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17. 14:25ㆍ작가를 만나다
[작가를 만나다]
“영화의 역할 중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 <눈꺼풀> 상영 후 오멸 감독, 이용철 평론가 시네토크
지난 5월 14일(토)에 열린 “작가를 만나다”의 상영작은 오멸 감독의 신작 <눈꺼풀>이었다. <눈꺼풀>은 동화와 같은 이야기 속에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로서,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감독과 관객 사이에 종종 깊은 침묵의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다. 영화로 만들기 어려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오멸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좌) 이용철 평론가 우) 오멸 감독
이용철(영화평론가) 오멸 감독과는 원래 친분이 있었다. 몇 년 전 현장에 한 번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그게 무인도였다. 마음대로 섬을 나올 수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곳이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텐트 치고 혼자 지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틀도 못 참고 도망치듯 섬을 나왔다(웃음). 그게 바로 <눈꺼풀>의 촬영 현장이었다. 이 작품은 오멸 감독이 처음으로 제주도가 아닌 곳에서 찍은 작품으로 알고 있다.
오멸(영화감독) 이걸 말로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와 같은 제주도 출신들, 특히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는 제주도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나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본토’에 의해 ‘섬’이 이용당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 ‘건강한’ 국가관을 갖고 있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나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만들었다. 제주도 사람으로서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고 살았고 그래서 다른 국가관을 갖고 있었는데, 세월호 이후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꾸 뭔가를 고민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가 나아질 수 있을까 지금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
이용철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전작인 <하늘의 황금마차>(2014) 때는 비교적 많은 스탭들과 작업했었는데 <눈꺼풀>은 다시 다섯 명 정도의 스탭과 ‘자가 제작’을 했다. 누구에게 제작비 투자를 받은 것도 아닌 걸로 알고 있다. 그야말로 무인도에 가서 텐트를 치고 그곳에 살면서 영화를 찍었다.
오멸 지금도 고민 중이다. 우리 같은 여건의 사람들은 제작비가 없으면, 또는 제작 지원을 못 받으면 작품을 못 만든다. 자체적인 ‘독립 영화’의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계속 고민 중이다. 나는 ‘지역 영화’를 만들어 왔다. <지슬>은 다행히 해외에서 상을 받으면서 개봉에 탄력을 받은 경우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지역 영화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내가 제주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극단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배우들이 함께 모여 카메라 작동법 등 영화 제작을 공부하면서 <눈꺼풀>을 만들었다. 제작비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나는 타르코프스키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 그의 작품 중 <희생>에 이런 말이 있다. “희생이 동반되어야 진정한 선물이 된다.” 특히 이십대 때는 이 말에 꽂혀 있었는데, 나도 <눈꺼풀>을 통해 어떤 희생을 겪더라도 유의미한 선물을 만들고 싶었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 극단이 갖고 있던 재산을 처분하기도 했다.
이용철 <눈꺼풀>을 만들기 전 처음 상상했던 모습과 지금 나온 영화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오멸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날 뉴스를 본 뒤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루었다. 그렇게 잠을 못 자다가 결국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0페이지 정도의 짧은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이 영화를 찍을 무인도를 찾았다. 그 뒤 섬에 들어가서 여러 풍경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다시 영화를 만들어갔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섬과 섬 안의 여러 생물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들과 함께 만든 기분이다.
이용철 촬영을 했는데 빠진 장면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편집했는지 궁금하다.
오멸 생각보다 촬영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직접 해 먹고, 저녁에는 또 다음 날을 위해 생선 낚시를 해야 해서 우리 현장은 ‘출근 9시, 퇴근 4시’였다(웃음). 시간이 한정돼 있다 보니 찍은 건 웬만하면 거의 다 영화에 썼다. 또는 영화에 정말 필요한 장면만 촬영했다. 지금 이야기한 건 예외에 속하는 장면이다.
이용철 말만 들으면 꽤 낭만적인 현장인 것 같은데 내 경험으로는 꽤 힘들었다.
오멸 열악한 환경인 건 분명하지만 나는 벌써 그곳이 그립다(웃음). 화장실도 땅을 파서 만들고 개울에서 씻는 환경에서 두 달을 살았다. 일주일만 견디니 할 만하더라.
이용철 오멸 감독의 작업 속도에 항상 놀란다. <으이그 저 귓것>을 보러 가면 <뽕똘>이 이미 만들어져 있고, <뽕똘>이 개봉하면 <이어도>가 만들어져 있다. 제작 기간이 짧고 작품 사이의 시간 간격도 짧다. 그런데 <지슬> 이후 제작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오멸 내 부족함 때문이다. 스탭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영화를 빨리 만들던 시기의 제작 방식은 철저하게 ‘내부인’들과 찍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외부인’들과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제작에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용철 그 두 가지 방식 사이에서 답을 찾았는가.
오멸 지금까지 일곱 편을 만들었는데 열 편은 만들어 봐야 알 것 같다.
이용철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영화에 나온 흑염소이다. 신화적인 느낌까지 줄 정도다. 그런데 이 흑염소에 어떤 사연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오멸 섬에 뱀도 많고 지네도 많다. 그런데 바위 틈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굉장히 심하게 났다. 그게 염소 시체였다. 알고 보니 무인도가 되기 전 이 섬에 살던 사람들이 키우던 염소가 아직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온 염소는 그중 한 마리였다. 우리가 섬에 도착할 때부터 우리를 관찰하던 염소였다. 우리와 같은 시냇물을 쓰다 보니 물 먹으러 왔다가 우리와 가까워졌다. 나중에는 우리를 봐도 도망치지 않길래 잘 됐다 싶어 시나리오를 고쳐 같이 촬영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염소가 보이지 않기에 찾아봤더니 외딴 곳에서 혼자 죽어 있더라. 잘 수습해서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염소가 우리를 이 섬과 이어준 것 같았다.
이용철 <눈꺼풀>에는 인물만큼이나 자연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금 말한 염소도 그렇고 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쥐가 영화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오멸 쥐는 처음부터 출연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쥐에게 연기를 시킬 수 없어서 CG 업체랑 미팅까지 했었다(웃음). 하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포기를 했고, 찾아보다가 실험용 쥐를 한 마리 특별히 주문했다. 그리고 섬에 데리고 가서 두 달 동안 같이 살았다. 웃을 수도 있지만, 쥐를 위한 텐트도 있었고 전담 스탭도 있었다. 절대 쥐를 놀라게 하지 않고 쥐와 친해지려 했다. 그렇게 쥐와 편해지니 나중에는 사람 연기 지도하는 것보다 쥐 연기시키는 게 더 쉽더라. 우리가 원하는 위치로 가주고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었다. 참고로 쥐의 이름은 ‘C쥐’다(웃음). 지금은 한 스탭의 조카가 키우고 있다.
이용철 이 섬이 보이는 것보다 매우 가파른 섬이다. 사람, 특히 노인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섬이다 보니 저절로 무인도가 되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지게에 쌀가마니를 지고 언덕을 오르내리는데, 그 가마니가 소품이 아니다.
오멸 움직임이나 호흡에서 배우의 간절함이 정말 드러나길 바랐다. 쌀가마는 모래와 자갈을 넣어 무겁게 만들었고, 돌절구는 진짜를 사용했다. 배우분이 그 장면을 촬영한 다음 손이 떨려서 국그릇을 제대로 못 들었다.
이용철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부러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제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도록 하겠다.
관객 1 주인공이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등 불교적인 느낌이 들어있다.
오멸 내 동생은 기독교이고 어머니는 불교고, 나는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영화 속에는 말씀하신 불교도 있지만 토속적인 토템 신앙도 있고, 성호를 긋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천주교도 들어 있다. 딱히 특정 종교를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노인 역시 불교 신자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아직 수양이 많이 부족한 인물이다. 특히 분노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와 같은 인물로 설정했다.
관객 2 노인이 남학생에게 여기 왜 왔냐고 물으니 떡 먹으러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때 남학생을 연기한 배우의 목소리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마치 호러 영화 같았다.
오멸 그 학생은 거제도에 사는 학생이다. 후시 녹음을 할 때 그 친구가 사정상 오지 못 해서 다른 사람이 녹음을 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잘 매칭이 안 돼서 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우연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지금 관객분이 말씀하신 그런 이질감을 그대로 살리려고 했다.
관객 2 염소, 쥐 외에도 지네, 뱀, 풍뎅이 등 다양한 생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단순히 움직이는 게 아니라 풍뎅이가 다리를 떠는 것 같은 ‘연기’가 필요한 장면들이 있다.
오멸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GV를 할 때 이 질문에 대답하려다 감정이 복잡해져서 대답을 잘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영화의 벌레를 우리들이라고 생각했다. 지네, 풍뎅이, 파리, 거미 등이 미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이 살고 있는 방이 이 세상이고, 우리가 그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질문에 답을 하자면... 풍뎅이 때문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이상하게 텐트를 치고 살고 있으면 풍뎅이가 텐트로 들어와 그 속에서 죽는다. 너무 미안했다. 우리가 섬의 ‘주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 때문에 그 생물들이 나쁜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영화에 나온 풍뎅이는 텐트 안에서 기운을 잃은 채 떨고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촬영이 끝난 뒤 곧 기운을 차려 살아났다.
이용철 오멸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어려워하는 걸로 알고 있다. <지슬> 때는 개봉에 맞춰 외국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오늘도 어렵게 마련한 자리로 알고 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할 결심은 어떻게 했나.
오멸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을 하기는 했는데 관객과의 대화가 너무 힘들더라. 그런데 요즘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고 있으니 내가 힘들다고 피할 처지가 아닌 것 같았다. 아주 미약하지만 한 번이라도 더 상영을 하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눈꺼풀>의 배급사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많은 사람이 보지는 못하더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 3 영화에 나온 학생들과 선생님의 얼굴이 나를 옥죄는 느낌이었다. 아득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 배우들에게 어떤 표정을 지으라고 지도했는지 궁금하다.
오멸 연기 지도는 거의 안 하는 편이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서 육지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본 적이 있다. 배 안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는데, 이상하게 너무 힘들어지면서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서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을 만났을 때, 그렇게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을 때 부끄럽지 않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했다. 그런 맥락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렸다. 같이 마주보게 하고 싶었다.
이용철 영화 속 선생님을 연기한 배우분이 여기에 와 계신다. 어떤 지도를 받았는지 직접 들어보면 어떨까.
이상희(배우) 감독님이 딱 그 장면에서만 디렉션을 준 기억이 있다.
오멸 학생이 웃고 있기에 웃지 말라고 디렉션을 주기는 했다.
관객 4 영화에서 떡을 굉장히 정성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이 섬에 온 사람들은 떡을 먹고 갈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오멸 내가 답을 하면 내 이야기에 영화의 의미가 한정이 될 것 같아 조심스럽다. 영화에도 시적 표현이란 게 있는데, 그걸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좀 난감하다. 관객분들이 각자 내용을 느낀 부분이 있을 것이다.
관객 5 지금까지 세월호를 다룬 영화들이 나왔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눈꺼풀>은 무슨 영화인지 모르고 봤다가 많은 위로를 받았다. 다른 분들은 이 영화를 보며 어떤 감상을 받을지 궁금하다.
오멸 개봉을 많이 고민했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지금 세상에 내놓아도 괜찮을지 확신이 없었다. 영화 찍는 사람으로서 세월호 사건 앞에서 뭔가 해야 하는 건 맞는데, 정작 이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지 자신이 없었다. 유가족을 직접 만나지도 못하고 분향소만 갔다. 솔직히 말하면 개봉 이후에도 내가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결정하지 못했다.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까 관객과의 대화를 열심히 하겠다고 한 건... 어떤 미안함 때문이다. 시간이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우리 앞에 그대로 놓여있다. 여기에 이제 무기력까지 더해졌다. 영화의 역할 중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개봉을 할 것이다.
이용철 참고로 <눈꺼풀>은 사고가 난 그해에 바로 만들어졌다. 오멸 감독이 정말 많은 고민을 하는 걸 보고 당장 개봉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조언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너무나 많은 말들이 있었고 그때 개봉했다면 어떻게든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세월호는 아마 수십 년간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좀 더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때 개봉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관객 6 할머니가 제주도 출신이고 지금은 일본에 있다. 제주도에 왔다가 일본으로 돌아갈 때마다 할머니는 떡을 먹고 싶다고 하신다.
오멸 처음 영화를 만들기 전 떡을 절대 사서 쓰지 말자고 PD와 이야기했다. 직접 만들자고 했다. 쌀을 빻고, 물을 떠오고, 장작불을 떼고, 솥을 밀가루로 싸고, 떡을 찌고 하는 과정에 1박 2일이 걸렸다. 처음에 몇 번 실패하니까 시간이 훌쩍 지나가더라(웃음). 그런데 떡을 만들다 보니까 경건해졌다. 촬영 자체가 어떤 제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그 동그란 모양의, 깨끗한 떡이 감동적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떡이 우리가 정말 정성껏 만든 떡이란 걸 알아주면 좋겠다.
이용철 저승 가는 사람에게 노잣돈을 주는 문화는 알고 있는데, 저렇게 떡을 주는 것도 원래 우리 전통 문화에 있는 것인가?
오멸 나의 창작물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현실을 무대로 하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완전한 창작의 세계로 넘어가면 모든 문제가 덮여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중간 지점을 상정했다.
관객 7 내가 음악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음악이 가장 귀에 들어왔다. 이 영화의 음악을 위해 어떤 컨셉을 떠올렸는지 궁금하다.
오멸 지금 질문하신 분은 킹스턴 루디스카의 리드 보컬이고, <하늘의 황금마차>에 출연도 하신 분이다.
영화 음악 작업을 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조언을 받는 분이 있다. 그 분이 내 시나리오를 본 뒤 CD를 몇 장 추천해 주면 나는 그걸 열심히 들으며 영화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중 몇 곡을 가이드 삼아 비슷한 정서의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작곡가에게 부탁한다. 이번에 고른 곡 중에는 의도한 게 아닌데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 있었다. 묘한 일치감을 느꼈다.
이용철 시간이 많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멸 오늘 오기 전에 너무 슬픈 이야기도 하기 싫었고, 유쾌하게 풀어나갈 수도 없었다. 일단 오늘 관객들이랑 같이 영화를 봤다.
<눈꺼풀>을 찍은 뒤 <지슬> 때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과거는 정리되지 않고 현실로서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게 너무 힘들다. 세월호는 ‘과거의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전혀 진행되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외면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다. 하루 빨리 많은 분들이 새로운 삶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가길 바란다.
이용철 무엇보다 잊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눈꺼풀>도 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 생각한다.
정리ㅣ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ㅣ주민규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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