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베니스 인 서울 영화제 첫 주 주말인 지난 12 14일 저녁 6 <닫힌 페이지> 상영 후 이번 행사를 위하여 내한한 베니스 국제 영화제 매니징 디렉터인 루이지 꾸치니엘로가 강사로 나서 베니스영화제와 영화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전영화의 아카이브, 복원의 중요성에 대하여 실감할 수 있었던 강연 현장의 일부를 여기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베니스영화제와 영화 복원이라는 주제로 베니스영화제 매니징 디렉터로 있는 루이지 꾸치니엘로의 이야길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베니스영화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이번 영화제 중 한 섹션인 ’80!’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복원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2012 베니스 인 서울을 개최하면서 마련한 ‘80!’이라는 섹션은, 베니스영화제 80주년을 기념하면서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소개됐던 영화들로 거의 극장에서 상영될 수 없었던 희귀한 영화들을 새롭게 복원해서 상영하는 섹션이다.

 

루이지 꾸치니엘로(베니스 국제 영화제 매니징 디렉터): 먼저 지금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고 있는 ‘2012 베니스 인 서울행사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고전 영화와 베니스영화제의 과거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번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2012 베니스 인 서울은 최근의 영화뿐만 아니라 과거의 고전영화도 소개하는 자리다. 과거가 없이는 현재의 영화가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중요하다. 방금 본 <닫힌 페이지>라는 영화는 과거에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영화들 중에서 복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베니스영화제는 19327 6일 베니스의 리도 섬에서 세계 최초로 개최된 국제영화제다.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자료실(ASAC)는 중요한 영화들을 보존해왔고, 그때부터 베니스영화제는 새로운 영화들 외에도 과거의 작품들과 감독들을 소개하는 섹션을 마련해서 소개해왔다. 이런 섹션을 통해서 신문 기사와 비평만으로 접했던 영화들을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베니스영화제는 올해로80주년이지만 실제로는 11회가 모자란 69회째다.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초반에는 물류의 문제 때문에 부분적으로 중지되었다가 완전히 중지됐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가 1968년 페스티벌 자체에 대해 반대를 외치는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잠시 중단됐었다. 예를 들어 칸영화제는 1968 8월부터 경쟁부문 외에 비경쟁부문을 마련함으로써 계속해서 영화제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베니스영화제는 80년대까지 여전히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번에 상영하는 작품들을 선별한 기준은 오늘날 보기에 불가능한 작품들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자료실(ASAC)에서 보존하고 있는 필름들이 많은데, 이 필름들을 복원하는 작업 또한 중요했다. 어떤 필름들은 상태가 좋아서 복원이 쉬웠고, 어떤 필름들은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서 복원하는데 고생을 했다. 앞으로 이런 복원 작업은 기술적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과거를 재조명하면서 과거의 역사를 새롭게 분석하는 작업과 더불어, 베니스영화제의 임무는 영화제에서 선택된 영화들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영화를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아니 다 캄포의 <닫힌 페이지>는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탈리아의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문화적으로 보수와 진보 사이에 충돌이 굉장했던 상태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정식으로 상영되지 못하고 불법으로 상영되다가 결국엔 상영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칸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다시 알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관객과 만나는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 이렇듯 영화가 만들어 진지 40년 후인 지금의 시점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함께 본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복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오늘날에도 현실성이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성욱: 복원에 대한 것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닫힌 페이지>를 보면 종교적인 부분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번 베니스영화제에서 지아 다 캄포가 60년대에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관련해서 언급했었다. 이 영화가 그 당시의 종교적인 상황과 종교적인 변화의 과정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물론이다. 68년에 제작이 들어간 이 영화는, 62년 바티칸 공의회의 내용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이 회의는 이탈리아인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놨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종교 문제에 있어서 억압적이었던 교육 모델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상황을 잘 반영한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는 비토리오 데 시카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같은 네오리얼리즘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과 일치하는 영화,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을 배우로 기용한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누벨바그의 영향도 많이 받은 영화다. 소년이 가족의 문제로 인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그러한 경향이 드러나며 이것은 유럽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였다.

 

김성욱: 아까 언급했던 아카이브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자료실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지,
또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복원 작업과 영화제를 통한 상영작업을 진행할 것인지 궁금하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현재 아카이브에서는 과거 베니스영화제에서 소개됐던 영화 200편 정도를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개막작이었던 <돼지우리> 같은 경우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보관소에서 가지고 있던 것으로 얼마 전에 복원된 작품이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영화들을 복원하고, 이 작품들을 영화제를 통해 상영하고 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관객1: 페스티벌은 자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아까 1960년대에 페스티벌이란 공간을 반대했던 상황이 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50년대까지는 예술적인 기준이 아닌 국가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영화들을 상영했다. 그리고 50년대를 거치면서 예술 감독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세계를 돌면서 예술성이 있는 작품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작가라는 개념이 형성되는데, 더 이상 한 국가의 영화가 아니라 한 감독의 영화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혁신이 되면서 장인성이 나타나게 되는 건데 이 때문에 심사위원단을 통해 영화를 경쟁시켜 상을 주는 경쟁적인 체제에 대해서 굉장한 비판이 생긴다. 실질적이고 이론적인 이유들에 있어서 경쟁 자체에 대한 비판이 심했다. 그래서 칸영화제는 비경쟁부문을 통해, 영화들이 자유롭게 탄생해서 평등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고, 이런 변화를 통해 위기 상황을 해결했다. 하지만 베니스영화제는 영화제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된다. 영화제의 상업적인 면에 대한 비판 또한 많았다.

 

관객2: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필름이 사라지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없는지 디지털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듣고 싶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기술적으로는 디지털 혁명이 더 많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보통 전통적인 필름들이 주지 못했던 여러 가지 긍정적인 면이 디지털에 있다. 적절한 디지털 포맷으로 변환됐을 때 우리가 영화를 잘 보존된 상태로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봤을 때 디지털 혁명이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이건 예술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디지털 영화로 복원한다고 해서 배급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은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목적이 될 수 없다.

 

김성욱: 필름으로 상영되는 걸 보고 싶었던 사람들 안타까울 것이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고전들은 200여 개의 작품들이 전부 디지털로 복원돼서 상영됐다. 카를로스 사우라 영화는 베니스에서 상영했지만 서울에서 상영하지 못했다. 이 점이 아쉽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행위이다. 이번 ‘2012 베니스 인 서울을 통해 현대의 영화와 고전의 영화를 볼 수 있고 한국과 먼 다른 나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물론 낯선 풍경이라 이해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스스로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정리: 최혁규(관객 에디터) | 사진: 김윤슬(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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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마르케의 <아름다운 5월> 상영 후 정지연, 김성욱 평론가 대담 지상중계

 

지난 12월 9일, 크리스 마르케의 작은 회고전을 마무리하며 정지연 영화평론가와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좌담이 열렸다. 이 날의 좌담은 <아름다운 5월>의 방법론과 접근법, 크리스 마르케의 정치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정지연(영화평론가): 크리스 마르케 영화를 처음 본 건 세네프에서 주최한 크리스 마르케 특별전이었다. 그때 <붉은 대기>를 보고 감동 받았다. 어제 <아름다운 5월>을 보고나서 <붉은 대기>를 <아름다운 5월>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조금 놀랐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젯밤엔 <붉은 대기>를 다시 봤는데 지금 시점에선 <아름다운 5월>이 더 좋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운 5월>은 이브 몽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브 몽땅의 고혹적인 목소리만으로 모든 게 용서될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정치적인 영화라는 관점에서도 <아름다운 5월>의 접근법이 더 재밌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이 흥미롭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선 존 카사베츠가 <얼굴들>(1968)을 만들던 때였다. 크리스 마르케라는 감독을 생각했을 때, 이 사람은 정말 소비에트적인 감독인 것 같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알렉산더 메드베드킨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찍었다. 실제로 1967년에 메드베드킨을 처음으로 만나서 그의 <행복>(1934)이라는 영화를 복원, 재상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5월>에서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2부에서는 두려움과 더불어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크리스 마르케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던 고다르는 <필름 소셜리즘>(2010)에서 이런 말을 한다. “러시아와 행복이 결합되기 전에는 죽고 싶지 않다.” 크리스 마르케가 소비에트적이라고 하는 건 소비에트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2,30년대 소비에트 영화에 대단한 존경과 영화인으로서의 자부심, 긍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근본적으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소비에트 영화감독들도 그랬지만, 마르케는 영화라는 기계가 만들어졌을 때 자신을 프로메테우스라고 생각했었다. 영화라는 기계를 통해서 노동자 계급에게 새로운 무기를 전달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크리스 마르케는 평생을 통해서 영화를 통해 민중, 노동자, 거리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당시에 메드베드킨이 시도했던 <시네트레인>이라는 건 러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사람들의 연결을 만들어내려 시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크리스 마르케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하층 계급들에게 하나의 무기로서 영화를 전달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만남을 통해서 관계를 형성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고전기 시기에서 5, 60년대 이후 극영화가 바뀌어가는 관점 중 하나는 사람과의 만남을 영화를 통해서 구현해내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고전기 영화가 극화성을 가지고 있다면,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나 다큐멘터리, 혹은 카사베츠의 영화엔 사람들과의 만남을 영상화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마르케가 지극히 소비에트적인 것 같다. 그리고 그 특징이 가장 잘 구현된 작품이 오늘 보신 <아름다운 5월>이라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지연: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소비에트적이라고 하는 건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단 크리스 마르케는 강인한 좌파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고, 자기 작품 안에서 실제로 혁명과 역사에 대한 질문, 또한 민중들의 개별적인 삶이 어떻게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요인들과 만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의 혁명 영화들은 너무나 이상적인 것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르케는 자기 작품 안에서 그런 이상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탐구하려고 했던 감독이다. 또 한편으론 몽타주 실험이 많았던 것 같다. 1920년대 몽타주라는 개념은 샷과 샷이 만나면서 어떻게 의미들을 만들어 내는지에 집중한다. <아름다운 5월>에서도 오프닝과 엔딩에 쓰인 몽타주가 재미있다. 오프닝에서 이브 몽땅의 내레이션은 아름다운 5월의 파리, 누구나 연상하는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서 배경에 깔린 사운드는 사이렌 소리, 도시의 소음 등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다. 또 시작은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이라는 근대적 조형물인데 마지막에 와 닿는 건 감옥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감옥을 보여주고, 감옥 이후에는 명대사가 나온다. “감옥이 있는 곳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슬픔이 있는 곳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 가난한 자가 있는 곳에서 부자가 나올 수 없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미지와 실질적인 삶을 충돌시키면서 배치하는 전략들이 눈에 띈다.

크리스 마르케는 이론가고 지식인이었다. <아름다운 5월>은 자본주의 사회로서의 프랑스, 제국주의로서의 프랑스, 근대화 과정 속에서 피폐해지는 프랑스라는 이론적 프레임 안에서 진행이 된다. 그런데 그런 프레임은 지식인들의 관념 속에서 파악되는 것이다. 거기서 그곳의 개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가령 프랑스 시민들에게 5월에 가장 인상적인 건 이상기온이고, 노동자들의 파업도 소음 때문인 것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삶이 근대성,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 지식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사적 국면과 어떻게 탈구되고 구성되는지를 재미있게 질문하고 답한다. 마르케는 ‘정치적 수준과 일상적 수준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그 스스로 내부적인 것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김성욱: 저 역시도 오프닝이나 엔딩 장면들이 생각이 난다. 맨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첨탑 같은 데 사람이 올라가는 장면이다. 100% 확신할 순 없지만 거긴 파리의 도서관인 것 같다. 레네가 만든 <세상의 모든 기억>(1956)이라는 영화가 파리국립도서관에 관한 다큐멘터리인데 그 건물과 비슷하게 생긴 것 같다. 2막의 첫 시작은 무덤에서 시작한다. 2막 끝 무렵, 감옥 나오기 바로 직전엔 개선문이 있는 에뚜아르 광장이 나온다. 로메르의 <에뚜아르 광장>(1965)이란 영화에서도 묘사되듯이 그곳은 굉장히 남성적인 공간이다. 훈장 달고 있는 사람들이 특별한 기념일에 과거의 영예로운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지, 파리 시민들은 잘 가지 않는다. 그 다음에 감옥이라는 공간이 나온다. 저는 방금 얘기하신 내레이션 직전에 나온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감옥에서 벌어질 수 있는 두 가지 기적이 있는데 하나는 안에서부터 문이 열리는 것, 또 하나는 거리를 자유스럽게 계속 질주해 가는 것. 그러면서 바깥을 향하는 것 같이 자동차를 타고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도서관, 무덤, 감옥 등이 있고 그와 대조적으로 개선문, 에펠탑을 찍은 장면들의 배치는 레네와 비슷한 것 같다.

또 하나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건 1962년이라는 시점의 파리라고 하는 도시 안 풍경과 사람들이다. 극장 스크린으로 이 영화를 보니까 재빨리 넘어가는 컷들이 보인다. 1부가 처음 시작할 때 마치 르네 클레르의 <파리는 잠들다>(1924) 같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공간이 묘사되다가 순간적으로 한 컷에 여자 얼굴이 들어온다. 그 다음에 파리 사람들 얼굴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그건 ‘고독’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이 영화 2부의 거의 마지막은 거의 다 얼굴들을 비추고 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불안한 표정과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을까? 거의 동시대에 고다르가 만든 <국외자들>(1964)에서 안나 카리나가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왜 파리 지하철 안 사람들의 얼굴은 피곤함으로 가득한 걸까” 이런 대사를 한다. 여기서도 사람들의 얼굴에 담겨진 불안함에 대해 얘기를 한다. 방금 몽타주 얘기 때문에 생각이 났는데, 그와 더불어서 나오는 대사가 “죽음에 대한, 육체의 소진에 대한 두려움일까. 그런 한계적인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으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예술이었다”라는 대사였다. 그 대사는 50년대 바쟁적인 논의와 비슷한 것 같다. 바쟁이 영화 예술에 대한 근본적 충동을 ‘미라 콤플렉스’라고 얘기할 때 그건 죽음에 대한 저항이었고, 최종적 단계에 도달한 게 사진이나 영화라는 것이다. 이 영화 말미에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표정들을 다루면서 뜬금없이 예술에 대해 얘기를 하고, 그러고 나서 방금 얘기하신 그런 대사가 나올 때, 이 영화는 어떤 점에서 보면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내려고 했던 시도라고 생각이 든다. 1962년이라는 시대 안에서 파리의 풍경을 담아내면서 그 안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 얼굴이 크리스 마르케 영화를 특징짓는 핵심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1958년에 크리스 마르케가 북한을 방문했었다. 거기서 첫 번째 챕터와 마지막 챕터를 장식하는 건 얼굴에 대한 거였다. 마르케가 북한에 가서 제일 크게 느낀 게, 서구 사람들은 미소가 사라지고 나면 그 뒤에 싸늘함, 냉정함이 남는데, 북녘 사람들의 얼굴은 그렇지 않아서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리고 북한 여성들의 얼굴사진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마지막엔 이런 표현을 쓰고 있다. “웅변가는 수다쟁이에 불과하고, 심지어 하나의 구호이고, 정치는 변하고, 통계는 날조된다. 동맥은 깨지고, 귓불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인간의 얼굴은 그것이야말로 태양이요, 달이다. 나를 향해 돌아보는 얼굴 바로 그것이 나와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크리스 마르케가 책 거의 마지막에서 얘기하는 구절이다. 얼굴이라고 하는 것, 얼굴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이 나를 통해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나와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 그것을 포착해 나가는 것이 마르케의 영화적 작업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 영화 말미에 당시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표정들이 스쳐 지나갈 때 그건 초상 작업 같은 것이다. 또한 그것이 에드가 모랭과 장 루슈가 만든 <어느 여름의 연대기>(1961)라는 작품과의 차별점 아닐까. 실제로 <어느 여름의 연대기>는 <아름다운 5월>에 굉장히 큰 영향력을 줬다. <어느 여름의 연대기> 촬영감독이 <아름다운 5월>의 촬영감독 미하일 롬의 스승이었다. 많은 다이렉트 시네마를 찍은 사람이고, 장 루슈는 캐나다에서 온 이 사람과 함께 <어느 여름의 연대기>를 촬영했다. 그 촬영감독의 제자가 <5월>을 찍은 미하일 롬이다. <아름다운 5월>은 촬영 자체가 흥미롭다. 동시에 이 영화나 장 루슈 영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50년대 말~60년대 초 프랑스에서 개발된 경량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술적 부분들이 이런 촬영 방식과 사람과의 만남, 인터뷰를 영화로 찍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촬영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몇몇 장면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시하듯 찍혔다. 이 시기 극영화를 찍은 감독들(고다르, 레네 등) 영화들보다 훨씬 더 테크닉에서 뛰어난 것 같다. 전문적인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일상적인 다큐멘터리라서, 미적인 관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정지연: 제목은 <아름다운 5월>로 번역되는데 실제로 영화 시작부터 나오는 건 고독과 불안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고독, 불안의 경우는 5,60년대 유럽의 모더니스트들이 지속적으로 시각화하려고 했던 근대적 소외나 불안의 이미지들과 연결되는 것 같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 <어느 여름의 연대기>를 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질문도 같다(“당신은 행복하신가요?”). <어느 여름의 연대기>에서는 카메라가 정박된 게 아니라 이동하면서 사람들을 향한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과연 사람들이 이 낯선 물체 앞에서 자신의 진실을 말할지, 에드가 모랭과 장 루슈가 걱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이 진솔한 자기 얘기를 해서 놀랐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나온 게 시네마 베리테다. 시네마 베리테는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와는 다르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계속 관찰하면 진실이 드러난다는 것이고, 시네마 베리테는 질문 속에서 질문을 추동한다는 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은 좀 객관화된 진실이다. 저는 이 작품이 현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좀 더 중요하고 <어느 여름의 연대기>보다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고 본다. 두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아름다운 5월>에서는 객관적 진실에 대한 믿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후반부 내레이션에도 나오듯 진실은 목적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에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마르케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대답들 속에서 사유의 과정들, 사유의 단초들을 이끌어 낸다. 영화에서 해석하는 자, 사유하는 자의 태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고정된 진실, 객관화된 진실이 아니라 이것들로부터 어떻게 사유를 이끌어 낼 것인지, 어떻게 해석해 낼 것인지, 해석자의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 이건 60년대 다큐멘터리에서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그때까지 다큐멘터리는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증언, 기록의 위상에 대단히 고착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5월>은 이미지 그 자체의 증언이 아니라 이걸 어떻게 붙이고 해석하느냐, 즉 해석자의 위치를 다큐멘터리에서 처음으로 부각시킨 것 같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그렇고 이후 작품에서 크리스 마르케의 인터뷰에서 했던 얘기가 ‘이미지의 비가시성’이었다. 다시 말해 이미지들이란 건 그냥 순간의 현상적인 표현에 불과하고 그 자체로 진실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결국 바라보는 사람이 그것을 연결함으로써 이미지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지막 볼셰비키>(1993)에서 오프닝에 조지 스타이너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를 사로잡는 건 과거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이미지일 뿐이다.” 여기서 ‘과거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객관적 과거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떻게 과거의 이미지를 기억하느냐에 따라 그 이미지는 다르게 전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송대>(1962)를 보면 한 남자에게 각인된 과거 한 순간의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 있다. 그런 이미지들을 연결함으로써 사유의 구성을 맥락화하는 게 중요했던 사람 같다. 그래서 본인에 대해서 ‘이미지의 사냥꾼’이라는 말을 했다. 차이가 있다면 사냥꾼은 찾아서 죽이는 사람이지만, 자신은 현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를 적당한 순간에 카메라로 포획함으로써 영속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천사의 사냥꾼’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5월>은 5, 60년대 다큐멘터리의 진실과 객관성에 대한 신화로부터 벗어나서 해석하는 자, 사유하는 자의 위상을 높였던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닐까. 그렇지만 관념적인 좌파적 이상주의로 빠지지는 않는다. 크리스 마르케는 소비에트 혁명에 대한 이상적인 시선들이 있었고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쿠바 혁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이 실패할 때 받은 상처도 컸던 것 같다. 파트리시오 구즈만과 크리스 마르케 사이에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파트리시오 구즈만은 마르케보다 20년 정도 후배다. 구즈만이 사회주의 실험기 1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첫 해>(1971)를 찍었는데 마르케가 그 작품을 보고 인트로 영상이랑 더빙을 마르케가 직접 연출해서 프랑스에 소개를 했었다. 또 구즈만이 <칠레 전투>를 찍을 때 크리스 마르케가 생필름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후 구즈만이 <칠레 전투>를 칸에서 공개하게 되는데, 마르케가 구즈만에게 어떠한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구즈만이 익히 짐작하기를, 마르케는 좌파적 신념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는데 자기는 그런 관점에서 칠레 전투를 편집한 건 아니었고, 비무장한 민중들의 삶을 약간 휴머니즘적인 관점으로 찍었다고 말한다. 마르케도 그런 점에서 보면 참 완고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또한 구즈만은 크리스 마르케가 대단히 은둔하는 태도가 강하다고 얘기를 했다. 이브 몽땅은 자서전에서 크리스 마르케가 굉장히 신사적이고 지적인 사람이라고 전한다. 마르케는 작품도 재밌지만 사람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것 같다.

 

김성욱: 개인사가 별로 안 알려진 감독이다. 사진도 거의 없고, 인터뷰도 거의 없는 편이다. 크리스 마르케의 정치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다. <아름다운 5월>은 2부가 되면서 조금씩 관계의 변화들이 발생한다. 마르케를 다큐멘터리 작가로 부르는 것과 에세이스트라고 부르는 것에 차이가 있다. 제 생각엔 랑시에르가 얘기했던 어법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에세이스트는 자기 머릿속에 있는 걸 바깥에다 표현한다. 다큐멘터리 작가는 무언가가 밖에 있고 그걸 어떻게 배치하고 결합하느냐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마르케가 이 두 부분을 왔다갔다 하는 게 있지만 에세이스트에 가까운 것 같다. 근데 랑시에르 식으로는 다큐멘터리 픽션을 만든 사람이라고 얘기된다. 이 영화의 2부는 다큐멘터리 픽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많은 몽타주들이 동원됐고, 장면 장면과의 연결이 굉장히 의도적인 배치들도 있고, 내레이션도 마찬가지다. 마르케와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시네마 베리테에 대한 정의는, ‘시네마 베리테(영화 진실)가 아니라 시네 마 베리테(영화 나의 진실).’ 그게 이 영화를 보면 적합한 것 같다. 크리스 마르케라는 감독이 어떤 정치적인 활동을 했던 건 사실이다. 60년대 말~70년대 초 마르케는 영화 집단 ‘SLON’의 멤버였다. 당시 SLON은 우리나라로 치면 노뉴단 같은 것인데 트럭에다가 필름을 들고 다니면서 파업 현장을 기록했다. 그 기록들을 이태리에서 상영하고 상영료도 받고, 유럽에서 잘 나가는 영화제작집단이어서 ‘좌파의 MGM’이라고 불렸다. 여기서 메드베드킨의 영화도 상영을 했고, 구즈만 영화작업에도 관여를 했다. <붉은 대기>는 전 세계 다큐멘터리스트가 결합해서 만든 영화였다. 게다가 마르케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카메라를 노동자 손에 쥐어준 작가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5월>처럼 사람들의 말을 담아내는 게 지금으로선 어렵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대적으로 특정한 시간대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담아내는 건 당시로선 텔레비전이나 신문이 할 수 있을 법한 거였다. 영상 르포르타주, 혹은 미디어가 보도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담아내려고 했던 시도라는 점에서 보면 첫 번째 미디어 실험가였다고 볼 수도 있다. 크리스 마르케라는 작가 자체가 갖고 있었던 정치성이 영화를 통해 어떻게 구현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지금에 있어서도 의미를 가진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 이런 점들이 크리스 마르케 영화를 볼 때 떠올려보게 되는 지점들이다.

 

정지연: 크리스 마르케 영화들에서 그런 정치적인 관심들이 있다. 그런데 이 시기 1세계 지식인이라 자부했던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 정치적 발언에 대한 책무가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드러난다. 61년 10월 파리에서 알제리인 대학살이 일어나고, 62년 7월에 알제리 독립선언이 일어난다. 이것들을 좌파 지식인이 목도하면서 어떤 책무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2부에서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뭐가 가장 중요합니까? 알제리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의 발언 속에는 국수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발언들도 있다. 크리스 마르케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답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런 역사적 국면이 일반인들에게는 어떻게 괴리되고 있는지, 무엇이 그들을 역사적인 이슈로부터 괴리시키고 있는지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빈민가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여주면서 ‘공간이 작을수록 세계를 향한 건 TV를 통해서’라고 하는데, 50년대 텔레비전은 대중적인 탈정치화를 가속화시킨 매체였다. 마르케는 삶과 정치가 분리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선 질문은 정치적인 쪽으로 유도를 하되 사람들의 빗나간 대답들을 관찰한다. 마지막에 갑자기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이 나타났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결국 영화감독으로서 영화를 찍는다는 게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언급인 것 같다. 소비에트 영화처럼 직접적으로 민중을 계도하고 영화가 갖고 있는 선동력에 주목하기보다, 질문의 순간들, 사유의 순간들을 영화적인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순간의 이미지를 영속화시키고, 그 사유의 이미지를 영속화 시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라고도 봤던 것 같다.

 

김성욱: 마지막에 나왔던 예술에 대한 언급은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같은 시간대 만들었던 <환송대>랑 비교해보면 시간, 기억이라는 화두가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보존되는가, 현재 관점에서 보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이 영화에서 5월 기억을 계속 떠올리게끔 얘기 하는 것에는 알제리에 대한 망각이 있다. 레네가 <밤과 안개>에서 당시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아우슈비츠를 망각했는지 질문했던 것처럼, 마르케도 <아름다운 5월>에서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알제리를 망각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바꿔서 얘기하면 어떻게 그것을 기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망각된 현재 안에서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영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겠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고 크리스 마르케는 망각된 사람들을 상기시키는 작업을 하는 건데, 그건 인터뷰의 말에서만큼은 완벽하게 나오지 않는 거다. 그랬을 때 기억이라고 하는 건 과거에 있는 것들을 재현해 가는 게 아니라 새롭게 구성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것이다. 그게 메드베드킨에 대한 다큐를 만들 때 마르케가 제기했던 질문이었다. 사람들에게 메드베드킨을 아냐고 물어보는데 아무도 모른다고 대답을 한다. 역설적인 건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영상화 할 것인가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억을 만들어줄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게 영화작업이 됐던 거고, 그래서 과거를 회고하는 기억이 아니라 ‘미래적인 순간에 도래하는 것으로서의 기억’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역설은 <환송대>에서도 마찬가지로 반복된다.

모든 정치영화는 두 가지를 다룬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방금 얘기하신 것처럼 집단성의 문제를 다룬다. 국가, 공동체, 권력집단, 대항하는 정치집단 등, 정치는 어쨌든 둘 이상의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집단성, 혹은 집단적 주체성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대한 것이다. 이는 정치적인 영화들이 추가하고 재현해 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타자와의 관계이다. 정치영화엔 이 두 가지가 결부되어 있다. 마르케 영화를 봤을 때 사람들은 모두 순수하게 개별적이다. 자기 앞에서 문을 닫아버린 프랑스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화될 수 있는가, TV으로만 세계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집단성이 일어날 수 있는가. 62년의 시점에서는 정치적인 집단적 주체성이 구현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 68년을 거치면서 <붉은 대기>는 그런 집단적 주체성, 집단적 이미지를 구축해가는 영화이고, <숨은 고양이 찾기>는 그런 것들이 사라진 이후에 새로운 형태의 집단적 주체성에 대한 질문이 들어가 있다. 가장 저차원적인 정치적인 영화들은 그 집단적 주체성을 고전적인 방식으로 만들어간다. 한국에서 나오는 대부분 상당부분의 정치영화들이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생각도 없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 생각도 없다. 집단적 대변자로서의 영웅적인 서사라든가, 집단성이라는 걸 인간적 드라마로 바꿔나가는 구조들이 대부분이다. 마르케가 5, 60년대에 시도했던 건 민중의 집단성을 표상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집단적으로 무리지어 움직여가는 이미지들이 있는데 그건 말하자면 군중이다. 군중은 숫자일 뿐이지 관계의 어떤 부분도 내재하고 있지 않은 집단적 무리다. 그와 다른 방식으로 집단성을 구현해나가길 시도한다는 것이 마르케 영화와 정치성이 관련해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까.

 

정지연: 크리스 마르케는 역사를 찍는다고 진실이 드러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하면서 기억상실의 이미지라는 말을 했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분쟁, 학살을 경험하는데, 어떻게 이를 끊임없이 망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런 망각으로부터 자신의 이미지 서사, 이미지 정치학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들을 복권해내고 붙잡고 영속화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억은 망각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그 이면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역사를 다시 쓰듯 기억을 다시 써야 한다.” 승리한 자들이 기념비 세우는 역사가 아니라, 폐허 아래 묻힌 자들, 실패한 자들의 역사를 끊임없이 발화해야 하는 상기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마르케는 이미지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국면들을 사유케 만드는 것이 자신에게 중요한 이미지 정치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미지 수사학이나 정치학을 구축한 그의 작품은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황초희(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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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고양이 찾기> 상영 후 변영주, 이해영, 홍세화와 함께한 토크 지상중계

 

<태양 없이>, <제5단계>, <숨은 고양이 찾기>가 연달아 상영되던 이른바 ‘크리스 마르케 데이’였던 지난 12월 1일, 마지막을 장식하는 행사로 오픈토크가 열렸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이 진행한 이날 오픈토크의 특별한 손님으로는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가 참석하였다. 영화와 정치에 대해 날카로운 이야기가 오갔던 그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해영 감독과 제가 계속 오픈토크를 하고 있다. 이번 달은 무슨 주제로 해야 되나, 뭔가 대선과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이런 얘기를 하던 차에 꼭 모시고 싶었던 분, 홍세화 선생님을 성공리에 모시게 되었다. 먼저 영화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객석 쪽 질문을 받아서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다. 제 기억으론 크리스 마르케의 몇몇 작품들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이 됐고, 오늘도 1시부터 계속 상영이 있었다. 오늘 함께 본 <숨은 고양이 찾기>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홍세화(진보신당 전 대표): 이 영화를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영화가 참 어렵단 생각이 들었다. 원제가 ‘장대에 올라선 고양이’ 이런 뜻인데 그 의미가 뭘까, 이런 생각을 쭉 하면서 봤다. 그 중에서도 저는 파리 광경이 나오니까 그 부분이 더 정감이 갔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 있는데, ‘파리는 항상 이를 드러내고 있다, 웃지 않으면 화를 낸다’고 했다. 그러니까 웃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면 으르렁거린다는 것이다. 데모현장의 표현도 그런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알 것 같으면서 알쏭달쏭하다.

변영주: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들이 기본적으로 그 다음 단계의 시네마 베리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시네마 베리테는 이미지와 이미지가 충돌하고 사운드도 다른 사운드로 구현이 된다. 애초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 카메라와 마이크가 가서 개입을 한다. 그로 인해서 갑자기 전혀 상관없는 공간이 주제와 연관이 된 것처럼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마르케는 마치 그 다음 단계처럼, 자기가 만들어내는 영화 안에서도 시퀀스와 시퀀스가 서로 긴장을 하고 서로 교류를 한다. 제가 굉장히 잘 아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뭉뚱그려서 얘기하는 걸 보면 저도 되게 어렵게 봤다는 거다(웃음).

이해영(영화감독): 말한 내용 중 핵심은 없었다(좌중 웃음).

변영주: 재미도 있지만 어렵다. 저는 김성욱 프로그래머한테 물어봤다. ‘저 고양이 실제 있는 그림이야? 없는 그림이야?’ 실제로 저 시기에 시위현장에서 자주 보이던 고양이 그림이라고 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말을 빌리자면, 몇 년 동안 이 시기 파리를 중심으로 한 말도 안 되는 정치적 혼란을 흡사 아주 오래 전부터 지켜봐왔던 누군가의 시선처럼 지켜보는 그런 이미지의 영화인 것 같다. <숨은 고양이 찾기>라고 하면서 보이는 프랑스의 현실. 이를테면 좌파들도 결국 시라크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위도 있고, 중간 중간 보이는 우파들의 시위도 있다. 일단 홍 선생님께서 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당시의 프랑스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홍세화: 프랑스는 결선 투표제를 채택하여 대통령을 뽑을 때 총 두 번 투표를 한다. 2002년 봄 1차 투표 때 현직 대통령인 자크 시라크가 20%로 1등을 하고 2등은 사회당 후보인 리오넬 조스팽이 되리라 믿었다. 그리고 극우주의자 장 마리 르팽은 3등을 하리라고 봤다. 그는 프랑스 실업자가 300만이면 이주민 노동자 300만 명을 쫓아내면 된다는 주장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 극우 후보가 1차 투표에서 2위를 하게 되는 이변이 일어난 거다. 젊은이들이 당연히 조스팽이 되리라 생각해서 투표 안 하고 놀러갔다는 속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결선 투표에 가게 되니까 우파인 시라크와 극우파인 장 마리 르팽이 결선에 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결국 결선투표가 82대 18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이게 프랑스 당시의 상황이었다.

 

이해영: 영화에 나온 고양이 캐릭터 이름이 ‘또마’다. 또마를 그리는 화가는 퐁피두 광장에서 거대한 퍼포먼스를 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화가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제가 이 화가를 만나 본 적이 있는데, 당시 <29년>이라는 영화를 준비 중이던 2008년이었다. 주인공이었던 류승범 씨와 카페에서 술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마침 그 카페 벽에다가 또마라는 분이 고양이를 그리고 있었다. 그때 그분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벽에다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MB정권 초기였고, 이런 민감한 소재의 영화를 과연 만들 수 있을지 불안감과 조바심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자면서 영화를 준비했던 때였다. 어쩌면 프리프로덕션하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그런데 결국 영화는 엎어졌다. 영화가 엎어지니까 갑자기 이 고양이가 생각났다. 그때 그 분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는, 말하자면 한량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의 삶보다 내가 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삶이 나의 삶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더 찾아보니까 홍대에도 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관련 상품도 많이 나와 있어서 제 차에 또마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몇 년이 흘러서 오늘, MB정권 말기에 <26년>이 저와 관계없이 개봉을 했다. 크리스 마르케, 또마, <26년>이 묘하게 겹치면서 환기가 된다. 두 분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게 있다. 지금 정권 말기가 되면서 정치적인 이슈를 다룬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제가 알기론 어떤 정권 말기에도 이 정도로 영화가 이렇게 집중되어 나온 적 없었던 것 같다. 여기에 이 정권이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 극장에 걸려있는 정치적인 독립영화 혹은 상업영화중에서 혹시 보신 게 있는지 궁금하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 말대로 여타 어떤 정권 말기에도 이렇게 정치적인 영화가 상업영화 독립영화 가릴 것 없이 봇물처럼 나온 적이 없었다. 그중 굉장히 좋았던 영화도 있었다. 사실 독립영화는 언제나 정치적인 소재를 직접적으로 이야기 한다. 이를테면 <두 개의 문>. <26년>이라든가 <남영동 1985>의 경우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막으려는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고, 혹여 그랬을 때 상영이 되지 못할까 봐 개봉시기가 조절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 이해영 감독이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미 투자가 얘기되고 캐스팅까지 다 된 영화가 갑자기 엎어진 건 초유의 일이었다. 독립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디액트나 독립영화전용관 등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누군가에 의해 쫓겨나는 건 상상을 못 했었다.

홍세화: 저도 <두개의 문>이랑 <부러진 화살>을 봤다. <화차>는 아직 못 봤다(웃음). 사실 제가 영화를 잘 못 본다. 앞으론 자주 봐야겠다.

이해영: 필요에 의해서 나오는 영화들이고 다음 정권에 대한 불안 때문에 앞당겨 개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드는 사람 입장보다 관객의 소비패턴이, 영화를 보는 게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의 전부라는 면죄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만 소비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그리고 영화가 수단의 기운에 편승해서 졸속 제작 되었다면 위험한 일일 것이다.

 

변영주: 다시 <숨은 고양이 찾기>로 돌아가서,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누가 몇 프로가 되건 1, 2등이 결선으로 간다는 것인지.

홍세화: 50%가 넘지 않으면 그렇다. 그러니까 1차 투표에선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를 사표에 대한 우려 없이 찍을 수 있다. 1차 투표는 내가 좋아하는 후보를 찍는 것이고, 2차 투표는 내가 싫어하는 후보의 반대편을 찍는 것이다.

변영주: 그럼 우리는 2차 투표만 하고 있는 거다(웃음).

홍세화: 지금 우리 경우처럼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는 일은 프랑스에선 있을 수가 없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는 결선 투표제를 한다. 대선은 2주, 국회의원은 1주 만에 뽑는다. 투표일이 일요일인데 투표율도 높은 편이다.

변영주: 르팽이 처음 출현했을 때는 지역정당으로 시작을 했었다. 당시 프랑스의 평범한 시민이라면 그런 정당이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이젠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도 많이 보수화되었고 우익정당을 지지하는 젊은이 숫자도 그만큼 늘어난 거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보면서 우경화되어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르팽처럼 이주민 노동자에 대한 공격적인 언설도 분명 있다. 분명 한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도 동시적으로 생각하면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홍세화: 아무래도 보면서 견주게 된다. <르몽드>는 사설에서 극우파가 결선에 나오게 된 상황 자체가 “프랑스의 수치”라고 했었다. 거기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동안 좌파, 지식인, 문화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배경도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라는 흐름은 노동의 분업체계 안에서도 위계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소위 중도좌파들은 조직된 노동이나 상층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노동이 위계화 되면서 하층들이 좌파들로부터 버림받는 상황이 됐다. 이때 이들에게 접근한 게 바로 극우파였던 거다. 프랑스뿐만이 아니라 북유럽에서도 극우세력이 20%에 가까운 지지율을 받고 있는 게 그런 문제에 있다. 보통 20대 80의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상위 20이 80을 갖고 있고 하위 80이 나머지 20을 갖고 있는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이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민주주의만 제대로 작동하면 된다. 왜냐면 80만 제대로 투표하면 되니까. 그런데 지난 4.11 총선에서도, 월 소득 100만원이 안 되는 층에서 투표한 사람들 중 새누리당 지지율이 71%였다. 그만큼 서민층 내지 극빈층이 오히려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이다. 비록 역사적 배경이나 층위는 다르지만 이렇게 견주어 볼 수는 있다.

 

 

관객1: 이 영화를 보면서 68혁명과 <몽상가들>이란 영화를 떠올렸는데, 시위에 참가하려는 영화 속 주인공에게 친구가 ‘네가 화염병을 던지려고 달려 나가는 순간 넌 네가 적대시하는 사람과 동일해져’라고 말한다. 저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아니고, 병을 들고 뛰어나가는 사람도 아닌, 어떻게 보면 어정쩡한 자리에 있다. 사람들이 제게 ‘너는 누구와 연대하고 있어?’라고 물어볼 때 ‘나는 모두와 연대하고 있다’고 답하는데 그들은 그걸 ‘아무와도 연대하고 있지 않다’는 말로 듣는 것 같다. 두 사람 이상이 같은 꿈을 꾸려면 그 방법이 무엇일지 질문 드리고 싶다.

홍세화: 우선 68혁명이 갖고 있는 사회적 변혁의 추진에는 분명히 긍정적인 것이 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려면 회사에 남편의 동의서를 제출했어야 했다. 그만큼 가부장적인 사회였는데 68혁명 이후에는 엄청난 격변이라고 할 수 있는 변화들이 있었다.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하게 활동들이 있을 텐데, 이것이 문화적인 것이든 지적인 것이든, 핵심은 사회적 존재인 ‘나’가 그 안에서 총체적으로 인식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건 자기 능력에 따라, 자기 적성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서 다르다. 그리고 화염병을 던지는 순간 저들과 똑같이 된다는 얘기는, 싸우는 과정 자체가 싸움을 통하여 우리가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를 닮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사실 한국 같은 사회에서 그걸 지킨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건 각자가 고민 속에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속에서 스스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관객2: 두 분 감독님께, 요즘 나오는 정치적인 영화, 정치적인 엔터테인먼트, 새누리당이나 MB를 희롱하는 엔터테인먼트가 저소득 계층들에게 정말 설득력을 가지고 손을 내밀 수 있을지, 그럴 수 있다면 그 영화들이 제안해야 할 바가 뭔지 궁금하다. 그리고 홍세화 선생님은 정치인으로서 느끼셨던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홍세화: 제가 지난 1년 동안 진보신당 대표 자리를 맡았다. 글 쓰는 서생으로서 정치를 보았을 때와 현실 진보정치는 역시 다른 것이었다. 현실정치를 겪으면서 알게 된 모든 것이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걸 알게 되어서 또한 좋은 일이다. 제 삶에 있어서 현실 진보정치에서의 1년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1년이었지만, 결국 유의미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고통이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의미 없는 고통이다.” 힘들었지만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해영: <26년>도 <남영동 1985>도 <MB의 추억>도 아직 못 봤지만 이런 생각은 든다. 실제 역사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희생자나 유족 분들이 아직 살아있는 사건을 다루는 영화라면, 그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만이 목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분노를 같이 공유하자, 그것만으로 소비되면 굉장히 위험한 것 같다. 감정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는 영화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장 적절하게 이상적인 답안을 준 영화가 <두 개의 문>이라고 본다.

 

 

관객3: 두 분 감독님이 크리스 마르케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두 분께서는 마르케의 어떤 면모를 좋아하시는지 간략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홍세화 선생님께서 아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 허무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하셨다. 그런 얘기들은 한국사회에도 많이 나오는 얘기인 것 같다. 진짜로 젊은이들의 무관심이 현실 제도정치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시는지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변영주: 개인적으로 크리스 마르케뿐만이 아니라 시네마 베리테 감독들을 좋아한다. 우리가 현실세계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건 극영화로 만들건, 결국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세계관, 취향, 영화적인 관점, 그 모든 것들에 의해 반영된 현실이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과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 현실이 아닌 것과 현실, 자기의 주관 또는 세계관과 현실세계의 어떤 것들이 부딪히면서 생기는 긴장감, 이런 것들이 시네마 베리테 영화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공부가 된다.

이해영: 저는 크리스 마르케의 사진 작업들을 많이 봤다. 사진 작업들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건 사람을 바라볼 때 아무런 편견 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같은 태도였다, 크리스 마르케의 사진이나 다큐멘터리를 이따금 찾아볼 때마다 그런 태도가 환기되는 것 같다. 즐기기보단 교과서 같은 작품들인 것 같다.

홍세화: 프랑스 정치에선 시위상황이 굉장히 유희적이다. 한편 한국에선 요즘 시위도 거의 없고, 모순이 의식을 통해 엄청나게 통제되거나 물리력에 의해서 억압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수평적으로 비교하면 안 된다. 그렇지만 사회적 모순이 첨예한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모순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정치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은 대단히 두려운 거다. 아예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차라리 누가 좋고 싫고, 이렇게 접근이나 가능하면 모르겠는데, 아예 담을 쌓는 현상은 그 분들 대다수가 혐오하는 정치를 계속 혐오스럽게 놔두는 가장 강력한 정치 현상이다. 한마디로 탈정치라는 건 그 혐오스런 정치를 계속 혐오스럽게 놔두는 강력한 정치적 행위다.

변영주: 마지막으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 떠오르신 몇 가지 생각이 있으시다면?

홍세화: 투표 잘 해야겠다. 영화운동, 문화운동, 정치운동, 뭐든지 운동이라는 건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현실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피치 못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 또 하나는 지금 제가 강조하려는 것인데, 바꾸어야 할 현실로서의 의미다. 똑같은 현실이란 말에서 우리의 경우는 전자의 의미가 너무 강하다. 그만큼 현실을 변화시키는 게 어렵기 때문에 운동을 말하는 사람들은 좀 더 적극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에는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 사이에 장벽 같은 것이 있다. 선거판만 보더라도 엄청난 단절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상대와의 관계가 적대 관계지 경쟁 관계가 아니다. 소통, 소통 하지만 장벽 내에서의 소통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정말 사유하는 존재라면 이 장벽을 어떻게 깰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나름대로 사회비판의식을 갖게 되고 세상 보는 눈을 얼핏 뜨게 되는 경우는 스무 살 안팎에서, 선배 잘못 만나면 길이 열리게 된다(웃음). 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장벽을 뚫어서 어떻게 하려는 시도보다는 비판에 머무는 건 그것이 제일 쉽기 때문이다. 어떤 작업이든 벽을 뚫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과제가 아닌지, 그렇게 생각한다.

변영주: 요즘 극장에서 독점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영화가 다양하게 상영되지 못한다. 정말 이게 상영이냐. 많은 분들이 대기업 욕을 하신다. 그러면 그들이 영화를 그만두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그건 아닌 것 같다. 이건 영화계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질서의 어떤 리얼한 단편이다. 단순히 대기업이 정신을 차리는 걸로 끝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뭘 해야 하지?’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작은 영화들은 여전히 설 자리를 잃고 말 거다.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정말 투표를 잘 해야 하는 건 개개인의 삶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은 단순히 불쌍하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면 우리는 어떤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건지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정말 놀라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과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내 삶 안으로 다가오는 순간 세상이 또 한걸음 전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해영: <두 개의 문>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연분홍치마가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 친구들 영화 하는 걸 보면, 다음 정권은 독립영화인들이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정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정권이었으면 좋겠다.

변영주: MB정권 들어와서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이 정말 힘들어졌다. 갑자기 지원이 끊기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행되기도 했지만, 그걸 지켜줬던 유일한 힘이 관객들의 관심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독립영화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고, 오늘 자리해주신 여러분들, 그리고 홍세화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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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시네마테크의 10주년을 기념해 '시네마테크 어워드' 행사가 열렸습니다. 올해 초 서울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로 10주년 행사로 치렀고, 5월에는 ‘존 카사베츠 특별전’으로 관객들과 10주년의 기쁨을 함께했습니다. '시네마테크 어워드'는 올해를 마감하며 그때 함께하지 못했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에게 공식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자리였는데, 그 자리에서 우리는 대표님의 인사말을 빌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감사의 표현을 했습니다.

“시네마테크에 대한 후원은 상업적인 이득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와는 하등의 상관없이 단지 문화와 예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영화예술에 대한 열정만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지난 10년 동안 시네마테크를 후원하신 여러분들의 노력이 더욱 값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상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에게 드리는 상은 그런 많은 상들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시네마테크 어워드’는 시네마테크라는 이름으로 드리는 첫 번째 상인 동시에 유일한 상입니다. 이 상이 지난 10년 동안 시네마테크에 보내준 친구들의 노력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저희들의 가장 깊은 마음에서 나온 감사와 경의의 표현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벌써 3년 전의 일이지만 2009년에서 2010년의 3월에 이르는 그 어느 해보다 차가웠던 겨울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공모제의 시행과 공적 지원의 중단으로 시네마테크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실제로 그해 3월에는 이미 문을 닫았던 인디스페이스와 마찬가지로 낙원을 떠나는 고별프로그램을 준비했었습니다) 그 길고 혹독한 겨울의 시간 동안 거의 매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과 극장을 계속할 수 있는 방안들을 함께 논의했습니다. 관객들의 후원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임대료가 마련되고 공모제가 의미 없이 끝나면서 시네마테크는 중단 없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는데, 그때의 일은 시네마테크의 역사에서 유례없는 사건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10주년을 맞는 시네마테크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올해로 80주년을 맞은 베니스영화제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2012 베니스 인 서울’입니다. 영화제는 행사 기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상영작들과 관객이 다시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는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번에는 과거 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을 복원작으로 만날 기회도 있는데, 특히 개막작인 복원판 <돼지우리>(1969)는 우리 시대에 시사 하는 점이 여전히 많은 작품입니다. 파솔리니는 이 영화로 현대사회가 위험에 처했다고 말합니다. 이 영화는 사회에 반항적이던 젊은이들이 소비사회에 먹혀버리는 식인과 수간의 그로테스크한 세계, 자기 파멸과 방랑을 거듭하는 시대의 젊은이들이 어쩔 수 없는 죽음, 혹은 정신적 마비상태에 이르는 비극적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비사회가 먹어치운 대중들, 사회의 탐욕에 포식된 젊은이들의 상황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취약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모두들 잘 되고 있기를 기원합니다. 미리 드리는 새해 인사입니다.

 

글 /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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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 쇼헤이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영화는 광기의 여행’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런 광기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신들의 깊은 욕망>(1968)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의 혼신이 담긴 괴작이자 최고의 작품이며 전환점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는 일본 열도 남단의 오키나와 근처의 가공의 섬. 일본이 가진 낡은 습속이 이곳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낡은 샤머니즘이 여전히 있어서 무녀가 몰아지경의 상태에서 신의 소리를 들어 그것을 사람들에게 고지하면 주민들은 그 말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이런 외딴 곳에도 산업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섬에는 비행장을 만들고 관광객을 들이는 계획이 진행된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위대함은 본토에서 떨어진 작은 섬마을 공동체의 성스러운 의식들을 지극히 느리게, 하지만 숨 막힐 정도로 공포스럽게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 특히나 영화 말미에 나오는 장엄한 제의적 죽음의 장면이 압도적이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이 이곳 주민들이 ‘호모 루덴스’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비롯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모던한 일본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당시 이마무라 쇼헤이가 이상적인 일본 민주주의를 하나의 환영에 불과한 것으로 바라봤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들이야말로 더 현실적인 사람들이었고 모던한 일본을 비판할 수 있는 원형의 사람들이었다. 그는 마을의 정신적인 연대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유지되는지, 그러기 위해서 낡은 신앙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그리고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배제하고 말살하는지 보여준다. 이런 몰살의 의식을 고려하면 영화에 나오는 상어와 돼지의 조우는 꽤 우화적인 설정이라 할 수 있다. 배에 실린 돼지들의 농담처럼 평안한 모습과 이어지는 상어의 습격은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지극히 무감한 카메라의 응시로 표현된다. 아주 취약한 죽음이 벌어지는 것과 이에 대한 카메라의 무감한 응시는 희생자를 구제할 길은 없다는 것과 그들의 운명을 상기시킨다. 돼지가 가라앉고 푸른 배경 위에 붉은 오점이 남는다. 앙트안 드 베크가 지적하듯이 이 시퀀스에는 인간의 감정도, 상황의 스펙터클도 없다. 카메라는 이 고요한 응시를 영화 내내 유지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이마무라 쇼헤이의 위대함이다. 인간은 여기서 피를 흘리는 작은 돼지이다.

<신들의 깊은 욕망>은 일본영화가 이제 막 변혁의 시기로 치닫던 때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1968년은 여전히 영화의 혁명을 믿을 수 있었던 시기였다. 오시마 나기사는 쇼치쿠를 뛰쳐나가 독립제작사인 ‘창조사’에서 <일본 춘가고>, <교사형>, <돌아온 주정뱅이>등을 만들었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돼지와 군함>, <일본 곤충기>, <붉은 살의>, <인류학 입문>을 거쳐 <신들의 깊은 욕망>에 이르러서는 닛카츠를 떠나야만 했다. 영화가 사회와 대치하고 국가라는 환상과 대항하던 때였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 영화 이후에 근 십년간 영화작업을 제대로 못했지만 촬영소의 붕괴와 영화사의 몰락 이후 갈 곳 없어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영화학교를 개설하기도 했다. 1975년에 개관한 ‘요코하마 방송영화 전문학원’(이 학교는 1986년에 요코하마에서 가와사키로 이전해 일본영화학교로 개칭했고 2011년 4월, 일본영화대학의 모체가 되었다)은 현역 감독, 극작가, 카메라맨, 녹음기사 등이 실제로 영화를 만들며 일의 방식을 배우는 학교였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광기의 여행’은 일본영화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글/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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