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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작가를 만나다] “이 영화가 담으려고 했던 건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미국의 바람과 불>의 김경만 감독과의 시네토크 현장

 

지난 8월 18일 열린 “작가를 만나다”는 최근 개봉해 화제를 몰고 있는 <미국의 바람과 불>의 김경만 감독과 함께 했다. 푸티지 영상작업이 제기하는 역사와 인식, 영상의 문제에 대해 나눈 이날의 이야기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대한뉴스 60년 치를 극장에서 보는 느낌이 있다. 몇 가지 영상들은 특정 세대나 연령층마다 기억을 환기시키는 방식이 다를 거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런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첫 번째 장편으로 <미국의 바람과 불>이라는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듣고 싶다.

김경만(영화감독): 사실 시작은 오래됐다. 옛날 기록필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략 10년 전 쯤으로, 영화작업을 처음 시작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국가가 직접 제작한 기록필름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바나 국가가 사람들을 향해 주입했던 것들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것 말고도 아름답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풍경들도 많이 있었다. 워낙에 한국이라는 곳이 항상 해묵은 문제들을 반복해온 곳이니까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무의미하지 않은 것 같았고,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 했다. 당시 여러 계획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 중 하나로, 한국인들의 미국 사랑, 한국이라는 곳이 더 이상 우리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다는 느낌에서 기획하게 됐다.

 

김성욱: 여러 영상들을 보면서 이러한 주제로 압축이 되었을 때는 작업을 끌어가도록 만드는 특정한 영상들이 있었을 것 같다.

김경만: 하나의 영상은 아니었다. 옛날 필름의 어떤 장면 뿐 아니라,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당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어떤 변화가 가속화됐다고 느껴졌다. 기존의 공간을 부수고 다시 세운다든지, 예전에는 없던 행사들을 많이 기획한다든지, 영어공용화 정책을 내세운다든지 하는 변화들을 보면서 이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김성욱: 놀라웠던 건 이 영상들의 대부분을 한 사람이 찍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형식적인 면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감독이 직접 찍은 영상들이 국가의 홍보영상들과 조응해 들어가고, 둘 사이에 큰 충돌을 못 느꼈다. 보통 이런 작업을 하게 되면 두 가지 접근이 있을 텐데, 그 중 하나는 실제로 있었던 뉴스영상에 대한 내재적인 비평 같은 것으로, 특정 장면이나 이미지들을 크리티컬한 방식으로 끄집어내어 내레이션을 가한다든가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미지나 영상들이 무차별적으로 굉장히 비슷하게 묶여, 어떻게 보면 전체가 국가적 풍경을 담고 있는 공식적인 영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김경만: 제 생각은 좀 다르다. 국가가 기록한 필름들은 관습적인 방법으로 찍어내듯이 촬영을 했는데, 제가 촬영한 부분은 혼자 촬영했었고, 가급적이면 멀리 떨어져서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어떤 행사의 풍경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뉴스릴은 한정된 시간 안에 여러 꼭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컷이 짧은 데에 비해, 제가 촬영한 소스들은 컷이 길다. 사실 애초에는 둘이 많이 섞이기를 기대하고 계획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록필름과 촬영분이 그렇게 많이 섞이진 않은 것 같다.

 

김성욱: 특히 후반부에서 얘기하신 톤의 차이가 있긴 하다. 영어마을이나 기독교집회 같은 장면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간 공간을 지켜보는 듯한 긴 쇼트들이 이전에 국가가 제작한 기록영상들과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어떤 특정한 내용들을 전달하는 영상들이 있고 동시에 그런 푸티지들을 통해서 도달하려고 하는 작가의 측면이 있을 것 같다. 이런 작업 안에서 어떤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이 영상들이 누구에 의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제작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영상을 통해 확인하거나 지시할 수 있는가에 대해 굉장히 몰두하기도 한다. 보는 사람 각자가 느낄 수는 있겠지만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런 부분에 관심 갖게 되는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영화의 후반부에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빈 공간을 보여주고 이어지는 폭격영상은 폭격의 이미지가 전쟁이나 위협 같은 것을 지시하긴 하지만, 영상 자체의 파괴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듯한 느낌도 갖게 된다.

김경만: 마지막 영상에서는 지금의 해묵은 문제의 반복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어떤 일탈 같은 것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솟구쳐 올라가는 장면을 넣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누가 기록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감독들 개개인의 개인성이 드러났다기보다 이런 영상들을 국가가 기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사운드나 말, 이미지 자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중요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것들이 다른 것들과 얼마나 충돌하는지, 실제 혹은 진짜라는 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도 있었다.

 

 

김성욱: 영상을 찍고 보여주는 방식 안에서의 파시즘의 기제가 있다. 이 영화에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서울 올림픽 게임에서의 투포환 선수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30년대 독일의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장면들을 찍어나가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양식들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식으로 70~80년대에 국가가 만들었던 영상을 지배하는 틀이 있었을 텐데, 그 틀이 세련되지는 않았다. 어설프기 그지없지만 지배적일 수 있었던, 그 집단적 양식의 방식이란 무엇이었을까. 스펙터클한 국가적 미장센을 만들어냈던 부분들에 대한 촬영이 대부분이지만, 그것을 조직화 해나갔던 양식이나 스타일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김경만: 국가가 미장센이나 스타일을 고민했을 것 같진 않다. 굉장히 많이 만들긴 했는데 그런 것에 대해 고민보단, 영상에 담길 어떤 의도나 내용에 치중했던 것 같다. 굉장히 많이 만들길 했는데, 그런 것에 대한 고민보다 의도나 내용에 치중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리펜슈탈이 만든 것처럼 아름답게 만들지 못했고, 엉성하고 빈틈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식의 영화작업을 알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 같다. 말씀하신 올림픽 장면은 사실 86 아시안 게임의 장면들인데, 그 영상들에서 파시즘보다는 경제적인 경쟁관계와 같은 어떤 국제질서를 제시할 수 있었으면 했다. 바로 그 뒤에 IMF 직후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이 이어지는데, 항상 한국에 대해 얘기할 때 급속한 경제성장 같은 것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김성욱: 국가의 홍보영상들을 영화연출의 측면에서 보면 국가가 만든 홍보영상들은 내러티브가 빈약하고 배우의 연기가 서툴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전두환이 레이건 옆에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뭔가 쑥스럽고 부담스러운, 어딘가 위축된 듯한 모습이나, 박정희가 미군장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너무나 왜소한 나머지 그들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을 볼 때의 뭔가 어색한 느낌 같은 것이 있다. 이런 영상들을 보면, 영상이 기능하는 바와 달리 영상 속 인물들이 보이는 어색함이 더 특징적으로 들어오게 된다. 푸티지 영상을 접하게 될 때 작가로서 기록물들의 어떤 가치나 활용성, 매력을 느끼게 되는지 궁금하다.

김경만: 풍경들 속에서 발견되는 것들이 있다. 박정희가 케네디를 만났을 때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에서 일반적인 쇼트는 사실 이 영화에서 보듯이 다소곳하게 손을 무릎에 얹고 있는 모습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모습이 저로선 좀 더 보여주고 싶었던 쇼트였다. 숨겨져 있거나 덜 알려져 있는 다른 풍경이 좀 더 보여져야할 풍경이라고 생각 했다. 항상 사실이나 현재의 풍경들은 굉장히 매끈하고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완성된 공산품처럼 제시 되는데, 실제의 모습이나 풍경은 절대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순간들이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한국에서 살면서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보여주고 싶었다.

 

김성욱: 개인적으로 영화의 첫 장면의 마치 기차의 도착 같은 장면에서, 카메라가 기차레일을 쭉 따라가면서 사람들을 찍는데, 사람들은 기차나 카메라를 바라보는 느낌이 있다. 카메라로 누군가를 찍는다는 것이 반대로 카메라에 자기가 찍힌 걸 보고 있다는 건데, 다른 식으로 얘기하자면 이 영화의 푸티지 전체가 카메라 안에 자기를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를 조직화하는 것이고, 이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찍혀진 영상 안에 찍혀지는 사람이 그것을 의식화해서 무언가를 수행해나간다는 것 안의 기제가 있다. 일종의 접대의 미장센인데, 영화에서도 보면 모두가 접대장면이다. 미국과 관련해서 끊임없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줘야하는지에 대한 총력전의 느낌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후반부에 영어 공용화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이 있었을 것 같다.

김경만: 영어마을이란 곳이 영어를 떠나서 그 공간 자체가 보여주는 게 굉장히 많다. 겉으로 볼 때는 굉장히 매끈한 공간이지만 굉장히 어색하고 비현실적인 공간인데, 그런 것들이 한국이 표상하는 미국이라는 유토피아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공간은 존재하지 않고, 이상한 유령 도시나 롯데월드 같은 곳인데 자꾸 한국정부가 그런 공간을 자신들의 이상향이라고 바라보는 것이 너무 기이하게 느껴져서 이 영화에서는 아주 기묘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었다.

 

김성욱: 과거의 푸티지 영상, 특히 뉴스보도영상을 통해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작가의 경우 영상의 메시지나 내용 뿐 아니라, 당시에 그런 순간이 기록되어질 때 갖고 있었던 매개성, 영상이 담겨지는 형식과 유통되는 방식, 이런 여러 가지 정황적인 것들을 보게 된다고 생각된다. 푸티지 영상들을 접할 때, 영상과 관련해서 어떤 느낌들을 갖게 되는지 궁금하다.

김경만: 복잡한 느낌이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보도영상 뿐 아니라, 픽션도 있고, 재연영상도 많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본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다만 인식의 역사 정도는 흔적으로 남아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떤 개인의 인식은 분명히 아니고, 한 사회나 국가의 일반적인 인식에 닿아있는 부분인 것 같다. 물론 그 필름에 남아있는 풍경들에서 아름답고 눈길을 끄는 것들도 많지만,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주로 그런 생각들이다.

 

김성욱: 영어마을이나 기도회에서 사람들이 서서히 퇴장해나가는 모습이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무인의 영상을 보면서 과연 대중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생긴다.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큰 관계 안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대중의 집단성을 담아내는 것에 있어서 국가적 홍보영상의 방식을 탈피해나가는 또 다른 방식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대중을 다큐멘터리 안에서 담아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경만: 사실 이 영화가 담으려고 했던 건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월드컵경기장에서 있었던 대형 기독교집회 같은 경우 개개인의 얼굴을 너무 가까이에서 잡지 않으려 했다. 개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지 그곳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만이 가능했다.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어떤 식의 인식이 작동하고 있는가에 더 관심이 간다. 물론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는 많이 있는데, 보도영상과는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단지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그런 문제의 차원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영화에서 한정 짓는 것 말고, 그것 바깥의 개인의 모습이 훨씬 많이 있다고 생각된다.

 

 

관객1: 후반부에 대형 기도회도 나오지만,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있어서 기독교의 역할이 궁금하다.

김경만: 사람들은 자기 믿음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거기에 항상 무엇이 사실이고, 사실이 아닌지에 대해선 정치라는 게 개입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에서 미국이 어떤 존재인가의 문제는 일종의 어떤 믿음이라고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이 기독교와 많이 겹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된 한국사를 주류 기독교 쪽에서는 일종의 구원서사처럼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관객2: 작업을 위해 굉장히 많은 자료를 봤을 텐데, 자료를 고를 때의 기준이 궁금하다. 그리고 음악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차이코프스키나 바흐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김경만: 한국인의 미국사랑, 한국사회가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해서 장면들을 굉장히 많이 모았다.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 제가 가지고 있는 인식과 맞는 장면을 찾아다녔다. 특히 국가가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실제완 다르다는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장면들을 많이 찾았다. 그런 과정에서 구성을 많이 바꿨었고, 그에 따라 다시 추린 장면들을 재조정 했고, 그런 식의 반복들을 많이 했다. 하나의 명확한 기준을 갖고 선택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영화의 음악은 장면들보다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전쟁의 장면과 음악을 결부시켜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미국의 대규모 폭격은 남한에서는 거의 예기되지 않는 사실인데, 폭격 아래에 있었던 한국인들이 갖게 되는 여러 감정과 생각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3: 저는 대한뉴스 세대가 아니어서, 왜 한국이 미국을 그렇게 사랑하고 편승해가고 싶어했는가에 대해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에서 젊은 세대에 대해서는 등장하지 않아서, 과거에 대해선 집요하게 추적하는 데 비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현재의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다. 앞으로 다른 방향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알고 싶다.

김경만: 한국이 사실 많이 낡았다. 낡은 문제를 반복하는 것 중 하나가 반공문제 같은 것도 있다. 그것이 물론 이데올로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세계를 이해해나가려면 계속 어떤 것들을 고쳐나갈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는데, 계속 같은 굴레 속에 갇혀 있어서 한국이 여러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1차적으로는 한국사회 안에서 뭔가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막아놨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반복적인 낡은 생각들에 관심이 많이 가고, 다른 작업들 역시 그런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