 분위기라고 하는 것이, 젊은이들이 과연 삶에 희망이 있는지, 일단 취직과 같은 아주 구체적인 것에서부터 좀 더 멀리까지, 삶의 희망 같은 것을 생각하고 그런 것을 화두로 삼는 시대인 것 같다. 그래서 ‘젊음’이란 것을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다.

이 영화는 이십대 때, 극장이 아니라 TV에서 봤다.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보다가, 점점 영화에 빠져 들어갔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굉장히 복잡한 슬픈 감정을, 굉장히 두께가 두꺼운 감정을 느꼈다. 이 영화를 추천하면서, 영화를 보며 그때의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지 한 번 확인해보고도 싶었다.


김성욱:
이전과 달리 오늘 볼 때의 느낌의 차이가 있었는지?

이창동: 비슷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고, 그때보다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이전에 봤을 때는 지금보다 더 강한 감정을 느꼈을지는 모르나, 영화에서 보이는 것들이 그렇게 명료한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그때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저게 도대체 뭐지?’하는 느낌을 많이 갖고 있었다. 지금은 이 관계가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둘의 관계는 친구이기도 하고, 어쩌면 연인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부자관계일 수도 있는,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관계이다. 그래서 삶이나 인간관계에 대해서 훨씬 더 중첩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젊었을 때는 어쩌면 연인과의 관계보다도 친구와 만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훨씬 더 강한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그래서 친구관계라는 것이 중요한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친구관계를 바탕으로, 성을 뛰어 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들이 좀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김성욱: 두 번의 이상한 파티 장면이 인상적으로 기억되는데, 두 사람이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이다. 여행이 직선적이었다면 두 장면에서는 원형적이고 공동체적인 느낌이 있다. 감독님은 어떤 장면을 인상적으로 보았는지 궁금하다.

이창동: 기억 속에 있는 인상 깊은 장면은 영화의 시작 부분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과 분수대에서 난동 피우는 장면이었다. 오늘 보니까 그것들과 함께 다른 강렬한 장면들도 많이 눈에 띈다. 축제와 같은 것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이 영화에서의 그 두 번의 파티 장면은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 외지인으로 들어와서 함께 어울리게 되는 상황인데, 그 둘과 그들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실 영화에서 그 축제가 별 볼일 없어 보이고, 그 자체로는 재밌어 보이지는 않는데, 그걸 삶에서 흔히 경험하지 못하는 즐거운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것이 보인다. 특히 스트립쇼 같은 경우는 어떤 성적인 느낌도 물론 있겠지만, 자신이 껴입던 옷을 다 벗어버리는 모습에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추한 것까지 다 드러내고 싶어 하는 그런 모습이 느껴졌다.


김성욱:
두 남자의 관계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알 파치노가 연기하는 인물은 동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진 핵크만이 연기하는 인물은 굉장히 모순적이다. 진 핵크만과 같은 복합적인 남성성의 묘사는 당시 70년대의 영화 안에서도 독특하다고 느꼈다.

이창동: 진 핵크만은 별난 남성성을 갖고 있고, 약간 마초적인 느낌도 있다. 알 파치노와 대조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장점이자 개성은, 두 인물 모두 우리가 쉽게 규정하기 힘든, 굉장히 복잡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진 핵크만은 아버지의 모습 같은 면도 있고, 그러면서도 현실에서 콤플렉스나 열등감을 갖고 있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상처를 지닌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 점이 흥미롭다. 결국은 이 영화를 쉽게 해석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단순히 ‘허수아비’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개념을 넘어서서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김성욱:
제리 샤츠버그는 언젠가 “당신은 배우와의 작업에서 훌륭한 성취를 이뤄냈다”라는 말에 “나는 훌륭한 배우를 캐스팅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배우와의 작업을 어떻게 했을까가 궁금한데, 감독님의 경우에도 배우와의 작업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창동: 작년 칸 영화제에서 샤츠버그의 데뷔작을 복원해 상영했었다. 영화제의 포스터는 페이 더너웨이가 젊었을 때의 모습의 흑백 이미지인데, 페이 더너웨이가 바로 샤츠버그의 데뷔작에 나왔었다. 샤츠버그는 원래 잘 나가는 상업 사진작가였다고 한다. 그의 데뷔작을 픽업한 것이 칸 영화제였다. <허수아비>는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니까, 칸으로서는 자신들이 발굴한 감독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사실 샤츠버그의 다른 영화를 본적이 없어서, 칸 영화제에서 샤츠버그와 만나 얘기할 때 많이 긴장했었다(웃음).

샤츠버그에 대한 인상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좋은 배우를 캐스팅했을 뿐이다”라는 대답은 연기의 본질을 꿰뚫는 대답이 아닐까 싶다. 가끔 학생들에게도 “연기 연출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건 감독의 오만일 뿐이다.”라고 얘기한다. 어떤 배우를 캐스팅해서 그 배우가 어떻게 하게 하느냐까지가 감독의 역량이다. 연기는 감독이 시키는 게 아니라, 배우가 스스로 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잘 할 수 있는 배우를 잘 못하게 하는 경우인데, 오히려 연출의 과정에서 그런 경우가 있다. 열심히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배우들이 점점 더 잘 못하게 만드는 그런 경우가 있다(웃음).


김성욱:
영화의 엔딩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시작도 대단히 어렵지만, 어떻게 끝내느냐 것도 언제나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엔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창동: 엔딩도 놀랍지만 이 영화의 시작도 놀랍다. 길 위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하고, 5분도 채 안 걸리는 시간일 텐데, 그 시간 동안 특별한 이야기 없이도 두 사람이 서로 공감하고, 같이 길을 걸을 수 있는 마음의 유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적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엔딩에서 피츠버그행 왕복표를 끊는다는 것은 결국 돌아온다는 의미일 것이고, 그 표를 끊는 단순한 장면을 통해 관객들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끔 한다. 그가 신발 밑창에서 돈을 꺼내고, 그 앞에서 신발을 두드리는 것이 저항의 느낌일 수도 있고, 또는 앞으로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보겠다는 느낌도 있다. 아주 작은 디테일이지만 많은 것을 함께 갖고 있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런 장면은 보기는 쉬운데, 막상 찍기도, 시나리오를 쓰기도 어렵다.

김성욱: 영화를 만들 때 엔딩을 미리 염두에 두는 편인가?

이창동: 엔딩이 잘 안되면, 시나리오 자체를 못 쓰는 편이다. 내 나름대로는 어쨌든 시나리오 상에서 어느 정도 엔딩이 만들어져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관객1: 영화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시는지 궁금하다.

이창동: 작품마다 매번 다른 것 같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생겨서 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돌이켜 보면 영화들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생각해왔던 것이 쌓여서 축적되어 있다가 어떤 작은 계기를 만나 그것이 튀어나와서 작용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를테면, <박하사탕>의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냐는 질문에, 어느 날 화장실에서 면도를 하다 거울을 보고, ‘내가 왜 이렇게 늙었나.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를 떠올렸다고 종종 대답했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나, 사실 거의 거짓말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런 아주 작은 계기로 <박하사탕>의 이야기 구조를 다 생각해낸다는 것은 거짓말에 가깝다. 그런 것들이 오랜 동안 쌓여서 어떤 아이디어를 형성할 수 있다.


관객2:
영화를 보며 내가 잘 알지 못했던 남자의 모습, 아버지의 모습을 느꼈다. 감독님은 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이창동: 말씀하신대로 이 영화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허수아비처럼 무력해진 아버지, 아버지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인물의 이야기이다. 저의 아버지는 이 영화의 인물만큼이나 굉장히 무력한 아버지였다. 한국사 전체로 보더라도 제 세대의 아버지 세대가 그런 세대인 것 같다. 자기가 선택할 수 없었던 역사의 격변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세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아버지는 자기 파괴적으로 사신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마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때로는 반면교사로 작용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닮아가면서, 나를 형성하는 상당히 큰 부분이었을 것이다.


관객3:
오늘 ‘젊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감독님께서는 20대 초반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지 궁금하다.

이창동: 시간은 결코 결과를 알고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의 뒤에 뭐가 있는지 안다면 절대로 이렇게 살지 않을 거다. 그러나 뭐가 오는지 알 수 없는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박하사탕>을 만들면서 전하고 싶었던 것이 그런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영화가 너무 결정론적이지 않느냐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제 의도는 그 반대였다. 결과를 먼저 알고서 원인을 거슬러서 인간을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지 실감하기를 바랐고, 이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젊은 관객들이 뭔가 다른 선택을 하면서,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 있었다. 영화가 영화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끝을 내기 바랐기 때문에 그런 영화가 됐다. 지금 젊은 분들은 자기에게 다가올 결과를 알 수 없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시간의 엄격함과 무게를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서 불행한 건, 젊었을 때 가졌던 현실에 대한 아픈 생각들, 스스로에 대한 감정들 같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퇴색해간다는 것이다. 자기가 갖고 있는 감수성, 감각이 점점 더 무뎌져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현명해진다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더 희망을 잃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젊은 분들이 지금의 고통이나 절망을 자기 것으로 껴안고, 그것을 자기의 재산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정리: 장지혜 (관객에디터)     사진: 이호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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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인 지난 2월 3일, 존 포드의 <기병대> 상영 후에 오승욱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있었다. 오승욱 감독은 <기병대>는 불균질함에서 오는 매력이 있는 영화이며 존 포드 영화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영화라고 생각해서 추천했다고 밝혔다. 오승욱 감독과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흥미로운 대화의 일부를 옮긴다.

 

오승욱(영화감독) : 여기 오신 분들 모두 추운 날씨에 이런 이상한 영화를 봤다니 황당하셨을 것이다. 저는 <기병대>가 존 포드 영화중에서 매우 이상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별로 못 받았고, 존 포드 영화중에서 많이 불균질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초등학교 때 TV에서 봤는데 존 웨인이 윌리엄 홀덴과 두어 번 결투 비슷한 걸 하다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끝나버려서 재미없게 봤다(웃음). 그 땐 사사건건 간섭하는 윌리엄 홀덴도 너무 싫었고, 존 웨인도 싫었다. 이 둘이 싸우는데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도 몰랐다. 존 포드랑 존 웨인을 싫어하게 된 계기가 <기병대>랑 <아파치 요새>다. <아파치 요새>는 인디언을 학살하는 영화라고 생각했고, <기병대>는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되게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할리우드 웨스턴은 절대 안 본다는 결심을 하게 된 영화들이 <기병대>랑 <아파치 요새>다. 그런데 5, 6년 전에 <기병대>를 DVD로 다시 봤다. 그때 이 영화가 굉장히 이상하면서도 매력적인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불균질함이 있지만 너무나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감정적인 클라이맥스는 소년병들과 존 웨인의 기병대가 싸우려는 장면이다. 어떤 병사가 늙은 교장부터 쏴 버리겠다고 총을 들이댔을 때, 존 웨인이 그 총을 치면서 ‘도망갈 수밖에 없지’ 하면서 도망가는 그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기병대>를 존 포드가 만든 영화중에서 잘 만든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에피소드가 쭉 나열되어 있는데 너무 감상적이기도 하고, 자기가 얘기하는 걸 교훈처럼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건, 인간이 전쟁을 한다는 건 일종의 광기인데 이 광기에서도 인간들에게 그래도 지켜야 될 예의가 있지 않느냐, 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오늘 큰 화면으로 보니까 클라이맥스 장면이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다. 소년병 육군 사관학교에서 교장이 소년들을 데리고 있고, 소년들이 떠난 다음에 기도하는 모습과 그 다음에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서, 존 포드가 했던 이야기가 ‘상식’ 이거라는 생각을 했다. 상식이 안 통하는 곳에서 상식을 얘기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 그건 아마도 존 포드가 50년대 초 매카시즘을 겪고 나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어둠과 밀접하게 관계있지 않을까. 존 포드는 아일랜드 사람이고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멋진 정신과 가치들,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프런티어 정신과 청교도적인 정신들에 대한 자부심과 명예가 대단했다. 존 웨인을 통해 그 정신들을 보여주다가, 한국전쟁과 매카시즘을 겪으면서 존 포드는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 같다. 아까 <기병대>에 불균질함이 있다고 했는데, 영화를 못 만들어서 생기는 불균질함은 매혹적이지 않다. 내가 매혹적이라고 생각하는 불균질함은 균형이 맞지 않지만 감독이 말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커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집어넣다보니까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 감독이 이 시대 얘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뭔가가 좀 균질하지 않게 되는 영화들이 매혹적이다. 모든 감독들은 영화를 균질하게 만들고 싶겠지만, 자신이 얘기하고자 싶은 것들이 많아서 불균질함이 나오는 게 매력적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
저도 비슷하게 이 영화를 어릴 때 TV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다시 보면서는, 이 영화가 남북전쟁을 다룬 영화임에도 인상적인 순간들이 전쟁을 회피하려고 할 때 나온다고 생각했다. 존 웨인이 보여준 행동들이 특별하다. 울퉁불퉁하고 불균질하다고 말했을 때, 그것들 대부분은 존 웨인의 행동들에서 나온다. 발로 걷어차고, 때리고, 집어던지는 신경질적인 행동들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영화의 마지막에 흐르는 음악 또한 인상적이다. 그 음악은 알다시피 <수색자>의 테마 음악이다. 라스트 신의 구도가 <수색자>의 시작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존 웨인과 제임스 스튜어트가 한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설정이 이 영화의 존 웨인과 윌리엄 홀덴과 겹쳐지는 면이 있어, <기병대>가 <수색자>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의 중간에 위치한 것 같은 인상이다. 존 포드의 다른 영화와 비교할 때, <기병대>는 약간 심심한 것 같지만 기저에 깔려 있는 이상한 장면들이나 느낌들을 얘기해본다면 그 점이 독특하게 와 닿는다.


오승욱 :
얼마나 많은 관객이 들었건 간에 마초들을 다루는 영화들의 시효는 5~10년이라고 생각한다. 5~10년이 지나면 그 마초들의 행동은 다 비웃음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마초영화는 잘못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더티 해리>에서 이스트우드의 행동은 시간이 지나면 패러디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존 포드 영화에서 남성들에 대해 영웅시되는 것들이 있다. 존 포드 영화에서 클로즈업은 많지 않은데, <기병대>에서 매우 인상적인 클로즈업이 있다. 흑인들 사이로 북군이 지나갈 때 남군이 총으로 쏘는 게 북군이 아니라, 북군 속에 있는 한나 헌터의 흑인 하녀를 죽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여자가 죽어갈 때 존 웨인의 클로즈업이 등장한다. 이건 진짜 클로즈업인데 존 웨인이 한나 헌터에게 ‘나 때문에 죽은 것 같다’면서 사과를 한다. 이때 <기병대>는 존 웨인이라는 인간의 성장영화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봤다.

존 웨인은 떠나기 전에 부상병이 생기면 놓고 갈 거라고 했던 사람인데 마지막엔 그가 부상병이 된다. 영화 초반부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 많이 바뀌어가면서 자기가 갖고 있던 신념이 침해를 받으니까 신경질을 부린다. 존 웨인의 히스테리가 최고조에 달하는 건 남군이 기차에서 내리는데, 정규군이 아니라서 일방적인 학살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다. 윌리엄 홀덴과 마지막에 악수하는 것도 이들의 우정이 쌓여서가 아닌 것 같다. 부대 지휘관으로서 처음 등장했을 때는 용맹했었는데, 이제는 다른 지휘관이 되어 있다는 게 느껴진다. 존 포드가 미국에 대한 환희의 송가를 떠들었던 감독에서 50년대를 거치고 난 후 어두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감독으로 변한 것이 존 웨인을 통해 보이는 것 같다.



김성욱: <기병대>가 이전의 존 포드 영화와 다른 것은 풍경을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작부를 장식하는 모뉴먼트 밸리나 대자연의 풍경이 이 영화에는 보이지 않고, 타이틀 시퀀스 이후 곧바로 실내로 들어가 버린다. 마지막은 집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통념적인 방식의 존 포드 세계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가 완전 실내극에 가까운 서부극인 걸 보면, <기병대>는 그 중간정도에 위치한 것 같다. 대자연이 갖고 있는 미국적 서부에 있어서의 포용적 세계들이 사라지고, 그걸 대체하는 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조기이다. 자연의 포괄적인 세계를 대신하는 것이 규범, 법, 국가로서의 깃발들이다. 남북전쟁과 관련해 노예 해방이라든지 주제적인 면이 부각되는 것도 없다. 흑인이 묘사되는 장면은 크게 두 번 나오는데, 그 중 하나는 말씀하신 하녀의 죽음의 순간이다. 그 장면은 아무런 부연설명도 없이 갑자기 전개된다. 또 하나가 영화 초반에 기병대가 진군해가는 과정에서 흑인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분노의 포도>에서 빈민촌을 방문하는 순간의 장면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존 포드의 세계를 이루던 것들이 사라지고, 그것을 대체해나가는 국가적 규범, 혹은 가정이라는 두 세계가 구축되고 거기서 존 웨인은 최종적으로 도피하는 듯하다. 그런 식의 설정이 이 영화를 독특하게 보이게 만든다.


오승욱 :
<아파치 요새>도 기병대들이 임무 수행을 다루는데, 거기에서의 클로즈업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 중 하나는 존 웨인이 헨리 폰다의 죽음에 경외심을 보내고 우리도 죽을 차례라고 말할 때의 클로즈업이다. 반면 <기병대>에서는 남성의 의지를 표상할 때 클로즈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과하는 장면에서 클로즈업이 나온다는 게 특별하다. 기존의 존 포드 영화에서 많이 생각이 바뀐 영화다. 마초 남성들의 굳건한 남성성이 계속 영화 속에서 조롱당하고 있다. 존 웨인을 통해서 히스테리를 표출하는데 히스테리라는 게 여성들의 행동에서 나온 것 아닌가. 또한 남성성을 표방한다는 것은 남성성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서 치장한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치장들이 조금씩 조롱되고 있다. 마초 영화들은 그들 행동의 많은 부분이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초적인 것을 표방하는 소설도 항상 여성성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사실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만들어야 하니까 할 수밖에 없었던 타협들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존 포드는 전쟁은 이래야만 하는가, 라고 질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바로 그게 존 포드의 위대한 점 아닐까. 어떤 상황이 되었건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상식을 놓지 않으려 존 웨인은 안간힘을 쓰는데, 이 영화의 감동적인 부분이 그런 것에서 나온다.


정리: 송은경(에디터)
사진: 임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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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로 얽힌 생활의 터전에서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접점을 찾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같은 일터에서 만나 알게 된 정윤정 씨는 아주 뜻밖의 모습으로 다가온 최초의 인연이었다.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덧 시네마테크에 대한 논의로까지 이어졌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듯 유난스러울 만큼 정윤정 씨가 더 반가웠던 것은 시네마테크를 알고 아끼는 사람을 가까운 생활의 영역에서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영화를 전공했고 영화계에서 일을 하기도 했었다는 정윤정 씨에게서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시네마테크와의 인연을 꽤 오래 이어왔다고 들었다. 2003년도에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시네마테크에 처음 오게 된 날이나 처음 본 영화 같은 것들을 기억하는가. 또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시네마테크에 처음 간 것은 2003년 봄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엔 시네마테크가 소격동에 있었고, ‘허우 샤오시엔 특별전을 할 때였다. 허우 샤오시엔을 좋아해서 간 건 아니었고, 양조위를 좋아해서 <비정성시>를 보러 갔던 거다. 그때에도 영화를 보기 위해 서울에 있는 이런저런 극장을 다닐 일이 많았는데, 다른 극장과 달리 의자가 딱딱했던 것이 신기했었다. 작은 로비에 붙어 있는 관객 회원 가입 안내문에 호기심이 생겨서 메일링을 먼저 등록하게 되었다. 이후 2005년에 대만 뉴웨이브 특별전을 해서 친구랑 왔을 때는 이미 허우 샤오시엔 팬이 되어있을 때였다. 그때 허우 샤오시엔 감독도 내한을 해서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고등학교 때 시네마테크에서 처음 본 영화가 <비정성시>였고, 원래 중국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공부해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 그때부터 계속 찾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양조위가 저를 시네마테크로 인도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웃음).


 

시네마테크에 처음 온 날 챙겨둔 리플렛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더라. 나중에는 어떤 결심으로 관객 회원이 될 생각을 했나. 이 공간에 대한 각별함이 있었을 것 같다.

<비정성시>를 보러 갔던 날 가져온 허우 샤오시엔 특별전리플렛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관객 회원은 스무 살이 되면서 돈을 자유롭게 쓰자는 생각에서 가입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1년에 영화를 30번 이상은 보니까 본전은 나오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나중에는 그런 횟수에 연연하기 보다는 시네마테크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에서 갱신을 계속 하게 됐다.


 

현재 시네마테크가 사람들에게 활용되고 이용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다고 생각을 하나. 전용관의 부재에 따른 문제도 크지만 이 공간을 지키려는 노력이 엉뚱한 의미로 보수화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는 류승완 감독님의 지적도 있었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지, 또 아직 이 공간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체험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은지.

저도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에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접근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시네마테크를 좋아하게 되면서 외국에 가면 꼭 그 나라의 시네마테크를 가보자는 다짐을 했고, 그렇게 일본과 대만의 시네마테크를 가 본 적이 있다. 도쿄에는 도쿄국립현대미술관 안에 시네마테크가 같이 마련되어 있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도 독립 영화나 무성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있지 않나. 도쿄의 미술관 지하에도 고전 영화를 상영하는 아카이브가 있더라.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 영화를 보러 가면 살짝 기가 죽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거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고 저같이 평범한 사람도 많아서 보이지 않는 울타리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미술관 안에 있으니까, 하나의 예술로 영화와 미술이 연계되어 있다는 게 좋아 보였다. 시네필이 이만큼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거기에서 한두 명 떨어지는 걸 막자 라기 보다는 예술이라는 큰 카테고리로 접근해야 되지 않나 싶다.
대만의 시네마테크도 정말 작은 공간이고 100석이 채 안 된다. 마찬가지로 도심에 위치해 있고 또 특이한 게 작은 정원이 있었다. 그날 본 영화는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했던 <점프 보이즈>였는데, 마침 그날 있던 GV의 분위기가 굉장히 조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름 시네마테크 순례를 했던 것 같다(웃음). 다만, 그 울타리 없음에는 주의를 기울였으면 하는 게 있다. 작년에 부산 영화의 전당에 있는 복합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공연 전용 상영관이라서 그런지 소리가 많이 울리더라. 예술간의 교류는 좋으나 전용관을 만들 때는 용도를 제대로 구분해줬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에 대한 측면에서, 이탈로 칼비노는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네마테크에서만 충족될 수 있는 순기능과 역할들이 많은데 여태 전용관이 없다는 게 오랜 의문이다. 전용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또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지가 궁금하다.

전용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제가 대학교 때부터 얘기가 진행됐던 거라 지금에 와서 굳이 그 필요성을 얘기한다는 건 무의미한 일인 것 같다. 이미 무조건 필요한 거다. 서울이 듣도 보도 못한 도시도 아니고 영화산업도 가장 큰 최대의 수도인데 전용관이 있냐 없냐, 의 문제로 싸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오래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전용관이 있다면 외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강연들을 내부에서 수용할 수 있게 되면서 공간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을 것 같다. 집약적으로 영화 교육이 이루어지고 그런 것들을 내부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말하다 보니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고 있는데, 영화를 보러 오면 이 주변에 있는 밥집에 가자고 해서 골목골목에 있는 밥집들도 다 찾아갔었다. <소문난 집 추어탕>에서 1500원짜리 국밥을 먹었던 기억도 난다. 또 시네마테크에 혼자 가서 영화를 2~3편씩 보고 올 때가 있는데,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주저 없이 혼자 가는 편이다. 혼자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도 마음이 편하다(웃음). 그리고 스스로에게 비춰봤을 때 가장 효과적인 홍보 방법은 GV였다. 저는 GV를 정보습득의 의미로 보지는 않고, 재미있고 웃겨서 많이 찾는 편이다. 재미있겠다 싶어서 참석하는 GV는 김영진 평론가님과 이명세 감독님이다. 학술적이고 진지한 영화 얘기도 물론 있지만 이렇게 재미가 있어서 가는 사람도 있다. GV에서만 들을 수 있는 비화도 재미있고, 이런 것을 홍보 전략으로 해서 접점들이 많아지는 전용관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대한 접근도 굉장히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 마침 ‘2012 친구들 영화제가 진행되고 있지 않나. 참여 친구들과 같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본인이 원하는 접점이 있을텐데, 이번 영화제에서 보고 싶은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나? 영화에 대한 취향은 어떤가?

뉴스레터를 매번 체크하기 때문에 친구들 영화제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계속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을 확인한다. 이번 ‘2012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관객들의 선택으로 <화해불가>가 뽑혔을 때 좀 놀랐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다른 작품을 봤었는데 영화가 거의 영상 철학이라서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남은 상영 일정에서 제 취향을 따져본다면 <로제타> <정복자 펠레>. <로제타>는 일단 다르덴 형제의 작품인데다, 내 안의 윤리의식을 일깨우는 영화라서 좋아한다. 윤리에 대한 문제를 다르덴 형제는 실생활에서 굉장히 잔혹하게 보여주지 않나. ‘나는 왜 편하게 살고 있을까하는 반성과 깨달음을 주는 영화라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좋아한다. <정복자 펠레>는 아직 못 봤는데, 궁금증이 있는 영화다. 제가 다닌 대학원의 교수님이 회사 생활을 하다가 교수님이 되신 분인데, 이 영화를 보고 대학원 진학에 대한 결심을 했다고 하시더라. 도대체 어느 정도로 엄청난 영화이길래 회사원이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한 걸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다. 사실 취향이라고 꼬집어서 얘기할 만한 게 없다. 다 너무 좋아한다.

 


이번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의 테마는 이것이 영화다!”이다. 참여 친구들에게도 이 테마로 생각을 묻기도 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영화상이 있다면.

글쎄,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영화를 그냥 좋아하는 학생에서 영화에 대해 공부도 해보고 가까이서 일도 해봤지만, 여전히 영화를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인 것 같다. 문자 그대로의 행복이 아니라, 행복한 순간을 의미하는 행복 말이다. 슬프고 괴로운 영화를 봐도 거기서 행복해하고 만족감을 느끼지 않나. 그런 행복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바로 영화인 것 같다.

 

인터뷰/글 : 장미경(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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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 펠레>는 19세기 말 덴마크의 집단 농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스웨덴에서 늙은 아버지와 함께 덴마크의 작은 항구도시로 이민 온 소년 펠레는 집단 농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고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곳에서의 삶이 척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펠레는 바다를 건너는 배 위에서 아버지에게 ‘아이들이 일하지 않고 종일 놀기만 하는 곳’을 원하지만 그의 소망은 이내 좌절된다. 그들이 도착한 농장에서 그들은 축사의 한편에 거처를 마련하고 끊임없는 노동을 부과 받는다.


19세기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 중 하나였다. 농업 국가였던 스웨덴은 산업혁명과 함께 봉건 제도가 붕괴되면서 농촌의 빈곤화가 일어났고 많은 스웨덴인들이 기근에 시달리다가 덴마크나 미국 등지로 이주해야 했다. 영화 속 펠레와 그의 아버지가 바로 그 스웨덴인들 중 하나이다. 영화는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덴마크 소설가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의 자전적 소설이 그것이다. 영화는 커다란 역사의 한 프레임 속에서 한 소년에게로 초점을 맞춘다.




<정복자 펠레>를 성장 영화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성장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필수적인 요소를 이 영화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 영화는 인물의 입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사건과 갈등은 성장의 동력이 되고 소년과 소녀들은 점차 어른이 되어간다. 마찬가지로 소년 펠레를 둘러싼 세계도 펠레에게 성장할 것을 요구한다. 펠레가 살아가는 집단 농장은 작고 폐쇄적이지만 그 안에는 탄생과 죽음, 기대와 좌절이 충만하다. 또한 스웨덴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멸시, 집단 농장 안의 권력 구조가 속속들이 드러난다. 19세기에 이르러 봉건 체제가 무너졌지만 다시 부르주아 계급과 빈곤한 농민 계급으로 나누어진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 부유한 농장주의 위선적인 삶과 가난한 농장 일꾼들의 노예 같은 삶이 바로 그것이다. 원작 소설의 작가인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가 사회개혁을 옹호한 덴마크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소설가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성장 영화에 있어서 또 다른 요소는 조력자의 존재다. 영화에서 소년의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는 그의 조력자가 되지 못한다. 그는 너무 늙었고 글도 읽지 못하며 부당함에 저항하지 못하는, 무능하고도 슬픈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신 농장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스웨덴 일꾼 에릭은 부당함을 참지 않고 저항한다. 소년 펠레에게 농장 바깥의 삶, 미지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도 그이다. 그는 펠레에게 자신은 뱃삯을 모으기만 하면 농장을 떠나 전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비극적인, 한편으로는 희극적인 한 사건으로 인해 무산되고 만다. 그 사건으로 인해 에릭은 정신적으로 박약 상태가 된다. 이제 더 이상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는 그는 늘 마구간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다. 창문이 사람이 출입하는 문과 다른 것은 안에 있으면서 밖을 보는, 전망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전망이 있었던 젊은 에릭은 더 이상 창문 밖의 세계를 정복할 수 없다. 결국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복자의 지위은 조력자 에릭에게서 소년 펠레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영화는 소년이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밤은 농장 여주인이 괴로움에 못 이겨 울부짖는 소리 때문에 잠이 들지 못하고, 어떤 밤은 혼자만의 상념에 젖어 달빛을 바라본다. 그의 아버지는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한 계절이 자연의 시퀀스라면 영화는 소년 펠레가 잠 못 드는 밤에 이르러서 한 꺼풀의 성장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삶에 무관심한 자는 불면의 시간을 결코 얻을 수 없다. 그렇기에 잠 못 드는 밤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생생한 증거가 된다. 그런 점에서 잠 못 드는 밤은 일종의 선택 받은 자의 특권이다. 그에게는 아이들이 일하지 않는 세계, 아메리카, 정복할 세계에 대한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소년 펠레는 결국 농장을 떠난다. 그는 늙은 아버지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떠돌아다닐 힘이 없다. 두텁게 쌓인 눈밭 위에서 펠레는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4부작으로 구성된 원작 소설에는 이후의 여정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다. 영화를 보는 사람의 자유에 따라 그곳은 미국이거나 호주, 중국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고향 스웨덴이 될 수도 있다.


카메라가 덴마크의 목가적인 풍경을 원거리에서 비출 때 관객은 스크린을 거대한 캔버스 삼아, 한 폭의 풍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에 걸린 그림들을 감상하듯 장면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150분의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에 일조한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들판의 밀이 황금빛으로 익고, 눈이 쌓이고, 다시 얼었던 강물이 녹아 흐르는 동안 자연에는 갈등이 없다. 반면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들 속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 갈등과 긴장이 배치되어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이 더욱 처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손소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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